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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반 일본에서는 유럽의 르네상스처럼 고대 문화를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가 모범으로 삼은 고대가 그리스·로마라면, 일본이 본받고자 설정한 고대는 아스카(飛鳥·538∼710)와 나라(奈良·710∼798) 시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스카와 나라 시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던 시기인 만큼 이 시기 일본 미술에서는 당연히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관 테마전-일본 미술의 복고풍’은 일본의 미술에서 보이는 한국 문화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이다. 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16세기 이후의 일본 미술품 30점이 출품되었는데, 아무래도 ‘복고풍’이 커다란 흐름을 이루던 20세기 초반의 근대 미술 작품들이 가장 눈길을 끈다. 요시무라 다다오(1898∼1952)의 ‘쇼토쿠 태자’(1936)는 일본의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성덕태자·573∼621)와 부인 아치바나 오이라쓰메를 그렸다. 그림 속 쇼토쿠 태자의 앞에는 그의 스승인 고구려 승려 혜자(?∼623)의 이름이 새겨진 까치모양의 향로가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모티브가 사용된 의상을 입은 다치바나가 무궁화를 들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선승혜 학예연구사는 “무궁화는 최치원이 신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고 했을 만큼 우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을 통털어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꽃”이라면서 “화가가 1930년대 당시 한국을 상징하던 무궁화를 소재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토 세이이치(1893∼1984)가 조각한 ‘훈염(薰染)’의 상체는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과 판박이 같다. 가만히 보면 연꽃 대좌도 삼국시대 금동불입상의 그것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살지 않는 호랑이는 아스카시대에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로 일본에 수용된 이후 채색 도자기에서도 인기있는 소재였다. 호랑이는 이번에 출품된 17세기 말 가키에몬 양식과 구타니 양식의 접시에도 등장한다. 호랑이는 수출용 도자기에도 중요한 문양으로 그려져 유럽까지 전파되었다. 이밖에 전시회에서는 김명국의 달마그림을 연상시키는 일본 선화의 선구자 후가이 에쿤(1568∼1654)의 ‘달마도’, 안견 화풍을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노 단유(1602∼1674)의 ‘소상팔경도’, 조희룡과 구별되는 나카바야시 지케이(1816∼1867)의 ‘매화서옥도’도 볼 수 있다. 선승혜 학예사는 “그동안 일본실 테마전이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미술의 모습을 살폈다면 이번에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것을 모았다.”면서 “앞으로 일본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실을 꾸며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 학예사는 13일 오후 4시부터 현장에서 특별 전시 설명회도 갖는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시회는 오는 11월2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내륙아시아의 유목문화에 대한 한국과 몽골의 공동 연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만 알고 있던 흉노(匈奴)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및 몽골국립중앙박물관과 ‘초원의 대제국, 흉노’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 29∼30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갖는다. 중앙박물관은 1997년부터 흉노유적인 모린톨고이를 비롯하여 몽골에서 9차례에 걸쳐 지표 및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발굴유물로 3차례 전시회도 가졌고 연구서도 펴내는 등 지속적으로 몽골의 두 기관과 협력해 왔다. 이렇듯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장은정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고구려의 기마문화가 흉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장 연구사는 “현재로서는 고구려와 흉노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두 지역 간의 밀접한 관계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과 고조선 멸망 이후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북방계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찍이 고조선은 ‘후한서’에 흉노의 왼팔로 묘사될 만큼 흉노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또 위만조선이 BC 109년에 말 5000필을 한나라에 보냈다는 ‘한서’의 기록처럼 고조선인이 말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민과 긴밀한 관계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윤형원 학예연구관은 “이번 심포지엄은 몽골 유목문화의 큰 주제이자 우리 문화와의 비교연구 대상인 북방의 스키타이, 흉노, 돌궐, 거란, 몽골을 주제로 세계 각국이 기획하여 내놓은 유목문화 전시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라면서 “앞으로 우리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북방 유목문화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전시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흉노는 중국 북쪽에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전기까지 유목대제국을 유지했던 북방유목민족이다. 고고학적으로 흉노의 자취는 바이칼호수 일대와 몽골, 중국 동북지방에 폭넓게 남아 있으며 남부시베리아와 알타이,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이들의 존재는 BC 4세기부터 뚜렷한 실체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와 대치하면서 적지 않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전곡 구석기축제’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16회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에는 모두 1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1993년 5월5일. 당시 참석한 사람은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를 포함해도 200명을 넘지 않았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관람객 100만명 몰려 역대 최다 당시 서울대박물관 학예사로 현장책임을 맡았던 배기동 한양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고고학자들과 지난 3일 구석기축제를 찾았다. 발굴현장의 임시사무실을 개조하여 유적관을 만드는데 사재를 털고, 그 주변에서 옹기종기 첫번째 축제를 열었던 이들은 사적으로 지정된 77만 8296㎡(23만 5847평) 대부분이 축제장으로 탈바꿈한 모습에 감회가 적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고고학 체험행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대중가수가 나서는 축하공연이 축제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고고학을 주제로 하는 축제가 이만큼 규모가 커졌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쉬움도 굳이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발굴단장으로 전곡리 발굴을 이끈 삼불(三佛) 김원룡 선생의 기념비가 퇴락해 가고 있는 모습도 그랬다. 기념비는 1994년 11월14일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유골이 뿌려진 장소에 세워졌다. 기념비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구석기축제 안내지도를 보면서 연천군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것도 고고학자 모두의 스승을 그렇게 대접한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었을 것이다. ●유적발굴 학자들 소홀한 대접 아쉬워 개막식에서 1978년 4월 한탄강에 놀러갔다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처음 발견한 그레그 보웬 당시 미공군 상병의 이야기를 5분 이상이나 영웅담처럼 펼쳐 놓은 것은 그래서 고고학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올해 주먹도끼가 발견된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이후 주먹도끼의 진가를 알아 보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전차지뢰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전곡을 오늘날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메카로 받돋움시킨 우리 고고학자들의 노력은 너무나도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같은 차원에서 전곡리의 오늘이 있게한 공로자의 한 사람인 고 임종태 씨를 기리는 데도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겸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는 당시 발굴현장의 인부반장으로 1979년 가을부터 지난해 4월 8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곡리 유적 보존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문화훈장이나 문화유산상처럼 공로에 걸맞은 상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고학계의 건의에도 정부는 고작 표창장 한장을 주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교육적 프로그램 늘려야 축제 더 빛나 배기동 교수는 “인간적인 체취와 교육적인 내용이 당장은 인기가 없다고 해서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해야 축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구석기시대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연천은 농업도시인 만큼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농업과 환경을 연결시켜서 관람객들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충고했다. 연천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경새재 ‘꽃밭서덜’을 아시나요

