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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수준 석유개발회사 육성을”

    “국제수준 석유개발회사 육성을”

    김태년 서갑원 이광재 한병도 의원 등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4명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3일 에너지 종합대책을 담은 정책자료집을 냈다.이들은 모두 국회 산업자원위 소속이자 당내에서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의원 모임인 ‘의정연구센터’에서 함께하고 있다.대부분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그룹 내지 ‘실세’로 불리는 터여서 주목된다. ●에너지정책 4대 프로젝트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에너지 문제-새로운 대안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이들이 발표한 정책대안은 ▲국제 수준의 석유개발회사 육성 ▲동북아 석유시장 선점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프로젝트 ▲에너지 행정체계 개선 등 4개 방안을 유기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세계 5위의 석유 수입국임에도 자주적 원유개발 비율이 3%에 불과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국제적 규모의 대형 석유개발회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정부 투자를 확대,한국석유공사(KNOC)를 대형 석유개발회사로 육성하거나 KNOC와 민간 정유회사들을 결합한 준(準) 공기업 형태의 회사를 설립할 것을 주문했다. 동북아 석유시장 선점과 관련해서는 국제적 규모의 석유 선물거래소 구축을 대안으로 내놓았다.중국의 급성장에 힘입어 동북아 석유시장이 2010년 유럽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김태년 의원은 “조속히 선물거래소 구축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일본에 동북아 석유시장을 내주게 된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PNG 개발과 관련해서는 ▲이르쿠츠크 프로젝트(이르쿠츠크∼하얼빈∼심양∼서해∼한국) ▲나호트카 프로젝트(앙가르스크∼시베리아∼나호트카∼일본∼한국) ▲이르쿠츠크∼사하∼사할린 프로젝트(이르쿠츠크·사하·사할린∼연해주∼한국∼일본) 등 3개 경로의 개발모델을 제시했다.중국을 피할 수 있는 세번째 경로를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발로 뛰는 국정감사 모델’ 이들이 발표한 정책 대안은 ‘발로 뛰며 대안을 찾는’ 국감의 새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102쪽 분량의 이 정책자료집은 지난 석달 동안 준비돼 왔다고 한다.에너지경제연구원,한국지질자원연구원,대한석유협회 등 전문연구기관과 산업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민간 정유회사 등 수십개 유관기관들과 협의를 거쳤다. 이달 중순쯤 중소기업 관련 대책을 담은 2차 정책자료집 발표도 계획해 놓고 있다.이를 위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30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수렴한 애로사항 및 건의사항 등을 정리하고 있다. 국감 기간 피감기관들에 제시한 정책 대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산업자원부 결산감사 때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국감 뒤에는 시베리아의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사할린 등을 방문해 PNG와 유전 개발 참여방안 등을 모색하고 이를 국내 기업들과 연결시켜주는 ‘세일즈 의정활동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황무지 한국빙상에 홀로핀 꽃 김연아

    [스포츠 라운지]황무지 한국빙상에 홀로핀 꽃 김연아

    아테네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5일,멀리 헝가리로부터 좀체 믿기 어려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14세의 한국 소녀가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그랑프리피겨스케이팅 2차대회에서 당당히 정상에 오른 것.낭보는 지난 17일에도 이어졌다.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4차대회에서도 2위에 입상했다. 여덟차례 가운데 단 두차례만 출전이 허용되는 시리즈에서 모두 최상위권에 올라 오는 12월 8강이 겨루는 파이널대회 출전 자격을 거의 손에 움켜쥐었다. ‘은반의 요정’ 김연아가 이룬 쾌거는 ‘쓰레기통에서 핀 한떨기 꽃’으로 비유된다.선수층이 얇은 데다 전용링크 하나 없는 척박한 국내 토양 때문이다.태극마크를 달고 첫 출전한 그랑프리대회에서 한국 피겨의 역사를 새로 쓰며 단숨에 ‘천재’에서 ‘요정’으로 변신한 그는 파이널대회는 물론 내년 3월 주니어세계선수권까지 석권하겠다고 벼른다.세계의 두꺼운 벽도 그에게는 종잇장처럼 얇게 느껴지는 듯하다. ●‘얼음공주’고향은 과천링크 그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군포.그러나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곳은 과천시민회관의 실내링크다.피겨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7세 때부터는 집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유리창 밖에서 엄마 박미희(46)씨가 지켜보는 동안 그는 차가운 얼음바닥에 수만번을 넘어지고 구르며 혹독한 훈련을 견뎠다. 유치원 때 TV에서 본 피겨선수들이 너무 예뻤다.엄마를 졸라 빙판에 처음 선 그는 8개월 뒤인 신흥초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인 강습에 들어간다.그의 손을 이끌며 빙판을 지친 코치 유종현(현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씨는 ‘다른 아이들과는 느낌이 달랐다.’고 당시를 회고한다.불과 1년 뒤부터 ‘천재’의 싹을 피웠다.전국체전 초등부 1위를 시작으로 국내대회 우승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기량도 그의 키만큼이나 쑥쑥 자랐다.6학년 때인 2002년 4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트리글라브트로피대회 노비스(13세 이하) 부문 우승으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지난해 3월에는 종합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다. ●‘사샤 코헨과 춤을?’ 14세 사춘기에 접어든 그의 모습은 ‘정돈’ 그 자체다.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에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여린 몸매지만 흐트러짐이 없다.성격도 만만치 않다.어머니 박씨는 “연습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분을 삭이지 못해 무작정 펑펑 운다.”면서 “어느 정도 예민하고 욕심많은 성격이 차라리 피겨에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올트리플점프(6가지 3회전 점프)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데다 레이업스핀(허리를 뒤로 제치고 돌기) 등 고난도의 기술을 터득한 선수다.뛰어난 탄력을 바탕으로 한 점프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다. 그의 우상은 사샤 코헨(20·미국).“점프와 연기력,유연성 등이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예쁘다.”는게 이유다.국제 규정상 피겨의 시니어 부문 출전은 15세부터.동계올림픽 출전 역시 개최 이전 연도 7월 기준으로 15세가 돼야 한다.따라서 6세 위인 코헨과 같은 빙판에서 겨뤄볼 기회는 당분간 없다.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그때를 위해 그는 자정이 다 되도록 과천 아이스링크를 지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오늘의 경기]

    ■ 프로야구 ●LG-삼성(잠실)●롯데-기아(사직 이상 오후 6시30분) ■ 테니스 한솔코리아오픈(오전 10시 올림픽코트) ■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한라 위니아-중국 하얼빈(오후 7시 안양링크)
  • [하프타임] 김연아 그랑프리파이널 진출

