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학장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심상정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체지방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853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6) 영남대학교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6) 영남대학교

    영남대에 법대가 개설된 것은 지난 1947년. 우리나라 헌법이 공포되기도 전이다.‘법서만 6만 권이 넘는다.’는 학교 소개에서 60년 전통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최근들어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줄어들어 학교측의 고민이 늘었지만 여전히 영남권 최고의 사립대라 자부한다. 배기원 대법관을 위시한 법조인의 면면을 보면 괜한 허세도 아니다. 영남대 법대는 로스쿨 도입을 회생의 전기로 활용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탄탄한 교수진이 경쟁력 영남대 법대는 특히 교수진에서 강세를 보인다. 겸임교수를 제외하고 전임교수만 20명에 달한다. 이들 교수진의 연구실적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로스쿨 설치 실무기획단을 총괄하고 있는 신우철 교수는 “법학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대학이 교수 1인당 연구실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면서 “교수진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연구실적도 높은 편”이라고 소개한다. 교수진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들 교수진의 전공영역이 다양하게 망라돼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프랑스법·독일법·유럽연합법·중국법·일본법 등 각국의 법 영역 전공 교수가 고루 포진돼 있다. 박홍규 교수는 일본법 전문가로, 이상욱 교수는 프랑스 민법과 중국 민법의 전문가로 꼽힌다. 박인수 교수는 프랑스 헌법에, 성낙현 교수와 김혜정 교수는 독일형법에 정통하다. 학교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연말까지 7명의 교수를 충원해 27명까지 교수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법관을 배출한 만큼 법조실무분야에서 저명한 법조인 4명 정도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교육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IT와 기업법무 특화 영남대 법대는 이같은 교수진용 덕분에 특히 비교법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우철 교수는 “다른 법대들에 비해 각 국가의 법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어 비교법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학교 내부적으로 유럽법에 보다 편중돼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미법 분야 등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법 외에도 영남대 법대만의 특화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학교측은 대구·경북지역 법조인을 대상으로 시장수요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IT분야의 기업법무를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업법무 중에서도 세금 관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법전공 변호사와 전임 법관, 세무사 등 세법 교수진이 탄탄하기 때문에 로스쿨 유치 후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수요 반영해 교과과정 마련 학교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교과과정이다. 때문에 로스쿨 실무기획단 산하에 교과과정 전문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3년간의 교육과정을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 기초과목군·심화과목군·전문과목군으로 세분화한 과목풀을 마련중에 있다. 무엇보다 지역법조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위해 수요를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로스쿨을 참관하며 작은 규모지만 실속있는 로스쿨의 교과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시설 역시 최고를 지향한다. 대학 내 설립돼 있는 2000평 규모의 국제컨벤션센터를 개축,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860여평의 대형강의동을 신축, 최첨단 연구시설을 제공하는 등 교수진과 시설 등 인프라에 있어 사립대의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탄탄한 교수진이 경쟁력 영남대 법대는 특히 교수진에서 강세를 보인다. 겸임교수를 제외하고 전임교수만 20명에 달한다. 이들 교수진의 연구실적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로스쿨 설치 실무기획단을 총괄하고 있는 신우철 교수는 “법학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대학이 교수 1인당 연구실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면서 “교수진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연구실적도 높은 편”이라고 소개한다. 교수진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들 교수진의 전공영역이 다양하게 망라돼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프랑스법·독일법·유럽연합법·중국법·일본법 등 각국의 법 영역 전공 교수가 고루 포진돼 있다. 박홍규 교수는 일본법 전문가로, 이상욱 교수는 프랑스 민법과 중국 민법의 전문가로 꼽힌다. 박인수 교수는 프랑스 헌법에, 성낙현 교수와 김혜정 교수는 독일형법에 정통하다. 학교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연말까지 7명의 교수를 충원해 27명까지 교수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법관을 배출한 만큼 법조실무분야에서 저명한 법조인 4명 정도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교육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IT와 기업법무 특화 영남대 법대는 이같은 교수진용 덕분에 특히 비교법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우철 교수는 “다른 법대들에 비해 각 국가의 법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어 비교법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학교 내부적으로 유럽법에 보다 편중돼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미법 분야 등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법 외에도 영남대 법대만의 특화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학교측은 대구·경북지역 법조인을 대상으로 시장수요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IT분야의 기업법무를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업법무 중에서도 세금 관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법전공 변호사와 전임 법관, 세무사 등 세법 교수진이 탄탄하기 때문에 로스쿨 유치 후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수요 반영해 교과과정 마련 학교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교과과정이다. 때문에 로스쿨 실무기획단 산하에 교과과정 전문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3년간의 교육과정을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 기초과목군·심화과목군·전문과목군으로 세분화한 과목풀을 마련중에 있다. 무엇보다 지역법조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위해 수요를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로스쿨을 참관하며 작은 규모지만 실속있는 로스쿨의 교과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시설 역시 최고를 지향한다. 대학 내 설립돼 있는 2000평 규모의 국제컨벤션센터를 개축,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860여평의 대형강의동을 신축, 최첨단 연구시설을 제공하는 등 교수진과 시설 등 인프라에 있어 사립대의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자금력 ‘짱짱’… 장학제도 활성화” 영남대 법대는 국립대를 뛰어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호언한다. 박인수 법대학장은 “영남대 법대는 교수진이나 시설 등 교육인프라에 있어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면서 “다만 국립대에 비해 학비가 비싸다는 약점이 있지만 이 문제 또한 장학제도로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등록금이 비쌀 수밖에 없지만 장학제도로 교육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박 학장은 “국립대 등록금을 초과하는 부분은 장학금으로 학교에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의동을 첨단화해 로스쿨 교육과정에 걸맞은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것도 영남대의 방침이다. 또한 로스쿨 입학 정원 정도는 전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할 뜻을 밝혔다. 박 학장은 “지방 사립대들의 재정상태가 열악한 편이지만 영남대가 자금력에서는 탄탄하다.”면서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로스쿨이 사법개혁을 위해 도입되는 만큼 도입취지에 적합한 질 높은 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설 역시 그 같은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뒷받침돼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60년 전통 걸맞게 인맥 탄탄 영남대 법대는 60년에 이르는 전통에 걸맞게 법조계와 정·재계에서 탄탄한 인맥을 자랑한다. 매년 10여 명에 이르던 사법시험 합격자가 최근들어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남지역 법조계에서의 위상은 굳건하다. 원로 법조인으로는 이병후 전 대법관이 첫 손에 꼽힌다.52학번으로 인천지법원장, 헌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민수(53학번) 전 부산지법원장은 고시 12회로 청주지법원장, 부산지법원장, 대구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현직에는 배기원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배 대법관은 60학번으로 사시 5회에 합격했다. 부산지법판사로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고, 지난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서울고검에 박윤환(73학번) 송무부장도 있다. 박 부장검사는 사시 21회로 대구지검, 수원지검에서 공안부장을 지냈고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서 공안과장을 지낸 ‘공안통’이다. 지역에는 하홍식 대구고검 검사와 김찬돈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이 있다. 하 검사는 77학번, 김 판사는 79학번으로 사시 16회 연수원 동기다. 17대 국회의원도 3명이나 배출했다. 한나라당의 이명규(73학번), 임인배(75학번), 주호영(78학번) 의원이 모두 영남대 법대를 나왔다. 특히 이명규 의원과 주호영 의원은 법조인 출신이다. 사시 24회인 주 의원은 대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판사를 지냈다. 이 의원은 사시 30회로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다. 관가에도 다양하게 진출해 있다. 김광림 전재정경제부 차관은 68학번, 김종신 감사원 감사위원은 71학번, 최경수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72학번이다. 이밖에 황성길(65학번) 경북 부지사, 황중연(73학번)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장, 김주섭(70학번) 국민고충처리위 사무처장, 석호익(71학번) 정통부 기획관리실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정부기관에 두루 포진해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황우석교수 참여 과학자 시민단체 결성

    황우석 서울대 교수 등 과학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한 시민단체를 결성한다. 최근 배아줄기세포 윤리논쟁 같은 과학계 현안에 대해서도 과학계의 입장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17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오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기인 대회를 갖는다. 발기인으로는 황 교수를 비롯, 이병기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 김태유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민경찬 연세대 학부대학장 등 과학자 180명이 참여한다.또 한국과학기술청년회, 함께하는 과학기술인 연대 등 기존 과학 관련 시민단체 인사들도 참여해 오는 12월 회원 1만명 규모의 시민단체로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인사]

