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하복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불이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신뢰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만도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MBS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16
  • 교과부 오락가락 행정에… ‘반값 교복’ 무산 위기

    부산 수영구의 ‘반값 교복’ 사업<서울신문 2011년 12월 28일 자 18면>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오락가락 행정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수영구는 13일 최근 교복공동구매 보조비 지원사업의 적정 여부를 교과부에 질의한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경비보조에 관한 규정 제2조(보조사업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구는 “수영구에 거주하지만 타 지역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도 교복비를 지원받게 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교과부에 이 같은 내용의 질의를 했다. 수영구는 2009년 반값 교복 사업에 대해 교과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사업을 추진했고 예산 확보 문제 등으로 인해 지난해에야 사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수영구는 반값 교복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학부모 등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김모(45·주부)씨는 “물가가 오르는 등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구가 반값 교복 사업을 추진해 잔뜩 기대했는데 교과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딴죽을 걸고 나와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구는 2009년 이후 관련 법률 및 규정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다른 답변이 나온 것에 대해 지난 12일 교과부에 재질의를 해놨다. 구 관계자는 “교과부 회신내용에 따라 법적 대응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과부 관계자는 “2009년 당시 담당자가 교육경비보조사업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해 잘못된 답변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구는 올해 관내 6개 중학교의 반값 교복 사업에 1억 638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1365명인 신입생 한 명당 동·하복비의 50%인 12만원을 지원할 수 있는 액수다. 이들 학교는 구의 예산 지원에 따라 교복공동구매를 실시하기로 하고 업체 선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교복값 일부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한 것은 수영구가 전국에서 처음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 수영구 ‘반값 교복’ 지원

    부산 수영구가 지역 내 6개 전 중학교에 공동구매를 통한 ‘반값 교복’을 지원한다. 수영구는 내년 관내 6개 중학교 신입생 교복구입비 1억 6380만원을 지원한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구는 최근 이들 중학교와 협약을 맺고 내년도 신입생의 동복과 하복을 공동구매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학교별로 교복 공동구매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개입찰을 통해 교복 업체를 선정, 공동구매토록 할 계획이다. 구에 따르면 중학생 동복의 경우 개별 구매 시 24만원 안팎이지만 공동구매 시 16만원으로 교복 구입비를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는 구입 비용 중 절반인 8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따라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절반인 8만원으로 교복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대상 학생은 내년 중학교 신입생 1365명으로 한 명당 동·하복 비용으로 총 12만원을 지원받는다. 이처럼 전 중학교가 교복 공동구매를 실시하고 교복 비용 중 일부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고가의 브랜드 교복 대신 저렴한 지역업체 교복을 지원함으로써 학부모의 교육경비 부담을 덜어 주고 학생들 간 위화감도 해소하는 교육적 효과가 기대된다. 수영구 관계자는 “실효성 있는 교복 공동구매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잇따른 데다 교복, 가방 등 신학기 비용으로 수십 만원이 드는 경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29) 다면평가

