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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에 윤상원 열사·김남주 시인 기념홀 개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하다 숨진 윤상원(1950∼1980) 열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모교인 전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전남대는 2일 오전 사회과학대학 본관 1층에서 ‘윤상원 열사 기념홀’ 개관식을 했다. 기념홀은 ‘윤상원의 방’과 ‘윤상원 길’로 구성됐다. 방 안에는 들불야학 활동상, 그의 어록, 박기순 열사와의 영혼결혼식에 쓰였던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 윤상원 열사의 출생부터 산화하기까지 기록을 연보 형태로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윤상원의 길은 평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물결무늬 빛으로 형상화했다. 연설문과 일기 일부를 5·18 사진 속에 담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손길과 발자취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다. 김경학 전남대 사회과학대학장은 “일기 등을 살펴보면 윤상원 열사는 흥도 많고 놀기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며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던 청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일 오후에는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에서 김남주(1946∼1994) 시인 기념홀이 문을 연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문대학 1호관 강의실을 복층형 기념공간으로 조성했다. 대표 시 ‘자유’ ‘조국은 하나다’ 5·18 관련 시 ‘학살’ 등과 서정시를 벽에 새겨 넣고 시집, 산문집, 번역집 등 25권 저서를 전시한다. 특히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화장지에 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등 육필원고와 편지글도 원본으로 전시된다. 시인의 육성 시,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 안치환의 노래, 영상·인터뷰 자료 등도 설치돼 교육적 기능도 함께 하도록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일본군, ‘호주 여성 간호사 학살’ 성범죄 또 드러나

    일본군, ‘호주 여성 간호사 학살’ 성범죄 또 드러나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호주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잔학한 성범죄 진상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역사 전문가들은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와 같은 그릇된 태도를 버리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검증과 사죄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BBC는 1942년 2월 호주의 종군 여성 간호사 21명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집단총살을 당한 ‘인도네시아 방카섬 학살사건’에서 희생자들이 죽기 전 일본군들에게 잔인한 성폭행을 당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군사 사학자 리넷 실버의 조사를 인용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기존에는 희생자들이 단순히 총살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성폭행까지 있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싱가포르에 종군해 있던 호주 간호사들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침공해 들어오자 배를 이용해 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폭격으로 배가 침몰하면서 표류하다 방카섬에 상륙했고, 결국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군은 간호사들을 바다로 걸어 들어가게 한 뒤 등쪽에서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었던 비비안 불윙클은 총상을 입은 뒤 바다 위에 죽은 척 하고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전쟁포로가 돼 귀환했다.일본군들이 저지른 성폭행 범죄는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한 호주 군당국에 의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 실버는 “당시 호주군 간부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에게 가족이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불명예를 안기고 싶지 않아 했다”며 “여기에는 성폭행 피해는 죽음보다 더 가혹한 운명으로 여겼던 당시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생존자 불윙클은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군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그러나 2000년 사망한 불윙클은 생전에 당시의 참상을 한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했다. 그는 “대부분 간호사가 총살되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나는 이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 일본군이 성폭행을 저지를 때의 상황은 당시 방카섬에서 말라리아 치료를 받고 있던 일본군 병사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2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번 보도에 대해 “개별 사안을 정부가 검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도쿄신문에 “일본 정부가 여성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방카섬 사건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나 관계자에 사죄 및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두번 다시 성폭력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검증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쟁범죄사 전문가인 다나카 도시유키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과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폭력을 포함한 전쟁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영원히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군, 호주 간호사 21명 성폭행·학살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호주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잔학한 성범죄 진상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BBC는 1942년 2월 호주의 종군 여성 간호사 21명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집단총살을 당한 ‘인도네시아 방카섬 학살사건’에서 희생자들이 죽기 전 일본군들에게 잔인한 성폭행을 당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군사 사학자 리넷 실버의 조사를 인용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싱가포르 종군 호주 간호사들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침공하자 배를 이용해 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하면서 표류하다 방카섬에 상륙했고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군은 간호사들을 바다로 걸어가게 한 뒤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 중 한 명인 비비안 불윙클은 총상을 입은 뒤 바다 위에 죽은 척하고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전쟁포로가 돼 귀환했다. 일본군의 성폭행 범죄는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한 호주 군당국에 의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 생존자 불윙클은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군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그러나 2000년 사망한 불윙클은 생전에 당시의 참상을 한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했다. 그는 “대부분 간호사가 총살되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나는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해 너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2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별 사안을 정부가 검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여성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방카섬 사건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죄 및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범죄사 전문가 다나카 도시유키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과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폭력을 포함한 전쟁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71년만에 열린 ‘여순사건’ 재심…재판부 “희생자 명예회복에 최선”

    71년만에 열린 ‘여순사건’ 재심…재판부 “희생자 명예회복에 최선”