    ■ 보건복지부 ◇4급 △정책홍보담당관 宋瑛珠 △재정기획관 李相泳 △지역보건복지혁신사업단장 朴景鎬 △질병조사감시부장 陳幸根 △보건의료정책과장 權德喆■ 과학기술부 △정책홍보담당관 南相文 ■ 농림부 ◇서기관 전보 △농산경영과 李在彧 ■ 기술조사단 ◇승진 (이사관) △기술지원국장 宋在希 (부이사관)△금융지원과장 梁鳳煥△기술정책〃 金亨鎬■ 국민일보 ◇승진·전보 (심의팀)△심의팀장(부국장대우) 李恩京△부장대우 朴東守 (논설위원실)△부국장대우 林淳萬 (편집국)△문화체육에디터 부국장 尹在錫■ 한국일보 △정치부장 李榮星■ 한국방송광고공사 ◇승진 (국장급) △공익사업국장 吳賢淑△뉴욕지사장 李柱龍△영업2국장 李鍾善△남한강연수원장 직무대리 李明馥△대구지사장 〃 吳義相△한국광고문화회관 건설국장 〃 金容迪(국장대우)△경영전략부장 金宗亮△총무부장 朴英求△정보화추진팀장 洪性日(부장급)△출판사업부장 崔寅福△북경지사장 金在成△울산지사 영업부장 신경철△청주지사 〃 李英周△공익광고2부장 직무대리 宋柄魯△남한강연수원 연수기획부장 〃 權錫亨△지상파 DMB 영업팀장 〃 鄭然圭△영업1국 3부장 〃 黃均柱△대전지사 영업부장 〃 鞠承一◇전보 (국장급)△감사실장 朴榮奎△부산지사장 申明鉉△미시건주립대 장기연수 파견 朴炯培(국장대우)△조사분석부장 崔益準△경남지사장 李元錟△청주지사장 朴來元(부장급)△예산부장 卞成洙△인사부장 柳雄烈△공익광고1부장 鄭炳涉△광고교육부장 金判龍△영업2국 2부장 張鉉圭△영업2국 3부장 金載鴻△영업3국 4부장 李晟浩△광주지사 영업부장 全棋正△전북지사 〃 金禎憲△한국광고문화회관 건설사업팀장 직무대리 李衡均△남한강연수원 운영관리부장 〃 文景一■ 제일화재 △상무이사 金 坤 ■ SK생명 (부장급) △서대전지점장 申芳秀△서면〃 張普根△안산〃 李均炯△안양〃 具讚謨△대전〃 琴珍浩△천안〃 安相植△서산〃 李仁孝△계리팀장 郭雲錫△IT지원〃 李太演△계약심사〃 李廷賢△인사총무〃 趙顯旭■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부학장 李根寬
  • [부고]

    ●정동소(전 한영고 교감)씨 별세 윤환(전 이대부중고 교사)승환(남양유업 천안 신공장장)경환(충주대 교수)씨 부친상 이강문(목포문화방송 서울사무소장)임동철(사업)씨 빙부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5시 (02)3410-6917●유완영(한양사이버대학교 학장·한양대 교수)씨 상배 동범(하이닉스 직원)씨 모친상 14일 한양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2290-9457●이지성(삼성생명 상품기획팀장 상무)씨 빙모상 한덕성(이노컴 직원)씨 모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3410-6912●이희수(전 경남 진해 중앙초등학교 교장)씨 별세 상훈(비성전자 이사)씨 부친상 허철영(남광토건 이사)씨 빙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3010-2236●김승일(농업)경일(상봉코포레이션 대표)두일(파이낸셜뉴스 정경부 기자)씨 모친상 13일 충남 아산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041)544-4699●김천수(LG화재 인스월드)길수·광수(미국 거주)갑수(금화건설 대표)씨 모친상 김용각(아세아시멘트 덕소소장)용우(SCL실장)씨 조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010-2295●김생규(EOS 대표이사 이사장)명효(정원앤시스템 부장)명수(룩옵틱스 〃)씨 모친상 정병열(전 수협 총무부장)황해광(대한통운 대리)씨 빙모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4●이희달(한국산업은행 IT본부장)희원(대구경덕여고 교사)희운(사업)희진(공인중개사)씨 부친상 14일 경북 포항 세명기독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54)289-1845∼6
  • [부고]

