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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정치농사 후회 없다… 다시 돌아온 사천 땅에서 선물처럼 만난 ‘미생물’

    8년 정치농사 후회 없다… 다시 돌아온 사천 땅에서 선물처럼 만난 ‘미생물’

    “파이프를 위로 올려. 밑의 버튼을 눌러야 매실액이 나온다고.” 강기갑(67)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경남 사천시의 한 농장에 울려 퍼진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발걸음도 바쁘다. 추석을 맞아 매실 제품 주문이 몰려 공급을 맞추기 빠듯해서다. 강 전 대표가 애지중지하는 매실이 가득한 이곳은 그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농장 ‘강달프의 매실마을’이다. 현직 의원이었을 때 별명이었던 ‘강달프’를 딴 이름이다. 18대 국회가 끝난 지도 8년. 여의도를 떠난 강 전 대표의 얼굴도 다시 농부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매실과 미생물로 가득하다. 17~18대 국회를 날아다녔던 강달프는 2020년 매실마을을 뛰어다니고 있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29일 사천시 강달프의 매실농장에서 그와 만났다.●머릿속에 매실과 미생물뿐… 농사는 ‘천직’ 강 전 대표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스스로 ‘천직’이라는 농부로 돌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디딘 건 자의가 아니었다. 강 전 대표는 “한밤중에 뒷덜미 잡혀서 정치권에 내던져졌다”고 회상했다. 정치에 투신하기 전 그는 젖소 20마리를 기르며 하루에 우유 1t을 생산하는 규모 있는 농부였다. 농사를 지으며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운동’,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부의장’을 맡는 등 농촌운동에도 열을 올렸다. 전농 부의장을 맡은 게 화근이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당에서 농민 쪽 비례대표 한 사람을 내야 하는데 나밖에 없다고 말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갑작스런 제안인 데다 정치를 하러 서울에 가면 젖소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에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강 전 대표는 “아내가 닷새 동안 드러누웠다. 막내가 돌도 안 됐는데 어딜 가냐고 막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비례대표 6번이면 당선권 밖”이라며 아내를 설득했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크게 선전하며 10석을 얻었다. 예상과 달리 강 전 대표는 아주 여유롭게(?) 국회의원이 됐다.아내의 걱정대로 정치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생활임금에 맞춰 국회의원에게도 월급을 180만원만 지급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을 하느라 여의도에서 84일을 단식했다. 어찌나 강하게 투쟁했던지 황인성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강 전 대표를 찾아와 ‘살살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강 전 대표는 “황 전 수석과 동창 사이인데 어느 날 찾아와 노무현 대통령도, 본인도 어쩔 수 없이 (FTA를) 하는 것이니 좀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러는 동안 고향 농장은 엉망이 됐다. 강 전 대표는 “어느 날 아내가 새벽에 전화를 해서 우유가 다 얼어 버렸다고 ‘우리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느냐’며 울었다. 속이 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농사와 정치를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 강 전 대표는 그날로 젖소를 헐값에 다 팔아 버렸다.●귀향 후 뜻밖의 선물 ‘닥터바실러스K3’ 하지만 17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칠 즈음 강 전 대표는 재선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과 주변의 강한 권유도 있었고 사천에서 출마할 후보가 없기도 했다. 강 전 대표는 다시 “사천에서 당선될 리가 없으니 한번 도전만 해 보자”고 가족을 설득했다. 그런데 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공천 학살’이 일어나자 박근혜 지지자들이 들고일어났고, 친이(이명박)계 실세이자 당 사무총장으로 사천에 출마한 이방호 후보 낙선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친박(박근혜) 지지자들이 강 전 대표를 찍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강 전 대표가 옛 사천군 출신이라 몰표가 쏟아진 점도 한몫했다. 그렇게 ‘재선 의원 강기갑’이 기적적으로 탄생했다. 강 전 대표는 “18대 국회에서 정말 별짓을 다했다. 이단옆차기 하다가 발에 피가 나서 본청에서 치료하고, 공중부양하고, 8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버렸다”고 현역 의원 시절을 회상했다. 이후 그는 2012년 19대 총선 때 남해군·하동군과 사천시 선거구가 통합되면서 하동 출신의 여상규 후보, 삼천포 출신의 이방호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이후 통합진보당이 분당되기 전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중도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정치권을 떠나 돌아온 사천 시골집에는 강 전 대표를 기다리는 선물이 있었다. 17대 국회의원 출마 전인 2004년쯤 집에 있는 토굴에 매실청을 담가 두고 갔는데 잊혀진 세월 동안 그 매실청이 과발효돼 식초가 된 것이다. 강 전 대표는 “10년 전에 담가 놓은 식초를 떠먹어 보니 너무 맛이 좋았다”며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미생물 전문가인 이엠생명과학연구원 서범구 원장에게 성분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의뢰 결과는 놀라웠다.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신종 미생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강 전 대표는 직접 ‘닥터바실러스K3’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기갑’의 영어 이니셜 ‘KKK’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강 전 대표는 미생물농법 전도사가 됐다. 그는 “식초라는 산에서 10년 동안 살아남은 미생물은 정말 강력한 것이고 그 말은 위산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라며 “국회에 있을 때 별명이 강기갑에서 따온 ‘강한기갑부대’였는데, 이 녀석도 그만큼 강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강 전 대표는 “닥터바실러스K3가 지금 농촌진흥청 은행에 들어가 있는데,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고 있다”며 “이걸 가지고 축산 발효시키고 매실 농사도 짓고 있다”고 했다.●“정당만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고향으로 복귀한 지 꽤 지난 만큼 농장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강 전 대표는 “매실나무와 편백나무를 좀 심었는데 2000주가 넘는다”며 “밭도 갈고 있고 가축 미생물 등 여러 가지 농사를 다양하게 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농장 근처에 집도 새로 짓고 있다. 포클레인을 직접 몰아 가며 바위들을 올리고 있다. 강 전 대표는 “집이 오래돼 물이 새고 엉망이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짓고 있다”며 기뻐했다. 일각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정의당 당원은 아니다. 강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누군가는 결과적으로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했고 준비위원장 등 주요 역할을 맡았으니 책임의 뜻으로 정치권에 참여를 안 했다”며 “그래서 정의당에도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인데 이정미 대표까지 내려와서 매실도 따 주고 신경을 써 주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총선 준비 과정에서 정의당 안전먹거리특별위원장을 맡았던 것도 입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했다. 그는 “심상정 대표가 직접 부탁하기에 입당하지 않고도 그런 자리의 위원장을 맡을 수 있는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자문을 해 보고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참여했다”고 밝혔다. 강 전 대표는 그러면서도 당대표 선거 결선이 한창인 정의당에 조언을 건넸다. 그는 “당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지만, 당만을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전 대표는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 자연스레 ‘당을 위한 정치’가 된다”면서 “그게 아니라 당이 목적이 돼 정치를 하면 그건 더이상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정치가 아니게 된다”고 조언했다. 사천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이재명 “전두환 백주대로 활보, 정의의 실종...단죄해야 할 것”

