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학살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86
  • 르완다군 재무장 자제해야(해외사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지난 16일자로 르완다행 무기의 금수조치를 중단했다.키갈리정부는 그것을 당연히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르완다의 공보장관은 「새로운 소식」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르완다 정부는 군대를 중립화할 수 있게 됐다고 결론지었다.동시에 유엔의 결정과 르완다의 반응은 곧바로 수천명의 르완다 난민이 있는 주변국가에 팽배해 있던 불안을 해소시켰다. 르완다는 군대의 배후에 있는 인간살육의 책임자를 적시하라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구체제 군대의 지도자들은 오늘날 자이레와 탄자니아에 2백만명의 후투족 난민들과 함께 있다.사실 이들 난민들은 신체제를 불안하게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여전히 위협하고 있다.아니면 르완다 애국전선(FRP)이 지배하는 정권을 다시 세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르완다 장관의 발표도 주변의 어떤 국가들에게는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구체제의 후투족이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난민촌에 대한 르완다의 공격이 우려되고 있는 자이레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르완다 군대가 재무장할 것이라는전망때문에 르완다국경에서의 군사개입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당장 자이레의 지도자들은 정부군이 증강하기 전에 후투족의 과격주의자들이 르완다에 신속한 행동을 옮길지 걱정한다. 주변국의 우려를 맞아 우리는 르완다정부가 난민들이 돌아올 수 있는 진정한 긴장완화 조치들을 취해주기를 기대한다.인권기구들은 난민복귀 조치가 정체상태에 있다고 상기시켰다.르완다의 군대는 쫓겨난 후투족에 대해 여전히 공갈만을 하고 있다.르완다 난민들은 군대가 돌아올 것을 권해 놓고 수백명의 난민을 죽인 키베호학살을 잊지 않고 있다. 금수조치의 중단이 불가피했음은 물론이다.르완다정부는 구체제를 겨냥한 금수조치를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으며 구체제는 애국전선에 의해 전복됐다고 밝혀 왔다.그러나 논리적으로는 유엔에 의해 인정되기는 했지만 주변의 긴장과 공포를 심화시키는 재무장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5·18」불기소 항의 격렬시위/6천명 도심 곳곳서

    ◎경찰,진압과정 기자 넷 폭행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 정신계승 국민위원회」와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시민·대학생 7천5백여명은 5·18 관련자에 대한 검찰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16일 하오 서울 중구 장충단 공원에서 「5·18 학살자 불기소처분 규탄과 기소관철을 위한 제3차 국민대회」를 갖고 『특별검사제와 특별법을 도입해 반드시 관련자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집회가 끝난 하오 4시10분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집이 있는 연희동쪽으로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은 장충체육관 앞 네거리를 전면 통제하고 최루탄을 쏘며 강제 해산시켰다. 그러나 한총련 소속 대학생 6천여명은 하오7시40분쯤부터 3시간여동안 지하철 신당역,종로5가,을지로6가,한대앞 등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날 하오 4시40분쯤 중앙일보 장문기(32)기자가 경찰이 휘두른 진압봉에 배와 다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중앙일간지 사진기자 4명이 부상을 입었다.이에 앞서하오 1시30분쯤에는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 전철역 구내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 1백여명이 경찰에 강제 해산당하는 모습을 촬영하던 서울대 학보사 기자 김병기(19)군이 전경 10여명의 군화발에 밟혀 입술이 터지는 상처를 입었다.
  • “전쟁은 정당” 일 극우단체 시위/종전 50주년… 일·미·태 표정

