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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검찰 물러나라” 서늘한 날씨 속 8번째 촛불집회 (생중계)

    “정치 검찰 물러나라” 서늘한 날씨 속 8번째 촛불집회 (생중계)

    검찰청 인근 서초역 사거리 네 방향 도로 인파로 차주최 측 “참여인원 목표 달성”…“공수처 설치” 등 외쳐검찰 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 등을 두고 광장의 세 대결 양상이 격화된 가운데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또 한번 서울 서초구 검찰청사 인근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적폐청산연대)는 5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인근 도로에서 ‘제8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행사는 오후 6시부터 예정돼 있었지만 사전 집회 등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일찍부터 몰려 검찰청 주변은 물론 서초역 사거리 일대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이들은 오후 2시쯤부터 반포대로 누에다리 남쪽에 자리 잡고 앉아 사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저녁 기온은 20도 밑으로 떨어졌고, 잠시 빗방울이 날리는 등 서늘했지만 참가자들은 동요없이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 참석자들은 “조국수호,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우리가 조국이다! 정치검찰 물러가라! 공수처를 설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조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최 측은 이날 애초 참가자 수 목표치(300만명)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다만 “숫자 싸움만 해서는 시민들이 모이는 의미가 퇴색된다”며 “앞으로 추산 참가자 수는 발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집회 참석자들은 검찰이 조 장관 일가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집회에 참석한 임모(73)씨는 “검찰의 지나친 수사와 언론의 무분별한 받아쓰기 관행을 비판하려고 나왔다”며 “조 장관과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온가족이 함께 집회에 참석한 김모(38·여)씨도 “조 장관 관련 뉴스를 보면서 화가 났다”며 “조 장관과 그가 추진하려는 검찰 개혁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자 남편과 딸이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조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야당과 보수단체의 집회도 같은날 검찰청 인근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우리공화당은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서울 성모병원 앞에서 ‘조국 구속 태극기 집회’를 개최했다. 우리공화당은 매주 토요일 주로 서울역 인근에서 태극기 집회를 했으나 이날은 집회 장소를 서초동으로 옮겼다. 집회 참가자들은 스크린이 설치된 곳부터 서초동 누에다리 앞까지 반포대로 400m 구간 8차선 도로를 차지하고 ‘문재인 퇴진, 조국 구속’ 등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가 충돌하지 않도록 누에다리를 중심으로 경찰 병력을 배치했다. 또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석방 촉구대회’를,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은 오후 2시부터 동화면세점 앞에서 ‘애국자 총연합집회’를 진행했다.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지난 4일 저녁부터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효자로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與, ‘내란 선동’ 혐의로 전광훈 목사 검찰 고발

    與, ‘내란 선동’ 혐의로 전광훈 목사 검찰 고발

    더불어민주당은 4일 내란 선동 및 공동 폭행 교사 혐의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명의의 고발장에서 “피고발인은 2018년 12월경부터 현재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하고 있는 대통령의 직무를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도록 내란을 선동했으며 2019년 10월 3일 ‘청와대 진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교사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전 목사에 대해 “8월경 ‘10월 3일에 반드시 문 대통령을 끌어내야 하므로 청와대 진입을 할 것이다. 저와 함께 그날 청와대에 들어가서 경호원들 실탄 받아 순교하실 분들…’이라고 했고, 이후 10월 3일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운동본부 총괄대표’로 청와대 인근에서 ‘문재인 저놈을 빨리 끌어내려 주시옵소서’라고 참가자들에게 요구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한정 민주당 의원도 전광훈 목사 등을 내란 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함락과 문 대통령 체포 등의 사전논의 및 실행 혐의로 전 목사에 대한 고발장을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직접 제출했다. 또 이날 오후 종로경찰서에도 고발장을 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두 쪽 난 민심’ 광장의 세 대결만이 능사가 아니다

    개천절인 어제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은 물론 보수를 표방한 10여개의 시민단체와 전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종교단체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서울 도심의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숭례문에서 서울역까지 세종대로 300m 왕복 10개 차로를 대부분 채웠다. 이들은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자유한국당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를 진행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는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석 인원을 과장하는데, 저희는 실제로 200만명이 왔다”고 주장했다.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연 뒤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집회 후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고려대·연세대·단국대ㆍ부산대 등 여러 대학 학생들이 꾸린 ‘전국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 집행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총동원령을 내린 황교안 대표는 이날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게 제정신인가”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서초동에서는 ‘검찰 개혁하라’하고, 광화문에서는 ‘검찰 힘내라’며 국민들이 거리에서 자신의 요구를 목청껏 외치는 현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화와 타협 대신 조롱과 야유가 판치고, 반쪽 진실만 앞세우는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는가. 선동 정치, 아집과 불통의 정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 여야 모두 입맛에 따라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할 뿐이지 반쪽 난 민심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내년 4월 제21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진영 간의 세 결집을 노리며 국민을 동원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 표현은 보수든, 진보든 존중받아야 한다. 1인 시위는 무시하고, 100만 대형 집회의 목소리는 경청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수용의 대상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 무능에 대한 반성 없이 세 대결을 조장하는 양상은 위험천만하다. 국민이 진영으로 쪼개지면 포퓰리즘이 세력을 얻게 되고, 더 나아가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치인들이 격앙된 이념과 갈등을 내려놓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할 때다. 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 이번엔 보수의 광장… “文정권 심판, 조국 구속”

    이번엔 보수의 광장… “文정권 심판, 조국 구속”

