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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탄 동네 ‘도시속 섬’/ 세대주 나이 63세·가구당 월수입 48만원

    무게 3.6㎏,발열량 460㎉의 원통형 화석연료.도시가스와 아파트형 주거문화가 보편화된 현실에서 연탄의 몰락은 필연이다.하지만 2003년 11월 현재 서울 시민의 0.15%는 여전히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고 있다.정보화시대의 첨단도시 서울에서 산업화시대의 석탄연료에 의지해 겨울을 나야 하는 그들은 누구인가.대한매일은 연탄사용가구가 밀집한 ‘연탄 섬’ 4곳을 찾아 주민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 오로지 벌겠다는 일념으로 짐을 꾸렸다.고향인 전남 담양을 뒤로 하고 무작정 떠났다.차창 밖 만경평야는 서글프게 푸르렀다.창신동 산동네에 사글세 판잣집을 얻고 일거리를 찾아 서울거리를 헤맸다.3년 만에 마련한 8평 짜리 전셋집.고향 읍내 기와집이 부럽지 않았다.하지만 시골 부모 생활비에,아이들 학비에,돈은 좀체 모이지 않았다.이사철이면 산동네를 떠도는 생활이 반복됐다.서초동,현저동을 거쳐 홍은동,홍제동까지.윤중호(67·가명·서대문구 홍제3동)씨는 지금도 35년 전과 다름없이 산동네 판잣집에서 연탄을 때며 겨울을 난다.이젠 운명이거니 체념하고 있다. ▶관련기사 13면 대한매일이 서대문구 홍제3동,성북구 월곡3동,영등포구 문래동,송파구 거여동 등 4개 지역에서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중인 20가구를 무작위로 추출,설문과 심층면접을 실시한 결과 80%인 16가구가 월 소득 50만원 이하의 극빈층으로 조사됐다.전체 20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48만 4000원으로 35%인 7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였다. 이들의 75%는 1960∼70년대 이농열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서울 토박이는 25%에 불과하다.연탄을 사용한 기간은 평균 33.8년.연탄 말고 가스나 기름 등을 사용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가구가 85%나 됐다. 조사결과 이들의 85%는 연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가격이 저렴해서’라고 답했다.‘동네에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라는 응답은 10%,‘사용이 편리해서’나 ‘다른 연료보다 따뜻해서’라는 응답자는 없었다. 세대주 20명의 평균 나이는 62.8세.직업은 무직이 70%,공사장 인부,파출부 등 일용직이 20%였다.무직자 14명 중 4명은 최근 5년 동안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나마 직업을 가졌던 10명도 모두 일용직이었다. 건강문제도 심각했다.응답가구 모두 가족 중 질병을 앓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 있다고 답했다.질병 가운데 관절염,당뇨,고혈압 등 노인성질환이 70%로 가장 많았고 기관지염,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는 응답도 25%나 됐다. 월곡3동 달동네 인근에 위치한 백제의원 관계자는 “대부분 고령자로 노인성 질환이 많다.”면서 “부실한 난방 탓에 겨울철에는 호흡기 질환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극빈층에게는 기초생활보장 제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일자리 제공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5%에 불과한 공공부문의 고용비율을 터키와 비슷한 10%로 확대하면 50만∼6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자활노력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공적부조의 규모 또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세영 유지혜 기자 sylee@
  • 한학기 수강료 1500만원/과학기술원 EMBA과정 내년 신설

