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식량 위기의 시대… ‘흙’이 인간과 자연 살린다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 시대를 맞아 농업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특히 흙을 중심에 둔 생태주의적 농업 실천을 고민하는 ‘농생태’가 주목받는다.
농생태는 농업을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활동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생산성과 경제성을 유지하면서도 화학비료와 농약 등 외부 투입을 최소화하고 작물, 토양, 곤충, 미생물, 물 등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하는 개념이다.
문화이론전문 계간지 ‘문화/과학’ 124호(겨울호)는 ‘농생태’를 주제로 농생태의 개념적 정의와 생태주의적 실천적 위상을 살폈다. 농생태를 다룬 다섯 편의 글에서는 인간이 좀 더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발원지인 ‘흙’에 중심을 둔 보다 실제적인 생태주의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신효정 명지대 교수는 ‘흙에서 시작하는 생태정치: 인류세 위기와 농생태학 전환’이라는 글에서 흙이 지닌 생명성이 산업 시대 개발 욕망과 기술 논리에 의해 생기를 잃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흙을 만물의 생동하는 근원이자 파탄 난 생태계 복원의 바탕으로 바라보며, 흙, 씨앗, 물, 지식 등 공유재에 기댄 생태정치의 세 가지 기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초국적 자본에 맞선 생명 지식의 탈식민화 기획, 농민 주도의 농생태적 순환 경제와 연결된 탈성장 기획, 배제된 존재들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돌봄의 윤리 실천 기획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탈식민화 기획은 식량주권을 통해 농민의 자율성과 공유재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탈성장 기획은 흙의 생명력을 무시하고 끝없는 생산성만 추구해온 성장 패러다임 자체에 도전할 것을 제안한다.
윤병선 건국대 명예교수는 ‘식량주권과 생태농업’에서 1963~83년에 이뤄진 이른바 녹색혁명 이후 농업을 둘러싸고 일어난 풀뿌리 운동과 자본 및 국가의 경합 과정을 식량안보와 주권, 유기·생태농업 등을 중심으로 살폈다.
녹색혁명이 진행된 20년 동안 한국에서는 쌀을 비롯한 곡물 생산량이 대폭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관개시설에 따른 수자원 낭비, 유전적 다양성 상실,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투입으로 인한 토양 침식, 염류화, 수질 오염, 살충제 내성 증가, 생산 비용 상승에 따른 경영 압박, 소득 격차 확대 등 각종 문제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녹색혁명을 통해 이뤄진 농업의 화학화와 기계화는 농업이 본래 수행했던 생태환경의 유지와 관련된 긍정적 기능을 축소하고, 농업을 오히려 기후 위기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윤 교수는 비판했다.
저자는 지금은 국제 자유무역 중심의 식량안보보다는 농민들의 자율성을 되찾기 위한 식량주권이 필요한 때이며, 이는 지역 생태 순환 회복에 중심을 두는 실천 운동으로서의 생태농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