    ◎워싱턴 공식행사 전무… 언론도 침묵­미국/10만여명 희생된 콰이강서 위령제­태국/일 각료 9명 전범위패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8천여명 추도식 ▷일본◁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15일 정부주관하에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도쿄 기타노마루공원 무도관에서 일왕부처,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도이 다카코 중의원의장등 정부·국회관계자,유가족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조선인·대만인 등을 포함한 군인·군속 2백30만명,일반인 85만명등 3백15만명을 추도한다는 이날 행사에서 무라야마총리는 『그 전쟁에서는 많은 나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깊이 반성과 애도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무라야마내각의 각료 9명이 전범들이 봉사되고 있어 늘 말썽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올해 참배각료는 14일 미리 참배한 우라노 야스오키 과학기술처 장관을 포함,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명의 각료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데 비해 올해는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통산상,방위청장관등은 「공인」 자격으로 「공식참배」. 특히 히라누마 다케오 운수상은 이날 참배시 다른 각료들이 머리만 숙인것에 반해 「2례 2바교수 1례」의 신도식으로 참배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규정과 관련해 물의 무라야먀 총리 등 연립여당 3당 당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하지 않았으나 자민당의원 1백32명(대리참배 73명),신진당의원 36명(대리 20명)등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배대열에 합류,정치권의 분위기가 지난해보다 「참배」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줬다. ○배상 등 요구 시위 ○…오사카(대판)에서는 15일 한국유족,중국남경대학살 생존자,일본시민등 4백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집회가 열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 이날 집회에서 일제징용으로 남편을 잃은 유족 이김주(74·전남 광주)씨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다』면서 사죄와 배상을 일본정부에 촉구. ○안보리 기념성명 ▷미국◁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전쟁승리 50주년이 「망각」된 채 지나갔다.현지시간 14일인 승전일에 미국정부의 전승기념 공식행사는 물론 이에 대한 언급도 전무했다.이를 다룬 신문사설조차 없었다. 미국에서 태평양전쟁 승리는 일본의 미 진주만 기습(41년12월7일) 기념행사때 함께 축하되지만 언제나 종속적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진주만기습 50주년 기념행사는 4년전 미전역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바 있다. 미국인에게 정작 8월은 원자폭탄 투하의 달로 더 기억된다.미국언론은 지난 6일 원폭 투하 50주년 당시 히로시마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은 대대적인 기획기사를 다뤘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아시아지역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3개항의 기념성명을 채택,국가간 신뢰구축과 협력을 통한 단결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 된다고 밝혔다. ○생존포로 등 참석 ▷태국◁ ○…2차대전당시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태국에서 철도부설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가 숨진 연합군장병 1만6천여명과 아시아인 10만여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겸한 종전50주년 기념식이 15일 연합군 생존포로및 전일본군 병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방콕서쪽 칸차나부리에서 거행됐다.
  • 대만·말련 등 축하행사…일에 사과 촉구/종전50주년…아태국 표정

    ◎학살고발 영화전·폭죽 터뜨리며 행진­중·대만/“경제대국 일 눈치”… 조용하게 보내 대조­동남아 2차대전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은 일본에게는 패배의 날이지만 많은 아시아국가에게는 일본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환희의 날이다.종전 50주년를 맞아 한국·대만·호주 등은 이날 일본의 패전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벌이거나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과거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등 일본의 패전의 의미와 잔학상을 부각시켰다.하지만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국가는 의도적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등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에서는 수리눙 장군(74)을 필두로 20여만의 대만인이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고 폭죽을 터뜨리며 시가를 행진,일본통치 종식 50주년을 기념. 이등휘 총통의 보좌관인 하우페이춘씨는 『50년전 오늘이야말로 중국인에게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회고. 행진자중에는 「나는 중국인이다」란 표어를 내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부와 남부대만으로부터 올라온 이들도 끼어 있었다. ○…중국은 잔혹한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상영과 우표전시회,신문사설등으로 일본항복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주요우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않기 위해 신중한 반응. 특히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발간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일본군에 의해 3천5백만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나라의 수뇌치고는 용의주도한 발언을 해 주목.『나는 모든 일본인과 정치인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중·일관계의 정치적 기조를 지켜나갈 것으로 믿는다』 한 중국관리는 사적으로 『일본 항복 50주년을 맞아 중국이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 있는 마당이므로 일본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폴 키팅 호주총리는 14일 일본에 대해 2차대전중의 군국주의와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어린이에게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교육시키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촉구. 키팅총리는 이날 호주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인 15일을 맞아 『일본이 군국주의정책으로 이웃국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를 대표해 이에 대한 유감표명을 해주길 바란다』고 언급. 그는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였는데도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메시지를 일본인에게 남겼다』면서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 만큼 전쟁은 일본의 사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 ○…2차대전중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동남아국가들이 말레이시아의 국지적인 행사개최를 제외하고는 종전 또는 해방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동남아국가들의 이같은 반응은 이 지역 최대의 경제협력 파트너이자 원조제공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책으로 되새겨보는 광복 50주년/대형서점 「특별코너」를 살펴보면

