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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하이라이트]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25분) 한때 당신의 가족이었다가 당신의 손에 버려진 반려견들은 지금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유기견 프로젝트 ‘더 언더독’에서는 반려견이 길 위에 버려지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가수 바다가 들려주는 버려진 개들의 비참한 삶에 관한 기록과 가슴 아픈 이야기도 전한다. ●한국재발견(KBS1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산은 흔히 공업과 다문화 도시이자, 바다와 갯벌을 메워 만든 땅에 인공적으로 개발한 계획도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산을 그저 인공적이기만 한 도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산은 서해안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수많은 역사의 흔적을 지닌 문화와 역사의 도시인데…. ●주말연속극 내 딸 서영이(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교통사고 환자를 찾아간 미경은 상우의 응급처치법이 맞았음을 알게 되고, 학교로 찾아가 상우에게 사과를 한다. 한편 호정은 삼재와 상우에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 고기와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삼재네 집을 찾아 간다. 하지만 상우는 그런 호정에게 싸늘한 면박만 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2006년 8월, 전남 무안의 한 저수지에서 흰색 차량과 함께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망한 남자는 18일 전 연락이 끊긴 실종자 이정수씨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발견 당시 시체의 자세였다. 당시 이씨는 두 다리를 운전대 위로 올리고, 안전벨트까지 맨 채 마치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자세로 숨져 있었다. ●나눔 0700(EBS 토요일 오후 3시 50분) 어렸을 적부터 간질을 알아 온 장행진씨는 간질장애 2급이다. 장행진씨는 중학생 때 재발한 간질 때문에 그 어떤 추억거리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은 흘러 23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양육비 한 푼 받지 못 한 채 두 아이를 홀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늘 푸른 인생(MBC 일요일 오전 6시 10분)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진목 마을은 한국문학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소설가 이청준을 배출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좋은 농산물과 해산물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에서도 멋과 여유가 묻어나는 곳, 진목마을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 보따리로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본다 ●OBS스페셜- 생명의 食(OBS 토요일 밤 9시 25분) 사찰음식이 현대인의 식습관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사찰음식에 담긴 한국 불교의 평등사상과 생명존중사상을 뛰어난 영상미와 흥미로운 스토리로 풀어 본다. 한국 대표 문화유산인 사찰음식이 새로운 한류상품으로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 명작 단편소설, 한국어·영어로 동시에

    한국 대표작가들의 단편소설을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담은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현대 소설’ 시리즈가 나왔다. 한·영대역 문예지 계간 ‘아시아’(ASIA)를 발행하는 도서출판 아시아는 5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시리즈의 1차분 15권을 선보였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1’,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등으로, 소설 성격을 파악하기 쉽도록 3가지 키워드(분단·산업화·여성)로 구분해 수록했다. 아시아의 방현석 주간은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궁금해하면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제안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어떤 책이 적당할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이번 시리즈가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접하는 문(門)이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번역과 감수 작업에는 전승희(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원), 데이비드 매캔(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장), 브루스 풀턴(브리티시컬럼비아대 한국문학과 교수), 주찬 풀턴(번역가), 케빈 오록(번역가·한국문학박사), 제니퍼 리(번역가), 손석주(한국 문학 번역원 신인상 수상) 등 내로라하는 한국문학 전문가와 번역가가 참여했다. 시리즈 출시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소설가 오정희(65)는 “학교 다닐 때 영한대역판으로 외국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내 작품도 그렇게 나오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출판사는 생존 작가를 중심으로 연내 50권가량 출간하고, 이후 작고 문인들의 작품도 포함할 계획이다. 시리즈는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등에서 한국학 교재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각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학문론’ 펴낸 서울대 명예교수 조동일

