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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뉴욕 채널 가동] 북측 실무대표단 누구

    16일부터 이틀간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열릴 차관급회담 북측 실무대표단에 관심이 모아진다. 남측이 상대적으로 중량급인데 비해 북측은 40대 신진들로 라인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만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서기국 부국장은 문화성 국장을 맡고 있고 수차례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로 서울을 방문했던 인물.1997년 8월 남ㆍ북ㆍ해외학자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대남사업에 처음 등장한 이후 2001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대표로 서울을 방문했다. 정부의 한 대북 소식통은 “김만길 부국장은 서해교전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2002년 8월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실무대표 접촉에서 남측 대표를 맡은 이봉조 통일부차관(당시 통일부 정책실장)과 함께 2002년 8월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7차 장관급회담을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조평통 국장은 남북관계 총사령관으로 김 부국장은 남북의 큰 행사가 열리면 뒤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정도로 과거보다 거물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3년 10월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에서 경질됐다가 다시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민족평화축전에 북측 대표로 나섰다. 서구풍의 수려한 외모와 점잖은 매너를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전종수와 박용일도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로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지난 14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회담을 제의했던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지난 199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열린 남북대학생회담에 북측 대표로 참가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남측에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북측에서는 권 참사가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했다.”면서 “그때 이봉조 차관은 남측 학생대표단의 인솔 책임자였고 권 참사는 북측 학생위원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장직은 대학생을 조직하고 정치사상적 지도를 맡는 ‘정치 일꾼’역할을 수행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에너지공학회 춘계학술대회

    한국에너지공학회(회장 박달영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는 13일 서울 양재동 aT 센터에서 한국가스학회 및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와 함께 연합 춘계학술대회를 연다.
  • 대한성형외과 춘계학술대회

    대한성형외과학회가 12∼14일 경주주 현대호텔에서 춘계학술대회를 갖는다.13,14일 오전 7시에 열리는 학술교육과정 강좌에서는 ‘주걱턱 수술 직후의 외과적 재발을 막기 위한 정형적 탄력 밴딩 방법(이진수 페이스라인 성형외과 원장)’ 등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 방송학회 봄철 학술대회 인하대서

    한국방송학회(회장 변동현 서강대 교수)는 13∼14일 이틀 동안 인천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국제회의장에서 봄철학술대회를 연다. 다루는 주제만 52가지에다 교수·현업관계자 등 참가자만도 400명이 넘는 대규모 학술대회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린다 가르시아 교수와 미국 FCC 조너선 레비 국장 등 저명 학자와 실무 책임자들도 참가한다.
  • 국제도로·공항포장 학술대회