    ◎항일투쟁사·일제만행 고발 서적 많아/해방후 현대사 다룬 책도 눈여겨 볼만 광복 50주년을 맞은 오늘 관련서적들을 읽으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이 시대를 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대형서점이 정리한 관련도서 목록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주요서적들을 골라 본다. 올해는 한일관계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져나왔다.게다가 내용과 형식이 아주 풍부해 특정 사건·인물의 평가에서 양국 역사·문화의 본질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연구서·소설·수기·비평 등 갖가지 형태로 선보였다. 올해 나온 관련도서들을 살펴보면 먼저 일제의 국토강점에 대항해 해외에서 벌인 항일독립투쟁을 소개한 것들이 돋보인다.독립유적지 기행을 비롯,독립운동가의 수기와 전기 등을 통해 자칫 세월에 묻힐뻔한 귀중한 증언들을 수록했다.또 일제의 침략정책을 분석한 연구서,친일파의 모습을 까발린 책도 여럿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만행도 집중 조명했다.종군위안부·징병·징용 등의 강제동원,한국인 원폭피해자의참상,관동대지진 때의 집단학살 등의 실상을 폭로하고 일본이 보상해야 할 부분은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촉구했다.이 가운데는 가해자측인 일본인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뜻에서 낸 책들과 제3국인이 객관적 시각으로 일제를 비판한 것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일본은 없다」로 촉발된 일본비평서 붐은 올해에도 이어져 한·일 양국의 상대국 비평서가 많이 출간됐다.상대방의 약점만을 들춰내 비난으로 일관한 책들이 여전히 섞여 있지만 역사·문화를 깊이있게 분석한 책들도 여럿 나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이밖에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지적한 책도 여러권 나왔다. 광복이 「일제 마수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광복은 곧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출발을 뜻하기도 한다.이런 점에서 광복이후 현대사를 다룬 책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미군정 3년의 공과를 평가하거나,해방공간에서 남북의 어느 한켠에 서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통일 노력을 기울인 남북협상파의 궤도를 추적한 연구서들이 돋보인다.
  • 유엔,크로아 전쟁중단 촉구결의/세계의 집단학살 증거도 폭로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유엔 안보리는 10일 만장일치로 크로아티아에 즉시 전쟁을 중지할 것과 남아 있는 세르비아계의 인권 존중 및 고향으로 돌아가는 난민들의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본부 로이터 AP 연합】 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공개회의에 참석,세르비아계가 여러 장소에서 보스니아 민간인 수천명을 집단학살한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 「독일의 양심」으로부터 배우자(해외사설)