    [저자와 차 한 잔] ‘학문론’ 펴낸 서울대 명예교수 조동일

    조동일(73) 서울대 명예교수가 ‘학문론’(지식산업사)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문학자가 웬 학문론이라며 생뚱맞아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이미 한국문학에서 동아시아문학으로, 세계문학으로 전공의 지평을 넓힌 지 오래다. 또 연구의 꼭짓점을 문학에서 인문학문으로, 학문일반론으로 높였다. 국문학자라기보다 인문학자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학문이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풀어내 학문론은 그가 저술한 13권의 학문방법론을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학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누가 하며, 막히면 어떻게 하는지 차근차근 풀어 준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생은 물론 학문의 길 위에서 갈등하는 전문 연구자들에게 길을 알려 준다.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학문(學問)이란 그의 말대로 “배우고(學) 묻는(問) 행위이며, 학문론(學問論)은 학문(學問)을 잘하게 하는 이론(論)”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 조동일의 학문론은 ‘몰락한 종갓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통찰의 생극론(生克論)을 연다. 서구와 중국, 일본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창조학을 통해 인문학이 주도하는 ‘학문입국’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문을 수출할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도 내놓았다. “인문학문(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패배 의식과 열등 의식의 산물입니다. 인문학문은 홀로 위대하다고 자부하지 말고 사회학문(사회과학)이나 자연학문(자연과학)과 제휴해야 합니다.”라고 고언했다. 나아가 학문의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 방법이니 과학철학이니 하는 분리주의 헌법을 철폐하고 학문의 역사를 바꿔야 해요. 학문론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학문 나라 전체의 통합 헌법’입니다.” 아홉 가지 학문의 병 ‘구불의병’(九不宜病)으로 비뚤어진 학계 풍토에 죽비를 들었다. 학문 여건과 몰이해를 탓하거나, 학문을 한다면서 시사평론이나 하거나, 학문을 인정받으면 장사가 되는 쪽으로 쏠리거나, 학문 업적을 자랑하면서 인기 관리에나 힘쓰고, 자기 연구는 않고 주문생산에만 매달리고, 남의 학문 흉내 내기를 일삼고, 학문을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라고 여겨 이기기 작전을 쓰거나, 공부만 하고 학문으로 나아가지 않고, 진행 중인 작업에 매몰돼 멀리 못 보는 등 아홉 가지 질병이다. 일찍이 ‘고려 제일의 시인’ 이규보가 시를 잘못 쓰는 아홉 가지 병폐를 이른 ‘구불의체’(九不宜體)에서 따온 것이다. 학문이 막히는 학자는 자가진단해 볼 일이다. 하나라도 해당하는 학자는 뜨끔할 것이다. ●아홉 가지 예 들어 학계 풍토 비판 “반성합니다. 너무 많은 책을, 너무 어렵게 썼어요. 책을 펼치면 오·탈자가 너무 많아요. 99.9% 완벽한 책을 내는 게 꿈입니다.” 그렇다면 ‘학문론’은 완벽할까. 출판가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초판본에서 오·탈자 40개가 발견되자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은 초판 1000부를 자진 폐기했다. 저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김 사장은 1977년부터 지금까지 조 교수의 책 21종 27권의 출간을 도맡아 왔다. 조교수는 “알았으면 말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수라는 직함 이외에 다른 직함을 거의 가져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대학의 보직도 맡지 않았다. 70여권의 저서와 200여편의 논문을 썼다. ‘학자는 저술로 말한다.’라는 아포리즘을 지킨 몇 안 되는 꼿꼿한 학자다. 전공자들이 꾸준히 사 보는 책, 절판되지 않는 책의 저자다. 서울대학교 등에서 37년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고, 계명대 석좌교수 5년, 울산대 연구교수 3년을 더 보태 45년간의 ‘기나긴’ 교수 생활을 올 3월에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문학연구방법’(1980),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1~3’(2001), ‘한국문학통사 1~6’(2005)가 있다.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2년 전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부부전시회 ‘풍경+선수’ 전을 열었다. 소년 때부터 화가 지망생이었다. 글 노주석 부국장 joo@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스웨덴,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 반하다