    “빨갱이로 몰려 연좌제 고통속에 살아와” 檢 “당시 기록 찾는 데 6월까지 시간 달라”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된 민간인 3명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29일 오후 2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 김정아)에서 열렸다. 유족들이 2011년 10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지 7년 6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당시 군과 경찰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체포, 감금하고 살해했다”며 “불법적이고 위법적인 구금·체포 20여일 만에 군법회의에서 처형되었으므로 위법이다”라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유가족과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 회원 등 70여명은 이날 오후 1시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국회는 하루속히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다시는 이땅에 국가폭력으로 인한 국민 학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 줄 것을 요구한다”면서 “검찰은 국민과 유족들 앞에 사죄하고, 사법부는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재심 대상은 1948년 10월부터 11월 초 사이에 순천지역 민간인 협력자 색출작업으로 숨진 철도청 직원 장환봉(당시 29세)씨, 농민 신태수(당시 32세)씨와 이기신(당시 22세)씨다. 재심에 이르기까지 외로운 법정 다툼 속에 장환봉씨의 딸 경자(75)씨만 생존해 있고 두 유족대표는 세상을 떠났다. 장씨는 유족 입장문을 내고 “오늘 재심은 제 아버지뿐 아니라 해방 후 1946년 대구 10월 항쟁과 제주 4·3민중항쟁, 48년 여순민중항쟁 등 무차별 집단학살의 재심으로 국가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심판하는 날이다. 빨갱이로 몰려 연좌제의 고통을 당한 모든 유가족들의 재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검찰 측은 “공소장이 없어 국방부와 검찰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군사재판 기록을 찾고 있으니 6월까지 충분히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결과가 이미 내려온 사건인 만큼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며 “정식 재판에 들어가기 전 6월 24일 2차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연다”고 밝히고 30여분 만에 폐정했다. 김 재판장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이 명예를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 ‘시카고 필드’ 석좌 큐레이터인 랜스 그란데 교양서 화석 발굴·전시·연구 과정 쉽게 풀어내 세계 최대 공룡 화석 ‘수’ 소장기부터 다양한 에피소드로 큐레이터 삶 조망자연사박물관 하면 동식물 화석 등 다양한 자연물의 전시 처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개 박물관을 조직하고 소장품을 보존, 연구하는 큐레이터의 존재는 인식하지 못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재정 확보, 유물관리, 자료전시, 홍보활동 따위를 하는 사람.’ 큐레이터의 사전적 정의다. 요즘의 큐레이터는 그 정의를 훨씬 뛰어넘는 전문가요, 연구자로 작용한다. 이 책은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의 석좌 큐레이터 랜스 그란데가 자신의 삶을 통해 자연사박물관과 큐레이터를 조망한 과학 교양서로 눈길을 끈다.자연사박물관의 역사는 25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국가 우르(현 이라크 디카르주)의 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시작됐다. 유물 수집을 즐겨 인류사상 최초의 고고학자로 알려진 나보니도스왕의 영향을 받은 에니갈디 공주가 기원전 530년 메소포타미아 문화사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을 세운 게 시초다.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1925년 다시 발견할 때까지 이 박물관은 수천 년간 기억에서 묻혀 있었다. 자연사박물관 형태를 띤 박물관은 기원전 3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최초의 자연사 과학자라는 아리스토렐레스가 생물의 계층적 분류 체계를 개발한 아테네의 리시움. 당시 아테네 리시움은 학술 연구와 가르침의 중심이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곳곳에 지금의 자연사박물관 형태의 박물관이 생겨났다. 그란데가 몸담고 있는 시카고 필드박물관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과 함께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으로 손꼽힌다. DNA부터 공룡에 이르는 2700만점이 넘는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남부에서 발굴된 1만 5000년 전 인간 해골 화석부터 20세기 사형수 뼈에 이르기까지 6000구가 넘는 인간 유골 소장처로 유명하며, 현재 21명의 세계적인 큐레이터가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저자는 1983년부터 필드박물관에서 고생물학 큐레이터로 시작, 박물관 소장품 및 연구 부서의 총책임자로 수백 명의 직원을 이끄는 석좌 큐레이터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책은 회고록이지만 이 박물관 속 세계적 큐레이터의 활약상과 고충을 통해 큐레이터의 세계를 환히 펼쳐 보인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버섯 보전 전문가 그레그 뮐러는 시카고에서 독버섯 중독 사건이 날 때마다 병원에 불려가 어떤 버섯을 먹었는지를 알아내 의사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한다. 속씨식물 전문가인 릭 리는 해발 6000m 고도까지 올라가는 중국, 인도 고산지대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남미 대륙의 식물과 엘니뇨 현상 전문가인 마이클 딜런은 페루, 칠레에 서식하는 수십 가지의 신종식물을 명명해 자신의 이름을 딴 과학학술지를 가진 유일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조류학자 존 베이츠는 대학살과 내전으로 초토화된 르완다와 콩고 등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을 진행한다. 여기에 화석 발굴과 소장품 전시, 연구와 관련한 논쟁 등 갖가지 사연들을 쉬운 설명으로 소개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필드박물관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6700만년 전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수’의 소장 과정이 흥미롭다. 최초 발견자 수전 핸드릭스의 이름을 딴 공룡 ‘수’는 화석사업 회사 블랙힐스 지질연구소와 미국 연방정부 간 화석 불법 채취를 이유로 오랜 기간 소송 끝에 결국 경매에 붙여져 필드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고 한다. 전 세계 티라노사우루스 뼈대 화석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완전한 표본인 ‘수’가 복원을 마치고 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된 첫날 1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15개 TV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봤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큐레이터 세상을 조망한 저자는 이렇게 회고록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이타적인 거시적 접근을 통해 인간은 이 지구상의 거대한, 상호 의지하는 생물체들의 네트워크의 일부로 존재할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 결말에 붙인 국제자연보전연맹 창설자 바바 디오움의 말이 인상적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보전할 것이며, 이해하는 만큼 사랑할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마오쩌둥의 욕설까지 생생 기록한 비서의 일기, 반환 소송 제기돼

    마오쩌둥의 욕설까지 생생 기록한 비서의 일기, 반환 소송 제기돼

    마오쩌둥 중국 전 주석의 비서로 공산당에 뼈 아픈 충고를 서슴지 않았던 리루이의 일기에 대한 반환 소송이 제기됐다. 리의 두번째 아내인 미망인은 현재 미국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남편의 일기를 돌려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고 리의 딸 리난양이 밝혔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리는 지난 2월 베이징에서 10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 민주화운동인 톈안먼 사태에 대한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리의 일기는 ‘완벽주의’와 ‘비밀주의’로 움직이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 대한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리의 일기 반환 소송은 일기 주인의 사망과 함께 미국에서 출판 움직임이 일자 제기된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25일 전했다. 리는 1930년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마오 주석의 행적을 모두 목격하고 문화대혁명도 겪었다. 리는 1935년인 18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봄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일기를 잠시 중단했다. 일기의 일부분은 이미 출판됐는데 3000만명이 기아로 사망한 마오 주석의 실책 가운데 하나인 ‘대약진 운동’에 대한 비판 내용이 공개됐다. 리는 마오 주석이 주도해 농업과 공업의 대폭 증산을 시도한 ‘대약진 운동’을 비판하면서 반당분자로 몰려 당적을 박탈당하고 헤이룽장성의 노동개조 농장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8년간 감옥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리의 일기 원본은 그의 딸인 리난양이 2014년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의 방문 연구자로 있을 때 기증됐다. 리난양은 아버지의 일기에 대해 “감정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매일매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단하게 적었다”고 설명했다. 리는 마오 주석의 사망 이후 1980년대가 되어서야 복권했으나 중국에서 출판된 그의 일기는 물론 당국의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리난양은 “아버지는 톈안먼 사태 당시 대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그 사실을 기록했다”며 “공산당은 아버지를 더럽힐 수 없으며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일기가 당에 의해 조작된 기록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공산당이 삭제한 것은 마오 주석이 한 욕설”이라며 “공산당 고위급 내부 회의에서 마오 주석이 적나라한 용어를 썼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마오 주석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며 아버지의 일기를 좀 더 일찍 읽었다면 마오에 대한 숭배도 훨씬 일찍 끝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난양은 “아버지의 일기는 공산당 역사의 대안적 기록으로 이번에 새어머니가 제기한 소송은 일기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당은 아버지의 일기를 돌려받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문화마당] 대만 2·28과 한국의 4·3, 4·16, 5·18/박조원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문화마당] 대만 2·28과 한국의 4·3, 4·16, 5·18/박조원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얼마 전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2ㆍ28평화기념공원에 다녀왔다. 2ㆍ28평화기념공원은 타이베이 한복판에 있는데도 그 많은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이 공원은 대만 현대사의 가장 큰 상처인 2ㆍ28대학살, ‘2ㆍ28참안(慘案)’이라고도 불리는 2ㆍ28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우리의 4ㆍ3, 4ㆍ16, 5ㆍ18을 떠올리면서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2ㆍ28사건은 비통한 대만 현대사의 상징이다. 대만은 청의 청일전쟁 패전으로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에 할양된다. 일본의 대만 식민 지배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종식되며, 1945년 대만은 당시 중화민국으로 반환된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대만 통치를 위해 본토에서 파견된 무능하고 부패한 국민당 세력의 수탈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던 1947년 2월 27일 40세 과부 린장마이(林江邁)가 무허가 담배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전매청 직원이 담배를 압수하고 권총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이에 항의하던 군중을 향해 발포하고 사망자가 생긴다. 이튿날부터는 시위가 격화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다. 본성인 중심 시민사회단체의 중재로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기도 했으나 장제스(蔣介石)는 국공내전의 와중에도 1만명이 넘는 병력을 전선에서 빼내 대만으로 보내며 대대적인 유혈 진압을 벌인다. 이로 인해 학살된 인원은 최대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대만의 2ㆍ28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 판박이처럼 닮아 보인다. 4ㆍ3이나 5ㆍ18이 그랬듯이 2ㆍ28은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된 1987년까지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수년간 언급 자체가 금기였으며, 정부의 강력한 사전 검열 대상이었다. 2ㆍ28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교과서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잊혀져야 할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나 2ㆍ28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만 민주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공론화되기 시작하며 끝내는 진상 규명과 가해자인 국민당의 사죄까지 이끌어 낸다. 1992년 대만 행정원이 사건보고서를 발간해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이 이루어졌다. 1995년에는 국민당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정부를 대신해 사죄하는 한편 2월 28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2ㆍ28은 우리의 4ㆍ3이나 5ㆍ18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2ㆍ28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가해 세력인 국민당이 진상을 밝히고 사죄한 반면 4ㆍ3과 5ㆍ18은 가해 세력 혹은 그 세력의 뒤를 잇는다는 이른바 보수 진영이 아직도 제대로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군과 경찰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4ㆍ3에 대해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고 발표했는데, 사과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사죄라고 해야 한다. 경찰청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고 했는데, 이 무슨 해괴한 말장난인가. 국가가 국민 생명 보호의 의무를 방기해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는 지난주에 5주년을 맞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5ㆍ18광주민주항쟁은 3주 정도 후면 39주년을 맞이한다. 치유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도록 진상이 규명되고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죄가 있을 때 봄이 우리에게 한발 더 다가올 것이다.
  • 인도, IS 용의자 심문하다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 사전 인지

