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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시혁, ‘분노의 힘’ 강조한 서울대 축사 “부조리와 싸워야”

    방시혁, ‘분노의 힘’ 강조한 서울대 축사 “부조리와 싸워야”

    방탄소년단을 세계적 스타로 키워낸 방시혁(47)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6일 제73회 서울대 전기학위수여식 축사를 맡아 후배들에게 ‘분노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시혁은 1997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방시혁은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다. 타협 없이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달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았고, 그것들에도 분노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와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아직도 싸우고 있다”고 말한 뒤 “앞으로 졸업생들의 여정에 부조리와 몰상식이 많이 놓여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분노하고, 부조리에 맞서 싸워 사회를 변화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방시혁은 “자신이 정의한 것이 아닌, 남이 만들어 놓은 ‘목표’와 ‘꿈’을 무작정 따르지 말았으면 한다. 상식에 기초한 꿈을 키우고, 이를 좇아 사회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학사 2439명, 석사 1750명, 박사 730명 등 4919명이 학위를 취득했다. 오세정 총장은 학위수여식사에서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이 바라는 일, 원하는 일을 찾아 집중하기 바란다. 또한 주변을 둘러보고 헌신과 혁신을 통해 공동체, 사회적 약자,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한국열린사이버대, 2019학년도 입학식 성황리에 열려

    한국열린사이버대, 2019학년도 입학식 성황리에 열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OCU, 총장 장일홍)가 지난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2019학년도 입학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밝혔다. 입학식에는 2019학년도 신입생과 장일홍 총장을 비롯한 교수 및 직원, 동문, 학부모 등이 함께 자리했으며, 통합예술치료학과에 재학 중인 개그맨 최양락이 영상을 통해 학교 소개와 축하인사를 입학생들에게 전했다. 입학식 본 행사는 개식선언으로 시작되어 ▲국민의례 ▲입학허가 ▲입학생 선서 ▲입학식사 ▲입학 축사 ▲오리엔테이션 ▲이러닝 가이드 ▲총학생회 소개 ▲특강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번 2019학년도 입학식을 통해서는 2,000여 명이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부동산금융자산학과에 입학하는 만 75세의 최고령 학생과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는 만 16세 최연소 학생 또한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입학식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이러닝 가이드, 학습 노하우, 재학생 우수학생 사례, 성폭력 예방교육, 장애인식 개선 교육 등 사이버대학을 처음 접하는 신입생을 위해 입학에서 졸업까지의 가이드가 제공되어 입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열린사이버대는 입학생들에게 100% 온라인 교육을 통해 오프라인 대학과 동일한 4년제 정규 학사학위를 수여하며, 4차 산업시대에 맞춘 융합교육과정을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편 한국열린사이버대는 1998년 교육부 가상대학 프로그램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200만 명의 누적 수강생을 기록한 국내 최초 사이버대학으로, 국내 77개 명문 대학 학술교류를 통해 지금까지 약 20년간 우리나라 사이버대학의 발전에 앞장서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한 열린 교육 실현’이라는 비전 아래 운영되는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는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통합예술치료학과 △국방상담리더십학과 △실용영어학과 △부동산금융자산학과 △창업경영컨설팅학과 △뷰티건강디자인학과 △소방방재안전학과 등의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기수의 수석 졸업장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형자가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25일 한국방송통신대 대구경북지역대학 포항교도소 분교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에서 A씨는 국어국문학과 전국 수석으로 ‘학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상은 전공별 학업성적 최우수자 2명만 받을 수 있다. 이날 여주교도소, 전주교도소, 포항교도소, 청주여자교도소 4개 교정기관에서 수형자 11명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중 10명은 학과별 학업성적 상위 15% 이내에 들면서 학점 3.0 이상자에게 주는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법무부는 수형자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2004년부터 교정기관 내 방송통신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졸업자 12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166명이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2015학년도에는 전주교도소 수형자가 사회과학대학 전체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김종수 영남대 교수, 한국진공학회 학술상 수상

    김종수 영남대 교수, 한국진공학회 학술상 수상

    영남대 물리학과 김종수 교수(50)가 최근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제56회 한국진공학회 동계정기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한국진공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진취적인 연구 활동과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진공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다. 김 교수는 반도체 양자점, 반도체 나노구조, 태양전지 및 적외선 센서 연구 분야에서 163편의 SCI 논문을 발표하는 등 국내외에서 왕성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교수는 영남대 물리학과와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국립물질재료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Materials Science) COE(Center of Excellence) 연구원, 광주과학기술원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하고, 2009년 3월부터 영남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한국진공학회지(Applied Science and Convergence Technology) 부편집위원장, 한국진공학회 운영위원(국제협력), 한국물리학회 반도체물리학분과회 총무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대학 농구 좀 해 본 마허샬라 알리 두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

    대학 농구 좀 해 본 마허샬라 알리 두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

    대학 때 농구 깨나 해본 마하샬라 알리가 두 번째 오스카를 품었다. 알리는 25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진행된 제91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그린북’에서의 돈 셜리 박사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코튼마우스(루크 케이지), 레미(하우스 오브 카드), 후안(문라이트) 등의 역할로 낯익은 배우다. 그리고 농구 팬들에게는 미국대학체육협의회(NCAA) 남자농구 1부리그의 캘리포니아대학 세인트매리 대학 농구부에서 마허샬라 길모어란 이름으로 활약해 각별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는 오클랜드에서 멀지 않은 이 대학에서 4년 동안 뛰며 3학년 때 최고의 시즌을 보냈는데 27경기에 선발로 나서 7득점 1.8리바운드 기록을 남겼다. 감이 안 온다면 서부 컨퍼런스에 속한 샌타클라라 대학의 스티브 내시가 대학 시절 내내 경쟁한 선수였다. 내시는 두 차례나 미국프로농구(NBA)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고 이제 알리는 2년 전 ‘문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오스카를 안았다. 알리의 이 대학 1년 후배이면서 NBA 워싱턴 위저즈의 육성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캄란 수피는 “알리와 비슷한 NBA 현역 선수를 꼽는다면 마커스 스마트(보스턴 셀틱스)일 것”이라며 대단한 3점 슈터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뛰고 수비를 잘하는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알리는 뉴욕 대학에 다시 입학해 예술 석사학위를 딴 뒤 2001년 TV 미니시리즈 ‘크로싱 요르단’에 처음으로 인상적인 역할을 맡아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한편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의 리자이나 킹도 농구 광팬으로 낯익다. 지난 14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MSG)에서 열린 뉴욕 닉스와의 정규리그 대결 3쿼터 종반 루즈 볼을 잡으려고 몸을 솟구친 조엘 엠비드(필라델피아)에게 머리를 채일 뻔했으나 간신히 피해 화제가 됐던 그 여배우다. 농구 경기를 곧잘 찾는 것으로 알려진 킹은 에이미 애덤스(‘바이스’), 마리나 데 타비라(‘로마’), 에마 스톤(‘더 페이버릿’), 레이철 바이스(‘더 페이버릿’)를 따돌리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아카데미 남녀 조연상 수상자 모두 농구와 연을 갖고 있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伊 유치원서 아동학대한 中 교사 “중국에선 정상” 주장 논란

