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학비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시마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박해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인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택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43
  • 98년 노벨 생리의학상 페리드 뮤라드 인터뷰

    98년 노벨 생리의학상 페리드 뮤라드 인터뷰

    199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페리드 뮤라드(69·휴스턴 텍사스대 교수) 박사가 연세대의 연세노벨포럼(11∼12일) 참석차 한국에 왔다. 비아그라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산화질소 연구로 유명하지만 아직도 두번째 노벨상을 겨냥해 연구하고 있다는 그를 만나 생명공학의 미래와 과학교육에 관해 들어보았다. ▶의사이면서도 기초과학자로서 정진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파트타임 의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과학연구는 보다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하며 보상이 크다. 의사는 환자 몇명을 구할 수 있지만 과학자는 국가, 세계, 인류에 더 큰 규모로 기여할 수 있다. 나는 수백만명의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학생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우수한 학생들을 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좋은 교사, 흥미를 유발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훌륭한 일인지 학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왜 이를 기피하겠는가. 교사는 학생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항상 좋은 답변자가 돼 주어야 한다. ▶한국은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는 과학고등학교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우려를 사고 있다. 과학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모험보다는 안정된 직업을 선택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나. -의과대학에 가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의학공부를 하다 보면 과학에 흥미를 갖게 마련 아닌가. 보다 나은 진단, 보다 나은 치료를 하려면 보다 기초적인 원리를 연구해야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 의학공부 배경을 갖고 생명과학 분야로 진출하면 훨씬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력 선택 과정은 매우 경직돼 있다. 의과대학의 기초과학 연구수준도 높지 않은 편이다. 박사께서 밟으신 MD-PhD(의사-이학박사) 복수학위과정을 국내에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다. 나의 은사인 얼 서덜랜드 교수가 1957년 클리블랜드의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서 처음 도입했다. 나는 정부로부터 전학년 학비면제에 연간 2000달러씩 잡비도 받았다. 지금은 이 제도가 보편화됐다. 미국 최고의 의사, 미국 최고의 과학자는 의학과 기초과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경험을 하여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좋다. ▶한국은 IT분야를 이을 경제성장 동력으로서 생명공학을 염두에 두고 국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 1위국가인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미국의 생명공학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1940년대 이후 50∼60년 동안 끈질기게 교육, 연구,MD-PhD 과정 등에 투자해 나온 결과다. 생명공학 연구에 지름길이란 없다. 짧은 시간에 결과를 얻으려다간 큰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한국은 이미 경험을 하지 않았나. ▶그래도 수많은 경쟁국가들 속에서 이기려면 전략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 대학, 기업이 해야 할 역할 중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은 GNP의 1∼2%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중국도 비슷하다. 이들은 4∼5년 내 이를 6%까지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스칸디나비아 국가도 교육과 연구에 성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들의 장래가 밝다고 본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은 국내외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줄기세포 연구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줄기세포와 복제 연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직은 극히 초기 연구단계라 실용화 연구까지는 10년,15년 이상이 걸리겠지만 예상되는 혜택은 엄청나다. 조직대체용 세포생성, 유전자치료 벡터효과, 약물전달 체계 기여 등 의학적 응용 외에도 생물공정, 농작물과 가축 등 식량난 해결에도 잠재력이 크다. 과학 연구기회는 제공돼야 한다. ▶줄기세포와 유전공학의 윤리적 문제와 환경파괴 등의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과학의 세계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항상 논쟁이 뒤따른다. 이럴 때 정부관리가 혼자 하는 정책 결정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적이 많았다. 정부와 과학자, 사회가 협력하여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내면 된다. 유전자치료의 경우 너무 앞서나가 문제를 일으켰다. 환자들에게 치명적 손상을 일으킨 사례가 많았다. 기본 시스템을 이해한 후 응용했어야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인간복제가 언제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과학적으로 이의 실현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가 있다. 이탈리아 등지에서 인간복제를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이다.. ▶황우석 박사는 최근 개인연구소를 차려 연구를 재개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과학계가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최소한 산업계 수준에서는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 과학자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미 부정으로 낙인찍힌 그를 어떤 생명공학 업체가 고용하겠는가. 소비자가 그가 만든 약을 믿고 쓸 것이라고 기대할 기업이 있을까. 미국에서는 그런 부정을 저지른 과학자가 다시 활동하는 일은 없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투명성, 정직성, 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실 과학계뿐만 아니라 언론, 기업, 정부 등 어느 조직에도 부정사건은 있다. 대부분은 정직한데 몇 명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도덕적 가치가 특히 중시되는 분야에서 이런 부정은 절대 용납돼서는 안될 것이다. ▶당신은 대학교수, 기업체 부회장, 생명공학기업 창업을 거쳐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다양한 직장 경험을 했다. 이들 중 연구개발에 있어 가장 경쟁력 있는 기관은 어느 곳이었는가.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의 자유를 가장 좋아한다. 대학에서는 연구비만 확보되면 어떤 연구를 하든지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 대학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고유 역할이 있다. 각자 역할에 충실하며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에서는 새로운 연구를 하면서도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장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일단 방향이 잡히기만 하면 놀라운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흥미는 극대화된다. 때로는 여기까지 5∼6년이 소요되기도 하는데 나의 노벨상 수상 업적인 산화질소 연구가 그랬다. 기업은 이렇게 대학연구실에서 만들어낸 기술과 정보를 응용하여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연구를 하는 것이다. 정부는 교육과 연구 지원을 하면 된다. ▶당신은 69세 나이에도 여러 직책을 갖고 활동한다. 과학자로서 은퇴적령기는 언제인가. -나는 생의 마지막까지 연구할 것이다. 지금도 10∼15명의 연구팀을 이끌고 줄기세포, 암 치료에 쓸 약품 개발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두번째 노벨상에 도전하고 있다. 앞서도 5명이 2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yshin@seoul.co.kr ■ 뮤라드박사는 누구 페리드 뮤라드 박사는 자수성가형 과학자. 밤잠을 자지 않고 겹치기 일을 하며 학위과정을 마쳤고, 특이한 직장경험을 했다. ●성장 알바니아 이민 2세로 인디애나주 휘팅이란 도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의 식당에서 설거지나 식사주문, 카운터 일을 봤다. 손님들의 주문액수를 암산하여 계산서와 맞춰보는 게임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부모는 교육을 강조했고 자식들도 부모처럼 중노동을 하지 않으려면 상당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함을 알았다.8학년 때 수업시간에 장래 희망 세 가지로 의사, 교사, 약사를 써냈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이루었다. ●교육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과정을 마친 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의학박사-이학박사 복수학위프로그램에 지원,2개 학위를 취득했다. 이때 만난 얼 서덜랜드 교수와 시어돌 롤 교수는 멘토로서 과학에 있어 스승의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세포간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면서도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임상의학 과정을 모두 밟았다. 다섯 자녀 등 가족 부양을 위해 주2회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밤샘 일을 하기도 했지만 일을 마치면 실험실로 직행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새로운 원리를 알아내는 데 희열을 느꼈고 무조건 노력했다. ●직업 미 국립보건원(NIH) 심장연구소에 임상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33세 때 버지니아 주립대 조교수로 스카우트됐다. 스탠퍼드 대학 시절까지 18년간 대학교수로 일했다. 애보트사 부회장 겸 연구소장으로 기업 경험을 한 후에는 직접 생명공학 회사를 창립하기도 했다. 1997년 텍사스 휴스턴 대학에 개설된 생물·약리학·생화학 통합 기초과학부와 의과대 임상약리학부의 겸임부장으로 대학에 돌아옴으로써 자신의 커리어 주기를 ‘완성’했다고 말한다.“대학의 자유와 지성, 젊음이 좋다.”는 그는 120여명의 제자를 키웠다. ●연구업적 세포들 사이의 의사소통방법을 연구하던 중 산화질소의 신호전달 역할을 밝혀 1998년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은 100년 넘게 협심증 치료제로 쓰였으나 작용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뮤라드 박사는 니트로글리세린의 혈관 이완효과가 이로부터 유리된 산화질소의 효소 활성화 작용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이는 공동수상자인 퍼고트 박사와 이그나로 박사의 연구 성과와 합쳐져 비아그라 개발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그러나 산화질소의 역할은 고혈압, 선천성 심장병, 동맥경화증 등 심혈관계통 질병에 국한되지 않는다. 뮤라드 박사는 세포이식, 위장운동, 줄기세포 증식 및 분화, 유전자 조절, 상처치료, 암 등 다양한 활용분야를 예상하며 현재도 응용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 분야는 연구논문은 7만 7000여건, 관련 업체가 30여개에 이를 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의·치학 중문의대-인문·사회 백석대-공학은 고려대 수업료 등 연간 학비 가장 비싸

    고등교육기관 수가 처음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전문대의 학생 충원율은 70% 안팎으로 심각한 모집난을 겪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3일 이런 내용의 고등교육기관 교육통계를 발표했다. 대학과 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수는 327개로 전년보다 4개 줄었다.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4년제 대학은 175개로 2곳 늘었지만 전문대는 구조조정과 통폐합 등으로 152개로 6곳 줄었다. 학생 수는 전문대는 85만 2089명에서 81만 7994명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4년제 대학은 185만 9639명에서 188만 8436명으로 조금 늘었다. 여학생 비율은 전문대 38%,4년제대 36.9%였다. 전문대의 평균 충원율은 88.6%다. 대도시 아닌 곳의 전문대의 충원율은 70% 안팎에 불과했다. 충북이 67.1%로 가장 낮았고, 강원 68.5%등이었다.4년제 대학의 평균 충원율은 97.7%였다. 교원 수는 6만 3716명으로 2000년에 비해 18.8% 늘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전문대의 경우 2000년 78명에서 올해 69.8명으로,4년제 대학은 39.7명에서 36.5명으로 감소했다. 입학금을 제외한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합친 연간 학비는 의·치의학 계열이 1000만원대를 넘어섰다. 포천중문의대 1055만원을 비롯해 연세대 1031만원, 가천의대 1016만원 등이었다. 백석대는 인문사회 계열 663만원, 이학 계열 808만원으로 학비가 가장 비쌌고, 공학 계열은 고려대가 85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예능 계열과 약학 계열은 이화여대가 각 913만원씩으로, 체육 계열은 동덕여대가 875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지혜·울림 가득한 문화칼럼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원형적인 정서를 완전히 외면해서도 안되겠지만, 그것에 함몰되거나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대중의 원시적 정서는 국가를 관리하는 정치적 지혜와 결코 일치할 수 없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감상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3년 이태동(67) 서강대 명예교수가 쓴 ‘대통령의 눈물’이란 칼럼의 한 대목이다.영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평생을 문학과 씨름해온 그이지만 그의 정치 칼럼은 어느 대논객의 현장정치평보다 큰 울림이 있다. 문화 칼럼은 그의 ‘전공’. 최근 출간된 ‘대통령의 눈물’(이태동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에는 저자가 지난 10년간 각종 매체에 발표한 정치·사회·문화 칼럼 90여편이 실려 있다.저자의 글은 결코 만만찮은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현학의 기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보기 쉽고 알기 쉽고 읽기 쉽다. 문장삼이(文章三易)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얘기다.1만 2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해외아마야구 출신 드래프트 1호 성민규