    ● 혜산 내소사 큰스님 입적 전북 부안 내소사의 혜산(慧山) 큰스님이 13일 오후 3시 입적했다. 세수 73세. 혜산 큰스님은 지난 83년 이 사찰을 중창불사(重創佛事·쇠락한 사찰을 다시 이룩해 새롭게 함)해 고려동종(보물 277호) 및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68호),3층 석탑(전북도 유형문화재 124호) 등 여러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17일 오전 내소사 경내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부안 연합 ●김민수(서울신문 체육부 차장)준수(지이삼성조명 영업부장)씨 부친상 윤석빈(삼부토건 공무차장)씨 빙부상 13일 서울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02)2072-2018 ●정순엽(아이토스카 대표)순만(네모 〃)씨 모친상 박철홍(사업)씨 빙모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410-6916 ●전예기(전 한국국방연구원 전문위원)씨 별세 세영(미시간대 박사과정)씨 부친상 후즈카미 마사오(일본 미쓰비시)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5 ●안국신(중앙대 정경대학장)국평(박영장학문화재단)국찬(전북대 교수)방순(전 한일장신대 교수)씨 부친상 유옥철(전 삼화제관 이사)이종철(중앙대 교수)씨 빙부상 윤형숙(목포대 교수)김경랑(금천구청 보건소)이옥이(전주 퀼트빌리지 원장)씨 시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93 ●이은성(한국자산관리공사 국유실태추진실 반장)씨 빙부상 12일 원주의료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11-232-6758 ●박해구(건강보험공단 부장)해오(대양산업 대표)씨 부친상 한인수(인해물산 대표)권오진(현대정보기술 부장)민경석(사업)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010-2292 ●조학동(문화방송 제작기술국 국장)씨 빙부상 12일 대전 건양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42)544-4493 ●진태월(사업)필중(프로야구 LG 선수)씨 부친상 13일 분당제생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31)781-6721 ●김성빈(전 국민은행 북부지역본부장)형빈(전 삼성전자 부장)용빈(메디카코리아 상무이사)형표(사업)현숙(부흥초등학교 교사)양숙(사업)씨 부친상 신채호(이지디지털 상무이사)신광호(벽산건설 차장)씨 빙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3010-2230 ●송경섭(전 KBS 해설위원)태흥(대흥화학 연구원)씨 모친상 13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590-2557 ●이수경(MBN 보도국 미술부)씨 부친상 13일 의정부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31)836-4141 ●김용응(전 MBC 영상미술국 제작지원팀 차장)씨 모친상 윤석빈(한국유니버샬해운 감사)허만(자영업)씨 빙모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3010-2237
  •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특별취재팀|도쿄 남단에 자리한 오타구 공단은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울의 구로공단쯤에 해당된다는 이 중소공단 지역을 찾은 때는 지난달 18일 오후였다.5000개가 넘는 공장들의 육중한 몸매는 높다란 담에 가려져 있었고, 행인과 차량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거리 풍경만으로 경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란 욕심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급한 김에 택시기사에게 ‘청진기’를 들이댔다. “요즘 이곳 경기가 좋아졌다는데….” “5∼6년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거리를 오가는 트럭이 전보다 늘었다.”스야마 아키히로(順山明彦)라는 이름의 이 기사는 다만 “큰 공장만 좀 살아나는 것 같고 작은 공장은 아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현황이 간단치는 않은 것 같았다. 택시가 회색빛의 무표정한 공장 숲을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목적지인 오타구 산업진흥협회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최첨단 건물이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30대가 나왔다. 명함에는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담당 코디네이터’라고 돼 있었다. 마치 첨단 벤처기업에 온 기분이 들었다. ●업종, 규모따라 회복 체감도 차이 데자와는 “1990년대 후반 이곳 공장들이 1년에 100개씩 도산했다고 치면, 지금은 절반 수준인 50개 정도로 떨어졌다.”면서 제조업 경기가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완전히 부활했다고 하기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했다가 비용 문제가 안 맞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공장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대기업 얘기일 뿐 중소 공장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케이스”라고 말해 얼핏 택시기사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중소공장은 여전히 규모와 비용 경쟁에서 대기업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대기업 사정을 직접 듣기 위해 일본전기(NEC) 본사를 찾아갔다.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인 이 회사의 홍보부장 아라이 도시노리(荒井俊則)는 “중국에 진출했던 대기업 공장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맞느냐.”란 질문에 “신문에서만 봤다.”면서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대세는 역시 일본에 모(母)공장을 두고 해외에 설치한 자(子)공장과 연계하는 시스템일 것”이라고 했다.NEC의 경우 일본내 공장은 핵심 노하우 개발과 첨단부품 생산에 치중하고, 중국과 동남아 등의 해외공장은 저임금을 토대로 한 대량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분담 체계가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밑바닥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대형 카메라 전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에 진열된 카메라의 가격은 공장의 소재지에 따라 천양지차였다.‘메이드 인 재팬’이 부착된 소니 카메라는 7만 5800엔에 달하는 반면,‘메이드 인 필리핀’의 펜탁스 카메라는 2만 7300엔 하는 식이다. 이 상점의 점원은 “손님들이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산의 값싼 제품만 찾는다.”고 귀띔했다. 아라이 NEC 홍보부장은 “일본의 공장들이 생산혁신을 통해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1980년대식의 부흥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학계나 정부쪽 시각은 좀 더 긍정적이다. 일본종합연구소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년전만 해도 이러다가 일본이 다 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제조업이 부활하면서 일본경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면서 “중국의 싼 제품에 밀려 고전하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소니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서서히 체력을 회복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쓰오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은 “영업비밀이 새나갈 우려가 있는 중국보다는 인건비가 비싸더라도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일본 안에서 공장을 운영토록 정부가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NEC 공정 단축… 2년간 8조원 절감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겉으로 드러난 몸집이 아니라, 유니폼 속에 숨겨진 기초체력이다.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풍상을 겪으면서 공장들의 체질은 엄청나게 강인해졌다. 이 스모 선수의 회복 징후는 대증적인 영양주사에 의한 게 아니라, 운동과 식이요법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NEC만 하더라도 5년 전에 비해 체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2000년부터 시작한 ‘생산혁신활동’이 수훈갑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공정을 잘라내 전체 생산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부품 재고율을 낮추는 개혁방안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2003년 3월 ‘43일’이던 부품 회전일수가 지난해 3월엔 ‘40일’로 줄었다.NEC는 이 제도를 국내외 공장에 두루 적용한 덕택에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무려 8000억엔(8조원) 가량의 생산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아라이 부장은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은, 일본은 더 이상 싼 노동력으로 대항할 수 없으며 구조혁신을 이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데자와 코디네이터도 “중요한 것은 90년대의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저력과 노하우가 강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산·학연계나 기술특화, 디지털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면서 “오타구 공단내 공장의 70% 이상이 1개 업종만 특화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carlos@seoul.co.kr ■ 견학 명소 기타지마 제작소 |특별취재팀|오타구 공단 안에 있는 (주)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은 일단 ‘실망’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공장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첫 인상은 그저 시골의 허름한 대장간 같다고나 할까.2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이 작은 공장 안에서 뚝딱뚝딱 쇳덩어리 비슷한 것을 두드리거나 간단한 기계를 작동하는 광경은 영락없는 ‘아날로그식’이다. 겉모양은 이래도 1947년 세워진 이 곳은 주로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장이다. 항공기나 로켓 부품에서부터 화분이나 파라솔 부품까지 만들어 팔아 한달 평균 4000만엔(4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올해 67세인 기타지마 가즈토시(北嶋一甫) 사장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실망은 ‘경탄’으로 변한다.“왜 자동화시설이 안돼 있느냐.”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으로 하는 게 기계보다 더 정확도가 높다.”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기타지마 사장이 알루미늄 재료로 직접 화분을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회전틀에 재료를 끼워 형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도자기를 굽는 장면과 기막히게 흡사하다. 단단한 알루미늄 재료가 틀에 끼워져 돌아가기 시작하면 진흙처럼 이렇게 저렇게 형체가 변하면서 어느새 도자기처럼 말쑥한 완제품으로 탈바꿈한다. 기타지마 사장은 “우리는 남들이 어렵다는 90년대에 오히려 경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은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는 기타지마 사장의 말 속에 있다.“고객이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을 해도 절대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피해가지 않았고 그래서 기술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이곳엔 영업부가 따로 없고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는다.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타지마 사장의 권유에 못 이겨 기자는 알루미늄 화분 제작에 도전했다. 재료를 틀에 끼운 뒤 쇠막대로 형체를 빚어내는 작업은 보기보다 훨씬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대충 사진만 찍고 그만두려는데, 사장은 “제대로 만들 때까지.”를 외치면서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3전4기 끝에 그럴듯한 작품을 만든 뒤에야 땀이 흥건해진 작업복을 벗을 수 있었다. carlos@seoul.co.kr ■ 도움을 주신 분들 <2>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 코디네이터 ▲히키다 와타루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박사과정(우주물리학 전공) ▲사카이 마사요시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정보정책과 과장보좌 ▲이소 가오루 도쿄전력 노무인사부 노무그룹 매니저 ▲시게미 사토시 혼다자동차 아시모 수석 엔지니어 ▲후쿠오카 다카오 2005 아이치박람회 도요타관 부관장 ▲히라쓰카 다이스케 아시아경제연구소 지역통합연구그룹장 ▲후쿠다 노리오(福田紀夫) 인사원 기획법제과장 ▲와카바야시 시게요시(若林成嘉) 내각관방 우정민영화준비실 기획관 ▲니타 유키오(新田行男) 일본우정공사 우편국 부국장 ▲나카지마 히사하루(中島久治) 일본우정공사 IR담당 부장 ▲다니가키 구니오(谷坦邦夫) 일본우정공사 경영기획부 전략담당부장 ▲가와타 다카시(川田隆) 도쿄전력 노동조합 중앙서기장 ▲마스다 기사부로(增田喜三郞) 일본우정공사 노동조합 국제부장 ▲신도 무네유키(新藤宗幸) 지바대학 법경제부 교수 ▲히구치 도루(口徹) 문부과학성 고등교육국 국립대학법인지원과 사무관 ▲야시로 나오히로(八代尙宏)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요시타케 히로미치(吉武博通) 국립대학법인 쓰쿠바대학 학장특별보좌(교수 겸임) ▲사쿠와 도루(佐桑徹) 재단법인 경제홍보센터 국내홍보부장 ▲고토 이스케(厚東偉介)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교수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일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즈키 마사토(鈴木聖人) 신일본제철 홍보과장 ▲스티븐 윌하이트 닛산자동차 수석부사장 ▲아키야마 스스무(秋山進) 인디펜던트 컨트랙터 협회 이사장 ▲나카하라 에이노스케(中原英之助) 혼다자동차 책임 연구위원 ▲이시즈나 데쓰하루(石綱哲治) 미즈호은행 국제금융법인부 아시아담당 조사역 ▲시오자키 야스히사(崎恭久) 중의원 의원(자민당) ▲고바야시 유타카(小林溫) 참의원 의원(자민당) ▲마쓰이 고지(松井孝治) 참의원 의원(민주당) ▲스즈키 다카히로(鈴木崇弘) 자민당 당개혁실행본부 싱크탱크 준비실장 ▲오타 가즈히코(太田和彦) 도호쿠 예술공과대학 교수 ▲하라다 다케오(原田武夫) 하라다 다케오 국제전략정보연구소 대표 ▲쇼지 마사히코(庄司昌彦) 고쿠사이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센터 연구원 ▲호소다 야스베(細田安兵衛) 주식회사 에타로소혼포 사장 ▲벳푸 마코토(別府允) 주식회사 지쿠요테 사장 ▲나카무라 오사오(中村治夫) 주식회사 야마모토노리텐 참여 ▲야마모토 가즈오(山本一雄) 주식회사 사루야 사장 ▲구로카와 미쓰히로(黑川光博) 주식회사 도라야 사장 ▲다케다 야스히로(武田安弘) 도쿄신문 정치부장 ▲미즈노 마사토(水野正人) 경제산업성 환경정책과 과장보좌 ▲이마제키 아쓰노리(今關重義)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소장 ▲고바야시 다카시(小林崇志)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부소장 ▲와쿠다 하지메(和久田肇)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문화정보관련산업과 과장보좌 ▲나쓰노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보좌 ▲야마다 신(山田伸) 지바현 상공노동부 산업진흥과 부과장 ▲이와타 요이치(岩田庸一)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장 ▲나미코시 노리코(浪越德子)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 기획조사부 국제실 과장대리 ▲고노 히로키(河野博樹) NEC 공보과장 ▲하마모토 요시코(浜本佳子)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매니저 ▲가시마 나호(鹿島奈帆)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사카쿠라 다카히토(坂倉隆仁) 카오 컴퍼니 홍보부 과장 ▲이노우치 미야비(井內雅妃)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 직업가정양립과 육아 개호휴업추진실 취업원조계장 ▲다나카 아쓰히토(田中敦仁)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부실장 ▲오카모토 아유미(岡本步室)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과장대리 ▲데시가와라 아이(勅使河原愛) 2005 아이치박람회 일본관 홍보담당 ▲나카노 히데아키(中野秀秋) 2005 아이치박람회 아이치현관 부관장 ▲야마시타 요시노리(山下義順)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관 관장대리 ▲혼다 도루(本田徹)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과 홍보부 과장 나종일 주일 한국대사 ▲신태철 KOTRA 도쿄무역관 차장 ▲윤민호(尹敏鎬) 국제금융정보센터 아시아제1부 특별연구원 ▲장병효(張炳孝) 포스코재팬 사장 ▲유성(柳誠) 포스코재팬 경영기획부장 ▲장화경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조영수 KOTRA 아이치엑스포 한국관 부관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최병하(崔秉夏) 현대차 도쿄지사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윤원아, 신원아, 월요일자 신문 꼭 봐라. 우리 회사가 크게 나온다.”(고 최종건 SK 창업주) “아버지,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최신원 SKC 회장) “그때 보면 알 수 있어, 이놈들아.”(고 최종건 창업주) 최신원 SKC 회장이 공개한 워커힐호텔 인수 직전 부자간에 오갔던 대화다.1973년 1월 선경(현 SK)은 정부로부터 서울 워커힐(현 쉐라톤 워커힐)호텔을 26억 3200만원에 인수하며,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선경이 국민과 재계에 던진 ‘무명의 반란’이었다. 최종건 선경(현 SK) 창업주가 맨손으로 선경직물을 일으킨 지 2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최 창업주는 같은 해 11월 폐암으로 별세,‘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원대한 꿈을 동생인 고 최종현 SK(당시 선경직물 부사장) 회장에게 맡긴 채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갔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최 창업주가 20년간 SK의 섬유를 책임졌다면 25년간 SK를 이끈 고 최종현 회장은 ‘석유’를 개척하고,‘이동통신’의 길을 터놓았다. 고 최종현 회장의 50년 지기(知己)인 언론인 홍사중씨가 본 형제는 이렇다.“형(최종건)은 좋은 의미의 ‘보스형’이었다. 의논할 상대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일에 혼자 결정을 내렸다. 동생(최종현)은 ‘리더형’이었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좋은 짝이었다.” 소리없이 일을 꾸미는 사람은 동생이요, 밖에서 뛰는 사람은 형이었다. 그래서 회사 돌아가는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형을 가리켜 ‘용장’이라 했고, 아우를 가리켜서 ‘지장’이라 했다. 형제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SK를 자산규모 재계 4위의 대그룹으로 일궈냈다. ●‘원조 불도저’ 최종건 창업주 최근 재계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강한 추진력과 남다른 승부 근성 때문에 ‘불도저’라 불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상 불도저라는 애칭은 최 창업주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의리파, 불같은 추진력, 강한 뚝심’은 최 창업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비’ 같은 성격에 ‘조조’의 꾀도 많았다. 