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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전 인천학생·남하 여학생의 구국정신은 역사적 귀감이자 교훈”

    “참전 인천학생·남하 여학생의 구국정신은 역사적 귀감이자 교훈”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참전 스승’ 신봉순 인터뷰] 일시 1997년 6월 4일 장소 부천 소사의 신봉순 자택 대담 신봉순 이경종(참전 학생/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큰아들)“나의 모교 인천상업중학교 은사님 신봉순 선생님께서는 뜻한 바 있어 학교를 그만두시고, 육사 8기로 입학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 부산까지 남하하여, 방황하던 인천학도의용대의 중학교 2~3학년 어린 학생들 600여명을 선생님이 유선교육대장으로 근무하시던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켜 통신병이 되게 하였다. 또한, 오갈 곳 없게 된 인천학도의용대의 여학생 100여명을 1951년 1월 초부터 3개월간 육군통신학교 행정보조요원으로 근무하게 하여 숙식(宿食)을 마련해 주었고 그 뒤, 인천이 수복되어 여학생들이 무사히 고향ㆍ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던 6·25 참전 인천학생들과 남하(南下)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님이시다.”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이경종(6·25 편찬위원)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과 6·25 한국전쟁 나(신봉순)는 1947년 9월 달에 배다리에 있었던 6년제 공립인천상업중학교(현재의 인천고등학교와 상인천중학교의 전신)로 발령받아서 물리(物理)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1949년 1월에 뜻한 바 있어 인천상업중학교 교사직을 사직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육사(陸士) 8기로 졸업, 1949년 3월에 임관하여 육군 소위가 되었다. 나는 소위로 임관이 되자마자 공비가 많았던 전남 화순 전투 사령부에 배치되어 공비토벌 작전에 참전하고 있을 때 6·25가 터졌다. 그때 광주에 있었던 나는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 대장으로 발령을 받아 영등포 육군통신학교로 와보니 영등포의 육군통신학교는 벌써 수원으로 후퇴하였다. 북한 인민군에게 학살당한 부모님 한강 철교가 폭파되고 얼마 지난 후쯤 나는 후퇴 중에 우연히 수원에서 우리 형님(신능순(申能淳) 대위·육사 5기)을 만났다. 이때 형님이 갑자기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 지방 빨갱이들이 인민군을 시켜 우리 부모님을 모두 학살(虐殺)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큰 소리로 통곡(痛哭)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그 당시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현 소사동)에 있었으며 당시 부천군 일대에서는 형제 장교를 배출한 집안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 때문에 부모님께서 화(禍)를 당하시게 된 것을 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오산에서 치른 첫 번째 전투 내가 부딪힌 첫 번째 전투가 오산 전투였는데 이때 인민군 야크기를 만났다. 야크기가 우리 앞과 뒤를 폭격하고, 기관총 사격을 해서 거기서 많이 전사했다. 나는 지프를 타고 이동하던 길이었는데 인민군 야크기가 사라지고 얼마 뒤 지프에 가보니 운전병은 이미 전사하였고 피란민들은 마구 밀려 뒤엉켜, 운전병이 없으니까 지프는 포기한 채 그때부터 걸어서 오산을 지나 평택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평택에 들어서자 인민군 야크기 기관총 소리가 또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한편에 대나무밭이 있었는데 대나무밭에 숨어 들어가 우리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는 다시 재정비하고 천안을 지나 계속 후퇴하며 대전과 대구를 거쳐서 부산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1월 부산에서 만난 인천 제자들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근무 중이던 1951년 1월 초 어느 날이었다. 내가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천에서 내려온 이계송 등 옛 제자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대원들이라고 하였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해방 이후 인천상업중학교에서 물리 교사로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많았으며 그때 내가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제자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여학생들도 많이 왔었다. 이때가 1951년 1월 초로, 제자들이 “인천에서 2500명이 1950년 12월 18일 날,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솔하에 출발하여 경상남도 통영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굶어 죽고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많이 보고 통영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로 가는 걸 포기하고 마산에서 중학교 4~6학년생 600여명이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고 나머지가 부산으로 왔다”고 말해 주었다. 이때 전황(戰況)은 수원·평택까지 인민군이 점령해서 우리 국군과 UN군이 크게 밀린 1·4 후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인천 중학생들 부산육군통신학교 입교 1951년 1월 초에 나는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서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으며 이때 내 나이는 29살이었다. 당시 600여명의 인천학생들이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하게 된 경위는 나이 어린 중학생들이 보병으로 입대하면 고된 훈련을 받고 전방으로 배치될 것이 뻔한 일인데 어린 제자들 걱정에 나는 육군통신학교 교장인 조응천 박사께 “인천학생들의 남하(南下) 경위와 교육받은 학생들이니까 통신병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을 하였다. 육군통신학교 교장 조응천 박사로부터 좋다는 승낙을 받고 그 즉시 인사과에서 육군본부에 공문을 띄워 인천학생들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키게 됐던 것이다. 인천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인도한 이유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한 인천의 중학생들은 기초실력이 있어서 교육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 당시 육군통신학교에서는 조교들의 횡포가 심해서 나는 조교들에게 인천학생들에게 심한 욕설이나 기압으로 고통을 주는 놈들이 있으면 전방으로 쫓아 버린다는 엄포를 내리기도 하였다. 또한 가벼운 기합은 주되 절대로 구타는 하지 말라 해서 교육 기간에 인천 출신 통신병들은 구타는 당하지 않은 거로 기억하고 있다. 4주간 통신 교육으로 졸업할 때는 모두 무사히 탈락 없이 졸업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통신병들은 대부분 지휘관과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 보병보다는 위험성이 적어서 인천의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입대하게 하였다. 또한, 인천 출신의 제자들이 부산육군통신학교를 졸업하고 통신병이 된 뒤에는 가급적 후방에 떨어지게 많이 노력했다.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의 힘든 피란 생활 나와 인천상업중학교 제자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이 많이 통신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내 기억으로는 100명 정도의 많은 인원이었다. 일단 숙식(宿食) 해결이 급선무였는데 어디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부산통신학교에서 행정보조로 일을 시키면서 숙식을 해결해 주었다. 1950년 1월 초는 1·4 후퇴로 수도권이 다시 북한 인민군이 점령하여 인천으로 여학생들을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3개월이 지나서 우리 국군과 UN군이 수도권을 탈환하자 인천이 수복되어 무사히 귀향시켜준 여학생 중 몇 명은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연락을 하며 그때의 고마움을 내게 표시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내가 평생 느껴 왔던 마음 마지막으로 내가 평생 느껴왔던 마음을 한번 말해 볼까 한다. 나는 부산에서 인천상업중학교 제자들을 만났을 때는 1·4 후퇴로 학생들이 단체로 피란(避亂) 내려온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 후로 차차 알아보니까 국난을 당해 어려울 때에 나라를 위하여 학생들 스스로 인천학도의용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어쩔 수 없는 후퇴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와 자원·입대하였으며 군 복무는 보통 5~6년씩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구국(救國)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구국정신은 인천의 역사 기록에 꼭 남겨야 할 가치 있는 귀감이며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천학생 6·25 참전 역사 찾기 일은 어떤 명예를 남기려는 목적보다도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기고 싶은 말 인천 지역의 자랑거리인 인천학생들의 6·25참전 사실이 담긴 기념비(記念碑) 하나 없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겨 오던 중 우연한 장소에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참전했었던 제자 이 경종을 만났고 그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과 제자 이경종이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를 찾겠다는 말을 듣고 ‘아! 역시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숭고한 구국정신, 그 혼(魂)이 살아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내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나도 인천학생 6·25참전 역사 찾기 사업에 일조할 것을 다짐하면서 부디 인천학생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꼭 성공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신봉순 ▲공립 6년제 인천상업중 물리 교사 역임 ▲육사 8기 졸업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 1922년 12월 1일 :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송내동 408번지에서 출생 1947년 7월 : 동경전자 통신대학 졸업 1947년 9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발령 1949년 1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사직 1949년 3월 :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및 소위 임관 1951년 1월 :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 대장 1965년 3월 : 육군 중령으로 예편 1998년 10월 10일 0시 04분 : 별세 참전기 5회를 마치며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이 인천에 계셨다. 선생님은 뜻한 바 있어 교직을 사직하시고 육사 8기로 졸업하여 부산 육군통신학교에 유선교육대장으로 군에 복무하셨는데 1951년 1월 초 1·4 후퇴 때 인천의 옛 제자들이 갑자기 단체로 찾아왔다. 군에서 통신병은 지휘관 옆에 있기 때문에 인천에서 걸어 내려온 어린 중학생들이 좀 더 나은 군 복무를 하기를 바라시면서 통신병이 되게 인도하셨다. 또한 갈 곳 없어 방황하던 남하 여학생 100명도 3개월간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행정보조로 데리고 있다가 무사히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게 해 주셨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6·25 참전(參戰) 인천학생들과 남하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님 신봉순(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역임)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이 참전기에 기록한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국제사회·반대파 포섭 없이… 고립 부른 ‘독립 무리수’