    [테마로 본 공직사회] (29) 다면평가

    외교 공무원들은 일반 업무는 물론 동료나 상·하급자와의 인간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공관장 지원자들을 상대로 상급자, 동료, 하급자까지 참여해 해당 공무원에 대해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로 부적격자를 솎아 내기 때문이다. 공관장 심사 척도는 외국어·근무평정·다면평가 3개 분야로 이뤄지지만 다면평가 점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 외교통상부의 재외공관장 선정 심사에서 2명이 낙방했는데, 다면평가 점수가 복병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심사 대상 후보 가운데 다면평가 결과에서 하위권자로 나올 경우 ‘집중 심사’의 대상이 된다.”면서 “5년 이내에 재외공관장을 희망할 경우 다면평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승진 심사 때 일정 비율을 점수에 반영하고 매해 정례 인사등급을 매기기 위해 운용해온 다면평가제가 대부분의 중앙부처에서 사실상 폐지된 지 2년 가까이 됐다. 그러나 일부 부처에서는 여전히 그 유용성에 주목하며 승진 심사 시 다면평가제를 사용하고 있다. 운용 방법상 취약점을 보완할 경우 다면평가제가 유용한 인사자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면평가제, 어제와 오늘 공무원 사회에 다면평가제가 도입된 것은 1998년 공무원임용령(대통령령)이 개정되면서다. 핵심은 인사권자나 관리자 한 사람의 독단적 평가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승진과 임용 때 선배, 동료, 후배, 민원인 등이 해당 공무원에 대해 평가하는 것. 공무원임용령이 개정된 뒤 다면평가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부처는 현재 국토해양부로 통합된 해양수산부로 전해진다. 2001년 공무원임용령이 다시 개정돼 승진 임용 때뿐만 아니라 성과상여금 지급과 특별승급, 교육훈련, 보직관리 등 각종 인사관리에 다면평가 결과를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주로 승진 전보 등 인사와 교육 훈련에 활용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거의 전 부처에서 인사자료로 쓰기 위해 다면평가가 적극적으로 시행됐다. 그러다 지난해 1월 행정안전부는 ‘다면평가제 사실상 폐지’ 선고를 내렸다. 부처별로 다면평가제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그 평가결과를 승진심사 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지만 전처럼 5~20%가량 반영하지는 못하게 한 것이다. 상급자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이나 동료 평가도 반영되는 점을 악용해 공무원노조가 상급자 압박용으로 활용한다는 문제 제기 탓이 컸다. 무엇보다 상명하복식 공무원 업무 성격에 비춰볼 때 다면평가를 의식해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상사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일 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업무와 상관없이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 있는 점, 부적절한 평가단 구성 등의 부작용으로 더이상 공식적인 인사등급 자료로 사용되지 못하게 됐다. 국무총리실의 경우 행안부의 지침 시달 이후 다면평가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인적 관계가 좋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면서 “총리실은 직원 구성에서 파견자가 많아 다면평가제를 통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웠던 만큼 인사에 반영할 때 실익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피평가자에 대한 리더십과 인간관계에 대한 참고 자료로서는 의미가 있어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기본 근거가 되기보다 승진을 배제하기 위한 자료로는 유용하다.”고 말했다. ●“수정·보완하면 의미 있는 자료” 그러나 유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외교부 등 7개 부처에서는 여전히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고위공무원단 승진 심사시 승진 후보자에 대해 다면평가를 실시해 참고한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6급에서 5급으로, 5급에서 4급으로 승진 심사할 때 다면평가를 실시한다. 과거 모든 부처의 공무원을 상대로 다면평가를 실시했을 때에도 최상위자와 최하위자 그룹을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는 게 부처 인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상급자가 알 수 없는 동료나 하급자 혹은 고객이나 민원인 등 주변의 인식을 두루 알 수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라는 평이다. 당초 목적이 ‘부적격자 솎아내기’가 아니라 피평가자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파악하고 나아가 그 사람의 자기개발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고용부 관계자는 “다면평가가 연공서열 위주의 근무성적 평가에 대한 대안으로 의미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사회에는 연공서열 문화가 강하다 보니 상급자들이 근무성적평가를 매길 때 능력보다 순서대로 평가해 주는 경향이 있어 다면평가제가 이를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기영합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리더십이 좋을 때 업무의 성과도 잘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사 자료로서 여전히 의미 있다는 평이다. 명지대 행정학과 박천오 교수는 “다면평가는 피평가자의 상급자뿐만 아니라 하급자와 동료가 평가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취지와 활용도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면서 “다만 평가 방법이 체계적으로 이뤄졌을 때에만 자료로 쓸모가 있는 만큼 설계와 운용의 미를 잘 살린다면 공직 사회에 유용한 인사 평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일본통신] ‘요미우리 내분’ 와타나베 승리로 일단락