    이재명 “전두환 백주대로 활보, 정의의 실종...단죄해야 할 것”

    5일 검찰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백주대로에 전두환이 활보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의 정의의 실종이자, 불의한 세력을 단죄하지 못한 민족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 전두환의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검찰이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법정 최고형인 2년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지사는 “참혹했던 80년 이후 5·18 피해자들 중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만 마흔 분이 넘는다. 도청에서의 최후항쟁 이래 80년대 내내 진실을 알리려 산화한 열사들과 아울러, 이분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명백하게 역사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곧 있을 선고공판을 통해 전두환의 역사왜곡과 5·18 영령들에 대한 모독이 엄중히 처벌받기를 바란다”며 “그래야 민정당 후예들과 망언세력들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 감히 5·18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사자명예훼손 뿐 아니라, 전두환에게는 벌하지 못한 여죄가 많다”며 “집단발포명령 지휘계통을 밝히지 못한 5월 21일부터 26일까지의 수많은 내란목적살인, 그 의도조차도 불명확한 양민학살(주남마을 사건 등), 헬기 기총소사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버겁다. 이 사건들은 단죄 받지 않았기에 당연히 사면도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도 현 정부 들어 어렵게 만들어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드시 전두환에 대한 직접조사, 특검 등 가용 수단을 모두 동원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전두환을 단죄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앞서 이날 광주지방법원은 형사 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의 심리로 전 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결심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이날 전 씨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이로써 2018년 5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씨 재판은 2년 5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공판에 앞서 5·18 기념재단 조진태 상임이사는 기자들과 만나 “(전 씨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5·18이 이룬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우롱한 뻔뻔함을 똑똑히 봤다”며 “권력을 잡기 위해서 국민을 학살한 자는 법에 의해서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국민에게 교훈을 주는 판결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文대통령, 이효재 교수 별세 ‘애도’...“민주화 지대한 역할”(종합)

    文대통령, 이효재 교수 별세 ‘애도’...“민주화 지대한 역할”(종합)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사회학자인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위터·페이스북 등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17년 청와대 녹지원에 한 번 모신 것이 마지막이 됐다”며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효재 선생님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셨다”며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 크게 상심해 낙향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2017년 10월23일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이재경 전 이화여대 교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장과 함께 청와대 상춘재를 관람했다. 이 교수의 상춘재 방문 소식을 전해 들은 문 대통령은 수보회의를 마친 뒤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당시 이 교수는 문 대통령에게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었으니 이제 통일에 힘써달라”고 주문했고, 문 대통령 내외는 이 교수의 손을 맞잡으며 “건강에 유의해달라”고 각별히 당부한 바 있다. 호주제 폐지 등 여성운동 선구자 이효재 선생은 이날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치하는 것을 이끌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했다.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같이 쓰기 선언,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 여성 50% 할당제 등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학살과 관련한 시국 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했다. 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구성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교수 별세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교수 별세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한국 1세대 여성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96세.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58년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광주 학살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운동가로서도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했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한편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에 참여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노력도 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이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모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효재 선생님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면서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 크게 상심해 낙향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2017년 청와대 녹지원에 한 번 모신 것이 마지막이 됐다.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딸 이희경씨, 동생 은화(전 이화여대 교수)·효숙·성숙씨, 올케 이부자씨가 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장으로 고인을 배웅하기로 했다.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 마련됐다. (055)214-1910.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명예교수 별세...정치권 애도 물결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명예교수 별세...정치권 애도 물결

    정치권이 여성학·사회학자이자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 별세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4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1세대 여성운동가 이 교수님께서 오늘 우리 곁을 떠나셨다”며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은 행동하는 지성이셨다. 국내에 여성학을 처음 도입하고 분단사회학을 개척하셨다”며 “또한 부모성 함께 쓰기 1호 선언,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50% 여성 할당,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남북 여성 교류 등을 주도하셨다. 해직교수협의회장으로서 군사독재에 저항해 싸우기도 하셨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며 “선생님 같은 선구자들이 계셨기에 우리 역사가 이만큼이나마 진전했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의 지성과 용기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선생님께서 평생 소원하신 성평등의 대한민국,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능력만큼 성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가 선뜻 나서지 못하던 시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선 분”이라며 “당신은 우리시대의 양심이자 한평생 평등을 위해 살아오신 실천가이셨다. 당신의 헌신적인 삶이 있었기에 한국사회는 이 만큼 변해왔다”고 애도했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고인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관련한 인연을 언급하며 “제 남은 생애 아무 욕심이 없다. 선생님이 이루고 싶었던 그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도 “인생의 등불과 같던 이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며 “선생님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가겠다”고 했다. 야권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 교수님의 뜻을 이어받아, 여성들의 실질적인 지위향상은 물론 여성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또한 페이스북에서 “여성의 인권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약자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말 모든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앞장서 길을 내신 분”이라며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은 고인이 내디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성장해왔다”고 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학과 개설을 이뤄낸 대한민국 원조 페미니스트로서 평생을 여성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신 이이효재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라며 “제가 국회의원이 처음 되었을 때, ‘당당하고 아름다운 정치인’이 되라는 격려말씀은 늘 설렘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이이효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한편, 이이효재 선생은 이날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치하는 것을 이끌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했다.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 여성 50% 할당제 등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학살과 관련한 시국 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구성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文대통령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文대통령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셨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 크게 상심하여 낙향하셨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한국 여성운동 대모인 이효재 교수의 부음을 접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선생님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며 이렇게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청와대 녹지원에 한 번 모신 것이 마지막이 됐다”면서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2017년 10월 여성계 인사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한 고인은 문 대통령에게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됐으니 이제 통일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이 선생은 문 대통령에게 “예전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할 때 대통령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안 하실 것 같았다”며 “이렇게 청와대에 계신 것을 보니 반갑고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예전에 선생님이 머무르던 제주도에 갔지만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있던 김정숙 여사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선 채로 쌓였던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1세대 여성운동 기틀을 닦은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날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하는 등 여성학 도입·연구에 힘썼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을 지냈다. 1980년에는 광주 학살을 자행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복직하기도 했다. 고인의 발자취는 호주제 폐지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이나 여성 50% 할당제, 부모 성 같이쓰기 선언 등 곳곳에 남아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에 참여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노력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트럼프에 “쾌유바란다”는 北, 日에는 “개주둥이에 상아 돋나”

