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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하는 움직인다’ 송민순 前장관 인세 수익, 비핵 연구 장학금 쾌척

    ‘빙하는 움직인다’ 송민순 前장관 인세 수익, 비핵 연구 장학금 쾌척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과 관련해 참여정부의 ‘대북 결재’ 논란을 일으킨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 인세를 장학금으로 내놨다. 26일 북한대학원대에 따르면 송 전 장관은 인세 3000만원을 비핵화 연구에 써달라며 자신이 총장으로 근무하는 북한대학원대에 쾌척했다. 송 전 장관은 “핵과 통일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내년에 심사를 거쳐 북핵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연구원이나 북한 관련 연구로 학술상을 수상한 박사학위 소지자 등에게 장학금으로 이를 지급할 방침이다. 회고록은 출간 당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참여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내용 때문에 정치권에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왔다. 이에 한때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화제가 됐으며 최근까지 총 1만 7000여권이 팔려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양한광·김종만 교수 두산학술상

    양한광·김종만 교수 두산학술상

    2016 두산연강학술상 외과학 부문 수상자로 서울대병원 외과 양한광(왼쪽) 주임교수와 삼성서울병원 외과 김종만(오른쪽) 교수가 선정됐다. 두산연강재단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시상식을 갖고 양 교수에게 2000만원, 김 교수에게 10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했다고 6일 밝혔다. 양 교수는 ‘절제에 의한 치유가 불가능한 진행성 위암에 대해 위절제술 후 항암화학요법과 단독 항암화학요법 간의 비교를 위한 다국가, 다기관, 무작위배정 제3상 임상시험’이라는 논문을 통해 전이가 있는 4기 위암의 치료에서 위절제술은 생존율을 높이지 않으며 항암치료가 표준이라는 점을 검증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시행한 C형 간염 간이식 환자의 결과:다기관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C형 간염으로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의 생존율 및 예후인자와 면역억제제의 영향을 밝혀 수상자로 선정됐다. 두산연강학술상 외과학 부문은 외과의들의 연구 의욕 고취를 위해 2007년 제정됐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오뚜기 학술상’에 김미리 교수

    ‘오뚜기 학술상’에 김미리 교수

    오뚜기재단(이사장 함영준)은 지난 1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김미리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에게 ‘제15회 오뚜기 학술상’을 수여했다. 김 교수는 건강기능식품 소재를 개발해 조리과학에 적용하는 등 식품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 ‘징비록’ 영역한 최병현 소장 등 6명 학술원상

    ‘징비록’ 영역한 최병현 소장 등 6명 학술원상

    다양한 한국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최병현(66) 한국고전세계화연구소장을 비롯한 6명의 학자가 올해 대한민국학술원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한민국학술원은 제61회 학술원상 수상자로 인문학 분야에서 최 소장과 박삼옥(70) 서울대 명예교수, 자연과학기초 분야에서 안순일(50) 연세대 교수와 강봉균(55)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응용 분야에서 이종무(66) 인하대 교수와 이용환(55) 서울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1955년 제정한 학술원상은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세운 학자에게 주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상이다. 올해까지 수상자를 240명 배출했다. 최 소장은 유성룡의 참회록이자 전란기록인 ‘징비록’과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 조선왕조실록 중 첫 번째 왕조실록인 ‘태조실록’을 번역했다. 박 명예교수는 30여년간 경제지리학과 지역과학 분야에서 축적한 연구를 종합해 2015년 영문 단행본 ‘Dynamics of Economic Spaces in the Global Knowledge-Based Economy’를 출간했다. 안 교수는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에 관한 연구 성과를 90여편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E)급 논문으로 펴내고 국제학술회의에서 100여 차례 발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신경생물학 전공인 강 교수는 기억의 생물학적 원리를 연구하고, 퇴행성 뇌질환 및 정신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이바지했다. 아울러 이종무 교수는 간단하면서도 실용범위가 매우 넓은 나노구조의 발광소자를 개발했고, 이용환 교수는 벼 도열병균 연구에서 신호전달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한 공로로 올해 수상자가 됐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2시 학술원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최낙복 명예교수 ‘주시경 학술상’

