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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신문사에 난입한 고엽제전우회 4명 영장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29일 연행한 회원 42명 가운데 사진 및 비디오 채증작업을 통해 극렬시위자로입증된 고모씨(54) 등 4명에 대해 건조물 침입, 특수공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38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7일 오후 3시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앞에서 “한겨레신문의 ‘월남 참전용사 베트남 양민학살’보도가 참전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사옥에 난입,사무용품 등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사설] ‘正論紙’ 유린 안된다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회원 2,200여명이 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앞에 몰려가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보도에 항의,시위를 하는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이 신문사 사옥에 난입,신문제작 설비 등을 파손하는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에따라 보도하는 권리가 보장돼 있다.또한 일반 시민이나 단체도 언론보도에이의가 있을 경우 얼마든지 항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항의는 어디까지나 적법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보도에 불만이 있다고 신문사에 쳐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한 전우회 회원들의 행위는 언론자유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이들의 ‘난동’에 대해 정부와 여야,언론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언론자유를 명백히 위협하는 폭거’라며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오는 것도 그때문이다. 전우회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현지 주민의 희생은 불가피한데도 한겨레신문사가 마치 참전용사들이 고의적으로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처럼 보도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전우들의 인격을 매도했다”며 보도중지와 함께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다.이같은 주장에 대해 한겨레신문사는“베트남 양민들의 억울한 희생을 보도한 것은 결코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돼야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한국전쟁 중에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크게 보도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전우회쪽은 또 “서울민사지법에 낸 미국의 고엽제생산 업체 상대의 손해배상 임시지급 가처분 신청이 ‘한겨레’의 보도에 영향을 받아 심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과연 재판부가 정론지로 인정받고 있는 이 신문보도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되,그동안 ‘한겨레’가 누구보다앞장서서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을 주장해온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황당함을 느낀다.전우회는 고엽제 피해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줄 것과 ‘미국 상대 손배소송’에 국가가적극으로 앞장서줄 것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에 대한 물리력 행사는 결코 용납돼서 안된다. 또한 정부의 치안능력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0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해 손을 쓰지 못하고 ‘난동’으로까지 번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폭력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당국의 조처를 지켜 볼 것이다.
  • 다양한 시각의 베트남전 특집 마련

    올해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영화나 소설은 베트남전을 다양하게 다뤘지만 TV는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고작이었다.베트남전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들어 TV도 베트남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어려서는한국전쟁을 겪고 나이 스물이 넘는 청년기에 머나먼 이국땅 전쟁터로 떠나야했던 월남 파병용사들.반백의 나이가 훌쩍 넘긴 파월장병의 인간적 고뇌를다룬 프로그램이 선을 보인다. MBC는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29일 밤10시55분)을 준비했다.1부인 ‘전쟁의 기억’과 2부인 ‘희생’으로 나눠 방송된다.‘전쟁의 기억’에서는 30년전 32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살펴본다.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산항 파월 환송식,베트남 도착,당시의 낯설고도 이국적인 월남풍경을 소개한다.백마작전,안케패스 작전 등 큰 전투 속에서 숨진 전우들,그 죽음을 통해 확산되는 전쟁의 공포 등을 보여준다. 2부 ‘희생’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다룬다.하미마을,락빈부락,땅띠마을 등 베트남 현지 마을에 남아있는 증오비석과 당시목격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제작을 맡은 민운기PD는 “공과(功過)는 짚어야겠지만 누가 잘못했다는 일방적 매도는 아니다.한 걸음 물러서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KBS는 특집 드라마 ‘유리구슬’(7월3,4일 밤9시50분)을 준비했다.줄거리는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베트남전에서본의 아니게 양민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50년전의 피해자가 20년 뒤에는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을 설정했다.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고엽제 후유증과 황폐해진 인생 속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깨닫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김형일PD는 “한 개인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담고자 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칠레 前군부요인 학살 첫 시인