    한국도로공사(사장 손학래)는 10∼12일 코엑스 3층 오디토리움에서 15개국 도로전문가 1000명이 참석하는 제5차 국제도로 및 공항포장 학술대회를 갖는다.
  •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4일 연세대 연희관에서는 ‘대한제국기의 근대화’와 개혁사업을 주제로 연대 국학연구원과 UCLA간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시기로 꼽히는 대한제국기를 되돌아보기 위한 자리다. 한국의 근대화 성격을 두고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서 있기도 한 이번 공동학술대회의 좌장을 맡은 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를 학술대회 전에 만났다. 초여름 땡볕에 땀을 흘리는 기자에서 생수 한 통을 건넨 뒤 김 교수는 “학계에서 일제시대 경제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럼 무엇에서 차이가 나는가.“결국 역사변혁의 주체세력이 누구냐, 또 지금 한국 사회의 과제가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기본생각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소농사회론의 맹점은 민중변혁 부정 식민지근대화론은 조선에는 서구적 근대화의 계기인 ‘경영형 부농(富農)’이 없고 자급자족적인 ‘소농(小農)’만 있었다는 ‘소농사회론’을 내세우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소농사회는 부르주아처럼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를 이끌 계층이 없어 강력한 국가권력이 개입합니다. 문제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 권력을 1930년대 일제 파쇼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이들은 또 그 이전 갑신정변 같은 개화파의 움직임이나 광무개혁 같은 고종의 근대화 작업을 모두 부정할 뿐 아니라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적 변혁의 가능성도 부인한다. 조선의 변혁가능성 자체를 봉인한다는 점에서 일제가 내세웠던 ‘조선정체론’과도 비슷하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침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꼽히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지난달 29일 열린 교과서포럼 심포지엄에서 박정희 시대에 따라다니는 ‘저임금에 기반해 성장했다.’는 꼬리표를 떼버리자고 주장했다. 임금률과 한계노동생산성의 증가 추이가 비슷해 결코 저임금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교수의 논리상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수탈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야 자본이 축적되니까요. 수탈은 결국 저임금구조입니다. 이건 영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확인된 사례들입니다. 박정희 시대라면 저임금 대상은 노동자·농민이고, 식민시대라면 조선인이 되는 것이지요.”박정희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계급·계층간 차별을 함께 봐야 하듯, 식민시대에서도 경제성장과 동시에 일본인·한국인간 차별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식민시대를 긍정하려면 박정희 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려면 식민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서 나온다. 한·일 양국 우익 세력의 논리적 친화성에 대한 설명이다. ●식민시대 ‘삶의 질’·‘역동성’ 주목해야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역사란 사실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사실이 당시 사람들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따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민족’ 같은 개념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민족을 절대화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개인이 쓰는 일기에도 ‘나’라는 주인공이 있지 않습니까.”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간 논쟁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다양한 가능성과 그 가능성들이 빚어내는 ‘역동성’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고종과 개화파와 농민운동 등 조선 내부에서도 근대화 움직임이 있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국면마다 이들간 역학관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다이내믹한 상황을 봐야 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종 보면 근대화 파악 가능 고종은 개명군주였나, 도학군주였나, 절대군주였나. 지난해 교수신문 지상을 통해 6개월여 동안 벌어진 논쟁의 주제였다. 풀어서 말하자면 고종이 근대화를 지향했느냐, 안 했다면 전통적 유교 군주에 불과했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차르와 같은 서구적 의미의 ‘왕’을 지향했느냐다. 이 논쟁은 단순히 고종 개인에 대한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고종 시대가 곧 한국 근대의 뿌리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근대화의 싹이 한국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논쟁의 뿌리는 30여년 전인 1976년 광무개혁 성격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무개혁은 1897년 대한제국 수립부터 1904년 러일전쟁 때까지 고종이 추진한 근대화작업이다. 이 작업이 실체가 있었느냐를 두고 두 입장이 다퉜다. 신용하 교수 등이 주도한 쪽에서는 개화파에 무게를 뒀기에 왕권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광무개혁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반면 김용섭·강만길 교수쪽은 외세에 기댄 개화파보다 동학혁명에서 엿볼 수 있는 농민의 자생적 힘을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 관점에서 광무개혁은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 특히 김용섭 교수는 조선후기 농업경제를 분석, 이때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있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 주장은 박정희시대 국사교육 강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신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조금 색다른 관점을 내놨다. 김용섭·강만길 교수처럼 조선 스스로 근대화하려 했다고 보되 그 힘을 농민에게서가 아니라 고종에게서 찾은 것이다. 이 교수가 고종과 광무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반대로 대한제국은 파탄 직전이었기에 굳이 살펴볼 가치를 못 느낀다는 입장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고종은 외세의 바람 앞에서도 유교 경전이나 외우던, 혹은 이미 기진맥진한 조선을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도학군주일 뿐이다. 반면 고종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과대평가하는 것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는 쪽에서는 고종이 서양의 절대군주제를 지향했다고 보는 지적도 있다. 고종의 지향점을 러시아의 차르로 보고 있는 경희대 허동현 교수가 대표적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아시아 ‘항생제 내성균’ 확산 위험수위

    아시아 ‘항생제 내성균’ 확산 위험수위

    최근들어 항생제 내성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항생제 내성균이 전염병처럼 다른 국가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삼성서울병원 송재훈(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 이사장)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공동연구 결과, 항생제 내성균인 폐렴구균이 한국과 타이완, 태국,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전파,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회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ISAAR 2005)’에서 발표했다. 연구 결과 항생제 내성균인 폐렴구균의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률은 베트남이 71%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한국(55%), 홍콩(43%), 타이완(39%) 등이 뒤를 이었으며, 에리스로마이신에 대한 내성률은 베트남 92%, 타이완 86%, 한국 81%로 조사됐다. 송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항생제 내성률을 보이고 있다.”며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국가간 전파 확산을 고려한 국제적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96년에 조직된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연합(ANSORP)’ 등 국제기구의 활성화와 아시아 국가들간 공공 보건시스템의 유기적인 연계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송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이 주관해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는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2500여명의 의학자 및 보건관계자들이 대거 참석, 아시아 최대규모의 의료학술대회로 치러졌다. ‘항생제 내성의 도전과 극복을 위한 전략’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 이종욱 사무총장이 특별 영상메시지를 보내왔으며, 송 교수와 싱가포르의 폴 탐비야 교수, 미국 보건성 신종 전염병 자문위원인 마이클 오스터홈 교수 등의 특별강연도 있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경기·전남 ‘도자·실학’ 문화교류