    한국당 등 야당·보수단체들 집회 주도 靑진출 막히자 각목 휘두르다 46명 연행 대학생들 “曺 사퇴하라” 촛불집회도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범보수단체의 대규모 연합 집회가 개천절인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조 장관의 사퇴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며 정권 규탄 구호도 외쳤다. 조 장관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5일 예정돼 있어 진영 간 세 대결 양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과 보수단체들은 광화문부터 시청역까지 왕복 12차선 도로를 메우고 조 장관 반대 집회를 열었다. 서울역 앞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부터 숭례문 앞 도로 역시 참석자로 가득 찼다. 이날 집회에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 전국기독교총연합회,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 등 보수단체 수십곳과 일반 시민들도 참가해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살리자 자유 대한민국”, “문 정권 심판, 조국 구속”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국당은 이날 전체 참가 인원이 300만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규탄 집회 때 주최 측이 주장했던 참여 인원(200만명)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식 추산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집회는 조 장관 반대를 넘어 정권에 대한 분노 성격이 강했다. 충북 청주에서 왔다는 이모(50·여)씨는 “2년 동안 문재인 정권에 실망을 많이 했다”며 “온통 거짓말만 해서 이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아내, 아이 2명과 함께 집회에 온 황모(32)씨는 “부모로서 조 장관에게 가장 화나는 건 자식 특혜 의혹이다. 아이들 세대를 위해 참여했다”면서 “문 정부 이후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제가 파탄 난 걸 체감하면서 더 반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혼란도 벌어졌다. 한국당 측이 집회를 주도하며 계속 발언을 이어 가자 투쟁본부 측이 “황교안 대표 발언이 아니라면 한국당은 그만하라”, “집회를 그만두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본 집회가 마무리된 오후 4시부터 시위대 일부는 청와대로 행진한 뒤 밤늦게까지 청와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크고 작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서 청와대행을 시도하다가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히자 각목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던 탈북모자 추모 비대위원회 일부 회원 등을 포함해 46명이 혜화경찰서 등으로 연행됐다. 대학생들 역시 이날 촛불집회를 열고 조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고려대, 연세대, 단국대, 부산대생 등으로 꾸려진 ‘전국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 집행부’는 이날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발광다이오드(LED) 형태의 인공 촛불과 “평등과 공정을 외치더니 결과의 정의는 어디 갔느냐”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조 장관을 비판했다. 서울대 촛불집회 주최 측은 대학로 대신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한국당 “서초동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 광화문 총집결

    한국당 “서초동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 광화문 총집결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개천절인 3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이날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을 지나 서울역까지 왕복 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는 한목소리로 ‘조국 파면’을 외쳤다.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석 인원을 300만명 이상으로 추정했고,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200만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광화문 집회 이후 최대 인파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오는 5일 서초동에서는 2차 ‘검찰 개혁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검찰 개혁’과 ‘조국 파면’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각 지역 당원, 일반 시민 등이 대거 참여했다. 황 대표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국정을 파탄 내고 안보도 무너뜨리고 있다. 대통령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며 “(조국을) 반드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이라며 “지난번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보셨느냐. 그들이 200만이면 우린 오늘 2000만이 왔겠다”라고 말했다. ‘조국 파면’을 주장하며 19일간 이어온 단식투쟁을 이날 중단한 이학재 의원은 “문재인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며 “문재인을 둘러싸고 있는 쓰레기 같은 패거리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한국당 집회 참가자들은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문 정권 심판 조국 구속’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조국을 구속하라’, ‘조국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일부는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같은 시간 교보빌딩 앞에서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총괄 대표,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총괄 본부장을 맡은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가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를 열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이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박 전 대통령의 실수도 있었지만, 보수우파 진영 내의 분열이 결정적 원인이었다”며 “이제는 우리가 탄핵을 사이에 두고 손가락질하고, 비방할 시간도, 그럴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 문재인을 파면한다’며 자체적으로 작성한 ‘국민탄핵 결정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결정문에서 “문 대통령이 헌법 3조와 내란죄(형법 87조), 외환유치죄(형법 92조), 여적죄(형법 93조)를 각각 위반해 국헌을 문란하게 했고, 베네수엘라 좌파독재를 추종하고 반자유시장 정책으로 민생파탄죄, 좌파 우선과 분할 통치로 국민분열죄를 범했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 사회주의 개헌을 시도했고, 국가기관을 겁박해 조국 일가의 불의와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했으며, 다중의 위력 동원을 교사해 협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정권이 아니라 조직폭력 집단 같은 행태를 저지르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좌파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우리공화당은 낮 12시 30분부터 숭례문 앞에서 ‘문재인 퇴진 태극기 집회’를,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정오부터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열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이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로 광화문 남쪽광장부터 서울역 4번 출구 앞까지 세종대로 2.1㎞ 구간 10차선 도로의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대부분 구간이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또 종각역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8차로도 차량이 통제됐고 다수가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사거리 쪽으로 이동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야당·보수단체 ‘조국 사퇴’ 대규모 집회…광화문~서울역 가득 차

    야당·보수단체 ‘조국 사퇴’ 대규모 집회…광화문~서울역 가득 차

    개천절인 3일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과 보수단체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일제히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우리공화당은 낮 12시 30분부터 숭례문 앞에서 ‘문재인 퇴진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숭례문에서 서울역까지 세종대로 300m 왕복 10개 차로를 대부분 채웠다. 이들은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구호를 외쳤다. 우리공화당 측은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도 오후 1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시간 교보빌딩 앞에서는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가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쟁본부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총괄 대표,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총괄 본부장을 맡고 있다. 범국민투쟁본부 관계자는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석 인원을 과장하는데, 우리는 실제로 200만명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후 1시부터 도심에서 벌어지는 모든 집회가 투쟁본부 집회로 통일돼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에 행사 종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날 정오부터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오후 1시 50분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할 것을 권고해 참석자들이 대거 정치 집회로 이동했다.이밖에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광화문 남쪽광장부터 서울역 4번 출구 앞까지 세종대로 2.1㎞ 구간 10차선 도로의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대부분 구간이 시위 참가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후 청와대 앞까지 행진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날 집회 장소가 서울역과 광화문, 서울광장 등으로 흩어져 있어 90개 중대 5400여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재인 하야’ 전광훈·이재오, 3일 광화문서 ‘文 하야’ 투쟁대회

    ‘문재인 하야’ 전광훈·이재오, 3일 광화문서 ‘文 하야’ 투쟁대회

    李 “3일 오후 1시 정각, 1분간 경적 울리자”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해온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겸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가 오는 3일 개천절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투쟁대회를 연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원내대표 출신 5선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이 단체의 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이 전 장관은 “집회에는 100만~150만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와 인사들로 구성된 투쟁본부가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3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 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전 목사는 이 단체의 총괄대표다. 이 전 특임장관은 “투쟁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정당과 시민단체는 3일 오후 1시까지 개별 집회를 마치고 1시 이후 모든 집회는 투쟁본부와 함께하며 문재인 하야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이 전 장관은 “그날 운행하는 차량은 오후 1시 정각에 문재인 정부에 항의하는 경적을 1분간 울려달라”면서 “각 교회와 사찰, 성당도 문재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타종을 오후 1시 정각에 1분간 쳐 달라”고 말했다.이 전 장관은 “현재 참가 의사를 밝힌 종교계와 일반 시민들, 정당의 예상 참여 인원을 종합하면 100만∼15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집회 후 청와대까지 행진해 투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가인원을 100만명 이상으로 예상하는 것은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지지자 중심의 검찰개혁 촉구 집회에 주최측 추산 최대 200만명이 참가자들이 운집했다는 데 대한 상응적 숫자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日아베, 측근들 줄줄이 요직에 앉히자 관료사회 불만 ‘부글부글’

