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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땅값 비싼이유/토지이용 규제때문/한경연

    우리나라의 도시 땅값이 비싼 것은 토지의 도시적 이용이 강력히 규제되기 때문이다.전 국토 3백억평 가운데 대지·공장용지·학교용지·도로 등 도시적 용도로 사용되는 토지는 4.71%인 14억5천만평에 불과하며,특히 수도권과 부산의 토지공급이 부족해 도시 근교의 농업진흥지역 해제,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제도 완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7일 발표한 「한국의 토지이용 규제」 실태에 따르면 서울,인천,옹진군 및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을 제외한 경기도 전체 면적 29억8천만평 중 경사도 25% 미만의 가용지는 15억9천만평으로 53.3%이다.이 중 이미 주거·상업·공업·관광휴양지역 등 도시적 용도로 사용되는 토지면적은 7.9%인 1억2천5백만평에 불과하며 물리적으로 도시적 용도로의 사용이 가능하면서도 농지나 임야 등의 상태로 남아있는 토지는 64.4%이다.이는 농지와 임야의 전용이 강력히 억제된데 따른 것이다.
  • 부동산투기 562억 추징/가족 등 포함 4백42명 적발

    ◎국세청,실명제이후/양도세 탈세 2백29억 “으뜸” 국세청은 지난해 전격 단행된 실명제직후 각 지방청 별로 부동산 투기를 조사해 5백62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부동산 투기자 2백42명 및 이들의 가족과 거래 상대방을 포함,모두 4백42명에게 양도소득세와 상속·증여세 등 각종 세금을 추징했다고 24일 발표했다.국세청은 실명제로 시중의 자금이 실물투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작년 8월25일부터 지난 연말까지 투기 혐의자 2백50명을 조사했었다. 국세청의 김정부 재산세1과장은 『조사 대상자 중 8명은 부동산 거래가 많은 데다 금융추적에 시간이 걸려 계속 추적 중』이라며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완화 및 실명제로 인한 부동자금의 증가로 투기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올해에도 투기를 강력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과정에서 국토이용관리법과 여신운용세칙 등 관련법규를 위반한 5명의 명단을 건설부와 은행감독원에 통보했다.특히 모기업의 소유주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받은 기업자금을 투기에사용한 사실을 밝혀내고 은행감독원과 금융기관에 통보,대출금을 회수토록 하는 한편 앞으로 이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방침이다. 추징세액을 유형별로 보면 ▲고액 부동산을 거래하고도 소득을 적게 신고한 79명에 3백17억원 ▲계약서를 가짜로 작성한 77명에 1백38억원 ▲사전 상속혐의자 25명에 54억원 ▲투기를 조장한 중개업자 45억원 ▲개발제한구역의토지를 거래한 16명에 13억원이다.세목별 세액은 양도소득세가 2백29억원으로 가장 많고,상속·증여세 2백4억원,종합소득세 1백9억원,부가가치세 방위세 등 기타 20억원이다. ◎사례로 본 부동산투기 실태/거래신고구역 임야 10만평 미등기 매매/토지보상금 일부 자녀에 불법 사전상속/6억대 땅 재단법인에 팔면서 위장 기증 등기를 않고 부동산을 사고팔거나,어린자녀 소유의 건물 신축비를 부모가 증여하면서도 세금을 내지않는 등 부동산 투기꾼들의 탈세는 여전하다.국세청이 24일 발표한 대표적인 투기사례를 간추린다. ▷사례1◁ 경기도 양평군의 신모씨(53·부동산 임대업)는 부인박모씨(49)와 함께 지난 89년 2월 토지거래 신고구역(86년 3월지정)이던 경기도 남양주군의 임야 16필지 9만9천여평을 현지주민으로부터 2억5천2백만원에 미등기로 매입,90년 7월 역시 미등기로 모사단법인에 18억9천9백만원에 넘겼다.이 부부에게는 양도소득세를 포함,14억2천2백만원이 추징됐다.또 신고구역의 땅을 신고하지 않고 산 뒤 처분한 것과 관련,국토이용관리법 위반으로 건설부에 통보됐다. ▷사례2◁ 대전시 동구 홍모씨(69·농업)는 지난 92년 택지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으로 1백16억원을 받았다.이 중 16억8천8백만원을 자식과 사위에게 사전 상속하면서 증여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홍씨는 장남에게 13억6천6백만원,차남에게 1억7백만원,장녀에게 4천3백만원,사위(박모씨)에게 1억7천2백만원을 각각 증여한 사실이 밝혀졌다.증여세 등 모두 10억5백만원의 세금이 추징됐다. ▷사례3◁ 서울 송파구의 신모군(11)과 그의 동생(8)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20억원을 들여 7층짜리 건물을 지었다.건축자금은 임대보증금과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렸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국세청은 수표를 추적,이들의 아버지(50·부동산 임대업)가 건축비 중 약 10억원을 지불한 것을 밝혀내 증여세 등 5억2천9백만원을 추징했다.이 형제는 각각 8살,5살이던 지난 91년 신축건물의 토지를 취득으로 17억8천9백만원의 증여세를 추징당했었다. ▷사례4◁ 서울 양천구의 이모씨(77·무직)는 신월동의 땅 5백30평을 지난 90년 5월과 92년 11월 두차례에 걸쳐 재단법인에 6억원에 처분,약 3억원의 차익을 얻었다.그러나 양도소득세를 내지않기 위해 「기증」한 것처럼 소유권이전 등기를 했다.총 1억2천4백만원이 추징됐다. ▷사례5◁ 경기도 안양시의 조모씨(25·부동산 임대업)는 91년 12월 상호신용금고에서 1억5천만원을 빌려 대지 47평,건물 1백61평의 부동산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조사결과 그의 아버지(59)가 빌린 자금을 갚아준 사실이 드러나 증여세 1억3천6백만원이 추징됐다.
  • 자기성찰의 채찍/안공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굄돌)

    내가 이따금씩 들리는 단골 초밥집은 개업이래 독특한 종업원 채용과 훈련방식을 지켜오고 있음을 자랑한다.어느 업종에서나 겪는 공통된 애로이겠지만 3D현상등으로 요식업소에서의 구인난은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초밥집은 종업원을 채용한 다음 곧바로 음식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처음 일년간은 주방 한구석에서 채소를 다듬거나 설겆이등을,그 다음 한햇동안은 음식 나르고 식사상을 치우는 등의 허드렛일만 시킨다.직접 초밥을 말아볼 수 있으려면 적어도 들어온지 이태는 지나야 한다. 힘든 인력난의 와중에서도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이집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오는 손님들은 천차만별이고 같은 손님이라도 날씨나 계절에 따라 취향과 입맛이 달라지게 마련인데 처음부터 초밥말기를 배우면 기술은 금방 익힐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음식장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고객의 기호등 영업환경을 내다보는 거시적 안목과 이에 대응하는 상술은 배양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개개인의 능력이나 기술도 주변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대응이 뒷받침될때 그 진가가 십분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대문호 괴테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으로서 외부환경은 최대한 지배할 수 있는 반면,환경으로부터의 영향은 최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들었다. 좋은 여건속에서도 실패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여 성공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음에서,주어진 여건이나 환경이라는 것은 대처하기에 따라 미래려정에 역풍이 될 수도,순풍이 될 수도 있는 야누스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무릇 세기말 무한경제전쟁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당면하는 작금의 환경과 역할이 초밥집의 허드렛일처럼 힘들고 어렵게 비쳐질지 모른다.그러나 이것이 우리자신과 나라경제의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자기성찰의 채찍과 정진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지난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할 올 갑술년 한해의 모든 일이 그렇게 괴롭고 힘겹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 고속철 일부사업 재검토 권고/설계·재원조달 방안도 “문제”

    ◎감사원/서울·대구·대전역 지상건설땐 노선 9㎞ 길어져 연175억 낭비 감사원은 19일 정부가 고속철도 건설투자비를 절감하기 위해 지하노선으로 계획한 서울·대구·대전역사및 시내통과구간을 지상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사업계획을 재검토하도록 권고했다. 감사원은 지하구간을 지상화함에 따라 서울구간이 4㎞,대구구간이 5㎞가 늘어나는등 고속철도의 총연장이 4백21.7㎞에서 4백30.7㎞로 길어져 운행시간이 1백8.5분에서 1백24분으로 늦어지고 연간 약1백75억원의 운영비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지하노선으로 설계된 서울역∼남서울역구간은 기존선로를 사용하도록 변경함에 따라 선로의 용량부족으로 2002년에는 하루 3만명,2009년에는 하루 7만명의 승객이 고속철도 서울역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건설부가 광명시 일직동의 개발제한구역에 남서울역이 설치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고 서울시가 고속철도 서울역의 위치를 용산으로 조정하도록 요구하며 대구·대전지역 주민들이 노선의 지하화를 요구하는등 사업추진과정에서 민원을 야기,사업시행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1단계사업의 총사업비 10조7천4백억원을 조달하면서 31%인 3조3천3백16억원을 국내의 장·단기채권과 해외채권등을 발행하여 조달하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단기상품의 선호로 장기채권의 국내소화가 곤란하고 ▲해외채권발행은 외환관리법상 불가능하며 ▲단기채권발행 때 시장금리 상승초래등으로 채권발행에 의한 재원조달에 어려움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고속철도선로의 경사도를 최고 2.5도까지 건설할 수 있도록 설계기준을 정하고도 실제로는 1.5도로 설계,전체노선에서 1조3천2백억원의 공사비가 추가소요된다고 지적,경사도를 다시 조정하도록 통보했다. 감사원은 이밖에 차량형식(바퀴식) 및 차종선정(TGV)을 위한 평가과정에서는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거북선 총통」 고철로 처리될뻔/국보급 유물 발굴 뒷얘기

