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한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제철소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모바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실행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물티슈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934
  • 이근 근황 공개…총들고 우크라 의용군과 찰칵

    이근 근황 공개…총들고 우크라 의용군과 찰칵

    이근, 다른 의용군들과 함께 사진“상급 장교 출신” 우크라이나 언론에 소개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들어가겠다며 우크라이나로 떠난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출신 유튜버 이근(38·예비역 대위)씨의 근황이 전해졌다. 지난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근 우크라 근황’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씨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 이씨는 총기를 들고 우크라이나 의용군 두 명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글쓴이는 이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의용군을 두고 “(외부로) 자주 노출된 우크라이나 의용군 사진의 팀장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라고 주장했다.이씨가 다른 의용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진은 한 유튜버가 “외부 소식통이다. 이근씨의 다른 사진이 발견됐다”며 올린 게시물이 갈무리돼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우크라이나 언론에도 소개됐다. 우크라이나 언론 ‘bykvu’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이씨의 사진과 함께 “그는 북한과 아프리카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군사 작전에 참여했다”면서 “해군 특수 훈련 부대의 상급 장교로, 신병 선발부터 본격적인 작전 훈련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신병 훈련을 담당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앞서 이씨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전하며 사망설, 폴란드 재입국 등 각종 루머를 반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제군단에 도착해 계약서에 서명한 후 저는 실전 경험이 있는 미국, 영국 등의 외국인 요원들을 모아 특수작전팀을 구성했다”면서 “제가 꾸린 팀은 여러 기밀 임무를 받아 수행했습니다만, 구체적인 임무 시기나 장소에 대해서는 추측을 삼가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2계는 이 전 대위 등 무단으로 우크라이나에 간 10여명에 대한 고발을 접수하고, 여권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진행중이다.
  • 도둑은 풀어주고 도둑 잡은 집주인은 구속...이런 게 법치국가?

    도둑은 풀어주고 도둑 잡은 집주인은 구속...이런 게 법치국가?

    도둑을 잡아 경찰에 넘겼지만 도둑의 고발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3부자의 사연이 현지 언론에 보도돼 사회가 공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유를 잃고 교도소에 갇혔지만 도둑은 풀려나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선뜻 납득하기 힘든 황당한 사건은 2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선로렌소의 한 가정주택에 2인조 도둑이 든 데서 발단됐다.  도둑들은 새벽에 주택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범행은 실패했다. 잠에서 깬 용감한 3부자의 저항 때문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아버지 왈테르는 순간 도둑의 침입을 감지하고 곤히 자고 있는 두 아들 브라이언과 에르네스토를 불러 깨웠다.  힘을 합친 3부자는 몸싸움을 벌여 도둑 중 1명을 제압했다. 돌발상황이 벌어지자 공범은 혼비백산 도주했다.  3부자는 경찰을 불러 도둑을 넘겼다. 봉변을 당할 뻔한 3부자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정작 수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날 낮 3부자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3부자가 나란히 수갑을 차는 모욕을 겪기도 했다. 왈테르의 부인 알레한드라는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새벽에 벌어진 사건 때문인 줄 알았는데 체포영장을 내밀어 당황했다"면서 "평생 경찰서 한번 가본 적 없는 남편과 아들들이 범죄자처럼 잡혀갔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3부자를 고발한 건 경찰에 신병이 넘겨진 도둑이었다. 도둑은 "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피해자들에게 붙잡혔다"며 무단으로 자유를 구속한 혐의로 3부자를 고발했다.  경찰에 따르면 3부자는 붙잡은 도둑을 의자에 묶어놓고 경찰의 출동을 기다렸다. 적반하장 도둑이 법적인 문제를 제기한 건 이 부분이었다.  구속적부심에서 3부자 측 변호인은 "정당방위를 범죄로 몰아가면 무고한 시민들은 어떡하란 말이냐"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신청한 검찰 측 손을 들어줬다.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자유 제한과 학대가 있었다는 게 법원 측 판단이었다.  3부자는 구속 1달째인 지난달 22일 구속이 연장됐다. 3부자는 8일까지 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게 됐다. 알레한드라는 "도둑을 잡은 시민에게 표창장을 줘도 부족할 판에 구속이라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느냐"면서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간다지만 정말 말도 되지 않는다"고 격분했다.  아르헨티나 형법을 보면 타인의 자유를 무단으로 구속한 경우 최장 징역 6년이 선고될 수 있다.  피해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지만 3부자가 붙잡아 경찰에 넘긴 도둑은 당일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됐다. 절도미수로 사건이 처리되면서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된 덕분이다. 
  • 한미 북핵대표 “北 도발에 유엔 안보리 새 결의 추진, 강력 대응”

    한미 북핵대표 “北 도발에 유엔 안보리 새 결의 추진, 강력 대응”

