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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나치 부역’ 숨긴 95세 이민자 獨 추방

    美, ‘나치 부역’ 숨긴 95세 이민자 獨 추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의 강제수용소에서 부역한 사실을 숨긴 채 미국에 숨어 살아온 95세 남성이 독일로 추방됐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한 지 73년 만이다.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은 폴란드의 트라브니키 강제수용소에서 독일 경비병으로 복무했던 야키프 팔리를 21일(현지시간) 독일로 추방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팔리는 경비병으로서 유대인 수용자의 탈출을 막아 이들이 나치 정권에서 끔찍한 운명을 맞게 했다”고 발표했다. 옛 폴란드 동부지역(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팔리는 1943년 트라브니키에서 나치 친위대(SS) 훈련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유대인 6000여명이 집단학살될 때 수용소 무장경비로 복무했다. 팔리는 2차대전이 끝난 뒤 195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제도사로 일했다. 하지만 미 법무부는 1993년 나치 부역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해 추적하기 시작했고 2001년 그로부터 자백을 받았다. 뉴욕 지방법원은 2003년 팔리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이듬해 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독일과 폴란드 등 관련국 모두 그를 인계받지 않아 14년간 무국적자로 미국에 머물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독일과 협상 끝에 그의 수용 약속을 받아냈다. 이날 독일에 도착한 팔리는 건강 상태를 고려해 양로원으로 보내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IS 손아귀에서 탈출한 나디아 무라드, 인권운동가와 약혼

    IS 손아귀에서 탈출한 나디아 무라드, 인권운동가와 약혼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야지디족 출신으로 이슬람 국가(IS) 무장집단의 손아귀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나디아 무라드(25)가 야지디 인권운동가 아비드 샴딘과 약혼한 사실을 공개했다. 무라드는 고향인 코초 마을을 IS 세력이 공격해 여섯 형제가 모두 살해되고 자신은 납치된 4주기를 지낸 지 며칠 만인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우리 부족을 위한 투쟁” 때문에 둘이 가까워졌다며 전날 약혼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둘이 함께 촬영한 사진들을 공유했다. 피랍 이후 그녀는 여러 차례 사고 팔려 집단 성폭행 등 성적, 신체적으로 유린당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뒤 자신의 사연을 세계인과 함께 한 뒤 2016년 인신매매 생존자의 존엄을 위한 친선대사 1호로 임명됐다. 둘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에 거주하는 샴딘은 “우리 둘다의 삶에 어려운 시간을 견뎌 커다란 싸움을 이겨내고 사랑을 발견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무라드는 “우리 민족을 위한 투쟁이 둘을 한데 묶었고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계속 걷기로 했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이들의 약혼 사실을 기뻐했다. 둘이 함께 일하고 있는 미국의 비정부기구(NGO)인 야즈다는 사진 하나을 올리고 “둘이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모든 학살 생존자들에게도 밝은 미래가 있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美, 미얀마 군·경찰 독자 제재…“로힝야족 인권탄압·인종청소”

    미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섰다. 미얀마는 지난해 무슬림 로힝야족 70만명 이상을 인접국인 방글라데시로 몰아내고, 그 과정에서 수천명을 학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간) 소수민족 로힝야에 대한 ‘인종 청소’와 만연한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미얀마 군과 경찰 지휘관 4명, 군부대 2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번 제재의 대상자는 아웅 초 조와 킨 마웅 소에, 킨 흘라잉 등 군 지휘관 3명과 국경경찰 지휘관인 투라 산 르윈이고, 제재를 받는 부대는 33경보병사단, 99경보병사단이다.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미국 입국 및 사업 거래도 금지된다. 미 재무부는 “개인을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은 미얀마 치안 당국이 민족적, 종교적 소수파에게 행하는 탄압과 박해를 중단하고 인권을 존중하라는 경고”라고 설명했다. 시걸 맨들커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도 “버마(미얀마) 보안군이 조직적으로 소수민족 공동체를 겨냥한 폭력에 가담했다”면서 “그 폭력에는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 성폭행, 사법체계를 무시한 살해, 그 외 여러 심각한 인권침해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제재는 로힝야족 사태와 관련해 미국이 취한 조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미국은 미얀마 군부의 최고 지도부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지난해 로힝야족 사태를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잔혹한 종족 갈등으로 판단한 것 같다”면서 “오는 25일쯤 미얀마 군부가 저지른 로힝야족 인종 청소에 대한 실태보고서가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쉽고 값싼 ‘살인 드론’… 전 세계로 공포 배달