    日아베, 측근들 줄줄이 요직에 앉히자 관료사회 불만 ‘부글부글’

    “기타무라 국장은 아주 특별한 관료입니다. (물론) 외무성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요.” 지난 13일 자신의 최측근인 기타무라 시게루(63) 내각정보관을 신임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에 임명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언급은 아베 총리가 외무성보다는 자신의 가신그룹을 통해 외교·안보를 꾸려나가고 있는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사히신문은 22일 아베 총리가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측근 중심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요직을 구성하면서 정부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일선 부처에서는 경제산업성과 경찰청 출신 중심의 총리 측근 인사 행태에 불만이 나오고 있다.아베 총리는 최근 내각 개편에서 기타무라 시게루를 NSS 국장에 앉힌 데 더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막후에서 총괄해 온 경제산업성 출신 이마이 다카야(61) 총리비서관에게 정책기획 총괄담당 총리보좌관을 겸임하도록 했다. 또 내각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내각관방부장관보에 과거 자신의 비서관을 지낸 하야시 하지메(60) 전 주벨기에대사를 기용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 안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NSS의 전 간부는 아사히에 “NSS는 ‘폴리틱스’(정치)가 아니라 ‘폴리시’(정책)를 담당하는 부서”라면서 “총리의 정책방향에 문제가 있으면 ‘아니다’라고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며 가신그룹 중심의 외교·안보 인선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사히는 “NSS가 경제안보로까지 영역을 넓히면 이마이 비서관의 출신부처인 경제산업성의 관여가 한층 강해질 것”이라면서 “경제산업성의 ‘통상외교’와 외무성의 ‘외교’는 다른 것인데…”라는 정부 관계자의 우려를 전했다. 외무성에는 주요 외교정책 결정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지난 7월 1일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및 ‘화이트 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가) 제외 조치의 경우도 당시 고노 다로 외무상은 사전에 전혀 통보받지 못했고 하루 전 이를 특종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NSS 국장(기타무라) 외에 직업관료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관방부장관(스기타 가즈히로)도 경찰청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부 내 경찰의 영향력이 비대해질 것이라는 경계감이 다른 부처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리 관저의 한 간부는 최근 외무성 등 관계부처를 겨냥해 “기타무라 NSS 국장에게 정보를 올리지 않는다는 따위의 행동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개고기를 정육점에서 팔아야”

    [그때의 사회면] “개고기를 정육점에서 팔아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렀다. 1960, 70년대에 애완견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폐습이라고 공격한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로서는 이 정도의 의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부클럽연합회는 좌담회를 열어 전국의 개 153만 마리가 한 해에 곡식 89만 가마를 먹는다며 개를 기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개에게 우유나 고기를 주는 것은 일부 부유층의 몰지각상”이라고도 했다. 이에 좌담회에 참석한 교수는 “개는 음식 찌꺼기를 먹고 고급 단백질을 공급하는 막대한 식량 보급원”이라며 개 사육이 유익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개를 식용으로 지정하고 정육점에서 개고기를 팔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975년 1월 28일자). 어느 유명한 교수는 자신은 개를 먹지 않는다면서도 식용견을 대량으로 사육하면 새로운 축산업이 될 수 있다고 칼럼에 썼다. 정부는 논란에 답하듯 개가 식량을 축내므로 사육을 억제하고 대형견은 소형견으로 바꾸도록 계몽하라고 전국 시도에 ‘개 사육 억제지침’을 내렸다(경향신문 1975년 5월 27일자). 개고기 섭취는 흠이 아니었다. 1958년 초복 날 보신탕을 먹는 국회의원들의 사진이 버젓이 신문 1면에 실렸다. “개장을 먹는 자들은 출세를 못 한다지만 그것도 거짓말인가 봐”라고 썼다. 원래 개고기를 넣고 끓인 음식 이름이 개장국이었는데 1950년대 초에 보신탕으로 바뀌었다. 이는 단속을 피하기 위한 업주들의 눈속임이라고 한다(경향신문 1954년 6월 30일자). 교양인들도 개고기를 먹기에 이름을 점잖게 고쳤다는 말도 있다. 당국은 동물 보호를 이유로 겉으로는 개고기 판매를 금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유명한 애견인이었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은 개 세 마리를 남겨 두고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이듬해 스파니엘 ‘발발이’를 몰래 데려갔다. 신문의 제목은 ‘이승만씨 애견 극비리 하와이 망명’이었다(동아일보 1961년 3월 14일자). 굶주렸던 시절에는 개를 먹는다는 것을 무조건 터부시할 수 없었다. 어떤 교수는 칼럼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과 굶어 쓰러진 옆집의 동족을 외면하고 개에게 쇠고기를 먹이는 사람과는 과연 어느 편이 정말 야만일까”라고 물었다. 정부가 개고기를 식용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사이 서울시가 개고기를 식품으로 인정하고 무허가 보신탕집에 등록증을 발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들이 개고기를 먹고 있는데 양성화시키지 않는다고 보신탕집이 문을 닫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손학규 “문 대통령과 조국, 노무현 전 대통령 무시하고 거부해”

    손학규 “문 대통령과 조국, 노무현 전 대통령 무시하고 거부해”

    바른미래당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손학규 대표는 연설을 통해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을 거론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는데, 조 장관과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무시하고 거부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또 “문재인 정권에 레임덕이 찾아와 검찰이 말을 듣지 않고 조 장관을 조사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조 장관 임명으로 국론이 얼마나 분열됐느냐”라며 “그 책임은 문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호 최고위원은 “조 장관은 대한민국 5천만 국민 중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가장 부적절한 사람”이라며 “능력, 자격, 명분 아무것도 없다. 더 우기지 말고 내려오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임재훈 사무총장은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왜 하야를 했느냐.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조 장관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회에는 바른미래당 추산 500명이 참석했다. 손 대표는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 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현장영상] 김문수, 청와대 앞에서 삭발

