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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 한국계학원 비밀과외 파문/학부모 제보로 현지언론 대대적 보도

    ◎명문고 입시문제 구입,수년간 “실습”/관할교육청,“진상조사후 법적 제재”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계 학원들을 포함한 동양계 학원들이 명문고교의 입학시험문제를 입수,학생들에게 비밀과외를 시켜온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학군 좋기로 이름나 한국교포들이 몰려있는 로스앤젤레스 남부 세리토스 지역의 이들 학원들은 캘리포니아의 공립고교 가운데 유일하게 입학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위트니고교의 입학시험 문제지를 출판사로부터 사들여 몇년동안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위트니고교 입시 비밀과외 문제는 학부모들이 관할 ABC 교육구청에 사실을 제보하고 현지 언론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에 따라 표면화 됐다. ABC교육구는 학부모들의 증언과 해당 출판사인 맥그로힐사측의 해명을 청취하는 한편 철저한 진상조사를 실시,법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이사회는 또 재시험실시및 입학시험 변경 문제도 검토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위트니고는 대입학력고사(SAT) 평균성적이 전국 1위이고 대학진학률도 100%에 가까운 공립 최고 명문고교로서 한국계 학생이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교포들은 자녀들을 이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일부러 ABC학군으로 주거지를 옮기기도 하는 실정이다. 비밀과외 소문은 몇년전부터 나돌기 시작해 교육구청이 사실확인 조사를 실시했으나 확증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출판사가 시험문제를 「믿을만한 교육기관」에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맥그로힐사는 학원들이 학생들의 테스트용으로 실시한뒤 시험지를 회수해야 하고 시험문제를 복사,유출해서는 안된다는 계약을 위반한채 문제지를 가르친 것은 저작권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교포사회에서는 과잉교육열에서 빚어진 이 문제가 한국인들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져다 주지않을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ABC 교육구의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하워드 권위원은 이날 이사회에서 재시험실시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학국계 학원들의 비밀과외 사실이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 농어촌대책 조정 난항/의보통합·도농학군 싸고 부처 이견

    정부는 이달말까지 농어촌발전대책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관계부처간 조정작업을 하고 있다. 최인기농림수산부장관은 17일 하오 관계부처장관회의결과를 이영덕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그는 『농어촌발전위원회가 건의하거나 정부가 채택한 60여개 대책중 상당부분은 확정단계에 이르렀으나 몇가지 사안은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상오 광화문 제1청사에서 정재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주재로 내무·농림수산·재무·교육·상공·건설·보사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관회의를 열고 농어촌발전대책을 중점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도 ▲농어촌출신 학생의 대학특례입학과 ▲통합의료보험제도 시행 ▲농업분야 세제감면 ▲농작물의 재해지원대상 등 굵직한 사안은 여전히 이견은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농어촌학생 대입 특례를”/도농의 학군·의보 단일화

    ◎농발위,「농정개혁 과제와 방향」 보고/“농산물 직거래 제도화”/김 대통령 농어촌발전위원회(워원장 김범일)는 농어촌 학생에 대학 입학정원의 일정비율을 배정허거나 또는 특별 전형을 통해 진학 기회를 넓혀줄 것을 건의했다.또 농·수·축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고,행정구역과 학군을 생활권 단위인 군·농 통합형으로 개편할 것도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농발위는 오는 6월 말까지 마련할 최종대책에 앞서 19일 이같은 내용의 「농정개혁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중간 보고서를 김영삼대통령에게 제출했다.
  • UR극복은 농정개혁으로(사설)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촌발전위원회(농발위)가 건의한 농정개혁과제는 그 내용이 농업구조조정뿐이 아니고 범국민적인 농어업지원대책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이 위원회는 개혁과제로 농정추진체계정비,농지제도및 유통구조개선등 그동안 논의되어오던 농정과제에 대해서 상당히 파격적인 건의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어촌의 의료·복지개선과 농어민의 자녀교육문제 등의 과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건의내용중에는 농정당국인 농림수산부가 과거 추진하려다 관계부처의 반대로 좌절된 의료보험통합문제등이 있는가하면 현재 정치권의 핫 이슈로 되어 있는 행정구역개편방안등이 제시되고 있어 앞으로 정부가 이를 어떻게 수렴하여 수용할지 궁금하다.또한 농·수·축협의 개편문제는 해당단체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발효이후 우리농어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농업구조조정과 정주생활권으로서의 환경개선이 불가피한 과제다.그점에서 농발위가 농어업경쟁력강화방안으로 제시한 농·수·축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중의 과제로 여겨진다.이번 건의에는 원칙적으로 분리한다고만 밝히고 있으나 농·수·축협의 신용사업을 분리한 뒤 통합하여 대형화하는 문제까지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농어촌의 복지증진을 위해서 절실한 과제인 농어촌지역 의료보험을 직장및 도시의료보험과 통합하는 것은 농어촌은 국민의 식량공급원이자 향리라는 점에서 미시적인 이해를 초월하여 도시민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 하고 정책적인 결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농어민에 대한 연김실시와 노령자에 대한 경영이양장려금지급문제도 조기에 매듭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농발위보고서 가운데 행정구역과 학군의 도농통합과 농어촌자녀에 대한 대학특례입학문제는 농촌지역의 낙후성과 특수성을 감안할 때 타당성이 없지 않으나 범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해내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행정구역개편문제는 현재 지역주민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문제다. 이번 건의가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정부의 관계부처가 농어촌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농정개혁에 임해야 할 것이다.정부는 도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엇갈리는 학군조정과 특례입학문제등에 대해 교육전문가등 각계각층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여 최대공약수를 찾아냈으면 한다.일부 정치권은 또한 UR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농어촌의 구조조정과 농어민의 소득 및 복지의 증진을 위한 방안을 개발하는 동시에 행정구역개편문제를 본격 검토하기 바란다.
  • 하나회 중·소장 8명 보직해임/연합사부사령관 장성중장