    소설가 황석영이 오는 10일 스웨덴으로 출국한다. 지난해 11월 스웨덴에서 번역·출간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현지 언론과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자 스웨덴작가협회에서 그를 초청한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2002년 일본어판이 나왔다. 2004년 7월 중국어판, 2005년 2월 프랑스판과 페이퍼백이, 같은 해 9월 독일어판이 나왔다. 2009년 9월에 영어판, 10월에 페이퍼백이 나왔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전 세계 각 대륙에서 모두 출간된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스웨덴에서 출간되자마자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예테보리 포스텐’지는 “이 책은 유럽에서는 68좌파에 해당하는 한국의 세대를 다루고 있다. (중략) 1980년에서 1998년에 이르는 교도소 묘사는 현기증이 나는 방식으로 스탈린 시대 소비에트의 감옥 묘사를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소설은 현대 고전 같은 느낌이 든다. 유럽에 새로운 빛 한 줄기를 던져 주는 동방의 크나큰 소설이다.”라고 소개했다. ‘네리케스 알레한다’지는 “황석영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들을 교대로 배치한다. 이 점이 소설 구성에 활력과 균형을 부여한다. 황석영의 자연 묘사는 훌륭하며 한국의 일상생활과 문화에 대한 생각들은 흥미진진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달고 쓰디쓴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스웨덴 중앙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D)는 ‘올해의 좋은 책 3권’에 ‘오래된 정원’을 선정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려고 30여 년 노력했는데, K팝과 한류 덕분에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났다.” 지난 2월 취임한 김성곤(63)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5일 올해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감회를 털어놓았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서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현지 젊은이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노랫말을 따라하고,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나서고, 한국을 방문하려고 안달이 난 상태야말로 순수 한국문학이 세계에 진출하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현지의 장년층들도 현대차와 삼성·LG로고가 들어간 상품을 사용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미국 출판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스타작가 15명을 추려서 ‘제2의 신경숙’, ‘제2의 김영하’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원장은 이들 작가의 대표작을 샘플 번역해 해외의 주요 출판사에 보내 출판가능성을 타진하겠다고 했다. 이 작업을 위해 번역원은 기획재정부로부터 3억원의 예산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또한, 번역원이 직접 해외 출판사와 교섭하기보다는 해외 에이전트를 활용, 현지의 대형출판사에서 한국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해외 출판사와 장기 계약도 맺는다.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Dalkey Archive Press)에서는 2014년까지 25권의 문학전집이, 미국 화이트 파인 출판사에서는 ‘한국의 목소리 시리즈’로 16명 시인의 시집과 소설들이 출간된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위키피디아에 영문으로 올리고, 유튜브도 활용할 생각이다. K팝의 유통경로가 유튜브-트위터-콘서트로 연결되듯, 문학도 이런 루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 문학 작가를 발굴해 번역지원도 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매력적인 원작이 많이 나와야 하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이란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美서 ‘개미제국’ 출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美서 ‘개미제국’ 출간

    한국문학번역원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Secret Lives of Ants)이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됐다고 7일 밝혔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개미에 대한 생태학적 관찰에 바탕을 두고 개미 사회의 경제, 문화, 정치를 총 16개장으로 나눠 정밀하게 묘사한 책이다.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 석학이자 사회생태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 책의 영문판 출간에 붙여 “자연 안에서 가장 경이로운 극소의 개체를 저자의 과학적 지식과 개미에 대한 열정으로 서술한 환상적인 책”이라고 소개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육지속의 섬’ 경북 영양 오무마을 이야기