    문경새재 ‘꽃밭서덜’을 아시나요

    경북 문경의 옛 지명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희(聞喜)다. 영남의 관문격인 고을인 탓에 항상 한양쪽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데서 유래된 지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조령천을 따라 뚫린 새재(조령·鳥嶺)는 문경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유일한 길이었다. 과거길에 올랐던 수많은 선비들이 장원급제의 소망을 안고 걸었던 길이자 고향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선비들뿐이랴. 보부상 등 민초들도 이런저런 소망을 품고 새재를 넘나들었을 터. 길모퉁이 돌부리 하나에도 그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최근 한반도대운하의 낙동강 구간 관문이 문경시 마성면 일대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땅값이 상승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희망도 생겼으니, 과연 지명대로 된 것일까. 계절은 우수를 지나, 긴 겨울의 끝이자 새봄의 시작인 정월대보름까지 와있다. 이번 주말엔 문경새재 트레킹 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소망을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길에 돌을 세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꽃밭서덜과 장원급제를 빌었던 책바위가 동행한다. # 새도 구름도 쉬어 가는 곳…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조령산 마루를 넘는 가장 높고 험했던 고개다. 조선 태종 때 이후 근 500여년간 한양과 영남을 잇는 제1의 대로이기도 했다. 추풍령이나 죽령 등의 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죽령길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길은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비들조차 멀고 먼 이 길을 휘휘 돌아갔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이란 믿음이 조선 팔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문경새재의 총길이는 6.5㎞. 흙길이어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넓어 겨울철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 맞춤하다. 새재가 소망이 이루어지는 길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꽃밭서덜’(서덜은 ‘너덜’의 사투리)과 ‘책바위’다. 먼저 꽃밭서덜을 찾아나섰다. 새재가 시작되는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나 1.2㎞ 정도 오르면 조령원터가 나온다. 거대한 자연석으로 돌담을 쌓은 조선시대 국영 여관이다. 원터에서 주막과 팔왕폭포, 조곡폭포 등을 줄줄이 지나면 제2관문 조곡관에 닿는다. 꽃밭서덜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조령산을 버리고 주흘산 등반로로 갈아탔다. 꽃밭서덜까지는 40분 거리. 양지바른 새재길과 달리 등산로 대부분이 음지여서 군데군데 눈길이 이어졌다. 험하지는 않은 편. 얼음 아래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 뭇사람들 소망이 차곡차곡 쌓인 ‘꽃밭서덜´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조곡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곡 양옆으로 드문드문 쌓여 있는 돌탑이 꽃밭서덜에 가까워졌다고 전하는 듯하다. 몇 개의 돌탑을 지나 급경사를 오르자 잔뜩 눈을 이고 선 돌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단한 규모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정성스레 돌을 쌓고 소원을 빌었을까. 등산로 오른편 50여m 위쪽에서부터 쌓아 내려온 돌탑은 길을 벗어나 계곡까지 이어져 있다. 들쑥날쑥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았으니 조형미가 빼어나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하나하나 공들여 쌓았을 사람들의 진정성이 오롯이 느껴졌다. 누가 언제부터 이곳에 돌탑을 쌓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근대사 이전에 형성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경새재박물관 안태현 학예사는 “10여년 전 지역명에 관한 조사를 하던 중 70∼80대 노인들에게서 예전부터 꽃밭서덜이란 이름이 있었다고 확인했다.”며 “근대사 훨씬 이전부터 형성됐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정했다. 주변이 너덜지대(암석들이 절편모양으로 조각난 지역)여서 쌓기 좋은 돌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게다. 수십년 된 물박달나무가 진달래 등 야생화와 어우러지면서 ‘꽃밭서덜’이라는 예쁜 이름도 얻었다. 돌탑 사이사이 소복하게 쌓인 새하얀 눈이 운치를 더해 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눈덮인 조령산 모습도 일품. # 장원급제길에 묵묵히 자리잡은 ‘책바위´ 다시 조곡관으로 내려와 솔숲 뒤편의 조곡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제3관문 조령관으로 향했다. 조곡관에서 600m쯤 오르면 도로변에 자연석을 깎아 새겨놓은 문경새재민요비를 만난다. 이곳을 지나 이진터 장원급제길에 오르면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이다.‘책바위’는 3관문 500m 아래 장원급제길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쯤에서 책바위에 얽힌 옛이야기 한 자락. 옛날 새재 인근에 살던 부자가 천신만고 끝에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귀한 아들이 까닭없이 시름시름 앓게 되자 부자는 용한 도사를 찾아가 물었다.‘담장을 헐어 책바위 뒤에 쌓아 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라.’는 도사의 말을 들은 아들은 집의 돌담을 헐어 3년 동안 책바위까지 날랐다. 돌을 지고 나르느라 많은 운동을 한 덕에 절로 몸이 튼튼해졌고, 공부를 열심히 해 장원급제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새재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하나둘 찾아와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오늘날에도 해마다 입시철이면 학부모 등 하루 평균 400명 정도가 이곳을 찾아 합격을 기원한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은 책바위는 지름 2m, 높이 2m 크기의 돌탑이다. 전설을 토대로 10년 전쯤 조성됐다. 뒤편 장대 위에 기러기 모양의 새를 나무로 깎아 만든 20여점의 솟대는 희망과 경사를 상징한다. 내친걸음 새재약수터까지는 가봐야 한다. 책바위에서 5분 거리. 조령관 좌측 길가에 자리 잡은 약수터는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예전엔 한양길을 재촉하던 선비와 길손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약수다. 한 바가지 퍼 마시니 산행으로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4월부터 매주 보름달이 뜨는 주말이면 ‘문경새재 달빛사랑 걷기대회’가 열린다. 쏟아지는 달빛 속에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다 보면 희망이 절로 샘솟을 듯하다. 글 사진 문경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나들목→문경새재. ▶맛집 새재할매집(571-5600)은 40년 가까이 새재를 지킨 맛집이다. 더덕정식, 약돌돼지석쇠구이 등이 주메뉴.1만원. 소문난식당(572-2255)은 묵조밥 잘하기로 소문났다. 도토리묵조밥 6000원, 청포묵조밥 8000원. ▶머물 곳 문경관광호텔 571-8001 문경새재파크 571-6069 문경새재관광호텔 553-8000 ▶유용한 전화번호 문경시 문화관광과 550-6394 문경새재관리사무소 571-0709 문경새재박물관 550-6423 문경시문화원 553-2571.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6)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6)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내가 왕궁리 오층석탑이 백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이 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토로한 사람은 어느 서정시인이 아니라,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입니다. 그는 지난해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정년퇴직하기에 앞서 미술사학과 학생들을 이끌고 백제 지역을 답사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백제 무왕이 새로운 도읍으로 점찍어 두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던 전북 익산의 왕궁리 유적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는 갑자기 박수가 터졌다고 합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차창 밖으로 스치는 조형에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는 것이지요. 그 박수소리는 미(美)에 대한 찬사였고, 이 탑이 백제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오층석탑은 건립 시기를 두고 이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백제시대설과 통일신라 초기설, 그리고 고려시대 초기설이 엇갈렸지요. 그동안에는 ‘옛 백제 영토 안에서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이라는 설명이 대세였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 현장의 안내판에도 ‘이 탑은 전형적인 백제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높이는 8.5m이다.…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 전 관장은 초지일관 백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탑을 처음 본 것이 1986년, 두 번째가 1989년, 세 번째가 1989년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발표한 글에서 그는 “처음 보았을 때 백제 것임을 의심치 않았고, 두 번째 백제 것임을 재확인하였으며, 세 번째 나의 감각적 파악을 실증하고 싶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는 이후 ‘감각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왕궁리 오층석탑에 접근해 조목조목 백제석탑으로 추정하는 이유를 제시하게 됩니다. 나아가 이 탑은 나름대로 백제석탑의 완성으로, 통일신라의 감은사탑에 직접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지요. 그의 주장에 결정적으로 신빙성을 높여준 것은 왕궁리 탑에 모셔져 있던 사리장엄이었습니다.1965년 탑을 해체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돼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었지요. 그런데 2003년 송일기 전남대 교수는 지붕돌에서 나온 금강경판을 중국과 일본에 있는 모든 금강경사경과 비교검토해 “백제 무왕 때 제작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듬해에는 한정호 통도사 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가 금제사리합의 내합에 새겨진 구름문양과 연꽃문양이 결합된 연화서운문(蓮花瑞雲紋)이 부여 능산리 고분의 금동산형투각장식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들어 6세기 중반∼7세기 전반 백제시대 것이라고 주장하지요. 무엇보다 왕궁리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왕궁리 공방터에서 나온 도가니와 다량으로 출토된 금세공품의 성분과 제작 기법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왕궁리 오층석탑의 사리장엄은 백제의 장인집단이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왕궁리 탑의 사리함과 금강경판은 각각 동판과 은판에 금으로 도금한 것인데, 금과 수은을 2대8로 섞은 아말감을 쓴 기법이 바로 공방터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익산 미륵사터 서탑 말고도 백제시대 석탑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1400년이 지나, 그것도 젊은이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낼 만큼 아름다운 석탑이 제 나이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dcsuh@seoul.co.kr
  • “지도자 이산의 참모습 알리고파”

