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어떻게 풀까 (2)
■ 가해학생 지원 프로그램 사례
문제행동을 일으킨 학생들을 위한 ‘가해자 지원 프로그램’은 국내에도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재정과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한계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가해학생들을 치유하는 현장을 찾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해주는 전문 상담
“그 아이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었을까?다른 방법을 썼다면 너희들은 지금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지난해 서울 서초구 구립방배유스센터 상담팀을 찾은 A중학교 2학년 남녀학생 6명은 친구들에게 악의적인 소문을 내고다니던 같은 반 여학생을 뒷마당으로 불러내 집단폭행했다. 경찰은 이들이 사전에 조직을 이루지 않았고 우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처벌하지 않고 상담을 의뢰한 것.
‘치료’는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상담원이 “너희들의 행동으로 피해자 친구는 어떤 상처를 입었을까, 또 너희들은 어떻게 됐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친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결방법으로 폭력을 쓴 것도 잘못됐다.”면서 “친구들이 우리를 ‘폭력6인방’이라고 부르며 피해다니고, 선생님도 ‘실망했다.’고 해 속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 대한 상담치료는 두 달 동안 6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폭력적인 영화를 보고 자신과 영화속 주인공을 비교하면서 폭력의 위험성을 비판해 보는 미디어 상담도 했다. 두 달 뒤 3명은 스스로 상담팀을 찾아와 진로를 상담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
센터에서는 10년째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연계해 학교 폭력 피해 및 가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상담을 비롯, 각종 프로그램으로 심리적 치유과정을 밟게 하고 있다. 상담은 청소년들이 저지른 문제행동의 유형, 문제행동을 시작한 시기 등 개별적인 특징에 맞춰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학교폭력 등을 저지르고 센터를 찾은 가해 청소년은 192명에 이른다. 강주현 상담팀장은 “우발적으로 친구를 때리다 숨지게 한 청소년 3명은 서로 말하기를 꺼리다가 상황을 재연하는 심리역할극을 마련하자 비로소 ‘말을 꺼내면 공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모르는 척 지냈다. 그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울부짖었다.”고 소개했다.
●‘방과 후 대안학급’운영… 인성·감성 교육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지요. 교사는 못난 제자에게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경기 안양시 평촌공업고등학교에서는 폭행이나 음주, 흡연 등 학칙을 어긴 학생들은 처벌 대신 오후 10시까지 선생님과 학교에 남아 ‘대안 수업’을 받는다. 처음에는 “학생부 선생님과 밤 늦게까지 마주앉아 있느니, 매를 맞는 게 낫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즐거운 벌칙’은 학생들을 변화시켰다.
평촌공고에서 ‘방과후 대안학급’을 시작한 것은 2003년 1학기. 다른 학교보다 부적응학생의 비율이 높은 것을 고민하던 학생부 교사들이 내놓은 처방이다. 문제행동을 두차례 이상 보인 학생은 1단계 대안학급에 참여한다. 나흘 동안 부모님과 함께 역할극, 음악, 요가, 한문, 교양강의, 등산 등의 대안수업을 받는다.
대안학급의 성과를 묻자 교사들은 스크랩북을 하나 내놓았다.1단계 대안학급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쓴 편지였다. 학생들은 마지막 날 촛불을 켜놓고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간간이 눈물자국이 번져 있는 편지들에는 “또 이렇게 돼버렸어. 그래도 나 믿어줄 거지?우리 가족 아니면 나 믿어줄 사람 누가 있다고….”,“스스로도 한심한 저를 항상 감싸주시는 부모님, 이젠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라는 학생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감동의 1단계’를 끝마친 뒤에도 또다시 적발된 학생들에게는 산행이라는 2단계 ‘하드 트레이닝’이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처음 암벽등반을 시키고, 길도 나지 않은 곳으로 내모는 교사들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등반이 끝날 무렵 “지금 너희들은 잘못난 길로 걷고 있는데 힘들지 않니? 지금부터는 함께 바른 길로 가보지 않을래?”라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산행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교사들의 열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탈행위의 시작인 흡연을 막기 위해 300만원을 들여 일산화탄소 측정기와 소변검사기를 마련했고, 틈만 나면 학교를 구석구석 순찰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해마다 10차례씩 열리던 1단계 대안학급이 올해는 아직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6월까지 대안학급을 거친 학생 150명 가운데 문제행동을 되풀이한 학생은 5%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부 전완근 부장교사는 “흔히 공고는 문제학교라고들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로 시작할 기회와 계기가 필요했던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선진국 사례
학교폭력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은 나라들은 가해 학생을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학교, 경찰, 법원, 지역기관과 민간단체가 연계해 가해 학생을 지원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다른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일단 가해학생을 출석정지시킨 뒤 ‘스쿨카운셀링’을 받게 한다. 각급 공립학교에 배치된 임상심리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 전공의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게 하는 것으로 1995년 도입됐다. 그 결과 일본 전국 공립학교의 폭력사건은 1997년 2만 3107건에서 1년 만에 2만 8489건으로 23.8% 늘었지만, 스쿨카운셀러가 배치된 학교에서는 1614건에서 1563건으로 3.2%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는 가해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학교 폭력의 비인간성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미주리주는 친구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한 학생은 의무적으로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미국의 가장 보편적 분노·행동관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폭력예방 심화커리큘럼’에서는 가해 학생이 매주 45∼50분짜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토론과 역할극 등으로 이뤄진 이 프로그램에서 가해 학생은 감정이입, 충동통제, 분노조절 등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독일의 가해자 지원 프로그램 역시 가해 학생의 폭력성과 공격성을 조절하는 심리 상담에 역점을 두고 있다. 가해학생 지원센터에서는 먼저 가해 학생이 폭력을 휘두르게 된 동기를 찾아 상담을 시작한다. 이후 비폭력적인 감정의 특징을 비교 체험하게 해 가해 학생이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문제학생 선도 앞장 日 미즈타니 교사
“한국에는 학교폭력에 책임지는 어른은 없습니까.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나요.”
28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미즈타니 오사무(49)는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듯한 한국의 분위기가 아쉽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야간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며 14년 동안 일본 요코하마의 밤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온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일진회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런 단체가 왜 생겼고,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에 대한 분석은 아무 데도 없더라.”면서 “태어날 때부터 남을 때리고,‘왕따’시키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의 저자인 그는 29일 신문로 서울교원연합회관에서 열리는 ‘한·일청소년 보호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한국에 왔다.
미즈타니는 “일단 누군가를 믿게 되면 그 아이는 바뀐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미즈타니는 자기 반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자진해서 벌금 1만엔을 내고, 폭력사건이 나면 사표를 내가면서 책임을 졌다. 그는 “처음에는 ‘왜 선생님이 나서느냐.’고 말리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내가 잘못되는 게 무서워 말을 듣더라.”고 설명했다. 요즘 한국이 20년 전 일본을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미즈타니는 “일본에는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부모 등 어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민간단체가 여럿”이라면서 “한국에도 그런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미즈타니는 “일본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이 있는 교사”라고 불린다. 야쿠자에게서 아이를 빼내려다 손가락 하나가 잘렸고, 마약상에게 옆구리를 찔렸지만 여전히 밤만 되면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괴로움을 당하는 청소년들이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면서 “아이들은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 제대로 심고, 정성스레 가꾸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