    경기도와 전라남도가 도자기와 실학 발전을 위한 문화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양 지역간 본격적인 문화교류에 나선다. 29일 경기도에 따르면 손학규 경기지사는 다음달 4일 전남도청을 방문, 박준영 전남지사와 도자·실학에 관한 문화교류 협약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을 통해 한국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경기도 이천시·광주시·여주군과 고려청자의 산실인 전남 강진군이 도자기를 교환 전시하고 도자관련 자료를 공유하며 도자 발전을 위한 학술대회를 공동개최하게 된다. 또 실학박물관 건립이 추진 중인 경기도 남양주시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됐던 곳으로 실학 초당이 남아있는 강진군은 실학축전과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하고, 실학관련 자료도 상호 교환전시하게 된다. 또 실학박물관과 다산초당을 연계한 실학교육관광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게 된다. 손 지사는 이날 협약체결 뒤 광주시청에서 ‘2005 경기방문의 해’와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를 홍보하고 설명회도 가진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 파동과 한승조·지만원·조갑제 같은 인사들의 극우 발언 퍼레이드 등 뒤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착취·수탈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우리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으로 ‘근대’에 경도된 물량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이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량주의와 수치화·계량화는 기본적으로 ‘과학’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과학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수치화·계량화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했지만 온전한 반박이라 하기에는 이르다. 근대화란 단순히 경제개발뿐 아니라 법·제도·문화 등 상부구조적 요소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유의, 서구 미시사의 영향을 받아 최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30년대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먹물처럼 한반도를 물들여나가고 있었음을 찬찬히 보여준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만만치 않은 것은 또 하나의 버팀목이 있어서다. 바로 ‘자본주의체제 이행논쟁’이다. 이 주제는 1930년대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의 역사적 대논쟁에서 보듯 좌파 경제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알려졌다시피 모리스 돕은 ‘경영형 부농의 등장’을, 폴 스위지는 ‘시장관계로의 편입’을 중세봉건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체제 이행의 원인으로 꼽았다. 흔히 전자는 내부동력을 원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내인론, 후자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외인론으로 불린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근대화=모리스 돕 논리’로,‘한국·중국 근대화=폴 스위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론적 배경이 이렇기에 한국 식민지근대화론자의 대부로 꼽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원래 학문적 출발점은 종속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친일파의 논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내용 립서비스’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 학자들이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부딪히는 벽도 여기에 있다. 한국식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펼치면 외국학자들은 ‘학술논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제3세계 정치운동’쯤으로 이해하면서 “아직도 저런 철 지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국제학술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런 의미에서 찬반을 떠나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때마침 적합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경제사학자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가 쓰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가 번역한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혜안 펴냄)이다. 안병직 명예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토루 명예교수라는 점도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일단 1992년에서 2000년 사이 발표한 논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기획은 야심차다.‘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사’에 맞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사’를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출발점은 경영형 부농이 서양에서 가장 뚜렷했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고 그 외 동아시아지역이 뒤를 잇는다는 데 있다. 이 차이점이 향후 동아시아 근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본은 서구의 충격과 내부의 동력이 동시에 작용한, 이를테면 외인론(폴 스위지)에 내인론(모리스 돕)을 더한 복선적 발전모델을 걷는 반면, 그외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의 충격이라는 외인론적 모델에 더 가깝다. 전체적인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면 일본제국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외려 급격한 봉건잔재 청산으로 근대화가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본원적 축적’에 가깝다. 이제 민족의 문제로 파악했던 식민통치의 폭력성은 자본주의 근대화의 일반적 폭력성으로 대치된다. 본원적 축적이라는 점에서 ‘개발독재시대’ 역시 도덕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설정된다. 식민시대와 박정희시대에 대한 한국과 일본 우익의 시각이 비슷한 까닭이다.‘그 때는 먹고 사는 게 급했다.’,‘그래도 그 덕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는 화법을 떠올리면 된다. 사토루 명예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일본 경제성장을 연구했을 때 경영형 부농층에 이어 형성된 100인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이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 자본주의 발달사에도 일부 이런 대목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예 중소규모기업보다 대규모 공장제 생산을 강조했던 서양경제사의 통설을 실증적으로 재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역공’이 시작된 셈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논의는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관한 일반이론이지만 일본에는 근대화의 내재적인 싹이 있었다는 일본 중심적인 관점이 전제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려대 아세아硏 정안기교수 “우리는 미시적인 경제사회학 연구를 얼마나 축적했나.”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는 사토루 교수의 논의를 ‘친일 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사토루가 기본적으로 일본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좁은 틀로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원래 남미와 아프리카는 동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의 발전단계를 보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면서 “그렇다면 후발 주자들의 성공적인 근대화에 기여한, 뛰어난 흡수능력은 무엇이냐라는 게 바로 사토루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사토루의 연구는 “세계사적 전망 속에서 동아시아의 성장을 서구의 경제발전론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평가다.‘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제시대 경제성장은 신기루라고 주장한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정 교수는 “경제사적 연구에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개입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이해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주장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안병직·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평가는 한다.”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부가 아닌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경제사학계만의 논점을 제공하기보다 기존 역사학계와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경제사에 대한 기본 연구성과도 없이 한 연구자가 조선후기·식민지·근대 모두 연구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학문적 결론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보다, 제대로 된 논쟁에 이를 만한 경제사적 연구 기반조차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모공치료는 고주파로