    국제사회·반대파 포섭 없이… 고립 부른 ‘독립 무리수’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 공화국’의 꿈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멀어져버렸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 두 세력은 모두 여기까지일까. 스페인 정부는 지난 27일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독립 선언을 둘러싼 줄다리기 한 달여 만이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수반은 29일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쿠르드 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키르쿠크 유전을 이라크 중앙정부가 점거하며 압박한 결과이다. 분리·독립이라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한 두 지도자는 자기 민족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들이 어떤 실패의 과정을 겪게 됐는지 짚어봤다.■궁지 몰린 카탈루냐 독립파 푸지데몬, 압도적 지지 없이 강행 EU 등 국제적 공감 얻는 데 실패 잔류파에 향후 주도권 빼앗길 듯 스페인 중앙정부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독립 공화국을 선포한 카를레스 푸지데몬(54)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과 내각 관료를 모두 해임하고 오는 12월 21일 새 자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조기 선거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정국 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카탈루냐 유럽민주당’과 민중연합후보당 등으로 구성된 연립 정권의 수장으로 지난해 1월 취임한 푸지데몬 수반은 독립국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골수 독립파’로 통한다. 하지만 일간지 엘 문도가 29일 공개한 카탈루냐 주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 현재 카탈루냐 유럽민주당 등 독립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42.5%, 사민당 등 잔류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43.4%를 기록했다. 이는 12월 21일 조기 선거에서 독립파가 스페인 잔류파에 정국 주도권을 뺏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애초에 푸지데몬 수반이 독립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난 1일 90%의 찬성률을 보인 독립 주민 투표도 투표율 자체는 43%에 그쳐 잔류를 지지하는 다수의 여론이 침묵한 가운데 독립파의 의견만 과잉 부각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독립파만큼이나 잔류파의 저항도 거셌다. 카탈루냐의 독립을 반대하는 ‘카탈루냐 시민사회’ 등 잔류파들은 지난 8일에 이어 29일에도 바르셀로나에서 최소 30만명이 집결해 독립 반대 시위를 벌였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지만 주민 투표 이후 1700여개의 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본사 이전을 결정하자 독립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간 막강한 경제력을 믿고 독립을 추진했지만 분리될 경우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다. 푸지데몬 수반의 가장 큰 패착은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코스보의 사례를 보면 1990년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으로부터 ‘인종청소’식의 대규모 학살을 경험해 유엔의 보호를 받은 바가 있다. 프랑스 국제법 전문가인 장 클로드 피리스 전 유럽연합(EU) 고문은 지난 28일 “주권, 영토, 국민을 갖춰도 국제적 승인이 없으면 주권 국가 기능을 할 수 없다”면서 “EU 국가들이 스페인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은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며 카탈루냐는 그동안 (코소보와 달리) 민주적 권리를 모두 누려 왔다”고 지적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지난 1일 주민 투표 후 당장 독립을 추진할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푸지데몬 수반은 결국 지난 10일과 16일 스페인 정부에 두 달간의 독립 추진 유예 조건으로 대화를 제안했다. 이는 EU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중앙정부의 도발을 유도하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에 19일 오전까지 독립 여부를 명확히 밝히라며 최후 통첩을 날렸고 사실상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된 셈이다. 카탈루냐 유럽민주당 내에서도 오는 12월 선거를 명분 삼아 이제 독립에서 한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푸지데몬은 사면 초가에 몰리게 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바르자니 수반, 불명예 퇴진 IS격퇴 힘입은 바르자니 수반 임기 연장하며 주민투표 승부수 이라크, 미국 등에 업고 협상 외면 마수드 바르자니(71) 쿠르드자치정부(KRG) 수반이 29일(현지시간) 퇴임 의사를 밝혔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바르자니 수반은 이날 자치의회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내달 1일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겠다면서 수반의 권한을 자치내각과 법원, 의회에 분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쿠르드 자치의회는 격론 끝에 이를 승인했다. 바르자니 수반은 국제사회의 흐름은 읽지 못한 채 자신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2005년 6월부터 12년간 KRG를 이끌어 온 바르자니 수반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 항쟁을 이끌어 온 집안 출신이다. KRG의 집권여당인 쿠르드민주당(KDP)에 3대째 몸담아 왔고 1979년부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르자니 수반이 당수를 맡았다. 그에게 쿠르드의 독립은 자신이 이루고픈 최대의 업적이었다. KRG는 2014년부터 이라크군을 대신해 이라크 서북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IS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지난 6월 7일 분리독립 찬반 주민 투표 실시를 발표했다. 지난달 25일 찬성 92.7%(투표율 78%)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바르자니 수반은 이라크 정부에 협상을 요구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이라크는 지난 16일부터 군사작전을 벌여 KRG가 실효 지배해 오던 키르쿠크주 유전지대를 장악했다. 국제사회도 KRG를 외면했다. 특히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KRG의 도움을 받은 미국이 나서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는 이 전투에서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고 했다. 내심 의지했던 미국의 외면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터키와 이란도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독립국가의 출현에 영향을 받을까 봐 반대 입장을 굳혔다. 유럽연합 역시 영국 스코틀랜드와 벨기에 플랑드르 등 다른 지역까지 분리독립 바람이 불 것을 걱정했다. 바르자니 수반의 결정적 패착은 독립국가의 탄생을 견제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었다.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은 바르자니 수반이 석유가 생산되는 키르쿠크의 지배권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독립 카드를 꺼내 이라크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하루에 약 56만 배럴을 생산해 터키 방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하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키르쿠크 일대에서 생산된다. 아랍에미리트(UAE) 매체 더 내셔널은 키르쿠크를 놓고 줄곧 이권다툼을 해 온 이라크로서는 KRG가 키르쿠크를 기반으로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KRG는 지난 25일 “분리독립 찬반 투표 결과를 동결한다”며 백기투항했고, 바르자니 수반의 퇴임으로 이어졌다. 바르자니 수반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현 상황은 독립투표 탓이 아니고 이라크 중앙정부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KRG 흡수)의 핑계일 뿐”이라면서 “미국이 테러분자로 지정한 세력(시아파 민병대)이 미제 탱크로 우리를 공격하는 데 놀랐다”면서 미국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바르자니 수반은 정계를 완전히 떠나는 대신 2선으로 물러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은 바르자니 수반의 조카이자 KRG 총리인 네차르반 바르자니가 권력 공백기에 지배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2차대전 역사 다시 써야 하는 이유...“히틀러, 전쟁 끝나고 1955년까지 살았다”