    트럼프에 “쾌유바란다”는 北, 日에는 “개주둥이에 상아 돋나”

    코로나19에 감염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한 것과 달리 일본에는 “더러운 개주둥이”라며 폭언을 쏟아부었다. 북한은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 ‘야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홈페이지에 김설화 일본연구소 연구원 명의로 ‘일본은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없다’ 제목의 글을 싣고 “과거 청산을 한사코 회피하면서 죄악에 죄악을 덧쌓고 있는 일본은 절대로 안보리 상임리사국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연구원은 그러면서 “일본은 더러운 개 주둥이에서는 언제 가도 상아가 돋을 수 없다는 이치부터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지난달 22일 유엔 창설 75년을 기념하는 유엔 회의에 비디오 메시지를 보내 유엔 안보리 개혁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제2차 대전(태평양전쟁) 패전국인 일본은 오래전부터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드러냈으며, 이런 맥락에서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를 개최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늘리는 등 국제공헌 활동을 강화해왔다. 김 연구원은 일본의 과거 만행도 들췄다. 김 연구원은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법(불법)적으로 강점한 후 100여만 명의 조선 사람들을 학살하고 840만여명의 조선인 청장년들을 강제로 납치·연행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만들었다”며 “오늘까지 그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파렴치한 나라”라고 일갈했다. 또 “일본이 세계 여러 나라에 뿌리고 있는 금전도 지난날 침략과 전쟁으로 강탈한 인적, 물적 자원으로 충당한 것”이라며 “일본이 국제 평화와 안전 보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되겠다는 것은 국제적 정의와 인류의 양심에 대한 우롱이고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은 이런 피비린내 나는 침략사를 안고 있음에도 오히려 과거를 왜곡하고 있으며 재침 야망을 꿈꾸고 있다”며 “정부 각료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놀음을 벌려놓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실례”라고 강조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검찰, 추안무치에 면죄부 줬다” 명절 공세 이어가는 국민의힘

    “검찰, 추안무치에 면죄부 줬다” 명절 공세 이어가는 국민의힘

    국민의힘이 추석 연휴 기간에도 대여 공세 수위를 높이며 정부와 여권을 향한 고강도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의원 86명은 2일 화상 의원총회를 열고 피살 공무원과 추미애 장관 등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총살하고 기름을 뿌려 태워 버렸다”며 “대통령과 여당은 아무 근거도 없이 월북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만행에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공무원 A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은 해당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유족 측에선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주 원내대표는 또한 추 장관 아들 군 복무 의혹과 관련 “검찰수사 결과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휴가, 병가를 담당한 대위의 전화번호를 전했다. 추 장관의 후안무치 한마디로 추안무치”라며 “그런데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으로 면죄부를 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추 장관이 추석 연휴 첫날 김모 검사를 찾아 검찰개혁을 다짐했다”며 “북한군에 학살당해 구천을 헤매고 있는 우리 공무원의 영혼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다”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두 사안을 엮어 정부의 행보를 비판했다. 개천절 예고된 드라이브스루 집회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개천절 집회가) 문재인 정권의 편 가르기 방역 정치에 악용당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많았다. 방역에는 여야가 없다”며 “당 지도부는 어떤 일도 국민의 안전과 보건에 앞설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文대통령 연일 때리는 국민의힘 “언론 나와 전말 밝혀야”

    文대통령 연일 때리는 국민의힘 “언론 나와 전말 밝혀야”

    국민의힘 등 야권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의 피살 사태와 관련해 정부 대응이 안일했다며 모든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렸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비대위회의에서 “이번 사태가 벌어진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우리 정부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며 “정부는 사전에 A씨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아무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배경을 짐작해보면 문 대통령의 유엔(UN) 연설(지난 23일)이 앞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어떤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이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은 과거에 ‘대통령은 국민 생명과 보호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를 누누이 했는데 유독 이번 만큼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나와서 이번 사태의 전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검은색 정장과 검은마스크를 착용한 채 ‘대통령님 어디 계십니까. 우리 국민이 죽었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북한의 우리 국민 학살만행 규탄 긴급의원총회’를 열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공무수행 중이던 공무원을 위해 문 대통령이 묵념하거나 애도한 적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번 사태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비유하며 문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던 전임 대통령과 우리 국민이 총탄에 맞고 불태워지는 6시간 동안 책무를 다하지 않은 문 대통령이 무엇이 다른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보고받은 이후 대통령의 행보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통령, 이런 청와대, 이런 군대를 두고 있는 우리 국민이 불쌍할 따름”이라며 “유가족과 국민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티앤씨재단,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사회 주제로 ‘Bias, by us’ 2일 웨비나 개최

    티앤씨재단,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사회 주제로 ‘Bias, by us’ 2일 웨비나 개최

