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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군부 내란·반란 결정적 자료 확보/증인신문 결산과 구형 전망

    ◎최 전 대통령 증인신문 무산 아쉬움 남겨/검찰,여론 향배에 신경… 구형량 산정 고심 12·12 및 5·18 사건의 사실관계를 가리는 지렛대인 10차례의 증인신문이 1일 마무리됐다. 지난 3월11일 이 사건의 첫 공판이 시작된 이래 검찰의 직접신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 등 사실심리가 1백43일만에 끝난 셈이다. 공판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증인들의 진술은 두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다 명확히 해줬다는 평가를 받고있다.신군부측의 내란 및 반란과정을 입증하는 결정적 자료로 작용,공소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과 대통령·국방장관 등 지휘계통의 승인을 받지 않은 신군부의 병력동원 사실 등이 확인됐다. 5·18에 있어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80년 4월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이 작성한 「시국 수습방안」이 집권시나리오가 됐음이 입증됐다.특히 최대통령의 하야 달포전 신군부가 헌법개정안 마련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내란혐의를 굳히는 열쇠가 됐다. 변호인단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일부 증인의 검찰진술을 번복케하고 피고인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특히 광주 진압 과정에서 지휘권의 이원화는 없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그러나 피고인의 재판거부,변호인단의 퇴정 및 불참에 이은 변호인 집단사퇴 등 파행으로 얼룩지기도 했다.또 두 사건의 「마스터 키」로 여겨지던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증인신문이 무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1심 재판은 오는 5일의 검찰 구형과 19일의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검찰은 무엇보다 피고인 16명에 대한 구형량 산정에 고심하는 눈치다.죄질과 여론의 향배에 신경을 쓰며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전두환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상관살해미수·뇌물죄 등 10개 죄목을,노태우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뇌물 등 9개 죄목을 적용,구형량을 재고 있다.전피고인에게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어 법대로 사형 구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노피고인은 상관살해 미수 부분에 대한 경감의 여지가 있어 무기징역 구형이 예상된다. 나머지 유학성 피고인 등 14명에 대해서는 1∼4개 죄목을 적용,최고 사형에서 징역 7년까지의 구형이 가능하지만 형법에 따라 형기의 절반을 경감받아 무기∼3년6월의 징역형이 구형될 것으로 보인다.〈박선화 기자〉
  • 감사원 주최 「감사 부작용 해소대책」 토론회

    ◎“국회의 감사활동 평가제도 활성화를”/공정성 검증절차 강화… 감사결과 공개해야/감사중복 최소화위해 지자체 감사권 일원화 「감사 부작용 해소대책」을 주제로 한 제1회 감사원 토론회가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한영환 중앙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안문석 고려대 교수(행정학)와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재정정책학)가 주제발표자로 나섰다.이어 김옥연 한국석유개발공사 감사와 김태수 서울시 감사실장,문택곤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감사연구위원장,배병휴 매일경제신문 논설주간,신대균 경실련 조직위원장,안재헌 내무부 감사관,장해익 감사원 제6국장이 토론을 벌였다.다음은 주제발표 내용 요지이다. ▲감사 부작용 발생원인과 유형 및 그 영향(안문석 교수)=감사 부작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떤 경우에나 나타나는 감사기능의 부산물이다.따라서 감사부작용을 이유로 감사의 순기능 전체를 없애는 정책이나 대안은 현실성과 이론성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감사부작용 해소를 위해 감사원이 최근 감사청구제를 실시하고 중복감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감사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대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감사원의 감사활동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국민에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회의 감사활동에 대한 평가제도의 활성화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정보공개법의 활용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감사원의 기능 가운데 직무감찰권을 없애자는 발상은 직무감찰권이 갖는 부분적인 역기능만 너무 강조한데서 나온 것이다.공직기강 확립및 사정기관의 독점방지라는 측면에서도 존속되어야 한다.다만 성역없는 감사,공개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감사를 통하여 국민적 신뢰를 얻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셋째,감사원의 처분 등에 대한 재심제도를 대폭 보완하여 수감기관의 권리가 보다 넓게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감사기능의 환경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최고의결기관인 감사위원회의 이원구성을 경제·사회 등으로 폭을 넓혀 건전한 상식에 의한 감사가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감사기능은 본질적으로 최종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감사기능은 고도의 윤리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여섯째,대통령 소속으로 되어 있는 현 감사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와 독립성 보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곱째,급변하는 환경에서 부족한 감사전문인을 감사원이 모두 채용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따라서 행정시스템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외부위탁제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수감자의 입장에서 감사를 하고 수감자가 그 당시 최선을 다한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면책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최선면책의 원칙」을 도입하여 공무원의 무사안일 풍조를 제도적으로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홉째,감사에 컴퓨터 및 통신기술 등 과학기술을 폭 넓게 활용하여 정보기술 및 과학기술을 감사행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선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감사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박재완 교수)=공공감사의 「패러다임」이 감사환경과 수요의 변화에 걸맞게 바뀌어야 감사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감사결과의 처리에 있어서도 감사기관이 그 방향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수감기관의 창의와 자율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공공효율과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패러다임이 정착되면 수감기관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감사를 희망하게 되고 감사기관은 희소한 공공감사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하여 시장경제의 원리를 일부 도입해야 할 것이다.장기적으로 영국이나 싱가포르,또는 기업회계감사에서와 같이 수감기관으로 부터 감사활동에 소요된 비용의 일부를 감사수수료로 징수하는 방안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대상기관을 「판별분석기법」에 의해 선정할 것으로 제안한다.미국 내국세청은 납세협력측정 프로그램을 통해 소득세 신고자를 특성변수별로 추정,탈세가능성을 나타내는 「판별함수공식」을 도출,세무조사의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 감사중복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권을 감사원으로 일원화하고,다른 상급기관은 감사원의 위탁에 의해서만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가감사활동을 축소할 것으로 제안한다. 감사수요자의 입장에서 감사결과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감사결과의 처분요구종류의 제한을 완화 내지 폐지하고,감사 결과의 공정성 검증절차를 강화하며,감사 결과를 공개하는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감사기관은 가급적 감사 결과 문제점과 그 원인만 통보하고 정책대안은 제시하지 않거나 권고의 형식으로만 제시함으로써 수감기관장의 자율적·창의적인 문제해결노력을 기속하지 말하야 한다. 감사 결과의 공정성과 객관성의 검증절차를 강화하기 위해 감사원 감사에 대하여는 ▲감사결과 처리안의 내부조정하는 과정의 「양측익명 심사제」 ▲성과감사의 결과처리안에 대한 외부전문가 심사제 ▲성과감사의 결과처리안에 대한 관련기관의 사전검토·의견제시제를 각각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감사인의 전문성과 자질을 높일 수 있도록 감사기반활동을 확대하여 감사역량을 배양하는 대신 실지감사활동은 축소할 것을 제안한다. 감사기반활동의 강화는 감사의 권위와 신뢰성 제고를 통하여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실지감사활동 축소는 수감부담 완화에 기여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같이 「공공감사기준」을 제정해야 한다.감사기준은 감사업무의 품질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감사인이 따라야 할 최소한의 준거로서,감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 “전씨 지시로 중정 안가서 시국수습방안 마련”

