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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어판 ‘손님’ 출간 파리 독자들과 만난 황석영씨

    |파리 함혜리특파원|소설가 황석영씨가 17일 저녁 파리 시내 주불 한국 문화원에서 프랑스 및 현지 한인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그의 장편소설 ‘손님’의 프랑스어판(L‘Invite) 출간을 기념해 번역판을 낸 쥘마 출판사와 주불 한국 문화원이 마련했다. 이날 행사는 프랑스인과 현지 거주 한인 200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우는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공동 번역자인 최미경 이화여대 교수와 프랑스 교육부의 장노엘 주테 국장도 참석했다. 현재 영국 런던대 객원 연구원으로 있는 황씨는 15일부터 파리와 지방을 돌며 독자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있다. ‘손님’을 쓴 계기는. -1989년 베를린 망명 중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서 장애와 장벽이 무너지고 상생하는 것이 세계사적인 대세라고 생각했다. 자루 속 같은 한반도에서 살며 보지 못했던 인류의 보편성을 생각하게 됐고 이를 동아시아적 양식으로 풀어놓을 수 없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했다. 작품을 소개하면. -세계의 보편적 문제를 전통적 형식에 담았다. 신천 학살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자들간의 충돌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소재를 황해도 지방 진지 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틀로 삼아 전개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가해자, 피해자 어느 편도 들지 않았는데 어느 편인가. -죽은 사람들 편이다. 작가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 편에 선다. 좌, 우가 어디 있나. 프랑스 독자들이 어떤 점에 관심을 보였나. -그들은 전통 굿 양식과 리얼리즘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조합시켰는지를 물었다. 또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해서도 질문했다. 우리 소설의 약점은 ‘동네 이야기’라는 데 있다. 프랑스에서는 보편적인 관념에다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에 프랑스에서 ‘오래된 정원‘이 번역 소개된다. 최근 독일 유수의 DTV 출판사에서도 전집을 내기로 계약했다. lotus@seoul.co.kr
  • 미군 ‘부상병 사살’ 정당방위 여부 조사

    미군이 이라크 부상병 사살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에 착수했으나 ‘정당방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내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안정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이라크 임시정부와 미군 당국의 신뢰도에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미군측 조사단장인 법무관 밥 밀러 중령은 16일(현지시간) “교전수칙은 적대적 의도나 행위를 보인 적군에게 군사력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직접적 위협이 아니더라도 당시 반군 부상자가 적대적 의도를 가졌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물에 달렸지만 정당방위 차원에서 미 해병대원이 총기를 사용한 것으로 결론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 해병 1사단도 성명을 내고 “정당방위 여부를 포함해 군법을 위반했는지 교전수칙을 지켰는지 여부를 모두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부상당한 반군이 숨겨진 무기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핵심은 부상병이 당시 포로였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자지라TV를 통해 살해 장면을 목격한 수니파 이슬람 교도인 아메드 카일은 “부상당한 노인을 반군으로 볼 수 있느냐. 사원에 무기가 있었느냐. 그들은 학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군과 이라크군은 3000∼5000명의 병력을 동원, 북부 모술시 서부지역의 경찰서 대부분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쿠바에서는 미군과 저항세력의 교전으로 무장세력 21명이 사망했고 바쿠바 경찰본부는 로켓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Cafe USA’ 이념전쟁터 변질

    지난 8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다음카페’에 개설한 온라인 커뮤니티 ‘Cafe USA’가 국내 네티즌간 ‘이념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한국민과 미 대사관과의 쌍방향 대화’라는 취지와는 상관없는, 정부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그러자 미 대사관은 욕설과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용어가 포함된 글을 삭제하고 일부 네티즌의 글 게재 활동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은 “노무현과 ‘열우당’은 수도이전 위헌판결이 오히려 잘 된 일임에도 헌재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드시 노무현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현 정권을 비난했다. 다른 네티즌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 국민을 학살하려 한다.”며 노 대통령을 ‘학살자’로 비방하기도 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도대체 나라 망신 좀 그만 시키자. 남의 나라 대사관에서 만든 카페에 몰려와서 빨갱이니 수구보수니 친일파니 누워서 침뱉기 좀 그만하자.”는 제안도 올라왔다. 힐 대사는 지난 12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정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지만 여기는 그런 견해를 피력하는 곳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이성적인 글을 자제해 달라는 호소문을 게시판에 띄웠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저항세력 “이라크 총리에 보복”

    |팔루자·바그다드 외신|이라크 팔루자 지역의 무장 저항세력은 11일 미군과 이라크군의 팔루자 총공세를 승인한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 등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무장세력은 이날 한 이슬람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알라위 총리와 하젬 샬란 국방장관은 가정과 종교, 명예를 지키려는 이라크인들에게 비열함을 보여줬다.”면서 “팔루자 주민의 복수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알라위에 대한 앙갚음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성명은 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었다거나 요르단 출신 테러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팔루자에 있다는 등의 얘기는 미군 용병들이 얻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에 신앙과 조국을 팔아먹으려는 자들의 날조된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안사르 알 지하드’를 자칭한 무장단체는 지난 10일 이슬람 웹사이트에 성명을 발표, 알라위 총리의 사촌과 그의 아내, 며느리 등 친척 3명을 바그다드에서 납치했으며,48시간 안에 팔루자에 대한 공격 중단 및 남녀 죄수 석방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들을 참수하겠다고 협박했다. 한편 총공세 나흘째인 11일 미군과 이라크군은 도심 곳곳에서 격렬하게 반격에 나선 저항세력들과 시가전을 계속했다. 미군 전투기들은 저항세력 은거지에 대해 집중적인 폭격을 가했다. 팔루자 공세에 참여한 이라크군은 팔루자에서 저항세력들이 인질학살 장소로 사용했던 여러 가옥들을 발견했다고 한 이라크 고위 군장성이 밝혔다. 압둘 카데르 모하메드 자셈 모한 이라크군 소장은 팔루자 북부지역에서 저항세력이 인질을 학살하는 장소로 사용했던 여러 가옥을 찾아냈으며 이들 학살현장에서는 인질을 참수하면서 기록한 각종 CD와 인질들의 이름이 적힌 문건, 인질범들이 사용했던 검은 옷가지 등이 다량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곳이 지난 6월 한국인 김선일씨가 살해된 장소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TV는 지난 10일 하루동안 팔루자 이외의 지역에서 각종 테러공격으로 이라크인 32명이 숨지고 최소 50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 한나라, 李총리 ‘정조준’