    [일본통신] ‘요미우리 내분’ 와타나베 승리로 일단락

    결국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85)의 승리였다. 그리고 반기를 든 키요타케 히데토시 대표(61)는 결국 해임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구단 내분으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뤘지만 반기를 든 구단 대표를 경질하면서 이번 사태를 일단락했다. 하지만 구단 안밖에서는 와타나베 회장의 독선과 아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다. 이번 사태는 지난 11일 벌어졌다. 코치 인선과 관련해 키요타케 구단 대표는 와타나베 회장에게 이미 보고를 했지만 시즌이 끝난 후 와타나베는 에가와 스구루(56)를 1군 주임코치로 영입하고자 한다며 분노했다. 키요타케 대표의 주장은 올 시즌 도중 내년 코치 인선에서 현 요미우리 1군 주임코치인 오카자키 카오루를 유임하자고 와타나베에게 전달하고 승락도 받았지만 와타나베는 시즌 끝난 후 말을 바꿔 “나는 그런 보고를 받을일이 없다.”며 키요타케 대표의 말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이것이 키요타케 대표가 단독 기자회견을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서 요미우리 구단은 키요타케 대표를 경질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구단의 명예를 훼손 시켰다’다. 앞서 키요타케 대표는 와타나베 회장을 가리켜 “부당한 권력자” “프로야구와 요미우리 구단을 좌지우지 한다.” 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와타나베 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결론적으로 구단에 반기를 든 키요타케 대표는 경질됐고 이대로 물러날 뜻이 없는 키요타케는 소송을 통해 법적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11일 키요타케 대표의 기사회견이 나간 후 다음날 와타나베는 “코치 인선은 독단적인게 아닌 이미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에가와 코치의 영입은 기업 비밀인데 미리 밝혀져 어렵게 됐다.”며 키요타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한바 있다. 하지만 키요타케 대표는 “회장이 허위사실을 발표했다.” 와타나베 회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미 키요타케 대표는 요미우리 신문 내에서도 고립감이 깊어졌고 하라 타츠노리 감독과 모모이 쓰네카즈 구단주겸 사장은 이미 와타나베 편에 서며 옹호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것은 부당한 권력자에 대한 아부를 떠나 요미우리 구단에 대한 팬들의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하라 감독은 가운데서 눈치를 볼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모모이 사장까지 와타나베 편에 섰다는 것은 키요타케의 주장, 그리고 그의 개혁은 채 펼쳐보지도 못한채 조기에 사장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키요타케 대표의 기자 회견으로 인해 사태가 커지자 와타나베 회장의 마음 속에 있던 에가와 스구루는 내년시즌 요미우리 1군 주임코치직을 거절한 바 있고 현 오카자키 1군 주임 코치가 계속해서 코치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컸다. 오카자키 코치 역시 지금은 말을 아끼고 있다. 배가 산으로 가는 모양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언젠가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요미우리 팬들의 반응은 결코 무시해선 안될듯 싶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요미우리 팬들은 와타나베 회장의 지나친 현장간섭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룹 사주가 직접적으로 야구단 일에 관여하는 것은 이제 구시대에서나 볼수 있는 것으로 현장은 구단 대표와 감독에게 일임하는게 바람직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여전히 와타나베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본사회에서의 기업윤리는 상명하복과 같은데 키요타케 대표의 반기는 보편적 사회적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와타나베 회장의 현장간섭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키요타케 대표가 반기를 든 것인지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그렇지만 키요타케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언급한 내용들은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야구를 하고 있는 국가나 팀이라면 반드시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중에서도 팀을 ‘사유화’한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키요타케 대표는 와타나베 회장이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 전체를 좌지우지 하려는데 반기를 든 것이다. 와타나베 회장이 그동안 일본야구계에 끼친 긍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근래 들어 부정적인 부분들이 많았고 특히 자신의 생각대로 야구계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다는 마인드도 큰 틀에서 보면 키요타케 대표의 주장이 맞다. 얼마 전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요미우리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말이 2년 계약이지 실질적으로는 1년 계약과 다름이 없다. 2년연속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요미우리는 내년시즌 칼을 갈고 있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한 시즌으로 구분하는 팀답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년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즉 2012 시즌에 우승을 하지 못하면 하라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2년 계약이지만 내년 시즌이 마지막이란 뜻이다. 하지만 감독을 좌불안석 자리로 만들어 놓고 내년에 반드시 우승을 하란 소리는 쉽게 납득할수 있는 계약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이러한 계약은 야구인의 자존심을 짓밟은 행위다. 하지만 다른 구단도 아닌 요미우리라면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하라 감독 역시 이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이미 달이 찰만큼 찼음에도 여전히 와타나베 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팀이 종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반기를 들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뼈아픈(?) 교훈도 심어줬다.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명예 감독)도 키요타케 대표의 반기에 불만을 표시하며 와타나베 회장의 편에 섰다. 결국 키요타케 대표의 항명은 이미 흐지부지 됐고 비록 법정 소송까지 불사한 그지만 거취가 어떻게 결정되느냐는 불을 보듯 뻔할듯 싶다. 그리고 윗선에 반항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이번 키요타케 대표의 해임으로 더욱 뚜렷해 졌다. 하지만 부당한 권력에 맞선 키요타케 대표의 남자다운 용기야 말로 결코 쉽게 잊혀져선 안될 듯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에 어청수씨… 불교계 반발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에 어청수씨… 불교계 반발

    환경부가 불교계의 거센 반발 속에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환경부는 29일 “어청수 이사장은 공공조직 경영과 관리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갈등을 해소한 경험이 많다.”면서 “연간 4300만명 이상 방문하는 국립공원의 훼손을 방지하고 지역주민과 지자체 등과의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어 이사장은 2008년 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경찰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개신교 집회포스터에 직접 등장해 불교계의 반발을 샀으며, 2008년 7월29일에는 경찰이 조계사로 진입하던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을 검문하면서 불교계의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불교환경연대는 이달 초 어 전 청장의 이사장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어 전 경찰청장은 환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찰 관료로 오로지 상명하복의 조직논리와 경찰권력 오남용의 경력만을 가진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방산 비리’ 원인·해법은…

