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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된 「58∼65년 외교문서」 주요내용:4

    ◎군사정권,이승만전대통령 귀국 불허/이전대통령 병세 악화되자 예우 지시 외교문 1960년 4·19혁명으로 12년간의 통치를 마감한 이승만전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다.이전대통령은 망명 기간동안 줄기차게 고국으로의 귀환을 시도했다.그러나 5·16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정부는 국민의 반발을 이유로,끝내 그의 귀국을 거부했다. 정부가 지난 15일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하와이에 망명한 이전대통령측과 박정희정부간의 귀국협상 문서와,이전대통령이 출국할 당시 국내에 두고 갔던 개인재산 반환 협상등과 관련한 문서가 포함돼 있다. 62년 2월27일 주 호놀룰루총영사는 외무부에 전문을 보내 『이박사의 부인과 양자 이인수씨,측근인 최병엽씨가 총영사관을 방문,이박사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조기 귀국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외무부의 지시를 청했다. 이에 대해 최덕신외무부장관은 3월9일 회신전문을 통해 『동정을 갖는 바이나 이박사의 귀국문제는 정부에서 찬성할 시기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고 귀국불가 입장을 밝혔다.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도 3월17일 『AP보도에 따르면,이승만박사가 귀국에 앞서 사과문을 발표하였는데,사과문을 발표하였건 아니하였건 정부의 허가가 없는 한 귀국하여서는 안된다』고 총영사에 지시했다. 이박사의 귀국이 무산된뒤 정부와 이박사측간에 재산반환 협상이 진행됐다. 최외무장관은 64년 2월11일 호놀룰루 총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청와대가 보관중인 이박사의 사유재산을 인계하고자 하니,이박사에게 연락해 인수 법정 대리인을 지명하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프란체스카 여사는 64년 10월16일 박정희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정부에서 첨부한 사유재산 목록은 온전한 것이 아니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청와대와 프란체스카 여사간에는 재산목록의 정확성을 두고 이견을 보인 것이다.이에 따라 이후락청와대비서실장은 65년 7월9일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 『재산목록에 대한 지적에 대해 각하가 충분히 이해하면서 사유재산은 개인에게 귀속되는 방향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65년 들어 이전대통령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한국 정부는 서둘러 그에 대한 정치활동 규제를 해제하고,하와이 총영사관을 통해 이박사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긴급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락청와대비서설장은 2월3일 프란체스카 여사에 편지를 보내 『지난해 10월18일자 편지에서 이박사의 묘소부지에 대해 문의한데 대해 대통령 각하는 호의적으로 생각하며 이박사가 서거할 경우 이박사 스스로 선정한 묘소부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통지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또 6월21일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이전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활동 금지 해제를 전했다. 이승만전대통령은 65년 7월19일 마우라나니 정양원에서 사망했다.청와대는 20일 호놀룰루총영사에게 이전대통령의 빈소에 박정희 개인 명의의 화환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또 정부는 이날 주미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장례는 국민장으로 진행키로 각의에서 승인됐음.유족 및 재미교포측에서는 국장으로 하지 않는 점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도 있으나 정부로서는 국민장으로 최대한 경의를 표할 것임을 주지시키기 바람.묘지는 국군묘지로 결정함.장례위원회 구성 및 제반 준비절차 진행중임.서울에서 장례절차를 협의할 유가족측 상대가 없는 관계로 장례식 일정을 결정할 수 없음.현지 사정으로는 24일 유해가 서울에 도착하는 것이 좋으나 도착일자에 따라 7일장 내지 9일장이 시행될 것임』이라고 알렸다.
  • “일,대북 수교회담 재개 희망”/엔도 KEDO대사

    ◎러 북방4도 반환 협상도 【호놀룰루 AP 연합】 일본은 냉전으로 갈라진 동북아시아 국가간의 통합을 진전시키기 위해 북한과 국교정상화 회담을,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 반환협상을 조속히 재개할 태세가 돼 있다고 일본의 한 외교관이 19일 밝혔다. 엔도 데쓰야(원등철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일본측 경수로담당대사는 하와이 호놀룰루 동서센터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포럼 제6차 연차회의에 참석한 동북아 정책담당자들에 대한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은 동북아 모든 국가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빠진 고리들』이라고 말했다.
  • 미,대북식량 제공 긍정검토/24일 한·미·일회의서 공식제기 방침