이런 점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 하나.1966년 선경직물은 차관 도입 문제로 일본 정부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에 불과한 선경직물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며 차관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었던 최 창업주는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을 단골 술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 술집 마담에게 거짓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하라는 것. 술집 마담은 때가 되자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말을 건넸다. 최 창업주는 일본 관계자 앞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 나가겠다.”고 밝힌 뒤 2시간 가량 단잠을 자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거, 죄송합니다. 저 위에 좀 다녀 오느라 늦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일본 관계자들은 최 창업주가 정부 최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나간 것으로 모두 오해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선경직물이 정부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구나.’를 암시하며, 차관 도입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의 장비 같은 성격은 또 이렇다. 최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다혈질인 데다 성미가 급하고, 감정을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화가 나면 앞뒤 생각없이 퍼부었다.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화난 얼굴로 “누구 불러오라.”고 불호령을 내리면 서울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출장갔다고 곧잘 거짓말을 했다고 회고한다. 최 창업주는 1926년 수원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4녀(양분, 양순, 종건, 종현, 종분, 종관, 종순, 종욱)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취직,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24세 때인 1949년에는 교하노씨인 노순애(77) 여사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선경직물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상반된 스타일의 ‘안주인’ 노순애 여사가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면, 최종현 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는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풍긴다. 노 여사는 시동생과 시누이 등을 거느린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만만치 않게 했다. 차남 최신원 SKC 회장의 얘기다.“100마지기 농사 일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셨으니 고생이야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부친은 사업 때문에 공장에서 먹고 자며, 한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습니다.” 노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에 반한 최 창업주의 누나 최양분(83) 여사는 그를 맏며느리감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고 박 여사는 박경식 전 해운공사 이사장의 넷째딸로 19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베네트칼리지를 거쳐, 칼라마주대학을 졸업했다.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자기 의사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태원에 가서 1만∼1만 5000원짜리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고, 깍쟁이였다. 고 박 여사가 모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내가 ‘이태원표’ 옷을 입고 있으면 모두들 몇십만원짜리로 아는데, 그래서 더욱 그런데 가서 사 입어도 불편한 게 없어요.” 최 회장도 부인을 깍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병마와 씨름하던 그는 먼저 간 박 여사를 두고 “자기 성격 따라 깍쟁이처럼 죽었다.”고. 박 여사는 1997년 6월18일 최 회장의 폐암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두 ‘안주인’은 상반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도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특히 가정 일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박 여사가 미술관에서 일하면서도 최 회장이 일찍 퇴근하면 아무리 중요한 미술관 행사를 주재하는 중이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은 “모친은 외출도 좋아하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라며 “두 분께서 같이 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골프였다.”고 말했다.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과 혼맥 고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은 이렇다. 그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책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에서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지켜본 바에 따라 나는 남녀간의 연애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연애는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다가 다른 사람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 ‘스테디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면 ‘아이 러브 유’가 되어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너 없이는 못살아.’가 되는데 이것은 병이다.” 최 회장 본인의 경험 때문일까. 최씨가의 2세들은 정략이나 중매 결혼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특히 최종건 전 회장이 일찍 별세한 이후 최종현 전 회장이 사실상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자임했던 만큼 ‘큰집’ 조카들도 이같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신원 SKC 회장은 “숙부는 자식들 결혼과 관련해서 복잡한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면서 “예물 등도 가능한 한 안 주거나 받지 않는 주의였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최태원(45)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했다. 부친과 똑같이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노 관장을 만나 연애했다. 차남인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의 부인은 영어교사였던 채희경씨의 맏딸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다. 막내딸 최기원(41)씨는 당시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준일(46)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큰집’인 고 최종건 회장의 일가 혼맥도 학계부터 권력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지만 정략적인 냄새는 없어 보인다.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인 채헌(51)씨와 결혼했다. 장녀 정원(50)씨의 남편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고광천(54)씨며, 차녀 혜원(48)씨는 박주의 전 금융인 아들인 박장석(50) SKC 사장과 결혼했다. 막내 아들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은 변호사 집안인 최유경(38)씨와 결혼했다. 4녀 예정(43)씨의 남편인 이동욱(43)씨가 최종건가(家)에서는 눈에 띈다.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이씨의 부친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 전 중정 부장은 서로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막역했던 사이였다. 양가가 둘의 결혼을 일찍이 약속을 했고, 결혼은 최 창업주 사후에 이뤄졌다. 고 최종건 회장이 각별하게 지냈던 재계 인물로는 김용산 전 극동건설 회장이었으며, 언론계에서는 고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방계로 넘어가면 장녀 최양분 여사는 한때 종건·종현 형제의 가정교사였던 고 표현구 전 서울대 농대 학장과 결혼했다. 표문수(52) 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아들이다.3녀 최종분(73) 여사는 고 이한용 신아포장 대표와 혼인했으며, 막내 사위인 정재현(46)씨는 현재 SK C&C 전무로 일하고 있다. 차녀 최양순(82) 여사는 고 여운창 경기개발 대표와 결혼했으며,4녀 최종순(69) 여사는 해군 중령 출신인 고 조제동씨에게 시집갔다. 3남 최종관(71) 전 SKC 고문은 장명순(71) 여사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3녀 경원(42)씨가 김연준 전 한양대 이사장 아들인 김종량(55) 한양대 총장에게 시집갔다. 또 4녀 은성(40)씨는 나웅배 전 부총리 아들인 나진호(42)씨와 짝을 이뤘다. 장녀 순원(47)씨는 존 캐리 퍼크너(47)씨와 국제 결혼했다. 장남인 최철원(36) 마이트엔메인 대표이사는 한숙진(34)씨와 인연을 맺었다. 4남 최종욱(66) 전 SKM 회장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 딸인 조동옥(59)씨와 결혼했다. 조씨의 남동생이 조동성 서울대 교수다. 미혼인 장남 준원(30)씨는 현재 SK C&C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윤선(29)씨도 통신·방송장비 전문업체인 SK텔레시스에서 일하고 있다. ●섬유에서 석유…정보통신 SK그룹의 모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만주 일대를 대상으로 직물을 수출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일본의 교토(경도)직물(京都織物)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교토직물은 현물출자하고, 선만주단은 공장 부지를 비롯한 건물 공사비 등을 투자했다. 상호도 선만주단의 ‘선’자와 교토직물의 ‘경’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고 지은 것이다. 고 최종건 회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재건하기 위해 1953년 부친 몰래 빼낸 땅문서로 공장을 불하받는다. 이후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본격적인 섬유기업으로 탈바꿈한다. SK의 성장사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보면 3단계로 나눠진다.1단계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 건설.2단계는 유공(현 SK㈜) 인수,3단계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다. 소프트웨어로 볼 때 최종현 회장의 경영 참여와 이순석과 손길승, 김항덕 등 1세대 전문경영인의 합류 등이다. 1980년은 유공 인수로 선경의 숙원 사업을 달성한 해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울산을 오가며 국내 유일의 정유사였던 유공을 넘본 지 10년 만이다.‘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매진한 결과, 돌아온 보상이었지만 당시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선경은 유공을 손에 넣자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경이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상한 것은 80년대 초반까지 올라간다. 당시 국내 어느 기업도 정보통신사업에 대해 꿈도 꾸지 않을 때, 고 최종현 회장은 미국 방문길에서 통신사업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 현지에 경영기획팀을 만든다. 이것이 훗날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golders@seoul.co.kr ■ 풍수지리 거부한 최씨 형제 “집터보다 내 기가 더 세니까 염려들 말어.” 국내 재벌가(家)가 최근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동에 둥지를 트는 까닭은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은 남산을 베개삼아 한강으로 다리를 곧게 쭉 뻗어 복록과 자손복이 대대로 넘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예 재벌가 ‘집성촌’으로 불린다. 이처럼 집터의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지는 재벌가에서 유독 이에 무관심한 집안이 있다.SK그룹 최씨가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1968년 서울 삼청동에 새 집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 데이진 오야 사장의 부인이 풍수지리를 잘 안다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삼청동 자택의 지형 사진을 보내달라고 연락해왔다. 당시 최 회장과 오야 사장은 비즈니스를 떠나 개인적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오야 사장은 당시 일본 정·재계의 거물로 최 회장의 호탕한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오야 사장 부인은 매우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옷만 두 박스를 가지고 왔으며, 매일 밤 우유로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 회장은 이들이 한국에 머물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을 본 오야 사장 부인은 “지형이 사나워 좋지 않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이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삼청동 자택은 화재로 가정부가 화상을 입어 숨진 데 이어 여름 장마철에 큰 물난리를 겪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집터의 기가 세서 그런 것이니 이사가는 게 좋다고 자주 권했다. 그래도 최 회장은 “내 기가 집터보다 더 세니 염려말라.”고 했다고 한다. 고 최종현 회장도 집터와 관련된 고집은 ‘그 형에 그 동생’이었다. 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1997년 11월. 풍수지리 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최 회장이 사는 서울 워커힐 호텔 내 빌라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곳인 탓에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며 이사를 권했다. 그는 “그런 곳은 일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기간 머물며 살기에는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 전 회장이 풍수지리 연구를 위해 교수직을 내던진 최 전 교수의 소식을 듣고, 아무런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맺어졌다. 최 회장은 그러나 “집이란 어차피 일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며 “나는 이곳이 좋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집을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최 회장은 훗날 “형님처럼 기가 세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여기서 산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느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golders@seoul.co.kr ■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 ‘그룹부흥 한몫’ “손길승 실장은 단순히 내가 부려먹는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 동업자입니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일개 그룹 기획실장이 거액의 정치헌금을 다룰 수 있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손 회장을 경영 참모가 아닌 동반자로서 얼마나 믿고, 의지했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정태수 한보 회장의 ‘머슴론’과 비교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서열 4위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순석 전 ㈜선경(현 SK네트웍스) 부회장과 손길승 전 SK 회장, 김항덕 고문 등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들의 역할은 이 전 부회장이 ㈜선경, 김 고문은 유공(현 SK㈜), 손 전 회장은 경영기획실로 나눠진다. 특히 손 전 회장은 20년간 기획실에서만 근무해 직업이 ‘기조실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59학번 서울대 상대 동기 출신으로 때로는 ‘맞수’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회장이 1995년 가장 먼저 SK를 떠났으며, 한때 ‘좌(左)길승, 우(右)항덕’으로 불렸던 전문경영인 체제도 결국 손 전 회장의 단독 체제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김 고문은 손 전 회장이 당시 그룹 회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최종현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룹 회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결과, 그룹 전반을 꿰찬 사람은 손길승 전 회장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명분이나 이치에도 맞았고요. 그리고 나는 사심없이 회사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손 전 회장은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야인으로 물러났던 김 고문을 회장대우 상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회장 집무실 옆에 자신의 방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김 고문에게 제공했고, 경영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와 상의했다. 그러나 3인방 가운데 ‘SK호’에 가장 먼저 탑승한 사람은 이 전 부회장이다. 그는 1965년 4월 고 최종건 회장의 설득에 못이겨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수원 출신으로 최종욱 전 SKM 회장과는 초등학교 동기다. 김 고문은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하다가 69년 선경으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39세 때 대한석유공사의 수석 부사장에 올라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 전 부회장의 강력한 권유로 65년 12월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지난 40년간 고 최종현 회장의 평생 동지이자, 경영 전도사였으며,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그는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에 오른 최초의 전문경영인인 동시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의과대 보완의학교육 심포지엄