    끊임없이 터지는 군납 비리를 뿌리뽑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올 들어서만 5건의 방위사업청, 방산업체 비리가 불거졌다. 전문가들은 방사청의 구조적인 폐쇄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욱 경남대 군사학과 교수는 “방사청 조직이 상명하복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감시하는 체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비리가 계속되는 이유로 군 납품 업체가 과거 방사청 직원이었던 사람들을 쓰면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퇴사한 직원들이 군납 관련 사정을 잘 알아 사업을 따내기 쉽기 때문에 쉽게 채용하는데, 방사청 조직이 폐쇄적이라 비리가 있어도 눈감아 버리고 만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헌병, 기무부대 같은 감시기구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비리가 일어났을 때 감시기구도 함께 책임을 지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방사청이 경직돼 있고 관료화된 구조로 이뤄지다 보니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가수 이수미(李洙美) 대천서 칼 맞아

    가수 이수미(李洙美) 대천서 칼 맞아

     가수 이수미(李洙美)양이 대천(大川)해수욕장에서 괴한한테 찔려 전치 10일을 요하는 부상을 입었다. 7월29일 저녁 10시20분께 이(李)양은 산책길에서 이 봉변을 당했는데 범인은 수영복을 입은 25살 가량의 남자로 알려졌을 뿐, 30일 12시 현재 붙잡지 못했다.  이수미(李洙美)양이 대천(大川)에 내려간 것은 28일 서해(西海)방송국의 공개방송 출연 때문이었고 하루 쉰 뒤 30일엔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복부에 깊이 3cm, 길이 16cm 가량을 날카로운 칼로 찔린 이(李)양은 바로 대천(大川) 구세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았다. 정신을 차린 이(李)양은 사건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심심해서 산보를 나갔는데 별안간 한 청년이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놀라 돌아보는 순간 아래서 위로 무엇을 그어 올리고 도망쳤다. 다음 순간 치마를 걷어보니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그 뒤의 사정은 알 수 없다』  그 자리에 쓰러진 이(李)양은 피서객들에 의해 병원으로 운반됐는데 하루쯤 응급치료를 하고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라 했다. 이(李)양 곁에는 동행했던 여자 1명이 간호를 하고 있다. [선데이서울 73년 8월5일 제6권 31호 통권 제25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8·16 검찰 인사 후폭풍…”겉으론 인사실험, 속으론 퇴출명령”

    “겉으로는 조직안정이라는 명분과 핵심들이 주요 보직을 챙긴 실리 인사로 보이지만 ‘나갈 사람 나가라’는 식의 등 떠미는 인사다.” 17일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지난 16일 단행된 법무부의 검사장급 이상 고위검사 52명에 대한 인사를 ‘겉과 속이 다른 인사’라며 매몰차게 평가했다. 외형적으로 승진 누락자들에게 사퇴를 종용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속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알짜 보직에 대한 편중과 후배 기수를 보임해 상명하복과 기수문화가 특징인 검찰에서 사실상 ‘퇴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인사평이다. ●14기 검사장 일부 용퇴 고심 당장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사법연수원 14기 검사장들의 줄사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검 강력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김영한(54·14기) 수원지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발령난 이재원(53·〃) 서울동부지검장이 사의 표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검 형사부장으로 옮긴 곽상욱(52·〃) 부산지검장도 ‘인사 실험’을 견딜지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동기인 채동욱(52) 대검 차장검사에게 지휘를 받아야 하는 데다 울산지검장이 된 2기수 후배인 조영곤(53·16기) 검사장이 겸직했던 자리에 나란히 배치된 탓이다. ●법무장관·검찰수뇌부, 사퇴 적극 만류 법무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고검장 승진에서 빠지거나 후배가 맡았던 자리로 전보된 연수원 14~15기 검사장이 추가로 사퇴할 경우 적어도 2~4자리의 공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권재진 법무장관과 검찰 수뇌부는 이와 관련, 이들의 사퇴를 적극 만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장관·한상대 검찰총장 체제 출범의 첫 인사가 자칫 반발에 부딪혀 모양새가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는 이에 대해 “인사를 앞두고 일선 검사장들의 의견수렴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실세 장관과 검찰총장의 파워를 보여준 인사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선 지검 차장검사와 부장검사에 대한 후속인사는 이르면 22일쯤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안석기자 hot@seoul.co.kr
  • 정부, 검찰 13기 줄사퇴 만류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임박해지면서 한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동기 고검장들이 다음 주 일괄 사퇴를 예고하자 정부가 적극 만류하고 있다. 기수 서열이 강한 데다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 특성상 총장 후보자가 내정되면 동기들이 줄사퇴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다소 이례적으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나서 13기 고검장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차동민 서울고검장을 비롯해 13기 고검장들의 줄사퇴를 만류하고 있다.”며 “이들이 사퇴하지 않더라도 7~9명가량이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일정이 확정되는 다음 주쯤 사퇴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사퇴 만류는 당장 검찰 행정의 공백이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13기로는 박용석 대검찰청 차장, 황희철 법무부 차관 등 5명이 검찰과 법무부 요직에 있다. 총장이 공석인 데다 대검 차장마저 빌 경우 당분간 막내 검사장인 기조부장이 총장 권한 대행을 해야 할 형국이다. 정부는 검찰의 뿌리 깊은 기수문화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아무리 관행이라지만 동기들이 모두 사퇴하는 것은 검찰 조직의 조로화(早老化)와 능력 있는 검사들의 퇴출로 이어져 일하는 조직 문화의 정착을 해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가 “동기 총장이 나오면 모두 줄사퇴하는 것보다 능력 위주로 일하는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데서도 이 같은 뜻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5명 모두를 잔류시키기보다는 최소한 한명이라도 남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고검장들의 용퇴로 검사장 승진 폭이 넓어지면 일선 부장검사들의 업무 부담도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검장들의 사퇴 도미노를 막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직전에 사표를 내지 않으면 마치 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도 “동기 총장의 지휘권을 위해서 사표를 내는 게 관례였고, 이번에도 이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국세청 전관예우 실태 어떻기에…

