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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 변호인단 전격 법정퇴정/“하야위로금 제공” 검찰신문 발단

    ◎변론권제한에 재판부 원색비난/“「검은돈」 발견된 후 반격카드” 해석 전두환 전 대통령측이 검찰신문 및 재판부의 재판진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양우·전상석 변호사는 5차 공판이 열린 21일 하오 6시쯤 『전직 대통령과 국민을 모독하는 법정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법정퇴정을 전격 선언했다. 변호인단의 재판거부는 지난 70∼80년대의 시국사건에서는 비교적 「흔한」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없다. 직접적 발단은 전씨가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하야 위로금으로 1백75억원을 주었다는 검찰신문에서 비롯됐다.이른바 「조명작전」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야사」다. 전씨는 이에 『대통령직을 돈으로 주고 산다는 얘기인 모양인데,증거가 있으면 대라.최 대통령 본인에 대한 모독이요,전 국민에 대한 수치』라고 발끈했다.변호인단도 가세했다.이양우 변호사는 『검찰이 3류 잡지에 난 글을 인용해 마치 사실인 양 신문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변호인단은 이어 재판부에 공판중지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판부도 공격했다.이변호사는 『변론권을 제한하는 재판정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뒤 일방적으로 법정을 나가버렸다. 전씨측은 법정 밖에서 『재판부 기피신청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도 덧붙였다.전씨측의 「강공」은 이 날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예고됐었다. 검찰신문 직전 『검찰이 수사와 관련해 시정 잡설에 불과한 뒷 얘기들을 언론에 흘려 재판부에 예단을 주고 있다』며 『재판거부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전씨측의 이같은 태도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추궁하는 검찰신문 방식을 꼬집으면서도 변호인단이 「복선」을 깔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서 현금 61억여원을 사과상자 25개에 담아 숨겼던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고,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신을 문제삼은 전씨의 옥중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검찰에 대한 「반격카드」를 내밀었다는 해석이다.〈박은호 기자〉
  • 5차공판서 새로 밝혀진 사실들

    ◎전씨,최 대통령 하야 이전 개헌연구 지시/신당 창당기금 1백억 김 부총리에 요구/김대중씨 감형조건 한·미정상회담 성사 22일 공판에서는 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과 전 피고인의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새로 밝혀졌다. 80년 3월 중순쯤 보안사의 이상재 준위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언론대책반이 이른바 「K공작」을 마련해 7개 중앙 일간지·5대 방송사·2대 통신사의 언론인 94명을 회유대상으로 선정,협조 가능한 인물과 친야 성향 인물을 분류했다. 전씨는 5월10일 일본 총리실 산하의 정보기구인 내각조사실로부터 북한이 소요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5월15∼20일 사이에 남침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첩보를 받았다.전씨는 무척 놀라 군이 난국을 수습키로 결정했다. 검찰은 이 대목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북한 남침 첩보를 이용,군이 전면에 나선다는 명분을 세운 것』으로 추정했다. 전씨는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에게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비상기구의 설치,국회해산,정치활동 금지 등 4개항의 시국수습 방안의연구를 지시했다.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에게는 학생시위의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의 체포 등 2가지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전씨는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가 열린 5월17일 상오 10시 이들 6개항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재가를 받았다.최대통령은 6가지 시국방안 가운데 국회해산만 빼고 모두 재가했다고 전피고인은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최대통령 하야 두 달쯤 전인 6월말부터 권정달 정보처장에게 국보위 법사분과 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6월20일에는 보안사령관실에서 권정달 정보처장을 중심으로 이종찬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이상재 언론대책반장등에게 신당(민정당) 창당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전씨는 초여름 쯤 김원기 부총리를 불러 『1백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김부총리는 최대통령에게 보고,국무회의를 열어 예비비에서 지원하도록 의결했다. 권정보처장은 7월 중순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장·단점을 검토한 뒤 7월 중순 보안사령관실에서 전씨에게 골격을 보고했다.노태우·이학봉·허삼수·허화평·이종찬·허문도씨 등도 참석했다.이들은 대통령 선출방법·임기·국회의원 선거구제 등을 논의,대통령은 간선제로 선출하기로 했다.전씨는 멕시코의 예를 들며 『대통령의 임기가 6년은 너무 짧으니 7년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7월30일에는 김정렬 국방부장관이 최대통령을 만나 5시간동안 하야를 결심하도록 설득했다.김장관은 자정 무렵 귀가,전씨에게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었다.피고인들은 지금까지 최대통령이 전씨에게 대통령직을 이어받도록 권유했다고 주장했었다. 81년 1월초 김대중씨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노태우씨는 감형을 조건으로,미국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한 직후 전씨와 정상회담을 갖도록 제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일본에 대해서는 1백억달러의 차관 제공을 요구하자고 했다.정호용씨가 특사로 미국에 파견돼 레이건 당선자측과 협상했다.〈박상렬 기자〉
  • 「시국수습안」 전씨가 지시/검찰 「K공작」사본 제시