    ◎귀중함 몰라 인양뒤 열달간 마당 방치 국보급으로 밝혀진 「거북선 총통」이 하마터면 엿장수손에 넘겨져 고철로 녹아버릴 뻔했다.19일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공개된 이 총통은 해녀의 손에 의해 4백년만에 뭍으로 올라온 뒤 무려 10개월이나 갯바람을 맞으며 마당 한구석에 버려지다시피 내팽개쳐져 있었다. 아무도 그 귀중함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성효(47)·박복순씨(45)부부가 이 총통을 발견한 것은 지난해 4월8일 전남 여천시 상암동 신덕마을 앞 5백m바다.해녀출신의 박씨는 15m 바닷속에서 뻘밑을 뒤져 키조개를 캐다가 길다란 「쇳덩이」를 발견,반경 10m이내에 흩어져 있던 3개의 쇳덩어리를 바구니에 담아 밧줄로 연결,간신히 끌어올렸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들 부부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고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집에 가지고 와서도 돈이 될만한 구석이 없어 쌀자루에 담아 마당 한구석에 놓아두었다.그리고 지난 9월 인근으로 이사를 하면서 내버리고 갔다가 집주인의 『쇳덩이도 가져가라』는 성화에 가져다 보일러실 옆에 내동댕이쳤다.하마터면 엿장수에게 팔려가 고철이 될 뻔한 운명을 가까스로 모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씨는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지난해 11월 어느날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친구들이 『보물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 문화재관리국에 발견경위서와 함께 신고했다. 그러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답답해진 고씨는 지난 18일 직접 쇳덩이 자루를 둘러메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제서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소중히 다루었을 것을……』 씨의 한마디 후회는 문화재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회한으로 남는다.
  • 덜쓰고 덜버리자/낙동강 오염의 교훈/김명자(특별기고)

    최근의 낙동강물오염사태는 온국민을 충격과 허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그 사이 언론매체는 과연 어디서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파헤쳤고,거기서 우리는 오늘의 환경문제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위기감을 확인케 된다. 그런데 그 논의의 홍수속에 어찌하여 「기발한」 묘책은 없단 말인가. 몹시 안타까운 노릇이나 몇몇 관리자를 나무라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요컨대 이는 총체적 상황으로서 이시대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난중지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단 한국이 60년대 이후 유례없는 단기간 초고속의 근대화를 성취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의 구호아래 밖으로부터 공해다발산업을 서슴없이 유치해왔던 경제성장 일변도의 산업화를 돌아보건대 일례로 화력발전소의 설비에 탈황시설이 빠졌던 것에서 드러나듯 「환경」은 완전히 뒷전이었기 때문이다.그 덕을 좀 본 탓일까.한국의 수출 드라이브정책은 가히 금메달감으로 1991년 일인당 GNP 83달러에서 1992년에는 6천7백49달러로 뛰어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생산증가는 쓰레기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의미했다.그리하여 성장의 반대급부랄까.생명의 원천인 공기­물­흙은 되돌릴수 없는 지경으로 피폐되고 독을 품게되었다.물질의 마력에 홀린 사람들은 마치 소비가 미덕인 양 경쟁하듯 산업현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독성의 쓰레기를 거리낌없이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산업화는 매우 좁은 땅에서 세계 몇째의 인구밀도 조건에서 맹렬히 추진되었다.환경재난에 대비하자는 한구석의 목소리는 「한심하고 배부른소리」로 치부되었다.결국 강물은 각종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하수도로 전락했고 공기도 땅도 그것에 뒤지지 않았다.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위기국면으로 다가온 듯한 환경재난과 그에 따른 들끓는 반응들은 실상 우리의 근대화에서 이미 예정된 사건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예견 사람들은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 이렇게 헛똑똑이 노릇을 잘한다.낙동강 물은 이런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냄새를 터뜨린게 아닐까? 나라 일을 맡은 사람들은 환경문제를 망치고서는 민심을 붙잡을 수 없고,「마실 공기 마실 물 만들기」야말로 역사에 남을(?)위업임을 깨달아 주었으면 한다.그리고 국민들은 이쯤해서 물값도 더 올릴 수밖에 어벗다는 것도 알아차려야 한다.한마디로 우리의 환경정책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더 이상의 시행착오 없이 수행해나가도록 해야한다. 이제 「물쓰듯 한다」는 말은 「약쓰듯 아낀다」는 뜻으로 바뀌어야 한다.우리의 강물은 그리 길지도 깊지도 않고 자연정화력이 뛰어나지도 못하다.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정수처리한다고 해보았자 그야말로 전근대적 수준일 뿐이다.늘상 뒷전에 밀려 있던 환경분야가 첨단기술을 확보했을 턱이 없으려니와,뭘 한다고 해도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져 기체,액체,고체상태로 버려지는 물질들을 제거할 장치는 버려지는 물질들을 제거할 장치는 애당초 없다.게다가 그렇게 버려진 것들끼리 섞여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실은 아무도 잘 모른다. ○최대 피해자는 후손 별 도리가 없다.모두가 덜 쓰고 다시 쓰고덜 버리는 것부터 체질화해야 한다.좀 우울한 얘기지만 내가 버린 모든것(자연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농도보다 더 많아지면 그것은 오염물질이다)은 내게 돌아올 뿐만 아니라 내 자식들의 몸속에 쌓여 필경 그들에게 갖가지 형태의 변고(한국의 기형아출산율이 세계 몇째라던가)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염의 최대피해자가 바로 내 자식들일진대 어찌 우리가 저지른 것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겁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기괴한 그림”… 영 루치안 작품 미서 화제

    ◎「알몸의 여인」 등 너저분한 묘사/물감 엉겨붙어 덩어리지기도/뉴욕서 3월까지 전시… “독특한 감각 개발” 호평 너저분한 화실의 철제 침대밑에 가랑이를 벌리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비대한 알몸의 여인(「스튜디오의 저녁」),우람한 체구의 「벌거벗은 남자의 뒷모습」 등.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3월까지 예정으로 전시중인 이 기괴한 그림들이 요즘 미국에서 최고의 찬사와 함께 화제를 불러모으는 그림들이다. 작가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점도 관심을 끌게 하는 대목이다.화제의 주인공은 프로이트의 막내아들 에른스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루치안 프로이트. 루치안의 그림,특히 누드화들은 파격적인데가 많다.내팽개쳐진듯 침대에 드러누운 모델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화실 한구석의 넝마더미에 버려진 모델도 있다.때로는 가랑이를 벌린채 치부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그림속의 나신에 불끈 솟아오른 정맥이 생생히 묘사되기도 한다.따라서 그의 그림이 「누드화의 예법」에 어긋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그림은 또 물감이 엉겨붙어 거칠게 덩어리진 부분들이 많다.그림들은 대부분 사정없이 두껍게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구상작가,혹은 살아 있는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극찬하고 있다.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본능을 좇아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들이다.그리고 루치안은 욕망을 따라 모더니즘 역사라는 큰 폭포수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는 것. 루치안은 작품세계만큼이나 특이한 생을 살아왔다.그는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나 33년 런던으로 갔다.런던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그 결과 오늘날 그의 글씨는 10세 소년의 필체와 진배 없다. 루치안의 청년시절은 방탕의 연속이었다.한때 뱃사람 노릇을 하기도 한 그는 도박과 음주에 탐닉,결혼생활도 순탄치가 못했다.두번 결혼해 두번 다 이혼한 그는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아이를 포함,여덟 아이의 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런던에서 그림을 공부했지만 루치안은 그림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런 그가 누구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혼자 공부해서 마침내 육체묘사의 독특한 감각을 개발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71세의 노인 루치안의 능력쇠퇴와 정신력 감퇴가 그의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의 관리자 캐더린 램퍼트의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루치안이 육체를 그리는데 있어서 묘사가 어려운 부분에 물감을 마구 덧칠해 돌기가 생긴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루치안이 자신의 작품들을 유리로 덮으려 고집하는 것은 결국 이같은 결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돌기가 영혼으로부터 나오며 그것이 오히려 작품의 핵이라고 평한다.그의 그림들은 곧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정호승시인의 첫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이작가 이작품)