    [스포츠 라운지] 해외아마야구 출신 드래프트 1호 성민규

    지난 16일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로 신인 2차드래프트 문자중계를 지켜보던 그의 입술은 바싹바싹 말랐다. 당초 언질(?) 받은 2라운드에서 지명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4라운드에서 KIA가 ‘성·민·규’를 호명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5년여의 긴 우회로를 지나 마침내 한국프로야구 무대에 서게 된 것. 미국 대학야구 출신 최초로 드래프트로 입단한 성민규(24)를 29일 모교인 상원고(전 대구상고)에서 만났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글러브와 배트를 끼고 살았던 성민규는 대구상고에 진학한 뒤 야구가 싫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 구타도 싫었지만 ‘운동기계’로 변해 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 홍익대에 진학한 그는 투수로 인정받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이 훨씬 컸다. 주위에선 “ABCD도 모르는 녀석이 무슨 유학이냐?”며 만류했지만 뉴질랜드로 훌쩍 떠났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에게 고생길이 열렸다. 입국신고서 조차 쓸 수 없었고, 심사대에서 공항 직원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웃기만 했다. 어학원에 등록한 첫날 레벨 테스트 결과는 더 비참했다. 최하등급을 받아 6∼7세 꼬마들과 같은 반에 배정받은 것. 오기가 치민 그는 밤새워 공부했다. 비자 기한인 1년 내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 겨를 따윈 없었다.1년 뒤 영연방 국가 대입자격을 결정하는 ILETS에서 6.0을 받았고 유니텍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1년이 넘도록 잊고 지내던 그에게 야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조깅을 하던 공원 한쪽에서 경기하던 클럽팀을 발견한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도, 구타도 없는 그 곳에서 비로소 야구의 진수를 깨달았다. 호주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그는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2003년 미국 웨슬리안대에 입학했고, 이듬해 전액 장학생으로 네브래스카대에 편입했다. ●되살아난 야구의 열정 미국 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학점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야구팀에서 제명되는 탓에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3.0의 쓸 만한 학점을 받았다. 직접 그를 스카우트한 밥 헤럴드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했다.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의 팜에서 잔뼈가 굵은 헤럴드는 슈퍼스타 카를로스 벨트란(뉴욕 메츠)을 조련한 명지도자. 언제나 남들보다 3시간 먼저 나와 훈련하는 성민규의 성실함에 반한 헤럴드 감독은 그를 4번타자로 중용했다. 성민규는 “내가 살아남을 길은 오로지 연습뿐”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배팅 연습을 한 덕분인지 2005년 타율 .315에 10홈런,2006년에는 .330에 20도루로 맹활약, 팀을 디비전Ⅱ 250개 대학 가운데 5위까지 끌어올렸다. 학교에서도 그의 공을 인정해 학비 전액과 함께 연간 5000달러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뉴질랜드와 미국에서 ‘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성민규에게 국내 야구는 또 다른 도전이다. “1군에서 어떤 성적을 내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노력하고 허슬플레이하는 선수, 팬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선수로 기억된다면 1년을 하다 잘려도 후회 없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밝은 미래가 엿보였다. 글 대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성민규 프로필 ●출생 82년 7월8일 대구 ●가족관계 성남준(53)씨와 신희숙(53)씨 사이의 1남1녀 중 막내 ●체격 185㎝,93㎏ ●투타 우투양타 ●종교 불교 ●취미 주식투자·스노보드 ●닮고 싶은 선수 카를로스 벨트란(뉴욕 메츠) ●학력 대구 지산·칠성초-대구상고(현 상원고)-홍익대-NMIT-유니텍(이상 뉴질랜드)-웨슬리안대-네브래스카대(이상 미국) ●수상경력 02·03년 호주챔피언십 MVP,05·06년 미국대학야구 디비전Ⅱ 북중부콘퍼런스(NCC) 올스타
  • “해외입양인도 우리민족”

    “해외입양인도 우리민족”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10월. 역대 외교부 대사 출신들이 차지해 오던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학자 출신의 재야 인사가 내정됐다. 재외한인학회 회장,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등 ‘필드’의 재외동포 관련 단체를 이끌고 ‘재외동포학’을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광규(75) 서울대 명예교수. 상대국(해외 동포의 대부분이 상대국 국민)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 차원의 재외동포 정책과 시민 단체의 재외동포 지원은 기본 접근법이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왔고, 역발상의 발전이 있을 것이란 기대도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사장 3년 임기 내내 재외동포 정책을 둘러싸고 외교부·법무부 등 정부 부처와 재단의 불협화음은 이어졌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재외동포 전문가로서 역사의 아픔 속에 세계로 흩어진 우리 동포들을 보듬어내는 일들을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24일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 6층 재외동포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지난 3년의 소회를 들어봤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자면. -지난여름 국제결혼으로 해외에 나간 분들을 서울로 초청, 조국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입양아의 경우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교부를 방문해 해외로 나간 우리의 입양아 문제를 강조한 이후 정부가 신경을 쓰면서 상당한 인식의 개선과 고국 방문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입양아들보다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는 국제결혼한 우리 동포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미군병사와 결혼한 이른바 ‘GI신부’들의 경우는 인식이 그대로다. 이들 중에 누가 개인 영달을 위해 외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을 떠났겠나. 모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미군 병사들과 결혼했다. 영어를 하고 외국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국제화가 아니다.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외국인 남편, 그 자녀들을 우리 민족으로 감싸 안아야 그게 국제화다. 지난해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초청했는데 응어리진 감정들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행사를 열려는데 “뭐가 자랑스러워 이들을 초청하느냐.”는 반대도 극심했다. 올해 미식 프로축구 하인스 워드 선수 모자 열풍을 계기로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살고 있는 국제결혼자들의 결혼 배경이나 학력, 배우자의 인종 등 겉면을 모두 걷어내고 한마음으로 포용하라고 계몽하고 설득해 왔다. 올 가을에도 2차 대회를 할 계획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재단내 동포들에 대한 연구작업이 태부족해 강화했으면 했는데 잘 안 됐다. 또 해외의 동포 단체에 그동안 추석이나 체육회 등 1회성 행사에 지원해준 돈을 목돈으로 돌릴 테니, 유대인들의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수익성을 담보한 동포센터 설립을 해보라는 쪽으로 유도했다. 하지만 한인 단체간 갈등 반목이 생기고, 소송까지 이어지면서 그 계획이 무산지경이 돼 안타깝다. 지난해 미국내 한인 세탁업협회 인사들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이 대표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은 알다시피 식료품점, 세탁소, 미용용품 조달이다. 한국에선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미국 사회에서 그들의 실제 힘은 막강하고, 조국에 대한 애정 또한 누구 못지않다. 세탁업협회 대표들이 방한해 국제적인 대기업을 방문, 자신들의 세탁물 덮개에 기업 로고를 붙이겠다고 선의의 제의를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적이 있다. ▶재외동포청 설립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갈등을 겪었는데. -해외동포 지원이라는 재단의 정체성 측면에서 보면 정부와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나는 외교정책은 천문학이고, 동포문제는 기상학이라고 본다. 모두 하늘을 쳐다보는 학문이지만 외교는 은하계 태양계를 보고, 재단은 비가 오는지, 날이 맑은지를 본다. 충효의 문제로도 나는 설명한다. 효를 선택하다 보면 충과 배치될 때도 있고 충을 선택하다 보면 효와 배치된다. 외교부는 충을 선택하고 재단은 효를 선택한다. 외교부는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 우리 교민이 살고 있는 상대국과의 입장 때문에 교민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동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이 체제론 어렵다는 논리를 폈지만 잘 안됐다. 정말 동포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자면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동포청 또는 대통령 직속의 재외동포위원회를 설치 하자는 안을 냈는데, 나는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원한다고 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수업료 체납학생 출석정지 못한다

    앞으로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출석을 정지당하는 일이 사라지게 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6일 ‘국립 유치원·고등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두 달 이상 수업료를 체납한 학생에 대해 출석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없앴다고 밝혔다.수업료 체납에 대한 출석 정지 등 징벌조항이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대신 수업료 체납에 대해서는 민법 규정에 따라 철저히 관리해 재정부담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규칙은 이와함께 수업료와 입학금 면제 인원 가운데 가계 곤란 학생의 비율을 50% 이상으로 정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학비 감면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한편 시·도 교육청에서도 수업료와 입학금 관련 조례에서 문제의 조항을 빼기로 해 공·사립학교의 수업료 체납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도 폐지될 전망이다. 서울·경남·전북 등 3개 교육청은 최근 출석정지 규정을 폐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으며, 다른 시·도 교육청도 조만간 출석정지 규정을 없앤 조례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수업료 미납자 출석정지 내용을 포함시킨 조례가 교육위를 통과했으나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수정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성삼제 지방교육재정담당관은 “국립학교에 이어 공·사립학교의 수업료 체납 징벌규정도 곧 폐지될 것으로 보여 수업료 체납학생에 대한 학습권 침해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수출해서 번돈 66% 해외여행·유학비로

    올해 상반기 외국에 물건을 사고 팔아 남긴 돈 가운데 66%가 해외여행 및 유학·연수비로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15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해외여행, 유학비로 쓴 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2% 늘어난 84억 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상반기 상품수지 흑자 규모 128억 달러와 비교할 때 외국과의 상품교역을 통해 남긴 100원으로 해외여행 및 유학·연수비에 66원을 쓴 셈이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여행서비스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줄어든 26억 4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여행수지 적자는 28.3% 늘어난 57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원화가치 상승, 주5일 근무제 시행, 유학·연수 증가 등으로 상반기 해외여행객수는 지난해보다 13.6% 증가한 543만 1000명에 달했다. 반면 방한 외국인수는 296만 3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에 그쳤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의 여행경비 지출은 1명당 927달러에서 895달러로 줄어든 반면 우리나라 해외 여행객의 지출액은 1239달러에서 1242달러로 늘었다. 이같은 여행수지 적자는 전체 서비스 무역수지 악화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 상반기 서비스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3% 증가한 88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65.2%가 여행수지 적자였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中 대졸자 35% “대학 간걸 후회”