    양극성 고주파가 모공(毛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 부설 모공치료센터 장가연·서동혜 박사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78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양극성 고주파갤럭시-RF를 이용,3주 간격으로 총 3회 모공치료 시술을 한 결과 66명(84.6%)에게서 50% 이상 모공 크기가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치료 2개월 후에 시행한 조직검사에서도 진피 전층의 피부 탄력에 관여하는 콜라겐과 탄력섬유가 증가하고 피지선의 크기가 감소해 고주파갤럭시-RF가 피부 탄력을 증가시키고 피지 분비를 감소시켜 지나치게 큰 모공 치료에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열린 대한피부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됐으며, 오는 9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세계피부과외과학회에서도 발표될 예정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日 역사왜곡’ 주제 잇단 학술대회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주말에 잇따라 열린다. 먼저 22일 오후 1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마련되는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 주제의 학술대회. 한국사연구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고대·중세·근현대사 전공자들이 나서서 일본 역사교과서의 구체적인 서술방식과 여기서 드러나는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짚는다. 한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터지자 국내의 굵직한 역사 학술단체 8곳이 주축이 돼 결성된 모임이다. 다음날인 23일 오전 9시부터는 서울 강남 코엑스 본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세계 속에서 독도와 동해 바로 알리기’ 학술대회가 이어진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독도와 동해 문제를 연계시켜 파악할 뿐 아니라 프랑스 리옹대 이진명 교수도 참가해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발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번 학술대회 자료를 모아 대중 교양 역사서로도 출간할 계획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피하라

    우리나라의 알레르기 질환 유병률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항원 물질은 집먼지진드기, 바퀴벌레, 곰팡이, 동물의 비듬 순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어린이에게는 식품이 원인이 되는 알레르기 질환이 많았으며, 원인 식품으로는 계란, 돼지고기, 복숭아, 고등어, 닭고기, 우유, 메밀, 게 순으로 집계됐다. 최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소아알레르기ㆍ호흡기ㆍ면역학회 및 대한소아알레르기ㆍ호흡기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연세대의대 소아과 김규언 교수는 대한소아알레르기ㆍ호흡기학회의 역학조사 및 학회 산하 화분 및 아토피피부염 연구그룹 등의 조사 및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천식 유병률은 지난 95년 5.7%에서 2000년 7.6%, 같은 기간 비염은 12.3%에서 17.7%, 아토피피부염은 12.9%에서 20.3%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병원을 찾은 환자들을 상대로 한 피부반응검사에서는 집먼지진드기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 바퀴벌레, 애완동물의 털과 비듬, 곰팡이 등이 꼽혔다. 김 교수는 “환자 자신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알레르기 가족력이 있는 가족은 임신 중에 직·간접 흡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신생아에게는 가능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라식·라섹 안된다면 눈 안에 인공렌즈를