    ‘육지속의 섬’ 경북 영양 오무마을 이야기

    경북의 3대 오지로 불리는 봉화, 영양, 청송. 그중 한 곳인 영양은 높은 산마루에 갇혀 있는 심심산천의 고장이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탓에 찾아가는 길 또한 멀고도 힘든 영양은 면적이 서울의 2.5배나 되지만, 울릉도 다음으로 적은 인구 2만 명이 사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7일부터 11일까지 매일 밤 9시 30분에 방영되는 EBS 한국기행에선 척박한 환경을 일구며 자연 그대로의 청정함을 간직한 영양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8일 방송에선 육지 속의 섬, 오무마을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지 중의 오지 영양군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립무원으로 손꼽히는 오무마을. 끝없이 펼쳐진 산속에 자리한 마을의 모습이 마치 외로이 떠있는 섬과도 같아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디딜방아는 쌀이 없던 가난한 시절 할머니들이 보리나 쌀을 빻아 먹던 추억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오무마을에는 디딜방아와 함께 세월을 간직한 집이 있다. 200년 된 초가집을 지키는 김통분 할머니다. 열아홉 살에 시집 와서 평생을 함께한 초가집은 할머니에게 어떤 의미일까. 세월의 흔적을 피해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오무마을 사람들을 만나 본다. 9일 방영되는 3부에선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소개한다. 영양의 또 다른 수식어는 바로 ‘문향의 고장’이다. 이 수식어를 대변해주는 영양군 석보면의 두들마을은 석계 이시명 선생이 세운 재령이씨의 집성촌이다.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맘때쯤의 두들마을은 겨우내 낡은 고택의 문풍지를 새로 고쳐 바르고, 한 해 요리에 사용될 된장을 뜨는 등, 고운 봄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영양에는 340년 전의 요리법과 음식 저장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석계 이시명 선생의 부인 장계향이 쓴 ‘음식디미방’이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한글 조리서로, 146가지의 요리법과 음식 저장법이 기록돼 있다. 양반가의 음식이 후대에도 전해지길 바랐던 장계향 선생의 마음을 잇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현재 재령이씨 13대 종부 조귀분씨이다. 그는 음식디미방 회원들과 함께 맛을 재현해내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전통을 지키며 사는 두들마을 사람들을 만나 본다. 10일 방송에선 일월산이 품은 맛, 각종 산나물을, 11일 방송에선 씨름인 이봉걸씨와 함께 시골 오일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영양장의 모습을 전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책꽂이]

    ●‘엄마를 부탁해’ 국내판매 200만부 신경숙(49)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국내 판매 200만부를 돌파했다. 출판사 창비는 ‘엄마를 부탁해’가 2009년 9월 100만부를 넘어선 이래 2년 7개월 만에 이런 성과를 이뤘다고 밝혔다. ‘엄마를 부탁해’는 어머니와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호평과 함께 2011년 미국을 비롯해 해외 각국에서 번역·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지난 3월에는 아시아 권위의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았다. 창비는 “1990년 이후 한국 소설 가운데 단권으로 판매부수가 200만부를 넘은 경우는 대중소설 부문인 김정현의 ‘아버지’(1996), 조창인의 ‘가시고기’(2000) 정도인 것을 보면 순수문학으로 200만부 돌파는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라면서 “침체 일로인 문학시장에서 한국문학의 잠재력이 다시 주목받으며 우리 독서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출판사는 200만부 돌파 기념 특별판 1만부를 제작했으며 배우 손숙, 방송인 허수경 등이 출연하는 낭독 콘서트 등의 행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몽실언니’ 100만부 돌파 권정생(1937~2007) 작가의 창작동화 ‘몽실언니’가 출간 100만부를 돌파했다. 출판사 창비는 “‘몽실언니’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두루 읽히며 한국 아동문학의 명실상부한 고전이 되었다.”고 밝혔다. ‘몽실언니’는 1984년 출간된 후 증쇄 100쇄를 넘기며 국내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다. 주인공 몽실이가 해방 후 부모를 잃고 6·25 전쟁통에 동생을 업어 키우며 꿋꿋하게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출판사는 100만부 돌파를 기념해 목판화가 이철수의 신작 삽화가 담긴 네 번째 개정판을 출간했다. ‘꽃 파는 소녀 뒤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절름발이에 포대기를 한 몽실이가 미군 트럭을 쫓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뒷모습’ 등의 삽화가 이야기의 해석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창비는 “‘몽실언니’는 다시 읽어도 새롭게 감동받는 내용”이라며 “일상의 폭력과 차별, 가난과 가족 해체가 여전한 오늘 ‘몽실언니’가 더 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하동군, 이병주 세미나 개최