    ◎슬픈 에밀레종 전설을 「밝은 동화」로/“아동문학은 별개 장르아닌 문인 모두의 몫”/종제작때 어린딸 아닌 베게 넣어/슬픈얘기를 기쁨의 상태로 전환 시인 정호승씨(44)가 지난해 1월 첫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를 낸지 1년만에 첫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에밀레종…」은 정씨가 어릴적 경주에서의 체험과 에밀레종에 얽힌 이야기를 토대로 엮은 장편 창작동화. 일간지 신춘문예공모에서 동시·시·단편소설에 당선,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치중하는 장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말하는 정씨는 동화집 「에밀레종…」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인이나 작가들은 흔히 아동문학을 별개의 한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게 사실입니다.그러나 시인 작가들이 일생을 두고 볼때 꼭 자기몫의 동화를 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아동문학은 아동문학 작가들만의 몫이 아니며 결코 별개의 장르가 될 수 없다는 말이지요』 동시로 문학세계에첫 발을 디뎠으나 바쁜 활동으로 아동문학을 떠나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동시 동화에 대한 향수가 컸다는 정씨다. 동화가 순수와 인간을 보는 따뜻함의 영역이라고 할때 어찌보면 그의 지금까지의 문학활동은 동화속에서 그의 몫을 찾기위한 부분이었을수도 있다. 동화 「에밀레종…」은 정씨가 어릴적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경주에서 본 에밀레종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인상과 그곳에서 만난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씨가 어릴적 경주 구박물관 종각에 있던 에밀레종속에서 목격한 수많은 낙서가 에밀레종의 유구한 역사라고 할때 『일본인이 에밀레종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고 동해안으로 옮겨놓았었다』는 한 노인의 말은 그대로 에밀레종의 험난한 운명으로 풀이된다. 일제하 영희라는 한 소녀의 가족을 중심으로 자국에 밀반출하려는 일본인에 의해 동해안에 버려진 에밀레종이 마을사람들과 영희가족들의 노력으로 다시 경주로 되돌려지게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에밀레종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을 「기쁨의 상태」로 전환시키고 있는점이 이 동화의 특징이다. 『조직적인 삶의 측면에서 볼때 일본은 우리보다 나은게 사실입니다.그러나 그런 면과 달리 한국은 일본에 의한 역사적 희생자임이 엄연할때 그들을 용서는 하되 잊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반일이나 극일감정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망각은 위험하다」는 교육적 측면이 「에밀레종…」의 한 부분이다.그리고 종제작을 온전하게 마무리짓기 위해 어린 딸을 끓는 물 속에 집어넣었다는 비극적인 전설을 어린 딸대신 딸의 베개를 던져넣었다는 이야기로 전환해 동화다운 밝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비극적인 삶의 연속인데 동화마저도 비극으로 그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난 연말 제야부터 종의 보호차원에서 본래의 에밀레종 소리를 들을 수 없게된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하는 정씨는 『그래도 동화속의 에밀레종만큼이나 에밀레종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 많은 「상징물」』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 농성 외국근로자의 절규/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불법체류 낙인에 산재보상커녕 내쫓겨”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데다 몸까지 다쳐 꿈도,희망도 잃어버렸습니다』 11일 상오 서울 종로5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강당에는 오갈데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산재노동자 12명이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강당 한구석 2평남짓의 시멘트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이들은 떳떳하지 못한 신분을 의식하기라도 한듯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년 남짓동안 우리나라 공장에서 일하면서 손가락이 잘리는등 산재를 당한뒤 회사측에 보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고 여권마저 빼앗기고 쫓겨난 처지였다. 『손가락이 잘려나가 속도 상하지만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의 약값과 세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 눈앞이 캄캄합니다』 네팔의 포카라시 출신인 만주 타파양(22)은 서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지난 92년5월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돈벌이가 잘된다」는 낯선 한국땅을 밟게 된 타파양은 국내브로커를 통해 경기도 동두천시 삼배동의 한 가죽가공업체를 소개받았다. 1남4녀중 맏딸로서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일념으로 휴일도 없이 일하던 타파양은 지난해 4월 작업도중 한국인 근로자의 기계조작실수로 오른손 손가락 3개가 완전히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고 시름에 잠겼다. 「불법체류자」라는 약점때문에 피해보상은 물론 여권조차 돌려받지 못한채 길거리로 내몰린 타파양은 가족들에게 딱한 사정을 하소연도 못하고 성치못한 몸으로 여기저기 품팔이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철새신세가 됐다. 그나마 1년여동안 힘들게 모은돈 3백여만원을 인편으로 고향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됐다. 『하지만 잃어버린 제꿈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우리라고 사람대접을 받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아직 소녀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타파양의 절규에 가까운 항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 수입 「국산」(외언내언)

    「국산」으로 둔갑하는 수입농산물 실태가 다시 한번 밝혀졌다.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10개단체가 전국 36개 도시 1백96곳 시장을 대상으로 자못 광범위한 조사를 했다.6일 알려진 결과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뿐이다.수입품판매점포 2천3백95개중 47.4%만이 원산지 표기농산물을 팔고 있었다.품목별로는 더 가관이다.수입도라지를 팔고 있는 2백28개점포중 64.9%가 국산이라고 주장했다.나머지는 수입품이라고 파는것도 아니다.14.5%만이 표기를 했다.이런식으로 건포도,은행,잣,더덕,표고버섯,인삼,무말랭이들이 이어진다.이유는 단 하나.국산값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온 국가가 국제경쟁력을 부르짖고 있는터에 그나마 국내경쟁력이 한구석 남아 있는 몇 농산물마저 폭리장사꾼들이 파먹는 셈이다.국력을 다 모아도 우리 농산물 살리기가 막연해져 있는 이 시점에 어이없다기보다는 이것이 바로 경쟁력의 암이라는 규정을 내려야 할것 같다. 그러고보면 국산표기나 무국적판매만 있는 것도 아니다.섞어팔기와 속여팔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참기름의 경우 국산참깨사용은 20%도 안될것이라는게 농수산물유통공사 담당관의 견해이다.참깨 한되에 중국산이 4천5백원,국산이 9천5백원이다.장삿속으로 유혹을 받을만하다고 느낄지 모른다.바로 이 느낌이 우리의 공적이다.이렇게 팔든 저렇게 팔든 내가 필요한 것을 지금 그럭저럭 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공범일수도 있다. 지난 연말 보사부는 농축산물 본격개방에 대비,농약잔류검사를 강화했다.지금까지의 38종 농약잔류검사를 1백5종으로 늘린 것이다.그리고 나서 녹색신고제를 만들었다.수입자가 농약사용내용을 자진신고하면 우선 유통을 허락하고 차후 점검을 한다는 방법이다.양이 많으니 검사대에 쌓아둘수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사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은 또 어떻게 할것인가.답답한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 “평양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밖에서 본 한반도정세/러시아시각