    한미 양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비롯해 계속되는 무력 도발에 대해 새로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추진을 포함해 강력히 대응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만나 북한의 도발을 포함해 역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표는 협의 직후 취재진에게 “우리는 최근 ICBM을 포함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규탄을 재확인했다”며 “이(탄도미사일 발사)는 복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으로 공조해야 한다”며 “우리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행위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응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추구하기 위해 노 본부장 및 그의 팀, 유엔의 동료들과 협력하길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 3월 24일 북한이 4년 4개월 만에 ICBM을 발사하며 스스로 천명했던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깨트리자 잇단 추가 제재를 발표하며 강력한 대응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에 새 유엔 대북결의 추진을 밝힌 것은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ICBM 발사로 북한이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어선 데 이어, 핵실험 준비 정황이 포착되는 등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자 한층 엄중한 경고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7년 북한의 ICBM 발사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는 북한이 또다시 ICBM을 쏘면 연간 400만 배럴, 50만 배럴로 각각 설정된 대북 원유 및 정제유 공급량 상한선을 추가로 줄일 수 있도록 규정한 ‘트리거’(trigger·방아쇠)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새 안보리 대북결의를 추진하면 이 트리거 조항에 따라 북한의 원유 및 정제유 공급량 상한선을 더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24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한 직후 유엔 안보리를 소집해 북한의 도발행위를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채택해 이 트리거 조항 발동을 위한 근거로 삼으려고 했으나 중국 및 러시아의 반대로 언론성명 채택이 무산됐다. 김 대표는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 결의 추진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우리는 외교에 열려 있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며 “진전에 대한 결심 여부는 정말로 북한에 달려 있다. 그들은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협상을 놓고 대화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며 외교의 여지를 여전히 남겼다. 그는 또 노 본부장의 방한 초청을 수락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 노 본부장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팀과도 논의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노 본부장은 이번 협의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동의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특히 지난 3월 24일 북한의 ICBM 발사는 다수의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감안해 새로운 결의 추진을 포함해 강력한 조치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는 한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 함께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열린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북한에 대한 관여 노력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자리를 빌어 북한에 더 이상의 상황 악화 조치를 자제하고 대화와 외교로 복귀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미정책협의대표단도 이날 오후 국무부 청사를 찾아 웬디 셔면 국무부 부장관과 면담했다. 박진 단장은 그 뒤 특파원들을 만나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 차원 더 높이 격상하자는 윤 당선인의 구상을 전달하고 미국 측과 공감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한국 정부 교체기를 맞아 북한의 도발이 지속하고 있다면서 엄중한 상황에서 한미 간 물 샐 틈 없는 공조를 지속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데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통해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전을 구현한다는 윤 당선인의 대북 정책 비전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고 미국 측도 공감했다고 전했다. 박 단장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간 확장된 억제 정책 필요성과 관련해 협의체를 재가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도 밝혔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실질적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표단은 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를 방문하는 계기에 한국을 꼭 방문해 달라고 말했고, 미측은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 [사설] 이제는 ‘책임장관’ 인선, 수평적 소통이 관건이다

    [사설] 이제는 ‘책임장관’ 인선, 수평적 소통이 관건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 지명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이 속도를 내고 있다. 새 정부는 각 부처 장관이 예산 편성과 인사에서 실질적 권한과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꾸려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 간다. ‘책임장관제’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윤 당선인도 거듭 각 장관의 권한과 책임 강화를 언급해 온 만큼 적어도 새 정부 출범 초라도 이와 같은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정부’로 불렸다. 이전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각 부처 장관이 있기는 했으나 청와대의 ‘하명’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탈원전 정책과 부동산 대책이다. 소관 부처 장관이 ‘총대’를 멨지만 이들 정책을 세우고 밀어붙인 주체는 청와대다. 각 부처가 이처럼 청와대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마당이니 민생 현장의 목소리와 일선 공직자의 문제 제기가 온전히 반영될 턱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청와대의 독주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청와대 정부’를 끝내고 ‘국무회의 정부’가 돼야 한다. 국정 주요 현안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가 아니라 각 부처 장관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논의돼야 한다. 이를 통해 각 부처 장관들은 소관 현안을 넘어 국정 전반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정부 차원의 균형감 있는 정책을 창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책의 질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정책 수용자인 국민 간 소통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윤 당선인은 청와대 참모들이 세운 병풍을 걷어 내고 직접 각 부처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 바란다. 국무회의도 지금처럼 주 1회 열어 안건 의결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주 2회로 늘려 안건 심의를 강화하고 현안별 관계장관회의도 상시화하는 등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각 부처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배가해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경륜과 통합에 방점을 두고 발탁했다면 각 부처 수장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미래지향적 인물을 대거 기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서오남’(서울대·오십대·남성), ‘법대충’(서울대 법대·대광초·충암고) 등 연고가 부각되는 인사가 아니라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탕평 인사를 추구하기 바란다. 안배는 지양하더라도 능력 있는 여성 전문가를 적극 발탁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 호날두 vs 수아레스…“카타르 최고의 빅뱅”

    호날두 vs 수아레스…“카타르 최고의 빅뱅”

    ‘카타르 최고의 빅뱅은 호날두 vs 수아레스.’ 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성사된 최고의 맞대결 상대로 한국이 속한 H조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를 꼽았다.FIFA는 4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조 추첨 이후 조별리그에서 어떤 아이콘들이 격돌하게 될지 알게 됐다. 그중 눈길을 끄는 선수 간 격돌을 소개한다”며 H조의 호날두와 수아레스의 대결을 집중 조명했다. FIFA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득점자 중 한 명인 호날두는 H조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 할 것이다. 여기에 우루과이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인 수아레스가 도전장을 던진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호날두는 2009~2018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아레스는 2014~2020년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다. 둘의 대결은 ‘올드 엘 클라시코’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수아레스는 총 7골을 기록 중이다. 16강전에서 전·후반 혼자 선제골과 결승골을 터뜨려 이청용이 동점골을 넣은 한국을 돌려세운 것을 포함해 모두 3골을 터뜨렸던 그는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잉글랜드와의 조별리그에서만 두 골을, 4년 뒤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개최국 러시아를 상대로 1골씩을 터뜨렸다. 2006년 독일 대회 조별리그 이란전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신고한 호날두는 이후 16경기에 더 출전해 수아레스와 같은 7골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남아공 대회 조별리그 북한과의 경기에서 7-0 대승을 이끌 때 마지막 일곱 번째 골의 주인공이 됐다. FIFA는 이외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에서 한솥밥을 먹는 A조의 사디오 마네(세네갈)-버질 판데이크(네덜란드), FIFA 발롱도르를 놓고 다퉜던 C조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도 빅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북한 지난해 암호화폐 4억 달러 ‘해킹 절도’

    북한 지난해 암호화폐 4억 달러 ‘해킹 절도’