    인도, IS 용의자 심문하다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 사전 인지

    부활절인 지난 21일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연쇄 폭탄테러를 앞두고 스리랑카 정부가 입수한 테러 관련 정보는 인도 당국이 델리에서 체포된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 관련 사건 용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CNN이 23일(현지시간) 전했다. CNN은 인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해당 용의자는 자신이 스리랑카에서 훈련시킨 남성의 이름이 자흐란 하슈미라고 조사관들에게 말했으며, 이 남성은 전날 스리랑카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IS 선전매체 아마크가 공개한 사진에서 테러범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아마크는 앞서 360여명이 숨진 이번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며 공격을 수행한 7명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IS 우두머리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유포했다. 대부분 복면 차림인 가운데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낸 남성이 스리랑카 당국이 이번 공격의 주체로 지목한 ‘내셔널 타우히드 자마트’(NTJ)의 우두머리 자흐란 하슈미로 추정된다. 그러나 IS가 이번 테러에 실제 개입했는지, 사전에 인지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정황도 적지 않다고 외신은 전했다. 지금까지 IS는 자신들의 개입 여부를 입증할 증거가 있는 경우 공격 직후 테러 충격이 고조된 단계에서 배후를 자처하며 선전 효과를 극대화했는데 스리랑카 테러는 사건이 발생한지 만 이틀이 지나서야 배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IS 연구자 아이멘 자와드 알타미미는 블룸버그통신에 “IS가 사전에 공격 계획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 보도를 계속 지켜보다가 IS로 의심의 시선이 모이자 배후를 자처해도 되겠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IS가 직접적으로 공격에 가담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IS 배후가 사실이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S에 승리했다”며 시리아에서 철군을 명령한 상황에서 IS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점령지를 잃었지만 스리랑카 테러를 통해 칼리프국(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신정일치 국가) 밖에서도 대학살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박정희 부역자 노릇” 비판에 이종찬 “국가와 민족 배반 없다”

    “박정희 부역자 노릇” 비판에 이종찬 “국가와 민족 배반 없다”

    광복회 회장 출마 … 새달 8일 선출광주시민단체 “박정희·전두환 부역자”李씨 “근거없는 비방, 책임 물을 것”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82) 전 국정원장이 자신의 광복회장 출마 선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광주 시민단체들를 향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종찬 전 원장은 23일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시민단체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내세워 저를 비방하고 있다”며 “과거 공직에 있거나 정계에 참여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원장은 “광복회장 선거에 대해 막상 광복회 광주지부는 아무 말이 없는데 왜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간섭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시민단체들이 연서했다는데 왜 시민단체명만 있고 책임있는 분의 이름은 없냐”고 따져물었다. 이어 ‘전두환 부역 논란’과 관련해 그는 “시민단체들이 내세운 이유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대신 분명히 밝힌다”며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활동 등에 대해 해명했다.그는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 1997년 12월 정권교체의 목표를 달성했다”며 “그 과정에서 야당의 부총재로, 또 대통령선거대책본부장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야당이 여당이 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적을 이뤘다는 사실을 큰 보람으로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며 “그런 본인에게 광주의 시민단체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내세워 비방하는 것을 듣고 대단히 섭섭했다”고 토로했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최초의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며 “국가정보기관의 악·폐습을 개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우리 가문과 저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며 “앞으로 근거 없는 비방이 계속된다면 책임 소재를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전 원장은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냈다. 이후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에서 활동했고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장, 안기부장, 초대 국정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전 원장은 최근 광복회를 국가원로그룹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며 광복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광복회는 다음달 8일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총회를 열어 회장을 선출한다.앞서 25개 광주 지역 시민단체는 전날 “국가재건최고회의 참여를 통한 박정희 군사독재의 충실한 부역자 노릇, 전두환의 국보위 참여로부터 광주학살 이후 민정당 창당의 주역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사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이 광복회 회장으로 나선다는 것은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며 “광복회 출마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영란 전 대법관 새 앙형위원장 임명…27일부터 임기 시작

    김영란 전 대법관 새 앙형위원장 임명…27일부터 임기 시작

    김영란 전 대법관이 새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대법원은 오는 26일 임기가 끝나는 정성진 양형위원장 후임으로 김 전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22일 밝혔다. 김 신임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며 오는 27일부터 양형위원장으로서의 임기가 시작된다. 양형위원회는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결정하는 형량의 구체적 기준(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곳이다. 김 신임 위원장은 2010년 8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이후 2011~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냈다. 권익위원장 재직 당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하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 같은 해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재판부의 재판장을 맡은 적도 있다. 한편 양형위는 위원장과 법관 위원 4명,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검사 위원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하는 변호사 위원 2명, 일반 위원 2명 등으로 구성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반인권적 공권력의 6·25 전후 민간인 학살 규명해야”