    독일은 광신적 권력을 휘두른 히틀러에 이끌려 유럽 전역에서 5백만∼6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유태인의 생명을 빼앗았다. 일본을 방문중인 바이체커 전독일대통령은 전후 40주년을 맞았던 지난 85년5월8일 「독일 패전의 날」 연설에서 독일국민이 저지른 범죄에 언급,「과거에 대해 눈을 닫은 자는 현재에도 장님이 된다.비인간적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와 사실은 될 수 있는 대로 숨기고 싶어 한다.독일국민에게도 「우리는 언제까지 사죄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라는 기분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바이체커씨는 과거를 직시하는 것만이 유대민족과의 「마음으로부터의 화해」로 연결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때린 쪽은 곧 잊지만 얻어맞은 쪽은 언제까지 잊지 않는다.아우슈비츠에서 대량학살당한 유태인과 폴란드인은 잊어버릴 자유조차 박탈당했고 그 유족과 동포는 오랫동안 나치의 공포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한국 사이에도 똑같은말을 할 수 있다.중일전쟁에서 일본군국주의에 희생당한 중국인은 과거의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잊지 않았다.한국에서의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은 아직도 「싫어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다. 「만일 우리가 앞서 일으킨 일을 마음에 새기는 대신 잊어버린다면 이는 비인도적인데 머물지 않고 화해의 싹을 짓밟는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바이체커 전대통령의 말이 독일인 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의 공감도 얻은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자살하기까지 유태인 절멸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던 히틀러와 그를 지지한 독일국민,「팔굉일우」(온세상이 하나)식 확장주의로 이웃나라들에 커다란 고통을 끼쳤던 일본.과거는 결코 과거가 아니다.교훈을 현재에 살려야 과거로 된다.역사교육도 필요하다.과거에 집착하는 「독일의 양심」으로부터 배우고 싶다.
  • 「피해」만 강조하는 일본(오늘의 눈)

    6일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50주년이 된 날.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원자폭탄이다.9일에는 나가사키가 원자폭탄 피폭 50년을 맞는다.따라서 히로시마 50년을 맞아 「유일 피폭국」 일본으로서는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폭돔이 있는 평화공원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중·참의원장,최고재판소장 등 3부 수장을 비롯,60만명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했다.이날의 메시지는 「Never Again Hiroshima」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이었다.학생대표들이 나와 평화에의 맹세를 제창하고 비둘기가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기념식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히로시마 50주년과 관련,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일본 언론 특히 TV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은 피해국일 뿐이다.일본은 반핵의 대의명분을 온통 다 갖고 있는 듯이 미국을 향해 원자폭탄의 사용이 정당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원폭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미국내 의견은 일본 언론에서 환영받는다.「히로시마」의 홍수 속에 일제가 점령한 지역에서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시련과 슬픔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건조하게 전해지고 있다.예를 들면 일본군 독가스 실험으로 몇만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식이다. 일본은 오키나와까지 점령된 뒤에도 결사항전을 계속하고 있었다.45년7월26일 발표된 포츠담선언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28일.전쟁수뇌부는 이를 묵살했고 아사히신문 등은 「묵살」,「소살」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포로를 상대로 한 생체실험과 점령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독가스 실험은 일제의 잔학성을 말해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침략과 차별,전쟁,학살,집단 강간,강제연행,재산공출,민족말살 그리고 전후 피해자들을 외면·방치해온 그 모든 책임보다는 마지막 맞은 매가 아플 뿐이다.「히로시마」의 홍수 속에 스스로의 궤적을 더듬는 노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이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외국인들의 지적이다.히로시마를 되새기는 것과 함께 스스로 초래한 일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 「군사우위」확신… 영토탈환 총력전/크로아 왜 세계 전면공격나섰나