    ◎최악 경제·사회여건속 도처에 붕괴징후/핵카드로 대서방 접근… 체제유지 “안간힘”/통일한국은 5∼7년 과도기 거쳐 안정권 진입 수십년간 북한정권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성공을 선전해 왔다.그런데 최근들어 이 선전의 톤이 다소 누그러졌다.경제난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북한당국도 이를 더 이상 감출수 없는 지경이 됐다.단적으로 말해 북한경제는 바닥에 다다랐다.93년도 산업생산량은 또 다시 10% 감소됐고 석유,전기는 공장의 75%가 가동을 중단할 정도로 심각하다.만성적인 비료부족에 일기불순까지 겹쳐 기초농업품 생산량도 극도로 떨어졌다. ○이념의 고삐 “느슨” 사회적 여건도 최악이다.모든 소비재가 배급제이고 그 양도 극소이고 일반시민의 경우 사치품은 구경하기 힘들다.반면 간부층의 사치는 여전해 사회계층간 위화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특권층과 서민,군과 민,평양거주자와 지방주민간의 위화감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반면 이념의 고삐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당이 선전하는 공산주의 도그마와 현실의 괴리 때문에 국민들은 이제 당의 선전을 곧이 곧대로 믿기 힘들게 됐다.이런 여러 국내여건들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정보들과 함께 북한정권의 벽을 조금씩 잠식하고 주민들의 불만과 좌절감을 점차 키워가고 있다.특히 젊은층과 지식인층은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고 있다.정부가 주민에 대한 이데올로기 통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권력토대도 이전과 같이 견고하지가 못한 것 같다.엘리트간부들은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려들지 않고있다.그의 별로 화려하지 않은 경력,개인성격에 대한 불만들 때문이다.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관리들의 수가 늘고 있다.이들은 국가의 상황이 위기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기회만 되면 개혁을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북한은 이제 정치적,이념적으로 기댈 곳은 중국 밖에 없게 됐다.하지만 중국의 지원 역시 전폭적이지 못하고 여러 조건들이 달려있다.남한을 침공한다든가 핵무기개발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해서는 전세계가 반대한다. 이같은 상황하에서 북한정권은 개방쪽을 택하기 보다 오히려 권위주의,공포정치를 강화하고 있다.그나마 산업,농업분야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민들에 대한 강압정책 탓이다.주민들의 노동여건은 현대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하지만 빈곤계층의 불만과 사회적 소요의 징후는 가차없이 억압되고 반정부 세력이 형성될 길은 철저히 막혀있다.설사 반대집단이 만들어진다 해도 지도부에 대적할 길은 없다.군대와 보안부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이 스탈린식 독재정권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현재 러시아학계와 기타 북한을 연구하는 국제학술계에서는 국제정치의 일반적인 잣대로 북한을 예측할수 없다고 믿는 학자들이 있다.북한은 나름대로 독특한 역사를 갖고있고 당분간 그 독특한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필자는 이같은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최근 수년간 이루어진 동구 공산정권의 변화와 몰락은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이다.그 흐름이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헝가리·몽고·러시아·아르메니아·폴란드·세르비아인들은 역사·문화·기질등 모든 면에서 다른 민족들이지만 그들이 유지해온 공산정권은 같은 흥망성쇄의 길을 걸었다. ○중과 러에 배신감 북한의 경우 김일성이 죽기 전에 정치적으로 큰 변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억압적인 체제가 구축돼있기 때문에 엘리트그룹은 물론 일반국민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도전은 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김일성 자신은 지금껏 해온 방식 때문에,그리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 경제·정치질서에 대한 변혁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다만 외교적으로 그는 미국등 서방국의 지지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그는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그리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그리고 자기를 「배반한」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서방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는 한편 북한은 핵문제 같은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고수할 것이다.김일성은 적대국들에 대한 위협용으로 핵카드를 필요로 한다.핵카드는 내부통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그는 핵카드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북한을 승인토록 하는데 유용하다는 계산을 하고있다. 단언하건대 김일성 생존시 북한정권의 행동양식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사후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우선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다.지도부에서 개인적으로 혹은 그의 정책노선에 대해 김정일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 인사들은 그를 밀어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것이다.김정일로서는 이러한 도전에 살아남을지라도 각분야의 다각적인 압력으로 일단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변화에 대한 압력은 정부내에서,국민들로부터,그리고 외부세계로부터 가해질 것이다.다른 공산국가의 예에서 볼수있듯이 지도부자체에서 특히 강력하고 중요한 변혁욕구가 제기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객관적·주관적인 제요인들이 김정일에게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만약 그가 권력을 지킨다면 이 변화는 다소 느리게 진행될 것이고 그가 물러난다면 변화는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김정일외에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할 인물이 없다.어쨌든 김일성 사후 변화는 불가피하다.그리고 경제개혁,외부세계로의 개방등 이미 다른 공산국가들의 경우에서 목격한 유사한 사태가 북한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공포정치 더 강화 주민들에 대한 통제체제가 이완되고 정권의 권위가 떨어질 것이다.그리고는 범죄율의 급격한 증가,부패,타락현상이 전사회를 휩쓸게 된다.체제반대 세력이 늘어나며 지도부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이 가해지고 지방각지에서부터 경제·사회적 불만에서 야기된 시위,폭동이 확산된다.아울러 지도부내에서는 권력투쟁과 노선투쟁이 첨예화 된다. 북한사회의 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남한은 자동적으로 여기에 개입되지 않을수 없다.남북한 양쪽에서 휴전선을 통한 왕래가 시작될 것이고 북한정부,사회단체 등에서 남한정부에 대해 원조요청이 잇따를 것이다.남한사회가 이를 끝까지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그 결과 사태는 보다 복잡하게 진행된다.우선 북한지도부가 무력으로 더 이상의 변화를 막으려 시도할수 있다.하지만 한번시작된 변화는 무력으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중국의 지원도 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중국이 그런 일을 해줄지도 의문이지만.시간이 문제지 북한공산정권은 결국 무너지게 돼있다. ○권력투쟁 불보듯 그 다음 시작될 한국의 새역사는 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수십년간 상이한 이념·정치·사회·경제적 여건하에 살아온 남북한의 통합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수백만에 달하는 북한공산주의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새출발할수 있는 기회가 부여돼야 하고 경쟁을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할 준비가 안된 일반북한주민들은 통일국가에서 또 다른 불만을 겪게될 것이다.일부는 과거 김일성체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되살릴 것이다.북한경제에 대한 부담으로 남한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남한주민들 사이에도 이에 대한 불만이 일시 고조될 것이다. 통일한구구이 완전히 안정돼 경제·사회적 발전을 향해 다시 궤도를 잡기까지 이러한 과도기는 5∼7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이 과도기를 어떻게현명하게 넘기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민들의 지혜에 달려있다. ▷약력◁ ▲모스크바 국제관계대졸업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정치학박사.현선임연구원 ▲주요저서:「북한의 대외경제」「한국과 러시아」「기로에 선 북한경제」
  • 질서·예절교육 시범교운영이 고작(교육 개혁해야 한다:14)