    ◎최 대통령 하야 강권/12·12 5·18 5차공판 12·12 및 5·18사건의 5차 공판이 22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검찰직접신문이 진행됐다. 전피고인은 이날 『80년 5월10일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 등에게 국회해산 등 6개항으로 된시국수습 방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다』며 시국수습 방안의 실체를 시인했다.그러나 그것은 집권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 아니라,대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및 북한 남침설 등으로 혼란한 국내정세를 바로잡기위한 정당한 계엄 엄부라고 주장했다. 언론장악용으로 알려진 「K공작계획」의 사본을 검찰이 재판부에 제시한 뒤 『피고인이 결재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자 전피고인은 『5공 청문회 당시 K공작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으며,결재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5·17 계엄확대 이후 보도통제 지침을 시달하며 자필로 「보도처 위반시 폐간」이라고 지시한 사실은 시인하고 『보안사령과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었단고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K공작은 80년 당시 7대 중앙일간지·5대 방송사·2대 통신사의 사장·주필·논설위원·편집국장·정치부장·사회부장 등 총 94명을 회유 대상으로 선정,신군부의 정권장악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토록하는 등 언론을 조성·통제하기 위해 그 해 3월중순에 입안됐다. 하야를 거부하는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김정열 당시 국방부장관을 보내,5시간의 담판 끝에 강제 하야토록 하지 않았느냐는 신문에는 『당시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변호인 신문을 통해 답변하겠다』고만 말했다. 전피고인은 『80년 7월 보안사령관실에서 신군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안의 골격을 보고받고 대통령의 임기와 선출방법 등을 논의,임기 7년에 간선제로 의견을 좁히지 않았느냐』는 신문에는 『보고받은 사실은 있다』고 수궁했다. 검찰른 『80년 8월16일 최대통령이 하야하기 전인 6월20일쯤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 등에게 신당 창당을 지시한데 이어 6월말 국보위 법사위에서 개헌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느냐』고 추궁,신군부의 집권시나리오가 최 전 대토영이 하야하기 전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됐음을 지적했다. 전피고인은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 위로금으로 1백75억원을 주었다는 애기가 있다고 묻자 『증거도 없이 두 전직 대통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대통령으로 집권한 뒤인 80년 9월1일 이후의 일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공판에서는 전피고인을 비롯,4차 공판에서 신문을 마친 노태우·유학성·이학봉·차규헌·허삼수·허화평 피고인과 5·18 관련자인 황영시·정호용 피고인과 불구속 기소된 주영복·이희성 피고인이 나왔다. 재판부는 오는 29일 상오 전씨 비자금 사건의 3차 공판을 진행한 뒤 하오에는 이사건의 6차공판을 열 계획이나 변호인단은 재판연기 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 오늘 5·18 5차공판/전두환씨 등 2명 직접신문

    12·12 및 5·18사건의 5차공판이 22일 상오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재판에는 전두환 피고인과 황영시 피고인 2명이 출정한다. 검찰은 직접신문에서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의 작성경위와 내용,5·17비상계엄의 확대,국보위의 설치과정,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하야과정 등 12·12이후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까지 일련의 시국조치가 내란과정이었음을 집중적으로 추궁한다. 민주당이 주장했던대로 전피고인이 최 전대통령에게 하야위로금으로 1백75억원을 주었는지도 신문한다. 검찰은 「시국수습방안」을 전피고인과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작성해 최근까지 보관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황피고인에 대해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키로 결의한 과정과 「자위권」 발동 및 양민학살경위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박선화 기자〉
  • 전씨 집중추궁…내란 입증에 초점/5·18 5차공판 쟁점·이모저모