    【워싱턴=나윤도특파원】 미국정부는 유엔기구등의 평가를 토대로 할 때 북한의 식량난이 매우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북한의 식량난을 인도적 차원에서 방치하기 어렵고 ▲이를 방치하면 한반도의 평화에 저해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정리했으며 24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한·미·일 고위실무회의에서 대북 식량제공 문제를 공식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 아세안 역내외 군사교류 확대/중국 남진정책 견제… 합훈 늘려

    【도쿄 연합】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이 최근 군비 근대화와 병행해 주변 서방국가들과의 군사교류 및 회원국간 합동군사훈련을 잇따라 강화함으로써 탈냉전시대의 아시아 안보 향방을 가늠할 새 조류로 주목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남사군도 문제로 중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필리핀이 지난 3일 영국과 합동군사훈련 실시,방위정보 교환·군사대표단의 필리핀 방문 등을 골자로 하는 방위협정에 서명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인도네시아와 호주가 안전보장유지협정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또 「군사시설 이용 증대에 관한 각서」에 따라 미 공군과 해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싱가포르는 앞서 지난해 11월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미 태평양군과 정례협의회를 개최,새로운 형태의 군사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다. 필리핀과 영국의 군사협력은 필리핀 입장에서는 중국의 남진을 견제하는 의미를,영국으로서는 홍콩반환 이후에도 아시아 안보에 계속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중국에 시사하는 의미를 각각 갖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 포로들인가 월북자인가/추가확인 촉구 잇달아 새 쟁점으로

    ◎「북 생존」 미군의 실체는/펜타곤 “60년대 넘어간 주한미군 4명”­월북자설/54년 송환대상서 빠진 실종자 가능성­6·25포로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북한내 생존가능성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최근 한국언론에 수명의 미국인들이 출연한 80년대초에 제작된 북한 선전영화 「이름없는 영웅」의 한 컷이 소개되면서 미군전쟁포로의 생존가능성이 제기되자 미국내 일각에서는 지난주 하와이에서 열렸던 미·북한 유해송환협상에 빗대어 정부당국에 생존자 파악 및 송환노력을 촉구하고 나서는등 새로운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방부는 16일 현재 북한에 생존중인 미군은 4명으로 모두 60년대 주한미군에 근무하다 월북한 병사들이라며 그들의 인적사항을 밝혔다.또 79년과 82년에도 각각 1명씩 월북했으나 그들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그리고 그밖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첩보는 확인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으며 영화속 인물도 이들 4명중 하나라고 밝혔다. 80년대 후반부터 미군포로 11명의 생존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한번도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던 미국방부가 이날 대변인을 통해 그동안 파악하고 있던 내용들을 공식 발표한 것은 근거없는 과장된 소문의 확산을 막고 한편으로는 최근 북한측과 유해송환협상으로 마련된 미·북한 직접접촉의 창구를 활용,8천1백명의 실종미군에 대한 실태파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볼수 있다. 케네드 베이컨 대변인은 『미국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동결시킨 것과 같이 생존자문제에 관해서도 북한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할수 있도록 대화 개시를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앞으로 생존자문제에 대한 양측의 대화 전개를 시사했다.또한 생존자들에 대한 미국시민권 회복문제에 대해서도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범위내에서 고려할 수도 있음을 밝혔다. 이와관련,가장 큰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는 실종미군송환추진가족연맹으로 이 문제가 대두되자 16일 성명을 내고 미정부기관의 관련정보 공개와 적극적인 실태파악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당국은 현재 북한내에서 영어교관등으로 활동하며 생존해 있는 미군포로들은 ▲한국전쟁포로 ▲월북주한미군 ▲베트남전 포로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공식적으로는 한국전쟁포로로 54년 본국송환을 거부하고 북한 잔류를 선택한 미군은 21명이나 그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돼있다.그러나 실종자 가운데 아직도 생존해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 탈영미군 4명 북 생존/미 국방부/포로 생존설관련 협상 희망