    경남 하동군은 3일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윤식·정구영)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1921∼1992)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오는 6~7일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병주 문학관에서 연다고 밝혔다. 하동군 북천면은 이병주의 고향이다. 학술세미나 주제는 ‘문학과 정치의식’이다. 6일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사상에 짓눌린 문학의 어떤 표정-혁명재판 기록에 대한 한 가지 음미’를 주제로 기조발표하고 소설가 박덕규 단국대 교수의 사회로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한국여성문학인회장 한분순씨

    한국여성문학인회는 시조시인 한분순(69)씨를 제24대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2일 밝혔다. 임기는 2년. 한 회장은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실내악을 위한 주제’, ‘서울 한낮’, ‘소녀’ 등의 시집을 냈고 한국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다.
  • [부고] 이성부 시인 별세

    한국 문단의 중진 시인 이성부씨가 28일 오전 8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70세. 고인은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나 1960년 광주고를 졸업하고,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광주고 재학 시절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대표적인 연작시 ‘전라도’를 발표하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은 현실 참여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69년 첫 시집 ‘이성부시집’으로 제15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시집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등을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한국문학작가상(1977)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한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다가 산행을 하면서 얻은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담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2010년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18회 공초문학상을 비롯해 2011년에는 제9회 영랑시문학상과 제24회 경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족으로 부인 한수아씨와 아들 준구씨, 딸 슬기·솔잎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3월 1일 오전 6시 30분. (02)2072-2016.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난중일기,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

    난중일기,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교수의 ‘난중일기’ 완역본이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된다. 12일 순천향대에 따르면 노 교수의 난중일기 완역본이 최근 한국문학번역원 도서선정위원회 심사에서 우수 도서로 선정돼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 러시아에 보급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 완역본은 문법상 오류가 적고 각주를 통한 설명도 잘돼 있어 가장 우수한 번역도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출판은 국내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러시아인 올레그 피로젠코가 맡는다. 노승석 교수는 “이번 번역은 피로젠코가 한국문학번역원에 지원을 요청해 이뤄졌다.”면서 “이는 이순신 장군이 보기 드문 위인임을 세계인들도 공감한 것이다. 세계에 우리 민족정신의 표본인 충무공을 알리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순신 연구 전문가인 노 교수는 2010년 초서로 쓰여 읽어내지 못했거나 오역된 부분을 바로잡고 을미년(1595)에 쓰인 32일치 일기를 새로 발견해 추가하는 등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성곤 교수

    문화체육관광부는 신임 한국문학번역원장에 김성곤(63)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다고 7일 말했다. 임기는 3년. 전북 전주 출신인 김 원장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84년부터 서울대 영어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 ‘글로벌 시대의 문학’ 등 다수의 비평서를 발간하며 문학평론가와 영문학자로 활동했다. 시인 황동규와 문정희의 작품을 번역해 미국에서 출간했고 ‘제49호 품목의 경매’ ‘미국의 송어낚시’ 등 여러 편의 영미문학 작품을 소개했다. 번역원 전신인 한국문학번역금고의 초대 이사를 맡았고 번역원에서도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번역원 업무에도 오랫동안 참여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신춘문예 당선 젊은 문인들에게