    최낙복 명예교수 ‘주시경 학술상’

    한글학회는 올해 주시경 학술상 수상자로 최낙복(68)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최 교수는 30여년 동안 ‘주시경 문법의 연구’ 등 저서 7권과 논문 50여편을 쓰며, 개화기 한국어 문법 연구에 힘썼다. 주시경 학술상은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 선생의 이름을 따, 국어 연구와 한글학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570돌 한글날인 다음달 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열린다.
  • 독립기념관 학술상 최기영 교수

    독립기념관 학술상 최기영 교수

    독립기념관 학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29일 ‘제12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자로 최기영(59) 서강대 사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최 교수는 저서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일조각·2015)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인생 역정을 새롭게 조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차민재 교수 亞심장학회 학술상

    차민재 교수 亞심장학회 학술상

    중앙대병원은 차민재 영상의학과 교수가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심장혈관 영상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우수 학술 발표상’을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차 교수는 ‘무증상 아시아 환자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인자와 심장 자기공명영상의 심근관류 및 심근섬유화 지표와의 연관성 평가’라는 제목의 연구 내용을 발표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 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 학술상’

    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 학술상’

    분당서울대병원은 노인병내과 윤솔지(왼쪽)·최정연(가운데)·강민구(오른쪽) 전공의가 2016년 미국 노인의학 연구학회 연례회의에서 국내 병원 사례로는 처음으로 참석자 전원이 ‘전공의 포스터 학술상’을 수상했다고 19일 밝혔다.
  • 벽사학술상에 이병휴 명예교수

    벽사학술상에 이병휴 명예교수

    재단법인 실사학사(이사장 이정성)는 23일 ‘제6회 벽사학술상’ 수상자로 이병휴(77) 경북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이 명예교수는 조선시대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제6회 모하실학논문상’ 수상자로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소 강민정씨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2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 방영주·박근칠·이상욱·원영주씨 제5회 ‘광동 암학술상’ 수상 영예

    방영주·박근칠·이상욱·원영주씨 제5회 ‘광동 암학술상’ 수상 영예

    대한암학회와 광동제약은 20일 ‘제5회 광동 암학술상’ 수상자로 방영주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 박근칠 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 이상욱 가톨릭관동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원영주 국립암센터 박사를 선정했다. 대한암학회지를 인용해 영향력 지수가 높은 SCI(과학논문인용색인) 학술지에 임상 논문 및 기초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낸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장을 수여한다.
  • 건국대병원 이승은 강사 기초의학신진학술상 수상