    [현장영상] 김문수, 청와대 앞에서 삭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촉구를 위한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 11시 그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 상임고문인 이재오 전 의원과 박대출·윤종필 한국당 의원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삭발을 시작했다. 삭발에 앞서 김 전 지사는 “단식도 많이 했지만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는 제 마음이 비통하다”며 “제가 나라를 위해 산 사람인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무력하고 힘들어서 오늘 99일째 단식 문재인 하야투쟁에 동참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마침 어제 황교안 대표가 상당히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역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가 머리 깎는 것을 보았다”며 “저도 어제 같이 깎으려고 했는데 당 사정으로 못 깎고 오늘 깎는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는 “지금 나라도 망가졌고 언론도 망가졌다. 검찰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당은 더 강력한 투쟁으로 문재인을 끌어내고 조국을 감옥으로 보내는데 더 힘차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국당에 입당한 후 저도 너무 안락한 생활을 해 와서 웰빙 체질이 되고 있다. 반성한다”며 “이 나라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어린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 머리밖에 깎을 수 없는 미약함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황교안, 서울역서 ‘조국 철회’ 1인 시위 “文정권 광기 물리칠 것”

    황교안, 서울역서 ‘조국 철회’ 1인 시위 “文정권 광기 물리칠 것”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추석 연휴 첫날인 12일 서울역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폭정과 야만, 광기를 반드시 물리치고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6시 서울역 1층 대합실 인근에서 ‘조국 임명, 철회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손팻말을 들고 1시간가량 홀로 시위를 펼쳤다. 황 대표는 오가는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거나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별도의 공개발언은 하지 않았다. 오가는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조국 임명 철회하라’, ‘문재인은 하야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군복 차림의 한 시민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황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서는 전희경 대변인과 이학재 의원 등이 함께 나왔다. 소규모 경찰 인력도 나와 비상 상황에 대비했다. 황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흔들리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선적이고 불의한 문재인 정권을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추석이 이렇게 흉흉했던 적이 없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국민연대’의 힘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몸으로 투쟁하고, 전략으로 투쟁하고, 정책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시인의 민주주의

    [황규관의 고동소리] 시인의 민주주의

    4·19혁명에 김수영이 얼마나 몰두했었는지는 다시 말하기가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의 지나친 열기를 의도적으로 식히기 위해 도봉산 기슭에 있는 동생 집에 가서 2~3일 농사를 짓다 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가슴은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으며, 결국 1년 뒤에 반혁명으로서의 5·16쿠데타가 터지고 말았다. 물론 김수영은 4·19혁명이 자신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현실과 자신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급기야는 “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 묻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깊은 ‘고독’을 느꼈던 걸까? 그 해답은 구체적으로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수영은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다”고 외쳤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이 갖고 있는 낭만성에 취해 김수영이 생각하고 있던 혁명의 ‘내용’을 잊고는 한다. 사실 이 작품은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같은 구절에서 드러나듯 구체적인 생활의 감각에서 시작됐다. 다시 말해 작품 안에서도 직접적으로 진술되지만, 누군가는 배불리 먹고 누군가는 곯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5·16쿠데타의 충격으로 훗날 김수영의 혁명은 추상화되고 대신 ‘언론의 자유’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최소한 4·19혁명 시기에 김수영이 생각한 민주주의는 그의 일기에도 썼듯이 “무지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김수영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혁명을 ‘이만하면’의 울타리에 가두고 만족하려는 세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생각들이 일반화되기 시작됐음을 알고 절망했다. 이제 자신의 혁명을 밖에다 대고 말하기조차 괴롭게 된 것이다. 그 답답한 심정이 ‘중용에 대하여’에 나타나 있다.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의 때묻은 혁명을 위해서/어차피 한마디 할 말이 있다/이것을 나는 나의 일기첩에서/찾을 수밖에 없었다” 김수영의 시가 현실에 대해 내향적이 돼 가는 시작은 이런 절망에서 찾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듯 김수영은 ‘혁명’을 자신의 민주주의를 “일기첩”에나 적어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답보다 죽은 평화다 나타다 무위다” 슬그머니 덧붙인다. “‘중용이 아니라’의 다음에 ‘반동이다’라는 말은 지워져 있다” 김수영에게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 ‘이만하면’은 기실 “반동”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시인의 정치의식과 작품은 별개이거나 최소한 서로 독립적인 자리를 차지한 채만 영향 관계가 가능하다고 본다. 정치‘의식’이 문학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비평가들은 복잡한 시인의 내면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시와 정치의 관계를 떼어 놓고 싶은 보수적인 무의식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을 쓰고 난 다음날 일기에 메모 하나를 남기는데, 위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유아적인지를 이미 예견했던 것 같다. “‘4월 26일’ 후의 나의 정신의 변이 혹은 발전이 있다면, 그것은 강인한 고독의 감득과 인식이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여기서 ‘4월 26일’은 이승만이 하야한 날이다.) 시인은 사건의 ‘자식’이 됨으로써 “정신의 변이 혹은 발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자식’이 되느냐는 것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강도(强度)에 달려 있으며, 그 강도는 시인 자신의 평소 꿈과 바람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여기서 4·19혁명 이전 김수영의 내면과 정신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자리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짧게 말해 둘 것은 서강으로 삶의 터를 옮긴 후 그의 내면은 점점 햇볕에 검게 그을려졌는데(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웃들의 삶과 함께 뒤섞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이게 시의 정치의 시작이며 전부라고 본다. 시의 정치는 현실 정치를 초월하지도 않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예속되는 것도 아니다. 김수영의 말에 의지하자면 “큰 눈으로 작은 현실을 다루”는 것인데, 나는 이 말을 이상을 품은 채 현실의 복잡한 맥락들과 쟁투하는 것이라 해석하곤 한다. 그래야 새로운 언어도 가능할 테니까.
  • 日언론, ‘조국 임명’→‘한일관계 더욱 악화’ 자의적 해석에 열올려