    ◎「시국수습방안」 실체 등 쟁점 6가지/최 대통령 하야 위로금설도 신문 12·12 및 5·18사건의 5차 공판은 검찰의 일방적 페이스로 진행될 전망이다. 검찰은 12·12 군사반란 이후 81년 1월24일 계엄해제까지 신군부측이 취한 일련의 조치가 내란과정이었음을 집중 추궁한다. 확실한 논점 정리를 위해 재판부와 협의해 전두환·황영시 피고인만 직접 신문한다.황피고인의 신문사항이 70∼80개인데 비해 전피고인에게 5백∼6백개가 집중됐다. 검찰은 『내란임을 규명하는 데는 전피고인이 알파요,오메가』라고 말한다.모든 사안에 전피고인이 깊숙이 개입돼 있어,내란을 입증하는 열쇠가 그에 달렸다며 단단히 벼른다. 전피고인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특유의 달변으로 5공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검찰에 맞설 것이다. 전피고인은 검찰이 흘리는 비자금 문제와 수사비화를 두고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술수라고 언짢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양측의 입장을 감안하면 법정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검찰이 꼽는 쟁점은 6가지다.전피고인이 보안사령관에 이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한 경위와 보안사가 마련한 「시국수습 방안」의 실체,국기문란자 및 소요 배후조종자 체포과정,비상계엄의 확대경위,국보위 설치과정,최규하 대통령의 하야과정 등이다. 검찰은 내란의 사실관계가 전피고인의 입을 통해 입증될 것으로 자신한다.새 사실의 규명도 기대한다.이미 권정달 당시 정보사 보안처장의 진술을 토대로 A4용지 4∼5장 분량의 시국 수습방안 작성경위와 작성자,최근까지의 보관사실을 밝혀냈다. 최대통령이 80년 7월30일 전피고인에게 대통령직 인계의사를 공식 밝히고,31일 저녁 노태우 피고인 등 신군부 장성 10여명이 공군참모총장 공관에 모여 전피고인을 대통령으로 추대한 과정도 생생히 밝혀진다. 특히 전씨가 최대통령에게 위로 하야금으로 거액을 제공했다는 설을 추궁할 예정이다.그러나 검찰은 『새로운 사실이 많지 않다』며 김을 빼기도 했다. 이번 재판은 검찰이 재판부에 낸 증거물에 있어서도 신기록을 세웠다.수사기록은 5공 전사 9권과 12·12사건 38권과 5·18사건 1백17권을 포함해 모두 16만쪽·1백55권에 달한다. 증거 목록만도 92쪽이다.쌓으면 높이 15m,무게 9백㎏에 달한다.1t 트럭으로 옮겼을 정도다.변호인용 및 보관용 자료를 포함,10질을 복사하느라 40일이 걸렸고 종이값만도 1천5백만원이 넘었다.〈박선화 기자〉
  • 일,북 긴장조성에 “위기감”/사린원료 밀수 등 겹쳐 충격 확산

    최근 북한의 동태에 대해 일본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총선이 끝나면 국교정상화교섭을 재개하고 북한 노동당의 간부를 일본으로 초청,발빠르게 북한과 접근행보를 보일 예정이었다.그러나 최근 무장병력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배치,위조달러화범인에 대한 차량편의제공,독가스제조용 화학물질밀수등 우려를 자아낼 만한 사건이 연발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이 정전협정상의 의무를 무시,무장병력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배치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대해서 겉으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크게 걱정하고 있다.우발적 사태에 대한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야시 사다유키 외무차관은 8일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서울과 북경의 대사관에 정보수집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북한에 대해서는 자제를 요청해놓고 있다.방위청도 독자적인 북한의 통신정보분석과 주일미군등을 통한 정보수집활동을 강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인도적 차원에서 쌀을 지원했는데 쌀수송선으로 규제화학물질을 몰래 실어나른 사건도 불신감을 키우고 있다.몰래 실어간 화학물질은 민간용으로도 사용되지만 지난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독가스 사린을 제조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와 관련,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정부·여당내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배신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캄보디아에서는 북한에 살고 있던 요도호 납치범 다나카 요시미(47)가 난데없이 위조달러화범인으로 체포됐다.그는 북한 관여가 짙게 의심되는 위조달러화 슈퍼K의 유통혐의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대사관 차량을 타고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 안에서는 국교정상화교섭재개등 북한과의 접촉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9일 북한의 최근 동태가 국교정상화교섭재개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비적 접촉이지만 상호신뢰하면서 협의할 상태는 현재 아니다』라고 우려를 표명,지난 3일 국교정상화교섭재개에 의욕을 보이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캄」 북한 위폐범수사 지지부진/사건 장기화 조짐

    ◎다나카 지문확인 불구 묵비권 행사/홍범 고다마 등 소재파악 못해 난항 태국에서 위조달러화를 사용한 혐의로 체포된 요도호 납치범 다나카 요시미(전중의삼·47)가 완전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다나카는 지문조회 결과 본인임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여권에 적혀 있는 「김일수」라고만 주장하고 있다.태국경찰은 그의 구속기간연장을 법원에 신청하면서 수배당시 이름인 「하야시 가즈노리」로 표기했다. 또 다나카가 캄보디아에서 북한대사관 차량을 타고 베트남으로 건너가려했던 점 때문에 북한의 관련성이 짙게 의심되고 있으나 북한의 직접 관여를 입증할 물증은 아직 확보돼 있지 않은 상태.함께 있던 북한대사관원이 소지하고 있던 3만6천달러 가운데 캄보디아경찰에 건넨 1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위조달러화일 것으로 여겨졌으나 조사결과 진짜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그밖에 위폐가 있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북한대사관은 그가 북한에 망명한 일본인으로 선의로 바래다 주려 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함께 위조달러화를 유통시켜온 것으로 드러나 미국,태국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는 「단 도 혹」,「원」,「고다마」등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다마」가 제시한 여권상 인물은 일본내 주소가 확인됐으며 원은 중국계 또는 조선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북한과 「형제국」의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캄보디아 경찰의 수사도 미온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다마는 지난 2월 태국경찰에 한차례 입건된 바 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기도 했었다.물증이 더 확보되지 않는 한 사건 수사는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최악의 경우 다나카를 지난 1월에 발생한 위조달러화 유통과 요도호 납치혐의로밖에 처벌할 수 없는 사태도 상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2월 다나카의 경호원 겸 운전수였던 북한인 「김철숙」이 위조달러화 소지혐의로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됐었고 고다마가 체포된 이후 담배수입상사를 가장한 프놈펜시내 거점 3군데가 모두 폐쇄된 점으로 미뤄 혐의는 짙다.또 태국경찰은 다나카가 지난 1월 파타야의 태국인 2명을 시켜9천달러에 달하는 위조달러화로 태국돈 22만5천바트를 환전한 혐의와 관련,피해자를 확보해두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 일본경찰은 태국경찰이 확보하고 있는 「고다마」의 지문을 일본대사관을 통해 요도호 납치범등의 지문과 대조할 계획이다.이 결과도 사건 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80년 최 대통령 하야 보름전/“전씨 대통령 추대” 결의

