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임기제 공직’ 실태와 문제접
정부가 법으로 임기를 보장한 ‘임기제’ 공무원과 정부부처 기관장의 자리는 23개 중앙행정기관 고위직 공무원과 정부산하기관·투자기관 기관장 200여개를 비롯해 각 정부부처 공단과 공사 등 수백여개에 이른다.그러나 2∼4년의 임기를 모두 채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정책결정의 독립성 확보를 보장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치적 압력이나 입김에 의해 임기전에 교체되거나 일부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인사적체 해소 창구로 전락해 잠시 들러가는 자리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정부부처와 주요 위원회
현재 정부가 법으로 임기를 정해 놓은 1급이상 임기직 공무원의 직위는 23개 중앙행정기관 80여개에 달한다.대부분이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위원들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을 포함해 장관급 기관장만도 11명이다.
장관급 기관장의 경우 지난해 11월 2년 임기로 임명된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의 임기가 1년10개월가량 남아있으며,한상범(韓相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김창국(金昌國) 국가인권위원장,강철규(姜哲圭) 부패방지위원장,조창현(趙昌鉉) 중앙인사위원장 등은 임기가 1년이상 남았다.이종남(李種南) 감사원장과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강대인(姜大仁) 방송위원장,임종률(林鍾律) 중앙노동위원장,천성순(千性淳)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등 6명은 올해안에 임기가 만료된다.
차관급으로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과 감사원 감사위원 6명 등이 있으며,1급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과 행자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위원 등이 있다.
1급의 경우 대부분은 고위직 공무원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인식돼 지난 2년동안 임기를 채운 경우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정부 산하단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산하기관·단체의 단체장과 감사 등 30개 기관에 모두 60명이다.
주요 직위는 한국은행 총재,예금보험공사 사장,서울대학병원장,한국국제협력단 단장,한국방송공사 사장,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등이다.임기는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4년이며,나머지는 대부분 3년이다.
정부투자기관이나 산하 단체장은 대체로 임기직이어서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해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새 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통상적으로 자리를 내놓았고,실제 대부분 교체됐다.특정 지역출신의 독식과 ‘낙하산 인사’ 시비가 일고 있는 자리기도 하다.
●정부투자기관·출자기관
13개 정부투자기관의 기관장과 감사 등 26명과 6개 정부출자기관 기관장 등도 3년의 임기가 보장돼 있다.
주요 기관은 한국조폐공사와 한국관광공사,농업기반공사,한국도로공사 등 공기업이 있으며,정부 출자기관에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감정원,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 있다.
정부투자기관은 임기만료나 사임,전보 등으로 자리가 생길 경우 사장추천위원회가 각 부처 장관에게 복수추천을 하면 각 부처 장관이 이를 대통령에게 제청,대통령이 임명한다.출자기관은 사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주주총회를 거쳐 주무부처 장관이 승인하는 형태로 임명된다.
●기타 기관
각 행정부처에 소속돼 장관의 제청으로 기관장이 임명되는 기관은 각 정부 부처 산하의 공단과 공사,연구소 등 수백여개에 이른다.교육부 산하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과 서울대 병원 등 11개 국립대학 병원 감사 등이며,산업자원부 산하의 에너지경제연구원·생산기술연구원 원장과 한국수출보험공사 등 28개 공사와 공단이 있다.
또 농림부 산하 마사회 회장과 농업기반공사,농수산물유통공사를 비롯해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산원 원장,소프트웨어공제조합 전무,환경부 산하의 환경관리공단과 한국자원재생공사,국립공원관리공단 사장 등이 임기직 기관장이다.
조현석기자·부처 hyun68@kdaily.com
★개선방향
지난 2000년 12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텍사스 출신의 조지 W 부시가 수도 워싱턴에 ‘입성’한 것은 17일 밤이었다.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그는 첫 공식일정으로 임기가 2년 남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이처럼 ‘임기 보장’ 수준을 넘어 임명권자가 전(前) 정권의 인사에게 극진히 대하는 광경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부시 당선자는 이뿐 아니라 조지 테닛 CIA국장과 루이스 프리 FBI국장 등 핵심 권력기관장들까지 유임시켰다.모두 반대파인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한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으레 뒤따랐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였다.법으로 보장된 ‘임기직’에는 “일단 사의를 표명한 뒤 임명권자의 신임을 묻는 게 도리”라는 ‘유교적 덕목’이 동원된다.