    건국대병원은 이승은(사진) 병리과 임상강사가 최근 열린 제68차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기초의학신진학술상을 수상했다고 20일 밝혔다. 기초의학신진학술상은 기초의학 연구 업적이 뛰어난 젊은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이 강사는 ‘재발성 B세포림프종에서의 클론성 관계’ 논문으로 수상했다. B세포림프종은 높은 재발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재발한 림프종의 치료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첫 발병 림프종과 같은 형태인지 새로운 림프종인지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이 강사는 27명의 재발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재배열 확인을 위한 핵산 증폭 검사와 염기서열분석을 실시해 두 종류의 재발을 구별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강사는 “앞으로도 암 유전체 연구를 통해 암의 분자생물학적 발생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실제 임상에서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더 많이 찾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제9회 후광학술상(전남대 민주평화인권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지 카치아피카스(66) 전 미국 웬트워스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상금 전액을 5·18 시민군 후손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8일 오후 전남대에서 열린 후광학술상 특별강연에서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상금을 시민군 후손들의 그리스 방문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모시 소재의 개량한복을 입고 연단에 선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5·18이 없었으면 한국 민주주의 없어요” 등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을 영어와 함께 섞어 쓰며 강연했다. 그는 “항쟁 이후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주요한 상징이자, 영감을 북돋는 민주주의 슬로건이 됐다”며 “한국 역사에서 광주 항쟁의 의미는 프랑스 역사에서 파리코뮌과 러시아 역사의 포템킨 전투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이날 전남대 제64주년 개교기념일 행사와 함께 열렸다. 카치아피카스 교수에게는 메달, 상장,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됐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아시아의 민중항쟁을 통사적인 시각으로 처음 정리한 학자이다. 특히 5·18민중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했던 그는 연구를 위해 해마다 광주를 방문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전액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전액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제9회 후광학술상(전남대 민주평화인권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지 카치아피카스(66) 전 미국 웬트워스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상금 전액을 5·18 시민군 후손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8일 오후 전남대에서 열린 후광학술상 특별강연에서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상금을 시민군 후손들의 그리스 방문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모시 소재의 계량한복을 입고 연단에 선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5·18이 없었으면, 한국민주주의 없어요” 등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을 영어와 함께 섞어 쓰며 강연했다. 그는 “광주 5·18민주항쟁이 한국에서 시작돼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됐다. 후손들이 더 멋진 세계 시민들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항쟁 이후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주요한 상징이자, 영감을 북돋는 민주주의 슬로건이 됐다”며 “한국 역사에서 광주 항쟁의 의미는 프랑스 역사에서 파리코뮌과 러시아 역사의 포템킨 전투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이날 전남대 제64주년 개교기념일 행사와 함께 열려 카치아피카스 교수에게 메달, 상장,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됐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과 재학 중 월남전 반대시위로 수감생활하다 석방된 후 택시운전과 노동의 삶을 경험하고, 세계적인 학자인 허버트 마르쿠제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 뒤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68년 파리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된 68혁명에 관한 그의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은 1990년대 말 한국에서 번역·출판돼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의 민중항쟁을 통사적인 시각으로 처음 정리한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5·18민중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했던 그는 연구를 위해 해마다 광주를 방문하고 있다. 관련 연구 성과물 가운데 ‘Asia’s Unknown Uprisings 1, 2’ 등은 ‘한국의 민중봉기’ 등으로 번역돼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후광학술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남대가 2006년 제정했다.역대 수상자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제1회), 고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제2회),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제3회), 와다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제4회),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제5회),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제6회), 최정운 서울대 교수(제7회),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제8회) 등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후광학술상에 카치아피카스 전 교수

    후광학술상에 카치아피카스 전 교수

    전남대(총장 지병문)는 ‘제9회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조지 카치아피카스(66) 전 미국 웬트워스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를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한국 민주화 운동과 5·18에 대한 연구로 5·18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고원배 교수 한국고무학회 논문학술상

    고원배 교수 한국고무학회 논문학술상

    고원배(54) 삼육대 화학과 교수가 5일 한국고무학회 논문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 교수는 국제급 저널에 100여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 왔다. 시상식은 오는 5월 20일 경기 안산시 중소기업연구원에서 열린다.
  • 이은경 교수 ‘유방암 연구학술상’ 수상

    이은경 교수 ‘유방암 연구학술상’ 수상

    가톨릭 중앙의료원은 이은경 가톨릭대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조교수가 ‘2016년 유선희 데레사 유방암 연구학술상’을 수상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교수는 유방암 관련 논문을 활발히 발표하고 특허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이 상은 삼표에너지 김태희 회장이 2009년 유방암으로 별세한 아내 유선희 데레사의 뜻을 기려 유방암 연구를 진흥하기 위해 제정했다.
  • 청관대상에 박성수·박갑수·홍지준씨

    청관대상에 박성수·박갑수·홍지준씨

    서울대 사범대 동창회(회장 이규택)는 8일 ‘제8회 청관대상’ 수상자로 학술상에 박성수(왼쪽) 서울대 명예교수, 공로상에 박갑수(가운데) 서울대 명예교수, 공로상에 홍지준(오른쪽) 코캄 회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1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정기총회와 함께 열린다.
  • 보령암학술상에 김경미 성균관대 교수

