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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墺 극우연정 출범 각국 반응

    [예루살렘·베를린·워싱턴 외신종합]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즘의 부활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극우 자유당과 보수 인민당의 연립정부 구성이 발표되자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토마스 클레스틸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승인여부를 3일 발표할 예정이나 반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2일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 소환 결정을 발표하며 “21세기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오스트리아의 조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나탄 메롬 대사에게 오늘 당장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고 말했다.대사소환 조치는 외교상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중 하나로 이스라엘이 나치를 연상시키는 자유당의 연정 참여에 대해 얼마나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2일 자유당이 연정에 합의하기로 최종 결정되면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우리가 희망하는 새로운 유럽 이미지와 배치되는 자유당의 나치 두둔 발언에 대해 분명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면서 “자유당이 결국 연정에 참여하면 향후 양국 관계가 어려워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선 앨 고어 부통령도 이날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어 부통령은 “나치를 동정하고,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피해를 축소하려는 듯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인물이 연정에 참여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2일 자유당이 유럽 전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있다고 경고했다. 피셔 장관은 기자들에게 “자유당이 유럽 전체에 끼칠 수있는 위험 가능성이 현재 과소평가돼 있다”면서 “외르크 하이더의 자유당이 오스트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새로운 극우 민족주의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의원들도 2일 오스트리아에 자유당의 연정 참여를 재고해 달라고요구하는 등 자유당 반대 캠페인에 동참했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자유당을‘내부의 암적 요소’라고 규정하면서 자유당의 연정참여는 유럽의 민주적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비난했다.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영사관이 2일 새벽 누군가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영사관 관리들은 “비록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영사관 공격행위가 있었다”면서“이번 사건이 자유당의 연정 참여에 따른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연정 참여 합의가 런던 외환시장에서 악재로 작용,유로의 하락행진을 부추겼다. 유로는 런던 외환시장에서 연정 합의 발표 당일인 1일 유로는 유로당 0.9724달러로 폭락했다가 2일에는 다소 회복된 0.9770달러에 거래됐다. *루시디 뉴욕타임스 기고 “墺극우정당 부상은 '체제부패' 탓” [뉴욕 연합] ‘악마의 시’로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영국출신 작가 샐먼 루시디가 현재 전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오스트리아의극우정당 부상의 원인을 ‘체제 부패’라는 시각에서 분석한 기고문을 미국 뉴욕타임스에 2일 기고했다.다음은 루시디의 기고문을 발췌한 것.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정국의 틀을 유지해온 연립정권,이른바 ‘대연정(大聯政)’체제는 유권자들을 환상에서 깨워 하이더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유럽 신문들은 요즘 거액 정치자금 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불법자금 문제는 하이더와 같은 선동정치가에게는 기막힌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부패로 선고를 받았던 베티노 크락시 이탈리아 전 총리의 ‘상속인’들이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면서 크락시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부정자금이 서로 관계없는 일이라고주장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너무나 손쉽게 목적을 수단시하는 건방진 지도자들간의 ‘대연정’ 사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이더같은 극우정치인들에게 공격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게 된다. 정치이론가 칼 마르쿠스 가우스에 따르면 하이더는 유럽인 특유의 ‘트릭’을 잘 사용해왔다.그는 프랑스 출신 장 마리 르펜이나 이탈리아 출신의 움베르토 보시처럼 부유하고 성공적인 부르조아 계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콜 전 총리를 반대하는 독일 시위대들의 플래카드는 “시스템이 부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들의 지적은 옳다.부패와의 전쟁과 하이더에 대한 투쟁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EU(유럽연합)는 하이더와 그가 이끄는 자유당과의 투쟁을 위한 단결 강화라는 측면에서 내부의 부패자금 기부자들을 소탕하는데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한다. 히틀러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는 해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역사가 최근 유럽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는 극우(極右) 분위기를 네오 나치즘 복귀현상으로 기록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면 EU는 하루빨리 내부부터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 [대한시론] 새천년의 화두는 생명

    생명이란 무엇인가? 새천년기의 화두는 특별히 생명과 생명운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우리는 일상적으로 인간생명,자연생명,도덕생명,정치적 생명,심지어는 민족생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그러면서도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이 일회적인 것,역동적인 것,체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따라서 초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 문제는 이제 모든 학문의 관심사로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돼있다. 산업 선진국은 이미 수십년 전에 생태계위기,공해와 관련해서 이 문제의 연구에 착수했다.국내에서도 미진하긴 하지만 생명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시민운동단체도 증가하고 그 활동도 점점 활발해져 가고 있다.생명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는 쉽지 않지만,생명현상에 관해서는 특히 생명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에서 이러저러하게 해명하고 있고,‘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으로서 여러가지 이론 혹은 학설이 제시되고 있으며 각 종교에서도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고 있기는 하다.‘생명’을 한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사태들은 쉽게 열거할 수 있다.세계적인 현상으로서 빈곤,기아,풍토병,폭력,전쟁을 들 수 있을 것이고,온갖 종류의 살인,집단학살,낙태,안락사 등 인간의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육체와 정신의 고문,심리적 탄압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도 들 수 있다.나아가서 노예화,인신매매,노동의 악조건 등과 같은 반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행위와 현상을 들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과거 경제 일변도의 정책과 급속한 산업화의 추진으로 인해 자연파괴가 극심하고 공해가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또 전통적인 가치관이 그 효용성을 잃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신주의와 인명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팽배해 있다.사고와 사건의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형이고 잔인하다.인간생명을 보호하고 돌보아야 할 사명을 지닌 의료종사자들의 무책임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도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인간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현상들의 배후에는 근본적인 문화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현대 문화에는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적 태도가 자리잡고 있어서,인간이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도 좋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병통이다.이러한 사고방식에 의한 행동은 죽임의 문화를 잉태하게 된다. 죽임의 문화에서는 인간끼리의 연대성,나아가서는 자연과의 연대성,타인에대한 열린 태도 따위는 무시되며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나 이기적인 이익추구와 변덕만이 생각과 말과 행위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생명존중의 의식이 실종됨으로써 사람들은 실천적 유물론에 빠지게되고,이 유물론은 실용주의,쾌락주의를 낳게 된다.그래서 소유가치가 생명가치의 자리를 차지하고,개인의 물질적 안락만이 삶의 유일하고 중요한 목표로서 간주된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른바 ‘삶의 질’도우선 효율성,무절제한 소비주의,쾌락 등으로 해석되어 인간 상호간의 영적,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심오한 측면이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비리와 반생명적 의식은 개인의 양심과도관련되지만 사회윤리의식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사회가 생명에 반하는 행위들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죽임의 문화를 고무하지는 않는지 모두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죽임의 문화 대신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지금은 인간끼리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모두가 서로 손상하지 않고,만물의 존재의의를 인정함으로써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생명문화의 드높임에모두가 투신해야 할 때이다.이러한 방안으로는 개인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생명사상,문화의 공동 연구와 보급,국내외의 생명운동단체,환경단체,문화단체끼리의 연대활동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종대 서강대교수·철학 생명문화연구원장
  • [대한광장] 진정한 새천년