    2차대전 역사 다시 써야 하는 이유...“히틀러, 전쟁 끝나고 1955년까지 살았다”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독일 나치스 아돌프 히틀러가 2차 대전 이후에도 생존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담긴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가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공식적으로 히틀러는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초부터 베를린 총리관저 지하벙커에 은신했다가 소련군과 연합군이 베를린 외곽까지 진격해오자 연인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뒤 4월 30일 권총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가 공개한 정보원 ‘코드명 CIMELODY-3’ 보고서에 따르면 “1955년 9월 전직 독일 SS(친위대) 대원이 ‘히틀러는 사망했다고 알려졌던 연도보다 10년 뒤인 1955년에도 콜롬비아에 생존해 있었다’며 ‘히틀러는 콜롬비아를 떠나 1955년 1월 아르헨티나에도 갔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밀문서에는 1954년 콜롬비아에서 찍은 것으로 추측되는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다. 사진 속에는 생존 당시 콧수염 등 히틀러와 유사한 모습의 인물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 해당 대원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세간의 음모론으로 남아있던 ‘히틀러 생존설’에 대한 의혹이 실제 CIA 정보원의 보고서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의 생존설은 그동안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 2011년 영국의 역사가인 제라드 윌리엄스와 사이먼 던스틴이 ‘그레이 울프: 히틀러의 탈출’이라는 저서를 통해 당시 히틀러 부하 증언을 토대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자살로 위장한 뒤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1960년대까지 함께 살았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히틀러를 둘러싸고 그의 아들 생존설부터 외계인 납치설까지 온갖 음모론이 제기돼 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위안부 기록물 ‘마지막 기회’… 유네스코, 진실을 등재하라

    위안부 기록물 ‘마지막 기회’… 유네스코, 진실을 등재하라

    피해자 증언 등 기록 2774건 ‘분담금 2위’ 日, 저지 총력전 2019년부터 의견 갈리면 보류이번에 실패땐 원천 좌절 우려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놓고 동아시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부터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가 끝나고 결과 발표만 남아 ‘한·중·일 역사전쟁’이 다시 가열될지 주목된다. 세계기록유산은 한 국가를 넘어 세계사와 세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자료,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 4건에 대해 심사를 받는다. 이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위안부 기록물이다. 한국·중국·일본 등 8개국 14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지난해 5월 신청한 위안부 기록물은 피해자 증언 기록, 일본의 위안부 운영을 증명하는 사료, 피해자 조사 자료 등 2774건으로 이뤄져 있다. 일본은 위안부 기록물 등재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 10월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관련 자료에 이어 위안부 기록물까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최근 탈퇴한 미국(22%) 다음으로 많은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는 일본(10%)은 유네스코를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2015년 당시에도 “난징대학살은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진실성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며 2016년 말까지 39억엔(약 390억원)에 달하는 분담금 지원을 연기했다. 또 당시 중국이 제출한 서류는 공개되지 않고 일본에 의견 표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이에 유네스코는 지난 18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제도 변경을 결정했다. 사실관계나 역사 인식에서 의견이 갈리는 안건은 의견을 조율해 공동신청을 하거나 정리될 때까지 심사를 보류하도록 했다. 유네스코는 또 난징대학살 등록을 결정한 이리나 보코바 사무국장 대신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의 오드레 아줄레 총장을 새롭게 뽑았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차기 사무국장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를 하고 새로운 심사제도가 영향을 준다면 정치적 안건의 등록은 보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지난 24일 보도했다. 유네스코의 새로운 심사제도는 2019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일본이 이번에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막는 데 성공한다면 다음 심사에서는 아예 원천봉쇄될 가능성도 있다. 산케이신문은 위안군 기록물이 등재될 경우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탈퇴를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을 책봉하거나 존호, 시호, 휘호 등을 수여할 때 만든 의례용 인장과 책이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차관을 국민 모금을 통해 갚고자 한 국채보상운동 관련 수기, 언론, 정부 기록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우리나라는 2015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유교책판’이 등재되면서 지금까지 13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안네 프랑크가 AS로마 유니폼, 사진 합성한 라치오 서포터 수사