    조선시대 정조(正祖)대왕이 축성한 수원 화성 등 문화재 복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학예사가 어린이들을 위한 정조대왕 전기를 펴냈다. 경기 수원시 화성사업소 학예연구사 김준혁(41)씨는 25일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지도자 정조의 참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책 제목은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이다. 이산은 정조대왕의 본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올해 5월 탈고했지만 책을 만드는 작업에 시간이 걸리면서 공교롭게 정조대왕을 다룬 드라마 ‘이산’의 인기가 한창일 때 책이 나왔다. 164페이지 분량의 책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대리청정, 정조의 개혁정치, 조선 최강의 부대 장용영, 화성 능행 등 정조의 사상과 발자취를 보여주는 주제로 꾸며져 있다. 특히 ‘정조는 숭유억불 시대에 왜 용주사를 만들었을까?’,‘정조는 과연 독살되었는가?’ 는 등 정조시대 당시 논쟁거리였던 14가지 이야기를 구성해 논술교육에 활용하도록 했다. 본문 중간마다 어려운 단어를 풀이해 놓아 청소년들이 쉽게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거중기와 장용영 훈련 모습을 그린 삽화,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과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 등 사진도 삽입해 글을 읽는 재미를 높였다. “정조의 사상과 정책이 서양보다 앞선 것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습니다.” 정조대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정조에 대해 조예가 깊은 김씨는 “정조는 흔히 문예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양반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제도를 백성을 위한 제도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혁신적인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성인들을 위한 정조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김씨는 ‘이순신’,‘전태일’,‘알기 쉬운 화성이야기’,‘수원화성 행궁’을 썼으며 공저로는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우리고장 수원’,‘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강좌 한국사’ 등이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광주, 내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 마련