    중국 대학 졸업생의 3분의1 이상은 “돈만 많이 들었지 배운 것이 없다.”는 이유로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인 중국청년보와 인터넷 포털 등신망(騰訊罔)이 87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4.7%가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응답자의 51.5%는 “재학 중 유용한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39.2%는 “4년 동안 공부하고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답해 중국 대졸자의 심각한 취업난을 반영했다. 중국 대학 졸업자는 2001년 115만명에서 2003년 212만명,2005년 330만명,2006년 413만명으로 크게 증가했으나 일자리 증가는 미미해 취업난이 큰 사회문제다. 대졸자들이 기대하는 월 임금수준도 2001년 2500∼3000위안(30만∼36만원)에서 1000위안,800위안,500위안으로 떨어지고 심지어는 ‘무임금 취업’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반면 대학 학비는 1994년에는 연간 몇백위안에 불과했으나 이후 계속 올라 지금은 5000∼8000위안(60만∼96만원)으로 10년 동안 무려 20배나 상승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의병장 허위선생 후손들 ‘100년만의 귀향’

    의병장 허위선생 후손들 ‘100년만의 귀향’

    구 소련과 중국에서 각자 떨어져 살다 지난달에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왕산 허위의 후손들. 항일 운동으로 탄압을 받아 국외로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이 조국 땅을 밟는데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후손들은 고국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돌아온 게 꿈만 같다고 했다. 오랜 세월 고초를 겪었지만 고국의 공기를 마시게 된 것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이들의 귀국 후 생활, 타국에서의 인생 역정, 다시 찾은 고국에 대한 느낌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키르기스스탄서 온 허게오르기 형제 “말만 들었지, 이렇게 발전한지는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이 땅에서 내몰린 뒤 남은 후손들이 이만큼 해 놓은 거야.” 의병장 왕산 허위의 손자로 키르기스스탄에 살다가 지난달 한국 국적을 취득한 허게오르기(62)씨와 허블라디슬라브(55)씨 형제에게 고국이 무관심한데 섭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에게서 듣던 조국에 돌아왔지만, 한동안 이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했다.1907년 13도 창의군 편성을 주도한 의병장 왕산은 밀고로 붙잡혀 1908년 교수형을 당해 순국했다. 그뒤 왕산가 사람들은 일제를 피해 중국과 러시아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헤이룽장에서 온 허금숙씨 “1995년 아이들 대학 학비를 벌어보려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10년 동안 제가 누구 손녀인지 알고 박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왕산의 바로 윗형 성산 허겸은 역시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갔다. 성산의 손녀인 허금숙(59)씨는 한국에 들어와 모진 고생을 했다.1992년 정부는 허금숙씨의 할아버지 허겸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었지만 허씨는 10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해방전 귀국한 허벽씨 만주로 망명했다가 해방이 되기 직전에 국내로 들어와 고국에서 살 수 있었던 왕산의 먼 친척 허벽(71)씨는 허게오르기씨 등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를 간직해 왔다. 조국에서도 독립유공자 후손의 삶은 편치 않았다. 일제 때 도망다니느라 남은 재산이 없었고, 해방했을 때까지 이국만리에서 떠돌고 있는 어른들 대신에 허벽씨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으니까 굶는 것보다 ‘누구 후손이 비겁하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게 더 무서웠었지. 벌 받을 말이지만 때론 조상들이 짐이 됐어.”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불법체류 10년…부모 임종못해

    불법체류 10년…부모 임종못해

    고국에 온 뒤에도 왕산가(家) 후손인 허게오르기씨와 허금숙씨는 서로 연락을 못하다 지난 달에야 처음 만났다. 허금숙씨는 “그 분들은 한국말을 잘 못하셔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라고 걱정했다. 허게오르기씨는 “10년이 넘게 귀화를 하지 못하고 고생했다고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지만, 정작 자신들의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체념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국이 부당하게 대우해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핏줄끼리는 통하는 게 있어 보였다. 오히려 한국 국적을 갖게 된 후손들은 이산가족이 됐던 가족들과 다시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할아버지 서훈 받아도 불법체류자로 입국…부모 임종도 못지켜 해외에 흩어져 살던 왕산가 후손 가운데 가장 먼저 조국에 돌아온 사람이 성산 허겸의 손녀인 허금숙씨다. 입국과 체류 경위를 따지자면 사실 ‘조국에 돌아왔다.’는 말이 무색하다.1995년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허씨는 곧 불법체류자가 됐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된 아들과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입국한 첫해 가정부로 일하던 허금숙씨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개발 때 아파트 공사현장 식당에서 잠시 일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파트 단지내 페인트칠 작업을 하게 됐다. 현장의 우악스러운 분위기와 남자들의 지분거림에서는 해방됐지만, 여성이 하기에는 고된 일이었다. 교사의 아내로 중국에서 지낼 때와는 달리 힘든 생활을 하다 허금숙씨는 골다공증을 얻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건강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자원봉사 단체에서 치료를 받았다.10년 동안 법적·정신적으로 허금숙씨는 외국인이었다. 부모와 형제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무너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허금숙씨까지 6남매 중에 오빠, 바로 밑 남동생이 허금숙씨가 우리나라에 온 다음에 숨을 거뒀지만, 한번 나가면 국내로 돌아올 수 없으니 갈 수가 없었다. 남편과 자식도 국내로 들어오지 못했다.3살 터울로 사이좋은 두 남매가 결혼할 때에도 사진과 전화로 소식을 듣는데 만족해야 했다. 허금숙씨는 “이제 국적을 받았으니 주민등록증도 만들고, 여권도 만들어서 남편을 보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라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귀화 신청을 한 게 2년 전이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할아버지 성산의 시신을 대전 국립묘지로 옮긴 게 1992년인데도 확인할 게 남았다며, 행정처리 기간이 늘어졌다. 허금숙씨는 “나만 귀화신청을 하는 것도 아니니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국 왔으니 좋은 일만 생길 것” 다행히 왕산 허위의 막내 허국의 아들인 허게오르기씨와 허블라디슬라브씨는 각각 입국한 지 6개월과 1년 만에 국적을 받았다. 이들은 우리나라 국적을 갖게 됐으니 이름도 바꾸겠다고 한다. 게오르기씨는 ‘길(吉)’로, 블라디슬라브씨는 ‘석(石)’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허게오르기씨는 우리나라에 왔으니 이제 ‘좋은 일’만 생기라는 의미에서 ‘길’자를 택했고, 허블라디슬라브씨는 지질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름을 ‘돌’로 지었다. 미국·중국·구소련 지방 등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왕산가 후손들은 대부분 대학교육을 받았다. 유독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허게오르기씨도 자동역할을 공부했다. 언젠가 고국에 돌아간다면 문학이나 어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공학을 배우는 게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고국에 돌아와도 이들은 단순한 노동밖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따져보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1991년부터 구소련 지역의 자국민 우선정책에 따라 연구소에서 쫓겨나 트럭운전사·소작농을 하던 때와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허게오르기씨는 “한국말이 서툴고,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라면서 “문제는 우리에게 있지,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들의 사연을 들은 경기도 안성의 의료기 제조업체 ㈜비겐에서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동안 나라 발전하느라 독립운동가 못챙겼을 것…” 허블라디슬라브씨의 아들 허알렉산드라(27)씨는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이유로 고려대학교 한국문화센터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게 됐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며칠 만에 젓가락질을 배운 아들이 대견한지 허블라디슬라브씨는 “먹고 사는 일이니 금방 배우더군요. 말도 곧 배울 겁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독립운동한 사람을 못찾은 것도 나라가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것뿐”이라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왕산가 후손들도 모두 모이고 점차 나아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헤즈볼라 ‘레바논의 팔로군’

    레바논 남부 산악지대를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헤즈볼라 전사들이 이스라엘의 공세를 버텨내는 힘은 광범위한 자선활동에 따른 지역민들의 깊은 신뢰라고 뉴욕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헤즈볼라 활동가들은 도시와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채 의료비, 건강보험, 학비를 제공하며 소규모 사업자들을 위한 종자돈도 마련해 준다. 오랜 내전을 겪은 레바논 정부가 하지 못하는 기본 복지서비스를 헤즈볼라가 제공하자 시아파 시민들은 헤즈볼라에 깊은 충성심을 갖게 됐다.이들의 자부심과 정체성도 저절로 헤즈볼라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레바논 남부에 사는 아파트 경비원 아메드 아왈리(41)는 아내의 제왕절개 수술비 1500달러가 없어 애를 태우다 헤즈볼라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실직 때는 올리브유, 설탕 등 식료품을 받았고, 부러진 코뼈 수술비도 지원받았으나 정작 그는 헤즈볼라 회원도 아니고 도와준 이의 이름조차 모른다. 헤즈볼라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든 있다. 유령처럼 움직이는 헤즈볼라도 이스라엘과의 전투가 시작되면서 남부지역 대형병원들의 위치와 전투원들의 얼굴이 노출되고 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걸어두고 있는 카페 주인 하이다르 파야드는 “내가 카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전사가 아니란 뜻은 아니며 모두들 집에 무기가 있다.”면서 “헤즈볼라는 바로 의사, 교사, 농부로 일하는 국민들이고, 국민들이 바로 헤즈볼라”라고 말했다. 특히 헤즈볼라 활동가들은 어려운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알고 식료 잡화류를 들고 나타나 단지 방 한가운데에 두고 떠날 뿐이어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막가는 노래방 요지경 실태