    안네 프랑크가 AS로마 유니폼, 사진 합성한 라치오 서포터 수사

    이탈리아 경찰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희생된 안네 프랑크가 상대 팀 유니폼을 입은 합성 사진과 나란히 반유대 구호가 적힌 스티커를 내붙인 프로축구 라치오 서포터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사달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칼리아리 사수올로와의 세리에A 정규리그 9라운드가 열린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의 서포터석을 점령한 라치오 서포터 ‘울트라스’가 내붙인 스티커 사진들이 뒤늦게 트위터에서 눈길을 끌며 불거졌다고 영국 BBC가 24일 전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까지 나서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안네 프랑크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치의 검거를 피해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며 쓴 일기로 유명해진 홀로코스트의 대표적인 피해자다. 그런데 평소 인종차별적인 구호와 노래, 폭력까지 서슴치 않기로 악명 높은 라치오 팬들이 라이벌인 ‘로마 팬들은 유대인들’이란 문구와 함께 로마 유니폼을 걸친 프랑크의 합성 사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로마의 유대인 커뮤니티 대표인 루스 두레겔로는 트위터에 스티커 사진을 올리고 ‘이건 축구가 아니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반유대주의는 경기장을 떠나라’고 적었다. 비르지니아 라기 로마 시장은 이를 리트윗했고 이탈리아축구협회도 이 사건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루카 로티 체육부 장관은 “책임있는 이를 처벌할 것”이라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일뿐”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디오 로티토 라치오 구단 회장은 서둘러 로마의 시나고그(유대인 회당)를 예방해 헌화하고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하는 등 파문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그는 “유대 공포증, 인종주의, 반대유대주의 등 모든 것과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밝혔다. 이어 구단이 매년 200명의 팬을 초청해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 박물관을 찾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프로축구연맹은 성명을 내고 주중 경기에 앞서 1분 동안 묵념을 하고 프랑크의 일기 중 한 대목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퇴각하던 IS 끝까지 만행…“시리아군 부역자 구실로 주민 대량 학살”

    퇴각하던 IS 끝까지 만행…“시리아군 부역자 구실로 주민 대량 학살”

    내전 감시단체 “처형식으로 살해된 뒤 버려진 주민시신 참혹” 수세에 몰린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후퇴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주민을 대규모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23일(현지시간)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라미 압델 라흐만 대표는 “IS가 시리아 중부도시 알까리아타인에서 주민들에게 정부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지난 20일간 최소 116명을 보복성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시리아군이 이달 21일 3주 만에 홈스 주 알까리아타인을 재탈환한 뒤 이런 IS의 극악무도한 범죄가 드러났다. 압델 라흐만 대표는 “도시를 재탈환한 시리아군은 거리에서 주민의 시체가 버려진 참혹한 광경을 목도했다”며 “IS는 총이나 흉기를 써 주민을 처형식으로 살해했다”고 전했다. 살인은 IS가 시리아군에게 쫓겨나기 전 마지막 이틀새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알까리아타인은 시리아내전 이전까지 3만명 인구 대부분에 해당하는 무슬림과 900명 규모 기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2015년 IS가 장악하면서 극도로 엄격한 이슬람교리가 모든 주민에게 강요됐다. 지난해 러시아군을 등에 업은 시리아군은 알까리아타인을 탈환했으나 약 한달 전 다시 IS에 도시를 내줬다. 알까리아타인 내부의 IS 조직원들은 민간인 행세를 하다 순식간에 알까리아타인을 장악했다. IS는 도시를 다시 통제한 짧은 기간에 부역자 혐의를 씌워 주민을 무참히 살해했다. 압델 라흐만 대표는 ”알까리아타인을 공격한 IS 조직원은 그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어떤 주민이 시리아군에 지지하거나 반대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인권침해’ 주장하는 딕슨 변호사 “박근혜 접견한 적 없어”

    ‘박근혜 인권침해’ 주장하는 딕슨 변호사 “박근혜 접견한 적 없어”

    구속이 연장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국제법무팀 MH그룹의 담당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을 접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뇌물수수·직권남용·강요 등 18개의 범죄 혐의로 기소돼 최근 구속기간이 연장된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MH그룹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MH그룹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적극 반박했다.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바닥 난방시설, TV, 관물대, 수세식 화장실 등이 구비된 적정 면적의 수용거실에 수용되어 있다”면서 “수용자나 시민단체, 수용자 가족 등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기 때문에 인권침해 논란이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MH그룹은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를 비롯해 유엔 인권기구에 일종의 탄원을 내고 있는 실무 작업은 영국 로펌 ‘템플 가든 챔버스’(temple garden chambers)의 로드니 딕슨 변호사가 맡고 있다. 템플 가든 챔버스는 딕슨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건을 맡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일 템플 가든 챔버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딕슨 변호사는 구치소에 구금된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악화하고 있다고 유엔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딕슨 변호사는 최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면 계속 나빠질 것”이라면서 “구금을 해제해 주거나 가택 연금 조치를 하면 박 전 대통령이 건강과 관련된 처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구치소 의료진으로부터 필요시 수시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 외부 전문의료 시설에서도 2회 진료를 받는 등 적절하고 충분한 진료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템플 가든 챔버스는 딕슨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구제’에 나선 배경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가족,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지지자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을 고려해서 박 전 대통령의 구금 상태에 대해 국제적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해줄 것을 딕슨 변호사에게 의뢰했습니다.” (“Family, close associates and supporters have instructed Rodney Dixon QC to take all steps internationally to challenge President Park’s detention, particularly in light of her deteriorating health condition.”) 딕슨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접견한 적이 없고, 지지자들과 지인을 통해 인권 침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7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MH그룹을 통해 사건을 의뢰하면서 제공해준 정보로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이상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MH그룹 미샤니 호세이니언 대표가 리비아의 독재자 무하마드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를 변호할 때도 딕슨 변호사가 참여했다. 아버지와 함께 반대파를 대량학살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6월 석방됐다. 딕슨 변호사가 사이트에 소개한 수임 사건 목록을 보면, 그는 세르비아와의 내전 당시 코소보 해방을 위해 싸운 반군 지도자 출신 라무시 하라디나이 코소보 총리가 세르비아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로 전범으로 기소된 사건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반군에게 무기와 군수품을 제공하고 다이아몬드를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던 라이베리아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를 변호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방글라데시 다카의 카페에서 테러 공격을 한 혐의로 체포된 영국 국적 하스나트 카림도 수임 목록에 올라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핼러윈데이 ‘안네 프랑크 코스튬’ 판매…역사관 논란

