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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글 삭제…“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삭제된 이유는?

    청와대 글 삭제…“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삭제된 이유는?

    ‘청와대 글 삭제’ ‘대통령 하야’ 한 네티즌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글이 삭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는 28일 한때 이 글을 보기 위해 접속한 네티즌들로 인해 한때 마비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자유게시판에 정모씨라는 분이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고 이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접속이 폭주했다”고 설명했다. 이 네티즌은 전날 오전 글을 올렸고, 이날 오전 9시 현재 40만건이 넘는 접속 건수를 기록했다. 이 글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고 이후 정부 대처의 미흡함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무책임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네티즌은 이 글에 대한 관심이 폭주하자 이날 오전 “제가 쓴 게 아니고 페이스북에서 퍼온 것인데 이렇게 반응이 클지 몰랐다. 파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죄송하다. 운영자 분은 글을 좀 삭제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다시 올렸다고 민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국정홍보비서관실 측은 “자유게시판 운영 정책상 본인이 작성한 글은 본인이 삭제할 수 있고, 삭제를 원하면 실명 인증을 거친 후 직접 삭제하면 된다”는 설명글을 게시판에 올리는 한편 해당 네티즌에게도 전자우편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 11시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민 대변인은 “해당 글을 게시한 네티즌이 스스로 글을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네티즌이 올린 글이 관심을 끌자 청와대 홈페이지는 평소보다 2∼3배 많은 네티즌들이 들어오면서 접속이 불안정한 상태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도 ‘청와대’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국정홍보비서관실의 소영호 행정관은 “평소 일일 접속자 수는 7000명 정도 되는데 지금은 2∼3배에 이르고, 동시 접속자 수도 많아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월 우리는, 팽목항에 열여덟살들을 두고 왔다

    4월 우리는, 팽목항에 열여덟살들을 두고 왔다

    늦은 밤 현관에 들어서는 아들 녀석에게 안 하던 짓을 해 본다. “아들~” 어른만 해진 볼기짝을 툭툭 두드리며 살갑게 불러보는 거다. 싫어라 째려봤을 녀석이 어째 모른 척 넘어가 준다. 가만히 불러본다. 얘들아, 차웅아, 덕하야. 그 멀고 검은 물 밑에서 아이들은 오지 않는 우리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곳에 아이들을 밀어넣고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가 전학 간 아들의 친구는 아직 바다 밑에 있다. 며칠 전까지 녀석이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던 아이다. 사망자 수가 구조자 수를 기어이 넘어서던 날. 학교를 마치고 분향소를 다녀온다던 녀석이 연락 한 통 없이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온다. 친구 이름이 적힌 위패를 보게 될까 봐 분향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몇 시간을 서성였던 눈치다. 왜 이리 늦었냐, 밥은 먹었냐, 휴대전화는 그만 들여다보고 자거라.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집에 왔으니까, 됐다. 뭐라 할 말이 없는 기막힌 시간들이 우리 곁을 흐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보게 되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아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도 제자리만 지키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토끼처럼 쪼그려 앉은 여학생, 전봇대만 한 몸이 기울어져도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는 남학생. 지난 열이틀 동안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그래서 눈물이 더 뜨거웠다. 잠수사는 주검으로 수습된 아이들이 학생증을 부르쥐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날 밤엔 곤히 잠든 아이의 주먹을 한참 내려다들 봤을 것이다. 찬 바닷물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굳었다는 아이들 소식도 들렸다. 그런 날엔 웅크려 자는 아들의 등짝을 슬며시 쓸어봤을 것이다. 무람없고 염치없는, 팽목항의 엄마들에게는 죄스럽기만 한 호사다.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분노, 더 이상이 없는 미안함으로 범벅 된 시간이 자꾸만 흐른다. 이 현실은 최악의 설정만 모아 만든 참혹의 막장 드라마다. 선착순 생존법칙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선원들은 모조리 삼류였다. 우리의 식물정부는 또 어쩌자고 이토록 완벽하게 무능했고 무기력한가. 지난 주말 임시분향소가 차려진 안산을 다녀왔다. 보도를 꽉 메운 조문 행렬은 분향소 옆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돌아 들어가 뱅글뱅글 몇 겹이나 나선을 그렸다. 국화 한 송이 올리는 데 두 시간 넘게 기다려도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분향소 맞은편 100m쯤 떨어진 언덕배기에 단원고등학교가 있다. 삼삼오오 재잘대며 아이들이 오르내렸을 사잇길은 그대로다. 돌아서면 배고파 무쇠라도 녹여 먹었을 녀석들이 오며 가며 군침 흘렸을 자장면 집도 그대로다. 체에 밭인 듯 고운 봄 햇살 속, 교문 앞에는 흰 꽃다발이 무릎만큼 쌓였다. 벌써 발치 아래 꽃들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대신 숨죽여 시들었다. 세계 구조사에 전무후무할 기록, 생환자 0. 불량 정부를 기록해야 한다. 사고 첫날 밤에 오락가락 실종자 수를 꿰맞추며 튀긴 닭을 먹을 수 있었던 무개념 장관을 기록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멱살 잡힌 장관이 즉석에서 현장 지시를 바꾸는 코미디를 기록해야 한다. 원칙, 근거, 개똥철학조차 없었다는 무뇌 정부의 자기증명이다. 진도에 오늘 비바람이 왔다 가면 매정하게 여일한 날이 또 온다. 아이를 찾지 못한 가족들이 팽목항에 남았는데도, 냉정이 교차돼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라틴어에서는 진실의 반대말이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 2014년 4월. 우리는, 이름도 얄궂은 팽목항에, 데려가 달라고 엄마를 부르는 열여덟살들을 두고 왔다. 황수정 문화부장 sjh@seoul.co.kr
  • [합동분향소 표정] “친구들 살리고 하늘로 떠난 덕하야… 미안해, 사랑해”