    ◎육·공군 장성 33명 인사 정부는 16일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포함,군단장 3명·사단장 8명등 육군 26명과 공군 7명등 33명을 진급 또는 보직조정하는 군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이날 인사에서 하나회원의 정리를 위해 하나회원으로 알려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김재창대장(육사18기)을 비롯해 표순배(육사21기·군단장),김길부(육사20기·군단장),박광영(육사19기·교육사령관)중장등 모두 6명의 중장을 보직해임하고 역시 하나회인 김현수(육사23기),길영철(육사23기)소장등 사단장 2명도 함께 보직해임했다. 이날 인사로 사단장이상 야전지휘관에서 하나회원은 전원 배제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김연합사부사령관 후임에 장성중장(육사18기·육사교장)을 대장으로 진급,18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보임키로 했다. 또 국방부정보본부장에 유정갑소장(육사20기·합참수집보안부장)을,합참전략본부장에는 최동환공군중장(공사11기·공군참모차장)을 각각 임명했다. 이와 함께 국방부 특명검열단장에 이재달중장(육사 20기)을,교육사령관에는 오영우중장(육사20기·군단장)을 각각 임명했으나 공석인 합참작전본부장은 추후 후임을 임명키로 했다. 정부는 아울러 곽동도(육사21기·육본인사참모부장),김석원(갑종1백66기·육본작전참모부장),유재렬소장(육사21기·국방부 군수국장)등 3명을 중장으로 진급,군단장에 보임하고 임기만료된 최권영중장(육사19기·9125부대장)후임으로 이의세소장(육사22기·안기부 국방보좌관)을 임명했다. 정부는 또 강신육준장(육사24기)등 모두 11명을 소장으로 진급,이중 8명을 사단장에 임명하고 나머지 3명은 직위진급시켰다. 이밖에 준장에는 이민재(육사27기·국방부 법무과장),조청호대령(학군4기·국방부기무부대장)등 3명이 직위진급했다. 이번 인사에서 보직해임된 김대장은 18일자로,나머지 이미 보직해임돼 있거나 육본정책위원으로 있는 하나회출신의 이택형중장(육사19기)등 중장급 장성 4명은 대부분 이미 전역지원서를 제출해놓고 있어 조만간 전역조치될 전망이다. 이로써 하나회원으로 알려져 조만간 예편될 중장급은 이날 인사에서 보직해임된 6명에 이택형중장등 4명을 포함,모두 10명에 이르게 됐다.
  • 서울공대 백40명 증원/교육부에 승인요청

    서울대는 30일 95학년도 공대 모집정원을 1백40명 늘리기로 하고 교육부에 증원허가를 요청키로 했다. 학과별 증원내용은 컴퓨터공학과 15명,전기·전자·제어공학군 25명,공업화학·섬유·화학공학군 20명,기계·기계설계·항공우주공학군 25명,산업공학과 10명,건축학과 15명,조선해양공학과 5명,토목공학과 25명등으로 공대전체모집정원은 1천1백20명에서 1천3백6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서울대는 고급공학인력에 대한 산업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내년에 이어 96학년도에도 공대정원을 1백40명 늘릴 방침이다.
  • 1백년 시간속의 동학여행/이봉환지음(화제의 책)

    ◎삼남지방 동학전쟁 흔적 추적 1백년전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발자취를 따라 전라·충청·경상도등 삼남지방을 돌며 그때의 흔적을 더듬은 역사기행산문집. 이제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조차 잊혀진 유적을 물어물어가며 찾아가는 나그네의 발길이 한번쯤 뒤쫓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전봉준·김개남·손화중등 농민군지도자의 출생지와 동학군의 전투지,동학교도의 포교활동 지역등이 소개되면서 당시의 상황도 함께 들려준다. 동학군의 봉기부터 최후까지를 사건의 흐름에 따른 순서대로 구성했다. 지은이는 지난 88년 등단해「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등의 시집을 낸 젊은 시인이다. 은율 6천원.
  • 미 최우수 위트니고/학생 30%가 한국인