    한 학기 수강료가 무려 1500만원인 고급 학위과정이 선보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18일 테크노경영대학원이 내년 3월 신설하는 주말반 EMBA(Executive MBA) 과정의 한 학기 수강료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진 의대과정의 약 400만원에 비해 4배에 가까운 1500만원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4학기 동안 모두 6000만원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KAIST측은 “등록금에 해외파견 교육비용,교재비,국내 워크숍 비용,주말 중식비,결석에 대비한 수업 녹화비디오제공 등 일반 학위과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교육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면서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EMBA 과정은 직장 경력 10년이상의 중견관리자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으로 차세대 최고경영자들이 고민할 만한 전략적 이슈나 최신 경영 패러다임 등으로 구성돼 있다. KAIST측은 “개인비용을 들여 과정에 참가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기업이 핵심 인재를 차세대 최고경영자감으로 키우기 위해 학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면서 “17일 현재 삼성전자,KT,포스코 등 20개 기업이 파견을 결정했거나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안미현기자 hyun@
  • ‘국적회복’ 나선 中 동포/(하)中현지 조선족 4명 좌담회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조선족들에게 불법 체류는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국에서보다 한달에 20배 가까이 돈을 버는 ‘한국행’은 중국 조선족들에게 어떠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엄청난 ‘유혹’이다. 중국 소수민족으로 갖은 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의 한국행 배경에는 한국에서 ‘목돈’을 만들어 중국에서 인간답게 살겠다는 목표가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극소수 산업연수생 이외에 취업비자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중국 조선족들은 중국 근로자의 10년치 봉급과 맞먹는 7만(1050만원)∼8만위안(1200만원)의 거액을 들여서라도 불법적인 한국행을 선택한다. 대한매일은 불법체류를 통해 한국에서 일을 했던 중국 조선족들과 긴급 좌담을 갖고 조선족들이 갖고 있는 ‘코리아 드림’의 전모를 살펴봤다. 참석자는 조선족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린(吉林)성 출신의 김영도(金永道·54),송동해(宋東海),이형식(李炯植·51),김선광(金善光·50)씨 등이다.이들은 자신들이 불법체류 경험이 있거나 가족들이 불법체류 상태로 있다. 최근 조선족들이 집단으로 국적 회복에 나서고 있는데. ●김영도 중국 국적을 버리면 중국에 있는 토지가 몰수되고 자식들도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아마 국적 회복을 신청한 사람들의 90%는 진정으로 한국에 살기보다 자유롭게 돈을 벌고 싶다는 이유일 것이다.지금은 불법체류자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단속하니까 열을 받아서 그럴 것이다.한국 정부가 조선족들에게 경제활동의 문호를 보다 확대해주기를 기대한다. ●송동해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를 이유로 중국 내 한족(漢族)보다도 못한 대우를 하고 있다.굳이 ‘한 핏줄’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중국에서 한족들에게 치이고 마음의 조국이라는 한국에서도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김선광 조선족들은 심지어 북한 사람만도 못하다.북한 사람이 한국에 가면 정착금으로 3000만원이나 받고 대우도 좋은데 우리 조선족들은 불법체류라는 약점이 잡혀 참으로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한 보람은 있는가. ●김영도 91년부터 97년 IMF사태 직전까지 만 6년간을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통해 돈을 벌었다.나는 공사판을 전전하고 아내는 주로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한푼두푼 저축했다.97년 중국에 돌아올 때 100만위안(1억 5000만원)을 손에 쥐었다.이를 밑천삼아 베이징에서 식당을 차려 지금은 집이 세 채가 됐다. ●송 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정도 아내와 불법체류를 하면서 40만위안(60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지금은 한 10개월 정도 사업을 모색하면서 쉬고 있다.아내는 월 80만원 정도 벌었고 나는 150만원 선이다.지금은 베이징에서 식당을 하려고 물색 중이다. ●이형식 2년반 전에 아내가 가서 지금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진황도 복장회사에 근무하던 아내가 산업시찰로 가서 그곳에 눌러앉았다.식당에서 130만원 정도 벌고 있는데 초기에 두 달 정도 아파서 3만위안(450만원)을 썼다.2년 정도 지나 본전을 뽑은 상태다. 불법체류자들을 알선하는 브로커 조직은 어떤지. ●김영도 옌볜지역이나 베이징 등 조선족들이 사는 곳에는 브로커들과의 연계망을 갖고 있다.조선족 1명이한국에 가려면 대략적으로 7만(1050만원)∼8만위안(1200만원)이 든다.전문 브로커들의 도움이 없으면 한국행은 불가능하다. 중국 시골에서는 한달 임금이 500위안 안팎이다.브로커들에게 주는 돈은 중국 근로자들의 10년치 월급과 비슷하다.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 근로자의 99%가 이런 거액의 돈을 주고 한국에 간다. ●이 전문적으로 분업화돼 있다.내 고향의 한 사람은 2년 전에 한국에 갔는데 브로커에게 8만위안을 줬다.한국에 연계망을 갖고 있는 브로커가 5만위안을 챙기고 비행기 삯이나 부대비용 등 경비가 2만위안 정도 든다.중간에서 조선족을 소개한 사람은 1만위안 정도를 챙긴다.보통 1년3∼4개월을 꼬박 일해야 브로커들에게 준 돈을 갚을 수 있다.돈을 벌러 간 조선족들이 불법체류를 해서라도 돈을 벌려는 것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 거액의 돈은 어떻게 조달하는가. ●송 조선족들의 80∼90%는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린다.이자가 싼 은행돈은 생각도 못한다.보통 같은 마을의 한족(漢族)들에게 연리 30∼40%로 돈을 빌린다.‘재주는 조선족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한족)이 챙긴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7만위안을 빌리면 1년 이자만 해도 2만∼3만위안이다.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쫓겨나면 다시는 못오기 때문에 죽자살자 도망다니면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다.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나갔다가 1년 안에 붙잡혀 오면 하늘이 노랗게 된다. 불법체류 때문에 조선족 사회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김영도 한국에 갔다가 1년도 안돼 단속에 걸려 중국으로 쫓겨나면 그 집안은 거의 망한다고 봐야 한다.원금은 고사하고 30∼40%의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또 빚을 내서 불법체류의 길을 찾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빌려준 돈을 되찾기 위해서 또 돈을 빌려준다. ●송 보통 부인이 한국에서 돈을 벌며 조선족 남자는 술과 도박으로 벌어온 돈을 탕진하는 사례가 숱하다.한국에 한번 가면 5년은 기본으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정은 깨진 상태가 된다.한국에 1년 이상 있으면 사실상 이혼상태가 된다.남자,여자 모두 딴 살림을 차리고 자식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중국에서 조선족들의 위치는 날로 떨어질 것이다. ●김선광 일부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조선족 젊은이들은 경마에 빠져 있거나 술로 돈을 탕진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월급날만 되면 근처 술집아가씨들이 기다렸다가 월급을 가져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oilman@ ■정인갑 칭화大교수 인터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정부의 조선족 정책은 불법체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중간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고 있을 뿐입니다.” 칭화(淸華)대 객원교수이자 베이징시 삼강학교 교장인 정인갑(鄭仁甲·사진)교수는 일부 조선족들의 국적 회복 운동에 대해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근로활동의 자유를 원하는 것이지 결코 한국에서 살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인 근로자들의 10년치 봉급에 육박하는 7만(1050만원)∼8만위안(1200만원)을 브로커들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조선족들의 불법체류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일부 조선족들의 국적 회복 움직임에 대해서 중국 내 조선족들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 -조선족의 본질과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중국 조선족들은 냉전체제의 희생자들이다.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만 없어도 3분의2는 고향으로 돌아갔을 사람들이다. 옌볜 조선족자치구 성립과 동시에 조선족 대부분은 중국인이 됐다.당시 중국 정부는 귀화 신청서를 강제로 쓰게 했고 이에 반대했던 조선족들은 모두 숙청됐거나 탄광으로 쫓겨갔다.본인들의 희망과 상관없이 중국인이 됐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선족들이 원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조선족들이 정말로 대한민국 국적을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사태는 불법체류자 강제 추방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중국 조선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어 중국에 돌아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중국의 조선족들은 기질 상 상당히 중국화됐다.지금은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이 좋다고 하지만 5년이나 10년후 중국이 살기 좋아지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한국에 가라고 해도 안갈 것이다. 물가와 생활비,학비 등 생활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이 한국보다 더 편안하다고 생각한다.나도 강연을 통해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대해 쓸데없는 ‘기대감’을 갖고 갈팡질팡하면 한국 사람들도 조선족들을 얕잡아 보고 중국에서는 의붓자식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감정적 접근보다는 한국과 조선족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지금은 입출국이 너무 어려워 한번 한국 땅을 밟으면 ‘목돈’을 쥐기 전에는 절대 중국에 안 온다. 하지만 한국에 다시 간다는 보장만 있다면 당장 5만명 정도는 중국에 있는 자식과 부모 형제를 보기 위해서라도 귀국할 것이다. 조선족들에게 문호가 개방되면 당장의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인력 공급이 급증해 한달 평균 1만위안(150만원) 안팎의 임금은 절반 가까이 떨어지게 된다.불법 체류자들이 모진 고통을 겪으며 버틸 만한 경제적 이익이 없어지는 셈이다. 인간은 10배의 이익만 보여도 단두대에 오르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지금처럼 조선족들에게 20배의 이익이 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아무리 막아도 불법체류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인간의 본성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 신세대들의 의식 변화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만주로 넘어온 1세들이나 직계 자손인 2∼3세들은 중국에서 손해를 보면서 한국에 미련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요즘의 4세대들은 미련을 갖지 않고 있다.조선족들도 세대교체의 시기가 온 것이다.이제 중국에 발을 붙이고 뿌리를 박고 이 나라에서 신용을 얻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조선족들의 입출국을 개방하면 당장 혼란이 클텐데.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도 절대 손해가 아니다.조선족들도 7만∼8만위안의 거액을 브로커들에게 빼앗기지 않아 한국 체류 시간을 단축할 것이고 한국 정부에 대해 감사의 마음도 갖게 된다. 경제적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항공료는 물론 선물로 사가는 한국 제품 구입 비용으로 한국 경제도 좋아질 것이다.조선족들은 브로커 비용을 뽑기 위해 한국에서 평균 1년3개월을 일해야 한다.브로커들의 활동 여지를 없애야 한다.60년대 중국에서도 암시장에거 거래됐던 쌀값이 양성화되자 20분의 1로 가격이 떨어진 전례가 있다.
  • 건강단신/ 무농약 흑미 27일부터 시판