    日언론, ‘조국 임명’→‘한일관계 더욱 악화’ 자의적 해석에 열올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불거진 한국 내 논란에 대해 지나칠 만큼 높은 관심을 보여온 일본 언론들이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한 데 대해 ‘의혹의 측근‘, ’임명 강행’ 등 표현을 쓰며 비판적인 보도 행태를 보였다. 일부 언론들은 조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일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자국 정부의 무역보복에서 촉발된 한일 갈등과 엮어 풀이했다. 우파를 대변하는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대일 강경대응 심화될 우려’라는 서울발 해설 기사에서 “문재인 정권은 내년 봄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지지층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일본에의 양보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요미우리는 “문 정권이 대일 강경자세를 취하는 것은 지지층인 좌파의 뿌리깊은 반일 감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무당파층인 젊은이들이 조 장관 임명에 반발하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 지지층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 일본에의 대결 자세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극우 기반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조 장관 임명을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연결지어 아전인수격 논리를 폈다. 산케이는 “이번 혼란을 초래한 것은 문재인 정권에 의한 ‘사법의 자의적 운용’으로, 징용 문제에서의 (한국의) 불합리성과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은 ‘법의 지배’라는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TV아사히 ‘와이드 스크램블’, TBS ‘히루오비’ 등 민영 방송사들의 낮시간 와이드쇼 프로그램들은 이날도 한반도 전문가 등을 패널로 불러 수십분에 걸쳐 문 대통령과 조 장관 및 이번 갈등을 둘러싼 한국 내부상황에 대해 ‘옐로 저널리즘’(선정적 흥미 위주 보도)에 기반해 부정적인 내용들을 내보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와 절친한 하야카와 히로시가 회장으로 있는 TV아사히 와이드 스크램블은 연일 한국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을 펴고 있는 조선족 출신 귀화 일본인 리소테쓰(한국어 발음 이상철) 류코쿠대 교수를 이날도 해설자로 등장시켰다. 리소테쓰는 산케이에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한 조치는 한일 관계 정상회의 첫걸음’이라는 칼럼을 내보내는 등 일본 극우의 시각에서 한국에 대해 망언에 가까운 언설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와이드 스크램블은 지난달 19일에는 평론가 구로가네 히로시가 생방송 중 메모 카드에 ‘단한’(斷韓·한국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이라고 쓰고 한일 국교 단절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시청률 민방 2위인 TV아사히의 간판 뉴스쇼 와이드 스크램블은 지난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서 출생했다고 전하는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황교안 ‘文탄핵’ 언급 손학규에 “조국 파면 국민연대 힘 합치자”

    황교안 ‘文탄핵’ 언급 손학규에 “조국 파면 국민연대 힘 합치자”

    손학규 “12일부터 ‘조국 임명 철회’ 요구 촛불집회”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딸 논문’ 등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것과 관련해 ‘탄핵’을 언급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힘을 합치자며 손을 내밀었다. 황 대표는 “조국 파면과 자유민주 회복을 위한 국민연대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의 독선과 이 정권의 폭주를 막아내려면 결국 자유민주의 가치 아래 모든 세력이 함께 일어서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은 조국 임명 폭거를 통해서 국민과 맞서겠다고 선언했고, 야당을 밟고 올라서 독재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면서 “자신과 한 줌 주변 세력을 위해 자유와 민주, 정의와 공정을 내던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 아이들을 반칙과 특권, 불의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면서 “뜻을 같이하는 야권과 재야 시민사회단체, 자유시민의 힘을 합쳐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살려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 대표는 “조국 파면과 문 대통령의 폭정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 싸워 이겨야 한다”면서 “조국 파면과 자유민주 회복을 위한 국민연대가 마지막 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황 대표는 회견 직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찾아가 비공개 회동을 하며 조 장관 파면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황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손 대표는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해 반대하는 뜻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뜻을 같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상의했다”면서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조국 파면이기 때문에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정당이 함께 힘을 합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고 전했다. 황 대표는 특검과 국정조사 협력에 대해서는 “잠시 뵙고 큰 방향에 대해 말씀을 나눴으며, 앞으로 추가적인 논의를 해보기로 했다”면서 “자세한 내용은 진행 과정을 통해 진전시켜 나가겠다”고 답했다. 전날 손 대표는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탄핵돼 감옥에 들어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조 장관 임명을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며 탄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했다. 한편 손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임명 철회’ 결단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촛불집회에서 탄핵 요구 등이 나올 것에 대해 “지금은 탄핵이나 하야 등을 요구하기보다는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손 대표는 “많은 사람은 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지만 저는 아직은 기도할 때라고 생각해 촛불집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12일부터 추석 전야제 성격의 촛불집회를 할 것”이라면서 “우리의 작은 기도가 횃불이 돼 나라를 밝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문 대통령을 향해 “어쩌자고 이러시는 겁니까. 결국 조국이라는 폭탄을 껴안고 국민과 싸우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면서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되겠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아직도 변호사입니까”라고 물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日아베에 충성” TV 책임자, 女아나운서 등 십수명 성폭력 발각

    “日아베에 충성” TV 책임자, 女아나운서 등 십수명 성폭력 발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충성을 바쳐온 일본 방송사 간부가 아나운서 등 여성 직원 십수명에게 성추행·성희롱을 일삼아온 사실이 발각됐다. 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민영방송사 TV아사히의 뉴스 프로그램 ‘보도스테이션’의 책임프로듀서(CP) A씨가 지난달 말 징계위원회를 통해 프로그램 하차와 함께 ‘근신’ 처분을 받았다. 경력 27년의 베테랑 프로듀서인 A씨는 현장 총괄 책임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아나운서를 포함한 십수명의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거나 몸을 만지고 껴안는 등 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밥을 먹던 30대 아나운서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하기도 했고 여성의 집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아내와 자녀가 있으면서도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성추행이 일상화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이 지난 5월 회사에 A씨의 성폭력을 알렸지만 진상조사나 징계 등 조치는 전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한 주간지에서 이를 상세히 보도하자 TV아사히는 뒤늦게 A씨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7월 아침 정보 프로그램 ‘굿! 모닝’에서 야간 뉴스 프로그램인 ‘보도스테이션’으로 이동한 이후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하지 말라”고 제작진에게 지시하는 등 정권 옹호를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베 총리와 절친한 사이인 하야카와 히로시 TV아사히 회장의 최측근으로 스스로 “나는 하야카와 회장에 의해 발탁된 사람”이라며 행세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시청률 기준 민방 2위인 TV아사히는 지난달에는 오전 뉴스 생방송 ‘와이드 스크램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서 출생했다고 전하는 대형사고를 치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道 깨치는 3칸 전각… 자연 담는 7칸 누각