    대한의사협회(회장 김재정)는 29일 오후 1시 서울대 암연구소 2층 이건희홀에서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와 공동으로 ‘의과대학내 보완의학교육 필요성 및 도입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 ‘자랑스러운 중앙인’에 최창락·故 김상기씨 선정

    서울 중앙고등학교 교우회(회장 백순지)는 11일 ‘교우의 날’을 맞아 제18회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최창락(왼쪽 사진) 전 한국은행 총재와 서울대 문리대학장을 역임한 동양사학자 고(故) 김상기(오른쪽 사진) 박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 전 총재는 중앙고 41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과를 나왔다. 60∼70년대 상공부와 경제기획원에서 요직을 맡아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주 일본 공사,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과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상공부 차관, 동력자원부장관 등을 거친 뒤 산업은행과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고 김상기 박사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한 후 중앙고보에서 12년간 봉직하며 일제시대때 역사과목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교수와 문리대학장, 국사편찬위원, 문화재위원장, 한국고고학회 회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학계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10년뒤 무균돼지 장기 사람에 이식 가능”

    “무균돼지를 황우석 교수팀에만 준 게 아니라, 조국의 연구팀 모두에 준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무균돼지를 만들어 황우석 교수팀에 제공한 김윤범(76) 시카고의대 교수가 10일 가톨릭의대에서 열린 ‘줄기세포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이같이 밝혔다. ●무균돼지 70마리로 늘어 뿌듯 김 교수는 “내가 기증한 무균돼지는 한국의 연구팀이라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무균돼지를 보내면서도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았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밝혔다.“이는 인류를 위해 연구하는 데만 써달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황 교수팀에 기증한 무균돼지 24마리가 잘 커 70마리로 불어난 것을 보니 뿌듯하기 그지없다.”면서 “건국대와 축산기술연구소 등에도 무균돼지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美, 배아줄기세포연구 관심 커져 김 교수는 최근 황 교수팀이 일궈낸 연구성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치료용 배아복제 연구는 난치병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가 발표된 뒤 미국 내에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무균돼지를 통해 생산한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조직거부반응과 돼지 바이러스에 인체가 감염될 가능성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퇴 뒤 북한 결핵퇴치사업 벌일 것 또 김 교수는 황 교수팀에 무균돼지를 제공한 배경과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제자인 서울대병원 연구부학장 이왕재 교수가 지난 1999년 서울대 의대로 초청, 내게 칠순잔치를 해줬다.”면서 “이때 무균돼지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흔쾌히 무균돼지를 주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 2003년 서울대 의대 내에 무균돼지 사육실이 완공됐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 내 광우병 발생을 이유로 생동물 수입을 막아 결국 지난해에 무균돼지의 한국행이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균돼지 연구에 45년을 바쳤고 앞으로도 한국의 연구팀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다.”면서 “또 기독의료선교회와 함께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결핵퇴치사업도 벌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교수는 미생물학 및 면역학 분야의 권위자로 지난 195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의대를 거쳐 20여년간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시카고 의대 미생물학 및 면역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해 왔다. 김 교수는 또 미국면역학회와 미국생물학회 등의 정회원이면서 세계무균동물학회에서는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아 왔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이 지지부진하다. 통합하자면서 요란하게 변죽은 울리지만 막판에 서로 이해 득실을 따지며 포기선언을 한다. 그런 가운데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에 합의해 ‘흡수통합’은 물꼬를 텄으나, 비슷한 규모의 대학끼리의 ‘대등통합’은 여전히 난항이다. ●부산·밀양대 ‘통합 부산대’ 출범 합의 부산대와 밀양대는 지난 4월 교수·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합 찬반투표가 통과됨에 따라 2006학년 새학기부터 ‘통합 부산대’로 출범하기로 했다. 통합 부산대는 두 대학측의 유사·동일학과(부)를 통·폐합하는 대신 나노과학기술대학과 생명자원과학대학 등 2개 단과대를 신설, 현 밀양대를 나노·바이오캠퍼스로 특화할 계획이다. 두 대학측은 이달중 평가 관련 서류를 교육부에 제출,7월쯤 심의가 통과되면 재원 마련 등 절차를 거쳐 내년 새학기부터 밀양대를 부산대 밀양 캠퍼스로 운영할 방침이다. 강원대와 삼척대도 지난달 25일 두 대학 총장들이 통합대학의 학교명을 강원대 춘천캠퍼스와 삼척1캠퍼스(삼척시내)·삼척2캠퍼스(도계읍)로 하고, 대학본부는 통합시점인 내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각 캠퍼스에 2년 주기로 번갈아 두기로 잠정 결정했다. 앞서 삼척대는 교수·교직원·동문들로부터 강원대와 통합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강원대는 이어 로스쿨 유치를 위해 법학과를 두고 있는 강릉대, 국립 2년제 원주대와 물밑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경상·창원대 지역민 반발에 발목 반면 경상대와 창원대의 통합은 무산됐다. 두 대학측은 3일 통합 기본합의서 도출을 위한 경남국립대학교 통합 공동추진위원회를 마지막으로 열었으나 대학본부 위치와 단과대학 배치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지난해 4월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 이후 13개월 만에 통합 논의는 종결됐다. 창원대는 통합대학의 본부가 도청소재지인 창원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경상대는 대학의 역사나 규모 등을 감안, 교육도시인 진주에 있어야 하며 특히 지역정서상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맞섰다. 두 대학측은 더이상 통합에 관한 논의는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각 대학 특성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교육인적자원부의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에 각각 참여키로 의견을 모았다. 충남대와 충북대의 통합 추진도 물건너간 상태다. 지난달 12일 충북대가 학장회의에서 내부 반대를 이유로 통합을 전면 중단키로 결정한 것. 두 대학 총장은 지난해 10월 통합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통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충북대는 통합에 따른 설문조사에서 교직원의 경우 반대 282명 찬성 32명, 학생은 반대 3102명 찬성 457명, 교수는 반대 382명 찬성 256명으로 내부 구성원 대부분이 통합에 반대했다. 이들은 반대 명분으로 통합 이후 정부의 구체적인 재정지원 등의 약속이 없다는 것을 내세웠으나, 충남대에 흡수 통합될 경우 통합대 본부와 인문·예술대가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공주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빠져나가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산대와 익산대도 통합을 논의해 왔으나 군산대가 교수·학생·교직원·동문중 한 집단이라도 반대하면 통합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고, 최근 실시한 투표에서 일부 집단들이 반대를 해 통합논의를 중단했다. ●대구·경북국립대 사실상 무산 경북대는 지난해 12월 안동대와 금오공대, 대구교대, 상주대 등 대구·경북국립대학간 통합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해당 대학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중 경북대와 상주대는 지난 12월 구조개혁공동연구단을 발족, 통합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대는 안동대, 금오공대, 대구교대와의 통합도 적극 시도할 방침이었으나 3개 대학이 통합에 부정적이어서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경북대 관계자는 “통합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대학들이 서로 득실을 따지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면서 “통합 이후 구조조정 등에 따른 내부 반발도 통합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LG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과 그의 형제들이 함께 일군 그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제들의 활약이 컸다. 구 회장을 중심으로 철회·정회·태회·평회·두회 6형제는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으며 회사를 키워왔지만 3대째 내려 온 현재는 각기 다른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구철회씨 자손 LG화재가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자녀(4남4녀)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갖고 독립했다. 지난해 자산 4조 6000억원에 매출 3조 444억원, 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한 LG화재는 현재 4남인 구자준(55)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구자원(70)씨는 LG화재 경영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고 방위산업체인 넥스원퓨처 회장을 맡고 있다. 진주고와 고려대 법대, 독일 쾰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구 회장은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LG정보통신 부회장 등을 거쳐 99년 계열분리와 함께 보험업계에 뛰어들었다. 경춘관광 사장을 지낸 유기홍씨의 딸 영희(63)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LG화재 본부장인 장남 본상(35)씨는 지난해 LG화재 주식 10만 7150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3.53%로 늘렸다.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TRC코리아 상무인 차남 본엽(33)씨는 지난해 말 소프트웨어 자문일을 하는 ‘LIG시스템’ 대표이사를 맡았다. 본상씨와 본엽씨는 또 넥스원퓨처 주식을 각각 31.79%씩 보유하고 있다.LG이노텍의 방산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넥스원퓨처는 자산이 3300억원,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한다. 본엽씨가 감사, 구자원 회장의 제수인 이갑희(62)씨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차남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종구 전 산업은행 이사의 딸인 이갑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장녀 본희(37)씨는 정재문(대양산업 회장) 전 국회의원의 아들인 정연준(41) 미디어플러스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본주(35)씨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고 진성규 변호사의 아들 진상범(36) 남부지법 판사와 결혼했다. 구자성씨의 외아들 본욱(29)씨는 LG화재에 다니고 있다. 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지만 곧바로 범한화재(현 LG화재)로 옮겨 30년간 ‘보험인생’을 걸어왔다. 범한화재 런던·뉴욕사무소 소장을 지낼 정도로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금융발전심의회 보험분과위원, 주한 우루과이 명예부영사도 맡고 있다. 임방인(61)씨와 사이에 세 딸을 뒀는데 3녀 문정(30)씨는 최근 타계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와 결혼했다. 장녀 현정(35)씨의 남편은 글로벌 보험회사인 AON코리아 부사장인 에릭 호프먼(42)이다. ●보험경영도 탐험처럼, 구자준 부회장 미사일 전문가에서 보험전문가로 변신한 구자준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미국 캔자스·미주리 주립대를 다니다 귀국,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구 부회장은 74년 금성사 사원으로 입사, 금성정밀(현 LG이노텍)에서 방산사업부 경영을 주로 맡았다.94년 미국산 호크미사일의 탄두 재장착 시스템과 국산화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만큼 미사일 전문가로 통한다. 99년 계열분리로 LG화재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소한 보험영역을 공부하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보험전문대학인 ‘TCI’에서 보험전문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북극점 정복 성공으로 세계 처음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 대장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졌는데 2001년 히말라야 K2등정 때는 베이스캠프까지 원정대와 동행해 전문산악인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마라톤 풀 코스를 6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철인 체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참가한 베를린마라톤부터는 1m마다 100원씩을 적립, 지금까지 900만원을 모았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보험 ‘매직카’와 장기보험 브랜드 ‘엘플라워’를 앞세워 보험업계 2위 진입을 노리고 있다. 부인 이영희(53)씨와의 사이에 동범(30), 동진(28) 형제를 뒀다. ●GS, 두산으로 이어지는 딸들의 혼맥 구철회씨의 네 딸은 하나같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다. 장녀 위숙(78)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 허창수 GS회장 등 GS그룹의 핵심 5형제(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를 낳았다. 재계에서는 허준구 회장의 생가가 있던 옥인동을 따 이들을 ‘옥인동 5형제’라고 부른다. 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고 구자애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2) 형제의원 원장에게 시집갔다. 