    유기농 전문업체 유기농하우스(www.ugin ong.com)는 27일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약 흑미(사진)를 시판한다.경남에서 유일하게 무농약 인정을 받은 제품이라는게 회사의 설명이다.제조는 경남 산청 유기농협회.800g에 8400원.(02)565-8014.
  • 美國서 학비 가장 비싼 대학 뉴욕의 새러 로런스大

    |뉴욕 연합|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포함한 학비가 가장 비싼 미국의 4년제 대학은 뉴욕시 외곽의 새러 로런스 칼리지라고 뉴욕 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신문은 미국 대학협의회의 자료를 인용해 새러 로런스 대학의 등록금(3만 824달러)과 기숙사비(1만 394달러) 등 연간 학비가 4만 1218달러(약 4900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신문은 새러 로런스 칼리지의 시설은 낡고 수수한 편에 속하지만 독특하고 이색적인 교육의 질을 제공,비싼 학비에도 불구,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우선 교수 한 명당 학생 수가 6명에 불과하고 학생들을 돌봐주고 매주 상담해주는 전담 지도교관이 학생들에게 배정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전공제도도 없고 필수 과목도 없다.매 학기 초 학생들은 수강과목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교수진과 3일간 해당과목에 대해 인터뷰를 해서 해당 과목의 구체적인 방향을 결정한다. 수업은 세미나로 이뤄지고 한 과목당 학생 수는 15명 이내로 제한된다.공통과제는 있지만 교수와 일대일 면담을 통해 개별적인 연구과제도 선정된다.학생들이스스로 과제를 만들 경우 한 학생에 한 명씩 지도교수가 배정된다.
  •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가르침대로”11년째 택시 몰며 포교/ 부산 보광정사 지홍 스님

    ‘하루 일하지 않거든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부산 금정구 금사동 보광정사 주지인지홍(51) 스님의 좌우명이다. 그에게는 택시 운전기사라는 또 다른 직업이 하나 있다.만 11년째 강산이 변한다는 적지 않은 세월을 애마(개인택시)와 함께 해왔다.한때 하루 4∼5시간씩 핸들을 잡았으나 최근에는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아 하루 2∼3시간 정도 운전을 한다. 흔히 머리깎고 속세를 등진 대부분의 스님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절밥(?)을 먹기까지에는 남다른 아픈 사연이 있다. 울산 언양이 고향으로 6남매중 둘째였던 지홍 스님은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열네살 때 절에 들어왔다. “당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절에 가면 밥도 먹고 학교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입산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어머니께서 옷이 떨어지면 기워 입으라고 대나무 꼬챙이에다 흰실과 검은실을 감아준 게 유산의 전부”였다고 말한 그는 어릴 때의 슬픈 기억을 지우기라도 하듯 단숨에앞에 놓인 녹차를 훌쩍 마셨다. 지홍 스님이 택시 운전을 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사찰 운영경비 마련과 포교 활동 등을 위해 핸들을 잡게 됐다고 한다. 20여년 전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망자의 염을 해 모은 약간의 돈과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현재의 사찰 부지에 터전을 마련했다. 현재 절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1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부모의 이혼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된 아이들이다. 절이 문을 연 지 얼마 안됐을 때 부모가 이혼해 조카를 돌보고 있던 한 신도가 형편이 어려우니 절에서 맡아 달라고 부탁한 게 시초였다.이후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인원이 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들에게 들어가는 학비 등 경비가 수월찮았다. 그러던 차에 택시기사를 하면 아이들 학비도 벌고 포교 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즉시 택시회사 문을 두드렸다. 신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택시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이마저 얼마 안돼 그만두었다.사납금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핸들을 잡아야하고 일하는 동안에는 절 살림을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결국 개인시간을 내기가 수월한 개인화물(용달차) 면허를 사 운행한 뒤에야 비로소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게 됐다. 어린 나이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온 지홍 스님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좌우명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다. “승려 노릇 제대로 해야 합니다.마냥 신도들에게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승려가 되기 위해 수행할 때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옛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를 뿐입니다.” 그는 승려가 된 후 뒤늦게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른둘의 나이에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 그는 속세로 지천명(知天命)인 오십이 넘었는데도 동국대 문화대학원 장례과에 다니는 등 만학도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스님은 장례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지난 8월에는 사찰 경내에 장례예식장과 장례문화연구소를 설립,제례 방법 및 절차 등 장례문화에 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누가 내 밥상을 차려주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지홍 스님이 속세인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잠언 역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일본내 중국인은 좀도둑”日 가나가와현 지사도 망언 中 反日감정 불매운동 비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내 반일(反日) 감정이 심상치 않게 고조되면서 일본인과 용모가 닮은 한국 유학생들로까지 불똥이 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어글리 재패니스(추악한 일본인)’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잠복해 있던 반일 감정이 폭력을 동반한 시위로까지 폭발했다.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도 지사의 망언과 일본 유학생들의 음란물 공연 등으로 반일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3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지사가 다시 중국인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타오르는 반일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이날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 가나가와현 지사는 2일 저녁 가와사키에서 중의원 총선거 지원유세중 치안 악화 문제와 관련,“중국 같은 곳에서 취학비자를 이용해 (일본에) 들어오고 있지만 모두 좀도둑”이라고 말했다. 치솟는 반일 감정이 요즘 중국의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번지는 분위기다.베이징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톈룽왕(天龍網)의 징화(京華)논담에 네티즌들이 몰려와 “일본 군국주의가 총 하나를 적게 사도록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고 호소하고 중국에서 판매되는 소니나 도요타 등 유명 메이커의 이름까지 열거했다.다른 네티즌들은 “일본 돼지들을 중국에서 몰아내자.”,“당사자들을 붙잡아 궁형(宮刑·거세)에 처하자.”는 등 격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29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시베이(西北) 대학 외국어학부생 문화제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가짜 생식기를 동원해 음란한 춤을 추면서 중국 학생들의 반일 시위를 촉발시켰다.이 와중에 지난 1일 일본의 보수정객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중국의 자존심인 ‘유인우주선 발사’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중국인은 무지하기 때문에 기뻐하고 있다.”고 중국 민중까지 자극했다. oilman@
  • “어린시절 가난이 남돕는 힘됐죠”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성당 김동억 신부