    “반인권적 공권력의 6·25 전후 민간인 학살 규명해야”

    “전북 지역서 희생된 양민만 10만명 추정 과거사위 신고된 희생자는 1270명 불과 진실·화해 위한 과거사법 속히 통과돼야”“반인권적 공권력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된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합니다.” 최정근(72)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북연합 유족회 사무국장은 최근 전북도가 한국전쟁 기간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서울신문 4월 16일자 18면>고 발표하자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아픔을 털어놓았다. “지난 70여년 동안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에 두렵고 무서워 기를 못 펴고 살아왔습니다. 뒤늦게 지방자치단체라도 진상 규명에 나서 다행입니다.” 최 국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2010년 실태조사를 벌였으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게 나왔다며 지역별, 사건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 지역에서 희생된 양민만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고된 희생자는 겨우 1270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 국장은 유족회를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전쟁 전 정치적 학살, 국민보도연맹사건, 인민군에 의한 학살, 8사단과 11사단 사건, 토벌작전, 미군 폭격, 부역 혐의 피해 등으로 수많은 양민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희생됐다며 자료를 공개했다. 전국적으론 114만명으로 추정된다. 물론 유형은 비슷하다. 그러나 희생자 유족이 대부분 숨졌고 증인을 설 사람도 없어 회한과 참회의 눈물만 흘릴 뿐이라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전주형무소 학살 사건의 경우 희생자가 1927명인데 25명만 신청했을 정도라며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신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유족들은 아직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할까 봐 신고를 기피하기도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 교육당국의 적극적인 홍보를 요구했다. 진상 규명에 사명감을 가져야 할 공무원조차 사건에 대한 개념이 없어 유족들의 불만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1951년 3월 임실 청웅폐금광에는 저희 아버님 등 마을 주민 수백명이 피난해 있다가 억울하게 희생됐지만 아직도 진실 규명이 안 됐을 뿐 아니라 일부 희생자들은 그대로 묻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당시 이유도 모른 채 호적에 빨간줄이 올라가는 바람에 법원 공무원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농협에 입사했다”며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도 모자라 자손까지 연좌제에 묶여 엄청난 고통을 받은 만큼 명예회복은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하루속히 통과돼야 국가폭력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습니다.” 최 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 목표 중 하나인 과거사 청산이 정치권 반대로 난항을 겪자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5년 제정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한 조사활동은 2010년 12월 기간이 만료돼 수많은 과제가 남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를 재가동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2016년 발의된 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전북도가 추진하는 실태조사에서 숨겨진 사건들의 진상이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최 국장은 희생자 유족들이 처절한 아픔을 안은 채 침묵하지 말고 이제라도 진상조사에 적극 협조해 희미해진 역사를 바로잡아 줄 것을 당부했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이 아기는 커서 악인이 됩니다…히틀러 출생 130년의 기록

    이 아기는 커서 악인이 됩니다…히틀러 출생 130년의 기록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30년 전인 지난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 암 인의 한 여관방에서 역사에 잊을 수 있는 인물이 태어났다. 바로 인류 역사 최악의 독재자이자 홀로코스트 등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광인(狂人)으로 기록된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최근 유럽언론들은 히틀러의 출생 130년을 맞아 다양한 기록과 사진을 쏟아내고 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히틀러의 유년 시절 사진이다. 낡은 흑백사진으로 전해지는 1살 때 히틀러는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수백 만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악인이 됐다는 점은 사진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세관원 출신인 아버지 알로이스와 어머니 클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한 때 히틀러는 화가가 되기를 꿈꿨던 청년이기도 했다. 1909~1913년 사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살았던 히틀러는 꿈을 위해 비엔나 미술학교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지만 실력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낙방했다. 이후 히틀러는 그림 엽서를 그려 관광객에게 팔며 거리의 화가 생활을 했다. 이렇게 히틀러가 남긴 그림이 2000장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사라졌으며, 남아있는 그림은 독일, 영국, 미국 등지로 흩어져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그 이후 행적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반유대주의 정당인 독일노동당(이후의 나치당)에 입당해 뛰어난 웅변실력을 발휘한 히틀러는 1934년 총통에 취임했으며 1939년 폴란드를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그리고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 비밀 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그 옆에는 동반자살한 한 여자도 있었는데 히틀러의 마지막 연인 에바 브라운이다. 이들은 자살하기 불과 40시간 전 측근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30년 전 오늘 히틀러가 태어난 생가 앞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힌 비석이 세워져있다.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수백 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파시즘을 경계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법 만든 인간,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법 만든 인간,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

