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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원효의 화엄사상 해설이나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서 주로 사용됐다. 정치적으로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해석해 도입한 개념이다. 요즘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섭이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4년 전 일개 학설로 한국에 소개된 통섭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대접받고 있는 셈이다. 통섭이 왜 국내 지식사회의 주제어로 떠올랐고,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통섭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통섭이 ‘한국적 특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편의상의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것은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 우주,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고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됐고,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수한 학과가 오히려 인기를 끌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통섭을 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령화, 산업 변화의 가속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간상이 필요하다. 한 예로 평생 직업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직업을 찾기 위해 매번 새로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폭넓은 사고를 갖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면 그만큼 새 길을 모색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통섭형 사고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통섭은 학문의 벽을 허무는 일에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대학사회는 같은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구분은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특히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인간사회를 기본으로 연구하거나, 기계공학자 대신 음악 전공자가 음향기기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분방정식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대신 자기공명영상을 도입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MIT에서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전자기기가 오페라의 막을 올리고 공연을 한다.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원조 통섭은 인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모든 노력을 통섭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종 학문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의 경계가 없던 시절인 만큼 그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수많은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조’로 떠받들어진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등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도 인문사회과학을 배워 자연과학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통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200여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다빈치와 조선의 정약용이 약속이나 한 듯 기중기(거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통섭적 사고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환경과는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통섭은 ‘자연을 흉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현실에 존재하는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은 1985년 ‘함께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됐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으로 발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국내 연구 현주소 2005년 최재천 교수 등 윌슨의 ‘컨실리언스’를 번역 학문적 기반 아직 취약… 대학들 전면도입 움직 통섭의 개념이 국내 학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과학철학자 장대익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2005년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생태학자인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섬 생물지리학과 사회생물학이라는 두 개의 학문을 개척했다. 윌슨이 주창한 컨실리언스는 르네상스 회귀로 집약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이 언젠가는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실리언스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냈다. 라틴어의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컨(con)’은 영어로 ‘함께’라는 뜻을,‘살리에르(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휴얼과 윌슨의 ‘컨실리언스’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 교수와 장 박사는 컨실리언스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통섭은 방법론과 지향점에서 윌슨 것과 다르다. 윌슨이 자연과학으로의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통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통합보다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통섭이 ‘학문간의 벽을 허물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은 취약하다. 올 초 서울대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기계적으로 학과가 통합되는 것을 물리학적 통합, 두 학문이 새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화학적 통합으로 정의한다면 통섭은 생물학적 결합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가설과 학문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외국과 달리, 전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인위적인 벽 허물기가 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통섭의 시대’ 다시 주목받는 다빈치식 사고 통섭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통섭형 인간의 표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다빈치식 사고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증명정신,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 모호한 것까지 포용하는 묘사법, 과학과 예술의 조화, 건강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를 엮어내는 연결 습관 등으로 집약된다.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과연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업적을 쌓게 만들었을까. 다빈치식 사고를 가진 수많은 사람을 키워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탈리아 각지에 숨어 있는 다빈치의 발자취를 찾아, 왜 그가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빈치·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은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앞 광장. 거대한 성당 두오모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꼭 지나야 하는 이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동상 아래에 적혀 있는 ‘과학과 예술의 혁명가(AL Rinnovatore Delle Arti E Delle Scienze)’라는 문구는 다빈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짧은 수식어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다빈치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헌사다. ●거대한 박물관이 된 다빈치 고향 5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는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다. 수도 로마 공항의 공식 명칭은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의 이름 역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다. 공항 곳곳에 다빈치의 작품을 형성화한 조형물들과 그의 동상을 목격할 수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핵심도시 피렌체를 지나 피사 방향으로 65㎞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빈치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 어느 곳에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만이 가득한 특별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 바로 다빈치의 고향이다. 마을 중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3m가 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다빈치의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이 비례도의 원본은 베니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빈치가 빈치에 살았던 기간은 태어난 이후 피렌체에서 베르키오의 도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16∼17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의 생가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 내부에는 다빈치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빈치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뿐이었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빈치 시청의 알베르토 로카티는 “다빈치는 세르 피에로와 카테리나라는 하층계급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면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빈치의 왕성한 학구열이 어린 시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마을의 중심지 폭이 채 500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빈치지만, 마을 전체가 거대한 다빈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에 자리잡은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빈치 아이디어 박물관은 다빈치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체험관이다. 박물관 학예사인 세르지오 페오네는 “다빈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고가 다방면으로 발달해 있었다.”면서 “이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물도 플라톤의 흉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상점에서는 티셔츠나 엽서 등 흔한 기념품 대신 다빈치가 고안한 시계와 헬리콥터 모형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학문과 예술 꽃피운 피렌체, 밀라노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ㆍ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말년을 제외하면 그의 성과가 대부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이뤄진 셈이다.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473년의 데생이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빈치는 보티첼리, 크레디, 페루지노 등 베로키오 산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도제로 있는 동안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건축, 도형 연구, 광학론, 원근법, 기하학, 자연과학, 음악 등을 폭넓게 익혔다. 이때 배운 원근법의 결실이 바로 1495∼1497년에 다빈치가 완성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이다.15분에 단 25명의 관람객에게만 공개되는 이 불후의 거작은 성당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장엄했다.‘최후의 만찬’ 전문 가이드인 실비아 솜바루는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술사학자, 구조학자, 역사학자, 광학자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지금도 이 그림 연구로 연간 수십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성당 길 건너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기술박물관이 있다. 온통 과학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 박물관 전시물 중 다빈치가 고안한 각종 기계들이 단연 인기다. 피렌체 시내에도 다빈치의 기계를 실물 크기로 재구성해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두 도시의 대형 서점에는 다빈치 관련 서적들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탄생 55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도시 전역이 다빈치 기념물로 꾸며지기도 했다. 빈치시의 다빈치 박물관장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다빈치의 지식은 대부분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빈치가 ‘단순한 천재’였다면 그저 동경의 대상이자 신화적인 존재에 머물렀겠지만, 다빈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닮고 싶은 존재’ ‘배워야 할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다빈치는 어떻게 만능학자가 되었을까 호기심·증명정신 겸비 ‘노력하는 천재’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해학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물리학자, 이야기꾼…. 다빈치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에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고 대부분 진품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소장하고 있다. 평생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탄생한지 5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빈치는 지식인들이 꿈꾸는 ‘만능인’(Universal Man)의 표상으로 꼽힌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천재는 논리·수학(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언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공간·기술(미켈란젤로), 음악(모차르트), 신체·운동감각(무하마드 알리), 사회적 대인관계(엘리자베스1세, 마하트마 간디), 자기 인식적 대인관계(틱낫한, 테레사 수녀) 등 일곱가지 척도 중 하나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곱가지 분야에서 모두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빈치가 다시 각광받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서 특이성을 보인 이유가 단순한 천재여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용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물의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좋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는 비행기 설계로 이어졌고, 노년에는 이 모든 기계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교육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이클 겔브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육서적 목록에 올라 있다. 겔브는 “다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재다능하고 균형잡힌 인간, 예술과 과학 양쪽을 모두 편안하게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빈치식 사고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중랑 우림시장 상인대학 가보니…

    중랑 우림시장 상인대학 가보니…

    “자자, 빨리 앉으세요. 여러분이 일어서 있으니까 선생님이 강의를 시작하지 못하잖아요.”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 상인회 1층 교육장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일흔을 훌쩍 넘긴 정상분 할머니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순간에 잠재운다. 우림시장 상인대학의 반장을 맡은 ‘과일가게 사장님’ 정 할머니가 우렁차게 외친 “차렷, 경례!” 소리와 함께 강의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저녁에 열린 우림시장 상인대학의 여섯번째 수업이다. ●친근감은 시장, 서비스는 백화점 우림시장 상인대학은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경제 실무와 이론을 알려주고, 서비스 수준을 높여 경쟁력을 갖도록 돕기 위해 만든 자리이다. 이날 수업을 듣는 수강생 40여명은 모두 우림시장에 가게를 둔 상인들이다. 생업에 종사하며 짬짬이 듣는 강의라 어떤 수강생은 허리춤에 전대를 찬 채, 또는 앞치마를 두른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다. 이번 강의는 ‘구매욕구를 높이는 진열방법’. 이랑주 강사가 3∼4초 만에 고객의 시선을 끌고, 물건을 만지게 해 구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법을 술술 풀어냈다. 대부분 혼자 가게를 보는 상인들이라 수업 중에 부랴부랴 뛰쳐나갔다가 이내 다시 들어와 눈깜빡임조차 아까운 듯 강사에게 집중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떡매장을 운영하는 김범진(54) 사장은 “세무상식, 컴퓨터 등을 잘 몰라서 신용카드 결제나 고객관리를 못하는 상인도 많은데 이번 과정에 포함돼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부가 영세한 재래시장 상인을 위한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을 만들고 200만원이나 하는 고객관리 프로그램이 저렴하게 보급된다면 재래시장의 구매환경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18일 중랑구에 따르면 2006년부터 우림시장 상점가협의회와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 주도로 시작한 상인대학은 올해로 4기를 맞았다. ●재래시장의 진화를 이어간다 이달말까지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열리는 5주짜리 교육과정은 단골고객 관리요령, 고객 감동서비스 트렌드, 판매 기법과 고객대응 전략 등 현장 중심의 내용으로 구성했다. 상인대학 초창기에는 상인들이 영업시간에 매장을 비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 데다 ‘경제 원론’만 늘어놓은 탓에 과정 중에 강사진을 바꾸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회를 거듭하며 수업이 실무 중심의 현장감 있는 내용으로 진행되면서 상인들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져 이제는 수강신청에 60여명이 몰리는 등 인기다. 박철우 상점가협의회 회장은 “처음에는 백화점, 할인점에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한 방어적 전략에서 상인대학을 꾸려왔지만 이제는 변화를 이끌어 고객의 발길을 돌려놓는 것이 목표”라면서 “교육을 못 듣는 상인을 위해 방송강의를 하거나 교육과정을 마친 상인들로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변화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스터디족·알뜰족·올빼미족…촛불시위가 낳은 새 풍속도