    광주시가 내년 상반기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를 마련하고, 이를 직접 운영한다. 6일 시와 시립미술관에 따르면 지역 미술인들에게 중앙 화단의 진출을 돕기 위해 갤러리를 임대, 직영하기로 했다. 시는 이를 위해 갤러리 임대료 10억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고 관련 조례를 만든 뒤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나선다. 시는 새로 개장한 갤러리에서 180일 정도 지역 작가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또 광주시립미술관이 갤러리 운영을 총괄하고, 학예사 2명을 파견해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 예산은 임대료 이외에 인건비 등 연간 2억∼3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파악됐다. ‘인사동 갤러리’는 광역자치단체가 중앙무대에서 여는 첫 갤러리이며, 예향 광주의 대표적 인적 자산인 작가들의 창작 욕구를 북돋우고 ‘문화중심도시’로서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佛 ‘에콜 뒤 루브르’ 국내 소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문화교육기관인 프랑스 ‘에콜 뒤 루브르’의 교육프로그램이 국내에 본격 소개된다.‘에콜 뒤 루브르’는 최근 박물관 전시 교육을 담당하는 파리 소재 ‘아트창의력개발연구소’와 한국인 위탁교육 협정을 체결,12월부터 교육을 실시한다. 아트창의력개발연구소는 프랑스 위탁 교육생들의 교육을 전담하며, 한국 지사에서는 ‘에콜 뒤 루브르’의 석사과정을 마친 예비 학예사의 의무연수 과정을 담당한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고흐 “2주일에 한번꼴 성매매”

    고흐 “2주일에 한번꼴 성매매”

    ‘지나친 성행위는 일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려 능력을 고갈시키지. 그런데 나는 돈이 생기면 2주일에 한번 꼴로 성매매 업소를 찾는다네.’ 37세에 자살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사진 왼쪽·1853∼1890)가 말년에 예술 동지이자 절친한 사이였던 15살 연하의 에밀 베르나르(오른쪽·1868∼1941)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들이 세계최고 미술가의 숨겨진 의식세계를 드러냈다. 26일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모건 도서관·박물관은 25일 고흐가 사망하기 3년 전인 1887년부터 2년 동안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들이 28일부터 내년 1월6일까지 전시된다고 밝혔다. 모건 전시장의 제니퍼 톤코비치 회화담당 학예사는 “편지들을 통해 고흐가 성경에서 에밀 졸라의 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적을 탐독했다는 것이나 예술적인 재능을 당시에도 인정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눈이 침침해지는 현상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으며, 들판에 세워놓은 이젤이 자꾸 바람에 쓰러져서 짜증난다고 쓴 점으로 미뤄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신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도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톤코비치 학예사는 베르나르가 고흐에게 보낸 답장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고흐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자주 이주하는 통에 분실됐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울산 망해사 쌍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울산 망해사 쌍탑

    부도(浮屠)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입니다. 부도는 부처를 뜻하는 부다(Budd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고 하지요. 처음엔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승탑(僧塔)을 모두 의미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처럼 승탑으로 한정된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통일신라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 조성된 8세기까지 ‘석탑의 나라’였다면 9세기부터는 ‘부도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승탑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습니다.‘자기의 본성을 깨달으면 곧 부처(見性成佛·견성성불)’라는 종지(宗旨)를 가진 선종이 유행하면서 법맥을 이어받은 선문조사(禪門祖師)는 부처와 다름없는 존재로 받들어졌지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만드는 것처럼 일생을 마친 선사의 사리를 안치하는 부도를 자연스럽게 조성했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의 부도는 예외없이 팔각형의 집 모양입니다. 이런 모양의 부도는 중국에 선례가 있는데,746년 허난(河南) 회선사(會善寺)에 세워진 정장선사탑과 800년을 전후해 조성된 창안(長安) 초당사(草堂寺) 소요원(逍遙院)의 구마라습사리탑이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탑이나 불전, 누각과 정자 등의 팔각형 집을 매우 고귀한 곳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아미타부처와 관음보살의 도량도 팔각형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팔각형 집 모양의 탑이라고 해서 모두 부도는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부도처럼 보이는 울산 망해사 쌍탑이 승탑이 아닌 불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울산 울주군 문수산 중턱에 있는 망해사(望海寺)는 신라 헌강왕(875∼885년)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망해사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면 ‘삼국유사’에 나타난 처용(處容) 설화의 배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망해사는 옛 절터 아래 새로 터를 닦은 작은 절입니다. 신용철 통도사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는 망해사터가 부도모양의 쌍탑이 동서로 세워지고 북쪽에 건물을 배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가람의 형식이라는데 주목했습니다.9세기 승탑은 양양 진전사터의 도의선사 부도처럼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되다가,10세기에 접어들면서 300보 안팎의 거리에 세워지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 같은 형식의 부도를 같은 장소에 함께 세운 사례는 망해사가 유일하지요. 승탑에는 탑비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망해사 쌍탑에서는 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지붕돌에 풍탁 같은 장식물을 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장엄공을 만들어 놓은 것도 불탑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처용 연구가인 김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는 망해사가 국방상의 이유로 창건된 경주 감은사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구조와 지형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감은사에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견대(利見臺)가 존재하듯, 망해사에도 옛 절터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바다를 통한 외래인의 왕래를 관찰할 수 있는 망해대(望海臺)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망해사 쌍탑이 불탑이 분명하다면,200년 남짓한 시차가 있지만,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은 신문왕이 부처의 가피력으로 외적을 물리쳐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681년 창건한 감은사의 동서탑과 똑같은 기원이 담겨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망해사 쌍탑은 승탑일 수도, 불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탑이라면 부도 모양으로 조성한 그 배경이 궁금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질 것 같아 불탑설(說)로 조금 더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dcsuh@seoul.co.kr
  • “제2의 신정아 막자”… 큐레이터協 새달 출범

    신정아 동국대 교수의 가짜학위 파문을 계기로 미술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의 공식모임인 ‘한국큐레이터협회’ 창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부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 현직 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등은 지난주 말 사단법인 형태의 ‘한국큐레이터협회’를 새달 18일 출범시키기 위한 준비 모임을 갖고 협회 정관 및 발기문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설립논의가 시작된 한국큐레이터협회의 설립준비위원장은 한국 큐레이터계의 1세대인 박래경(72)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맡기로 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의 회원 가입 자격은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미술관에서 5년 이상 큐레이터로 근무한 사람이 정회원이며, 그 이하 경력 소지자는 준회원이 된다. 또 비슷한 경력으로 미술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은 명예회원이 될 수 있다. 협회는 해외 큐레이터계와 교류하는 학술사업, 큐레이터 선후배간의 대화 창구마련, 무크지 발간, 정부에서 시행 중인 학예사 양성ㆍ채용제도에 대한 연구, 큐레이터 협회 차원의 미술상 제정 등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토정은 민중과의 소통에 신화적 존재”

