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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보도-고교평준화 30년 그후] 끝나지 않은 논란

    [탐사보도-고교평준화 30년 그후] 끝나지 않은 논란

    평준화가 정착된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평준화로 바꿨다가 비평준화로 복귀하기도 했으며, 경기도는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혼합해서 시행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과 연결시켜서 지방의 평준화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국 각지의 지역적 현실과 그에 따른 평준화 논쟁의 실태를 살펴본다. 한장수 강원도 교육감은 지난달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를 당했다. 전교조 강원지부를 비롯, 평준화를 바라는 도내 주민들이 한 것이다. 도 교육청에서 춘천·원주·강릉지역에 평준화 실시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면서 학생들을 조사에서 제외해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3분의2 이상 찬성해야, 평준화 실시 고교평준화 실현 강원교육연대(상임대표 김효문, 이하 강원교육연대)에 따르면 강원도에서는 1991년에 고교 비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이후 전교조 등을 중심으로 평준화 도입 요구가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교복 따라 학생들이 차별받고 학교가 서열화되는 등 비평준화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해 공평과 형평성을 추구해야 하는 교육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도 교육청도 이런 여론에 따라 지난 4월 평준화 도입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54.6%가 평준화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나오지 않았다며 평준화 도입을 미루고 있다. 도 교육청 허대영 중등교육과장은 “도내 각계인사 48명으로 구성된 고입제도 자문협의회에서 여론조사 결과 3분의2가 평준화 도입에 찬성하면 평준화를 실시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두 가지 방안을 건의했다.”면서 “하나는 현행 학교장 선발제를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 선발방식을 중학교 내신과 지필고사를 합산해서 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춘천·원주는 각각 1979년과 1980년에 평준화지역으로 지정됐었다. 하지만 지역 내 고교에서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이 저조하자 1991년부터 비평준화로 다시 복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실시했던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고교평준화 지지가 과반수가 되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평준화에 대한 도민의 열망은 뜨겁다는 게 전교조 강원지부 주장이다. 교육연대측은 비평준화가 가져온 부작용으로 ▲고교서열에 의한 학생 및 학부모 평가 ▲사교육 증가와 초등생 과외열풍 ▲학생들의 도시집중으로 인한 농어촌 학교의 공동화 현상 ▲선호하는 일반고 대량 탈락을 방지하기 위한 반강제적 신입생 배당 등을 제시했다. 김효문 교육연대 대표는 “비명문고 학생은 학습의욕을 상실하고 명문고에 다녀도 성적이 뒤처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를 포기하는 등 거의 모든 학생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도 학벌패권주의 때문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평준화로 전환한 뒤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민병희 도 교육위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5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진학한 도내 학생은 281명으로 2004학년도 363명에 비해 82명이 줄었다.2006학년도 수시 1학기 모집에서 도내 수험생 41명이 고려대와 연세대에 지원했으나 고작 2명만 합격했다. 하지만 도 교육청은 이달 중 고입 선발고사 실시방안을 발표하기로 하는 등 비평준화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어서 강원도에서 평준화를 둘러싼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지역별 평준·비평준高 혼재… 장·단점 논쟁 중소도시나 농·산·어촌 지역에서 평준화 또는 비평준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통학거리와 인구 등 지역의 여건이다. 평준화나 비평준화에 대한 요구보다 물리적 여건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이런 곳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추어서 평준화를 실시하거나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혼합해서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 특목고 추가 설치 준비 경기도는 평준화와 비평준화 지역이 혼재돼 있다. 수원 성남 안양 부천 고양 과천 의왕 군포 등 8곳은 평준화 지역이다. 나머지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다. 물론 경기도에서도 평준화 또는 비평준화에 대한 불만과 논란이 있다. 경기도는 이런 불만을 해소하는 나름대로의 방안을 갖고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 비평준화 지역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지역간의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예컨대 안양이나 부천 등지에서 비평준화 지역인 광명시내 진성고나 광명북고로, 안산의 동산고 등으로 진학하기도 한다. 진성고의 경우 내신 200점 만점에 190점이 넘는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 기숙학교로 여주·이천에서 오는 학생들까지 있다. 1979년 도에서 처음으로 평준화 지역으로 지정된 수원은 적어도 80년대까지는 새벽 수업과 방과후 보충수업을 하는 등 학교 간 경쟁으로 학생들의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당시 명문고들은 이렇게 해서 명맥을 유지하고 후발학교들도 이런 학교들을 따라가면서 전체적으로 성적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광명교육청 최흥재 장학사의 말이다. 하지만 그뒤 평준화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고교 성적은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들이 도내 비평준화지역의 학교나 서울의 우수고로 진학 방향을 돌렸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요구를 반영해 경기도는 내년부터 2010년까지 부천·오산외고 등 4개 외고, 수원·남양주에 2개 예술고, 시흥에 과학고 등 모두 7개의 특목고를 추가로 개교할 계획이다. ●충남은 천안에서 평준화 요구 충남도 교육청 관계자는 비평준화를 유지하는 이유로 통학거리를 들었다. 도 교육청의 서정문 중등장학사는 논산교육청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논산·강경·계룡시를 관할하는 논산교육청에는 14개 고교가 있는데, 만약 평준화가 되면 논산 지역 내 중학생이 집에서 10여㎞ 떨어진 강경으로 배정될 수 있어 물리적으로 다니기가 어렵다고 했다. 천안교육청의 경우, 지난해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평준화 지역으로 바꿀 가능성에 대한 용역을 의뢰해놓고 있다. 용역결과는 이달 중 나올 예정이다. ●경북, 포항·구미는 평준화 요구 모든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주민들의 요구와 교육여건은 다르다. 우선 포항은 2008년부터 평준화 지역으로 바뀔 예정이다. 김근호 도 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는 포항지역의 평준화 전환 여부에 대해 “오는 8월 교육부에 평준화 도입 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미시도 고교평준화 요구 목소리가 높다. 구미시의 10개 시민사회단체와 전교조 구미지회, 금오공대 총학생회 등은 지난 4월26일 구미시청에서 구미지역 고교평준화 추진위원회를 발족한 상태다. 황대철(42·구미 진평중 교사) 위원장은 “2008년 대입부터 고교 내신 성적 비중이 커지면 비평준화 지역인 구미시 학생은 대학 진학에서 불리하게 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안동은 평준화에서 주민들 요구로 1990년 비평준화로 바뀌었다. 김 장학사는 “대체로 인구가 20만명은 넘어야 평준화를 할 수 있는데 안동은 인구가 줄면서 현재 15만명 정도로 평준화로 전환하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박현갑 김재천기자 eagleduo@seoul.co.kr ■ 부동산과 평준화논란 평준화를 둘러싼 논란은 교육적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더 치열한 논쟁을 부르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과 연계된 평준화 논란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002년 1월 당시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방에서 고등학교 평준화를 없애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일제시대 교육이 좋았고, 평준화는 폐지돼야 한다.”고 발언, 교육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9월에 발표된 ‘정부 주택안정 종합대책’에는 수도권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분당·성남·수원 등에 외국어고 등 특목고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이 실제로 포함된다. 당시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집값을 잡으려고 교육정책을 흔드는 것은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집값을 안정시키려고 교육을 도구로 삼는 정책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된다.2003년 5월28일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집값 안정을 위해 교육대책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같은 날 김광림 재경부 차관도 “강남 이외 지역에 과고·외고 등의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거든다. 김 부총리는 그해 10월9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장에서도 “서울 강북에 특목고를 더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는 교육부로부터 월권이라는 비판에 부딪히자 같은 달 중순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에게 “비전문가가 교육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앞으로 교육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교육부총리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교육계를 계속 흔들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8월23일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으로부터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학군을 조정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교육수장 취임 1년 이후부터는 그동안 경제관료시절 입장과 달리 외고 등 특목고 등에 대해 ▲외고 신설 금지 ▲자사고 설립 억제 등 상반된 입장을 밝힌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외고 문제는 적어도 10년 전에 정책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끌고와서 어문계열로 진학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이 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과거 교육관료들을 은근히 비판했다. 교육수장으로서 중등교육은 평준화 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하에서 이런 말들을 한 것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취업난 반영 ‘씁쓸한 신조어’

    ‘이태백→사오정→이구백, 십장생.’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취업시장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들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3일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취업시장에서는 ‘이구백’과 ‘십장생’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이구백’은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이십대의 90%가 백수’라는 상황을 가리키기 위해 등장했으며,‘10대들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십장생’이라는 말도 탄생했다. 대학 내에서는 밥을 먹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점검하고 정보를 나누는 ‘밥터디(밥+study)’ 모임이 활성화됐다. 취업을 위해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구직자를 가리키는 ‘나홀로 서울족(인 서울족)’, 취직 못한 신세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빌빌세대’, 장기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구직자가 늘면서 탄생한 ‘공시(公試)커플’ 등도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회자됐다. 채용 전형에서 실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이 늘면서 ‘취업 5종 세트’라는 풍자어도 나왔다.‘취업 5종 세트’란 취업을 위해서는 인턴십과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등의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진행된 주요 기업의 인턴사원 공채 경쟁률은 50대1을 넘어섰다. 과거 중요하게 거론됐던 학벌과 학점, 토익 점수 등 이른바 ‘취업 기초 3종 세트’가 진화한 것이다. 또 공모전 수상 기록이 입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모전만 집중 공략하는 구직자가 늘면서 ‘공모병’이란 말도 유행했다. 지방의원도 고액의 연봉을 받게 되면서 5·31 지방선거 전후에는 ‘선거 고시’,‘직업 의원님’ 등의 말도 등장했다. 통장의 위상과 대우가 높아지면서 부업을 하려는 중년 주부들 사이에 ‘통장고시’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커리어 관계자는 “예년에는 심각한 취업난과 힘든 직장 생활을 비관, 자조했다면 올해 등장한 신조어, 유행어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고교평준화 30년 그후] (3) 양극화 암초에 부딪친 평준화