    직장인 김모(34·여)씨는 최근 동료들과 ‘한우 감별법’을 공부했다. 한우는 선홍색에 지방층이 가늘고 고르게 분포돼 있으며, 냉장육이라서 조리시 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는 암적색으로 냉동육이라서 물이 많이 나오며, 떡심에 피가 고여 있다. 김씨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먹거리 공부를 시작했다.”면서 “공부한 것을 토대로 촛불시위 현장에서 즉석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40일을 넘기면서 스터디족·올빼미족·알뜰족 등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서적을 탐독하는 ‘스터디족’은 주로 주부들이다. 이들은 여성전문 사이트 등에서 전문지식을 공유하거나 인터넷 스터디 모임을 만든다. 주제는 ‘고기없이 상추쌈 맛있게 먹는 법’부터 ‘미국산 소의 공장식 도축’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학구열은 광우병 관련 과학서적을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리고 있다. 현대인의 먹거리를 비판적으로 해부한 ‘독소’는 지난 5월 발간된 이후 네이버에서 건강 부문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과학서적은 보통 5000권이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통하지만 이 책은 보름 만에 1만 5000권이 나갔다. 광우병 연구과정을 다룬 ‘죽음의 향연’ 역시 5월 한달 동안 5000권이나 팔렸다. 촛불집회 때문에 밤을 새우고 낮에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올빼미족’도 있다. 지난달 2일 첫 집회 이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한 김모(30)씨는 “하루에 3∼4시간 자고 사우나에서 피로를 푼다. 지금까지 두 번 연행됐는데, 직장에서는 오히려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집회를 생중계하는 개인미디어의 등장으로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는 사람들도 많다. 촛불시위 지지 댓글을 쓰거나, 이른바 경찰의 ‘알바’로 보이는 네티즌들의 IP를 추적하는 이들도 있다.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주변의 회사에서는 야근을 선호하는 현상도 생겼다. 강모(31·여)씨는 “야근하면서 촛불집회 열기를 느끼고 야근 후에는 거리에 나가 함께 구호를 외친다. 이튿날 출근 부담이 없어 야근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알뜰족’도 등장했다. 새벽까지 집회에 참가하면 택시비나 먹거리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기 때문이다. 김밥을 싸오는 것은 기본이고,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아예 지하철 운행이 시작되는 오전 5시30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방향이 같으면 택시를 함께 탄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양초나 피켓을 버리지 않고 다시 들고 나오는 알뜰족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흑인 첫 뉴욕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

    [피플 인 포커스] 흑인 첫 뉴욕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

    엘리엇 스피처(49)가 성매매 스캔들로 중도하차함에 따라 뉴욕 부지사에서 주지사로 승격한 데이비드 패터슨(53)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바마에 도움줄까” 관심집중 패터슨은 흑인으로 세 번째이며 시각 장애인으로 첫번째 주지사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미스터리맨’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실체는 과소평가돼 있지만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임에 분명하다. 주지사이며 슈퍼대의원이 된 패터슨이 같은 흑인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검은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대선 정국에서 관심거리다. 12일(현지시간) BBC,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따르면 패터슨은 1954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뉴욕 부시장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인 바실 패터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만에 질병에 걸려 왼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눈도 거의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맹도견이나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을 거부했다. 시각 장애도 그의 학구열을 막지 못했다. 패터슨은 공립학교의 첫번째 장애인 학생이 되었고, 녹음된 교과서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학업에 정진해 우등으로 졸업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역사, 홉스트라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85년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소수계 지원등에 앞장 패터슨은 2002년부터 뉴욕주 민주당 소수파 리더로 활동하다 2006년 뉴욕 주지사로 출마한 스피처의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스피처와 관계를 맺었다. 당시 정치평론가들은 의례적인 자리인 부지사에 출마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의아해했다. 민주당이 재집권하게 되면 패터슨이 주류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터슨의 도박은 스피처의 낙마로 보상받았다. 1999년에 뉴욕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한 패터슨은 그동안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부지사 취임 후엔 대체에너지 및 줄기세포 연구, 소수계 지원에 앞장서 왔다. 컬럼비아대 부교수이기도 한 그는 할렘에서 부인 미셜 페이지,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관악구 박용래 부구청장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관악구 박용래 부구청장