    충남 아산시 영인면 사무소에는 토정 이지함(1517∼1578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아산현감 시절 이곳에 일종의 ‘홈리스재활센터’인 걸인청을 세우고 유랑민들에게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앞서 포천현감 시절엔 ‘땅과 바다는 백 가지 재용의 창고’라면서 상공업을 천시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국토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토정은 현감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전국을 유랑하며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지음, 동녘 펴냄)의 첫권인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서 전한 토정의 진면목이다. 토정은 그동안 예언가이자 점술가로, 구리솥을 머리에 얹고 다니던 야사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는 토정이 ‘적극적인 국부 증진책을 제시한 뛰어난 경제학자였으며,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실천적이고 통 큰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토정은 점술과 천문·지리·의학·관상·비결에 두루 능통했다. 하지만 ‘토정비결’이 그의 저작물이라는 데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토정비결’이 민간에 유행한 것은 아무리 올려잡아도 18세기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토정비결’의 지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토정의 민중 지향적인 성향 때문일 것으로 신 학예사는 짐작한다. 토정을 빼닮은 민중 친화성을 가진 누군가가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토정의 이름을 빌리자, 급속히 민간에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는 이밖에 ‘도선비기’의 도선,‘동명왕편’의 이규보,‘열하일기’의 박지원,‘서유견문’의 유길준이 소개됐다. 장지연 서울대 강사, 김인호 광운대 교수, 노대환 동양대 교수,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각각의 인물을 맡았다. 토정의 사례에서 보듯, 엄밀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스토리성을 복원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이들 책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집필에 참여한 젊은 사학자들은 무엇보다 ‘지은이들이 사람들의 욕구나 시대적인 요구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당대의 문제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시대와 소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명왕편’은 혼란스러운 국가를 바로잡을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게 했고,‘도선비기’와 ‘토정비결’은 어지러운 사회에서 삶에 지친 백성들을 위로했다.‘열하일기’는 새로운 주장을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담아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서유견문’은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읽히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는 인물을 통한 역사 읽기로 대중적인 역사 서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60여명의 인물을 선정하여 각각의 인물과 시대 전공자들이 썼다. 1권 ‘베스트셀러의 저자들’과 처용, 쌍기, 인후, 이지란, 박연을 다룬 2권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이 발간된 데 이어 모두 11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각권 1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모든 종단에 불교중앙박물관 개방”

    “모든 종단에 불교중앙박물관 개방”

    “조계종에 국한하지 않고 태고종, 천태종을 비롯한 모든 종단에 문을 열어 이름 그대로 불교계의 중심 박물관이 될 것입니다.”오는 26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1∼3층에서 개관하는 불교중앙박물관의 실무 총책임자인 탁연(59) 조계종 문화부장.360평 규모의 전시실이며 수장고·보존처리실 공사와 개관전에 모실 국보·보물급 성보 정리 등 막바지 작업을 총지휘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종단별 성보 전시하는 열린 공간” “비록 조계종이 세우긴 했지만 한국불교 1번지에 자리잡은 맏형격 성보박물관인 만큼 모든 종단의 성보를 소개하고 관리. 전시하는 열린 불교박물관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불교중앙박물관은 정대 총무원장 재임시절인 지난 2002년부터 시작돼 2005년 입적한 법장 스님과 지금의 지관 스님까지 5년간 3대에 걸친 총무원장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와 역경 끝에 이룬 결실. 탁연 스님은 문화부장 소임을 맡은 2003년 3월부터 박물관 일을 진행, 이듬해 6월 잠시 떠났다가 2005년 5월부터 다시 문화부장에 취임해 개관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불교문화재, 전체 문화재의 75% 차지” “불교 문화재는 국보·보물 등 지정 문화재의 42.5%, 비지정문화재까지 포함하면 전체 문화재의 75%를 차지할 만큼 한국 문화재의 절대적인 부분입니다. 단순히 문화재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각 사찰 성보박물관의 유물을 지속 관리하고 위탁 보존까지 책임져야 할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소장 유물이 700여점에 그쳐 한국불교 맏형격 박물관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상시 소장유물의 규모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전국의 각 사찰 소장 유물이며 개인 소장품까지 위탁 전시할 준비가 되어 있고, 무엇보다 전체 불교 유물을 관리하면서 한국불교를 보여주는 역할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탁연 스님은 지난 2002년 발족한 사찰문화재 발굴조사단을 이끌며 각 사찰 문화재 일제조사를 벌여와 매년 보고서를 내고 있다. 소장 유물뿐 아니라 도난 문화재도 일일이 점검하는 만큼 도난 문화재 관리와 환수 노력도 당연히 중앙박물관의 기능에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운영예산 확보 어려워 걱정 탁연 스님은 이런 박물관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개관 후를 벌써부터 걱정한다. 이미 확보한 학예사 5명과 보존처리 전문가를 포함한 관리 직원 등의 인건비와 운영비 부족 때문이다. 국고보조금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운영 예산 확보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박물관장 자리도 그중 하나다. 현재 조계종 종령은 문화부장이 박물관장을 겸직토록 하고 있으나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별정직 관장을 별도로 두어야 한다는 게 탁연 스님의 생각이다.“아무래도 개관하고서도 당분간은 제가 관장직을 맡아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위상에 걸맞은 박물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엄연히 유능한 관장이 있어야 합니다. 사찰 성보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스님들 중 한 분이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도배해서 번 돈으로 예술해요”