    이해찬 국무총리의 ‘차떼기당’ 발언으로 여야가 닷새째 극한 대치에 접어든 가운데 한나라당은 강경 투쟁 기조를 고수했다. 1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표 주재로 상임운영위와 ‘이해찬 총리 국정농단 보고회’를 잇달아 열어 이 총리의 과거 행적을 집중 성토하는 등 ‘이해찬 때리기’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이 총리의 ‘즉각 파면’을 요구하는 등 압박전을 통한 대여 투쟁을 계속했다.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 총리를 겨냥한 공세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도 엿보였다. 박 대표는 상임운영위에서 “대의민주정치가 이렇게 돼선 안 되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 총리는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 왜 이렇게 하는지, 무슨 의도로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지 알 수 없다.”며 ‘한나라당 폄하’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를 거부한 이 총리를 정면 비판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이 이 총리와 한나라당의 ‘동시 사과’를 주장한 데 대해 “이 총리가 음주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해 큰 사고를 낸 것인데 마치 쌍방과실인 양 억측을 부리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국회 파행은 이 총리의 언동에서 나왔다.”면서 “다른 것으로 물타기하지 말라.”고 거들었다. 이어 의원총회 형식으로 열린 ‘이해찬 총리 국정농단 보고회’는 이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이 총리의 언론관, 정치인 자질 및 전력, 교육부장관 재직 때의 잘못, 총리로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임명직 총리에 불과한 이 총리가 제 분수를 모르고 언론과 야당, 국회와 국민을 싸잡아 모독하고 도발해 국회가 파행됐다.”면서 “노 대통령은 하루속히 국회 정상화의 걸림돌인 이 총리를 파면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박형준 의원은 이 총리의 “조선·동아는 내 손 안에 있다.”는 발언과 여권의 언론 개혁 추진에 대해 “5공시절 언론기본법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손보기라는 정치적 의도가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심재철 기획위원장은 ▲이 총리가 지난 89년 12월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흑산도 대간첩작전(69년 6월) 때 피살된 무장공비 사진을 ‘광주시민학살사건’이라고 제시한 점 ▲지난 2002년 8월 ‘검찰의 병풍유도 요청’ 발언 ▲이 총리 보좌관의 국회 상임위 유관업체 사외이사 겸직 ▲‘병풍’ 의혹을 제기했다가 구속·복역한 김대업씨 가석방 ▲이 총리 부인의 농지법 위반 등을 거론하며 ‘이해찬 흠집내기’에 집중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미국과 대량학살의 시대/사만다 파워 지음

    미국과 대량학살의 시대/사만다 파워 지음

    1992년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보스니아의 대량 학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는 군사력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해 저라면 공군을 파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뒤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에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을 뿐더러, 이미 대통령이 된 자신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 ‘미국과 대량학살의 시대’(사만다 파워 지음, 김보영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는 세계의 리더이며 세계 경찰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여준다. ●나치 홀로코스트서 코소보사태까지 나치의 홀로코스트(1939∼1945)에서부터 냉전 시기에 일어난 캄보디아 사태(1975∼1979), 이라크 학살(1987∼1988), 보스니아 학살(1992∼1995), 르완다 사태(1994), 코소보 사태(1998∼1999)에 이르기까지 대량 학살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인권과 미국 외교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대량 학살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책임을 이해하기 위해 정책 입안자나 혹은 정책 입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주요 인물 300여명을 인터뷰했다. 대부분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의 관료와 의회의 입법의원이었다. 보스니아, 코소보, 르완다 등의 학살 현장도 직접 찾아 난민들은 물론 범죄자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탄자니아의 유엔 재판소,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재판소, 미국 국가안보문서보관서에서 기밀이 해제된 문서와 기록을 샅샅이 검토했다. 저자는 이같은 현장 이야기와 새로운 정보를 기초로 여러 학살 사건의 동기와 인물들, 상호작용에 대해 생생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인간을 말살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모든 문화적 흔적을 순식간에 파괴하는 제노사이드, 즉 대량학살을 방관하는가. 가장 흔한 답변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관리들은 끊임없이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대량 학살의 초기 경고와 학살 진행 과정의 살아있는 정보를 주입해 주었다. 가장 정확한 정보는 신문이 제공했다. ●미 관리들 끊임없이 정보제공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변명이다. 제노사이드의 잔인함은 일상 경험에서는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억지처럼 들리고 입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사실로 판명되었다. 미국 관리들이 ‘부정의 안개’ 속에서 대피처를 찾거나, 무반응과 지연의 구실로 ‘확실성’을 을 언급했던 것은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손실과 이익의 무게를 비공개적으로 명백히 가늠해 본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정책결정자들이 만들어낸 구체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면서도 제노사이드를 허용했다는 도덕적인 오명도 피하기를 원했다. 대체로 미국은 그 목표를 성취했다. 미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은 우리에게 충격을 던져준다. 인권은 무시한 채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외정책은 세계 정세를 읽는 지침이 될 만하다.4만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이승복기사 조작증거 없어” 법원, 조작의혹 보도엔 무죄