    [합동분향소 표정] “친구들 살리고 하늘로 떠난 덕하야… 미안해, 사랑해”

    “최군은 위험한 와중에도 의젓하게 용기를 내 수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고 미안합니다. 그럴수록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27일 오전 7시 경기 안산 와동성당.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119 신고를 해 수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 고(故) 최덕하(17·단원고 2학년)군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최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성당에서 봉헌된 장례미사에는 유족과 친구, 신자 등 400여명이 모였다. 안타까움과 분노, 비통함이 가득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한 김한철 율리아노 신부의 말을 듣던 일부 조문객들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성당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후 30여명의 유족들과 단원고 학생들은 최군의 영정사진과 위패, 관을 뒤따르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미사가 끝난 후 와동성당을 빠져나온 운구차량은 화장을 위해 수원연화장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단원고를 향했다. 김모(51·여)씨는 “교복 입은 사진을 보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면서 “최군이 하늘에 가서도 몇십 년 뒤 가족을 만날 때까지 계속 울고 있을 것만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에도 24명의 영정과 위패가 추가로 올라왔다. 이로써 합동분향소에는 143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궂은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분향소 입구에 선 줄은 올림픽기념관을 넘어 고잔초등학교 앞까지 100m가량 이어졌다. 28일 오전 1시까지 누적 조문객 수는 16만여명, 추모 문자 메시지도 8만여건이 도착했다. 경기 화성에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온 박미은(41)씨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일찍 오는 게 예의라 생각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면서 “아직 실종자 처리된 사람들이 많으니 꼭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김원철(28·회계사)씨는 “재작년 부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선생님이 이번 사고로 희생돼 마음이 먹먹하다”면서 “정부가 가족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들 내 탓이 아니라고만 하고 남의 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실종 학생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상징적인 장소가 됐던 안산 월피동의 한 마트에는 주인인 단원고 2학년 강승묵군의 어머니가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만 남아 있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는데 승묵이는 더 이상 춥지도 무섭지도 않은 곳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기억하겠습니다. 응원해 주시고 걱정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날 오전 강군의 발인도 치러졌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성패 무엇이 갈랐나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성패 무엇이 갈랐나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신명호 지음/역사의 아침/544쪽/2만원 19세기 중반 역사적 전환기에 조선과 일본은 모두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 극복 과정과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선의 고종은 근대화에 실패한 군주가 됐지만 일본의 메이지는 근대화를 성취한 군주로 떠올랐다. 저자는 이렇게 된 원인을 고종의 개인적 능력에 한정하지 않고 ‘전환기’라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조망했다. 고종이 즉위하던 19세기 중반 동북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붕괴되고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가 투영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었다. 1863년에 만 11세의 나이로 왕이 된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10년 섭정을 거쳐 1874년 봄 친정에 나섰다. 그러나 고종도 친정 초기에는 흥선대원군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청나라가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에 굴복한 이유를 ‘힘의 부족’이 아니라 ‘내부 배신’에서 찾은 것이다. 또 청의 이홍장(李鴻章)이 1879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는다면 단지 일본만 견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엿보는 것까지도 아울러 막아낼 수 있다’는 내용의 밀서를 보낸 데 대해 고종은 ‘우리나라는 옛 법을 지켜 편안히 거처하며 나라 안이나 다스렸지 외교할 겨를이 없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는 당장은 서양 각국과 통상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종은 뒤늦게나마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새 시대를 준비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지도력의 한계와 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생부인 흥선대원군은 하야한 뒤에도 권력에 집착해 고종과 권력 투쟁을 지속했고, 위정척사파라 불린 보수 유림과 중앙 관료들도 개화 정책에 반대했다. 메이지는 1867년 만 16세의 나이로 천황에 즉위했다. 같은 해 에도 막부의 쇼군이 메이지에게 정치권력을 헌상한 대정봉환(大政奉還), 이듬해에는 메이지 유신 등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메이지는 전환기의 혼란을 이겨내고 성공했지만 그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혼란을 극복한 주역은 사실상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같은 웅번(雄藩)이었다. 메이지는 이들 웅번이 성취해 낸 성과에 편승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메이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간에는 오늘날에도 역사 인식에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싸운 위인인가, 아니면 테러리스트인가. 한국인이라면 안중근 의사를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대변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위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동양 평화의 파괴자로 본다.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원수이자 동양 평화를 깨뜨린 흉악범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일본인들은 동양 평화의 수호자로 여긴다. 한국과 일본 간에 보호 조약이 체결된 을사년(1905년)은 우리에게 크나큰 상처이자 아픔이다. 그런 을사년이 일본인들에게는 동양 평화가 확립된 해로 인식된다. 러일 전쟁의 승리로 동양에 평화가 왔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우리의 인식과 상반되는 인식과 주장이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그런 인식과 주장이 가져왔던 참혹한 결과들을 살펴보는 책이기도 하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이대호, 7경기만에 홈런포