    ◎민주시민 육성/학교와 가정의 연계지도체제 절실/일상생활서 작은것부터 실천해야 서울의 한 국민학교에 쉬는 시간에 두 학생이 싸웠다.담임교사는 이들을 부른 뒤 「공부 잘하는」학생에게 『공부를 못하는 애와 어울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꾸짖었다.왜 싸웠는지 이유도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이 얘기를 들은 「공부 못하는 학생」의 부모는 선생에게 항의를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잘못된 학교교육의 한 단면이다. 올해 서울시교육청이 민주시민교육 시범학교로 지정한 서울 동작고교. 지난해 신설된 이 학교에서는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덕목 가운데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것으로서 ▲국산품애용 ▲쓰레기 분리배출 ▲에너지절약 ▲질서지키기 ▲예절바른 생활 등 5가지 과제를 설정했다.학교측은 민주시민교육이 학생만으로는 힘들다고 보고 교사와 학부모도 이들 과제를 함께 실천하는 각 분과에 참여시켰다. 에너지절약분과에 참여한 최영민군(17·1년)의 경우를 보면 민주교육은학교와 가정이 호흡을 맞춰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군 부모는 지난 3월 「기준전기사용량」을 정하고 가족들이 기준을 초과해 전기를 쓰면 「벌칙」을 적용했다.최군에게는 용돈을 깎는 벌칙이 적용됐다.모든 가족들이 여름엔 에어컨을 트는 것을 조심했고 겨울에 들어서도 전기장판이나 온풍기 가동에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전기사용량이 처음 2개월은 기준을 넘어섰으나 이후 기준에 밑돌았다.최군은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더받는 「보상」을 받았다. 그 후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용하지 않는 TV나 라디오의 플러그는 빼둔다」는 항목에서 분과운영전에는 42.2%만 「그렇다」고 응답했으나 운영후에는 83.3%로 크게 향상됐다. 「질서지키기」분과의 박일렴양(18.2년)은 『복도에 달라붙은 껌을 떼어내려고 쪼그리고 앉은 선생님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면서 『민주시민은 남의 불편을 앞서 생각하고 일상생활의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한국교육개발원은 실생활의 규범을 담은우리나라 최초의 지침서라 할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자료」를 내놓았다. 유치원생에서부터 초·중·고교생,성인용등 8종 14책에 이르는 이 자료집은 민주시민의 기본정신을 ▲인간존엄정신 ▲공공질서의식 ▲민주적절차 ▲합리적 의사결정능력 등 4영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18개 기본덕목과 세부학습요소로 교육대상별 수준에 따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용 자료집의 경우 아파트노조 파업기사를 사례로 제시,「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의 정당성 여부를 토론하도록 하고 있다. 또 흡연문제와 관련,고등학생은 무조건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는 단순논리를 강요하기 보다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수 있도록 아버지와 아들간 대화를 통해 생생하게 설득하고 있다. 이같은 학교와 사회 일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현장은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입시위주의 교육풍토때문에 민주시민교육은 말 그대로 시범학교운영이나 지침서발간의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서울 S여고에서는 성적순으로 6명의 후보를 내 반장을 뽑고 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처럼 성적순으로 후보를 내는 불합리한 방식에도 반대하지 않았다.「일만 많은」 반장직을 서로 기피하는 풍조때문이나 「자치권」을 행사하는게 오히려 번거롭고 귀찮다는게 더 큰 이유다. 이 학교 김모양(16·1년)은 『1주일에 한번씩 하도록 돼 있는 학급회의가 한달에 한번정도도 하기 힘들다』면서 『학생들은 반대의견을 내야 하는 회의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러한 기초적인 민주시민교육은 대도시 학교보다는 시골학교,중·고교보다는 국민학교에서 오히려 더 잘 이뤄진다는 평판도 있어 아이로니컬한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부 교육전문가들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학교현실을 볼때 시골 국민학교의 민주시민교육이 가장 앞서 있는 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학생수의 감소로 갈수록 늘어가는 빈교실이 토론교육·자치교육·시민교육의 중요한 공간으로 매우 잘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 어느 국민학교의 교장은 올해 빈교실 활용문제를 고심하다가 모의국회 회의장으로 쓰는 방안을 찾아내고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자기들 교실에서 학급회의를 하면 어수선하기만 하던 학생들이 빈교실에 책상마다 국회의원처럼 명패를 만들어 주고 회의를 시켰더니 분위기가 금세 좋아진 것은 물론 토론이 매우 진지해지더라는 것이다. 이 학교의 모의국회교실은 지금 다른 학교의 견학대상으로 유명하다. ◎선진국의 경우/미선 사회문제 해결 능력 길러줘/자치회 등 통해 공민자질 배양/일본/전학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영국 미국의 시민교육은 서로 다른 역사적 전통을 지닌 사람들을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용광로에 녹여 동질성을 지닌 시민으로 만드는데 중점을 두어왔다.따라서 우선 전통적인 민주시민의 덕목이 중요시되고 있다. 이 덕목은 크게 두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정의·평등·권의·참여·공동선·애국심 등 민주정치 체계의 통합성을 높이고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다원성을 인정하도록 자유·다양성·사생활·공정한 절차·인권·소유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에는인종차별 등 미국의 독특한 사회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도 중시되고 있는 추세다. 즉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사고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시민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미국의 시민교육은 삶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덕목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한편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재 미국의 교육현장에서는 이 두갈래의 교육방향 가운데 시민의 자질을 무턱대고 가르치기보다는 이 자질을 어떻게 길러주고 발휘하게 하느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학생들에게 무엇이 믿을만하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이해력을 갖도록 해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민주시민의 교육이 어느나라보다 오래전부터 실시되어온 영국의 경우 80년대 후반들어 시민의식의 중요성이 새롭게 강조되기 시작했다.이는 영국인으로서의 정체감이 흔들리고 있는데다 준법정신의 결여로 사회문제가 빚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지난 88년 국회의원등 사회 각계인사 34명으로 구성된 시민의식위원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시민교육 활성화방안을 제시했다.이 위원회는 ▲시민교육 및 활동경험을 전학년의 학교교육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고▲시민교육육에 대한 평가결과를 학생의 성적기록부에 넣으며▲고등교육기관은 학생선발때 이 시민교육평가자료를 고려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이와 함께 시민교육을 독립된 교과서가 아닌 영어·역사·지리 등 기초 교과목 전반에 걸쳐 공통된 5개 학습주제의 하나로 제시했는데 독립교과목이 아니어서 자칫 학교에서 소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민주시민교육은 1945년 종전을 계기로 본격화됐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수로 회귀하면서 경제부흥의 와중에서 경제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식의 습득이 강조되는 바람에 퇴조를 보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지식중심의 학교교육이 사회문제로 드러나면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시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의 권리와 책임 및 의무를 다하는 「공민적 자질」이 새삼스럽게 강조되기 시작됐다.이에 따라 일본은 교육의 최종목표를 공민적자질의 배양에 두고 각급학교의 사회과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한편 학급자치회·서클활동·지역사회·어린이회등을 통해 공민의 자질이 몸에 배도록 유도하고 있다. ◎“추상적 지식 아닌 「삶의 원칙」 가르쳐야”/인간존엄 정신·기본질서 의식 강조돼야/개성무시한 성적중심 평가제 재검토를/곽병선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전문가 의견) 민주시민 교육은 우리가 교육에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민주시민교육의 과제는 국가 생존권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시민정신을 소중히 키우고 발휘하는 사람들의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드높여왔을뿐만 아니라 튼튼한 공동체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시민사회로의 진로를 거부했던 체제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민주화의 마지막 행렬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국제적 현실이다. 우리가 민주시민 교육을전혀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건국과 더불어 출발한 새교육이 내걸었던 뚜렷한 지표는 민주주의 교육이었다.그러나 과거에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시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다.교육법에 명시된 홍익인간의 이념,1960년대 이래 국적있는 교육을 내걸고 등장한 국민정신 교육,약방의 감초처럼 줄기차게 교육현장에서 되뇌어온 전인교육에 혼재되거나 또는 역대 군부정권 아래에서 의도적으로 도외시된 탓으로 최근까지도 민주시민 교육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한구교육개발원이 90년과 91년에 실시한 전국 표본조사에 의하면 초·중등학교 교사의 70%이상이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잘 안되고 있다고 반응하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오늘날 민주시민교육은 이제 그 본연을 회복할 좋은 기회를 맞았으나 학교현실은 아직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건전한 시민양성의 실패는 국가 생존의 실패라는 인식으로 교육개혁적 차원의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민주시민교육을 최상의 교육목표로 삼아야 한다.국경·이념·체제가 생존의 보호막 구실을 할 수 없게된 오늘의 국제환경에서 국가공동체가 자존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 사회구성원들을 세계 일류 시민들로 만드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바로 이점에서 우리가 인간교육,전인교육등 어떠한 이름의 교육을 추구하든지 그것은 민주시민교육으로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시민 자질을 교육의 내용으로 중요하게 가르쳐야 한다.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데에 문제가 있다고 자주 이야기되고 있지만 무엇이 올바른 시민의 행동양식인지 분명하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데에 우리의 커다란 약점이 있다. 시민 자질에 관한 내용은 추상적·피상적 지식이 아니라 일상적 생활에서 체험으로 살아나야 할 삶의 원칙으로 가르쳐져야 한다.인간존엄의 정신,기본질서의식,민주적절차존중,합리적의사결정능력이 강조돼야 한다. 교육제도와 방법이 민주적 원칙과 부합돼야 한다.획일적 사고교육을 은연히 조장하는 교과서 편찬제도,개성을 묵살하는 총점주의 서열중심 평가제도,개별학교의 창의적교육을 가로막는 제도등은 근본적으로 재 검토되어야 한다.
  • 글자순서/박래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굄돌)

    아침 저녁 신문을 볼때 우리는 으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위에서 아래로 읽어내려간다.옛글을 읽거나 아이들이 천자문을 배울때에도 그같은 순서로 읽어내려간다. 그런데 같은 신문이라 할지라도 커다란 제목부터 시작해서 사진설명이나 광고에 이르기까지,기사에 따라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윗줄에서 아랫줄로 읽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도서관 책꽂이에 잘 정리되어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참 흥미롭다.한글이나 한자로 되어있는 책등의 경우는 물론 위에서 아래로 책제목 저자명 출판사명 하는 식으로 적혀있다. 그런데 알파벳으로 된 외국의 책을 보면 어떤 것은 글자가 오른쪽으로 누워 있고 어떤것은 왼쪽으로 누워 있다.또 두꺼운 책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명이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 이같이 우리들의 생활화된 습관속에는 실제로 따지고 보면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많다.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그런 것을 별로 문제삼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자그마한 일들도 컴퓨터와 같이 기계식으로 처리하면 일률적으로 하나의 체계에 따라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여기에서 인간이 하는 일과 기계가 하는 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글자의 방향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글자의 순서이다.글자의 순서로 말하자면 시인 이상의 오감도가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또 한자로 표기한 숫자의 순서가 완전히 역순으로 되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위에서 아래로 읽게 되어있는 옛날 어느 문장의 한구절도 생각난다.이와같이 순서에 따라서 전개되는 논리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은 비단 우리의 경우에서 뿐만아니고 서양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인문주의자 카스틸리오네가 「논리의 전복은 아름답다」고 한 말은 특히 현대의 환상적인 예술 표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격동의 93경제 결산/경제부기자 방담