    ◎12·12­5·18 23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 23차 공판이 22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 심리로 열렸다. 공판에서는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15대 국회의원·무소속·안동을(,최웅 11공수여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정웅 31사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 공판으로 순연됐다. 권씨는 검찰 신문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시국수습방안 초안을 마련,80년 5월4일쯤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노태우·유학성·황영시·거규헌·정호용·허화평·허삼수씨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확정했다』고 진술했다.〈관련기사 19면〉 권씨는 『처음부터 정권장악을 목표로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집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전피고인의 지시로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한 8월16일 이전인 6월부터 민정당 창당작업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원홍 전 청와대 민정수석·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김광택 20사단 중대장 등 9명을 증인으로 추가 채택했다.〈박상렬 기자〉
  • 바다와 춤의 만남/여름밤 수놓을 「해변무용축제」 연다

    ◎부산 광역시 주최,새달 1일부터 10일까지/볼쇼이발레단 등 국내외 17개 무용단 참가/해운대·광안리서 무료로… 다양한 이벤트 마련 바다와 춤이 만나는 국제적인 규모의 해변 무용축제가 항도 부산에서 열린다.8월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부산 광역시 주최로 마련되는 「’96 부산 바다축제」. 이번 바다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될 춤의 잔치 무대는 5∼8일 해운대,9일 광안리에서 꾸며진다. 러시아의 볼쇼이발레단 주역무용수들,미국의 필로볼러스 현대무용단,일본의 시가 미야코 현대무용단 등 외국 3개 유명무용단과 부산시립무용단,광주시립무용단,서울시립무용단,김복희 현대무용단,유니버설 발레단,서울 발레시어터,국립발레단,서울현대무용단 등 14개 국내 무용단이 푸른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무대위에서 아름다운 춤사위를 펼치게 된다. 매일 국내외 혼합 6개팀이 자신들의 대표적인 레퍼터리를 선보이며 공연시간은 하오 8시∼10시.무료공연으로 깊어가는 여름밤의 흥취를 돋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자국의 정상급으로 꼽히는 3개 외국팀들은 이번춤의 향연을 더욱 화려하게 하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안나 안토니체바·올가 드로코바 등 볼쇼이 발레단의 주역 11명으로 구성된 「러시안발레스타」팀은 6일 해운대공연에서 「여성4인무」「태양」「고팍」등 세작품을 선보인다.7일 하오7시30분 부산문화회관에서도 별도공연을 갖는데 「백조의 호수 2인무」중 2막과 「해적 2인무」「빈사의 백조」「레 실피드」등 11개 레퍼터리를 공연한다. 일본 시가 미야코 현대무용단은 모두 10명이 참가해 5·7일 해운대에,6일 부산문화회관에 나서며,미국 팔라볼로스 무용단은 7일 부산문화회관,9일 광안리 특설무대에서 공연한다. 이와 함께 국내무용단의 공연은 ▲5일 부산시립무용단:이노연의 「일·삶·춤」,김복희 현대무용단:신작 「진달래꽃」중 2장,국립발레단:「알레그로 브릴리언트」,부산현대무용단:정귀인의「병자년의 축제」,서울시립무용단:「악귀들의 축제」 ▲6일 부산무용협회 무용단:김진홍의 「제1회 바다무용축제를 위한 열림 굿」,유니버설발레단:박재홍의 「기쁨」,하야로비 현대무용단:하정애의 「5중주와 코러스」,서울발레시어터:제임스 전의 「도시의 불빛」,춤패 배김새:최은희의 「춤­바다 춤­굿」,▲7일 춤모임 짓=김은이의 「두개의 회오리 바람과 길」,광주시립무용단 「코펠리아」1막, 서울현대무용단=박명숙의 「개기일식」,두름무용단:김미숙의 「바다 신풀이」 등. 전례없이 화려한 춤의 향연이 될 이 행사는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로서 부산의 특성을 문화공연에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부산을 세계적인 문화휴양지로 만들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있다.이를 위해 「부산포 한마당」 「어울림 한마당」등 레저·스포츠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각종 이벤트 또한 기간중 다양하게 곁들여진다. 해운대,광안리,송정,다대포,일광,항만 등 파도가 넘실대는 시원스런 해변을 배경으로 열리는 「부산포 한마당」은 바다수영대회,해양문학 심포지엄,한·러·일 청소년 요트경기 등 각종 해양이벤트가 중심.또 「어울림 한마당」은 부산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재즈 페스티벌과 행위예술,굿 한마당,바다의 여왕 선발대회 등 흥겨운 프로그램을 곳곳에서 펼친다.〈김수정 기자〉
  • 「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유학성씨가 「최 대통령 곧 하야」 전해”­김종환 증인/“김재규 내란목적 살인 증거 없었다”­양병호씨/“선제공격 진술 보안사서 강요 받아”­김인선씨/전씨 합수부에 모든 보고 하도록 조치­김진기씨/노재현 장관 명령으로 출동병력 복귀­박동원씨 12·12 및 5·18사건의 제20차 공판이 8일 상오10시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개정과 함께 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30분간의 휴정을 거쳐 검찰이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양병호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1월말 보안사 장교가 증인을 찾아와 김재규 내란사건의 상고를 기각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80년 5월20일 상고심에서 증인 등 6명의 대법원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소수의견을 냈는데 그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양증인=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그후 증인은 