    ◎신군부 장성 모임서 지난 80년 7월말이나 8월초쯤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비롯,신군부 장성들이 모임을 갖고 전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8월16일 하야를 발표하기 보름남짓 전이다. 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4차공판에서 노태우피고인은 『최대통령은 7월말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노피고인은 이어 『공군참모총장공관에서 열린 저녁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전씨에게 「우리의 운명」이라며 대통령직을 받아들이라고 했고,전씨가 이후 승낙했다』고 말했다. 차규헌피고인은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전두환장군 대통령추대」라는 현수막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공판에서 검찰은 노피고인을 비롯,유학성·이학봉·차규헌·허삼수·허화평피고인 등 6명을 상대로 79년 12월12일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까지의 과정이 권력을 장악하는 내란이었다고 지적,보안사가 작성했다는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의 실체를 집중추궁했다. 또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경위 ▲주요정치인·학생·재야인사의 체포 ▲국보위 설치 및 운영 ▲언론통폐합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국회해산 ▲최대통령 하야와 전씨의 대통령취임과정 등도 추궁했다.〈박상렬 기자〉
  • 「12·12」 「5·18」 4차 공판­검찰신문 지상중계

    ◎노씨/“중앙청 무장병력 배치 지시했다”/노씨­80년 학생들 시위중단 결의 믿을수 없었다·노씨가 전씨에 대통령직 맡아달라고 권유/차규헌씨­신군부 「최대통령 하야 논의」 모른다/유학성씨­시국불안… 계엄확대 찬성발언 했다/이학봉씨­“김영삼 총재 은퇴 종용 지시 받았다”/김대중씨 만나 사회안정에 협조 부탁했다·전씨 TV통합여부 의견물어 좋다고 대답/허화평씨­보안 고려 민정당창당팀에 사무실 제공/허삼수씨­인사처 업무에 전념… 삼청교육과는 무관 ◆DB편집자주:본문생략 HRM­960402­20­01∼03 참조
  • 「12·12」이후 정권찬탈행위 규명/4차 공판 쟁점

    ◎국보위 설치 “내란의 과정”­“합법” 공방/최 대통령 하야 신군부 강압여부 초점 5·17 및 5·18 사건이 내란인지 여부를 가리는 4차 공판도 검찰과 피고인간의 뜨거운 공방 속에서 진행됐다. 검찰은 12·12사건 이후 「시국수습방안」 작성에서부터 81년 1월24일의 비상계엄 해제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신군부측의 정권찬탈을 위한 내란 행위라는 점을 추궁했다. 피고인들은 『불안한 정국과 안보 상황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행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일관되게 부인했다.변호인들도 『당시 조치는 최규하대통령이 행한 국정행위로,내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추궁에는 『모른다』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검찰의 추궁 내용을 간추린다. ▷K공작계획◁ 80년 2월 보안사 정보처에 설치된 언론대책반에서 언론계를 통제,집권기반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안.이를 통해 기성 정치인들의 경쟁을 왜곡하고 최대통령 정부의 허약성을 강조했다. ▷시국수습◁ 방안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신군부측의 내란 혐의를 입증하는데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80년 5월 전피고인의 지시로 이른바 「보안사 3인방」인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 등 3명이 ▲계엄확대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국회해산 등을 골자로 작성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 신군부가 취한 첫 조치.검찰은 이를 내란의 시발점으로 본다.비상계엄 전국확대는 80년 5월17일 상오 11시 국방부에서 주영복 당시 국방부장관이 주재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일부 참석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의됐다. ▷국무회의장에 병력배치◁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의 의결을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장 주변에 수경사령관인 노피고인이 30경비단 병력 3백42명과 장갑차 4대를 배치,출입자를 통제했다.회의장 계단과 복도에도 무장한 병력을 1∼2m 간격으로 세워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요인사연행◁ 새로운 정치판을 짜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수경사의 헌병단 병력을 동원해 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 김대중씨와 공화당 총재 김종필씨 등 정계인사를 체포,정치활동을중지시켰다. ▷국보위 설치◁ 80년 5월19일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에게 비상기구 설치를 건의해 5월2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설치한 기구이다.행정부를 통제하며 국정을 수행하는 혁명평의회 성격의 비상 권력기구로,대통령을 무력화시킨 내란의 주요 과정이라는 것이 검찰의 해석이다.피고인측은 대통령의 재가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기구라고 반박한다. ▷최대통령 하야◁ 80년 8월16일 최대통령의 하야과정에서 신군부측의 강압이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그해 7월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이 나에게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노피고인에게 말한 것을 계기로 최대통령의 하야가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전피고인은 8월27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9월1일 취임했다. ▷언론 통폐합◁ 80년 10월 초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씨 등에 의해 작성된 통폐합안에 따라 언론사 사주들을 보안사로 불러 강제로 포기각서를 받았다. 이밖에 국회해산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신당창당 추진 등도 내란 혐의를 따지는 쟁점이다.〈박홍기 기자〉
  • 북 위폐범 다나카 어떻게 체포했나