    “제 어린 시절에 지독한 가난을 체험해 그런 학생을 돕고 싶었습니다.” 사재를 털어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성당 김동억(金東億·69) 신부는 어릴 적 겪은 가난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소년소녀가장에 2억 2000만원 장학금 김 신부는 지난해 가을 2억 2000만원을 충남 논산 대건고에 소년소녀가장 학생을 돕는 데 쓰라고 기탁했다.학교측은 ‘설암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학생 8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당초 이 돈은 천안 성황동성당 신부로 있을 때인 지난 99년부터 소년소녀가장 출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던 것이었다. 김 신부는 “IMF 한파 이후 어려움을 더 겪고 있는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그가 내놓은 장학금은 신자들이 ‘용돈하라.’면서 때때로 건네준 돈과 평생 월급을 아껴 모은 것이다.그는 이 돈의 이자를 활용,충남도가 추천해 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왔다.추천받은 대학생 5명이 이 돈으로 학비를 해결했다.김 신부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지만 좀더 어린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을 위해 쓰고 싶어서 이번에 고등학교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그 자신도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충남 당진 합덕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몇푼 안되는 학비가 없어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독학으로 나중에 중학교 2년에 편입,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학교를 가지 못해 집에서 일하거나 혼자 공부할 때는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돈이 없어 잡은 물고기를 팔아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그것마저 여의치 못할 때는 이웃들에게 빌려 읽었다고 한다. ●하느님·신자를 위하는 사제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농업고를 졸업한 뒤 서울 가톨릭대에 진학,1961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첫 부임지인 충남 부여군 금사리성당에서 농민들과 함께 보(냇물을 막아 두는 둑)를 건설,천수답을 비옥한 밭으로 만드는 일을 계기로 남을 돕는 그의 삶이 시작됐다.청양에 있을 때는 ‘막장 생활’을 하는 광부들에게 쌀을전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기도 했다. 지난 89년부터는 10년 동안 브라질 상파울루와 미국 LA에서 선교활동을 했다.브라질에서 선교할 때는 옷장사를 하는 교포들과 함께 북부의 가난한 본토 주민과 나환자를 도왔다.또 94년 브라질 한인 교포를 ‘조센징’이라고 조롱하는 일본인을 살해,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던 거제포로수용소 출신 ‘김남수’란 동포를 감형시킨 뒤 고국으로 귀환해 충북 음성 꽃동네에 정착시키는 데도 한몫했다. 사회참여 활동에도 적극 나서 박정희 정권 때인 80년대,해외 선교활동을 떠나기 전까지 정의구현사제단에 동참해 독재타도를 부르짖었다. 그래도 김 신부는 “하느님과 신자를 위해 좀더 사제답게 살았더라면 내 삶이 더 풍족했을 것”이라고 전한다. ●“은퇴해도 봉사는 계속하고 싶어” 그는 틈틈이 시를 쓴다.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란다.사진도 전문가 수준이다.최근에는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과 시,성당 주보에 실었던 글들을 한데 묶어 ‘임의 이름은 하늘에서 빛나고,임의 손길은 땅에서 아름답습니다’라는 칠순 기념 작품집을 냈다. 충남도는 오랫동안 도내에서 사제생활을 해오면서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을 돕고 있는 뜻을 기려 김 신부를 ‘자랑스러운 충남인’으로 추천할 계획이다. 42년간 사제생활을 해온 그는 내년에 은퇴한다.이후에도 그는 “남 돕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김 신부는 “요한복음 ‘위양진명(爲羊盡命·내 양을 위해 목숨을 다한다)’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같은 일을 할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글·사진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씨줄날줄] 3금제도

    금기를 거부하며 자유의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도전은 태초부터 있었다.성서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지 말라는 하느님의 금기를 어겨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만,그 대신 선악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인류사를 진보의 측면에서 보는 역사학자들의 경우 인간이 유사 이래 끊임없이 자유의 영역을 확대해왔다고 긍정 평가한다. 1960년대 말 영화중에 ‘소령 강재구’란 영화가 있다.1965년 월남전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훈련 도중 한 병사의 실수로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수많은 부하들의 목숨을 건지고 산화한 강재구 대위의 희생정신을 그린 영화다.세세한 줄거리는 잊었지만,강 대위의 육사 생도시절 생활 장면 몇몇은 생생히 기억 난다.‘직각보행’,‘직각식사’ 장면들이다.생도들이 이동할 때 직각으로 움직이고,직각으로 팔을 들어 밥을 먹는,‘엽기적’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지금도 육사 신입생들은 정식 입학 전 6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과정에서 ‘직각생활’을 한다.10대 후반의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에게 이제 엄격한 규율 속에 절제된삶을 사는 ‘군인’의 길에 들어섰음을 일깨우는 한 수단일 것으로 이해된다. 육군사관학교가 1951년부터 지켜온 ‘3금(禁)제도’의 완화를 놓고 고심중이라는 보도다.금연·금주·금욕(성생활과 결혼) 중 특정 장소에서의 음주 허용을 검토 중이다.특히 오는 2006년 개관 예정인 교내 생도회관에 대형 ‘호프집’을 만들어 생도들이 토·일요일에 면회 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육사는 올해초 훈육관과 부모,지도교수의 승인 아래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완화했다.이전에는 학교장과 생도대장(준장)의 승인을 받는 경우 등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됐었다. 생도 시절은 평범한 젊은이들이 고도의 애국심과 국가관,사명감,책임감,지도력 등을 갖춘 국가 간성의 역량을 함양하는 시기이다.극도의 자제력과 인내심,극기력이 당연히 요구된다.이 기간 국가는 생활비와 학비,품위 유지비 등을 댄다.생도 1인당 약 1억 2000만원의 양성비가 든다.미 육사의 경우 3금제도를 폐지한 결과 임신,음주사고 등 부작용이 속출해 한때 폐교까지 거론했다고 한다.평범한 사람들의 목을 옥죄는 각종 금기나 성역,차별적인 법규 등의 철폐나 개선은 마땅하다.하지만 사회 모든 집단에 같은 규율이 적용돼야 옳은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 “우리 비평계는 작품분석에 갇힌 꼴”‘문명’읽는 비평의 눈 길러야/방민호교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