    새로운 천년 시대가 도래했다는 광휘로운 불꽃 축제는 이제 지났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축제는 단지 행사였을 뿐 하늘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경구만 곱씹게 한다.연탄불에 알밤을 구워 파는 풍경도 여일하고 시장 좌판위의마루는 ‘골라골라’의 디딤판으로 요란하다.나의 귀가시간이 달라지지 않았듯 옹색한 살림살이 또한 대한 추위와 함께 동결상태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 반대인사 명단 발표는 찬물을 정수리에 들이붓는 것 같은 충격이다.여러가지 견해가 난무하지만 나는 이번 일을 6월항쟁 이후 오랫동안 좌절만을 곱씹던 이른바 민주시민들의 실질적인 주권쟁취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는 않았으리’란 절규를 시인에게 강요한 저 80년의 비극을 87년 6월 시민들은 눈물범벅,콧물범벅으로 넘어섰다. 신촌에서 시청 앞까지 가득했던 시민들은 뒤통수에 철심을 맞고 쓰러져간 이한열을 생각하며 다시는 이 나라에서 젊은이가 무고하게 죽어서는 안된다고다짐했다.그리고그날 시민들은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푸른 하늘에 대고 맹세를 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민주주의는 어떠했던가.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선의를 가지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건설해줄 것으로 순진하게 믿고 생업에 귀환하였다.그러나 그날 흰 장갑을 끼고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이 땅의 민의를 거스르면 망한다고 다짐했던 정치인들은 그러한 소망을 배반했다.분열과야합,더러운 나눠먹기만을 일삼았고,한 나라가 둘로 나뉜 것도 서러운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나누고 나뉜 자리에 빨대를 박고 단물만 빨아먹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정치 혹은 정치인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을보여주는 가늠자였고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모두의 초상이기도 하다.정치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이 서로의 이해를 관철해가는 수단이다.또 대립할 수밖에 없는 집단끼리 최선이 아니라 덜 나쁜 쪽으로 선택해가는 기술이기도 하다. 개인과 개인간에 작동되는 선의나 호의는 집단과 집단으로 범위가 확장되는 순간 이익과 탐욕으로 돌변하고 마는 현상을 정치는 최소화하고 보다 바른방향으로 견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을 도시와 농촌으로,때로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금을 긋고 서로에게 적당한 배타적 이기심을 부추기면서 공의와 민의의 이름으로 이권을 챙기고 행세만 했다는 것이 다수 민중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극심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작동되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구체적인 살림살이를 좌우하는 정치를 외면하게 만들어 결국 국민을 정치로부터 더욱 더 소외시켜온 것이다.총선시민연대의 발표는 바로 이런 점에서 그동안의 무력감을 극복하고새로운 세상을 건설해나갈 출사표라 하겠다.또한 그것은 6월 항쟁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그날 역량의 부족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건설로 이어질수 있는 교두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우선은 대의를 제쳐둔 채 형식논리만을 앞세우는 ‘음모론’을 불식시켜야할 것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낙선운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운동으로 비약시켜 나가야할 것이다.물론 이때의 정치운동이란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적 지도자를 뽑았을 때 의당 수행해야 할 건설적 비판과 제언을 나날의 삶 속에서 제기하는 능동적인 활동을 말한다. 합리적인 판단이나 이성을 지역감정이나 색깔론으로 바꿔치기 당하면서도자신의 이권이나 편의,혹은 정서적 유대감에만 의지하여 결과적으로 합리적정치를 불가능하게 했던 우리 모두를 갱신시키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운동이 아닐까?.새천년은 그때 시작될 것이다. 강형철 숭의여대교수·문학평론가
  • [대한광장] 기억과 망각