    [고교평준화 30년 그후] (3) 양극화 암초에 부딪친 평준화

    서울의 고교가 과연 평준화가 됐다고 할 수 있을까. 평준화가 30년을 맞은 시점에서 서울의 평준화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강남북간, 특목고와 일반고간 학력의 차이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다른 시·도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서울의 학교간 학력 격차는 심각하다. 경제력의 차이만큼이나 교육도 양극화되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강남의 일부 고교와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의 일류 고교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수학생들 특목고로 빠져 나가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시행된 특목고로 우수 학생들이 빠져 나가면서 교사들은 전체 학생들의 수준이 저하됐음을 실감하고 있다. 허탈감을 느끼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평준화 초기에는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상위권에서 중위권까지 골고루 섞여 있었는데 요즈음은 최상위권은 비어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언남고 김학윤 교사는 “과고, 외고, 자사고 등이 생기면서 강남권 아이들이 많이 빠져 나갔다. 공부라는 게 서로 자극 받으며 하는 것인데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 나가면 아무래도 학습분위기는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교조 이현 정책기획국장은 “특목고가 들어선 이후 평준화 의미가 많이 퇴색된 측면이 있다.”면서 ‘상층학교·하층학교’란 표현을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와 그렇지 못하는 일반 학생들이 가는 일반계 고교로 이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교육격차 벌어져 90년대 들어 벌어지기 시작한 서울의 고교간 학력격차는 서울대 합격자 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2005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 특목고인 서울과학고는 50명, 대원외고는 49명, 강남에 있는 경기고는 34명의 합격자를 냈다. 그러나 강북에 있는 많은 고교에서는 한 자릿수, 그것도 한두 명의 합격자를 낸 곳이 많았다. 송파구 잠신고 김하균 교사는 강남의 경우, 서울대는 한 학교에서 10∼20명이, 연고대는 한 학급에서 2∼3명이 가는 반면 강북은 거꾸로 서울대에 한 학교에서 1∼2명 가고 연고대는 한 학교에서 10명 정도 간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이 과거 비평준화 시절, 이른바 일류고교에서 서울대에 수백명씩 진학시키던 것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서울에서는 현재 고교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강남 8학군의 한 중학교에서 4년간 근무하다 강북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모 교사는 강남·북 차이를 실감나게 전한다.“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강남 중학교는 모든 교실에 에어컨이 설치됐던 반면 강북 학교는 3분의1은 에어컨이 설치됐으나 나머지는 선풍기를 두고 있어요.” 교육여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강남의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논술에 대비해 제공한 도서목록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읽을 정도였으나 강북은 고교생들인데도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고려대 김경근 교수가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일반계 고등학생 1537명을 조사한 결과, 이른바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강남지역의 사교육비는 월 79만원이었고 강북이나 영등포 지역은 월 41만원이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따라 학벌이 계승되고 이에 따라 빈곤과 차별이 대물림되는 결과를 낳는 심각한 사회양극화 현상이다. 잠신고의 김 교사는 “우수한 학생들이 특목고로 몰리는 현상을 해소하려면 동일계 전형을 실시해야 하고 학군도 광역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하면 우수한 학생들도 일반고교에 남을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했다. ●유학으로 한개반 사라지고, 직업반 1개반씩 늘어 서울 평준화의 기형적인 모습은 유학으로 일년에 한개반 정도가 고교에서 사라지는 반면 직업반은 오히려 1∼2반씩 늘어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중동고의 안광복 교사는 “유학가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면서 학기초에 함께 공부하던 학생들 가운데 30명 안팎의 아이들은 연말이면 강북 등에서 오는 아이들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언남고 김 교사도 “인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직업교육을 위해 고교 2·3년이 되면 어느 학교에나 직업반이 1개씩 다 있다.”고 소개한 뒤 “그런데 강북지역의 경우 3학년이 되면 3개 반까지 직업반을 두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상위권 학생들의 능력개발 욕구와 하위권 학생들의 학습부진 누적에 따른 보완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신경쟁에 큰 스트레스 특목고와 강남권 학교, 비강남권 학교의 학력 격차는 내신 경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2008학년도부터 내신 비중이 커지면서 내신 때문에 전학을 가는 현상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학력이 높은 학생들이 몰린 강남권에서는 내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사립고 2년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왔다는 그는 “내신성적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내신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영어·수학 등 주요 교과목 중심으로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한반에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1등급을 받을 실력인데 학교 내신에서는 1등급에서 4,5등급으로 격차가 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말고사 끝나면 해외유학을 가거나 내신관리에 유리한 다른 학군으로 전학가기도 한다고 했다. 내신 때문에 외국어고에서 일반고로 전학오는 학생들도 있다. 이 학부모는 “서울의 대표적인 외고에서 전교 200등을 하던 아이가 여기 와서는 전교 20등을 했다.”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평준화지역 학생배정 어떻게 서울·부산 등 같은 평준화 적용 지역이라 하더라도 학생배정 방식은 제각각이다. 서울의 경우 공동학군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학군의 학생배정은 선지원이 허용되지 않는 강제 배정방식이다. 다만 지역내 재학생 숫자보다 학교정원이 많은 중부학군은 시내 일반계 고교진학 예정자들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현행 학군을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0일에는 공청회도 가졌다. 강북에 사는 학생도 강남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시교육청 방안에 대해 고교 서열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학교선택권을 허용하는 방안은 시대적 요청이라는 엇갈린 의견들이 제기됐다. 현재 초등학교 6년생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0년부터 새로운 학군제가 적용될 전망이다. 한편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평준화 지역은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학교를 우선순위를 두고 지망하고, 지망학교 순서대로 추첨배정하는 ‘선 지망 후 추첨배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선지망에 의한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 및 학군별 컴퓨터에 의한 무작위 추첨배정을 하고 있다. 각 고교 정원의 40%는 제1선 지망자로 추첨배정하고 미달되면 제2선 지망자중에서 추첨 배정한다. 나머지 60%는 1·2선 지망 추첨배정에서 탈락한 학생을 대상으로 거주지를 감안, 가급적 학군내에서 추첨 배정한다. 2개 학군을 둔 대구의 경우, 해당 학군내에서 4개 희망학교를 지정하여 선지원 후 추첨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학교별 배정인원은 정원의 40%를 넘길 수 없다.4지망까지 배정이 이뤄진 이후 남는 정원은 선복수지원과 관계없이 무작위 추첨배정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강영혜 박사는 학군제개편에 대해 “학군단위 배정의 문제점을 최소화하면서 학교선택권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준화적용 지역이 될 포항의 경우, 행정구역으로는 남구·북구로 나뉘나 포항고·포항여고 등 이름있는 일반계 고교가 거의 북구에 몰려 있어 단일학군제로 출발하지 않으면 고교가 별로 없는 남구 지역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논란이 나올 것이라며 단일학군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박사는 특히 “평준화 지역 대부분이 40∼60% 정도 선지원을 허용하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다.”면서 “서울도 학군광역화 방안 등 학교선택권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외국에선 어떻게 미국 영국 등 외국은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거주지별 근거리 배정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에 대해서는 자율권을 최대한 인정하고 있다. ●미국 공립학교는 거주지에 따른 근거리 배정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해 마그넷 학교(Magnet School)나 학교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일종의 혁신학교인 차터학교(Charter School)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마그넷 학교는 자발적인 입학지원에 따라 학생을 학군에 관계없이 선발하는 학교다. 뛰어난 학교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통학거리나 인종구분 없이 다닐 수 있는 공립학교다. 차터 스쿨은 한국 교육부에서 도입하겠다고 밝힌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로 정부 재정지원을 받지만 위탁운영을 하는 민간(개인·법인)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사립학교는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전형자료는 내신성적, 학교별 고사, 추천서, 면접 논문 등 다양하다. ●일본 공립학교는 학생들이 거주하는 학군내 학교 지원이 원칙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입학시험을 치른다. 최근 들어서는 추천제, 면접 등 전형기준을 다양화하는 추세다.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자체적으로 입학시험을 실시한다. 학교가 위치한 지역내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있고 나머지 일정비율의 입학생들만 외부지역에서 선발한다. 종교계 사립학교, 고교·대학 연계학교 등 사립고교에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 단위학교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공립중등학교나 사립공영학교는 별도의 선발시험 없이 거주지 근처의 학교중 자신이 선호하는 학교를 지망하나 학교는 교육과정 운영, 학생선발 등에 일정한 제약을 두고 있다. 완전한 사립학교는 거주지에 관계없이 학교별로 입학시험을 통해 입학한다. 정부 재정지원 없이 자율적 운영권을 갖고 있다. 교육과정은 물론 학생들의 행동을 규율·통제하는 교칙까지 학생선택에 맡기는 사립학교인 서머힐 학교가 특성화 학교의 한 사례다. ●중국 학교별로 엄격한 선발시험을 거친다. 학교내에서 보다 학교간 수준별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평준화제도가 없다. 고등학교의 수준별 학교선택 입학으로 학교간 동질집단이 형성되고 있어 하향평준화니 학력저하니 하는 용어가 없다. 이밖에 타이완은 연합고사 성적에 따라 학교를 선택한다. 입학시험으로 인한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해친다는 비판이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고교평준화 30년 그후] (2) 평준화 이후의 학력 변화