    박용래(54) 관악구 부구청장이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서울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박 부구청장은 최근 ‘FTA시대 서울지역의 국제경쟁력 강화방안’(한국학술정보㈜ 펴냄)을 펴냈다. 지난 5월 ‘사례별로 본 미국의 지방행정’에 이어 두 번째 저서다. 부구청장으로서 처리할 업무가 만만치 않지만 부지런함과 학구열이 한 해에 두 권의 책을 내놓게 했다. 그는 ‘FTA시대 서울지역의 국제경쟁력 강화방안’ 책에서 서울, 도쿄,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 5개 도시 가운데 서울의 경쟁력이 가장 낮다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행정, 경제, 사회·문화, 서울도시행정 등 부문별 검토 사항을 제시했다. 특히 서울 도시행정 부문에서 국제화 마인드와 인재 육성, 행정의 국제화와 교류협력, 지역 정보화, 경영적 행정, 행정의 전문화 등을 강조했다. 이어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국 도시들의 사례를 비교했다. 미국 도시의 경우 자신의 체험이 담겨 있다. 그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서울은 태평양∼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는 반도의 중앙에 있고, 일본∼한반도∼만주∼시베리아와 연해주∼한반도 북동부∼중국 황해연안을 잇는 두 개의 경제발전 축이 교차하는 중심에 위치해 있다.”면서 “세계의 거점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부구청장은 “(서울은) 부족한 것이 많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에 더 많은 국제업무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과 시민의식의 전환, 인적자원의 투자 등을 꼽았다. 그는 “서울시 초대 국제교류과장과 미국 주재관 생활로 미국 주요 도시의 국제 경쟁력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서울시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이를 소개하고 싶었다.”며 출판 배경을 설명했다. 박 부구청장은 평소 공부 욕심이 많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고, 서울시립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4년간 미국에서 서울시 주재관으로 근무하며 미국 도시의 행정을 깊이 연구했다. 이어 세계 25개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국제적 안목도 키웠다. 지난 3월 서울시립대 겸임 교수로 도시정책론을 강의하고 있다. 박 부구청장은 “공무원도 국제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FTA 시대는 국가뿐 아니라 도시간 교류도 활발해지는 만큼 외국어나 선진행정을 공부하는 적극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 사례1 미용원장 최미씨 시드니 김선영 미용실 원장인 최미(46)씨는 호주의 미용 한류를 이끌고 있는 교민 1.5세대다. 기능올림픽 수상자로 한국 유행의 메카인 명동 김선영 미용실의 베테랑 미용사였던 그녀는 팍팍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꿈꾸다 1989년 호주로 기술이민을 왔다. 그녀는 정착 초기에 ‘정신적 시차’로 많이 힘들었다. 미용실로 출근할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할 허드렛일까지 혼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살기에 뻑뻑한 호주 교민들과 미용코드도 안 맞아 결국 한달 만에 미용실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해 그녀는 다시 가위를 들었다. 같은 해 스승인 서울 명동의 김선영 원장을 찾아가 미용실 브랜드를 쓰게 해달라고 간청해 끝내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와 미용실을 열고 선진 헤어비법을 발휘하면서 손님을 끌기 시작해 ‘성공 열매’를 얻게 됐다. 지금은 목 좋은 네 곳에 미용실을 두고 있으며 직원도 50여명에 달한다. 자신의 숙원인 미용학교도 만들어 후배 미용사를 양성하고 있다. 최 원장은 “손님은 하루평균 400명에 달한다.”며 “손님의 30%는 교민들이고 70%는 아시아계와 백인들”이라고 설명했다. # 사례2 로펌 변호사 김성호씨 시드니 도심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성호(43)씨는 잘나가는 교민 1.5세대다. 그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78년 중학교 2학년때 가족 모두가 멜번으로 이민 오면서 호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됐다. 당시 멜번의 한국인은 350명에 불과했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거주지역과 학교에서도 한국인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이용했다. 남들보다 몇 가마의 땀을 더 흘린 결과 호주사회에 빨리 적응하게 됐다.84년 시드니로 가족과 함께 이사한 김씨는 92년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호주국립과학 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첨단 연구주제와 관련된 특허와 투자 전문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2000년 시드니 테크놀로지대 법대에 들어가 다시 학구열을 불사른 끝에 마침내 꿈을 이뤘다. 김 변호사는 “한국인 고객을 상대로 민사와 무역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며 “유학생들과 위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의 법적 문제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역사가 40년에 불과한 호주 교민사회가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라는 유칼립투스처럼 호주대륙에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호주 방문자를 제외한 호주 교민의 수는 2006년 현재 5만 2763명이다. 유학생과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는다. 호주 교민들은 6개주 가운데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에 가장 많이 산다. 전체 교민의 62%가 몰려 있다. 빅토리아는 11.9%로 그 다음이며 남부 호주(4.1%), 노던주(4.1%), 타스마니아(1.7%) 순이다. 시드니엔 코리아타운이 5곳 형성돼 있다. 라이드, 캔터베리, 버우드, 광역시드니, 스트라스필드가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스트라스필드다. 중심가 상권 70% 이상을 교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민 역사 40년 이민자는 5만명 이들이 일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인다.‘한국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작년엔 이스트우드 공원에서 열렸다.9월30일 알맞게 달궈진 남반구의 봄햇살이 나들이를 손짓하는 토요일, 푸른색 잔디가 눈시린 이곳에 9000여명의 ‘검은 머리’들이 모였다. 올해도 9월 마지막주에 이스트우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앞서 9월22일부터 이틀 동안 시드니 도심 달링하버와 팜그로브 야외광장에서 한가위 축제가 열린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행사로 이틀간 5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달링하버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매일 몰리는 곳이므로 한국 알리기에 안성맞춤인 자리다. 호주 정·관계 인사, 외교사절 등 많은 귀빈들을 초청한다. 행사 첫날엔 꼬마 신랑신부의 전통결혼 가마행렬이 달링하버를 순회하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광장 중심무대선 축제 개막식과 난타 공연단의 특별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어 한국 전통무용,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강강술래, 아시아 민족 찬조공연이 진행된다. 특히 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할 강강술래춤은 교민들과 호주인들이 함께 손잡고 친교를 기원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야외 광장 여기저기서 전통 도자기 제작시연, 연꽃 만들기 등 문화체험 행사도 진행되며 호주인들과 함께 제기차기, 윷놀이, 팔씨름 등 한국 전통민속놀이도 즐기게 된다. 교민사회가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은 교민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시드니의 신흥주거지 콩코드웨스트에 사는 이은석(43)씨는 “신이 내린 직장이란 공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2004년에 이민 왔다.”면서 “처음 1년간은 사업 아이템을 찾아 고생도 했지만 한국인의 근면함을 무기로 언어와 인종 장벽을 뚫고 지금은 홍보회사와 용역회사를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핑에 사는 김인구(49)씨도 “아이들 교육과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메이저 신문사를 그만두고 사업이민으로 왔다.”며 “교포신문의 간부로 부지런히 일해 현재 이 신문의 경영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교민 사회 성장비결은 성실 특히 그동안 깊은 반목과 갈등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한인회도 세대교체의 열망을 실현해 젊은 회장을 뽑고 교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교민사회가 앞으로 정치권까지 발을 넓힌다면 교민사회의 위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현재 지방의회에 교포 두 명이 입성해 있다. 캔터베리 시의원인 남기성(58)씨와 스트라스필드 시의원인 권기범(45)씨가 이들이다. 똑똑하고 패기 있는 젊은 교포들이 가능한 한 많이 정치권에 진출해 교민들의 권익을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교민사회의 앞날은 ‘쾌청의 기상도’를 보일 것이다. siinjc@seoul.co.kr
  • “외국어고·과학고 특성화고교로 전환 주기적 평가뒤 재지정·해제”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를 특성화고로 전환, 주기적인 평가를 거쳐 재지정하거나 해제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일부 특목고가 설립 취지를 벗어나 파행 운영되면서 사교육을 부채질하거나 공교육 정상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부분적으로 손질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이런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특수목적고 정책의 적합성 연구’의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날 중간 보고를 바탕으로 다음달 특목고 종합 대책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과학·예술·체육 분야는 영재교육기관 별도 지정 보고서는 우선 특목고의 법적 위상을 특성화고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특목고와 특성화고의 차이는 없다. 단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 근거 규정이 다를 뿐이다. 목적도 특목고는 ‘특수 분야의 전문교육’, 특성화고는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우수한 학생 대상 특정 분야 인재 양성’으로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현재 특목고 조항을 없애는 대신 특성화고 관련 조항을 보강할 것을 제안했다. 단 객관적으로 영재 판별이 가능한 과학과 예술, 체육 분야는 영재교육기관으로 별도로 지정, 영재교육진흥법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국제고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세계 어느 고교나 대학에서도 호환·통용되는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목표를 한정했다. 핵심은 주기적인 평가다. 특성화고로 전환한 뒤 정기적으로 평가를 거쳐 특성화고로 재지정하거나, 지정을 해제해 일반계고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외국어고의 경우 특성화 학교 운영 원칙을 참고하되, 학교 헌장과 원어민 강사 및 외국어 수업 기반, 학생 구성의 다양성, 동일계 대학 진학률 등을 평가 지표로 활용하는 방안을 예로 들었다. 이렇게 되면 설립 취지와는 달리 이른바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돼 운영되어온 서울·경기 지역 외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성화고로 전환된 특목고의 학생 선발 개선안은 과학고와 외고의 경우 지원 자격에 내신성적 기준을 크게 완화하도록 했다. ●외고 교육효과 거의 없어 보고서는 특목고 실태 조사 결과를 이런 개선안의 근거로 들었다. 외고 학생들의 진학 동기는 ‘우수한 교육환경’이 67.2%,‘명문대 진학’ 49.4%,‘명문고의 이점’ 10.7% 등인 반면,‘어학적성과 소질계발’이라는 응답은 33.7%에 불과했다. 특목고의 교육 효과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발표한 강영혜 박사는 “과학고의 효과는 어느 정도 확인된 반면, 외고의 효과는 거의 없었으며, 학생 및 학교 수준의 변인을 빼면 외고와 일반고간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다.”면서 “특목고의 효과는 학교교육의 효과라기보다 좋은 배경과 학구열이 높은 학생을 선발해 생기는 선발 효과”라고 분석했다. 특목고가 사교육을 더욱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특목고 진학을 준비할 때는 물론 진학한 뒤에도 일반고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쓴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경우 사교육을 받은 학생 비율이 외고는 83.4%, 과학고는 83.9%로 나타났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학벌을 깬 사람들] (8) 정규학력 초등졸 김동주 나주시법원 판사

    [학벌을 깬 사람들] (8) 정규학력 초등졸 김동주 나주시법원 판사

    “학력은 평생을 투자해 만들어가는 겁니다. 출발은 중요하지 않아요.” 광주지법 나주시법원 김동주(59) 판사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명문대학 출신과 고학력자들이 즐비한 법조계에서 그는 노력하는 법관으로 후배 법관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정규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사법시험 합격 당시 전남대 법대 1년 중퇴가 최종 학력이었다. ●부족한 학력에 밥벌이 위해 사법시험 준비 사법시험을 보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아이처럼 얼굴을 붉히며 “밥벌이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김 판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2년이 지나서야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해는 굶주림과 추위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중학교도 어떻게 들어갔는지…”라며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 말끝을 흐렸다. 그나마 중학교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2년만 다니고 중퇴한 뒤 쫓기듯 광주로 이사를 갔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입 검정고시를 통해 전남대 법대에 입학했다. 가난의 굴레 탓에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1년 만에 중퇴했다. 그의 말대로 제대로 된 졸업은 초등학교뿐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중·고교와 대학 모두 띄엄띄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다. ●최다 학력자로 변신 그는 단지 공부에 대한 갈증 때문에 방송통신대에 들어가 42세의 나이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내친 김에 일어일문학과 영어영문학 공부도 시작해 학사 학위를 갖게 됐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그는 93년 전남대 경영대학원 석사, 조선대 공과대학에서 환경공학 석사, 광주대 언론대학원까지 수료했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학구열은 법원 안팎의 지인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부가 하고 싶었을 뿐 기재할 학력을 늘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판사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60년대와 70∼80년대에도 서울대 법대생이란 거짓말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수십명을 뽑던 사법시험에서 합격자의 대다수가 서울대 법대생인 점을 감안하면 사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쉽게 가짜 서울대생이 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판사가 되기 이전은 물론,13년의 판사생활을 하면서도 학력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법원에 들어온 뒤 학력이 중요한 지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인명자료에 기재된 자신의 학력이 잘못됐지만 한 번도 고쳐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 학력을 위조하거나 좀더 좋은 학력을 알리기 위해 변명하는 ‘범인(凡人)’들과는 달랐다. 법원 분위기도 학력에 대해 잊고 지낼 수 있도록 일조했다고 한다. 대부분 명문대를 나오다보니 학력 얘기는 화제가 될 수 없었다. ●시골법정 지키는 것이 학생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 김 판사는 2001년 다시 시골 법원으로 돌아와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다. 법관으로서 첫 4년을 빼면 판사 시절의 대부분을 광주와 전남 해남·장흥·나주에서 근무했다. 시골 판사로 법조인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법원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김 판사는 “시골 법정을 지키는 것이 중등교사 시절 학생을 가르쳤던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했고,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등 정년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학벌을 깬 사람들] (7) ‘중졸 학력’ 이창우 前 대구기능대학장