    【워싱턴=나윤도특파원】 미국방부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북한내 미군전쟁포로 생존가능성과 관련,이 문제의 실태파악 및 처리를 위한 북한과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네드 베이컨 미국방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생존자문제에 관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지속적인 대화를 개시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하와이 유해송환협상이 결렬되긴 했지만 그같은 대화들이 「미결」로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유해송환협상에 생존자문제협상도 포함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베이컨 대변인은 또 『한국전 당시 미군포로의 생존여부를 전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언론의 미군포로들의 북한내 생존보도에 대해 아무 증거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방부가 현재 파악하고 있는 월북 탈주병은 모두 6명으로 60년대 월북한 래리 앱슈어일병,제임스 드레스녹일병,제리 패리시상병,로버트 젠킨스하사등 4명이 생존해 있으며 79년과 82년에 월북한 미군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북·미 미군유해 송환협상 결렬/미국방부 “북서 정치공세 일관”

    【워싱턴=나윤도특파원】 미국방부는 미국과 북한간에 벌여온 한국전 사망 미군유해송환 문제에 관한 하와이 실무협상이 결렬됐다고 15일 새벽(한국시간)밝혔다. 미국방부는 이날 성명에서 『양측간에 지난 3일간 인도적 차원의 유해송환문제에 관해 협의했으나 그동안 상황 진전을 가로 막아온 주요 장애의 어느 하나도 풀지못했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북·미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지난 93∼94년 미국측에 반환된 유해 1백62구와 관련한 보상문제 ▲추가적 유해확인을 위한 협조방안 ▲유해감식기술 오리엔테이션 등을 구체적으로 다뤘으나 미국측은 유해공동조사단 구성 등 유해송환과 관련된 실무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반면,북한측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등 정치적 문제에 중점을 둠으로써 양측이 이견을 좁힐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 정일권 회고록/정일권 지음(화제의 책)

    ◎북간도서의 어린시절·정치생활 등 담아 제3공화국에서 국회의장,국무총리,공화당의장 등을 오래 지낸 고 청사정일권의 회고록.1917년 연해주 니콜스크(지금의 우스리스크)에서 출생해 87년 한국자유총연맹을 발족시키기까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담한 어조로 회고했다. 모두 4부로 구성됐으며 1부에서는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뒤 공산당에 쫓겨 가족이 함북 경원,북간도 용정으로 흘러다니며 고생한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2부는 만주군에 입대해 군사학을 배우며 조국광복을 꿈꾸던 시절,3부는 한국군 창설과 함께 최고 군지휘관으로서 국방을 떠맡던 시절,4부는 정계진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는 이 책에서 국군에 몸담고 있을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고 밝혔다.따라서 한국전 때 삼군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지휘한 일,그뒤 미국을 상대로 한국군 전력증강책을 마련한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은 간략하게 서술했다. 정일권은 암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 90년 하와이로 떠나 이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 94년 1월 타계했다.별책부록으로 「청사 정일권 기념사업회」가 엮은 「청사 정일권을 기리며」가 함께 나왔다.고려서적 1만2천원.
  • 북 정치문제 거론에 미서 등돌려/하와이「유해송환 협상」결렬 안팎

    ◎북 초반부터 평화협정체결 등 주장/미 “의제아니다… 실무만 논의” 맞서 북·미간 한국전 당시 실종및 사망한 미군병사들의 유해송환문제 협의를 위해 하와이 힉캄공군기지에서 사흘간 열렸던 실무협상이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 양국간 군사분야에서의 새로운 협력 가능성의 기대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이번 회담은 북·미 양측이 미군유해송환과 관련한 첫 직접접촉으로 지난해 핵합의에 이어 양측간의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등 북·미 화해 움직임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막상 회담에 들어가자 미국측은 유해송환문제에 국한된 기술적 문제들을 다루는 실무협상을 강조한데 반해 북한측은 공식의제에도 없는 포괄적인 양측의 군사문제를 거론하는 등 정치적 의미에 비중을 두는 태도로 맞서 회담 자체가 아무런 진전을 거둘 수 없자 미국측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이다. 당초 제임스 월드 미국방부 전쟁포로및 실종미군담당 부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미국측대표들은 북한대표단에 미군중앙신원감식소(CILHI)의 유해감식기술과 관련 절차를 소개하고 또 유해공동조사단을 구성,오는 6월 이전에 두차례 북한방문조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측은 회담 초반부터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정치적 문제를 들고 나왔으며 유해공동조사 보다는 유해에 대한 보상액 인상문제 등을 제기해 미국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은 지난 90∼94년까지 북한이 미국측에 인도한 유해 2백8구중 단 5명만이 미군으로 밝혀질 정도로 그동안 북한측이 인도해온 유해들의 신뢰도가 낮은데 따른 것으로 미국방부는 93년 이후 양측간 유해발굴체계의 표준화에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해송환을 중지해 줄 것을 북한측에 요청해 놓고 있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미국측이 유해송환 대가로 2백만달러로 추가지급 용의를 제의,공동조사단 활동에 대한 북한측의 동의를 얻어냈으나 미국측이 북한의 구두약속 불이행 전례를 들어 이의 명문화를 강력히 요청하자 결국 북한이 막판에 『못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전했다.
  • 미군유해의 값(외언내언)