    이대호, 7경기만에 홈런포

    ‘빅보이’ 이대호(32·소프트뱅크)가 시즌 두 번째 홈런포를 가동했다. 이대호는 23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니혼햄과의 원정경기에서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4-9로 뒤지던 7회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는 상대 투수 마이크 크로타의 4구째 139㎞짜리 슬라이더를 받아 쳐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겼다. 지난 13일 ‘친정’ 오릭스전에서 마수걸이 홈런을 친 이후 7경기 만에 짜릿한 손맛을 느꼈다. 이대호는 1회 첫 타석에서는 2사 1루에서 상대 선발 우라노 히로시와 상대했으나 3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4회와 5회에는 각각 유격수 뜬공과 우익수 뜬공에 그쳤다. 8회 2사 1, 3루에서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걸어나갔다. 4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을 기록한 이대호의 타율은 .329로 약간 떨어졌다. 한편 8회말 소프트뱅크의 다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무영(29)은 1이닝 2피안타 1볼넷 1실점했다. 선두 타자 후안 미란다에게 좌월 솔로 홈런을 맞았다. 1사 후 오비키 게이지에게 2루타, 고아노 에이치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9번 오노 쇼타를 희생 번트, 요 다이칸을 3루수 뜬공으로 각각 잡고 추가 실점 없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소프트뱅크는 니혼햄에 홈런 5방을 허용해 6-10으로 무릎을 꿇었다. 선발 데라하라 하야토가 4이닝 동안 5실점(5자책)으로 고전했고 뒤를 이은 가야마 신야도 5회 사토 겐지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는 등 1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개조”…청해진해운 면허취소 추진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개조”…청해진해운 면허취소 추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돌이켜보면 출항에서 구조·수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선령이 지난 폐선 수입과 무리한 증축, 화물 과적, 부실한 안전검검, 대출 특혜 의혹 등 탈법과 불법이 난무했다.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엉터리 초동대처,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태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위기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해 “침몰 사고의 전 과정을 철저하게 되짚어 불법과 탈법에 연루됐거나 책임을 방기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침몰 전 과정에 대해 고강도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단계별로 되짚어 봤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선사가 세월호를 들여오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사고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2012년 9월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수입할 당시 이미 수명을 다한 18년이나 된 배를 수입했다. 취재 결과 고철 값이나 다름없는 70억~80억원 수준이었다. 이런 배에다 승객 수를 늘리는 등 용량을 키우기 위해 두 차례나 증축하기까지 했다. 배의 증축은 무게중심을 위쪽으로 이동하는 만큼 안전성에 훼손을 가져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22일 선박 설비 안전검사 기관인 한국선급(KR)에 따르면 세월호 중량은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됐을 당시에는 5997t이었다. 그러나 선박 운항사인 마루에페리로 넘겨져 개조 작업을 하면서 6587t으로 늘었고, 18년이 지난 2012년 10월 한국 ㈜청해진해운으로 매각된 뒤에는 6825t 더 늘었다. 탑승 가능한 정원도 181명 더 증가해 921명이 됐다. 선박 운항장비 제조업체인 KCC전자 박수한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수준의 개조”라고 지적했다. KR은 첫 검사 시 외부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인 ‘복원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두 번째 검사에선 별다른 보완 없이 통과시켜 2013년 3월 처음 취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고령의 배를 수입하고 증축까지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완화가 일조했다. 2009년 이전 20년이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20년 이상 된 여객선이 67척(30.9%)에 이르러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의 재발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 됐다. 침몰 원인 조사를 통해 선박검사 업무를 맡고 있는 KR, 증개축 설계회사, 증개축 시공업체 등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한 이유다. 세월호 수입, 증축 과정 등에 어떤 외압이나 관련 업무자들의 부정한 사실이 없었는지도 이번 수사 과정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청해진해운에 대해 해상여객운송사업면허를 취소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 日서 ‘고철값 +α’에 인수한 배… 産銀서 100억 특혜대출 의혹

    ㈜청해진해운이 폐선에 가까운 세월호를 담보로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100억원대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20일 정부대행 선박검사 법인인 한국선급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일본 마루에 페리사가 18년 동안 사용한 세월호를 2012년 10월 수입해 증축 등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처음 취항했다. 마루에 페리사 측 관계자는 청해진해운에 세월호를 판매한 가격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50억~80억원보다는) 조금 높은 가격에 매각했다. 철의 가격으로도 그 정도는 나간다”고 밝혔다. 특히 세월호를 매각할 당시 “청해진해운이 배를 사서 재운항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청해진해운은 사실상 폐선에 가까운 여객선을 고철값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수입, 리모델링해 운항해 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청해진해운은 리모델링 비용(20억원 전후)을 합쳐 약 100억원을 들여 마련한 세월호를 168억원대 자산으로 회계 처리한 후 한국산업은행에서 100억원의 담보대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은행은 세월호의 채권최고액은 120억원, 명목가치는 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대출을 해 준 것으로 확인됐으나 금융권 및 조선업계에서는 “상당히 후하게 대출이 나갔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출 당시 큰 무리가 가는 여신 취급이 아니었고, 당시 (청해진해운이) 흑자를 내는 상황이라 대출이 나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청해진해운은 배를 계약서상 116억원(8억엔)에 구입해 3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잔금 중 80억원과 리모델링비 중 20억원이 대출금으로 지급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외부 기관 감정평가에 의해 대출했기 때문에 특혜 대출 의혹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에서는 “리모델링을 위해 수입하는 낡은 선박 대금은 보통 현금이 아닌 1~2년 지급기한의 어음으로 대신 지급하기도 한다”면서 “영세업체가 대출금만으로 여객선을 구입하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고 폭로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여객선사가 폐선을 매입해 초호화 여객선으로 둔갑시켜 수백 명의 승객을 싣고 다니는 게 국내 해운업계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청해진해운 측은 일본에서의 수입가격 및 리모델링 비용 등에 대해 답변을 피했다. 한편 일본 마루에 페리사에 따르면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조선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9월까지 운행하다 퇴역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세월호 만든 日조선소의 다른 배도 2009년 ‘판박이 좌초’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세월호 만든 日조선소의 다른 배도 2009년 ‘판박이 좌초’