    북한이 지난해 최소 7차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및 투자회사들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가해 4억 달러(약 4880억원) 상당을 훔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회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문가패널은 “금융기관과 암호화폐 회사 및 거래소를 지속적으로 겨냥한 북한 연계 해커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며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체이널리시스는 북한과 연계된 해커들이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소와 투자회사 등을 대상으로 최소 7건의 사이버공격을 감행해 이런 피해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해커들은 피싱 유인, 암호 악용, 악성코드 등을 활용해 인터넷에 연결된 암호화폐 지갑에서 북한이 통제하는 주소로 자금을 빼돌렸고, 암호화폐는 현금화를 위해 세심한 자금세탁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사이버공격은 ‘라자루스’, ‘김수키’ 등 북한 정찰총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해킹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패널은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사이버공격은 여전히 북한의 중요한 수익원”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북제재 결의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국내 유관기관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하겠다”고 했다.
  • 3시간 샌드위치 회동… 尹·韓 책임장관 공감대

    3시간 샌드위치 회동… 尹·韓 책임장관 공감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일 한덕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를 만나 ‘샌드위치 회동’을 하며 내각 인선과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해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한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각 부처 장관들에게 더 큰 권한과 책임을 주는 ‘책임장관제’ 도입을 건의했고 윤 당선인이 이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 배석한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가 전날 만나) 전반적인 내각·조각, 국정운영 방안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장 비서실장은 삼고초려한 한 후보자가 총리직을 받아들인 배경에 대해 “못 이루신 개혁에 대한 고민이 있어 보였다”면서 “그런 것들을 차분하게 추진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에게 “장관을 지명하고 그 장관 지명자에게 차관을 추천받으면 공직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질 것이다. 인사권을 좀더 책임장관에게 주면 훨씬 더 팀워크가 만들어져서 활성화될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장 비서실장은 전했다. 총리 인선을 시작으로 향후 초대 내각은 청와대 등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내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이날 총리 후보자 지명 기자회견에서 “책임 총리제는 당선인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듯, 청와대의 과도한 권한 집중을 내각과 장관 쪽으로 옮겨서 하려는 과제를 추진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라며 “이것이 결국은 행정부 전체 운영에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후보자는 새 정부 인선의 가늠자다. 경제·외교·안보를 포괄하는 경력을 갖춘 한 전 총리 지명을 통해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기조를 엿볼 수 있다. 향후에도 진영이나 이념을 떠나 실력 중심의 전문가 집단을 강조하는 인선 구성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 비서실장은 한 후보자가 73세 고령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외교·경제·통상을 관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면서 “그 연세라는 게 경륜으로 본다. 세월 없이 어떻게 그 경륜이 쌓였겠나”라고 했다. ‘청문회 통과’도 한 후보자 총리 인선 이유로 꼽힌다. 한 후보자는 ‘도덕성 검증에서 청문회 기준에 문제없다고 보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인사 청문 위원회가 최종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중요하다 등 우선순위를 말씀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말을 아꼈다.
  • 여성계 “여가부 폐지론은 ‘선거 전략’…성평등 전담부처 강화해야”

    여성계 “여가부 폐지론은 ‘선거 전략’…성평등 전담부처 강화해야”

    여성계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여가부를 권한과 예산을 갖춘 성평등 전담부처로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는 3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 진단과 성평등 정책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고 차기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사실상 공식화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첫 발제를 맡은 강이수 상지대 교수와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여가부 폐지론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여가부 폐지론이 마치 여론에 기반해 등장한 것처럼 포장돼 있으나 실상은 선거용이었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와 신 교수는 발제문에서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총괄 전담부처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 성평등 추진체계가 퇴행하거나 와해될 위험이 있다”며 “여가부를 폐지하고 각 부처에 기능적 분산을 통해 업무 수행을 할 경우 각 부처 내에서 성평등 관점의 업무와 정책은 배제되거나 주변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여성정책에 대해 보육, 일-가족 양립, 여성 일자리 및 경력단절여성 정책, 여성 대표성 향상 등의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정부 내에서 여성 정책담당 기구의 위상이 주변화된 점과 배우자 구타 성폭력, 성매매 등에 대한 구조적 접근 및 해결이 미흡한 점은 미완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별임금격차, 여성 경력단절, 젠더 폭력, 유리천장, 성차별적 문화·의식 등 구조적 해결을 위해 성평등정책 전담부처에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성평등 정책에 관한 법률 제안권,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결권 행사 등 권한과 예산을 갖춘 실질적 성평등정책 전담부처로 여가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에 참가한 황정미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향후 5년간의 성과를 목표로 하는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조직 개편 논의로 국면 전환이 이뤄져야 마땅하지만 객관적이고 디테일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정부 예산의 0.24% 밖에 쓰지 않는 작은 부처를 ‘폐지’하는 것은 언뜻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그 후폭풍과 ‘나비효과’는 5년 후 정부의 성적표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새 정부 조직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정책 추진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 “준비 없이 제시된 ‘여가부 폐지’… 실행시 여성 정책 생태계 와해”