    [학벌을 깬 사람들] (7) ‘중졸 학력’ 이창우 前 대구기능대학장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인 만큼 학벌보다 실천 가능한 분야에 올인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정규과정을 마친 최종 학력이 중졸인 이창우(61) 전 대구기능대학장은 학벌에 누구보다 목말라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위조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면서 “부족했던 학력을 채우기보다 나의 장점을 찾고 능력을 키웠으면 좀더 큰 성공을 일궈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대구기능대학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접고 현재 대구에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G&C부설 노사관계전략연구소장), 대학의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노동부 공무원들 사이에 ‘같이 근무하고 싶은 기관장’으로 남아 있다. 역대 선배들 가운데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다. ●만18세로 대졸자 제치고 공무원시험 합격 화제 고향이 경북 예천군인 그는 시골 친구와 같이 다닌 마지막 학교가 용궁중학교였다. 가난 때문이었다.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엔 형님 2명과 자신만 남았다. 영양실조와 병으로 나머지 형제들을 잃었다. 중학교도 학교에서 사환노릇을 하며 겨우 마쳤다. 중졸의 학력으로 3년여 동안 학교, 우체국, 파출소 등의 사환으로 일하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만 18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지역별로 치러진 공무원시험에서 중졸 출신이 대졸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해 서울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 20대 청년기에는 예천군청, 경북교육청, 과학기술부 등을 두루 거치며 착실하게 행정공무원 생활을 했다. ●결혼뒤 학력이 굴레처럼 느껴져 독학시작 하지만 가방 끈이 짧다는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부인을 만나면서 중졸의 학력은 삶을 옥죄는 굴레처럼 느껴져 독학에 뛰어들었다.26세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30세 때에는 당시 초급대학 과정의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사이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과 결혼식도 올렸다. 교사인 아내의 체면을 위해서도 중졸학력을 털어내고 싶었던 그였기에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1977년 대구지방노동청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학업을 계속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다.39세에는 통신대학교 학사과정을,41세 때에는 경북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2003년에는 대구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57세에 학력을 모두 갖추게 됐다. 그의 말대로 학력을 극복하는 데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셈이다.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동료들보다 공직생활이 갑절로 힘들었다.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질 때도 적지 않았다. 학업 때문에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했다. 그러나 업무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남을 속이지 않는 성실함을 생활신조로 여긴 만큼 매사에 충실했다. ●“성공조건은 학력 아니라 성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다. 젊은시절 내내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뒤돌아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 것이다. 학력은 채워도 학벌은 끝내 채우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작용했다. 그토록 부러워했던 K고교 동창,○○대 동문 등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성공적인 삶은 학력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4년여 동안 대구기능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학력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성공한 기업인들로부터 “기술이 모자라면 가르치면 되지만 어긋난 인생은 바로잡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성공의 조건은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성실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글 사진 대구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의정중계석] 성동구의회 지역중고생 23명과 멘토링, 광진구의회 추경예산 심사 밤샘스터디

    성동구의회는 지역 중·고등학생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었다. 의원 14명중 8명이 초선의원인 광진구의회는 추경안 심사를 하면서 아예 스터디그룹을 구성해 밤샘공부하는 열의를 보였다. ●성동구의회(의장 정찬옥) 성동구 자원봉사센터 주관으로 마련한 ‘성동구의회와 함께하는 성동 꿈나무 리더십 멘토링 아카데미’에 의원들이 참여한다. 8일 열리는 이번 아카데미는 여름방학을 맞은 중·고등학생(23명)과 구의원(6명)이 멘토링을 맺은 뒤 자원봉사를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성동구의회 견학프로그램’에 참여, 의회의 기능과 역할 및 의회업무를 안내받은 뒤 구의원과 멘토·멘티를 맺어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 및 경험담을 듣는다. ●광진구의회(의장 이창비) 지난달 26일부터 이틀동안 진행된 추경안 최종 심사과정에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구정을 연구하는 뜨거운 학구열을 보여주었다. 이창비 의장은 “추가 편성을 통해 광진구 재정에 꼭 필요한 예산이 효율적으로 편성됐는지를 심사하는 만큼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부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까지는 상임위 회의장에서 예결위를 진행했으나 이번 회기부터 방청이 가능한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심사를 했다. 더 투명하고 적극적인 심사를 하자는 취지에서다. 구의회는 총 2260억 400만원의 추가 예산을 의결했다. ●노원구의회(의장 이광열) 노원구 홈페이지를 거치지 않는 독자 홈페이지를 갖춘 노원구의회가 이번에는 아예 별도의 서버를 갖추기로 했다. 이는 노원구청 서버가 모두 6개 기관이 사용해 과부하가 걸리는 데다가 최근 이용자제작콘텐츠(UCC) 등이 늘면서 별도의 서버 구축이 필요해졌기 때문. 이에 따라 구의회는 추가경정예산에 별도의 서버 확충비를 책정했다. ●종로구의회(의장 홍기서) 지난달 31일 서울 성곽의 동쪽 성문인 흥인지문 보수공사 준공 현장을 둘러보고 확인점검을 했다. 국가지정 보물1호인 흥인지문은 신축 건물이나 지하철, 교통량 증가 등으로 균열·지반침하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 2005년 5월부터 보수공사 중이다. 시청팀
  • [현장 행정] 마포구 용강동사무소 ‘멘토링 프로그램’

    [현장 행정] 마포구 용강동사무소 ‘멘토링 프로그램’

    “자, 이 지도를 보고 한강아파트를 가는 방법을 설명해볼까.” 학생이 더듬더듬 영어로 답한다.“음….Go straight along this way and turn left at the second corner….” 한쪽에서는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학생이 책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고민 중이다. “소금물의 농도는 소금의 양을 물의 양으로 나눈 것이니까, 농도를 12%로 높이려면….” 지난 2일 마포구 용강동사무소.2층 곳곳에서 소곤소곤 소리가 들린다.16명의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뭔가를 끄적이거나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사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학원이나 개인과외 부럽지 않은 교육을 하겠다는 홍익대 영어·수학교육과 학생들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구열을 불태우는 멘토링 현장이다. ●철저한 개인 과외로 성적 쑥!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용강동사무소는 오후 9시까지 불을 환하게 밝힌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이 1대1로 짝을 이뤄 영어·수학 교습을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홍익대 영어·수학교육과 동아리 학생들이 멘토(조언자)로, 지역내 20개 중·고등학교에서 추천받은 11명의 학생이 멘티(조언을 받는 사람)가 되어 지난 4월6일부터 1대1 교습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진정한 멘토의 의미를 살려 수업을 하지 않는 날에도 아이들에게 안부 문자나 격려 전화를 걸어 교감을 쌓아나갔다. 서먹해하던 아이들이 점차 마음을 열었다. 한시간 먼저 와 공부를 하고, 눈병이 걸려도 수업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아이들의 성적이 평균 20점 가까이 올랐다. 성적에는 별로 관심없던 아이도 “이번에는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면서 기말고사를 벼르고 있다. “마음에 드는 언니한테 배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하다.”면서 뾰로통하던 송찬송(18·서울여고 3)양은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투지’를 다졌다. 교재에 설명을 가득 적어놓은 장명원(16·서울디자인고 1)양은 “영어성적이 부쩍 올라 기분 좋다.”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멘토들도 열심이다. 영어교육과 동아리 회장인 조연항(21)씨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우리도 실습경력을 쌓고 있는 셈”이라면서 “여름방학에는 2시간씩 수업을 늘리고, 지친 아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모두가 동참하는 멘토링 멘토링 프로그램은 지난 3월 홍익대 영어교육과 학생들이 용강동사무소에 제안을 해 이루어졌다.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역내 20개 중·고등학교에서 추천을 받았다. 총30명 중 성적보다는 의지를 따져 11명을 선발했다. 실력에 맞출 수 있도록 철저한 1대 1 교습이 원칙이다. 학습 수준이나 방식은 가르치는 대학생의 몫이다. 세 차례 결석을 하면 면담을 해 계속 할지를 묻기도 한다. 다른 아이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면담을 받은 아이는 있지만, 빠진 아이는 없다. 매월 말에는 학생별로 학습 진도 테스트를 통해 꾸준히 성적을 관리한다. 지역사회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구청 가정복지과는 교재를 제공했고, 한국마사회 마포지점은 특별교재를 구입하는 데 협조했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매월 15만원의 야식비를 냈다. 훈장을 자처하는 유병홍 용강동장은 “성적을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서 “이 멘토링을 계기로 동사무소가 학습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HAPPY KOREA] 충북 보은군 서원권역