    서울국세청 조사 2국장을 지낸 이희완씨는 지난 2006년 2월 승진인사에서 무려 3단계나 뛰어올라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국세청 사상 처음으로 서울국세청 과장급에서 서울국세청 국장으로 승진했다. 2006년 2월 3일 인사에서 서울청 조사1국 1과장에서 복수직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가 하루만인 4일 서울청 조사2국장에 전격 발탁됐다. 배후에 권력이 있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며, 이씨의 뒤를 누가 봐 줬느냐에 관심이 집중된다. 세무업계의 한 관계자는 27일 “당시 한상률 서울국세청장이 인사에 어느정도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다.”며 “상명하복이 엄격한 국세청 조직문화를 감안하면 두 사람 간에 모종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당시 국세청장인 이주성씨가 직접적인 인사권자이기 때문에 한 전 청장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씨가 퇴직 후에도 30억원대의 고문수수료 등을 기업들로부터 받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조사국장 출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사국장은 국세청의 핵심자리로 야전 사령관에 해당한다. 탈세한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 권한을 갖고 있어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다. 업계 관계자는 “국세청 핵심 국장 이상의 퇴직자들이 세무사로 전직한 이후 기업들은 이들에게 매월 100만원부터 수백만원씩 고문 수수료로 제공하며 전관예우를 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검찰이 기업 고문료와 관련해 국세청 1·2급 출신들에게 칼을 겨눈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대부분 정상적인 거래로 포장을 하기 때문에 대가성 입증이 어렵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SK와 관련해 받은 수억원대의 고문수수료 거래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SK그룹은 연이은 악재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대규모 선물 투자 손실에 이어 주가 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 대한 최재원 부회장의 자금 유입마저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그룹 경영에 비상이 걸렸다. SK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최근 1000억원대의 세금 추징을 통보받은 바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부회장의 개인적인 투자 거래로 파악하고 있으며 회사 공금이 유입되거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개인적 거래로 나타나 그룹 차원에서 공식 해명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일만·안동환기자 oilman@seoul.co.kr
  •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감사원장님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1980년대 대학생이던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외부 강사로 ‘헌법’을 강의하실 때 한 학기 내내 뵈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로 만나 인사드린 적이 없으니 제자라고 내세울 처지도 못 되지요. 예의 없는 제자가 옛 스승께 어쭙잖게 펜을 든 것은 작금의 감사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입니다. 검은 돈을 받고 감사 무마 청탁에 나선 감사위원(차관급), 구제역 최일선 감사 현장에서 피감기관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감사관들, 해외출장 간 군 장성을 문책 요구 대상에 넣었다가 뺀 천안함 감사. 국민들 눈에 비친 나사 빠진 감사원의 현주소입니다.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는 걸 제대로 잡아 낼는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추상같은 영(令)을 세울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여기저기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이나 받는 건 아닌지요. 감사원의 상징이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마패’인 것은 아시지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은진수 전 감사위원 구속 건은 암행어사가 도적들과 한패가 돼 선량한 백성들을 등친 것과 다를 바 없죠. 나쁜 놈들 잡아들이라 나랏님이 마패까지 내줬더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래도 감사원 맨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일”이라며 선을 그으려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내부 인사라고 그리 큰소리칠 위치에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내에서조차 “특정인은 운이 좋아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켜난 것 같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을 보면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감사원 맨들이 없진 않나 봅니다. 앞으로 정당 출신 인사는 감사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한다는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내부 인사, 외부 인사 각 3명씩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는 감사위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자질 검증 없이 아무나 가서야 되겠습니까. 금명간 은 전 위원의 후임과 오는 11월 퇴임할 하복동 위원 후임 등 감사위원 자리가 두 자리나 비니 그 자리를 노린 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죠. 이참에 감사위원 인선을 한층 깐깐하게 스크린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조선시대 감사원 역할을 하던 사헌부의 관료인 대관(臺官)만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4대 친족까지 ‘현미경 검증’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관직보다 더 엄하고 까다롭게 인선을 했지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규찰·탄핵해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인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죠. 공정과 청빈은 기본이고, 뛰어난 식견과 강직한 성품도 필수였죠. 제약도 많았지요. 첫째, 공금횡령, 부정축재 또는 뇌물을 받은 탐관오리의 아들·후손은 대관에 임명되지 못했지요. 둘째, 정실에 흐르지 않도록 다른 관직보다 훨씬 심한 상피제(친족이 같은 관청·지역에 일하지 못하게 한 제도)의 적용을 받았지요. 셋째, 본인을 비롯해 부모와 처의 4대조(代祖) 허물까지 샅샅이 뒤졌다죠. 오늘날 총리·장관 인사청문회는 저리 가라입니다. 취임 전 일이긴 해도 사실 저축은행 사태 전부터 이미 감사원은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감사원 출신들이 체급도 안 되는데 대통령과의 학연·지연으로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감사원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줄 잘 서면 된다.’는 정치 학습으로 감사원 기강은 해이해졌고, 출세의 처세술을 익힌 이들의 벼락 승진은 감사원 문화를 퇴행시켰지요. 실세 사무총장이 감사원장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 것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 작금의 사태들이 터진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은 전 위원만 하더라도 맑은 물을 흐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이미 감사원은 미꾸라지가 놀기 좋은 흙탕물이었던 거죠. 지금 감사원은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흐트러진 내부 조직부터 다잡으셔야 합니다. 감사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bor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를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 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투혼 드라마’ 용인시청의 운명은