    [글로벌 인사이트] 쉽고 값싼 ‘살인 드론’… 전 세계로 공포 배달

    값싸고 치명적인 ‘살인 드론’이 몰려온다. 드론은 인간 조종사가 기체에 탑승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전파로 조종하는 무인 항공기를 통칭한다. 미국 공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 무인정찰기 겸 공격기 프레데터(MQ1)가 모두 드론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군이 파키스탄, 예멘 등지에 실전 배치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전투용 드론이 1000회의 암살 작전을 수행해 3000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원거리 조작으로 공격자 신원 알기 어려워 최근 레저 또는 상품 배달 등 업무용으로 각광받는 소형항공기 역시 드론이다. 이들 개인·사업용 드론은 휴대 가능한 수준의 크기에 3~8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제4형 복합 폭발물질’(C4)이 부착된 드론 2대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드론으로 국가원수를 암살하려 한 역사상 첫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마두로 대통령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한다. 사건의 진위와 별개로 인간을 공격하는 ‘살인 드론’의 위험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드론은 재래식 무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대체로 살상 능력은 떨어지지만 상황에 따라 더 유용하다. 원거리에서 조작해 공격자의 신원을 은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드론을 활용한 요인 암살, 군사적 요충지 공격 등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전략·전술이 등장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드론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드론은 가난한 자들의 첨단 무기”라고 평가했다. 또 “드론은 자살폭탄 테러와 같은 충격을 전달하면서도 공격자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드론 테러는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은 드론을 십분 활용했다. IS는 2016년 10월 이라크에서 처음으로 드론 테러를 자행했다. 이후 시리아 등지에 드론을 집중 배치해 공중을 배회하게 하는 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 최근 지리적 거점을 잃고 지도부가 궤멸되면서 IS는 그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이와 관련, 미 육군사관학교 대테러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IS가 드론을 사용한 방식이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면서 “다른 테러 집단에서도 드론 테러를 시도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온라인서 개조법 배워 수류탄 달면 테러 가능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주말판 선데이익스프레스는 “드론 테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마두로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에 쓰인 것과 같은 살인 드론을 만들려면 5000파운드(약 720만원)와 폭발물만 있으면 된다”고 평가했다. 인디펜던트는 “위협을 현실화하는 것은 능력과 의도다. 능력은 온라인에서 쉽게 살 수 있다”면서 “범행에 사용한 중국 드론 제조사 DJI의 M600 모델은 사진 촬영 전문 드론이지만 약간의 개조만으로 치명적인 폭발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M600은 약 시속 65㎞로 이동 가능하며 5㎞ 밖에서도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 단번에 드론 수백대를 띄울 수 있는 전술적 측면도 위협적이다. 현존 최다 드론 공중 동시 비행 기록은 1218대다.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드론쇼에서 인텔사의 드론 ‘슈팅스타’에 발광다이오드(LED)를 장착해 오륜기를 만드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한 명의 조종사가 컴퓨터로 1000대가 넘는 드론을 조작했다. 이외에도 2016년 독일에서 600대가 동시 비행한 기록 등이 있다. 마두로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세력이 2대의 드론을 썼기에 망정이지 폭탄을 장착한 드론 100대를 투입했다면 마두로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백악관·日총리관저 등 드론에 무방비 노출도 마두로 대통령 암살 시도 이전에도 드론 관련 사건 사고는 심심찮게 발생했다. 2015년 1월에는 고장 난 드론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잔디밭에 추락했다. 테러와는 무관한 상황이었지만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뚫린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 4월 일본에서는 정부의 핵 정책에 반대하는 한 남성이 후쿠시마 원전 지역의 방사능 모래를 드론에 담아 총리관저에 떨어뜨렸다. 지난 4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왕궁 근처를 비행하던 드론을 보안군이 격추했다. 환경시민단체 그린피스는 지난달 프랑스 원자력 방어의 취약성을 보여 주겠다면서 슈퍼맨 모양의 드론을 원전 외벽에 충돌시켰다. 지난 6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남부 지중해 연안 봄레미모사의 브레강송 요새 인근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접근해 비상이 걸렸었다. 드론은 별장 앞바다에 빠졌다. 이 드론이 추락한 것인지 마크롱 대통령 경호실이 격추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연방항공국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개인용 드론은 2014년 50만대에서 지난해 300만대로 폭증했다. 커스틴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은 최근 WP 기고에서 “미국은 점차 커지는 드론의 위협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됐다”면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섰다”고 토로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코퍼레이션의 분석가 콜린 클라크는 “세계 각국의 규제가 드론의 확산 및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서 “이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교란 주파수를 발사해 드론을 무력화하는 ‘드론건’을 생산하는 호주 업체 드론실드의 최고경영자(CEO) 올레그 보르닉은 “현재 2차원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모든 자산은 공중 공격에 대비한 3차원 보호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0.5㎏짜리 저가 드론에 수류탄 하나만 장착하면 그게 바로 살인 드론”이라고 선데이익스프레스에 말했다. 미국의 유명 민간 정보기업 스트래포의 분석가 스콧 스튜어트는 “드론의 공격은 심리적 측면에서 물리적 피해를 훨씬 능가할 수 있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이 드론으로 대량학살을 저지를 수는 없지만 대중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사모펀드 KKR 산하의 지정학적 전략기관 KKR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반스 세르추크 상무이사는 “현대 방공망은 비행기와 미사일에 대응해 제작됐다. 소형 드론은 작고 비행고도가 낮으며 느리다. 이를 막을 방공 체계는 아직 없다”고 평가했다. ●드론 등록·전파 방해 등 규제로는 안심 못 해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WP에 따르면 각국은 대개 400~500피트(154m)의 높이 제한, 인구 밀집 지역 또는 공항·군사시설 등 주변에서의 비행 금지, 드론 등록 및 면허 발급 등의 규제안을 내놨다. 미 정부는 주요 인사가 참석한 공식 행사장 주변에 전파를 쏴 드론의 공격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부의 전파 장치는 테러범이 전화기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드론을 폭파시키는 것도 방해한다. ABC뉴스는 “전파 방해 등의 방법이 100%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무선 및 GPS 신호가 아니라 카메라 인식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목표를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해변, 쇼핑몰, 스포츠 경기장에 모인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월드 Zoom in] 로힝야족 난민 논란 귀환 압박하는 유엔…꿈쩍도 않는 미얀마

    [월드 Zoom in] 로힝야족 난민 논란 귀환 압박하는 유엔…꿈쩍도 않는 미얀마

    “그들은 마을로 들어와 총을 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학살당한 사람들이 집 기둥마다 매달렸다. 그들은 우리를 내쫓았다.”미얀마군에 의해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났던 무슬림 로힝야족 열한 살 소년 몬주루 알리. 최근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참상을 전한 알리도 고향과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생활한 지 거의 1년이 돼 간다. ●방글라, 유엔에 ‘로힝야 해결 촉구’ 서한 미얀마에서 쫓겨난 100만명에 달하는 로힝야족 난민의 귀환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해 8월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이 1년을 맞으면서,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뜨겁다. BBC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70만명에 가까운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쫓겨났다고 전했다. 포문은 로힝야족의 뿌리이자 난민들이 모여 있는 방글라데시가 열었다. 마수드 빈 모멘 주유엔 방글라데시 대사는 7일(현지시간) 안보리에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미얀마 정부가 이들의 귀환을 위한 안전하고도 지속 가능한 필요조건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서 “안보리가 ‘로힝야 위기’를 해결할 국제사회의 단호하고도 화합된 공동 노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달라”고 요구했다. 안보리 의장인 캐런 피어스 주유엔 영국대사도 오는 28일 열리는 안보리 정례 회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보리, 28일 정례회의서 집중 논의 그러나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미얀마는 꿈쩍 않고 있다. 미얀마는 로힝야족을 ‘외국에서 들어온 불법 이민자’로 본다. 영국 식민지 정부가 노동력 확충 정책의 일환으로 동벵갈(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던 로힝야족을 미얀마 서북부 라가인주로 유입시켜 불씨를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과거사 문제와 민족 갈등도 도사리고 있다. 로힝야족이 영국 편을 들며 미얀마의 식민통치를 도우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미얀마인들과의 적대적 관계가 심화됐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아, 그들은 70년 가까이 불법 체류자로 남아 왔다. ●미얀마 정부 구체적 귀환조치 없어 지난해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추방’ 과정에서 살인, 성폭행 등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고 유엔은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지난 7월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을 시찰한 뒤 “상상할 수 없는 잔혹 행위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면서 “인종 청소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얀마군은 분리주의자들의 파괴 활동을 막기 위한 군사작전으로 주장하고 있다. 첫 문민정부를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도 군부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라 잔혹 행위를 막지 못했다. 유엔은 로힝야족의 “안전하고 존엄한 귀환”을 추진하고 있고 미얀마 정부는 “그들의 귀환을 막지 않겠다”고 밝히지만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공포에 질린 로힝야족은 여전히 동남아 여러 곳의 난민 수용소에서 힘든 삶을 버티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추적60분’ 제주도 찾은 예멘 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추적60분’ 제주도 찾은 예멘 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추적 60분’에서 예멘 난민 문제를 다룬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 불안감을 잠재울 해결책을 모색한다. 8월 1일 방송되는 KBS2 ‘추적 60분’에서는 제주도에 대거 입국한 예멘 난민을 집중 조명한다. 지난 5월, 제주 국제공항에 예멘인들이 대거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02년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 달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도록 시행된 ‘제주 무사증 제도’를 통해 다수의 예멘인이 제주도로 입국했다. 난민 신청 후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간은 취업할 수 없지만, 법무부는 인도적인 차원과 범죄 예방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이들에게 취업을 허가했다. 요식업을 비롯해 양식장, 고깃배 등 당장 일손이 부족한 일차 산업으로 일자리를 제한한 결과 자국에서 기자, 셰프, 은행원 등 다양한 직종을 가졌던 예멘인들은 하나같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취업했던 예멘인들 상당수가 일을 그만두면서 고용주들의 불만 역시 커졌다. 대현호 선주 박병선 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예멘 난민들을 도와줘야 하지만 사후 관리가 제일 큰 문제가 아니겠냐”며 불만을 표했다. 예멘과 말레이시아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5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예멘 내전으로 현재까지 1만여 명의 사상자, 27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30대 젊은 남성들은 물론, 10대 청소년들까지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거나 반군에 의해 학살 당하면서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들의 경우 대부분 한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예멘인들이 같은 이슬람문화권인 말레이시아가 아닌, 한국행을 원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한편 이날(1일) ‘추적 60분’은 오후 11시 10분 방송된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아이들을 위한 나라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아이들을 위한 나라