    “준비 없이 제시된 ‘여가부 폐지’… 실행시 여성 정책 생태계 와해”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가능한 몇 가지의 선택지를 준비한 후 당선자가 결정하도록’ 등으로 혼란스러운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준비나 근거없이 제시되었음을 방증한다.” “20대 남성들의 취업과 고용 불안정, 군복무 부담, 빈곤, 경쟁 심화와 같은 위기적 상황은 ‘공정’에 대한 개인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 외국인,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로 치환됐다. 이 분노를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정치적으로 증폭시켰다.” 3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새 정부 성평등 정책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는 인수위가 공식화한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반발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했다. 첫 발제를 맡은 강이수 상지대 교수와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여가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여성의 지위, 성별임금격차와 젠더 폭력, 의사결정 권한의 영역에서 상존하는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며 “이러한 위기 상황과 갈등의 치유는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성평등 정책 추진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를) 폐지하고 각 부처에 기능적 분산을 할 경우, 성평등 관점의 업무와 정책은 배제되거나 주변화 될 위험이 있다”며 “중앙에 비해 조직, 인력, 예산, 정책개발 등 모든 점에서 취약한 지역여성정책 생태계도 와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평등정책 강화와 여가부 개편방안’이라는 발제문에서 성평등 의제에 대한 주도적 대응과 역량이 가능한 정책 추진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별임금격차, 여성 경력단절, 젠더 폭력, 유리천장, 성차별적 문화·의식 등 구조적 해결을 위해 성평등정책 전담부처에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며 권한과 예산을 갖춘 실질적 성평등정책 전담부처로 여가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가부 대안으로 언급되는 ‘인구가족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여성은 출산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며 ‘인구가족부’에 선을 그었다. 그는 또 “한부모, 미혼모가족은 단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주거·돌봄 등의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족 중의 하나”라며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이 한계를 어떠한 식으로 보강하며,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비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STOP PUTIN] 우크라 병사 러 포로들 무릎팍에 총격, BBC 팩트체크

    [STOP PUTIN] 우크라 병사 러 포로들 무릎팍에 총격, BBC 팩트체크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러시아 포로를 무릎 꿇린 채 총격을 가하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나돌자 우크라이나 당국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이른 아침에 처음 등장해 여러 플랫폼의 친러시아 계정들에서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합참의장 발레리 잘루지니는 자국 포로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예우를 깎아내리려고 러시아가 “상황을 연출해 촬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자문인 올렉시이 아레스토비치는 즉각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며 “우리 군과 민간인들, 의용군에게 전쟁 포로를 유린하는 것은 전쟁범죄란 사실을 상시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29일 영국 BBC의 팩트 체크 결론부터 소개하자면 문제의 동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밝혀낸 내용을 소상히 소개해 눈길을 끈다. 동영상이 보여준 것은? 너무 잔인해 모두 보여줄 수 없다. 몇몇 붙잡힌 장병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 몇몇의 머리맡에는 가방이 놓여 있다. 많은 포로의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 알 길이 없다. 포로들은 심문을 받는다. 관등성명과 함께 일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대라고 한다. 그 순간, 세 남자가 차량에서 끌어 내려졌다. 한 병사가 남자들의 다리를 향해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뒤에 이 남성들도 심문을 받는다.어디에서 촬영했나? 동영상이 올라온 저녁 무렵, 한 트위터 이용자는 하르키우 남동쪽 말라야 로한의 한 유제품 농장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BBC가 위치를 확인했더니 그곳이 맞았고, 러시아군에 빼앗겼던 곳을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것까지 맞았다. 이에 따라 문제의 장면을 촬영한 위치까지 추정할 수 있었다.세 병사가 총에 맞는 뒤쪽으로 보이는 주택 근처 나무(①), 굴뚝(②), 창문 위쪽(③) 등 세 군데인데 2017년 이 농장을 검색한 구글웹 이미지와 비슷하다. 다만 동영상의 주택은 마당에 있는 흰색 구조물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동영상의 다른 부분에 병사들이 앞마당에 누워 있는 장면이 찍혀 있어 이곳이 맞다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흰색 구조물(④)과 굴뚝(①), 나무들과 검정색 담(②) 등도 오픈소스 위성 사진과 일치해 이 농장임을 확인시켜준다. BBC는 이 농장과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가 촬영했나? 동영상을 촬영한 시간과 날짜 스탬프가 찍혀 있지 않다. 언제 촬영했는지 알려주는 메타데이터도 없다. 하지만 하늘이 맑고 바닥이 말라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하르키우의 기상 정보를 종합하면 26일이 유력하다. 전날과 26일 모두 맑고 건조했지만 추웠다. 그리고 두 날의 밤 사이 약간의 비가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동영상의 태양 위치를 봐도 26일 이른 시간에 촬영된 것일 수 있다. 포로들은 뭐라는 거지? 포로들을 심문할 때 러시아어로 하고 있다. BBC 전문가는 심문하는 사람의 억양을 볼 때 “우크라이나 출신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란 짐작에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도 이들이 러시아어로 ‘말하다’는 뜻의 ‘govorit’ 대신 ‘hovorit’를 쓰는 것을 봐서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이라고 확인했다. 한 순간, 포로 중의 한 명이 하르키우에 포격을 가한 것을 비난했고, 다른 포로는 국적을 추궁 당하자 아제리(Azeri, 정통 러시아인이 아닌 이들)라고 답한다. 한 포로는 비스크비트네에 주둔해 있었다고 했는데 말라야 로한과 문제의 농장에 가까운 곳이다.병사들은 누구지? 역시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들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지역 출신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위장했을 여지는 여전하다. 적과 아를 구분하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은 푸른색 어깨띠를 둘렀는데 이것 역시 섣부른 결론을 내릴 증거가 되지 못한다. 소속 부대를 파악할 수 있는 배지나 표식도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근방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 주말 온라인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극우 정치집단의 군사조직 ‘National Corps’와 연계된 크라켄 부대의 활약을 보여준다. 방송은 이 동영상이 말라야 로한에서 5.6㎞ 떨어진 빌히브카 마을에서 촬영된 것과 날씨도 맑고 건조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대는 지난 25일 이 마을에서 30명의 러시아인을 붙잡았으며 많은 포로들의 눈을 가리고 밴 승합차에 태운 뒤 한때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도록 강요한 것으로 동영상에 나온다. 하지만 동영상에는 사격도 심각한 폭력 행사도 나오지 않는다.또 문제의 동영상에는 한 병사가 위장된 소총을 든 채 빠르게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 왕립연합서비스연구소(RUSI)의 군사 전문가 릭 레이놀즈에게 문의했더니 “우크라이나 특수군(SOF)이 위장하는 소총과 비슷해 보인다”면서도 “내가 지금껏 봐온 어떤 총과도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또 양쪽 모두 노획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 총기만으로 분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사격에 관한 의문점들 문제의 동영상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은 세 남성이 근접한 거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진위를 의심케하는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몇몇은 그 정도 출혈로는 어림 없고, 총알이 빠져나간 상처, 절규와 비명 소리도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BBC는 동영상을 트라우마 전문의, 전직 군 의료진에게 보여줬는데 그들은 한사코 익명으로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총상을 입은 장병들을 많이 치료해 봤는데 그다지 절규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면서 출혈이 많지 않은 것도 지혈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동영상에도 이런 모습이 나온다. 그는 “내 생각에 이 동영상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했을 때 ‘가짜’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전범으로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의사는 “진짜 인 것처럼 보인다. 무릎팍에 총을 쏜 것은 보복성 공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의 한 이용자는 발사 후 총기 반동이 많지 않다며 실탄 사격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놀즈는 AK74 소총의 5.45㎜ 실탄이라면 반동이 적을 수 있다면서도 “동영상의 화질이 뛰어나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 중·러·북 겨냥 美 내년 국방예산 8.1% 대폭 증액