    한국 피겨의 희망 김연아(14·도장중2년)가 18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04∼05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그랑프리시리즈 4차대회에서 종합 2위에 올라 오는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가게 됐다.쇼트프로그램에서 잦은 실수로 4위(38.87점)에 그친 김연아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고난도의 연기를 소화하며 92.35점으로 1위(92.35점)에 올라 합계 131.22점으로 1위 일본의 다케다 나나(134.73점)의 뒤를 이었다.김연아는 지난 5일 헝가리에서 열린 2차대회에서 한국피겨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 [하프타임] 김연아 주니어피겨 4차대회 4위

    ‘은반의 요정’ 김연아(14·도장중2년)가 중국 하얼빈에서 벌어진 04∼05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그랑프리피겨스케이팅시리즈 4차대회 첫날 쇼트프로그램에서 50점 만점에 38.87점을 얻어 4위에 그쳤다.1위는 일본의 나나 다케다(49.35점).김연아는 1위와의 점수차가 너무 커 18일 자유종목에서 선전해도 역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2차대회 우승으로 축적한 포인트가 많아 종합 5위에만 포함되면 핀란드 헬싱키(12월2∼5일)에서 열리는 파이널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 [하프타임] 피겨 김연아, 4차대회 참가차 출국

    지난 5일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피겨그랑프리 2차대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일군 ‘은반의 요정’ 김연아(14·도장중 2년)가 4차대회(16∼19일·중국 하얼빈) 참가를 위해 14일 출국했다.2차 대회 우승으로 포인트 15점을 딴 김연아는 4차대회 상위권에 입상할 경우 파이널대회(12월2∼5일·핀란드 헬싱키) 출전권을 얻게 된다.
  • 14세 김연아, 사상 첫 피겨국제대회 우승

    ‘은반의 요정’ 김연아(14·도장중 2년)가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밝게 비췄다. 김연아는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막을 내린 국제빙상연맹(ISU) 2차 주니어그랑프리피겨대회에서 합계 148.55점으로 사와다 아키(일본·136.16점)와 케이티 테일러(미국·127.74점)를 여유있게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908년 스케이팅이 국내에 도입된 이래 피겨 종목에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시니어대회와 주니어대회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가 어려 올해부터 국제대회 출전 자격을 얻은 김연아는 1차 그랑프리는 대표선발전에 출전하느라 나가지 못했다.하지만 국제대회 데뷔전인 이번 2차 그랑프리에서 완벽한 트리플점프를 뽐내며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1위를 석권,차세대 피겨여왕으로 각광받던 사와다의 콧대를 눌렀다.김연아는 오는 16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릴 4차 그랑프리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피겨선수로 이상적인 체격(156㎝·38㎏)을 갖춘 김연아는 지난해 ISU 비공식대회인 노비스선수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전국남녀종합선수권에서도 국가대표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일찌감치 재능을 발휘해 왔다.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올트리플점프를 구사할 수 있는 재목이다. 피겨 국가대표상비군 조성만 감독은 “남녀 통틀어 피겨선수가 100명도 안되는 현실에서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기적과 다름없다.”면서 “연아의 나이와 재능을 고려할 때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조국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잊지 않고 불러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59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훈처 초청으로 지난 11일 한국에 온 키가이 라사(46)씨는 이렇게 입을 뗐다.키가이씨는 1926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 선생의 외고손녀이다.그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미국 등에서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 11명과 함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다. ●할아버지 묘역서 발을 떼지 못해 6박7일간의 고국방문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 참배로부터 시작됐다.현충탑 분향을 마친 키가이씨는 현충원 임정 묘역으로 발길을 옮겼다.선생의 유해는 1990년에야 중국 하얼빈 근교에서 발견돼 봉환됐다. 그는 일행들이 위령탑으로 발길을 옮기자 못내 아쉬운 듯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가기 전 기어이 차를 세워주도록 부탁했다.선생의 묘역에서 키가이씨는 달아오른 뜨거운 땅에 한참을 머리를 대고 있었다.그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할아버지가 많이 고생했다는 얘기를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그는 “현지에서도 독립유공자협회가 결성돼 후손간에 유대를 갖고 있다.”면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말을 못해 할아버지께 죄송스럽다.”며 돌아가면 한국어를 꼭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키가이씨가 부럽기만 하다는 표정인 장 타치아나(42·모스크바 거주)씨.그는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의 외증손녀다.이동휘 선생도 현충원 임정묘역에 묻혀야 하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장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한다.다만 살던 곳에 기념비만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라면서 “그래도 러시아 현지에서 책과 자료 등을 통해 외증조부가 레닌을 만나는 등의 활동상을 관심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한 일행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 일제의 만행을 듣고는 모두들 얼굴이 흐려졌다.고문을 당해 한쪽 귀가 없어진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보던 키가이씨는 고개를 돌리며 “할아버지가 이런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 임정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던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파벨(55·카자흐스탄 거주)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인들을 증오하셨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역사분쟁 이해 안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됐던 이위종 선생의 외증손녀 프로야예바 타치아나(43·모스크바 거주)와 피스쿨로바 율리아(35·〃) 자매도 한국을 찾았다.선생은 1910년 을사조약에 통분해 자결한 이범진 선생의 차남이다.타치아나 자매는 “두 분은 각각 러시아 초대 공사와 헤이그 밀사로서 독립운동의 산 본보기로 독립운동사에 많은 정신적·물질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한국학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율리아씨는 “외증조부가 1918년 모스크바 공산당대회에 참석한 이후 사망과정이 불분명해 이에 대한 연구와 1910∼20년대의 한·러 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최근의 한국·중국간 고구려사 분쟁을 의식한 듯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민족의 땅에서 벌어진 한민족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는 15일 충북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서울과 경주,울산을 관광한 뒤 오는 17일 출국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조선총독부 관리 증언 녹취록 공개