    폭염 속에서 어린이집 버스 안에 7시간 정도 갇혀 있던 4세 아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뜨거운 증기로 쪄서 죽이는 것을 증살(蒸殺)이라 하는데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강화도에 유배됐던 9살 영창대군이 그렇게 죽었다. 이런 야사에나 나옴직한 사건이 지금도, 그것도 거의 매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끔찍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집 교사가 생후 11개월 아이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운 다음 온몸으로 짓눌러 질식사시킨 일도 발생했다. 낮잠 자지 않는 아이를 재우려고 그렇게 했다는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이들마저 이렇게 ‘위험사회’에 완전히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돌이켜 보면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간 아이들이 많았다. 제주도 북촌에는 ‘너분숭이’라고 밭일하던 주민들이 쉬던 넓은 돌밭이 있다. 이곳에는 현재 아기무덤 20여기가 있어 4·3 당시 참혹했던 대학살을 증언하고 있다. 북촌국민학교에 집결했던 주민들을 군인들이 끌고 나가 집단 총살을 했던 것인데 시체들이 마치 무를 뽑아 놓은 것 같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제주 해안에서는 ‘애기산’이라 부르는 오래된 아기무덤들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 아기는 관에 넣어 잘 매장하면 다른 자식들에게 안 좋다는 속설 때문에 묘도 조그맣고 무덤을 둘러싼 돌담도 엉성하다. 아기가 죽으면 나무에 묻는 인도네시아 부족이 있다. 이들은 바람이 나무에 묻힌 아기의 영혼을 멀리 날려 보내 준다고 믿는다고 한다. 제주 해안의 아기무덤은 혹시 바닷바람을 빌려 아기의 영혼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보조금 위주의 정책에 머물고 있다. 조속히 출산과 육아 관련 사회 인프라를 전면 개편함으로써 누구나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27개월 아이가 외할아버지 승용차에 4시간여 방치돼 있다가 숨진 채 발견된 사고도 불안전한 황혼 육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제주도에는 아름답고 특이한 출산 스토리들이 많다. 제주 유배인 김정(金淨)은 새 그림을 잘 그려 산초나무에 박새가 앉아 있는 ‘산초백두도’(山椒白頭圖)를 남겼다. 조선 후기 서화 수집가였던 김광국이 “오직 이 한 폭을 머뭇거리다가 큰 바다에서 얻어 보존하게 됐다”고 쓴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은 김정이 제주에서 그린 것이 확실하다. 예로부터 한라산 산초나무는 열매가 잔뜩 열리는 데다 방을 들일 때 진흙에 이겨 벽에 바르면 그 향기와 온기가 보존되고 사악한 기운을 막아 줘 아이를 많이 낳게 해준다고 했고, 그런 방을 초방(椒房)이라 했다. 이런 방에서 아이를 갖는 부부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또한 달밤에 제주도 삼양 해변의 운모 성분이 많은 검은 모래로 여자들이 찜질을 하면 출산력을 얻는다고도 했다. 이런 독특한 출산 스토리들과 함께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한 환경 덕분인지 현재 제주도는 놀랍게도 셋째 아이의 출산율이 전국 1위다. 참으로 소망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제주도에서 셋째 아이를 많이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다양한 차원에서 제대로 알 수만 있다면 국가 재앙 수준인 저출산 문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안전한 행복이다. 출산과 육아는 특히 그렇다.
  • “홀로코스트 부정 게시물 내릴 수 없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여론 뭇매

    “홀로코스트 부정 게시물 내릴 수 없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여론 뭇매

    마크 저커버그(34)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하는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겠다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저커버그는 18일(현지시간) IT전문매체 리코드 웹사이트에 게재된 편집장 카라 스위셔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게시물 삭제 원칙과 관련, 이같이 밝혔다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게시물은 페이스북 사이트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보지만, 고의 없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담긴 게시물은 내리지 않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올린 게시물을 그 예로 들었다. 저커버그는 “나는 유대인이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우 모욕적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플랫폼(페이스북)이 그것을 삭제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안들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를 비롯해 소셜 미디어에서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저커버그는 리코드에 이메일을 보내 “당연히 나의 의도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려던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성난 군중 악어 300마리 일방적 도살... 대부분 새끼악어

    성난 군중 악어 300마리 일방적 도살... 대부분 새끼악어

    인도네시아의 성난 군중이 악어 약 300마리를 무참하게 도살했다. 악어 한 마리가 주민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악어 성체는 2마리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채 다 자라지 않은 악어였다. 주민들의 보복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NBC뉴스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웨스트파푸아주의 소룽의 주민 수십명이 전날 인근 악어 농장에 난입해 악어 292마리를 일방적으로 도살했다. 현지 일간 더자카르타포스트는 “주민들은 지난 14일 이 악어 농장에서 기르는 악어에 물려 숨진 주민 스기토씨의 복수를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기토씨는 당시 자신이 키우는 가축먹이를 찾아 악어농장 근처에 접근했다가 악어에 물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스기토씨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각자 칼, 삽 등 흉기를 들고 악어 농장에 들이닥쳤다. 농장 관계자는 “악어들이 끌려나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너무 무서운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현지 경찰 40여명이 출동했으나 주민들의 기세에 눌려 제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NBC는 “2마리만 약 4미터에 이르는 다 자란 악어였다. 나머지는 50~152㎝짜리 작은 개체였다”고 전했다. 이 악어 농장은 당국에 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농장으로, 주민들의 이번 행위는 불법이다. 인도네시아 천연자원관리청 관계자는 “악어 학살은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분명한 범법행위다. 경찰과 협조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중일전쟁의 시발점’ 루거우차오를 가다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중일전쟁의 시발점’ 루거우차오를 가다