    재단법인 티앤씨재단(T&C Foundation, tncfoundation.org)은 오는 10월 2일(금)부터 4일(일)까지 3일간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 사회를 주제로 하는 APOV(아포브, Another Point of View) 컨퍼런스 <Bias, by us>를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Bias, by us>는 인류를 고통으로 내몰았던 세계사 속 이야기와 현대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제를 들여다보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공감과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나누기 위해 기획됐다. 재단 장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전 렉처 및 해외 탐방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온 티앤씨재단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올해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온라인 컨퍼런스로 변경하여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세계사나 현대 사회 혐오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역사, 사회 분야 최고 교수진이 함께 참여한 이번 컨퍼런스는 극단적 혐오가 일으킨 갈등과 분열 현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해와 포용에 기반해 공감 사회로 나아가는 법을 함께 토론하며 의미를 더한다. 2일에는 최인철 서울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이은주 서울대 교수가 참여해 혐오 기원과 본질, 확산 과정을 알아보고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이 만들어낸 혐오 현상을 중점적으로 논의하여 혐오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다.세계사 강의로 구성된 3일에는 최호근 고려대 교수, 이희수 한양대 특훈교수, 한건수 강원대 교수가 홀로코스트, 이슬람포비아, 아프리카 역사 속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맥락과 비극적 결말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인종주의와 편견을 뛰어넘어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다양한 노력들에 대해 살펴본다. 컨퍼런스 마지막 날인 4일에는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와 전진성 부산교육대 교수가 중세 유럽 역사 속 혐오 사건, 독일 역사 속 유대인 혐오 원인을 심층 분석한다. 마지막 세션은 ‘공감의 또 다른 얼굴, 혐오’에 대한 토론으로 준비된다. 황수경 아나운서 사회와 함께 현대 사회가 혐오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감 교육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며 컨퍼런스는 막을 내린다. 티앤씨재단 관계자는 “공감과 포용을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가 다른 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하나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며, 더불어 건강하고 따뜻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 ‘Bias, by us’ 컨퍼런스의 목적”이라며, “티앤씨재단은 이번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감 사회 프로젝트들을 APOV(아포브)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시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티앤씨재단 홈페이지 사전 신청 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사전 신청 접수자는 10월 2일(금) 오전 9시에 별도 유튜브 링크를 받을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물과 연결된 인간, 인간과 연결된 인간

    동물과 연결된 인간, 인간과 연결된 인간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민음사/396쪽/1만 5000원 낮의 집 밤의 집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이옥진 옮김/민음사/476쪽/1만 6000원 새로운 노벨상 시즌에 맞춰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 두 권이 출간됐다.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 별자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낮의 집 밤의 집’이다.‘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폴란드의 외딴 고원에서 일어난 기이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소설이다. 한때 교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두셰이코는 동물을 학대하던 이웃 왕발과 사사건건 부딪치는데, 어느 날 왕발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어 마을에서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모두 동물 사냥과 연관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다. 토카르추크는 책의 각 부 도입부에 그의 시를 인용했다. 블레이크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경험한 뒤 당대 정치, 사회, 문화에 얽힌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시를 통해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한 인물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지향해 생태주의 예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토카르추크는 주인공 두셰이코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생전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간 노년의 블레이크 이미지를 참조했다고 한다. 책에는 채식주의와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릴러 형식이라 가독성이 뛰어나고 서사적인 재미도 있다. 소설은 폴란드 출신 거장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의 영화 ‘흔적’의 원작이기도 하다. 토카르추크가 홀란트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했다. 영화는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2002년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수상작 ‘낮의 집 밤의 집’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처럼 토카르추크 특유의 ‘별자리 소설’의 형식을 띤다. 별자리 소설이란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찾고, 그 단서를 연결점으로 이어 나가는 소설을 가리킨다. ‘방랑자들’보다 20년 전에 쓴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의 서사적 기법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됐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의 작은 도시 노바루다와 접한 피에트로 마을로 이주한 ‘나’.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들,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을 전해 듣는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운명이 실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소설은 씨실과 날실을 엮듯 촘촘하게 보여 준다.토카르추크는 2016년 발표한 기고문에서 “인간은 실은 서로가 서로를 놀랍도록 닮은 존재라는 사실을 문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소설 안팎으로 여성이나 성소수자 인권, 난민 문제, 동물 학살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문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를 꾸준히 실천 중이다. 노벨상 상금의 일부로 폴란드의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고 환경운동을 펼치는 ‘토카르추크 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 같은 행보의 일환이다. 한국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 두 권은 문학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바치는 토카르추크의 헌사로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화장품에 ‘안네 프랑크’ 이름 붙였다 역풍

    화장품에 ‘안네 프랑크’ 이름 붙였다 역풍

    화장품 브랜드가 나치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이름을 붙인 화장품을 출시해 비난을 사고 있다. 홍콩의 화장품 브랜드 WULT는 최근 리퀴드 타입의 블러셔를 출시했다. 회사는 블러셔의 이름에 유명 여성들의 이름을 붙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딴 ‘울프의 언어 속(In Woolf’s Words)‘ , 멕시코의 유명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이름을 딴 ’비바 라 프라다(Viva La Frida)‘, 그리고 안네 프랑크의 이름을 딴 ’안네처럼 꿈꿔라(Dream Like Anne)‘ 등을 선보였다. 제품이 출시되자 희생자의 이름 사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기 시작했다. 유대인 작가 벤 M. 프리맨은 “화장품에 인종학살로 희생된 안네 프랑크의 이름을 딴 것은 혐오스러운 행태”라며 비난했다. 더불어 그는 홍콩 매거진이 이 제품에 호평하며 기사를 쓴 것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일침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도 소비자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해당 제품은 현재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를 중지한 상태이며 안네 프랑크의 제품 이외의 제품에 한해서 판매하고 있다. 회사 측에서는 “안네 프랑크는 극심한 고통과 격리된 상황 속에서도 위대한 유산이 된 일기를 남겼다”며 “그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는 모습이 지금 세대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의도와 반대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며 “이번 일이 그들의 역사에 대한 무례한 행태로 비쳤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北 외무성 “전범국서 자라는 위험한 독초”…日 역사왜곡 비판

    北 외무성 “전범국서 자라는 위험한 독초”…日 역사왜곡 비판

    북한이 일본이 역사왜곡 움직임을 보인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북한 외무성은 18일 홈페이지에 차혜경 일본연구소 연구원 명의로 ‘전범국의 풍토에서 자라나고 있는 위험한 독초’ 제목의 글을 싣고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극히 심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달 1일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리자 신흥 우익단체가 학살은 증거가 없다며 집회를 열고, 14세에 731부대에 입대했던 남성이 세균전을 증언하자 이를 거짓으로 치부하는 글이 1만여건 올라왔다는 것을 지적했다. 차 연구원은 “피 비린 일제의 만행사에는 그 언제 가도 세월의 이끼가 덮일 수 없는 법”이라며 “어째서 새 세기 20년대에 이른 오늘까지도 일본 사회에서 역사적 사실을 한사코 부정하고 무작정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우심해지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자학적인 것으로 매도하면서 과거 범죄에 대한 진상조사와 범죄자 처벌 등을 통한 진정한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엄연한 진실을 왜곡하며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시키는 조직적 행위를 묵인·조장·비호해온 현 일본 당국의 처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간토 조선인 학살 범죄가 감행된 때로부터 9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똑똑한 사죄도, 그에 대해 진상규명도 하지 않고 있다”며 “‘관동군방역급수부(731부대)가 세균전을 진행했다는 자료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는 외마디 소리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 일본 정부”라고 설명했다. 또 역사 왜곡 분위기를 독초에 비유하며 “전범국의 풍토에서 자라나고 있는 위험한 독초는 일본 사회에 더 큰 재앙을 몰아올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우즈마저 울린 러프… 언더파도 기적이다