    ◎작년 100% 대학진학… 절반 일류대에/“LA 8학군으로” 교포들 이주 늘어 미국 최우수 고등학교로 꼽히고 있는 위트니고교 재학생의 30%가 한국인인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인 위트니고등학교는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입학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는 곳이다.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세리토스시에 있는 이 학교는 근년들어 잇따라 미국대입수학능력시험(SAT)에서 전국평균보다 2백∼3백점이나 높아 1위자리를 고수,미국에서 가장 좋은 공립학교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이 학교는 대학진학률이 1백%였으며 대학 진학분포는 50% 가까이가 캘리포니아 일류대인 UCLA,UC버클리등 UC계열대학에 진학했고 나머지의 상당수는 하버드등 사립명문에 입학했다. 한 학년당 1백50명 정원에 7학년(중1)부터 12학년(고3)까지 1천여명이 재학하고있는 위트니고교의 한국계 학생수는 3백여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종분포는 아시아계 71.6%,백인 15.7%,히스패닉 7.4%,흑인 1.6%이며아시아계가 37%정도인 이 지역의 인종분포를 감안하면 한국학생이 월등히 많이 재학하고 있는 곳이다. 이때문에 세리토스 지역은 이 지역 한국교포들 사이에 로스앤젤레스의 「강남 8학군」으로 인식돼 자녀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이주하는 교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이 학교에 교생실습을 나왔다가 페리스 교장의 눈에 들어 수학교사로 채용된 유일한 한국계 교사 곽정엽씨(26)는 『이 학교를 미국내 한국인재 배출의 요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신념아래 한국인후원회를 통해 한국계학생 지도에 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 갈라선 24년의 우정/한강우 전국부기자(현장)

    ◎상교장 비리 보다못한 이교사 끝내 “폭로” 학교를 일으키기위해 24년전 젊음의 패기와 우정을 다짐했던 상문고 상춘식교장(53·구속중)과 이상희교사(53). 그러나 상교장은 세월의 흙먼지에 몸을 망치고 이교사는 친구의 비리를 고발해야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상교장과 이교사는 70년2월 학교법인 상문학원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났다. 67년 S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상씨는 서무과장으로,65년 C대 법학과를 나온 이씨는 교무주임으로 각각 당시의 상문중에 몸을 담았다. 이때부터 동갑내기인 상씨와 이교사는 친형제처럼 지냈고 평소에도 상씨의 부친이며 재단이사장인 상 헌씨(79년 작고)의 『두사람이 힘을 합쳐 학교를 잘 이끌어 달라』는 당부에 따라 흑석동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30분씩 걸리는 우면산 기슭의 허름한 학교까지 통근을 했다.당시 학교에는 전화는 물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후 상문중은 운영난으로 두차례나 관선이사가 파견되는등 시련에 봉착했고 이교사는 73년2월 고향인 옥천 동이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73년3월 학교가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교장에 취임한 상씨는 이교사에게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75년 3월 재회했다. 2년만에 다시 의기투합한 두사람은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78년 고교평준화조치로 「강남 8학군」붐을 타고 급격히 성장,명문고로 탈바꿈 했다. 그러나 85년 최은오이사(61)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두사람의 우정은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최이사의 사주로 상교장은 찬조금등을 거두고 각종 비리와 전횡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87년부터는 교사들까지 두파로 나뉘었다.이교사는 상교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건의를 했으나 『네가 학교를 하나 차려야 되겠다.주인은 나다』라는등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이교사는 학교를 떠날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중 지난해 11월 학교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리던 제자 4명이 퇴학을 당하고 일부 동료 교사들이 담임은 물론 수업까지 박탈 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지난 14일 비리폭로 모임을 주도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고민한것은 상교장과의 옛정이었다』고 말하는 이교사의 눈시울은 어느새 젖어있었다.
  • 부정수법/“내신은 엄마점수”…등급별시세 극비형성(고교내신관리:중)