    ◎「인종청소」로 세계 여론 악화 힘입어 반격/세계 강경정책 표방땐 발칸반도 전면전 보스니아내전은 과연 발칸반도 전역으로 확산될 것인가? 4일 세르비아계에 대한 크로아티아군의 전면공격 시작은 이같은 우려를 한층 고조시켰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계는 3일 제네바에서 가진 회담에서 얼굴을 맞댔었다.그동안 군사적 우위를 보였던 세르비아계가 유엔측 평화안을 받아들이고 크로아티아와의 재통합도 논의할 수 있다는 양보 자세를 보인 반면 크로아티아는 회담 결렬을 주장하며 회담장을 떠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크로아티아의 강경 입장은 91년 6개월간의 전투에서 영토의 5분의1을 세르비아계에 빼앗긴 후 이를 되찾아야겠다는 결의에서 금수조치에도 불구,군사력 비축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이제 군사력에서 세르비아계를 압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계와의 접경지역에 10만의 병력을 포진한 반면 세르비아계는 5만 병력으로 맞서고 있다. 그간 세르비아계가 자행해온 인종청소와 난민 학살 등으로 세르비아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집중됨으로써 이제까지 세르비아계의 군사적 우위를 가능하게 했던 세르비아공화국의 세르비아계에 대한 지원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도 크로아티아로 하여금 적어도 세르비아공화국이 크로아티아와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간의 전투에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게 만든 것같다. 이같은 크로아티아의 판단은 그러나 세르비아 국민들이 유화자세를 보이고 있는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에게 불만을 품고 세르비아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밀로세비치가 이같은 압력에 굴복,개입을 결정하면 진짜로 발칸반도 전역이 전쟁터가 될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공격으로 내전이 확산되면 세르비아에 집중됐던 비난이 크로아티아로 돌아가며 내전확산 방지를 최우선과제로 꼽는 서방 각국들은 크로아티아에 대한 압력을 한층 가중시켜 크로아티아의 전투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결국 이번 크로아티아의 공격도 한때 긴장을 고조시켰다가 수그러졌던 과거의 예처럼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어느 기간이 지나면다시 가라앉고 발칸반도의 지루한 「땅 뺏기」 싸움은 또다시 끝없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 5·18책임자처벌 서명운동/허전남지사 동참키로

    【광주=임정용 기자】 검찰의 5·18관련자 불기소 결정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허경만 전남지사는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 위원회」가 펼치는 특별법 제정 및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허 지사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산하 공무원들의 서명 참여 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 세계 점령 도시/15∼55세 남자 모두 행불/의료단체 회장 폭로

    ◎목격자들 “일부는 학살” 【파리 AFP 연합】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에 함락된 동부지방의 스레브레니차와 제파에서 15∼55세의 모든 남성이 행방불명되었다고 구호단체인 메드생 뒤 몽드(세계의 의사들)의 회장이 30일 말했다. 최근 보스니아에서 돌아온 베르나르 그랑종 회장은 TV회견을 통해 『일부는 숲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며 세르비아계에 잡혀간 다른 남자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내가 말하는 남자란 징병연령층 즉 15세부터 55세까지의 모든 남자를 가르킨다』고 말했다. 그랑종 회장은 『일부가 학살당했다』고 말하고 『우리가 이것을 아는 까닭은 특히 스레브레니차에서 온 목격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세르비아계는 주민의 대다수가 회교도인 스레브레니차를 이달 11일에,제파를 25일에 각각 장악했다.
  • 사할린 조선인 학살 일서 배상청구 기각

    ◎도쿄지방재판소 “시효 지났다” 판결 【도쿄 연합】 일본법원은 패전직후인 45년 8월 사할린에서 일본헌병 등에게 학살된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고 교도통신이 27일 보도했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이날 이른바 사할린「가미시스카」 학살사건 배상청구소송 결심공판에서 『민법상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 시효(20년)가 지났기 때문에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면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와함께 국가에 의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피해자 개인에게 직접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는 국제관습법에 대해서도 『국제인권법,인도법의 의무에 반하는 국가의 행위가 있을 경우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국제관습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배상청구시효 소멸을 기각의 주된 이유로 내세웠으나 국가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일축한데다 학살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제침략전쟁중 발생한 불법행위 및 전후책임문제에 대한일본사법부 인식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미시스카 학살사건은 일본군 패전직후인 45년 8월17일 사할린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헌병 등이 조선인 징용자 수십명을 스파이혐의로 연행,사살하고 불을 질러 숨지게 한 사건으로 김경순씨(65) 등 희생자유족들은 모두 9천만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 유엔­세계 포로교환 논의/“세계 포로2천명 강제노역”/난민들 증언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유엔과 보스니아 정부 및 세르비아계 대표들이 26일 전쟁포로 교환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이반코 대변인은 루퍼트 스미스 보스니아 지역 유엔군 사령관,세르비아계의 라트코 믈라디치 사령관,정부 대표들이 사라예보 공항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해 함락된 제파의 회교도 남자들과 정부군에 의해 붙잡힌 세르비아계 포로들을 서로 교환하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AFP 연합】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포로로 잡힌 약 2천3백명의 보스니아 회교 정부군이 세르비아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행하고있다고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UNHCR)이 목격자들을 인용해 25일 밝혔다. 난민고등판무관실의 존 레드먼드 대변인은 보스니아 병사들이 국경근처 바츠코비치 수용소에 갇혀있다면서 보스니아 북부 비옐이나 마을에서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과정에서 추방된 난민들이 이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또 유엔 안전지대인 투즐라에 간신히 도착한 다른 난민들도 AFP통신에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됐다고 전했는데 이같은 소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다.
  • 세계,「안전지대」 제파 장악/유엔 공식 시인

