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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교포 위협,돈 강탈/3백만원 뺏은 중국교포 영장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3일 중국교포인 송성학씨(33·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도리고 대안가 43)를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송씨는 지난 12일 상오3시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785 H여인숙에 같은 중국교포인 우충구씨(26·중국 내몽고 우란토토시 영월로 242)와 함께 들어가 포커놀이를 하다 갑자기 흉기를 들이대고 『반항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현금 6만원을 빼앗은 뒤 가방속에 있던 3백70만원이 입금된 국민은행저금통장을 빼앗아 우씨를 국민은행 퇴계로지점으로 끌고가 3백50만원을 인출케 한뒤 이 가운데 3백10만원을 빼앗은 혐의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삼강평원/한·중,개발협정 서명

    ◎15년간 농지 3억평 조성… 콩·밀 재배 앞으로 15년간 3억평 규모의 농경지를 개발하게될 한중합작의 삼강평원 개발사업이 본격착수된다. 1일 대륙종합개발(회장 장덕진)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흑룡강성 농업개발건설총공사와 만주 삼강평원농업개발회사의 설립을 위한 합작계약에 공식 서명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삼강평원의 10만㏊(3억평)를 앞으로 15년에 걸쳐 개발,연간 콩 22만5천t,밀 42만t을 생산해 이 가운데 50%를 우리나라 또는 제3국에 수출키로 했다.
  • 한·중,「삼강평원」 공동개발/양국 합의… 31일 협정체결

    【북경 연합】 한국과 중국은 중국 흑용강성 동북부의 광활한 삼강평원의 자원 및 농업을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합의,오는 31일 흑용강성 하얼삔에서 이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다고 북경주재 한국대표부의 노재원대사가 28일 밝혔다. 노대사는 이날 북경주재 한국대표부(중국측 정식명칭 주북경한국무역진흥공사대표부) 설립 1주년을 기해 한국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흑용강성 당국과 한국대륙연구소의 장덕진 회장간에 오는 31일 하얼빈에서 정식으로 조인되는 이 공동개발계획을 위해 한중 양국은 50대50의 자본투자로 자본금 2천만원(4백만달러)의 합작회사를 설립하며 장회장이 이 회사의 동사장(사장)직을 맡아 한국측이 회사의 경영권을 갖게 된다.
  • 가짜 초청서류 작성/교포 불법입국 알선/폭리 중국교포 영장

    서울남대문경찰서는 26일 중국교포 박대산씨(28·무직·중국흑룡강성 하얼빈시 향방구 행복로 67호)를 여권법 위반및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장정자씨(48·회사원·서울 종로구 동숭동 시민아파트 10동 208)등 7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박씨는 1호선 전철 서울역 지하도에서 한약행상을 하면서 알게된 장씨 등에게 한국에 친인척이 없는 중국교포들의 초청인이 돼주는 대가로 공증서류 1장에 5천∼1만원을 주고 3백40장을 작성,이 가운데 22장을 1장에 6만원씩 받고 중국교포에게 넘겨 불법입국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외언내언

    『나는 오래 전에 이 책을 써 놓고도 가슴을 짓누르는 괴로움을 느끼면서 여러해 동안 출판을 망설여 왔다.(중략)그러나 KGB가 이 책을 압수해 버린 지금 나는 서둘러 이 책을 출판하는 길밖에 없게 되었다』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은 하나도 없으며 등장인물이나 땅이름이 모두 실제의 것이라고 밝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의 맨 앞에 박혀있는 글이다.그 KGB나 공산당에게는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던 솔제니친.그래서 그는 74년 국외추방 당하고 76년부터 미국 버먼트주에서 살아온다.그는 재작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러시아 혁명사를 다룬 장편 「붉은 수레바퀴」가 출판될 때까진 귀국하지 않겠다』 ◆역사란 아이로니컬하면서도 무섭다.솔제니친을 쫓아냈던 KGB하며 공산당의 간부들이 이번에는 저희들 스스로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잖은가.외신은 그것도 「수천명」이라고 전한다.거리로 보나 사상으로 보나 가까운 중국이 갈곳.1917년의 혁명 후에는 농노를 압박했던 부르주아들이 하얼빈 등지로 망명했었다.그런데 이젠 거꾸로 그 혁명의 후예들이 망명한다. ◆더러는 우리 북녘땅으로 망명하는 무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정작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부터.결코 낙관할 수 없는 경제가 무너질 때는 일반국민들의 엑서더스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유럽 각국이 이미 우려를 표명한 대목이기도 하다.혁명후인 1921∼22년 사이 1천만명 가까운 국민이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간 사실도 있지 아니한가. ◆『손이 손을 씻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왼손 오른손이 서로 씻어서 서로 깨꿋해진다는 뜻. 협력의 미덕을 가르친다. 고르바초프,옐친,그밖의 지도자들이 곱새겨야 할 속담 아닐지.
  • 소아마비 수술 중국교포/진료비 마련 못해 애태워(조약돌)