    ◎CIA·태 경찰 3개월전부터 축적/가명 사용… 「위폐소굴」 수색때 달아나/국경서 검거… 일 협조로 다나카 확인 위조달러 소유혐의로 태국에서 조사받고 있는 북한여권 소지자 다나카 요시미(47)는 캄보디아 경찰의 불신검문 끝에 우연히 붙잡힌 것이 아니라 미국과 태국 수사당국과 인터폴(국제경찰)의 끈질긴 공조수사에 의해 검거된 것으로 밝혀졌다. 태국경찰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CIA와 재무부는 위조달러 유통조직이 태국 동남부 해변휴양지 파타야를 중심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뒤 지난 3개월동안 은밀한 내사활동을 펴왔다.CIA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태국경찰은 지난 1월 파타야의 위페조직 아지트를 급습,태국인 관련자 7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당시 위폐조직의 핵심인물 한명은 도망했다.태국 경찰은 인터폴에 수사를 요청,도망자가 일본인인 가시노리 하야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던중 지난 25일 캄보디아 국경검문소에서 프놈펜주재 북한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로 베트남에 들어가려던 가시노리가 검거됐다.승용차에는 가시노리외에3명이 더 있었다. 당시 가시노리는 신분증이 없었다.경찰은 왜 가시노리가 북한외교관 승용차에 타고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얼마후 이미 풀려난 북한외교관들이 경찰로 찾아와 가시노리가 「김일수」라는 이름의 북한외교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북한외교관 여권을 제시,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일본 대사관직원이 가시노리의 지문을 채취,도쿄로 보냈고 일본경찰은 28일 지문감식결과 북한이 김일수라고 주장한 이 남자가 지난 70년 일본항공(JAL) 여객기 요도호를 공중납치한 적군파 대원의 한사람인 다나카 요시미(47)임을 밝혀냈다.다나카가 그동안 가시노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던 것이다.〈방콕 연합〉
  • 「12·12」 「5·18」 4차공판­노씨 증언 주요내용

    ◎노씨 “김대중씨 사형 내가 말렸다”/당시 현안처리 비사 등 공개/전씨 대통령 추대받자 눈물/언론통폐합 전씨 거듭 지시 노태우 피고인의 법정태도가 달라졌다. 5·17사건을 다루기 위해 1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4차공판에서 노피고인은 필요에 따라 공세적·적극적 태도를 보였다.비사도 「소신껏」 공개했다. 검찰은 노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에서 80년 7월말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권력이양의사를 밝힌 사실을 전사령관으로부터 들었느냐고 물었다.노피고인은 『7월말이 아니라 8월초로 기억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최대통령은 전사령관에게 『능력에 한계를 느껴 나라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으니 대신 맡아달라』고 말했다.전사령관은 깜짝 놀라 사양했다.최대통령이 거듭 부탁했다.『시간을 주십시오』라며 전사령관이 자리를 물러났다. 전사령관이 이를 노태우 수경사령관에게 얘기하자 『잘 하셨다』며 군 원로들의 의견을 묻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며칠 후 유학성·황영시씨 등 신군부장성의 모임에서 뜻이 모아졌다.전사령관은 대통령으로 추대받자 「벅찬 운명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대통령추대가 일부 군장성에 의해 최대통령의 하야(8월16일) 이전에 결정됐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노피고인의 답변은 이어졌다. 〈80년 11월.내란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김대중씨의 감형문제로 신군부내에서 논란이 일었다.노보안사령관은 전대통령을 찾아가 『사형집행은 곤란하다』고 진언했다.정적도 아닌데,이유가 어떻든 사형은 옳지 않다고 설득했다〉 노피고인은 『솔직히 「친구」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다』고 했다.순간 전씨 미간에 가벼운 경련이 스쳤다. 노피고인은 80년의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에 대한 보안사의 평가와 관련,『특정정치인을 거론해 평가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민감한 사안에는 일체 언급을 피하거나 모른다고 진술했다. 노피고인은 자신은 언론의 통·폐합을 반대한 장본인이라고도 주장했다. 〈80년 10월,권정달 보안처장이 작성한 통폐합안을 들고 전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자신은 『취지가 좋아도옳지 않다』고 반대했다.한달 뒤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대통령의 결재가 났으니 집행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전했다.『왜 우리에게 시키냐』고 항의했다.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악역」을 맡게 됐다〉〈박선화 기자〉
  • 태,북 관련혐의 집중 조사/위조달러 사건