    중·러·북 겨냥 美 내년 국방예산 8.1% 대폭 증액

    이달 초 중국이 올해 국방예산을 3년 만에 최대 폭인 7.1%(전년 대비) 인상한 가운데 미국이 맞불을 놓듯 2023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5년 만에 최대인 8.1% 증액했다. 미 국방장관이 발간하는 연간 안보전략인 ‘국가국방전략’(NDS)에는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억지보다 중국의 위협을 최우선으로 명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의 서막이 오른 가운데 미중 간 군비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북한·이란 대응 전략도 포함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28일(현지시간) 발표한 5조 8000억 달러(약 7076조원) 규모의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 1일~2023년 9월 30일) 예산안에 따르면 8000억 달러(약 976조원)가 넘는 국가 안보 예산 중에 국방예산은 7730억 달러(약 943조원)를 차지했다. 지난해(7150억 달러)보다 8.1% 오른 2018년(12.4%) 이후 5년 만의 최대 폭 인상이다. 국방예산 증액이 겨냥한 것은 중국이다. 캐슬린 힉스 미 국방부 부장관은 “러시아의 악의에 찬 행동에 직면했지만 방어전략은 우리의 최대 전략적 경쟁자이자 당면한 도전인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시급히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중국은 국제 질서에 도전할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가 이날 핵심 내용을 공개한 NDS에도 ‘중국의 위협에 맞선 미국 본토 방어’를 우선 업무 중 첫 번째라고 명시했다. 러시아의 유럽에서의 도전 억지, 북한과 이란 등의 지속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 등도 포함됐다. ●中도 美에 맞서 10년 새 국방비 2배로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국방예산 중 신형 B21 전략폭격기 구입에 50억 달러(약 6조 1000억원)를 배정하는 등 핵무기 근대화 및 연구개발에 집중했다고 분석했다. 극초음속 미사일 방어 등을 포함한 국방 연구개발비에는 역대 최대인 1301억 달러(약 158조 7000억원)를 배정했다. 중국도 미국의 견제에 맞서고자 국방예산 증액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재정부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에서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7.1% 늘어난 1조 4504억 5000만 위안(약 280조원)으로 정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군사비 증액 폭은 0.3% 포인트 높였다. 2012년 중국의 국방예산이 6702억 위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새 국방비가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 중국의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데도 국방예산을 꾸준히 늘리는 것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펼치는 대(對)중국 견제 행보에 대응하려는 의도다. 미국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안보 협의체)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등으로 동맹국을 규합하는 한편 중국의 반발에도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과 대만해협 군함 통과 등의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 [서울광장] 대통령 당선증은 만능 통행권 아니다/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 당선증은 만능 통행권 아니다/박록삼 논설위원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산문시1’, 1968) 반세기 전 독재와 권위주의에 짓눌렸던 시절 시인 신동엽(1930~1969)은 유토피아적 낭만이 있는 대통령을 꿈꿨다. 현실은 달랐다. 대통령의 주거 공간이자 집무 공간인 청와대는 말 그대로 요새였다. 북악산을 뒤로 두른 채 미사일, 전투기, 드론 등의 공격을 막아 낼 방공망을 구축했다. 청와대 앞길은 아예 통행 불가였고, 경호실은 청와대 주변 도로 맨홀 안까지 보며 폭탄 설치 여부를 확인했다. 북한과 맞댄 분단국가, 그것도 독재정권 대통령의 숙명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2017년부터 청와대 앞길은 24시간 전면 개방됐고, 청와대 뒷산 등산로도 상당 부분 열렸다. 본관, 대통령 및 비서관 집무실 등 몇몇 건물을 제외한 내부를 둘러보는 관람 프로그램도 연중 가동된다.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은 늘 집회로 북적거리기 일쑤였다. 신동엽이 노래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제법 국민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셈이다. 윤석열 당선인 역시 취임 전부터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의지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문제는 본말이 뒤바뀐 듯한 지나침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명분으로 계획한 집무실 이전 정책에 독단과 불통이 단단히 들어차 있다. 집무실 이전은 국민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국가의 상징 공간을 바꿈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간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대하듯 꼼꼼히 준비해야 할 일이다. 속도전 하듯 추진한다면 필연적으로 예기치 못한 혼란들이 이어지고 땜질식 대응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 있는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조차 이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최첨단 정보 시스템 등 보안 설비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 안보 측면이나 재정 측면에서 올바른 선택인지 의아하다. 물론 국민 속으로, 광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환영할 만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를 버리고 옮기는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안이다. 또 다른 요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오히려 국민과의 담을 쌓는 것에 다름 아닐 테다. 대통령은 결코 개인이 아니기에 동의할 수 없는 말이지만, 윤 당선인 말대로 ‘자신의 결단’으로 여론을 무시할 수도 있다. 물론 정치적·법적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여하튼 윤 당선인이 설령 국민들의 목소리는 외면하더라도 최소한 전문가들의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의견만은 경청해야 한다. 국가 안보는 정치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무실 이전 외 많은 이들의 염려 대상은 또 있다. 법과 공정의 실종이다. 대장동 의혹의 진실은 특검법 발의를 놓고 공방을 거듭하다 시간만 끌지 모른다.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의 총선 개입 의혹인 ‘고발사주’ 수사 역시 대선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윤 당선인 부인 김건희 여사의 소환 소식도 없다. 윤 당선인의 장모 최은순씨가 고발된 경기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수사는 회의적이다. 이거야말로 “나를 신경쓰지 말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하는 ‘윤 당선인의 결단’이 간절히 필요한 대목이다. 집무실을 옮기는 데 수천억원 예산을 들이는 것, 검·경·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법 정의가 실종되는 것 등은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다. 대통령 당선증은 만능 통행권이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
  • YS·DJ, 권력 이양까지 매주 주례회동…‘12인 비대위’ 꾸려 경제위기 신속 대응

