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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대학서 박사학위 받은 신부님

    불교대학서 박사학위 받은 신부님

    가톨릭 사제가 불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눈길을 끌고 있다. 24일 열리는 동국대 2007학년도 가을 학위수여식에서 ‘깨달음 달의 출현(Prabodhacandrodaya) 해탈관에 대한 연구’로 인도철학 박사학위를 받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박문성(40) 신부가 주인공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불교대학 학부 과정에 수녀님들이 다닌 경우는 몇 차례 있지만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것은 박 신부님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1995년 사제 서품을 받은 박 신부는 불교의 뿌리인 인도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98년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철학과에 편입했다. 박 신부는 “상대 종교의 교리와 언어를 보다 정확하고 폭넓게 이해하고 싶었다.”면서 “불교의 뿌리이며 한국인의 심성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도철학을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단과대 수석을 두 차례 차지할 만큼 ‘늦깎이 모범생’이었던 박 신부는 2004년 ‘파슈파타(Pasupata)의 실천원리 연구’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고,3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박 신부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배우고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해군 군악대 빈대욱 중사 제주대 교육대학원 수석졸업

    해군 군악대 빈대욱 중사 제주대 교육대학원 수석졸업

    18년 전 고교 졸업장만 들고 군문을 두드렸던 해군 부사관이 국립대 교육대학원을 수석졸업한다.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군악대에 근무하는 빈대욱(38) 중사다. 빈 중사는 24일 제주대에서 열리는 교육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전체 수석의 영예와 함께 최우수논문상을 받는다. 석사과정 3년 동안 전과목 만점을 기록한 유일한 졸업생이다. 고교시절 교내 밴드에서 트럼본을 시작한 게 인연이 돼 1989년 해군 군악대를 지원, 이듬해 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어 왔던 음악교사의 꿈은 그를 쉼 없는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99년 2년제 대학을 마친 뒤 경남대 음악학과에 진학,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긴 산고 끝에 탄생한 논문이 ‘한국 군악대의 발전 방향에 관한 조사연구’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학위공장’ 731곳…美선 학사 5만弗

    김옥랑(62·동숭아트센터 대표) 단국대 교수가 학위를 수여받은 퍼시픽 웨스턴 대학(Pacific Western University)은 학위를 남발하는 대표적인 ‘학위 공장(Degree mill)’으로 꼽힌다. 이 대학을 포함해 미국 등에 있는 비인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파악된 박사만 해도 150여명에 달하며 석사와 학사를 포함하면 5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퍼시픽 웨스턴 대학, 최근 이름 바꿔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퍼시픽 웨스턴 대학은 학위 공장으로 알려지자 최근 ‘캘리포니아 미라마대(CMU)’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학술진흥재단 관계자는 “학위 공장은 예일, 웨스턴 등이 들어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들을 혼동하게 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면서 “퍼시픽 웨스턴이 CMU로 이름을 바꾼 것도 카네기멜론(CMU)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허울 뿐인 온라인 교육을 통해 단기간에 엉터리 학위를 수여했으며, 학비는 학사가 5만달러(한화 약 4500만원), 석사는 절반인 2만 5000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교 포함땐 1000여곳 넘어 미국의 주 교육당국이 공지하고 있는 전세계 ‘학위 남발대학’ 및 ‘비인증 학교’는 7월 6일 현재 731개에 달한다. 미국 측은 이같은 학위 공장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학사관리가 돼 있지 않은 원거리 대학’,‘전문 강의를 하지 않는 어학원’ 등을 꼽고 있다. 한 대학이 러시아, 스위스, 영국 등지에 분교를 설립하거나 미국내 분교도 각기 이름이 다른 점을 감안하면 학교수는 1000여개를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외국 학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아시아권 유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허위 과장 광고를 일삼아 학생을 모집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비인가 대학의 경우 한의학과 안내에서 ‘미국 한의사 자격증과 중국 요녕대 학위를 동시에 수여한다.’고 밝혀 왔다. 지난해 6월에는 국내에서 학위수여식을 열며 세(勢)를 과시하기도 했다. ●국내 대학 검증 맹점 이용해 학위 남발 프랑스에서 학위를 취득한 컨설턴트 김병준씨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위 공장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아 현지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편”이라면서 “학업이나 취업 경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측은 현재 국내에 이같은 가짜 학위를 능동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입장이다. 학술진흥재단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교육 당국에서 인가받는 것 이외에 대학간 상호 인정이나 일부 학과만 인정하는 사례도 있어 기준을 정하기 힘들다.”면서 “검찰 조사 등을 통해 확실히 증거가 나온 경우만 학위 등록을 취소하고 있으며, 미국측의 발표 자료를 참고용으로 자료실에 게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 사례가 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로 학위 공장이 옮겨가고 있는 만큼 해외 학위 검증 시스템 구축이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학위를 남발하는 대학들의 명단은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www.kr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세계에 우리 민화 알리고 싶어”