    |도쿄 연합|일본 가쿠슈인(學習院)대학 동양문화연구소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전직 관리들의 1958∼1962년 사이의 증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정리한 ‘미공개자료 조선총독부 관계자 녹음기록’ 전편이 12일 연합뉴스에 의해 보도됐다.총독부 관리나 한국어 통역으로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풀어 정리한 자료들은 사실관계에 일부 오류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료적 가치는 평가된다.주요 증언 내용을 정리했다. ●안중근 의사,치밀하게 거사장소 선정 안중근이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로 하얼빈역을 선택한 것은,당시엔 하얼빈이 러시아의 관할권 아래 있어 붙잡혀도 러시아에 신병이 인도될 것이란 기대에 따른 것이었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를 살해하면 중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데다 이토 살해범은 국사범(國事犯)이 되기 때문에 관례로 보아 러시아 당국에 의해 구속될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측에 호의를 보이기 위해 안중근의 신병을 일본 총영사에게 넘기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그래서 안중근은 일본측의 재판을 받게 됐다. ●송병준,1억 5000만엔에 나라 팔아 송병준이 이토 히로부미와 가쓰라 다로 총리에게 1억 5000만엔을 요구하며 여러 차례 한·일 합병을 제의했다.1894년 그가 대신을 그만둔 뒤 도쿄에 와서 가쓰라 총리에게 한ㆍ일 합병론을 꺼냈다.“시행은 곤란하지 않은가.”라는 총리의 질문에 “1억엔만 있으면 훌륭히 할 수 있다.조선의 땅과 2000만명의 인구에 대한 대가로 수십,수백억엔의 세금이 생겨난다.너무 싸지 않은가.”라고 말했다.그러나 결국 3000만엔밖에 들지 않았다.이후에도 100만엔을 추가로 요구했다 거부당하자 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백범 김구를 사살하라 조선의 민족운동 가운데 특수한 인물은 만주사변 후 중국 난징 또는 충칭에 근거를 둔 김구였다.사방에서 김구를 해치우기 위해 움직였다.이봉창·윤봉길 등 항일테러의 원흉은 김구였다.군과 외무성 등 모든 기관이 김구에 집중했다.돈을 상당히 쏟아부었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스파이 등을 썼으나 이들로부터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조선총독부는 “잡을 필요 없으니까 보는 즉시 사살하라”고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김일성이 가짜라는 설이 있지만 거짓말이다.김일성이 가짜라는 이야기는 고하 송진우를 살해한 한현우가 쓴 ‘그의 죄악을 보라’라는 책의 ‘김일성은 가짜다.’라는 항목에서 비롯됐다.이를 본 가마다가 ‘조선신서ㆍ조선신화’에 쓰면서 진짜처럼 돼 버렸지만 전부 거짓말이다.김일성은 제1선에는 나오지 않은 채 언제나 뒤에서 자료를 읽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정보가 만주국 관헌에 들어왔다.만주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김일성은 부하 2∼3명을 끌고 1941년 3월께 소련으로 도망갔다(A씨). 김일성은 당시 조선 민족운동의 영웅이었다(B씨). 보천보사건에서 활약한 김일성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C씨).
  • [기고] 잊지말자! 군대해산의 교훈/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1907년 8월1일 오전11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됐다.우리 국민은 8·15 광복은 경축해 왔으나 8·1 치욕의 그날은 잊고 있다.조선왕조 519년 27대를 유지해 온 우리 군대가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이다.20세기 초 세계 열강이 ‘근대적·배타적 군사주권 국가’로 식민지를 넓혀나갈 때 우리 군대는 강제해산됐다.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1907년 7월19일 고종 황제께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를 받은 이완용·송병준 내각의 강요로 순종에게 양위 소칙을 발표했다.20여일이 지나 군대가 해산된 그날 서울 동대문밖 훈련원에 맨손 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집합시켜 놓고 갑자기 군부협판 한진창이 순종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하였다.놀란 병사들이 주위를 살펴 보니 이미 일본 헌병들이 중무장한 채 둘러싸 있었다.그 자리에서 계급장을 떼고 약간의 돈푼을 나눠준 뒤 해산시켰다.길거리로 나오면서 온백성과 함께 통곡하고 수치스러운 돈을 던져버렸다.이같은 내용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지낸 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의 저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들은 황실근위부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參領)은 격분하여 자결,순국하였다.“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 이것이 그분의 비통한 유언이었다.대대장의 자결로 격분한 병사들이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남대문 밖 일본군 주둔지를 공격했으나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이 일제사격하여 78명이 전사했다.부대는 해산되어 국내외로 의병이 되어 흩어졌다.군대가 없어지니 주권이 무너지고,주권이 무너지니 국가가 망했다.나라가 망하니 그 민족 그 국가의 문화가 살아남지를 못한다. 2년후 창경궁은 동물원이 되었다.세종이 즉위하고 어전회의를 하던 문정전(文政殿)이 사자와 호랑이의 울이 되었다.군대가 없으니 이토의 마음대로였다.1909년 10월26일 그는 안중근 의병중장이 쏜 세발의 총탄을 맞고 하얼빈 역두에서 사살됐다.그러나 1910년엔 아무런 저항 없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당당한 군대를 갖고 있다.1945년 광복과 더불어 창건한 민주군대로서 6·25 이념전쟁의 주역으로 싸우면서 이 나라를 부흥시켰다.그리고 막강한 주권국가로서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과연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인가.19세기적 비운이 닥쳐올 것인가? 결코 아니다.우리는 피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이제는 군사력을 갖춘 주체적인 국가가 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군대의 존재양식과 군대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물론 우리 군대에도 공과가 엄연히 있다.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운동하던 세대가 군을 보는 시각은 심각하다.그렇다고 오늘의 군대를 주관적으로 통제하여 정치적으로 예속시키면 군은 하루아침에 무력화되고 만다.그래서 군대는 ‘객관적 통제’로,군령을 강화시켜,선진국다운 군대 기능을 고양시켜야 할 것이다.군대를 새삼 존중하고 사랑해야 군대해산의 교훈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간에 휴전상태에 있다.강력한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군사주권을 배경으로 아직도 ‘총부리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그는 서해안에서 도전과 선전,통신협정을 이용하여 한국군을 무력화하려고 한다.그 교신 한건으로 결국은 우리 국방장관이 교체되고 3성장군이 전역했다.그렇게 객관적 전투사항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니 그 눈치를 봐야 하는 군대에 무슨 전투력이 있을까? 군대의 사기는 죽기 마련이다.남북화해 시대에 국방비를 깎아 결식아동을 돕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낭만적인 발상도 경계해야 한다.강한 군대의 존재만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밀고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군대해산의 날을 돌이켜보고 강한 군대와 국방정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 김우준 연대교수“中왕조 고구려 실체 인정”