    ◎실명제 실시·UR파고로 “국제화 시련”/쌀개방… 냉엄한 국제현실 일깨워/10월 대난설·화폐개혁 악성루머도/그린벨트 개선안 사고없이 마무리/금융계 「사정한파」… 은행장 넷 옷벗어/배종렬·김승연회장 전격 구속… 재계 충격/헬기엔진조립·TGV 등 재벌 이권싸움 치열/「경쟁력 강화 민간위」 구성… 경제 활로 모색 신경제 첫해인 올 한햇동안 우리 경제는 개혁의 물결속에 경기회복을 위해 숨가쁘게 돌아갔다.이를 위해 신경제 5개년 계획,금융실명제,2단계 금리자유화 등 혁명적인 제도개혁이 잇따랐다.국제적으로도 우루과이 라운드(UR)타결과 이에 따른 쌀시장개방 등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격동속의 올 경제계를 경제부기자들의 방담으로 짚어본다. ­경제계의 93년은 대변혁의 파노라마가 잇따라 펼쳐진 한해로 기록될 것입니다.특히 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가 단행한 가장 혁명적인 제도개혁이었습니다.그러나 당초 우려와 달리 빨리 정착돼 대혼란을 예견했던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실명제 실시가 국민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실명제가 실시되기 전부터 실명으로 거래를 해온 대다수 사람 들까지도 마치 세상이 뒤집힐 것으로 보고 한동안 초 긴장을 했습니다.10월 금융대란설이니 화폐개혁이니 하는 악성 루머들이 난무해 혹세무민하는 양상도 없지않았지만 금융시장은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았습니다.개혁은 역시 일거에 해치워야 한다는 사실도 실명제가 남긴 또하나의 교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1월부터 실시된 2단계 금리자유화는 「타율과 관의 보호」에 길들여진 우리 금융계를 자율과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몰았고 연말에 돌출한 UR협상의 타결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벅찬 과제까지 안겨주었습니다. ○2단계 금리자유화 ­새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금융계를 덮친 「A급 사정태풍」은 김준협 전 서울신탁은행장을 비롯,4명의 은행장의 옷을 잇따라 벗겼지요.그 중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경우는 거액의 비자금 운용과 관련돼 현직에서 구속되는 사태로 비화됐습니다.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YS의 은행장 인사 불개입 원칙 천명에 이어 나온 「은행장 추천위원회」 제도는 금융 자율화의 핵심인 은행장 인사의 자율화를 향한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돼야 할 것입니다.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지만 재계는 올해 「지옥」과 「천당」을 함께 경험한 한해였습니다.총수들의 경우는 더욱 그랬었죠.「성역없는 사정」의 분위기 속에서 지난 6월 배종렬 한양그룹 회장이 구속됐고,11월에는 현대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이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격 구속돼 재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이는 전례가 드문 것으로 정경유착의 고리가 단절된 탓이란 해석이 나왔죠.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재계 스스로 체질개선을 하는데 도움을 준 측면이 많았습니다.기업하도급 비리실태 조사,위장계열사 조사,내부거래 실사 등에 따라 재계는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까요.또 공산품 가격을 동결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는가 하면 의식개혁과 투자확대 조치를 취했습니다. ­맞습니다.그 과정에서 나온것이 「이건희 신드롬」이라 불리는 삼성의 「질경영」입니다.정부의 개혁조치에 부응,이회장은 삼성의 개혁을 통해 재계개혁의 불을 당겼습니다.혁신적인 인사조치는 타그룹의 모범이 돼 재계의 「물갈이」를 선도했죠.또 그가 역설한 사회간접자본(SOC)의 중요성은 정부 정책에까지 반영됐습니다. ­최종현 전경련회장이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재계 차원의 활로 모색이라 할 수 있죠.위축된 경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 재계가 하나로 뭉친 것이니까요.대통령이 거는 기대도 상당하기 때문에 무척 고무된 것이 사실입니다.아직까진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만 새해에는 나타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재계는 대형사업의 이권싸움 또한 치열했습니다.헬기엔진 조립업체 변경과 중형 항공기 제작 주도업체를 둘러싼 「공중전」,승용차 신규진출 및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한 「지상전」,조선소 도크 신규증설에 따른 「해상전」 등 입체전이 전개됐죠.상호비방에서 법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됐습니다. ○금융시장 안정 찾아 ­재계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업종전문화 시책이골격을 드러내 산업정책사에 한 획을 긋게 됐습니다.알려진 대로 업종전문화는 30대그룹을 대상으로 주력업종을 선정,여신관리 제외와 같은 금융지원과 공장입지 지원 등을 해줌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자는 게 골자입니다.신경제 이념인 자율을 살리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 정부의 개입을 줄인점이 특색이라면 특색이지요.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에 대비,직접지원을 택하지 않고 여신관리 예외와 같은 규제완화 방식의 간접지원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춘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됩니다. ­산업현장은 그런대로 모양이 좋았습니다.올 수출이 당초 계획보다 7억달러 가량 모자라는 8백28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나 상공자원부가 수정전망을 하기 전의 목표치가 8백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실적입니다.자동차와 조선 등 중화학 업종이 엔고 특수로 호황을 누렸습니다.반도체는 「돈을 긁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 됐습니다.물론 신발이나 섬유 등 경공업은 올 한해도 어려웠지요.또 국제 유가의 하락으로 공산품 값 상승요인이 상당분상쇄되고 원유도입액이 줄어 무역수지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농림수산부가 올해처럼 정신없이 바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연례 행사인 추곡수매 문제를 채 마무리 하기도 전에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으로 눈코 뜰새 없었으니까요.더욱이 올해는 「냉해」라는 돌출변수까지 겹치는 바람에 무척 복잡했지요.하기야 농림수산부로선 국민의 시선이 UR협상에서의 쌀 시장 개방문제에 온통 집중됐던 게 차라리 다행스러운 점도 있었지요.정부의 추곡 수매안,냉해대책에 대한 농민과 각종 단체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잖습니까. ○정주영회장에 실형 ­올해의 빅 뉴스중의 뉴스인 쌀 시장 개방이 앞으로 끼칠 파장이 어떨 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나 쌀 시장 개방이 우리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정부는 일본보다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쌀 시장을 부분 개방하게 됐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그 파급효과는 오는 95년 이후에 가서야 가시화되기 때문이지요. 어쨌거나 이번 UR협상은 우리의 의지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냉엄한 국제 사회의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국민의식의 국제화를 앞당기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김영삼대통령이 『경제를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선언한 이래 경제기획원 등 경제부처가 무척 바빴죠.대통령이 취임직후부터 격주간격으로 과천청사를 방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경제회생」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입니다. ­물러난 이경식부총리 얘기도 한마디 해야 할 것 같군요.새 정부 출범뒤 줄곧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박재윤수석에 밀리다가 실명제로 이부총리의 위상이 바로서는 계기를 잡았지요.그러나 나라 전체가 홍역을 치른 UR태풍은 끝내 그를 단명 경제총수로 끝나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부총리는 쌀개방 파동으로 물러났지만 퇴임 후에도 『같은 일을 다시 해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UR대응 방법이 최상이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쌀 개방에 따른 문책성 경질에 다소 서운해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정재석 부총리는 파격적인 언행으로 과천청사는 물론 내각안에서도 관심의 인물로 등장했습니다.과거 「박정희 경제스쿨」의 우등생이었던 그는 기획원 관료 출신으로서의 배짱과 소신이 너무나도 뚜렸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세계일류기업 육성 ­건설부는 고병우 전장관을 비롯,전 직원들은 올 상반기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문제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지난 71년 처음 지정된 이래 재산권 침해 등으로 수많은 민원을 야기한 그린벨트 제도는 역대 건설 장관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그린벨트 완화는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지만 지난 해부터 올 9월 말까지 개선시안을 마련하겠다고 공표해 놓은 상태여서 어찌 되었든 개선이 불가피했습니다.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초로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실시됐고 여러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개정안이 발표됐습니다.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과천 청사와 건설부 직원들 집을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세청도 어느해보다 안팎으로 바빴습니다.먼저 연초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를 꼽을 수 있지요.국세청은 포철이 오랫동안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하게 됐다고 밝혔지만,박태준씨에 초점을 둔 조사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지요. ­올해 처음 정기과세된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 파동도 사건이었지요.당초 토초세를 내야 할 24만명의 납세자 가운데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토초세가 문제가 있다는 언론 플레이를 한데다 일부 언론도 이해에 따라 동조하기도 했지요. ­맞습니다.토초세가 처음 나왔을 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언론이 대부분 반대로 돌아서고,토초세를 처음에 찬성했던 일부 학자들도 시류에 따라 왔다갔다 했습니다.토초세가 도입될 당시부터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는 지적은 있었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한 것은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기 위한 것 아니었습니까. ○주가 23%나 올라 ­실명제의 부작용과 실물부문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해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자금출처 조사가 약방의 감초 격으로 동원됐지요.국세청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이런 엄포로 투기는 잠재울 수 있었지만,무슨 일이든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동원하려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이 많아요.이러다가 양치는 소년의 이야기와 같이 불신이 높아지고 조세저항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사정한파도 잊기 어려운 일이지요.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도마위에 올랐던 국세청이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재산이 70억원 이상인 재산가가 2백명이나 된다는 일부 보도까지 나와 더욱 곤혹스러워 했지요. ­올해 경제가 회복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가장 피부에 와닿게 해준 경제지표는 주가지수인 것 같습니다.실명제나 UR 타결 등 국내·외의 충격 속에서도 주가는 연초 대비 23%나 올랐을 뿐 아니라 1년중 약 5개월의 거래량이 5천만주가 넘고 거래대금도 1조원이 넘는 활황 장세였습니다.55억달러가 넘는 외국계 자금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내년도 경제가 지금보다는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투자자들을 증시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 셈이죠. ­올해에는 특히 실명제로 그동안증시를 휘젓고 다니던 큰손들이 비중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물론 기업의 수익률이나 성장성,안정성 등 과학적 기법에 의거한 투자방식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풍문이나 작전이 전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참석자 채수인차장 정종석기자 염주영〃 권혁찬〃 우득정〃 박선화〃 함혜리〃 곽태헌〃 오승호〃 김현철〃 백문일〃
  • 새옥편 「목인법 비서한자」 개발/조한구씨(인터뷰)