    지난 1968년 조선일보가 보도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기사는 현장취재로 작성됐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이 기사가 허위라고 의혹을 제기한 보도도 “공익성이 인정되고,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명예훼손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강형주)는 28일 ‘이승복 어린이 공비 학살 사건’ 기사 조작 논란과 관련, 조선일보에 대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에게 무죄를 각각 선고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씨줄날줄] 인간수명 150세/손성진 논설위원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영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다.‘죽어야 사는 여자’는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묘약을 먹고 죽지도 늙지도 않는 추한 여성들을 비꼰 블랙코미디다.‘자도스’란 영화에도 불사인(不死人)이 나온다. 죄를 짓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젊음이 영원히 계속되자 삶에 싫증과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의식이 없는 듯한 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들은 죽음을 요구하고 구제자들이 학살에 나서자 죽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은 두 영화를 보면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다. 그래도 불로불사(不老不死)는 유사이래 인간의 영원한 욕구요 숙제다. 인간 수명의 한계는 몇살일까. 인간의 평균 수명은 기원전 500년에는 18세에 불과했다가 1900년대에 47세,2000년에는 77세로 늘어났다. 성경에는 900세 넘게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과학적 견지에서는 믿기 어렵다. 가장 확실한 기록으로 최장수자는 1997년 사망한 프랑스의 잔 루이 칼맹이라는 할머니로 122세까지 살았다.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 수명의 한계는 120세쯤이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는 노화 현상이 구명되지 않는 한 인간 수명은 125세를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사람의 본래 수명을 4만 3200일, 즉 120세로 본 동의보감의 기록과도 맞아떨어진다. 미국 텍사스대의 스티븐 오스터드 교수가 지금 있는 어린이들 중 일부는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01년 인간의 최고 수명을 놓고 일리노이대 스튜어트 올샨스키 교수와 내기를 걸었다. 올샨스키 교수는 130세를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2150년 1월1일 150살을 먹은 사람이 나타나면 미화 5억달러를 오스터드 교수의 상속인이 받기로 약속했다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인간은 끊임없이 늙지 않고 궁극적으로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불로초를 구하려 한 진시황의 욕망은 지금도 노화방지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불로 영생은 재앙이 될지 모른다. 죽지 않는다면 생식도 필요없고 자식을 낳을 필요도 없다. 부모 형제간의 사랑도 없을 것이고 미래를 위한 노력이나, 희망도 절망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만이 있을 것이다. 그저 적당히 살 만큼 살고 후세에 생존 권리를 물려주는 것이 우주의 섭리가 아닐까.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시인 김남주는 글로 ‘지금’을 말한다.‘당신은 묻습니다/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투쟁과 그날 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에서) ‘김남주 평전’을 쓴 대구가톨릭대 강대석(철학과) 교수는 “시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가로서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 평했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사랑하고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시에서 적었다. 이처럼 사랑과 증오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지난 70∼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한 민중시인 김남주. 1994년 2월,48세로 사망(췌장암)하기까지 길지 않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는 470여편의 시를 남겼다. 감옥생활 9년3개월 동안 칫솔을 갈아 우유곽에 300여편의 시를 눌러냈다. 암울한 시절, 햇볕으로 나온 시들은 희망의 메시지로 퍼져나갔다. ●제도권이 싫다. ‘해남의 수재’이던 시인은 광주의 명문고교에 들어가지만 사회과학서적과 더 가까워졌다.1965년 2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이었다.“좋은 학교, 우수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상만 지켜야 되겠느냐.”며 시위 참가를 소리쳤지만 메아리로 끝났다. 번민하던 그는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같은 고향이자 해남의 2대 수재였던 평생 친구 이강(58)씨는 “시인은 마음씨가 선(善)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박석무(광주 5·18기념재단이사장) 선배가 남주한테 ‘물봉(호구)’이란 별명을 지어줬겠느냐.”고 웃었다.“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꺾지 않던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시인의 삶은 저항과 투쟁의 연속이었다.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3남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머슴살이로 중농을 이룬 부친으로서는 남주가 그의 분신이자 희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유달리 영어를 잘했던 그는 영국시인 바이런의 시를 암송하던 꿈 많은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때 광주 미문화원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원서를 훔쳐 읽었던 일화도 있다. 시인이 전남대 영문과를 택한 것도 외국의 진보적인 서적을 맘껏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학생활 내내 강의실에 나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밖으로만 돌았다. 강대석 교수는 “시인은 끝까지 지식인과 혁명가의 순결을 지키며 살았다.”고 그의 평전에 기록했다. ●나는 꿈꾼다. 고등학교 때 늘상 자취방에서 함께 뒹굴었던 이강씨는 “당시 광주 계림동에 헌 책방이 즐비했는데 책을 유달리 좋아했던 남주는 시간만 나면 이곳에 들러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엄청난 독서량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상적 토대로 자리매김된다. 이씨는 “당시 남주의 인식론은 아나키즘적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반미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모순의 근원을 미국에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지인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봤다. 허점을 보이지 않고 피해를 안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인은 늘 “글쓰는 사람들이 재주는 있지만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는 철학사상이 빈곤한 게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싹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학 졸업반이던 73년 3선개헌 반대운동의 불쏘시개가 된 지하신문 ‘함성’으로 이어졌다. 반공법 위반으로 첫 구속되는 계기다.75년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김남주를 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데뷔작인 ‘진혼가(1974년)’에서 ‘공포(고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라고 정의했다. 78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에 참여해 소식지인 ‘민중의 소리’를 제작해 돌렸다.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9년만인 88년 가석방된다. 이 해 연인이자 동지였던 박광숙(교사)씨와 가정(1남·현재 14살)을 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으로 5년가량 모처럼 창작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스스로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라던 시인이 대학시절,“그래도 얘기가 통하는 친구”라고 말했다는 이경순(전남대 영문과) 교수의 회고다.“그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스스로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늘 말했지요. 그의 빼어난 언어감각이나 해독 능력에 혀를 내둘렀어요.”지난 74년 이래 시인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던 염무웅(영남대·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교수는 “그가 살았던 때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고 읊어야 할 만큼 가혹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그 시대를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외친 김남주의 삶이 곧 시였고 투쟁”이라고 말했다. ●김남주를 알자. 시인의 생가에는 현재 동생인 덕종씨가 살고 있다. 전국에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남주의 실천적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 문화제를 열었고 출판계에서는 그의 평전과 시선집을 잇따라 펴냈다. 염 교수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시선집을 출간했다. 혁명가로서 뼈대를 갖추기 전에 써낸 소박한 시에서부터 옥중시, 현실의 고뇌를 담은 시 등 120편을 골라냈다. ‘민중시인 김남주 해남기념사업회’의 김경윤(해남공고 교사) 회장과 지역회원 80여명이 김남주 문학관 건립에 힘쓰고 있다.2000년 5월에는 광주시립 민속박물관 앞쪽에 시인의 시비도 세워졌다. 해남군도 내년부터 2년으로 잡고 11억원을 들여 생가 터에 전시관과 창작실, 소공원 등을 만든다. ■시인의 주요시집 ▲ 진혼가·잿더미(74년) ▲ 나의 칼 나의 피(87년) ▲ 조국은 하나다(88년) ▲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89년·옥중서한집) ▲ 사랑의 무기·솔직히 말하자(89년) ▲ 학살(90년) ▲ 사상의 거처(91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91년) ▲ 이 좋은 세상에·저 창살에 햇살이(92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0)고성 오호리 백도의 심층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0)고성 오호리 백도의 심층수