    伊 유치원서 아동학대한 中 교사 “중국에선 정상” 주장 논란

    이탈리아의 한 유치원에서 중국인 교사가 아동을 학대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프라토에 있는 유치원에서 원생에게 폭력을 휘두른 교사가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프라토 시 경찰은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교사들이 원생들을 상대로 폭행을 일삼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유치원은 마르코 폴로 문화협회가 운영하는 곳으로 교사와 원생 모두 중국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학부모가 학대 의심 신고를 한 뒤 교사 중 한명이 원생 학대를 털어놓으면서 수사가 시작됐다.해당 유치원의 12개 교실 중 3개 교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경찰은 1월 5일부터 19일까지 보름간 40여건 에 이르는 아동학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카메라에는 중국인 교사 2명이 원생들을 발로 차거나 질질 끄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경찰은 교사들이 원생들을 공중에 들고 흔들거나 대걸레로 때리는 등 학대를 일삼았으며, 공개된 영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원생을 학대한 혐의로 중국인 교사 정 몰리(38, 여)와 홍 핑핑(26, 여)을 구속하는 한편,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교사 한 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그러나 중국인 교사들은 폭력이 아닌 정상적인 교육 방법의 일환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에서 교육학 학위를 받은 교사 정씨는 “중국에서는 정상적인 교육 방식”이라면서 “이탈리아에서 막대기로 아이들을 때리면 안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또 "몽둥이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며 학대 사실을 부정했다. 중국 법에 따르면 아동과 노인, 환자, 장애인 등 약자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중국 네티즌들은 해당 교사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탈리아 당국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경북문화관광공사 신임 사장에 김성조 전 국회의원

    경북문화관광공사 신임 사장에 김성조 전 국회의원

    경북도는 22일 경북도문화관광공사 신임 사장에 김성조(61·사진) 전 국회의원을 임명했다. 임기는 3년이다. 김 사장은 구미 출신으로 영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에서 행정학 석사, 금오공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7월 경북도의원을 시작으로 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대한체육회 부회장, 한국체대 총장 등을 지냈다. 김 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경북도가 문화관광을 발판 삼아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민선 7기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내놓은 ‘관광 산업 활용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란 공약의 컨트롤타워를 맡을 핵심 기관이다. 2012년 설립된 경북관광공사를 문화관광판매 기능 보강과 특화상품 산업화를 위해 지난달 경북문화관광공사로 조직·명칭을 변경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인생술집’ 이시원 “서울대 석사→박사 포기, 남친과 못 헤어져서..”

    ‘인생술집’ 이시원 “서울대 석사→박사 포기, 남친과 못 헤어져서..”

    ‘인생술집’ 이시원이 서울대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밝혔다. 21일 방송된 tvN ‘NEW 인생술집’에서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특집으로 박훈 한보름 이시원 찬열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시원은 서울대 출신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얻게 된 ‘뇌섹녀’ 별명을 밝히며 그에 걸맞은 특허출원 취미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려서부터 불편함이 있으면 개선방안을 생각해 특허를 내곤 했다고. 초등학교 시절 구부러지는 롤러스케이트를 발명 특허를 냈다는 사연도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시원의 부친은 전 멘사회장으로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필 교정기 발명가이기도 하다고. 이시원은 “제가 어렸을 때 연필 잡기를 힘들어 하니까 아버지가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밝혔다. 서울대 경영학과 06학번 출신인 이시원은 ‘학교 다녔을 때 인기가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적당히 있었다. 적당히라는 것이 대학생이 되면 다 연애하고 싶고 남자친구 만나고 싶지 않느냐. CC도 했었다. 경영학과도 있었고 다른 과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어 이시원은 20대 후반에 배우로 데뷔한 사연에 대해 “대학원에 있었다. 석사를 받고 박사를 받으려면 외국에 가야 했다. 그 당시 남자친구를 놓고 갈 수가 없었다. 헤어지기도 싫고. 포기했으면 그 길은 접어야 하고. 이미 접은 거 내가 좋은 거 하나만 하자 생각해서 연기를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MC 김희철이 “그럼 남자친구 때문에 안 간 거냐”고 묻자 이시원은 “그랬죠. 그 당시에는 사랑했고 충실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MC 신동엽은 “오히려 잘 됐다. 박사 학위 취득해도 더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는 거다”고 이시원의 선택을 지지했지만 김희철은 “더 잘 됐을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이시원은 인생은 악보와 같다는 인생관을 밝히며 “인생이 악보라면 하루하루가 음계 같다.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고. 그런데 어느 순간 높은 음에 집착하게 되더라. 내가 항상 기뻤으면 좋겠고, 자존감이 높았으면 좋겠고. 그런데 높은 음만 있으면 소음 아니냐. 내려놓는 자세가 하루하루 조금씩 행복해지는 과정 같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신동엽은 “이 나이에 깨달은 게 대단한 거다. 굉장히 많은 일을 겪고 나중에 비로소 알게 되는 건데”라며 감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가천대 학위수여식 …박사 87명, 석사 318명, 학사 2897명 배출

    가천대 학위수여식 …박사 87명, 석사 318명, 학사 2897명 배출

    가천대학교는 21일 대학 예음홀에서 2018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학위수여식에는 김신복 이사장을 비롯해 조효숙 부총장, 최미리 기획부총장, 김충식 대외부총장 등 교무위원, 김동욱 총동문회장, 학부모와 졸업생 등 5000 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수여식에서 박사 87명, 석사 318명, 학사 2897명 등 총 3302명이 학위를 받았으며 의용생체공학과 김태진씨(29)와 경영학과 박운한씨(24)가 전체수석과 차석을 차지해 이사장상을 받았다. 이길여 총장은 조효숙부총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졸업생들이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며 강의실과 캠퍼스에서 쌓은 경험들은 미래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 이라며 “새로운 미래를 과감하게 개척해 나가는 뉴 프런티어 정신과 끊임없는 배움과 자기연마의 자세로 가슴속 아름다운 꿈들을 펼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계명대 제약학과 서영호 교수팀,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저해 신물질 개발