    우즈마저 울린 러프… 언더파도 기적이다

    윙드풋에서 ‘언더파 챔피언’은 희망사항일까.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제120회 US오픈 골프대회가 18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 골프클럽(파70)에서 막을 올린다. 코로나19 탓에 석 달이나 미뤄진 US오픈은 앞서 119차례 동안 ‘코스와의 싸움’이 전통처럼 이어졌다. 특히 역대 6번째로 US오픈을 유치한 윙드풋 골프클럽은 지금까지 치른 역대 51곳 대회 코스 중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 치른 5차례 대회에서 언더파 우승자는 36년 전인 1984년 대회의 퍼지 졸러(미국) 단 1명뿐이었다. 언더파로 대회를 마감한 선수도 졸러를 포함해 연장전에서 승부를 펼친 그레그 노먼(호주·이상 4언더파) 등 2명 외엔 없었다.‘윙드풋의 대학살’로 불렸던 1974년 대회 해일 어윈(미국)의 우승 스코어는 무려 7오버파 287타였다. 마지막으로 열렸던 2006년 대회 우승자 제프 오길비(호주)의 타수 역시 5오버파로 언더파에서 한참 벗어났다. 당시 세 번째 우승에 도전했던 타이거 우즈(미국)는 2라운드까지 12오버파 152타로 메이저 출전 사상 처음으로 컷에서 탈락했다. 그렇다면 윙드풋은 왜 어려울까. 우선 페어웨이가 좁다.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개미허리처럼 폭이 좁은 데다 굽은 곳이 많다. 자칫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발목을 덮는 15㎝ 깊이의 두껍고 뻣뻣한 러프가 공을 삼킨다. 16일 연습라운드에 나선 우즈는 18번 홀(파4)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 러프에 떨어지자 곧바로 공을 손으로 집어들어 페어웨이로 빼낸 뒤 다음 샷을 했다. 긴 데다 질기기까지 한 러프에서 어설프게 샷을 하다간 자칫 손목을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이시카와 료(29)는 러프에 빠뜨린 공을 찾느라 10분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우즈는 기자회견에서 “윙드풋은 내가 경험한 곳 중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라면서 “난도 면에서 아마 이곳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이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볼이 떨어질 만한 지점에 아가리를 벌린 벙커도 수두룩한 데다 ‘유리판 그린’에도 맞서야 한다. USGA는 올해 그린을 더 단단히 다지고 잔디를 짧게 깎아 유리판처럼 만들었다. 1m짜리 퍼트도 우습게 봤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윙드풋의 그린은 내가 겪어본 가장 어려운 그린”이라고 말했다. 장타와 정교함의 두 가지를 놓고 선택은 엇갈린다. 올해 체중을 20㎏이나 불려 괴력의 장타를 휘두르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공이 러프에 떨어진다 해도 난 드라이버를 힘껏 때리겠다”고 ‘닥공’을 선언했다. 반면 PGA 투어의 대표적인 장타자이자 이 대회 ‘빅4’ 중 한 명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러프에 떨어지는 350야드짜리 장타보다 페어웨이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공략법을 밝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아베 사람으로 채운 새 내각… ‘스가 2기’ 위한 숨고르기 가능성