    7월은 중국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특별한 달이다. 81년 전인 1937년 7월 7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10여㎞ 떨어진 루거우차오(盧溝橋)에서 당시 일본군의 갑작스런 군사훈련으로 7.7사변이 발발했고 이후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보다 먼저 시작된 중일전쟁. 그 피해는 막대했다. 3500만 명의 중국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고 전쟁으로 인해 중국 전역은 초토화 되었다. 마르코폴로의 다리로도 불리는 루거우차오 7월초 베이징은 3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베이징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루거우차오가 위치한 완핑청(宛平城)으로 향했다. 여름의 베이징은 다른 계절과 달리 관광객들로 붐빈다. 여름방학을 맞아 중국 각지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찾기 때문이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완핑청은 명나라 시기에 축조된 성으로 옛날에는 베이징과 중국 동북지역을 잊는 교통요충지였다. 택시에서 내려 성 가운데 난 길을 따라 루거우차오로 걸었다. 성 안의 옛 건물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성밖으로 나가게 되었고 루거우차오에 이르렀다. 루거우차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소개된 바 있다. 동방견문록에서 마르코폴로는 루거우차오에 대해 '온 세상 어디를 찾아도 필적하는 것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라고 적었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루거우차오라는 이름보다는 마르코폴로의 다리로 잘 알려져 있다. 7.7사변의 주범 무다구치 렌야 석조의 아치교인 루거우차오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표를 끓고 다리로 올라서니 다리 양 옆으로 사자의 조상이 수없이 장식되어 있었다. 81년 전 이 다리를 두고 일본군은 중국군에게 통지도 없이 군사훈련을 하다가, 일본 사병이 실종되었다는 이유로 완핑청에 들어가 수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중국군은 반대했고 일본군은 이에 맞서 완평성을 포위하고 포격을 가했다. 나중에 일본의 자작극으로 밝혀졌지만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은 당시 일본군 연대장이었던 무다구치 렌야였다. 무다구치 렌야는 상부의 보고도 없이 독단으로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무다구치 렌야는 이 사건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임팔작전에서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대의 '팀킬'을 선보이며 5만 여명의 일본군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루거우차오 인근에 자리잡은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루거우차오가 위치한 완핑청안에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987년 항일전쟁 50주년을 맞아 건립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은 1931년 일어난 만주사변부터 1945년까지 항일전쟁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주제 전시관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은 일본군의 학살,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투 장면, 전쟁 영웅들의 모습, 당시 쓰이던 각종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화학전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731부대를 통해 중국에서 비밀리에 생물무기를 실험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화학무기 사용과 관련된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군은 중일전쟁당시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불리해지면 화학무기를 사용했고, 이 때문에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기념관 로비에 적힌 '牢记历史 珍爱和平'(역사를 깊이 새기고 평화를 아끼고 사랑하자)가 가슴 한편에 깊이 새겨졌다 베이징=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최강 전자전기 그라울러 도입하나?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최강 전자전기 그라울러 도입하나?

    최근 해외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사진이 군사 마니아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2대의 비행기가 비행하는 사진으로 별달리 이상할 것이 없는 사진이었지만, 군사 마니아들은 이 사진의 진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사진 속에 등장한 항공기는 EA-18G 그라울러(Growlers) 전자전기였고, 이 기체의 측면에 일본 항공자위대 마크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후현(岐阜県) 가카미가하라시(各務原市) 소재 기후기지(岐阜基地) 인근에서 촬영되었다는 항공자위대 도색의 EA-18G 사진은 합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기지에는 자위대 항공기 인수를 담당하는 방위성 제2공급처와 신형 항공기 시험평가를 담당하는 항공자위대 비행개발시험단(飛行開発実験団)이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작사가 일본에 이 항공기를 인도한 적이 없고, 일본 방위성 역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1월, ‘중기방위력정비계획 2019~2023’을 발표하면서 이 기간 중 전자전 공격기 도입 계획을 천명한 바 있다. 방위성은 최근 중국 군용기와 군함이 일본 주위에 전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중국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전자전 공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전 공격기는 공격용 무기로 분류되는만큼 안팎의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일본은 도쿄 인근 요코타 공군기지에 배치된 항공전술개발비행단(Air Tactical Development Wing) 예하에 10여 대의 YS-11EB 전자전기를 운용하고 있다. 당초 이 기체는 신호정보(SIGINT) 수집 전용기로 제작되었으나, 1991년 개량을 통해 J/ALQ-7 전자전 장비가 탑재되면서 전자전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전자전 공격기로 변신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전자전 공격기로 활용되기에는 그 능력이 부족했고, 일본은 이 기체의 대체와 중국 위협 대응을 명분으로 신형 전자전 공격기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유일한 후보기종은 미국 보잉사의 EA-18G 그라울러이다. 이 기종은 2000년대 초반까지 미 해군 주력 전자전 공격기였던 EA-6B 프라울러(Prowler)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기체로 당시 납품되던 신형 전투기 F/A-18F 슈퍼 호넷의 동체를 이용해 제작됐다. EA-18G의 외형은 사실상 F/A-18F와 거의 똑같다. 전자전 장비의 탑재를 위해 고정 무장인 기관포를 제거한 것을 제외하면 레이더, 엔진 등 대부분의 구성품이 슈퍼 호넷과 다를 것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자전 포드를 떼어내고 F/A-18과 동일한 무장을 장착하고 전투기로 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EA-18G는 F/A-18과 차원이 다른 가공할 능력을 자랑한다. 그라울러에 탑재된 최신 AN/APG-79 AESA(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는 중국의 J-11 같은 대형 전투기는 230km 밖에서, J-10 크기의 전투기는 150km 밖에서 탐지가 가능하다. 이 레이더는 장거리 탐지능력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자전 공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적 레이더 주파수 대역에 맞춰 고출력 빔을 방사해 적 레이더를 순간적으로 먹통으로 만들 수 있으며, 가까운 거리라면 고출력 빔을 집중해 HPM(High-Power Microwave)을 발생시켜 적 전자장비의 회로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그라울러는 강력한 AESA 레이더 이외에도 전자전 전용 장비를 별도로 갖추고 있다. 동체 외부에 장착되는 AN/ALQ-99F(V) 재밍 포드가 그것이다. 좌우 날개에 2개, 중앙 동체 하단에 1개 총 5개까지 탑재가 가능한 이 재밍 포드는 날개 끝단 윙팁에 내장된 AN/ALQ-218(V)2 리시버와 더불어 강력한 전자전 능력을 발휘한다. AN/ALQ-218(V)2 리시버가 적 레이더 전파를 수집, 주파수 특성을 분석해 임무 컴퓨터로 보내면, 오퍼레이터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AN/ALQ-99F(V) 재밍 포드를 작동시켜 적 레이더에 맞춤형 방해전파를 쏘아 적 레이더를 먹통으로 만든다. 레이더와 전자장비가 승패를 가르는 현대 하이테크 기술 전쟁에서 레이더가 먹통이 되었다는 것은 장님이 되어 행동 자체가 마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전자전에 당한 기체는 눈과 귀가 먼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EA-18G는 지난 2007년 2월, 세계 최강의 전투기 F-22A 랩터를 전자전으로 무력화시킨 뒤 가상격추시킨 전력이 있다. 당시 EA-18G는 F-22A가 가상 발사한 AIM-120 암람 공대공 미사일을 전자전으로 간단히 떨군 뒤 강력한 방해전파로 F-22A의 레이더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레이더가 마비된 F-22A는 EA-18G가 발사한 CATM-120 암람 훈련용 공대공 미사일을 피할 수가 없었고, 결국 그 F-22A는 격추 판정을 받았다. 2009년에도 EA-18G는 전자전을 통해 F-22A의 레이더와 미사일을 마비시킨 뒤 또 한 차례 가상 격추에 성공하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2011년 리비아 공습작전에서 첫 실전에 데뷔한 그라울러는 그 강력한 전자전 능력을 또 한번 입증했다. 미국은 대규모 공습작전에 나서기 전 토마호크 미사일과 전자전기 조합으로 적의 방공망을 철저히 파괴한 뒤 공습 편대군을 보내는데, EA-18G는 전자전 장비를 이용해 리비아군의 방공망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며 공습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수준으로도 이처럼 강력한 EA-18G는 오는 2021년 신형 전자전 장비인 NGJ(Next Generation Jammer)를 장비하고 더 강력한 전자전기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NGJ는 기존의 AN/ALQ-99F(V)의 144km보다 훨씬 긴 360km의 전자 방해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출력도 더욱 강력해져 원거리에서 적의 전투기나 미사일의 회로를 태워버릴 수 있는 HPM 공격이 가능하다. 미 해군은 1차로 NGJ 135기를 도입, 그라울러에 우선 탑재하고 순차적으로 보유량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라울러의 강력한 성능 때문에 미국은 이 장비의 해외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라울러는 미 해군 이외에 호주공군이 보유하고 있지만, 전자전포드의 운용과 보관에는 미군이 개입해 운용을 통제하고 있으며, 호주 마음대로 전자전 포드를 분해하거나 정비할 수도 없다. 문제는 미국이 이토록 예민해하는 첨단 무기체계를 일본이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자전기는 기본적으로 공격용 무기로 분류된다. 적 방공망을 제압하거나 파괴하고 원거리에서 적 항공기들을 무력화시켜 아군에게 유리한 교전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소수라도 이러한 항공기를 도입하게 되면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일본 전자전기 도입 추진의 표면적 구실이 된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자전기에 대항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장비, 전술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노력이 EA-18G라는 최강의 전자전기를 상대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중국은 적성국의 전자전 능력 강화에 대비는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공군은 SIGINT 장비를 탑재한 구형 백두 정찰기를 소량 운용하고 있고, 일부 F-16 전투기에 AN/ALQ-200K 재머를 탑재해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ELINT(Electronic Intelligence) 정찰기 등 본격적인 전자전 수행을 위한 기반 인프라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아 주변국의 전자전에 극히 취약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만에 하나 독도를 두고 일본 자위대와의 교전 상황이 발생한다면 전투는 고사하고 일방적인 학살로 내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위대에 EA-18G가 도입되면 구형 전자전 장비 일색인 한국군이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전자전기가 수시로 방공식별구역(KADIZ)을 들락거리고, 일본이 세계 최강의 전자전기 도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더 이상 넋 놓고 있을 겨를이 없다. 주변국의 전자전 수행 능력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전자정보 전담 기관을 창설하고, EA-18G 또는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전문 전자전기 도입을 급히 추진해야 한다. 전자전 수행능력이 전쟁의 승패에 절대적 변수가 된 현대전에서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다면 제아무리 강력한 무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일우 군사 (자주국방네트워크 ) finmil@nate.com
  • 3·1운동 100주년사업 공동개최 제안…북한의 3·1운동은 어땠을까