    계명대 제약학과 서영호 교수팀의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저해 신물질 개발에 대한 논문이 의약화학 분야 저명 학술지인 ‘European Journal of Medical Chemistry’에 실렸다. 서 교수팀은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표적단백질 중 하나로 알려진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6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신규물질을 개발했다.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HDAC)는 염색질의 구성물질 간의 구조변화를 유도하여 유전자의 전사 조절을 유도하는 효소로 알려져 있으며, 구조적으로 총 18개의 동위효소로 나뉘게 된다. 현재 모든 동위효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HDAC6은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치료제 표적 단백질로서의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안트라퀴논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신규 물질을 합성하였고, 이후 이 약물에 대한 활성을 다양한 생물학적 실험법으로 확인했다. 이 물질은 HDAC의 다양한 동위효소 중에서도 HDAC6에 선택적 저해활성을 나타냈다. HDAC6는 다른 HDAC들과는 달리, 선택적으로 저해되어도 큰 독성을 나타내지 않으며, 마약중독, 치매, 암 치료 관련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어 있다. 특히, 암 치료에서 기존에 알려진 항암제와 HDAC6 저해제를 동시에 처리할 시, 항암활성을 극대화 한다는 연구 보고됐다. 또 HDAC6는 암뿐만 아니라 마약중독,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변성질환이나 염증과 같은 다양한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가 HDAC6를 표적단백질로 하는 다양한 저분자 물질을 개발하는 중이다. 본 연구에서 개발한 신규물질은 기존에 알려진 HDAC 저해제들보다 HDAC6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나타내는 반면, 낮은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물질이 추후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논문이 실린 EJMC는 엘스비어에서 출간되는 의약화학 전문학술지로써, 피인용지수가 4.816로, 의약화학 분야에서 JCR Rank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는 저명한 학술지이다. 본 논문의 공동 제 1저자인 송유진 연구원과 임지아 학생은 서영호 교수의 지도 아래 약물의 설계, 합성 및 생물학적 활성 평가 등의 연구를 주도하였다. 송유진 연구원은 2018년에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약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우수한 연구자이며, 임지아 학생은 2019년 2월에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약학과 석사졸업 예정이다. 서영호 교수는 연세대 학사 학위를 마친 뒤,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쳤고, 이후 미시건 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통해 의약화학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서영호 교수는 여러 권의 책을 공동집필하였으며, 의약화학 분야에서 많은 학술논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연구는 교육부 지원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약물의존장애 핵심 진단기술 개발 및 치료전략 연구)과 한국연구재단 기본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계명대 제약학과 서영호 교수팀,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저해 신물질 개발