    YS·DJ, 권력 이양까지 매주 주례회동…‘12인 비대위’ 꾸려 경제위기 신속 대응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당선 후 19일 만에 만찬 회동을 가지면서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사례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주례 회동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당선 후 이틀 만인 1997년 12월 20일 오찬 회동을 갖고 취임 때까지 매주 주례 회동을 가졌다. 김대중 당선인은 자신의 회고록 ‘김대중 자서전’에서 당시 오찬 회동에 대해 “회담은 내가 주도했다. 당연히 내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며 “경제의 긴급한 중요성에 비춰 정부와 인수위가 동수로 6명씩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동 사흘 후인 23일 출범한 ‘12인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같은 달 25일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보다 앞선 조치였다.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은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부총재가 임명됐다. 김대중 당선인 측 새정치국민회의에선 김원길 정책위의장, 장재식 의원, 유종근 전북도지사를, 자민련 측에선 이태섭 정책위 의장, 허남훈 의원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정부 측에선 임창열 경제부총리, 유종하 외무부 장관, 정해주 통상산업부 장관, 김영섭 대통령 경제수석, 이영탁 총리 행정조정실장,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 6명이 참여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는 사실상 경제 비상내각 역할을 했다고 김대중 당선인은 회고했다. 정권 이양 때까지 현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정을 운영하지만, 경제만큼은 차기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김대중 당선인은 “무엇보다 국민들과 국제사회가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칫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경우 그 부담은 차기 정부가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국가의 재앙이며 국민의 고통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따른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추진 문제도 참고할 만하다. 윤 당선인 측 인수위와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생 추경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재원마련 방안을 두고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정권 이양기였던 1998년 2월 당시 인수위와 재정경제원은 추경을 공동 추진했다. 당시 임 부총리는 같은 달 9일 비대위가 제시한 지침을 토대로 12조 4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의 활동에 대해선 권한과 역할이 너무 비대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인한 다급한 경제위기 상황과 순조로운 권력 이양에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YS·DJ, 권력 이양까지 매주 주례회동… ‘12인 비대위’ 꾸려 경제위기 신속 대응

    YS·DJ, 권력 이양까지 매주 주례회동… ‘12인 비대위’ 꾸려 경제위기 신속 대응

    인수위 구성보다 이틀 앞서 출범사실상 차기정부 ‘경제내각’ 역할비대위 지침 토대로 추경안 제출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당선 후 19일 만에 만찬 회동을 가지면서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사례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주례 회동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당선 후 이틀 만인 1997년 12월 20일 오찬 회동을 갖고 취임 때까지 매주 주례 회동을 가졌다. 김대중 당선인은 자신의 회고록 ‘김대중 자서전’에서 당시 오찬 회동에 대해 “회담은 내가 주도했다. 당연히 내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며 “경제의 긴급한 중요성에 비춰 정부와 인수위가 동수로 6명씩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동 사흘 후인 23일 출범한 ‘12인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같은 달 25일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보다 앞선 조치였다.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은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부총재가 임명됐다. 김대중 당선인 측 새정치국민회의에선 김원길 정책위의장, 장재식 의원, 유종근 전북도지사를, 자민련 측에선 이태섭 정책위 의장, 허남훈 의원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정부 측에선 임창열 경제부총리, 유종하 외무부 장관, 정해주 통상산업부 장관, 김영섭 대통령 경제수석, 이영탁 총리 행정조정실장,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 6명이 참여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는 사실상 경제 비상내각 역할을 했다고 김대중 당선인은 회고했다. 정권 이양 때까지 현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정을 운영하지만, 경제만큼은 차기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김대중 당선인은 “무엇보다 국민들과 국제사회가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칫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경우 그 부담은 차기 정부가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국가의 재앙이며 국민의 고통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따른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추진 문제도 참고할 만하다. 윤 당선인 측 인수위와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생 추경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재원마련 방안을 두고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정권 이양기였던 1998년 2월 당시 인수위와 재정경제원은 추경을 공동 추진했다. 당시 임 부총리는 같은 달 9일 비대위가 제시한 지침을 토대로 12조 4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의 활동에 대해선 권한과 역할이 너무 비대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인한 다급한 경제위기 상황과 순조로운 권력 이양에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文·尹 회동, YS·DJ 회동서 배울 점은