    “오늘 한국 비평은 어제에 대한 반정립 또는 타자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또 문학사적·역사적 주제를 옆에 밀쳐두고 작품 분석·설명·해석 등에 국한하거나 서구 이론의 현학적 수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27쪽) 93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비평가 방민호(사진) 국민대교수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향연 펴냄)은 도전적이다.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품분석에 갇히거나 비생산적 논쟁에 휘말려 신음하는 한국 비평계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대안은 비평의 시선을 문화에 가두지 말고 ‘문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임화·김기림 비평의식 계승 못하고 축소 그는 자신의 논거를 위해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으로 에둘러 간다.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조선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고심하며 쓴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해방 이전 한국비평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 임화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라는 비평문에서 ‘문화의 운명’으로나아가며 근대 한국사를 동양이라는 문명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한 김기림의 앞선 걸음에 주목한다.이 두 사람이 미완으로 남긴 문제의식을 해방 이후 우리 비평계가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축소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세계 문학사의 전개’를 쓴 조동일의 방법론에서 문명사적 시각의 부활을 목도하고 최원식에게서 문명론적 시각의 단초를 확인한다.이어 임화,김윤식 등 비평계 거봉을 등반한 지은이는 문학의 보편성을 향한 여정의 중간에 잠깐,‘불문학 비평가’인 황현산과 박철화의 존재의미를 점검하며 한국 비평의 줄기를 넓힌다. 이같은 작업은 저자가 국문학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문학비평,나아가 문명비평의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이를 위해 그는 ‘대상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재일교포 문인과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한국 문화,한국 문학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19쪽)는 지은이의 고백은 “경계인들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더 얻게 되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백민석·오수연 문명의 새흐름 인지 지은이의 잣대는 2부와 3부에서 현장비평으로 구체화된다.소설가 백민석에게서 “그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214쪽)를,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여 불문학을 공부했기에 불어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작가 정양에게서는 “이중의 인연·언어·식성을 갖고 두 개의 세계 속을 자유롭에 유영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230쪽)을,인도 경험을 토대로 ‘부엌’을 쓴 오수연에게서는 “세계를 향해 열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남”(244쪽)을 발견한다.이들은 덜 영글었지만 세계사 흐름을 주시하면서 미래에 걸맞은 새 시민을 싹틔우려는 작가들. 지은이가 이들에 거는 기대는 비평가인 그에게도 오롯이 걸린다.그의 두번째 평론집 제목의 일부처럼 ‘납함(여러 사람이 일제히 고함을 지름)’만이 가득한 시대에 냉철한 현실분석과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 대안을 내놓은 그의 목소리는 그에게 걸린 기대이자 그가 짊어질 과제이기도 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싱가포르 “아시아학생 잡아라”

    |싱가포르 AFP 연합|싱가포르가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유학 시장에서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해 외국의 우수 대학과 유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안전한 치안과 청결,외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미 5만여명의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앞으로 10∼15년내 이 수를 3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중국,인도 등 인근 국가의 부유층들이 오래 전부터 싱가포르에 있는 중등학교나 대학에 자녀를 유학시켰으나 싱가포르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유학생과 외국 유수 학교를 유치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싱가포르 당국은 현재 호주와 영국,미국의 학교들을 상대로 싱가포르에 정규 학부 이수과정을 제공하는 분교 유치를 위한 협상을 진행중이다.이 분교는 현재 싱가포르내에 있는 3개 대학과 우수학생 유치 경쟁을 벌이게 된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담당한 경제개발부(EDB)의 대변인은 “향후 2∼3년내 사립대학을 유치,개교시키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와 함께 “패션과 요리 등의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유럽의 전문학교를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내 아시아인들에게는 호주가 해외유학지로 선호도가 높으며 싱가포르 학생들도 상당수가 호주에서 수학하고 있다. 호주의 유학생 유치홍보업체인 ‘IDP 에듀케이션 오스트레일리아’에 따르면 2002년 2학기에 호주 각 대학에 등록한 외국학생은 약 15만 5000명이며 이들이 호주 경제에 기여하는 규모는 연간 30억 달러에 달한다.싱가포르의 EDB는 외국인 유학생이 수업료 이외에 생활비용으로 한 사람당 연간 3000∼8500달러를 쓰는 것으로 추정했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는 아시아에서 중산층 가운데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경제성장률을 능가하는 속도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최소 180만명의 학생들이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5%가 아시아 출신 학생들이다.그러나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싱가포르의 분석이다. 수억명의 아시아인들이 선진국에서 성공을 거둔사람들의 선례를 밟으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이들이 교육서비스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창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아시아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GSB)과 프랑스의 유명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 등이 싱가포르에 설치한 분교는 10만 달러에 달하는 학비에도 불구하고 경영학석사(MBA) 과정 지원학생들을 모집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GSB의 윌리엄 쿠저 부학장은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중심에 위치,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뛰어나며 교수들과 학생은 일상 생활에서 아무런 어려움없이 강의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시아드 아시아캠퍼스의 헬무트 슈테 학장은 싱가포르가 호주,미국,유럽 등을 상대로 유학 시장에서 경쟁,학생들과 학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성공은 교육의 질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 ‘한국판 모세의 기적’ 전설 日관광객에 쫙 설명하죠/ ‘진도 홍보대사’ 귀화 日人 용구혜자씨

    “진도 섬이 너무 좋아요.” 전남 진도군 사무원(일용직)으로 근무 중인 일본인 용구혜자 (다키구치 게이코·47·여)씨는 ‘섬 특유의 정서와 문화가 녹아있는 ‘보배 섬’에 반했다. 그는 진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그래서 ‘진도 홍보대사’로 통한다.요즘은 내년 5월 ‘한국판 모세의 기적’ 때 일본인 관광객을 맞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관광객들만이 아니다.일본 수학여행단,여행사 관계자,민속학자,교수 등 일본인을 안내하고 진도를 소개하느라 진땀을 흘린다.진도의 문화와 역사,풍속,전설 등을 제3자에게 설명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그래서 그는 각종 서적과 인터넷을 밤낮으로 뒤진다.신비의 바닷길에 관한 전설과 운림산방,다도해 등 공부할 과제도 너무 많다. 씻김굿과 다시래기,만가,아리랑 등 섬지역 특유의 정서와 한(恨)이 담긴 민속과 지리 등을 익히느라 한눈을 팔 틈이 없다.그는 유명 관광지를 돌며 혼자 중얼거리기 일쑤다.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더욱 풍부한 해설을 하기 위해서다.관광객의 계층에 따라 설명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문화관광 해설사' 자격증 취득 최근에는 ‘문화관광 해설사’ 자격증도 땄다.해설사 인정 시험 때 임진왜란과 관련된 진도대교를 주제로 삼았다.명량해전 때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용병술을 찬사해 아낌없는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진도대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명량해전이 일본에는 치욕적인 역사이지만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진도의 가이드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문화해설사 자격증까지 딴 것은 그만큼 이곳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진도가 일본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일본 여가수 덴노 요시미가 ‘진도 이야기’(珍島物語)’를 노래로 만들어 엔카(演歌)부문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다.당시 신비의 바닷길을 체험한 덴노 요시미는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노랫말로 옮겨 일본에 소개했다. 그후 진도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한해 수백명에서 수천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만여명에 이르렀다. 용구혜자씨가 일본 잡지등에 소개되면서 일본여행단은 진도를 ‘필수 관광코스’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진도에 가면 진도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수 있는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이 입으로 전해지면서부터다. 그가 진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1년.도쿄 인근 야마나시 현(山梨縣)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친구를 따라 한국을 찾았다가 진도가 고향인 남편(53)을 만나면서부터. 결혼과 동시에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다.당시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온 뒤 한복집 등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넉넉지 못한 형편상 삯바느질을 하며 자녀들의 학비를 보탰다.가끔씩 진도군 직원을 상대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진도출신 신랑만나 한국귀화 ‘신비의 바닷길’이 국내외에 소개되면서 일본인 관광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이 때문에 97년 진도군 사무원으로 특채됐다.그는 정확한 해설과 안내로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각종 여행사의 ‘창구’로 통한다.여행사에서 일본인 관광객을모셔올 때 으레 그를 찾는다.진도군이 매주 토요일 여는 ‘토요민속여행’과 토착 풍속 등이 일본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그만큼 그가 할 일은 많아진 셈이다. 용구혜자씨는 “주민들도 소박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진도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글·사진 진도 최치봉기자 cbchoi@
  • 야금야금 빼돌린 음식값 4억여원 식당종업원 6년만에 덜미