    ◎담임교사가 조작대상 학생 비밀 과외/시험출제 직전에 문제 유출… 거액 수수 고교내신성적은 「엄마점수」라는 얘기가 있다.이른바 「치맛바람」이 드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 8학군에서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오래전부터 떠돌아온 말이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로비력이 자식의 내신성적을 좌우할 수도 있는 반면,시쳇말로 「돈없고 빽없으면」 그만큼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개탄의 소리이기도 하다. 「내신과외」·「내신시가」라는 절묘한 표현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내신과외는 과목별 담당교사와 학생이 절대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1대1로 숨어서 하는 것으로 평소에는 적당한 값을 유지하다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시험문제 출제 직전이 되면 문제의 「감」을 주고받을 목적으로 과외비가 갑자기 폭등한다. 내신시가란 학교장이나 주임교사·담임교사등이 위험을 무릅쓰고 극소수 학생의 내신을 조작하는 것으로서 학교에 따라 「1등급 얼마,3등급 얼마」등의 시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신성적을 둘러싼 이같은 비리는 이제까지 숱하게 터져나와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문고 비리는 어찌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내신성적 비리는 이제까지 교육적차원의 아량에 의해서거나 권력·금력의 비호에 의해서거나 더이상 확대재생산되지 않고 일과성사건으로 끝났을 뿐이지 학교주변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썽을 빚어 왔다. 교육부는 18일 각 시·도교육청별로 전국 52개 고교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갔는데 이들 거의 모두가 그동안 각종 비리로 말썽을 빚어온 학교들이어서 일선 교육현장의 부패구조를 짐작케 해준다. 이제까지 드러난 내신비리 사례를 살펴보면 지금부터의 감사에서 밝혀질 비리유형을 예견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검찰에 적발된 서울 강동고는 교장이 입시브로커의 부탁을 받고 담당교사에게 지시,다른 학교에 다닌 학생 2명을 마치 이 학교에 다닌 것처럼 꾸며 내신성적을 위조해 준 것으로 확인됐었다. 실제로 김모군은 서울 K고에서 내신 7등급이었으나 이 학교에서 1등급으로 조작됐으며 이모군은 서울 D고에서 내신10등급이었으나 강동고 2등급으로 껑충 뛰었다. 91년 서울 혜성여고에서는 육성회장이 교무주임에게 돈을 주고 시험지를 빼내 3학년생 딸의 성적을 올리려다 적발돼 구속됐으며 전북 K여고와 경북 K여고에서는 기말고사때 교사들이 문제내용을 유출하거나 성적을 조작해 소동를 일으켰다. 서울시 교육청의 92∼93학년도 감사자료에 따르면 내신조작 의혹이 가는 학교가 20곳이 넘는다. 신일고는 정식 정정날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92학년도 3학년 한 학생의 9개 과목 성적을 수정액으로 지우고 마음대로 고쳐 넣었으며 세화여고는 91학년도 3학년 한 학생의 20개 과목 성적란을 아예 기재해놓지도 않고 있다가 지적을 받았다. 고교에서의 내신조작은 객관식 시험만으로는 성적을 측정할 수 없어 상대평가가 아닌 주관절대평가 방법을 취하고 있는 예·체능계에서 특히 심하다. 내신조작은 고교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국대는 89∼91학년도에 내신조작등의 방법으로 49명을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나 총장이 구속되기까지 했었다. 이밖에 지난해의 입시부정파동에서도 상당수의 대학들이 전산처리 과정에서 수험생들의 내신을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동학농민구 자료 한자리에/농민전쟁 1백돌 기념 민속전

    ◎군임명장·노비 매매문서 전시/짚둥우리·쇠가죽솥등도 재현 동학혁명 당시의 농민군의 생활상과 활동상을 한자리에 모은 민속학 전시회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1백주년기념 동학농민전쟁 민속전」을 오는 6월15일까지 열 예정.전시회장은 지난 10일 개막이후 동학혁명을 낳고 진전시킨 당시의 생활사를 한 눈으로 이해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품된 자료는 역사학자와 민속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재현한 당시의 짚둥우리·쇠가죽솥등의 민속자료를 비롯,규장각과 개인소장자들로부터 입수한 동학군 임명장과 나주동학군명록,노비매매문서등의 각종자료 1백50여점.25평 남짓한 전시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 돼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전시는 전봉준과 김개남·손화중등의 사진과 일본군의 서울침입 화보,농민군에게 주저리를 씌워 불태워 죽이는 장면을 재현한 사진을 순서대로 나열함으로써 보는이로 하여금 상상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이 특징.또 동학2대 교주인 최시형의 사진과 생전에 그가즐겨 소일거리로 삼았다는 짚신 만드는 과정도 전시실 한편에 마련해 발길을 잡아둔다. 박물관장 인병선씨는 일제시대 민족사학자 인정식씨의 딸이자,시인 신동엽씨의 미망인.그는 『우리 농촌은 아직도 농민전쟁의 아우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우리 민속학도 이제 유리장에서 나와 역사의 현장에 당당히 설 때가 됐다고 생각해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짚·풀생활사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문의는 516­5585
  • 비리 감추기­치부에 학부모 이용/상문고교장의 탈선행각