    사람들은 종종 법을 만든 게 인간임을 잊는다. 법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잊는다. 한번 만들어진 법은 몇 개의 비정한 숫자를 달고 가차 없는 힘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 법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앞뒤 전후 인간의 의도를 살피는 순간 가능한 것일 게다. 저자인 필립 샌즈는 저명한 인권변호사다. 국제인권법의 권위자이자 영국의 왕실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고 각종 매체에 시사해설자로 글을 기고하고 출연하며 활발하게 법의 역할을 말해왔다. 콩고,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이라크, 관타나모, 캄보디아 등 중요하고 예민한 국제인권변호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책에서는 법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의 개인사가 만난다. 무대는 우크라이나의 리비우. 국제법특강 의뢰를 받은 저자는 그 역사적인 작은 도시를 방문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가족의 과거를 찾아보기로 한다. 자신의 과거사를 거의 말하지 않았던 저자의 외할아버지가 그곳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 등장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개념이 처음 싹튼 곳이기도 하다. 리비우 대학의 두 법학도 라파엘 렘킨과 허쉬 라우터파하트, 그에 더해 히틀러의 개인변호사였고 나치 독일의 폴란드 총독이기도 했던 한스 프랑크, 그리고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 저자는 역사의 격류 한가운데서 표표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이 작은 도시에서 네 명의 남자와 그들의 생애를 좇는다. 그리고 그들의 악연을 좇는다. 산만할 수도 있는 여정은 리비우라는 도시,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긴장감 있게 얽힌다. 저자는 상상력보다는 자료에 의존하지만,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만큼이나 극적으로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끔찍한 범죄를, 굳이 ‘개인에 대한 살해’와 ‘집단학살’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두 유대인 학자, ‘현대 인권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두 법학자의 삶의 궤적을 좇는 동안 우리는 법이 가진 인간의 얼굴을 본다. 그 과정은 국제법에 대해 깊이 탐구해온 저자와 함께하기에 더더욱 명쾌하게 실감 난다. 당연하게도 과거를 탐색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촘촘한 탐색의 과정만큼이나 밀도 있게 생각하게 한다.
  • [2030 세대] 노트르담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노트르담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한 나라를 상징하는 건물이 불타오를 때 우리는 과거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알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19세기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친 건물이었다. 지난 15일 월요일 화재 직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대성당을 재건하기로 약속했다. 요즘 기술로 옛 모습을 재현하는 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잃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에서는 ‘테세우스의 배’라는 유명한 난제가 있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이었다. 그가 항해하던 배가 보존됐다 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무는 썩고 갑판과 돛대, 결국 배 모두를 새로운 나무로 바꾼다. 모양은 늘 그대로다. 과연 이 배는 옛날 그 테세우스의 배일까? 상처를 아물지 않게 하고, 오히려 훤히 드러낼 수도 있다. 미국에선 무너진 쌍둥이 건물 자리에 무역센터를 다시 올리지 않았다. 대신 두 개의 거대한 심연이 파여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파괴되고 학살의 무대가 되었던 프랑스의 마을들 중 오늘날까지 폐허로 그대로 남겨진 곳도 있다. 프랑스 대통령 드골은 전쟁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 드레스덴에선 프라우엔 교회를 재건할 때 새로운 건축 재료와 폭격에 새까매진 돌을 함께 사용했다. 피부병 걸린 듯 교회가 검은 반점으로 덮여 있다. 폐허가 매우 오래되면 유적지가 된다. 우리는 유적지를 새로운 건물처럼 새 단장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18세기 유럽인들은 그리스와 로마를 재발견했다. 기둥밖에 남지 않은 그리스 신전을 보며 그들은 감탄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말했다. “스파르타는 웅장한 건축물이 없으나 아테네는 있다, 그러니 후세 사람들은 아테네를 더 막강한 문명으로 기억할 것이다.” 정확한 예견이었다. 아테네는 유럽의 아이콘이 됐다. 이때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저들도 역사에 남아 찬란한 문명을 대변해줄 증거물을 짓기 바빴다, 그것도 그리스풍으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경은 수니온 곶에 위치한 포세이돈 신전에 가서 기둥에 크게 자기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이런은 탄식했다. ‘영원한 여름이 아직 그들을 금빛으로 덮지만, 태양 말고는 모든 것이 지고 말았구나.’ 깎아 내려지고, 낙서에 덮인 채 (지금도 방문하면 바이런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신전은 아직도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폐허로 놔뒀으니 그들의 상상력으로 채워 더욱 그들 것으로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대리석 석상들은 본래 화려한 색깔의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마치 육체를 이탈한 이상에 접근하는 듯한 대리석의 흰 빛깔이 그리스 예술의 참모습으로 여겨졌고, 이 하얀 대리석이 곧 고대 그리스의 숭고함의 상징이 됐다. 복원하지 않는 것이 재해석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영혼과 생명을 빼앗는 혐오표현 추방, 어릴 때 인성교육이 시급합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영혼과 생명을 빼앗는 혐오표현 추방, 어릴 때 인성교육이 시급합니다”