    계명대 제약학과 서영호 교수팀,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저해 신물질 개발

    계명대 제약학과 서영호 교수팀의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저해 신물질 개발에 대한 논문이 의약화학 분야 저명 학술지인 ‘European Journal of Medical Chemistry’에 실렸다. 서 교수팀은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표적단백질 중 하나로 알려진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6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신규물질을 개발했다.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HDAC)는 염색질의 구성물질 간의 구조변화를 유도하여 유전자의 전사 조절을 유도하는 효소로 알려져 있으며, 구조적으로 총 18개의 동위효소로 나뉘게 된다. 현재 모든 동위효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HDAC6은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치료제 표적 단백질로서의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안트라퀴논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신규 물질을 합성하였고, 이후 이 약물에 대한 활성을 다양한 생물학적 실험법으로 확인했다. 이 물질은 HDAC의 다양한 동위효소 중에서도 HDAC6에 선택적 저해활성을 나타냈다. HDAC6는 다른 HDAC들과는 달리, 선택적으로 저해되어도 큰 독성을 나타내지 않으며, 마약중독, 치매, 암 치료 관련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어 있다. 특히, 암 치료에서 기존에 알려진 항암제와 HDAC6 저해제를 동시에 처리할 시, 항암활성을 극대화 한다는 연구 보고됐다. 또 HDAC6는 암뿐만 아니라 마약중독,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변성질환이나 염증과 같은 다양한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가 HDAC6를 표적단백질로 하는 다양한 저분자 물질을 개발하는 중이다. 본 연구에서 개발한 신규물질은 기존에 알려진 HDAC 저해제들보다 HDAC6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나타내는 반면, 낮은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물질이 추후 마약중독, 치매, 암 등의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논문이 실린 EJMC는 엘스비어에서 출간되는 의약화학 전문학술지로써, 피인용지수가 4.816로, 의약화학 분야에서 JCR Rank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는 저명한 학술지이다. 본 논문의 공동 제 1저자인 송유진 연구원과 임지아 학생은 서영호 교수의 지도 아래 약물의 설계, 합성 및 생물학적 활성 평가 등의 연구를 주도하였다. 송유진 연구원은 2018년에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약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우수한 연구자이며, 임지아 학생은 2019년 2월에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약학과 석사졸업 예정이다. 서영호 교수는 연세대 학사 학위를 마친 뒤,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쳤고, 이후 미시건 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통해 의약화학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서영호 교수는 여러 권의 책을 공동집필하였으며, 의약화학 분야에서 많은 학술논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연구는 교육부 지원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약물의존장애 핵심 진단기술 개발 및 치료전략 연구)과 한국연구재단 기본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1) ‘M&A 승부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1) ‘M&A 승부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김 회장, 38년만에 그룹매출 43배 키워태양광사업과 해외사업 확장에 ‘올인’집행유예기간 끝나 경영전면복귀 관심 김승연(67)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다. 그는 굵직한 M&A를 성사시켜 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1년 당시 그룹 매출 1조 6000억원에서 2018년 68조원까지 키웠다. 자산규모는 7500억원에서 61조 3000억원, 국내 계열사 숫자는 20개에서 76개로 늘어 재계 8위로 올라섰다. 한양화학(한화케미컬),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 등을 비롯해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토탈(한화토탈)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등을 사들였다.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사업과 신사업을 중심으로 오는 2023년까지 모두 22조 원을 투자하고 3만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항공기 부품 및 방위산업 분야에 4조원, 석유화학 부문에 5조원,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신규 리조트와 복합 쇼핑몰 개발 등 서비스산업에 4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3020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태양광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고 금융 부문에서는 별도로 추가 투자 규모를 정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의 지휘로 2010년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한화솔라원’으로 사명을 변경해 태양광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2012년 독일의 태양광업체인 ‘큐셀’을 인수하고 2015년 태양광 사업의 양대 축이었던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을 ‘한화큐셀’로 통합했다. 이런 노력으로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태양광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는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인수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1월 말 한화생명을 통해 롯데카드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해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 인수전에 뛰어든 상태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사업 확대, 인재확보, 준법경영 등 3가지를 한화그룹의 경영방향으로 제시했다. 특히 글로벌사업 확대를 위해 베트남을 전진기지로 삼고 시장개척에 나선다는 포부를 밝혀 김 회장의 M&A의 DNA가 해외시장에서도 빛을 발할 지 관심사다.  김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38년만에 그룹을 비약적으로 키운 것은 의리를 중시하는 한화그룹만의 독특한 조직문화가 크게 작용했다. 김 회장은 2010년 서울프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호텔이 6개월간 문을 닫게 되자 공사기간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줬다. 2014년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할 때 직원들이 회를 먹고 싶어 한다고 하자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했다. 미국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가로 일하다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정부에 수감된 로버트 김을 개인적으로 계속 지원했다. 방위업체를 운영하는 것을 감안해 2011년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중 일부를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했다. 지난해 10월 19일 한화이글스가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내려가 10년 넘게 성원해준 팬들을 위해 1만 3000송이의 장미를 선물했다. 김 회장은 대주주지만 지난 5년간 표면적으로는 그룹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지난 2014년 2월 회사와 주주들에게 30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아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 계열사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룹의 주요 사안은 김창범 한화케미칼 부회장과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 등이 이끄는 그룹CEO 시니어보드에서 결정하고 이를 김 회장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지난 18일 5년간의 집행유예기간이 끝나자 김 회장이 그룹 전면에 다시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이 대두됐다. 하지만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 부터 2년동안 금융회사나 유죄판결을 받은 관련 업체의 취업에 제한이 있어 기존 회사로의 대표이사 복귀는 당장 힘들다. 다만 한화큐셀 등 태양광 관련 계열사 대표이사에 오를 가능성은 제기된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판결 이후에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으로 책임경영제를 운영해왔고, 대주주로서 주요사안을 관장했기 때문에 특정 회사의 등기임원으로 등재하는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경기고에 다니다가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멘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드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룹에서 실무를 익히던 김 회장은 지난 1981년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그룹 창업자인 부친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경영 전면에 나선 지 38년째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하기도 했다.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부친의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 장관의 장녀 서영민(58)씨와 결혼했다. 당시 서울대 약대 4학년이던 서씨는 결혼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서울대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슬하에 동관(36), 동원(34), 동선(30) 등 세 아들을 뒀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 정시추가모집 오늘부터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 정시추가모집 오늘부터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는 특성화고(실업계고) 등 고졸재직자 특별전형 2019학년 정시추가모집을 2월 20일부터 진행한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전형은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졸업 후 4대 보험 중 1개 이상 가입 사업체(창업·자영업자 포함)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면접 10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입학전형은 학령기 학생중심 위주의 대학입학전형과 수업구조를 개선하여 성인들의 후진학 수요를 충족시키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지원사업이다. 동덕여대는 성인학습자들이 직장생활과 대학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지원할 뿐만 아니라, MT, 멘토링, 봉사활동, 취업특강, 창업특강, 학과 학술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의 학생자치활동을 지원하여 학우들 간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재직자의 특징을 고려하여 주말·야간수업, 온라인·블렌디드러닝 등 다양한 형태로 수업이 진행되며, 입학부터 학사관리까지 일반적인 대학의 교육과정과 동일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대학과정을 모두 마치게 되면 졸업자격과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에서는 △재무회계 △세무회계 △회계실무 등의 전공과정을 이수할 수 있으며, △고급회계 △관리회계 △조세법개론 △마케팅 △재무관리 등 기업경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이론과 실무를 접목한 실천능력을 함양 할 수 있다. 세무회계학과는 급변하는 회계환경에 맞는 여성회계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실무위주의 산업밀착형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였으며, 기업 CEO, 공인회계사 등 우수한 교수진을 통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회계전문가를 양성한다. 이 밖에도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는 전공스터디그룹, 실무전문가특강 등 입학생들의 교육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방침이다. 동덕여대는 정시추가모집을 2월 20일부터 22일 까지 진행하며, 자세한 입학조건은 동덕여자대학교 홈페이지나 학교 입학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통용항공, 일자리 새로 만드는 틈새시장이야…몇가지만 해결되면”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통용항공, 일자리 새로 만드는 틈새시장이야…몇가지만 해결되면”