    막가는 노래방 요지경 실태

    노래방이 중병을 앓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팔지 말라는 술과 안주는 기본이 됐다. 여기다 도우미 아가씨까지 끌어들여 성매매금지 특별법으로 한물간 룸살롱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름만 도우미이지 접대부 뺨친다.가족끼리 찾던 건전노래방은 퇴폐일로의 노래문화에 오래전 갈 곳을 잃었다. 한 건물에 학원과 퇴폐 노래방이 병존하면서 교육현장에도 적지 않은 문제를 낳고 있다. 학부모들은 퇴폐 노래방의 급증을 걱정하며 관할 경찰서와 합동으로 주민들의 신고를 당부하는 사례도 있다.일각에서는 얼마 전 철퇴를 맞은 사창가와 룸살롱 등의 몰락이 이같은 기형적인 사회병리 현상을 가져온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요즘의 노래방 속으로 들어가 본다. ●노래방 갈 데까지 갔다 얼마 전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김모(62·기흥구 구갈동 가현마을 신한아파트))씨는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인근 노래방을 찾았다가 낯뜨거운 장면을 목격했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복도에서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가족과 황급히 업소를 빠져 나왔다. 김씨는 업소 문앞을 나오면서도 접대부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줄줄이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김씨는 “자식한테 노래방 출입을 삼가라고 했다.”며 “노래방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퇴폐 노래방의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당 2만원가량을 지불해야 하는 도우미들이 고객을 위해 술을 부어주고 안주 시중까지 서비스한다. 분위기에 맞춰 술도 같이 마셔 주고 손님들의 짓궂은 요구도 받아준다. 여기다 팁까지 얹어 주면 즉석에서 ‘쇼’까지 보여준다고 한다. 옷을 벗어 신체부위를 노출하기도 하고 신체접촉을 허용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 정도는 나은 편이다. 도우미들이 노골적으로 2차를 권유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게다가 노래방 룸에서의 즉석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래방 도우미들이 2차를 나가는 가격으로 받는 돈은 10만∼15만원가량. 돈 맛을 본 아가씨들이 손님들을 그냥 보낼 리 없다. 진한 화장과 향수로 치장한 도우미들은 대부분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상의와 초미니스커트, 혹은 배꼽과 복부를 그대로 드러낸 청바지 차림으로 손님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핸드백은 꼭 지참한다. 남자 고객과 일행인 것처럼 하기 위한 위장이다. 눈이 맞으면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주말을 이용해 고객과 영화를 보기도 하고, 술자리를 따로 갖는 등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직접 고객을 확보해 보도방과 노래방에 떼어주는 수수료까지 챙겨 보겠다는 심산이다. 도우미로 나선 여성들의 나이도 일찌감치 제한이 없어졌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아가씨들로 무장했던 룸살롱의 경우와는 달리 30·40대 아주머니들도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출부나 가사도우미, 식당 등의 일자리를 구했던 이들이 이제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노래방을 택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당이나 소규모 맥주집 등에서 아주머니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란 전언이다. ●보도방이 주범 얼마 전 창원에서 파출부 사무실을 운영하던 최모(44·창원시 성남동)씨는 파출부 인력부족으로 장사가 되지 않아 고민하던 중 보도방으로 업종을 변경한 뒤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20대에서 40대까지 도우미 20여명을 고용해 노래방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하루 40만∼1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성남시 분당에서 40여명의 아가씨를 고용해 보도방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은 주말이면 하루 2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보도방을 하기 위해 창업(?)을 서두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가씨가 있어야 장사를 할 수 있으니 명함을 만들어 곳곳에 돌리거나 화장실 벽 등에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정보지를 이용, 고소득 수입을 보장한다며 유혹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가족들 모르게 노래방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보도방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보도방 업주 대부분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아가씨 대기실로 사용해 적발이 쉽지 않다. 최근에는 아예 덩치가 큰 봉고차를 구입, 차 속에 아가씨들을 대기시켜 놓고 핸드폰으로 주문을 받기도 한다. 이동식 사무실인 셈이다. 보도방은 노래방에 도우미를 보내기도 하지만 수도권 외곽지역에서는 티켓다방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용인경찰서는 이들 보도방의 적발이 좀처럼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주민들과 함께 신고를 요청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상가지역에 주기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문구에는 ‘아이들과 노래방에 갈 수가 없어요.’라고 적혀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보도방 통해 ‘도우미’ 공급받아 한 건물에 학원과 동시에 영업 분당과 일산, 용인 등 신시가지 아파트 밀집지역내 상가를 중심으로 퇴폐 노래방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널직한 가죽 소파에 편히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아예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방으로 만든 거실형 노래방도 우후죽순이다. 수입 대리석에 사치스러운 조명등을 갖추기도 하고, 도우미들이 함께 이용할 것을 예상해 룸도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용인시 기흥구 아파트 밀집지 인근에 위치한 K노래방은 벽을 고가의 수입 방음벽돌로 치장, 각종 소음을 차단하고 복도는 카펫으로 치장하고 있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창을 설치해야 하지만 대부분 광고 전단지 등을 이용해 가려 놓았다. 분당에는 현재 220여개의 노래방이 성업 중이며 상당수 노래방이 보도방을 통해 도우미들을 공급받고 있다. 사창가와 룸살롱 등에 종사하던 아가씨들도 아예 노래방이 수입이 낫다며 보도방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도방 업주들이 대형 룸살롱을 돌며 아가씨들을 빼내오기도 한다. 노래방을 찾는 도우미들은 보건소의 점검도 받지 않는다. 질병 감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에이즈의 감염경로가 사창가나 유흥주점보다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의 무분별한 만남이 더욱 위험하다는 한 보건소장의 말이 범상치만은 않다. 유흥주점에 비해 청소년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는 낮은 규제도 문제다. 건물에 학원이 있을 경우 수직제한이 4m에 불과, 한 층만 피하면 노래방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시가지의 경우 한 건물에 노래방과 학원이 상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저녁시간 보도방 차량과 학원 차량이 뒤섞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학원생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 밤이면 도우미와 술취한 손님들이 뒤섞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분당구 관계자는 “퇴폐를 부추기는 노래방 업주와 보도방도 문제이지만 도우미를 찾는 고객들도 다를 게 없다.”며 “오는 10월부터 접대부를 고용하는 업주는 물론 도우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를 개정한다고는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보건소 점검대상서 제외 성병·에이즈 감염경로로 성남시의 한 보건소장은 최근 에이즈 환자의 감염경로를 추적해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룸살롱이나 사창가보다 나이트클럽 등지에서의 무분별한 만남이 발병의 더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노래방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에이즈 감염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감염경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창가나 룸살롱 등은 보건소가 주기적으로 성병 감염여부 등을 체크해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사창가는 보건소의 꾸준한 점검과 진료 덕분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꼽힌단다. 노래방의 경우 행정관청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다 단속도 쉽지 않다. 술을 파는 것이 다반사여서 단속조차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경찰도 신고가 들어와야만 단속에 나설 정도다. 보도방 아가씨들의 출입이 잦지만 제지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노래방 입구에서 지켜 서있을 수도 없고, 일일이 문을 열어 관계를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행한 손님이라는 데야 경찰도 속수무책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노래방에 왔다고 하거나, 회사 동료라고 하면 그만이다. 노래방이 주류판매 묵인으로 적발될 경우 10일간 영업정지나 이를 대신하는 과징금이 부과되지만 주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도우미 사용의 경우 1차 적발시 영업정지 30일,2차는 3개월이지만 영업정지가 끝나면 똑같은 영업행태를 반복하기 일쑤다. 분당의 경우 지난해 처음 도우미 단속에 나서 220여개의 노래방 가운데 118곳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직접 도우미를 적발하기보다는 보도방 단속에 의존했다. 보도방에서 도우미를 보낸 장부를 압수해 줄줄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들 노래방은 여전히 건재하다. 도우미는 타 시·군에서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적발이 쉽지 않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또 다른 문제는 도우미들이 보건소의 점검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퇴폐영업 속에 무단방치돼 있어 음지에서의 질병확산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용인시 신갈오거리에 위치한 한 비뇨기과 의사는 2∼3년 전부터 노래방에서 성병에 감염돼 오는 사례가 적지않다고 말한다. 가장 골칫거리는 자각증상이 없다는 에이즈이다. 보건소 관계자는 그래서 최근 노래방의 퇴폐문화를 우려하고 있다. 분당내 에이즈 환자의 감염경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흥업소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무원들은 얼마 전 한 사창가 단속이 노래방 퇴폐문화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고 분석하기도 한다. 노래방이 이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대신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중계석] ‘대학 학문 정책 개선’ 긴급토론회

    논문 중복게재 등 파문으로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전국교수노조가 3일 ‘최근 교육부총리 사태를 계기로 본 대학 및 학문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토론회의 박거용·강남훈교수 발제문을 요약정리한다. ■ “학자 양심 더럽히지않을 대학풍토 조성”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 교수 현 정권의 다섯번째 교육부총리가 취임한 지 보름을 못 넘기고 사퇴하고 말았다. 부총리의 자진 사퇴를 불러온 논문 파문은 대학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정량(定量) 중심의 평가 지상주의에 기초한 교수업적 평가와 업적 부풀리기를 부추기는 ‘대학 종합평가인정제’가 불러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학과, 단과대학, 대학 종합평가는 개인간 경쟁뿐 아니라 대학간 경쟁도 불러 일으켰다. 업적 부풀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자의 양심을 더 이상 더럽히지 않는 대학의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김영삼 정권의 5·31 교육개혁안 이후 대학 관련 주요 정책들은 대학설립 준칙주의, 국립대학 특별회계 도입, 교수계약제 시행, 대학정원 감축, 학과간·대학간 통폐합 등 거의 모두 대학의 ‘운영’에 관련된 것이었다. 대학의 ‘교육’에 관한 정책은 극소수였고,‘학문’에 관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대학이 학문적 비전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학문적 종속 상태를 벗어나 자생적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 전제가 되는 첫번째 조건은 ‘사학비리의 척결’이다. 우리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이 아직도 전근대적인 세습과 족벌경영 체제에 의해 운영될 때 그 미래는 없다. 둘째,‘고등교육 재정’이 선진국 수준으로 확보돼야 한다. 선진국에 버금가는 교육환경을 마련하지도 않고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결과만을 요구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셋째로 대학의 자율과 자치가 보장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부의 위상 재조정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학문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교육부는 조삼모사식 정책 수립과 수정, 그리고 시행에 급급하게 된다. 대학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학문의 미래를 구상하는 국가차원의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 “학술윤리강령부터 만들어야”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 교수 이번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파문을 계기로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우선 지난해 말 ‘황우석 사태’ 이후 서울대가 했던 것처럼 대학별로 학술윤리강령을 만들어 선포하고 대학별 혹은 국가 차원에서 표절을 감시하고 신고받아 판정하는 기구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중복게재가 많았다고 알려진 BK21 사업에 대해서는 특별조사가 필요하다. 중복게재된 논문은 교수 업적에서 삭제해야 한다. 중복게재된 논문을 업적평가, 승진, 채용, 연구결과 신청서, 연구결과 보고서 등에서 의도적으로 활용한 것이 드러나면 적절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복게재로 연구비를 받았거나 대학평가 등에서 중대한 혜택을 입었다면 이로인한 이득을 환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학술진흥재단의 학술지 평가정책으로 표절이 상당부분 근절됐고 논문의 질도 높아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재단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학술지, 특히 교내 학술지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학술지에 중복게재 금지 규정을 명시하고 외부심사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등재지가 될 가능성이 없는 교내 학술지는 폐간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학부시절부터 표절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학생들의 리포트 표절이 심각하다. 대학별로 신입생 글쓰기 시간 등을 활용해 표절교육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한글 표절감시 프로그램을 개발, 배포해 학생들의 리포트를 체크하는 데 활용하도록 한다. 불리한 권력관계에 놓여 있는 연구자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연구비 배정에서 과도한 ‘선택과 집중’ 원칙을 지양하고 관료주의적 연구비 지원을 근절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초연구에 소홀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
  • 감동! 감동! 3년째 모친 병수발하는 9살소녀