    ‘국민 영어선생님’ 민병철이 말하는 혐오표현 추방운동“제가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 평화운동인 선플운동에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 참여했습니다. 한국 민간단체가 제안한 악플과 혐오표현 추방 활동에 대해 구글 코리아가 전 세계 구글 공익사업 담당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해서 채택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시작된 선플운동을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들도 악플·혐오표현 추방 운동에 참여하기를 희망합니다.” ‘국민 영어 선생님’으로 널리 알려진 민병철 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 이사장(한양대 특훈교수)은 악성 댓글 및 혐오표현 추방운동을 12년째 이끌고 있다. 선플운동이 수익과는 아무 관계 없지만 “영어교육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공익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 선플은 좋은 댓글을 의미한다. 착할 선(善)에 영어로 댓글을 의미하는 reply를 합친 조어다. 하지만 영어로는 ‘sunfull’로 쓴다. 민 이사장은 “한자 문화권이 아닌 외국 사람들에게 선플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이름을 고민하다 sunfull을 만들었습니다. full of sunshine, 즉 햇살이 가득한 사이버 세상을 의미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악성 댓글은 근거 없는 비방과 인신공격, 비하를 말합니다”며 “논리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주장하는 건전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는 바람직하죠”라고 말했다.- 구글이 선플운동에 참여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고 인격을 말살하는 악플과 혐오표현 추방 운동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더니 최근에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국의 민간단체가 제안한 것을 인터넷 본고장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 구글이 받아들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만달러를 지원받아서 ‘선플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우수 참여학교에 ‘선플운동 우수학교’를 인증하는 현판을 부착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이 오가며 이 현판을 보면 자긍심을 갖고 선플 운동에 참여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 70여개 시민단체가 ‘악플·혐오표현 추방 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플운동에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희망합니다.” “구글, 악플과 혐오표현 추방운동에 후원韓민간단체 제안 받아들여…상당한 의미악플에 연예인 극단적 선택에 충격받고 시작학교 등 현재 7000개 단체서 70만명 참여”- 선플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2년 전인 2007년, 근거 없는 악플 때문에 한 가수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학생 한 명이 연예인 10명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가서 악플을 찾아 악플을 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고, 악플에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플을 달아주라는 과제였습니다. 일주일 만에 5700개의 아름다운 댓글이 달렸는데, 중요한 것은 이 과제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실제로 악플의 폐해를 깨닫고 선플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교수인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선플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악플과 혐오표현들이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나? “선플운동이 처음 중앙대에서 제 강의를 듣던 한 반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7000여개의 초·중·고·대학교와 단체에서 70여만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육·해·공군, 환경부, 경찰청 등 여러 기관뿐만 아니라 70여개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여 악플·혐오표현 추방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야 국회의원 297명이 선플정치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300여명으로 이루어진 ‘청소년 선플 SNS기자단’ 학생들이 국회 회의록을 분석하여 아름다운 언어사용을 실천하는 국회의원들을 선정하고, 학생들이 직접 국회의원들에게 ‘선플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6회째 이어왔습니다.” “英윌리엄 왕세손, 2년전 악플추방 운동 시작日환경장관, 에티오피아 국회의장도 참여”- 선플운동이 한국만의 캠페인인가? “2007년 5월 당시 시작할 때는 저희가 세계 처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이버 불링(cyber-bullying·사이버 폭력)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 표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확산과 맞물린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2017년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이 악플 추방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악플 추방운동이 세계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선플운동본부에서는 20대 국회의원들이 선플을 다짐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선플정치선언문’에 서명을 하고 이를 동판으로 만들어 국회의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구마모토 지진 당시, 한국 청소년들이 작성한 ‘구마모토 대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추모와 위로의 선플사이트’를 전달을 계기로 하라다 요시아키 의원(환경부 장관)이 선플운동에 서명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도 타게세 샤포 국회의장이 선플정치선언문에 서명을 마쳤습니다. 선플 운동은 상대방이 먼저 선플 달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선플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영어를 배울 기회도 많아졌고,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수출 급신장과 함께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아진 1970년대 후반부터 직장인들에겐 영어 회화가 필수였다. 이런 사정에 맞춰 민 이사장은 1981년부터 10년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6시30분부터 30분간 MBC TV에서 생활영어를 가르치는 방송을 했다. 이런 연유로 그에게 ‘국민 영어 선생님’이란 닉네임이 붙여졌다. 그의 영어 방송 탓에 학원 수강생이 줄어들 정도였다. 그의 방송을 계기로 한국의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이 실용 위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국민으로부터 영어로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선플운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선플인터넷평화상 제정…지난해 첫 시상노벨 평화상 수상자 2명도 심사위원 참여日 ‘혐한발언 반대’ 시민인권단체가 첫수상”- 선플운동, 결국 인터넷 평화운동이다. “그렇습니다. 2017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험악한 말, ‘증오의 말폭탄’이 많이 오갔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위험도 높아졌습니다. 그때 강원도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비무장지대(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북한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평창평화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일이 잘 풀리고,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하면서 평창평화선언문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작년 4월 세계 최초로 ‘선플인터넷평화상’을 제정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11일, 일본에서 혐한 스피치를 반대해온 시민인권단체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와 일본에서 2000회 이상 인터넷 에티켓과 윤리교육을 전개해온 ‘오기소 켄’에게 첫 인터넷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상금은 1만달러입니다. 심사위원으로 노벨평화수 수상자 2명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인터넷 상에서의 혐오표현 얼마나 심각한가. “악성 댓글에 시달린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카톡방에서 이루어지는 악플에 견디지 못해 청소년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건들이 왕왕 보도되고 있습니다. 악플은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생명까지 빼앗는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혐오표현은 편견과 차별을 강화시켜 증오범죄의 자양분이 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식 부족이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OO충’ 같은 잘못된 언어 사용이 편견을 낳고, 그 편견은 정책·취업·교육 등에서 차별을 불러옵니다. 이것이 악화하면 살인, 방화, 테러와 같은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심지어는 집단학살로까지 이어집니다. 나치범죄, KKK 범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집단학살…. 이런 것들이 혐오표현에서 자라난 증오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증오범죄에 희생당한 쪽에서는 보복하려는 증오전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한국에선 ‘OO충(蟲)’과 같은 혐오 발언이 많다. “초·중학생이 친구와 나누는 일상대화에 욕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왜 욕하느냐’고 물어보면 ‘대화에 끼기 위해 욕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곤충에 비유해서 맘충, 급식충, 한남충 등으로 부르고, 외국인에 대해 똥남아, 흑형, 외노라며 비하하는 혐오발언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SNS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이에 익숙한 10~20대에서 악플이 많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말을 배우는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외국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의 악성댓글이 무슨 잘 못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인터넷 윤리교육을 교육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기업들은 인터넷상에서 이같은 비하·혐오 표현이 등장하면 ‘OO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창이 뜨도록 하는 기술적 보완을 하면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악플, 영혼 파괴에 생명 뺏는 심각한 범죄혐오표현→편견·차별 강화→증오범죄 연결어릴 때부터 꾸준히 인터넷 윤리교육 해야혐오표현 규제 법제화 시급 … 日도 시행”- 혐오표현 규제 법제화에 대한 생각은. “정부 차원에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아니 시급하다고 봅니다.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30개국, 브라질, 캐나다 등 미주 5개국이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도 2016년부터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행되었고 작년 말부터 혐오표현 가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제가 안효대 의원을 통해 국회에서 혐오표현 규제 법안을 만들자고 국민제안을 했지만 법제화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은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200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전 세계에 750만 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존중하면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 역시 존중받을 것입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포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을 향한 혐오 표현을 추방하는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선플운동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나. “2012년부터 선플달기운동에 동참한 울산교육청은 학교 폭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효과를 봤습니다. 선플운동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언어폭력 피해율이 40.7%에서 5.6%로 떨어졌습니다. 2013년 4월에는 2%까지 감소했고, 신체 폭행 발생 건수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는 교육부 발표가 있었습니다. 또 2012년 서울 강남경찰서와 함께 선플재단 홈페이지에 방문한 학생 14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0%가 ‘선플달기가 본인의 언어 순화와 학교 폭력 감소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습니다. 악플을 달아 기소된 이들에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과정’ 선플 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에서 자신이 쓴 악플을 읽어보라고 하니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후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플운동 실시해보니 언어폭력 감소 확연울산교육청, 언어폭력 41%→6% 감소 확인기소된 악플러, 자신이 쓴 악플 읽고 눈물”- 선플운동, 한계가 있지 않나요. “선플운동은 단순히 악플을 달지 말자는 차원을 넘어 상대방을 배려하고, 응원하자 인터넷 문화 운동입니다. 다른 사람과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자는 캠페인과 교육활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선플운동이 사회를 한꺼번에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한 명 한 명 늘어 가다 보면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장애수당으로 어렵게 생활하던 중증 장애인 부부가 첫 아이를 갖게 되자 기쁜 나머지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생활비 일부를 떼 내 기부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훈훈한 기사에도 ‘세무조사 좀 해봐라. 잘사나 보다’, ‘적은 돈으로 얼굴을 알리려고 한다’ 등 여러 개의 악플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찡한 기사다’, ‘기부 안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와 같은 선플이 달리기 시작하자, 게시판 분위기가 바뀌고 악플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악플을 방관하지만 말고, 선플을 달게 되면 상대적으로 악플이 줄어들게 됩니다.” - 외국에서도 선플운동을 했다던데. “미국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사건이나,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우리 청소년들이 써 올린 추모와 응원의 선플이 1만개가 넘었습니다. 이 선플을 모아서 추모집을 만들어 주한미국대사와 중국 CCTV에 각각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중국에서는 세월호 참사 때 추모사이트를 개설하고 5만여명의 네티즌들이 추모의 뜻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6년 일본 구마모토 대지진 때는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와 위로의 선플 1만 3000여개가 올라왔습니다. 2017년 1월, 한국 청소년들이 올린 ‘일본 구마모토 대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추모와 위로의 선플사이트’를 오노 타이스케 구마모토현 부지사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 선플운동 재원, 어떻게 마련하나. “12년 동안 이 운동을 이끌면서 가장 큰 고민입니다. 대부분은 사비로 충당하지만 친구들과 뜻있는 분들의 후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으면 더욱 활발하게 악플 추방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美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사건, 中쓰촨성 대지진日구마모토 대지진에 추모 선플집 만들어 전달中, 세월호 희생자 추모 사이트 개설로 위로도”- 악성 댓글 대다수가 익명이다. “우리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힐 때 이름과 소속을 당당하게 밝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집회나 토론회에서도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밝히고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개진합니다. 그런 것이 인터넷상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생각 없이 올린 한 줄의 악플이 상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흉기임을 인식시키는 인터넷 윤리 교육이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 민 이사장은 요즘도 대학에서 강의한다. 영어와 관련된 과목을 가르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특훈교수로서 한양대 국제학부에서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티(Business Creativity)’를 강의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학생들이 글로벌 취업과 창업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글, 삼성, CJ 등 기업체에 연결시키거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네트워킹을 하도록 연결시켜준다고 한다. 다만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 사회 갈등 해결을 위해 조언한다면. “사실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원칙은 너무나 간단 합니다. 중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어 교과서에 갈등과 협상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를 경우 협상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정한다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협상의 절차는 첫째, 상대를 만나 문제를 확인하고, 둘째, 상대의 처지와 관점을 이해하고, 셋째, 협의와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 갑니다. 갈등 상황에서 상대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강요할 경우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을 내뱉게 되는데 칼로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말이나 글로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말과 글은 마음에 깊숙한 상처를 냅니다. 우선 정치인등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의 힘있는 지도층들이 생각없이 내뱉는 언어들은 상대방에게 폭풍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사이버 세상의 언어를 정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 합니다. 현재 청소년들은 온·오프라인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사이버 세상이 그들에게 더 큰 비중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사이버 세상에 대비한 교육은 참으로 중요 합니다. 이럴때 일 수 록 직접 만나 끊임없이 소통을 지속하고, 상대를 인격체로서 배려하면서 서로 간의 보다 좋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 영어 잘하는 비결은. “인간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 열량이 필요하듯이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언어습득의 기본량이 필요한데요.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기본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 중심의 입시제도 탓에 외국인과 통하는 실용 영어의 기본량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생활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구촌을 사로잡고 있는 BTS가 얼마나 많은 양의 연습을 했겠습니까? 수 없는 반복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대화체 영어를 배우는 데는 그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필요한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자신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표현들을 뽑아 내서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두 번째로 반복훈련을 통해 익히고, 마지막 단계는 실제로 영어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영어공부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과 관련이 없는 내용은 공부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효과가 떨어집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최고 권위 퓰리처상 수상에 기뻐하지 못하고 말 없이 포옹만