    ○…중국교포학생이 고국의 뛰어난 의료기술로 소아마비수술을 받았으나 치료비를 대지 못해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남강구에 있는 조선고중 2학년 박홍영양(18)은 중국에서 이름있는 병원들을 모두 찾아다녔으나 그곳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게되자 수소문끝에 지난 5월24일 철도국 공무원인 어머니 유삼현씨(52)와 함께 고국을 찾아 서울대병원 3334호 병실에 입원했다. 박양의 수술비는 1천만원이 넘지만 2백만원밖에 없다는 딱한 소식을 들은 병원측의 배려로 일단 정형외과 연구비로 모자라는 수술비를 충당,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박양은 앞으로 한달이상 더 치료를 받아야 완쾌될 수 있으나 앞으로의 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
  • 여권 분실 중국교포 “동동”(조약돌)

    ○…친척을 찾아보러 고국을 방문한 중국교포 김영옥씨(33·여·흑룡강성 하얼빈시)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쇼핑상가에서 여권과 입국허가서등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어떻게든 여권만이라도 찾을 수 없겠느냐고 호소. 29일 서울신문사를 찾아 이같이 호소한 김씨는 원래 지난 26일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여권을 분실해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여권을 분실하면 평생 두번다시 중국당국으로부터 고국방문허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 김씨는 여권을 서초경찰서 민원실로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 호텔 함께 투숙/일인 금품 훔쳐/20대 중국교포 구속

    서울경찰청 특수대는 25일 중국교포 남해옥씨(24·여·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도외구 인력가 24)를 절도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남씨는 지난 22일 상오7시30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리버사이드호텔 1418호실에 일본인 세이코 사와씨(49)와 투숙한뒤 세이코씨가 잠시 방을 비우자 양복 안주머니에서 일화 1백80만엔등 모두 2백10만엔(한화 1천92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안중근의사 며느리 정옥녀씨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며느리 정옥녀여사가 13일 상오 4시50분 서울 강동구 둔촌동 한국보훈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향년 84세. 유족인 맏아들(안의사의 장손) 웅호씨(58)와 맏딸 선호씨(61),둘째딸 연호씨(54)는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발인 일시와 장소는 15일 상오 8시 한국보훈병원 영안실,장지는 경기도 포천군 혜화동 천주교묘지다.
  • 한국전에 소 지상군도 투입/전 북한 외교부부부장 첫 확인

    ◎“2개 포병연대 파병,야전병원도 지원” 소련은 한국전 당시 후퇴를 거듭하던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2개 포병연대와 대규모 야전병원을 파병했었다고 북한의 전 고위관리가 13일 밝혔다. 박길용 전 북한 외교부 부부장(71·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원·모스크바 거주)은 북한군이 유엔군과 국군에 밀리기 시작한 50년 10월께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있던 수풍댐 보호를 위해 소련은 압록강 건너편에 1개 포병연대(약 4백명)를 긴급배치한 데 이어 유엔군이 밀리자 청천강다리 근처에 1개 포병연대를 배치했으며 평양근교 산속에 위치한 북한인민군 최고사령부 주위에 또다른 1개 고사포연대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소련군의 포병이 북한에 실전투입된 사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씨는 당시 소련포병이 모두 중국지원군 복장으로 위장했으며 주로 미군기의 폭격에 응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포로가 될 것을 우려,후방에 주둔했었다고 밝혔다. 또한 소련의 미그15공군기들이 신의주에서 압록강 건너편 안동(지금의 단동),장춘,심양 등3곳에서 발진,북한상공에서 미군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는데 역시 중국지원군 복장을 한 이들 소련 조종사는 평양에서 이남으로 넘지 말 것과 비행중 절대 대화하지 말도록 하는 엄중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종사가 포로가 되거나 무심코 러시아어로 교신한 것이 미군에 감청될 경우 소련의 참전이 국제여론화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박씨는 소련 조종사들이 참전초기 많이 희생됐으며 이들의 묘지가 하얼빈과 장춘에 있다고 말했다. 소련은 이밖에 평양 동북방 1백㎞ 지점 양덕부근에 군의관과 간호원 등 1백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야전병원도 설치,운영했는데 한번에 8백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어서 전쟁기간중 북한의 가장 중요한 야전병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련군의 의무지원 외에도 헝가리,폴란드,불가리아 역시 소규모 야전병원을 차렸다. 박씨는 북한이 신의주 쪽으로 밀리게 됐을 때 소련은 미군이 압록강을 건널 것에 대비,5개 기갑사단을 배치했으며 원동과 시베리아 일대의 군에 대해서도 비상동원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 한­소항공협정 체결/시베리아 통과 정기노선 공식개설