    [HAPPY KOREA] 충북 보은군 서원권역

    랜드마크(landmark·표지물)는 특정 지역을 대표할 수 있고, 눈에 띄기 쉬운 목표물을 일컫는다. 서울의 남산타워나 여의도 63빌딩, 삼성동 무역센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랜드마크는 외지인들을 위한 요긴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랜드마크가 반드시 도시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농촌에서도 해당 지역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광의의 랜드마크는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다. ■ 500만원 덧간장 화제 ‘선병국 고가’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권역에는 지난해 1ℓ에 500만원에 팔린 덧간장을 보존해 화제가 된 99칸짜리 ‘선병국 고가’(古家·중요민속자료 제134호)가 있다. 건물이 지어질 당시인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해도 임금의 친형제나 왕자·공주의 경우 50칸,2품 이상은 40칸,3품 이하는 30칸, 일반 백성들은 10칸을 각각 넘는 집을 지을 수 없도록 제한을 받았다.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 예컨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하나씩 놓이면 3칸이다. 선병국 고가는 99칸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114칸으로 지어졌다. 즉 건립 당시에는 정부 규제를 어긴 ‘불법 건축물’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근 서원계곡과 더불어 연간 7만∼8만명의 발길을 이끄는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집 맏며느리인 김정옥(55·여)씨는 “덧간장은 새 간장을 담글 때 묵은 간장을 섞는 방식으로 350여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라, 양이 많지 않다.”면서 “덧간장을 팔아 이윤을 남기겠다는 생각 보다는 뿌리 깊은 지역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선병국 고가는 16년째 고시생을 위한 공부방으로 활용되면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곳을 거쳐간 고시생만 3000∼4000명에 이르고, 지금도 고시생 30여명이 이곳에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다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일부 건물이 소실돼 사랑채·안채·사당채 등 지금은 70칸도 남아 있지 않다.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건물과 담장 곳곳에 생채기와 같은 흔적을 볼 수 있다. 건물 주변에 조성된 울창한 소나무숲도 상당 부분 원형이 훼손된 상태다. 선진규(54)씨는 “현상 유지도 힘들 정도로 관리가 벅찬 것이 사실”이라면서 “마을의 공동 자산으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은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보은 ‘랜드마크’ 대추 “적어도 달걀 크기만한 대추가 나와야 과일로서 대접받을 겁니다.” 영광 굴비, 나주 배, 대구 사과 등의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이같은 대표 브랜드는 곧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와 다름없다. 1611년 허균이 편찬한 ‘도문대작’은 ‘대추는 보은 지방이 제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보은 대추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품이기도 했다. 보은은 일조량이 많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 대추 생산에 알맞은 지역이다. 이곳 대추는 귤이나 사과, 배 등 다른 과일보다 당도가 높다. 명함에 ‘대추 군수’라고 새겨넣은 이향래 보은군수는 “대추의 쓰임새가 제수용품이나 한약재 원료 등으로 제한돼 있는데다, 건조시키면 가격도 떨어진다.”면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 개념으로 접근, 생대추를 브랜드화하면 다른 과일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군수는 “‘달걀 크기의 대추’를 상품화하고, 게르마늄 성분 등이 포함된 기능성 대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같은 명성을 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재배 면적이 200㏊에 불과해 경북 경산시의 700㏊에도 훨씬 못 미친다. 생산량 측면에서도 다른 지역에 밀리고 있다. 서원권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쌀 이외에 특산품이나 별다른 소득 작목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대추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었다. 대추 재배 면적도 채 1㏊가 되지 않고, 주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한 편이다. 이에 따라 보은군은 대추 재배 면적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1000㏊ 이상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방문객들을 위해 대추나무 가로수길 등 ‘볼거리’도 조성할 방침이다. 또 올해부터는 대추 축제도 열 계획이다. 이 군수는 “대추를 막상 재배해 보면 쉽지 않다고 하지만, 상품성 있는 과일을 생산하려면 그만큼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무작정 심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경쟁력도 없다.”고 덧붙였다. 보은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뿌린만큼 거둔다 농촌이 정체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소득 구조를 통해 ‘뿌린 만큼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권역은 서원리·장내리·하개리·봉비리를 포괄하는 지역으로,350여 가구 8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령자·은퇴자 등을 제외한 경제 활동 가구의 평균 소득은 연간 1860만원 정도다. 이 중 전통적인 벼·밭농사에 종사하는 160여가구는 평균 소득이 연간 1000만원 정도다. 게다가 생산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식품도 내세울 게 없다. 반면 ‘황토 사과’ 등으로 특화한 과수농가 14가구는 평균 4500만원,‘조랑우랑’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는 한우 등 축산 농가 20가구는 평균 6000만원의 소득을 각각 올리고 있다. 고시원·식당 등 농업 이외의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는 비농가 31가구의 평균 소득은 2350만원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다른 변수를 무시할 수 없지만, 주민간 소득 격차는 특화 작물을 개발하거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농촌 경제 활성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은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친환경 생태마을로 충청도는 양반 고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권역은 동학혁명 당시 처음으로 민중 집회가 열렸으며,‘과부도 시집 보내야 한다.’는 취지의 상소문을 올렸을 정도로 이른바 ‘깨어 있는’ 마을이다. 속리산·서원계곡과 같은 빼어난 경관자원은 물론, 우체국·보건소·쇼핑센터·문화센터 등 기본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내년에 개통되는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속리산IC가 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향상된다. 구연견 외속리면장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이 추진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토지 보상을 받은 주민 가운데 15가구가 이곳으로 이주를 했거나,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국립공원 지역으로 개발에 제약이 많은 만큼 귀농자, 은퇴자 등에 적합한 친환경 생태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속리산에서 발원해 마을을 가로지르는 삼가천을 정비하는 데 58억원, 콘크리트 구조물인 용수로를 자연형 수로로 복원하는 데 3억원 등 향후 3년 동안 200억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조상래(53)씨는 “보은의 특산품인 대추를 활용한 주말농장과 가로수길 등도 조성할 예정”이라면서 “마을 안에 위치한 군 부대 이전 문제도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보은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만년 꼴찌’ 딛고 준우승 일군 추일승 KTF 감독

    ‘만년 꼴찌’ 딛고 준우승 일군 추일승 KTF 감독

    “우승을 했다면 더 이상 도전할 목표가 없을 뻔했다. 우승을 위해 다시 도전하겠다.” 울산 모비스와 부산 KTF가 프로농구 챔프전 마지막 승부를 펼친 지난 1일 울산 동천체육관. 부산에서 원정 온 응원단은 ‘추일승(推一勝) 감독님 파이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추일승(秋壹勝) KTF 감독 이름을 패러디한 것으로 1승을 더 따내 우승하라는 의미였다. 비주류가 꿈꾼 ‘코트의 반란’은 아쉽게도 7차전에서 잦아들고 말았다. 하지만 팬들은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추 감독과 KTF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KTF는 매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약체로 저평가됐다. 하지만 04∼05시즌부터 여보란 듯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PO)에 나서며 ‘신흥 명문’으로 떠올랐다. 이번 시즌에도 신기성 외에는 특출한 스타플레이어가 없었으나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이어 챔프전까지 올라 우승트로피를 노렸다. 또 1승3패 뒤 2연승하며 극적인 명승부를 그려냈다. 앞서 KTF의 전신인 나산, 골드뱅크, 코리아텐더 등이 받은 성적표는 그다지 별 볼 일이 없었다. 모기업의 잦은 부도로 농구판 들러리로 전락한 탓이 컸다. 하지만 2003년 11월 KTF가 팀을 인수한 뒤 3년 6개월 동안 강팀으로 변신했다.‘덕장’ 추 감독이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홍익대 출신인 추 감독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출신이 휘어잡고 있는 국내 농구판에서 철저한 비주류다. 대학 졸업 뒤 실업농구 기아에 입단했지만 벤치 워머였다. 상무에 갔다온 뒤에는 선수가 아닌 주무를 지내기도 했다. 상무 코치와 감독을 거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3년 코리아텐더 지휘봉을 잡으며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주류 감독으로는 사상 두 번째, 프로농구 사상 8번째로 지난 1월 정규리그 통산 100승을 따내며 명지도자 대열에 들어섰다. 그는 선수들이 함께 하고픈 지도자로 꼽힌다. 그만큼 인화력과 흡입력이 빼어나다. 홍익대 3년 후배인 이영주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감독은 “일승이 형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앞장서는 선배”라면서 “형을 믿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선수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며 다독여 제 역할을 찾아주는 스타일이다. 뜨거운 학구열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 시절 야간 훈련을 마치고 난 뒤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그는 미프로농구(NBA) 감독을 지낸 델 해리스의 ‘위닝 디펜스’를 4년에 걸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 나온 농구 원서 100여권을 탐독할 정도로 이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잡초로 불리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품고 있는 추 감독의 다음 시즌이 기다려진다. “짧은 역사지만 KTF는 계속 발전했고, 앞으로도 진화할 것입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미국 한인 ‘SAT∙ACT’ 동시 만점 화제

    미국 한인 ‘SAT∙ACT’ 동시 만점 화제

    미국 대학입학시험 SAT와 ACT에서 모두 만점을 기록한 한인 학생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학생은 유타주 팀뷰고등학교(Timpview High School)의 이형 군. 9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이형 군은 작년 12월 ACT 만점에 이어 한달 후 SAT도 만점을 받아 두시험 동시 만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이군은 “ACT는 SAT에 대비한 예비 시험”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운이 좋았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지도교사 린다 뱅크스는 “정말 똑똑한 학생이자 열정적인 노력파”라고 칭찬했다. 또 다른 교사 오스텐슨은 그와의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던 것을 떠올리며 “매우 지적인 학생”이라고 밝혔다. 음악을 좋아하고 학보사에 글을 기고하는 등 교외 활동도 열심히 하는 이군은 “배움 자체가 좋다. 높은 지위나 돈에는 관심 없다.”고 말해 순수한 학구열을 드러냈다. 이 소식을 전한 미국 유타주의 데저트뉴스(desertnews)는 “이군은 아직 지원할 대학을 정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 SAT∙ACT란? SAT와 ACT는 미국 대학입학 전형에 쓰이는 양대 대입 평가고사다. 사진=데저트뉴스(desertnews)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너무 컸습니다. 상점 간판도, 버스 간판도 제대로 읽지 못해 언제나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3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지하 강당. 국내 최초의 성인대상 학력인정 초등학교인 이곳에서는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나의 주장 발표 대회’ 본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옥자(62) 할머니는 단상에 올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공부의 중요성을 웅변했다. 의자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에 귀기울이는 200여명의 재학생들 대부분은 50∼80대 할머니들. 소복이 눈 내린 듯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하지만,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 가슴속 열정을 쏟아놓았다. 이 할머니는 8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뒤늦게 학교에 입학해서 한글도 배우고 웹서핑도 배워서 딴 세상에 사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 학기에 8개월씩 모두 4년 12학기로 구성돼 있는 양원초등학교는 2005년 3월 개교해 2009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현재 2개 학년 16개반 총 550여명의 학생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베이비붐 세대 일자리 찾으러 “우린 은퇴뒤 학교로 간다”