    ◎“외교관승용차 이용 유통… 배후조종 가능”/북,태에 위폐소지범 신병 인도 요구 【방콕 연합】 태국경찰은 일본항공(JAL)요도호 납치범 다나카 요시미(47·전중의삼)가 최근 캄보디아에서 검거될때 타고 있었던 프놈펜주재 북한외교관 승용차에서 3만6천여달러의 위조지페가 발견된 사실을 중시,북한의 관련혐의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경찰청의 한 고위소식통은 금년초 위조달러 유통조직을 포착할 당시 수사망을 피해 캄보디아로 도망간 「가시노리 하야시」라는 일본이름의 남자가 지난 70년 JAL기를 북한으로 납치했던 다나카로 밝혀지고 그가 북한외교관들의 도움으로 다량의 위폐를 싣고가다 검거된 것은 그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콕 연합】 북한은 다량의 위조달러를 소지한 혐의로 진잔 25일 캄보디아경찰에 체포된 후 태국경찰에 넘겨져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다나카 요시미(전중의삼·47·70년 일본항공 요도호 공중납치범·전적군파 대원)가 북한외교관이라고 계속 주장하면서 그의 신병을 북한에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태국의 관계소식통이 30일 말했다.
  • 광주사태 당시 미 국무부­주한 대사관 통화내용

    ◎글라이스틴 대사 “군부 합법계통 무시… 곧 결정적 사태/몬조 부대사 “위컴사령관 서울귀환 늦추는게 좋겠다”/카터,전씨에 “최근 사태 우려… 정치일정 준수” 친서 80년 당시 주한미대사관과 국무부 한국대책반사이에 오간 비밀전문 요약.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보고〉 ▷80년 3월12일◁ ▲가까운 장래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최근 들어 한층 적어지고 있다.한국경제의 복잡성,한국외교의 미묘함,군부 직접통치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 등을 군장교들도 깨닫기에 이르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치 불참여에 대한 본인의 강한 언질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그가 중앙정보부까지 장악하거나 다음 선거를 조종하려고 시도할 경우엔 일반대중 뿐아니라 12·12때의 동지들로부터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군부는 견제력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그 군부에서 전두환은 분명히 지켜봐야 할 인물이다.그러나 군부가 「나라를 이끌고 가고 있지」는 않다.전두환은 선거에서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막후의 실력자로 만족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예전의 능률,규율,활력 등을 상실했지만 상당히 잘 움직이고 있다.최규하 대통령은 불행히도 무기력하고 조심성이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하지만 최규하 정부는 생각보다 훨씬 단호하다. ▲내년초 선거를 앞두고 연말에 큰 정국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신현확 총리는 자신이 초당적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그 타개책의 하나로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5월17일◁ 제1신:▲17일 오전 청와대의 최광수 비서실장을 방문,최대통령은 다음 며칠을 이용해 아주 명확하게 정부가 할 수 있는 계엄 및 정치일정에 대한 양보를 해야한다고 강력 요청했다. ▲경찰이 이화여대에 들어와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있다는 나쁜 소식이 막 들어왔다.곧 결정적인 사태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된다. 제2신:▲군부 지도부는 한국정부의 합법적 계통을 무시하고 학생 및 정계전반에 대한 참혹한 탄압에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대화를 나눈 1시간뒤 폭동진압경찰의 이화여대 진입을 미국인 목격자를 통해 알았으며 청와대,경찰,중앙정보부 등에 1시간동안 수소문한 끝에 캠퍼스난입건과 함께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도 알게 됐다. ▲우리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전혀 사전통고를 받지「않았다」.우리의 정보을 엉성하나마 종합하건대 이 결정은 이날 오전의 전군지휘관회의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태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부정적이다.그리고 좌절감을 느낀다.우리에겐 기정사실만이 내던져진 것이며 이로 보아 군부지도자들은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할 경우의 결과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이 단계에선 우리의 영향력이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관련한 존 몬조 주한미부대사 보고〉 ▷8월14일◁ ▲다양한 채널의 보고에 따르면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이 21일쯤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정보가 확실하다.(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절차가 기술적으로 헌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미국이 한국문제에 대한 대응을 하는데 있어 고려해야할 사항은 첫째는 앞으로 상당기간 전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다음은 미국이 전의 집권에 있어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이 「합법적」으로 선출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최소한의 정상적 예우」(minimum normal courtesies)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 ▲위컴 장군의 서울 귀환을 늦추도록 요청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한다.만일 최대통령의 사임발표 이전에 그가 돌아온다면 마치 그가 (전의) 취임에 대한 미국의 최종적 축복과 승인을 갖고 오는 것으로 해석될수 있을 것이다. 〈카터 미대통령의 전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첫친서〉 ▷8월27일◁ ▲본인은 한국에서의 최근 사태들이 우리를 대단히 어렵게 했다는 사실을 귀하가 알기를 바란다.우리는 최 전 대통령에 의해 약속됐던 빠른 시일내 신헌법의 국민투표 회부와 그 헌법에 따른 내년초까지의 대선 실시에 대한 귀하의 재확인에 주목한다. ▲본인은 귀하가 직면한 문제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귀하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치제도의 개발과 국민들에게 보다 큰 개인적 자유 부여를 통하여 정부의 안정을 지킬수 있는 신속하고도 가능한 행동을 취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워싱턴=라윤도·김재영 특파원〉
  • 이란 핵 개발 저지/미,중대조치 검토