    서울 서초경찰서는 5일 손님이 낸 음식값을 받아 빼돌린 음식점 여종업원 최모(38)씨에 대해 절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는 서초구 원지동 모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손님이 많아 혼잡한 틈을 이용,손님이 음식 값으로 낸 1만원짜리 지폐를 오른쪽 옷소매 안에 착용한 덧소매에 접어 넣는 수법으로 지난 97년부터 수백차례에 걸쳐 4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음식 값을 카운터에 넣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단골손님의 제보로 음식점 주인이 최씨 몰래 설치한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 덜미를 잡혔다. 최씨는 평소 이 음식점에 근처 청계산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 카드보다는 현금결제가 잦고,음식점측이 지폐를 뒤주와 바구니에 나눠 담는 점을 악용,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경찰에서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한 아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히…”/경희의료원 장례식장 장학회 ‘작은사랑 좋은 이웃’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지하 빈소.지병을 앓다 끝내 숨을 거둔 아버지의 빈소에서 박모(18·D고 3학년)양이 말없이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여읜 박양은 고교를 갓 졸업한 두 언니와 당장 먹고 사는 일도 어려운 처지였다.장례식 비용이나 앞으로 낼 학비를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했다.중장비 기사인 작은아버지도 형편이 좋지 않아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박양의 딱한 처지를 알아본 곳은 경희의료원 장례식장의 협력업체가 만든 ‘작은사랑 좋은이웃’이라는 장학회.이들은 박양의 사연을 전해 듣고 장학금으로 50만원을 건넸고 지난달까지 100만원을 더 내놓았다(사진). 장학회는 지난 2001년 3월 장례식장의 이일연(61) 운영실장이 제안해 결성됐다.조금씩 보태 이웃을 돕자는 이 실장의 제안에 꽃·사진·영구차 등 장례식장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 10군데가 흔쾌히 승낙했다.형편에 따라 한 달에 3만∼5만원씩 기본 회비를 내는데 선뜻 50만원을 내는 경우도 있다.모은 돈은 분기마다 중·고교생에게 장학금으로 30만∼50만원씩 전달한다.지금까지 7명이 장학금을 받았고 이 중 3명은 이미 학교를 졸업했다.최근에는 고아원인 ‘성모자애복지원’에도 성금을 보내고 있다. 장학회는 단순히 돈을 내는데 그치지 않는다.한번은 팔순 노모가 숨졌는데 실직자인 두 아들이 “빈소 사용료가 없어 집에서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이 실장은 “지하 단칸방에서 시신을 모신다니 안타까웠다.”면서 “대학 총장과 병원장 등을 찾아 다니며 75만원을 걷은 뒤 장례비용으로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연고도 없이 거리에서 숨진 60대 노인의 장례식 때도 장학회가 나섰다.수첩을 뒤져 호적에도 오르지 않은 ‘버려진 딸’에게 연락을 했다.뒤늦게 달려온 딸은 “가난해서 장례비용을 30만원밖에 못 가져왔다.”며 통곡해 장학회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이때 딸이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빼고 25만원으로 장례를 치르게 도운 것도 장학회였다. 장학회의 임준(53) 회장은 “남에게 자랑할 정도로 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쑥스럽다.”면서 “이웃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백령도 현지어장 르포/남북 빠진 NLL 꽃게어장 中어선 ‘싹쓸이’