    3·1운동 100주년사업 공동개최 제안…북한의 3·1운동은 어땠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북한과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남한처럼 3·1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대대적으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주로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기념행사를 한다. 2009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3·1절 9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가 열렸고, 1999년 80돌 때 같은 행사가 개최됐다. 북한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년 북한 언론매체를 통해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사견을 전제로 “북한이 3·1운동에 의미 부여는 크게 하지 않아도 어떤 형식으로든 매년 기념해왔고, 북한 지역에서 3·1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이를 기리는 공동 사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 북측에선 1919년 당시 남측 지역 못지않은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3·1운동이 ‘비폭력 평화시위’ 양상을 띠며 지구적 항쟁으로 전개된 반면 북쪽에서는 시위대가 일본 헌병대와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무장 투쟁으로 전개됐다. 남북의 3·1운동 양상이 달랐던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국경지역인 북부 지역에 일본은 더 많은 헌병과 군대를 배치했고, 이는 더 큰 저항을 불러왔다.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역사서 ‘국내 3·1운동’을 보면 황해도에서는 20회 이상의 현장 발포가 있었고, 그 중 17개 지역에서 시위대가 헌병대에게 총살됐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서울·경기 다음으로 많다. 경성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의 절반 이상인 1318명이 황해도를 본적으로 갖고 있었다. 평안남도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특히 맹산에선 참극이 발생했다. 3월 10일 맹산 시위는 비교적 평온하게 끝났으나 일본 헌병들은 책임자를 색출하겠다면서 교사 1명을 체포했다. 맹산 주민들은 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분견소로 몰려갔다. 헌병 분견소장은 주민들을 분견소 안으로 끌어들여 문을 잠그고 발포 명령을 내렸다. 분견소에 들어간 56명 중 54명이 학살됐다. 이는 3·1운동사에서 단일 시간, 단일 장소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사망한 사례다. 3·1운동에 참여한 평안남도 거주민 1093명(한국 측 기록)이 사망했다. 평안북도에선 서울 다음으로 많은 33만 8400명이 3·1운동에 나섰다. 인구 대비 참여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다. 현장 피살자 수 역시 19.2%로 전국 최고 수치다. 평안북도가 이토록 피해를 본 이유는 이 지역 강계·의주·선천에 대대 규모 병력이 주둔한 탓이다. 일제는 정규 병력 외에도 경찰과 압록강 연변의 국경수비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함경북도는 헌병과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심해 활발한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헌병 1명당 조선인 수는 평균 1874명이었는데, 함경북도는 1대 598명으로 전국에서 수치가 가장 높았다. 1만 7400명이 참여한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도 일본은 밀정을 들여보내 주모자를 체포하는 등 치밀하고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과거사 해결 ‘한 걸음’] 4·3 희생자 유해발굴 8년 만에 재개

    “억울하게 숨진 마지막 한 분의 유해까지 찾아 70년 한을 풀어 줘야 합니다.” 제주4·3 70주년을 계기로 8년 만에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이 오는 10일 본격 재개된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4일 “이번 발굴엔 새로운 첨단 장비를 투입할 것”이라면서 “행방불명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발굴은 대표적 암매장 터인 제주국제공항 동쪽 뫼동산, 궤동산, 남북 활주로 서북측, 화물청사 인근 등에서 11월 말까지 실시된다. 이곳에서는 1948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경찰서에 수감돼 있던 제주시 화북동 등 지역 주민 76명이 토벌대에 의해 학살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군법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 249명이 총살됐고, 6·25전쟁 직후에도 제주시와 서귀포 지역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제주공항 내 1차 유해발굴에서 온전한 유해 54구를 비롯해 일부 유골 1000여점, 유류품 659점이 수습됐다. 2차 발굴에선 한 구덩이에서 완전 유해 259구를 비롯해 유류품 1311점이 나왔다. 양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 유해 발굴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땐 국비지원을 끊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비지원 등으로 재개돼 다행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엔 고주파 전자기파를 방사,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지하 구조를 규명하는 탐사방식(GPR)을 적용한다. 양 이사장은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오영훈(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엔 희생자 보상금 지급, 트라우마 치유 센터 설치 등 내용을 담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 난민 희망과 절망] “안전 찾아 도망쳤다…예멘에 남으면 학살자 되거나 죽음뿐”