    [최동호 새벽을 열며] 신춘문예 당선 젊은 문인들에게

    신춘문예는 한국문학을 위한 거대한 축제의 자리이다. 해마다 신년 벽두를 장식하는 젊은 문인들의 패기와 열정은 우리 문단의 미래를 밝혀왔다. 국민적 관심 속에 등단한 그들에게 부여되는 화려한 조명은 이제 첫 등단한 신인을 위한 것치고는 과분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거의 모든 신문사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해를 거르지 않고 이 축제를 마련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부여되어 왔기 때문이다. 1929년부터 시작된 신춘문예는 그동안 한국문학사를 장식하는 걸출한 문인을 배출해 왔으며 이러한 성과가 신춘문예를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금년에도 100여명의 신인들이 탄생했다. 시를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을 일별해 본다면 실험적인 시편보다는 보편적인 서정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선자들의 연령도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 같다.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인생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30~40대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과격한 실험시들이 주류를 이루던 것과는 대조적인 경향이다. 세기말적인 전환의 혼돈과 불안 속에서 실험적인 시들이 문단의 전면에 대두된 것이다. 미래파라 지칭되는 시들에 미래를 조망하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필자는 지적하면서, 장황하고 난삽한 시적 유행을 극복하고 시대정신을 펼쳐나갈 극서정시의 출현을 강조한 바 있다. 스마트폰의 동영상이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디지털적 상황에서 활자문화시대의 서정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극서정시론의 요지였다. 소통불능의 실험시에서 다시 한 번 변신해야 우리 시의 나아갈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일단 금년도 신춘문예 관문을 뚫고 나온 당선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간곡한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우선 오직 각자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유혹과 난관이 그들 앞에는 가로놓여 있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그것과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문단 선배들로부터 흔히 듣는 평범한 당부처럼 보이지만 신인으로서는 가장 실천하기 힘든 사항일 것이다. 문학은 화려하고 영광된 것이라기보다는 고독한 작업이다. 자기와 고독한 싸움의 결과로 탄생한 문학에 부여되는 것이 찬사와 명예이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문인들의 작품을 더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시인들이 타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오직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인들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필수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깊이 읽고 자신과의 변별점을 찾아내는 시인만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 나간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작품을 깊게 숙독한 사람만이 그들과 다른 자기의 개성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조언은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사색하라는 것이다. 가치의 중심이 흔들리고 디지털적 풍문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일수록 들뜬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읽고 경험한 것들을 발효시킬 적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찰나적이며 감각적인 문학은 지속성을 가지기 힘들다. 한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신춘문예 당선자들 중에 10년 후까지 생존하는 시인은 불과 10% 내외라고 한다. 그 후 다시 10년,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문단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더욱 축소된다. 그리고 문단의 정상에 올라가는 문인은 불과 한두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문학의 미래는 이제 갓 등단한 젊은 신인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 중의 누군가가 힘차게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 우리 문학을 세계적인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대가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장도를 기리며 아낌없는 축복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2011년을 빛낸 문화예술인]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문학 세계화 가능성 입증 신경숙 작가 1위

    [2011년을 빛낸 문화예술인]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문학 세계화 가능성 입증 신경숙 작가 1위