    한국전당시 실종된 미군유해송환을 위한 북한과 미국간 협상이 15일 결렬됐다.지난11일부터 하와이에서열렸던 이번 협상은 미국의 영토에선 최초의 북­미간 군사접촉이란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았지만 회담 4일만에 아무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미측이 설명하는 결렬이유는 ▲지난 93∼94년 미측에 반환된 유해 1백62구의 보상문제 ▲추가 유해확인을 위한 양국 공동발굴팀 구성문제등에서 양측은 그 어느것을 푸는데도 실패했다는 것.확인된 것은 아니나 북한측은 1백62구의 유해송환비로 3백50만달러(한화 약27억원)를 요구한 반면 미국측은 26만달러(한화 약 2억2백80만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측이 요구한 유해1구의 송환비가 2만1천6백달러인데 비해 미국측이 계산하고 있는 보상비는 1천6백달러로 엄청난 차이. 유엔군 유해는 한국전 직후인 54년 4천1백67구가 북한에서 송환된 이래 중단됐다가 87년부터 시작된 북­미간송환협상이 결실을 보아 90년부터 95년 현재 추가로 돌아온 미군유해가 모두 2백9구.유엔사측은 아직도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있는 유해가 2천2백33구(미군 3백89명 포함)나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만약에 북한측 주장대로라면 북한측이 받아내야할 「유해값」이 4천8백만달러를 넘어선다. 문제는 또 있다.송환된 유해가 정확한가 하는 문제.미국측의 주장으로는 90년이후 북한이 미국에 송환한 미군유해 2백9구 가운데 당시 실종된 미군의 유해로 확인된 것은 4∼5구에 불과하다.심지어는 동물뼈도 섞여있었다는 것. 미측이 북한대표단을 하와이로 불러들인 것은 하와이에 있는 미육군중앙신원확인연구소(USACIL)를 북한측대표단에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었다.미측의 과학적 감식방법을 북한측에 보여줘 앞으로라도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자는 것.아무리 비정한 전쟁의 세계에서도 유해와 포로송환은 인도적 차원서 임하는게 도리이며 이미 국제관행으로 정착되어 있다. 북한이 「유해장사」를 하려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지않게 되길 바란다.
  • 외교부 국제국장 김병홍(북의 사람)

    ◎유엔주재 참사관 역임한 대미통/미군유해 송환협상 북대표 맡아 한국전 참전 미군유해송환 북·미협상 북한측 대표단장으로 하와이를 방문한 김병홍(60)외교부 국제국장은 군축및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는 대미통. 평북 벽동산인 김은 65년 외교관 양성기관인 평양국제대학 영어과를 졸업한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74년부터 85년까지 참사관으로 10년 넘게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했다. 외교부 조국통일국장 역임설도 있는데 조국통일국은 통일방안수립및 판문점 정전위를 관장하는 부서로 알려졌다.김은 지난 89년 이후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일본 4차례,미국을 2차례 방문한 바 있으며 94년 8월 판문점 군사정전위 중국측대표단 철수를 공식요청하기 위해 특사로 파견된 당시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을 수행,중국도 방문했었다.김은 또 지난 92년 북한이 미군유해 30구를 넘겨준 직후 미국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북한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해 오래전부터 그가 미군유해송환문제에 관여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 인터넷 광고/이중한논설위원(외언내언)