    아베 사람으로 채운 새 내각… ‘스가 2기’ 위한 숨고르기 가능성

    모테기 외무상 등 아베 내각 8명은 유임관방에 가토·아베 동생 입각 ‘보은 인사’계파 규모 비례한 안배… 극우 색채 완화 파벌 수장 아닌 아베, 영향 행사 적을 듯“중의원 해산·내년 자신만의 내각 노린 것”일본의 집권 자민당 총재인 스가 요시히데가 16일 총리로 공식 취임하면서 일본에 약 8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하지만 새 정권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내각 구성은 아베 신조 총리 때를 거의 답습한 형태여서 ‘또 다른 아베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가 총리를 포함한 전체 21명 중 16명이 아베 정권에서 1차례 이상 각료(장관)를 지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당내 파벌 구도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감안한 것이라는 등의 분석이 나온다. 스가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총리로 공식 지명된 뒤 조각 명단을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변화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제5차 아베 내각’, ‘특색도 재미도 없는 인선’, ‘돌려막기·회전문 인사’ 등의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스가 총리가 일찍이 ‘아베 정권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웠던 만큼 변화의 기대를 별로 안 했던 사람들조차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심하다”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스가 총리가 지난 14일 자민당 총재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던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에 어울리는 실무형 인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스가 총리는 우선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 등 기존 각료 8명을 유임시켰다. 사실상의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는 과거 자신의 밑에서 관방부장관을 지냈던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을 낙점했다. 당초 관방장관 발탁설이 나왔던 차기 유력 총리 후보 고노 다로 방위상은 행정개혁담당상에 임명됐다.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 중의원 의원은 이번에 방위상으로 처음 입각했다. 어릴 적 외가에 양자로 들어갔던 그는 아베 정권 때 외무부대신, 방위대신 정무관(차관급), 중의원 안보위원장 등을 지냈다. 아베 전 총리의 절친인 가토 관방장관과 기시 방위상의 중용은 스가 총리가 자신이 권좌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임자에 대한 ‘보은인사’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의리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가 소식통은 “자신이 속해 있는 파벌(호소다파)의 수장도 아니고 추종하는 후배 정치인이 많지도 않은 아베 전 총리가 현 총리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자민당 당직 임명에 이어 내각 인선에서도 파벌 규모에 비례한 안배가 두드러졌다.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 5명을 비롯해 두 번째 규모의 아소파 3명, 다케시타파·기시다파·니카이파 각 2명, 이시하라파·이시바파 1명, 무파벌 3명으로 배분됐다. 유임된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이 과거 위안부 만행이나 난징대학살 등 과거사 부정 망언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아베 정권에 비해 내각의 ‘극우’ 색채는 크게 약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기시 방위상의 경우 종전일인 지난달 15일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찾았지만 과거사 등에 대한 도발적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내각 변화의 폭을 최소화한 것이 이달 말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중의원 해산과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게 아니더라도 내년 6월 정기국회 폐회 이후 스가 총리가 그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내각 구성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글로벌 In&Out] 종전 75주년과 소련군의 만주공세작전/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종전 75주년과 소련군의 만주공세작전/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5주년을 맞는 해이다. 1945년 9월 2일 일본 대표들이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때문에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서는 9월 2일과 3일이 대일 승전기념일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각종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하다. 미중 간 갈등이 고조되고 미러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대일 승전 75주년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축전을 교환하며 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데에 협력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에 가장 중요한 공동 기억은 1945년 8월 소일전쟁과 만주지역의 해방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대일승전일을 기념해 ‘당연한 최후’라는 제목으로 소일전쟁 관련 사료를 공개했다. 1945년 2월 소련은 미국에 독일 패전 후 최대 3개월 이내에 대일참전할 것을 약속했다. 5월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은 군대를 유럽에서 극동으로 운송하고 개전준비를 서둘렀다. 8월 3일 극동군사령관이 8월 5일부터 대일작전을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절호의 시기는 10일이라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따라서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기도 전에 소련군 공격 개시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8월 6일 원폭 투하 직후 스탈린은 공격개시를 2일 앞당기고 8월 8일로 정했다. 일본은 소련의 참전이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한 후에야 있을 일이라고 봤다. “스탈린은 서둘러 대일전에 나설 만큼 바보가 아니다”라는 당시 전쟁지도를 맡은 참모부 제12과장 사무대행 다네무라 수케타카 대좌의 발언이 유명하다. 8월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했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 몇 시간 전인 9일 새벽 4시 30분에 공격을 개시했다. 소일전쟁의 가장 중요한 작전은 만주전략공세작전이었다. 목적은 관동군을 격파해서 만주와 한반도를 해방하는 것이다. 소련의 자바이칼전선군, 제1·2극동전선군은 동서북 3방향에서 맹공격을 시작했다. 그중 태평양함대의 지원하에 제1극동전선군의 일부 부대가 한반도 주둔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고, 주력은 만주 해방에 집중했다 소련군의 만주 공세는 결코 쉽지 않았다. 지리적으로 만주의 동서북 3면은 산과 숲이, 서쪽에는 해발 1900m에 이르는 대싱안링 산맥이, 내몽골 지역은 반사막 지대가 있어 통행이 극히 어려웠다. 일본군은 지리적 조건을 활용해 복잡한 방어시설망을 구축했고 결사대를 조직해 소련군에 완강히 저항했다. 독소전쟁에도 참전한 소련군인의 회고록에는 ‘독일인들은 장교가 있으면 강한데 장교를 죽이고 포위하면 항복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장교가 없어도 끝까지 싸웠던 경우가 많아 차원이 다른 적이었다’란 평가도 있다. 그러나 유럽전선에서 단련된 소련군의 진격속도는 일본군의 상상을 초월했다. 중공의 팔로군 등과 협력한 소련군은 난공불락이던 관동군의 방어선을 일주일 만에 완전 돌파했다. 8월 15일 일황의 항복선언에도 전투를 계속하던 일본군은 18일에야 항복하기 시작했다.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은 민간인도 학살했다. 러시아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8월 17일 왕예먀오에 진출한 소련군은 일본군에 사살당한 500여명의 민간인 시신, 부상한 26세의 한국 여성과 36세의 일본 여성, 그리고 갓난아이 1명을 발견했다. 구출된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후퇴하는 일본인 부대가 소련군의 복장을 하고 민간인들을 모아 총살했고, 총으로 죽지 않은 사람들은 칼로 죽였다고 했다. 소련군의 만행으로 위장해 민간인들이 소련군에 저항하도록 만들려고 했단다. 하지만 소련 측 사료에 따르면 소련군이 점령한 도시에서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이들을 해방자로 환영했고 은신한 일본군인과 관료의 색출, 각종 정보 제공, 파괴된 시설의 복구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한다.
  • “형제보다 경제”… ‘앙숙’ 이스라엘과 손잡고 새 판 짜는 중동