    가을 꽃게철을 맞아 중국어선들이 백령도 앞바다를 휩쓸고 있다.남북 관계 등을 고려해 우리 어선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아래 어로한계선을 넘지 못하는 반면 중국어선들은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이다.이같은 중국어선은 지난 5∼6월 한 번에 수백척씩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추더니,가을 꽃게철이 돌아오자 이달 들어 다시 부쩍 늘고 있다. “저 놈들 또 나타났구먼.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우.”,“중국 배들이 어로한계선 위쪽에 있어 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그래도 갈 데까지는 가 봐야지.왜 여기까지 오는 거야.에이….” 26일 오후 3시,북위 38.03도 동경 124.38도 백령도 두문진 북서쪽으로 채 1㎞도 되지 않는 해상에 중국 어선 2척이 눈앞에 들어왔다.해군·해경과 함께 백령도 어로해상을 지키는 옹진군 어업지도선 인천 227호의 항해사 김원국(42)씨의 손놀림이 금세라도 쫓아갈 듯 빨라졌다. 그러나 잠시 뒤 해병대 레이더 기지에서 “어로한계선을 이탈하지 말라.”는 지시가 무선을 통해 전달됐다.해군 소속 함정을 제외한 어떠한 선박도북위 38도 부근인 어로한계선을 이탈할 수 없기 때문이다.김 항해사는 “눈 앞에서 중국 배들이 우리 물고기들을 다 잡아가고 있는디….”라고 아쉬워하며 선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중국 어선들이 북쪽으로 도망가면 손쓸 수 없어 이날 오전 6시 하루 일과를 시작한 42t급 인천 227호 어업지도선에는 아침부터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가을 꽃게철을 맞아 중국 어선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령도 해상에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수십척에서 많게는 400∼500척씩 일렬로 몰려 다니며,백령도와 대청도,소청도 해상에서 바닥까지 긁는 저인망그물로 꽃게,광어,멸치,고둥 등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인다.심지어 북쪽 땅인 황해도 해주 해상 NLL을 따라 연평도까지 내려온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어업지도선이나 해군 경비정이 다가가면 NLL 북쪽으로 달아나기 때문이다.인천 227호 주용진(29) 기관사는 “중국 배들은 10t 정도 소형 선박이 대부분이고 낡은 탓에 최고 속력이 7,8노트(1노트는 시속 약 1.8㎞)로 느리다.”면서도 “다들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어 우리가 20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다가가면 NLL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듯 북쪽 해상으로 얼른 달아난다.”고 털어놨다. 인천 227호는 이날 이틀째 중국에서 우리 해상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백령도 북쪽과 서쪽 대청서방 어업구역을 순찰했다.김 항해사는 “해군이 ‘외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 배를 단속하지 않아 우리 어민들만 죽어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그는 “오늘은 그믐이라 물살이 거세고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중국어선이 적지만 물살이 잔잔해 지면 수십 수백척씩 온다.”고 말했다. ●생존 위협 겪는 백령도 어민들 120가구가 넘는 백령도 어민들의 불만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중국 어선들에 의해 지역 어장의 ‘씨’가 말라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지역 특산품인 까나리액젓을 만드는 까나리 어획량은 지난해 7.5t에서 10분의1인 0.75t으로 줄었다. 이번 달부터 조업 허가가 난 꽃게는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날 오후 6시 백령도 옹기포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뉴코리아호 선장 김만양(45·진촌5리)씨는 “꽃게 제철인데도 하루에 10㎏도 못 잡아 20만원 벌이도 못했다.”면서 “매일 기름값과 인건비도 못 건지는 판이니 고등학교 다니는 애들 학비를 어떻게 댈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 심정순(47·진촌5리)씨는 “중국 배들이 어장을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 올해만 해도 300만원짜리 어구 5개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이래저래 1억원 가까이 빚을 졌다.”면서 “고교 3년생인 아들이 ‘내가 빚갚아야 돼?’라고 물어올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했다. 심씨는 “정부가 태풍 수해를 입은 수재민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수수방관을 꼬집었다. 지역 관계자들은 정부가 중국과의 직접 협상 등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옹진군청 관계자는 “남북 긴장관계 등을 고려해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할 방법이 없다면 외교적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현재의 어로한계선 구역을 북쪽으로 더 올리거나,2개월로 한정된 대청도 서쪽 해상의 어로 제한을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령도 이두걸기자 douzirl@ ■최종남 연화리 어촌계장의 한탄 이미 체념한 탓일까.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에서 가장 큰 어민단체인 연화리 어촌계 최종남(사진·56) 계장은 쉽사리 말문을 열지 않았다.“아무리 뭍 사람들에게 중국배 얘기를 해도 소용없시다.”라며 담배 연기만 연거푸 내뿜었다. 백령도 주민들이 중국 어선 때문에 겪는 시름은 최 계장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최 계장은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만 32년째 고집스럽게 ‘물질’을 해오고 있다.등허리가 꼬부라지며 겨우 자식들을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최 계장의 한탄은 계속됐다.백령도 앞바다를 밤마다 훤히 밝히는 중국어선 불빛만 보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는 그는 “중국 사람들은 ‘새끼는 잡지 않는다.’는 바다 사람의 불문율도 지키지 않는다.”면서 “꽃게 어장에서 나오는 게 멸치,고둥,놀래미 등으로 주산물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멸치잡이를 주로 하는 최 계장만 해도 중국 어선들 때문에 올해 큰 손해를 봤다.멸치 평균 어획량이 2만 4000㎏선에서 올해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게다가 ㎏당 7000원 안팎의 단가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창고에 그냥 쌓아둔 것도 많다.최 계장은 “중국 어선들이 어망까지 찢어놓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면서 “두문진에서 조업을 하는 80여가구 어민들 대부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지경이 되다 보니 최근에는 어민들이 어선을 관광선으로 개조해 불법 관광영업에 나서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관광객 1인당 7만∼8만원씩 받고 5척의 임시 관광선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 계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불법 관광 영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나 중국 어선에 대한 강경 대응이 없다면 백령도에는 조만간 ‘대한민국 국민’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며 관광객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령도 이두걸기자 ■中어선 불법조업 왜 잦나 2001년 6월 한·중 어업협정 이후 배타적경제수역(EEZ)인 동경 124도를 넘나들며 조업하던 어선들이 요즘은 북방한계선(NLL)을 타고 백령·대청도 동쪽 해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남북한 완충해역이어서 어족자원이 풍부한 데다 단속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NLL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6·25 정전 이후부터 계속돼 왔으나 한·중 어업협정 이후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불법조업을 하다 해경에 나포된 중국어선은 2000년 29척,2001년 39척,2002년 25척에 달하다가 올해는 9월25일 현재 82척으로 급증했다.중국어선들은 해경이 단속하면 NLL 이북해역으로 도주,추적가능거리가 2∼3마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검거에 어려움이 따른다.이들은 검거해도 골칫거리다.영해법이나 배타적경제수역법을 적용해 10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중국어선 대부분이 영세해 80%가량이 벌금을 못낸다.이 경우 선장을 구속시키고 선원들은 공해상으로 추방한다.당국은 여러 차례 중국측에 어선 단속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어선 대부분이 개인에게 임대해준것이어서 실질적인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부고/‘팔레스타인 지성’ 사이드 교수

    |뉴욕 연합|문학비평가이자 팔레스타인 대의를 위한 미국내 굴지의 대변인이었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에드워드 사이드가 별세했다고 노프출판사의 편집장이 25일 밝혔다.67세. 셸리 왱어 편집장은 사이드가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저서 ‘오리엔털리즘’으로 유명한 사이드는 최소한 1990년대 초부터 백혈병을 앓아 왔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었던 사이드는 1935년 당시 영국통치하의 팔레스타인 영토였던 예루살렘에서 출생했으나 소년시절의 대부분을 카이로에서 보냈다.성년 시절 거의 전부를 미국에서 지낸 그는 1957년 프린스턴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1960년과 1964년 하버드대에서 각기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와 존스 홉킨스 및 예일대에서 강의했다.그의 저서로는 ‘오리엔털리즘’을 비롯해 아랍-이스라엘간 분쟁을 다룬 ‘팔레스타인 문제들’(1979)과 ‘마지막 하늘 뒤에’(1986),음악에 관한 저서인 ‘뮤지컬 일레버레이션즈’(1991)와 ‘문화제국주의’(1993) 등이 있다.
  • 내년 교육예산 26조 3904억 GDP대비 5% 사상 첫 돌파