    핼러윈데이 ‘안네 프랑크 코스튬’ 판매…역사관 논란

    최근 미국의 유명 코스튬 회사가 안네 프랑크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판매하다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언론은 안네 프랑크 의상이 결국 여론의 철퇴를 맞아 판매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논란은 코스튬 전문회사인 ‘핼러윈코스튬닷컴’이 이번 핼러윈데이를 맞아 야심차게 내놓은 의상이 발단이었다. 파란색 드레스와 녹색 베레모 등으로 이루어진 코스튬을 판매하면서 회사 측은 '2차 대전 안네 프랑크 소녀 코스튬'(WW2 Anne Frank Girls Costume)이라고 홍보했다. 한술 더 떠 회사 측은 '당신 아이들도 2차 대전의 영웅 놀이를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이같은 사실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일자 회사 측은 안네 프랑크라는 말을 슬쩍 빼고 '소녀를 위한 2차 대전 코스튬'으로 변경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우리는 핼러윈데이용으로만 이 코스튬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학교 연극용으로도 활용하기 위해 제작했다"면서 "역사적 인물, 스타, 유명 정치인 등의 코스튬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고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비판이 더욱 커지자 회사 측은 결국 문제의 상품을 삭제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유대인 차별 철폐 운동단체인 ADL 회장 조나단 A. 그린브라트는 "이는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왜 역사를 하찮게 여기면 안되는지, 왜 역사 교육이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상시시킨다"고 밝혔다. 안네 프랑크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을 고발한 '안네의 일기'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1929년 6월 12일에 태어난 안네 프랑크는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벌이던 1930년대에 네덜란드로 망명해 은신하면서 ‘안네의 일기’를 썼다. 문학과 자유를 사랑하는 평범한 소녀였던 안네 프랑크는 1945년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유대인 강제수용소 베르겐 벨젠에서 희생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50만명 숨진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 ‘美정부 묵인’ 증거 50여년 만에 공개

    美대사관 “환상적 전환 있었다” 알면서 침묵… 보도도 통제 미국이 과거 냉전 시대 인도네시아 친미 정권 수립을 위해 20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로 꼽히는 ‘반공 대학살’을 묵인했음을 보여 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고 AP통신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문서들은 이날 미 정부가 1963~1966년 사이 주인도네시아 미대사관에서 작성된 외교문서 수천건의 기밀 지정을 해제하면서 공개됐다.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는 거의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상황이었다. 공산당(PKI) 당원은 수백만명에 달해 중국, 구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했으며, 반미·반소련·비동맹 노선을 주창하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도 반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9월 30일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친미 성향의 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군부는 쿠데타 배후 세력을 척결한다면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다. 수카르노 체제는 그대로 붕괴했다. 이와 관련, 12월 21일 미대사관은 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불과 10주 만에 환상적 전환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미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된 시점이었다. 전문은 “발리에서만 약 1만명이 살해됐다”고 전했고, 두 달 뒤 발송된 전문에는 “발리에서 일어난 학살로 인한 희생자의 수가 8만명으로 늘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건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와 산하 청년단체들이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내용도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상당수 지역에서는 공산당 가담 혐의로 체포된 주민 수가 급증해 시설 수용 및 식량 배급이 힘들어지자 이슬람 청년단체가 이들을 무차별 살상한 정황이 남아 있다. 1965년 12월 인도네시아 서부 메단 주재 미영사관은 현지 이슬람 사원에서 “공산당이 피를 흘리는 것은 닭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설교가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최소 50만명이 학살됐지만 미 외교관들은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결과에만 환호했다. 심지어 미 외교관들은 이런 만행에 앞서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한 죄 獨법원 88세 할머니에 징역형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한 죄 獨법원 88세 할머니에 징역형

    독일 법원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한 80대 할머니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올해 88세인 우르줄라 하페르베크는 지난해 1월 공개 행사에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유대인 가스실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1940년대에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하페르베크는 나치 선전 활동을 벌이다 2008년 문을 닫은 극우 단체 의장을 지낸 악명 높은 극우 인사로 알려졌다. 하페르베크는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했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110만명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반박하기도 해 독일 매체들은 하페르베크를 ‘나치 할머니’로 부르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씨줄날줄] 위기의 유네스코/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기의 유네스코/이순녀 논설위원