    ◎양국 장관 어제 서명 한국과 소련은 29일 외무부에서 양국간 정기항로 및 시베리아 통과노선의 공식개설을 골자로 하는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이상옥 외무장관과 보리스 파뉴코프 소련 민항부 장관이 서명,이 날짜로 발효된 「한국과 소련간의 항공업무를 위한 협정」은 양국의 2개 지정항공사에 대해 상대국 영역에의 취항 등을 포함한 운수권을 상호 부여하고 항공기,부품,연료 등에 대해 상호면세혜택을 주도록 했다. 이 협정은 우리 항공사는 서울·부산·제주를 출발,중국의 북경·상해·하얼빈 등을 경유해 소련의 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기타 1개 지점으로 운항하고,소련 항공사는 모스크바·레닌그라드·하바로프스크를 출발,북경·상해·하얼빈 등을 경유해 서울·부산·제주간을 운항하도록 돼 있다. 이 협정은 또 시베리아 통과노선을 허용,우리 항공사는 소련을 경유하여 유렵내 지점에 취항하며,소련 항공사는 유럽내 지점을 출발하여 서울까지 취항토록 했다.
  • 컴퓨터헤드 생산량 세계 2위/최우수기업상의 「태일정밀」

    ◎83년 창업… 올 매출 2천억 전망/매년 매출의 7∼8% 개발투자 태일정밀의 최우수기업상 수상은 벤처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정강환 사장(46)이 14년간 몸담아온 한일합섬을 떠나 전자업계에 뛰어든 것은 지난 83년 10월. 자본금 6천5백만원을 갖고 회사를 설립한 뒤 한국개발투자 등 국내외 3개 창업투자사의 도움으로 컴퓨터용 헤드·디스크·프린터 생산에 나섰다. 설립 초기부터 재미교포 과학자를 설득,현지에 법인을 세우고 이들에게 기술개발을 맡긴 뒤 반월공단의 공장에서 신제품 개발에 전념했다. 마침내 85년말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알루미늄을 이용한 박막디스크 개발에 성공,비약적인 성장기틀을 마련했다. 86년 22억원에 그친 매출액은 해외 바이어의 주문급증으로 88년 2백억원을 넘어선 뒤 89년 2백92억원,지난해는 6백61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월 10만장의 디스크와 60만개의 헤드를 생산하는 세계 2위의 컴퓨터 헤드 생산업체로 자리잡았다. 올 매출액은 태일전자 등 4개 계열사를 합쳐 2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같은고속성장은 회사설립 후 최단시간내(5년6개월) 기업공개를 한 국내 최초의 기업이란 신화까지 창조해냈다. 특히 창립 이후 매년 매출액의 7∼8%라는 높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한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으며 연구인력만도 전체 종업원 9백명 중 1백30명에 이른다. 반월·진주·춘천공장을 갖고 있는 태일은 올 7월 중국 하얼빈시에 45만달러를 들여 컴퓨터 헤드 생산공장을 세워 가격경쟁력을 갖출 계획이다. 정 사장은 『기존제품 외에 고해상도 모니터·퍼스컴 및 첨단소재분야를 개발해 종합부품전자회사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정상회담 우리측 통역 유학구씨/재소교포로 IMEMO 한국과장