    조일현 협회장이 말하는 ‘비행기 택시’ 시대“‘비행기 택시’ 시대가 곧 온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어요. 1960~70년대, 검정 고무신 신고 다닐 때 자동차 판매장이 고무신 파는 가게보다 더 많을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조용해집니다. 비행기 택시 시대는 가만히 있어도 올 수밖에는 없는 시대적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빨리 시작하면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수 있지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더욱 필요해지고.” 민간용 경비행기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협약을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5일 조일현(64) 초대 협회장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조 협회장은 17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인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공산당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통으로 통한다. 한국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는 지난해 11월 발족했고, 중국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소프트랜딩에 탄력이 붙었다. “韓통용항공, 국가적 추진 中겨냥 신생 분야시진핑 ‘비행기’ 시대 개척 야심찬 계획 추진내년까지 경비행기 5천기, 비행장 8백곳 확보”- 통용항공이란 말이 낯설다. “통용항공(通用航空)이란 말은 중국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용어인데, 우리는 중국 시장 진출을 겨냥해 이를 가져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군사와 대형 항공 서비스, 항공 수송을 제외한 것으로 영어로는 ‘제너럴 에비에이션(general aviation·GA)’이라 통칭합니다. 보통 4인승에서 100인승 이하의 경비행기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손님을 부정기적으로 실어나르는 택시, 스포츠 및 관광 사업뿐만 아니라 대규모 농장에 하는 농약살포도 통용항공 산업에 포함합니다. 우리나라엔 개념만 들어온 신생 분야이지요.” - 전 세계 통용항공의 규모는.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 캐나다 등에서 먼저 통용항공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 36만대의 통용 항공기가 있고, 미국이 21만대를 보유하고 있지요. 중국엔 3000여 대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2020년까지 경비행기 5000기를 확보하고, 2021년부터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랍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중국 항공여객 시장은 2016년 5억명에서 20년 뒤인 2036년에 15억명으로 3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컨대 중국 통용항공기가 3만대 필요할 때 우리가 1만대만 공급한다고 하면 그게 어딥니까. 우리가 차지할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과거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현대차 공장을 세울 때 한국 자동차시장 크기를 알았을까요. 저도 그런 심정입니다.” - 중국 통용항공 시장, 잠재력이 무섭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통용항공을 미는 것도 다 까닭이 있습니다. 장쩌민 전 주석은 ‘마이카’ 시대를, 후진타오 전 주석은 ‘고속철’ 시대를 열었지요. 이에 시 주석은 ‘비행기’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합니다. ‘중국 제조 2025’에서 통용항공을 10대 육성전략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통용항공이 고속철도망을 까는 것보다는 더 경제적입니다. 내년까지 경비행장을 전국 800곳을 갖추기로 하고 한창 공사 중입니다. 몇 년 이내에 경비행장이 1000곳이 넘을 겁니다. 중국에서 제대로 된 통용항공 시대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경비행기 수만 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중국 파트너(중국 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에 따르면 경비행기를 사려는 중국 사람이 30만명에 이르고, 조종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100만명이라고 합니다. 또 중국 각 성에서 조종사 면허 발급기관을 확보하는 중이라고도 하더라고요.” “1953년 첫 자체 기술로 ‘부활’ 제작‘반디호’는 ‘하늘을 나는 페라리’ 극찬산업화 ‘실패’ … 하늘길 열리지 않아개발 대기업…생산은 중기 영역 문제”- 의욕만으로 진출할 수 있나. 우리의 항공기 제조 수준은. “물론입니다. 현재도 수원에 있는 베셀은 2인승 항공기(KLA100)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시속 200km로 14시간 비행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경비행기 제조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66년 전인 1953년 10월 대구에서 국산 경비행기 1호인 ‘부활’을 만들어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1991년에는 순수 국산 경비행기 2호인 ‘창공91호’를 개발했지만,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했지요. 1993년 국산 3호기인 ‘까치’를 제작했지만, 후속 투자가 이어지지 않아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도 진행되면서 경비행기 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괄목하게 습득했습니다. 2001년 9월 21일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4인승 ‘반디호(firefly)’ 선진국 경비행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경비행기 제조 역사를 보면 연구원들의 피와 땀, 눈물, 목숨이 배여 있지요. 한국 제품은 완성도가 높고 안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중국이 보는 겁니다. 그래서 거래를 하고 싶어하지요.” - 항공기 제조 기술은 상당한 데, 산업화 실패 원인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만든 반디가 2004년 남북극을 경유하는 세계 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이를 몰았던 미국 탐험가 거스 매클라우드(64)는 반디호를 ‘하늘을 나는 페라리’라고 평했습니다. 민간 항공기로는 최초로 미국에 수출도 됐습니다. 2011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KC-100(나라온)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기준을 다 통과했고요. 그러나 역시 산업화는 실패했습니다. 이런 제조 도면은 모두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지요. 판로 개척을 못 하면서 산업화에 실패한 겁니다. 거기에는 ‘하늘길’에 대한 문제도 있고. 경비행기 개발은 최소 1000억원이 들어가는 대기업 영역입니다. 그런데 대당 4억~5억원 정도 주문받아 생산하는데, 그 부분은 중소기업이 할 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선진국도 잘 못 합니다. 한국이 경비행기 만든다고 해도 군사용이나 대형 항공기가 아니어서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는 별로 신경도 안 씁니다. 날개를 접어 주차장(격납고)에 보관하는 등 첨단 기술이 들어간 것은 이들 국가가 보호하지만.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진출하려도 경비행기 제조 기술이 없습니다. 한국에겐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틈새시장이 될 겁니다.” “정부 지원 없으면 ‘대장간’ 수준 못 벗어나항공 관제 문제, 계기판 인증 문제 해결 시급韓지역별 준비 시급 … 싱가포르도 올해 시작”- 통용항공에 언제부터 관심을 뒀나. “국회 건교위원장을 지낼 때 선진국과 공항 관계자들로부터 ‘비행기 택시’ 시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이던 2016년 8월 경남 양산의 자택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이 되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 싶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때만이 한반도는 당당한 미래를 열 수 있고, 영원한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위하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공유와 동질성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쉬운 왕래와 진정한 교류가 필요하다. 따라서 빠른 왕래와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한 말씀을 듣고 통용항공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최근 남북 관계가 급속화되면서 더욱 필요해졌고요.” - 자동차는 정부가 길을 닦아줬는데, 활주로는 어떻게. “도로 건설 비용으로 활주로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자동차 길은 산도 뚫고 강도 메워야 하지만 경비행기 활주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짧아도 됩니다. 