    “어렵게 공부한 만큼 끝까지 공부해 민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30년 전 8남매의 종갓집으로 시집 온 맏며느리가 전통예술 학사학위를 받았다. 주인공은 2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회 학점은행제 학위수여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서민자(53)씨. 그는 “어릴 때부터 품어온 미술에 대한 꿈을 펼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서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5남매의 맏이로 동생들을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23살에 결혼했지만 남편은 8남매의 맏이, 그것도 종갓집이었다. 남편은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시누이와 시동생 뒷바라지에 자녀교육이 더 급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음 한 편에서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1995년 서울 도봉구민회관에서 민화 강좌를 들은 것을 계기로 민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국내외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한국 민화작가회 감사, 전통미술대전과 한국미술제 추천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전통공예학과에서 3년 반 만에 학위를 받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10년째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 병 수발 틈틈이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아르바이트 수입을 아이들의 학비에 보탰다. 지금은 집 옥상에 15평 크기의 화실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씨의 향학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해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재과 석사과정에 등록했고, 민화로 박사학위까지 받겠다는 각오다. 다음달부터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민화 강의도 맡는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어머니는 박사… 아들은 석사

    한날 같은 대학에서 박사와 석사학위를 나란히 취득하는 모자(母子)가 있어 화제다. 19일 조선대학교에 따르면 정옥란(62·여), 이성민(29) 모자는 오는 23일 열리는 학위수여식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나란히 받는다. 공부에 있어 ‘경쟁자’이자 ‘동반자’인 이들 모자 가운데 앞서간 쪽은 ‘남북한의 어휘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어머니 정씨. 정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5년간 체신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70년 조선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잠깐 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불붙은 향학열을 식히지 못해 1997년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석사·박사과정도 차례로 거쳤다. 특히 정씨는 남편인 이강옥 조선대 경영학부 교수와 함께 중국 베이징대에서 침술사 자격증까지 땄다. 정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면서 “박사논문을 쓰면서 ‘내가 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정씨에게는 아들 이씨의 석사학위 논문이 더 값지다. 이씨는 조선대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김종삼 시인의 기독교적 상상력’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다음 학기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정씨는 “열심히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극제가 됐다.”면서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69세 회장님 대학 수석졸업

    칠순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대학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주인공은 일본계 무역회사 랜드마크㈜ 한국 본사의 구자억(69) 회장. 그는 10일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07년 한성디지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성적 최우수상을 받았다. 구 회장은 인터넷 강의로 4년간 사회복지학과 평생교육학을 복수 전공해 4.5 만점에 평점 4.5를 받았다. 역대 최고 점수다. 초등학교 동기인 박범진 총장이 구 회장에게 직접 상장을 건넸다. 한국전쟁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구 회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생계를 위해 농협중앙회에 뛰어들었다.10년 후 서울시 행정사무관 공채 시험에 합격,70년대에는 서울시 사무관으로 일했다. 그동안 3곳의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지만 그의 향학열은 식을 줄 몰랐다. 성대 대학원에 진학한 구 회장은 “복지분야의 공부를 계속해 노인요양원 운영의 꿈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18년째 복역… 독학사 4관왕 노리는 재소자 이대건씨

    18년째 복역… 독학사 4관왕 노리는 재소자 이대건씨

    “저의 꿈은 어머니께 직접 학사모를 씌워주는 겁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지난 2일 ‘제15회 독학사 학위수여식’에서 독학사학위 3관왕에 올라 특별상을 받은 이대건(가명·38)씨는 정작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1990년(당시 21살)살인·강도 등 여러 건의 죄목으로 28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18년째 복역 중이기 때문이다. 아들 대신 참석한 어머니 엄춘자(60)씨는 수여식 내내 눈물을 훔쳤다. 이날의 ‘주인공’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대견한 아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만난 이씨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다. 이씨는 2003년 경영학를 시작으로 2004년 국문학, 지난해 11월엔 영문학에 도전해 학사학위를 땄다. 영문학사 시험이 있던 날은 실내건축기사·엑셀 1급 실기시험과 겹쳤지만 이씨는 미련없이 학사시험에 응시했다. 어머니의 소원이 대학 졸업장이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장기수들 가운데 제 어머니처럼 매달 찾아와 영치금을 넣어주며 보살펴 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도 저를 위해 적금·보험에 주택청약저축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계십니다. 아버지없이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씨가 태어날 당시 집안은 유복했다. 아버지가 안양에서 여관 3개를 운영했다. 어린시절 이씨는 영화배우 고 박노식씨가 운영하던 연기아카데미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배우로서 꿈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8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가세는 급속도로 기울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이씨는 차츰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퇴학당하고, 소년원을 전전하다가 급기야 여관 투숙객을 상대로 돈을 뜯고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28년 형을 선고받았을 때 어머니는 법정에서 쓰러졌고, 앞이 캄캄해진 이씨는 입소 후에도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걸핏하면 수감자들과 싸우고 문제를 일으켜 독방을 드나드는 문제수로 전락했다. 자살까지 생각하면서 2년을 그렇게 보냈다. 이런 그를 바로잡아준 것은 바로 종교와 눈물로 가득한 어머니의 기도였다. 이씨는 법학사 학위시험도 공부 중이다. 어머니께 직접 학사모를 씌워주는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일반 반장이기도 한 그는 오는 9월에 있을 전국기능사대회에도 도전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중이다. 이 분야에서는 재작년 지방대회에서 은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출소 뒤 자격증을 내걸고 사업을 하면서 취득한 학위를 바탕으로 펀드매니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씨는 “제2인생은 자식을 위해 한없이 눈물을 흘린 어머니께 효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 대전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세상만사가 공부처럼 뿌린대로 거뒀으면”