같은해8월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당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보안사를 나온 후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을 찾아갔더니 소수의견을 냈던 나머지 5명도 사표를 냈더라는 말을 했지요. ▲양증인=맞습니다. ▲김부장검사=소수의견을 냈던 증인등이 강제사직을 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증인=그 사람들(보안사측)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했고,우리는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니까 왜 반대하느냐며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김부장검사=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양증인=80년 1월말 법원을 출입하는 육군소령이 찾아와서 상고기각을 요청했었는데 『판사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거부하자 밉게 봐서 그런 것같습니다. ○김인선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 경호 장교였던 증인은 당시 입은 총상으로 순천향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15일간 조사를 받았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제가 우경윤대령 등에게 먼저 총을 쏴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진술을 강요받았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총을 쏜 사실도 없고 총 쏠 여유도 없었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진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이었던 증인은 10.26사건으로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을 겸직하게 되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비상계엄 선포후 치안본부,중앙정보부 등지에서 계엄사 치안처로 올라오던 각종 정보보고가 11월 중순부터 갑자기 중단된 사실이 있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나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든 보고를 합수부로만 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부장검사=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대통령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명백한 반란이며 당시 상황은 내란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종환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5월14일 내무부장관이던 증인은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시위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진압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고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언을 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관계장관 회의에서는 그런 발언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김부장검사=8월10일 롯데호텔 식당에서 유학성 피고인이 증인에게『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할 것같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당시 유피고인이 정보제공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동원 증인 ▲이재순 검사=수경사령관 작전참모로 근무한 증인은 79년 11월16일부터 같은해 12월12일까지는 장태완 장군을,79년 12월13일부터 80년 8월20일까지는 노태우 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모셨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장사령관이 술에 취한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습니까. ▲박증인=그렇지 않습니다.원래 성질이 급한데다 불의를 보면 성격이 더 급해져서 그렇지 당시에 내린 지시는 모두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검사=수경사병력을 출동시켰다가 조재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듣고 병력을 복귀시켰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장관이 명령을 한 것은 새벽 2시였고 장사령관이 병력을 대기시킨 것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30분정도 병력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성환옥 증인 ▲이재순 검사=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던 증인은 12월 8일에서 10일 사이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과 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협조를 부탁받고 보안유지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요. ▲성증인=그렇습니다. ○김만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증인이 위원장으로 군무하던 중보위 사회정화위원회가 중정·검찰·경찰·보안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위급 숙정자 15명,B급 1백64명으로 분류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허삼수 피고인도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숙정대상자 결정과 사회정화분과위원장 선정에 관여했습니까. ▲김증인=북정대상자 결정에는 참여했지만 사회정화분과위원 선정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신·최씨가 밝힌 정 총장 연행 재가과정