    道 깨치는 3칸 전각… 자연 담는 7칸 누각

    2019년 7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드디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도 영향력이 있는 한국 성리학의 문화적 증거이며, 그 변화의 역사적 과정을 보여 준다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상은 총 9곳으로 대구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등이다. 이 가운데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서원건축의 특징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례이다. 여기에 모신 이황과 류성룡은 사제지간으로, 두 서원은 퇴계학파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정신적인 건축이기도 하다.●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 성리학의 체계를 구축한 최고의 학자지만, 조선 성리학의 위대한 5인으로 꼽은 ‘동방5현’ 순위는 다르다. 유명 서원에 모셔 기념하고 있는 이들은 김굉필(도동서원), 정여창(남계서원), 조광조(용인 심곡서원), 이언적(옥산서원), 그리고 도산서원의 이황이다. 이 순위는 시대적 순서이기도 한데, 이언적까지는 성리학의 도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건 개척자요 순교자라 할 수 있다. 반면 이황은 이들이 구축한 토대 위에서 성리학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실천적 방향을 제시한 완성자이다. 또한 이후의 성리학자들은 거의 이황의 제자라 할 만큼 거대한 퇴계학파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총 14동이나 되는 도산서원의 건물들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것은 퇴계가 직접 지은 도산서당이다. 그는 잠깐 성균관대사성 등의 관직에 있었으나, 정치보다는 학문과 수양에 뜻이 있어서 20여 차례 관직 사퇴와 거절을 되풀이할 정도였다. 고향에 내려와 환갑 무렵에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지었다. 퇴계는 말년까지 이곳에 거하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도산서당은 퇴계사상의 핵심인 깨어 있음, 한적함, 실용적 실천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집이다. 이 집은 퇴계가 직접 설계도까지 그렸다고 전한다. 그 설계도는 없지만 설계 개념과 내용을 공사담당자에게 설명한 편지가 남아 있다. 그는 “군자의 집은 3칸이면 족하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거하는 방 한 칸, 제자를 지도하는 마루 한 칸, 그리고 불을 때는 부엌 한 칸. 이 최소한의 건축은 몸과 마음을 깨어 있게 한다. 그러나 도산서당은 실제로 3칸이 아니다. 부엌은 반 칸을 늘렸고 마루는 아예 한 칸을 더 확장했다. 결국 4.5칸이지만 퇴계는 3칸의 제도를 따랐다고 주장한다. 확장부의 지붕은 한 단 낮게 붙인 눈썹지붕이고 마루도 듬성한 줄마루를 깔았다. 정식 건물이 아니라는 강력한 차별이다. 즉 본질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필요에 따라 확장하고 변형한다는 실용적인 실천이며, 원칙에만 집착하지 않는 한적한 여유다.옆에 있는 농운정사는 몸체 양쪽으로 날개가 붙은 공(工)자형 각기 방·마루·부엌을 가진 두 기숙사가 대칭으로 붙은 꼴이다. 이 집 역시 이황의 설계 작품으로, 완전한 대칭 같지만 동쪽 방의 문은 두 짝이고 서쪽 방은 외짝으로 차별을 두었다. 같음 속에 다름을 둔 실용적 변용이 번뜩인다. 퇴계가 죽은 후, 쟁쟁한 제자들은 선생을 기념하고 퇴계학파의 근거지가 될 서원 건립을 논의한다. 논쟁과 숙고 끝에 선생의 마지막 서재인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건립하기로 한다. 6년 후인 1576년, 드디어 도산서원이 완공됐다. 마치 선생이 앞에 앉고 제자들이 뒤에 둘러선 모습의 건축적 집합체를 이루었다. 도산서원의 주인은 영원히 퇴계이기 때문이다. ●서애 류성룡과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1542~1607)은 퇴계의 수제자지만, 재야 선비를 고집한 스승과 달리 평생을 관료와 정치인으로 살았다. 임진왜란 이태 전인 49세에 우의정과 이조판서를 겸직한다. 이때 이순신을 수군사령관으로, 권율을 육군사령관으로 발탁한다. 전쟁이 터지자 서애는 영의정까지 올라, 명나라를 참전시키고 승군을 일으키는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인다. 서애가 없었다면 과연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서애가 없었으면 이순신도 권율도 없고, 명나라의 원병도 의승군도 없었을 것이다. 시기 세력의 탄핵을 받아 종전 직전에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에 낙향, 은거하면서 지은 책이 그 유명한 ‘징비록’이다. 임진왜란의 원인과 참상을 “회고하고 반성하여 앞으로 잘못을 되풀이 않도록 경계한다”는 게 ‘징비’의 의미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종전과 동시에 하야했고,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지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애는 조선의 처칠이었다.서애의 근본은 성리학자다. 관직 생활 틈틈이 고향의 풍악서당에서 제자를 양성했으며 하회마을에 원지정사를, 건너편 부용대에 옥연정사를 지어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서애가 죽은 후에 제자들은 풍악서당을 중건하고 위패를 모셔, 1614년에 병산서원을 창건하게 된다. 오랜 관직생활 때문에 서애의 제자는 많지 않다. 또한 도산서원에 비하면 건축적 규모도 작고 정치적 위상도 높지 않았다. 창건 후 250년이 지난 1863년에야 비로소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러나 병산서원은 서원건축의 백미이며 현대 건축가들이 최고의 한국 전통건축으로 꼽는 명작이다. 넓은 백사장에 흐르는 낙동강변, 앞으로 병풍같이 펼쳐진 병산을 바라보며 서원은 자리잡았다. 밖에서 보면 7칸의 기다란 누각, 만대루가 가로막아 서원 전체 모습을 알 수 없게 방해한다. 이 누각은 서원의 여러 모임을 열었던 곳으로, 위아래층이 모두 텅 비어 있다. 서원의 전모를 보려면 안으로 들어가 강당인 입교당 대청 중앙에 앉아 밖을 내다보아야 한다. 텅 빈 만대루를 통해 낙동강의 흐름이 들어오고 누각 지붕 위로는 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 있다. 만대루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강·사람의 수직적인 천지인 경관으로 나눈다.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며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바로 그 자리다. 주인이 보는 이 장면이 바로 서원의 정면이다. 만대루에 오르면 더욱 감탄할 경관을 대하게 된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과 앞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누각의 기둥들이 수평으로 나누고 연결시킨다. 그야말로 7폭의 자연 병풍을 만든 것이다.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 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 그림으로 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 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존현과 천일합일, 서원건축의 의미 퇴계는 서원운동의 개척자요 주창자였다. 한국 최초의 서원은 알려진 대로 1542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1550년 후임 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서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국가적 차원의 교육기관으로 승격시켰다. 임금이 서원의 간판을 하사하는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어 소수서원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전국적인 서원 건립이 촉발되어 전성기에는 700여개에 달하는 서원이 운영됐다. 서원의 목표는 성리학의 전사를 양성하여 이상사회를 여는 것이었다. 핵심 교육방법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존현’이었다. 그래서 서원 건축은 선현 제사를 위한 사당과, 강학을 위한 강당으로 구성된다. 퇴계가 정착시킨 시스템이며 도산서원은 그 완전한 모범이다. 성리학적 진리의 시작과 끝은 결국 자연이기에, 자연과 일체가 되는 ‘천일합일’의 경지가 수양의 목표가 된다. 서애는 생전에 하회에 원지정사를 지어 병산서원의 원형을 보여 주었다. 학문을 닦는 서재 옆에 텅 빈 작은 누각을 두었다. 징비록을 저술한 옥연정사는 강과 산의 자연 속에 파묻힌 서실이다. 서애는 자연을 떠난 학문을 인정하지 않았고, 제자들은 그 결정판을 병산서원에서 완성했다. 서원은 존현을 통해 스승과 제자가 하나가 되고, 천인합일을 통해 자연과 일체화하는 수양의 장소였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카지노 빗장 풀린 日 열도… 오사카 등 주요 지자체 유치전 치열