    최고 권위 퓰리처상 수상에 기뻐하지 못하고 말 없이 포옹만

    ‘결코 원하지 않았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국 BBC가 15일(현지시간) 발표된 퓰리처상 수상자 명단 가운데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서 발행되는 캐피탈 가제트의 특별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붙인 제목이다. 미국 언론계의 가장 권위있는 상을 받으면 당연히 축하가 쏟아져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수상작이 지난해 6월 이 신문사 뉴스룸에서 무장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진 다섯 동료들을 다룬 1면 기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신문사 직원들은 수상 소식을 들은 뒤 말 없이 서로를 껴안으며 존 맥나마라, 웬디 윈터스, 레베카 스미스, 제럴드 피치먼, 롭 히아센 등 세상을 등진 동료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직원들은 동료들이 총기 난사로 세상을 떠난 충격을 털고 다음날 신문을 정상 발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퓰리처상 이사회는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주며 저널리즘 발전에 앞장서 달라고 격려했다. 총기 난사 보도로 지역신문 두 곳이 더 수상했다. 지난해 2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를 취재·보도한 공로로 사우스 플로리다 선 센티널을 공공서비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신문 기자들은 총기난사로 17명이 세상을 떠난 뒤 몇 개월 동안 후속 취재를 통해 지역사회에 미친 충격과 총기 권리-규제 관련 논쟁에 미친 영향 등을 다뤘으며 현지 당국이 총기난사 사건을 막지 못한 실패 원인을 지적한 것을 수상 이유로 들었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는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에서 11명이 희생된 총기난사 사건 보도와 관련해 긴급뉴스 부문 상을 받았다. 포스트-가제트 편집국은 이날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했다. NYT는 지역신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에 지역 신문 세 곳을 시상함으로써 퓰리처상 이사회가 지역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미얀마 군부에 의한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취재, 보도한 공로로 국제보도 상을 받았다. 이 통신사의 와 론과 초 소에 우 기자는 로힝야족 관련 기밀문서를 부정하게 입수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재판 과정에서 윗선의 함정수사 지시가 있었다는 경찰관의 폭로가 나왔으나 법원은 이를 무시하고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두 기자는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AP통신도 예멘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발한 공로로 역시 국제보도 상을 받았다. NYT는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부친으로부터 수십 년에 걸쳐 현 시세로 4000억원 이상을 받아 탈세하는 등 재산 형성 과정을 파헤친 보도로 해설 보도 상을 수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친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빌려 사업을 시작한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라고 자랑해온 것과는 배치된다. NYT는 지난해에는 워싱턴포스트(WP)와 공동으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내통 의혹을 보도해 국내 보도 부문 수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 자신의 잘못이 일단 드러나지 않자 지난달 말 NYT와 WP에게 퓰리처상을 반납하라고 공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트럼프와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전직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퍼드에게 2016년 대선 직전 ‘입막음’으로 13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폭로, 국내 보도 부문 상을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유명 부인과 의사인 조지 틴들이 30여년 근무하며 다수의 학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의혹을 보도한 공로로 탐사보도 부문 상을 수상했다. 퓰리처상은 언론 분야에서는 보도, 사진, 비평, 코멘터리 등 14개 부문에 걸쳐, 예술 분야에서는 픽션, 드라마, 음악 등 7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전주형무소 학살·익산역 폭격’ 한국전쟁 양민학살 진상 조사 전북도, 전수조사 후 피해자 지원