    어느 해보다 한국 문화의 힘이 꿈틀거린 한 해다. 올봄 신경숙(48)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까다로운 북미 평단과 대중을 홀렸다. 지난 6월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콩쿠르에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25)을 포함, 역대 최다인 5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아이돌 가수들을 전방에 내세운 ‘K팝 한류’는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 영역까지 발을 뻗고 있다. 서울신문은 문학·영화·공연 등 각계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문화예술인’을 설문조사했다. 한 해 동안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거나 사회·문화적인 흐름을 돌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되는 후보를 2~3명씩 추천받았다. 총 75명이 후보 명단에 올랐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인물은 신경숙(9표) 작가다. 언어 장벽에 갇혀 있던 한국 문학의 국경을 허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국내에서만 180만부 넘게 팔린 ‘엄마를 부탁해’는 31개국에 판권이 나갔다.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뽑혔고, 뉴욕타임스 집계 베스트셀러 순위(양장본 소설 부문 14위)에도 올랐다. 홍일선 한국문학포럼 사무총장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추천사유를 밝혔다. 김어준(43) 딴지일보 총수와 공지영(48) 작가는 나란히 6표를 받아 공동 2위에 올랐다. 김 총수 등이 진행하는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지난 4월 27일 첫 방송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30~40대는 물론, 정치에 별 관심없던 20대까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치 담론을 저잣거리로 끌고 내려와 자유롭게 나누고 소통하는 뜨거운 현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공 작가가 추천받은 지점이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는 460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광주광역시 인화학교의 교직원 6명이 장애 아동을 성폭행했던 실화를 다룬 작품이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비리사학은 물론, 그들의 악행을 눈감아 줬던 교육청, 경찰, 검찰, 법원에 대한 분노를 촉발시켰다. 사법당국은 재수사에 나섰고, 정부와 국회는 ‘도가니법’(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나서는 등 뒷북을 쳤다. 공 작가는 “SNS를 통해 쉬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정지욱 영화평론가)했으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영상으로 끌어낸 실질적인 주역”(김안철 예당엔터테인먼트 이사)이라는 평을 받았다. ‘도가니’ 영화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배우 공유(32)를 추천한 이(조혜정 중앙대 교수)도 있었다. 공동 4위는 각각 5표를 얻은 이수만(59) SM엔터테인먼트 회장과 걸그룹 소녀시대, 심재명(48) 명필름 대표가 차지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회장과 소녀시대를 꼽은 전문가들의 추천사유가 ‘K팝 한류’의 주역으로 귀결된다는 점. 이 회장과 소녀시대가 얻은 표를 합하면 총 10표로 신경숙 작가를 제치고 사실상 1위로 등극하게 된다. 소녀시대는 SM 소속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올해의 K팝 열풍에 가장 선구적인 역할을 한 주역은 이수만 회장”이라고 평가했다. 신춘수 오디뮤지컬 대표도 “한류를 얘기함에 있어 소녀시대와 이수만을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짱’ 장근석(24)과 양현석(41) YG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한류를 확산시킨 공으로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심 대표는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국산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쓴 점을 인정받았다. 최초 흑자와 최다 관객(220만명) 기록을 세웠다. 황선미 작가의 탄탄한 원작과 오성일 감독의 집요한 노력도 힘을 보탰지만 투자·배급 등 작품이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심 대표의 공이 가장 크다. 정재형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교수는 “도전정신이 대단한 제작자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남북 분단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흥행으로 연결시키더니 이번에는 100만명만 넘겨도 기적이라던 애니메이션에서 200만명 이상을 동원했다.”고 놀라워했다.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미친 가창력’을 새삼 인정받은 가수 임재범(48),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유럽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정명훈(58) 예술감독은 각각 4표를 받아 공동 7위에 올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먼지 더미 속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낸 고(故) 박병선 박사, 영화 ‘써니’로 복고 향수를 자극한 강형철(37) 감독, 중도하차하긴 했으나 ‘가수들의 서바이벌 경연’이라는 파격을 통해 오디션 열풍을 확산시킨 김영희(51) ‘나가수’ 전 PD, 올해 젊은 작가의 작품 가운데 최고 수확이라는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31), 소셜테이너(사회 참여 연예인)라는 단어를 정착시킨 김여진(39)은 공동 9위를 차지했다. 각각 3표를 얻었다. 1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48) 서울대 교수, 시사풍자 개그를 다시 유행시킨 개그맨 최효종(25),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주역으로 발탁된 발레리노 김기민(19),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고발한 김기덕(51) 감독 등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가수 박정현(35)과 아이유(18), ‘달인’ 김병만(35) 등은 실력만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임일영기자·문화부 종합 argus@seoul.co.kr ■설문 응해주신 분(50명·가나다순) 강미영 민음사 한국문학팀장,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 김경애 무용평론가,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장, 김안철 예당 엔터테인먼트 이사, 김양선 인터파크 시어터 대표, 김엽 MBC 예능2국장, 김영섭 SBS 드라마 PD, 김용재 SBS 예능국 차장, 김윤철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 교수, 김은 아담스페이스 대표, 김정호 아트 앤 아티스트 대표,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문애령 무용평론가, 박명성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 박상혁 SBS ‘강심장’ PD, 복도훈 문학평론가, 서선행 다산북스 홍보기획팀장,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 신선영 도서출판 더숲 주간,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 유성호 문학평론가, 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이경구 서울시립교향악단 홍보마케팅팀장,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용철 영화평론가, 이재원 문화재청 사무관, 이창현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이현우 서평 파워블로거·필명 로쟈, 장광열 무용평론가, 장인주 무용평론가, 장일범 음악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은영 자음과모음 편집주간,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 교수, 정지욱 영화평론가, 조용신 뮤지컬평론가, 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주일우 문지문화원 실장, 홍승성 큐브 엔터테인먼트 대표, 홍일선 한국문학포럼 사무총장, 황영미 영화평론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사고] 서울신문 신춘문예 9일 마감합니다