    ◎「보」정부군 철수… 시민들 피난 【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25일 회교정부군이 퇴각한 보스니아 동부의 유엔안전지대인 제파를 장악했다고 미리엄 소차키 유엔대변인이 밝혔다. 이로써 세르비아계가 스레브레니차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지 2주만에 보스니아동부의 유엔안전지대 3곳 중 2곳이 함락되고 고라주데만 남게 됐다. 소차키 대변인은 『유엔평화 유지군은 난민들을 통해 제파내에 회교정부군이 남아 있지 않으며 세르비아계가 시내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엔대변인인 크리스 버논 중령은 세르비아계가 제파를 장악한 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제파에서 공방전을 벌여온 세르비아계와 회교정부군은 주민소개 협정에 합의한 바 있다. 유엔 관계자는 제파에 주둔한 평화유지군 소속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보고를 인용,이 협정이 제파내에서 남아 있는 여성과 어린이,부상자,노약자 등을 다른 지역으로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특사 아카시 야스시(명석강)는 세르비아계와 회교 정부군이 협정을 맺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들 주민의 소개가 구체적으로 언제 이뤄질지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하리스 실라지치 보스니아 정부 총리는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해 스레브레니차 함락이후 이뤄진 학살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줄 것을 촉구했다.
  • 검찰,“「5·18 위증고발」 수사”/기소촉구 결의대회·시위 잇따라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22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주영복 전 국방장관 등 5·18사건 관련자 7명을 위증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정밀검토작업에 들어가는 등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위증여부를 가리기 위해 당시 국회 청문회자료와 수사결과를 면밀히 비교,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일정과 방법은 5·18사건 고발인들의 항고와 재항고등 법적 불복절차가 남아 있어 이를 먼저 마무리한 뒤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변이 위증혐의로 고발한 5·18사건 관련자는 전 전대통령과 이 전계엄사령관,주 전 국방장관등 3명을 포함,최웅 11공수여단장,안부웅 11공수여단 61대대장,권승만 7공수여단 33대대장,임수원 3공수여단 11대대장 등이다.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상 위증혐의가 드러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공소시효는 7년으로 89년말 증언한 전 전대통령은 96년 12월30일,나머지 피고발인들은 올 12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1백36개 단체 참가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의 1백36개 재야단체로 구성된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공동대표 조비오 신부)는 22일 하오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시민과 학생 등 3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5·18 책임자 기소관철을 위한 광주시민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전남대·조선대 등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 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 5백여명은 이 날 상오 6시 40분쯤 광주지검 앞에 몰려가 「5·18 책임자 재수사」 등을 요구하며 최루탄으로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5일째 격렬한 시위를 했다. ◎연희동 진출 시도 한국대학 총학생회 연합 소속 대학생 1천8백여명은 22일 하오 6시30분쯤 서울 연세대에 모여 5·18 광주사태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집회를 마친뒤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의 집이 있는 연희동 쪽으로 가려다 경찰이 막자 학교앞 도로를 점거하고 3시간여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전경과 학생 20여명이 다쳤으며 경찰이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며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마당에 최루탄을 마구 쏘아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 “5·18 기소하라” 무기농성/광주·전남 공대위