    라식·라섹 안된다면 눈 안에 인공렌즈를

    초고도 근시나 각막이 너무 얇아 라식 혹은 라섹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 안구의 홍체와 수정체 사이에 인공 렌즈를 삽입해 시력을 회복시키는 ‘홍채지지 안내 렌즈삽입술’이 새로운 시력 교정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렌즈삽입술은 라식이나 라섹수술의 야간 빛번짐 등의 부작용을 보완한 기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이 수술을 받은 환자의 90% 이상이 수술 전 최대 교정시력 또는 그 이상의 시력을 회복했다.’고 발표해 주목을 끌었으며, 지난해 9월에는 이 시술에 사용되는 베리시스-알티산 렌즈가 FDA의 승인을 받기도 했다. 홍채지지 렌즈삽입술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은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 렌즈를 빼내거나 바꿀 수 있어 항상 적절한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또 라섹이 다른 수술에 비해 안전하지만 회복 기간이 길고 수술 후 통증 등이 문제로 지적되는 반면 렌즈삽입술은 회복이 빠르고 수술 다음날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라섹은 수술 후 4∼5개월간 항생제 성분의 안약과 함께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6개월 정도 선글라스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 시술의 경우 안약은 한달 정도 사용하며, 선글라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렌즈삽입술에서 베리시스-알티산렌즈보다 앞서 사용된 ICL렌즈(안내 삽입 콘택트렌즈)는 생체 친화물질인 콜라머로 제작해 수술은 간단하나, 난시 교정이 어렵고 백내장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미국 FDA는 ICL 시술 환자의 2.1%에서 백내장이 발생했으며, 이중 0.4%는 수술이 필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ICL 이전 기술인 Phakic6 시술법은 부작용 때문에 지금은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베리시스-알티산렌즈를 사용하는 홍채지지 렌즈삽입술은 레이저 교정의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고도근시인 -23.5디옵터 혹은 -7디옵터의 난시나 +12디옵터의 원시도 시술이 가능한 것이 특징. 그러나 시술 과정이 비교적 어려워 숙련된 전문의에게 시술을 받아야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대한안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서울 ALC안과 유용성 원장과 건국대의대 임찬영 교수가 발표한 ‘홍채지지 안내렌즈 임상경과’라는 연구논문에 따르면 성인 111명(남 25명, 여 86명)을 대상으로 베리시스-알티산렌즈 삽입술을 시술한 결과 수술 전 평균 -9.6디옵터의 고도근시였던 이들 중 83%가 3개월 후 0.6 이상의 교정시력을 회복했다. 또 대상자의 90%는 최대 교정시력이 수술 전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했을 때와 비슷하거나 높아졌으며 수술 후 백내장, 녹내장, 각막부전 등의 부작용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유 원장은 “특히 고도근시나 난시 때문에 라식이나 라섹수술을 적용할 수 없었거나 이 수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홍채지지 안내 렌즈삽입술을 효과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도움말 유용성 ALC안과 원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신약개발의 최근 동향’ 학술대회

    대한약학회(회장 김종국 서울대 약대 교수)는 18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신약개발의 최근 동향’을 주제로 춘계총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 서울대 학부대학 전환 검토

    서울대는 기초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2006년까지 자유전공제를 도입하고 2007년 이후 입학정원을 2500명선으로 줄여 기초교육원을 학부대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학부대학 제도란 입학한 뒤 2년 동안 교양과정을 이수한 뒤 3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빠르면 올 2학기부터 학사과정 고학년을 상대로 전공지식을 총정리하는 ‘시니어 세미나’와 한 가지 주제를 택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옴니버스강좌’를 도입하고, 새로 채용하는 전임교원의 일부를 기초교육원에 배정한다는 방침이다. 임현진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은 14일 ‘한국의 대학, 기초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유럽서 찾아보는 ‘首都갈등 해법’