    [산티아고 DPA AP 연합] 지난 73년 쿠데타로 칠레 정권을 장악했던 독재자피노체트 재임 당시의 한 군인이 정치범 학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은퇴 군인인 로베르토 살디아스는 26일 오후(현지시간) 칠레 국영 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쿠데타 직후 산티아고의 한 축구 경기장에서 정치범들이 학살됐다고 밝혔다. 73년부터 90년까지 이어진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기간 적어도 3,200여명이군부와 비밀기관에 의해 살해되고 1,2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칠레 군부는 쿠데타를 여전히 옹호하고 있으며 칠레 사법당국이 실종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피노체트를 기소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 고엽제피해 500여명 한겨레신문사 난입

    대한민국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회장 양상규) 소속 회원 2,400명이 27일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 중 일부가신문사 사옥에 난입,사무실 집기를 부수고 직원들의 출입을 막는 등 난동을부려 신문제작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쯤 신문사 앞에 모여 “ 한겨레신문의 ‘베트남 참전용사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보도가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다 각목 등을 휘두르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8층 논설위원실과 5층 출판국 등으로 난입,유리창과 컴퓨터 등 집기류를 부수고 차량을뒤집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집회에서 한겨레 신문대금 영수증 수천장을 쌓아놓고 불을 지른뒤오후3시5분쯤 500여명의 회원들이 윤전실 앞 경비초소로 몰려가 쇠파이프로때려 부수고 배차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 2대를 뒤집어 엎는 한편,사옥 근처에 주차된 승용차 1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흥분한 일부 회원들은 특히 사옥안으로 난입,5층 출판국 사무실 등에 들어가대형 유리창 5장,소형 유리창 3장을 깨고 노트북 컴퓨터 1개,데스크탑 컴퓨터 2대,프린트 2대 등 집기류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창구기자
  • [김삼웅칼럼] 언론의 알권리와 역사의식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몇차례 절망적인 ‘고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남한의 언론보도였다고 한다.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시대로 탈바꿈하려는 남북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남한의 군대나 경찰, 정보기관이나 법제가 아니라 동족간의 화해와통일을 선도해야 하는 언론때문이었다는 것에 한없는 비애와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역사적 만남을 통해 5개항의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 90%이상이 지지하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일부 언론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언제 다시 악재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북한의 남한언론관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언론의 기능과 인식에 너무 큰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결코 일부 언론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다시 비틀어지거나 해빙무드가 결빙되어서는안된다는 대명제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우리의 민족적 대사에는 반드시 훼방꾼들이 준동했다. 예컨대 기미년3·1항쟁때 이완용 무리는 수차례에 걸쳐 이른바 ‘경고문’을 발표했다. 온 민족이 생명을 내걸고 나선 항쟁을 가리켜 “지각없는 동배(童輩)가 망동하고 다음에는 각 지방인이 문풍역동(聞風亦動)하여 끝이 없다. 일인은 강경책을 쓰게되니, 되지도 않을 독립은 고사하고 동도의 사상을면하기 위하여 진정할 것을 경고한다”고 시위민중을 협박했다. 친일파들에의한 이런 류의 협박이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질했다. 망국10년만에 궐기한 3·1항쟁은 외세에 좌초되었지만 분단 55년만에 온겨레가 힘을 모아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으로 가는 통일운동은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적 대사에 훼방을 놓거나 딴죽을 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의 ‘반통일’로 기록돼 마땅하다. 통일국가 언론(인)의 ‘국익과 알권리 대립’따위는 어느 측면 행복한 갈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화해협력과 통일에 저해되는 기사(논평)는 가급적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권리와 역사의식의 갈등이 따른다. 언론인으로서의 고뇌와 내부의 압력도 물리치기 쉽지않을 것이다. 최근 ‘김정일신드롬’이 확산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않다. 그동안 김정일위원장의 ‘허상’만 보도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면서나타난 현상아닌가. 그러나 올 6월12일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주적의 괴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15선언 이후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대화협력,평화공존 그리고 통일과정에 함께 가야할 동반자요 반쪽 동포를 대표하는 ‘정상’이기 때문이다. 분단시대 서독언론인들은 동독에 파견되어 무엇보다 ‘동족의식’의 대전제에서 언론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어선이 공해나 영해상에서 충돌하게 되면 중국언론은 가급적 수습이 된 이후에 이를 보도한다고 한다. 국민간의 적대감정을 줄이려는 배려인 것이다. 언론의 ‘알권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언론(인)이 ‘알권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군부독재의 헌정파괴나 양민학살에 대해 ‘알권리’의 책임을 다했는가. 사주들의 비행이나 언론내부의 비리를 ‘알권리’차원에서 제대로 알렸는가. 정작 알리고 밝혀야 할 때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반쪽 동포와 화해협력의 과제는 시시콜콜 파헤치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 과연 바른 언론(인)의 자세일까. 사자 소리에 벌벌 떨다가 사자시체에는 가장 먼저 덤비는 하이에나가 초원의 청소부 역할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대접받는 짐승축에 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건 관료들의 행태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들은 취득한 국가정보를 지키는 것이 본분이고 언론은이를 알리는 것이 책임이다. 문제는 이 대칭점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느냐이다. 분단국가 언론(인)의고뇌이고 갈등이다. ‘6·15남북선언’이후 한때 대세에 편승하던 수구언론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골수에 젖은 냉전의식의 발로이거나 DJ가 잘하는 꼴은 못보겠다는 ‘놀부 심보’다. 냉전의식이 변해야 하고 놀부심보를 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 ‘알권리’를 내세우면 설득력을 갖게된다. 통일시대 언론(인)의 역사의식이 아쉽다. 김삼웅 주필.