    세월호를 건조한 조선소에서 만들어졌고, 세월호를 국내 해운사에 판매한 일본 회사가 운영했던 일본 여객선이 세월호 침몰과 비슷하게 좌초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SBS 보도에 따르면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여객선 아리아케호가 세월호와 비슷하게 좌초됐다. 아리아케호는 세월호를 건조한 나가사키현의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만들어졌고, 이 배를 운영한 회사는 청해진해운사에 세월호를 판 마루에이 페리로 나타났다. 아리아케호는 수심이 얕은 곳으로 밀려 나와 침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고 승무원과 승객 28명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 일본 당국은 세월호(6800t급)와 비슷한 7000t급 아리아케호의 사고 원인을 부실한 화물 적재로 결론 냈다. 사고 당시 아리아케호에는 컨테이너 150대와 컨테이너 운반 차량 44대 등 모두 2400t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달리던 배는 왼쪽 뒤편을 초속 15m가 넘는 강한 파도가 때리자 왼쪽으로 급선회했고 25도 정도 기울어졌다. 이때 데크 앞부분 왼쪽에 있던 화물들이 오른쪽으로 쏠렸고 고정 장치들이 파손됐다.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화물들이 한곳으로 쏠리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사고 보고서에서 “큰 파도로 배가 25도 정도 기울자 갑판에 있던 컨테이너 고정 장치가 끊어졌다. 국제 기준은 30도까지 기울어져도 고정 장치가 지탱해 줘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고정 장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세월호의 화물 적재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세월호에 탑승한 한 기사는 “배가 급선회하자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월호는 두 차례에 걸쳐 최초 건조 당시 중량의 14%에 해당하는 828t이나 증축했다. 화물선에 비해 무게중심이 높은 여객선인데 증축까지 한 상태라면 적재 불량에 의한 사고가 일어나기 더 쉽다는 지적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진도 여객선 침몰 최악의 해상참사…안산단원고 학생들도 사망(종합)

    진도 여객선 침몰 최악의 해상참사…안산단원고 학생들도 사망(종합)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5명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17일 밤 12시 50분 현재 6명이 숨지고 294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75명은 구조됐다. 숨진 6명 중 최소 3명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인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민·관·군·경은 선내 잔류자 수색을 일단 중단하고 주변 야간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형 여객선 침몰…승선자·구조자 수 ‘오락가락’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해상에서 6825t급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세월호는 배 앞부분에서 ‘쾅’하는 충격음과 함께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완전히 뒤집힌 채 2시간 20분 만에 수심 37m 해저로 침몰했다. 최초 신고는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접수됐다. 그러나 1시간여 전부터 배가 기울어진 상태였다는 증언이 잇따라,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고 이후 미숙한 대처가 인명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배는 전날 오후 9시쯤 인천여객터미널을 출항해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객선에는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5명, 일반 승객, 선원 등 모두 462명이 탔으며 차량 150여대도 싣고 있었던 것으로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는 당초 파악했다. 그러나 청해진해운은 이날 오후 8시 20분쯤 사고 여객선 탑승인원을 462명에서 475명으로 다시 바꿔 인천 해양경찰서에 통보했다. 선사 측은 일부 화물 운전기사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배에 탑승하거나 승선권을 끊어 놓고 배에 타지 않아 명단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본은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지만 집계 과정의 오류를 파악하고 164명으로 번복했다가 다시 174명으로 발표하는 등 종일 혼선을 빚었다. 야간 수색 결과 6세 여아를 추가로 구조해 17일 오전 12시 현재 생존자는 175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탑승객도 477명에서 459명으로 바뀌었다가 선사 측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인 중대본이 462명, 다시 475명이 탔다고 밝혔다. 소재와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인원은 294명으로 추정된다. 선사 여직원 박지영(22)씨와 단원고 2학년 정차웅(17)군·권오천(17)군·임경빈(17)군의 시신은 목포 한국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17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늦게 사고 해역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여성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이 여성의 시신은 1000t급 해경 함정이 보관하고 있다. 이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 시신이 또 발견되는 등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6세 여아에 앞서 구조된 174명 가운데 55명은 해남, 목포, 진도 등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자 가운데 학생은 7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체 수색 중단 후 17일 새벽 재개, 주변 수색은 지속 해경은 이날 오후 8시쯤 선체 수색 작업을 일단 중단했다. 잠수부 4명이 오후 6시 30분쯤 선체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했지만 시야가 흐리고 선체에 물이 가득차 실종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해경은 물 흐름이 멈추는 정조시간대인 17일 오전 1시부터 조명탄을 쏘아가며 선체 내부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다. 해경은 선체에 실종자 대부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경 등은 날이 저문 뒤에도 경비정 등을 동원한 야간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선박을 인양할 크레인은 17일 오전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사고 원인 조사 돌입 해경은 기관장 등의 신병을 확보, 본격적인 사고원인에 조사에 나섰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날 오후 박모 기관장 등 승무원 9명을 목포해경으로 소환, 사고원인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해경은 사고 선박 이모 선장도 함께 소환하던 중 실종승객 구조지원을 위해 사고해역으로 되돌려 보냈다. 해경은 항로 궤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확인한 결과 여객선이 사고 30분전 운항속도 19노트에서 사고발생 시각으로 알려진 오전 8시 52분쯤 8노트로 급속히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본부는 이씨 등을 상대로 안전 규정·항로 준수 여부, 비상상황에 대비한 규정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특히 승객들이 ‘쾅’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에 따라 암초나 다른 선박과 충돌 여부도 가릴 방침이다. 특히 사고 당시 배 아래에서 ‘찌지직’ 소리가 났다는 일부 증언에 따라 선박에 파공이 발생했는지도 규명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규모 여객선 침몰에 최악 참사 기록될 듯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다.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말 10월 국내에 도입됐다. 길이 145m, 폭 22m 규모의 세월호는 국내 운항 중인 여객선 가운데 최대 규모의 여객선에 속한다. 여객 정원은 921명이며 차량 18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에 적재할 수 있다.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 30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 다음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난 15일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9시쯤 인천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1993년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최악의 선박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는 1953년 부산 다대포앞 해상의 창경호 침몰로 330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실종됐다. 이어 1970년 전남 여수 소리도 해상에서 남영호가 침몰해 323명이 숨졌으며 서해훼리호 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도 여객선 침몰 최악의 해상참사…사망자 계속 늘어나(종합2보)