    카지노 빗장 풀린 日 열도… 오사카 등 주요 지자체 유치전 치열

    입장횟수 제한 등 도박중독 방지책 마련 지자체 “인구감소로 지방재정 악화 우려” 주민들 정선 카지노 제시하며 거센 반대일본의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카지노 유치 경쟁에 안팎으로 들썩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역 활성화와 관광산업 발전 등을 내세워 처음으로 전국 3곳에 카지노 사업 허가를 내줄 예정인 가운데 지자체들의 유치 노력은 점차 본격화되고 해당 지역 내 주민들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는 이중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통합형 리조트’(IR)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일본에는 2025년까지 전국 3개 지자체에 카지노형 리조트가 건설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국제회의장과 전시장, 호텔, 극장 등으로 구성된 IR 시설을 만드는 데 따른 건설비 등 지자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카지노를 허용했다. 일본에서 사행성 게임인 ‘파친코’는 성업 중이지만 도박성과 중독성이 강한 카지노는 그동안 철저히 금지돼 왔다. 일본 정부는 내국인의 카지노 입장 횟수를 1주일에 3회, 1개월에 10일까지로 제한하고 하루 6000엔(약 6만 9000원)의 입장료를 받는 규정 등 도박중독 방지책을 마련했다. 최초의 카지노형 리조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도쿄에 이은 두 번째 대도시인 오사카(오사카부)와 세 번째 도시 나고야(아이치현) 등 주요 지자체가 적극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도박중독, 치안 악화 등 예상 가능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사카부와 아이치현 외에 와카야마현, 나가사키현, 홋카이도 등이 카지노형 리조트 유치 경쟁에 나섰다. 오사카부는 지난 2월부터 카지노형 리조트 건설 사업 후보자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2025년 오사카 세계박람회에 앞서 2024년쯤 완공을 목표로 정부에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아이치현은 나고야 주부공항 인공섬을, 와카야마현은 와카야마시의 인공섬을 후보지로 카지노 유치를 추진 중이다. 프랑스의 대형 카지노 업체가 이미 와카야마 시내에 사무소를 여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가사키현은 사세보시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홋카이도는 항만공업도시 도마코마이를 중심으로 사업계획서를 짤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요코하마시(가나가와현)가 카지노형 리조트 유치를 선언하면서 다른 도시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도쿄 인근의 대도시라는 점 등에서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주요 도시들이 잇따라 카지노형 리조트 유치에 나서는 것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에 따라 이대로는 지역의 미래가 어둡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하야시 후미코 요코하마시장은 “올해를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로 돌아서면서 시의 재정이 점차 빠듯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사업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그러나 지자체장들의 유치 열정과 달리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형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도박을 자기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대한 거부감이 우선 강하다. 일부에서는 반대의 근거로 한국 정선 카지노 사례까지 제시하고 있다. 요코하마시의 경우 시민의 94%가 반대하고 있다. 리조트 건설 후보지로 거론되는 야마시타 부두의 항만 사업자들도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와카야마현이 지난 5월 변호사와 도박중독 전문가들을 모아 카지노 부작용 방지 협의체를 만들기로 한 것도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곧 카지노의 규제·감독을 담당할 ‘카지노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기본 운영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갈수록 하락하는 성장의 활력을 카지노를 통해서라도 되살려 보려는 지자체장들과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 간 갈등은 유치 신청이 본격화하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회담은 한국이 승전국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 참가가 좌절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대일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하자, 조약에 일본과의 양자협의를 개최할 수 있는 근거(제4조 a항)와 일본의 한국 내 재산의 포기를 확인하는 조항(4조 b항) 등을 추가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제4조 a항은 ‘재산 및 채무를 포함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과의 특별협정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주선으로 마련된 예비회담이 1951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최고사령부에서 시작되었고 중단에 중단을 거듭하다 7차 회담을 통해 1965년 6월 22일 마무리됐다.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이 체결됐다.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이다. 양국 국회에서 비준된 뒤 1965년 12월 18일 양국 정부가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됐다. 이날부로 양국 국교가 재개되었고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1차 회담(1951~1952년) ‘대한(對韓)청구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은 ‘법령 33호’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 정부와 기관 등의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을 전부 몰수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11일 한국 정부와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을 체결하고 인계했다. 회담이 시작되고 일본은 1907년 헤이그 조약 46조의 ‘사유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역(逆)청구권을 주장했다. 일본은 패망 시점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을 702억여엔(당시 환율로 대략 47억 달러)으로 집계해 이 재산으로 한국의 대일청구를 상쇄하고 연합국 배상에도 충당하려 했다. 역청구권 주장이 계속되자 한국은 “일본이 청구권을 철회하지 않는 한 회담은 계속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고, 일본은 무기연기를 제의했다. ●2차 회담(1953년) ‘어업 문제’로 인해 일본은 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1차 회담이 시작되기 1개월 전 이승만 대통령은 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침범한 일본 어선을 ‘마구잡이’로 나포했다. 