    “세상만사가 공부처럼 뿌린 만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2일 오전 서울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5회독학사 학위수여식’. 경영학 독학사 학위 증서를 받아든 연도흠(42)씨는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17년 만이었다. 직업군인인 연씨가 독학사에 도전하게 된 것은 25살때인 1990년이었다. 노력하면 누구나 학사학위를 딸 수 있다는 소식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장을 내밀었다.4단계에 거쳐 23과목을 통과해야 하는 힘든 여정의 시작이었다.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만에 잡은 책은 낯설기만 했다. 바쁜 업무 때문에 책을 놓을 때도 많았지만, 학위를 딸 수 있다는 믿음과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단계별 시험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기를 17년. 홍안의 청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다. 연씨는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힘이 부칠 때는 쉬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내 페이스대로 걸어와서 오늘의 결실을 이뤘다.”면서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딸보다 먼저 학위를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힘겨운 과정을 마쳤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대학원 MBA(경영전문석사) 과정에 입학하는 것이다. 군에서 통신분야 준위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전역한 뒤 통신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는 “독학사 공부를 하면서 뿌리는 만큼 거둘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꼈다.”면서 “안 하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것이 좋고, 거저 얻으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쌓아간다면 독학사 학위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이라며 후배들을 위한 당부도 전했다. 우리나라 패션 일러스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경상(64·가정학)씨는 이날 최고령자로 특별상의 영예를 안았다.‘김상’이라는 예명으로 대학 강단에서 20년 이상 강의해온 그가 늦깎이 학사학위에 도전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30여년 동안 4년제 정규 대학 졸업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최고’가 됐지만 능력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 도전한 지 1년 만에 학위를 딴 그는 “공부를 통해 기대했던 것보다 몇 배나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독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11개 전공에서 모두 708명. 이로써 지금까지 배출된 독학사는 9907명으로 늘어났다. 최정식(32·컴퓨터과학)씨가 교육부장관이 수여하는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윤승규(46·국문학)씨 등 9명이 우수상을, 김경상씨 등 3명이 특별상을 받았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415년 전에 제작된 거북선(귀선·龜船)에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십중팔구는 용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머리가 아닌 용머리를 달았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1592년 6월14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전선과는 다른 거북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그 아구리로는 대포를 쏘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용, 즉 ‘신귀’가 된다는 이야기(龜變化神龜)가 있다. 아울러 조자용씨가 소장한 ‘귀선도’에 보면 “신귀는 사신(四神)과 사령(四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벽사와 길상의 상징이 되어 용왕의 사자로서도 큰 임무를 맡았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단 것은 신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통 한선(韓船)기능 전승자로 국내 유일한 고대선박 연구가 이원식(73)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소장. 백제 사신선, 통일신라 교관선, 고려 완도선 등 지난 42년동안 36건의 고대선박을 연구·복원제작해 이 방면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거북선박사 1호’라는 공식명함을 하나 더 추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영역을 쌓았다. 지난 달 실시된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그가 제출한 논문 ‘1592년 귀선의 주요 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 학위수여식은 오는 2월21일.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2006년말 현재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 등에 게재돼 있는 귀선도(龜船圖)나 정부 기관에 전시된 모형선은 ‘1795년식 거북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1592년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창제한 거북선이 아니라 203년이 지난 1795년(정조19년)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1592년에 일본군의 침략전쟁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1592년식 거북선’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아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소장이 연구한 대목이 바로 이 ‘1592년식 거북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연구의욕으로 400여년 전의 베일을 어느정도 벗겨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강아지 세마리가 먼저 나와 꼬리치며 낯선 방문자를 맞이한다. 