    윌든 호숫가 통나무집의 은둔자이자 ‘비서구적 전통’의 인물인 데이비드 소로는 “물은 대지의 피”라고 했다. 그러나 그 ‘대지의 피’는 오염되었다. 그렇다고 아직은 절망할 때는 아닌 것 같다.‘아직’이란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적어도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저 깊숙이 누워 있는 심층수는 태고적 생명의 비밀을 잃지 않고 있다. 해수가 충만한 바다. 지구 표면의 약7할은 바다이며, 이런 바다를 가진 행성은 태양계에서 지구뿐이다. 지구의 생명은 바다에서 싹텄다. 생물의 혈액 성분도 해수와 닮았다. 그래서 바다를 생명을 낳고 키워 준 어머니라고 부른다. 예고된 수자원 고갈, 그렇듯 풍부한 바닷물을 먹을 수는 없는 것일까. 거대한 무기물의 보고(寶庫) 바다. 그 바다의 해양동·식물은 사람을 능가하는 화학자이기도 하다. 인간이야 바다에서 고작 석유 뽑는 일에만 몰두하다 뒤늦게 심층수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정도다. 바닷물을 먹자는 심층수 개발은 논리상 인류가 온몸으로 바다와 친해지려는 교감운동에 견줄만하다. ●해저 심층수 개발 본격 착수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았다면, 이제 현대판 김선달은 심층수를 주목한다. 바닷물을 팔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국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이 옛날과 다르다. 해양수산부가 해양한국(Ocean Korea 21)계획을 수립하여 해양산업 육성의 토대를 마련한 지 꼬박 4년 만인 지난 7월28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MT(Marine Technology)개발계획안을 통과시켰다. 해양연구원(원장 변상경)의 오위영 정책실장은 MT를 이름하여,‘해양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해양국토의 관리, 나아가 21세기 인류 공동의 과제인 자원고갈과 지구 환경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 첨단과학기술’로 정리한다. 심층수개발은 바로 이 MT의 일환이다. 최초의 심층수 개발현장을 찾았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심층수 공동연구센터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해양연구원(KORDI)이 주관하고 고성군이 동참해 연구기지를 건설, 본격적으로 산업화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의 현장이다. 해양연구원의 김현주(해양심층수 연구센터장) 박사는 사업 전망을 낙관했다.“초기에는 기반시설비가 많이 들겠지만, 사회간접투자로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대단히 유망한 사업이 아닐 수 없지요.” 인류가 기댈 마지막 수자원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가짜 심층수’도 많이 나돌았다. 뒤집어서 우리 사회에 심층수에 대한 기대치가 폭넓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정수기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돼 온 사실은 신뢰할 만한 물이 사라졌다는 증거이며, 반대 급부로 심층수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연일까. 심층수가 개발될 오호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있는 곳이다. 오호는 송지호·금지호·번개·버덩개·황포로 불리는 다섯개의 개(浦)가 있는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오염되지 않은 석호에서 쉼없이 민물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모래밭에는 고성 특산물로, 오염에 민감한 명지조개가 자라고 있어 청정해역을 지키고 있다. 천혜의 황금 모래밭 앞에는 죽도가 떠있다. 비록 무인도이지만 동해에서 섬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기쁨’이다. 하나로 겹쳐 보이지만 살펴보면 대죽도와 소죽도로 떨어져 있어 두 섬 사이로 배가 지나갈 정도다. 이곳에는 이런 속신이 전한다. 정월 대보름날, 이 섬이 맞붙으면 가뭄이 들고, 떨어지면 장마가 든다는 것이다. 물높이 변화를 통하여 생업의 풍흉을 예조하던 옛 생태관을 반영한 듯하다. 이곳 어민 장용수(71)옹은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예전, 소죽도에는 물개가 집단서식했었단다. 일제가 들어오기 전, 어민들은 일체 물개를 잡지 않았다. 생태환경적으로 물개와 더불어 자연과 공생한 것. 그랬던 것이 일제가 들어오면서 수난이 시작됐다. 한번에 수십여 마리씩 잡아들여 껍질을 벗겨갔다. 한국전쟁 때는 군인들이 폭약을 터뜨려 대량으로 학살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대거 사라진 물개는 전쟁통에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봄이면 이따금 1∼2마리가 섬에 나타나곤 한다. 멸종은 아니란 증거다. ●물개 집단서식지… 일제시대 학살 수난 연구기지 코밑에서 물개가 집단서식했다는 사실도 경이로운데, 어민들은 죽도 뒤쪽의 수심도 귀띔했다. 명주실 한꾸러미가 내려갈 정도로 깊다는 오랜 믿음이다. 해도상으로도 이곳은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곳이다. 해변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 냉수대가 형성돼 대구나 명태같은 냉어류가 엄청나게 잡혔던 곳이기도 하단다. 심층수는 바로 그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지게 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깊은 물골로 여겨져 신비롭게 여겨지던 곳에서 심층수가 끌어올려지게 된 것이다. 민중의 자연 인지체계와 과학기술의 인지체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심층수사업은 단순히 물만 퍼올리는 일이 아니다. 풍부한 심층수의 다목적 개발과 다단계 이용을 위한 실용적 기술 정립이 목표이다. 심층수의 순환과 고유 특성, 분석 결과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취수관과 복합 시설공법에 대한 설치시뮬레이션이 파랑 및 유동장에서 종합 모형실험으로 실시되고 있다. 해양심층수의 담수화, 더 나아가 산업화를 위한 소금생산, 화장품과 식품 및 에너지에 대한 적용성까지 검토되고 있다. 당연히 환경조사 및 모델링연구를 통한 생태환경 영향평가도 포함된다. 기술이 표준화되면 동해안 전역에서 심층수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기초연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실제 취수시스템을 상세설계하고 인프라를 세우려면 많은 시간과 예산을 필요로 한다. 수년 뒤, 오호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널린 바닷물이 모조리 ‘먹거리’라는데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어찌 소중한 바닷물에 티끌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 있으랴. 지난해 여름. 바이칼호에서 배를 타고나가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로 갈증을 다스렸다. 표층수인데도 목젖을 적시는 시원함을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그게 그토록 부러웠는데 이제는 동해 바닷물을 마시면서 살아갈 날이 문턱에 다가와 있으니! ●해양강국 사회 의지·관심 필요 하지만 머나먼 바닷가에 외롭게 서있는 연구소에서 살아가야 하는 과학자들의 존재는 아직도 우리의 생각에서 너무나 멀리 있다. 오죽하면 ‘과학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분노의 목소리마저 들려오겠는가. 봉이 김선달식이 아닌 이상, 백년대계의 심층수를 개발하자면 해양강국을 만들겠다는 사회의 의지와 관심이 훨씬 더 필요하지 않을까. 죽도를 떠나려는데, 사라진 물개떼의 울음이 환청으로 들려왔다. 그 바람에 이런 상상까지 더해졌다. 이곳 심층수가 세상에 선보인다면,‘고성 오호리 심층수’란 이름을 내걸고 죽도물개를 상표화해 그려 넣으면 어떨까.‘건강한 물개들이 먹던 건강한 물’이기 때문이다.‘독도 심층수’‘대화퇴 심층수’식으로 동해 곳곳의 지역성을 담보한 맑고 청량한 심층수가 대하처럼 도도히 목마른 세상 속으로 흘러가길 기대해 본다. 자연 곳곳이 유린당했어도 의연한 동해의 물만큼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길이 보존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깊고 청정한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힘차게 내달렸다면 동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동해가 심층수를 담아내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으니, 새삼 조물주의 조화에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킬링필드’ 발견

    |하트라 연합|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의 반인륜 범죄 혐의 증거를 찾고 있는 조사단은 이라크 북부에서 대규모 쿠르드족 학살 현장을 발견,12일 시신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조사단은 이라크 북부 하트라 유적의 마른 강바닥에 설치된 9개의 참호에서 태아와 장난감을 꼭 쥐고 있는 유아를 비롯해 최소 300구의 시신을 발견했으며,전체 시신은 수천 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참호 1곳에서는 소형무기로 살해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성과 아이들 시신만 있었고 또 다른 곳에는 자동화기로 사살된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의 주검이 모여 있었다. 조사단은 원래 발굴작업이 끝나기로 예정돼 있던 13일에 앞서 기자단을 불러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조사단은 “각 시신들을 짜맞추고 법의학 보고서를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작성하는 데 시간이 걸려 예상보다 발굴 일정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후세인을 재판하는 이라크 특별법정에서 일하도록 미국 백악관이 지명한 미국인 그레그 케호 변호사는 “이곳은 사람들을 처형하는 킬링필드였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케호 변호사는 “시신 발굴 작업을 오래해 왔지만 여성과 아이들이 명확한 이유없이 처형당한 이런 곳은 처음 본다.”고 덧붙였다. 이곳의 시신들은 1987∼88년 사이에 살해된 쿠르드족으로 알려졌다.
  • [사설] 과거사법 야당도 의지 보여라