    역대 중국 왕조가 독립된 국가로 고구려의 실체를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옛 지도들이 공개됐다.이들 자료는 최근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김우준 교수는 9일 중국 남송시대에 제작된 우공구주금주도(禹貢九州今州圖·1209년)와 지리도(地理圖·1247년),청나라때 만들어진 동남양각국연초도(東南洋各國沿草圖,1880년) 등 지도 5점을 공개했다.이들 지도는 중국의 문물출판사와 하얼빈지도출판사에서 나온 중국고대지도집과 중화고지도진품선집에 실린 것이다. 전국시대부터 원나라까지 한국과 중국의 역대 왕조 이름을 지도에 기록한 우공구주금주도는 ‘고조선’‘고려’‘동이’‘백제’‘신라’ 등의 명칭을 시대구분 없이 만주지역과 한반도 일대 곳곳에 적어 놓았다. 김 교수는 “5세기 장수왕 때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개칭한 일은 중원고구려비에서도 확인된다.”면서 “지도상에 표기된 고려는 당시 고구려를 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역대 중국 영토의 왕조를 기록한 지도 특성상,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였다면 중국 북동부에 별도로 표기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려는 고구려의 옛 영토인 압록강 부근에 표기돼 있다.”고 설명했다.고금화이구역총요도(古今華夷區域總要圖·1185년)와 지리도,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1260∼1264년 추정) 등에서는 한반도 일대의 국가를 ‘고려,신라,백제’,‘고려,신라,여진,발해’,‘고려,백제,신라,옥저’로 각각 표기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세원“서둘러 방송에도 복귀하고 싶다”

    “업그레이드된 서세원이 되고 싶습니다.”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은 두번째 영화 ‘도마 안중근’의 개봉을 앞둔 서세원(48)이 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영화 및 방송 복귀,자신이 연루됐던 ‘연예계 비리’와 관련한 얘기를 털어놨다. 유오성이 타이틀롤을 맡은 ‘도마 안중근’은 안 의사가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사살한 사건을 전후한 11일 동안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도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 의사의 세례명. 그동안 ‘조폭마누라’등에 투자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적은 있지만 연출을 맡은 것은 1986년 ‘납자루떼’ 이후 18년 만의 일.영화는 지난 1∼3월 중국에서 촬영했으며 오는 27일 개봉한다.서씨는 “처음에는 제작과 투자만 계획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이 흘러간 데다 예전에 감독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메가폰을 잡게 됐다.”고 밝혔다.방송 복귀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을)세운 적은 없지만 돈을 떼어먹었다든가,누구를 폭행했다든가 하는 식의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귀에 어려움이 없고 서두르고 싶다.”고 말했다. 소문이 무성했던 북한 시사회에 대해서는 “이미 7월초 평양에서 시사회를 진행한 바 있으며 8월말과 9월초 각각 금강산과 평양에서 다시 시사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방적으로 (언론에) 매도당해 섭섭했다.”고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으며 “보도와 달리 마카오에는 근처에도 안 가봤고,이는 여권 기록에 남아 있다.연예계 비리에 관련해서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합
  • [열린세상] 안중근, 김선일, 유영철/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교수

    장면 1. 2004년 7월13일 중국 하얼빈역.안중근 의사가 폭탄을 던진 현장이다.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통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폭탄을 던졌다.그래서 출구 근처에 혹시나 무슨 표시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다.그러나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다소 섭섭했지만 모두들 역사의 현장에 왔다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숙연한 모습이었다. 장면 2. 2004년 6월21일.텔레비전 뉴스에 이라크에서 납치된 김선일씨가 나온다.“나는 살고 싶다.나는 죽고 싶지 않다.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내지 말라.”고 절규하는 모습이다.다음날인 22일 김선일씨는 끝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가족들의 애통해 하는 모습이 화면을 장식한다.네티즌들의 반응이 요동친다.김선일씨 피살전에는 파병반대 의사를 밝혔던 사람들이 파병찬성으로 돌아선다.전투부대를 파병해서 이라크인을 응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면 3. 2004년 7월18일.무려 21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한다.얼굴을 푸른색 마스크로 가린 그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보도방 아가씨들이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합니다.”라고 입을 열었다.범죄 전문가들은 이번 연쇄살인이 ‘반사회적인 증오성 범죄’의 대표적 사례라면서 ‘피해자 규모’와 ‘잔인함’에 경악하는 분위기다.사형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세 장면은 모두 폭력의 다른 측면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폭력을 자제해야 하지만,안중근 의사의 행동처럼 폭력의 사용이 불가피하고 정당한 경우도 있다.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테러리즘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증오살인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이분법적 구별에 대해 생각해보자.‘안중근은 훌륭하고 이토는 나쁘다,김선일은 죄없고 테러단은 나쁘다.유영철은 악독하고 피해자는 불쌍하다.’이다.우리와 그들,친구와 적과 같은 이분법이 작용한다. 테러단,유영철은 극단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그러나 똑같은 불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틀림없이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테러단은 아마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또 그들은 이라크에서 일종의 의병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평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처럼 이분법을 넘어 글로벌 시민권의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보복적 민족주의,국가안보의 관점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삶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선일씨의 유족들이 추모식에서 “이라크를 용서합니다.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고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이번 연쇄살인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매도가 아니라 애도를 해야 한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실천하려는 마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지난 1월18일 미국전역에서는 마틴 루터 킹 날을 기념하여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시위가 있었다.“전쟁이 답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두고 두고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여러분이 폭력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면,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는 길고 어두운 고통의 밤을 맞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당신이 미래에 물려줄 주요 유산은 무의미한 혼란의 세상일 것입니다.” 마음속의 이분법과 폭력에의 유혹을 버리는 것,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일 것이다.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교수
  • 中 맥주시장 ‘열국지’

    중국 맥주시장에서 세계적 맥주 제조업체들이 격돌하고 있다.중국은 지난해 총 2358만㎘의 맥주를 생산,세계 전체 맥주생산량의 16.4%를 차지했다.이로써 1975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 맥주생산국이 됐다. 소비시장으로는 미국에 이어 2위다.현재 매년 1인당 18ℓ의 맥주를 마시는 13억 인구와 경제 성장으로 소비에 있어서도 곧 1위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합작의 세계 2위 맥주 제조사인 SAB밀러는 지난 5일 하얼빈맥주에 대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의사를 밝혔다.홍콩에서 거래되는 하얼빈맥주의 최근 종가인 3.23홍콩달러(492원)에 33%의 프리미엄을 더해 4.30홍콩달러(655원)에 70.4%의 지분을 사들이겠다는 내용이다.SAB밀러는 현재 하얼빈맥주 주식의 29.6%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 1위 맥주 제조사인 안호이저-부시가 3일 하얼빈맥주 지분 29%를 사들이겠다고 밝힌데 따른 대응이다.안호이저-부시는 중국의 1위 맥주 제조사인 칭다오 주식의 10%도 갖고 있다.안호이저-부시는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미국계 회사다. 반면 SAB밀러는 중국 2위 맥주 제조사인 CRB 주식의 49%를 갖고 있다.SAB밀러나 안호이저-부시 중 하얼빈맥주를 갖는 쪽이 중국 시장,나아가 세계 시장을 지배할 교두보를 마련하는 셈이다. 이번 M&A는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중국 기업을 상대로 한 첫번째 적대적 인수합병이다.또 중국 기업의 소유권이 정부가 아닌 주주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국제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수 대상인 하얼빈맥주는 안호이저-부시를 선택했다.하얼빈맥주측은 SAB밀러와 10개월간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지만 SAB밀러가 하얼빈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또 하얼빈 당국도 안호이저-부시가 “옳은 전략적 파트너”라는 입장이다.하얼빈맥주는 안호이저-부시와 SAB밀러의 주식을 제외한 41%를 갖고 있는 소액 주주들과 협상할 재정고문을 임명했다. 안호이저-부시도 하얼빈맥주와 경영권 방어 논의를 시작했고 SAB밀러와 같은 제안을 내놨다.하얼빈맥주의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노리기보다는 중국 시장내 SAB밀러의 확장에 대응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하에 칭다오의 지분도 늘리고 있다. SAB밀러가 하얼빈맥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22%의 지분이 더 필요하다.회사측은 8%를 갖고 있는 캐피털인터내셔널,9%를 가진 JP모건측과 협상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인수전이 가열되면서 홍콩 주식시장에서 하얼빈맥주의 주가는 지난 한 주 동안 30%나 급등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설특집 We/아이들 손잡고 여기 갈까