    상당수 문화예술인들이 생활이 빈곤해 도배, 집수리 등 잡일에 나서고 있다.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미국의 50분의1에 불과하고, 전국 64개 미술관 가운데 학예사가 없는 곳이 절반에 이른다.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이 26일 발표한 ‘문화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제도개선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확인된 실상이다.●생활조차 어렵다 많은 예술인이 저소득층(기초생활보호대상자·차상위계층)에 해당되며 이중 생계자활 활동(도배사업·집수리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도 다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서울을 제외한 지방도시 소규모 시설과 전업 예술인이 그렇다. 당국자는 “문화예술가의 60%가량은 창작활동 소득이 월 평균 100만원 이하에 불과하다.”며 “창작에만 전념하는 예술인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연극·국악·양악·무용 등 1430개 공연단체의 2004년 연간 총수입은 1584억원. 이 가운데 공공지원 의존수입이 905억원, 자체수입 428억원, 민간부문 의존수입 251억원 등이었다. 공연단체의 작품당 수입금 가운데 공공지원금이 32.2%, 자체예산 27.7%, 입장료수입 24.3%, 민간기부금 13.2% 등의 순이었다. 공연단체 관람객 1167만명 가운데 유료관객은 32.3%인 377만명에 머물렀다.●미술관에 학예사 절반 없어 한국의 공연시장은 미국시장의 50분의1, 일본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일본의 뮤지컬시장만 해도 연간 5000억원으로 우리나라 모든 공연시장의 3.5배에 이른다. 지역공연예술의 유통공간인 문예회관은 조직·인력 등 운영시스템에 있어서 전문성이 부족하고 사업예산·프로그램도 취약하다. 전국 67개 미술관중 학예사가 없는 곳이 31개 기관이며 관장 1명이 행정과 전시업무까지 담당하는 미술관이 많은 상태이다. 문화예술 일자리 수요는 6만여명에 이르지만 공급은 1만 7500명에 그치고 있다.●문화 사회서비스 확충 필요 전문인력의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문화복지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읍·면·동 복지문화센터, 시·군·구 관련부서,‘문화의 집’ 등에 배치돼 문화 및 사회복지의 공동발전을 꾀해야 한다. 미술관의 학예사 제도는 연구학예사 외에 교육담당자·등록담당자·보존담당자·전시디자이너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관광분야에서도 여가관광기획사·전시기획사·관광자원개발사·관광정보관리사 등의 자격증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구원은 작은 도서관, 어린이 도서관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박물관은 문화전쟁 이길 창조성의 바탕”

    “박물관은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그 설립주체에 관계없이 공적시설입니다.사립박물관은 개인이 설립한 것이니 정책에서 홀대되거나 소외돼도 좋다는 인식이 정부나 사회에 퍼져 있다면, 그건 바꾸어야 합니다.” 배기동(55) 한국박물관협회 신임회장은 11일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국가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제5대 박물관협회장에 지난 5일 취임한 배 회장은 대표적인 구석기 고고학자의 한 사람이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이 대학 박물관장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4년 동안 전국의 400여개 박물관·미술관이 회원으로 있는 대형조직을 이끌고 가야 한다. 배 회장이 생각하는 박물관은 사회적 운동이자, 학술적 연구와 대국민 서비스가 이뤄지는 문화의 거점이다.나아가 세계가 문화전쟁에 뛰어든 마당에 한국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창조성의 근본 바탕이다. 배 회장은 “보이지 않는 문화제국주의의 공격에서 승리하기 위한 문화투자의 공격적 확대는 국방비의 지출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서 “문화관광부 차원만의 일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사립박물관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운영비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기반을 다진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가 자격증을 준 1500여명의 학예사가 유휴인력에 머물고 있는 것도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배 회장은 “올해의 목표는 ‘존경받는 박물관·미술관’으로 정했다.”면서 “문화를 이끌어가는 리더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충실히 활동해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실마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배 회장은 “2500여개의 박물관이 있는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일본은 오사카와 교토지역에만 2000여개의 박물관이 있어 서양관광객들에게 동양의 창(窓)으로써 구실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문화의 양적으로도 갈수록 중국과 일본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 박물관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지구촌 시계’ GMT 사라질까

    ‘지구촌의 시계’로 오랫동안 권위를 누려 온 ‘그리니치 표준시(GMT)’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될까. 지구에서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 세계 표준시가 된 영국 ‘그리니치 시간’에 대한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도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한 보고서를 통해 GMT 폐지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발표했다.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은 25일(현지시간) 영국 하원 환경위원장인 보수당 팀요 의원이 3년동안 영국의 GMT 폐지 효과를 시험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현행 3∼10월에 적용하는 서머타임 방식이 아니라 1년내내 시계를 1시간 앞당기고 3∼10월에 추가 서머타임을 적용하는 것이다. 현 그리니치 표준시가 사라지고 영국이 독일, 프랑스 등 중부유럽과 동일한 시간대가 되는 것이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과 함께 시간을 지배해 온 그리니치 표준시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케임브리지 연구팀은 영국이 GMT를 포기하면 해마다 4억 8500만파운드가 절감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매년 17만t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야간 조명 비용이 크게 줄어 에너지 사용도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이는 매년 7만명이 방출하는 것과 같은 분량의 이산화탄소다. 영국 과학원도 GMT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35년동안 GMT와 여름철 서머타임이 전환되는 가을에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5000명이나 된다는 통계다. 세계 표준시간은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결정됐다. 영국 런던 인근의 그리니치천문대를 통과하는 경선을 ‘본초자오선(경도 0도)’으로 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경도 1도에 4분,15도에 1시간씩 차이가 난다. 영국은 1968년에도 GMT 폐지를 시도했다가 1971년 반발이 커 중단했다.현재 통신·기상 등 과학 분야에서는 태양시인 GMT가 아닌 세슘 원자의 진동수로 결정하는 협정세계시(UTC)를 쓰고 있다. 영국 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도 GMT를 버리고 UTC를 이용해 왔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시간을 담당하는 데이비드 루니 학예사는 “매년 85만명이 본초자오선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면서 “그리니치는 시간의 고향으로 여겨지며 많은 사람들이 GMT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Seoul in] 성북문화원 사무국장 공개채용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성북문화원 사무국장을 공개 채용한다.1950년 1월1일 이후 출생자로 인문, 역사, 교육 관련 전공자나 교사·학예사 자격증 소지자, 문화예술 단체·기관에서 3년 이상 실무 경험이 있는 자는 지원할 수 있다.3년간 고용하며, 연봉 2000만원에 성과금과 수당·퇴직금 등이 지급된다. 성북문화원이나 구청 문화체육홍보과에서 신청서를 받아 오는 21일까지 접수하면 된다. 성북문화원 765-1611. 구청 문화체육홍보과 920-3053.
  • 가족과 떠나는 군산 탐조여행