    열린우리당이 어제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안’을 확정해 발표했다.한나라당은 “국정감사의 본질을 흐리고 국민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여당을 비난했다.그러나 국감 도중이더라도 개혁입법 활동은 할 수 있다고 본다.한나라당도 내부적으로 과거사진상규명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법안을 전향적으로 다듬어 공식발표한 뒤 여당과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 여당의 법안은 국가주권 상실기부터 권위주의 통치시대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공권력의 행사로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국가기구로 설치하도록 했다.반면 한나라당 내부안은 학술원 산하에 ‘현대사조사연구위’를 두고 학문 차원의 조사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이다.조사 후 사면복권 등 화해조치는 필요하지만 진실규명을 위해 국가기구 설치 쪽이 효율적이다.동행명령권 부여 등 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여당은 일제 및 해방후 미군정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는 조사범위에서 제외했다.미국·일본과 외교마찰을 우려한 때문이라지만,유감이다.배상문제는 젖혀 두고라도 사실관계는 밝혀야 한다.여당 법안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전후 양민학살사건,민청학련 등 권위주의시대 사건의 진상규명을 추구하고 있다.재조명의 당위성은 분명하지만 야당이나 특정인을 겨냥했다는 오해가 없도록 입법과정에서 주의해야 한다.야당 주장대로 좌익세력 테러행위 중 진상규명이 돼야 할 부분이 있는지는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과거사규명법을 소모적 정쟁으로 만드느냐,슬기롭게 입법하느냐 여부는 정치권에 달렸다.여야가 과거사법 문제로 다시 대치한다면 국보법 논란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사회혼란이 가중될 것이다.야당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를 털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형식적으로 응하지 말고,과거 정리가 제대로 되도록 당의 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 [국감-정책은 없고 공방만 있다] 보좌관들 파리목숨?