    전북도가 한국전쟁(1950~1953)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한다. 전북도는 2007~2010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진실 규명에는 미흡했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15일 밝혔다. 조사결과가 나오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을 돕는 사업도 추진한다. 실태조사는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추진한다. 연구용역은 이달 말 발주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 최대 피해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전주형무소 학살사건과 이리역 폭격사건 등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은 전쟁 초기 남측과 북측이 차례로 수형자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피해자가 2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역 폭격사건은 미군 폭격기가 당시 이리역에 폭탄을 퍼부어 4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밖에도 완주, 임실, 무주, 김제 등 도내 곳곳에서도 국군과 인민군, 좌·우익 간 충돌로 무고한 양민들이 다수 희생됐다. 전북도 관계자는 “도내에서도 군·경과 인민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사건이 많아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면서 “과거사위 조사 당시 미진했던 사건과 그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는 사건까지 모두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상 한국전쟁 동안 사망한 민간인은 37만여명이고 전북지역 사망자는 5만 4678명으로 전남 8만 4000여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우리는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있어도 동일한 것을 보지 않는다. 내게는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TV를 보아도, 남편이 부인에게 반말을, 부인은 남편에게 존대하는 드라마가 어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심한 문제로 들린다. 신년토론에 나온 대담자들이 100% ‘남성·비장애인·중년층·이성애자’ 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사회의 중심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 배제되어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생략에 의한 차별’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다.비장애인인 나에게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장애를 지닌 나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는 나의 미국 유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녀는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한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했어야 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고, 어느 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하고서 나와 함께 서울과 강원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의족을 하기도 하고, 목발을 짚고서 이동해야 하는 그녀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나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들을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경사진 곳의 카페나 레스토랑들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계단들, 경사진 곳들, 엘리베이터가 없는 2~3층 건물들이 곳곳에 많다는 사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한 것은 내 친구와 함께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백인의 몸을 지닌 그녀가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신기한 존재’로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서 나의 친구는 단지 호기심과 측은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수많은 결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육체적 장애’라는 ‘이슈’로만 규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일주일을 함께하면서 나의 보기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삶의 다양한 정황들 속에서 장애를 지닌 사람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는 것, 동일한 자리에 있어도 장애를 지닌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론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은 장애를 지닌 사람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장애를 지닌 여성과 장애를 지닌 남성이 경험하는 세계는 겹치는 부분만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부분들이 있다. 장애를 지닌 여성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이 경험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몸 그리고 그 몸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육체적 미(성적 어필)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가치가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에게 주입된다. 따라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 아니라, ‘육체적 외모와 그 성적 기능’이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남성은 물론 여성 자신도 내면화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장애를 지닌 여성은 그러한 두 역할, 즉 성적으로 어필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를 지닌 남성과 참으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살게 된다. 이렇게 가사, 출산, 육아의 담당 능력 여부에 따라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고정되어 있을 경우, 돌봄노동의 전담자로서의 역할과 출산능력에 대한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일 때, 장애를 지닌 여성들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의 경험과 다른 이중 삼중의 다층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장애를 지닌 남성과 결혼하는 비장애 여성은 많지만, 거꾸로 비장애 남성이 장애를 지닌 여성과 결혼하여 그 여성에게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살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가 지닌 질병을 넘어서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곁에서 그를 전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했던 배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1세부터 루게릭병으로 휠체어에서 살아야 했던 중증의 장애를 지닌 스티븐 호킹 곁에는 30여년 동안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함께 했던 비장애 여성이었던 그의 배우자 제인 호킹이 곁에 있었다. 그녀가 호킹이 필요한 모든 돌봄노동의 전담자 역할을 하였기에 호킹은 글을 쓰고 이론을 발전시키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호킹이 여성이었다면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 세계에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0%라고 한다. 장애인의 날, 여성의 날, 어린이날 등 이러한 ‘특별한 날’에 호명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한 사회에서 ‘주변부적 존재’라는 점이다. ‘장애인의 날’은 그저 매년 한번 치르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여전히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평등성이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성찰과 연대의 날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중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제도적 차원만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심각하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표지만을 지닐 뿐, 한 ‘인간’임을 보지 않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장애인’은 ‘장애를 지닌 인간’일 뿐이다. 즉 개별인 ‘인간’으로서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젠더, 나이, 성적 지향, 경제적 계층 등의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되고 교차하는가를 복합적으로 조명해야 한다.장애차별(ableism)이란 문자적으로 하면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의미한다. 그 차별에는 눈에 보이는 제도적 차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차별도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다양하게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 차별은 다층적 차별과 편견을 작동시키는 가치관과 제도를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장애차별의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독일에서이다. 1939년에서 1941년까지 독일에서 약 7만명의 장애인 여성, 남성, 아동들이 학살되었으며, 1945년까지 20만명의 장애인이 더 학살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 학살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장애인’ (a disabled person)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사람’(a person with disability)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쓴다. ‘장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만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고착된 장치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종교, 학력, 개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표지로만 한 사람을 고착시킬 때, 문제는 모든 장애인들이 마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학력 등에 상관없이 ‘단일한 집합체’라고 간주하게 되며, 결국 하나의 ‘이슈’로만 보게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이라는 모토는 장애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장애인의 날’에 호명되는 장애인은 종종 하나의 ‘이슈’로만 간주된다. 그러나 갖가지 특별행사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이동권, 평등권, 직업권, 교육권, 거주권 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시혜’나 ‘특별대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다. 장애인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이다. 분명히 기억하자. 이 명료한 진실을.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전주형무소 학살·익산역 폭격’…한국전쟁 양민학살 진상 조사

    전북도가 한국전쟁(1950~1953)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한다. 전북도는 2007~2010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진실 규명에는 미흡했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15일 밝혔다. 조사결과가 나오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을 돕는 사업도 추진한다. 실태조사는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추진한다. 연구용역은 이달 말 발주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 최대 피해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전주형무소 학살사건과 이리역 폭격사건 등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은 전쟁 초기 남측과 북측이 차례로 수형자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피해자가 2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역 폭격사건은 미군 폭격기가 당시 이리역에 폭탄을 퍼부어 4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밖에도 완주, 임실, 무주, 김제 등 도내 곳곳에서도 국군과 인민군, 좌·우익 간 충돌로 무고한 양민들이 다수 희생됐다. 전북도 관계자는 “도내에서도 군·경과 인민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사건이 많아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면서 “과거사위 조사 당시 미진했던 사건과 그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는 사건까지 모두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상 한국전쟁 동안 사망한 민간인은 37만여명이고 전북지역 사망자는 5만 4678명으로 전남 8만 4000여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화성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 개최

    화성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 개최

    “3.1운동을 미래 지향적인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 경기 화성시는 15일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를 개최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국가유공자와 보훈단체, 세계평화연대 도시 대표단을 비롯해 서청원·이원욱·권칠승·송옥주·안민석 국회의원, 염태영 수원시장, 곽상욱 오산시장, 나치만 경기남부보훈지청장과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해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주민들을 추모했다. 제암·고주리 사건은 항일 독립운동 사상 가장 잔혹한 일제의 보복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다. 100년전 화성지역 주민 2500여명은 대규모 만세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화수리 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해 일본 순사 가와바타를 처단했다. 이 일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군대를 투입해 제암리 마을 주민 23명을 교회에 가둔 채 총살했고 독립운동가 김흥렬과 그 일가족 6명을 처참히 학살하는 등 제암·고주리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평온한 농촌 마을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화성 3·1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며 “그 어떤 무자비한 탄압도 내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 3·1독립운동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은 평화와 인류애를 존중하는 세계인의 공분을 자아내 국내외 독립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덧붙였다.서철모 화성시장은 개회사를 통해 “3.1운동을 미래 지향적인 역사로, 일제의 잔악한 탄압에 굴하지 않은 치열한 민중사이자 진취적인 민족사로 재조명해야 한다”면서 “이날을 기점으로 평화와 번영의 100년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민족 수난사에만 머물러 새로운 미래 100년의 준비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면서 “3·1운동을 미래지향적인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화성시는 전날인 14일 신텍스에서 세계평화연대 도시 대표단과 국내 석학들이 자리한 가운데 ‘4.15 100주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화성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의 역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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