    ◎“최 대통령 전씨측 재가건의 완강 거부”/전씨에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나” 질책/불가피 했다는 점 남기려 시간도 명시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1일 법정 증언에서 12·12 당시 신군부가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한 것은 직속상관에 대한 하극상이라고 진술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정총장 연행을 재가할 때 신군부측의 협박이나 강압 분위기는 없었다고 밝혔다.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를 시인했다. 신씨는 12월12일 하오 7시쯤 개각을 협의하기 위해 총리공관으로 갔다.최대통령으로부터 『조금 전에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다녀갔는데 10·26사건 관련 혐의로 정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며 재가를 요청해 국방부장관의 결재 없이는 재가할 수 없으니 절차를 밟아오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것.신총리는 『잘 하셨다』고 답변한 뒤 30분쯤 뒤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정총장이 연행됐다』는 보고를 들었다. 최대통령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며 전씨에게 화를 내며 질책했다.최대통령은 즉시 경위를 알아보라고 지시,총격전 사실을 알게됐다. 하오 9시30분쯤 전두환·유학성피고인 등이 2차로 재가를 요구했다. 최대통령은 『재가를 받기 전에 행동한 것은 위법이다.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재가를 재차 보류했다.신총리는 『집단적인 재가요청 행위는 있을 수 없고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씨 등이 돌아간 뒤 최대통령은 『이 친구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안된다고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최비서실장은 『2차 재가 요청시 장성들로부터 공관을 방문하겠다는 사전연락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신총리는 13일 상오 2시3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과 통화,『총리공관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한 뒤 상오 3시30분쯤 노국방부장관을 데리러 국방부로 갔다.국방부 건물은 유리창이 깨지는 등 총격전의 흔적이 역력했다.노 국방장관이 한참후 정총장 연행보고서(보안사가 작성한 것)를 들고 최대통령을 찾아왔다.그는 『더 큰 혼란을 예방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각하께서 재가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숙의 후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며 「05:10 AM」이라고 명시하고 서명했다. 신씨는 재가 당시 최대통령과 함께 육본의 정식지휘계통이 와해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5·17과 관련,『최대통령은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결정한 건의사항 중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 문제를 사실상 거부했다』고 말했다. 최실장은 『최대통령이 5월18일 계엄군의 투입과 27일 광주재진입작전시 사전에 승인했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현지 지휘관이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80년 7월30일 하오 6시부터 5시간 동안 청와대 본관 1층에서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작고)이 최대통령와 요담했으나 하야를 설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 “시국수습안 보고때 전씨도 배석”/12·12 18차 공판

    ◎신현확씨 “정 총장 연행때 질책” 12·12 및 5·18 사건 18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12·12와 관련,신현확 당시 국무총리 등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우국일 보안사 참모장,구정길 대통령 특별경호대장,백동림 합수부 수사1국장 등도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백씨에 대한 신문은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증인신문에 앞서 5·18과 관련,이희성·주영복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있었다. 신 전총리는 『개인적으로 12·12는 하극상이지만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내란으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검찰신문에서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측 장성들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를 요구하자 재가 없이 연행한 것은 위법이라고 질책했고 노여운 표정으로 책임자를 데려오라며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씨는 변호인 신문에서 『재가 요청 당시 신군부측 장성들의 강압과협박은 없었고 대통령의 거부는 재가 보류였다고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5·17에 대한 검찰측 신문에서 신씨는 『비상계엄 전국확대,비상기구 설치,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최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배석했으며 최대통령은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에 대해서는 사실상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전피고인은 배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최광수씨는 『신군부가 최대통령이 비상기구 설치를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대통령 자문보좌기구 형태로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신·최씨는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이 최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주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광주지역 작전은 관할 전교사령관의 지휘하에 이루어졌고 실탄 분배를 지시하거나 허가 요청을 받은 일이 없고 자위권발동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5·18에 대한 직접 개입을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이 날 『주 2회 재판으로는 변호인단이 재판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다』며 주1회 재판을 요구하는 공판기일 변경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박상렬 기자〉
  • 우국일씨,옛 상관 전씨에 깍듯이 인사/18차공판 이모저모