  • 성공회대 김동춘교수 ‘전쟁과 사회’ 펴내

    한국전쟁 발발 50년을 맞은 올해 학계가 새로 마련한 담론이 ‘민간인 학살’이다.전쟁의 원인과 책임,국제 역학관계 등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 학살’담론화의 중심에는 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교수가 있었다.그는 이를 주제로 내건 최초의 심포지엄 ‘전쟁과 인권-학살의 세기를 넘어서’(6월21일)에서 주제발표한 것을 비롯해 계간 ‘역사비평’과 ‘통일시론’여름호 등에 관련 원고를 실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성과가 집약된 논문은 역시 최근 나온 책 ‘전쟁과 사회’이다(돌베개,1만3,000원). 김교수는 책 첫머리부터 “왜 남한에서만 6·25라고 부르는가”라고 문제 제기에 나선다.‘6·25’라는 명칭에는 전쟁의 책임이 북한에 있고,그러므로북은 우리에게 철저히 응징의 대상이라는 ‘광신적인 반공주의’가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서해교전 당시 확인된 것처럼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발생하면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사회는 이성을 상실한다”고 꼬집은 김교수는,“그런 대결이상호 파멸을 가져올지라도 일단 응징해야 한다는 호전적인 주장이 압도하는 현실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본격적으로 전쟁을 해부하면서 김교수는 그 진행과정을 피난-점령-학살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구분한다. ‘피난’에서는 국가와 이승만 당시 대통령,지배층,민중이 각각 전쟁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처했는지를 살핌으로써 전쟁의 성격을 분석한다.‘점령’에서는 인민군의 남한 점령과 민중동원 과정을 통해 해방이후 국가건설을 둘러싼 남북한의 정치적 갈등과 전쟁의 연관성을 해석한다. 이어 ‘학살’에서는 국가가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으로 돌변하거나 ‘적’의 잠재적 지지세력이 될 수 있는 주민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를따진다.특히 학살의 개념과 유형을 비교고찰해 사실 발굴 차원이 아닌,학살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김교수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민중이 당한 비참함과 인간 존엄성의 훼손은오늘날 사회에 잔존한 야만의 흔적들,즉 극우 반공주의의 광기,소외계층의궁핍과 사회적 배제 등의 현상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결론짓는다.따라서 한국전쟁을 해석할 때 국가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민족중심적 시각을회복해야 하며,더 나아가 민족문제를 사회구성원의 차별,고통과 희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 민중에게 무엇을 남기고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춘 정치사회학적 연구서이다.기존의 연구 틀과 전혀 다른 시각과 방법론으로 쓴 이 논문은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와 상생의 장으로 막 접어든 분단의 역사에 새로운 자양으로써 작용하리라 기대된다. 이용원기자 ywyi@
  • “이산가족 상봉 계속 이어지길 바라”

    [로스앤젤레스 연합] “비록 미국 통신사에 몸담고 있었지만 내 몸속에는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전을 어느 종군기자보다도 빨리 정확하게보도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1950년 2월 미 AP통신 서울특파원으로 부임,4개월만에 한국전 발발 기사를전세계에 타전하고 같은해 9.15 인천상륙작전 뉴스를 맨처음 특종보도한 신화봉(申化鳳·81·미국명 빌 신)씨. “부산에서 상륙작전계획 정보를 입수하고 유엔군 정보통과 미 적십자 관계자를 상대로 확인작업을 했다.해군작전참모 이용운중령에게 상륙작전이 성공했음을 최종 확인한 뒤 정일권 당시 3군총사령관 겸 육참총장의 발표형식을빌어 전세계에 송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감회에 젖었다. 신씨는인천상륙작전 외에 거제도 포로수용소 난동사건,유엔측의 반공포로 석방안철회 등 특종을 잇달아 터뜨려 ‘스쿠프(특종)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55년간 분단과 긴장으로 점철된 한반도에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희망이 보인다”면서도 “하루이틀간 평양의 모습을보고북한 전체상황을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국가보안법 개폐와 주한미군철수 주장 등은 상호주의원칙에 따라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산가족의 한사람으로 이산가족상봉에 제일 큰 기대를 걸고있는 그는 “소수의 이산가족이 몇차례 상봉하다 두 정상의 합의사항이 용두사미격이 돼 버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보도에 대해,“AP통신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함남 장진 태생으로 일본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신씨는 1947년 미국으로유학,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대와 네브래스카 주립대 대학원에서 정치학과국제법을 전공했다.59년까지 AP통신에서 재직하다 미 성조지 기자를 거쳐 일본에서 한반도문제 전문통신사인 시사평론사를 운영하는 등 언론 외길을 걸었다. 한국전을 알리기 위해 ‘휴전선이 열리는 날’,‘잊혀진 전쟁을 되새기며’등을 펴내는 등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 [50돌에 되돌아 본 6.25](3)北억류 국군포로