    “겨우 9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가 어른들도 해내기 힘든,중병의 어머니 병수발을 들고 있다고?” 중국 대륙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학생이 병이 들어 기동도 못하는 어머니를 3년째 보살피며 구김살 없이 생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살고 있는 한 어린 소녀는 말초신경 근육무력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며 활달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 담임 교사 등 주변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신문인 대양(大洋)망이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9살의 리단잉(李丹瑩)양.3년전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한 이후 중병의 어머니를 정성껏 보살피고 있는 소녀가장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6살 때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소녀가장 역할을 해온 리양은 매달 국가 생활보조금 300위안과 아버지 회사로부터 나오는 보조금 150위안 등 450위안(약 5만 4000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어머니 치료비 등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탓에 리양이 직접 돈을 벌어야 했다.가녀린 몸으로 날품팔이는 말할 것도 없고,약초를 캐거나 채소를 가꿔 고린전을 만들어 가계에 보태며 생활하고 있다. 특히 벌써 3년째 소녀가장 역할을 맡다보니 어머니를 돌보는 일 뿐 아니라 어른들도 힘겨워하는 일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직접 해낸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그녀는 먼저 어머니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어 침상의 이불을 개고 어머니와 함께 세수를 한다.여느 사람이야 세수를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지만,이들 모녀에게는 하루중 가장 큰 일중 하나이다. 어머니가 혼자 앉거나 서 있지 못하는 까닭에 세수를 할려면 온몬에 땀이 비오듯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힘이 든다.어머니의 몸을 창문에 기대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 뒤 온몸을 깨끗이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겨울철이 되면 더 난감하다고.어머니가 추운 날씨 탓에 세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 리양은 “어머니는 매일매일 예뻐야 한다.”며 한바탕 시름을 하는 수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수가 끝나면 어머니를 편안하도록 침상 위에 눕힌 뒤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하지만 아직 9살의 어린 소녀여서 손도 작아 걸레질을 하는 등 청소하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다.그리고 자신의 책가방과 준비물 등을 챙겨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고…. 밤이 돼서도 쉴 짬이 별로 없다.어머니가 편안하게 잠을 자도록 몸을 한번씩 뒤집어줘야 한다.많을 때는 하룻밤에도 5번 정도 몸을 뒤집어준다.그러다 보니 밤새 토막잠을 자야 한다.이같은 일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고 리양은 털어놨다. 리야의 이런 효심을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성격이 내성적이어서 학교 등 바깥에서 별로 말을 하는 편이 아니어서,같은 반 친구들도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근 담임 교사 왕슈화(王秀華)씨가 가정 방문을 하면서 리양의 어려운 사정을 알려지게 됐다.이에 담임교사 왕씨는 학급 회의를 열고 어려운 리양을 도와주자고 호소했다. 그녀의 학교에서는 각종 잡부금을 면제해주고,교육청에서도 학비 보조를 하는데 적극 나선 덕분에 지금은 형편이 한결 좋아졌다. 리양은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딸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나와 어머니에게 관심을 가져줘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어른스레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 친환경농업에 1조 7000억 투자

    경북도가 친환경 농업을 집중 육성키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북도는 오는 2015년까지 모두 1조 7014억원을 투자하는 ‘친환경 농업 10개년 계획’과 10대 실천 계획을 26일 발표했다. 이를 통해 현재 4%선인 친환경 농업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등 ‘로하스(LOHAS·건강과 환경을 해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 경북’을 건설할 계획이다. 분야별 투자계획은 친환경 농업기반 구축 및 확대에 1조 678억원(62.7%), 친환경농산물 유통활성화 3285억원(29.1%), 농촌 환경오염 경감 및 친환경 임업육성 1550억원(9.1%) 등이다. 이를 위해 국제식품규격(Codex) 수준의 친환경 선도농가 3만가구 육성과 친환경농업 실천장려금 지급, 농약 및 화학비료 50% 감축사용, 광역 친환경 농업단지 15곳 설치, 표준 친환경농법 개발 등 10대 실천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지역별 친환경 특화광역단지 조성과 함께 천적을 활용한 원예작물 병해충 방제, 오리와 우렁이 같은 친환경 농자재 공급 등 친환경 농산물 생산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친환경농산물 전문 유통시스템을 확보하고, 소비자 신뢰향상 등을 위해 생산이력제 확인시스템 도입 및 직거래 택배비 지원·현장 체험행사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태암 농정국장은 “사업비는 매년 국비로 지원되는 농업분야 관련사업비와 도비로 70%를 확보하고, 나머지 30%는 추가로 국비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외길 40년’ 건축가 김 원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외길 40년’ 건축가 김 원

    제갈공명의 서재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 있었다.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맑은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편안하고 정숙한 자세로 원대함을 이룬다. 일생동안 좌우명으로 삼아 몸소 실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현대 건축사의 큰 획을 그은 고(故) 김수근. 생전에 “건축은 언어가 아니라 벽돌로 짓는 시(詩)”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를 가리켜 ‘한국에서 가장 경탄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했다. 이때 인터뷰에서 ‘집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집은 자궁입니다. 자궁의 집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집은 가옥이며 집의 집은 환경입니다. 집을 주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환경입니다. 환경이 철학적으로는 공간이 되겠는데, 공간은 집의 집의 집입니다.” ●‘김수근 특별전´ 6개월 동안 준비 요즘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은 아주 특별한 행사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수근 타계 20주기를 맞아 ‘지금 여기/김수근’ 전시회(28일까지)가 열리고 있는 것. 생전에 고인이 직접 설계했던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해준다. 또 ‘김수근 재조명’을 위한 심포지엄과 건축강연 등 여러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홍신자 공옥진 김덕수 등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옥’을 통해 배출된 여러 예술인들이 헌정공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훈훈한 감동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대규모의 전시는 사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 환경건축가로 유명한 김원(64)씨. 김수근과 김중업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현 건축계에서 첫손가락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1985년 일본 가지마 출판사에서 스승이자 선배인 김수근과 함께 ‘세계의 현대 건축가 10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6년에는 ‘문학의 해’를 맞아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에 뽑혔다. 김씨의 올해 나이 60대 중반. 여전히 쉼없는 왕성한 활동으로 국내 건축계를 이끌고 있다. 굳이 작품을 열거한다면 국립국악당, 독립기념관, 서울종합촬영소, 종합전시장(KOEX), 신라민속촌 등 굵직굵직한 건물을 지었고 수상경력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재는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등을 맡고 있다. 김씨는 이번 ‘김수근 특별전’을 위해 6개월동안 준비할 만큼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지난 60년대 중반 건축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초창기 6년 동안 ‘김수근 건축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김씨에겐 이번 전시의 의미도 크지만 올해로 건축가 외길 인생 40년을 맞이한다. 데뷔 당시 동료 건축가들 대부분이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감회가 사뭇 다르다. 지난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광장’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벽에 ‘담박명지∼’라는 글귀가 크게 들어온다. 앞서 언급한 제갈공명의 좌우명처럼 그의 건축인생 40년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종로 옥인동 재개발 친환경 설계 먼저 근황을 물었다. 중요한 설계를 마무리하느라 바쁘다고 입을 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일대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은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한옥집에서 살고 있다. 얼마전 이 일대에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동네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김씨에게 자문을 구했고 여러 동의과정을 거쳐 설계를 맡게 됐다. 김씨는 대신 동네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최근의 재개발 추세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른바 미래형 아파트, 즉 환경친화적 ‘웰빙 개념’을 주창했던 것. 김씨는 잠시 역사성을 설명한다. 옥인동 청운동 누하동 누상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때 종로구 가회동의 양반들과는 달리 주로 궁에 드나드는 중인들이 살았다. 의관, 역관, 갓 고치는 기술자 등이 기거하면서 위항문화(委巷文化)를 꽃피웠다. 이들은 역관 등을 통해 서구문화를 먼저 접해 비록 중인이지만 의식수준이 높았고 신분 또한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다. “위항시인들은 가난했지만 모임 날짜와 장소를 정해 정기적으로 시사(詩社,60여개의 시동인으로 추산)를 열었지요. 예를 들어 옥인동의 ‘송석원길’은 바로 이 위항문학의 대표적 흔적입니다. 천수경이라는 역관이 살았던 집에는 한달에 한번 문인들이 모였는데 추사 김정희가 직접 특강을 오기도 했지요. 이때 추사는 이들의 수준에 놀라워하며 ‘송석원(松石園)’이라는 세 글자를 써주었습니다. 이는 바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또 윤동주 이광수 이상 등 많은 문학가들이 이곳에 살아 옥인동 일대는 말 그대로 ‘조선·근대의 문학터’인 셈이지요.” 이러한 문화향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저밀도·저층의 빌라형 아파트를 설계중이란다. 이를 위해 내장과 외부는 목재와 황토, 지붕은 태양열을 흡수해 자체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시는 강북 재개발 지역의 모범답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건축의 딜레마 동양사상으로 풀어야”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 감동적인 집보다 편안한 집을 고르라고 한다. 몸은 건강하게, 마음은 편안하게, 머리는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집이어야 좋다는 것. 눈으로 보고 ‘와 멋있다.’보다는 눈을 감고 생각했을 때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의 집을 고르라는 것이다. 건물이란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 사람을 위해서 지어야 한다는 거듭된 주장이다. “이제는 건축의 지혜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종묘건축의 경우 디자인 차원이 아니라 숭고한 우주이론을 표방하듯이 현대건축의 딜레마를 동양사상의 구원에서 찾아야 하지요. 건축은 예술이 아닌 인문학입니다.” 아울러 건축가는 생활을 알고, 자연을 알고, 인생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편다. 어쩌면 오히려 나이든 지금에야 가장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그는 광복 전인 1943년 서울에서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6·25발발 3년 전 외교공무원인 아버지가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다대포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6·25 일주일 전 서울에 출장왔다가 전쟁 중에 변을 당했다. 이후 집안형편은 무척 어려워졌다. 하지만 어린 김원은 공부를 워낙 잘했고 글짓기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해 상을 죄다 휩쓰는 실력을 발휘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큰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와 경기중학에 진학했다. 생활력이 강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숙비와 학비를 보탰다. ●고1때 ‘선배´ 김수근 만나 건축가 꿈 키워 김수근을 처음 만난 것은 고1 때. 당시 김수근은 국회의사당 공모에 당선돼 명성이 자자했다. 이 무렵 ‘자랑스러운 선배’의 자격으로 경기고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다. 이때 김수근의 강의내용 중 “국회란 민의를 수렴해서 결정하는 곳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하고 또한 위엄이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라는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아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미술대학에 진학해 조각가가 되려고 했으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던 동료들과는 달리 ‘국내 잔류’를 고집하며 ‘김수근 건축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건축철학’‘공간심리학’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그러던 중 73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고 유럽의 건축을 보며 ‘우리것’을 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후 78년 한국종합전시장 현상설계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하면서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사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축 늘 생각” 80년 이후에는 ‘올해의 작품상’ 등 매년 빛나는 수상작을 내놓아 우리나라 건축문화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늘 행복해지는 건축을 생각합니다. 사는 사람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이화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초등학교 1년 후배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필생의 역작인 옥인동 아파트와 현재 이화여대 건물 5개동 짓는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3년 서울 출생 ▲61년 경기고 졸업 ▲65년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65∼69년 김수근 건축연구소 연구원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한국 현대건축가 6인에 선정 ▲77년 한국종합전시장(KOEX) 현상설계 1등 당선(정림건축 합작)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0년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추진위원 ▲82년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 현대건축가 101인에 선정 ▲92년 학교법인 계원학원 이사 ▲98년 건국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99년∼현재 국회환경포럼 정책자문위원 ▲2003년∼현재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 ●상훈 제1회 서울시건축상 장려상(79년),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80∼98년), 올림픽조직위원회 현상설계 1등(82년), 대통령표창(2001년)외 다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2003년)외 11권 km@seoul.co.kr
  •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대종상 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요. 그런데 옛날 영화 중 1965년 ‘김지미’와 ‘신영균’이 주연했던 전택이 감독의 ‘홍도야 우지마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동안 연극으로 많이 공연이 됐고, 지난 195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거든요. 또 1930년대 후반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였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홍도 역을 맡았던 배우가 ‘차홍녀’였습니다. 홍도의 오빠역인 경찰관은 그 시절 첫손에 꼽히던 배우 ‘황철’이 맡았고요. 이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는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엔 차홍녀를 생각했었기에 ‘홍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거고, 또 오빠인 경찰관 역엔 황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라는 등장 인물을 만들어 냈던 겁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는 두 남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뒤, 오빠의 동창생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거죠. 그러나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소박을 맞고 쫓겨나게 되는 겁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홍도를 마치 부정한 여자로 치부하면서, 전 약혼자와 결혼할 생각을 갖게 되고 이성을 잃은 홍도는 본의 아니게 전 약혼녀를 살해하게 돼 경찰관이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있는 오늘.‘서울야화’에서 왜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연극과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주인공 ‘차홍녀’가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지만 너무나 아까운 나이 25살에 꽃잎을 떨구게 됐던 겁니다. 그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요. 당시 극단 ‘아랑’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돌던 1940년 겨울.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에 나갔는데 그날 따라 기차가 한 40분 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그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하게 됐던 거죠. 바로 이 순간 차홍녀가 그 거지 앞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 인정이 많던 차홍녀는 그 거지에게 적선을 했던 겁니다. 거지는 그 인정이 고마워 손을 내밀었는데 차홍녀가 따스하게 거지의 손을 꼭 붙잡아 줬던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거지와의 접촉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고 있던 ‘천연두’에 걸려 지방공연을 다녀온 지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겁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걸리면 전염병치료소인 ‘순화병원’에 강제로 수용돼 비참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한약을 먹이면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는 겁니다. 차홍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 서울시내에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당시 동양극장 앞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던 거지들은 물론 서울시내 다른 지역 거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차홍녀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화장터가 있었던 홍제동까지 거지들이 상여의 뒤를 길게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우리에게는 ‘홍도야 우지마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을 통해 인기 정상에 올랐던 차홍녀.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홍녀’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엔 마음씨 고왔던 그 시절의 스타 ‘차홍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 [지금 전남에선] 일석삼조 총체보리로 농촌 살길 찾는다