    전직 보좌관인 A씨는 지난 8일 모 의원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정기국회가 끝나는 올 12월쯤 보좌관 1명을 교체할 예정인데,그 자리가 비기 전에 일단 지금부터 인턴 신분으로라도 일할 수 있겠느냐.”는 제의였다.A씨는 기자에게 “인턴이라고 하니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지금 딱히 하는 일이 없어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출범한 지 4개월밖에 안된 17대 국회에서 보좌관들이 대거 교체되고 있다.국정감사라는 ‘대목’을 코 앞에 둔 지난달에만 무려 41명의 보좌진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한 의원실에서 4급과 6급 보좌진 2명을 한꺼번에 신규 채용한 경우도 있었다. ●국감 직전 41명이나 갈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국감이 본격 시작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0월에 들어서도 보좌진 교체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OOO의원실에서 함께 일할 보좌진을 모집합니다.’란 채용공고를 쉽게 볼 수 있다.10일 오후 검색한 기준으로 2명의 의원이 모집공고를 내놓고 있었다. 국회에서 수년간 잔뼈가 굵은 보좌관들은 “정기국회가 끝난 뒤 보좌진을 교체하는 경우는 흔히 봤지만,국감기간 중에 바꾸는 것은 보기 힘든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보좌진 사이에서 ‘보좌관 학살’이란 자조섞인 얘기들이 오갈 만도 하다.보좌관 생활 9년째인 B씨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에 보좌관들이 대거 ‘잘릴’ 것이란 괴담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대량 학살’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의정 경험이 전무한 ‘신출내기’ 보좌관이 17대 국회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막상 일을 시켜보니 국정감사라는 전문영역을 헤집을 역량이 안되거나 의원과 손발이 안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의욕 넘치는 초선 의원이 대량 유입되면서 의원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한 것도 보좌관의 ‘조기 강판’을 부르는 요인이다.이번 국감에서 ‘대박’을 못터뜨리면 끝장이라는 조바심에서 보좌진에 성급한 결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언론보도 안되면 사퇴” 각서도 실제 모 의원은 국감 전에 보좌진 전원으로부터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의원의 국감 활동이 언론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으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내용이다.‘TV 9시 주요뉴스에 보도되면 10점,신문 1면 톱에 실리면 10점’ 등 구체적인 ‘성적표 작성 방식’까지 정했다는 것이다. 한 초선 의원 보좌관은 “국감이 정쟁으로 흐르면서 언론의 초점도 그쪽으로 쏠리게 돼 보좌관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진 셈”이라고 털어놨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친일인명사전 준비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준비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아주 특별한 전시를 알리는 조촐한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는 내빈들에게 “전시 장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다들 기피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이같은 현실이 정말 절망스럽다.”면서 “이번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전’은 일제 때 독립투사들이 갇혔던 형무소를 연상하며 그림을 감상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전시된 1000여점은 명백한 ‘친일그림’만을 골랐으며 형무소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조명 역시 일부러 어둡게 했다고 덧붙였다.잠시 후 100여명의 관람객들이 전시장(형무소 복도) 안으로 들어갔다.한 안내자는 “총동원 체제기(1937∼45년)를 중심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찬양한 친일미술가들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일본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이완용의 서예작품,박득순의 전쟁화 등이 눈에 띄었다.또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김기창·김경승·심형구·김은호 화백 등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도 내걸려 있었다. 이밖에 성전화첩,한일합병 기념화첩,각종 친일잡지 등도 전시돼 있었다.특히 ‘해남도 특별전’에는 중국 하이난(海南)도에서 학살된 조선인들의 관련 사진을 처음으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이런 그림들 바로 옆에서 당시 온갖 고초를 겪었던,독립투사들의 혼이 담겨진 3∼5평 크기의 감방들이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오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세월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하나둘씩 힘들게 모아온 결과물이었다.이 연구소의 조문기(78) 이사장을 만났다.그는 1945년 ‘부민관 폭탄투하’의 주역으로 요즘 ‘친일인명사전’ 발간준비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어.독립운동을 한다는 정신으로 그림을 모았지.우리 사회에는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어.그런데 광복은 무슨 광복이야.친일청산? 아직도 멀었어.지금이라도 다들 뉘우쳐야 돼.이번 전시도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어.” 그는 담배(라일락)를 연방 입에 물며 억양을 점점 높였다.그는 올해에도 3·1절과 8·15행사에 초청을 받았으나 역시 참석하지 않았다.우리나라가 아직 진정한 광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독립투사 30여명과 청와대로 오찬을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오히려 그 시각에 서울 시청앞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그는 친일청산 특별법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국회에 친일 후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또 그 후손들은 막강한 권력의 후계세력을 길러내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부연했다.즉 ‘신(新)친일파’들의 득세 때문에 독립운동을 더욱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2의 신기남 의원 같은 경우가 얼마든지 더 생겨날 수 있어.내가 아는 것만 해도 (국회내에)몇 명은 돼.그들이 당이나 국회 상층부를 장악하려 할 때 틀림없이 친일행적이 나오게 돼 있어.김희선 의원? 복잡하긴 한데 김학규 장군과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도 있더군.”그는 아울러 만약 친일 집안의 후손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 정계에서 출세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그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과 관련,“(친일청산 특별법을 두고)박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딸이 벽이 되고 있다.”면서 “(박근혜 의원은)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와 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뉘우치고 민족을 위해 한몸 바쳐 일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쏘았다.그는 노 대통령과는 대선후보 때 서대문형무소 자리에서 만났다.그는 이때 노 후보에게 친일인명 사전 발간사업을 도와달라며 ‘친일문학론’을 선물했다.노 후보는 ‘책값으로 돈은 드리지 못하지만 (당선되면 사업을)팍팍 밀겠다.’는 약속을 했다.하지만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단다. “인명사전? 한창 편람작업 중이지.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수록 범위 등을 확정한 뒤 내년 1월부터 발간할 예정이지.” 그에게 어떻게 해서 19살 나이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그는 “사실은 16살 때부터 시작했지.”하며 잠시 당시를 회고했다.그는 1926년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야몽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이 때문에 외조부의 항일사상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1942년 16살 때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강관주식회사라는 군수품공장에 취직했다.여기에는 한국인 노동자 30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그는 어느날 일본인의 만행을 견디다 못해 대규모 파업을 주동하기에 이르렀다.이 일로 인해 그는 동지 류만수와 함께 지명수배됐다.도피생활 중 독립투사를 만나 문서전달 등의 활동을 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45년 1월 류만수와 함께 귀국했다.이어 그해 5월 ‘대한애국청년단’을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했다.그러던 중 7월24일 친일파의 거두로 한국인 학살에 앞장서온 박춘금에 의해 결성된 ‘대의당’이 부민관(지금의 서울시 의회)에서 또 다른 민족학살 모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그는 지체할 것 없이 류만수 등과 함께 부민관에 침입해 두발의 폭탄을 던져 학살음모를 사전에 차단했다. 그는 “일제의 만행을 일일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라며 비 내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그는 수원에서 10여평짜리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다.‘독립운동가는 빈곤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건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건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착한 일 보기만 해도 건강해진다? ‘테레사 효과’라는 게 있다.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서 유래한 의학용어로,착한 일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몸 안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물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자신의 몸만을 생각하며 사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19개월인 반면,자원봉사 생활을 하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37개월로 거의 2배를 더 산다고 한다.남을 도우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이때 체내 면역성도 강화되면서 몸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실제로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빈민가에서 여든일곱까지 살았으며,슈바이처 박사는 전염병이 들끓는 열대우림 아프리카에서 아흔 살을 살았다.그런가 하면 한국 입양아의 대모 바서 홀트 여사는 아흔여섯의 나이로 봉사의 삶을 마쳤다.이들의 건강하고 긴 생애는 단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이들에겐 모두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나눔과 상생의 삶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존과 상생 되짚어 본 에세이집 ‘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최재천 등 지음,고즈윈 펴냄)는 공존과 상생,조화의 의미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눈으로 살핀 15편의 글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얼마전 우리 법원에서는 도롱뇽과 도롱뇽의 친구들을 원고로 한 소송이 기각된 적이 있다.도롱뇽이 소송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반면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인근의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다이세쓰산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30년만에 승소한 일이 있었다.선진 외국에선 이와 유사한 판례들이 적지 않다.그러면 우리의 도롱뇽은 정말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일까.이 책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필자 가운데 한 명인 숲해설가 유영초는 해월 최시형의 말을 인용,공존과 상생의 의미를 강조한다.“제비의 알을 깨뜨리지 아니한 뒤에라야 봉황이 와서 거동하고,초목의 싹을 꺾지 아니한 뒤에라야 산림이 무성하리라.” ●‘호모 사피엔스’ 대신 ‘호모 심비우스’ 제안 책의 필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자연의 순리를 따르라는 것 혹은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로 요약된다.이러한 정신은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의 글 ‘다름=틀림의 견고함에 대한 소고’의 톨레랑스 개념이나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이 소개하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us)’라는 개념에 잘 드러나 있다.공생은 인간의 생존 자체를 결정하는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하는 최재천은 인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처하며 붙인 호모 사피엔스 대신,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공생인’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신화연구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의 상생의 철학은 어떨까.이윤기는 물길도 바로잡고 땅의 선도 만들고 싶어 양평에 2000평가량의 땅을 샀는데,결국 “물길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건 물 스스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토로한다.자연의 순리를 실천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그는 고추를 직접 재배하면서 “물은 석 자만 흘러도 스스로를 맑게 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됐다고도 말한다. 책은 자연과 생명에서 세계평화의 차원으로까지 시야를 넓혀간다.세계평화에 위협적인 존재로 종종 비쳐지는 이슬람에 대해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동안 왜곡돼온 진실을 밝힌다.우리가 익히 들어온 ‘한 손에는 칼,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은 그가 늘 주장하듯 서구가 이슬람을 정복하면서 만든 허구다.이슬람이야말로 공존과 상생이라는 뿌리 아래 성장한 ‘평화의 종교’라는 것이다.이슬람은 주변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화함으로써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이같은 포용력과 융화력은 이슬람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필자는 한 예로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들은 무슬림과 유대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반면,1187년 살라딘 장군이 이끄는 이슬람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들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던 사실을 든다. ●“기차가 달릴 수 있는 건 평행선 덕분” 이 책에는 생명과학자와 신화연구가가 나오고 역사가,시인이 등장한다.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우리에게는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고.책 끄트머리에 실린 정호승의 시 ‘정동진’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존과 상생의 가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보인다.“…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서로가 평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1만 2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軍과거사 조사 실미도사건 포함

    지난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한 이른바 ‘녹화사업’과 실미도사건,각종 의문사,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사건 등이 국방부의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군과거사위)’의 조사대상에 포함된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최근 “군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과거 잘못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들 사건을 과거사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지시한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효일 국방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과거사위는 조만간 진상조사가 필요한 사건의 목록을 작성해 이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방법과 범위 등을 정할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녹화사업은 기무사,의문사는 합조단,북파공작은 정보본부에서 각각 조사해 그 결과를 군과거사위에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8년 이후 전남 함평군 일대에서 벌어진 양민학살과 좌익세력 교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국민보도연맹 조직원 집단학살 및 경북 문경 민간인 학살사건 등에 대한 조사는 군사편찬연구소 등에서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녹화사업은 전두환 정권이 1980년대 초 학내외 집회와 시위가 거세지자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특별정신교육을 시킨다는 명분으로 가혹행위를 가하고 프락치활동을 강요한 사건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5)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에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5)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에서