    [고교평준화 30년 그후] (2) 평준화 이후의 학력 변화

    평준화는 학력을 저하시키는가, 향상시키는가. 평준화 시행 이후 학력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평준화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섞어서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함으로써 학력을 떨어뜨려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평준화가 학력을 신장시키고 성취도를 높인다는 반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일부 기관들은 평준화로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한국개발연구원 교육개혁연구소는 2004년에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 분석’ 보고서에서 “2001년 비평준화 지역과 평준화 지역의 고교 1∼2년생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비평준화 지역 고교생의 성적 향상도가 평준화지역 고교생에 비해 뚜렷했다.”고 밝혔다. 상위 20% 수준의 학생 성적을 1년 만에 10%대로 끌어올리는 정도로 매우 큰 것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학급이 이질적 집단으로 구성되어 우수학생에 대한 효율적인 교수·학습이 곤란하고 학습동기가 떨어지는 등 학력은 하향 평준화되고 수월성 교육에 장애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과) 교수팀은 2004년 중학교 3년생 2000명, 실업계고 3년생 2000명, 일반계고 3년생 2000명을 조사해 학생의 고교 선택권이 커질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평준화지역 선 지원 배정학교와 비평준화 학교의 수능 평균점수가 평준화지역 학교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육과정개발원이 지난해 밝힌 분석자료는 정반대 주장을 펴고 있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비평준화 제도보다 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연세대 강상진 교수와 서울대 김기석 교수에 의뢰해 2004년 9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평가 자료를 비교 분석한 연구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에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더 나은 성취도를 보인 것으로 나왔다. 이에 따르면 전국 일반계의 10%인 126개 고교 학생 8588명을 대상으로 횡단적 연구를 한 결과 평준화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비평준화지역보다 언어영역은 4.72점, 수리영역은 문과 10.28점 이과 7.91점, 외국어영역은 4.37점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 연구는 평준화 지역이 대도시에 몰려 있는 점을 감안하여 평준화학교와 비평준화 학교가 함께 있는 중소도시 지역만을 따로 비교한 결과에서도 평균적으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더 나은 학력을 보였다. 이를 근거로 전교조 등 평준화 지지론자들은 그동안 고교 비평준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고교평준화는 하향평준화’라는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연구 결과를 근거로 평준화 지역 학생의 성적향상이 평균적으로 비평준화 지역 학생보다 높다고 밝히고 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평가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평준화가 수월성 교육에 장애로 작용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생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 및 이동식 수업 등 7차 교육과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늘어가는 사교육비 왜 평준화가 사교육비 지출을 늘린다는 주장이 있다. 고교 평준화로 학교 교육이 획일화되면서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학생들이 학원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평준화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0조 7000억원 규모이던 사교육비는 2003년 13조 6000억원으로 늘어났다.13조 6000억원 가운데 초등학교가 7조 2000억원으로 52.5%를 차지했다. 중학교는 4조원으로 30%, 고교는 2조 4000억원으로 17.5%였다. 과외받는 학생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2000년에 58.2%에서 2003년에는 72.6%로 늘어났다. 사교육비가 왜 늘어나는지, 그 이유를 놓고는 논란이 분분하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급증 등 과열과외 현상이 고교 평준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학력·학벌주의 교육관에 따른 사회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면 오히려 과거와 같은 중3병 문제와 중학교 입시지옥 등 과열 입시과외를 불러 사교육의 병폐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평준화 제도와 관련이 없는 초등학생들도 각종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평준화와 사교육 문제는 상관이 없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다. 아울러 과열 과외의 원인이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에 있다기보다는 대학 입시제도의 유·불리 등 대학진학과의 연관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다. 최진명 지방교육혁신과장은 “평준화 제도를 어떻게 바꾸거나 보완해도 ‘대학진학 경쟁판’이라는 강력한 ‘자기장’을 통과하면서 변형되거나 궤도이탈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리에서 과열 교육이라는 한국적 현실을 외면하고 학교선택권 보장만을 주장하는 것은 정부정책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학교별 교육프로그램 다양화 등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런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채창균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사교육비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의 경우에도 사교육비를 줄이는 유의미한 효과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교육 질 개선으로 사교육의 필요성을 감소시킨다는 논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평준화는 사교육비에 대체로 중립적인 것으로 판단하거나 평준화 제도 철폐 없이 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곤란하다는 사고를 접고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비의 또 다른 문제는 양극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사교육비 지출에 있어서 양극화 현상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2005년 2·4분기 기준으로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간 교육비 지출 차이가 8배로 파악됐다. 고려대 김경근 교수는 아버지의 학력, 부모의 직업·소득이 수능시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에서 아버지의 학력이 중졸 이하인 학생과 대학원 이상인 학생들 사이에는 평균 50점 가까운 점수 차이가 발생, 가정의 가계소득과 수능 점수가 정비례 관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평준화정책 추진 경과 고교 평준화 정책은 1974년 도입됐다. 목적은 중학교 입시지옥을 해소하는 한편 과열과외 등 사교육비를 줄이고 고입 재수생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73년 당시에는 일반계 고교 지원자의 40%만이 진학할 정도로 고교입시는 경쟁이 심했다. 정서불안 등 이른바 ‘중3병’에 걸린 학생이 전체 중학생의 27%나 된다는 통계도 있었다. 이런 과열입시가 중학교 교육과정을 기형적으로 만들었고 이른바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도 불사하는 등의 사회·교육적인 문제가 점점 커지던 때였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이런 배경에서 도입됐다. 정부는 이 제도 도입으로 초·중학교의 과열과외와 고입 재수생 문제가 해소됐다고 주장한다. 중학교 교육과정이 제자리를 찾고 고교간 서열화 현상도 완화되는 등 성과가 적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평준화 제도는 상이한 학습능력을 지닌 학생들을 한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함으로써 교수·학습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학생의 학교 선택권과 사학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오게 됐다. 전체적인 학력을 떨어뜨린다는 학력 하향평준화에 대한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정부가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게 고교체제의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다. 특수목적고(1983년 이후) 자립형 사립고(2002년 이후) 공영형 혁신학교(2006년) 등이 대안으로 도입되었거나 논의 중인 문제들이다. 특수목적고는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고교로 공업 농업 과학 외국어 예술 체육 등 9개 계열에 122개교가 있다. 과학고는 1983년에, 외국어고는 1984년에 도입됐다. 자사고는 평준화제도 보완과 사학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돼 2002년부터 6개 학교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종합적인 시범운영 평가결과와 자사고 제도협의회 건의 등을 토대로 시범운영 기간을 2010년까지 늘렸다. 공영형 혁신학교는 학교경영 주체를 다변화시킴으로써 학교경영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공교육 체제의 혁신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또 다른 학교다.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밖에 자율학교 확대, 교과별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 대안학교 법제화를 통한 대안교육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중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신연숙칼럼] 외국어고 해법

    [신연숙칼럼] 외국어고 해법

    교육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협약형 자율학교 시범운영 및 외고·자사고 정책방안’이 외고 탄압정책으로 규정돼 집중타를 맞고 있다. 현재 전국 어디서나 지원할 수 있는 외국어고를 2008학년도부터는 거주하는 광역시·도의 외고로 제한하여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이 보도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국민들이 외고 정책 하나에 목을 매어 살고 있었던 것인지 반응의 강도와 범위에 새삼 놀라게 되거니와, 찬찬히 들여다보면 교육부도 별로 잘한 일은 없어보인다. 교육부 정책에 반발하는 쪽은 “당장 중학교 2학년에 적용되는 정책을 이렇게 갑자기 발표하느냐.”“이제 막 문을 연 학교의 투자 손실은 누가 보전해 주느냐.”고 투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발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것 같지 않다. 교육부는 이미 작년에 2008학년도 대입 내신 강화안을 발표하면서 동일계열 진학 외 내신불리 조항을 명백히 하여 입시 목적의 특목고 지망생에게 주의를 환기하였다. 당시 한 신문은 ‘두 아들을 특목고에 보낸 엄마의 충고’라며 입시제 변해도 특목고는 불리할 게 없으니 맘놓고 보내라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이 기사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특목고 입시 준비는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실패해도 남는 장사‘로 보면 된다. 특목고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일반고 가는 데 아무 손해가 없고 오히려 그동안 공부한 것은 그대로 남는 것 아니냐?” 이런 기사를 대서특필했던 언론사가 이번엔 가장 강력하게 특목고 준비생의 피해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의아하다. 신생 외국어고, 국제고의 투자 운운하는 부분도 그렇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영리목적의 학교설립 인가는 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손실 보전 거론은 듣기에 민망하다. 그러나 교육부가 외고 지원 자격을 제한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외고는 과학영재에 비하여 인문계 쪽은 영재교육기관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외국어 교육목적의 특수고이다. 사립에, 특수 목적을 가졌기에 처음부터 전국단위 모집을 했다. 외국어 목적고가 외국어 전공자는 30%밖에 키우지 않는 비(非)외국어 목적고가 됐다면 목적에 맞는 운영을 하도록 정책을 구사해야지, 엉뚱하게 광역 시·도와 학군으로 지원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쯤해서 외고 문제에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 외고에 가는가. 인문계 영재라서? 외국어 전문가가 되려고? 십중팔구 아니다. 집중적인 입시교육으로 일류대학에 ‘편안히’들어가기 위해서란 말이 맞을 것이다. 교육부는 취지에 맞는 외고는 전국모집을 하게 두되, 변질된 학교는 과감히 정리하는 게 옳을 것이다. 물론 현재도 정원은 이미 초과상태이므로 더 이상 신설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 현재와 같은 교육을 하겠다면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시키면 된다. 귀족학교다 뭐다하여 자립형 사립고를 두려워하니 외고 범람 사태에 대책이 안생기는 것이다.1년에 뒷방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과외공부를 하는 것은 되고, 같은 돈을 내고 떳떳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 옳은 정책인가. 교육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도 재고해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라도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와 사회제도 안에서 존재하는 한 사회적 책무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입시올인’‘학벌사회’의 환경 하에서 그것은 ‘성적에 의한 선발 금지’이다. 선지원 추첨제에 의한 자립형 사립고 설립허용을 다시 한번 제안한다. yshin@seoul.co.kr
  • ‘전교조 비판’ 논쟁 확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 현재 전교조를 두고 “교육발전 걸림돌”,“대안없이 비판만 하는 집단”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전교조 투쟁을 둘러싼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논쟁의 가운데에 교원평가제와 교원성과급제 등 참여정부의 핵심적인 교육현안이 있어 대안마련 등 건설적인 토론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전교조 성향의 교육단체인 ‘학벌없는 사회’는 김 전 비서관의 전교조 비판을 정부의 시장주의 개혁과 연계해 비판했다. 이 단체는 “초중등 교육부문이 지옥으로 바뀌게 된 원인은 사회양극화와 대학서열체제에 있다.”면서 “그런데도 정부의 교육개혁은 대학서열체제와 사회양극화를 더 심화하는 내용 일색”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오직 전교조만이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입시전쟁’을 단호하게 거부해 ‘명예로운 고립’이라는 훈장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2001∼2002년 전교조 위원장,2004∼2005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이수호(선린인터넷고 교사)씨는 “기본적으로 김진경씨를 전교조와 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면서 “마치 현재 한나라당 김문수, 이재오 의원을 ‘민중당’이라고 보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그는 “지금은 교욱 민주화를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저지가 전교조의 가장 큰 목표”라면서 “과거의 잣대로 현재 전교조를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전교조 조합원인 서울 U고등학교 김모 교사는 “어느 조직이든 소수의 목소리는 있기 마련”이라면서 “김 전 비서관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현재 전교조에 있긴 하겠지만 다수의견은 분명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교조 초창기 핵심 멤버였던 이인규 서울 미술고교 교감은 김 전 비서관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 교감은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 2대 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교육혁신위 전문위원과 국가인권위 학교교육 전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감은 “김 전 비서관의 비판은 개인만의 생각이 아닌 전교조 초창기 멤버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전교조는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은 19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교육인적자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장 위원장은 “김씨의 비판은 보수진영의 ‘노조 죽이기’행태와 다를 바 없으며, 전교조의 개혁성과 진보성을 매도하려는 시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2) 평등에 관한 명상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2) 평등에 관한 명상