    역사 속에 묻힐뻔 했던 국군포로문제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역사의전면에 등장했다. 통일부는 최근 국군포로문제와 관련,‘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풀이한 의미일 뿐이다.‘국가를 위해 싸운 사람은 국가가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6.25 전쟁이 낳은 ‘또하나의 비극’인 국군포로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모른다.5만여명으로 추정될 뿐이다.전문가들은 이들중 5,000명 정도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귀환 국군포로 및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명단을 확보한 숫자는 겨우 286명.이중 국내 연고자를 찾은 포로는 5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 53년 포로로 끌려가 40여년을 탄광에서 노역하다 98년 귀환한 장무환씨(73)는 “포로로 잡힌 곳에서부터 임시수용소로 향하는 ‘죽음의 행군’도중 수많은 포로들이 생명을 잃었다”고 말했다. 귀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국군 포로들은 수십, 수백명 단위로 무리지어진뒤 밤을 꼬박 새워가며 하루 80∼90리씩 걸어 후방지역으로 이송됐다.식사라고는 삶은 옥수수 한움큼씩,그것도 운이 좋아야 하루 두번 지급됐다. 행군 대열을 따라 잡을 수 없는 중상(重傷) 포로들은 사살되거나 버려졌다. 평안북도 온정리와 초산 사이에 있는 ‘개고개’에서는 수백명의 포로가 한꺼번에 학살되기도 했다. 포로들은 임시 수용소 등에 수용됐다.51년 11월 평북 벽동 남쪽 10㎞ 지점골짜기에 세워진 ‘계곡 수용소’와 평북 강계에 위치한 ‘평화의 계곡 수용소’ 등이 대표적인 임시 수용소로 꼽힌다. 특히 50년 12월 평북 북천 남방 50㎞ 지점에 세워진 ‘죽음의 계곡 수용소’는 말 그대로 악명이 높았다.이곳에 수용됐던 2,000여명의 포로 중 1,200여명만 살아 남았다는게 귀환 포로들의 증언이다. 50년 7월부터 51년 5월 사이 전체 유엔군 포로 중 42%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한 미군 당국의 추정과 엇비슷한 수치다. 국군 포로는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벽동·화풍·천마·우시·외귀·만포진·삭주·북진·강동·황주 등 평안북도 국경지역에 압록강을 따라 80㎞에 걸쳐산재한 10여곳의 수용소에서 고통을 견뎌야 했다. 휴전협정 체결 직후인 53년 8월 겨우 8,343명만 귀환했다.부상을 입은 포로는 471명에 불과했다. 몸이 성한 국군 포로들은 전쟁 초기부터 수용소 대신 인민군에 재징집돼 전선에 투입되거나 복구작업 등 노역에 동원됐다.전쟁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대부분 철도·비행장·광산 등의 노무부대로 편입됐다. 미송환 국군포로들은 휴전 이후에도 한동안 휴전 및 포로교환 사실조차 모른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56년 6월 북한 공민으로 편입된 뒤 대부분 결혼,가정을 이뤘으나 최하위층 노동현장인 탄광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98년 귀순한 양순용씨는 “국군포로들은 북한사회의 최하위층에 속했기 때문에 80년대 후반부터 북한전역에 엄습한 식량난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겪었다”고 말했다. 94년 귀환한 조창호씨의 경우 휴전직후 아오지 제1특별수용소로 보내져 포로가 아닌 죄수취급을 받았으며 전쟁포로 송환대상에서도 제외됐었다.51년포로가 된 조씨는 이 때문에 중부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처리돼 국립묘지에유해없는 위패로 봉안돼 있었다. 역사적인 6 ·15 남북공동선언으로 국군포로의 귀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높아졌다.국군포로의 송환은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송한수기자 onekor@
  • ‘전쟁과 인권’ 심포지엄 어제 프레스센터서 열려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학살을 다룬 심포지엄 ‘전쟁과 인권-학살의 세기를 넘어서’가 21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협의회’준비위원회가 공동주관하고 학술단체협의회 등 25개 학술·시민·인권단체가 공동주최한 이 자리에는 김충조(金忠兆)국회의원,김중배(金重培)참여연대 공동대표,김삼웅(金三雄)대한매일 주필,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1부에서 강창일(姜昌一)배재대 교수의 사회로 강정구(姜禎求)동국대교수 김동춘(金東椿)성공회대교수 강금실(康錦實)변호사의 주제발표,서중석(徐仲錫)성균관대·이장희(李長熙)한국외국어대교수와의 토론으로 진행됐다.2부에서는 ‘제주 4·3’등 12지역 유족회 및 시민단체의 활동경과 보고가 이어졌다. 이용원기자 ywyi@
  •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모임 “조선일보 취재 거부”

    최근 소설가 황석영씨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곤욕을 치른 후 “앞으로 절대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데 이어 진보적 학자·언론인·시민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학술단체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거부를 공개 천명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대표 강정구·동국대교수)은 지난 9일 열린 제5차 행사준비모임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거부는물론 보도자료 일체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그간 조선일보사는 극우 편향적 보도태도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왔다”며 이같이 결정했다.조선일보의 자매지 월간조선 역시 지난 2월호에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을 공산폭도로 매도,유족들로부터 비난을 산바 있다.한 관계자는 “행사 당일 행사장 입구에 ‘조선일보 취재거부’라는문구를 공개적으로 써 붙일 계획”이라면서 “조선일보가 편향적인 보도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 이같은 활동을 계속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모임’은 21일 오후 1시∼5시 프레스센터에서 ‘전쟁과 인권’을 주제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문제를 놓고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심포지엄을 가질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 한국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학술심포지엄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전후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다. 학자·언론인·시민단체 관계자로 구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대표 강정구 동국대 교수)은 21일 오후 1시∼5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희생자 유족회와 공동으로 ‘전쟁과 인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이날 행사에서 강정구(동국대·사회학)교수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실태’를,김동춘(성공회대·사회학)교수는 ‘민간인 학살문제 왜,어떻게 해결돼야 하나’를,그리고 강금실 변호사는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한 법적인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각각 주제발표하며 민주당 이미경 의원,서중석(성균관대·역사학)·이장희(외국어대·법학)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한다. 