    21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아주 짧지만 흥미있는 기사 하나를싣고 있다. “스웨덴이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전하는 바는 간단하다.스웨덴 총리인 고란 페르손이 지난 19일 스웨덴 거주 유대인연합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의 잘못을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공식입장은 2차대전 동안 스웨덴은중립적 입장을 취했을 뿐이라는 자기변호적인 것이었다.그러나 스웨덴은 전쟁기간 동안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화를 피해갔을 뿐 아니라 나치의 군수공장에 철광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사실 일부 현대사가들은 다른 나라에는 엄청난 비극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스웨덴에게는 부국으로 발돋움하는계기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스웨덴 정부는 비단 이뿐만 아니라나치군대가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침공하기 위해 스웨덴 영토를 가로지르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스위스의 엄정중립과는 달리,자의든 타의든나치에호의적인 중립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페르손 총리는 이번 주에 열릴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고위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웨덴의 이런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들이 국제문제에서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입장을취하는 데 반해,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비교적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원칙을고수했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당시의 잘못을 시인하는 데는 인색했던 모양이다.따라서 페르손 총리의 발언은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양심정치의 작은 승리라고도 하겠다.그것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 작은 기사가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 직전의 일본 방문에서 받은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일본의 진보적 잡지 편집자들과 역사가들을 몇만났는데,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에서 낸 ‘국민의 역사’라는 책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지하철 전동차에 붙은 광고는 발매 한달 만에 벌써 62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이다.일본 친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아사히신문조차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우익단체의 집회에 가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쓰라린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미래를 지향하는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국민의 역사’는 일본의 전쟁책임과 침략사실을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지난 23일 오사카에서는 극우단체의 지지자들과 역사가들이 ‘남경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는집회를 열어 중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부활시킨 지난해의 조치와 호흡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아시아 민중들에게 그것이 주는 끔찍한 의미를 일본은 이미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사회의 역사의식이 이렇게 기억보다는 망각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보다는 망각이 편할 때가 많다.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쓰라린 기억보다는 편한 망각을 택함으로써,일본사회는 스스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있는 셈이다.용서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스웨덴과 일본의 이 차이는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민중연대 사이의 메울 수없는 간격을 드러내준다.지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유럽연합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주독일이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의 끈을놓지 않고 집요하게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데 있다.동방정책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 당시 총리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했을 때 독일과 폴란드 양국 간의 아픈 과거는 미래의연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끈이 된 것이다. 한·중·일 3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주창하는 동아시아 민중연대 역시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딛고 설 때,어렵게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실천적연대에 앞서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드잡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여기에 있다. 임지현 한양대교수·사학
  • “한국의 어두운 베트남전쟁 유산”

    30여년전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베트남 양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는 사실이 ‘한겨레21’등 국내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된 가운데(대한매일 12일자 보도) 해외언론들도 이같은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11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한국의 어두운 베트남전쟁 유산’(S.Korea's dark Vietnam War lagacy lingers)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아닌 제3국으로서는 최초로 이같은 사실을 전세계에 보도했다. 로이터는 ‘한겨레21’ 273호에서 베트남 현장을 심층취재,보도했던 구수정(34) 통신원의 진상규명 노력을 전하고,대규모의 양민학살이 발생한 베트남빈딘지역의 행정관리 3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국군에 의해 1000여명의 빈딘지역 양민들이 집단학살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한겨레21’의 보도가 베트남 언론에 실리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이 문제에 주목해왔다.당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었으나 베트남 정부의 취재허가가계속 지연되면서 결국 익명을 요구한 관리들의 증언을 통해 보도기사를 먼저 타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말 ‘노근리사건’을 심층보도해 세계적으로 공론화시켰던 미국의 AP통신도 최근 베트남 정부에 취재허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밖에도 영국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BBC와 미국 매릴랜드주의 일간지 ‘볼티모어썬’ 등도 한국의 베트남 관련 보도에 대해 언급하는 등 해외언론의 관심이높아지고 있다.그러나 국내 언론은 지난 15일 ‘한겨레’가 사회면에서 로이터의 보도를 언급했을 뿐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 日정부, 난징대학살 첫 시인

    [홍콩 연합]일본 정부가 1937년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알려진 난징(南京) 대학살 사건을 처음으로 시인한 것으로 20일 밝혀졌다. 홍콩의 위성채널인 봉황(鳳皇)TV를 비롯,명보(明報),성도(星島)일보 등은중국 신화통신 보도를 인용,일 정부 관계자가 60여년만에 최초로 일본군이난징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한 책임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성도일보에 따르면 일 외무성의 누마타 사다키(沼田貞昭) 대변인은 19일 신화통신 회견에서 “정부는 ‘난징사건이 발생한 적 없다’는 민간단체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당시 일본군에 의한 살인과 약탈행위는 부정할 수 없는사실”이라고 말했다. 누마타 대변인은 그러나 ‘난징사건 왜곡’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23일 오사카(大阪)에서 난징 사건의 전모를 부인하는 대대적인집회를 계획중인 것과 관련,“난징 사건에 대한 정부 인식과는 별개로 민간단체의 집회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해 이들의 집회를 제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 [대한포럼]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베트남전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내내 떠돌았던 하나의 신화가 있었다. 한국군은 너무나 용감하고 잘 싸우기 때문에 베트콩은 한국군 이야기만 들어도 도망을 가고 만다는 것이었다.그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자랑스러워 했었다.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베트콩이 한국군을 피했던진짜 이유가 다른데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감격해 마지 않았던 한국군의 신화는 어찌되는가. 노근리에서 미군은 한국 양민을 학살했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 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증거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베트콩이 달아났던 진짜 이유는 한국군이 너무나 무서워서였다는 증언들이 나오고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앉아 버텨볼 것인가,아니면 한국군은 언제나 명예롭게 싸웠으며 지금와서 양민학살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요 사실이 아닌 조작된 것이라고 우겨볼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난해 노근리 사건이 표면화된 이래 기회만있으면 미국에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사설을 쓰고 있다.이제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965년 12월12일,한국군 2개 대대가 빈딩성 턴지앙촌에 500여발의 대포를 발사한 뒤 ‘깨끗이 죽이고,깨끗이 불태우고,깨끗이 파괴한다’는 구호 아래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다.그들은 이 마을에서 어린이,여성,임산부 등 50명이 넘는 양민을 학살했다” “66년 1월23일부터 2월26일까지 한달여동안 빈딩성 일원에서만 1,200명의 주민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됐다.그 중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가족이 8가구나 됐으며 1,535채의 집과 649마리의 물소가 불태워졌거나 총탄에 쓰러졌다”. 이 기사는‘한겨레21’이 베트남에서 취재한 자료와 현지 증언을 토대로 지난해 5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보도한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제하 기사의 일부분이다.우리는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베트남전을‘전선없는 전쟁’이라고 했다.베트콩은 어디에도 있었고 어린이도 여자도 베트콩에 협력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군은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구는 양민을 향해서도 열려 있었고 학살은 미리부터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고‘한겨레 21’은 쓰고 있다. 베트남 문화통신부는 불완전한 통계임을 전제로 베트남전동안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양민수가 5,000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피해자의 주장들이 얼마간 과장됐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있었던 이런 이야기들을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노근리 사건의 잔학상이 한국전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던 미군의 총체적전적을 손상시키지 않듯이 우리군의 일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이 베트남에서 싸웠던 한국군의 빛나는 전공을 말살하지도 않으려니와 그곳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원혼들의 명예를 더럽히지도 않을 것이다. ‘한겨레21’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말’지 등이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담아내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노근리 사건을 한국인 아닌 미국의 AP통신이 파헤쳤듯이 한국의 언론이 베트남에서의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한국언론의 양심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언론·사회단체,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밝혀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미국에 주장하듯이 진상을 밝힌 후 필요하다면 적정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그렇지 않고 우리가 노근리 사건등을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밝히는 일은 용기이지 치부가 아니다.그것이 한국인의 양심이고 한국의 희망이다. 임춘웅 논설위원limcw@
  • [대한광장] 진실의 시간