    [지금 전남에선] 일석삼조 총체보리로 농촌 살길 찾는다

    이제는 보리농사가 농촌의 미래다.1960년대 보릿고개, 배고픔, 가난 등 부정적 이미지에다 쌀이 남아돌면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보리가 21세기 식품산업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무공해 친환경 식품인 보리를 소에게 먹여 짜낸 기능성 보리우유를 비롯해 보리치즈, 보리한우 등의 제품이 잘 사는 농촌을 만드는 원동력으로 기대된다. 18일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리 나영수(53)씨의 세바목장. 축사 안에는 목청껏 울어제치는 젖소 200여마리로 생기가 넘쳤다. 다른 목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하루 2t 가량의 ‘청정 보리우유’가 생산되고 있다. 먹이로 볏짚이나 마른 풀이 아닌 ‘총체(總體)보리’를 쓰기 때문이다. 나씨가 산더미처럼 쌓인 총체보리 포장을 뜯었다. 신김치처럼 푹 삭아 시큼한 냄새가 나는 사료를 던져주자 소들이 앞다퉈 몰려 한입 가득 물고 씹었다. 윤기가 자르르 돌고 탄력있는 체형과 몸집이 한눈에 봐도 건강한 소들로 비쳤다. 볏집 대신 총체보리를 먹이면서 우유량도 늘었다.(표) 1998년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는 총체보리 사업화에 성공했다. 총체보리는 알곡이 70∼80%쯤 익었을 때 이삭뿐 아니라 잎과 줄기까지 함께 베어서 기계로 둘둘 말아 비닐포장지로 500㎏씩 밀봉, 자연발효시킨 담근먹이(사일리지)다. 기존 수입 조사료에 비해 총체보리는 청정·무공해·녹색으로 상징되는 신토불이 사료작물이다. 나씨는 “3년 전부터 볏짚이나 수입 건초 대신 총체보리를 소에게 준 이후 우유량도 많고 어미소의 설사병도 사라졌으며 송아지도 잘 낳는다.”고 말했다. 총체보리는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한 축산농가에도 일석삼조의 이익을 안겨줬다. 2001년 축산연구소가 전북 정읍시의 한 축산농가에서 실험한 결과, 하루에 10㎏씩 총체보리를 먹인 소는 같은 양의 마른 볏짚을 준 소에 비해 하루 증체량이 8∼65%, 육질 1등급 출현율이 25%나 증가했다. 또 총체보리 알곡이 배합사료 역할을 함으로써 배합사료 소비량도 16∼35%나 줄어 마리당 소득이 41%나 늘었다. 나씨는 “우리 농촌의 미래는 총체보리에 달려 있다. 한우와 젖소의 사료작물로 가장 좋은 게 총체보리”라고 거듭 주장했다. 소비가 줄고 있는 보리를 사료작물로 이용하면 사료 수입대체 효과와 함께 농촌에 안정적인 소득원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배 늘려 수입 대체해야 지난해 국내 소 사료는 60% 이상이 수입됐다. 옥수수 등 배합사료 원료는 98%인 130만t(3250억원)이 들어왔다. 또 볏짚이나 마른 풀처럼 조사료는 국내 총수요량(413만t)의 17%인 69만t이 수입됐다. 이중 미국산이 70%를 웃돌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조사료는 자급률이 80%로 볏짚이 213만t이고 마른 풀은 129만t이다. 나씨는 “언젠가 수입한 알팔파 건초 더미에서 죽은 쥐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 독성이 있구나.’ 하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기르는 한우와 육우, 젖소는 229만여마리이고 2015년에는 281만여마리로 늘 것으로 봤다. 이때 조사료 수요량은 362만t이 된다. 조사료 재배면적이 지금보다 3배인 2만㏊가 더 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논을 이용한 이모작으로 보리재배가 가장 적합한 조사료 확보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총체보리는 볏짚이나 건초보다 영양가가 풍부하고 소가 잘 먹고 알곡이 달려 있어 배합사료 기능도 대신한다. 영양가로만 따지면 옥수수 사료와 비슷하다. 값도 수입건초는 ㎏에 340∼440원이지만 총체보리는 110∼139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총체보리는 농약이나 비료 한번 쓰지 않은 무공해 식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보리에는 ‘베타글루캔’이 쌀보다 50배나 더 많아 과잉 지방축적을 막아준다. 이 성분은 수용성 식이섬유로 변비·비만·당뇨·고혈압·대장암 예방에 좋다고 한다. 또 단백질과 미네랄 성분도 풍부하다. ●축산과 재배, 유통 결합해야 지금 보리농사는 골칫거리이다. 보리 소비량이 줄고 판로가 막히면서 정부 수매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전남도내 보리수매량은 2001년 82만여섬에서 지난해 58만여섬으로 크게 감소했다. 사실 보리는 거의 완벽한 친환경 무공해 식품이다. 겨울을 나면서 제초제 등 독성농약을 안 쓰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수확이 가능하다. 그래서 총체보리는 농민, 축산농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소득기반이 되고 축산농가에는 싸고 안전한 양질의 사료를, 소비자에게는 몸에 좋고 안심할 수 있는 우유와 친환경 고기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총체보리 재배는 ㏊당 소득이 110만원선으로 겉보리나 쌀보리의 67%,58% 수준에 그친다. 또 총체보리를 수확해 포장하는 트랙터 등 장비일체가 1억 5000만원으로 비싸다. 전남 나주시는 지방비로 구입비의 60%까지 보조해 주고 있으나 농협이나 축협 등은 수익사업이 아니라며 이를 기피한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총체보리뿐 아니라 총체벼도 소 사료로 쓰면서 상품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전남지역 총체보리 재배는 국내 총체보리(9121㏊)의 31%인 2853㏊(1685농가)에 이른다. 전북이 가장 많은 6000여㏊이다. 올해 국내 보리재배는 5만 8000㏊이고 전남은 55.1%인 3만 2000㏊를 차지했다. 김희열 전남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 지방농촌지도사는 “축산농가와 보리 재배농가가 결합하면 친환경 농업을 앞당길 수 있다. 합리적인 총체보리 유통체계는 지자체와 축협, 축산농가, 재배농가가 역할을 분담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청정 보리우유’특허낸 나영수씨 ‘청정 보리우유’를 아시나요. 말만 들어도 마시고 싶은 이 우유는 축산을 하는 나영수(53)씨가 지난 19일 특허신청 2년여 만에 따낸 상표 이름이다. 특허 소식을 듣고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체에서 공동생산이나 상표권을 달라고 졸라대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농민들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내친김에 국제특허도 출원중이다. 특허 인증으로 총체보리를 먹고 짜낸 우유는 볏짚 등을 먹은 일반우유와 성분이 다르다는 점을 입증받은 셈이다. 나씨는 “보리우유는 만성변비·비만증·당뇨병·고혈압·대장암 예방은 물론 청소년의 생장 촉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며 “무공해 사료로 인해 쇠고기는 1등급 육질이 높아져 안전 먹을거리로 선호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정보리 이미지를 활용한 보리우유, 보리한우, 보리치즈 등으로 제품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했다. 나씨는 “이제 청정 보리우유와 치즈를 생산해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도 수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총체보리는 무공해 청정식품이다. 소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를 쓰고 식량용으로 할 때보다 보리를 밀식재배하면 풀도 안 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도 안 하기에 그야말로 청정사료”라고 주장했다. 총체보리는 수입사료에 의존하는 국내 사료수급 여건상 널뛰기하는 국제사료 값에 대처할 수 있는 데다 안전식품이어서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우리 농촌이 잘 살려면 유기농 축산으로 승부해야 하고 그 열쇠는 총체보리에 있다.”고 했다. 3년동안 논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치고 유기농 인증을 받아 보리농사를 짓고 총체보리를 사료로 먹이면 된다는 설명이다. 나씨는 세지면 17농가와 힘을 합쳐 하루에 청정 보리우유 20t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국 처음으로 2001년 조사료 영농법인을 만들어 청정보리우유 제품화에 팔을 걷어붙인 주인공이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총체보리 사업화 성공하려면 총체보리 사업화는 농민, 농협, 축산농가가 3박자를 맞춰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정부는 보리재배 면적 감소로 재배농가의 소득원 개발 차원에서 총체보리를 소의 조사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양질의 조사료 공급량을 늘려 고품질 축산물을 생산하고 수입조사료 대체효과를 내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있다. 그러나 농가들은 총체보리가 수익성이 낮고 계약이 제대로 안 된다며 재배를 기피하고 있다. 정부는 300평당 2t 이상의 수량을 낼 수 있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여기다 농협이나 축협, 법인체에서는 “수익성이 없다.”며 총체보리 사업참여를 애써 외면한다. 현재 대부분 축산농가는 개별적으로 총체보리 생산자와 계약한 뒤 직접 수확하는 실정이어서 값비싼 기계장비를 구입(1억 5000만원)해 수확하고 운반한다. 때문에 수입산 조사료를 사서 먹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불만이다. 축산농가들은 “농협이 나서서 총체보리 재배농가와 계약하고 수확해 축산농가에 공급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총체보리 사업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명문대 교육혁명] (13) 호주 멜버른대