    학술정보DB로 시작한 인터넷은 어느샌가 세계최대 통신망이 되었을뿐 아니라 놀랄만한 「전자비즈니스시대」를 만들고 있다.인터넷은 현재 세계최대의 홈쇼핑채널이고 가장 효과가 높으면서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광고를 해주는 광고매체로 변하고 있다. 타임워너그룹이 운영하는 인터넷 전자잡지 「핫와이어드」는 건당 하루 2백달러,월 3만달러의 광고료를 받아 이 것만으로도 지난해부터 흑자경영에 들어섰다.광고주들이 광고효과를 확인했다는 반증이다.그래서 또 광고회사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후발주자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인포식」은 접속건당 10센트씩 받는다는 조건으로 광고화면을 만들었다.지난해부터는 하루 1만명씩 인터넷가입자가 늘고 있고 광고접속자 역시 기하급수로 확대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아예 인터넷에 가게를 차리는 사람들도 있다.하와이 커피판매상 보브와 아만다는 「하와이 최고의 에스프레소 회사」라는 가상점포를 인터넷에 개설한뒤 원가게는 문을 닫았다.모든 주문과 거래를 인터넷상에서 하고 대금은 신용카드회사에서 자동결제하는데 인터넷 점포가 옛점포보다 매상을 더 많이 올릴뿐 아니라 근무시간도 4시간으로 줄여줬다고 즐거워한다. 이 새로운 인터넷광고시장에 올해 우리 상품도 나설 모양이다.통상산업부는 무역협회와 미 홍보회사 에델만사간의 계약으로 「무역협회 핫라인」을 개설,한국상품안내를 하고 「글로벌 뉴스국」도 별도개설해 경제·통상·과학기술등 홍보자료를 올 봄부터 세계에 배포하겠다고 한다. 빠른 것은 아니지만 아주 늦지는 않게 변화를 쫓아가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인터넷시장에서 제품을 알리는 데는 더 질적으로 기민해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하루쯤 늦은 정보도 인터넷에선 효력없는 정보이고 한달이나 지나서 배달이 된다면 게임이 안되는 판매이고 여기에 또 애프터서비스체제가 유야무야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많은 홍보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인터넷은 특별한게 아니고 단지 전달력의 질적 시간경쟁일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미­북 유해협상 시작/공동조사단 구성 등 중점협의

    【워싱턴=나윤도특파원】 한국전쟁 참전 미군유해송환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북·미 미군유해송환회담이 11일 상오(현지시간) 하와이 히캄공군기지에서 미국방부 POW/MIA(전쟁포로및 실종미군)담당팀과 북한 유해협상대표단 사이에 개최됐다. 이날 제임스 월드 POW/MIA담당 부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대표단과 김병홍 북한 외교부 국제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대표단은 상견례를 겸한 첫 회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미국측은 북한측에 한국전쟁 참전 미군유해를 송환받기 위해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은 미군유해송환과 관련된 양국간의 첫 직접접촉으로 13일까지 계속되며 유해감식과 관련된 전문적 기술협의 및 유해공동조사단 구성문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 긴장완화 노력해야 쌀포함 경제지원 가능”

    ◎샘년 미의원 난한회견 미국 상원 국방위원회의 민주당측 간사인 샘 넌 의원은 12일 『북한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전제될 경우에만 쌀지원문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경제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넌 의원은 이날 상오 한국방문을 마치고 귀국에 앞서 김포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오는 24일부터 하와이에서 열리는 한·미·일 고위정책협의에서는 북한의 식량문제는 물론 북한이 고립정책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참여할 경우에 대비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계획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넌 의원은 『북한의 식량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쌀을 제공하는등의 단기적인 경제지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북 유해협상대표 7명 하와이 도착

    【워싱턴=나윤도특파원】 김병흥 북한 외교부 국제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유해협상대표단이 미·북한 유해협상에 참석키 위해 10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날 도착한 북한대표단은 김단장 외에 외교부 관리 3명을 비롯해 판문점 군관계자 2명 및 사회과학연구소 인사 1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외교문서 2백51건 15일 공개/50년대말∼65년

    ◎한·일 수교 관련문서는 제외 지난 65년 일본과 북한간의 북송협정과 재일한국인 북한송환 관련문서등 50년대말부터 65년까지의 외교문서 2백51건이 오는 15일 일반에게 공개된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10일 『지난해말 외교문서 공개심사위원회를 통해 공개를 결정한,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의 마이크로 필름화 작업이 완료됐다』고 밝히고 『그러나 한일수교 관련 문서는 일본측과의 공개대상 문서 협의가 끝나지 않아 공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에는 지난 56년 11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이승만대통령에게 보낸 서한,하와이에 망명한 이승만박사의 귀국 시도와 사망(62∼65),박정희대통령의 미국방문(65·5·16) 관련문서들이 포함돼 있다.
  • 정부,극비 첩보 입수/일부 대외공작 교관요원 활약