    보령암학술상에 김경미 성균관대 교수

    보령제약과 한국암연구재단은 8일 김경미(52) 성균관대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교수에게 ‘제15회 보령암학술상’을 수여했다. 김 교수는 위암의 병리 진단 및 맞춤 치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전체에 기반한 위암 개인 맞춤 치료를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깡촌 소작농의 아들 누나의 희생으로 진학 철도원으로 살다가 다시 주경야독육사에 붙고도 결핵으로 불합격그래도 내 결론은 도전박운상 선생님 덕에 물리학에 눈떠4년 만에 석·박사 탄소나노튜브 실험과 응용 연구나는 콧수염 학자 애벌레처럼 살 거야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콧수염의 역사를 묻자 이영희(61) 교수는 “사람들이 전공인 탄소나노튜브보다 이 털들을 더 궁금해하니 큰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경기 수원에 있는 연구실(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물리학과)로 그를 만나러 간 지난 15일은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7명의 교수, 30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연구교수, 80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 등 120명에 이르는 대식구와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학생들 논문 지도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며 약속 시간에 30분 늦은 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1974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며 메마른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철도고를 졸업하고 철도청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인천 부평에서 누나 집에 얹혀살며 매일 근무지인 서울역으로 통근을 했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처럼 결론도 갑작스럽게 났다. ‘그래, 다시 공부를 하는 거야.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그때 고민만 하고 끝났다면 지금쯤 난 한적한 시골역의 역장이 돼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산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전북 김제의 깡촌에서 자랐다. 논이 동네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누가 “이 동네에서 가장 못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우리 집을 가리켰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머슴에 가까웠지만.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초등학생 때 가진 꿈은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큰 농장을 갖는 것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어린 사람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하고도 주먹질을 할 정도로 괄괄한 ‘이씨네 말썽꾸러기’로 통했다. -원래 집안 사정이 안 좋기는 했지만 애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어려워진 것은 ‘딸깍발이’ 할아버지 탓이 컸다. 일제가 쳐들어와 양반들이 몰락하자 “왜놈들 세상에선 아무것도 안 한다”며 평생 돈벌이라곤 하지 않으셨다. 집 안에 먹을 게 다 떨어져 자식들이 굶고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소신만 지키셨던 것 같다. 평생 힘들게 사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려서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대들다가 아버지나 삼촌들한테 맞은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난한 집에 먹는 입은 많다고, 나는 3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바로 위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누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내가 이만큼이나마 된 것도 그렇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와 공무원을 하고 있는 것도 누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부모님은 “우리 장남 영희는 중학교까지는 나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뒤집어 보면 중학교 졸업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의 집 머슴일을 하면서 틈틈이 중학교 등록금을 모아 놓으셨는데, 어느 날 그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못 가게 될 상황이 된 거였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께서 “사내놈이 중학교까지는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며 여기저기 수소문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다. 그게 나에겐 약이 됐다. 중학교 들어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한 초등학교 친구가 “영희가 미쳤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꿈은 없었다. 그냥 공부를 잘하는 걸로 만족이었다. -대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는 마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인문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나라에서 세운 철도고에 들어가면 학비 대주고, 나중에 취업까지 시켜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딱 내 학교였다. 그렇게 철도고에 들어갔는데 철도원으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다 보니 별달리 꿈이란 게 생길 턱이 없었다. 머리건 몸이건 좀 더 써 보고 싶은데, 내 몸의 혈액과 호르몬들은 나에게 한계 상황까지 가 보라고 다그치는데 현실은 그저 ‘등교-수업-하교’가 전부였다. 그러다 유도를 시작했다. 먹고 자는 시간과 수업받는 시간을 빼고는 그것만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멋지게 업어치고 메칠 수 있을까, 관심은 그것뿐이었다. -1974년 1월 5일 토요일에 졸업식을 하고 7일 월요일 서울역으로 첫 출근을 했다. 통신전자과 출신인 나에게는 통신기지국과 열차 간 송수신기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고 열차 자동 정지장치를 수리하는 일이 부여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달을 지내고 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됐다. 딱히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에 공부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고나 할까. 실업계 학교를 나왔으니 당연히 대학 입시 기초가 약했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종로YMCA에서 대학입시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난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국문학과가 어울릴까?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제일 신나는데, 그리로 가 볼까?’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학원에서 ‘분석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박운상 선생님 덕이다. 입시 학원이었음에도 문제 풀이 요령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실험도구를 갖고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리학도 문학만큼이나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구나.”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1975년 초 기관차 수리 공장이 있는 수색역으로 발령났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곳이라 공부하기엔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고 업무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아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결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중한 병을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해 번듯한 직장까지 얻었으면서 몸까지 상해 가면서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 아버지는 나를 꾸짖다가 “다 내가 못나서 널 제때 공부를 못 시켜 준 탓”이라며 통곡을 하셨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공짜로 공부시켜 주는 곳.’ 