    [제주 난민 희망과 절망] “안전 찾아 도망쳤다…예멘에 남으면 학살자 되거나 죽음뿐”

    지난 5월 제주에서 발생한 예멘인 ‘난민 태풍’이 수많은 오해와 우려를 동반하며 대한민국을 덮쳤다. 서울신문은 예멘인들이 초기부터 머물러 온 ‘태풍의 눈’, 제주 B호텔을 찾았다. 나지(29·가명), 하단(20·가명), 그리고 와셀(32·가명). 기자들과 연령대가 비슷했다. ‘내일’ 없는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지친 몸을 누이는 방에 찾아가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것들을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성을 강간하고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란 우려도 있다”는 말에 큰 눈이 더 커졌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예멘 난민에게 궁금한 점 기민도 기자(이하 기 기자) ‘전쟁’이 아니라 ‘돈’ 때문에 온 거 아니냐는 의심이 많다. 왜 하필 한국인가. 나지 우리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유엔 인권보장에 서명하지 않았고, 우리가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예멘은 전쟁 상태여서 처음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할 수도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정도는 살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엔 나가게 한다. 우린 안전을 찾아 도망쳤다. 와셀 말레이시아에서 다른 나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예멘인들은 직업을 찾고 생명을 지키려고 말레이시아에 갔지만, 실패했다. 한국에 대해 알게 되고, 제주도에 비자 없이 갈 수 있다고 들었을 때,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이고 인권 국가라고 들었다. 하단 나는 예멘에서 바로 한국으로 직행했다. 예멘에서는 어린아이한테도 사람을 총으로 죽이라고 강요했다. 한국의 제주도만 비자 없이 갈 수 있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류재민 기자(이하 류 기자) 의사나 엔지니어까지 와야 했나. 나지 예멘에 남으면 다 죽을 것 같았다. 남아 있으면 싸우게 할 테고, 싸우기 싫다고 하면 죽일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겠나? 우린 직업을 구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만 온 게 아니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 찾아왔다.나상현 기자(이하 나 기자) 난민 중에 여성이나 아이들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뭔가. 나지 여성이나 아이와 함께 탈출하는 건 정말 어렵다. 먼 거리를 걸어야 하고, 충분한 돈도 필요하다. 1인당 1500달러(약 167만원)는 필요한데 가족이 많으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다. 여성이나 노인은 싸우게 하지 않으니까 집에만 머물면 된다. 하지만 젊은 남성은 끌려가서 싸워야 하니까 도망쳐야 했다.류 기자 가짜 난민도 섞여 있다는 걱정도 있다. 브로커를 통해서 온 거 아닌가. 나지 말레이시아에서 친구들이 도와줘서 왔다. 가짜 문서, 가짜 난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양은 하양이고, 검정은 검정이다(White is white, black is black, my name is my name), 한국 정부는 모든 문서를 철저히 검토하고 확인한다. 거짓말을 하면 다 걸러질 것이다. 와셀 난 당장 다음주 월요일에 난민 인정 심사가 잡혀 있다. 문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 기자 무슬림들은 여성을 강간하고 테러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지 잘못을 저지르는 무슬림은 극소수다.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건 부당하다. 하단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달라. 외국에 있는 한국인 몇몇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당신들을 모두 비난하면 어떻겠나. 와셀 무슬림에 대한 오해는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뉴욕에 200여명의 예멘인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기회를 잡고 싶어서 왔는데 왜 문제를 일으키겠나. ●예멘인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 나 기자 한국에서 가장 힘든 점이 뭔가. 나지 일과 돈이다. 우린 오늘 당장 어떻게 자고,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갈지가 걱정이다. 언제 돈을 벌게 될지 모르겠다. 가장 큰 걱정은 한국 정부가 ‘나가라’고 통보하는 것이다. 하단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들다. 기 기자 일은 하고 있나. 나지 일주일 동안 어부로 일했다. 2명만 필요하면서 5명이나 고용한 다음에 금방 그만두게 하더라. 1주일이나 일했는데 한 푼도 못 받았다. 와셀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출입국사무소와 난민센터에 가봤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다. 하단 어부 일을 했는데 멀미가 너무 심하고 계속 구토를 해서 결국 그만뒀다. 열흘 일했는데 선주가 이틀치 급여만 줬다. 류 기자 출도(제주도 밖으로 이동) 제한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지 (손으로 방 모양을 그리며) 어느 날 갑자기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는 대신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주겠다고 말하면 어떨까?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는 2주만 머물면 다른 도시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만 남아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식업, 어업, 요식업 3가지 종류의 직업만 가질 수 있게 했다.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와셀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숙소를 마련해 주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고 들었다. 막상 도착하니 다른 도시에 가지 못한다고 통보받았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하단 바닷일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정부는 “제주에 남아 있되 이 일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으니까 너무 혼란스럽다. ●예멘에서의 삶, 그들의 이야기 나 기자 전쟁 이전의 예멘은 어떤 모습이었나. 나지 아주 살기 좋고 안전한 나라였다. 직업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전기도 통하고, 물도 깨끗했다. 그런데 이젠 모든 게 암울해졌다. 와셀 전쟁 이전엔 한국과 예멘 간 교류도 많았다. 사업가나 여행자들이 쉽게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전쟁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하단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지금은 도망칠 수밖에 없다. 기 기자 당신들은 무슨 일을 하다 왔나. 나지 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했다. 와셀 인도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지부티와 예멘 등에서 은행 회계사로 근무했다. 하단 고등학생인데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학생인데도 싸우기를 강요당했다. 나 기자 난민법상 ‘전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만으로는 난민으로 인정이 안 된다. ‘박해받을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하단 단순히 ‘그냥 전쟁에서 도망쳤다’가 아니다. ‘억지로 총을 들게 하고, 따르지 않으면 죽이려고 하는 집단으로부터 도망쳤다’가 맞다. 내가 예멘으로 돌아가면 반군으로부터 학살을 강요받고, 거부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류 기자 일부 한국인들은 당신들이 무슬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워하고 있다. 나지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오해하는 것도 괜찮다. 그래도 난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할 거다. 한국의 규칙을 지키고, 옳은 걸 따르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일 것이다. 그럼 언젠가는 ‘무슬림도 괜찮네’라고 말해 주지 않을까. 우린 절실하다. 하단 한국인들이 무슬림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좋아한다. 와셀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첫날부터 그 나라의 문화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서 하나하나 고쳐 나가겠다. 기 기자 앞으로 바람이 있나. 나지 한국인처럼 되고 싶다. 한국은 빠르게 성장한 국가다. 많이 배우고 싶다. 예멘은 경제 성장이 아직 더디다. 직업을 얻어 가족을 지원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나부터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와셀 내전이 끝나 다시 예멘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다. 그전까지 한국인들에게 무슬림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고 한다. 하단 일자리 구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고 싶다. 나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지 한국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와셀 문을 열어 줘서 감사하다. 하단 모든 것에, 모두에게 감사하다. 제주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제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주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예멘 난민 “한국서 ‘내일’이 있는 삶 원해… 노력, 또 노력할게요”