    ◎“「6·25」 미군프로 11명 북에 생존”/미,작년 평양에 송환의사 타진설/「유해송환협상」 막후 의제 채택여부 관심 한국전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됐던 미국인 11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생존 미군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본국송환문제는 지난 94년 북­미 제네바 핵협상 타결 이후 진전 기미를 보이고 있는 북­미 관계정상화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0일 『6·25에 참전했던 미군중 11명이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이같은 극비 정보는 미 행정부 소식통으로부터 입수됐으며 이들의 인적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생존 미국인들은 대부분 북한여성과 결혼해 살고있고 이들중 2명은 영화배우로,나머지 대부분이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다만 이들중 일부는 북한당국에 의해 대미 접근 및 대남 우회침투 공작 기관의 교관요원으로 일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측은 지난해 방북했던 미 국회의원과 한 종교인사를 통해 비밀리에 이들의 송환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포로수용소 생활중 북한당국의 교묘한 회유와 세뇌 및 이간공작에 의해 포로 송환교섭중 형식상으로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기로 한 것 같다』면서 『이로 인해 미국측도 송환교섭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약 5만4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중 2천여명이 실종자로 기록되어 있으며,미국측은 지난 88년말부터 실종 미군 유해송환을 위해 북한측과 비공개 협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베트남과의 관계개선을 미군 생존포로와 사망자 유해송환 문제에서부터 풀어간 전례를 간파,유해송환 교섭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앞당기기 위한 협상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북­미 양측은 10일부터 미 하와이에서 미군유해 감식기술 지원관련 접촉을 갖고 있어 이 자리에서 이들 북한내 생존 미군 송환문제가 막후 의제로 다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미 대북정책 선후혼동 없어야(사설)

    미국의 대북한태도가 다소 이상하다.식량난을 과장하는가 하면 대량난민사태와 도발가능성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경향을 보인다.군장성초청 및 북·미관계개선합의설등 한·미·일 대북정책공조약속을 외면,일방적인 대북접근을 서두르는 인상도 준다.경계해야 할 상황전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관계의 기본바탕은 제네바합의의 이행에 있다.북핵개발포기와 미국 경수로제공 및 관계개선약속이 기본내용이며 한국의 경수로비용부담과 남북한관계개선 병행을 전제로 한 것이다.따라서 미·일의 대북관계는 남북한관계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한·미·일의 대북공조약속이며 그것을 전제로 우리는 경수로제공등의 약속이행에 협력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핵개발중단약속은 대체로 이행하고 있으나 남북관계개선약속은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과의 확고한 공조체제등으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북한변화유도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남북대화의 재개와 실질적 남북한관계개선을 위한 보다 강력하고 적극적인 북한설득노력을 해야 한다.식량난·붕괴위험·대량난민사태·군사도발위험등의 과장과 연락사무소설치등 대북관계개선 가속움직임등은 한마디로 우리에 대한 위협이요 압력이다. 대통령선거철을 맞고 있는 미국의 클린턴정부는 갑작스러운 북한붕괴 또는 대량난민사태등으로 인한 북핵문제 해결업적의 훼손이나 새로운 선거악재의 발생등을 원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때문에 만약 미국이 「선미·북관계개선과 후남북한대화모색」으로의 방향전환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미 어느쪽의 국익에도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24일 하와이 한·미·일전략회의는 물론 레이크 미대통령 안보보좌관의 13일 방한도 그런 정지작업에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우리는 미국이 일시적 필요에 따라 대북정책원칙의 선후를 혼돈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북한이 원하는 것은 한·미·일이간과 한국배제,고립 및 미·일과의 관계개선뿐이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송종익선생/재미 흥사단 이끌며 임정 적극 후원