    지난 7일 용인시청이 ‘호화군단’ 인천시체육회를 꺾었을 때의 일이다. 잔치 분위기여야 할 용인시청은 미팅룸에서 말없이 눈물만 쏟았다. 김운학 감독은 “종료 휘슬이 울리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 지난해 말부터 항상 가슴 한구석이 찡한 상태다. 눈만 마주쳐도 전부 다 울려고 해서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용인시청은 지난해 말 해체를 통보받았다. 시 예산을 이유로 직장운동부 11개 종목이 일방적으로 ‘짤렸고’ 그중에 용인시청도 있었다. 불안한 미래와 해체 충격 탓에 국가대표 남현화 등 몇몇은 코트를 떠났다. 선수들 못지않게 김 감독의 마음고생도 심했다. 해체를 통보받고 ‘다혈질’ 김 감독은 헛구역질과 두통에 시달렸다. 병원 정밀검사 결과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김 감독은 ‘나만 바라보는 새끼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나 선수들은 “어차피 내년에 해체될 거 지금 그만두겠다.”고 등을 돌렸다.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냈다. 김밥을 싸서 놀이공원에 놀러 갔고 고기파티도 했다. 끈끈함이 생겼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좋은 성적을 내면 희망은 있을 거야.”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마침 시청 측도 “일단 내년 6월까지는 팀을 유지하겠다.”고 선심(?)을 썼다. 선수들은 한마음이었지만 막상 부딪힌 현실은 팍팍했다. 엔트리를 줄이라는 시의 방침에 따라 12명으로 줄었다. 이선미가 ‘무보수 선수’로 뛰고 있지만 골키퍼 둘을 빼고 나면 더블스쿼드도 안 나오는 열악한 상황. 권근혜, 명복희 등이 서는 백(back) 자리는 마땅히 교체할 선수도 없다. 선수들은 60분 경기가 끝나면 밤새 끙끙 앓을 정도로 파김치가 된다. 땀이 뻘뻘 나는 한여름 날씨지만 ‘시한부’라 하복 유니폼도 없다. 운동시간에는 스포츠음료 대신 보리차를 마신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김 감독이 윽박지르고 몰아칠 때보다 오히려 성적이 좋다. 용인시청은 20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SK핸드볼코리아리그 2라운드 2차 대회에서 광주도시공사전을 31-23으로 승, 인천시체육회(승점 16·7승2무1패)를 누르고 리그 선두(승점 17·8승1무2패)를 탈환했다. 상위 3개팀에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진출권도 이미 확보했다. 핸드볼발전재단이 2억 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경기도체육회와 대한핸드볼협회의 후원 등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이날이 용인시청의 마지막(!) 월급날이 될지도 모른다. 득점-도움 1위(86골 72도움) 권근혜는 “용인시를 빛냈는데 그냥 해체시킬 거라고는 생각 안한다.”고 희망을 쏘았다. 눈물겨운 ‘투혼 드라마’를 쓰고 있는 핸드볼팀은 이달 말 용인시청 직장경기부 운영 심의위원회의 회의를 거쳐 존립 여부가 정해진다. 대구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부산저축銀 ‘골프 접대’ 통해 구명로비 의혹