    이번 한소정상회담의 우리측 통역을 맡게 된 재소교포 유학구씨(67)는 지난해말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지난해 3월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모스크바방문 때도 통역을 맡은 소련내에서는 손꼽히는 대한문제 전문가. 유씨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보를 졸업한 뒤 만주의 하얼빈학원 노어과 재학중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일본 패망과 함께 포로가 됐다가 소련에 정착하게 된 기구한 이력을 갖고 있다. 유씨는 소련 정착 이후 대일 방송 및 일본어 번역요원으로 일하다가 지난 74년부터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경제연구소(IMEMO)에서 근무하기 시작,중간에 동방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가 현재는 IMEMO 한국과장으로 재직중이다. 지난 1월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내한,장기체류중이며 현재 구자경 럭키금성 회장이 마련해준 럭키금성빌딩 사옥내 사무실에서 한국관련 자료정리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중국 하얼빈시에 산업용 펌프공장/금성,중국과 합작

    금성사는 8일 중국 하얼빈 창령급수설비창과 합작으로 하얼빈시에 연산 10만대 규모의 산업용 펌프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합작조건은 양측이 50 대 50으로 4백20만달러를 투입,올해말부터 공장을 가동하며 금성사측은 산업용 펌프생산에 필요한 일체의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기술공개료 15만달러와 판매액의 3%에 해당하는 로열티 및 추가모델개발에 대해 2만달러의 모델료를 받게 된다.
  • 한·소 항공협정 체결

    ◎소 영공통과 94년 주 50회로 늘려 한국과 소련 두나라는 14일 하오 우리나라 항공기가 오는 94년부터 매주 50회까지 소련영공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간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지난 11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두나라 항공회담결과 체결된 이 협정은 현재 주 10회로 돼 있는 우리나라 항공기의 소련영공 통과횟수를 올해부터 앞으로 4년동안 해마다 10회씩 늘려 94년에는 50회까지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항공기의 소련영공통과는 유럽으로 가는 경우가 모두여서 주 50회 통과는 사실상 소련측이 우리에게 영공을 거의 완전개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의미한다. 두나라 항공협정은 소련항공기 또한 올해부터 해마다 주 6회씩 늘려 오는 94년까지 매주 30회씩 서울에 취항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노선구조 또한 우리측은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중국의 북경이나 상해 하얼빈 및 또 다른 한곳을 거쳐 모스크바 하바로프스크 및 또 다른 한곳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다양화 시켰다. 소련측도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하바로프스크에서 중국의 북경 상해 하얼빈 및 또다른 한곳을 거쳐 서울 부산 제주에 취항할 수 있다. 협정은 이와 함께 소련측의 복수항공사 취항 제의에 따라 현재 두나라에 취항하고 있는 우리측 대한항공과 소련측 아에로플로트항공 말고도 두나라가 1개 항공사씩을 더 취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두나라 교통 및 외무부관리 등이 참석한 관리항공회담이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데는 한국을 거점으로 동북아∼유럽사이 항공화물시장에 적극 진출하려는 소련측 경제정책의 필요성 등이 크게 보탬이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한국 유엔 단독가입/중·소,보류키로/홍콩지 보도

    【홍콩=우홍제 특파원】 중국과 소련은 오는 92년까지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을 저지키로 합의했다고 30일 홍콩 스탠더드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 외교소식통을 인용,전기침 중국 외교부장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지난 9월과 지난달 23일 하얼빈과 우룸치에서 가진 회담을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 소 외무 「평양행」 분석/이즈베스티야지