    ◎40여년간 항일운동·광복군 지원 활동/통합 독립단체 「한족연합위」 결성 앞장 국가보훈처는 7일 흥사단 창립 발기위원을 역임하고 북미 「대한인 국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우강 송종우선생을 서거 40주기를 맞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1887년 2월 대구에서 태어났다.1904년 4월 미국으로 유학간 뒤 재미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40여년간의 항일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1908년 3월 전명운의사 등이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이들의 석방을 위한 재판후원회의 재무로서 재판경비 조달에 힘썼다.1912년 도산 안창호선생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흥사단 약법」의 초안을 보여줬다.이같은 만남이 인연이 돼 선생은 흥사단의 첫 동지가 되어 일생을 흥사단 운동에 바치게 된다. 이듬해인 1913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 창립총회가 열렸다.흥사단의 사자는 문사와 무사를 모두 일컫는 말로 진정한 애국자를 일으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흥사단은 창단 이후 8년동안 창단위원회에서 운영했으며 3부 역원제가 실시된 1921년부터 선생은 5년간 이사부장을 맡았다. 1926년부터 36년까지는 이사부 재무원으로 도산이 없을 때에는 실질적으로 흥사단을 이끌었다. 1919년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흥사단의 창립자인 도산이 노동협판 등 정부요인으로 활동하게 되자 흥사단 미주본부의 사무는 선생이 도맡게 됐다.선생은 흥사단 활동은 물론 개인적으로는 도산의 가족까지도 보살피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중국지역 독립운동 세력의 지원을 위해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세웠으나 벼농사의 실패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선생은 미주 「대한인 국민회」의 재무로서 임시정부 건설의 경비조달에도 참여했다.대한인 국민회 북미지방총회는 1922년 1월 대의회의 결의로 지방총회를 폐지한 뒤 미주·멕시코·쿠바에 있던 지방회들만으로 국민회를 재편성하고 북미 대한인 국민회로 이름을 바꿨다. 그 뒤 일제가 만주사변을 도발하는 등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자 1936년 5월 국민회는 미주 각 지역의 대표자들을 소집,항일역량의 결집을 시도했다.선생도 여기에 참여해 항일독립운동의후원에 힘을 쏟았다.선생은 총회관 건축위원에 선임되어 국민회의 중흥에 노력하는 한편 임시정부를 비롯한 중국지역 항일세력의 지원을 계속했다. 국민회는 특히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광복 때까지 외교사업과 국방후원 및 동포들의 전시안녕 보장을 주도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편성도 도왔다. 1941년 4월 하와이 국민회 및 동지회와 북미 국민회 등은 하와이 국민총회관에서 「대한민족이 대동단결해 독립전선에 역량을 집중하고 광복대업을 촉성할 것」을 목적으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했다.이 회의는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등 세계정세의 변화에 호응하고 종래 분산적으로 전개되던 독립운동 및 지원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주지역 운동단체들의 통합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됐고 이 위원회는 로스앤젤레스에 집행부,호놀룰루에는 의사부를 두어 1943년 봄까지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에 보내 광복사업비에 충당케 했다. 선생은 미주대표로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재무에 선임돼 이같은 활동에 앞장섰다. 1943년 이승만이 이끄는 동지회가 연합위에서 탈퇴하자 연합위는 워싱턴에 별도로 외교사무소를 설치했다.이 때문에 동지회의 외교사무소와 나란히 활동함으로써 외교활동에 지장이 생겼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는 외교기관을 단일화하기 위해 1944년 8월 주미외교위원부를 폐지하는 대신 주미외무위원회를 설치키로 결정,위원회 인선을 재미한인사회에 일임했다.동지회를 제외한 13개 단체 대표들은 로스앤젤레스에 모여 15명의 위원을 선출했는데 선생도 위원에 선임됐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이 회의에 동지회가 불참했다는 이유로 이 인선을 인준하지 않았다. 선생은 광복후인 1945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조국재건과 흥사단 부흥에 힘쓰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지원과 흥사단 정신의 발양에 헌신하다 1956년 1월7일 별세했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남북한과 관계개선 올 최우선 과제/일 외무부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외무성은 남·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올해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고 외무성 관리들이 6일 밝혔다. 관리들은 외무성이 한일 양국간에 이미 합의한 「학계의 합동역사연구」가 이달중 착수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아울러 이 모임에서 대북 관계증진방안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한반도 식민지배문제에 관한 각료들의 망언이 잇따르면서 양국관계가 경색되자 합동역사연구계획을 제안한 바 있다. 관리들은 또 오는 24·25일 하와이에서 열릴 한·미·일 3국간 차관급회담에서 일본과 한국이 대북정책을 조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외무성 관리들은 하와이회담에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등 인도적 원조 확대가능성을 타진할 예정이며 이러한 원조가 지난 92년 11월 이래로 중단된 일·북한간 국교수립협상의 재개로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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