    평등도 자유(21회 글)처럼 근대사상의 핵심 주제다. 무엇보다 먼저 평등의 요구는 불평등한 현실이 참을 수 없기에 일어난 것이다. 불평등한 현실은 사회의 생존경쟁이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사회생활이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들을 갖고 출발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신분계급에 의한 불평등, 학벌에 의한 불평등, 종족에 의한 불평등, 성별에 의한 불평등, 직업에 의한 불평등 등이다. 이런 불평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다 쉽게 알 수 있다. 근대적인 평등의 요구는 저런 중세적 불평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불평등 부정의 사상은 인간사회에서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비정신의 반영이겠다. 어떤 이들은 불평등 부정의 정신을 불의에 대하여 분노한 사회정의의 요구로 읽기도 한다. 나는 불평등 부정의 정신이 정의의 요구보다 오히려 자비의 정신에 더 가깝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불의에 대한 분노의 정신으로서의 정의감은 어딘지 화가 나 있어서 정의란 이름으로 나온 불의에 대한 증오가 새로운 불평등을 복수심에서 낳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평등 부정의 정신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억울함을 느끼는 자들이 받는 마음의 고통을 풀어주는 자비의 정신으로 여긴다. 이 불평등이 왜 사회적으로 생겼을까?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불평등의 억울함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고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밝혔다. 루소는 자연상태와 사회상태를 대칭적으로 읽으면서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선량했으나, 사회상태에서 인간이 타락하기 시작했다고 여겼다. 말하자면 ‘생각하는 인간은 타락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루소 철학의 출발점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지능을 가진 동물이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으로 단순 생존을 추구해 나갔는데, 인간의 지능이 동물적 본능의 역할을 대행함으로써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의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학적 지능의 사회상태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악은 이 사회상태에서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악은 사회상태를 가져온 지능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능이 인간 사이에 우열을 낳게 하고, 이익을 더 많이 낳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사유 재산을 더 많이 확보하면서 불평등한 지배체제를 굳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 지능의 차이로 인간이 스스로 족쇄에 갇혀 사는 불평등과 부자유의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루소의 이런 철학은 20세기 프랑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영향을 미쳤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연상태에서의 상호교환의 거래였던 토테미즘이 타 집단에 대한 자기집단의 지능 우위가 입증되면서 토테미즘이 순식간 카스트제도로 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루소가 말한 감각적 본능과 자연적 균형으로 살 수 있었던 인간의 자연상태나,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토테미즘적 완전교환의 상태는 다 유가적 요순 사회와 유사하고, 또 마르크스가 본 원시공산사회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저런 원시공동체는 인간에게 사회적 지능이 등장한 이래로 상실된 낙원과 같다. 낙원의 상실은 사회적 지능의 등장이 가져온 필연적 귀결이다. 구약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금단의 열매도 지능이 인간에게 생겨서 낙원을 잃게 된 인간의 현실을 알려주는 탁월한 신화로 보아야겠다. 지능은 문명의 편리함을 상징하는 경제기술을 발명했으나, 지배종속의 차별을 낳았고, 의기양양한 승자와 앙앙불락한 패자의 사이에 헤겔과 마르크스가 본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에까지 이르게 했다. 루소와 마르크스 같은 근대 철학자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지능으로 낙원을 상실한 인간의 사회생활이 어떻게 하면 자연상태의 원시적 순수성으로 재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사회주의의 실습을 통해 공산주의 부활을 꿈꾼 마르크스의 온갖 헛수고를 여기서 다루지 않더라도, 루소의 저서인 ‘사회계약론’도 저런 의도와 같은 맥락에 속한다. 그의 정치사상은 사회생활에서도 자연상태의 부활이 가능한 길을 터놓기 위한 도덕적 정치의 이념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루소와 마르크스가 생각한 이상적 도덕성의 요구가 실질적으로 선의 도덕성만 구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예견하지 못한 불선(不善)의 짙은 어둠을 동반하게 되었다. 현대생활은 그 어둠을 경험하고 있다. 자유사회의 이상은 본의 아니게 이기주의의 보호막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생겼고, 평등사회의 이상은 불평등의 억울함을 씻어주기보다 오히려 대등적 평등주의의 가치관을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대등적 평등주의 가치관은 소유론적 평등주의의 가치관과 같다고 하겠다. 가브리엘 마르셀이 그의 저서 ‘인간적인 것을 거역하는 인간들’에서 잘 지적했듯이, 대등적 평등주의의 가치관에는 ‘나는 너와 같다.’는 의식이 강렬하게 깃들어 있다.‘너는 나의 형제다.’라는 형제애를 나타내는 말과 달리 ‘나는 너와 같다.’라는 대등의식은 소유적 불평등에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시샘을 느끼는 심리를 진하게 풍긴다. 대등적 평등주의는 불평등을 부정하는 자비정신과는 다르다. 대등적 평등주의는 강한 자아의 아상(我相)과 아만(我慢)으로 으쓱대고 싶은 자아의 심리와 자기보다 능력이 나은 타자에 대한 증오와 질투의 심리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런 사회는 오직 소유의 다과만을 비교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자연적 평등의 관계로 복원시키고자 한 루소의 정치사상은 오히려 근대사회에서 소유적 대등주의로 미끄러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불평등을 부정하고자 하는 루소의 정신은 오히려 사회 전체를 대등심리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등주의가 오히려 사회전체에 원한(怨恨)의 심리를 더 자극하게 되리라는 것을 기원전 동양의 순자(荀子)는 미리 통찰하고 있었다. 순자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사회질서의 유지와 전쟁방지와 경제복지생활과 다소 사치스러운 문화생활의 향유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낳기 위하여 사회기능을 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념을 순자는 유가의 경전인 ‘서경(書經)’에서 빌렸다. 그 말이 ‘유제비제’(維齊非齊·큰 평등은 동등하지 않게 함)다. 그는 사회가 소유론적 욕망의 대등한 요구로 나아가면 그만큼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가 대두하리라 믿고, 사회를 차이의 예법으로 구분할 것을 주장했다. 이 순자의 사상은 맹자의 공상적 덕치주의와 달리 대단히 유효하고 실질적인 데가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앞에서 거론한 불평등을 부정하는 정신과 잘 맞지 않는 점도 생길 수 있다. 즉 ‘유제비제’가 대등주의의 혼란을 막을 수 있으나, 불평등의 억울함을 씻어주는 데 매우 인색할 수 있다. 순자가 말한 차이의 제도화가 자칫 차별의 불평등을 촉진시킬 수 있겠기 때문이다. 우리의 길은 불평등 부정의 정신을 이으면서 대등적 평등주의에 빠지지 않고, 또 차별적 불평등으로 고착되지 않는 제3의 길을 찾는 데 있다. 루소가 의도하지 않았던 대등적 평등주의나 순자의 ‘유제비제’의 이념이 다 겨냥하고 있는 것은 소유론적 평등관이나 소유론적 차등관이다. 대등한 물질적 소유의 주장이든, 대등한 소유가 오히려 사회질서를 붕괴하는 요인이 된다는 주장이든, 좌우간에 저 두 주장은 다 소유론적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 인간이 소유론적 평등을 주장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대등론으로 미끄러지고, 인간이 소유론적 차등을 주장하면 그것이 계급적 차별론으로 흘러들어가기 십상이다. 우리의 주장은 평등론이 결코 소유론적으로 정착되어서는 안 되고, 존재론적으로 이해되고 생활화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평등론은 첫째로 불평등 부정의 정신을 견지하는 것이고, 둘째로 루소가 생각한 것처럼 인간의 사회상태를 자연상태로 복원시키려는 원력을 함의하고 있어야 한다. 불평등 부정의 정신은 대등한 평등주의의 이념과 다르다. 불평등 부정의 정신은 억울함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자비의 정신이지, 결코 대등한 소유의식의 당돌한 요구가 아니다. 존재론적 평등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자연의 만물이 지니는 존재양식인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로서 바라보는 사고방식에서 가능하다. 상관적 차이는 자연의 만물이 서로 다르기에 상관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말한다. 자연의 만물은 자기동일성을 지닌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아래서 자기 존재를 발생시키는 의타기적(依他起的·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기는)인 존재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새는 벌레들과의 상관적 차이에서, 벌레들은 풀들과의 상관적 차이에서 존재하는 의타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타자들이 없다면 자기의 존재도 실존하지 못한다. 이런 상관적 차이가 바로 존재론적 평등의 존재양식에 해당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독립적인 자기동일적 존재가 아니라, 서울신문에 ‘철학산책’의 연재물을 쓰는 의타기적 존재다. 서울신문이 없다면 이 글을 쓰는 나는 실존하지 않는다. 나는 서울신문을 통하여 내 생각을 발표하기에 서울신문이 고마운 존재고, 서울신문도 나의 현전으로 조금은 영향을 받았겠다. 이것이 의타기적인 존재방식이다. 기업의 자본가는 자본과 경영의 측면을 상징하고, 노동자는 기술과 노동의 측면을 대변한다. 또 우리는 기업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다. 자본가와 노동자와 소비자는 다 기업의 존재를 평등하게 유지시켜 주는 의타기적 존재양식을 띤다. 이 셋의 관계에서 일방이 없으면 타방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타기적인 차이의 상관성이다. 대등주의나 차별주의는 다 자연의 길이 아니다. 자연의 길에 인간의 미래적 희망이 있다. 평등은 인간의 자존심 대결을 정당화시키는 대등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서로 다르기에 서로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자연적 존재방식을 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20&30] 나이에 걸맞지 않게…