현관 입구에는 ‘한선 기능 전승자’‘원인고대선박연구소’라는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때마침 그는 1592년식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위한 설계도, 즉 선체 선도(線圖)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선 1592년식 거북선이 1795년식 거북선과 다른 점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크기나 규모면에서 1795년식에 비해 전체적으로 30%정도 작은 것이 특징. 따라서 선체 전장의 길이가 1795년식(34.05m)보다 7m가량 작은 26.27m이고, 선체 선폭은 1795년식(9.15m)보다 1.9m 좁은 7.06m라는 것. 배 밑창에서 갑판까지의 깊이 또한 1795년식의 2.34m보다 다소 낮은 1.92m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대포의 포혈.1592년식의 경우 좌우측 각각 6개씩의 포혈이 있는 반면 1795식은 이보다 더 많은 10개씩이다. 또한 1592년식에는 없는 소구경포혈이 1795년식 거북잔등 부분에 설치돼 있다. 특히 용머리의 경우 1592년식은 대포를 발사했으나 1795년식은 유황염초를 피웠다고 했다. 아울러 1795년의 용머리 배치가 90도로 꺾인 반면 1592년식은 이보다 완만한 30∼40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1592년식에는 거북잔등에 창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했으나 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넣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 수군절도사의 일기와 장계,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전적(典籍)에 기록된 거북선의 주요수치와 기타 선박 관련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그동안 대한조선학회지 등에 발표한 거북선 관련 선행 연구논문을 활용했다. 특히 전통한선의 제1번 기본치수가 되는 ‘1592년식 거북선의 저판치수자료’ 7건을 발굴했으며 이것이 1592년 거북선 주요치수 연구의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1592년식 거북선은 언제 복원될까. 이 소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선박 복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민계식 부회장)의 사외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전통 고대선박 복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795년식 거북선과 조선통신사선 등 정밀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소장이 현재 1592년식 거북선의 선도 및 공작설계도 작업을 마무리 중이서 이르면 올 봄 실험용 모형정도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북선연구에 대한 논의는 1958년 숭실대 최영희 교수의 ‘귀선고(龜船考)에서 처음 대두되었으며 1964년을 전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소장 역시 이 무렵 한강유역과 서해안 및 남해안의 전통 한선의 조선기법을 채록하면서 고대선박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공고 4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공군사관학교 조종간부후보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기계담당 공무직으로 1963년 입사했지만 고대선박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1965년에 ‘국방사학회’에 가입한 뒤 그해 첫 논문인 ‘귀선의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내친 김에 ‘원인(元仁)고대선박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69년에는 은사로 모시는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작고)와 함께 아산 현충사에서 최초의 거북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1971년에는 인천대림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원형의 2분의1 1795년식 거북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북선은 극영화 ‘이순신’(김진규 감독)에 등장했다. 이후 거북선 복원에만 10여차례, 신라시대 전선(戰船), 장보고 무역선, 백제 사신선, 완도 고려선, 조선통신사선 등 30여 척의 고대선박을 복원, 박물관 등에 전시했다. 아울러 ‘한국의 배’‘고대선박 발달사’ 등 4권의 저서를 냈고 논문은 수십편을 발표했다. 그는 뒤늦게나마 정식 학위를 취득하려고 검정고시와 독학사 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다.2004년 석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일주일에 2∼3일씩 부산과 용인을 오가며 노력한 끝에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는 기존의 1795년식 거북선은 1592년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하고 이에 따른 후속 작업은 매우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우리의 전통 한선에 대한 수정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서울 출생 ▲50년 경기공고 4년 재학때 학도병 입대 ▲65년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설립 ▲69년 문화공보부 현충사 귀선 고증위원 ▲85년 한국과학사학회 정회원 ▲92∼96년 해군사관학교 해저유물발굴단 자문연구위원 ▲98년 대한조선학회 정회원 ▲2001년 독학사 검정고시 합격, 한국해양대학 장보고연구소 연구원 ▲04년 해양대 공학석사 ▲06년 공학박사 # 주요 상훈 전통한선기능 전승자(노동부장관 지정), 대통령 표창(01년, 한선기능전승 유공) 등 # 주요 작품실적 현충사 거북선(69년), 중앙정보부·해군사관학교 거북선(71년), 미국EXPO 거북선(84년) 등 수십여 작품. 그외 장보고 전선, 조선통신사선, 완도 고려선, 신라 교역선, 백제사신선, 통나무쪽배 등 30여 작품제작
  • 박완서씨 서울대서 名博학위 받는다