    ◎우씨,“신촌모임은 장성들 유인·격리한것”/이기창 변호사 일부신문 회견내용 부인 ○…12·12사건 당일 하오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줄곧 함께 있었던 신현확 전 총리는 신군부측의 정승화 총장연행 재가요청과 관련,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생생하게 진술. 최전대통령은 재가를 거절하면서 『이 친구들이(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 인사들을 지칭)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 『앞뒤가 바뀌었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등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 ○…이양우 변호사 등은 1시간여동안 계속된 신전총리에 대한 신문에서 『연행재가 과정에 압력과 강압은 없었다』는 등 피고인측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낸 것을 상당한 성과로 평가. 신전총리는 『5·17비상계엄확대가 반드시 내란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총장의 연행재가는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끝에 결정한 것』 『대통령이 연행조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다만 일종의 보류의사를 표명했다』고 진술하는 등 변호인의 신문에 긍정적으로 답변. 그러나 검찰신문에서는 『대통령은 불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진술,신군부측의 행위가 위법임을 분명히 했다. ○…신전총리는 윤성민 전 육참차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신군부측에 대항한 육군본부측 인사들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답변. 윤 전 육참차장이 전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연행을 통보받고 총리공관에 있던 신전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신전총리는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뒤집었다.또 『육본의 지휘계통이 수경사로 옮긴 것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 『정총장의 연행뒤 육본측의 「진도개 하나」 발령도 통보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등 신군부측에 유리하게 진술.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최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가 모언론사와의 회견에서 『최전대통령이 12·12당시 정총장의 재가와 5·17계엄확대,그리고 하야때 신군부로부터 강압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군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목. 이변호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이변호사에게 진위를 파악하느라 한때 부산. 그러나 최전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언제 신군부에게 속았다고 했느냐』고 질책을 받은 이변호사는 『「개인적으로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마치 최전대통령의 진술처럼 보도됐다』며 반론권을 통해 보도내용 대부분을 부인. ○…최광수 비서실장은 『최전대통령이 노태우 수경사령관을 불러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불가방침을 전했다』는 검찰진술과 관련,변호인측의 잇단 사실확인 질문을 받고 『최대통령이 노피고인을 직접 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단언해 변호인측을 무색케 했다. 노피고인은 지난 공판에서 『비상기구설치와 관련해 최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었다. ○…우국일 전 보안사 참모장은 증인석에 앉기 전 옛 상관인 전피고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예의를갖추었으나 정작 신문이 시작되자 가장 불리한 발언을 해 눈길. 그는 12·12당시 「신촌모임」을 가진 이유는 육본측 장성들을 유인,격리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전피고인이 합수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자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강압적으로 받는 등 월권행위를 했다고 진술. ○…우참모장은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자신의 일기장 두권과 메모지 등에 나타난 기록과 검찰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변호인단의 지적을 받고 『검찰진술이 맞다』고 해 한동안 변호인단과 설전.신촌모임이 시작된 시각이 기록에서는 하오7시로 돼 있으나 검찰에서는 이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고 진술했던 것. 그는 『신촌모임의 시각기록은 분명히 틀리지만 다른 사안의 시각을 기록한 메모는 정확하다』고 주장해 『신빙성을 어떻게 믿느냐』며 변호인단으로부터 세찬 공박을 받기도.
  • 최규하 전 대통령 증언 거부

    12·12 및 5·18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최규하 전 대통령은 28일 법정출석 거부의사를 밝히고 재산을 공개했다.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는 이날 최전대통령를 대신해 불출석 의견서를 서울지법에 제출한 뒤 재산공개를 겸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변호사는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의 국정행위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거나 증언하는 것은 국가 운영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밝혔다. 이변호사는 『당시 최대통령이 광주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방법은 하야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며 간접적으로 하야 이유를 설명했다.〈박상렬 기자〉
  • 「12·12」 「5·18」 공판 중간 결산

    ◎신군부 정권장악과정 소상히 밝혀/참고인 5백여명… 수사기록 13만7천쪽/변호인 사실관계보다 명분 집착 지적도 역사적인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사실심리가 24일 마무리됐다. 지난 3월1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군사반란 및 내란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이후 1백여일 만이다.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이 재판은 그동안 7차례에 걸친 검찰의 직접신문과 9차례의 변호인 반대신문으로 숨가쁘게 진행돼 왔다. 이 날 16차 공판을 통해 전·노피고인을 비롯,16명의 피고인에 대한 사실심리가 끝나므로 사실상 이번 재판의 승패도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가름됐다. 법조계에서는 전체적으로 반란 및 내란혐의가 공판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나 피고인들이 법정 최고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신군부측의 군권찬탈과 정권장악의 의도 및 과정을 집요하게 추궁,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한다.그동안 5백여명에 이른 참고인 조사를 통해 13만7천쪽의 방대한 수사자료를작성,공소유지에 전력투구해 왔다. 변호인측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10·26사건 연루와 80년초의 혼란한 시국상황 등 상황논리 전개에 주력하므로 사실관계보다는 명분에 집착했다는 지적이다.공소사실 불특정을 이유로 5·18 부분에 대한 공소기각을 요청하는 등 공세를 폈는가 하면,주 2회 재판을 문제 삼아 법정퇴장 등의 지연전술을 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조속한 단죄를 희망하는 여론에 힘입어 재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했으나 3차례에 걸친 파행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번 재판이 사실심리를 마치므로 앞으로 증인신문과 검찰의 구형,1심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의 공판 과정에서 양측은 쟁점을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12·12사건의 경우,▲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 ▲정참모총장 연행과정 및 재가의 합법성 여부 ▲병력출동의 불법성 여부가 쟁점이었다. 5·17사건에서는 ▲시국수습방안의 실체 및 성격 ▲비상계엄 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장 무력봉쇄 ▲국회해산과 정치인 숙정 ▲국보위 설치및 성격 ▲최규하 대통령 하야 ▲언론통폐합 등을 놓고 설전을 주고받았다. 5·18사건은 ▲광주 병력출동 경위 ▲「자위권 발동」 경위 ▲양민학살 과정 ▲지휘권 이원화 여부 등이 핵심이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공방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다음 달 중순쯤 내릴 예정이다.〈박선화 기자〉
  • 23일 한일정상회담/북한문제 주의제로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야시 사다유키(임정항)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오는 23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간 문제,북한 대책,국제정세 등을 의제로 삼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8일 보도했다.
  • 해외반응/미국 “러 민주주의 이정표 마련”