    文·尹 회동, YS·DJ 회동서 배울 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당선 후 19일 만에 만찬 회동을 가지면서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사례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주례 회동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당선 후 이틀 만인 1997년 12월 20일 오찬 회동을 갖고 취임 때까지 매주 주례 회동을 가졌다. 김대중 당선인은 자신의 회고록 ‘김대중 자서전’에서 당시 오찬 회동에 대해 “회담은 내가 주도했다. 당연히 내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며 “경제의 긴급한 중요성에 비춰 정부와 인수위가 동수로 6명씩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동 사흘 후인 23일 출범한 ‘12인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같은 달 25일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보다 앞선 조치였다.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은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부총재가 임명됐다. 김대중 당선인 측 새정치국민회의에선 김원길 정책위의장, 장재식 의원, 유종근 전북도지사를, 자민련 측에선 이태섭 정책위 의장, 허남훈 의원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정부 측에선 임창열 경제부총리, 유종하 외무부 장관, 정해주 통상산업부 장관, 김영섭 대통령 경제수석, 이영탁 총리 행정조정실장,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 6명이 참여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는 사실상 경제 비상내각 역할을 했다고 김대중 당선인은 회고했다. 정권 이양 때까지 현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정을 운영하지만, 경제만큼은 차기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김대중 당선인은 “무엇보다 국민들과 국제사회가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칫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경우 그 부담은 차기 정부가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국가의 재앙이며 국민의 고통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따른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추진 문제도 참고할 만하다. 윤 당선인 측 인수위와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생 추경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재원마련 방안을 두고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정권 이양기였던 1998년 2월 당시 인수위와 재정경제원은 추경을 공동 추진했다. 당시 임 부총리는 같은 달 9일 비대위가 제시한 지침을 토대로 12조 4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의 활동에 대해선 권한과 역할이 너무 비대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인한 다급한 경제위기 상황과 순조로운 권력 이양에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이렇게 허망하게 섬을 떠나고자 40년 세월 참아온 건 아닌데 이렇게 억울하게 한라산을 등지자고 칠흑 어둠에서 두눈 부라리고 기다려 온 건 아닌데 허나 서러워 마라, 내 아주 떠나는 건 아니니 그 좋은 날에 억새꽃 따라, 그대들 곁으로 다시 오리니 서러워 마라, 서러워 마라.” 독립영화 ‘다랑쉬굴의 슬픈노래’에서 마지막 유해를 뿌리러 바다로 떠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의 참혹함과 학살의 실체적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그 유해가 공개된 지 올해 3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제주4·3 어린이체험관 평화교육강당에서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를 주제로 특별세미나가 열렸다.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지점으로 해발 170m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4.3 당시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참화를 당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피란민들이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해는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져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랑쉬굴의 발굴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4·3학살 피해의 쇠망치 같은 것이었다. 1992년 4월 2일 제주4·3연구소에서는 제주경찰서 정보과에 다랑쉬굴 발견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행정기관, 언론사에서 이날 현장 검증했다. 그러나 현장 검증 후 제주도지방경찰청은 죽음의 원인을 집단자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 발표했다. 경찰은 또한 이들 희생자들을 세화리 습격사건 무장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었다. 발굴 유해 중에 9세의 어린아이와 4·3 당시 굴 밖에서 희생되어 이미 수습되었던 시신 중에 7,9세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4·3학살의 광풍을 피해 피란했던 주민들임이 명백했다.도민들과 국회의원, 도의원들도 다랑쉬굴 4·3희생자 유해를 ‘도민장’으로 하고 합동묘역을 조성해 한과 상처를 치유하여 화합의 징표로 보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4·3연구소를 비롯한 도내 각계의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관계기관이 개입이 본격화된 것이다. 또한 4·3 당시 무장대에게 피해를 당한 유족들도 동원돼 “폭도들의 무덤을 만들 수가 있느냐, 만약 무덤을 만든다면 그냥 둘 줄 아는냐”라는 색깔론이 불거졌다. 4·3의 트라우마를 일깨워 공포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5월 4일 결국, 도민장으로 가져갈 것을 목표로 했던 유해의 처리는 졸속으로 처리되어 한줌의 재로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박경훈 제주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발굴과 유해의 처리의 전 과정이 또 다른 살아 있는 4·3이었다”며 “공안정국 하에서 은폐와 왜곡으로 재빨리 이 사안을 숨기려했던 당시 당국의 조처는 4·3이 끝난 지 4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레드아일랜드의 시각으로 제주사회를 바라봤던 지배세력의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며, 그들의 공작으로 4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일깨워까지 이용하고자 했던 제주사회 단면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랑쉬 입구를 봉쇄한 지 30년, 이 사건은 마치 그 현장처럼 그 당시의 진실여부도 드러나지 못한 채 봉인돼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양정심 연구실장도 “당시에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발굴하느라 뼈 잔해와 놋그릇, 물허벅, 솥 같은 유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4·3평화공원에는 다랑쉬굴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 현장인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여전히 토지 소유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30년간 아무런 공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박 위원장은 “4·3 당시 다랑쉬 피란민 상태 및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뿐만 아니라, 다랑쉬굴 유해발굴 및 처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 자체 예산, 또는 국비를 활용해 현 소유주인 이화재단을 설득하여 토지를 매입하고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 중의 하나인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차후 주변 정비 및 성역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푸틴, 우크라이나 둘로 쪼개는 ‘한국 시나리오’ 모색중”