    지난 역사를 농경사회,산업사회로 크게 대별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지식 정보화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말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우선 신문의 면수만 봐도 그렇다.두툼한 책자에 버금가는 정보가 쉼없이 실리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매일매일 전달되고 있다.인테넷 공간에는 간단한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한없는 정보가 국가간은 물론 대륙을 넘어 넘나들고 있다.뿐이랴 이제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즉각즉각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 시대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공간개념을 전면적으로수정할 것을 요구한다.혼자만의 공간,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다.어느 누구도 골방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다.부르면 즉각 답해야 한다.머뭇거릴 시간도 없다.보이지 않던 공간을 활용하는 순간 보이던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공간은 남아 있다.바로 우리의 현대사다.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의 정치범 1,800명을 포함 대전 대구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 처형된 사실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6.25관련 비밀문서에서 확인되었다고 한다.이들 비밀문서는 제주 4·3사태를 추적해온 한 재미동포가 미국정부에 요청하여 지난해 12월 16일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목숨이 왔다갔다한 사실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한 창고에서 수십년간씩이나 냉동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이르게 한다.얼마전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서 보듯 터무니없이 희생당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희생당한 사실을 쉬쉬하면서 40∼50년을 지내와야 했던 통한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통한의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의 규명이다.또한 규명된 진실에 걸맞는 명예의 회복일 것이다.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정보의 허망함에 한기를 느낀다. 정보의 총량은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것의 소통방법은 그야말로 최첨단이건만 그러한 정보의 대부분이 갇혀있는 정보의 한 줄에 비해 결코 값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가 진정 어디인지 아득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의 확인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그것이 무엇이든 한번에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건만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죽은줄 알고 묻으려 했던 아이가 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리는 비 속에서 통곡하던 소설‘밤길’의 끝부분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국내 규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이루었던 진실이 마른 시냇물 흐르듯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형국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치 필요한정보는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진실의 시간은 늘 미래이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이 현재가 언젠가 밝혀질 진실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현재가 없다는 말에다름 아니다.우리는 현재로부터 영원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또한 소외되어 있는 시간 동안의 억울함과 분노,치욕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몫일 따름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정보는 진실이 담겨 있는 역사다.니체는 한책에서 ‘사람들이 이미 사랑할 수 없는 곳 그곳을 통과해야 하노라’라는말을 한 적이 있다.나는 이 대단한 정보지식의 사회가 미루어진 진실 혹은유보된 진실의 세계를 관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참정보 사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형철 숭의여대교수·문학평론가
  • “한국군 베트남戰 부끄러운 역사 고백을”

    지난해 9월말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은 다름아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수백명의 양민을 대량학살한 ‘노근리 사건’이었다.그러나 이 사실은 국내 언론이 아닌 미국의 AP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공론화됐다는 점에서큰 아쉬움을 남겼다.이에 따라 한국언론이 ‘외신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미국이 ‘가해자’임을 과감하게 밝힌 AP통신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것일까.모든 언론의 관심이 희망찬 21세기와 새천년으로 쏠리고 있는 지금,일부 언론이 20세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밝혀내기 위한 외로운 작업에 나섰다.‘노근리’의 양민학살과 같은 사건이 30여년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면을 통해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도의 발단은 지난해 5월 ‘한겨레21’ 256호에 실린 구수정(34) 베트남통신원의 기사 ‘아!몸서리쳐지는 한국군’으로부터 시작됐다. 5페이지 분량의 이 기사는 베트남 전범조사위의 한국군 만행 기록에 주로 바탕을 두었다. 이어 구 통신원은 과거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했고,같은해 9월 ‘한겨레21’ 273호에 12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실었다.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의 이기사는 국내 언론이 최초로 보도한 한국군의 양민학살 기록이다.때마침 10월,베트남의 시사주간지 ‘일요 투오이쩨’는 베트남 언론 최초로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를 제기했고,이어 여러 매체에서 구 통신원의 기사를 소개했다. ‘한겨레 21’은 한발 나아가 280호부터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라는 주제 아래 ‘베트남전 양민학살 피해자가족 돕기운동’에 나섰다.이 잡지의 편집장은 성금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배경과 관련,“우리의 비극에 햇빛을 들이대길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치부에 햇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금운동은 292호까지 벌써 13회째 이어지고 있다.성금액도 일주일에 300∼400만원씩 꾸준히 모여 모두 5,000만원을 넘어섰다.베트남관련 기사 및 캠페인을 맡고 있는 고경태(33) 기자는 “앞으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밝혀져야 할 ‘역사의 진실’ 앞에서 다른 언론의 동참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오연호(36) 전 월간 ‘말’지 기자도 월간 ‘말’ 1월호와 ‘오마이뉴스’ 창간준비호에서 35년만에 입을 연베트남 참전 청룡부대 전투소대장들의 증언을 생생히 담았다. 오 기자의 심층보도가 전해지자 KBS ‘추적60분’팀이 현장취재에 들어갔고,곧 ‘오마이뉴스’에서는 기사를 영문번역해 베트남에 알릴 계획이다.오 기자는 “과거의 ‘가해’역사를 솔직히 반성해야 ‘노근리 사건’에 대한 배상 요구도 떳떳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美, 노근리진상 철저규명 약속