    [명문대 교육혁명] (13) 호주 멜버른대

    |멜버른 윤창수특파원|“실험대에서 침대까지 모든 연구시설을 제공합니다.”호주 멜버른대가 지난해 6월 설립한 연구소 ‘바이오 21’에서는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한 모든 것을 연구한다.1억달러가 투자된 ‘바이오 21’에는 450여명의 연구진이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진의 전공은 공학, 의학, 치의학, 과학, 식품자원학 등 다양하다. 세계 10위권의 멜버른 의대 바로 옆에 세워진 ‘바이오 21’에는 오늘도 전 세계의 연구진들이 속속 도착해 벤처기업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미 300여개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냈다. 투자는 멜버른대와 주정부가 반반씩 했다. 정부, 기업, 대학 등 16개 외부 기관이 참여했다. 대당 570만달러의 핵자기 공명 분광계를 7개나 갖추고 700만달러가 든 나노바이오기술 청정실을 설치하는 등 연구환경도 최상급이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구진을 같은 층에 몰아넣어 학제간 연구를 강조하는 것은 ‘외로운 영웅이 실험을 실질적 성과로 바꾸지 못한다.’는 대학의 신념 때문이다. 연구소 대표인 피터 고스 박사는 ‘바이오 21’이 ‘비즈니스에 이르는 길’ 임을 강조했다. 기업에 전문가와 연구시설을 제공하고, 기업과 대학의 협력을 통해 상업적 결과물을 낳는 것이 목표다. 고스 박사는 “현대 생명공학에는 한 사람의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오 21’이 이룩한 성과는 유명하다. 치대 학장으로 ‘바이오 21’에 참여 중인 에릭 레이놀즈 교수는 가벼운 충치를 치료하는 치약인 ‘리칼덴트’를 만들었다. 레이놀즈 교수는 치아의 산(酸)작용을 치료하는 우유 합성물 리칼덴트TM을 발명했다. 이 물질은 현재 치약, 껌, 헹굼제 등에 사용되고 있다.‘리칼덴트’ 치약은 일본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호주인들이 치아 치료에 쏟는 비용은 연간 20억달러에 이른다. 레이놀즈 교수는 발명의 대가로 빅토리아 주정부로부터 5만달러의 상금을 받는 등 많은 찬사를 받았다. ‘바이오 21’의 설립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산업계와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호주 생물공학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것이다. 연구소 설립을 주도한 딕 윈첼 교수는 “연구, 산업, 실험실, 장비의 결합은 대학의 아이디어와 발명을 실생활에 필요한 해결책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멜버른대는 의학 분야에서 탄탄한 기초 연구의 전통을 갖고 있다. 이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4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이 의학 분야에서 배출됐다. 나머지 2명은 경제학상을 받았다. 청각 장애 치료의 역사를 바꾼 달팽이관 이식 수술과 전자 귀인 인공 내이(內耳)의 선구자인 그레이미 클락 교수도 멜버른대에서 34년간 재직했다. 클락 교수가 발명한 전자 귀는 120여개국의 5만 5000여명에게 ‘소리가 들리는 세상’을 열어줬다. 멜버른대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학교 규모가 커지고 학생 숫자가 늘면서 인근의 빌딩을 사들여 캠퍼스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의 구(舊)캠퍼스와 회사 건물인지 강의실인지 구별이 힘든 신캠퍼스가 뚜렷이 구별된다. 영국의 식민지라는 ‘과거의 역사’에 따라 ‘튜토리얼 클래스’가 영국의 옥스퍼드 교육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100∼150명이 듣는 대형 강의에는 10∼20명의 학생들이 튜터와 함께 토론, 실험 등을 하는 튜토리얼 클래스가 뒤따른다. 튜토리얼 클래스를 통해 창의적 생각과 문제해결 능력, 연구 기술, 지도력, 특히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공대 전기전자 전공 4학년인 채우병씨는 “튜터가 없었다면 낙제했을 것”이라며 “공대는 숙제가 많기 때문에 튜토리얼 클래스를 통해 문제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대 1∼2학년생은 절반 이상이 낙제한다고 설명했다. 채씨가 한 학기에 듣는 강의는 4과목에 12시간이다. 튜터는 한 강의당 한 시간씩 배정된다. 따라서 총 수업시간은 1주일에 16시간이 된다. 공대 학생은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고, 법대 학생은 모의 법정을 여는 등 튜토리얼 클래스를 통해 실질적인 경험을 쌓는다. 말레이시아에서 7년, 영국에서 6년 공부한 채씨가 멜버른대를 선택한 이유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기 때문.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영국의 수능시험인 A레벨을 보고 대학에 입학했다. 멜버른대가 명성을 쌓은 데에는 뛰어난 연구 성과 외에도 교수들과 직원들이 직접 해외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친 덕도 크다. 채씨도 말레이시아에서 다니고 있던 초급 대학을 방문한 홍보단의 열정에 ‘감동받아’ 멜버른대에 진학할 결심을 세웠다. 멜버른대는 새로운 경험을 쌓으려는 미국, 유럽 학생과 미국과 영국의 전통을 함께 체험하고자 하는 아시아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학생이 의대에서 공부하고 28개국 127개 대학과 교환학생 협력을 맺을 정도로 국제교류가 활발하다. 멜버른대의 목표는 연구, 학습과 강의, 지식 전파 세 가지를 나선형으로 잘 조화시켜 사회에 이바지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는 것이다.‘바이오 21’의 곡선 계단은 세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이루겠다는 멜버른대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geo@seoul.co.kr ■ “143년 전통 의대 연구진 막강” |멜버른 윤창수특파원|지난해 1월 멜버른대 총장으로 임명된 글린 데이비스(45) 교수는 젊은 총장이다.40대지만 이미 그리피스대학 총장을 지냈다. 퀸즐랜드 주정부에서 12년간 근무한 공무원 출신이다. 부인은 왕립 멜버른 기술대학(RMIT)의 총장이어서 ‘로열 커플’로도 불린다. 멜버른대는 전 세계에 총장 모집 광고를 내고 적임자를 뽑는다. 때문에 151년의 역사 동안 멜버른대 출신이 아닌 총장이 절반 가까이 된다. 데이비스 총장도 멜버른대가 아닌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서 정치과학을 전공하고, 호주국립대(ANU)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멜버른대의 예산 가운데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나 됐지만 2005년에는 23%로 줄었다. 줄어든 예산은 수업료 인상, 유학생 모집, 기업 보조 등으로 충당했다. 데이비스 총장은 한국에서 인기높은 ‘최고경영자(CEO)형 총장’보다는 ‘아카데믹형 총장’이 호주에서는 아직까지 대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지원이 줄었지만 학생 선발 등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밝혔다.‘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정부의 제안 가운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부의 간섭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멜버른대가 의대, 특히 생명공학 부문에서 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의대가 대학 설립 초기(1863년)에 개설되어 전통이 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에 한번씩은 만나는 학생들에게 “뭐 하고 있니?”라고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도하는 자상한 총장이기도 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학생유치” 해외서 세일즈 유학생 배우자까지 챙겨 |멜버른 윤창수특파원|200년 남짓한 역사의 대륙에 151년 된 대학. 멜버른대는 1855년 4월13일 16명의 학생과 3명의 교수로 시작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시드니대가 1850년에 세워지면서 시드니와 오랜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멜버른에도 5년 뒤에 대학이 생긴 것이다. 처음 입학한 16명 가운데에는 4명만 졸업했다. 대학이 10주년을 맞았을 때는 56명의 신입생이 등록했다.1861년과 1863년 법대와 의대 과정이 각각 개설되면서 1875년에는 경쟁대학인 시드니대의 두 배가 넘는 189명이 입학했다. 시작은 소박했지만 현재는 4만 45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거대한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 재학생 숫자의 20%인 9800여명이 84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한국 유학생 숫자는 141명으로 10번째로 많다. 멜버른대는 정부 재정지원이 줄자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고등학교나 전문대학을 돌아다니며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현재 유학생 숫자가 적정수준이라는 게 글린 데이비스 총장의 판단이다. 유학생 숫자가 많은 만큼 해외에서 온 학생을 위한 서비스도 발달돼 있다. 유학생의 배우자는 일주일에 세번씩 자녀를 동반하고 영어뿐 아니라 마사지, 연극 발성, 호신술, 직업교육 등 다양한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학부모에게는 유학 중인 자녀들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24시간 언제라도 학교측과 통화할 수 있는 긴급 전화번호를 준다. 멀리 있는 자녀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호주 대학은 13년간 초등·중등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고등학생이 멜버른대에 입학하려면 교양 과정인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을 1년간 들어야만 한다. 대학측이 유학생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펭귄으로 유명한 필립 아일랜드,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 멜버른의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호주의 다른 지역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주말과 방학기간에 제공된다. 유학생의 주당 20시간 노동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연간 학비는 인문대가 1만 9500호주달러(약 1400만원), 경영대가 2만 3250호주달러(약 1600만원), 법대가 2만 6000호주달러(약 1800만원), 의대가 3만 6400호주달러(약 2600만원)이다. geo@seoul.co.kr ■ 백화점식 연구 지양 ‘선택과 집중’이 특징 |멜버른 윤창수특파원|“한국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여러 명문대처럼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전공을 2∼3개로 제한해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멜버른대의 강점입니다.” 멜버른 공대 전자공학과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채창준(48) 교수는 KAIST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비슷한 국립ICT호주연구소에서 광대역 통신망을 가입자들에게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가 멜버른대와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로 꼽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멜버른대 전자공학과(대학원)의 경우 통신과 신호처리 2개의 전공밖에 없다. 하지만 한 전공당 교수를 포함한 연구진은 50여명에 이를 정도로 학문의 깊이는 상당하다. 이 때문에 대학의 대외적 명성과 이미지도 높아진다는 것이 채 교수의 생각이다. 호주는 각 대학마다 특색을 강조해 대학별로 유명한 전공을 갖게 됐고, 따라서 전세계 대학 평가에서 순위가 높게 매겨진다고 채 교수는 설명했다. 기초 연구에 집중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도 많이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백화점식으로 학문적 좌판을 벌이다 보니 대학별로 특색이 없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호주의 대학은 연구능력에 따라 연구비를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 체제가 조성될 수 있다고 채 교수는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학교 단위의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데다 일부 대학들은 지원규모의 차이를 놓고 반발도 하고 있다. 채 교수가 한국 대학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 그는 호주 학생들로부터 영어이름인 토머스를 줄인 ‘톰’으로 불린다. 교수와 학생 모두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면서 거리감을 줄인다. 자유롭고 대등한 위치에서 학문을 논하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들로부터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수들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는 점이다. “문화를 극복해야만 한국 학생들이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 교수가 한국 유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육·해·공사·경찰대 진학 가이드