    “형제보다 경제”… ‘앙숙’ 이스라엘과 손잡고 새 판 짜는 중동

    산들바람이 불던 지난 8일(현지시간) ‘다윗의 별’이 들어간 이스라엘 국기가 ‘범아랍 왕가’를 뜻하는 빨강 하양 검정 그리고 녹색 문양의 아랍에미리트(UAE) 국기와 나란히 휘날렸다. 그곳은 백악관 잔디밭도, 캠프 데이비드도 아닌 두바이 외곽 사막이었다. 여성 모델 두 명이 양국 국기를 흔들거나 몸에 두르고 촬영에 임했다. 이스라엘과 UAE의 국교 정상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행사는 정장을 차려입은 외교관이 아니라 파자마 차림의 여성 모델이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촬영차 두바이에 왔다는 이스라엘 모델 메이 태거(21)는 “이곳에서 촬영하는 첫 이스라엘 모델이 돼 매우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며 “내가 이스라엘에서 왔지만 여기 머무는 게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 옆에서 UAE 국기를 흔든 모델은 두바이에서 활동하는 아나스타샤 반다렌카였다.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지구촌의 미국과 중국, 독일과 러시아 등이 냉전급 불화를 겪는 가운데 ‘앙숙’ 관계였던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이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새롭게 국교를 정상화한다. UAE와 바레인은 아랍 국가로는 이집트·요르단에 이에 세 번째, 네 번째로 이스라엘과 수교한다. 이날 수교 서명 행사에는 이스라엘과 합의한 바레인 외무장관도 참석한다. 지난 11일 발표된 바레인과 이스라엘 수교에 대해 트럼프는 “9·11 테러를 낳은 증오에 대해 이보다 더 강한 대응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에겐 치적, 네타냐후에겐 스캔들 돌파구 네타냐후는 트윗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로 워싱턴을 방문한다”며 “UAE와의 수교에 서명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열리는 역사적 행사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UAE 국영 통신사 WAM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외무장관이 이끄는 대표단이 서명식에 참석한다고 전했다. 압둘라티프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도 참석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외교 치적을 호소할 기회를 잡았다. 물론 부패 스캔들로 재판을 받는 네타냐후도 정치적 반전의 돌파구로 삼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UAE와 국교를 수립한 것은 지난달 13일 ‘아브라함 협정’ 발표 이후 한 달 만이다. 이스라엘의 유대교, UAE의 이슬람이 공동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을 앞세운 협정의 이름에서 보듯 공유할 가치를 찾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친서방 성향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시온주의 단체’, ‘적’이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하면서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했다. 양국의 국교 정상화 배경에는 네타냐후의 외교 수완도 있겠지만 중동 정세 변화가 더 큰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2010년 12월부터 확산된 반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 당시 걸프만 군주들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지 않는 것보다 철권 정치와 부패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파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쫓겨나도, 시리아가 시위에 가담했던 자국민을 학살해도 미국은 무기력했다. 수십 년간 동맹으로 의지한 서방 국가들은 위기의 순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 국가가 알게 됐다. 또 세대가 바뀌면서 걸프 국가들은 팔레스타인보다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랍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경제 특히 정보기술(IT)과 의약 부문을 부러워한다. 아랍 일부 국가는 국가 안보와 관련해 이스라엘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집트와 요르단으로부터 듣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터(WP)는 전했다. UAE는 아랍에서는 늦은 1971년 독립하는 바람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른 적이 없고, 다른 아랍 국가와는 달리 석유 경제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제주도 3분의1 크기의 섬나라 바레인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한 2018년 5월 “이스라엘도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가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으면서 UAE는 아브라함 협정 발표 다음날 이스라엘을 향한 인터넷 차단을 풀고, 각료들의 통화 라인을 개설하면서 경제 협력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스라엘 국적기가 지난달 31일 사상 처음으로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날 처음으로 이스라엘 항공기의 상공 통과를 허용하면서 UAE로 오가는 항공편에 대해 빗장을 풀었다. 덕분에 이스라엘 민항기는 사우디를 우회하면 7시간 걸릴 시간을 절반인 3시간 20분으로 줄였다. 하지만 UAE나 바레인엔 팔레스타인을 ‘배신’하는 데 명분이 필요했다. UAE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강 서안 합병 계획을 중단시키겠다는 약속을 이스라엘로부터 받아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지역으로,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이 일대에 유대인 60만명도 살고 있다. 국교가 정상화됐다고 해서 UAE가 당장 논란이 많은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개설할 것 같지는 않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려 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의 국교 정상화는 중동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위협이자 공동의 적인 이란에 대한 우려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집트가 1979년 3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후 미국으로부터 최신 무기를 반입할 수 있었던 것처럼 UAE 역시 미국으로부터 최신 기종의 드론과 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F35 수입도 기대하고 있다. F35 해외 반출은 의회 승인 등 수개월이 걸리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UAE의 F35 보유 여부는 유동적이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는 미해군 제5함대 사령부 본부가 있다.●팔, 서안 합병 중단 약속에 비난 수위 낮춰 양국의 국교 수립에 팔레스타인만큼이나 반발하는 나라는 이란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형제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중동에서 반(反)이란 연맹이 형성되는 것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UAE와 바레인을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2009년 취임 첫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힘입어 핵문제 해결에 합의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보유를 추구해 왔다. 또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의 반군을 계속 지원했다. 실제로 이란이 지난해 9월 사우디 정유시설을 타격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스라엘과 UAE가 급속히 가까워졌다고 WP가 분석했다. 이란과 함께 터키와 카타르도 자국 아부다비 대사관을 철수하겠다면서 국교 정상화를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의 조직인 아랍연맹(AL)은 지난 9일 열린 화상회의에서 팔레스타인의 설득에도 수교를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에 실패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고 비난했던 초기와는 다른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밝힌 요르단 서안 합병 중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하고 있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역시 합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두 국가론’은 팔레스타인 희망대로 살아 있다. 이스라엘이 서안 합병에서 물러선 가장 큰 이유는 “어렵게 달성한 평화와 지역 안정을 해친다”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경고’였다고 WP가 짚었다.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 국가가 많아지면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가 많아진다는 게 이 매체의 진단이다. 잇따른 수교를 묵인한 ‘중동 맹주’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2500년 기독교는 어떻게 힘을 키웠나

    2500년 기독교는 어떻게 힘을 키웠나

    세계 지배한 기독교 역사21개 핵심 키워드로 풀어‘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모순적 교리에 박해 견뎌이분법적 갈등에 직면 땐‘사랑’이란 무기로 이겨내 지난달 개신교 일부가 주도한 서울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기독교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 주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기독교인이 3분의1인 20억명에 이른다. 서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곳곳에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다.역사학자 톰 홀랜드의 신간 ‘도미니언´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서양인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됐는지, 그리고 강력한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기원전 497년 아테네에서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2500년 방대한 기독교 역사를 21개 주제어로 풀었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으로 ‘모순’을 꼽는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 대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라”는 핵심 가르침 역시 지극히 모순적이다. 저자는 이런 태생적 모순이 강자였던 그리스·로마 문명을 기독교 문명으로 바꿀 가능성을 열었다고 설명한다. 이 모순적인 교리는 온갖 박해와 학살을 견디게 했고, 기독교는 결국 제국의 심장부에 들어선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는 391년 국교로 선포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당시 로마 제국이 쇠망을 막고자 기독교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기독교는 실제로 야만족이 몰려왔을 때 민족을 뭉치게 했고, 야만족을 가르쳐 문명화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온전히 지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주교의 선임권을 두고 교황과 하인리히 4세 간 갈등을 부른 107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는 우위를 점했지만, 14세기 초부터 왕권에 눌리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세속주의’로써 이 위기를 벗어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국가가 인간의 본성에 합치되지만, 동시에 내세에 하느님과 살아야 하는 초자연적 운명도 지니고 있다며 ‘성’과 ‘속’으로 구분한다.모순의 종교는 갈등을 불렀다. 기독교는 주류 지배 세력이 된 뒤엔 자신들의 가르침에 제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왕권과 갈등에 이어 교회의 권위와 성령에 관한 도전에 직면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19세기 들어 니체가 강조한 인간 이성,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남녀 갈등에도 직면했다. 저자는 오랜 갈등을 이겨 낸 강력한 무기로 ‘사랑’을 꺼내 든다. 율법 준수, 교리 합리성, 성과 속의 이분법 등을 풀어 낼 핵심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 저자는 예수가 박해 속에서도 “일곱 번씩 용서하라”고 주장했듯, 사랑과 용서가 서양인들의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행동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율법을 내세우는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애초부터 율법만 가지고는 세상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 저자는 기독교 역사를 예수, 사도 바울,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비틀스의 ‘이매진’,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이민자 정책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이야기들로 구성했다. 한마디로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기독교의 흥망성쇠와 핵심 교리를 이야기로 풀어 내는 능력이 그야말로 경이롭다. 기나긴 역사를 돌아본 뒤엔 이런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어떤 상태인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보이는 대로 쏴 죽여라”… 로힝야족 학살 자백한 미얀마군