    “위기의 시기에 우리가 할 일은 유네스코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를 개혁하고 지지하는 것이다.”지난 13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이사회의 사무총장 결선투표에서 새 수장에 선출된 오드레 아줄레(45)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일성은 비장했다. 유력한 상대 후보였던 하마드 빈 압둘 알카와리 전 카타르 문화부 장관을 단 2표 차로 누르고 승리한 기쁨을 앞세우기엔 당장 유네스코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 전날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유네스코 탈퇴를 공식 발표했고, 이스라엘도 동반 탈퇴 의사를 밝혔다. 현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수장인 그는 다음달 10일 취임하자마자 조직의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유네스코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설립된 유엔 산하 교육문화기구다. 인종, 성별, 언어, 종교의 구분 없이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장된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한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인류 평화와 보편 가치 제고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각국의 역사 해석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례가 늘면서 협력은 뒷전으로 밀린 채 치열한 외교 각축의 장이 돼버렸다. 유네스코는 195개 회원국이 내는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데 미국이 22%로 가장 많고, 일본 9%, 중국 7.9% 순이다. 분담금이 많은 나라들은 이를 빌미 삼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벌이고, 이게 여의치 않으면 실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은 1984년 유네스코가 소련 친화적이고, 운영이 방만하다는 이유로 탈퇴했다가 2002년 재가입한 전례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도 2011년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일본은 중국 난징 대학살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자 지난해 분담금 납부를 끝까지 미뤘다. 올해도 한국과 중국 등 8개국 14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분담금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이 탈퇴하고, 일본의 불만이 커지면서 3위 분담국인 중국이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확장하기 위해 역할을 늘릴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래저래 강대국에 휘둘리는 유네스코의 불안한 위상을 새 사무총장이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종교개혁 500년·촛불혁명 1년…희망·탄식의 노래들로 기립니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한국의 촛불혁명 1주년을 한자리에서 조명하는 이색 음악회가 열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마련하는 ‘깊은 탄식 속에서’ 콘서트가 그것. 종교개혁 이후 세계 4개 대륙에서 자행된 학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음악회여서 주목된다. 콘서트는 총 8곡으로 진행되며 17세기 유럽의 30년전쟁, 19세기 미국의 흑인 노예, 20세기 1980년의 광주, 21세기 콩고내전의 네 가지 학살에 대해 각각 ‘절망과 탄식의 노래’ 한 곡, ‘위로와 희망의 노래’ 한 곡씩을 헌정한다. 이 가운데 이건용 전 서울시오페라단장이 작곡한 ‘눈물비’(Tear Renes)는 국내에서 초연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두 편의 시, 김남주의 ‘학살1’과 고정희의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가사로 택해 눈길을 끈다. NCCK 김영주 총무는 “종교개혁과 촛불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잉태했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같다”며 “지배·피지배의 구조에서 억압받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홍순명개인전 ‘장밋빛 인생’

    홍순명개인전 ‘장밋빛 인생’

    제 17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 홍순명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작업 외에도 설치, 판화, 입체, 미디어 아트, 조각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는 ‘장밋빛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정치·시회적쟁점을 머금고 있는 주변풍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전시에서는 ‘사이드 스케이프’, ‘메모리 스케이프’, ‘사소한 기념비’, ‘장밋빛 인생’ 등 4가지 주제로 작업한 최근 10년간의 주요 연작 100점을 선보인다. 캔버스 총 3500점으로 이뤄진 방대한 작업이다.‘사이드 스케이프’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집중해 온 연작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언론보도 사진을 재편집한 후 뉴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배제한 주변풍경을 담아낸 것이다. 사건의 진실은 일반적으로 주목하는 대상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메모리 스케이프’는 각종 사고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에 보도 사진에서 추출한 이미지가 담긴 캔버스를 덧입혀 만든 조각과 회화가 결합한 작품이다. 사건 현장의 목격자이자 현장의 기억을 담은 기념물로 내부 오브제가 부식되어도 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겹 이상의 캔버스 천을 겹겹이 쌓아 붙여 만든다.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는 세월호 사건 현장인 팽목항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투명 랩으로 감은 오브제로 공기방울로 올라오는 희생자들의 마지막 호흡과 투명하게 응집된 분노, 추모의 감정을 담아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 304점(35cmX40cm)이 모여 하나의 대형작품(280cmX1,520cm)을 이루는 ‘세월호 시리즈-건져진 세월호 외’를 처음 소개했다. ‘장밋빛 인생’ 시리즈는 사건 주변부뿐만 아니라 이면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하위 구조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 수용소로 이송시킨 ‘아돌프 아이히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에 종사했던 영국의 대표적인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4대강’ 등 어두운 실상의 단편들을 장밋빛으로 슬프도록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나현 큐레이터는 “동시대 사건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홍순명작가의 작품을 통해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우리의 주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관심을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순명작가는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필리핀 마비니 갤러리, 2014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2012년 사비나미술관, 2009년 쌈지 스페이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는 11월 4일 오후 3시 열린다.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교내 총기난사 사전에 밝힌 14세 소년…중2병? 세상 증오?

    교내 총기난사 사전에 밝힌 14세 소년…중2병? 세상 증오?

    아르헨티나의 한 중학교 안에서 끔찍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질 뻔했다. 10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할 뻔한 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라모스 메히아에 있는 한 중학교. 범행을 저지르려 한 건 14살 학생이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학생은 친구들과 교사를 살해하겠다며 권총 등으로 무장하고 등교했다. 하지만 학생은 범행을 저지르기 전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신고번호인 911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접수하는 여경이 전화를 받자 학생은 “지금 무장하고 있다. 모두에게 총을 쏘고, 아마도 나는 자살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경이 차분하게 달랬지만 학생은 “4개월 전부터 학살을 계획했다”면서 “삶이 지겹고 인류가 밉다”는 등 세상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기도 했다. 여경은 그런 학생에게 무기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지금 어떤 총을 갖고 있는 지 등을 물으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학생은 “양아버지의 권총과 장총을 갖고 왔다. 탄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을 끌면서 경찰은 핸드폰 위치추적에 나섰다. 라모스 메히아의 모 학교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곧바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마침 학교를 찾은 학생의 엄마를 만났다. 엄마도 아들이 총기난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실을 경찰로부터 전해 듣고 달려온 길이었다. 학교 건물을 이잡듯 수색한 경찰은 통화 중인 학생을 발견했다. 다행히 학생이 저항하지 않고 경찰을 따라 나서면서 상황은 조용히 수습됐다. 뒤늦게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아르헨티나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학교에 자녀가 다닌다는 한 여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학생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기에 다행이지 그냥 계획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어떻게 됐겠느냐”면서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총기사건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더 이상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찬밥 신세 돼가는 美국경일 ‘콜럼버스 데이’ …왜?

    찬밥 신세 돼가는 美국경일 ‘콜럼버스 데이’ …왜?