    육·해·공사·경찰대 진학 가이드

    ‘안정적이고 부담 없고.´ 군 장교와 경찰 간부를 키우는 육·해·공군사관학교와 경찰대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취업난에서 벗어나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데다 학비를 전액 국가가 책임져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육·해·공사와 경찰대가 2007학년도 신입생 모집전형을 시작한다. 육·해·공사는 지난 3일부터, 경찰대는 이달 25일부터 원서를 접수한다.2007학년도 입학전형의 특징과 준비 요령 등을 살펴 봤다. 육·해·공사와 경찰대의 2007학년도 신입생 입학전형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그러나 2008학년도부터 내신비중이 올라가는 등 대입 제도가 달라지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하면 올해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육·해·공사와 경찰대의 전형 방법은 다단계 전형으로 거의 비슷하다.1차 전형에서는 언어, 외국어(영어), 수리 등 3과목의 학과 시험을 실시해 1차 합격자를 가린다. 과목별 배점은 100점으로 300점 만점이다. 언어나 외국어에서 듣기나 말하기 평가 문항을 포함하지 않은 수능 형태의 순수한 지필 고사다. 육·해·공사는 1차 시험 문항을 공동 출제하고,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 육·해·공사의 1차 학과 시험이 당락만 결정하는 반면, 경찰대는 1차 성적이 최종 선발과정에 반영된다. 1차 전형은 육·해·공사의 경우 언어(60분,40문항), 외국어(70분,45문항), 수리(100분,30문항) 등의 순서로 실시한다. 수리는 단답형 주관식이 6문항 출제된다. 경찰대는 올해 언·외·수 과목별로 각 50문항,50문항,25문항을 출제한다. 단 경찰대는 수리에서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인 ‘10-가, 나’ 영역도 출제 범위에 포함된다. 2차 전형은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육·해·공사는 면접과 논술, 신체검사와 체력검정 등 4과목을 치른다. 반면 경찰대는 논술을 치르지 않고 면접과 신체검사, 체력검사, 적성검사를 실시한다. 모든 학교에서 체력검정과 신체검사는 일정 수준 이상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성적과 관계없이 불합격 처리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면접은 모든 학교에서 리더십이 얼마나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초점을 둔다. 공사는 신체검사에서 시력에 비중을 더 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육·해·공사의 2차 전형 배점은 면접(50점), 논술(20점), 체력검정(30점) 등이다. 면접은 일반적인 인성 면접 형태로, 서너명의 면접관이 학생 한 명을 상대로 질문을 한다. 논술은 일반 대학의 논술 형태와 비슷하다. 면접이나 논술 문항은 학교별로 모두 다르다. 최종 선발 전형 방법은 육·해·공사와 경찰대가 차이가 있다. 육·해·공사는 수능과 2차 전형 성적, 내신 등 세 가지를 합쳐 1000점 만점으로 반영한다.1차 전형 성적은 반영하지 않는다. 반면 경찰대는 최종 선발 과정에서 1차 성적의 20%(200점)를 반영한다.2차 전형 성적 가운데 체력검사만 5% 반영하며, 면접 성적은 반영하지 않는다. 수능은 모든 학교에서 언어·수리·외국어(영어)·사회탐구 또는 과학탐구 등 4개 영역 성적의 표준점수를 반영한다. 내신은 경찰대와 해사가 전 교과 평어를, 육사와 공사는 국·영·수 성적을 반영한다. 눈여겨 볼 점은 육사가 성적 우수자 가산점제를 실시한다는 점이다.1차 시험 성적의 상위 3% 안에 든 학생에게는 최종 선발과정에서 5단계로 나눠 2,4,6,8,10점 등의 가산점을 준다. 비슷한 수준의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전형요소보다 학과 시험에 강한 학생들이 육사 지원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전체적으로는 수능의 비중이 절대적이다.1차 관문인 학과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1차 전형에 합격한 뒤에는 수능의 비중이 매우 크다. 최종 선발전형에서 수능의 비중은 육·해·공사가 80%, 경찰대가 60%나 된다. 육·해·공사와 경찰대의 인기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올라가는 추세다. 경찰대의 평균 경쟁률은 2005학년도 37.4대1,2006학년도 39.8대1 등이다. 육·해·공사의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육사는 2003학년도 16.2대1에서 2004학년도 17.2대1,2005학년도 19.7대1,2006학년도 19.9대1을 기록하고 있다. 육사의 여학생 지원자도 크게 늘어 2003학년도 이후 여학생 경쟁률은 남학생의 두 배 수준을 웃돌고 있다. 때문에 입시학원들도 최소한 최상위 수준의 대학의 인기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어떻게 준비할까 육·해·공사와 경찰대에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은 비중이 가장 높은 수능 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것은 1차 전형인 학과 시험이다. 당장 다음달 중에 실시하는 1차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급선무다.1차 시험 범위는 국·영·수 고등학교 전 과정이다. 수학의 경우 3학년 2학기 마지막에 배우는 단원은 출제 가능성이 적지만 전체적으로 전 과정을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1차 시험은 경찰대가 육·해·공사에 비해 조금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경찰대 외국어(영어) 시험은 고등학교 수준 이상의 어휘가 출제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수리 출제 범위에 포함되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인 ‘수학 10-가, 나’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학원계의 분석이다. 비교적 단순한 유형으로 출제되는 수능과는 달리 수준이 매우 높다고 한다. 반면 경찰대 언어는 육·해·공사 시험에 비해 수험생들이 조금 쉽게 느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1차 전형의 성적은 공개하지만 커트 라인은 별도로 발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시학원계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육사의 경우 300점 만점에 229점 이상을 합격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사나 해사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1차 전형을 준비하려면 우선 기출문제부터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육·해·공사나 경찰대 등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기출문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육·해·공사의 논술고사는 논리력과 사고력, 창의력, 표현력 등을 평가하며, 사회 전 분야를 망라한 주제를 제시하고 수험생의 견해를 묻는 형태가 출제된다. ■ 도움말 사관등용문학원 ■ 궁금증 문답풀이 ▶일반 대학과의 차이점은? -모집단위별로 신입생을 뽑는 일반 대학과는 달리 이 학교들은 성별과 문·이과 계열별로만 선발한다. 예체능이나 실업계열은 문·이과 가운데 한 계열을 골라 응시하면 된다. 검정고시 출신도 물론 가능하다. 계열에 따른 차별은 없다. 수시모집이나 편입학 등은 시행하지 않는다. ▶복수지원이 가능한가? -육·해·공사간에는 복수지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 대학과 경찰대, 육·해·공사간 복수지원은 가능하다. 일반 대학의 특차, 수시, 정시모집에도 지원할 수 있다. ▶자격증이나 무도단증, 학생회 간부 경력, 상·표창 등에 가산점을 주나? -주지 않는다. 단 해당 사항이 학생부에 기록돼 있을 경우에는 면접시 가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족 중에 전과자가 있는데 응시에 제한을 받나? -연좌제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부모나 형제, 친척의 전과 등으로 수험생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응시 기회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여학생 모집 비율은? -모두 정원의 10% 안팎의 범위 안에서 별도로 뽑고 있다. ▶어떤 특전이 있나? -경찰대나 육·해·공사 모두 학비를 전액 면제해 준다. 옷과 교재, 기숙사비, 매달 품위유지비 등도 국가에서 지원한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