    ◎“한자 찾기쉽게 가나다순 배열/신문에 자주 등자하는 5만여 단어 수록 기존의 옥편과는 체제가 전혀 다른 새로운 한자자전이 개발됐다. 출판인 조한구씨(55·성심도서 대표)가 발명특허를 얻어 최근 출간한「목인법 비서한자」는 한자를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데다 표제어 밑에 그 자가 들어 있는 한자단어들을 한데 묶어 단어 중에 한글자만 알더라도 나머지 한자를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공부하는 아들이 신문제목에 나오는 한자들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그 원인을 따져봤더니 한자의 뜻과 발음을 자전에서 찾으려 해도 부수·획수등을 몰라 결국 포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초보자도 찾기 쉬운 한자사전을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조씨는 처음 교육부 제정 중·고교생용 상용한자 2천7백자를 중심으로 한자사전을 만들려고 했으나「상용한자」와 현실에서 자주 쓰이는 자에는 차이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신문에 나오는 한자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서울신문을 비롯한주요 일간지들의 92년 6월1일자를 조사했더니 평균 한자단어 2백60여개,한자 3백64자를 썼더군요.이들 한자단어 중에 한 글자 이상은 중학생용 한자 9백자에 포함된 것이어서 아는 한자를 이용해 나머지를 찾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가 만든「비서한자」에는 모두 5만여 단어가 실려 있어 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한자어는 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조씨는 한국잡지협회 총무부장,「주택가이드」잡지사의 발행인겸 편집인을 역임했고 지난 88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한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국학숭상의 분위기가 강한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해 논어를 배우면서 부터』라고 말하는 그는 기초한자 보급을 위해 자신이「비서한자」의 부록격으로 만든 한자교재인「비서한자 600」3만부를 무료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조씨는 기초한자 강습을 무료로 열려는 관공서·단체나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무실(서울 717­4858)로 연락하면「비서한자 600」을 원하는 만큼 거저 주겠다고 말했다.
  • “소형차는 개도국 중심/컴퓨터는 중남미 공략”/수출증대 심포지엄

    자동차는 소형차 중심으로 개도국을,전자는 컴퓨터·통신기기 위주로 중남미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섬유는 세계의 패션 정보를 생산과 직접 연계시키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건설은 선진국 조달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등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23일 서울 무역회관에서 열린 『UR타결 이후 수출증대 방안』이란 심포지엄에서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달라진 무역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수출전략을 짜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소장은 『그동안 시장진입 장벽을 뚫기 위해 현지법인,KD(조립생산) 방식으로 수출하던 방식에서 탈피,국내생산·해외판매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며 『대신 해외유통망을 확대하고 통상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해외진출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경우 일본의 주력차종인 중·대형보다 소형 위주로 대 개도국 수출을 늘리고 KD방식보다 완성차를 파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자는 각종 수입제한 조치가 완화되는 중남미와 동남아를 공략하고 가전,컴퓨터,통신기기 분야에선 자기 상표의 유통망을 갖춰야 한다. 수출보다 수입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는 기계의 경우 대외협력기금이나 유엔개발자금 등을 적극 활용,플랜트 수출을 늘리고 경쟁력이 뛰어난 철강은 해외 철강업체와 합작으로 직접 진출하는 것이 낫다.물류비용이 다른 산업에 비해 높기 때문에 해외 물류관련 기업과의 제휴도 바람직하다.
  • “고통감내”취임사에 총리실 긴장/총리·감사원장 이­취임식 이모저모

    ◎황 전총리 “이제 이방에 걸맞는 주인왔다”/“새감사원장 유머 있지만 업무에는 치밀” ▷국무총리◁ 17일 상오9시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이회창국무총리는 곧바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돌아와 총리 이·취임식에 참석. 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이·취임식에는 각부처 장·차관 전원과 서울의 국장급이상 공무원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함께 이임사·취임사 순으로 30분동안 간단히 진행. 이총리는 취임사를 통해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면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 뒤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여러분들이 더 많은 인내와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고 강조. 황인성전총리가 단상 오른쪽에,이총리가 왼쪽에 자리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황전총리의 이임인사때는 갑작스런 경질에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이총리의 취임사를 들을 때는 한구절 한구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듯 진지한 모습. 황전총리는 이임사에서『지난 10개월동안 부족한 사람을 도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히고 『UR협상과 관련해 마련한 농어촌대책을 차질없이 수행해 달라』고 마지막 당부. ○…새총리를 맞은 총리실 직원들은 취임사에 담긴 내용을 보고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 특히 공직자들의 사정을 전담하고 있는 제4행정조정관실 직원들은 『이총리가 비리와 부정부패의 척결을 강조한 만큼 앞으로 업무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업무보고 준비에 분주한 모습. ○…이·취임식에 앞서 이총리는 상오 9시40분 9층 총리집무실로 첫 출근,이효계비서실장·김시형행정조정실장등 총리실 고위간부들과 잠시 환담한 뒤 총리실 직원들과 인사를 마친 황전총리의 방문을 받고 『어려운 때에 수고많으셨다』고 위로. 이 자리에서 황전총리는 『이제 이방에 맞는 주인이 온 것 같다』면서 『평소 존경하던 분께서 총리직을 맡으셔서 든든한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됐다』고 인사. 황전총리는 이날 이·취임식을 끝낸 뒤 청사현관에 도열한 총리실 직원들의 박수속에 지난 10개월 동안의 보람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청사를 떠나 순국선열 참배를 위해 국립묘지로 향발. ▷감사원장◁ 이시윤신임감사원장의 이·취임식은 17일 상오11시 감사원 강당에서 거행.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수여받고 감사원에 도착한 이원장은 감사위원과 황영하사무총장등 간부들의 안내를 받으며 강당으로 이동,준비한 취임사를 천천히 낭독. 강당에 모인 5백여명의 감사요원들은 신임원장의 새로운 감사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지 궁금한듯 귀를 기울였으며 이원장이 발전지향적 사정을 천명하자 『별다른 변화가 없다』『조금 편해지겠다』는등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보이기도. 이원장은 취임식을 마친뒤 주상석기획관리실장으로부터 40분동안 업무보고를 받으며 감사와 관련한 용어 7∼8가지를 질문. 이원장은 주실장등 간부들에게 『아직 업무를 잘 모르니 앞으로 천천히 상의해 나가자』고 격려. ○…감사원직원들은 일단 이신임원장의 스타일을 매우 자유분방한 것으로 평가. 특히 구내식당인 삼청실에서 열린 취임축하오찬에 참석했던 국장들은 『신임원장이 시종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했으며 사이사이 유머도 덧붙이는등 주위를 편하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전언. 이원장과 구면인 한 간부는 『이원장이 평소 생활은 여유있게 하지만 업무는 매우 치밀하고 꼼꼼한 편』이라고 소개.
  • 아주국/“하늘까지 더욱 높게”/고층빌딩 건축경쟁(세계의 사회면)