    |도쿄 이춘규·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은퇴를 원치 않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들이 재취업을 위해 늦은 나이에 2년제 전문 대학 등에서 재교육을 받고 있다고 뉴스위크 최신호(19일자)가 보도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이들 ‘베이비 부머’들은 재취업을 위해 입학이 쉽고, 학비가 저렴하며 산학 협동이 잘 이뤄지는 전문대 입학을 선호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 1200개 전문대에 100만명이 재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美 은퇴자들 재취업 위해 전문대로 원자력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었던 로저 무베리(57)는 4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로우어 컬럼비아 전문대(LCC)에서 학위를 딴 뒤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에 취업했다. 그는 지난해 해고를 당하자 다시 LCC를 찾아 펄프·제지산업의 숙련 노동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는 “지금 배우는 기술이 취업 문을 열어줄 것”이라면서 “은퇴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다.”고 말했다. 앨라배마주 출신의 폴 브래드퍼드(49)는 17년전 부터 한 제지회사에서 일해왔으나 언제 불어닥칠 지 모를 감원위기에 대비해 최근 앨라배마 서던 전문대에 등록, 기능공 훈련을 받고 있다. 뉴스위크는 미국 전문대협회 대변인 노마 켄트의 말을 인용,“점점 더 많은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하지 않기로 결심함에 따라,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부머들이 전문대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단카이세대 ‘시니어대학원’ 진학 붐 한편 일본에서도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1947∼1958년생)의 만학열이 뜨겁다. 이들 세대는 학구열과 성취욕구가 높고 은퇴 뒤에도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 의사가 높기로 유명하다. 출산율 감소 등으로 학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대학들 사이에서는 내년부터 정년을 맞기 시작하는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새 학위과정 신설경쟁이 뜨겁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05년 입시때 전국 457개 대학 1017개 학부가 사회인 특별전형을 실시했다. 지난해 5월1일 현재 50세 이상의 대학원생은 1799명,60세 이상은 359명이다. 대학원은 보통 2년 과정에 36학점을 따야 하지만 은퇴자들을 겨냥한 ‘시니어대학원’은 4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입학전형은 학과시험 없이 구술시험과 보고서 제출로 대체된다. 내년에 시니어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인 누마다(56·도쿄도 하치오지시)는 일본 휼렛패커드의 현직 노무부장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업무 경험을 집약하고 싶어서 기업내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자수성가/오풍연 논설위원