    ◎“관철안되면 정권퇴진 운동”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 1백36개 단체로 구성된 「5·18 학살자 기소관철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동대표 문병란조선대교수)소속 인사 등 30여명은 21일 하오7시부터 광주시 동구 계림동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실에서 5·18 학살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공대위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특별법제정 및 특별검사제도입과 5·18진상규명을 위해 전국의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투쟁하겠다』며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김영삼 정권의 퇴진운동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남총련 6백여명/4일째 격렬시위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남총련)소속 대학생 6백여명은 21일 하오7시 30분쯤 광주시 북구 중흥동 민자당 광주시지부앞에서 『5·18 진상규명과 특별검사제도입』등의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4일째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대협,특별검사제 도입 촉구/5·18 불기소관련

    ◎광주선 」특별법 제정」서명운동 대한변협(회장 김선)은 20일 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과 관련,공소시효연장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해 철저히 재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변협은 이날 성명에서 『80년 비상계엄 확대조치부터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에 이르는 일련의 헌정파괴행위들은 검찰의 이번 판단처럼 과거와 다른 통치조직이나 헌법질서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아니라 형법상으로 내란및 내란목적살인의 범죄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법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오늘부터 무기농성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의 1백36개 재야 및 학생 단체로 구성된 「5·18 학살자 기소관철을 위한 공동 대책 위원회」(공대위)와 민주당 광주시 지부는 20일 하오 6시 광주공원에서 학생과 시민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 학살자 처벌 범시민 궐기대회」를 갖고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공대위는 21일부터 민주당 광주시지부 당사에서무기한 항의 농성과 함께 광주우체국과 광주YMCA 앞 등에서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오는 28일 쯤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
  • 80년 광주주남 양민 사살 관련 군인/검찰 신원알고 은폐 의혹

    ◎전역자 조사과정서 사망 확인 80년 5월 23일 광주 주남마을 양민 10여명을 사살한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 5중대 소속 계엄군은 이미 사망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지검은 지난 18일 「5·18」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남마을 양민학살사건의 경우 총을 쏜 행위자가 확인되지 않아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발포자를 확인했으며 숨진 사실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망한 군인이 발포명령자인지 아니면 발포자 가운데 한명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대위를 중대장으로 하는 공수부대의 중대는 장교 2명과 하사관·사병 등 모두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검찰의 이같은 은폐는 발포명령자 및 지휘계통에 대한 수사확대 및 사법처리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9일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전역병 1백여명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남마을의 주민들에게 총을 쏜 군인의 신원을 파악,신병확보에 나섰다』면서 『그러나 그 군인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사를 받았던 전역병들로부터 살인죄의 공소시효(15년)가 끝난 지난 5월23일 이후 이같은 진술을 받아냈다』고 덧붙였다.
  • 「5·18」불기소 반발 확산/재야·시민단체

    ◎항의 농성·규탄집회 잇따라/“양민학살 진상 밝혀라” 송광주 시장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소·고발사건에 대해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이 사건 피고소·고발인 모두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데 대해 재야 및 시민단체 등은 19일 이들 전직 대통령 등 관련자를 사법처리할 것을 촉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검찰이 그 연장선상에 있는 5·18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통치행위임을 내세워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국연합」은 오는 22일 하오 2시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서 검찰의 불기소결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사회단체들과 연대,항의농성과 규탄집회를 잇따라 열 계획이다. ◎유족회등 상경시위 【광주=최치봉 기자】 송언종 광주시장은 5·18과 관련된 피고소·고발인에 대해 공소권이 없다는 검찰의 발표와 관련,정부를 비판했다. 송시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해온 김영삼 대통령 정부가 진상규명을 외면하고 덮어두려는 것은 국민을 실망시키고 역사에 반하는 처사』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만큼 당시 군부세력이 자행한 양민학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며 『책임자 처벌이나 용서 여부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또 5·18유족회와 부상자회 등 50여명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항의하기 위해 이 날 상오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서울지검과 청와대를 방문해 항의시위를 한 뒤 명동성당 등에서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