    미국측 노근리사건 대책단장인 루이스 칼데라 육군성 장관과 미측 자문위원단은 10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 현장 등을 방문,현지 주민들로부터 한국전쟁당시 학살 피해에 대한 증언을 듣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미측 방문단은 이날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대책위’ 정구학(鄭求學·60) 총무 등으로부터 미군의 항공폭격 및 기관총 사격 등 학살피해 상황등을 듣고 현장인 쌍굴터널 등에 남아 있는 탄흔 등을 조사했다. 칼데라 장관은 이어 영동군청 회의실에서 대책위 관계자 등과 면담을 갖고“미국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그러나 당시 미 육군과 공군의 작전기록 검토와 참고인들의 증언청취 등조사활동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측 방문단에는 크레긴 인사·준비태세 담당 부차관,헨리 인력차관보,애커먼 감찰감 등 미 육군성 고위 간부 및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매클로스키 전하원의원,메이 하버드대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한편 한·미 양국 ‘노근리사건’ 대책단 및민간자문위원단은 11일 정부중앙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진상규명을 위한 협조방안을 논의한다.양국 대책단은 회의 후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공조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노주석기자 joo@
  • 印尼 종교전쟁 발발 위기

    인도네시아가 새해 벽두부터 사실상 내전 위기에 처했다.발칸반도가 따로없다.엄청난 희생끝에 동티모르가 독립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암본을 중심으로말루쿠주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기독교도와 회교도간의 분쟁이 전쟁양상으로치닫고 있다.일부 신문은 최근 2주일 사이에 2,000명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급기야 회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회교도들의 움직임 30여만명의 인도네시아 회교도들은 7일 자카르타 독립기념 광장에 모여 말루쿠 제도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회교도간 유혈 사태의복수를 위해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시위대는 이날 “교회를 불태워라”“관용은 넌센스다.기독교도들을 죽이라”는 구호를 외쳐댔다.이들은 회교 정치가들과 운동가들이 낸 신문 광고와소집령에 따라 모여들었다.통합개발당 지도자이자 장관을 역임한 함자 하즈와 국민협의회 의장인 아미엔 라이스도 참석했다.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무정부상태인 말루쿠주 인도네시아 군은 7일 말루쿠제도로 무기가 밀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 9척과 정찰기 5대를 배치 이지역을 완전히봉쇄했다.또 군병력을 대거 투입됐다.일간지 레푸블리카는 6일 말루쿠제도북쪽 할마헤라 섬에서 회교도 2,000명이 학살됐다고 보도했다.암본에서만 최근 700여명이 사망했다.안타라통신은 지난해 12월 26일 이후 할마헤라섬 7개지역에서 모두 99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 예배처 122곳을 포함한 건물8,500채가 부셔지거나 불탔다.수만명이 다른지역으로 피신했다. 새해 들어서1만 7,500명이 이곳을 떠났다. ■말루쿠주도 암본 19세기 태평양권 무역 중심지로 네덜란드의 항구였다.따라서 기독교도가 많다.2차대전 후에 인도네시아에의 편입을 거부,독립운동이벌어졌으나 강점당했다. 중앙정부의 회교도 이주정책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90년대 들어 이슬람교도가 지배세력이 되면서 긴장이 조성됐다.이때 기독교도들의 독립요구도 불거지기 시작했다.98년 11월 양측의 싸움으로 14명이 숨진 사건이 무력분쟁의 시발이었다.이외 분리독립 운동이 고조되고있는 지역은 아체주와 이리안자야주,리아우주 술라웨시섬 남부등이다. 김병헌기자 bh123@
  • 강화서 어제 첫 합동위령미사

    6일 오전 10시 인천시 강화군 강화천주교 성당에서 6·25 당시 우익청년들에 의해 강화 갯벌에서 무고한 죽음을 당한 양민들에 대한 첫 합동위령미사가 열렸다. 이곳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이 좌·우익으로 갈려 상상을 초월한 살육전을벌였던 실상이 49년 만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족대표 서영선씨(徐玲善·63)는 “1·4후퇴 직후인 51년 1월6일 강화교육청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적(敵)치하에서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우익단체인 강화향토방위대원들에 의해 강화읍 옥림리 옥계갯벌에서 살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14세였던 서씨는 복면을 한 방위대원 3명이 어머니 김덕임씨(당시 40세)를 끌고가는 장면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한다.서씨 5남매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데다 할머니마저 방위대원들에게 학살돼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났다. 다른 유족들도 부녀자 15명을 포함한 60여명이 좌익이거나 부역을 했다는이유로 6일부터 8일 사이 옥계갯벌과 갑곶나루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유족들은 또다른 피해가 두려워 이같은 사실을 밝히지못하다가 최근노근리 양민학살 등이 규명되고 있어 용기를 내 처음으로 위령미사를 지내게 됐다. 서씨는 “가해자들에 의해 정확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 김학준기자 hjkim@
  • [99외교결산] (하)인권외교 결실