    맨손으로 큰 뜻을 이룬 사람들은 늘 존경의 대상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까닭이다. 흔히 자수성가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 뒤안에는 피·땀·눈물이 배어 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어떠한 결과도 도출해 낼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이들의 지난 날을 듣노라면 어느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지난해 만난 공기업 임원 A씨는 매사에 자신만만하다. 추진력이 대단한 데다 언변도 좋다. 기자는 그의 학력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에서 유명 대학을 나왔거니 했다. 다른 공기업 임원 B씨도 기자와 생각이 같았단다. 그러나 정규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였다.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다. 학구열도 남못지 않았다.S대 최고경영자 과정도 3전4기 끝에 수료했다고 들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두번 도전하다가 물러설 판이다.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오기와 집념으로 오늘을 일군 셈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다.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때문인지 A씨에게 정이 더 간다. 그에게서 풍기는 희망 때문이리라.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엄마, 걱정마. 이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도 잘 먹던 뽑기장사해서 먹고 살면 되니 엄마보고 걱정 말란 것이다. 너무나 대견하고 안쓰러워 큰아들을 끌어안고 그때 처음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울지 않는 엄마, 강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식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유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 애경을 내가 맡아 아이들과 똑같이 건실하게 성장시키기로 다짐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장영신(69) 회장이 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남편이 죽고 회사를 떠맡게 된 이야기를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강한 모성, 남편의 유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아내로서의 의리, 애경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경영참여 이유라고 덧붙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잃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3남1녀의 어머니로 살림만 하며 지내던 12년차 주부가 국내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애경 창립 17년 만의 일이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 ‘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1975년에는 분말 합성세제인 ‘크린업’을, 이듬해에는 액체세제 ‘써니’를,1980년 들어서는 세제 ‘스파크’를,90년 들어서는 클렌징 화장품인 ‘포인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트리오도 이름은 같지만 세척력을 높이고 공해도를 낮춰 지금까지도 1등 주방 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터프우먼 마담 장(張)’으로 장 회장은 어머니 고 문금조씨와 아버지 고 장회근씨의 4남4녀중 막내딸이다.1936년 7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나 종로구 명륜동 1가 등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대지주의 아들. 어머니 문 여사도 당시 일본 귀족학교인 쓰다여대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다. 장 회장은 혜화동성당 유치원을 나온 뒤 혜화국민학교를 다녔다. 노래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자주 받았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반장을 도맡기도 했다. 부모님의 학구열이 강한 덕에 형제들 모두 공부를 잘했다. 큰오빠 고 장윤옥씨는 일본대 전문부 상과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 들어가 5국장(부이사관)까지 지냈고, 미국으로 이민간 큰언니 장영옥(81)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애경유지 사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셋째 오빠 고 장위돈씨는 서울대 정외과 교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집트 총영사, 에콰도르 대사를 지내는 등 이력이 화려하다. 애경유지 이사를 지낸 넷째 오빠 장기돈(75)씨는 성균관대 상대 출신이다. 장 회장의 집안은 일제시대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광복 후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6·25가 터지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경기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 재학중이던 그는 돈 안들이고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 재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이 일찌감치 유학을 준비시켰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당시 교내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협연한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를 맡기도 했다. 애경이 쉘, 유니레버 등 다국적기업과의 합작을 무리없이 진행했던 배경에는 유학 생활로 다져진 영어실력과 당시 익혔던 외국 풍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란시절 여고생 신분으로 부산에서 사과장사를 한 적도 있다. 좌판을 벌여놓고 사과를 예쁘게 쌓아놓았지만 막상 손님이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면 먼산 바라보기 일쑤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탓에 장사꾼이 아닌 척한 것이다. 그러나 애경을 경영하면서 그에게는 ‘호랑이’‘터프우먼’‘마담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돌파구로 외국계와 합작에 집중했을 당시 그쪽에서 공동대표를 요구하면 그는 “여기는 한국 회사다. 너희가 한국에 대해 뭘 아느냐.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너희들은 뒤에서 지켜봐라.”고 충고했다. 합작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달지 말라고 요구받으면 애국가 봉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진행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런 장 회장을 놓고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외쳤다. 사내에서는 ‘호랑이’로 통했다.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퍼붓는 성격과 한번 결정하면 매몰차게 추진해 나가는 돌파력 때문이란 설명이다. 물론 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도 불같다.’는 평을 받는다. ●남편과는 어릴적 이웃사촌 장 회장과 남편 채몽인씨는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고 채씨는 장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부터 애정 공세를 퍼붓다 미국까지 따라가 무려 3년11개월 동안 구애 공세를 펼쳤다. 공개청혼으로 남편의 존재는 대학내에도 다 알려져 수녀 교수들로부터 “왜 저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졸업후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23세이던 1959년 6월 신당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들(3남1녀)의 혼사는 장 회장보다 더 빠르다. 대부분이 대학시절에 결혼을 모두 끝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연애 결혼이다. 큰아들인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45)은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서 만난 홍미경(43)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당시 부인은 1학년에 재학중인 생활미술학과 새내기. 채 부회장은 1983년 졸업후 미국 보스턴대에 MBA를 받은 뒤 1985년 애경산업 생산부 마케팅부 등을 섭렵했다. 부인 홍씨도 함께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홍씨는 전공을 살려 현재 종로에서 갤러리 ‘사간’을 운영 중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가 인상적이다. 장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리 큰애(큰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정말 착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인천교대 음대 교수를 지낸 장인 고 홍종수옹은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등에서도 활약한 음악가다. 장 회장의 맞손녀이자 큰아들인 채 부회장의 딸 문선(19)양은 할머니의 성악 실력과 외할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모두 물려받아 현재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유통부문을 맡고 있는 둘째 아들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은(41)씨와 결혼해 졸업하기 전 1년 동안 학생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채 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국제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91년 애경에 합류했다. 현재 애경백화점,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등 애경의 유통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프랜치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병문(75)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예편한 4성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아세아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큰딸 채은정(42)씨는 외숙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안용찬(46) 애경 사장을 소개해줘 결혼한 경우다. 안 사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과정 재학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채씨 외숙모의 권유로 은정씨를 만났다. 은정씨도 대학 3학년때 결혼했다. 은정씨는 이화여대 조소학과를 나와 미국 애크리하트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1998년 애경산업에 들어왔다. 애경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다. 채 부회장과 연세대 경영학과 77학번 출신인 안 사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채 부회장은 “안 사장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 사이여서 이미 대학시절부터 안 사장을 알고 지냈다.”면서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유학을 끝낸 뒤 애경으로 꼭 와줄 것을 내가 청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하기 이전 유학을 마치고 미국 폰즈사에서도 마케팅 담당 업무를 맡았다. 통역 장교 1기 출신인 안 사장의 아버지 안상호(76)씨는 육군 참모총장 수석 보좌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플로 코리아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막내 아들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은 50만평 18홀 규모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애경개발을 맡고 있다. 애경개발은 1987년 출발 당시부터 애경의 계열사중 유일하게 주력인 세제·화학과 동떨어진 업종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한때 SBS아나운서로도 활동했던 한성주(31)씨와 99년 6월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89학번인 채 부사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당초 친정에서 장 회장의 경영참여를 반대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카들도 여럿 애경에 몸담고 있다. 둘째 오빠인 고 장성돈 전 애경유지 사장의 큰아들인 장인규(53)씨는 과거 애경PNT(전 경신산업) 사장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갔고, 둘째 아들 장인원(49)씨는 계열사인 코스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인 고 장위돈씨가 낳은 3형제 중 큰아들인 우영(37)씨는 애경 화장품사업부장으로 있다. ●애경백화점에 남다른 애착 장 회장은 회사를 맡은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큰아들 채 부회장이 1993년 9월10일 애경백화점 개점식 인사말에서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음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됐다.’고 회고했다. 애경백화점 본점인 서울 구로구점은 창업자인 남편 고 채몽인씨가 타계하는 순간까지 비누를 만들었던 창업 터전이다.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인 ‘미향’을 만든 곳으로 70년대까지 ‘트리오’ 등 세제를 만들다 공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창고로 써왔다.“아버지가 물려준 땅이니 잘 연구해서 활용해보라.”고 맡긴 지 3년 만에 1만평 부지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장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금도 두 아들이 사이좋게 이 백화점 5층에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장 회장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을 다녀갈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유다. 장 회장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에 대해 “희생하는 삶만 사신 분”이라면서 “항상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남들이 취미를 물으면 ‘빨래’라고 대답할 정도로 아직도 집안 일을 혼자 한다. 말년에 잠시 정치에 참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어긋나는 길은 아니란 평이다.1997년 고사해 오던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성들이 기업하기 불편한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1999년 민주당 신당창당 준비위원 공동대표로 영입된 뒤 백화점이 있는 구로를 텃밭삼아 16대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왜 정치를 하느냐. 이미지 버린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여성경제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더이상 정치에 참여할 뜻은 없다. ●가족간 우애는 애경의 힘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구로동 본사 회장실을 비웠고 결재도 큰아들에게 모두 맡기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애경복지재단 일에 관여하며 무역협회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삼아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순환기계통이 안 좋은 탓에 홍콩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간 볼썽사나운 재산 분쟁이 많은 재계에서 애경가문 형제들은 함께 회사를 키워가며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채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사장은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채 부회장은 “인맥이랄 만한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 모두 형제들이다.”면서 “네 남자가 모여 술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며느리들도 친하다. 큰동서와 작은 동서도 단짝 친구 같다. 형제들이 화목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 뒤 AK면세점(2001년) 애경 2호점인 수원애경역사(2003년)로 확대했고 3호점 평택역사는 2009년 완공된다. 제주도와 함께 설립한 ㈜제주항공을 통해 2006년 6월부터 민간항공 사업도 벌인다. 채 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동생 채동석 사장은 유통부문을, 처남인 안용찬 사장이 생활용품 부문을 키우고 있다.2세대에 와서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의 양축을 키워가는 한편 유통과 항공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은 고혈압이 있어 거의 매주 등산을 즐기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린 천주교 신자이지만 산을 자주 찾는 탓에 항상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애경의 힘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장회장 ‘유별난 시간개념’ 애경가(家)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유별나다. 장영신 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최소한 10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나는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꼭 10분 전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단 5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게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관념을 하나의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못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작은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대변한다.”(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그가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나인 투 파이브’ 원칙을 지켰다.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늦어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조간 신문을 읽고 그날의 주요 업무를 점검하고 계획했다. 새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회의도 결재도 오전에 처리한다. 관청과 은행이 문을 여는 아침 9시 이전에는 하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을 놓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애경에는 오전 8시만 되면 결재를 받기 위한 줄이 이어지고, 오전 9시면 그날 결재받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철저한 시간관념은 애경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 사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채형석 부회장은 한술 더 떠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출근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하거나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모일 때는 아예 30분 먼저 나갈 정도다. 채 부회장은 “식사 시간을 통해 가족 모임이 주로 이뤄지는데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이라면서 “예컨대 6시에 모이기로 해도 식당이 문을 여는 오후 5시 30분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고 전했다. 급한 성격 탓에 식사를 시작하면 1시간내에 모두 끝내고 일어선다. 한 번은 막내인 채승석 부사장이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약속한 정시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미 식구들이 모두 제사를 지낸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jhj@seoul.co.kr ■ 장영신 회장과 제주와의 인연 장영신 회장의 ‘제주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제주 인연은 1970년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장 회장은 남편의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00여명의 제주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고 채 사장의 고향이다. 큰아들 채형석 부회장도 최소한 1년에 세차례 이상 제주도에 간다. 선산이 모두 중문 색달동에 있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끔 간다. 채 부회장은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제주도에 요양을 가셨을 때 동행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낸 기억이 있어 친근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는데 증조 할아버지까지만 기록이 있어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도 제주에서 지낸 시절이 있다. 경기여고 재학시절 6·25때 제주로 피란가 1년간 지냈다. 장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애경은 제주도와 손잡고 내년 6월부터 도민의 숙원인 저가항공 시대 대열에 동참한다. 애경은 제주도와 합작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만들었다.㈜제주항공의 왕복 비용은 기존 항공비용의 70% 수준인 11만원선.㈜제주항공의 애경 지분은 75%다. 채 부회장은 “이윤이 크게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라고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제주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혁신 공기업 탐방] (20)박남훈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혁신 공기업 탐방] (20)박남훈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공사·공단 등 정부산하기관이 설립목적을 달성하려면 공사·공단 자체가 건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적자에 허덕이는 공사·공단은 ‘국민을 위해’라는 미명으로 국민의 혈세만 축낼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공공기관의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남훈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22일 “앞으로 공단의 설립목적인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때 직원들의 급여마저도 부족할 만큼 재정이 열악했던 공단이 뼈를 깎는 혁신으로 건실해지자, 이제는 ‘국민을 위한’ 공단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한때 공단이 독점했던 자동차 검사 업무가 지난 1997년 민간에도 개방된 이후 수익구조가 악화됐지만 자동차 성능 시험 업무를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종전의 부채를 모두 털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박 이사장이 계획하고 있는 교통안전 강화 방안을 들어봤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교통사고의 왕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교통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는 22만여건이 발생해 6563명이 사망하고 34만여명이 부상했다. 하루 평균 60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8명이 사망하고 951명이 부상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참사로 꼽히는 삼풍백화점 사고 때 510명이 사망했고 성수대교 붕괴 때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통사고를 대형참사로 비교하면 이틀에 한 번씩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삼풍백화점 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금액도 15조원에 달한다. 올해 국가예산의 8%에 달할 정도다. ▶교통사고가 많은 원인이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1990년대 이후 급증해 현재 1500만대를 돌파하였지만, 이에 비례하는 올바른 교통문화와 안전의식은 뿌리내리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차량 대 사람’의 교통사고율이 선진국보다 월등하게 높고, 특히 사업용 자동차의 교통사고율이 비사업용에 비해 5∼6배 가량 높게 나타나고 있는 점 등이 우리나라 교통사고의 특징이자 심각성으로 지적될 수 있다. ▶최근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추세로 알고 있는데. -정부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해마다 1만명을 웃돌던 교통사고 사망자가 2001년도를 기점으로 줄어 지난해 처음으로 6000여명 수준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교통 후진국’이란 멍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대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3.9명으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2∼3배가 높다. 전체 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용 자동차의 높은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공단이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나. -운수업체의 교통안전을 진단하고 있다. 전국의 운수업체 가운데 대형 교통사고 발생 업체와 교통사고 지수가 높은 사고다발 업체들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교통안전 관리 실태를 진단해 문제점을 바꿔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2년도부터는 진단을 요청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자율 진단제도’를 도입, 운수업체의 사고요인을 미리 없앨 수 있는 수준 높은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의 개인적인 특성도 교통사고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물론이다. 공단은 이를 감안해 ‘사업용 운전자 운전정밀검사’를 하고 있다. 이 검사는 사업용 운전자의 신체적·정신적 지각운동, 습관, 성격, 심리·생리적 특성 등 운전 적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사하여 결함사항을 교정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화물종사자 자격관리업무를 비롯해 운수업체에 각종 교통안전 홍보물을 제작·배포,, 운수종사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기존의 이론과 강의 중심의 교통안전 교육을 체험과 실습위주의 교육방식으로 개선하기 위해 올해부터 ‘사업용 운전자 안전운전 체험연구센터’ 건립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적자에 허덕이던 공단이 이제는 흑자구조로 바뀌었는데. -자동차 검사 업무를 민간에 개방하기 직전인 1996년의 정기검사 수입은 588억원에 달했다. 또 매년 300억원에 달하는 교통안전분담금의 수입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정기검사가 민간에 개방되자 정기검사 수입이 한때 240억원까지 줄었다. 또 2000년 12월 이후부터는 교통안전분담금마저 폐지됐다. 이때 부채비율은 1700%에 달해 직원들의 급여나 퇴직금을 줄 수 없는 상황까지 갔었다. 하지만 공단은 위기를 기회로 보고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선 서울 본사 등 값비싼 부동산을 모두 매각했다. 또 교통관광TV도 팔았다.1350명에 달했던 직원 가운데 507명을 감원했다. 대신 수입원을 다각화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자동차성능 시험 업무를 강화해 연간 50억원도 채 안 되던 수입을 2배 이상 끌어올렸다.2003년부터는 일반차입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재정이 튼튼해진 만큼 공단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 ▶공단이 정부산하기관의 성과관리시스템 분야나 경영실적 평가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거뒀다. 혁신사례를 소개해 달라.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제를 종전 2급 이상 간부 직원에서 전 직원으로 확대했고, 성과급 차등폭도 크게 늘렸다. 또 연봉제를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하고 종전의 연공서열식 보수체계를 직급별 한계호봉으로 축소하는 등 성과 및 능력 중심의 직능급적 보수체계로 바꿨다. 이같은 노력으로 공단의 재무구조가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내규를 확 뜯어고치는 등 업무의 효율성과 대외 경쟁력을 높였다는 점이다. 과도한 규제나 불필요한 규정을 정비하고,2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업무실적 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업무혁신을 꾀했다.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한데. -철저한 공개경쟁을 통해 신규 직원을 채용,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그 동안 금녀구역으로 인식됐던 자동차 검사 업무에 국내 최초로 여성 인력을 뽑아 보다 수준높은 고객감동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민원인 편의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해 검사 업무의 대외 경쟁력을 높였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 박남훈 이사장은 박남훈 이사장은 화술과 조정 역할을 갖춘 경제전문가다. 박 이사장은 초창기 10년간의 관료생활을 경제기획원 예산실과 경제기획국에서 근무한 ‘경제통’이다. 이때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할 만큼 학구열도 높았다. 선진국의 경제협력단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의 활동은 눈부시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지 못했던 지난 1992년 OECD 본부가 있는 파리에 3년 동안 파견돼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자세히 알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기여했다. 국무조정실과 청와대에서는 기획업무 파트를 두루 거쳤다. 국무총리실 복지심의관과 규제개혁심의관, 재경심의관, 기획심의관을 거쳤고 국민의 정부 말기에는 대통령비서실 정책비서관과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았다. 박 이사장은 참여정부들어 건설교통부 수송정책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극심한 사회갈등이었던 ‘화물연대파업’에서 조정 능력을 최대한 발휘, 정부와 노사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전남(56) ▲광주제일고·서울대 외교학과 ▲행정고시 18회 ▲국무조정실 복지심의관 ▲청와대 정책비서관 ▲건설교통부 수송정책실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동차 정기검사 문제점·대책 자동차 정기검사는 사람의 신체검사와 같다.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자동차도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사고는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이 같은 자동차 정기검사를 독점해왔다. 그러나 1997년 4월부터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국민의 편익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정기검사가 민간업자에게도 개방됐다. 현재 정기검사를 맡고 있는 민간업체는 1795개나 된다. 반면 공단은 51개 검사소에서 정기검사를 한다. 국민들로서는 정기검사 업체가 늘어나 예전보다 손쉽게 정기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민간업체가 난립하면서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을 맞출 수 없게 되자, 형식적이고 부실한 검사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공단과 민간업체간 정기검사의 불합격률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공단은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검사한 148만여대 가운데 29만여대를 불합격 처리해 불합격률이 19.8%를 기록했다. 반면 민간업체는 같은 기간 325만여대중 15.9%인 51만여대를 불합격 처리했다.4%포인트나 차이가 났다는 얘기다. 또 일부 민간업체들은 자동차안전도검사와 자동차배출가스정밀검사를 한꺼번에 할 경우 규정가격보다 적게 받는 가격 덤핑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수료 담합까지 이뤄진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공단은 이런 이유로 민간업체에 대한 수시감독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자동차 등록대수에 맞춰 민간업체의 허가를 제한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정기검사는 자동차의 이상 유무를 사전에 발견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도록 국가가 위임한 공적인 업무”라면서 “일부 업체들이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7)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