    이번 설은 토·일요일이 겹쳐 연휴기간이 5일이나 된다.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서울 및 수도권의 테마파크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눈길을 돌려보자.세계의 장난감들을 한자리에 모은 장난감 체험전,국내 최대의 빙등제,원숭이 공연 등 아이들과 함께 즐길 만한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세계 장난감 체험전 세계 각국에서 전승돼 내려오는 장난감들을 선보이는 ‘세계 장난감 체험전’이 최근 63빌딩에서 개막됐다.1층 특별전시관에서 3월1일까지 개최. 전시존엔 1950년대 영국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만물상 할머니’,왕복운동이 상하운동으로 바뀌는 것을 간단한 원리로 설명한 ‘망치 할아버지’(스위스),아기 업은 엄마의 모습을 나무로 표현한 ‘인디언 모자’(미국) 등 500여종의 장난감이 대륙별,나라별로 전시돼 있다. 또 로봇축구경기장에선 로봇 ‘미코’와 ‘마코’의 로봇 축구시합이 펼쳐지고,관객들도 직접 로봇 작동을 체험해볼 수 있다.전시관 내부에 설치된 입체영화관에선 3D 입체영화 ‘우주경찰 솔라캡’이 국내 처음으로상영된다.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관람료 대인 7000원,중·고생 6500원,어린이 6000원.(02)789-5663. ●아인스월드 빙등축제 세계적 축제인 중국 하얼빈의 빙등제(氷燈祭)를 국내로 옮긴 ‘아인스월드 빙등 대축제’가 지난 10일부터 부천 아인스월드에서 열리고 있다.2월22일까지 개최 예정. 이번 축제에선 가로 10m,세로 6m의 천안문,높이 6m,가로 15m의 만리장성,높이 6.8m의 용롱보탑 등 15개의 대형 얼음건축물을 선보이고 있다.얼음 속엔 설치된 갖가지 색깔의 등이 투명한 얼음에 투영돼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관람료는 어른 6000원,청소년(14∼18세) 5000원,어린이 4000원. 아인스월드(www.aiinsworld.com)는 지난해말 오픈한 건축물 테마파크로,세계 25개국의 유명 건축물 109개를 실제 크기의 25분의1로 축소,전시해놓았다.빙등제 문의 (02)558-4788. ●대한민국 동물학교 & 가자 아프리카로 세계파충류공원 주관으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다.2월1일까지.대한민국 동물학교에선 갑신년의 주인공인 원숭이들이 코미디 프로그램 ‘봉숭아학당’을 패러디한 학교수업 모습을 보여준다. ‘가자 아프리카로’는 아프리카 동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맹독을 가진 기븐바이퍼,킹코브라 등 파충류와 화려한 색상의 물고기와 앵무새,거미 등 아프리카의 대표적 야생동물이 한 자리에 모였다.관람료 어른 1만5000원,고교생 이하 1만3000원.(02)454-0100. ●놀이공원 설맞이 이벤트 서울랜드는 21일부터 25일까지 ‘새해맞이 한마당’을 개최한다.먼저 퓨전 민속 사물놀이패 ‘풍장21’이 신명나는 길놀이와 함께 타고 공연을 펼치며,‘새신 어린이 널뛰기팀’이 다채로운 널뛰기 묘기를 보여준다.이밖에 원숭이해 특별 이벤트로 원숭이띠 관람객에겐 자유이용권 50% 할인혜택을 주며,연휴기간중 한복을 입은 입장객에게도 50% 할인해준다.(02)504-0011. 롯데월드는 새해를 맞아 연휴기간 입장객 중 2004명을 뽑아 대우 라세티 자동차,삿포로 눈축제 여행권,디지털카메라 등 푸짐한 경품을 주는 ‘2004 왕대박 대잔치’를 개최한다.원숭이띠 입장객은 자유이용권 50% 할인.(02)411-2000. 에버랜드는23,25일 국악에 전자바이올린을 결합한 ‘퓨전 콘서트’를 준비했다.24일엔 이기찬,성시경 등 인기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설날특집 SBS 공개방송’이 진행된다.(031)320-5000. 임창용기자 sdragon@ ■ 설 연휴 피곤하다고요? 설 연휴를 맞아 멀리 떠나기가 부담스럽다면 가족들과 집 가까운 호텔을 찾아보자.고품격의 서비스를 받으며 하룻밤을 쾌적하게 보내면 명절을 치르느라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다.다음은 각 호텔이 마련한 설 연휴 패키지 내용.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슈페리어 디럭스 1박,수영장·체련장 무료,로비라운지 2인 음료권.9만 5000원.26일까지.(02)531-6521. 홀리데이 인 서울 디럭스 더블 또는 트윈룸 1박,음료 쿠폰 2장,사우나 50% 할인쿠폰.12만 1000원.2인 조식 추가시 15만 4880원.25일까지.(02)7107-185. 서울신라 디럭스룸 1박,파크뷰에서 2인 조식,수영장 및 체육관 무료 이용,신라베이커리 20% 할인.19만원.저녁 만찬 추가시 23만원.25일까지.(02)2230-3310∼6. 아미가 객실 1박,수영장 및 체련장 무료 이용,사우나 50% 할인.10만원.한식 조찬 추가시 13만원.25일까지.(02)3440-8000. 롯데 객실 1박 및 2인 조식뷔페 또는 2인 떡국 조식 룸서비스,수영장·사우나 무료 이용.소공동 롯데 14만원,잠실 롯데 12만원,제주 롯데 26만 5000원.25일까지.(02)759-7311.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뮤지컬 ‘캣츠’와 함께하는 패키지 판매.캣츠 R석 관람권 2장,디럭스 객실 1박,더뷰에서 2인 조식,와인 1병,치즈 모듬안주.67만원.31일까지.(02)455-5000. 그랜드 하얏트 디럭스룸 1박,영어 어린이 연극 ‘리틀 드래곤’ 티켓 2장,칵테일 쿠폰 2장,수영장·체육시설 무료,아이스링크 50% 할인.16만 5000원.2인 조식뷔페 추가시 20만 5000원.29일까지.(02)799-8888.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BMW 사건’유전무죄 논쟁