이어 2부에서는 전남 함평 등 전국 10개 지역의 유족회·시민단체에서 각지역별 피해상황과 유족회 구성실태 등 경과보고를 하며,행사 말미에는 정부당국에 보내는 성명서도 채택할 계획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訪韓 초청 대표단 맞은 달라이 라마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며 티베트인들의 정치·정신적 지도자로추앙받고 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오는 11월 중순쯤 한국땅을 밟는다.달라이 라마가 14일 한국방문 초청 대표단을 맞은 곳은 멀리 동북쪽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어렴풋이 올려다 보이는 고지 다람살라에서도 맨 꼭대기에 초라하게 앉은 그의 거처.접견실에서 초청장을 전달받은 뒤 한국기자들과 만나처음 꺼낸 말은 “지난 41년간의 망명생활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낸 것뿐”이라는 것이었다.이례적으로 오랜시간 동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종교와 사회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양쪽 정상과 국민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않았다.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특별히 만나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은. 외국을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려는 것이고 두번째는 종교적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지금까지 주로 비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이유로 외국을 다녀왔다.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한국의 불교를 이해하면서 티베트 불교도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한국인 친구들이 김치를 가져와 맛을 본 적이 있다.김치의 본토에서 맛을느껴보고 싶다.불교 관련 학자들과 일반학자들,그리고 대중들을 만날 것이다.정치지도자들도 그들이 원한다면 만날 것이다.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60년대 중반쯤 관리 한 사람을 보내 동국대에 경전을 기증한 적이 있다.그 이후 몇차례 초청받았고 관심도 많았다.한국은 전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로 알고 있다.많은 불자와 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어 세계종교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어디를가든 그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이번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나로 인해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부담을 갖게 되지 않기를바라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됐으면 한다. ◆한국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한국불교의 장점은 무엇이며 미래는 어떠한가.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고 대승불경을 중시한다고 들었다.이 점은 티베트불교와 유사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에 친근감이 있다.가장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어떤 종교나 신념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교를종교가 아닌 ‘마음의 과학’이라고도 한다.장차 한국불교가 인류애와 환경측면에서 큰 공헌을 할 것이다.한국불교와 티베트불교 모두 석가모니 부처를스승으로 모신다.같은 불자로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무엇이며 인류의 당면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줄수있는가. 티베트불교는 대승·소승불교의 가르침과 탄트라의 가르침을 모두수행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티베트불교는 사람의 심성은 물론 동물에까지 미치는 ‘자비’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이런 것들이서방의 자비심을 키우고 자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한다면 훌륭한 일일 것이다.티베트불교는 바로 이 자비심을 돋우는 수행종교랄수 있다. ◆불교에서 모든 고통은 무지와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한다.일상생활에서 무지와 집착을 없앨 수 있는방법은 무엇인가. 삶속에서 무지를 없애는 가장좋은 방법은 ‘지혜의 수행’이다.세상은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움직이고발전하기 때문에 개개의 사물이나 생명체가 갖고 있는 가치를 찾으며 노력해야 한다.평소 겉모습을 넘어 궁극적인 본질을 보려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큰도움이 될 것이다.그리고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만족하는 마음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수행이 반드시 요구된다. ◆한국에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온 국민의 첨예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정상회담에 대해 느낀 점과 두 정상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의 근본적인 믿음은 이 세상 모든 분쟁의 소멸이다.무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안된다. 무력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따라서 대화가 필요하다.사람들은 대화 없이 자신만의 고집을 주장하려는 경향이 많지만 한발짝만 다가서 대화한다면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남북회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남북정상들은 모두 경험이 많은 유능한 지도자들이다.양쪽 모두 인내와 결단력,그리고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자세를 지킨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는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한국은 분단상태에서 통일의 꿈을 실현하려 노력중이다.