    소설가 박완서(75)씨가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서울대는 그동안 외국 국가원수나 정치가, 기업가 등에게 한 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 왔다. 명예박사 추대위원장인 이태수 대학원장은 “국내 문인(文人)가운데 처음으로 박완서씨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면서 “각 분야에서 추천을 받아 심의한 결과 박씨가 서울대와의 인연이나 문학적 업적 등을 고려할 때 대상자로 적임이라고 판단돼 학위를 수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전란기를 겪으며 중퇴했다. 박씨가 입학하던 해 서울대 신학기는 6월에 시작됐고 곧 바로 전쟁이 터진 것이다. 박씨는 “수복 뒤에도 얼마간 학교를 다니긴 했는데 금세 그만뒀기 때문에 학창생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면서 “학교 측의 배려를 거듭 외면하기 어려워 염치 불구하고 받기로 했다.”고 소감을 간단히 말했다.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은 17일 오전 11시 서울대 본부에서 열린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학위과정 수업 1년에 열흘

    가짜 석·박사들은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1년에 한 차례씩 꼭 ‘러시아 V대 동문 연주회’를 열었다.R음악원이 고용한 비음대 전공 통역자들이 쓴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학위등록은 손수 했다.●러시아어 모르는 러시아 박사 러시아 H대,V대의 가짜 석·박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가짜 학위인 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수강생 중 일부는 허술한 학사관리에 의심을 품고 과정을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수강생마저 의심을 품게 된 것은 학사관리가 지나치게 허술했고 수학과정이 사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다.1년에 10일 정도의 수업은 R음악원에서 했고, 그나마 국내 음악연주회 안내책자를 내면 레슨을 면제 받았다. 불과 10∼20쪽의 논문 발표, 학위수여식 모두 국내에서 가능했다.10여일 동안의 러시아 방문도 ‘관광’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대학측은 영어 학위증에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쓴 것과 달리 러시아어 학위증에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적시했다.하지만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를 등록할 때에도 이런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논문심사·학위수여 모두 국내에서 논문대필도 이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가짜 석·박사들은 통역을 두고 논문을 발표했다. 일부는 음악원에 고용된 비음악 전공 통역인에게 학위논문을 쓰게 했다. 일부 논문심사에서는 해당 전공이 아닌 교수들이 논문을 심사했다. 러시아 V대 Z총장은 입국할 때 학위증서 용지를 갖고와 R음악원에서 서명한 뒤 국내 호텔 식당에서 학위수여식을 열었다. 일부 가짜 석·박사들은 졸속으로 학위를 받아놓고도 “학위수여식을 졸속으로 하면 안 된다.”며 항의해 러시아 현지로 가서 다시 학위를 받기도 했다. 가짜 학위취득을 알선한 R음악원 대표 도모씨는 전국 음대 교수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과 교향악단 명단, 화려한 안내 책자로 음악인들을 유혹했다.가짜 석·박사 일부는 다른 음악인을 소개하고 도씨로부터 소개비, 강사료 등을 받기도 했다. 끌어들인 사람 중에는 가짜 석·박사들의 학교 제자가 포함됐다. 이렇게 만든 ‘학맥’으로 이들은 이른바 한국러시아음악협회를 결성하고, 정기모임을 가지며 불만을 표시하는 다른 음악인들을 따돌리기도 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학위 검증 여전히 ‘구멍’

    러시아 음대의 국내 분교로 위장한 음악원에서 연간 10일 정도 수업을 받고, 현지를 관광한 것만으로 학위를 받은 가짜 석·박사 120여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학위 수여식에는 러시아 유명 음대 총장이 직접 나섰고, 가짜 석·박사들은 국내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동문음악회까지 열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영렬)는 19일 국내 음대 졸업생과 교수 등 120여명을 모집해 각각 수천만원씩, 총 25억여원을 받고 러시아 V음대 등의 학위증을 발급해 준 혐의로 서울 강남의 R음악원 겸 유학알선업체 대표 도모(51·여)씨를 구속기소했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도씨는 1998년 R음악원을 설립하고, 영국 쪽 대학을 사칭해 가짜 학위를 발급할 계획을 세웠다. 최종적으로는 상대적으로 학사관리가 허술한 러시아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박사 학위 발급에 적극 가담한 V음대 Z총장은 러시아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방침이다.Z총장은 교수 1∼3명과 함께 한국을 찾아 강의를 하거나 학위수여식을 주도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정상적인 수업료의 두배를 받은 뒤 도씨와 절반씩 나눠 비자금을 조성했다. 대학 당국은 이들이 낸 등록금을 기부금으로 회계처리했다. 가짜 박사 학위를 이용해 교수로 임용된 박모씨 등 2명을 비롯해 5명은 불구속 기소됐고, 박사 학위를 받은 나머지 16명은 벌금 700만∼10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검찰은 도씨의 학원에서 러시아 H음대의 가짜 석사학위증을 취득한 100여명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가짜 석사들은 학기당 400만원씩, 가짜 박사들은 학기당 500만원씩 수강료를 내고 R음악원에서 연간 10일 정도 수업을 받았다. 가짜 석·박사들은 평소 낮은 학력으로 석사나 박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부담을 느껴 가짜 학위취득의 유혹에 빠졌다고 검찰에서 털어놓았다. 이 외사부장은 “가짜 박사학위가 그대로 등록될 수 있었던 것은 별다른 확인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학위등록을 할 때 외국대학에서 수학한 증명원이나 출입국 기록 등을 제출토록 하는 등 검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주한 영국대사 초청 강연