    진도 여객선 침몰 최악의 해상참사…사망자 계속 늘어나(종합2보)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62명(해경 집계)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17일 0시 현재 6명이 숨지고 280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76명은 구조된 것으로 집계됐지만 그 수는 아직 유동적이다. 민·관·군·경은 날이 바뀌면서 선내 잔류자 수색을 재개했으며 조명탄으로 주변을 밝힌 채 야간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설레는 수학여행길에 ‘대참사’ 16일 오전 8시 58분쯤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해상에서 6825t급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중이라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세월호는 배 앞부분에서 ‘쾅’하는 충격음과 함께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완전히 뒤집힌 채 2시간 20분 만에 수심 37m 해저로 침몰했다. 최초 신고는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접수됐다. 그러나 1시간여 전부터 배가 기울어진 상태였다는 증언이 잇따라,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고 이후 미숙한 대처가 인명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배는 전날 오후 9시쯤 인천여객터미널을 출항해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객선에는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5명, 일반 승객, 선원 등 모두 462명이 탔으며 차량 150여대도 싣고 있었던 것으로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는 파악하고 있다. ●승선자·구조자 수 ‘혼선’…실종자 293명까지 늘어날 수도 중대본은 16일 오후 2시 기준으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지만 집계 과정의 오류를 파악하고 164명으로 번복했다가 다시 174명, 175명, 176명으로 발표하는 등 종일 혼선을 빚었다. 전체 승선자도 477명에서 459명, 462명으로 바뀌었다. 청해진해운은 탑승인원을 475명으로 다시 바꿔 인천해경에 통보했다. 475명이 맞다면 사망자(6명), 구조자(176명)를 뺀 실종자는 293명으로 늘게 된다. 선사 여직원 박지영(27)씨와 단원고 2학년 정차웅·권오천·임경빈 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여성 2명 등 6명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구조된 176명 가운데 55명은 해남, 목포, 진도 등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자 가운데 학생은 7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체 수색 재개, 사고 원인 조사 돌입 해경은 16일 오후 8시쯤 중단한 선체 수색 작업을 물 흐름이 멈추는 정조시간대에 맞춰 이튿날 밤 12시 30분 재개했다. 해경은 선체에 실종자 대부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경 등은 날이 저문 뒤에도 경비정 등을 동원한 야간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선박을 인양할 크레인은 17일 오전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해경은 선장과 기관장 등을 상대로 본격적인 사고원인 조사에 나섰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16일 오후 박모 기관장 등 승무원 9명을 목포해경으로 소환, 조사하고 있다. 해경은 사고 선박 이모 선장도 실종 승객 구조지원을 위해 사고해역으로 되돌려 보냈다가 다시 수사본부로 소환했다. 수사본부는 안전 규정·항로를 지켰는지,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해경은 선원들이 승객 대피에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승객들이 ‘쾅’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에 따라 암초나 다른 선박과 충돌 여부도 가릴 방침이다. 특히 사고 당시 배 아래에서 ‘찌지직’ 소리가 났다는 일부 증언에 따라 선박에 파공이 발생했는지도 규명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규모 여객선 침몰에 최악 참사 기록될 듯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다.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말 10월 국내에 도입됐다. 길이 145m, 폭 22m 규모의 세월호는 국내 운항 중인 여객선 가운데 최대 규모의 여객선에 속한다. 여객 정원은 921명이며 차량 18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에 적재할 수 있다.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 30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 다음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난 15일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9시쯤 인천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1993년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최악의 선박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는 1953년 부산 다대포앞 해상의 창경호 침몰로 330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실종됐다. 이어 1970년 전남 여수 소리도 해상에서 남영호가 침몰해 323명이 숨졌으며 서해훼리호 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사고 선박 건조된 지 20년… 안전검사 2월에 받아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사고 선박 건조된 지 20년… 안전검사 2월에 받아

    침몰 여객선은 다섯 개 층으로 이뤄졌는데 승객 대부분은 4층 객실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실종자 대부분은 이곳 4층 객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16일 사고 선박사인 ㈜청해진해운 측에 따르면 여객선 세월호는 총 5층 규모로 맨 위 5층에 10여명이 승선했고 4층에 350여명, 3층에 80여명의 승객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2층은 화물칸이라 사람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80대의 차량과 1157t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객실은 1~2인실인 로열실, 6인 및 8인실인 패밀리룸, 베드룸, 플로어룸 등 모두 7종이 있다. 3층 일부 구간에는 선원 30명이 묵는 선실이 있으나 사고 당시는 운항 중이어서 이곳엔 아무도 없었을 것으로 해운사 측은 추정했다. 여객선은 길이 145.6m, 선폭 22m, 6825t 규모로 921명 정원의 승객을 태우고 21노트로 운항할 수 있다. 레스토랑, 편의점, 커피숍과 도서관, 휴게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고당시는 이른 시간이라 이들 시설의 이용하는 승객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선박은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됐고 2012년 10월 국내에 도입돼 지난해 3월 15일 국내에서 취항했다. 선박 안전검사는 올 2월 10~19일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공 5개, 끝…오승환 日무대 첫 삼자범퇴