    “보이는 대로 쏴 죽여라”… 로힝야족 학살 자백한 미얀마군

    미얀마군 지휘관들이 무슬림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마을에서 “보이는 대로 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동영상 증언이 나왔다. 이는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가 미얀마군에서 탈영한 병사 2명의 증언을 담은 것으로, 정부군이 집단 학살과 강간 등에 개입했다는 첫 공개 자백이라고 AP통신이 9일 전했다. 포티파이 라이츠는 이들의 증언 동영상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로힝야족 학살 행위 조사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경보병 대대 소속이었던 30대 사병 2명은 서부 라카인주에서 반군 아라칸군(AA)에 붙잡힌 뒤 ‘로힝야족 집단 학살’을 증언하는 동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사 한 명은 로힝야족 마을을 습격할 당시 제15 군사작전센터 지휘관이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쏴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 지휘관은 또 “칼라(로힝야족을 비하하는 말)를 몰살시키라”고 명령했다. 이에 남성들의 머리에 총을 쏜 뒤 시신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고, 여성들은 죽이기 전에 강간했으며 자신도 성폭행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병은 자신의 부대가 대대 지휘관의 승인으로 로힝야족 마을 20곳을 쓸어버리면서 80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위의 지시로 한 작전에서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으로 의심받은 주민 10명을 묶어 사살했다. 포티파이 라이츠는 이들이 네덜란드 헤이그로 갔다며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장교가 ”다 쏴“ 지시”…미얀마군, 로힝야족 학살 최초 증언 영상 나왔다

    “장교가 ”다 쏴“ 지시”…미얀마군, 로힝야족 학살 최초 증언 영상 나왔다

    2017년 미얀마 정부군이 저지른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 대학살 당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다 쏴라”는 장교 상관들의 명령을 이행했다는 탈영 군인 2명의 영상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8일(현지시간) AP·뉴욕타임스(NYT)는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가 해당 영상 증언을 확보했으며, 이는 미얀마 정부군이 벌인 대학살에 직접 참여한 군인들의 최초 공개 고백이라고 전했다. 대량학살과 강간, 방화가 자행됐다는 증언이 로힝야 난민 피해자가 아닌 가해 당사자의 입에서 직접 나온 셈이다. 탈영한 이등병인 묘 윈 툰은 영상에서 “당시 학살에 가담해 희생자들을 감방탐과 군사기지 인근 집단 무덤에 매장했다“고 말했다. 역시 이등병인 자우 나잉 툰은 “동일한 시기에 ‘아이나 어른이나 눈에 보이는 대로 죽여라’는 상관 명령을 따랐다”며 “약 20개 마을을 소탕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작전에 참여한 지역은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미얀마 서부 타웅바자르 지역의 마을이다. 군인들의 증언은 방글라데시에 은신 중인 로힝야 난민들에게서 제기된 인권유린의 구체적인 주장과 일치한다고 NYT는 전했다. 두 군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들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과 방화, 강간을 증언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다수의 현지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증언에서 제공한 집단묘지의 행방을 확인했지만, 미얀마 정부는 학살지 대부분이 불태워진 이유로 학살 사실 자체를 거듭 부인해 왔다. 이 영상은 반군 민병대가 녹화한 것으로, 두 사람은 지난달 미얀마를 탈출해 7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됐다. 이들은 구류상태에 들어갔고, 향후 법정에서 증언을 하거나 증인 보호에 들어갈 수 있다. ICC는 현지 군인과 지도자들, 미얀마 정치인들이 로힝야족 대량 학살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앞서 아프리카국 감비아가 지난해 ICC에 미얀마를 인종 말살 혐의로 제소한 상태다. 미얀마 독립 직후부터 시작된 정부군의 로힝야족 학살은 2017년 서부 리카인주에 거주하던 무국적 난민들을 화염방사기 등 무력으로 공격하며 극에 이르렀다. 당시 목격자와 생존자들은 “노인들은 목이 잘렸고 어린 소녀들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7년 8월부터 한 달 사이 어린이 730명을 포함, 최소 6700명의 로힝야족이 숨졌다고 추정했다. 유엔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200개의 로힝야 정착촌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이사회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미얀마에서 대량학살 행위가 발생하거나 재발할 우려가 있으며, 이를 방지·조사하고 효과적인 법률을 제정해 집단학살을 처벌할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의 실권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지난해 12월 대량학살 혐의에 대해 군부를 지지하고 정부의 박해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 등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받고 있다. 미얀마와 로힝야족의 갈등 관계는 역사적으로 복잡다단한 측면이 있다. 미얀마 및 방글라데시에 걸쳐 거주해 온 로힝야족은 불교국인 미얀마의 영국 식민지배 당시 민족분리정책으로 주요 민족인 버마 민족을 통치하는 제2지배계급 노릇을 하며 버마족과는 앙숙이 됐다. 영국에 이어 일본이 식민 통치할 때도 일본에 협조하는 등 버마족 입장에서는 ‘앞잡이’ 노릇을 했다. 미얀마는 1947년 독립 이후 조직적으로 로힝야족 탄압에 나섰고, 2017년 대대적 토벌로 7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그러나 100만명까지 늘어난 방글라데시 난민촌이 로힝야족은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또다시 보트 피플이 되어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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