    부산저축銀 ‘골프 접대’ 통해 구명로비 의혹

    부산저축은행그룹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전국에 총 4개의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은행 정·관계 로비스트 윤여성(55·구속기소)씨는 골프장 대표 행세를 하며 회원들을 통해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다른 대주주들도 최근 서울 근교의 골프 회원권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학연과 지연을 매개로 인맥이 닿는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골프장 접대’를 하며 구명 로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7일 검찰 등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관계사 T건설㈜은 지난해 경기 안성에 회원제 골프장(18홀)을 개장했다. T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지역에 또 다른 골프장(18홀)을 올해 하반기 개장할 예정이었으며, 강원(36홀)과 부산(18홀)에도 각각 골프장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특히 T사는 무기명 회원권 제도를 도입해 1개의 회원권으로 2명이 이용할 수 있게 했고, 다른 골프장 이용 혜택을 부여하기도 했다. 인근 골프장보다 30%가량 낮은 가격으로 ‘창립회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부산저축은행그룹 브로커 윤씨는 이들 골프장의 주인 행세를 하며 회원들에게 접근, 정·관계 인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지난해 9월 골프장 회원인 한 건축사에게 접근, 그의 소개로 하복동(55) 감사원 감사위원을 만난 뒤 “부산저축은행을 잘 봐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윤씨가 골프를 통해 접촉한 정·관계 인사가 많을 것으로 보고, 최근 그와 함께 골프를 친 명단을 전국 20여개 골프장에서 확보했다. 검찰은 또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등 주요 대주주들도 2008년 이후 서울 근교 골프 회원권을 매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용도 등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T건설 회장 정모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 김양(59·구속기소) 부회장 등 대주주들이 지난해 증자를 위해 100억원을 빌릴 당시, 미분양 골프장 회원권 50계좌(시가 130억원 상당)를 대가 없이 담보로 제공한 혐의(배임)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국장부터 신입까지… 금천구는 ‘열공중’

    금천구가 의욕적으로 펼치는 독특한 공무원 교육이 화제다. 구는 수직적인 질서에 익숙한 간부들에게 수평적 토론과 리더십을 이끌어내기 위한 국·과장급 강화 교육에서부터 팀장급 이하 독서교육, 신규 채용 직원에게는 동 주민센터와 주요 시설 등을 도보로 방문하도록 하는 등 전 공무원이 교육을 통해 창조적 역량을 기르도록 주문하고 있다. 차성수 구청장은 “문제는 간부다. 젊은 공무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국·과장들이 잘 이해하고 함께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인식으로 교육은 상급자부터 차례로 실시된다. 교육을 맡은 ‘지식나눔네트워크 발전전략연구소’ 석종득 대표는 6일 “교육을 처음 맡았을 때는 공무원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쉬는 시간인데도 서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며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10여년을 구청에서 일해도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 않으면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당신이 남태평양 한 가운데 표류한다면 어떤 물건들을 가져가겠습니까.’라는 식의 특정 상황을 던져주고 토론에 붙이면서 공무원들도 집단 토론에 눈뜨기 시작했다. 신종일 기획홍보과장은 “그동안 대화와 소통에 문제없다고 여겼는데 교육을 받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가정과 직장에서의 의사소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구는 또 6급 이하 전 직원에게 필수도서 또는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매월 전문업체에 의뢰, 자신이 읽은 책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의견을 서술하고 채점하는 방식으로 독서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구가 이처럼 1000여명에 이르는 전 직원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옛날식 상명하복 환경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씻고 집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윤여성 골프리스트’ 다 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가 부산저축은행그룹 측 정·관계 로비스트인 윤여성(56·구속)씨와 골프를 친 명단을 전국 20여개 골프장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검찰은 최근 이들 골프장에서 제출받은 윤씨의 ‘골프 리스트’를 통해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와의 연관성을 캐고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중수부는 지난주 골프클럽Q(경기 안성 소재) 등 전국 20여개 골프장으로부터 2008년부터 최근까지 윤씨와 함께 골프장을 찾은 사람들의 명단을 제출받아 윤씨와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골프클럽Q는 회원이 260명 정도 되며, 윤씨는 지난해 초 이 클럽 회원으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골프클럽 관계자는 “윤씨는 최근까지 80번 이상 골프장을 찾았다.”며 “1년여간 주말에 찾은 횟수로 봤을 때 상당히 많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씨는 보통 3~4명과 함께 왔다.”면서 “윤 회장님이라고 불러 주면 좋아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또 지난해 9월 저축은행 사건 감사의 주심을 맡은 감사원 하복동(55) 감사위원을 직접 접촉해 부산저축은행의 구명 청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 위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9월 10일 서울 광화문의 한정식 집에서 평소 후배처럼 따르는 건축사가 윤씨를 데려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 위원은 “당시 윤씨는 골프장 오너 행세를 하고 있었고, 후배 건축사가 이 골프장의 회원권을 구입하면서 서로 알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 위원은 그러나 “식사 내내 골프장 이야기만 했고, 윤씨가 마지막 순간 ‘부산저축은행을 잘 부탁한다’고 한마디 했다.”고 단언했다. 청탁이나 금품이 오간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윤씨가 하 위원을 만난 시기가 은진수(50·구속) 전 감사위원에게 로비를 벌인 시기와 겹친다는 점을 감안, 필요할 경우 하 위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이날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김광수(54)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심야까지 조사했다. 검찰은 김 원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3일 결정할 계획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드러나는 저축은행 비리 고리] 감사원 “개인문제” 속으론 전전긍긍