    공 5개, 끝…오승환 日무대 첫 삼자범퇴

    한신의 ‘수호신’ 오승환(32)이 일본 진출 후 첫 3자 범퇴 경기를 했다. 오승환은 11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와의 홈 경기에서 5-1로 앞선 9회 등판해 1이닝 무안타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지켰다. 4점 차 상황이라 세이브는 기록되지 않았다. 사흘 연속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첫 타자 호세 로페스를 2구 만에 우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다음 타자 아베 신노스케는 2구에서 잘 맞은 타구를 내줬지만 1루수 아라이 다카히로의 호수비로 아웃 처리했다. 마지막 타자 사카모토 하야토는 초구 3루 땅볼로 잡아 공 5개 만에 이닝을 마쳤다. 이날 오승환은 최고 152㎞의 강속구를 뿌렸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韓·日 가족극단 ‘삼각김밥’의 묘기 천국 속으로

    韓·日 가족극단 ‘삼각김밥’의 묘기 천국 속으로

    전북 익산시에 자리한 작은 연습실. 이곳에서는 가족 극단 ‘삼각김밥’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렬하게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인 남편 오우치 하야토는 외줄 타기 등 서커스 묘기의 달인이고 한국인 아내 서승아씨는 일본 복합 무용 ‘부토’를 연기한다. 두 사람을 꼭 빼닮은 딸 우림과 조카 가은, 여기에 공연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일본 출신의 팬터마임 대가 고지마야 만스케와 하토리 히사오가 복작거리며 살고 있다. 개성 강한 여섯 사람이 극단을 꾸리게 된 사연은 1995년 인천에서 열린 팬터마임 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우치, 고지마야, 하토리는 축제 출연자로 초청받아 한국에 왔다가 승아씨를 만났다. 네 사람은 인연의 끈을 이어 갔고 고지마야와 하토리의 열렬한 지원으로 오우치와 승아씨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딸 우림이 태어났고 2년 전에는 조카 가은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가족 극단 ‘삼각김밥’이 꾸려졌다. 이들이 가족 창작극 ‘장난감 연구실’을 공연하는 경기 고양시의 공연장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사는 단 한마디도 없지만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자아낸다. 오우치는 원래 ‘다이스케’라는 이름으로 30여년 넘게 일본에서 활동해 온 거리 공연가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고 그간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주변을 탓한 적이 없다. ‘예술’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이들의 좌충우돌 공연기는 11일 밤 7시 EBS의 ‘다문화-사랑:하야토의 신나는 가족 극단’을 통해 안방극장에 전해진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고노담화는 일본의 위안부 반성 표현… 검증하는 건 국제사회에 심각한 긴장”

    “고노담화는 일본의 위안부 반성 표현… 검증하는 건 국제사회에 심각한 긴장”

    “고노 담화는 21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성의 표현이었다. 이를 검증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심각한 긴장을 일으킬 뿐이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검증을 추진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일본 학자들이 31일 오후 도쿄 간다 학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노 담화의 유지·발전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을 조직한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와 고하마 마사코 니혼대 교수는 “아베 신조 정권은 고노 담화에 대해 ‘검증은 하지만 수정은 하지 않는다’고 표명했지만 검증 역시 실질적으로 고노 담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라면서 “고노 담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의 공동성명을 기획했는데 인문·사회과학을 비롯해 과학계 등 폭넓은 분야에서 여러 명의 연구자가 호응해 기획자로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에는 이날 오전 10시 현재 1617명의 학자가 서명했다. 오카노 야요 도시샤대 교수는 “고노 담화는 전쟁 중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범죄로서의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이었다”면서 “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전후 40년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하기도 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노 담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연구 등을 통해 고노 담화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일본 정부 역시 한국 피해자들에게 아시아여성기금을 뛰어넘는 새로운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을 추진한 학자들은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노 담화 계승과 관련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일본군, 군자금으로 위안부 은폐 시도”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검증에 나선 가운데 과거 동남아 여성 위안부에 대한 강제 연행을 군자금을 활용해 은폐하려 했다는 전 일본군 병사의 증언이 확인됐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학 교수는 7일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노 담화 수정 반대 집회에서 대표적인 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건인 ‘스마랑’ 사건에 연루됐던 일본인 병사의 증언 기록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하야시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해군 병조장을 지낸 한 병사는 태평양전쟁 당시 자신이 속한 부대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네덜란드군 하사관 부인 5명과 현지인 여성 270여명을 발리섬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고, 종전 후 처벌을 면하기 위해 군자금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을 회유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종전 후 군수부와 시설부에서 담판해서 약 70만엔을 공작비로 받아 각 촌장을 통해 주민 회유 공작에 썼다”고 밝힌 뒤 “완전히 효과를 봤다. 가장 걱정했던 위안소 건은 한 건도 제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인도네시아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이 1944년 네덜란드 여성 등을 연행해 자바섬 스마랑 근교에 억류하고 군 위안부로 삼은 ‘스마랑’ 사건에 연루됐던 일본군 병사가 1962년 8월 증언한 내용으로, 이 내용을 담은 문서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야시 교수는 전했다. 하야시 교수는 “일본군이 (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군의 돈을 써서 입막음을 시도한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는 일본군이 관여한 조직적인 은폐 공작이었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소행성 쫓는 ‘첨단 작살’ 개발…”총알보다 10배 빨라”

    소행성 쫓는 ‘첨단 작살’ 개발…”총알보다 10배 빨라”