    필리핀 북쪽의 암초인 오키노토리시마는 ‘더블베드’ 크기다.태평양 복판 쪽으로 혀를 내민 미나미토리시마도 산호초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들 암초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융단폭격에 가깝다.무인도에 불과한 조어대,일명 센카쿠 열도로 험난한 중·일 분쟁을 야기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독도 역시 일본의 장기적 해양 영토전략에서 시비가 붙고 있을 뿐 우연한 ‘독도망언’이란 없다. ●일본에 비해 수동적인 우리네 해양관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연안국에 광대한 해양관할권을 인정하는 국제해양질서가 성립된 작금의 추세는 일본의 해양력 강화에 매우 유리하다.해양을 포함한 일본의 영토는 실로 엄청나며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그러한 점에서 독도는 바둑으로 치면 일본과 맞상대하는 동해판수의 화점(花點)이다. 감성적으로야 독도를 ‘작은 점’,‘손톱만한 섬’이라 지칭해도 무방하겠지만 오키노토리시마 따위와 비견하면 엄청 큰 섬이다.유치환 시인은 울릉도조차도 ‘심해선 밖의 한점 섬’으로 묘사하였지만,대해양 시대의 역사관으로 볼 때는 매우 가깝고도 큰 섬이다.그만큼 우리 사회의 바다관이 수동적이란 증거이리라. 대한민국 국민 김성도씨가 주민등록을 전입했으며,수많은 이들이 호적을 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를 찾은 것은 지난 9월19일.국회바다포럼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바른정치연구모임 소속의 국회의원,해양연구원,해양수산개발원,수산과학원 등의 해양전문가들이 울릉도에 속속 모여들었다.‘울릉군 독도리’로 떠나기 전날,‘해양강국 발전 모색과 영토주권 수호’ 세미나를 갖던 차에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예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자기 나라 섬을 방문하는 것도 막는 지경이니 할 말 잃은 표정들이었다. 예의 ‘내 마누라론’이 재론되곤 한다.어차피 내 마누라인데 제3자에게 내 마누라임을 애써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논리다.독도를 주유하는 부정기 노선의 관광객들도 3시간여를 달려와서 먼발치에서 되돌아가야 한다.까다로운 입도신청서를 작성하고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데다가 날씨마저 궂기 때문에 상륙이 쉽지 않다.돌이켜보면 2000년 독도선착장 준공식에 공사를 책임졌던 해수부장관도 외교문제를 빌미로 참석하지 못하였다.그러하니 내 나라 내 땅에 발을 디디면서도 감격스러울 수밖에! ●대견하고 고맙기만 한 섬 해경 함정으로 울릉도 저동항을 떠난 지 2시간여.독도는 그야말로 ‘불현듯’ 눈앞에 나타났다.섬 그림자의 실루엣이 드러나길 30여분.가파른 바위산으로 솟구친 섬이라 그야말로 도발적으로 다가온다.많은 섬을 다녀 보지만 독도처럼 대견하고 고마울 데가 또 어디 있으랴.조물주의 능력이 오묘한지라 동해에 처음으로 독도를 만들어 놓고 섬이 너무 작아서 마음이 안되었던지 훗날 울릉도를 만들어 주었다.누군가 농을 던진다.“이왕이면 독도 같은 섬 수십개만 쭉 뿌려 주셨더라면! ” 독도수비대에 앞서 토종 삽살개가 마중한다.사람이 그리운지 살갑기가 그지없다.가파른 층계를 올라가면 예의 태극기 휘날리는 경비대 막사와 헬기장,등대 등이 나타난다.초병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망망해대를 지켜볼 뿐이다. “고향이 어딥니까?” “전라도에서 왔습니다.”참 멀리서도 왔다.2개월을 지키다가 울릉도 본부로 나가 임무교대한다.행동반경이 지극히 좁은 섬이라 감옥에 갇힌 폭이다.추석 귀향행렬에 끼지 못하는 이들은 비단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독도경비대 역시 전쟁터에 서 있는 셈이다. “참으로 좋은 날에 오셨습니다.” 이런 날이 별로 많지 않단다.가을바람은 독도에도 어김없이 불어 해국(海菊)이 보랏빛 자태를 드리운다.화산섬에 수백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디선가 식물들이 안착하여 무려 60여종이 자라고 있다. ●본섬 외에도 78개 암초로 이루어져 동도 정상에서 굽어보니 서도의 가파른 절벽 사이로 장군바위·감바위 등이 초록빛 바다 위에 떠 있다.울릉도에서 오는 뱃길은 거의 검푸른 빛깔이었는데 동도와 서도 사이의 야트막한 바다는 그야말로 초록빛이라 뛰어들고픈 충동이 불끈 솟는다.독도를 단독섬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동·서도 본섬과 무려 78개의 암초가 대가족을 이룬다. 독도하면,민족문제와 결부되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오지만,실상 독도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머나먼 동해 가운데에 이처럼 불쑥 튀어나왔다는 점도 참으로 절묘하지만 여러 암초를 거느린 가장답게 늠름하고 의연하기가 이를 데 없다.동도와 서도가 거의 비슷한 크기로 중심을 딱 잡고 버틴 가운데 자잘한 암초들이 주변 풍경을 장엄하게 해준다. 괭이갈매기,흑비둘기,멧비둘기 등 60여종에 달하는 새들도 살고 있어 ‘외로운 섬’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감태와 모자반,대황군락이 수중림을 형성하는 가운데 난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리돔 같은 물고기도 쉽게 눈에 띈다.그 자체로 동해의 꽃이며 종다원성의 보고이자 천연보호구역답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90여㎞ 떨어진 울릉도가 선명하게 다가온다.독도를 자신들의 관할에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키섬은 무려 160㎞나 떨어져 육안 관찰이 불가하다.가시거리에서 조업하는 울릉도민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키 어민보다 역사적·현실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460만년 전에 형성… 제주도의 맏형격 많은 사람들의 오해 가운데 하나가 독도를 ‘동해의 막내’라고 부른다는 점.약 460만년 전에 형성된 독도는 250만년 된 울릉도,120만년 된 제주도의 맏형이다.족보상으로도 어엿한 형일뿐더러 독도를 떠받치고 있는 해저지형은 독도와 울릉도가 비슷한 크기임을 알려준다.육안으로 보이는 독도는 지극히 일부분이다.그러한즉 1965년 한·일협상 과정에서 귀찮은 존재이니 차라리 비행기 폭격으로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자고 한 정치인의 발언은 그 얼마나 황당하며 무지에 가까운 망언인가. 돌이켜보면 독도는 지금껏 위정자들보다는 민중의 손으로 지켜왔다.성호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은 영웅에 비길 만하다.’고 극찬하였듯이,동래 출신의 일개 어민이 일본까지 건너가 섬을 사수하였다.한국전쟁의 빈틈을 찌르면서 침범하던 일인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홍순칠 대장 이하 의용수비대 역시 국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몸을 던진 민중이었다.지금도 사이버공간에 들어가면 갖가지 독도사이트들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이쯤되면 국가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 되묻지 않을 수 없다.‘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되는 ‘독도는 우리땅’조차 금지곡에 오를 정도였으니! ●‘독도 지키기’ 나라는 무얼 했는가 의용수비대원으로 생존한 몇분 중의 하나인 정원덕(76)옹은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요.늘상 배 타고 나가서 미역 뜯고 전복 따던 곳이지요.”울릉도민들에게는 ‘일상의 바다밭’일 뿐이란 말이다.울릉도 사람들,더 나아가 강원도 묵호,경상도 울진 사람들도 출어하던 황금어장이다.따라서 일제가 통감부 지배를 시작하던 1905년에 시네마현(島根縣) 고시40호로 독도를 임의 편입조치하고 토지대장에 기입한 것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은 역사적·현실적 지배를 무시한 국제법상의 명백한 도발에 불과하다. 독도에서 물개바위를 바라보노라니 돌연 귀엽기만한 강치 생각에 마음이 찡하다.물개과의 수만마리 하얀 강치들이 일본업자들에게 학살당하여 씨를 말렸다.그 학살의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1948년에는 미군 폭격기에 의해 독도에서 고기 잡던 울릉도민들이 학살당하고,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독도조사단이 피습을 당한다.우연일까,아니면 재일본미군사령부와 일본의 은밀한 묵계에 의한 것일까.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년대계의 해양력 설계, 독도에 달려있어 1880년 북경조약으로 두만강 녹둔도가 러시아로,간도협약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갔다.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사가 초미의 관심인데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독도망언을 내뱉는다.지극히 조직적인 ‘정치적 망언’이라 치고 빠지기 수준을 뛰어넘는데,우리에게 독도는 아직도 ‘머나먼 당신’이다.피동적인 ‘내 마누라론’만으로 우리들의 당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저동항으로 돌아오는 뱃전에서 누구나 합치된 의견이었으니,이제 ‘마누라타령’은 용도폐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해군 전략이론가이자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해군역사가인 마한이 ‘해양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로와 국가 번영을 이루는 중요한 고리이다.’라고 하였을때,독도는 우리의 해양력을 시험하는 잣대임이 분명하다.러일전쟁터가 독도 근해였음은 제국의 각축이 언젠가 다시금 독도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일본 자위대의 무력적 위협이 현실화되는 동해판수의 화점에서 우리는 바둑돌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그야말로 천년대계의 해양력을 설계할 일이다.
  • 황석영씨 ‘손님’ 佛페미나상 후보에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전 초기의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을 다룬 황석영씨의 장편소설 ‘손님’이 프랑스의 유명 문학상인 페미나상의 외국어소설 부문 수상 후보로 선정됐다. 페미나상 심사위원단은 최근 1차 후보작 선정에서 쥘마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된 ‘손님’을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수상 후보로 뽑았다.최종 결과는 11월3일 발표될 예정이다. 페미나상은 여류 문인들이 남성 위주의 문학상에 반발하며 1904년 제정한 상으로 공쿠르상과는 달리 외국문학 부문의 수상작을 선정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lotus@seoul.co.kr
  • [기고] ‘우라늄 실험’과 원자력 연구/함철훈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과학계에는 새로운 원소가 발견될 때마다 혹성의 이름을 따서 원소를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우라늄은 ‘우라누스(천왕성)’에서,플루토늄은 ‘플루토(명왕성)’에서 각각 이름을 땄다. 명왕성이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란 이름을 가졌으니 여기에서 연유된 플루토늄이 오늘날 인류를 대량학살할 수 있는 원자폭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어떤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자력이 이 세상에 끔찍한 파괴의 모습으로 처음 실체를 드러낸 때가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였다면,‘평화의 사자’로서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원자력발전을 통하여 세상에 빛을 밝히고 방사선을 이용하여 각종 질병에 치료의 길을 연 일 등이다. 이처럼 원자력을 이용한 기술은 군사적·평화적 목적으로 함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이 존재하며,그렇기에 원자력의 평화적 활동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없도록 예방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국제적으로 요구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주도로 유엔 산하에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립되었고,이어서 핵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약속인 핵 비확산조약(NPT)이 1970년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1975년 NPT의 당사국이 되었으며,같은해 IAEA와 안전조치 협정도 체결하였다.1970년대 첨예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카터 미 행정부의 돌연한 미군철수 통보는,안보공백의 한 대안으로서 한국정부가 핵개발을 추진하려 한다는 국제적 의혹을 일시나마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이러한 사정으로 우리나라는 핵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행한 극미량의 우라늄 분리실험을 놓고 외국의 일부 정치가·언론이 마치 한국정부가 핵무기 기술개발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문제 삼고 있다.하지만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임계질량은 순도 90%이상의 농축우라늄 15㎏ 정도는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자력연구소가 실험에서 추출한 농축 우라늄의 양은 0.2g에 불과하다.따라서 이러한 방법으로 핵무기 하나를 만들려면 동일한 실험을 10만번 정도 되풀이해야 한다.따라서 핵개발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부풀려 핵무기 관련 의혹으로 비화시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저의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몰래 만들려면 우선 IAEA와 미국의 엄격한 감시망을 뚫어야 한다.설령 이들의 감시망을 피해 우라늄을 빼돌린다 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농축공장이 있어야 한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농축공장 또한 IAEA의 철저한 감시대상이기 때문에 몰래 건설할 수 없다.설령 농축우라늄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이용하여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므로 원자력연구소의 실험을 핵개발로 몰아치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국제사회에서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핵 비확산의 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우라늄을 분리했을 뿐인 그 실험이 원자력 연구·개발 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자원은 없고 땅덩이도 작은 나라,게다가 인구밀도는 세계적인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다.자원의 매장량에서,땅의 크기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에 밀린다면 우리는 생각의 크기에서 맞서나가야 한다.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어디까지나 우수한 인력이 아니겠는가. 함철훈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
  • 與 “박정희시대 집중 조사”