티베트와 한국이 접목되는 부분이 있는데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양국이 특수상황인 점을 인정한다.그러나 티베트는 자주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 티베트 고유의 종교·문화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티베트나 한국 모두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인내와 결단력,그리고 전체를 넓게 볼 수 있는안목이라고 본다.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에게 지난 분단 50여년은 인내를 기를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특별한 것은 없다.충분히 잠을 자고 잘 먹으며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곁이야기지만 한국의 인삼이 좋다고 들었는데 아직 맛보지 못했다. ◆하루 일정은 어떻게 짜여지나.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5시30분에 아침식사를 한다.8시30분 명상을 한 뒤 그 이후부터는 방문객들을 만나거나 책을 본다.낮12시 점심식사후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오후 6시 예불을 올린 뒤엔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거나 공부를 하며 8시30분 잠자리에 든다. ◆평소 어떤 책을 주로 읽나. 대부분 불교서적이다.특히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 ‘불교인식론’을 매일 읽는다. 다람살라(인도) 김성호기자 kimus@. *달라이 라마 누구인가. 10만여 티베트인들과 함께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티베트의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그는 ‘비폭력 인권운동’으로일관, 중국의 탄압과 티베트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며 티베트인들로부터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존재다.원래 ‘달라이 라마’란 ‘큰 바다와같이 넓고 큰 덕을 지닌 고승’이란 뜻.그러나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대신 ‘걀와린포체’(보석과 같은 승자)나 ‘아발로키테시바라’(자비의 부처님)로 받아들인다. 1935년 티베트 북동부 지역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텐첸 카초.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두살때 13대 달라이 라마의후신으로 추앙받아 네살때인 1940년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 티베트의 수도 라사의 포탈라 궁전에 모셔졌다. 15세 때인 1950년 티베트 최고수반에 올랐으나 그해 10월 중국군 8만명의 침공을 받아 험한 여정을 시작한다.59년 중국의 식민지 수탈과 정치적 탄압에맞서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났지만 3,000여개의 불교사원이 파괴되고 수많은티베트인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맞게된다.마침내 그해 달라이 라마는 수백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73년부터는 직접 각국을 돌며 박해받는 티베트의 현실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다.협상대표들을 베이징에 보내고 88년 중국정부의 동의하에 자치정부수립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지와 언행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달라이 라마의 뜻과 행동을 따르는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과 할리우드 스타,음악인들이 그의 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을때 “전세계 억압받는 민중들을 대표한다”는 소감을 밝힌 달라이 라마.세계를 돌며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과 종교·문화간 상호존중을 이해시키고 있는 그는 포탈라궁으로 귀환해 티베트의 자치를회복한 뒤 평범한 승려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김성호기자
  • 방송사 6·25 50주년 특집 고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각 방송사의 6·25 특집이 예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북한에 대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새로운 시각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예년에 비해 특집 프로그램의 수가 크게 줄었다.이는 남북정상회담이성공을 거두면서 냉전의 유산인 한국전쟁을 종전처럼 다루기 어려워진 탓이다.아울러 6·25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남북화해의 시각을 담은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게 시간적으로 힘들게 됐다. 드라마는 KBS의 ‘유리구슬’이 유일하다.그나마 6·25 전후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7월3일과 4일(밤9시50분)로 날짜를 늦춰 방송된다.예년의 6·25 특집극이 6·25 전에 방송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유리구슬’은 한국전쟁당시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풍우(정은표)가 베트남전에 참전, 양민학살을 하게 되고 나중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반전운동가가 돼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방송에도 비상이 걸렸다.KBS가 지난해부터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12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은 아직 방송시각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남북한의 분단을 세계 역학구도와 한반도 정치세력의 대결 등에서 풀어나간 1편 ‘분단’은 KBS1에서 25일부터 매일 방송하기로 두달 전부터 확정돼있었다.그러나 18일 방송하기로 예정됐던 KBS1 ‘일요스페셜-6·25 전사자들의 유골찾기’가 25일로 늦춰짐에 따라 방송연기가 논의되고 있다.18일 ‘일요스페셜’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남과 북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서울-평양,2000.6.13-15’가 방송된다. MBC가 23일 방송할 ‘6·25 50주년 특집­한국전쟁’은 내용이 훨씬 늘어났다.