    중국은 요즘 ‘유전무죄(有錢無罪)’ 논쟁이 한창이다.빈부격차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민심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중순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부인 쑤슈원(蘇秀文·44)이 최고급 자동차인 BMW를 몰고가다 1명을 죽이고 12명에 부상을 입힌 교통사고가 사건의 발단.쑤슈원은 사고 직후 하얼빈시 검찰원에 의해 교통사고죄로 체포했고 지난 연말 인민법원에서 징역 2년에,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즉각 “사건의 비중에 비해 판결이 경미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이후 언론들은 ‘하얼빈 BMW 사건’으로 명명,재판 과정에서의 의혹을 낱낱이 파헤치기 시작했다.언론들이 제기한 의혹은 ▲피해자가 ‘고의 살해죄’로 고소했음에도 교통사고로 신속히 처리된 점 ▲증인들의 증언이 엇갈림에도 증인 심문이 없었던 점 ▲교통경찰의 사건은폐 가능성 등이다.‘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과거 사회주의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변화였다.네티즌 사이에서도 “쑤슈원이 당 간부의 며느리다.권력이 개입했다.”는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 유포됐다.한발짝 더 나아가 “부자들의 목숨은 금값이고 인민들의 생명은 개값이냐.”라는 등 사회질서의 근간까지 위협하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실명 관련설이 나돌았던 한귀즈(韓桂芝) 헤이룽장 정협 주석과 마수제(馬淑潔) 헤이룽장 인민대표 부주임 등 고위간부들은 신문과 TV에 인터뷰를 자청,“나는 며느리가 없다.”,“며느리의 나이는 33살”이라는 등 사건과 무관함을 호소했다.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난 10일 하얼빈시 정부는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라.”고 재심 지시를 내렸고 최근에는 당 고위간부들의 비리를 조사하는 중앙규율검사위원회까지 보고됐다.한국으로 치면 대검 중수부가 나선 셈이다. ‘BMW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특권과 부정부패로 얽힌 인치(人治)사회에서 보다 투명한 법치(法治)사회로 옮겨가는 중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당 정치국도 앞으로 사정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홍콩과 중국 일부 언론의 보도가 주목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oilman@
  • 눈부신 서리꽃 세상/’상고대’ 한창 핀 덕유산 산행