내가 가야 할 대학의 최우선 조건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필기·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했지만 결핵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상실감은 아주 컸다. 회사에 2개월 휴직계를 냈다. 머리까지 박박 밀고 고향집에서 2주 동안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께서는 ‘얘가 죽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셨단다. 방 안에 틀어박혀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일단 시작한 것, 원 없이 한번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2개월 휴직 기간이 끝나니 김제에서 가까운 익산역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전북대 물리학과였다. 입학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76학번으로 입학했다. 함께 일하는 직장 선배가 눈감아줘 근무 시간에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그러기를 1년. 공부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회사에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냈다.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장학금 받기 위해서도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뤄진 공부가 쌓이자 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켄트대를 추천해 주셨다. 입학 지원서를 냈는데 놀랍게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1982년 8월 졸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가을 입학을 하라는 통보를 받아 7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 후 첫 학기를 끝낸 1월 갑자기 온몸이 아파 왔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학교 보건소 의사는 타이레놀 한 알을 주더니 “푹 자라”고 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유학에서 비롯된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좋아하는 공부를 장학금 받고 해서 그랬을까.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초고속으로 마쳤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모교인 전북대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우리 학교에 교수 자리가 하나 났으니 지원하라”고 하셨다. 덜컥 합격했는데 그게 1986년 여름이었다. 7월 켄트대 학위수여식을 한 달 앞두고 모교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 때까지 희한하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데 외려 그것 때문에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위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이 없다. 아들내미와 딸내미가 아빠 학력 위조한 거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반도체 물리학이 전공이었지만 다양한 분야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1991년 탄소나노튜브가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논문들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이면서도 실험과 응용연구가 가능했다. 대단한 매력이었다. 물리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이론과 실험 두 분야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내게는 공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직장에서 열차 무전기를 고쳤던 경험 등 현장에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실험과 응용연구에 두려움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내 연구 분야는 아주 생소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탄소는 뭐고, 나노는 뭐고, 거기에 튜브는 뭐란 말인가. 탄소나노튜브 연구가 잘 이뤄지면 요즘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까. 탄소나노튜브를 응용하면 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전자 소재로 응용될 경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초고속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각국의 연구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책과 논문을 파고 실험을 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기초이론을 보강하고 응용연구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후배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막다른 길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연구원들에게도 나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다.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종 목표’를 묻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내 최종 목표는 이거다”라고 정해 버리면 그것을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무슨 재미로 삶을 살겠나. 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내 인생 최종 목표를 향해 이제 제대로 한 걸음 뗄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영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보다 해외 학계에서 더 유명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장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전 세계 대학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 ‘탄소나노튜브’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대표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단층 탄소나노튜브의 대량 합성과 성장 메커니즘 규명이 그의 성과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론’과 ‘실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기 주력 분야를 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이론뿐 아니라 수소 저장, 투명전극, 복합체 연구 등 산업화 기술도 함께 개발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누가 “기초과학은 투자 대비 성과가 적다”, “기초과학은 돈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면 질색을 한다. ‘기초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7년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1989년 미국 에임스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1993년 IBM 취리히연구소 방문연구원 ▲2001년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06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수상 ▲2006년 국가석학 선정 ▲2014년 수당상 기초과학분야 수상. 【탄소나노튜브 Carbon nanotube】 탄소 6개로 이뤄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돼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신소재. 1991년 일본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처음 발견한 이 물질은 튜브의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1에 불과한 나노(10억분의1)급 크기여서 탄소나노튜브로 불린다.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보다 전기 전도율이나 열 전달률이 우수하고 강도도 강철보다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배터리, 초강력 섬유, 생체 센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 최완진 한국외대 교수 무애학술상

    최완진 한국외대 교수 무애학술상

    최완진(64)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7일 상사법 분야의 탁월한 연구 업적과 상사법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무애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19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국상사법학회 정기총회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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