    99년 한국 외교는 ‘미들 파워’로서 국제적 위상정립에 골몰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틈바구니에서 국제적 역할과 좌표를 찾는 동시에 수세적 외교에서 능동적 외교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외교목표가 구체화됐던 1년으로 기록될 만하다. 올해 정부는 인권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다.인류발전의 기본 방향인 인간 존엄성을 외교에 접목시켜 대내적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대외적으로 인권외교를 통해 세계 평화공존을 실현한다는 취지였다.21세기 인권외교가 거스를수 없는 시대정신이 됐다는 의미도 된다. 동티모르 전투병 파병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지난 64년 베트남 파병 이후 35년 만의 일이다.당시 베트남 파병은 ‘미제(美帝)용병시비’ 등 국내외에서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다.반면 동티모르 파병은 우리의 주체적 판단과인권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파병 문제를 총지휘했던 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은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파병 당위성으로 내세웠다. “대량학살에 직면한 동티모르인들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특히 ‘아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티모르의 정치불안을 조속히 매듭지어 아태지역의 경제 번영에 일조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비전투병 파병을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여당 단독으로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인권지도자로서의 국제적 명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인권외교는 ‘햇볕정책’과도 맥이 닿는다.정부 당국자는 “포용정책은 남북한 주민들의 인간 존엄성에 기초한 관용과 상호 인정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대북 경협 확대와 평화공존은 북한 경제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신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지난 3월 홍장관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북한 인권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먹을 권리와 이전의 자유가 국제인권 규약에서 불가침의 권리로 인정되고있다”고 전제,“북한 당국은 즉각적으로근본적 조치를 취해 북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세안+3’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미얀마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갖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나 지난 11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담에 협력 동반자국 대표로 참석,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 외교노력을 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인권외교는 탈북자 문제라는 ‘블랙홀’에 빨려들면서 적지않은 ‘내상(內傷)’을 입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우리 동포인 탈북자들의 인권유린 문제는 외면하고 외국에서 인권보호를 외치고 있다”는 파상 공세를 받았다. 더욱이 탈북자 문제를 ‘주권 문제’로 못박은 중국정부의 완강한 태도에밀려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며 물밑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도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교황 “무력금지 새천년엔 화합을”

    [바티칸시티 AFP AP 연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79)는 25일 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발표한 성탄절 축하 메시지에서 세계 각국에 분별없는 무력사용을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발표한 전통적인 ‘우르비 에오르비(로마 안팎의 신도) 축복’ 메시지를 통해 “슬픔과 전쟁으로 얼룩진현장,또 잔인한 전투와 학살의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그리스도 당신을 바라보게 된다”면서 더이상 무력과 폭력,증오에 의지하지 말 것을 세계 인류에 당부했다. 교황은 올해 건강 문제로 성탄절 미사를 집전하지 못했다.교황은 메시지에서 “인류는 그동안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다른 잘못된 신념을 만들어 내고,또 그릇된 이데올로기를 추구해 온 점을 인정해야한다”면서 “인류는 때때로 신앙과 인종이 다른 형제자매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성탄절 전야에 천국의 문으로도 불리는 성베드로 성당의‘거룩한 문’을 열고 새 천년의 도래를 축하했다.
  • 죽산 조봉암 정치역정 고찰서 나와

    우리 사학계에서 미개척지대로 지칭되고 있는 영역이 시대사 연구이다.서양의 역사연구나 기록이 정치사 중심에서 시대사,생활사로 다양화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역사연구는 주로 왕조사·정치사·사건사 등에 치우친 감이 없지않다. 한국 사학계에서 최초로 현대사(해방이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51) 교수는 최근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펴냈다(역사비평사펴냄).이 책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법살(法殺)된 이후 정치학계,역사학계 모두에서 연구가 미진했던 진보정치인 죽산 조봉암(曺奉岩)의 정치역정을 1950년대라는 시대사와 맞물려 연구한 것으로 금년 6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죽산 조봉암전집’과 함께 조봉암 연구의 쌍벽으로 평가할만 한 책이다. 상권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점에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반공’ 일색의 한국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인 조봉암’의 정치역정을 통해 당시대를재조명하고 있다. 해방과 남북한의 정권수립에 뒤이은 6·25전쟁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1910년대,일제말기 만큼이나 암울한 시기였다.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달해 있었으며 사회는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 시기에그같은 현상을 거부하면서 혁신·진보세력이 태동하였는데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이 내건 평화통일론은 겉모습은 미국·유엔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냉전·극우반공체제에 남북간의 긴장과 적대의식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이승만 정권하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조봉암을 두고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조봉암과 진보당이 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주창했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의 계획화·국유화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진보세력이 이같은 노선을 취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하권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50년대에 자행된 양민학살문제와 부역자 처리 등 전후 처리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특히 부역자 처리문제 등은 박원순 변호사 등 몇 사람의 연구성과가 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겨진 분야여서 이번 저자의 문제제기는학계의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할만 하다. 양민학살문제의 경우 97년 ‘거창양민학살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근 국회에서 ‘제주4·3사건특별법’이 추가로 제정된데다 지난 9월 ‘노근리사건’이 사회문제로 제기돼 학계의 연구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일부사건을 제외하고는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제주4·3학살,거창양민학살 등을 제외하면 그외의 주민집단학살과 부역자 진상파악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학살문제에 대해서 당국과 국민들이 침묵하는 것은이해할 수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반성과 양보가 민주화합 열쇠