    끊임없이 태양계를 종횡무진하며 때때로 지구에 가까이 다가와 스릴(?)을 높여주기도 하는 ‘혜성’과 ‘소행성’은 접근이 쉽지 않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져있다. 그런데 미국 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의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혜성과 소행성의 표면 샘플을 지구로 보내줄 ‘첨단 작살’이 워싱턴 대학 연구팀에 의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혜성과 소행성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얼음 알갱이와 암석 샘플은 태양계 형성 초기의 모습을 담고 있어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에 천문학계가 가지는 관심은 무척 크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평균 초속 75㎞(혜성), 초속 30㎞(소행성)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천체들이기에 표면에 착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과 2005년, NASA 무인 탐사선 ‘니어 슈메이커’와 일본 탐사선 ‘하야부사’가 각각 소행성 433 에로스, 25143 이토카와에 착륙에 성공했었지만 ‘무인 방식’이었기에 표면 샘플 채취량에 한계가 있었다. 정확한 연구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대량의 샘플을 확보해야했지만 이를 위해 사람을 직접 보낸다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랐기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워싱턴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이 ‘작살’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인’ 방식으로 대량의 표면 샘플을 지구로 직접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원리는 이렇다. ‘니어 슈메이커’와 같은 탐사선이 소행성에 근접한 뒤 이 작살을 작동시키면 시속 3,605㎞ 속도로 소행성 표면에 충돌한다. 이때 충격으로 수많은 표면 샘플이 작살 내부에 담기게 되고 충분한 양이 확보되면 탐사선은 작살을 회수한다. 다시 이 작살은 지구로 보내져 연구진들은 충분한 표면 샘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소행성이나 혜성 표면이 용암, 방사능 같은 극단적 환경으로 구성돼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작살’만의 장점이다. ‘로제타 프로브’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연구를 주도 중인 워싱턴 대학 로버트 윙글리 교수는 “무인 로봇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정교한 연구수준을 따라 갈 수 없다. 이 작살은 소행성과 혜성의 표면 샘플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지구로 전달해 줄 매개체 인 것”이라며 “항공우주과학 분야의 천문학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현재 연구진은 모래와 소금 등으로 가득 찬 200ℓ 드럼통에 시속 112㎞로 작살을 꼽아 안에 있는 물질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수석 엔지니어인 도널드 위겔은 “무엇보다 방향과 충돌지점에 대한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시키는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NASA/스페이스닷컴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총알 10배 속도 ‘소행성’에 꼽을 ‘최첨단 작살’ 화제

    총알 10배 속도 ‘소행성’에 꼽을 ‘최첨단 작살’ 화제

    끊임없이 태양계를 종횡무진하며 때때로 지구에 가까이 다가와 스릴(?)을 높여주기도 하는 ‘혜성’과 ‘소행성’은 접근이 쉽지 않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져있다. 그런데 미국 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의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혜성과 소행성의 표면 샘플을 지구로 보내줄 ‘첨단 작살’이 워싱턴 대학 연구팀에 의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혜성과 소행성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얼음 알갱이와 암석 샘플은 태양계 형성 초기의 모습을 담고 있어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에 천문학계가 가지는 관심은 무척 크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평균 초속 75㎞(혜성), 초속 30㎞(소행성)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천체들이기에 표면에 착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과 2005년, NASA 무인 탐사선 ‘니어 슈메이커’와 일본 탐사선 ‘하야부사’가 각각 소행성 433 에로스, 25143 이토카와에 착륙에 성공했었지만 ‘무인 방식’이었기에 표면 샘플 채취량에 한계가 있었다. 정확한 연구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대량의 샘플을 확보해야했지만 이를 위해 사람을 직접 보낸다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랐기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워싱턴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이 ‘작살’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인’ 방식으로 대량의 표면 샘플을 지구로 직접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원리는 이렇다. ‘니어 슈메이커’와 같은 탐사선이 소행성에 근접한 뒤 이 작살을 작동시키면 시속 3,605㎞ 속도로 소행성 표면에 충돌한다. 이때 충격으로 수많은 표면 샘플이 작살 내부에 담기게 되고 충분한 양이 확보되면 탐사선은 작살을 회수한다. 다시 이 작살은 지구로 보내져 연구진들은 충분한 표면 샘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소행성이나 혜성 표면이 용암, 방사능 같은 극단적 환경으로 구성돼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작살’만의 장점이다. ‘로제타 프로브’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연구를 주도 중인 워싱턴 대학 로버트 윙글리 교수는 “무인 로봇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정교한 연구수준을 따라 갈 수 없다. 이 작살은 소행성과 혜성의 표면 샘플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지구로 전달해 줄 매개체 인 것”이라며 “항공우주과학 분야의 천문학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현재 연구진은 모래와 소금 등으로 가득 찬 200ℓ 드럼통에 시속 112㎞로 작살을 꼽아 안에 있는 물질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수석 엔지니어인 도널드 위겔은 “무엇보다 방향과 충돌지점에 대한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시키는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NASA/스페이스닷컴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민주주의의 품격/이창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민주주의의 품격/이창구 국제부 차장