자애씨의 장남 정규원(42)씨는 LG화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결혼했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선희씨의 장녀 박성연(35)씨는 이창수 전 주 필리핀대사의 아들인 주학(40)씨와 결혼했다. ●트랙터부터 전자태그(RFID)까지,LS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태평두’씨는 2003년 11월 LG전선그룹(현 LS그룹)을 갖고 독립했다.LG의 성장과정에서 이들 3형제의 역할을 감안하면 자산 5조원 남짓한 전선그룹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3형제는 큰 불만 없이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묵묵히 따랐다고 한다.LG는 이후 LG산전(현 LS산전)을 추가로 넘겨주는 형식으로 3형제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를 ‘본부’로 한 LS그룹은 전선·산전·LS니꼬동제련·가온전선·E1·극동도시가스를 주축으로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자산 5조 8800억원으로 CJ와 비슷하며 동국제강, 대림, 동양, 효성, 코오롱보다 규모가 크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과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아셈타워 21층에 나란히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도 같은 건물 14층 사무실을 쓰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진주중과 일본 후쿠오카고를 마쳤는데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다 광복 후 광복군으로 귀국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는 창신동 하숙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는데 플라스틱 사업 진출, 서울사무소 개소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 58년 고향인 진양에서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공화당 대변인 겸 원내총무, 무임소장관, 국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다 82년 LG그룹 고문으로 돌아왔다. 최무(83)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는데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이준범씨는 현재 합성수지업체인 화인 회장이다. ●멜빵 맨 ‘디지털 전도사’ 구자홍 회장 장남 구자홍(59) 회장은 73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홍콩·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통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영국에서 찰스 황태자를 만났을 때 영국 사람들조차 발음과 표현에 감탄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87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옮긴 뒤 2003년까지 18년을 전자에서 일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지수 평가에서 1위를 받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CEO’로 GE, 모토롤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의 CEO와도 교우가 깊다. 특히 빌 게이츠 회장, 리빈 주한 중국대사와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북미·아시아·유럽의 전직 고위관료,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TC(Triliteral Commission)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학창시절 쌓은 농구와 수영실력이 수준급인 구 회장은 골프에도 남다른 재질을 보여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요즘 핸디캡은 7정도. 또 한국기원이 인정한 ‘아마 6단’의 바둑실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주요 사업장을 순방하며 ‘분위기’를 익힌 구 회장은 ‘R&D워크숍’,‘혁신한마당’,‘테크놀로지 이벤트’ 등 그룹차원의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며 회장으로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전력망회의(CIGRE)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공식 대외활동도 재개했다.LG전자 CEO직에 유난히 애착을 보였던 구 회장이 전자에서 못다 이룬 꿈을 LS그룹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관심사다. 구 회장은 70년대 재벌 오너일가의 장남으로서는 흔치 않게 지순혜(60)씨와 연애결혼했다. 구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잠깐 다니다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인근 뉴저지주립대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순혜씨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고 한다. 순혜씨는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떠난 엘리트 여성으로 귀국 후 이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경복고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LG화재에서 주로 일했다.LG건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사장을 지낸 뒤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태향(55)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는데 장녀 은희(2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과 결혼했고 장남 본규(26)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 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아버지와 같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자 재벌가 자제로는 흔치 않은 학군단(ROTC) 출신으로 포병학교를 수석으로 마치고도 전방 부대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행정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미국 셰브론사에서 잠시 일하다 84년 호남정유 원유수급조정과 과장으로 입사, 정유사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부인 조미연(53)씨는 경희대 조영식 이사장의 차녀. 아들 본혁(28)씨는 LS전선 경영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은 LG상사에서 잠시 일하다 일찌감치 독립 경영을 했다. 외동딸 원희(25)씨는 구 회장의 경기중·고 동창인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오는 30일 낮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결혼한다. 마침 구평회 명예회장의 ‘팔순잔치’도 이날 저녁 그랜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구씨 일가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아들인 이상현(28)씨는 지난 2003년 운동권의 ‘메카’였던 한양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를 낳았다. 이씨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유학 준비 중이다. 구평회(79) E1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51년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1954년 뉴욕에서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 LG의 첫 해외주재원으로 기록됐다. 구 명예회장은 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 때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LG경영의 핵심을 담당했다. 락희화학 전무시절인 65년 정유사업 진출 보고서를 형에게 제출, 오늘날 GS칼텍스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84년에는 국내 최초의 LPG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는데 이 인연으로 사업연관성으로 따지면 GS그룹에 넘어갔어야 할 E1이 LS그룹 몫으로 남았다. 재계원로 가운데 독보적인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으로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린다.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을 지냈고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대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340억원의 유치기금을 조성하는 등 월드컵 개최에 큰 공을 세웠다. 현재도 한·미협회장을 맡아 한·미간 우호증진에 애쓰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철인 CEO’ 구자열 부회장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LG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뉴욕지사와 도쿄지사, 동남지역본부장 등 오랜 해외경험으로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구 부회장은 해외경험을 살려 폭넓은 해외인맥을 자랑하는데 2003년에는 도쿄 주재 특파원, 은행지점장, 지사장 등이 모여 만든 ‘동경회’ 회장을 맡았다. 직전 회장은 김인진 한진 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 등과는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를 쌓고 있다. LG증권을 거쳐 2001년 LS전선 재경부문 부사장으로 부임한 구 부회장은 2002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LS전선은 특수전선 업체인 GCI, 알루미늄 창호업체 알루텍, 광부품 업체인 네옵텍, 초고주파 부품업체인 코스페이스,2차전지 음극재 전문업체인 카보닉스에 이어 선박용 케이블업체인 진로산업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유명하다.2002년 독일에서 열린 ‘트랜스 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인 최초로 7박8일 동안 650㎞를 완주할 정도. 스키는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노보드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지난겨울 사내 스키동호회 모임에 유일하게 스노보드를 들고 나타나 젊은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명함에 ‘No Innovation,No Future(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을 정도로 체질 개선을 독려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사내게시판에 ‘애니 기븐 선데이’라는 영화 동영상과 메시지를 직접 올려 팀워크 정신을 강조했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과감한 도전과 팀원들간의 협력을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일궈 낸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24일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사랑하는 LS전선 임직원들과 함께 듣고 싶다.”며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내동호회 행사에서는 직원들 자녀에게 일일이 용돈을 챙겨줬다고 한다.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48)씨와 결혼,1남2녀를 뒀는데 아직 학생이다. 차남인 구자용(50) E1 사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무역학과를 마쳤는데 사촌형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ROTC 장교로 복무했다.79년 LG전자에 입사, 주로 미주법인에서 일하다 계열분리를 앞둔 2001년 LG칼텍스가스(현 E1)로 자리를 옮겼다. 구 사장은 보수적인 구씨 집안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직원들과의 자리에서도 본인이 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한다고 한다.E1이 10년 연속 무교섭 임금 타결을 이뤄낸 데는 구 사장의 이같은 면모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인 현주(46)씨와 결혼, 두 딸을 뒀는데 둘다 외국 유학 중이다. 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마치고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97년부터 고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경영인으로 전격 변신했다. ●8개사 사장을 거친 구두회 ‘막내’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고려대 상대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경영에 뛰어들었다.74년 범한화재 사장을 시작으로, 희성산전, 금성계전, 금성통신, 금성반도체, 호남정유 등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뒤 95년 구본무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났다. 위로 두 형과 마찬가지로 구 명예회장도 한·독경제협력위원회, 한·중남미협회장, 고려대 교우회장, 성북구 문화원장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벌였다. 이같은 공로로 78년 멕시코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으며 94년에는 ‘멕시코 최고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고려대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도 선정됐다. 구 명예회장은 유한선(72)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외아들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홍익고와 미국 베네딕틴대 경영학과, 시카고대 MBA를 거쳐 90년 LG정유에 입사했다.LG전자 상하이지사 근무로 중국과 인연을 맺어 LS전선에서도 중국지역 담당을 맡고 있다. 장상돈(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아들)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의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ukelvin@seoul.co.kr ■ LG·두산家, 겹사돈·사업제휴속 프로야구선 ‘서울 라이벌’ 신경전 LG가(家)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두산가문과 우애가 두터웠다. 구인회 회장이 1956년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산, 경방그룹 회장들과 골프 친목모임인 ‘단오회’를 결성할 정도였다. LG와 두산은 또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철회씨가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과 사돈을 맺으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그룹은 LG가 90년 프로야구단 ‘MBC청룡’을 인수하면서 잠시 사이가 벌어졌다.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한 두산구단의 ‘방해’가 심했던 것이다. 이후 LG임직원들은 두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구자경 당시 회장이 부산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평소 좋아하던 양주 ‘패스포트’ 대신 다른 술이 차려져 있었던 것. 두산 제품을 빼라는 기조실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 회장은 기조실 사장에게 일부러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룹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한 일로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LG와 두산은 오는 30일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 구자철 회장과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5남 박용만 부회장이 사돈을 맺으며 ‘겹사돈’으로 이어진다.LS전선과 두산엔진은 ‘합작사’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혼사나 제휴와 상관없이 프로야구 ‘서울 라이벌’의 팽팽한 긴장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LG트윈스가 최근 두산과의 잠실 홈경기에서 이길 때까지 무료입장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서울대음대 첫 女학장 신수정교수