    ◎유력인사 명단 작성… 감사때 로비 부탁/자기소유 빌딩도 학부형에 억지 임대 강남 8학군의 신흥명문인 상문고의 온갖 비리가 교사들의 잇단 양심선언으로 성적조작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11월 학내분규 당시 학교측의 비리를 전단으로 뿌린 4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하고 김모교사(33)가 수업에서 제외되면서부터 예견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20년 넘게 학교를 이끌어 온 상춘식교장(53)의 전횡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상희교사(53)는 양심선언에 앞서 『짓뭉개진 교권·인권을 찾기위해 또 학교의 장래 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상교장을 비롯한 측근 교사들의 전횡을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차례의 진정과 고발,교육청감사와 검찰내사가 있어왔으나 그때마다 흐지부지되면서 결국은 상문고와 상교장에게 면죄부만 안겨준 꼴이 됐다는 것이 많은 교사들의 지적이다. 73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환당시 특수지 학교였던 상문고를 고교평준화와 강남8학군 학부모의 학구열에 힘입어6년만에 「명문고」로 탈바꿈시킨 상교장은 76년 성균관대 생물학과를 졸업한뒤 부친을 도와 학교법인 상문학원을 설립,초대교장으로 부임했다.부임당시 겨우 32세의 나이였던 상교장이 20년넘게 학교를 이끌어 오면서 상오5시에 출근,교사들과 학생들을 독려,강압적인 주입식 교육결과 79년 93명을 서울대에 진학시키는 등 신화를 창조하기 시작했다.올해만도 서울대에 58명이 합격한 것을 비롯,모두 5백80명이 대학진학을 했다. 그러나 그후 온갖 전횡을 저질러온 상교장은 비리가 터질때마다 상문고가 강남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돈있고 힘있는 학부형들의 명단을 확보,이들의 힘을 빌려 외풍을 견디어 왔으며 이번에 확인된 박군등의 성적조작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상문고의 경우 5,6공때부터 이름석자만으로도 충분히 알수 있는 전육군참모총장 P모,전안기부 고위층 A모·Y모,전총무처장관 K모,국회의원 K·L·G모,전서울시교육감 C모,지방법원장 J모씨등 숱한 유명인사들의 자녀들이 이학교를 거쳐갔다. 상교장은 또 부인 이모씨(52)를 학교법인 이사장으로 앉히는등 족벌체제까지 구축,「학원왕국」을 꿈꾸어 왔다. 이밖에도 성적조작·찬조금 모금·보충수업비 과다징수 등 굵직굵직한 비리에 이어 최근에는 자신의 소유건물인 학교앞 D빌딩의 사무실이 좁아 임대가 되지 않자 이 학교 재학생의 부모가 간부로 있는 모은행에 부탁,지점을 내게하는 등 학교를 개인치부의 수단으로까지 이용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밝힌 비리/“반장은 백만원” 찬조금 강요/겨울에도 난방시설 가동안해 가장 신성해야할 교육현장에서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는 것을 보다 못한 상문고의 학부모들도 학교의 비리를 잇달아 증언하고 있다. 『이미 졸업한 아이들의 후배를 위해서도 꼭 털어놓아야 겠습니다』 상문고 재학시절 3년동안 내리 반장을 한 아들 덕분에 학교측의 찬조금 강요를 받아들여야 했던 김모씨의 경험담은 충격적이다. 상문고의 반장과 부반장등 학급임원 선출은 담임 교사가 가정환경과 성적을 감안해 지명한다.아들이 반장이 되자 바로 담임교사의 연락을 받고 학교로간 김씨는 『학급당 5백만원의 찬조금을 만들어야 하니 반장은 한장(1백만원)을 내야된다』는 강요를 받았다. 2·3학년때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결국 김씨도 『졸업식때 상을 받게되니 마지막으로 한장을 내고가라』는 말을 듣고는 흥분해 학교로 찾아가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들 불평없이 내는데 3년동안 반장을 했는데 왜 그러느냐』는 기가막힌 대답만을 듣는데 만족해야했다. 아직 이 학교에 재학중인 K군의 어머니 이모씨의 얘기는 더욱 혀를 내두르게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찬조금을 내지만 그 돈이 학생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쓰여졌다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학교내에 학생들 실습용 컴퓨터는 차치하고 사무용 컴퓨터 하나도 없어 모의고사 성적표가 한달뒤에나 가정에 통보되는 것이 상문고의 실상.추운 겨울에도 난방시설은 가동치 않고 조개탄만 땔 정도다. 『학교내 배전시설이 고장나 학급마다 어두워 수업진행이 안돼 1주일동안 단축수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때 몇몇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를 하자 학교측은 『돈이없어 못고친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 전봉준 피노리서 관군에 잡혀(동학의 함성을 찾아서:6·끝)