경비행기 활주로는 길이 200m 이내면 충분하지요. 민간영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관제 문제 해결이 시급합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제조에서 제일 어려운 게 계기판인데…. 경비행기에 장착될 계기판과 관련해 인증기관 설립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제조와 정보통신(IT) 기술이 우리가 세계 최고이니 계기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걸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받아야 합니다. 인증기관 만드는 것만 해도 정부가 크게 도와주는 겁니다.” - 정부 할 일도 많다. “통용항공은 정부가 관심을 두고 집중하지 않으면, 민간에만 맡겨서는 ‘대장간’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싱가포르도 올해부터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도 전국을 지역별로 어디에 어떻게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할지 준비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로봇이 못 만듭니다. 거의 전부 사람 손이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집약적이면서도 일자리 창출도 많은 분야인 셈이지요. 그러기에 서둘러야 할 일입니다.” “‘中기술 먹튀’ 우려? …‘당연’안주 말고 경쟁력 확보 노력도中과 교류 확대로 신뢰 쌓아야”- 협회가 할 일은. “현재 국내에 경비행기 제조와 관련된 업무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곳이 없습니다. 이게 우리 협회가 할 일이지요. 각 분야의 전문 기술과 지식을 엮어서 하나의 토대를 만들고 또 협회에서 구축한 기반을 토대로 회사를 세우거나 합작 회사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정부나 중국을 비롯한 대외 창구 역할도 하고. 제조·정비·조종사 양성·부품공장 계열화 등 꿰맬 일이 많습니다. 현재 20개 기업이 등록돼 있는 데 협회가 출범했다고 하니 문의가 많아. 그리고 경비행기 제조에는 대략 6000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후방산업 효과도 막대합니다. 그리고 중국 조종사들을 교육도 우리가 하게 할 계획입니다. 중국에서 딴 조종사 자격증으로 외국에서는 경비행기를 몰 수 없거든요. 한국에서 딴 자격증은 국제운전면허증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다 인정해 줍니다. 중국인들이 그걸 노리고 있습니다.” - 통용항공, 다른 활용 가능성은 많겠다. “사실,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닥터 헬기’는 갖췄다고 해도 평상시엔 사고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응급헬기를 지역별 비행기 택시회사에 위임사항으로 주는 겁니다. 이걸 중국 시 주석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읍급 콜’이 들어오면 이 회사에서 바로 출동하는 겁니다. 중국은 한국 기술로 병원 응급실이 탑재된 헬기를 만들고, 의료진이 탑승하는 한중일 3국 해상재난 체계를 갖추자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중국이 그런 해상재난 헬기를 다 사주겠다는 겁니다. 이거 한대 가격이 얼마인줄 아세요? 600억~700억원입니다. 중의학이라는 게 응급상황에서 별로 쓸모없고, 한국 의료기술은 세계 수준인 것을 중국이 잘 알기에 이런 제안을 한 겁니다.”- 중국의 ‘기술 먹튀’가 우려된다. “중국의 항공 기술은 세계적입니다. 군사용이나 대형 항공기 제조 수준은 거의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90%에 달했습니다. 드론은 오히려 더 앞섰고요. 다만, 경비행기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뒤처졌져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특허가 다 끝나 단종된 ‘세스나’를 만드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 경비행기 기술도 중국이 금방 습득할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잡힐 우려도 있지만, 우리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경쟁력을 갖춰야지,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산업을 막 시작하던 시절, 현대나 기아차가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진출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습니까. 경비행기도 미국에 진출할 날이 올 겁니다.” - 그래도 너무 중국 의존적이다. 중국, 과연 믿을 만 한가. “시진핑 정부가 확실하게 밀고 있으니, 통용항공은 시간만 지나면 궤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요한 경비행기를 한국이 생산하면 다 사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제품이 완성도가 높고 안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조건에서 말이죠. 이런 제안을 한 파트너인 쉬창둥(徐昌東·67) 중국 협회장은 시 주석이 애지중지하는 인재입니다. 그의 부친이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이 한 인쇄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충남 예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참배합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일부러 찾아가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고개 숙여 참배했습니다. 그 전에도 두어번 와서 참배했지요.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과 감정을 갖고 있지요. ‘한국 사람은 중국 사람을 못 믿고, 중국 사람은 한국 사람을 안 믿는다.’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교류를 통해 서로 확인했고, 신뢰를 쌓아가고 있지요.” “베이징대 박사학위 조기졸업에 한문 실력 발휘어릴 적 가난해 서당 3년 다녀…高2때 군 입대도‘봉이 김선달’ 놀림감 생수도 산업화 성공 전력” - 중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아나. “개인적으로 내가 박사학위가 2개인데 하나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딴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2000년 중국에 갔지요. 가서 지내보니 ‘밥값보다 통역비’가 더 들어요. 그때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 과정 모집을 보고 ‘저기 들어가면 말은 배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지원했지요. 중국정부론을 전공했는데, 이게 사실은 중국 공산당을 연구한 겁니다. 옛날에 서당에서 한문 공부한 게 큰 효과를 봐서 2년 반 만에 조기졸업했습니다. 고생도 무척 많이 했는데…. 학위 수여식에 총장이 불러서 가니 나 혼자입디다. 총장이 ‘100년 역사에 정식 조기졸업한 학생은 두 번째’라고 하더라고요. 2004년 한국 돌아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그해 7월 졸업식장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할 때 직접 베이징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파견교수 자격으로 학생들 점수를 직접 매겼습니다.”- 서당을 다녔다고? “난 화전민의 아들로,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이 너무 어려워, 할아버지가 하시던 서당에서 3년간 한문을 배웠습니다. 그게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 밟을 때 정말 요긴하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다 세 살 아래 동생들과 중학교, 고등학교에 같이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집영장’이 나와 군대 갔습니다. 군 제대하고 3학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25살이던 대학교 2학년 때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1500만원 싸들고 선관위 등록하러 갔었습니다. 그때 소 한 마리 값이 30만원이던 시절이야. ‘나이가 적으니 대학교 졸업하고 출마하라.’면서 후보 등록을 안 받아줬어….” 비행기 택시 서비스가 어찌 보면 황당무계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사서 마시는 생수 판매도 당초에 허무맹랑한 사업처럼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생수 판매도 조 협회장이 양성화에 앞장섰던 사업이었다. “1990년대 초쯤이었는데, 생수 판매를 허가하자고 하니 ‘봉이 김선달’이니 ‘국민 위화감 조성’이니 하면서 엄청 반대가 많았습니다. 당시 수출용으로 생수를 판매하는 것은 괜찮다고 허용된 상태였습니다. 주로 미군 PX에 들어갔지요. 업체는 물통 배달료만 받고, 허가 품목도 아니어서 정부가 수질 검사를 못 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맹점이어서 수질이 엉망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판매를 양성화·산업화시켰고, 국민은 더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됐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호남대 신임 총장에 박상철 박사 “꿈 이루는 행복한 대학 만들 것”