    한양대 대학원(대학원장 여홍구)은 24일 오전 10시30분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리는 학위수여식에 워릭 모리스 주한영국대사를 초청하여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능력함양’을 주제로 강연을 듣는다.
  •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지난 17일 오전 국민대 학위수여식장. 검은 박사복과 박사모를 차려입은 서찬교(63) 서울 성북구청장이 대학 관계자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오늘은 구청장이나, 동문회 부회장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앉을 수 없죠. 강단 의자에 앉겠습니다.”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특별한 대우’를 거절했다. ●‘금연 정책´으로 박사학위 받아 서 청장은 이날 늦깎이 박사가 됐다. 환한 웃음으로 가족,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주경야독으로 보낸 지난 20년을 되돌아봤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을 못가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욕망이 늘 요동쳤지요.” 1963년 서울시 9급 공무원으로 시작,‘공무원의 꽃’이란 1급 관리관까지 올랐지만 늘 학문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국민대 법학과와 명지대 지방자치대학원,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에 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국민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또다시 밤을 밝혔다. 서 청장은 “학문연구와 공직생활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학문적 연구가 정책 수립의 밑거름이 되고, 정책경험이 이론을 풍성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박사논문 ‘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연구’도 서 청장이 2002년 7월 구청장에 취임한후 열정적으로 추진한 ‘담배연기 없는 성북 만들기 사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첫 업무보고를 받는데 보건소장이 ‘우리 성북구가 다른 지역보다 20세 이상 성인남성 흡연율이 1% 높다.’고 발표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금연실천팀을 구성해 흡연율을 감소시킬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죠. 구민의 건강을 책임지는게 구청장 역할 아닙니까.” 당시 자치구가 금연정책을 펼쳐본 적이 없는터라 국내에는 자료가 없었다. 금연팀은 일본과 싱가포르의 금연거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성공사례를 모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3S(Stop Smoking in Seongbuk)운동’선포식을 가졌다.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 칠레대사와 국내 최초의 여성 금연운동가 정광모 회장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슈미트 대사가 직접 찾아와 홍보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대사 부인이 애연가였는데 어느날 금연을 결심,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후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서 청장도 15년간 피우던 담배를 1978년 정초에 내던졌다. 흡연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흔들렸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자고 되뇌었다.28년간 그 약속은 깨지지 않고 있다. ●흡연율 감소·금연체험 홍보관 건립 금연캠페인에 주민들이 서포터스로 참여하는 등 호응이 이어졌다. 이에 구청사와 동청사 건물을 ‘절대금연 건물’로 지정하고,‘금연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최초로 공포했다. 또 성신여대 입구 ‘하나로 거리’를 금연홍보 거리로 조성했다. 그 결과 2004년 8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ISO9001:2000)을 받았다. 성북구가 ‘자치구 금연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은 셈이다. “담배소매인 단체가 처음에 많이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면 공청회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냈죠.” 성과는 눈부셨다. 금연사업전 56.4%이던 성인남성 흡연율이 2004년 42%로 감소했다. 전국 평균보다 8%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그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30% 수준으로 줄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 길음 뉴타운에 전국 최초로 금연체험 홍보관을 건립하는 등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다. 서 청장은 ‘건강하고 행복한 성북구’를 꿈꾸며 24시간 달리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3년 경남 고성 ▲학력 국민대 졸, 행정학 박사 ▲약력 공무원 9급 임용, 서울시 비서실장, 보건위생과장, 총무과장, 양천·구로·은평·강동 부구청장, 송파구청장, 지방관리관(1급) 명예퇴직. 황조근정훈장. 온누리교회 장로 ▲가족 강혜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매운탕 ▲주량 마시지 않음▲좌우명 언제나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만남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지난 17일 오전 국민대 학위수여식장. 검은 학사복과 학사모를 차려입은 서찬교(63) 서울 성북구청장이 대학 관계자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오늘은 구청장이나, 동문회 부회장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앉을 수 없죠. 강단 의자에 앉겠습니다.”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특별한 대우’를 거절했다. ●‘금연 정책´으로 박사학위 받아 서 청장은 이날 늦깎이 박사가 됐다. 환한 웃음으로 가족,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주경야독으로 보낸 지난 20년을 되돌아봤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을 못가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욕망이 늘 요동쳤지요.” 1963년 서울시 9급 공무원으로 시작,‘공무원의 꽃’이란 1급 관리관까지 올랐지만 늘 학문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국민대 법학과와 명지대 지방자치대학원,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에 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국민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또다시 밤을 밝혔다. 서 청장은 “학문연구와 공직생활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학문적 연구가 정책 수립의 밑거름이 되고, 정책경험이 이론을 풍성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박사논문 ‘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연구’도 서 청장이 2002년 7월 구청장에 취임한후 열정적으로 추진한 ‘담배연기 없는 성북 만들기 사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첫 업무보고를 받는데 보건소장이 ‘우리 성북구가 다른 지역보다 20세 이상 성인남성 흡연율이 1% 높다.’고 발표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금연실천팀을 구성해 흡연율을 감소시킬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죠. 구민의 건강을 책임지는게 구청장 역할 아닙니까.” 당시 자치구가 금연정책을 펼쳐본 적이 없는터라 국내에는 자료가 없었다. 금연팀은 일본과 싱가포르의 금연거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성공사례를 모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3S(Stop Smoking in Seongbuk)운동’선포식을 가졌다.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 칠레대사와 국내 최초의 여성 금연운동가 정광모 회장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쉬미트 대사가 직접 찾아와 홍보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대사 부인이 애연가였는데 어느날 금연을 결심,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후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서 청장도 15년간 피우던 담배를 1978년 정초에 내던졌다. 흡연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흔들렸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자고 되뇌었다.28년간 그 약속은 깨지지 않고 있다. ●흡연율 감소·금연체험 홍보관 건립 금연캠페인에 주민들이 서포터스로 참여하는 등 호응이 이어졌다. 이에 구청사와 동청사 건물을 ‘절대금연 건물’로 지정하고,‘금연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최초로 공포했다. 또 성신여대 입구 ‘하나로 거리’를 금연홍보 거리로 조성했다. 그 결과 2004년 8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ISO9001:2000)을 받았다. 성북구가 ‘자치구 금연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은 셈이다. “담배소매인 단체가 처음에 많이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면 공청회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냈죠.” 성과는 눈부셨다. 금연사업전 56.4%이던 성인남성 흡연율이 2004년 42%로 감소했다. 전국 평균보다 8%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그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30% 수준으로 줄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 길음 뉴타운에 전국 최초로 금연체험 홍보관을 건립하는 등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다. 서 청장은 ‘건강하고 행복한 성북구’를 꿈꾸며 24시간 달리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3년 경남 고성 ▲학력 국민대 졸, 행정학 박사 ▲약력 공무원 9급 임용, 서울시 비서실장, 보건위생과장, 총무과장, 양천·구로·은평·강동 부구청장, 송파구청장, 지방관리관(1급) 명예퇴직. 황조근정훈장. 온누리교회 장로 ▲가족 강혜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매운탕 ▲주량 소주 마시지 않음▲좌우명 언제나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만남
  • 나재암 종로구 의장 ‘석사모’ 썼다