    ◎말련에 92층… 「시어즈」보다 11m 높아/홍콩·중국서도 70층이상 3곳 계획 『번영의 상징인가,하장성세인가』 경제가 날로 번창해가는 동아시아지역 일대에서 최근 서로 경제성장을 뽐내기라도 하듯 초고층 마천루 건설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초고층 빌딩이 많기로는 단연 홍콩이 꼽힌다. ○경제성장 “뽐내기” 이곳에서는 78년에 완공된 66층의 호프웰빌딩이 10여년간 홍콩의 최고층임을 자랑해오다 88년 8월에 준공된 중국은행 홍콩분사빌딩에 눌리고 말았다. 오는 97년 홍콩을 인수하는 중국이 마치 홍콩의 기를 꺾기라도 하려는듯 홍콩정청의 주요 건물들을 내려다 보며 칼날모양으로 서있는 70층짜리 중국은행 건물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건물때문에 홍콩 주민들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던 섬뜩한 마음은 불과 4년만에 사라지게 됐다. 중국은행의 기를 꺾을 더 높은 빌딩이 92년 여름에 완공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만해도 홍콩섬 중심부에 세워지고 있는 78층짜리 센트럴 플라자(중환광장)빌딩이 동양에서 가장 높을 뿐만아니라 세계에서도 4번째로 높은 고층빌딩이라는 선전 광고가 요란스레 홍콩신문들을 장식했었다. ○“지상에서 4백46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미국 시카고의 1백10층 시어즈 타워(4백35m)를 비롯,뉴욕의 1백2층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나 1백10층 월드 트레이드센터에 이어 세계 4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건물이 「동양 최고」라는 영예도 수년내로 무너지게 됐다. 중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최근 이 보다 훨씬 높은 마천루 건설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기적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있는 광동성의 성도 광주에서는 80층에 지상 높이가 3백90m로 홍콩의 「동양 최고」보다 22m나 높은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스카이 센트럴이라는 이 빌딩은 홍콩과 중국 자본 4억달러가 투입돼 오는 96년에 완공된다.그러나 실제 층수는 68층이고 그 위 12층 규모는 거대한 유리장식물 등으로 꾸며지게 된다. 어쨌든 이 빌딩 신축으로 한국의 63빌딩과 같은 층수에 높이가 2백m인 광주의 국제대하나 52층으로 이보다 층수는 낮지만 2백9m로 중국내 가장 높은 빌딩임을 자랑했던 북경의 경광센터등이 최고 자리를 내놓게 됐다. 이 경광센터는 지난 90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장백발북경부시장이 『만약 아시안게임이 제대로 치러질수 없게 되면 이 건물위에 올라가 자살하겠다』고 말해 화제를 뿌린적이 있다. 중국에서 아시아 최고층 건물을 짓는다는 소식과 거의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서는 내년 3월부터 오는 96년 중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세워질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콸라룸푸르시티센터로 불리는 이 빌딩은 층수의 경우 92층으로 미국의 3대 빌딩보다는 낮으나 실제 지상높이는 4백46m로 지금까지 세계최고로 랭크돼온 시어즈타워보다 11m나 높게 지어진다. ○삼성·극동건설 수주 특이한 것은 쌍둥이 건물인 이 새로운 「세계최고」빌딩 가운데 하나를 한국의 삼성건설과 극동건설이 공동으로 짓는다는 사실이다.
  • “기업 품질·관리 혁신만이 살길”

    ◎한국경제연 「UR와 한국경제…」 토론내용/보호·규제 일변도의 행정관행 대폭완화 해야/외국기업 국내유치 사안별로 신중히 대처를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이 초읽기에 돌입한 시점에서 과연 한국경제의 살 길은 무엇인가.한국경제연구원이 13일 개최한 「UR와 한국경제의 선택」이란 정책토론회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과감한 국제화 전략이라고 제시했다. 「UR파고」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서 기업은 해외투자 법인의 현지화와 국제경쟁력 우위확보를 위한 품질 및 관리 혁신을 가속화하고,정부는 행정규제를 경쟁국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원의 정진호연구위원과 지용희서강대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벌어진 「한국경제의 선택」이란 주제의 토론내요을 간추린다. ▲변도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UR타결 이후 우리의 대처방안은 크게 4가지 정도가 전제돼야 한다.첫째 UR의 득실을 명확히 해야한다.UR는 모두 15개 분야이며 쌀은 그중 한분야이다.15개 부문별로 우리의 이해득실을 정확히 파악,취약부문은 보강하고 강점은 살려야 한다.둘째 UR타결과 동시에 나타날 국제무역 규범의 광범위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보호주의적이고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제도나 지나친 보호와 규제 일변도의 행정관행등은 국제규범의 변화에 부응,기업이 적응할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셋째 쌀문제는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우선될 가능성이 있는만큼 이를 냉정하게 처리해야 한다.정부는 감시자 역할에 충실하고 UR환경의 조성은 민간 자율에 따라야 한다.마지막으로 외국인 투자환경이 호전돼야 한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 소장=UR는 우리 경제가 추구하는 국제화를 선명하게 표출시키는 계기가 됐다.한정된 재원으로 현재나 과거가 아닌 「미래의 먹거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 대처는 금물이다.부품국산화 문제나 수입선 다변화정책등이 당장 직면하게 될 어려움이며 고용이 제1의 경제정의라는 시각이 필요하다.외국자본이 도입되면 이자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기업의 금융비용을 줄일수 있는 방안은 투자의 효율성에서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기업은 과잉투자나 투자 수익률을 지나치게 낙관하던 과거의 관행을 버려야 한다.자금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며 직접금융의 소스를 찾아야 하고 해외금융도 직접금융의 형태로 해야 한다. ▲이천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해결책을 외부에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최선의 방어가 될 것이다.그런 차원에서 시장개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해당업계의 기업이 변화하는 상황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적응하느냐가 문제이다.또 기술이전을 위한 외국기업의 국내유치 문제는 무조건 「백지수표」를 줘선 안되며 사안별로 대처해야 한다. ▲박태서 삼성종합화학사장=경쟁력에는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이 있다.지금까지 우리기업은 반쪽만의 경쟁력으로 경쟁했다.외국자본이 유입되면 국내인플레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은 한번쯤 재고해 봐야 한다.홍콩과 같은 국가들에서 외국자본이 유입됐다고 인플레에 직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외국자본이 들어와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은 외환관리법으로 인한 본원통화의 증가 탓이다.시대착오적인 외환관리법의 철폐가 전제돼야 한다.
  • 주도권 잡는 신라(온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23)

    ◎진흥왕때 국력배양… 3국통일기반 닦아/한강유역 확보… 중국직교류의 발판구축/호국불교 널리 퍼뜨려 국민 일체감 조성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민족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3국을 통일한 나라는 만주의 지배자 고구려도,건국 초부터 중국·왜등지로 활발히 대외진출을 했던 백제도 아니었다. 한반도 동남쪽 좁은 지역에서 뒤늦게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던 신라였다.신라가 결국 3국간 싸움에서 승리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신라가 3국을 통일하는데 토대가 된 국력배양은 제24대 진흥왕(540∼576년)때 그 기초가 이루어졌다. 진흥왕때 신라의 국력이 일취월장한 요인으로는 ▲활발한 정복 활동 ▲한반도의 허리,한강유역의 확보 ▲「국사」편찬등을 통한 왕권 확립 ▲적극적인 불교 확산에 따른 국민적 일체감 조성 ▲화랑제도를 통한 청소년교육과 전사양성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요인을 들라면 역시 한강유역의 확보를 꼽아야 할 것이다. 한강유역은 한반도의 허리 부분으로 예부터 이곳을 북쪽 세력이 확보했을때는 남쪽 세력이 궁지에 몰렸고 남쪽 세력이 차지하면 북쪽 세력이 약화되기 일쑤였다. 백제가 한성에 도읍한 이래 한강유역은 5백년 가까이 백제의 땅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을 받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되자 백제는 이 지역을 포기하고 475년 웅진(현 충남 공주)으로 도읍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절치부심하던 백제는 550년 신라의 진흥왕과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격파해 한강 하류 유역을 탈환했다. 이때 신라는 한강 상류유역인 죽령이북 고현(지금의 철령)이남의 10개 군을 차지했다. 진흥왕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553년 동맹관계인 백제를 기습해 한강유역 전부를 독차지했다. 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한 것은 물론 고구려·백제의 직통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스스로는 대중국 교류의 기지를 확보했다. 진흥왕은 이후 더욱 활발하게 정복전을 펼쳐 562년 가야를 완전정벌했으며 동북쪽으로 진출해 함경북도 일부지역까지 차지했다. 그 당시 진흥왕이 넓힌 영역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서울 북한산 ▲함남 함주군 하기천면 진흥리 ▲함남 이원군 동면 마운령에 세운 4개의 진흥왕순수비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함께 진흥왕은 대내적으로 551년 개국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왕의 권위를 높이고 자주성을 표방했다. 또 「국사」라는 역사책을 펴 유교통치 이념을 강화하는 동시에 호국불교를 널리 퍼뜨려 국가통치에 적극 활용했다. 이밖에 화낭도를 창설,청소년의 기개를 드높였으며 전장에서는 이들을 전사로 활용했다. 진흥왕은 한반도 한구석에 쳐박혀 고구려·백제로부터 번갈아 시달림을 받던 소국 신라를 중흥시킨 것이다. 이때의 국력배양이 1백년쯤 지나 3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의 바탕이 되었다. 7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43세에 생을 마감한 신라 24대 진흥왕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버금가는 위대한 군주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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