    호남대 신임 총장에 박상철 박사 “꿈 이루는 행복한 대학 만들 것”

    박상철(52) 호남대 제16대 총장이 18일 문화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갖고 “교육혁신을 통한 창의융합 인재양성으로 ‘꿈을 이루는 행복한 대학’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행사엔 박기인 설립자 겸 이사장과 김양균 초대 헌법재판관,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쑨셴위 주광주 중국총영사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박 총장은 취임사에서 ▲지혜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학생중심대학 ▲지역과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거점대학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대학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총장은 광주 석산고를 나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 학사, 한양대 경영학 석사, 경기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남대 서울사무소장과 기획처장, 지방대학특성화(CK-1)사업본부장, 부총장, 총장직무대리를 거쳤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직장 실무 경험 아닌 지식·기술·트렌드 파악”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정기공채 대신 필요할 때마다 인재를 뽑겠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차발(發) 수시 바람’에 채용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0대 그룹 가운데 첫 채용변화 선언인 데다 구체적인 사안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기대와 우려도 크다. 현대차 인사·채용 담당자에게 18일 취업준비생들의 세부적인 궁금증을 직접 물어 질의·응답(Q&A)으로 정리했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도 생길 텐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 “먼저 현대차 채용 홈페이지에 나온 채용 공고나 직무소개 등을 보고 내가 관심 있는 직무와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파악해야 한다. 직무별 요구 역량은 ‘직장에서의 실무 경험’이 아니다. ‘지식, 기술, 트렌드 파악’ 등이 역량이다. 대학 수업이나 학교 활동을 활용하면 유리하다. 직무 관련 전공자면 전공 심화 과목을 많이 듣고 심화 전공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라.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공 스토리 등을 ‘어필 포인트’로 만들어 놔라. 동아리, 학회 활동, 온라인 무료 강좌 등 직무와 관련된 활용 경험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직무와 관련 없는 대외 활동이나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시간을 쏟지 말라는 의미다.” -현업부서 인재 선발 시 외부 입김 등 불공정 절차 우려도 있다. 또 채용 후 해당 부문이 없어지거나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본사 인사관리(HR) 전문 인력들이 본부별 전담제를 통해 현업 부서에 평가 노하우 등을 밀착 지원하고 면접 위원 교육 등 선발 전체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관리한다. 해당 사업라인이 사라져도 직무 역량이 유관된 조직이 많아서 최대한 유사한 직무로 재배치할 수 있다. 적성에 안 맞아 전보를 희망한다면 ‘사내 잡 마켓 제도’(사내 인사 이동 제도)를 이용해 옮길 수 있다.” -일괄 정기 공채 채용보다 채용 기회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규모를 줄이려 했다면, 기존처럼 정기 공채를 진행하면서 줄여도 된다. 되레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채용이 확대되는 부문도 많이 있다. 기존 정기공채에서는 상·하반기 채용 시점 사이에 결원이 생겨도 즉시 충원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즉각적인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채용이 확대될 수도 있다.” -인·적성검사(HMAT)를 탄력적으로 하겠다는 건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과거처럼 집합 형태로 5시간 고시를 치르는 것은 폐지되고 직무별로 필요에 따라 적성이나 인성 테스트 중 일부만 볼 수 있다.” -졸업 예정과 기졸업생은 지원 자격 제한 차이가 있나. “지원 자격은 공고별로 모두 다르다. 예컨대 4학년 2학기 재학생이 10월에 열리는 ‘IT 보안 직무’에 지원할 경우 선발 확정 후 입사 시점이 12월~1월로 예상되므로 지원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학생이 7월에 열리는 ‘재무관리’에 지원하면 선발 확정 후 입사 시점이 9~10월이라 해당 시점에 학위 취득 예정 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 지원할 수 없다.” -지원자가 직접 기업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인지, 혹은 필요할 때마다 공시하겠다는 것인지. “직무별 채용 공고가 나올 때마다 다양한 홍보 채널을 통해 공시할 예정이다. 수많은 직무가 있기 때문에 연중 상시로 채용 공고가 게시돼 있으니 지원자로서는 지원 기간이 겹치지 않는 한 중복해서 지원할 수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도움말 : 현대자동차 HR운영실 HR운영2팀 구성모 과장
  • 현대차 채용 담당자한테 물었다…수시채용 어떻게 대비하나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정기공채 대신, 필요할 때마다 인재를 뽑겠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차발(發) 수시 바람’에 채용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0대 그룹 가운데 첫 채용변화 선언인데다 구체적인 사안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기대와 우려도 크다. 현대차 인사·채용 담당자에게 18일 취업준비생들의 세부적인 궁금증을 직접 물어 질의응답(Q&A)으로 정리했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도 생길 텐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  -먼저 현대차 채용 홈페이지에 나온 채용 공고나 직무소개 등을 보고 내가 관심 있는 직무와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파악해라. 직무별 요구 역량은 ‘직장에서의 실무 경험’이 아니다. ‘지식, 기술, 트렌드 파악’ 등이 역량이다. 대학 수업이나 학교 활동을 활용하면 유리하다. 직무 관련 전공자면 전공 심화 과목을 많이 듣고 심화 전공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라.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공 스토리 등을 ‘어필 포인트’로 만들어놔라. 동아리, 학회 활동, 온라인 무료 강좌 등 직무와 관련된 활용 경험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직무와 관련 없는 대외 활동이나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시간을 쏟지 말라는 의미다.  →현업부서 인재 선발 시 외부 입김 등 불공정 절차 우려도 있다. 또 채용 후 해당 부문이 없어지거나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본사 인사관리(HR) 전문 인력들이 본부별 전담제를 통해 현업 부서에 평가 노하우 등을 밀착 지원하고 면접 위원 교육 등 선발 전체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관리한다. 해당 사업라인이 사라져도 직무 역량이 유관된 조직이 많아서 최대한 유사한 직무로 재배치할 수 있다. 적성에 안 맞아 전보를 희망한다면 ‘사내 잡 마켓 제도(사내 인사 이동 제도)’를 이용해 옮길 수 있다.  →일괄 정기 공채 채용보다 채용 기회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규모를 줄이려 했다면, 기존처럼 정기 공채를 진행하면서 줄여도 된다. 되레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채용이 확대되는 부문도 많이 있다. 기존 정기공채에서는 상·하반기 채용 시점 사이에 결원이 생겨도 즉시 충원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즉각적인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채용이 확대될 수도 있다.  →인·적성검사(HMAT)를 탄력적으로 하겠다는 건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과거처럼 집합 형태로 5시간 고시를 치르는 것은 폐지되고 직무별로 필요에 따라 적성이나 인성 테스트 중 일부만 볼 수 있다.  →졸업 예정과 기 졸업생은 지원 자격 제한 차이가 있나.  -지원 자격은 공고별로 모두 다르다. 예컨대 4학년 2학기 재학생이 10월에 열리는 ‘IT 보안 직무’에 지원할 경우 선발 확정 후 입사 시점이 12월~1월로 예상되므로 지원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학생이 7월에 열리는 ‘재무관리’에 지원하면 후 입사 시점이 9~10월이라 해당 시점에 학위 취득 예정 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 지원할 수 없다.  →지원자가 직접 기업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인지, 혹은 필요할 때마다 공시하겠다는 것인지.  -직무별 채용 공고가 나올 때마다 다양한 홍보 채널을 통해 공시할 예정이다. 수많은 직무가 있기 때문에 연중 상시로 채용 공고가 게시돼 있으니 지원자로서는 지원 기간이 겹치지 않는 한 중복해서 지원할 수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도움 현대차 HR운영실 HR운영2팀 구성모 과장)
  • 대통령 입맛 잡은 홍어 요리 ‘시그니처 메뉴’ 됐죠