    나재암 종로구 의장 ‘석사모’ 썼다

    서울 종로구의회 나재암 의장이 지난달 26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만학의 결실을 본 나 의장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도시행정을 전공했다. 특히 나 의장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서울시 종로구의 관광특구화 방안에 관한 연구’는 학위수여식에서 최우수논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나 의장은 공로상도 함께 받았다. 나 의장은 논문을 통해 지방의회 의원으로 경험한 현장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종로구 지역에 도시형 관광특구화 모형과 종합관광지내 관광특구 모형을 혼합한 새로운 모델로서의 관광특구 지정을 제시했다. 한편 나 의장은 가을학기부터는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에 진학, 학업을 이을 예정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0여년만에 받은 졸업장

    “이제 당당한 이화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26일 이화여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이현숙(사진 왼쪽·48·기독교학과)씨와 김선금(오른쪽·46·사학과)씨는 제적된 지 20여년 만에 모교에서 졸업장을 받아 기쁘다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이화여대는 2004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된 이씨와 김씨에게 우리나라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이씨와 김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졸업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민주화를 외치며 학내를 뛰어다녔던 대학시절이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이씨는 80년대초 동아리연합회장으로 활동하다 제적됐으며 졸업한 뒤 10여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중·고생의 자녀를 둔 이씨는 “그동안 복학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사회생활과 육아에 쫓겨 지금은 평범한 엄마가 됐다.”면서 “20년이 흘러 졸업장을 받게 되니 격동 속에 보냈던 학창시절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와 함께 졸업장을 받은 김선금씨는 83년 학내 사복경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구속됐다. 이후 성남·안양 등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10여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늘 경찰에 쫓기는 긴장된 생활로 건강이 악화돼 현재는 운동을 중단했다. 김씨는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대립하고 투쟁했던 80∼90년대와는 달리 이제 국민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면서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학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강릉 잠수함 간첩’ 이광수씨 석사