    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행정수도 자체에 대한 찬반을 떠나 많은 논란을 낳았다. 민주공화국을 자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조선시대 경국대전까지 끌어댈 수 있는가가 ‘헌법학적 질문’이었다면 수도문제가 과연 국가정체성에서 핵심적인 요소인지, 더 나아가 미리 주어진 국가정체성이란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정치학적 질문’도 있었다. 과연 한 국가에서 수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방과의 균형발전이란 무엇인가. 근대국가 성립은 물론, 국가를 넘어서는 EU 통합까지 추진하고 있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점검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16∼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양에서의 중앙과 지방’을 주제로 열리는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최갑수 서울대 교수)의 10회 학술대회다. 첫날에는 총론격으로 유럽의 수도 발달을 역사적으로 짚어보고 EU 통합에서 불거지고 있는 균형발전의 문제가 논의된다. 둘째날에는 11명의 학자들이 각각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에 대한 사례를 발표한다. 광주대 이영석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유럽에서 수도권 집중현상은 없었다.’는 널리 알려진 상식을 신화로 규정했다. 서구유럽 학문에 대한 추수주의와 지방자치제의 발달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런던과 파리, 베를린간 비교를 통해 유럽의 수도는 왕의 소재지라는 봉건적 잔재 위에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혜택이 겹친 지역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수도는 곧 국가발전과 민족발전의 상징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행정수도 ‘본’으로 국가발전을 이끈 서독의 예를 들어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통일 뒤 베를린으로 옮겨간 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대국주의라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지방차지가 “불균등 발전을 얼마나 완화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다 오히려 불균등발전을 합리화하고 인정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일 수 있다는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뒤이은 발표자들은 EU 통합에 따른 유럽의 균형발전 전략을 살핀다. 부산대 정영주 교수는 EU 통합과 역내 사양산업 해결 방안을, 계명대 은은기 교수는 프랑스의 이상적인 유럽통합방안이 드골식 민족주의에 의해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분석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하나로’ 원전 10돌 국제심포지엄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가동 10주년을 맞아 오는 11∼13일 대전 대덕 컨벤션타운에서 중성자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대거 참석하는 국제 학술심포지엄 ‘하나로 2005’가 열린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는 세계적 전문가 60여명이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과 연구용 원자로의 핵연료 및 재료 조사시험, 중성자 방사화 분석 등 10여개 기술분과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중성자 초거울의 발명자인 헝가리 페렝크 메자이 교수, 미국 표준연구소 중성자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한 마이클 로 박사 등은 중성자 및 냉중성자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이밖에 매년 개최되고 있는 ‘한·일 중성자 산란회의’와 ‘라디오 그래피 워크숍 2005’,‘한·일 중성자 라디오 그래피 워크숍’ 등도 이번 국제 학술대회 기간에 함께 열린다. 한편 지난 1995년부터 가동된 하나로는 세계 10위권의 30㎿급 다목적 연구원 원자로로 지난 10년간 국내 연구자들이 중성자를 활용한 기초·응용분야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수면의학회장 김린교수 선출

    고대 안암병원 정신과 김린 교수가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2005년도 대한수면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2년 임기의 제7대 대한수면의학회장에 선출됐다. 김 교수는 고려대의대를 졸업 후 미국 코넬의대 수면-각성장애센터 연구원, 대한수면의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현재 아시아 수면의학회 재무이사, 고대의료원 기획조정실장 겸 대외협력실장을 맡고 있다.
  •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일본의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이 도마에 오르면서 역사왜곡의 탈출구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탈출구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이후 한·중·일 3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과거사를 서술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구 전교조와 히로시마 교원노조, 한·일교과서연구회, 한·일역사교육교류회도 나섰고 한·중·일 3국의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도 있었다. 분노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안을 내기 위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공통점은 ‘일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이들 작업의 의미와 노력은 인정하면서도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6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에 관한 한·일학술대회’에서 연세대 백영서 교수가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 백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을 주도해온 대표적 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를 분석한 백 교수의 비판 논리는 ‘동아시아사로서의 관점이 불명확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각국 역사 병렬적 나열에 그쳐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동아시아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한·중·일 3국 역사서술을 단순히 ‘합친다.’는 뜻이 아니다.“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동 부교재는 ‘일제의 수탈과 피식민지의 피해’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 것 외에는 한·중·일 3국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삼국지’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동아시아사를 지향한다는 공동부교재 역시 여전히 “국가중심의 역사서술”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판은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예견됐었다. 역사부교재 사업을 두고 길게 봐서는 어차피 3국 민족주의자들간의 싸움으로 끝날 것이라는 노골적인 비아냥도 있었고 “과거에 대해 ‘동일한 기억’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는 무슨 의미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국가중심 역사서술 고집 여전 그렇다면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으로 벌어진 역사전쟁을 뛰어넘는, 동아시아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백 교수는 한국의 발전, 중국의 발전, 일본의 발전이라는 ‘일국사’의 관점을 유지하는 한 “휴전은 이뤄져도 평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 사회에 본질적인 성찰을 가능케 하는 사건으로 ‘한승조 파문’을 꼽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의 노선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매진해온 한국사회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는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가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현 정부에 답을 요구한 질문과 일맥상통한다.“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선진한국’ 건설과 ‘친일진상규명’을 동시에 이루려는 집권여당은 일본의 길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앞장서 온 친일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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