    흔히 20대는 사회로 처음 진입해 좌충우돌하는 시기,30대는 자기 자리를 찾아 바닥을 다지는 시기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런 공식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 살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러느냐는 핀잔이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는 구박에도 개의치 않는 그들, 또래답지 않은 2030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애늙은이 20대 “건강이 최고 따라와” 입사 3년차 이지은(27·여)씨의 신조는 ‘건강이 최고´이다. 세상에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씨는 또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건강을 챙겨 주변에서 ‘애늙은이´란 소리를 듣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약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대추, 해바라기씨, 늙은 호박 등 몸에 좋다는 음식은 모조리 구해 달여 먹는다. 지난해에는 뱀술을 구해 먹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기겁을 했다. 직장에서는 비공식 동호회인 ‘몸보신 클럽´에 가입해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1주일에 한 번 정도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임이다. 이씨를 제외하고는 회원 대부분이 40∼50대다. 지난주에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대신 회원들과 행주산성 근처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고 왔다. 너무 일찍 유난을 떤다고 핀잔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씨는 이것이 자기를 소중히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취업준비와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어머니가 먼저 챙겨주셨는데 좋은 음식과 보약을 먹고 효과를 보고 나니 이제는 제가 알아서 찾아 먹어요. 건강은 젊었을 때 챙기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지난해 가을 취직한 김영진(28)씨는 지금까지 밖에서 점심식사를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시락을 싸오거나 구내식당으로 간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하루에 최소 두 끼는 학생회관 식당에서 해결하는 소문난 ‘학관 마니아´였다. 회식을 할 때에도 회비를 내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 먼저 일어나서 꼭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간다. 이런 절약습관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한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중학교 때 생겼다.“그때는 어쩔 수 없이 아꼈지만 지금은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아낍니다. 남들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궁상을 떤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 덕에 입사동기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돈을 모을 수 있었으니까요.” 학원강사 김현지(26·여)씨는 쇼핑 전문가다. 하지만 또래들처럼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에 주로 간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도 꼭 오후 10시 이후에 찾는다. 바가지를 안 쓰기 위해서다. 이때쯤 도매상에 가면 물건을 사러 오는 소매상들로부터 시세와 물가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김씨의 책상 위에는 채소, 우유, 생선 등 가격을 근처 시장과 슈퍼마켓별로 비교해 적어놓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업데이트는 1주일에 한 번, 이 메모를 보고 슈퍼마켓을 돌며 가장 싼 물품들을 산다. 주변상가에는 ‘깍쟁이 처녀´로 소문이 다 났다. 꼭 어머니 대신 장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워낙 즐기다 보니 어머니도 딸에게 장보는 일을 위임했다. ‘20대 애늙은이´ 중에는 이렇게 일찍 철 들었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무 눈치 빠르게 행동해 얄밉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박모(29·여)씨는 두 살 차이 나는 1년 후배 여사원만 보면 어린 나이에 왜 저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배는 차장, 부장 등 자기 인사고과와 관련 있는 상사의 집안 대소사를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생일이나 장례식 같은 잡다한 경조사는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기념일에 꽃다발까지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커피 심부름 같은 일도 먼저 발벗고 나서 동료 여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변에서는 군대에라도 다녀온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박씨는 “윗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잘하면서 후배들은 얼마나 견제하는지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신경쓰는 상사의 옆에는 앉지도 못하게 한다.‘늙은 여시´라고 악명이 자자하던 입사 20년차 40대 노처녀 선배도 ‘어린 여시´가 더 무섭다며 두 손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철없는 30대 “백수, 내스타일이야” 백수 3년차인 김모(32)씨의 별명은 ‘국가시험 전문가’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계속 미역국을 먹고 포기했고, 졸업 직후에는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운이 좋아 대학 교직원으로 취업했지만 답답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한 학기를 겨우 채우고 사표를 냈다. 지금은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매달린다. 물론 결과는 모두 낙방.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 제발 한 우물만 파라고 안달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시간은 많다.”고 여유만만이다. 김씨의 이런 ‘시험벽’에 애인은 떠나간 지 오래이고, 생활패턴이 달라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외되지만 김씨는 아직도 “이것이 내 스타일”이라며 오늘도 꿋꿋이 도서관을 찾는다. 4년째 공사 시험을 준비중인 이모(31)씨는 졸업 직후 딱 한 번 회사생활을 하다가 깐깐하게 구는 선배와 한바탕 맞짱을 뜨고 스스로 그만둔 경우다. 퇴사 직후 철밥통을 찾겠다며 공기업 취업준비를 했지만, 아직도 소싯적 버릇을 못 버린 것이 문제. 이씨는 지금도 스타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을 꼬박꼬박 하루 2∼3시간씩 하고 있다. 본인은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항변하지만, 주변에서는 그 버릇 버리고 공부에 올인하기 전에는 절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혀를 찬다. 결혼시장에도 또래답지 않은 기준을 대입시키는 30대들은 적지 않다. “적어도 결혼하려면 제대로 된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회사원 정모(37·여)씨의 맞선은 기억나는 것만 120여차례다.20대 후반, 속칭 소개팅으로 시작한 자리가 어느덧 맞선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지만 배우자 후보를 고르는 그의 신념만은 10여년간 변한 게 없다. 기준은 ‘운명 같은 사람’. 그는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몇 차례 만나보고 감흥이 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는 “무슨 멜로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만남은 아니더라도 뭔가 가슴시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확실하게 느낌이 오는 사람이 없네요.” 그간 죽자고 정씨를 따라다닌 사람만도 3∼4명이나 됐다. 학벌이나 직장, 가문 등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결코 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일방통행’에 맘을 내줄 순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30대 후반에 단지 느낌이 오는 남자를 찾는 걸 보고 친구들도 철없다고 하지만 한번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결혼 정보업체 등에 따르면 혼기가 꽉 찬 30대들 가운데도 이상이 지나치게 높거나 10대 같은 사랑을 꿈꾸는 남녀가 적지 않다. 주로 남성은 상대의 ‘외모’, 여성은 상대의 ‘직업’이나 ‘나이’ 면에서 현실파악이 안 된다는 것. 웹 기획을 하는 고모(34)씨는 앞선 정씨보다는 기준이 뚜렷했다.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대장금의 이영애 같은 스타일이다. 정확히 따지면 얼굴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이영애씨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만나면 성취동기가 높아져 연애에도 최선을 다할 테고 당연히 성공률도 높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 오미경 팀장은 “자신은 원래 어려보이는 얼굴이라며 연하의 남성을 찾는 여성이나 특정연기자와 닮은 여성과 만나고 싶다며 외모를 강조하는 회원들을 보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나이에 걸맞은 생각이 꼭 옳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배우자를 찾는 데 있어선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이젠 고향분들이 출세했다 하겠죠”

    “이젠 고향분들이 출세했다 하겠죠”

    “저 같은 몽타주에 멜로 연기를 언제 한 번 해보겠어요?” 가진 것 없고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주인공 캐릭터라 해도 드라마에서는 대개 멋진 외모에 잘 빠진 몸매를 지닌 배우들이 연기한다. 그런데 29일 시작하는 SBS 월화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연출 장태유, 극본 윤영미)는 다르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여자 아나운서(박선영)와 예기치 못한 로맨스에 빠지는 박달재. 외모 학벌 집안 등에서 두루두루 하잘 것 없고, 나이도 많은 노총각이다. 그 역할을 꽃미남과는 정반대 쪽에 있는 배우 이문식이 맞춤 양복처럼 차려 입는다. 이문식은 지난 23일 제작발표회에서 같이 나오는 남자 연기자들을 둘러보더니 “저랑 많이 차이 나네요.”라면서 “살아온 인생도, 외모도 캐릭터와 비슷해 ‘딱’이다 싶었는데 순박함을 빼놓고는 전적으로 처지는 캐릭터라 마냥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라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분석에 따르면 그는 바지 주머니에 빨간 빗을 넣고 다녀야 하는 이미지. 조금 관대하게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멜로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덥석 물었다. 실제 삶에서는 당연히(!) 멜로를 해봤다. 하지만 소심하고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성격 탓에 제대로 된 프러포즈는 해보지 못했다고 손사래를 친다. 술 한 잔 걸치고 용기를 내서 “난 남자로서 매력이 없냐?”고 슬쩍 돌려 말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슬그머니 넘어가곤 했단다. 바야흐로 그의 성공시대다. 연극에서 출발해 숱한 영화에 개성 있는 감초로 나와 주목받았고, 지난해 ‘마파도’부터 주연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올해에도 주연을 맡은 ‘공필두’,‘구타유발자’,‘플라이 대디’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안방극장에서도 많은 작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연은 이번이 처음. 시골 ‘깡촌’ 출신이라는 점을 무척 강조했다.“고향에 내려가 연극이나 영화한다고 하면 마을 어른들이 이젠 제발 정신 차리라고 하시죠. 시골 분들은 연극이나 영화는 잘 모르시잖아요.TV에 나오면 ‘출세했다.’는 말을 듣겠죠. 전파의 위대함이에요. 하하하.”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3년만에 새달 신곡내는 가수 주현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3년만에 새달 신곡내는 가수 주현미