    예멘 난민 “한국서 ‘내일’이 있는 삶 원해… 노력, 또 노력할게요”

    예멘에 남은 언어는 총·학살뿐 한국은 인권국가… 안전 믿어 전쟁 끝나면 조국에 돌아갈 것제주도에 갑자기 몰려온 500여명의 ‘낯선’ 예멘인을 품느냐 내치느냐를 놓고 한국 사회가 갈등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온 무슬림 남성 난민’이란 전례 없는 상황이 던진 충격파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당혹스러워할 줄은 예멘인들 역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눈치다. 제주 땅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안도감을 영영 전하지 못한 채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 3~4일 제주에서 만난 예멘 난민들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엮었다. 2011년에 시작됐고, 2013년부터 걷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맑은 물이 고요하게 흐르던 조국 예멘을 파괴한 전쟁 말입니다. 내전에서 비롯된 이 전쟁에 아랍 주변국과 서방국이 뛰어들었습니다. 어제까지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오늘 죄수가 됐습니다. 예멘에 남은 언어는 ‘총’과 ‘학살’뿐입니다. 젊은 남성, 아니 십대까지 모두 징집당하고 있습니다. 회사 중역, 엔지니어, 기자, 학생…. 예외는 없습니다. 이웃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잔인한 전쟁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총을 겨누든지, 그것을 거부하다 죽든지, 젊은 남성에겐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있었지만, 주로 걸었습니다. 수단, 두바이, 말레이시아에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떠돌다 보니 전쟁만이 생명을 위협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당뇨나 고혈압은 평화롭던 시절 ‘관리되는 질병’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천형입니다. 한국은 인권 국가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에만 가면 안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삶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닷일을 중도에 포기하자 사람들은 ‘고된 일을 기피한다’고 나무랐습니다. 멀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바닷일만 아니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습니다. 한국인들이 무슬림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여기 와서 처음 들었습니다. 우리를 무서워하고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의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전쟁 전 예멘이 가장 닮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조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향에서 가족을 다시 만날 때까지 한국인들에게 좋은 무슬림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제주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제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주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두 달 남았는데… 5·18 진상 조사위는 제자리걸음

    두 달 남았는데… 5·18 진상 조사위는 제자리걸음

    국회 원 구성 난항·정당 무관심 재단 측 “조속히 위원 구성하라” 최초 발포명령자·암매장 등 풀지 못한 핵심 의문들 과제‘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진상규명법) 시행일(9월 14일)이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으나 위원회 구성 등 준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5·18기념재단과 유족회 등은 3일 “최근 국회와 여야 정당에 위원 추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문에서 “국회가 추천하는 9명의 위원이 확정되지 않아 조사위 활동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여야 정당은 5·18 진상규명의 마지막 기회인 시대적 여망에 즉각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위원회는 국회의장 추천 1명과 여야 추천 4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가해자·참고인·제보자 등을 강제 소환할 수 있는 동행명령장 발부 등 준사법권을 갖는다. 50~100명의 조사관과 사무처 직원을 둔다. 그러나 현재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난항과 국회의장 공석 장기화, 각 정당의 무관심 등으로 위원 위촉이 난항을 겪고 있다. 송선태 국방부 진상규명특별법시행 전담팀(TF) 자문위원은 “위원 인사 검증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만 따져도 1개월이 넘는다”고 했다. 이 법안은 5·18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폭력·학살·암매장 사건 등을 조사해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 게 목적이다. 일부 극우단체가 주도하는 왜곡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광주시는 조사위 출범을 앞두고 각종 제보를 접수하고 총괄하는 5·18진상규명통합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준비에 나섰다.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5·18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 1988년 국회 5·18청문회(광주특위)와 1995년 검찰수사,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 지난해 국방부의 헬기사격 관련 조사특위 등 4차례 이상 진행됐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법은 당시 신군부 실권자였던 전두환씨 등 주요 책임자를 소추할 길을 열어 놨다. 전씨는 1997년 대법원의 ‘5·18 내란사건’ 판결로 내란수괴·뇌란목적살인죄 등으로 형사처벌됐다. 전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국한됐다. 이 때문에 5월 21~26일 사이 광주시민에 대한 집단 발포에 전씨가 개입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형사처벌해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행불자의 암매장 논란도 숙제로 꼽힌다. 현재 공식 5·18 행불자 82명 가운데 6명만 확인됐다. 양민학살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1980년 5월 23일 11공수여단은 광주 동구 지원동 녹동마을 앞길에서 시민군이 탑승한 미니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박모(당시 18세)양 등 10여명이 사망했다. 부상당한 남자 2명은 인근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즉결 총살됐다. 그러나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 밖에 광주 진압작전 시 특전사 위주로 운영된 군 지휘계통의 이원화, 무고한 시민에 대한 고문, 여성 성폭행, 북한군 개입설, 헬기사격 명령자, 시민군 무장 시점 조작 여부 등도 조사한다. 1985년 안기부 주도의 ‘80위원회’, 1988년 국방부의 ‘511연구위원회’ 등이 저지른 5·18에 대한 왜곡과 증거물 훼손·조작 관련자 등도 찾아 책임을 묻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진상규명통합신고센터 문열어

    5·18진상규명통합신고센터가 27일 문을 열었다. 오는 9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을앞두고 관련 증언과 증거 수집 등을 총괄한다. 센터는 광주시, 5·18기념재단,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광주시는 이날 오전 시청 1층 5·18진실규명지원단 사무실에서 센터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계엄군 집단발포 명령체계,시민학살 경위,행방불명자 신원·규모·암매장 정보 등 진상규명 관련 제보 접수는 광주시와 5·18재단이 담당한다. 광주시 인권평화협력관실(062-613-5386), 5·18재단( 062-360-0518)으로 전화하거나 방문하면 된다. 우편·온라인으로도 제보할 수 있다. 5·18 당시 군이 자행한 성범죄 관련 제보는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맡는다. 광주지역 담당 기관·단체는 인권사무소(010-3750-0518)와 해바라기센터(062-232-3117) 등이다. 이들 기관으로 접수된 제보는 오는 9월 중 출범하는 5·18 진상규명위원회로 이관된다.. 김수아 광주시 인권평화협력관은 인사말에서 “집단발포 명령체계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규명은 계엄군 등 가해자들의 양심 어린 고백이 필요하다”며 “통합신고센터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샤키리·자카, 세르비아 꺾고 의미심장한 ‘독수리 세리머니’

    샤키리·자카, 세르비아 꺾고 의미심장한 ‘독수리 세리머니’