    2014년을 살아가는 세계인들 가운데 어느 나라 국민이 가장 비참할까. 전쟁의 원인은 오간 데 없이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내전 국가 국민이 먼저 떠오른다. 시리아, 남수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앙아프리카 민중들이 지금 ‘인종 청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는커녕 오히려 흉기가 된 내전국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국가의 꼴을 멀쩡하게 갖췄으면서도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태국에선 여성 총리 잉락 친나왓의 하야를 요구하는 유혈 시위가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는 잉락이 2006년 쿠데타로 쫓겨난 자신의 오빠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사면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의회를 일방적으로 해산한 잉락이 지난 2일 강행한 조기 총선에선 시위대의 방해로 전체의 10%인 1만여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취소됐다. 그런데도 집권당은 승리를 선언했다. 야당은 선거 무효와 인민위원회 구성을 주장한다. 집권당은 늘 선거를 통해 위기를 돌파해 왔고, 야당은 항상 선거를 거부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건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빈민들이 탁신파에 ‘묻지마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정권교체 수단은 쿠데타이다. 쿠데타를 19번이나 경험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할 줄 모른다. 우리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터키의 꼴도 말이 아니다. ‘현대판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당 인사들과 관련된 비리 사건을 수사해 온 검사들을 족족 자르고 있다. 해고와 전보 조치된 수사 인력만 2000명이 넘는다. 3선 총리인 에르도안은 헌법상 총리직에 다시 도전할 수 없게 되자 사상 처음 직선제로 치러지는 8월 대선에 출마하기로 했다. 혼란을 겪는 동안 터키 경제는 계속 추락해 ‘F5(금융위기 취약국가)’의 첫 번째 국가가 됐다. 그래도 총리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높다. ‘아랍의 봄’의 상징이었던 이집트는 또 어떤가. 수많은 민중의 희생 속에 탄생한 민선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압둘 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이 군복을 벗고 4월 대선에 출마한다. 혁명의 심장이었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선 군사독재로 돌아갈 것을 원하는 시시 지지자들의 관제데모만 열리고 있다. 태국, 터키, 이집트는 모두 헌법과 선거, 정당 등 민주주의에 필요한 제도를 갖췄다. 인구, 영토,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국력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지혜와 힘을 아직 기르지 못했다. 권력자들은 이런 국민을 마음껏 이용하며 자기 배를 채운다. 4·19 혁명,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이들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한 번 돌아보자. 국가정보원과 군이 대선에 개입했고, 이를 수사해 온 검사들은 터키의 검사들처럼 하루아침에 전국 지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던 서울광장은 타흐리르 광장처럼 황량해졌다. 영호남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태국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 것만큼 쉽다. 때때로 ‘종북’이라는 잣대가 민주주의와 양심을 재단하기도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은 과연 안녕하신가. window2@seoul.co.kr
  • [길섶에서] 유행성 결막염/박찬구 논설위원

    사나흘 전부터 양쪽 눈이 빨갛다.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서더니, 다음 날엔 왼쪽 눈으로 퍼졌다. 옅은 오미자차 색깔이던 양쪽 눈은 하루가 지나자 레드 와인 색으로 변했다. 안과에서는 유행성 결막염이라고 진단했다. 환자가 줄을 잇는단다. 뻑뻑하고 간지럽고, 눈이 불편하니 몸도 생활도 궤도를 벗어난다. 하루 서너 차례 고개를 90도 가까이 뒤로 꺾어 부릅뜬 눈 안으로 점안액을 정조준하는 일부터 까다롭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새고 흘리기 일쑤다. 실핏줄에 물들어 붉어진 안약이 뺨으로 흐르는 착각에도 빠진다. 유행을 퍼뜨리고 싶지 않아 ‘불가촉’(不可觸)을 자처하니 영락없이 뒤주에 갇힌 꼴이다. 눈이 빨갛다고 세상이 붉게 보이랴마는, 정신이 온통 눈에 팔려 있는데도 하늘은 어제처럼 파랗고 흰 꽃은 여전히 하야니 홀로 동떨어진 느낌이다. 잡념이 이에 미치니 눈병 하나로 웬 호들갑이냐며 마음에서 핀잔이 오간다. 옛 선비는 고황에 병이 깊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는데 말이다. 부끄러움에 얼굴까지 붉어진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막부체제 종식’ 사카모토가 이룬 일본 근대화

    ‘막부체제 종식’ 사카모토가 이룬 일본 근대화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마리우스 B 잰슨 지음/손일·이동민 옮김/푸른길/632쪽/3만 5000 19세기 중반 일본은 서구의 위협에 직면했다. 1854년 미국의 무력 위협으로 ‘일·미 화친 조약’을 체결해 문호를 개방한 이후 막부(幕府·일본의 무사 정권) 멸망에 이르는 1867년까지 10여년은 외세에 오랜 기간 쌓여온 적대감과 긴장이 폭발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기의 이념·정치적 격동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촉발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를 이룬 정치·사회적 대변혁인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과 유신에 이르는 전개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은 유신을 통해 통일된 국민국가로 발전했고 나아가 서구 강대국들과의 국제적 평등과 아시아 맹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프랑스 혁명이 유럽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듯 일본의 움직임은 아시아의 이웃 국가들에도 자극이 됐다. 한국의 김옥균, 중국의 쑨원(孫文)과 캉유웨이(康有爲),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에밀리오 아기날도, 인도의 독립운동가 수바스 찬드라 보스 등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힘과 재능 측면에서 일본의 추진력을 자국에 도입해 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책은 19세기 중반 일본의 시대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 내용을 일본 전체가 아닌 도사 번(土佐 藩)이란 지역으로 한정해 그곳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 실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무사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업적과 사상, 사회·경제적 상황을 조명한다. 사카모토는 막부 체제를 종식하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를 세운 일본의 국민 영웅. 하급 무사였던 그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뒤 1867년 33세의 나이로 반대파의 칼에 죽음을 맞았다. 책은 에도 막부의 말기, 서구 열강의 개항 요구, 계급 간 갈등 등 메이지 유신 전후의 시대상황을 자세히 보여 주며 유신의 발생, 전개, 결과를 설명한다. 사카모토보다 비중이 적긴 하지만 하급 무사로 함께 활약했던 나카오카 신타로도 조명된다. 나카오카 역시 1867년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이었던 게이키가 하야한 직후 암살됐다. 사카모토의 화려한 행적은 일본인 작가와 극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호도된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게 역사가들의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저자가 네덜란드 출신의 동양사학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미국 프린스턴대 일본사 교수로 재직한 저자는 2000년 사망하기까지 일본사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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