    1996년 9월 강원도 강릉 앞바다로 잠수정을 타고 침투하다 유일하게 생존한 이광수(41·해군 군무원 4급)씨가 19일 경남대에서 열린 2004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안보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씨는 2003년 경남대 법행정학부를 졸업한 뒤 2년 6개월간 행정대학원에서 주경야독해 학위를 땄다. 해군교관으로 근무하며 진해에 살고 있는 이씨는 이날 부인 임은경(33)씨, 딸 2명 등과 함께 수여식에 참석했다.
  • 쉬어가기˙˙˙

    미국프로농구(NBA)의 ‘공룡센터’ 샤킬 오닐(33·마이애미 히트)이 26일 LA레이커스의 옛 홈구장인 ‘더 포럼’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피닉스대학 학위수여식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AP통신이 보도. 오닐은 “농구공을 놓고 현실로 돌아갈 때 이력서에 써넣을 것”이라며 “스포츠는 나에게 언제나 동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이것은 실제 삶”이라고 말했다. 오닐은 직장인을 위해 개설된 온라인 코스를 이수했으며 레이커스 시절인 지난해에는 캠퍼스에서 일주일에 며칠씩 수업에 출석하기도.
  • ‘이건희 회장 고대사태’ 학생들 비판 언론사마다 미묘한 차이

    관련자들로선 곤혹스러웠겠지만, 지난 주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을 둘러싸고 고려대에서 벌어진 소동은 언론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인데다 어렵다는 신문 시장에서 최대 광고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일 수여식 뒤 3일 고대 보직교수들의 사퇴 선언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3·4일자 신문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큰 틀에서 보자면 학생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사건 추이와 다양한 반응을 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점들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는 4일자 9면 ‘이건희 명박 후폭풍’ 기사에서 부제목으로 ‘좌파단체 학생들이 주동’,‘경찰, 민노당원 참여 조사’를 나란히 배치했다. 조선의 정치적 지향점을 감안해보면 포인트를 어디다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인터넷판 제목은 선정성에서 단연 압권이었다. 그러나 사설에서는 균형을 갖췄다. 같은 날짜 사설 ‘이건희 회장 학위 수여식의 일부 고대생’에서 “식장 주변에 피켓라인을 만들어 자신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으면서도 “물론 무노조 경영과 편법상속을 둘러싼 논란같은 삼성의 ‘그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은 기사를 두드러지게 전진 배치했다.3일자 2면에 기사를 배치하면서 부제목으로 ‘기념관 건립 기부금 400억이 모자랐나‘로 뽑은데 이어 4일자에는 1면 하단에 고대 보직교수들의 사의 표명 소식을 싣고 10면에 학내외 반응을 다뤘다.‘대학의 지성 고작 이 수준인가’라는 4일자 사설도 다른 신문들과 달리 사설 가운데 첫번째 꼭지로 다뤄졌고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비난의 톤도 한층 끌어올렸다. 동아는 삼성과 고려대 사이에 끼어있는 관계 때문인지 조선·중앙과는 대별되는 태도를 보였다.3일자 2면에 배치된 기사에서는 학위 수여식 사진을 크게 배치하고 학생들의 시위 사실은 기사 말미에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그러나 4일자에서는 8면에 3꼭지를 할애해 다양한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기사의 주요 제목으로 굵게 뽑힌 “불과 60여명이 학교 명예에 먹칠”이 눈길을 끌었다.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는 강조로 보였다. 사설은 내지 않았다. 이에 반해 한겨레·경향신문의 기사는 학생들과 학교의 문제점을 모두 지적했다. 사설을 내지 않은 한겨레와 달리 경향은 이 문제를 사설로 다뤘다.4일자 ‘유감스러운 고려대의 명예학위 저지 소동’에서 학생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비판한데 이어 대학들의 명예박사학위 수여 기준과 우리사회 전반의 기부문화 문제를 짚으면서 대학의 지성적인 의사소통을 주문했다. 서울신문은 4일자 3면에 ‘고개숙인 고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태의 전말과 엇갈리는 반응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같은 날짜 사설 ‘세계 고대에서 일어난 일’에서는 이 회장을 ‘탁월한 경영인’이라고 평가한 뒤 학생들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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