    ◎일 “개혁정책 계속 되길”/나토 “옐친 승리할 것” ▲미국=미백악관은 17일 러시아 대통령선거가 러시아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 『미국은 러시아대선에서 중대한 선거부정 행위가 없었다는 보고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 토머스 피커링 러시아주재 미국대사는 다음달에 실시될 예정인 2차 결선투표에서 옐친 대통령이 주가노프 공산당당수를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일본정부는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지 러시아의 개혁정책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야시 사다유키 일본 외무차관은 『우리 정부는 러시아가 이번 선거 이후에도 개혁정책이 후퇴하지 않고 지금의 정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거 대체로 공정했다 ▲유럽연합(EU)·나토=옐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러시아에 대한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은 유럽연합(EU)은 1차투표 결과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옐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이번 선거가 대체로 공정하다는 평가를 내렸다.또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옐친이 당선되면 동유럽국가의 나토 가입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며 옐친이 어려운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결국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주의 수호 등 기대 ▲프랑스=프랑스 정부는 러시아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를 원한다고 밝혀 옐친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주가노프 승리땐 재앙 ▲독일=테오 바이겔 독일 재무장관은 러시아 대선에서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승리한다면 러시아경제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겔 장관은 『러시아 경제체제와 재무구조가 변경된다면 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하고 현재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장자는 옐친 대통령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소련 공화국들은 러시아 대선이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번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선거결과를 주시하고 있다.〈워싱턴·도쿄 외신 종합〉
  • 시리아,터키접경 병력 집결/테러 4건 개입보도후 긴장 고조

    【베이루트 AFP 연합】 최근 몇 주동안 시리아에서 발생한 4건의 폭탄테러사건 배후에 터키정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온뒤 시리아정부는 터키와의 국경지역에 군대를 증강 배치시켰다고 알 하야트지가 15일 밝혔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있는 이 신문은 『시리아가 터키와의 국경지역으로 4만여명의 병력을 이동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여행객들의 말을 빌어 터키국경쪽으로부터 총성과 함께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전하면서 터키측은 이미 『상시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알 하야트지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4건의 폭탄테러사건이 지난 5월6일이후 시리아에서 발생,막대한 물적피해를 입혔다고 밝히고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터키정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12·12­5·18」12차 공판

    ◎전씨­“「노 대통령 당선」으로 5·18 용인 나를 처벌하려면 국민투표해야” 전두환 피고인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하야의사를 지난 80년8월1일 최대통령으로부터 처음 들은뒤 대통령직 승계제의를 받았으며 같은 달 4∼5일쯤 두번째 회동에서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18·19면〉 지난 80년5월31일 국보위설치는 자신이 건의하자 최규하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려 이뤄진 것이라고 강변했다. 집권시나리오로 불리는 「시국수습방안」은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독자적으로 구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피고인은 10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12차공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또 『현정부는 국보위의 설치와 운영을 내란행위로 기소하면서도 당시 업무를 추진한 인사를 청와대와 검찰,헌법재판소 등 요직에 임명하는 인사를 했다』며 『이는 현정부와 검찰이 내란행위로 기소한데 대한 스스로의 모순이며 과거청산이라는 이 사건 기소의 명분에 대해 가치관의 혼란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5공이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되고 노피고인이 직선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2·12 및 5·18사건에 대해 국민이 이를 용인하는 주권적 의사표시로 봐야한다』며 『따라서 자신을 처벌하려면 국민투표로 가부를 물어 국민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북지원 긴밀 협의/한·일 합의

    【도쿄 연합】 김태지 주일한국대사는 5일 하오 일본 외무성에서 하야시 사다유키(임정항) 사무차관과 회담을 갖고 유엔이 곧 요청할 것으로 보이는 대북한 긴급 원조와 관련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김대사는 『과거에도 의견교환을 한 만큼 한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상기시키면서 유엔의 요청에 대해 일본이 대응방안을 검토할때 한국과도 협의해줄것을 당부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유엔 요청에 응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으나 하야시 차관은 앞으로 한국과 긴밀히 연락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결단의 순간들