    “푸틴, 우크라이나 둘로 쪼개는 ‘한국 시나리오’ 모색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한국처럼 분단시키는, 이른바 ‘한국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우크라이나군 정보당국의 분석이 나왔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2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자 러시아가 지배하는 지역을 만들어 우크라이나를 둘로 쪼개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려는 작전이 실패하는 바람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며 “푸틴의 전쟁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남쪽과 동쪽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다노프 국장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한국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면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내 점령 지역과 미점령 지역 사이에 경계선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북한과 남한을 만들려는 시도”라며 “우크라이나인은 곧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부다노프 국장은 러시아가 러시아 국경에서 크름(크림)반도까지 육로를 건설할 의도를 갖고 있으며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하나의 독립체로 묶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는 이미 점령 지역에 괴뢰정부를 세우고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화폐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의 정치 공작에 저항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내 분리주의 지역의 친러 반군 세력들은 이미 이와 같은 정치적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수장인 레오니트 파세치니크는 현지 매체에 “조만간 러시아 연방 가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LPR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계가 주축이 돼 국가를 자칭하며 세운 조직이다.이들은 반군을 조직해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전쟁을 벌였으며, 지난달 24일 개전 직전까지 각각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절반가량을 점거했다. 국제사회는 이들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지난달 21일 LPR과 DPR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이들이 장악한 지역에 러시아군을 투입했다. 다만 아직 이들을 러시아 연방의 구성국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려면 투표를 통해 주민의 의사를 확인한 후 러시아 연방과 가입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후 양측 의회가 이를 승인하면 러시아 연방의 구성국이 된다.
  • 우크라, 한국처럼 분단국가 되나… “러, ‘영토 쪼개기’ 계획중”

    우크라, 한국처럼 분단국가 되나… “러, ‘영토 쪼개기’ 계획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남북한과 같은 분단국가로 만들려 한다는 주장이 우크라니아로부터 나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국장인 키릴 부다노프는 현지시간으로 27일 공식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군작전의 초점을 남부와 동부 방면으로 변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로 이분하는 상황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안에서 ‘한국적 시나리오’인 남한과 북한을 만들어내려는 속셈”이라면서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 비정규게릴라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실제로 러시아가 드네프르강을 기준으로, 동쪽을 완전 점령해 우크라이나를 양분시키려 한다는 주장이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있다. LPR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계가 주축이 돼 국가를 자칭하며 세운 조직이다. 우크라이나의 지적을 입증하듯, 최근 LPR은 러시아 연방 가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LPR의 수장인 레오니트 파세치니크는 “LPR 주민들은 궁극적으로 헌법적 권리를 행사할 것이며, 러시아 연방 가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루한스크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은 반군을 조직해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전쟁을 벌였으며,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있기 전까지 각각 루한스크 주(州)와 도네츠크주(州)의 절반가량을 점거했다. 국제사회는 이들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침공 직전인 지난달 21일 LPR과 DPR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이들이 장악한 지역에 러시아군을 투입했다. 러시아는 아직 이들을 러시아 연방의 구성국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려면 투표를 통해 주민의 의사를 확인한 후 러시아 연방과 가입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일각에서는 2014년 러시아가 독립 찬성이 많이 나온 주민투표 결과를 이유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듯, 이번에도 같은 수순으로 돈바스를 장악하려 할 것으로 보고있다. 앞서 25일 러시아군은 “1단계 작전이 끝났다”며 돈바스를 해방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25일 당일 우크라이나 2대 도시인 동부 하르키우의 병원과 핵연구 시설을 폭격했다. AP통신은 러시아의 돈바스 관련 발표에 대해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했다”고 전했다. 병참 문제 등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겠다던 당초 목표를 접고, 돈바스의 러시아 편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영범의 정책 플랫폼] 융복합사회에 걸맞은 정부 조직 개편돼야/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이영범의 정책 플랫폼] 융복합사회에 걸맞은 정부 조직 개편돼야/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새 정부의 중앙정부 조직 개편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다. 대표적인 이슈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는 것이다. 통상 기능을 지금처럼 산업 기능과 함께 둘 것인가, 외교 기능과 합칠 것인가를 두고도 여러 얘기가 오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시행했던 과학기술부총리제 부활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정부 기능의 재조정은 당면한 일자리, 인구구조 변화, 기후변화, 불공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는 융복합의 사회로, 어떤 단일한 영역의 문제라도 다른 영역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일자리 문제는 고용노동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후변화는 환경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문제는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업육성 정책, 교육부의 인재양성 정책 등 다양한 부처와 연계돼 있다. 기후변화는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고 산림 조성 등을 통한 탄소 감축과도 관련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한 논의를 듣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주어진 문제는 융복합적인데 해결책은 여전히 칸막이식의 기능 재조정에서 찾고 있는 느낌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부 기능의 재조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기능을 어떻게 연계하고 조정할 것인가, 그래서 융복합의 사회문제에 어떻게 총체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 조직 개편의 방향은 어떻게 돼야 할까. 첫째, 국무총리 중심으로 정책 연계와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리실 본연의 역할은 각 부처 정책의 조정과 연계에 있다. 그러나 그간 부처 간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회적 비판이 높다. 이는 총리실이 그 역할을 충실히 못 했다는 얘기인데,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의 힘이 총리에게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규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부처를 통할할 수 있기에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과 분권 없이는 총리가 효과적으로 각 부처 정책을 조정하고 연계하기 힘들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 회동 이외에도 대통령실과 총리실 간의 긴밀하고 빈번한 정책 협의가 필요한 이유다. 다음으로, 정부 각 부처의 권한과 책임성이 강화돼야 한다. 과거 산업화, 민주화 시대와는 달리 현재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할 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분권화되고 자율적이면서도 책임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총리와 각 부처로 분산하고, 각 부처는 장관 중심으로 자율과 재량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되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각 부 장관이 책임지고 변화무쌍한 정책 문제에 대응하려면 예산과 조직 운영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예산 총액 내에서 장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편성이나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행안부 직제로 묶여 있는 조직관리 측면에서도 자율과 책임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각 부 장관에게 인력 총원만을 정해 주고, 각 부처가 정책 수요에 맞게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은 융복합적 사회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분권과 자율, 책임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 각 부처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융복합의 사회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 조직 개편에 관한 논의도 단순한 기능 재분배가 아니라 기능 간 상호 연계를 통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이뤄지길 바란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