프로그램 촬영은 방북단이 돌아온 15일 끝났지만 한국전쟁 참전국을 돌며6개월 정도 해외촬영을 한 부분은 현재 편집과정까지 끝나 손을 쓸 수 없는상태다. 대신 프로그램 말미에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3일간 일정을 담고내레이션을 현재 시점으로 바꾸는 등 대폭 수정할 예정이다.외국인 전문 케이블방송인 아리랑TV에서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전쟁 참전국에도 배포돼 해당 국가에서도 방송될 예정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美노근리 학살’ 북한군 문서 발견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양민 100여명을 학살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북한군 노획문서 2건이 15일 공개됐다. 이 문건은 재미사학자 방선주(方善柱·67)박사가 노근리 학살사건의 진상을확인하는 과정에서 미국내 모 기관에서 찾아냈다. 이 문건은 1950년 8월15일 미 제1기갑사단 7연대1대대가 ‘39.7-50.4’라고일컫는 지역에서 노획한 북한군 작성 문서로 노근리로 추정되는 영동의 한철로터널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을 담고 있다. 비록 북한군이 작성한 것이지만,미국측 진상조사단이 최근 이 사건에 대해“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사건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점에서 주목된다. 이 문건은 노획한 날 제1기갑사단 정보참모부가 넘겨받아 대략을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한글 원본은 없어지고 영어 번역본만 남아 있다. 이 문건을 토대로 한 방박사의 논문 ‘한국전쟁기 북한자료를 통해 본 노근리 사건’은 곧 발간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학술기관지 ‘정신문화연구’2000년 여름호에 게재된다. 이용원기자 ywyi@
  • MBC ‘이제는‘ 25일부터 재편성

    지난해 가을 화제 속에 방송됐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25일부터매주 일요일 다시 방송된다.역사의 질곡 속에 숨겨져 왔던 진실들이 지난해방송된 13편으로 끝나지 않았음에 대한 인식이다.제작진은 ‘이제는 말할 수있다’의 주된 화자는 억눌린 상황에서 말 못했던 당시 피해자들임을 당당히밝힌다. 기획·연출을 맡은 정길화 PD는 “프로그램에서 다룰 사안의 성격상 매스미디어나 역사 속에서 승자나 강자의 이야기만 부각돼 왔다는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지금까지 누적돼 왔던 역사적 편파성에서 벗어나 균형을 맞추는 셈”이라고 밝혔다.물론 제작진은 피해자의 하소연에만 의존할 경우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목소리도 담았다. 피해자들의 폭로와 고발에 가해자들의 변명과 사과,때론 ‘모르쇠’ 등을 만날 수 있다.여기에 목격자들의 증언과 확인,연구자나 전문가의 진단이 이어진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12월 26일까지 방송됐던 13편에는 제주 4·3사건,동백림사건,인혁당사건 등이 있었다.25일부터오는 10월 1일까지 방송될 내용은크게 한국전쟁 재조명,남북관계,한미·한일 등 대외관계,인권과 사회 정의등으로 나눠진다. 한국전쟁의 재조명은 6·25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데서 출발한다.양민학살,미국의 세균전 등이 이 범주다.25일 방송될 ‘양민학살’편에서는 지금까지잘 알려지지 않았던 51년 2월21일 자행된 경남 산청 양민학살 현장이 소개된다.‘의혹! 미국의 세균전’에서는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미국의 세균전 의혹에 대해 파헤친다.남북관계에는 ‘94년 전쟁위기론’,‘간첩 황태성사건’등이 있다.전쟁위기론은 94년 북한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주내용이다.당시 미국은 북한의 의심나는 핵시설에 대한폭격까지 염두에 뒀다고 한다.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이 상황을 짚어본다. 대외관계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망언(妄言)의 뿌리,일본의 친한파들’이 있다.마지막으로 인권과 사회정의에서는 올해로 분신 30주년을 맞는 ‘전태일 열사 사건’,80년대 초‘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강제징집과 군 의문사 사건 등이 방송된다. 정PD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고 입을 다물면 언제 말하겠는가”라며 “그때그때의 성과를 끌어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경하기자 lark3@
  • 마이클 최 변호사 밝혀“美정부, 노근리 배상협상 나설것”

    [워싱턴 연합] 미국 정부는 곧 노근리 학살 사건의 피해자들과 피해보상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마이클최 변호사가 6일 말했다. 최 변호사는 “그동안 노근리 사건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상부의 명령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버티던 미국 정부가 한국 민간인에 대한 발포 사실을시인한 것으로 미뤄 피해자들과 협상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날 CBS 방송은 “한국전 초기 미 육군이 피란민 대열에 대한 기총소사를요청했으며 공군은 그대로 이행했다는 터너 로저스 당시 공군 대령의 메모가미 육군조사단에 의해 발견됐다” 며 이는 미군의 민간인 발포 명령을 입증하는 최초의 ‘물적 증거’라고 보도했고 미 국방부는 6일 이를 공식 시인했다. 최 변호사는 이에 따라 “빌 클린턴 대통령,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및 루이스 칼데라 육군장관에게 피해자들과의 협상을 촉구하는 서한을 오늘 발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증거가 확고한 만큼 미국 정부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고 말하고 협상은 곧 배상 수순으로 가는 것으로 큰 어려움없이 끝날 수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美 노근리학살 문서 발견