일본은 나포된 어선과 선원들을 송환받기를 원했다. 1953년 4월 15일 도쿄에서 열렸지만 일본은 이승만 라인의 철폐를, 한국은 일본의 대한청구권 주장의 철회를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기본관계 ▲재산청구권 ▲재일한인의 국적 처우 ▲어업 ▲선박 등에서 5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돌아가던 중 6·25전쟁 휴전이 성립되자 서로 회담을 뒤로 미루기를 원했다. ●3차 회담(1953년) 구보타 망언 파문으로 양국 간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회담이 장기간 표류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시혜론’이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일본 측이 역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자 재산청구권 위원회에서 한국 측 홍진기 대표가 “일본이 36년간의 축적을 반환하라고 한다면, 36년간의 피해를 상각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일본 측 구보타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민둥산을 녹화한 일, 철도를 깔고 항만을 건설하고 논을 조성한 일, 대장성이 1000만~2000만엔을 지출해 한국 경제를 배양한 일을 한국 측 요구와 상쇄했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한반도에) 일본이 가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들어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선언에서 사용된 ‘조선인의 노예 상태’라는 단어는 연합국이 전시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도 했다. 회담은 개시 2주 만인 10월 21일 결렬됐다. ●4차 회담(1958~1960년) ‘재일조선인’의 북송 문제가 파란을 일으킨 회담이었다. 앞서 회담 휴지기에는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1954년 구보타 망언이 철회되었고, 미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일본이 역청구권을 포기한다. 한일회담에서의 최초의 합의였다. 문화재도 일부 ‘인도(반환이 아닌)되었다. 1958년 4월 15일 회담이 개최되었지만 6월 북한과 일본이 북송에 합의하자 한국은 한일무역을 단절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적극적 중재와 양측의 필요성이 회담을 추동해 4차례 본회의를 열었으나 1960년 4·19혁명과 대통령의 하야로 회담은 보류됐다. ●5차 회담(1960~1961년) 경제협력 방식을 통한 청구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일본이 본격 제기했다. 한국은 이 방안은 수용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 관련 회담에는 응했다. 장면 내각은 적극적인 대일 정책을 천명했다. 한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도 1950년대 호황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을 생산기지 겸 시장으로 바라보고 경제협력 구축의 필요성을 느꼈다. 1960년 9월 6일 일본 외상이 친선사절단으로 방한,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해방 후 일본 고위관리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5차 회담은 5·16을 맞으면서 중단된다. ●6차 회담(1961~1964년) ‘김·오히라 메모’로 청구권의 액수와 공여 방식을 결정했다. 앞서 양국은 실무협상만으로는 타결이 어렵다고 보고 고위급 정치회담을 개최, 1962년 3월 최덕신 외무장관·고사카 외상 간 이른바 제1차 정치회담을 열었다. 이때 청구권 금액은 한국 7억 달러 대 일본 7000만 달러(차관 2억 달러 제시)로 편차가 컸다. 1962년 10~11월 2차 정치회담에서는 김종필 부장과 오히라 외상이 만났다. 앞서 배의환·스기 수석대표 간 10차례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해 상대방이 염두에 두고 있는 수치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메모는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자금협력 1억 달러+@’로 정리되었다. 김·오히라 메모 합의 후 오히라 외상은 그 명목을 “한일국교 정상화를 축하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라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은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을 위한 자금으로 할 것을 회담 내내 고집했다. ●7차 회담(1964~1965년) 회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2년 반이 더 소요됐다. 어업 문제, 기본조약 문제 등 나머지 현안에 대한 교섭이 남아 있었는데 일본은 특히 어업 문제를 청구권 문제의 미해결 사안과 연계시켰다. 1963년부터 김·오히라 메모에 대한 극심한 반대로 한국이 큰 혼란을 겪은 탓도 컸다. 1964년 12월 7차 회담이 재개되었다. 1965년 2월 17~20일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김포 도착 성명에서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고 한 것은 회담 타결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었다. 일본은 조인식 직전까지 몇몇 표현에 집착했다. 예컨대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거부했고, ‘문화재’라는 명칭을 피하려 ‘문화상 협력에 관한’이란 표현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 협정’ 등의 이름으로 타협됐다. 6월 22일 이동원 장관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 2개의 의정서에 조인한 뒤 총 27건에 이르는 조약, 협정, 부속문서가 조인되거나 교환됐고 각각 국내 비준절차를 거쳐 12월 18일 발효되었다. jj@seoul.co.kr
  • “재규어 아니라 BMW가 생일선물이라니” 운하에 밀어버려

    “재규어 아니라 BMW가 생일선물이라니” 운하에 밀어버려

    아버지로부터 생일 선물로 BMW 승용차를 받은 청소년이 재규어가 아닌 데 격분해 운하에 밀어버렸다. 이 믿기지 않는 얘기는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인도 하야나주 야무나나가르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방 지주의 아들로 알려진 이 청소년은 새 차를 강물에 빠뜨린 뒤 동영상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인도는 마침 몬순 기간으로 여러 곳에서 물난리를 일으킬 정도로 강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차가 강 한가운데 수풀이 우거진 곳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자 이 청소년은 잠수부 등을 고용해 차를 건져내려 애썼다. 현지 경찰은 불어난 강물에서 이런 위험한 작업을 하게 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입건했다. 하지만 차 안에 아무도 있지 않았으며 부모가 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경찰이 구금하지는 않았다고 ANI통신은 전했다. 경찰은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10일 밝혔다. 문제의 차는 BMW 3-시리즈거나 5-시리즈인 것으로 보이는데 350만 루피(약 6000만원)이며 재규어 승용차는 400만~500만 루피 정도 된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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