    2004년 교육예산이 26조 3904억원으로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2%로 편성됐다.최대 규모인 데다 교육계에서 요구했던 5%를 처음 넘어선 것이다.올해보다는 6%인 1조 4868억원이 증액됐다. ●중학교 의무교육 지난 85년 도서벽지 지역부터 시작된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이 내년에는 모든 학년으로 확대,완전히 정착된다.따라서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등 총 9년간 무상의무교육 혜택을 볼 수 있다.학부모가 부담하던 수업료·입학금이 면제되고 교과서 대금도 지원된다.예산 규모는 8342억원이다. ●저소득층 만3·4세 어린이 학비 유아교육 기회를 넓히고 저소득층 학부모의 유아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4만 4493명의 만5세 어린이 학비가 지원된다.국·공립 유치원은 입학금 및 수업료 전액,사립유치원은 1인당 월 11만원 정도를 대준다.특히 77억원을 마련,저소득층의 만3·4세 어린이 2만 1515명에게도 학비를 준다. ●지방대 혁신 지방대의 경쟁력 분야를 중점 지원하고 지방대를 지역 발전의 핵심 주체로 육성하기 위한 ‘지방대 혁신 강화 프로젝트’가 신규사업으로 추진된다.예산은 2200억원이다.지방대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지역의 산업체·연구소·시민단체가 사업단을 구성해 사업단별로 지역의 수요에 기초한 특성화 사업계획이 마련된다.수도권 위주의 특성화 사업에도 600억원이 편성됐다. ●신(新)산학협력 우수대학 지원 산업현장의 적응력이 있는 인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 ‘산학연 협력체제 활성화 지원’ 사업을 계획,300억원을 투입한다.13개 전략산업 지역거점별로 학교기업의 설립·운영,산학겸임교원 채용 등을 심사,대학당 20억∼30억원을 지원한다. ●사이버 가정 학습체제 인터넷을 통해 초·중·고교 학생에게 무료 사이버 가정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21억 5200만원을 투입,‘사이버 가정학습 및 가정교사 지원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학교 교육을 보완하고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맞춤형·수준별 콘텐츠 개발 지원에 15억 4000만원,사이버 가정교사 지원체제에 6억 1200만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박홍기기자 hkpark@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2004년 예산안 / 어디에 얼마 쓰이나

    참여정부 첫 예산은 초긴축으로 빠듯하게 짜여졌지만 보육·노인·장애인 지원을 위한 ‘참여복지’ 예산이 9.2%나 급증한 점이 특징이다.국방비(8.1%),과학기술(8.0%),교육(6.0%) 등의 예산이 많이 늘었고 이는 대부분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과 국정과제들이다.대신 산업·중소기업 지원,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각각 11.2%,6.1%씩 줄었다. 실제 소득이 최저 생계비(4인 가구 월 102만원)의 100∼120% 수준인 차상위 계층의 만성·희귀 질환자 2만 2000명에게 의료급여가 지급된다.차상위 계층 1만명이 자활근로사업에 새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가운데 근로능력이 있는 의료급여 2종 수급자의 진료비 본인 부담률이 15%로 5%포인트 낮춰진다.국민연금 직장가입 대상이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되고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일용근로자와 노령자까지 넓어진다.치매·중풍노인 요양시설이 458개로 92개,치매병원은 54개로 9개가 각각 늘어난다. 영아·장애아 전담시설 등 보육시설을 340개 신축해 400개로 늘리고 보육료 지원대상이 월 평균소득 153만 5000원 미만인 차차상위까지 확대된다.청년실업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보다 50% 늘어난 5390억원을 투입해 청소년 직장체험,해외시장 개척요원 양성,해외봉사단 파견 등 일자리 창출 사업을 대폭 늘린다. ●지방인재 육성 지방대학 지원 예산을 2200억원으로 700억원 늘리고 산학협력 우수 거점대학에 300억원을 새로 지원한다.이공계열 대학(원)생 장학금은 240억원에서 530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리고,연구기능 활성화를 위해 학술연구 조성사업 지원규모를 2300억원으로 24억원 늘린다.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을 전면 실시하고 장애유아 교육비 36억원과 장애학생 통합 교육보조원 채용 예산 28억원 등을 새로 지원한다.저소득층 유치원 학비 지원이 만 5세아에서 만 3,4세아까지 확대된다.초·중등학교 220개를 신설해 학급당 평균 학생수를 33명 이하로 줄이고 교원 5200명을 증원한다. ●자주국방 역량 강화 안보 여건의 변화에 따른 자주국방 역량 강화와 장병 사기 증진을 위해 국방비가 18조 9000억원으로 8.1% 늘어난다.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조기경보통제기(AWACS) 도입,정찰위성 연구개발 착수 등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는 원년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병 내무반 시설을 현행 침상형에서 침대형으로 단계적으로 전환,사병 1인당 공간이 2평으로 0.2평 넓어진다.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무기 도입 등 전력증강사업 예산은 6조 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9.8% 늘어난다. ●문화·관광 지원 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의 콘텐츠 창작기반 강화와 마케팅 활성화,전문인력 양성 및 기술개발에 369억원을 지원하고 지방 문화산업 육성에 210억원을 투입한다. 콘텐츠업계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종합 콤플렉스와 종합 스튜디오 건립에 올해보다 4배 이상 늘어난 170억원을 지원한다.‘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 투자를 411억원으로 54억원 늘리고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사업의 1단계 마무리에 276억원을 투입한다. 서해안권과 지리산권 관광자원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립 디지털도서관(200억원)과 국립 부산국악원(60억원) 건립을 추진한다. ●농어촌 지원의 내실화 영세 농어가 영유아 보육비를 매달 평균 10만 2000원씩 새로 지원하고 농어민연금 지원금을 1만 1650원으로 두배 가까이 인상한다.농작물재해보험 대상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농업인 재해공제의 보상 수준을 사망시 지금의 3.3배인 1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다. 박정현기자 jhpark@
  • 14개시도 특별재해지역으로

    정부는 당초 예정보다 빠른 22일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전국 일원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기로 했다.특별재해지역 대상지역은 서울·인천을 제외한 부산 등 전국 14개 시·도와 156개 시·군·구,1657개 읍·면·동이다. 행정자치부는 21일 오후 허성관 행자부장관 주재로 재해대책위원회를 열어 특별재해지역 선포 건의안을 확정,2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건의하기로 했다. 한편 올해부터 특별재해지역에서 복구작업에 참여해 자원봉사를 하면 기부금으로 인정돼 100% 소득공제를 받는다. 또 독학학위 취득제도나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이수하는 데 드는 경비도 대학교육비와 마찬가지로 내년부터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재정경제부는 21일 올해 정기국회에서 소득세법 관련 규정을 개정해 자원봉사용역 소득공제는 올해부터,학위 취득 관련 교육비는 내년부터 각각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태풍 ‘매미’와 같은 특별한 재해의 복구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 용역중 노력봉사에 대해 1인당 일당 5만원 수준의소득공제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사업자가 노동력과 함께 장비를 제공할 경우,일당 5만원 외에 유류비 등의 직접적 물건비는 발생비용 전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또 현업에 종사하면서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학점은행제와 독학 학위를 취득하는 교육비 전액에 대해서도 소득공제를 해주도록 했다. 현재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취득을 준비하는 사람은 10만명가량으로,연간 교육비는 평균 200만원쯤 든다.독학 학위제는 1000명가량의 학생들이 연간 평균 100만원가량의 학비를 쓰고 있다. 주병철 장세훈기자 bc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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