    ◎우금치전서 대패… 주력부대 뿔뿔이 흩어져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의 주력부대는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전라도 금구·원평까지 쫓겨 거의 해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봉준은 정읍의 입암산성에 잠시 머무르다 갈재를 넘어 순창 피노리로 들어갔다.전봉준은 그곳에서 김덕명·최경선등 동지들과 다시 기병할 것을 모의하다 관군에게 붙잡혔다.1894년12월2일 밤이었다.전봉준은 곧 일본군에게 넘겨져 서울로 압송됐다. 한편 김개남은 우금치 이후 청주에서 또다시 패퇴해 태인으로 숨어들었다 뒤따른 강화병방 황헌주가 지휘하는 관군에게 붙잡혔다.전봉준이 체포된 바로 그날이었다.김개남은 전주감영으로 압송돼 12월3일 군민들이 모인 가운데 사형에 처해졌다.손화중 역시 고창에 잠복해 있다 부락민들에 의해 관군에 넘겨져 서울로 압송됐다. 동학군의 지도자들이 속속 체포되자 법무아문에 임시재판소가 설치됐다.이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은 모두 1백7명이었다.이 재판에서 총대장인 전봉준을 위시해 손화중 최영남 김덕명 성두한등 5명에 사형이 선고됐다.재판은 일본군이 무차별 학살을 은폐하고 형식적인 절차를 갖추어 공정히 처리하려했다는 인상을 주려는 책략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재판의 문초관 가운데는 내전정퇴서울주재일본공사가 끼어 있었다.전봉준에 대한 문초는 모두 6차례 이루어 졌다.기록에 따르면 문초관이 전봉준에게 『고부군수에게 피해를 입은 일도 없는데 왜 봉기했는가』라며 1차기병의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이에 전봉준은 『일신의 해를 위해서 일어섰다면 어찌 남자의 일이겠는가,인민의 괴로움을 없에 주려함이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그는 또 2차기병에 대해서는 순전히 일본의 침략행위로 말미암은 항일투쟁이었음을 분명히했다. 전봉준은 교수대 앞에서 가족에게 남길 말이 없느냐는 법관의 말에도 의연했다고 전해진다.『다른 할말은 없다.다만 나를 죽일진대 종로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에게 내피를 뿌려주어라』 1895년3월29일이었다. ◎순창 피노리/동학혁명의 횃불 꺼진 곳/쌍치서 6㎞… 국사봉아래 작은마을 순창 피노리마을은녹두장군 전봉준이 관군에게 붙잡힘으로써 동학혁명의 마지막 횃불이 사그러든 곳이다.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지금도 전봉준이 이곳에 몸을 숨긴 이유에 대해 머리가 끄덕여 질 만큼 깊은 산골이다. 쌍치는 정읍에서 최근 깨끗하게 포장된 산길을 따라 순창으로 가는 중간쯤에 있다.피노리는 쌍치면 소재지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옥정호가 있는 산내면쪽으로 비포장도로를 시오리쯤 가면 나타난다. 피노리는 하늘을 가로막은 해발 6백55m 국사봉 아래 있는 작은마을.전봉준이 밥을 먹다 관군에 붙잡혔다는 주막거리는 버스정류장을 겸한 구멍가게 뒤편이다.경운기가 간신히 들락거릴 정도로 작은 안길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는 십여호의 농가가 이어져 있다.이 집들은 대부분 다시 지어지기는 했지만 TV사극에 나오는 주막을 보는 듯한 집의 구조는 1백년전과 크게 다름없을 것이라는 동네노인들의 이야기다. 내장산이나 옥정호 담양 순창쪽으로 갈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일정에 넣어봄직하다.
  • 동학군,공주우금치서 일군과 결전(동학의 함성을 찾아서:5)

    ◎서울난입 소식에 전봉준 등 전국서 봉기 동학혁명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깨끗한 정부를 표방한 항쟁이다.그러나 외세에 대한 항쟁 역시 민족자존의 의지가 서렸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학혁명은 그 초기부터 「왜인과 양인을 쫓아내자」(축멸양위)는 구호를 내걸었다.이는 외국 자본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항일전쟁으로서의 민족의식을 일깨웠지만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외세와 조우하는 숙명을 겪게되는 것이다. 이른바 전주화약에 이어 집강소가 설치되는등 호남은 일단 위급한 형세를 넘기는 듯했다.그러나 조정내 민씨 일파의 난국수습책에 따른 청나라로부터의 청병의도와 맞물려 1894년6월5일 정여창이 이끄는 청의 함대가 인천에 들어온다.이어 6월5일과 8일에는 청의 육전대가 아산쪽으로 상륙하기에 이른다. 청의 출병소식을 들은 일본은 이에 뒤질세라 6월9일 군함 3척을 인천항에 투입시키는 한편 육전대를 서울로 몰고들어왔다.일군은 쿠데타를 통해 민씨 일파 대신에 대원군을 옹립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한다.일본군은 7월26일 충청도 앞바다에서 청의 함대에 함포사격을 가함으로써 드디어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전봉준은 서울에 난입한 일군의 횡포를 소식으로 듣고 귀를 기울이다 마침내 전주에서 기병한다.손화중은 광주에서 군사를 모았다. 그리고 호남 각지역의 남접군 11만5천명과 충청,경기,강원도의 북접군이 삼례에서 합세했다.전국 각처에서기병한 동학군은 일군의 전신선을 끊고 병참기지를 습격하는등 항전에 나선다.이때의 동학군의 활동은 군으로의 성격보다는 동학교도로서 일군에 대한 봉기항쟁으로 기록된다. 당시 관군은 일군과 행동을 같이했다.이때문에 동학군은 담은 안은채 11월9일 공주의 관문격 요충지 오금치·웅치에서 장렬한 최후의 결전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우금치는 어디 있나/농민군이 일군에 참패 당한곳/동학사 있는 계룡산국립공원 지척에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참패를 당한 우금치는 공주시내에서 부여쪽으로 가다 마주치는 첫번째 고개에 있다.오금치는 글자 그대로 소도 못 넘어갈 만큼 가파른 고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학혁명기념비가 서 있는 고개마루에 서면 장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향해 죽창을 들고 달려드는 농민군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이곳에서 참패한 농민군의 시체를 거두어 한데 묻었다는 송장배미는 거리상으로 우금치에서 십리안쪽이다. 금성여고앞,지금은 논으로 변한 송장배미에서는 몇해전까지만해도 농민군의 유골이 쟁기에 걸려나오곤 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공주는 백제의 고도이자 조선시대에는 감영이 있었고 19 27년까지만해도 충남도청이 자리잡고 있었던만큼 찬란한 역사의 고장이다. 그만큼 주위에는 볼거리가 널려있다.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송산리 고분군,공산성은 물론 갑사와 동학사가 있는 계룡산 국립공원이 지척이다.
  • ROTC임관식 치사/이 총리,북핵해결촉구