    미 국방부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이 미 육군당국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공식문서를 마침내 발견함으로써 노근리사건 조사는 새 국면을맞았다. 지난해 AP통신이 사건을 폭로,보도한 이래 미 국방부는 지금까지 조사에서이렇다 할 자료를 찾지 못했으며,일부에서는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소리마저 있었다. 미 CBS방송이 확인,보도한 내용은 국방부가 당시 터너 로저스란 공군 대령이 남긴 메모를 찾았으며 내용엔 “육군은 북한군 지시를 받거나 혹은 북한군이 포함된 대규모 민간인들이 미군쪽으로 침투하고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기총사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이는 피난민을 향한 사격 명령은다름아닌 육군 고위층이 내린 것이며 육군뿐만 아니라 공군에까지 정확한 명령체계를 밟아 하달돼 이뤄졌음을 명백히 드러내는 문구인 셈이다. 또 양민학살이 혼란 와중에 우발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란 일부의 주장도 변명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다. 이 문서는 비록 메모 형식이지만 문서 상단에는 ‘Headquarters’(본부)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으며 1950년 7월25일 날짜까지 기록된 분명한 문서 형식을 띠고 있어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문서에 기록된 7월25일은 7월26일부터 28일까지 3일 동안 발생한 노근리 사건 하루 전날이어서 명령이 하달되는 시간 과정과 비인도적 명령을 받은 장교의 고뇌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그러나 이번 CBS 보도로 알려진 관련자료 확보 소식은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자세를 보이던 육군이 아닌공군에서 찾아냈다는 점과 국방부측의 발표가 아닌 CBS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는 점은 조사진행·과정면에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로써 당시 사건을 증언한 에드워드 데일리의 말이 거짓이라는 육군 조사관 로버트 베이트먼 소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나아가 당시 틀리게 기록된 문서들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이 쏠리면서 노근리사건을 둘러싼 조직적인 은폐 기도는 없었는지도 밝혀야 한다는 또다른 양심의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美軍지시 증거 첫발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방부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과 관련,양민학살 지시가 내려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미 CBS방송이 보도했다. CBS방송은 노근리사건 관련자료를 찾고 있는 국방부 조사관들은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양민학살이 미 군당국에서 내려졌음을 보여주는 터너 로저스라는 공군 대령의 메모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국가안보담당 데이비드 마틴 기자의 특종기사로 방송된 뉴스에서 CBS는 로저스 대령의 메모에는 “육군이 공군에 아군쪽으로 접근하는 민간인들에게기총사격할 것을 요구했다…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따랐다”고 적혀 있다고보도했다.로저스 대령은 또 “육군은 북한군의 지시를 받거나 혹은 북한군이포함된 대규모 민간인들이 미군 위치로 침투하고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에 대한 기총사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CBS는 발견된 메모를 관련사진으로 함께 보도했는데,로저스 대령은 이와함께 “이 명령은 공군을 당혹스럽게 할 것”이라고 적었다. 공군 역사학자 톰 이블러드는 CBS에 “당시 공군은 앞서 진군한 적의 기갑부대 대열과 적군대열을 폭격하고,그리고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어떠한 것도하도록 지시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의 로저스 대령 메모 발견은 지난 6개월 이전부터 시작된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최초의 공식자료인데,메모형식이긴 하나 분명한 문서형태를띠고 있어 사건을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5일 미 언론들은 육군사관학교 교관 로버트 베이트먼 소령이 국립개인기록센터에서 발견한 자료를 근거로 노근리 학살을 증언한 에드워드 데일리가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보도했었다. hay@
  • 문화부-해직언론인협 ‘해직언론인 보상’ 갈등

    80년 당시 계엄당국의 언론탄압에 맞서 검열 및 제작거부 운동을 펼치다 강제해직된 기자들의 명예회복·배상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측이 해직언론인들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펴 해직언론인들로 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달 19일 문화부는 ‘5·18 해직교수 손해배상 관련 해직언론인 배상검토’라는 문건을 통해 “해직언론인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고 5·18관련 해직언론인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이미배상조치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회장 이경일)는 지난달 30일 한국기자협회·언론노련과 공동으로 문화부장관 앞으로 제출한 공개질의서에서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은 신군부가 광주학살을 자행하면서 내란을 시도한데 대한 언론인들의 집단저항에 대한 보복조치임이 대법원 판례에서 확정된 바 있다”면서 “교육부가 최근 5·18과 관련해 해직된 대학교수들에 대한 원상회복조치와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해직 언론인들의 언론민주화운동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15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80년 해직언론인배상 특별법을 상정해놓고도 그 처리를 미룬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80년 당시 해직언론인은 5·18직후 검열·제작거부 참가자 700명과 이 해 11월 언론사 통폐합 과정에서 해직된 300여명 등 모두 1,000여명에 이른다.이들 가운데 정부의 배상조치를 받은 사람은 당시 구속됐던 16∼17명이 전부다. 해직기자 출신인 최형민씨(50·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는 “문화부가 법리적 문제나 형평성을 이유로 해직언론인들의 민주화 공로를 폄하하는 것은반민주적 작태”라고 비난했다.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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