    ◎30일 저녁­요한손­하야투 회동… 반전기미 포착/31일 상오­사마란치 아벨란제에 “포기” 충고설/31일 하오­세불리 알고 일관방 “공동개최” 시사 한·일공동개최를 성사시키기 위한 취리히의 밤과 낮은 세계 축구관계자의 막후교섭으로 숨가쁘게 돌아갔다. 표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던 2002년 월드컵축구 개최지결정이 공동개최로 마무리될 조짐은 지난달 29일 FIFA 각 분과위원회가 시작되면서부터.한국측은 공동개최가능성에 유연한 입장을 유지했고 일본측은 오카노 슈ㄴ이치로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이 FIFA 집행위가 열리기 전날인 30일 내외신기자회견을 갖고 단독개최의 기존원칙을 고수했다. 30일 저녁 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회장과 이사 하야투(카메룬) 아프리카축구연맹회장의 회동이 일부 일본기자들에게 포착되면서 급반전의 징후가 나타났다. 요한손회장은 기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공동개최안의 승리를 암시했다. 유럽표 8표에다 아프리카 3표의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집행위원 21명중 절반이 넘은 11표를확보한 것.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일본측은 발칵 뒤집혔다.본국 정부와의 연락 등 움직임이 급박해졌으며 자체 표분석결과 7표만이 확보된 것으로 자체 평가,표대결의 경우 패배가 분명한 「벼랑끝 위기」에 몰리게 됐다. 집행위회의 당일인 31일 상오에도 이상기류는 또다시 감지됐다.아벨란제가 세불리를 느끼자 전날 로잔으로 달려가 사마란치 IOC위원장으로부터 『아프리카표까지 유럽쪽으로 가는 것이 대세이니 당신이 포기하라』는 충고를 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 집행위원 단체촬영이 끝난뒤 정몽준 회장이 요한손 회장과 미소를 지은채 나란히 서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해 회의내용을 점치게 했다. 이에 앞서 8시쯤 조금전 오카노 슈ㄴ이치로 일본유치위원회 실행위원장이 FIFA본부에서 아벨란제 회장을 만나 「긴급협의」를 마치고 떠난 사실을 일본측 기자들이 확인했다. 이어 10시쯤 일본 가지야마 세이로쿠관방장관이 한·일공동개최 시사발표가 급전을 통해 현지에 알려지면서 공동개최는 사실상 굳어졌다. 결국 개최결정권을 쥔 FIFA 집행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양대세력의 극한대결을 피한 공동개최라는 절충안을 택했다. 이와 함께 일본보다 3년 늦게 본격적인 유치경쟁에 뛰어든 한국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FIFA부회장 당선 ▲대회운영수익금 전액을 세계축구발전 기금으로 내놓겠다는 획기적인 제안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개최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한다는 명분론 등이 일본지지세를 압박하는데 성공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김동준 기자〉 ◎공동개최 관계자 3인문답/정몽준­“한·일 앙금해소 기회로”/나가누마­“성공적으로 치르게 협력”/아벨란제­“공동개최 훌륭한 선례”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는 각국 기자들이 몰려 한국의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일본의 나가누마 겐축구협회장에게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공동개최에 대한 한·일축구협회장의 소감은. ▲(정몽준)=한·일 양국은 과거의 암울한 역사로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FIFA의 이번 결정은 양국의 앙금을 해소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판단이다.FIFA가 투명하고 민주적인 기구라고 생각하며 이같은 결정을 존중한다. ▲(나가누마)=FIFA 집행위의 결정을 존중한다.월드컵사상 최초의 공동개최가 21세기 최초,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만큼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한다.공동개최의 선례를 남겨 앞으로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정회장(한국)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다. ­개최자격요건은 갖춰졌는가. ▲(정몽준)=실무적인 문제가 많을 것같다.새로 구성되는 실무위에서 이같은 문제를 훌륭히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나가누마)=FIFA의 모든 결정에 따르겠다. ­일본이 공동개최를 수용한 것은 정치적인 결정인가. ▲(나가누마)=절대 아니다.21세기 축구발전을 위한 것이다. ­공동개최는 위험한 선례가 아니가. ▲(아벨란제)=집행위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검토했다.오히려 훌륭한 선례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앞으로 유치규정은 수정되는가. ▲(아벨란제)=각국 대표가 모인 조직위에서 규정을 바꿀 수 있다. ­일본이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이유는. ▲(나가누마)=일본은 FIFA의 결정을따르기로 했다. ­회의결과가 아벨란제회장의 불신임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아벨란제)=집행위가 나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받아줬다.
  • 변호인이 퇴정하다니(사설)

    16년전,그것도 비상상황속 권력의 심층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사법의 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작업이 어찌 손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세월을 되짚어 가 한 시대 무소불위,권세를 휘둘렀던 세력을 법정에 세웠으니 잘못된 일들에 대한 증거며 기록인들 충분할 리가 없다.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힘들 것임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막상 22일 5차공판에서 전두환씨의 불성실한 답변자세,뒤이은 변호인단의 집단퇴정「시위」를 목격하며 우리는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게 된다.비자금공판때나 마찬가지로 그들에게서 역사앞에 죄를 지었다는 자성의 마음가짐이나 국민에게 미안하게 됐다는 수치심을 찾아볼 수 없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비자금공판과정에서 한푼도 남기지 않고 국가에 헌납했다는 공언이 거짓으로 확인되고 사과상자속 61억원 돈뭉치가 물증으로 드러났음에도 전혀 자세가 바뀐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씨등에게 자신들이 믿는 바 진실만을 증언하고 검찰의 신문을 부인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미 관계자들의 증언과 자료제공으로 자신의 결재 사실이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고 잡아떼고 각종 시국관련조치 승인여부에 대해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게 확인해보면 될것 아니냐며 도전적 자세를 취한 것은 진솔하게 진상규명에 임하는 태도로 보기 힘들다. 특히 검찰의 최씨에 대한 「하야 위로금」 문제 신문에 벌컥 「인격모독」이라며 변호인단이 집단퇴정,재판이 중단되게 한 일은 사법질서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작전상」 자신들이 탄압받는 「정치재판」인양 국민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과거에 대한 진지한 자성없이 「작전」과 정치적 대응을 계속하다간 더 쓰라린 국민적 응징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해둔다.역사의 대세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파라과이 쿠데타설/“군참모총장 전역거부 반란” 소문