    스위스의 ‘알프스 메시’ 제르단 샤키리가 짜릿한 역전 골로 세르비아전 승리를 이끌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첫 역전승이다. 스위스는 16강 진출의 기회를 극적으로 살려냈다. 스위스는 23일(한국시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의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1-1로 팽팽하던 후반 45분 샤키리의 역전 결승골이 터지면서 2-1로 이겼다. 샤키리는 골을 넣은 뒤 두손을 겹쳐 머리가 2개인 ‘쌍두독수리’를 만드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양 엄지는 독수리의 두 머리를, 나머지 손가락은 독수리의 양 날개를 표현한다. 샤키리가 펼친 쌍두독수리 세리머니는 상대가 세르비아였기에 의미심장하다. 코소보에서 태어나 어릴 때 스위스에 이민 온 샤키리는 알바니아계 혈통을 물려받았다. 쌍두독수리는 알바니아 국기 문양이다. 코소보와 세르비아는 분쟁으로 갈등을 이어오고 있는 사이다. 세르비아의 일부이던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 반군이 독립을 요구한 1998년에는 무차별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소보는 2008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국의 대립이 유지되고 있다. 샤키리의 세리머니에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셈이다. AP 통신은 “이 몸짓은 세르비아 국수주의자와 알바니아계의 긴장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키가 169㎝인 ‘단신 선수’ 샤키리는 세르비아의 ‘장신 군단’에 막혀 고전했다. 그러나 경기 막판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빛을 냈다. 1-1로 팽팽하던 후반 45분, 샤키리는 중원에서부터 세르비아 골대까지 홀로 공을 몰고 나가는 ‘폭풍 질주’를 했다. 자신을 쫓아오던 세르비아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제치고 역전 결승 골을 넣은 샤키리는 유니폼 상의를 벗고 빗속에서 포효했다. 그리고 쌍두독수리 세리머니로 혈통의 자긍심을 드러냈다. ‘알프스의 메시’ 별명 값을 톡톡히 해낸 샤키리는 최우수선수인 ‘맨 오브 더 매치’(MOM)로 선정됐다. 앞서 0-1로 밀린 후반 7분 동점 골을 넣은 그라니트 자카(26)도 쌍두독수리 세리머니를 했다. 자카 역시 알바니아계 스위스인이다. AFP 통신에 따르면, 자카의 아버지는 스위스에 망명 오기 전 3년 6개월 동안 정치범 수감 생활을 했다. 샤키리와 자카는 ‘발칸 라이벌’을 상대로 승리를 합작하고 필드 위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시아의 아침 우뜨라 라시야] 돈강의 적, 더위와 동거 중인 태극전사

    [러시아의 아침 우뜨라 라시야] 돈강의 적, 더위와 동거 중인 태극전사

    한낮에 1분만 걸으면 땀에 흠뻑 젖는다.23일 멕시코와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이 열리는 로스토프나도누에 결전 이틀을 앞두고 대표팀이 발을 디뎠다. 대표팀은 21일 오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완전 비공개 훈련을 소화한 뒤 오후 전세기를 이용해 로스토프주(州)의 주도인 이곳에 도착했다. 대표팀은 22일 기자회견과 경기장 적응 훈련을 진행한다. 21일 모스크바를 경유해 이 도시의 공항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느낀 것은 무척 덥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르는 도시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6∼7월 평균 기온은 섭씨 22.2도로 러시아월드컵 경기를 개최하는 11개 도시 중 가장 높다. 우리 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온은 17.3도 안팎이고, 스웨덴과 1차전을 치렀던 니즈니노브고로드도 17도 안팎에 불과했다. 습도는 높지 않지만 강한 햇빛과 더위가 태극전사들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와의 경기 시간이 다행히도 23일 오후 6시(한국시간 24일 0시)라 한낮 절정의 무더위는 피할 수 있겠지만 30도 안팎은 될 전망이다. 20일 대표팀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정우영(빗셀 고베)과 이승우(엘라스 베로나)가 결기를 내보였지만 사실상 ‘그래야 하니까’ 그런다는 기류가 강했다. 정우영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자신 있게 나서야 국민들이 응원해 주실 것이고 그래야 우리가 뛸 힘이 생긴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야로슬라프주에 있는 같은 이름의 도시와 구분하려고 ‘돈강 위에’란 뜻의 ‘나도누’를 붙였다. 돈강의 하류가 도시를 휘감고 멀리 카스피해로 이어지는 아조프해와도 가깝다.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도시 전체가 서유럽 풍경을 자아낸다. 육상과 수상, 해상 교통의 요지에다 전략적 요충으로 여겨져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점령당하고 유대인 등 2만 7000여명이 학살당한 아픔을 겪었다. 경기장 터 파기 공사 때 당시의 포탄이 발견되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일본에 한국 민주화 희생·성취 보여주려 다큐 만들었죠”

    “일본에 한국 민주화 희생·성취 보여주려 다큐 만들었죠”

    日, 촛불혁명에 관심 가져 시작 NHK 방송 뒤 현지 다양한 반응 “민주화 질문에 답이 되었길…”북·미 정상회담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12일 밤 9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일본 공영방송 NHK의 전파를 탔다. 제목은 ‘그때, 시민은 군과 싸웠다’. NHK의 고정 다큐멘터리 코너 ‘어나더 스토리’를 통해 방영된 이 영상은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제작돼 일본에서 공개된 최초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였다. 방송이 나가자 트위터 등에는 ‘한국 현대사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한국의 민주화가 이뤄지는 전체 흐름이 명확하게 들어왔다’ 등 일본 시청자들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일본에서 활동 중인 연출가 전용승(51) PD. 전 PD는 21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과 그것을 발판으로 이뤄낸 성취를 일본인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PD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일본에 유학해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1997년부터 방송 연출가의 길을 걸어왔다. ‘NHK스페셜’ 등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09년 ‘일본과 한반도 2000년’으로 NHK회장상, 2012년 ‘알려지지 않은 방사능 오염’으로 총리상을 받는 등 일본에서도 알아 주는 시사·역사 전문 PD다. “한국에서 촛불혁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저렇게 수십만명이 광장에 모이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다큐멘터리 ‘그때, 시민은 군과 싸웠다’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일본 사회에는 정치적인 정체감 내지 무력감 같은 것이 팽배해 있다”며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 4월 일본에서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관객이 지속적으로 들고 있는 것을 하나의 방증으로 들었다. 전 PD는 기초적인 자료 수집과 분석을 마치고 올 초부터 현장을 다녔다. “광주 학살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당시 독일 ARD 도쿄 특파원에 대한 취재부터 시작했습니다. 힌츠페터는 5·18 이전과 이후를 합해 총 17년을 도쿄에 있었지요. NHK와 아사히신문 등 1980년 당시 광주에 있었던 특파원들에 대한 취재도 다각도로 시도했습니다.” 광주로 가서 당시 시민군 인사들은 물론이고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군인들도 여러 명 만났다. 그중에서 신승용 예비역 소령은 이번에 처음으로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도 만났다. 이렇게 해서 모인 100시간 이상의 취재 분량을 제한된 60분으로 편집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일본인 지인이 ‘민주화란 게 뭐냐. 민주화가 되면 대체 뭐가 바뀌는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크게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개념이나 느낌 같은 걸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민주화가 아닌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 주었으니 어느 정도 답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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