    노동계와 자본계 간의 대립·충돌양상이 송구영신의 사회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경제의 신탁통치’라고 할 IMF 위기관리 체제하에서 실업의불안과 노동조합활동 자체의 약화와 파괴를 노리는 ‘전임자 무임금’ 주장에 참을성을 잃은 양대 노동조합 조직은 반세기,아니 100년의 한을 딛고 분연히 궐기하고 있다.재벌을 비롯한 기업가집단 역시 더이상은 밀릴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자세로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얼핏보면 그럴듯하면서도 현대세계 노동운동사상 유례가 없는 부도덕한 원칙을 깃발로 내세우며,제밥통을 지키려는데 연연해 있는 국회의원들의 약점을 들먹이며 입법권 행사까지도 돈의 위력에 의해 차단시키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은 물질 경제적 조건의 공급지원을 받고 있는 의식주체들 간의 사랑과 협력에 의해 가능하며 더 윤택한 발전의 길로 나아간다.근로자는 회사와 가정과 국가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물질경제 생산·창조의 중심주체들이어서 노동기피성향이라는 보편적 인간본성의 원리대로라면 오히려 이들의 노동 고통의 덕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변사람들이 거꾸로 도움을 청하거나 협력·지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개인보다도 선행적 존재자인 사회,그것도 근로자가 탄생하기이전부터 버티고 있는 힘있는 자들의 공동체사회는 자본소유주들의 자의적노동력 지배를 원칙 이전의 철칙으로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의식의 주체·생산의 주체라기 보다는 부유계층의 지배수단인 자본을 증식시켜주는 지능을 가진 기계장치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되어 자기의 생산물을 자주적·협의적으로 함께 관리 운용할 수 없는 처지에 있어 왔다. 개인과 공동체의 물질 경제적 삶의 역사는,사람들의 욕망과 수요에 비해 자원과 공급이 언제나 부족하여 대립·갈등과 고통을 주고받으며 충돌하여 왔음을 입증해주고 있다.이런 현상은 인지와 과학수준이 낮았던 과거로 올라갈수록 심하였다.그러니까 생산된 재화를 많이 차지해간 사람이든 빼앗긴 사람이든 과거로 올라갈수록 공정성을 판단하는 지혜의 수준도 낮았고 빈곤의 수준 역시 피차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에 와서는 생산·공급할 수 있는 온갖 재화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에 적절하게 분배하고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갖게 된다면 상당한 수준의 생존·생활상의 수요는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물질조건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어찌하여 세계적 민주사회와 경제선진국임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폭력이 격돌하는 집단 난투극이 아니면 문제해결이 안되는 암둔한 상황을 헤매게 되는 것일까.집단난투극이 빈발하고 또 이 난투극밖에 문제해결의 방법이 없게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사회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추정 가능한 요인을 든다면,원천적으로는 개인 모두의 생존적 욕구에 원죄가 있겠으나 사회구조적으로는,장기간의 봉건적 관행과 침략외세에 의한 식민지 노예적 노역강요와 겁탈과 세뇌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그리고 보다 중요한 요인은,이 모든 불합리했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성원들,특히 지배계층 인간들의 반성적 실천이 거의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공자의 가르침을 핑계삼아(가르침 자체에도 결점이 많았지만) 지배계층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 유교적 위계질서와 신분제 강행은 사람이사람을 노예로 부려먹고 순종 안하면 때려죽여도 항의가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물질 경제적 소유여부의 선택권이 오로지 소수 지배계층에게 점유된 채 수 백년 수십 세대 동안이나 절대다수의 생산근로자들을 머슴백성으로 짐승처럼 길들여 왔다. 이같은 약점을 잽싸게 이어받아 총칼에 의해 통제의 고삐를 틀어쥔 일제의간악한 통치배들의 노역강제와 수탈,저항에 대한 고문·학살,몽둥이질에 의한 교육과 언론세뇌,이어서 그들에게서 훈련받은 친일 반역세력이 부당한 자산을 그대로 지닌채 지배세력으로 재등장하면서 자신들의 범죄은폐를 위해자주적 근로세력에 대해 오히려 적반하장의 반공 역적몰이를 상시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이 사회의 노동질서와 의식,생산·소유·분배질서를 인도주의적협력과 공정한 원칙보다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에 따르도록 관행화시켜 놓았다.이제 역사의 왜곡없는 진실인식에서부터 반성·양보·협력하는 올바른 실천의 길을 찾아야할 때이다. [朴智東 광주대교수·언론정보학]
  • 글라이스틴·위컴 회고록 ‘알려지지 않은 역사’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일까.박정희 전대통령의 서거와 12·12 군사쿠데타,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중앙M&B가 발간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알려지지않은 역사’(황정일 옮김)와 이번주 출간될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의‘12·12와 미국의 딜레마’(김영희 옮김)는 당시의 비사(秘事)를 통해 한미양국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두 사람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한국에서 재임했던 인물.‘알려지지…’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카터행정부와 이에 반발한 박정희 대통령간의 갈등을 비롯해 미국의 대북 3자회담 요구,한국장성들의 전두환 제거 역쿠데타 기도 등의 사실을 공개한다.아울러미 행정부가 ‘북한카드’를 활용,김대중을 구명하려 했던 과정 등도 소상히밝힌다.올해 초 해제된 미 국무부의 당시 전문(電文)도 싣고 있다. ‘12·12와…’는 군부관련 동향을 자세히 소개한다.위컴은 12·12전 자신이 입수한 신군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한국 군부가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신군부가 역 쿠데타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던일,전두환이 미국의 지지를 얻은양 언론플레이를 벌인 일 등을 상술한다.두회고록은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전두환의 정권장악과 광주학살에 대해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외교관인 글라이스틴과 군인인 위컴이 같은 사안을 놓고 쓴 것이라,한반도정책 수립의 양대축인 미국무성과 국방성의 접근방식도 알 수 있다.각권 9,000원. 정기홍기자 hong@
  • [외언내언] 독일의 강제노역 배상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가 쿠담거리에 우뚝 선 ‘깨진 교회’는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내외국인들이 찾는다.‘카이저 빌헬름교회’가 ‘깨진 교회’로 불리는 까닭은 2차대전말 연합군 공습으로 교회 윗부분 3분의 2가 날아가고 나머지 부분만 폭탄을 맞은 상태로 보존돼 있는 모습 때문이다.보수를 안한것은 전쟁의 상흔을 후대에 알려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에서다. 이 교회 인근에 세워진 ‘속죄의 이정표’도 깨진 건물 못지 않게 인상적이다.‘아우슈비츠 681㎞’,‘다흐하우 458㎞’등으로 씌어진 10여개의 표지는 과거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대살육의 현장을 알린다.대전(大戰)중 유태인들을 학살한 집단수용소를 가리키는 이 이정표는 나치의 만행을 참회하고 반성하자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는 이같은 ‘속죄의 이정표’를 흔히 볼 수 있다. ‘속죄의 이정표’중 한곳으로 뮌헨근교에 위치한 다흐하우는 대전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담은 자료와 사진,소각로 등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학습과정에 포함돼 있어 어린 학생들이 인솔교사의설명을 들으며 참혹한 만행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외국관광객들에게는 다소 야릇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훈으로삼으려는 독일민족성이 얄미울 정도로 냉철하게 느껴진다. 독일은 대전 피해국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그동안 국가차원에서 끝낸 상태이다.다만 전쟁중 폴크스바겐·지멘스등 독일 기업에서 강제노역 한 외국인들에 대한 배상문제가 남아 있었으나 16일 100억마르크(52억달러)의 배상금 규모에 합의,연내에 해결키로 함으로써 전쟁 장본인으로서 국제법적 의무를 충실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웃이 좋아야 동네가 화목하기 마련이다.독일이 과거의 죄과를 인정하고피해보상에 능동적인데 비해 같은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의 피해국들에 대한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독일이 전후 공동체안의 독일을 강조하며 통일과 번영에 노력했다면 일본은 자신만의 풍요로움을 추구한 나머지 역사의 책임의식과 이웃 나라의 아픔을 돌이켜 보는 여유를 잃은 것 같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그렇고 강제노역·포로학대·군표·미지급예금 등 전후배상 문제가 분출하고 있지만 처리가 지지부진하다.종군위안부 문제만해도처음에는 자료가 없다며 실체를 부인하다 자료가 나오자 불완전하다는 핑계를 대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 국가배상은 안된다고 한다.남경 대학살과관동지진 학살도 마지 못해 인정하는 것도 솔직하지 못한 자세다.야속하다못해 얄미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든다.독일이 과거 멍에를 훌훌 털고 새 천년을 맞는 자세를 우리 이웃은 어떻게 볼까. [李基伯 논설위원 kbl@]
  • “사천 마곡리서도 美機에 13명 희생”