    ‘신대륙의 발견자’로 통하는 콜럼버스의 위상이 미국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연방국경일인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바꾸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이 그 방증이다. 9일(현지시간)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23개 도시가 ‘원주민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성대히 가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2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 오클라호마 주 애너다코, 오리건 주 포틀랜드,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 등이 잇따라 ‘컬럼버스의 날’을 외면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지난 8월 LA시의회는 ‘콜럼버스 데이’라는 명칭을 ‘원주민의 날’로 변경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대륙의 발견자가 아닌 상륙자일 뿐이며, 나아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제도를 도입하고 원주민 학살과 토착 문화 파괴를 자행했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미국 정부는 1937년부터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연방 국경일인 ‘콜럼버스 데이’로 지정했다. 1492년 10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신대륙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콜럼버스에 대한 인식은 점점 추락하는 중이다. 실제 지난달 12일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던 콜럼버스 동상에 ‘증오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이는 등 페인트칠과 낙서로 얼룩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뉴욕시 의회에서 콜럼버스 동상 철거 주장이 나오고 있기도 한다. 한 지방의회 측은 “원주민의 날은 아주 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상, 문화, 기술을 존중하기 위한 날”이라고 선포했다. 물론 ‘콜럼버스 데이’를 지켜야 한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게 맞서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이 되면 이탈리아 제네바 출신인 콜럼버스를 기념하는 집회를 열어온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원주민을 기념하는 의도는 좋지만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콜럼버스 데이 명칭 자체를 바꾸고, 콜럼버스가 이뤄낸 최소한의 업적조차 폄하하는 것은 도의적, 공정성 차원에서 지나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응구기·하루키·애트우드 3파전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응구기·하루키·애트우드 3파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5일 오후 8시 발표된다. 지난해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상 메달을 걸어준 스웨덴 한림원이 또다시 파격을 이어갈지, 순문학 분야의 명망 있는 작가에게 상을 주는 전통으로 돌아갈지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스웨덴 한림원이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럽 현지에서는 응구기와 티옹오(케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등 3명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응구기는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지난해 토지문화재단으로부터 제6회 박경리문학상을 받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응구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986년 윌레 소잉카(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흑인 작가로는 두 번째 수상자가 된다.하루키는 2006년 카프카상, 2009년 예루살렘상을 받으며 최근 10여 년 동안 유력 후보로 꾸준히 언급됐다. 사회적 발언을 부쩍 늘리고, 올해 2월 발표한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대학살과 동일본대지진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것도 노벨상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꼽히는 애트우드는 ‘눈 먼 암살자’로 2000년 부커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카프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설·평론·동화 등 장르를 오가며 페미니즘·환경·인권·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쓴다는 평가다. 영국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응구기의 배당률을 4대1, 하루키와 애트우드를 각각 5대1과 6대1로 잡으며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 3명으로 꼽았다. 한국의 고은 시인과 중국 작가 옌롄커가 이들의 뒤를 이어 나란히 4위를 달리고 있다. 배당률은 각각 8대1이다. 고은 시인은 당초 10위였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확정된 지난 2일 순위가 올랐다.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이탈리아), 하비에르 마리아스(스페인)가 각각 배당률 10대1로 뒤를 이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한림원 ‘보수적 선택’ 전망 우세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한림원 ‘보수적 선택’ 전망 우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8시 발표된다.지난해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상 메달을 걸어준 스웨덴 한림원이 파격을 이어갈지, 순문학 분야의 명망 있는 작가에게 상을 주는 전통으로 돌아갈지가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스웨덴 한림원이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럽 현지에서는 응구기 와 티옹오(케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등 3명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응구기는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지난해 토지문화재단으로부터 제6회 박경리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응구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986년 윌레 소잉카(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흑인 작가로는 두 번째 수상자가 된다. 하루키는 2006년 카프카상, 2009년 예루살렘상을 받으며 최근 10여 년 동안 유력 후보로 꾸준히 언급됐다. 사회적 발언을 부쩍 늘리고, 올해 2월 발표한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대학살과 동일본대지진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것도 노벨상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꼽히는 애트우드는 ‘눈 먼 암살자’로 2000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카프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설·평론·동화 등 장르를 오가며 페미니즘·환경·인권·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쓴다는 평가다. 영국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응구기의 배당률을 4대1, 하루키와 애트우드를 각각 5대1과 6대1로 잡으며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 3명으로 꼽았다. 한국의 고은 시인과 중국 작가 옌롄커가 이들의 뒤를 이어 나란히 4위를 달리고 있다. 배당률은 각각 8대1이다. 고은 시인은 당초 10위였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확정된 지난 2일 순위가 올랐다.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이탈리아), 하비에르 마리아스(스페인)가 각각 배당률 10대1로 뒤를 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북 이산가족 72년...이번 추석도 상봉은 저 멀리

    남북 이산가족 72년...이번 추석도 상봉은 저 멀리

    “개성에서 30리. 임진각 철조망에서 우리 평산 신씨의 묘가 보이는데 가지를 못하는게 기가 막힙니다.”이제는 북한 땅이 된 경기 장단군이 고향이라는 신현옥(75)씨는 명절이면 경기 파주의 임진각을 찾아 북녘의 고향땅을 바라본다고 했다. 신씨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마당 앞 앵두나무 밑에 묻어두고 온 귀중품도 생각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씨의 아버님과 형님이 살아계시다면 올해 나이 107세와 88세. 신씨의 아버님과 형님은 한국전쟁 때 고향에서 중공군에 납치됐다고 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부산까지 내려온 신씨는 1·4 후퇴 때 경기 평택으로 갔다가 문산, 일산 등지를 전전했다. 신씨와 함께 피난왔던 동생은 부산 피란 당시에 목숨을 잃었다. 신씨는 아버님은 몰라도 형님만은 살아계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 해, 한 해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신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신씨는 “어머님도 형님만 만나길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셨다”며 “지금이라도 빨리 만나면 되는데”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신씨와 같이 분단과 전쟁을 직접 겪으며 그 와중에 고향을 잃거나 가족과 흩어져 소식을 모른 채 살아온 실향민과 이산가족 1세대 생존자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아 달라고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사람 약 13만 명 중 이미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그나마 생존자의 절반 이상은 80대 이상의 고령자다. 지난 9월까지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전체 13만 1221명으로, 그 중 사망자는 7만 1145명에 달한다. 생존자 6만여명 중 90세 이상은 19.4%인 1만 1668명, 80대는 42.9%인 2만 5775명, 70대는 23%인 1만 3841명에 달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 미상봉 이산가족들을 위해 지난달 26일 한국철도공사와 공동으로 경기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추석 망향대제를 지내고 도라산 일대를 돌아보는 이산가족 초청 ‘희망풍차 해피트레인’ 행사를 실시했다. 행사를 함께 찾은 한순영(81·여)씨와 한충길(78)씨는 남매지간으로 한국전쟁 당시 교사였던 큰형님이 출근한다고 나간 이후 월북했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공산군에 학살 당하고 이후 신원특이자로 분류돼 가족들이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씨는 전했다. 임진각을 처음 찾았다는 이들 남매는 이산가족임에도 월북이라는 이유로 어디 가서 터놓고 얘기도 못하고 살았다. 한씨는 형님 계시는 곳을 바라보기라도 하려고 친누나와 함께 행사에 처음 참여했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한씨는 “이산가족은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만나야하는데 현재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상봉이 당장 어렵다면 가족들 소식이라도 알고 지낼 수 있는 통로를 많이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산가족의 절실함을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 백인은 우월한 인종인가? ...재조명 되는 극우 포퓰리즘