    가족과 떠나는 군산 탐조여행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 겨울의 진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겨울 철새들이다.10월 말부터 시베리아와 몽골 등에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로 날아들기 시작해 지금은 약 30만∼40만마리의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잡았다. 12월 중순에 가장 많은 겨울 철새들이 날아오지만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아 탐조 여행을 어렵게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동반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비교적 날씨가 덜 추운 이맘때가 탐조 여행의 적기다. 지금 전국 유명 철새도래지에는 기러기,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가창오리 등 다양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또한 17일부터 21일까지 전북 군산의 금강철새조망대 일원에서 제3회 군산 철새축제도 열린다. 그래서 이번 주는 금강에 다녀왔다. 아름답고 예쁜 새들을 만나러 떠나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새들의 아름다운 군무 오후 5시를 넘은 전북 군산의 금강 하구 둑. 금강을 까맣게 뒤덮고 있는 20여만마리의 가창오리떼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금강대교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즐기는 듯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흔들흔들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저 속이 타는 것은 오직 ‘나’ 혼자인 것 같다.‘해는 지고 있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저 녀석들이 언제 움직이려나.’‘저 많은 가창오리떼가 일제히 하늘을 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데’ 초조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녀석들을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를 1시간여. 이젠 붉은 빛을 토해내던 태양도 사라지고 마음속에 있던 실낱 같은 희망이 ‘에이. 오늘도 틀렸나’하는 실망으로 바뀔 때쯤 ‘퍼득퍼득’하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강을 까맣게 덮고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 수많은 점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 어슴푸레한 가을밤 하늘에 거대한 ‘돌고래’의 아름다운 비행이 시작된다. 하늘 저쪽에서 이쪽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다니며 ‘부메랑’,‘뫼비우스의 띠’로 변화를 거듭한다. 순간 강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선 ‘와’하는 짧은 탄성이 흐른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는 이렇게 시작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모양을 바꾸며 창공으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강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경쾌한 피카소의 붓놀림처럼 오렌지색으로 변한 하늘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낸다. 금강 주변을 몇 차례 맴돈 가창오리떼가 탐조대를 지나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거대한, 살아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자연과 신이 만들어낸 ‘조화’. 아직도 그 감동은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다. 그래서 낮에는 강 가운데서 ‘둥둥’떠다니며 쉬고 있다가 해가 지면 먹이 활동을 하러 날아간다. 인근의 호남, 김제 평야에 떨어진 곡식들을 먹으러 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해질녘이면 그들이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는 이유다. # 재미가 가득한 군산철새축제 이번 군산 철새축제는 다양한 부대행사가 가득하다. 철새탐조 투어는 기본이고 새둥지 만들기 체험, 철새퍼즐, 천연 새 비누 만들기, 클레이 점토 등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이벤트가 열리고 연날리기, 별자리 관측, 윤무부 교수와 함께 하는 철새이야기 등 내실 있는 행사도 많다. 또 인형극, 철새매직공연, 영화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여진다. 일정한 문제를 맞추면 상품이나 군고구마 등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철새코인’을 주거나 탐방모자 등 선물도 나누어준다.(063)453-7213,www.gunsanbirdfestival.net # 살아있는 체험 학습장 전북 군산에 간다면 꼭 한번 가볼 곳이 금강철새조망대이다.1층의 상설전시장에 들어섰다. 고양이 소리를 낸다고 이름 붙여진 괭이갈매기를 보며 “보통 새들은 둥지에 알을 낳는데 괭이갈매기는 어디에 알을 낳을까요.”라는 학예사의 질문에 아이들은 묵묵부답.“바로 바위틈에 나뭇잎 등을 깔고 알을 낳기 때문에 알이 바위 색깔과 비슷하고요. 자갈과 비슷한 검정색의 알은 꼬마물떼새의 알인데 자갈에 낳기 때문에 이런 색이에요, 새들도 똑똑하지요.”라는 설명에 진지한 눈으로 살피는 아이들. 버튼을 누르면 박제된 새에 불이 들어오며 새소리가 나는 곳, 입체 영상으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곳, 새가 나는 원리를 자세히 보여주는 해부관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다.2층에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의 표본과 철새들이 먹는 금강의 물고기들을 모아놓은 수족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로 11층에 올라가면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철새 조망대. 무료로 망원경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야외에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실내온실에 들어섰다. 순간 ‘파드득’하며 귓가를 스치는 무엇에 깜짝 놀랐다. 아니 살아있는 새들이 꽃과 나무가 가득한 온실을 날아다닌다.“엄마 저것 봐. 새야, 새.”하는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하다. 새가 부화하는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는 부화체험장. 물새장, 산새장 등이 있는 금강조류공원 등도 볼만하다. 또 금강철새조망대의 자랑은 거대한 가창오리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철새신체탐험관’이다. 거대한 새의 뱃속에 들어선 듯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기낭, 허파 등 각 신체 부위에 모니터가 있어 자세한 기능과 역할을 설명해준다. 구석구석 돌아보는 재미가 가득한 곳이다. 내년 2월말까지 하는 철새탐조투어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권하고 싶다. # 배고프면 꽃게장 드세요 군산에는 알이 꽉 찬 봄꽃게로 담근 게장을 파는 집이 많다. 그 중에서도 금강철새조망대 인근에 있는 유성가든(063-453-6670)의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5월에 서해안에서 나는 꽃게를 급속 냉동해서 쓰는 집으로 매일 조금씩 게장을 담근다. 죽염 간장만으로 간을 해서인지 ‘게’의 맛과 싱싱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안주인이 큼직한 게를 직접 손질해서 뚜껑에 있는 알과 내장을 접시에 담아준다. 여기에 뜨끈한 밥을 비벼 김에 싸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간장게장은 1인분에 2만원. 매콤한 양념게장은 2만 1000원이다. ■ 또다른 탐조명소들 우리나라에서 철새들 만날 수 있는 곳은 100여 곳이 넘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곳을 소개한다. # 겨울 철새의 1번지 충남 서산시 부석면과 고북면에 걸쳐 있는 천수만은 가창오리의 군무 하나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됐다. 현대건설이 1980년 이 일대를 간척, 간월호와 부남호 등 2개의 담수호를 조성하면서 철새들의 낙원이 됐다. 간척지에 대규모 농경지가 들어서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간월호 인근에서 해질녘이면 가창오리가 떼지어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조들도 눈에 띈다. 서산시 문화관광과(041)660-2498. # 다양한 철새를 만난다 경남 창원시 동읍에 있는 주남저수지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생겨난 자연습지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다양한 찰새들이 날아온다. 큰부리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등 20종에 가까운 천연기념물 철새를 탐조할 수 있다. 창원시 문화진흥계 (055)280-2043. # 두루미들의 최대 월동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철원평야는 휴전선 인근의 대규모 곡창지대가 있어 철새들이 겨울나기에 적합하다. 추수를 끝낸 벌판에 버려진 낙곡이 풍부한데다 인적이 드물어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다.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온 두루미(학)의 최대 월동지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2000마리의 두루미 중 3분의 1가량이 이 곳에서 겨울을 난다. 또 독수리, 흰꼬리수리, 매 등 좀처럼 보기 힘든 맹금류도 만날 수 있다. 고석정 전적지관리사무소 (033)450-5558. # 물새들의 지상낙원 부산 을숙도를 중심으로 여전히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 탐조 관광지이다. 낙동강하구는 국내 대표적인 삼각주 지형이다. 삼각주가 형성돼 있다는 것은 영양분과 퇴적물이 많아 농사에도 좋지만 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그래서 붉은부리갈매기, 도요새, 가마우지 등 물새들이 모여든다. 을숙도 관리사무소 (051)220-4068. # 철새들의 마지막 둥지 전남 해남군 화산면의 고천암은 둘레 14㎞의 호수로 길이 3㎞에 달하는 갈대밭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영산강 하구의 간척사업으로 생긴 드넓은 농경지에 낙곡이 많아 철새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았다. 천수만의 호수가 얼기 시작하는 12월 말쯤이면 철새들은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금강, 주남저수지를 거쳐 이 곳에 마지막으로 둥지를 튼다. 해남군 문화관광과 (061)530-5224.
  • 공무원미술대전 대상 인천 석남초 변효숙씨