    【카이로·테헤란 AFP 연합】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중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고위 군축보좌관인 토머스 그레이엄이 17일 밝혔다. 그레이엄 보좌관은 이날 런던에 근거를 두고 있는 아랍신문 알­하야트지와의 회견에서 지난 93년 회교 과격파들이 자행해 6명의 사망자를 낸 뉴욕 폭발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계무역센터에서 다음에 사용될 무기가 핵무기 종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최규하씨 증인신청 방침/검찰,5·18관련

    ◎5월 공판뒤 채택여부 결정 12·12 및 5·18사건 공판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최규하 전대통령이 증인으로 법정에 나란히 서게 될 전망이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7일 최규하 전대통령을 법정증인으로 채택,신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최씨를 상대로 ▲80년 8월 하야 과정에서 신군부측의 강압 여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등 신군부측의 내란 경위 등에 대해 신문할 방침이다. 두 사건의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김영일 부장판사)는 『이달에 열리는 세 차례 공판에서 검찰의 직접신문이 끝나고 5월 공판에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끝나면 최씨를 증인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측도 최씨가 전·노씨에게 유리한 증인으로 판단,증인신청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 전직 대통령의 법정 만남은 빠르면 6월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지난번 검찰이 두 차례에 걸쳐 방문조사를 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진술을 거부했었다.법정 증인신문에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재판부는 최씨가 증인으로 나오지 않으면 구인장을 발부하는 문제를 추후 논의할 방침이다.
  • 12·12 5·18 검찰수사 전말과 의미

    ◎재수사 91일만에 핵심 16명 심판대로/피고소인·목격자 등 8백여명 환문/「양민학살」 18차레나 광주현지조사/경복궁모임 실체·집권시나리오 등 새로 밝혀내 12·12와 5·18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착수 91일만인 28일 사실상 종결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5·6공의 실력자 16명이 군사반란및 내란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79년 12월12일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지 17년만이다. 12·12는 군사반란으로,5·18은 내란으로 자리매김됐다. 검찰은 지난 해 11월30일 두 사건에 대해 「사정 변경」을 이유로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를 설치,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본부를 가동한지 5일만인 12월3일에는 전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해 군사반란 수괴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이어 피고소·고발인과 당시 국무위원,광주 현장의 목격자 등 모두 8백여명을 조사했다.처음 수사에 착수했을 때보다 4백여명이 많았다. 특히 광주 현지에 수사팀을 파견,18차례에 걸쳐 주남마을 등 양민학살을 조사했다.광주 현지에서 1백10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등 진실 규명에 진력했다는 자체 평가다. 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국가 기강의 확립과 국가 장래의 위상 ▲국가 기본권의 본질과 참된 운용 ▲범행 가담 경위와 정도 ▲범행 후 뉘우치는 정도 등을 감안해서 사법처리했다.「엄정주의」와 「온정주의」적 요소를 종합,선별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12·12군사반란을 지휘하고 5·18당시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해 내란을 주도한 전·노전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병력을 출동했거나 광주 현장을 진압했던 현장지휘관 등 관련자 55명은 불기소 처분됐다. 불기소 처분자 가운데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 등 12·12사건에 가담했던 지휘관 19명은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에 해당,기소유예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진종채 전 2군사령관 등 5·18관련 지휘관 33명에 대해서는 가담 사실만으로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무혐의 처리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도피한 장기오·박희도씨와 캐나다에 체류 중인 조홍씨 등 3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 5·18특별법의 위헌제청으로 검찰은 12·12사건 관련자의 처벌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법원에 의해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장세동·최세창씨는 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헌법재판소가 5·18특별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함에 따라 걸림돌은 사라졌다. 검찰은 재 수사에서 반란군 지휘부가 모인 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실체와 집권 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임시 국무회의장주변의 무장병력 배치,발포명령으로 확산된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발동」 천명 등의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에 따라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에서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 해제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강제 하야 등 몇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 “독도 수호” 기동훈련/어제 해·공군 합동