    감사원이 저축은행 비리 문제로 초비상이다. 사표가 수리된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비리를 개인 차원의 문제라고 애써 외면하면서도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하는 등 후폭풍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감사원이 저축은행 비리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감사원 위상은 추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게다가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양건 감사원장은 27일 오전 과장급 이상 전 간부가 참석한 긴급 확대간부회의에서 “감사 업무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철저히 준수하는 한편 오해받을 만한 일이 없도록 처신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감사원은 또 부산저축은행 등이 포함된 ‘서민금융 지원시스템 운영 및 감독실태’ 감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대상으로 은 전 감사위원의 감사개입 여부를 조사했으나 “별다른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감사의 주심위원이었던 하복동 감사위원은 “할 말이 없다. 참담하다.”며 곤혹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나 역시 9000여만원이 문제의 저축은행에 예금돼 있으나 한푼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 제기된 인출사태 가담설을 부인했다. 그는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저축은행 지점이 있어 예금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2005년부터 2년간 부산저축은행 고문변호사로 활동한 은 전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관련 감사 심의에 참여, 감사원법을 어긴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감사원법 15조는 감사위원이 자신과 관계 있는 사항, 감사위원 임명 전 조사·검사에 관여한 사항 등에 대한 심의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군림하는 예비역장성 국방개혁 가로막는다

    군림하는 예비역장성 국방개혁 가로막는다

    군 예비역들은 왜 목소리가 큰 것일까. 이들은 개혁의 후원자인가, 걸림돌인가.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이 육·해·공군 예비역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하게 끌려가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안보 환경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으며 국방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다. 그러나 개혁 방향과 절차가 잘못됐다는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이 개혁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이 국방정책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이 현재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인사들을 가르쳤거나 그들에게 지시했던 인물들이어서 ‘영원한 상관’으로 군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방개혁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태우 정권 당시 추진된 국방개혁 ‘818계획’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전직 국방장관의 육군대학 교수 시절 그의 제자였다. 전직 장관은 그를 불러 개혁 방향을 바꾸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부하로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군의 한 장성은 “수십년이 지나 안보 상황이 바뀌었지만 과거 안보 환경에 근거한 정보와 정책을 갖고 후배를 지도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수천명의 ‘별’들이 집단의 힘으로 국방정책에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별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원은 2300여명에 달한다. 현역 장성이 430여명이란 점을 고려할 때 2300여명의 예비역 장성은 우리나라 국방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예비역 장성들은 전역 후에도 안보관련 정책 자문위원으로 근무하거나 국방기관의 수장으로 다시 근무하는 사례가 많아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30여년간 군사 전문가로 키워진 장성들이 전역 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군밖에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이와 함께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하는 계급사회인 군의 특수성 때문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현역들의 여론을 예비역이 대신 표현한다는 얘기다. 민간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군이란 조직의 특성상 현역이 여론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군과 관련된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예비역 장성들”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성들의 목소리는 모두 전문가들의 목소리란 점에서 장점을 살려 안보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 편집장은 “장성 한명 한명이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안보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CJ그룹 참 훈훈한 승진턱

    CJ그룹 올해 승진자들이 훈훈한 ‘승진턱’을 냈다. 27일 CJ그룹에 따르면 17개 계열사의 승진자 280명은 직장 동료에게 밥이나 술을 사는 대신 저소득 지역 공부방 중고생들에게 여름 교복비 2000여만원을 후원했다. 이번 기부는 일부 승진자들이 온라인 기부 프로그램 CJ도너스캠프 사이트를 통해 여름 교복을 구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사연을 접한 후 ‘승진턱 비용을 기부에 쓰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동복 후원 사례가 많지만 하복은 상대적으로 후원이 적다. 신학기가 아니어서 새 교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훈훈한 소식이 전해지자 일반 임직원 등 사내외 기부자들도 동참해 총 기부금은 승진자들의 기부금 2000만원을 포함해 9000여만원에 이르렀다. CJ는 이 돈으로 전국 875명의 학생들에게 여름 교복을 ‘시원하게’ 선물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