    [일본을 다시본다] (7)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

    |교토 특별취재팀|2003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이 각 부문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일본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냈고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기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년 연속 노벨상 수상’이라는 기록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잃어버린 10년’의 경기 침체가 노벨상 수상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3년 동안 입증된 다음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2명. 문학상과 평화상을 받은 3명을 제외한 자연과학계열 수상자 9명을 배출한 일본 학계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자연과학계열 9명의 수상자 가운데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비롯,5명을 배출한 교토대를 찾았다. ●방치에 가까운 연구풍토… 사회공헌 의식도 한몫 일본 최고 명문대 교토대와 도쿄대는 곧잘 비교되지만 규모 면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5월 현재 교토대의 학생 수는 학부와 석·박사 과정 통틀어 2만 2103명이지만, 도쿄대는 2만 8350명이다. 석·박사 과정만 놓고 보면 교토대 학생 수는 8828명으로 1만 2676명인 도쿄대보다 3326명이 적다. 졸업생 숫자로 보면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자연과학계열 노벨상 수상자에 관한 한 교토대는 도쿄대를 5대 2로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 “수도인 도쿄에서 떨어져 있어 국가 분위기와 상관없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다는 점과, 자유를 중시하는 학풍이 노벨상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는 것이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사사키 미사오(우주물리학) 교수의 말이다. 오이케 가즈오 교토대 총장과 석·박사 과정 학생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오이케 총장은 “자유로운 학풍과 산책하기 좋은 지형, 학문의 사회적 공헌을 중시하는 전통”을 ‘노벨상의 비결’로 꼽았다. 박사과정(우주물리학)의 히키다 와타루는 “어찌 보면 방치라는 느낌이 들 만큼 학생 개인의 자유에 맡겨두지만 책임은 철저하게 묻는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도 지도교수가 논문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자유와 학문의 사회 공헌을 강조하는 이같은 정신은 유카와 교수의 일본인 최초 노벨상 수상을 기념,1952년 교토대에 설립된 기초물리학연구소(유카와연구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초대 연구소장을 지낸 유카와 교수는 연구자들이 경제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으로 만들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일본 물리학의 중심, 유카와연구소 유카와연구소의 특징은 교토대 외부의 연구자들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현재 연구소의 박사후과정(PostDoc) 23명의 과반수가 교토대 졸업생이 아니며 그 중 6명은 외국대학 출신 이방인이다.3∼4개월가량 머무는 방문연구원은 현재 16명으로 그 중 2명만이 일본 학자들이다. 이렇게 일본 각지와 외국에서 모인 물리학자들은 분야별로 우주, 소립자, 물성(物性), 원자핵 등 4개로 나뉘어 연구한다. 연구소측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을 같은 연구실에 배정, 분야간 교류가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 한 연구실 배정 교류 유도 오사카대에서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후과정으로 유카와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카하시 도루는 “서로 다른 전공의 학자 4명과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서 “유카와연구소는 교토대 내에서도 특별한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유카와연구소에는 일본의 물리학자들이 수시로 모여든다. 물리학계의 사랑방인 셈이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인근 나고야대와 오사카대 등에서 온 학자들이 연구소에서 동료 학자들과 전공 관련 논의를 하고 있었다. 오사카대 박사후과정(우주물리학)에 있는 사고 노리치카는 “세미나와 같은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전국에서 관련 분야 학자들이 찾아와 1주일씩 머물며 논의하다 가기도 한다.”며 연구소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의 유력한 차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손꼽히는 물리학자 2명도 외부에서 유카와연구소를 찾아왔던 학자들이다. 교토산업대 이학부 마스카와 도시에 교수와 쓰쿠바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소립자원자핵연구소 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는 1960년대 유카와연구소에서 만나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두 학자는 이어 73년 2월 연구소에서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이라는 소립자물리학 이론을 학계에 발표했고 노벨상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노벨상 발표일에도 두 사람의 연구실과 집 앞에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국비지원 중단… ‘기초학문 중시´ 풍토 흔들 하지만 현재 교토대와 유카와연구소는 법인화 후폭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선언하고 국비지원을 중단하자 학문의 사회 공헌을 강조하며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오이케 총장은 “노벨상을 받은 유카와 교수는 ‘대학마저 기초학문을 등한시하면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면서 “이런 교토대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든 경제적 지원을 하려고 한다.”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사키 교수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자동항법장치)은 존재할 수 없었다.”며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surono@seoul.co.kr ■ 오이케 총장이 말하는 ‘유연한 학풍’ |교토 특별취재팀| “자네 아직도 교토대에 있나? 그러니까 노벨상을 못 받는 것 아닌가. 하고 싶은 연구는 찾아다니면서 해야지.” 허연 수염에 백발이 인상적인 오이케 가즈오 교토대 총장. 올해 예순다섯인 그는 교토대가 노벨상의 산실이 된 비결을 묻자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대학 친구이자 현재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59년 교토대에 입학한 오이케 총장과 도네가와 교수는 1학년 때 같은 학부 같은 반이었다. “(1학년을 마친 뒤) 저는 지구물리학으로 전공을 결정했고 그 사람은 화학과로 갔습니다. 그런데 화학과로 간 사람이 생물학 연구에 푹 빠져 4학년이 됐는데도 졸업 논문도 안 쓰고 이학부에 가서 바이러스 연구를 했지 뭡니까.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그의 학구열을 높이 평가해 졸업을 시켜줬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그 친구가 미국과 스위스로 가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교토대의 자유롭고 유연한 학풍 덕분이기도 했지요.”지난해 벳푸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만난 도네가와 교수는 그에게 “자넨 교토대에만 있으니까 노벨상을 못 받는 거야.”라며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오이케 총장은 교토대 출신으로 지난 8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가 밝힌 ‘노벨상을 받게 해준 두가지 습관’도 소개했다. 후쿠이 교수가 소개한 습관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메모하라.’는 것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곳을 걸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이케 총장은 후쿠이 교수가 걸었다는 ‘철학의 길’이란 이름의 교토대 산책로를 언급하면서 “교토가 지형적으로 동쪽이 조금 높아 산책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점도 노벨상 수상에 기여했다.”며 지구물리학자다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72년 교토대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와 부총장 등을 거쳐 2년 전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초학문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노벨상 수상은 사람들에게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교토대가 올해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 대상 특별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기초학문에 대한 중·고교생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는 9월부터 실시할 계획인 ‘주니어캠퍼스프로그램’은 일요일마다 교토대 교수들이 중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오사카대와 도쿄공대 등 5개 대학과 함께 공동으로 올해 내에 시작할 계획인 ‘오픈코스웨어(OCW·강의정보공개)’는 고등학생 대상 웹사이트 무료 공개강의다. 이 역시 기초학문 중심이다. 오이케 총장은 “노벨상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자유와 여유를 강조하는 교토대의 연구 풍토와 사회에 대한 공헌을 강조하는 학풍이 아닐까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suron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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