    ◎바스모시 대통령 해병병영 피신 【아순시온·마드리드 AFP 로이터 연합】 파라과이의 리노 오비에도 군참모총장이 대통령의 전역 명령을 거부,군사반란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23일 현지 언론이 후안 카를로스 바스모시 대통령의 하야를 보도하고 의회 의원들이 군사반란 저지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파라과이 정국이 혼미로 빠져들고 있다. 파라과이 민영 난두티 라디오 방송은 바스모시 대통령이 파라과이강 기슭의 해군병영으로 피신한 뒤 특사를 통해 오비에도에게 사임서를 제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 전씨·변호인 역공에 검찰 곤혹/「12·12」 5차 공판 뒷얘기

    ◎하야 위로금 추궁하자 전씨측 반발/재판연기신청에 재판부심기 불편 서울지검의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23일 무척 곤혹스런 분위기였다. 22일의 5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과 변호인의 역공에 말린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하야 위로금 1백75억원을 줬다는 확인되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가,전피고인으로부터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자,국민의 수치』라는 거센 반발을 샀다. 예기치 않은 반격이었다.변호인단의 대표격인 전상석·이양우 변호사가 불만을 표시하며 퇴정하는 사태를 빚었다. 공소유지에 충실,정정당당하게 대처하겠다는 검찰의 공언이 무색해진 것이다. 고위 관계자는 이 날 침묵으로 일관했다.단지 『곤혹스럽다』고 심경의 일단을 비췄다. 『사실을 밝혀내려고 한 것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날 공판에서 전씨측의 반격에 『세련되지 못해서』 『자질이 부족해서』라며 전피고인과 변호인을 달랬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변호인의 퇴정이 재판의 공정성에 흠집을 입히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표정이다. 변호인단은 단단히 화가 났다.전날 공판이 끝난 뒤 전·이변호사 등 5명이 모여 대책을 숙의했다.더 이상 『인격모독성 신문을 받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23일에는 이같은 의사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재판부에 공판연기도 신청했다.그러나 재판을 거부하거나 재판부 기피신청까지는 안 갈 것 같다.다분히 항의성 시위의 성격이 짙다. 변호인단은 전날 공판에서 일부 방청객이 전변호사에게 『몸 조심하라』는 식의 무언의 압력을 보낸 것에도 신경쓰는 눈치다. 24일에는 변호인단의 입장을 정리,기자회견을 가질 참이다.검찰의 「언론플레이」를 비난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촉구하겠다는 속셈이다. 재판부도 심기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역사를 새로 쓴다」는 자세로 공정히 이끌려던 의지에 상처를 입었다고 여기는 듯 하다. 재판부는 지금껏 검찰에는 공소유지와 상관없는 질문을 삼가하도록 주의를 줬다.변호인에게는 의견개진의 기회를 충분히 주려고 애썼다.전날 「사건」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그러나 변호인이 신청한 공판연기의 사유가 없다며,예정대로 오는 29일 6차 공판을 갖기로 했다.〈박선화 기자〉
  • 최 대통령 하야과정/전씨,내각 무력화·군원로 설득 양면 압박작전

    ◎김정렬씨 수차례 밀사로 파견… 최씨 적극 설득/“「8·15 하야」는 모양새 좋지 않다” 하루 늦추기도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의 집요한 양면 압박전술에 따른 것이었다. 최대통령은 외견상으로 지난 80년 8월16일 상오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특별성명을 내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최 전대통령은 지금껏 사임과정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22일 검찰의 신문에서 최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경위가 두 갈래로 정리됐다.신군부측이 5·18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국보위를 설치함에 따라 내각의 기능이 상실된데다,군 원로들의 최대통령 하야설득이 주효한 것이다. 그러나 전씨는 대부분 부인했다. 전사령관은 사실상 5·17 비상계엄의 확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집권 시나리오를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6개 항의 시국수습 방안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주요 정적들을 부정축재 또는 소요배후 혐의로 체포했으며 국보위를 설치했다.특히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행정부를 장악,권력이 집중됐고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국내외에 부각됐다. 이처럼 내각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상실되자 최대통령은 7월 하순쯤 사임을 결심하게 됐다. 신군부는 이와 별도로 김정렬 전국방부 장관을 최대통령에게 수차례 밀사로 보내 하야를 설득했다.신현확 총리는 이같은 사실을 김씨로부터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처음 최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했다.『지금 국민들은 군인들이 나서는 것보다 나처럼 별 의심이 가지 않는 사람이 과도정권을 끌고 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게 반대이유였다. 김씨의 몇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최대통령은 7월30일 하야를 결심한다.그날 하오 6시부터 청와대 접견실에서 5시간에 걸친 김씨와의 입씨름 결과였다. 김씨는 이촌동의 집으로 돌아온 자정쯤 전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내용을 알렸다.이튿날인 31일 최대통령이 전씨를 청와대로 불렀다.『내 자리를 대신 맡아달라』며 하야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한뒤 『휴가나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고 권유했고,최대통령은 강릉으로 휴가를 떠났다. 전씨는 이 사실을 노태우 수경사령관에게 알렸다.7월 초에는 유학성·황영시 장군 등 신군부 장성 10여명이 공군 참모총장 공관에 모여 현수막을 내걸고 전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의했다.벅찬 운명에 전씨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최대통령은 당초 8월15일 하야하려 했으나 신군부측이 「광복절에 사임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고 말려 하루 늦췄다.〈박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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