    : 백인은 우월한 인종인가? ...재조명 되는 극우 포퓰리즘

    “네덜란드 자유당(PVV)과 프랑스 국민전선(FN),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약진에 이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이제 독일에서 명실상부한 3당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우리가 이슬람 국가들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다.”(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이번에 역사적 점수를 올린 동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브라보’를 보낸다. AfD는 유럽 사람들을 각성하는 새로운 상징이다.”(마리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총선에서 12.6%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연방 하원의 제3당 자리를 꿰차자 유럽 각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환호했다. 나치 정권의 역사적 과오 때문에 극우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독일에서 AfD의 약진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5년 국경을 개방해 100만명이 넘는 중동권 난민과 이주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에 대한 반발이라는게 중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민 정책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 유럽내 정체성과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독일경제연구소 IFO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은 “안보, 이민, 세계화 속에서 독일 경제 모델에 대한 회의 등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유럽의 ‘정체성’이란 결국 중세 십자군 전쟁 때부터 뿌리깊게 이어져온 문명의 충돌로 기독교 중심의 백인우월주의와 반(反)이슬람 정서로 대표된다. 미국도 지난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유혈 사태를 계기로 인종적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심하게 비난하지 말라고 조언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해임됐지만 반(反)이민 국수주의를 내세운 ‘대안 우파’(알트 라이트·alternative right)가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대안 우파는 2008년 흑인인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직후 보수 우파 철학자 폴 고트프리드가 미국에서 대안적인 우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제시된 개념이다. 이는 워싱턴의 공화당 주류를 거부하고 백인 우월주의와 반(反)이슬람·반(反)유대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별된다. 대표적인 대안 우파 활동가인 리처드 스펜서는 “흑인은 문명에 거의 아무런 이바지를 하지 않았다. 흑인 인종 학살을 고려해 볼 만하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라고 주장해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도박에 가깝지만 사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는 뿌리가 깊다.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년)이 1865년 발표한 우생학은 미국에서 1880년대 새로운 과학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도 유색 인종의 높은 출생률에 주목하면서 1913년 “우리는 좋은 형질을 가진 시민은 자신의 좋은 혈통을 후대에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의무이며, 나쁜 형질을 가진 시민이 후손을 통해 나쁜 혈통을 이어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백인의 우월함을 강조했다. 서구 사회를 휩쓰는 백인 우월주의 열풍은 무엇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침체한 경제와도 연관이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미국 백인 블루칼라 계층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영국 저소득층이 지난해 유럽연합(EU) 탈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과 같이 세계화에 대한 비관론이 과거 민족국가로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분석이다. 베를린 자유대학 존 F 케네디 연구소의 마누엘 펀케 연구원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1870년부터 2014년까지 역사상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극우 정당의 득표율이 약 30%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이는 유권자들이 소수자나 외국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모습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백인 우월주의는 서구 사회의 주류를 이루던 기독교 기반의 백인이 비주류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퓨리서치센터는 2015년 백인(히스패닉계 제외)이 전체 미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로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지만 2065년이면 과반 이하인 46%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히스패닉은 14%에서 24%로, 흑인은 12%에서 14%, 아시아계는 6%에서 13%로 늘어나 ‘백인 국가’ 미국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종교적으로는 미국의 무슬림 인구가 현재는 1% 미만이지만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2.1%로 늘어나 기독교(66%)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종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밖에 퓨리서치센터는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가 470만여명으로 이미 전체 인구의 7.5%를 넘어섰지만 2030년에는 686만여명(10.3%)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의 경우 2010년 무슬림 인구가 전체 인구의 5%인 411만여명이었으나 2030년에는 7.1% 수준인 554만여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벌초/진경호 논설위원

    “어 왔어?” “예.” 어제도 봤던 사람들처럼 인사를 나눈 사촌들은 곧바로 머리를 박았다. 대량학살의 시작, 잔디가 아니다 싶은 녀석들은 야멸차게 뽑혀 나갔다. 네 시간에 걸친 침묵의 학살이 끝나고 논산 어느 야산의 가족묘엔 주검(?)이 즐비했다. 뿌리째 뽑힌 놈, 완강하게 버틴 끝에 밑동만 내준 놈, 숨겨 놓은 가시 덕에 잎사귀 몇 잎만 잃은 놈…, 잡초들의 운명이 갈렸다. 알 길 없는 조상들 저승살이 대신 왜 잡초고, 왜 잔디며, 잡초는 왜 뽑혀야 하는지를 내내 하릴없이 물었지만 부쩍 게을러진 햇살은 언제나 그랬듯 답을 주지 않는다. 몰라 물은 것도 아니니 모를까 답할 까닭도 하긴 없었다. “가려고?” “예, 차 막혀요.” 1년에 한두 번 볼까 싶은 사촌들은 언제나 그랬듯 내일 볼 것처럼 인사하고 흩어졌다. 차가 밀린다. 라디오에선 언제나 그랬듯 벌초 행렬 때문이라는데, 늘어선 차들 붙잡고 물어보기나 한 걸까. 단언컨대 언제까지 그렇진 않을 듯하다. 세상만큼 추석도 변했다. 느슨한 관성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했다. 잡초 무성한 이웃 산소들이 눈에 밟힌다. 황금연휴다. 추석이 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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