    대통령 입맛 잡은 홍어 요리 ‘시그니처 메뉴’ 됐죠

    2016년 10월 이후 한상훈(47) 셰프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 청와대 양식담당 조리장으로 발탁돼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던 2016년 6월까지 관저에서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다. 인기 프로그램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와 8년간의 청와대 생활을 그만뒀지만 곧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끊이지 않았던 촛불 행렬을 보며 그도 입을 열었다. “최순실이 관저에서 김밥을 싸갖고 갔다.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이 매주 주말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는 그의 증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고, 한동안 그의 고향집 앞까지 내외신 기자들이 찾아오는 등 피곤한 삶을 견뎌야 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터진 지 2년, 그가 다시 ‘셰프’로 돌아갔는지 궁금했다. 서울 중구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아직도 靑 로고 새겨진 조리복 입고 일해 그는 여전히 왼쪽 팔에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흰색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가 운영하는 이 레스토랑은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다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꽤 컸다. 메뉴 가격대에 비해 분위기도 고급스러웠다. “청와대 조리장 출신 후광을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요즘엔 그런 것 안 통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주 예전에만 해도 청와대 조리장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 행정관들이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곤 했지만, 요즘은 계약이 끝나면 냉정하게 ‘안녕’을 한단다. 그나마 그는 “TV 출연을 해서 인지도를 얻어 이 정도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레스토랑 운영과 서울의 한 비즈니스 호텔 총주방장을 겸하고 있다. 청와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닿은 걸까. 그는 “MB 정부와 끈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엄격한 면접과 실기 테스트를 거쳐 입성했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일하던 중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화 한 통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바로 출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제의를 수락했는데 막상 청와대에 가 보니 4명이 더 면접을 보러 와 있었다. 하루에 한 명씩 코스 요리 시연을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절차도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후의 1인이 됐지만 신원 확인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음주운전 등 작은 전과라도 있으면 청와대 조리장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맞춰 주기로 했던’ 월급은 막상 받아 보니 특급 호텔에 비해 훨씬 적었다. 또 정규직이 아니라 1년씩 계약을 갱신해야 했다. 주변에선 “정권이 바뀌면 잘릴 자리에 뭐하러 가느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요리로 박사 학위를 따고 호텔 일까지 셰프로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그에게 ‘청와대 조리장’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일은 매우 고됐다. 그는 청와대 조리장을 “회장님 집 식모라고 보면 된다”며 웃었다. 관저 주방에는 한식 2명에 일식, 중식, 양식 1명씩 모두 5명의 조리장이 있다. 이들과 같이 상을 차린다 해도 하루 3끼씩, 1주일에 21끼를 매일 다른 메뉴를 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대통령 출근 전에 맞춰 오전 7시쯤 첫 아침상을 낸다. 바로 생활패턴이 다른 영부인의 아침 식사가 이어진다. 아침을 정리하자마자 점심 준비, 저녁 준비까지 쉴 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도 직접 한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할때는 1명씩 따라가 현지 식사를 도맡는다. 하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 정자에서 딸, 사위 등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먹은 뒤 후식으로 냉면을 주문해 음식을 짊어지고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조리장은 연륜도 중요하지만 체력이 좋은 젊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족이 없는 박 전 대통령 때는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아침은 스스로 챙겨먹겠다며 천천히 출근하라고 배려해 줬다”고 했다. ●靑 조리장은 끊임없이 새 메뉴 개발해야 힘들었지만 셰프로선 청와대 경험 덕분에 한국의 다양한 제철 식재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평생 이탈리안을 비롯한 서양 음식을 다뤘지만, 4계절이 뚜렷한 한국에 제철 식재료가 이렇게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며 “청와대 조리장은 매일 바뀐 메뉴를 내놓아야 하기에 제철 식재료도 잘 활용해야 하고, 새로운 메뉴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가 청와대에서 새로 만들어 대통령들이 좋아했던 홍어 요리는 지금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폭 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만 그는 “청와대 조리장들은 밖에선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들인데 청와대 내부 조직에선 단순히 ‘밥 차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경호실 직원들 월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처우 등이 향후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 사진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258명 졸업 … 전세계에 ‘친한(親韓) 네트워크’ 구축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258명 졸업 … 전세계에 ‘친한(親韓) 네트워크’ 구축

    교육부와 국립국제교육원은 이달 말 전국 56개 대학에서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258명(학부 115명·석사 108명·박사 31명·연구 4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졸업자는 총 86개국에서 왔으며 권역별로는 아시아(107명, 41%), 아프리카(60명, 23%), 유럽(46명, 18%), 아메리카(45명, 18%) 순이었다. 전공계열별로는 인문사회계열(133명, 51%), 자연공학계열(108명, 41%), 예체능계열(17명, 6%) 순이다. 교육부와 국립국제교육원은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15일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환송회를 열었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아주대에서 전자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힌트사 씨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해준 한국정부에 감사드린다”면서 “교수님과 학과 동기들 덕분에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배우고 체험한 소중한 경험들을 평생 잊지 않고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정부초청외국인장학사업(GKS·Global Korea Scholarship)’은 전 세계의 고등교육 우수 인재들이 국내 대학 및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1967년 시작해 전세계에 친한(親韓)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개발도상국의 국가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5000여명의 졸업생들은 각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한국을 찾아 서울대에서 교육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중국인 신바오종 씨는 중국 하얼빈사범대 총장을 지냈다. 1997년 한국에 와 서울대 국어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씨티니 탐마차이 씨는 태국 방콕의 국립 씨나카린위롯대 한국어과 교수로, 대학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했다. 최은희 교육부 국제협력관은 “한국 교육의 저력을 몸소 경험하며 학위를 취득한 만큼 자국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친한(親韓) 국제 인재로서 한국과의 우호·친선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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