현행 법에는 분명 한국은행 총재나 검찰총장,부패방지위원장,인권위원장 등의 ‘독립성’을 위해 대통령의 교체와 관계없이 자리를 유지토록 규정돼 있지만,법은 유명무실했다.정부투자기관이나 산하단체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임명직의 대부분은 전리품처럼 ‘배분’됐다.능력과는 무관하게 정치적 이해관계나 연고에 따라 자리가 돌아가기 일쑤였다.자연히 ‘낙하산인사’나 ‘부적격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삼 이런 관행이 고쳐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노 당선자의 인사개혁 의지가 유난히 강하기 때문이다.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이라는 노 당선자의 말을 지침삼아 시스템에 의한 인사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실제 임기 보장에 대한 노 당선자의 자세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전향적이다.지난 8일 김각영 검찰총장의 교체여부가 논란이 되자 “야당에서 문제 삼지 않는 한 임기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1일에는 공기업 임원 등의 인사와 관련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는 하지 않겠다.”며 시스템에 의한 단계적 인사 방침을 천명했다.인수위원들을 포함한 노 당선자 측근들은 “노 당선자의 시스템 인사는 임기가 끝나는 순서대로 차례로 적용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에 대한 여론은 상충된다.“능력과는 무관하게 임명된 사람의 임기까지 보장할 필요가 있느냐.임기보장은 다음부터 하자.”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자꾸 그런 식으로 예외를 두면 임기보장 관행은 정착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상연기자 carlos@kdaily.com
★YS.DJ정부선 어떻게
과거 임기제 공직은 한마디로 ‘전리품’의 성격이 강했다.노태우 정부에서 YS 문민정부로 교체될 때,그리고 DJ정권 초기 대부분 임기직 기관장에 대한 물갈이가 단행됐다.
임기제 공직에 대한 물갈이는 공직사회의 쇄신을 통해 새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측근 인사 등을 주요 보직에 앉힘으로써 중요한 국가현안을 좀더 수월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단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정부 투자기관과 출자기관,부처 산하기관의 기관장과 임원 등의 자리는 주로 논공행상의 대상이다.
임기직 고위직의 일괄 교체는 노태우 정권에서 YS정부로 넘어가던 시기 특히 두드러졌다.종전까지는 군 출신이 대통령을 맡아왔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정권교체는 아니었던 탓이다.
당시 YS정부는 사실상의 ‘정권교체’임을 강조하며 주요 보직을 물갈이했다.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임기 4년의 감사위원을 비롯해 검찰총장,경찰청장,육·해·공 3군 참모총장 등 특수직도 모두 교체됐다.
특수직 임기제는 신분을 보장,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에서 임무를 완수토록 한다는 명분에서 도입됐지만,YS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일괄교체해 임기 내내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를 의식한 듯 DJ정부는 감사위원 등 일부 주요 보직과 특수직에 대해서는 남은 임기를 보장해 주었다.군 수뇌부의 인사에서도 해군과 공군총장 임기를 보장해주는 특전을 베풀었다.그러나 한국전력,한국석유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주택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관광공사 등 주요 공기업 기관장은 거의 물갈이했다.임기가 만료되거나 공석이 된 산하기관장 자리도 잇따라 정치권 출신으로 채웠다.특히 2000년의 4·13 총선을 전후해 민주당의 낙천 및 낙선 인사들이 대거 산하기관장에 진출했다.마사회의 경우 오경의 전 회장에서 윤영호 현 회장에 이르기까지 5명이 낙하산 인사였다.
5공과 노태우 정권시절 군 출신 인사들의 공기업 기관장 진출로 기승을 부렸던 ‘낙하산 인사’는 YS정부에서 주춤했다가 DJ정부들어 급증 추세를 보였다.
함혜리기자 lo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