    6·25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에 의해 6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사살된 경남사천시 곤명면 조장리 부근 마곡리에서도 미군 전투기에 의해 주민 13명이사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곡리 양민학살피해대책위(위원장 姜英春)는 10일“인근 조장마을에서 폭격이 있던 다음날인 50년 7월30일 정오쯤 미군 전투기가 마을 앞 제방에 모여 있던 주민 150명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13명이 숨지고10여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미군기로 보이는 비행기 5대가 마을 주위를 순찰하고 간 직후 전투기 4대가 날아와 사격을 했다”며“당시 주민들은 흰 옷을 벗어 흔들며 사격 중지를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피해 주민들은 이날 대통령과 국방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사천 이정규기자 jeong@
  • [기고] 東亞평화와 인권을 향하여

    한반도 전역이 한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을 때 따뜻한 남국의 섬 오키나와에서는 평화와 인권의 ‘난장판’이 질펀하게 벌어졌다.참가자의 암구호는 ‘미·일의 냉전정책과 동아시아의 평화·인권’.한국,타이완,일본 등 각지에서 320명 이상이 모여 11월26일부터 29일까지 열기가 이어졌다. 휴양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키나와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다.바로 미군 기지의 존재이다.섬 전체 면적은 일본 국토의 0.4%에 지나지 않으나,기지를 포함한 미군 전용시설의 75%가 집중돼 있다.미군 기지의 철폐를 둘러싸고 줄기찬 운동이 전개된 것은 물론이다.이번 제3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국제 학술대회가 오키나와에서 열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참고로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회의’는 지난 1997년 2월 제1회타이완 대회를 기점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로 돛을 올렸다. 참가자는 물론 발표자까지 자비부담을 원칙으로 하며,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는 것에서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조금은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제2회대회는 작년 8월 제주도에서 열렸다.‘4·3사건’이 국제 무대에 올려진 것은 그 때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한국 일행 64명(단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이 오키나와에 도착한 것은 25일.다음날 오전 옛 류큐 왕궁이 있던 슈리성과 박물관을 둘러보고,곧바로대회장소인 사시키로 향했다.27일은 오키나와 전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 9만4,000여명의 전사자에 비해 민간인이 15만명이나 죽어갔다는 사실이 오키나와 전투의 본질을 얘기해 준다.급기야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부모가 자식을 죽여야 했던 처절한 비극이 섬 곳곳에서 벌어졌다. 섬에서 아비규환은 섬 남단의 마부니에 있는 ‘평화의 주춧돌’이 겨우 이름만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참극은 식민지 조선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군의 스파이로 몰려 학살당한 한 조선인 가족명단의 마지막은 ‘제5자(第五子)’였다.젖먹이까지 죽인 것이다.한편 그 옆 한국인 희생자 기념비에는일본군 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박정희의 이름이 버젓이 박혀 있었다.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오후는 오키나와의 현재의 비극,미군 기지 문제.최근에 외신에 가끔 거론되는 후텐마 기지의 이전 후보지인 헤노코에서 현지 주민들과의 연대 집회가있었다.‘인어’로 오인되기도 하는 세계적인 희귀 동물 듀우공의 서식지를매립하고 동아시아 평화의 ‘수호자’ 미군은 비행장을 건설하려고 한다는것이다.기지로 인해 황폐화되는 것은 듀우공과 자연만이 아니다.그 속에 살아가야 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28,29일 이틀은 본격적인 심포지엄이 4개 세션으로 나눠 열렸다.주제는 ‘동아시아의 냉전을 넘어서’와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구조와 일본’,‘냉전하 동아시아 민중의 수난과 투쟁’이 1,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고,3국에서 20편의 발표가 이루어졌다.국가폭력과 관련한 여성문제도 대회의 중요한 이슈중의 하나다.여담이지만 그 점에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가장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오키나와의 관련 단체와 굳건한 동맹을 맺었으며,모금도 성공적이었으니까. 심포지엄의 총괄이 끝나고 각국의 성명서와 공동성명서가 채택되었다.참가자들의 마음은 푸근하게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 착착 그 무게를 더해간다는 것을느낀 것은 물론이다.4회 대회는 내년 5월에 광주에서 열린다.광주민주화항쟁20주년과 한국전쟁 50주년의 의미를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의 실현에 비추어서. [하종문 한신대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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