    이회창국무총리는 5일 성남에 있는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열린 올해 학군사관후보생(ROTC)임관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북한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걸림돌이 되고있는 핵문제에 대한 투명성을 성의있게 보여줘야 하며 보다 진지한 자세로 남북의 공동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ROTC 임관식

    제32기 학군사관후보생(ROTC) 임관식이 5일 상오 경기 성남 학생중앙군사학교 연병장에서 열렸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육군 김동홍소위(22·동아대졸·보병),해군 이상권소위(23·수산대졸·기관),공군 홍익표소위(24·항공대졸·통신)가 각각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밖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국무총리상=박상민·김정대·강대희 ▲국방장관상=고성욱·이상희·고유상 ▲합참의장상=이성철·박영수·박해용 ▲참모총장상=손윤현·김종수·김종호
  • 농민군,장성 황룡촌서 경군격파(동학의 함성을 찾아서:4)

    ◎아무런 저항없이 전주향해 북상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보고받은 정부는 경군을 파견해 진압키로 했다.이에 양호초토사로 임명된 홍계훈은 장위영병 8백여명을 거느리고 인천을 출발했다. 군산포에 닿은 경군이 임피를 거쳐 전주감영에 이른 것은 황토현싸움에서 영군이 크게 진 다음날이었다. 농민군은 그러나 영군을 추격해 전주로 진격하는 대신 고부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장성등 오히려 남쪽으로 내달았다.농민군의 세력 또한 1만명으로 크게 불었다.반면 경군은 도망자가 속출해 불과 4백70여명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홍계훈은 증원군을 요청해 총제영중군 황헌주가 7백명을 이끌고 법성포에 도착했다.홍계훈과 황헌주는 영광에서 합류해 장성방면으로 농민군을 뒤쫓았다.경군은 장성 황룡촌에서 농민군에 선제포격을 가해 상당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으나 곧바로 반격에 나선 농민군에 쫓겨 별동대를 이끌던 대관 이학승마저 전사하는 큰 타격을 입었다. 황토현에서 전라감영군을 물리친 관군이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마저 쳐부순 것이다.북상길에오른 농민군은 거의 아무런 저항을 받지않고 전주성에 입성했다.계속 농민군의 꽁무니만 쫓던 홍계훈은 전주성 함락 다음날 완산칠봉 일대에 진을 쳤다. 자신만만해진 농민군은 여러차례 경군과 접전을 벌였으나 지형상 불리한 여건에서의 무리한 공격으로 오히려 큰 타격을 입었다. 이즈음 정부의 원병요청으로 청군이 아산만에 도착했고 천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뒤이어 상륙했다.이런 안팎의 위기상황에 농민군은 정부가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으로 전주성을 물러나왔다.이른바 전주화약이다. 농민군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지만 전라도 일대는 행정과 치안의 마비상태에 빠져있었다.관찰사 김학진은 전봉준을 초치해 화합의 방도를 논의했다.동학교도들의 도움없이는 행정질서와 수령의 위신을 돌이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봉준은 전라도 53개 주·읍에 관청이나 다름없는 집강소를 설치했다.이로써 치안은 사실상 동학교도들에게 장악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월평장터로 변한 황룡촌/광주직할시∼내장산국립공원 중간에 위치/장성은 어디에 있나 동학농민군이 경군과 최초의 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둔 장성은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철도가 모두 거쳐간다.또 서쪽으로는 영광·함평,동으로는 순창·담양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대전쪽에서는 백양사인터체인지에서 17㎞,광주쪽에서는 서광주인터체인지에서 16㎞ 지점이다.내장산국립공원과 광주직할시의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황룡강은 장성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영광방면으로 접어들면서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먼저 마주치는 월평장터가 옛날 동학군이 점심식사를 하던 황룡촌.다리 건너 신호리가 영광에서 뒤 쫓아온 경군이 농민군에 포격을 가해온 지점이다.동학혁명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현장이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다소 허망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백양사와 담양의 소쇄원등 수많은 고적과 내장산의 단풍,장성호와 담양호,고창의 석정온천,담양의 죽물 및 순창의 고추장·장아찌,영광 굴비등 특산물들이 사방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깊은 역사성과 다양한 볼거리,여기에 인심좋은 남도특유의 푸짐한 먹거리가 가세하면 이 지역은 과장없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휴양권임이 분명해 진다.
  • 고부서 동학1백돌 굿판/26∼27일/봉기상황 마당극으로 재현

    【전주=조승용기자】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전북 정읍군 고부면에서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고부봉기 역사맞이 굿」이 오는 26일과 27일 이틀동안 성대하게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전주 탈머리사물놀이패 6명과 풍물패 2백여명,연극배우 50명,농민회원등 모두 5백여명이 참여하는 매머드 굿판으로 전야제와 역사재연등 2부로 나눠 정주시 고수부지,정읍군 이평면 말목장터등을 순회하면서 지역민들과 한마당잔치를 벌이게 된다. 26일 하오 4시 정주시 고수부지에서 열리는 전야제에는 고부봉기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마당극 「난리났어 난리가 났네」가 공연되고 사물놀이와 공옥진 창무극에 이어 농민군과 관군의 접전상황을 재연한 무술시범이 열린다. 27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6시까지는 동학군이 점령했던 고부관아터등지를 돌며 역사재연굿을 갖는다.또 영화 「서편제」의 주연 김명곤씨와 오정해씨가 특별출연,동학농민군의 결의장면을 재현하고 농민군으로 참여하려는 아들과 이를 말리는 어머니의 갈등을 그린 거리극 「혁명의 등불,그 황토길의 역사여」가 연출된다.
  • 동학군 옥중서신 발견/전남 화순/관군의 부패·비리 등 담겨