    서울대 음악대학에 사성 첫 여성 학장이 탄생했다. 서울대는 차기 음대 학장에 신수정(63·여) 피아노과 교수를 내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신 교수는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미국 피바디대를 나왔으며 1992년 경원대 음대학장을 맡은 바 있다. 올 9월1일 취임한다.
  • 현충일 10회 ‘비목 문화제’ 여는 한명희씨

    현충일 10회 ‘비목 문화제’ 여는 한명희씨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을 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위해 나섰지요.”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가곡이 있다. 바로 6월의 노래 ‘비목’이다.‘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 작사의 주인공은 한명희(66)씨. 지난해 서울시립대에서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남양주에서 ‘피스밸리(6·25추념문화단지)’ 조성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의 비무장지대에 한 초급장교가 배속됐다. 최전방 순찰에 나선 그는 잡초 우거진 양지 바른 산모퉁이에 멈춰섰다. 이끼 낀 돌무더기가 군홧발에 걸렸기 때문. 무심코 돌무더기를 밀쳐냈다. 유골이 녹슨 철모에 끼여 있었다. 장교는 자신과 비슷했던 젊은 용사였다는 점에 그만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이때였다. 초저녁 달빛에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새하얀 산목련이었다. 국민가곡 ‘비목’은 이렇게 탄생했고 당시 초급장교가 바로 한씨다. 이같은 사연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5년부터 매년 현충일에 ‘비목문화제’를 열어왔다. “국내 유일의 호국문화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국민 모두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는 의미에서 시작했지요.” 올해가 10회째. 이를 위해 오는 현충일 오후 평화의 계곡(평화의 댐) 특설무대에서 위령제 및 추모공연 등을 마련했다고 한씨는 밝혔다. 유명 인사들도 대거 초청됐다. 장사익씨가 ‘찔레꽃’‘동백아가씨’ 등을 부르고 명창 신영희씨가 씻김굿으로 혼을 달랜다. 아울러 박명숙 현대무용단,50여명의 연합 합창단원 등 1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출연한다. 또한 30여명의 전직 군 장성,60여명의 주한외교사절 등 500여명의 관람객이 함께 참여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땅에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없이 죽어간 넋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한씨는 39년 충북 충주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다.‘인생이 뭐냐.’는 물음에 자꾸 빠지기도 했다. 삼수 끝에 친구의 권유로 서울대 국악과(2회)에 합격했다. 대학 1학년 시절 서울대 음대 학장인 현제명 박사의 장례식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광경에 가슴 뭉클하는 감동을 느끼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6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2기 소위로 임관, 전방부대인 7사단에 배치받았다. 이때 비무장지대에 배추심으려고 흙을 파면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광경을 보고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부고]

    ● 애국지사 김태선 선생 애국지사 김태선 선생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83세. 함남 원산 태생인 선생은 일본 동경고등학교 기계과에 재학 중이던 1944년 1월 일본군 평양사단 소속 42 보병부대에 강제로 징집된 뒤 부대내 김완룡, 박성화, 최정수 선생 등과 학병항쟁을 모의, 부대를 탈출해 한만 국경지대 등에서 산악 게릴라전을 펼쳤다. 학병 제1지대 분지대를 담당했던 선생은 1944년 11월 평양사단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 같은 거사계획이 사전에 발각돼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고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영숙 여사와 영준씨 등 3남이 있으며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장지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02)478-7299. ●방상원(삼성 일본본사 상무)명원(자영업)장원(중앙소방학교 교육대장)씨 부친상 홍재철(자영업)씨 빙부상 3일 천안 단국대병원, 발인 5일 오전 9시 (041)550-7186 ●엄기황(전 조흥은행 부지점장)기형(한국교원대 교수)기량(한국BASF 부장)씨 모친상 이시정(SNS 부장)씨 빙모상 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30분 (02)392-3499 ●김재봉(전 경기일보 회장)씨 별세 2일 수원 아주대학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31)219-4110 ●홍순명(전 순환철도국 차장)순정(전 여수수산대학 학장)순화(전 풀무원 관리부장)은실(전 성북경찰서 파출소장)정원(한나라당 중앙위원)씨 모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40 ●윤호군(목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씨 부친상 2일 서울대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2072-2035 ●한광수(일간스포츠 판매국장)씨 모친상 3일 서울대병원, 발인 5일 오전 10시 (02)2072-2032 ●한이도(영각정사 주지)위수(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이봉(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씨 모친상 이한국·정성일(사업)씨 빙모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3)3410-6911 ●백대현(전 건국대 교수)씨 별세 승억(백비뇨기과의원장)승천(서울우유 과장)승호(원내과의원장)씨 부친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9시 (02)3410-6914
  • “官·學협동은 이런것”

    “지역발전을 앞당기려면 궁핍했던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관악구 구정발전자문위원회에서 참신하고 미래지향적인 제안이 쏟아졌다. 관악구 구정발전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서울대 황우석 교수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국내외 석학 23명으로 구성돼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번 회의에는 윤정일 서울대 사범대학장 등 13명의 국내 교수진이 참석,10∼20년 뒤 관악구의 미래를 예측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모델 개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펼쳐졌다. 이연택 한양대 교수는 “과거 궁핍했던 관악구의 잔존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며 평생교육, 청정환경 등 새로운 비전을 홍보하고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와 가치창조를 맡는 구청장 직속의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제안했다. 김기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생활권내 공원, 공공시설을 충분히 확보해 주민 삶의 질을 높여야 지역경쟁력도 높아진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관악구는 통합신청사 건립, 평생학습도시, 과학문화도시,R&D(연구개발) 특구, 뉴타운 사업, 난곡지역 신교통수단 도입 등 올해의 주요 업무를 보고하고 조언도 구했다. 구는 앞으로 구정발전자문위원회가 구정발전을 위한 싱크-탱크(Think-Tank)역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구정에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고 주민참여의 통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내 거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정책에 대한 발전적 대안이나 아이디어도 폭넓게 공모할 방침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이화여대 교수들 ‘장학금 기부릴레이’