    한국문학을 이끄는 든든한 허리가 되십시오. 올해 걸출한 문학상 주인공은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글재주를 알린 작가들이었습니다.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한 임철우 작가는 1981년 ‘개도둑’으로 당선됐고, 동인문학상을 받은 편혜영 작가는 2000년 ‘이슬털기’가 당선되었습니다. 요즘 가장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입니다. 그 대열에 당신도 동참하십시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시조(3편 이상) 200만원 ●동화(30장 안팎) 20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장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이고, 접수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마감 2011년 12월 9일 금요일(우편접수는 9일 도착분까지만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25 서울신문사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2년 신년호 서울신문 지면 ■문의 편집국 문화부 (02)2000-9192~8
  • 원로 소설가 손장순씨 모교 서울대에 20억 기부

    원로 소설가 손장순씨 모교 서울대에 20억 기부

    서울대는 7일 원로 소설가 손장순(76)씨가 문학연구 진흥을 위해 모교인 서울대에 20억원을 쾌척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지난 8월 서울대와 기부 약정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써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손씨가 기부한 20억원을 ‘손장순 문학연구기금’으로 지정하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 교수와 박사급 연구 인력의 학술활동 지원 등 한국문학 세계화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씨는 1958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소르본대 대학원에서 현대 프랑스문학을 연구했으며, 한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같은 해 ‘현대문학’에 단편 ‘입상’, ‘전신’이 추천돼 등단했다. 한국여류문학상(1967), 펜문학상(1996)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우호인문학상’ 정민 교수 등 3명

    ‘우호인문학상’ 정민 교수 등 3명

    우호문화재단(이사장 신철식 STX그룹 부회장)은 27일 ‘제4회 우호인문학상’ 수상자로 한국문학 부문에 정민(왼쪽)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외국문학 부문에 이경원(가운데)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공로상에는 지난 7월 작고한 신광현(오른쪽)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이 상은 우호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뜻을 살려 기초인문과학 분야의 학술 연구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11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고은 시인, 자택서 두문불출

    6일 오후 8시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고은(78) 시인의 자택 앞에 모여 있던 마을 주민들은 고 시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양기철(53)씨는 “수상 결과가 나오기 1시간 전에 (고은) 선생님 집에 들렀는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계셨다.”면서 “올해는 꼭 좋은 소식을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언론의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한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 시인은 2005년부터 해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올해 문학상이 스웨덴에 돌아가면서 한국 문학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문단 안팎에서는 한국 문학 세계화의 고질적인 걸림돌인 번역 문제에 국가가 좀 더 체계적으로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번역원이 올해 겨우 출범 10주년을 맞는 등 한국 문학은 이제야 세계 문학 시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며 “이런 형편에서 고은 선생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에서 486종의 출간을 지원했다. 1945년 무렵부터 2만여종의 작품을 해외에 출간한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다. 김종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은 최근 해외에서 큰 화제를 모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 우리 소설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려면 한국적인 부분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동시에 담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위상이 높아진 데는 고은 시인의 역할이 컸다.”면서도 “앞으로 고 시인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깊이 있는 텍스트의 생산, 더욱 체계적인 번역, 세계문학과의 면밀한 교류 등 저변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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