    국방부는 15일 이날 하오 독도부근에서 해·공군이 참여하는 기동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동훈련에는 해군 구축함 1척을 비롯한 군함 3척과 해양경찰청 소속 고속경비정 1척 및 대잠헬기 링스 1대,공군 전투기 1개 편대(4대)등이 참여했다. 이번 훈련은 우리 함정이 독도 수역에 출동,가상 침공 세력에 대응하고 이어 공군기지에서 출동한 전투기가 해상의 가상 표적을 공격하는 순으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일 정부 항의 【도쿄 연합】 하야시 사다유키(임정행)일본외무성 사무차관은 15일 한국 해·공군이 독도 주변에서 실시한 합동훈련에 대해 간접 항의했다. 하야시 차관은 이날 밤 김태지주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14일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일본 외상과 김대사와의 면담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음에도 이번 훈련이 종래와는 달리 대대적으로 보도 되고 있어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주일대사관은 밝혔다.
  • PC통신에 비친 「일 망언」 반향

    ◎“일제 선호·문화수입 반성계기 삼자”/“힘으로 방자함 응징하자” 과격한 의견도/“독도서 열린 음악회 열어 「…우리땅」 노래” 「울분을 금치 못하노라.너희 왜손이 감히 자신의 무도함을 알지 못하야 이렇듯 방자함은 왜족의 운명을 재촉하는 부질없는 욕심에 지나지 않으니….」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에 대한 울분과 규탄의 소리가 컴퓨터통신 게시판에 봇물처럼 쏟아졌다.「독도를 지키자」는 제목으로 11일 PC통신 하이텔에 개설된 토론장에는 한시간에 수십건씩의 의견이 쇄도했다. 모두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갖가지 대안을 내놓았다.유창국씨는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독도를 방문,태극기를 나부끼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하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에서 「열린 음악회」를 갖고 「독도는 우리 땅」을 합창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서명운동으로 일본의 버릇을 고칠 수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고라도 서명을 받으러 다니겠다』는 열성파도 있었다.분을 이기지 못한 일부 이용자는 일장기태우기 운동,가스테러,핵폭탄 투하 등 과격한 방안까지 서슴없이 내놓았다. 이번 일을 무분별한 일본문화 수입 및 일제선호 풍조를 반성하고 민족의 주체성과 애국정신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자는 차분한 제안도 있었다. 일제 담배를 피우거나 일본 제품을 쓰지 말자는 의견은 「공통이었고」,최근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일본 가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진지했다.권용순씨는 『그동안 무턱대고 일본 음악을 들어온 게 후회스럽다』며 『야만인이 만든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함께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재원씨는 『일본은 우리의 건망증과 잠깐 울컥하고 지나가는 기질을 비웃고 있다』며 『일시적인 흥분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론은 정부와 국민 모두 일본을 이길 수 있도록 힘쓰자는 것이었다.
  • 일의 방한취소 성명 뒤안/강석진도교특파원(오늘의 눈)

    한일관계가 험산준령을 넘고 있다.지난해에는 망언파동으로 몸살을 앓았다.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전 외상의 방한이 몇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무산되고 말았다.고노 전 외상은 재임시 총리를 수행해 한국을 방문했으나 단독으로는 방한하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매우 드문 경우다. 야마자키 다쿠(산기탁) 자민당 정조회장 등의 방한도 무산됐다.그들의 방한은 당초 북한과의 접촉을 한국에 설명,이해를 구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일본이 설정키로 한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에 한국 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로 간주,포함시키겠다고 밝히면서 초점은 독도로 옮아갔고 급기야는 방한까지 취소되고 말았다.한국에서 방한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또한 매우 드문 경우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신정권이 들어설 때 이웃 나라들은 우려했다.보수 매파의 전면 등장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해서이다.하시모토 총리는 취임시정연설에서 자립외교를 내세웠다.자립외교가 뜻하는 내용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정권은 14일로 발족 꼭 한달을 맞는동안대한반도 외교에서 「자립」을 시험하고 있다.북한에 쌀을 추가 지원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가 하면 독도를 갑자기 등장시켜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그들이 내세운 자립외교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더구나 야마자키 정조회장이 10일 발표한 성명 내용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었다.그들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이름)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쪽에서 감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아마도 김영삼대통령이 면담을 취소한 것 등을 그렇게 보는 듯하다.그들은 최근 한국민의 격분을 자아내는 일들을 저질러 놓고는 한국이 반응을 보이면 곧잘 감정적이라고 한다.또 한국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방한할 수 없다는 듯 한국쪽에 책임을 떠밀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입장은 시종일관 같은 것이고 일본정부의 발언도 같은 입장을 밝힌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왜 이 시기에 문제를 제기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문제를 일으킨데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한일관계의 강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고 말하다가 돌아서서는 망언과 분쟁 야기 발언을 되풀이한다면 이웃간의 신뢰는 얻기 어렵다.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오고 신뢰가 깊어야 관계 강화든 평화와 안정이든 얻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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