    휘엉청 뜬 달밤의 아카시아 향기를 닮았다. 농염 짙은 목소리, 부드러운 듯 휘어지는 가락에 알을 낳던 꾀꼬리의 애간장도 살살 녹인다. ‘사랑∼ 그 사랑이 정말 좋았네/세월∼ 그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불타던 두 가슴에 그 정을 새기면서/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던 그 밤이 좋았네….’ 최근 네티즌이 뽑은 ‘연예대상 5월MVP’ 대스타상 부문에서 인기 순위가 태진아-임현식-주현미-임예진-고두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3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수도권 실버세대들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을 조사했는데 최불암-주현미-이미자씨 등의 순으로 꼽았다. 가수 주현미(45)씨.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골고루 인기를 누린다.‘신사동 그사람’‘비나리는 영동교’ 등에 이어 앞서 언급된 ‘정말 좋았네’까지 20여년 동안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고 있다. ●음악인생 25년… 40대에도 ‘꾀꼬리´ 사실 전통가요로 대변되는 트로트 음악은 한동안 댄스뮤직에 밀려 ‘어른들의 것’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주씨 등 1세대 트로트 가수들의 꾸준한 활동과 장윤정 등 신세대 그룹이 등장하면서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 가운데 주씨는 특유의 부드러운 리듬템포와 사뿐사뿐 고저를 넘나드는 가창력으로 젊은층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커피숍에서 주씨를 만났다. 평소 워낙 가정적인 생활에다 잉꼬부부, 현모양처로 소문나 있어 가정의 달을 맞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때마침 다음달에 신곡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울러 지난 81년 강변가요제를 통해 시작된 음악 인생이 올해로 25년째를 맞는다. 이래저래 만남의 이유가 생겼다. 주씨는 자리에 앉으면서 “멀리까지 오게 해 미안해요.”라며 보조개 섞인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요즘 공연이다 방송 출연이다 무척 바쁘지 않느냐고 인사말을 건넸다.“이달 초 디너쇼를 이틀 동안 했고요. 지난 13일에는 경주에서 공연을 가졌어요. 또 18일에는 부산MBC에 출연했고,29일에는 ‘가요무대’에 나가고….”라고 설명한다. 공연이나 방송출연 외에는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집에 있을 땐 거의 잠옷을 입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잠이 취미가 아니냐고 했더니 “맞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또 가끔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의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나간다. 혼혈아동과 독거노인을 위한 자선공연이다. 이어 신곡 얘기가 나왔다. 아직 타이틀곡이 정해지지 않아 발표단계는 아니지만 이달 중으로 녹음을 다 끝내고 6월 초쯤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될 신곡은 두곡으로 부부 명콤비 김희갑(작곡)·양인자(작사)씨와 모처럼 인연이 됐다.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 활동 활발 노래 제목에 대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어허라 사랑이라’로 정해놓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이번 신곡은 2003년 ‘정말 좋았네’ 이후 3년 만이다. “노래풍은 물론 트로트이지요. 기존에 (자신이)불렀던 노래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을 유지하면서 일종의 ‘개량형’인 셈이다. 문득 인기 비결에 대해 외모와 학벌, 가창력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데서 비롯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글쎄요, 그건 팬들의 몫인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주씨는 81년 강변가요제때 중앙대 약대 그룹사운드 ‘인삼뿌리’ 멤버로 출전, 장려상을 받아 이미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이와 관련,“원래 그룹사운드 이름은 인삼 학명 ‘진생라딕스’였어요. 실험실에서 악기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가 공연 며칠을 앞두고 합류가 됐지요.”라고 회고했다. 주씨는 이보다 앞선 중학 2학년때 작곡가 정종택씨의 주선으로 ‘어제와 오늘’이란 음반(오아시스레코드)을 낸다. 홍보용이어서 300장 한정 제작했다. 이 인연으로 대학 졸업후 서울 중구 필동에서 ‘한울약국’ 약사로 일할 때 다시 정씨의 권유로 비로소 성인음반 ‘쌍쌍파티’(84년)를 발표하게 된다. 당시 김연자씨가 메들리 여왕으로 테이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는데 ‘쌍쌍파티’가 나오면서 판도가 확 바뀔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약사출신 가수, 수수한 외모 등도 한몫 거들었다.“대학교때 몇몇 작곡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어요. 그런데 집안 맏이로 동생들도 부양해야 되고…. 가수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지요. 정종택 선생님이 직접 약국에 찾아와 음반을 내자고 했어요. 정식 독집이 아닌 메들리로 취입한 것도 비용 문제가 있어서 그랬지요.” 왜 약사가 되려고 했을까. 주씨는 자라면서 어머니(정옥선 여사·67)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평소 남편이 가정에 소홀할 때를 대비해 여자도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주씨가 태어난 곳은 전남 광주. 아버지가 한의원을 운영해 가족들이 곧 서울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전북 김제가 고향, 아버지는 중국 산둥에서 태어나 네살 때 한국으로 이주했다. 주씨는 화교집안으로 고등학교까지 화교학교를 다녔다. 주씨는 어릴 때부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곧잘 따라 불렀다. 하루는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아버지가 학교로 오더니 무조건 손을 잡고 MBC방송국으로 데리고 갔다. 차인태씨 사회로 ‘이미자 노래부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연습도 없이 곧바로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이후 명절때나 친척들이 모이는 장소에 단골로 등장하는 ‘꼬마가수’가 됐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집에 자주 찾아왔어요. 이때마다 잠자는 저를 깨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그땐 노래부르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주씨는 가요계 데뷔후 88년 연말 MBC 가수왕과 KBS 가요대상, 일간스포츠의 골든 디스크상을 휩쓸어 최고의 절정기를 누린다. 이때 수상 소감에서 ‘여보’를 부르며 눈물을 쏟아내 뜨거운 부부애를 과시했다. ●“잉꼬부부 맞는 말… 현모양처는 글쎄요” 주씨는 ‘쌍쌍파티’ 음반을 낸 직후 40일간 미주공연을 떠난다.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를 비롯해 조용필, 나미 등 쟁쟁한 멤버들이 일행이었다. 이때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던 임동신씨를 만났고 2년여 열애끝에 88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단란한 가정을 꾸려 현재 중3인 아들(준혁)과 중1딸(수연)을 두었다. “잉꼬부부라는 말은 맞는 것 같지만 현모양처라고 하면 아이들이나 아이 아빠가 아마 화를 낼 걸요. 다만 외부 공연활동 외에는 거의 100% 가족들과 함께 지내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교우관계를 잘 유지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자라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방학때면 며칠씩 선행학원엘 보내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지요.” 남편 임씨는 요즘 앵무새 두마리를 키우는 데 푹 빠졌단다. 말을 가르치고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주씨는 이런 남편 앞에서 아이들에게 “엄마는 새가 되고 싶단다.”라는 말로 비아냥(?)거린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음악얘기를 자주한다.‘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작곡한 이가 바로 남편이다. 가족들을 위해 직접 시장을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신있는 메뉴는 봄나물 밥상차림, 된장찌개, 떡볶이 요리 등이다. 약사 출신의 경험을 살려 웬만한 응급 및 상비약을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도 가족을 위한 일이다. 주씨는 노래부를 때 가사와 음감전달에 많이 신경을 쓴다고 했다. 또 어떤 무대든 내려오는 순간 곧 잊어버린다고 했다.TV도 거의 안 본다. 가족 중 어머니가 유일한 모니터. 지난주 ‘열린음악회’를 지켜본 어머니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우리 딸이 최고다. 정말 좋았다. 참 잘하는구나. 이제야 어미 귀에 들어오는구나….’ “어머니는 어미닭 같아요.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고 누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날개속에 꼭꼭 숨기잖아요.” 친한 동료로는 가수 인순이·나미, 코미디언 배연정씨 등이다. 인순이와는 친자매처럼 지낸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열심히 살아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또 아이들이 다 크면 청계산자락 조그마한 농장에서 고추 심고 꽃도 키우며 소박하게 사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1년 광주 출생 ▲74년 한성화교중학 2년때 홍보용 음반 ‘어제와 오늘’ 출반. ▲80년 한성화교고등학교 졸업 ▲81년 강변가요제 그룹사운드 ‘인삼뿌리’ 멤버로 장려상 수상 ▲83년 중앙대 약학과 졸업 ●주요 음반 쌍쌍파티(84년), 비내리는 영동교(85년), 첫정(86년), 눈물의 부르스(86년), 신사동 그사람(88년), 짝사랑(89년), 잠깐만(90년), 추억으로 가는 당신(91년), 또만났네요(92년), 정으로 사는 세상(93년), 러브레터(2000년), 정말좋았네(03년) 등 ●주요 수상경력 85년 KBS·MBC여자 신인가수상,86년 MBC 10대가수상,88∼92년 MBC 10대가수상 5회 연속수상,96년/01년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전통가요가수상 수상 외 다수.
  • [커리어 우먼] 박연신 마르쉐 제과제빵 기능장

    [커리어 우먼] 박연신 마르쉐 제과제빵 기능장

    ‘과자와 빵의 장인’임을 공식 인증받는 제과제빵 기능장은 국내에 200명이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시험이 생겼는데 실무경험이 11년 이상이거나 기능사 자격 취득 이후 실무경험 8년 이상이어야 응시할 수 있다. 재료과학·식품위생학 등 필기시험 5개 과목과 실기시험 8시간 등의 고난도 시험이다. 여성 제과제빵기능장은 9명. 박연신(51) 마르쉐 서울 역삼점 기능장이 지난 2003년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박 기능장은 “2000년에 먼저 기능장이 된 남편(김영광 한국관광대학 제과제빵과 교수)이 여성 기능장이 안 나온다며 지원해 보라고 격려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제과제빵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최고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시험을 준비하는 1년 6개월 동안 하루 2∼3시간만 잤다. 이론과 실기공부는 물론 실기시험에 필요한 체력을 다지기 위해 운동도 거르지 않았다. 남들은 수차례씩 떨어진다는 시험에 한번만에 붙었다. ●첫 시험때 합격한 여성 기능장 1호 고등학교 졸업 이전인 지난 1971년 조선호텔에 입사한 박 기능장의 업무는 점심·저녁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휴식시간에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베이커리에 들어섰고 이후 시간 나는 틈틈이 베이커리에 들러 일손을 도왔다.1년 뒤 베이커리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뜻밖의 제의를 받고 빵의 길에 들어섰다. 박 기능장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버릇이 좋은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라며 “사심없이 바쁜 동료들을 돕다보면 자신에게 득이 된다.”며 두가지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또다른 성공비결은 끊임없는 공부다. 조선호텔에서는 1∼2년마다 베이커리 담당 요리사를 교체했다. 박 기능장은 그 덕분에 여러 명의 서양 요리사들이 갖고 있는 기법이나 기술들을 곁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어 신라호텔로 옮겨 일본 빵과 과자기술을 익혔다. 신라호텔은 일본 오쿠라호텔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직급에는 연연하지 않았다.“빵과 과자는 학벌이나 직급이 아니라 실력으로 굽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련 기술이나 이론 공부에만 전념했다. 남녀차별이 거의 없는 호텔에 근무한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덧붙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조선호텔 근무 당시에는 월급이 1년에 두번 올라 1년새 월급이 두배가 되는 특전도 받았다. ●“빵·디저트 분야도 창의력 중요” 신라명과 창립멤버로 참여했던 박 기능장은 1995년 빵집을 만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석달만에 실패했고 주한 미군 용산기지에 패스추리담당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곳에서도 열정을 인정받아 1997년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배우고 싶어 1998년 직장을 나와 국내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설탕공예(슈거아트) 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마르쉐에 근무하던 후배 소개로 현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기능장 정도면 여유도 있을 법한데 그녀는 요즘도 신참처럼 출근과 동시에 그날 할일을 꼼꼼히 챙긴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 빵과 디저트 분야도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쓴다.“어떤 디저트에 어떤 토핑을 얹을까.”라는 고민을 늘 하지만, 그 고민 자체를 즐긴다. 요즘 박 기능장의 관심은 망고와 딸기 등 과일을 이용한 새로운 디저트 개발에 온통 쏠려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저트가 맛도 있어야 하지만 먹는 사람의 심리에도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기능장은 “디저트가 달고 열량이 높다고 걱정하면서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맛있게 먹고 대신 많이 걸으면 된다.”고 충고했다. 몇년 뒤 “내가 배운 기술이 다 녹아난, 작지만 아담한 빵집”을 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그녀는 빵의 세계에서 시간을 잊고 산다. 글 전경하 사진 도준석기자 lark3@seoul.co.kr ■ 박연신 기능장은 ▲1955년 서울 출생▲1971년 조선호텔▲1978년 신라호텔▲1984년 신라명과▲1995년 주한미군 베이커리 담당 과장▲1999년 마르쉐 입사▲2003년 제과제빵 기능장
  • [Book&Life] 출판상업주의와 ‘아이비리그 마케팅’

    한국의 학력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이미 ‘사회이동’의 수단을 넘어 ‘계급재생산’의 통로가 된지 오래다. 오늘날 탈신분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매개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학력, 그 중에서도 단연 명문대 졸업 간판일 것이다. 그렇기에 너나없이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가적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대학은 고사하고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이비리그 주제 관련 책들만 봐도 숨막히는 학력경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 ‘한국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 ‘공부 9단 오기 10단’ ‘공부불패 예리의 게으른 공부법’ 등 그 제목도 퍽이나 자극적이다. 지난주 시내 한 음식점에서는 출판 간담회가 열렸다. 주인공은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랜덤하우스중앙)라는 책을 낸 전혜성(77) 동암문화연구소(ERI)이사장. 그는 이 책에서 자녀를 오센틱 리더(authentic leader), 즉 진정한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일곱 가지 덕목을 제시했다.‘뚜렷한 목적과 열정을 가르쳐라.’‘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진실한 마음을 얻는 대인관계의 힘을 경험하게 하라.’는 등 그야말로 새겨들어야 할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도덕론 혹은 당위론을 피력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붕괴로 대변되는 우리의 무기력한 교육 현실이나 ‘학벌의 덫’에 갇혀 꿈을 잃고 신음하는 우리의 ‘교육 꽃봉오리’들을 고려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우리 교육 실정에 맞지 않는 얘기 아니냐.”는 질문에 “수십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한국의 교육현실을 알 수 있느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그런 ‘한가한’ 얘기도 한가한 대로 소용이 닿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6자녀 모두 하버드와 예일대 졸업, 한 가족이 11개의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광고문구가 말해주듯, 이 책은 한 마디로 아이비리그 출신 성공가정을 내세운 ‘팔기 위한’ 책이다. 출판사측은 이 책에 사활이라도 건 듯, 출간에 맞춰 대대적인 홍보공세를 폈다. 신문들은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진정한 뉴스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일단 눈길부터 끌고 보자는 언론의 무분별한 센세이셔널리즘과 ‘스타 마케팅’ 덕분인지 책은 발간 사흘 만에 3쇄를 찍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아이비리그 마케팅’은 언제까지 약발이 먹힐까. 참다운 책의 가치가 ‘책외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 거대 출판사의 상업주의에 멍들어가는 출판동네, 책 기사조차 널뛰기식 ‘추종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그런 부박(浮薄)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한 나라/임태순 논설위원