    김구 선생 암살사건,송진우 선생 피살사건,민청학련사건,인혁당사건,KAL기 폭파사건…. 열린우리당이 15일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사건들이다.이들 사건은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열린우리당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시간적 범위는 일제시대부터 노태우 정권 때까지 거의 100년을 망라한다.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단장 원혜영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갖고,▲일제하 징용 등 강제 동원 ▲한국전쟁 전후 국군 또는 인민군,빨치산 등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 ▲정부 수립 이후 정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과 반민주적 행위,헌정질서 파괴·위협행위 등을 조사범위로 삼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법안 작성 책임을 맡은 문병호 의원이 밝혔다. 문 의원은 특히 “아무래도 박정희 시대의 사건이 많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해 여야간 논란을 예고했다. 문 의원은 “조사 범위는 권위주의 정권 때까지,즉 김영삼 정권 이전 정권까지로 끊었다.”고 말했다.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93년 2월까지를 조사범위로 삼는다는 얘기다. ‘언론인 대량 해직 사건’에 대해 그는 “준(準) 국가기관이 개입한 인권침해 사건이므로,자연스럽게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또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등은 의문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불만이 있는 피해자가 진상 규명을 요청해 올 경우 조사 대상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을 빚은 동행명령장 발부권과 공소시효 정지 여부,국가기관의 정보 공개 거부 등과 관련해 문 의원은 “여러 지적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고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문 의원은 “오는 22일까지 법 조문작업을 마치고 의원총회 등을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뒤 다음달 초 법안을 발의,11월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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