    【광주=박성수기자】 1백년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군으로 참여했다 붙잡혀 수감생활을 했던 한 동학군이 감옥에서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낸 「옥중편지」가 전남 화순에서 발견됐다.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의장 이상식·전남대 사학과교수)가 화순에서 입수,16일 언론에 공개한 이 편지는 가로 40㎝,세로 20㎝ 크기의 한지에 전문이 한글 붓글씨로 쓰여진 단 한장의 서신. 겉면에는 「화순군 도장장면(현 도곡면)쌍동이댁앞」이라고 쓰여있고 「어머님젼 올리난이다」로 시작한 이 글은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한 자식의 도리를 한탄하는 내용과 함께 「돈 3백냥만 있으면 어진 사람을 만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구절이 들어 있어 당시 관군의 부패상과 감방주변의 비리를 여실히 드러내주기도. 이 편지를 공개한 이상식교수는 그동안의 분석을 통해 『편지의 주인공은 화순에 살던 한달문이란 사람으로 나주감옥에서 1894년 12월28일 보낸 것』이라며 『짧은 내용이지만 동학사연구에 귀중한 문헌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 동학혁명 100돌/대대적 기념사업 펼친다

    ◎천도교서 「계획된 혁명」 부각에 초점 맞춰/방대한 백년사·자료·논문집 발간/우금치전투병 1만명 군적 싣기로 오는 10일은 동학혁명의 효시가 된 전봉준주도의 고부군아 습격봉기가 일어났던 날. 1894년의 일이니까 꼭 1백주년을 맞게 되었다. 이에따라 동학을 모태로 창도한 천도교는 동학혁명 1백주년기념사업회를 조직했다. 천도교는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올해 조형물 건립사업과 학술,문화예술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학술사업에 특히 중점을 두어 동학혁명의 이론을 학술적으로 정립할 계획. 왜냐하면 일제때에는 혁명의 주체를 피지배자로 보고 동학란으로 격하했는가 하면,기껏 발전한 역사관에 의해서도 동학운동,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 정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천도교의 입장과 주장은 사뭇 다르다. 비록 성공은 거두지 못했더라도 1893년 동학교도 8만이 참여한 1893년 3월10일 대규모의 보은장집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준비기간이 1년여나 되어 계획된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도교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부르도록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다.기념사업회가 학술사업으로 확정한 각종 자료집 간행도 그 명칭을 모두 동학혁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간행사업은 ▲동학혁명1백년사 ▲동학혁명 1백주년논문집 ▲동학혁명자료집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동학혁명1백년사」는 6천4백60쪽으로 계획된 방대한 사료집. 그리고 「동학혁명자료집」은 2천6백쪽으로 간행할 예정이다. 「동학혁명1백년사」에는 19세기후반 동학사상이 태동한 사회적 배경에서 부터 1894년 동학혁명,1919년의 3·1운동,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에 이르는 기간의 주요 사안이 들어간다. 이현희(성신여대),김창주교수(동국대)등 8명의 필진이 참여하는 「동학혁명1백년사」는 모두 11개 항목으로 집필된다. 「동학혁명자료집」 간행에는 신일철(고려대 대학원장), 최동희(고려대), 진용후(서울대), 중총명교수(일본 종랑여대)등 13명의 학자가 집필을 담당했다. 이밖에 전국에 산재한 사발통문과 서찰,관군의 포고문 등 동학혁명 관련 사료를 한데 모아 번역하는사료편찬작업을 비롯,「청·일전쟁실기」와 「동학군군적부」 간행사업도 학술사업의 하나로 올해 추진한다. 동학혁명의 큰 요인으로 문호개방 이후의 외세가 가져온 모순이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청·일전쟁실기」 간행 역시 뜻있는 사업. 특히 동학혁명의 서막처럼 떠오른 보은장내집회때에 이미 조선조정이 청나라에 차병교섭을 벌이는등 외세개입을 자초했다. 끝내는 동학혁명 과정에 청군과 일군이 우리나라에 상륙함으로써 청·일의 각축장이 되었다. 1894년 12월 동학혁명이 맥이 결정적으로 꺾이는 공주 우금치전투의 상대도 일군이었다. 이전투의 참가한 1만여명의 동학군을 비롯한 전국의 동학군 명부를 수록하는 「동학군군적부」는 연말쯤 나온다. 이 군적부에는 각 지역의 전투일지를 부록으로 곁들여 싣기로 했다. 기념사업 전체예산은 39억6천1백만원. 이 가운데는 정부지원금 5억원이 포함되었으며 나머지는 특별성금과 천도교유지재단 지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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