    독일에서 10년 남짓 설치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가 있었다.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덕에 학위도 받고 현지에서 전시회도 열어 좋은 평판을 받았다. 여기저기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고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 뿌리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학벌’ ‘간판’이라는 현실의 장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나와 세칭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주요 대학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간신히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동료들이 “당신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면 학생들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이라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공식적으론 모교 출신은 교수로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반면 그의 아내는 세칭 일류대학을 나왔다. 이런 간판덕에 그녀는 강사 자리가 3∼4개나 된다. 하지만 미술적 재능은 남편이 훨씬 뛰어나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은 실력있는 사람이 대접 못 받는 이상한 나라라면서 귀국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인맥과 학맥/우득정 논설위원

    한 구인구직업체가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인맥’을 ‘끈’이나 ‘파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정정당당한 겨루기에서 벗어난 줄타기로 파악한 것이다. 그럼에도 96%가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인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인맥이나 학맥, 지연 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자수성가했다는 성공담에는 인맥과 학맥을 뛰어넘기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이 약방 감초처럼 등장한다. 인맥과 학맥이 출세나 비리의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가 되다 보니 고위직 인사나 대형 스캔들이 불거지면 어김없이 학벌과 출생지가 회자된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현대차 사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사건에서도 특정 학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해당 고교 출신들로서는 범죄 조직표처럼 장식된 학맥지도가 짜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건의 이해를 돕는 가장 편리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법조계 인맥 정보를 파는 인터넷업체가 생겨났는가 하면 자신의 마당발 인맥을 1대1(P2P) 방식으로 사고파는 업체가 성업중인 세상이다. 명함관리로 나름의 인맥을 구축했다는 한 브로커는 인맥을 ‘인생보험’으로 표현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의 성공요인에 한국식 인맥·학맥 배제가 으뜸 항목으로 꼽히는 등 정반대 사례도 있다. 명문 학벌 소유자가 학벌의 짐을 벗어던지지 못해 대인 기피증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조기 유학자들이 인맥과 학맥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명문고, 명문대로 진학하는 ‘역유학’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주류로 자리잡은 경력직 채용에서도 천거해줄 ‘연줄’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학벌이니 지연·혈연 등 기존의 서열을 파괴하겠다던 참여정부조차도 ‘코드’란 명분으로 ‘끼리 끼리’ 참여하고 자화자찬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직업이 장관’이라고 불렸던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공직자로서 성공 철학을 ‘공범자론’으로 정의를 내렸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수히 많은 공범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진 전 부총리는 혼자 밤새워 모든 것을 처리하는 ‘독불형’ 관료를 가장 싫어했다. 인맥과 학맥은 부정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움직이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문화소비 양극화] 국민 69% “양극화 공감”

    [문화소비 양극화] 국민 69% “양극화 공감”

    외환 딜러인 김경식(38·가명)씨의 달력에는 봤거나 보려는 공연 일정이 빼곡히 차 있다.4월 둘째주에만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 독창회,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독주회,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3편을 봤다. 그가 지난해 본 공연은 80여편, 티켓을 사는데에만 600만원을 넘게 썼다. 공연 DVD와 음반, 서적 구입비까지 합치면 한해 문화생활비는 무려 1000만원에 육박한다. 김씨는 “문화는 내게 휴식이자 활력소이기 때문에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수정(31·가명·서울 강남구)씨는 올초 내한한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여섯 번이나 봤다. 그것도 전부 20만원이나 하는 R석에서였다. 소문난 뮤지컬 마니아인 그는 ‘필’이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고 공연장을 찾는다. 이씨의 문화비는 한달 20만원꼴. 수도권 시립합창단원으로 일하며 버는 수입에 비하면 적지 않은 돈이지만 이씨는 “공연에서 얻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고 한다. 사회복지사가 장래희망인 여고 2학년 선영이(17·서울 영등포구)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조금씩 돈을 모아 2∼3개월에 한 번 정도 영화를 보러 간다. 그것도 조조할인으로만. 선영이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이다. 건설 현장에서 뛰는 아버지는 요즘 경기가 나빠서인지 쉬는 날이 잦다.TV나 인터넷을 빼면 영화 보러 가는 게 선영이가 누리는 유일한 문화 생활이다.“가정 형편도 어려운데 극장 가는 것을 사치스럽다고 하는 어른들도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가는 게 재밌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 학교에 가서 할 이야기가 생기거든요.” 2006년,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얼굴들이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문화헌장제정위원회(위원장 도정일)가 오는 5월 공표 예정인 ‘문화헌장’초안은 ‘모든 시민은 계층, 지역, 성별, 학벌, 신체조건, 소속집단, 종교, 인종 기타에 의한 어떤 차별도 받음이 없이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평등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문화를 맘껏 즐기는 ‘마니아층’과 생계에 찌들어 문화생활을 엄두도 못내는 ‘소외계층’이 공존한다. 수십만원대를 넘는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등 공연의 고가화는 이같은 문화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학력과 소득에 따른 문화소비의 양극화는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전국 가구 가계 수지동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가구 중 소득이 상위 10%에 해당하는 계층의 교양·오락서비스 지출금액은 월 평균 25만 7500원으로 하위 10%의 3만 1400원보다 8배가 많았다. 또 학력별로도 대학원졸 가구가 14만 2000원으로 무학 가구의 2만 1700원보다 6.5배 많았다. 서울신문이 지난달 17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문화 향수 및 인식’에 대해 전화 설문한 결과 69%가 ‘문화소비의 양극화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정치·사회에서 문화로 급속히 옮겨가면서 문화향수 욕구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정부나 문화 생산자, 기업 등이 문화는 누구나 누려야 한다는 공공성을 인식해 문화 양극화를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 홍지민기자 coral@seoul.co.kr
  • 신입사원 女超 이젠 대세?

    신입사원 女超 이젠 대세?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다 싶더니 공직과 민간기업 곳곳에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여초(女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신규 채용에서 두드러져 젊은 여성들의 파워를 보여 주고 있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청 대강당에서 열린 신규 임용식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연출됐다. 연구직 공채시험 합격자들에게 임용장을 주는 자리에 참석한 최종 합격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식약청이 이번 수입식품 검사 및 시험분석 전문인력 채용시험에서 선발한 105명의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무려 79명으로 전체 75.2%나 된다. 지원자격을 석사 이상으로 제한했던 이번 공채는 박사 139명, 석사 1326명이 몰려 9.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식약청 공채에서 여성들의 강세는 최근 3년간 계속되고 있다.2004년 68.9%,2005년 53.4%였다가 올해에는 전문인력 합격생 4명 중 3명이 여성이 된 것이다. 때문에 식약청 전체적으로도 여성 공무원의 세가 늘어 1200여명의 전직원 중 42%가 여성이다. 식약청 인사팀 관계자는 “성별 비율을 따지지 않고 필기와 면접시험 결과만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리다 보니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여초 기관’으로 대표적인 곳이다.1500여명의 전 직원 중 여직원이 1000명이 넘는다. 여직원의 비중이 70%나 되는 셈이다.11일 최종 발표를 앞둔 올해 신규 공채에서도 여성 합격자가 70%를 웃돌 전망이다.60명을 뽑는 이번 공채에서 40명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초 현상은 초등학교 교사직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은 이제 일부 기관이나 조직만의 특성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외무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수가 남성을 추월해 고등고시 사상 처음으로 여성 과반 합격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지난해 정부가 처음 실시한 6급 지역인재 추천채용에서도 합격자 40명 중 여성이 28명으로 56%를 차지했다. 민간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은행과 외환은행은 나이와 학벌을 일절 배제한 신입행원 선발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같은 파격 채용은 지난 하반기 신입 공채에서 여성 합격자가 절반을 넘는 결과로 이어졌다. 외환은행은 100명 중 52명, 기업은행은 120명 중 59명의 여성을 각각 선발해 금융권의 여초현상을 이끌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5) 급훈과 화이트 칼라 범죄는 상관이 있을까?

    “공부해서 남 주냐.”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생각 열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3 급훈의 예이다. 이러한 급훈에 대해서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과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반교육적인 가치를 학생들에게 주입한 것이다.”라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러한 급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생각에 날개달기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러한 급훈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에 기인한다. 그 뿌리는 깊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만이 대접받을 수 있었다. 양반으로 행세하려면 최소한 ‘생원’과 ‘진사’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소과시험이나 관직자로 진출할 수 있는 대과에 합격해야만 했다. 적어도 3대 내에 과거 합격자가 나와야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개인을 넘어 가문의 대리전이요 총력전이었다. 물론 관직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학문과 자연을 벗 삼던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제도적으로 평민들도 과거시험을 볼 수는 있었지만 경제적인 뒷받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무튼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일종의 양반 공인서를 취득한 셈이 되고, 결국 많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독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과거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초집’이라도 해서 일종의 족집게 예상문제집이 돌았다고 한다. 오늘날 사교육의 비대화와 공교육 부실화의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된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관학에 비해 사학이 융성하여 대책 마련에 애쓰기도 하였다. 또한, 각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시험 제도를 고치기 위해 피흘려 싸우기도 했다. 이 당시에도 돈주고 관직을 사거나 대리시험과 같은 과거 시험 부정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에도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가 거의 양반들만의 리그였다면, 지금은 모든 국민이 학벌주의와 학력주의 경쟁에 나서고 있기에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더욱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사느냐 죽느냐의 입시 전쟁 속에서 일부 학생들은 정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쟁하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고, 급기야 수능때 휴대전화로 부정 응시를 하거나 타 학생들의 인터넷 원서 접수를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해킹을 하는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e)라는 용어가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범하는 범죄로, 기업인의 허위 과장 광고, 증권 및 회계 조작, 공무원 또는 정치인의 뇌물수수, 의사의 의료비리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사실 우리 사회는 일반 범죄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어쩔 수 없는 관습의 희생자로 동정을 받기도 한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그 범죄의 피해 규모와 영향력이 일반 범죄에 비해 크기 때문에 더욱 엄중히 다스려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을까 못했을까? 또한, 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했을까? 아마도 생존 경쟁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급훈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입시 경쟁 이전에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남들보다 좋은 대학과 직장을 나와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집과 자가용을 얻고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대접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전공한 지식과 기술로 정당하게 노력하여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라면 적어도 수능 부정도, 입학 원서 해킹도, 화이트칼라 범죄도 발생되지 않을 것이다. 생각 주머니 넓히기 1. 내가 만약 교사라면 어떤 학급 급훈을 만들어 보고 싶은가? 그 급훈을 한번 적어 보자. 2. 우리 반 학급 급훈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의도와 가치가 담겨져 있다고 보는가. 3. 화이트칼라 범죄가 발생한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 보자. 이에 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지위가 높고, 많은 것을 배우고, 경제적 수입이 높은 사람일수록 보다 많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한다는 말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행된 사례를 찾아보자. 김성천 안양 충훈고 교사·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 [여성&남성] ‘나쁜X’에게 난 이렇게 채였다