    이화여대 교수들이 후학들을 위해 잇따라 장학금을 쾌척, 제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사학과 최소자(65·여) 교수는 지난 4월말 사학과 창립 50주년을 맞아 저축 등으로 모은 50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최 교수는 “은퇴를 앞두고 평생 몸담은 학교와 후학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금은 내년부터 사학을 전공하는 우수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의 학비 지원에 쓰인다. 같은 과 이배용(58·여) 교수도 2002년 5000만원을 약정하고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음악대학 교수 14명도 각 5000만원씩 7억원의 장학금을 약정, 지난 학기부터 5명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규도 음대 학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자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자는 제안에 동료 교수들이 흔쾌히 동의했다.”고 전했다. 물리학과도 5000만원의 장학금을 조성했다. 모혜정 명예교수가 학과 창립 50주년과 ‘세계 물리학의 해’를 기념해 올초 2000만원을 기부하자 12명의 동료 교수들이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았다. 이달 초 퇴임전시회를 연 미술대학 조정현 교수도 2000만원의 장학증서를 학교에 전달했다. 지난 3월에는 나노과학부 교수 20여명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우수 연구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안타깝다.”며 독지가의 기금 2억원에 월급 일부를 모아 2억 5000여만원의 장학금을 마련했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인사]

    ■ 하나증권 ◇전보 △삼성동지점장(이사) 徐相雲△강남지점장 梁永哲△전주지점장 朴正洙△영업추진팀장 張同烈 ■ 국립공원관리공단 △인사팀장 崔鳳錫△총무부장직대 龍錫元△고객만족팀장 梁基植 ■ 한국공항공사 △부사장 成始喆△기획본부장 金熙旋△관리본부장 咸溶斌△운영본부장 겸 시설본부장 金忠基 ■ 고려대 △교학처장 尹哲民△인문대학장 겸 인문정보대학원장 李氣銅△경상대학장 겸 경영정보대학원장 崔潤宰△과학도서관장 安秉潤△노동문제연구소장 李鎭奎△한자한문연구소장 朴性奎△건축방재연구소장 姜敬仁△지하공간기술연구소장 李寅模△레토릭연구소장 田聖淇△전략광물자원연구센터장 崔善奎△한국사회연구소장 孫章權△통계연구소장 朴裕聖△벤처창업보육사업단장 張孝一△기획예산처차장 겸 경영감사팀장 洪晩貴△후생복지부장 겸 교직원상조회장 金榮徹△생명환경과학대학·생명환경과학대학원학사지원부장 李健宰△인력개발팀장 李海龍△예산조정팀장 劉賢根 ■ 중앙인사위원회 △정책홍보전문관 邊亨燮 ■ 데일리줌 ◇승진 △광고마케팅국 이사대우 李相培△〃 부국장대우 金五星△〃 부장대우 金洲經 李鍾旭 ■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지점영업총괄 신형균△본사영업총괄 유상호(상근감사위원)△감사 김만규 (전무)△경영기획실장 정찬형△PB본부장 강용현△IB/CM 〃 김범준△경영지원〃 이강행△리서치〃 조홍래△업무지원〃 이병호△리스크관리〃 오우택 (상무)△영업추진〃 조용욱△마케팅〃 김석구△자산운용〃 이채원△준법감시인 오상훈△제1지역본부장 유병권△제2〃 정현철△제3〃 김정관△제4〃 김태원△제5〃 문진호△제6〃 이재직△제7〃 박덕하△영업2부 심승진△DS부문장 손석우△온라인사업추진단장 박래신△지점영업기획부장 최종삼 ■ 한국증권업협회 ◇승진 △조사국제부 이사부장 朴炳文△증권인력관리팀장 成容憲△분쟁조정실장 金胤秀 ◇전보(팀장)△시장관리 李興根△채권시장 車相奇△감사 鄭鍾鶴△부산사무소 설립추진반장 鄭海山
  • [씨줄날줄] 황우석 화법/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의 언어는 무미건조하다. 우선 내용이 전문용어나 복잡한 단위, 숫자투성이라 문외한은 알아듣기가 어렵다. 극도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다 보니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부연설명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들어도 재미없고 딱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등 과학선진국에서 중요하게 대두된 분야가 과학커뮤니케이션이다. 옛날처럼 과학자가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혼자서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것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연구는 갈수록 대형화한다. 또한 보건·의료처럼 공공성이 강한 연구는 예산이 정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을 받으려면 의회, 다시말해 국민을 설득해야 된다. 난해한 학술논문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과학을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소통의 문제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여전히 난제다. 아직 훈련이 부족하고, 사고구조 자체도 정서적 설득과는 거리가 먼 듯싶다. 그러나 ‘국보급’과학자 황우석 교수만은 이 분야에서도 특출한 존재다. 연구성과를 눈에 잡힐 듯 표현하고, 국민의 관심을 극대화하는 데 귀재다.“이번 연구는 배아줄기세포 실용화를 위해 반드시 열어야 하는 대문 4개를 한꺼번에 열었다. 앞으로는 3∼4개의 사립문만 남았다.”(2005년 5월20일 귀국회견) 황교수는 애국심을 표현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세계 생명공학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고 온 기분”(2004년 2월18일 귀국회견) “국민 여러분께 연애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사퇴성명을 썼다.”(2005년 2월15일 수의대학장 후보사퇴 회견) 그러나 워낙 수사법이 화려하고 거침이 없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첫 배아줄기세포 복제를 발표하며 “임상적용은 10년 후”라고 한 것은 계속적인 질문거리가 됐다. 연구팀은 “올해 30∼50년 걸릴 과제를 해결했으니 실용화가 더욱 앞당겨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헛된 희망은 주지 않겠다.”며 물러서야 했다.30일 서울대 기숙사 강연에서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것’처럼 무균돼지 체세포를 미국에서 몰래 빼왔다.”는 발언을 했다.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이라면 오점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황교수의 화법이 학문적 성과를 가리는 것이 돼선 안 될 것이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위기의 전문대] (하)대안은 없나

    “앞으로 고등교육은 명실상부하게 평생교육까지 포함한 체제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평생교육과 고등교육 전문가들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전문대 위기론’에 대해 한 목소리로 이같이 강조했다. 일회성 이벤트식 방안보다는 멀리 내다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대책에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문대가 마련한 혁신방안의 골자는 현재 2∼3년인 수업 연한을 학장 자율로 전공에 따라 4년까지 늘려 학사학위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4년제 대학과 구별이 사실상 사라지는 상황에서 차라리 프로그램별로 학제를 바꿔 4년제 대학과 경쟁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윤여송 대외협력실장은 “그렇지 않아도 4년제를 선호하는 학벌사회에서 전문대의 특화된 전문성마저 4년제 대학에 침범당한다면 전문대는 점점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너무 많다.”며 거부하고 있다. 이름만 전문대이지 4년제 학위를 주는 또하나의 학사학위 수여기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남수 차관보는 “현재 운영중인 심화과정도 직업 경험 없이 2년을 마치고 계속 공부하는 현실에서 자칫 학사학위만 남발될 수 있다.”면서 “내년에 도입하는 고등교육평가원에서 고등교육의 질 관리 시스템이 정착되면 전문대를 평가해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이같은 대응에 보다 멀리 내다볼 것을 주문했다.4년제니,2년제니 하는 수업연한에만 매달리지 말고 산업사회와 수요자 중심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정태화 박사는 “현재 전문대 학생들을 위한 전공심화과정이 있지만 학점은행제로 활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학생들은 4년제 대학이나 다른 기관을 찾아야 한다.”면서 “순환교육 차원에서 전문대 졸업생들이 더 공부하고 싶을 경우 자신이 졸업한 전문대에서 필요한 학점을 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부는 과잉교육을 염려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인적자원의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것”이라면서 “전문대 졸업자가 계속교육을 통해 일정한 학점을 따면 실무 중심의 전문대학원 입학자격을 줘 전문대 졸업생이라도 능력개발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의 시각부터 비판했다. 그는 “교육부 공무원들은 대부분 인문계 중심의 4년제 대학 졸업자로 직업교육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다.”면서 “교육부 내에 전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의 산업사회에는 2년제 교육기관이 키워내는 중간 기술인력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면서 “기능교육과 직업전문학교 등을 묶은 성인교육과 계속교육, 실업대책, 직업전환교육 등을 하나로 합쳐 종합적인 인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고등교육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가원을 활용하는 교육부의 대책에 대해서는 “전문대를 특성에 따라 4년제로 풀어 주더라도 나중에 평가원의 평가를 거쳐 결과를 공개하면 해결될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수업연한이 아니라 고등교육과 계속교육 체제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남대 강무섭 평생교육원장은 “전문대 졸업자들이 더 공부하려면 4년제 대학이나 평생교육기관에 진학해야 하는데 4년제 대학은 직업교육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학벌이나 급여 문제를 떠나 전문대 졸업생들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순환교육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천 이효용기자 patric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