    올해 공무원 미술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은 서예(한글)부문에 ‘김초혜님의 어머니’라는 작품을 낸 변효숙(인천 석남초등학교 교감)씨가 차지했다. 또 금상에는 서예(한문)부문 김용배(전북도청 지방행정주사)씨, 서양화부문 서길순(서울 봉현초등학교 교사)씨, 사진부문 김인득(농림부 6급 상당)씨, 공예부문의 김문식(전북 부안군청 지방학예사)씨 등이 뽑혔다. 행정자치부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제16회 공무원미술대전 입상작품을 발표했다. 서예·문인화 등 7개 부문에 총 1503점이 출품됐다. 행자부는 응모작에 대해 심사를 해 대통령상인 대상 1점과 금상 4점, 은상 10점, 동상 15점, 특·입선 254점 등 284점을 입상작으로 선정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어린이 박물관 이젠 거듭날때”

    “어린이 박물관 이젠 거듭날때”

    ‘어린이박물관, 거듭나야 한다.’ 어린이들의 문화유산 체험·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박물관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내 어린이 전용 박물관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데다가 협소한 공간, 프로그램 부재 등이 문제로 제기되면서 개선책을 찾느라 부심하는 모습이다.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박물관이 잇따라 개관하면서 확실한 모델이 정립되지 않으면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린이박물관, 절반의 성공 1995년 삼성어린이박물관을 시작으로 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지난해 용산으로 옮긴 국립중앙박물관이 신설한 어린이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인천박물관·청주박물관·경주박물관 등이 어린이박물관을 운영 중이며, 내년에는 경기도박물관에도 어린이 전용 박물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어린이박물관은 크게 전시실과 체험·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하루 평균 500∼600명이, 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300명에서 최고 900명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민속박물관 관계자는 “개관 이후 프로그램이 갖춰지면서 관람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형보다는 내실에 신경써야 박물관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내실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는 게 박물관 안팎의 분석이다. 민속박물관이 최근 초등학생 관람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공간이 좁고 도우미 인원이 부족하며 일부 시설이 고장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됐다. 민속박물관 이관호 학예관은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공간 협소 및 시설 노후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며, 국제적인 수준의 전시기법 및 체험공간을 갖춰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시실 운영과 체험프로그램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고, 체험교육 또한 놀이 위주로 치우쳐 실질적인 교육 효과가 적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어린이박물관은 ‘전시실 내 볼 것도 별로 없고,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어린이박물관에 맞는 아동·교육전문가들의 참여 부족도 한몫 한다. 이와 관련, 중앙박물관은 용산 재개관 1주년을 맞아 다음달 24일 ‘어린이박물관 운영의 발전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첫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국내 5개 어린이박물관 관계자들과 아동교육 전문가, 일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어린이박물관 및 해외 선진 어린이박물관 운영사례 발표와 교육프로그램 개발, 미래지향적인 어린이박물관이 되기 위한 제언 등으로 이뤄진다. 중앙박물관 박성혜 학예사는 “어린이박물관을 1년간 운영하면서 현실을 진단하고 발전안을 마련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준비 중”이리면서 “11월쯤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문위원단을 구성, 예산에 따라 부분 수정 또는 전면 개편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어린이박물관 이경희 고문은 “일반 놀이시설과 달리 어린이들이 스스로 탐색하고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면서 “박물관마다 중장기 미션을 정립하고 학습효과를 평가해야 하며, 어린이들의 욕구에 맞는 건물 등 인프라 확충과 전시·프로그램 전문가에 대한 투자를 위해 지역사회 및 정책당국에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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