    [여성&남성] ‘나쁜X’에게 난 이렇게 채였다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흔히들 ‘사귀어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남녀관계에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안배경, 학벌, 재산 등 이른바 ‘조건’을 떠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화려한 작업능력 속에 가려진 ‘나쁜 남자’‘나쁜 여자’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 봤다.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가 당신에게 너무 무관심해 불만인가. 그녀가 당신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투정만 부려 짜증스러운가. 그렇다면 아래 세 사람의 기구한 연애사를 들어 보라. 그리고 애인에게 당장 전화해서 “당신만한 사람 없다.”고 사랑스럽게 속삭여 보라. A(30·여)가 더 이상 남자를 안 만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이성들은 하나같이 ‘나쁜 남자’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귄 학과 선배. 모든 사람들이 졸업하면 둘이 결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선배는 “미안해. 다른 여자가 생겼다.”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나갔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다 우연히 동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양가 상견례까지 마치고 한창 결혼준비를 하던 중 예비 시댁에서 지나친 혼수를 요구했다. 파혼, 그리고 A는 독신을 선언했다. 집에서는 A를 가만 두지 않았다. 결국 맞선을 본 사람과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결혼했다. 신혼초 행복도 잠시,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다. 이혼을 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했다. 여기서 한 남자를 알게 됐고 동거까지 했다.‘조건’을 따지자면 별 볼일 없는 사람. 그래도 진실된 모습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자 집안에서 이혼경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남자는 떠나갔다.A는 진절머리나는 ‘잔혹 연애사’를 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B(26·여)도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난 남자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지방 출신으로 혼자 자취하는 그를 위해 매일같이 찾아가 밥해 주고, 과외해 번 돈으로 용돈까지 대줬지만 그는 B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먹까지 휘둘렀다. 3년 연애 끝에 굳은 마음으로 이별을 고했지만, 그는 절대로 안된다며 도서관,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며 B를 스토킹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달이 넘게 연락이 끊겼다. 술 마시고 함께 잠자리를 한 후배가 임신해 집안에서 억지로 결혼시키게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는 “나야 잘 됐지만 결혼한 여자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올해 서른둘인 C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회사에 들어간 직후였다. 첫눈에 반한 C는 갖은 정성을 다해 그녀에게 대시했다. 그녀 역시 그가 싫지 않은지 말로는 관심 없다면서도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가 하면 영화를 보다 먼저 손을 잡기도 했다. 드디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는 날, 그녀는 “누가 당신 같은 사람 좋다고 했느냐. 혼자 오버한 것 아니냐.”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대학시절부터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있었다.C는 “반년 넘게 좋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한순간에 그 여자의 놀림감이 돼버렸다. 이제 다시 여자를 만나도 또 그런 사람일까봐 두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지혜 나길회기자 wisepen@seoul.co.kr
  • [열린세상]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3년,그리고 2년/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참여정부 3년을 맞아 국정평가 토론회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잘했다는 평가는 없고 2년차의 평점보다 낮아졌다는 평가까지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 분야는 2년째 평가 때보다 평점이 올라갔다. 대입제도의 혼란 속에서도 부적격교사 퇴출제와 교원평가제 도입 등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평균을 밑돌기는 마찬가진데 이는 정부가 특정이념 세력과의 애매한 관계설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국민의 정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직전 정부이자 지지 세력, 국정 방향이 역대 정부들 중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교육정책은 문민정부의 ‘5·31교육개혁’ 정책의 방향과 틀을 계승했다.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로 탄생한 국민의 정부지만 교육정책은 백년대계로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IMF로 인한 예산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에 포함시켰고 교육여건을 개선하고자 교실당 학생 수를 30여명 수준으로 낮췄다.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민정부 때 제안된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운영을 확정했고, 교육청 반대로 시행하지는 못했지만 서울지역의 자립형 사립고 설립도 적극 권고했다. 반면 대선 공약과 출범 당시의 국정과제에서도 밝혔듯이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기조와 방향은 ‘자율성과 다양성’이다. 정부 개입을 최소로 줄이고, 학교 현장의 교육주체들이 각각의 의무와 권리 범주 내에서 상호 협력과 견제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적성에 맞는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자율성과 다양성’은 후퇴했거나 역행했고 평등이념이 지나치게 강조됐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정부와 교원단체들 간의 정책협의 체제가 강화되면서 정책수립 과정에서 정부와 교원단체들 간의 담합은 더욱 견고해졌고 대표성 없는 일부 학부모단체의 ‘들러리 놀음’으로 일반 학부모들의 권리와 목소리는 더욱 방치되고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평등 이념을 내세운 단체·집단이 정치적 압력이나 물리적 투쟁으로 정부를 몰아세웠고 교육에 대한 다양한 욕구, 수월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기득권·몰염치로 매도하면서 갈등과 대립을 심화했다. 남보다 뛰어나려는 노력이나 욕구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적대감의 표적이 되고 학벌타파라는 이름으로 억압되는 현상을 정부가 부추기지 않았던가? 교육에서 평등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수월성 또한 중요하다. 교육기회의 균등이 확보된 시점에는 책무성이 강조되는 수월성 추구가 세계적 추세이자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다. 정부의 역할은 평등성과 수월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일이다. 교육 기회·조건에서는 평등성이 보장되고 교육결과에서는 수월성이 강조돼야 한다. 정부는 올해를 ‘교육격차 해소 원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계층·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한다면 정부의 의도가 특정 계층이나 특정 이념을 근간으로 한 하향평준화에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일반 학부모들의 권리 침해는 물론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학교 급에 따라 평등성과 수월성의 비중을 달리하는 것이다. 초ㆍ중학교에서는 교육내용의 균등성과 교육기회 평등성이 강조되고, 고교ㆍ대학에서는 다양한 학교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수월성이 강조돼야 한다. 교육개혁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적 지원에서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더 하자. 진정 평등교육이념을 실현코자 한다면 교육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유아교육을 의무교육 체제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유아교육비 지원만으로는 안 된다. 유치원 1년만이라도 의무교육체제로 편입해 교육기회는 물론 교육의 질을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중학교를 의무교육화했다면 참여정부는 ‘유치원 의무교육화’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남은 시간은 이제 2년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 [마이너리티 리포트] (2) 실직 신불자 노총각의 눈물

    [마이너리티 리포트] (2) 실직 신불자 노총각의 눈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런, 아직 제 명함이 없으니 소개를 따로 해야겠네요. 제 이름은 주영길(가명)입니다. 올해 38살입니다.‘이태백’은 훨씬 지난 나이죠. 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전 3살 때 서울로 올라온 뒤 지금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세어봤더니 22번이더군요.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와 아파트 경비원을 하시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네요. 1994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교수님이 소개해준 중소기업에 다니게 됐죠. 가난이 싫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월급만으로는 가난을 떨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주식을 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직장도 H철강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주식도 호황이라 용돈 정도는 나오더라고요. 그 재미에 빠져 점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인생역전’을 노린 거죠. 그럴 즈음,‘IMF사태’가 닥쳤습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가가 폭락했고 회사마저 부도가 났습니다. 돈과 직장을 다 날리고 남은 것은 빚 5000만원뿐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취업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직장도 없고 빚만 있으니까 어느날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조금씩 갚아도 나이 50살까지 빚을 다 갚기도 어렵겠더라고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그렇게 3년을 보내다가 파산제도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2005년 5월 파산 신청을 해 12월에 면책을 받았습니다. 일단 마음은 홀가분해졌지만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창업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밑천도 없고 제 살아온 인생이 장애물이 되어서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얻기가 어렵더군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요? 당신은 내일 당장 회사가 망하든, 쫓겨나든 해서 실업자가 됐다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처음에야 여기저기 원서도 내보고 하겠지만 실패한 횟수가 늘어날수록 몸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다 포기하게 되는 거죠. 하루하루가 밝아와도 방안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좋은 정보가 없는지 쳐다보고 있는 게 요즘 생활입니다. 괜히 돌아다니면 돈만 들고, 또 오라는 곳도 없지요. 친구들과 약속도 잘 하지 않습니다. 한심할지 몰라도 어쩝니까, 움직이면 다 돈인데. 저 말고도 실업자들이 많겠지만 이렇게 되기 하루 아침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란 겁니다. 사실 제게 여자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가슴만 아픕니다. 나를 믿어주는 여자친구에게 행복한 미래를 선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02년 어느날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한달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때 잠시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입원한 사이 대체인력이 들어와 제 자리가 없어졌더군요. 무언가 착실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하루 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가 없어 우연히 지체아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제가 ‘신불자’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렸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여자친구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커피 한 잔 사줄 돈도 궁해서 만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창업을 하겠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지만 적더라도 일정한 월급을 받고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라는 눈칩니다. 제 나이 내일 모레면 40살입니다. 인생이 답답할 뿐입니다. 실업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는데, 예를 들어 제가 전공한 건축만 해도 인력이 100만입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25만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좋아서 백수로 지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수생은 대학이 학생들보다 적어서 생기는 것이죠. 일자리보다 회사가 적으니 당연히 실업자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디 개인 탓입니까. 당신도 날 그렇게 보고 있지 않나요. 당신과 내가 뭐가 다르죠. 오늘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일자리가 있고 나는 없을 뿐입니다. 당신도 당장 내일, 아니 일정기간 동안 회사를 다녀도 그만두면 그 다음날 실업자가 되는 겁니다. 당신은 나와 정말 다를까요.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황신혜 밴드’ 보컬 김형태 고언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동정하기보다 야단치는 사람이 있다. 미술가이면서 ‘황신혜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는 등 ‘팔방예술인’인 김형태씨. 그는 청년실업자들에게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그의 사이트(www.thegim.com)에 들러 동정이나 위로를 바랐다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김씨는 취업에 실패한 20대가 자신에게 더 깊은 동정을 갖고 처지를 탓하는 것을 꼬집는다. 그는 “취직을 못한 것은 특별히 할 줄 아는 일도, 간절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벌, 나이, 지연 등을 탓하며 취업에 실패했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에게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가 원하는 실력이 없어서”라며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김씨는 청년실업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무언가 얻으려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해서는 안된다. 일단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태백들에게 드는 회초리에는 질타만 담긴 것이 아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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