    겨울산에 가면 두가지 꽃이 핀다.하나는 가지마다 소담스럽게 쌓인 눈꽃이고,다른 하나는 ‘상고대’로 불리는 서리꽃이 그것이다.눈꽃이야 야외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상고대는 고산지대,그것도 특별한 기후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겨울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덕유산은 상고대가 한창이다.무주리조트 스키 슬로프 꼭대기인 설천봉에서 향적봉,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하얗게 상고대가 피었다.길 옆의 싸리숲과 철쭉 나뭇가지에도,기품있게 자란 주목과 구상나무 이파리에도,미처 푸르름을 감추지 못한 길가의 풀잎까지.그저 형상을 갖추고 있는 모든 나무와 풀엔 어김없이 상고대가 꽃을 피웠다. ●따뜻한 날엔 오전 11시이전 올라야 감상 상고대는 청명한 겨울밤에,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대기중 수증기가 나뭇가지 등에 달라붙어 얼면서 생기는 현상.그래서 나무서리,즉 수상(樹霜) 또는 수빙(樹氷)이라고도 하고,안개가 얼어붙는다는 뜻에서 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상고대 산행을 즐길수 있는 몇 안되는 산 중의 하나다.최고봉인 향적봉 높이가 1614m에 달하지만 산행 기점인 설천봉(1525m)까지 편안하게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곤돌라 탑승료는 왕복 1만원,편도 6000원. 설천봉부터 향적봉까지는 등산로가 비교적 평탄하다.조금 가파른 곳은 나무계단까지 만들어 놓아 서너살짜리 아이들이 오르기에도 부담이 없다. 향적봉 정상은 밋밋하다.소담스러운 눈꽃과 상고대를 보며 올라와선지 나무와 풀이 없는 정상 모습은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누군가 쌓아놓은 돌탑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정상에 서니 사방이 탁 트였다.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산 뿐,산 틈새로 손바닥 만한 마을이 몇 개 보일 듯 말듯하다.남덕유산,적상산,마이산,가야산,무등산,계룡산은 물론 지리산 천왕봉까지 시야에 잡힌다.봉우리와 능선이 겹쳐지며 이어지는 준엄한 산세가 경탄을 자아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고사목 볼거리 향적봉에서 남덕유산(1507) 가는 길엔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마치 사방이 하얀 서리로 덮인냉동창고에 들어온 느낌.상고대는 기온이 영하로 유지되면 하루종일 볼 수 있지만 영상으로 올라가면 녹는다.따라서 날씨가 따뜻한 날엔 늦어도 오전 11시 이전까지 올라가야 감상할 수 있다. 능선길 주변엔 고산성 수목인 주목과 구상나무 등이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나무 모양과 이파리 생김새는 분명 다르지만,무게와 기품이 느껴지는 건 둘이 똑같다.덕유산 주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예전에 마패(馬牌)로 쓰였다고 하는데,현재 300∼500년 수령의 주목 1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파리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주목 고사목(枯死木)도 볼거리.주목은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이라는 찬사가 붙어다닌다.오히려 이파리 없이 몸체와 굵은 가지만 남은 고사목이 더 멋스럽다는 이들도 있다.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속살이 더 굳어져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사목 감상은 덕유산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상록교목인 구상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에 자생하는 희귀식물로,지리산,가야산,한라산 등지에 자생한다.덕유산에는 향적봉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다.특히 설천봉 곤돌라 승강장 옆 레스토랑 뒤편 산자락엔 비죽비죽 뻗은 구상나무 가지에 눈이 소복소복 쌓인 풍광이 볼 만 하다. ●‘무주 中하얼빈 빙등축제' 색다른 재미 가족 산행으로는 설천봉을 출발,향적봉,중봉을 지나 백암봉에서 돌아오는 코스가 무리가 없다.왕복 3시간쯤 잡으면 된다.아이가 없다면 구천동 계곡을 따라 백년사를 거쳐 향적봉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보자.왕복 6시간 쯤 걸린다.좀 험난하긴해도 빼어난 계곡의 설경이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답다. 어떤 코스로 가든 아이젠은 꼭 착용하는게 안전하다.또 해발 1500m가 넘는 아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기온이 평지보다 10도 정도 낮고 바람도 세게 불므로 방한복과 장갑,모자 등을 단단히 갖추어야 한다. 산행후엔 무주리조트에서 개최중인 ‘무주중국하얼빈 빙등축제’ 행사장에도 들러보자.중국 빙설 예술의 역사가 깊은 하얼빈의 작가들이 제작한 다양한 빙설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직경 13m,높이 8m,길이 70m의 만리장성 등을 포함한 작품들이 8개 전시구역에 설치돼 있다.얼음속에다양한 빛깔을 내는 전등을 설치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입장료 1만원. 무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가이드 ●가는 길 대전∼진주 고속도로 개통후 서울에서 무주까지 3시간이면 간다.경부고속도로 대전 회덕 분기점을 지나 조금만 더가면 나오는 무주·판암 방면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한다.무주IC에서 빠져 진안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적상 삼거리에서 좌회전,사산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 치목터널과 구천동터널을 지나면 무주리조트가 나온다.구천동 계곡은 무주리조트를 지나 10분쯤 더가면 나온다. ●숙박 무주리조트(063-322-9000)내에 콘도와 호텔이 있다.주말엔 예약이 거의 불가능하다.덕유산 자연휴양림(063-322-1097)도 묵을 만 하지만 역시 예약이 만만찮다.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무주읍내 여관이나 덕유산 인근 콘도형 민박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인터넷 ‘아이러브무주’(www.ilovemuju.co.kr)에 들어가 보면 깨끗한 숙박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상고대 피는 명산 태백산(강원 태백·1567m)은 주목 군락지에 핀 상고대와 눈꽃이 황홀한 곳.교통이 편리하고 등반로도 완만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유일사∼주목단지∼천제단∼망경사∼당골 코스가 좋다.4시간 소요. 백덕산(강원 영월·1350m)도 눈꽃과 함께 상고대가 유명한 산.문재∼사자봉∼백덕산∼먹골재∼호헌교 코스를 따라가면 5시간쯤 걸린다.수림이 우거진 소백산(충북 단양·1440m)은 눈꽃과 상고대 지대가 넓고 정상 조망이 좋다.어의곡리∼비로봉∼삼거리∼천동골로 이어지는 코스(4시간쯤 소요)가 좋다.한국등산중앙회(02-2274-7710)에 문의하면 겨울 산행 정보를 알려준다. 식후경 무주엔 민물고기를 넣고 죽을 끓이는 어죽이 유명하다.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예부터 선조들이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즐겨 해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무주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주읍 내도리의 ‘큰손식당’을 추천한다.외지인들은 잘 모르지만 어죽에 관한 한 현지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식당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무주읍내에서 내도리로 빠지는 길을 따라 내도교,후도교를 건너 뒷섬마을에 이르니 큰손식당 간판이 붙은 외딴집이 보인다.읍내에서 10여분 거리. 어죽을 시켰더니 10여분 뒤 빙어튀김을 한 접시 내놓는다.서비스란다.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음식을 시킨후 20여분이 지나서야 뚝배기에 담긴 어죽이 나온다. 어죽의 재료는 자가미다.남대천 등 무주지역의 맑은 물에서 많이 나는 민물고기다.다음은 주인이 말해주는 어죽 끓이는법. 자가미 내장을 빼고 손질해 푹 삶아서 뼈를 발라낸다.자가미 삶은 국물에 쌀을 넣고 끓이면서 고추장을 푼다.쌀이 익을 때 쯤 수제비를 떠 넣으면서 대파,다진마늘,생강 등을 넣고 기호에 따라 후춧가루를 첨가한다. 구수하고 진한 맛에서 깊이가 느껴진다.4000원.서넛이 먹을 만한 자가미탕은 2만 5000원이다.어죽만 한그릇 시켜도 빙어튀김 한 접시는 덤으로 준다.(063)322-3605.
  • 도약 꿈꾸는 中 종북 3省 / (중)깊은잠 깨어나는 국유기업들