    ◎“한ㆍ소 해빙은 「한반도」 해결의 열쇠”/“북의 태도 상관않고 「수교」 일방통고”/26일 뉴욕 회담서 공식발표 가능성 외국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소련과 남한은 외교관계 수립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소련 외무부 대변인은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양국수교 문제는 실제로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시사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곧 중대한 사건을 예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 발언은 이 문제에 관한 그 어떤 계획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극동 방문중 외교 대표가 교환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소련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남한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본기자가 만나본 외교관들은 모스크바와 서울간의 해빙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완화시킬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소련과 남한의 이익이 됨은 물론 북한의인민들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극동 방문을 위한 출국을 하루 앞두고 소련 외무부 대변인은 그가 중도에 평양에 들르는데 언급,그곳에서의 회담은 북한의 지도부를 놀라게 만든 양국간의 관계개선,즉 수교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것이라고 시사했었다. 모스크바가 진정으로 서울과 대사를 교환할 생각이 있다면 셰바르드나제가 바로 북한에 이를 통보해 주기 위해 평양에 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중국의 하얼빈에서 북한의 수도로 가는 도중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평양에서의 회담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가지 매우 첨예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24시간 가량 북한에 머물렀다. 그를 태운 일류신 62기는 9월2일 정오쯤 평양의 공항에 착륙했고 다음날 하오 2시(당초 예정보다 거의 3시간이 앞당겨진 것이다)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셰바르드나제 장관과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은 우선 두사람만의 단독 회담에 90분을 할애하고 나중에 가서 소수의 소련 및 북한 외교관들을 동석시키면서 장시간의 논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담후에 나온 공식 코뮈니케는 어떠한 이견이나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셰바르드나제 자신은 출발을 1시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회담이 극히 어려웠다고 실토했다. 북한측과의 회담에 참가했던 한 소련 외교관은 이번 회담이 셰바르드나제의 장관재직기간을 통틀어 가장 곤란한 만남이었을 것이며 그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을 것으로 믿어진다고 말했다. 북한이 소련과 남한간의 관계개선을 냉정히 바라보리라고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최근에 나온 일부 조짐은 되새길만하다. 동구 국가들이 서울과 대사관을 교환하기로 한 결정은 평양으로부터 이들 국가와의 외교관계를 격하시키게 만든 거센비판을 초래했다. 사실상 이들 가운데 한 나라도 마음을 바꿔달라는 설득을 당하지 않았다. 소련이 선례를 따른다면 마찬가지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말하기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소련이야말로 북한이 정상적 관계를 누리는 소수의 국가중 하나이기 때문에 북한은 매우 고통스러우리라는 점이다. 소련 외무부 대변인은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이 문제에 대한 모스크바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련은 주권국가이며 독립적으로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자체적으로 어느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길 원한다면 북한의 허락은 모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양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에 대해 통보해주는 것은 이와는 다른 문제로 이는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목적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소련 외교관들에 의하면 소련은 북한과의 정상적 관계가 유익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 나라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북한으로부터의) 최후통첩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 회담의 영향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현재의 움직임은 모스크바가(잘알려진) 북한의 입장에 주목할 것이나 남한과 관련된 그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기자의 의견으로 볼때 평양의 반응을 소련 대표단의 방문중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김일성이나 그의 아들 김정일로부터 영접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양국 수교사상 전례없는 일이다. 서울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셰바르드나제 장관과 남한의 최호중 외무장관이 유엔 총회 참석의 일환으로 뉴욕에서 회담을 갖게 되는 오는 9월26일에 공식으로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적어도 정통한 소식통들에게서 시사된 날짜이다. 한편으로 남한의 외교관들도 국내 보도진에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계가 수립되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은 남한의 통신사였다. 또 국영 KBS방송은 며칠전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날짜까지 거론,양국 외무장관이 올해 11월을 선택했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 정부 사절단이 대사 교환에 관한 모든 세부사항과 함께 경협 확대 가능성도 논의하기 위해 10월중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었다.
  • 중국아편 억대 밀반입/피임기구에 넣어 들여오다 적발

    ◎재중교포등 넷 영장 서울지검 강력부 추호경검사는 8일 재중교포 변태수씨(36 농업ㆍ헤이룽장성 하얼빈거주)와 가정주부 김추자씨(48ㆍ서울 중구 신당4동) 등 모두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마약소지판매)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변씨는 4월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생아편 5백27g을 메추리알 크기의 알약 14개로 만들어 피임기구안에 넣어 과자라고 속여 몰래 들여온 뒤 김씨와 정금환(29ㆍ무직) 방희성씨(45ㆍ봉제업) 등 3명에게 1억원에 팔아넘기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교포가 아편을 몰래 가지고 국내에 들어왔다가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압수된 아편 5백27g은 과거 7∼8년동안 국내에서 압수된 아편의 총량과 맞먹는 것이다.
  • 산업용펌프 합작공장/금성,중국에 설립 추진

    금성사는 중국여령급수설비창과 합작으로 하얼빈에 모터용량 2.2∼1백20㎾의 산업용 펌프를 생산하는 연산 10만대규모의 산업용펌프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중이라고 7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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