    ‘동북 3성 대개발’의 핵심은 국유기업 개혁이다.낙후된 설비와 비효율 경영의 대명사인 국유기업들이 전체 기업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면 동북 3성의 경제개발을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다. 이 때문에 동북 3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유기업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인식,국유기업의 사영화와 성과급제도 도입 등 다양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장기전략으로 외자유치를 통해 국유기업 경영개선과 선진경영 습득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선양·창춘·하얼빈 오일만특파원|랴오닝(遼寧)성의 성도인 선양(瀋陽)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를 달리면 널찍한 아치형 정문을 갖춘 중처지투안(中車集團) 공장이 나온다.정문을 통과해 100m 남짓부터 공정별로 설계된 6개의 공장 내부에는 종업원들이 대형 공작기계를 다루며 작업에 한창이다. 1950년에 설립된 이 공장은 2001년까지 인민해방군 소속으로 자동차 부품을 납품했던 전형적인 국유기업이다.군에서 지시한 수량만 채우면 만사가 해결됐던 만큼 시장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공장이었다. 하지만 2001년 주인이 인민해방군에서 탄탄한 국유기업인 란싱(藍星)그룹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1200명이던 직원을 2년 동안 500명으로 줄였고 철저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경영효율화에 나선 것이다.1000만위안(15억원)을 투자해 노후화된 공장 설비를 바꾸고 기술개발에 나섰다. ●성과급 도입이후 1인당 생산량 30% 증가 직공 월급은 생산량에 따라 최하 300위안(4만 5000원)에서 최고 1500위안까지 5배의 차이가 난다.군 소속 당시는 평등개념을 강조 모든 직공이 차별없이 300∼400위안의 월급을 받았다.쑨위칭(孫毓卿) 공장장은 군 소속 시절 1000위안에 불과했던 월급이 경영성과가 좋아진 지금은 성과급을 포함해 연봉이 10만위안에 달한다고 밝혔다.2001년 7000만위안이던 매출액은 올해 1억위안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등 2년 만에 50%나 늘었다.쑨 공장장은 “성과급 도입 직후에는 평등사상에 길들여진 직원들이 불만을 표하는 등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노력한 만큼 돈을 버는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1인당 생산량이 30%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공장도 동북 3성 국유기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금융부채와 실업자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방만한 경영을 했던 군 소속 당시 받은 금융대출금의 이자도 만만치 않은데다 700명의 해고자 중 600명에게 매달 150위안의 실업수당을 제공하기 때문이다.쑨 공장장은 “중앙이나 시정부에서 국유기업들의 재정부담을 덜어주지 않는 한 사영기업들과의 정상적인 경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시정부가 국유기업 개혁 선도 헤이룽장성 제3의 도시 무단장(牧丹江)시에서 18㎞ 떨어진 하이린(海林)시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도시다.인구 43만명의 하이린은 전형적인 농공도시로 시가 소유한 120여개 국유기업을 99% 민영화시켰다. 조선족인 황련하(여·40)부시장은 “생산력 증대를 위해 2001년 시범적으로 5개의 국유기업을 민영화했고 성과가 좋아 올해 120개 가운데 부실한 3개만 남기고 모두 사영기업으로 전환시켰다.”고 밝혔다.하지만 민영화는 시작일 뿐 목표가 아니다.황 부시장은 “노후설비를 교체하고 선진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고 하이린시 자체로는 역부족”이라고 털어놓았다. 후춘리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업발전연구소 부소장은 “무조건 사영기업화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고 선진기술과 자본을 갖춘 외자기업들과 접목시키는 것이 동북 3성 개발의 주요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이 때문에 하이린시는 투자 안내 책자에 외국인 투자자를 황제로 모시겠다고 아예 못박을 정도로 외자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주요 타깃은 한국 기업이다. ●500만위안 이상 외국투자자 공장부지 무상제공 현재 개발중인 산업단지 명칭을 아예 ‘중·한 경제기술개발구’라고 했을 정도다.지난달 29일 울산·울진에서 온 한국의 중소기업인들을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갖고 500만위안 이상 투자자에 대해 공장 부지 무상제공이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하이린 이외에도 동북 3성의 주요 도시들은 외국 투자기업에 대해 싼값에 토지를 공급하고 최고 10년까지 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지는경제개발구를 곳곳에 만들었다.다롄 경제개발구의 경우 494개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며,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만도 11만명에 달한다. 동북 3성 국유기업 개혁의 주요 수단은 외자유치다.첨단기술을 습득하고 선진 경영기법까지 전수받겠다는 전략이다.외자유치를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유기업이 바로 디이자동차(第一汽車) 그룹이다. 지린성 창춘시에 위치한 디이자동차그룹은 국유기업 설립 50년째인 올해 중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500대 기업(포천지 매출액 기준)에 진입했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디이자동차의 글로벌기업 도약에는 합작 파트너인 독일 폴크스바겐의 선진경영과 생산기법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디이자동차는 지난 91년 폴크스바겐과 합작 생산법인인 이치다중(一汽大衆)을 설립,창춘시를 선진 자동차 생산기지로 변모시켰다.이치다중은 설립 이후 매년 증설을 거듭해 올 생산량은 30만대,2007년 100만대 돌파가 목표다.모회사인 디이자동차는 이치다중의 모든 경영·생산 기법을 벤치마킹하며 경쟁력을 높여나갔다.장인푸(張銀福) 판공실 주임은 “디이자동차는 매년 20여명의 중간급 간부를 이치다중에 3개월간 연수보내 현장의 생산관리 시스템 등을 배운다.”고 밝혔다.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거시경제연구부 루중위안(盧中原) 부장은 “새 지도부의 경제개혁은 국유기업의 독점체제를 시장화로 전환시키고 도농간의 균형 개발을 이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oilman@ ■중처기업집단 왕장 부사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대표적 국유기업인 중처(中車)기업집단은 과거 인민해방군 소속으로 ‘놀고 먹는’ 종업원들이 수두룩하고 시장에 둔감한 전형적인 국유기업이었다. 하지만 2001년 국유자산관리 위원회 소속의 란싱(藍星)그룹으로 넘어오면서 국유기업 개혁의 성공사례로 꼽히게 됐다. 중처집단의 왕장(王璋·40) 부총경리(부사장)는 “시장 수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중국 20개 도시의 35개 공장마다 철저한 성과급을 도입해 경영 효율화를 꾀했다.”고 밝혔다. 그는 명문 칭화(淸華)대 자동차학과 석사 출신으로 10여년간 생산 현장에서일한 엔지니어다. 중처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국유기업 개혁을 진행하는가. -2001년 인민해방군으로부터 인수한 이후 2만명의 종업원 중 4000명(20?을 해고했다.중앙정부와 국유기업이 재정을 분담해 퇴직금을 마련했다.월급제도는 철저한 성과급으로 전환했고 간부들의 수도 절반 이상을 줄였다. 하지만 실업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퇴직시키지?않는다.각공장마다 생산의 적정인원을 도출해 불필요한 인원들을 새로운 사업장으로 배분했다.예를들면 자동차 생산라인의 일부 직공들을 새로 신설한 정비업체로 이동시켰다.실업자를 최대한 줄이면서 효율을 높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는가. -2001년 매출액이 4억위안(600억원)이었지만 2002년 6억위안,올해는 15억위안 달성이 가능하다.2년만에 매출액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앙정부가 구상하는 국유기업 개혁 방안은. -최근 공산당 16기 3중전대회에서 국유기업 개혁 지침이 나왔다.문어발식 경영을 막기위해 핵심사업 분야를 중점 육성하고 보조사업 영역을 서서히 줄이는 방식이다.하지만 중앙정부가 개별 국유기업에게 구체적인 경영 지침을 내리지는 않고 자체적으로 개혁에 임하고 있다. ■국유기업 실태 동북 3성의 국유기업은 전체 기업의 70%를 차지한다.중국 전체 평균(40.5%)의 두배에 육박하는 수치다.중국 지도부가 구상하는 동북 3성 대개발의 핵심이 계획경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고, 제1 목표가 국유기업의 사영 기업화다. 이 때문에 동북 3성은 앞으로 ‘철밥통’이자 부실의 대명사로 통하는 국유기업에 대해서 강도높은 개혁을 하는 한편 창의성이 뛰어난 전면적인 시장경제,즉 민간기업의 활성화에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민간기업 활성화는 중국의 대표적 고민인 일자리 창출로 노동력을 흡수하는 한편 경제발전의 걸림돌인 국유기업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16기 3중전회의에서 중국 지도부는 국유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30% 수준에서 10%대로 낮춘다는 전략을 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국유자산감독위원회 리룽룽(李榮融)주임은 “시장경제체제 정착은 물론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유기업은 향후 사영기업 체제로 경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업문제는 중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중국 정부가 부실 국유기업들을 쉽게 파산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베이징대 린이푸(林毅夫)(경제학)교수는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운수업이나 요식업,도시 환경 정비업 등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실업자들을 흡수하면서 부실 국유기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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