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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개혁 통한 기업 활력 강화에 중점” 정부·학계·업계 두루 거친 ‘시장주의자’

    “규제개혁 통한 기업 활력 강화에 중점” 정부·학계·업계 두루 거친 ‘시장주의자’

    윤석열 정부의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창양(60)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와 학계, 업계를 두루 경험한 자율경쟁을 강조하는 시장주의자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15년 행정관료로 통상·산업 정책을 다뤘으며 학계에 진출한 뒤 기술혁신정책 전문가로 첨단산업에 대한 안목과 식견이 풍부한 것으로 정평이 난 분”이라며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산업구도 고도화의 밑그림을 그릴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1985년 행정고시(29회)에 수석 합격한 뒤 15년간 산업부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 KAIST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디지털 및 탄소(중립) 전환이 급격히 진행되고 미중이 패권 경쟁을 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산업 정책을 구상하겠다. 큰 방향은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 활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경남 고성 ▲마산고, 서울대 정치학과 ▲상공부 장관 비서관, 산업부 산업정책과장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금융위원회 신성장위원장 ▲LG디스플레이 사외이사·환경·사회·지배구조(ESG)위원회 위원장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 
  • ‘경제사령탑’ 추경호 경제부총리… ‘대장동 저격수’ 원희룡 국토 발탁(종합)

    ‘경제사령탑’ 추경호 경제부총리… ‘대장동 저격수’ 원희룡 국토 발탁(종합)

    ‘박근혜 청와대’ 김현숙 여가 장관 후보문체 기자 출신 박보균 전 중앙일보 부사장원전 다룰 산업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국방 이종섭 전 합참 차장…한미동맹 관여과기 이종호 서울대 교수…반도체 선도자복지 외과전문의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에서 경제팀을 이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발탁됐다. 경제 파트에서 원전 산업 등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는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가, 부동산 정책 등을 지휘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제주지사를 지낸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이 각각 낙점됐다. 외교안보라인의 한 축인 국방부 장관에는 외교통일안보 분과 인수위원인 이종섭 전 합참 차장이 지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는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 보건복지부 장관에는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당선인 특별고문을 맡고 있는 박보균 전 중앙일보 부사장, 여성가족부 장관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 출신인 당선인 정책특보인 김현숙 전 의원이 각각 지명됐다. 윤 당선인은 인선 발표를 하며 “할당, 안배는 하지 않았다”면서 “가장 유능한 분을 찾아 지명했다”고 밝혔다.  尹 “할당, 안배 안 해”“가장 유능한 분 찾아 지명”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2시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추 장관 등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해 직접 발표했다. 윤 당선인은 “할당과 안배는 안 한다”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이끌 분으로 인선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인사청문회와 관련, “고위공직자 검증은 국민 눈높이에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추 의원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재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지냈으며 20·21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최근에는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내는 등 행정·입법부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인수위에서는 7개 분과 중 가장 핵심인 기획조정분과의 간사를 맡아 새 정부 국정과제 전반을 챙기고 있다.‘경제사령탑’ 경제부총리 추경호에“정통 경제관료 출신, 의회 소통 기대” 윤 당선인은 추경호 의원의 경제부총리 발탁 배경에 대해 “추 의원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고 국정 현안에 대한 기획조정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온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도 기획재정위 간사,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당의 전략 기획과 원내 협상을 주도했다”면서 “공직에서의 전문성, 의정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한 토대를 닦고 의회와 소통도 원만히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군사 작전과 국방 정책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온 분”이라면서 “특히 합참의 한미연합방위추진단장을 지내며 한미 안보 동맹에도 발전의 큰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튼튼한 안보와 강력한 국방력을 구축하면서 동맹국가와도 긴밀한 공조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장관에 내정된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책학 석사와 기술혁신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기술혁신경제학 분야 전문가다.원희룡, 이재명 대장동 의혹제기 주도 국토부 장관에 내정된 원 위원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윤 당선인과 맞붙었으나 이후 대선후보 캠프에서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을 맡아 대선 정책 공약 전반을 총괄했다. 대선과정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대장동 의혹 제기를 주도하며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임했다.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이종섭 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40기)은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위원을 맡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으로 한미안보협의회(SCM) 등 한미동맹 관련 주요 정책에 깊이 관여했으며, 박근혜 정부 때 중장으로 승진해 군단장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합동참모회의 2인자인 합참 차장을 지냈다. 과기부 장관에 내정된 이 소장은 서울대 공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이다. 2019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재·부품·장비기술특별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아 왔다. 미국 인텔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3차원(3D) 반도체 소자기술인 ‘벌크 핀펫’을 개발해 반도체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복지부 장관에 내정된 정 전 병원장은 1990년에 경북대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뒤 1998년부터 2020년까지 경북대병원에서 외과 전문위, 의료정보센터장, 진료처장, 병원장 등을 맡았다. 대한의료정보학회 회장, 대한위암학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문화부 장관에 내정된 박 전 부사장은 정통 언론인 출신으로 1981년부터 40년 가까이 언론인의 길을 걸었으며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편집인을 거쳐 중앙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이후에도 중앙일보 대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후보 시절 중앙선대위와 선대본부에서 후보특별고문을 지냈으며, 현재 윤 당선인의 특별고문을 맡고 있다.여가부 폐지 일단 유예 여가부 장관에 내정된 김현숙 당선인 정책특보는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비서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당선인 정책특보를 맡아 여가부 폐지,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여가부는 폐지가 일단 유예된 상태로, 새 정부는 향후 정부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가부를 대체할 조직을 구성할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아하! 우주] 역대 가장 먼 ‘135억 광년’ 거리의 은하 발견

    [아하! 우주] 역대 가장 먼 ‘135억 광년’ 거리의 은하 발견

    지금까지 발견된 천체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가 발견되었다. HD1이라는 이름의 은하 후보는 무려 135억 광년 떨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현재 가장 멀리 있는 은하인 GN-z11보다 1억 광년이나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빅뱅 직후 3억 년 이내에 형성된 은하인 셈이다.  HD1은 특히 자외선에서 밝게 보이는데, 이는 은하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일어난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것이 '폭발적 별 형성 은하'(starburst galaxy)이거나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별을 생성하는 은하일 수 있다고 일단 이론화했다. 그러나 보다 면밀히 조사한 결과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 후보가 매년 100개 이상의 별을 생성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일반적인 폭발적 별 형성 은하보다 10배 빠른 속도이다.  현재 연구자들은 은하에서 방출되는 극한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은하 중심에 태양보다 1억 배 큰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관찰된 동급 사이즈 중 가장 오래된 블랙홀이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가설은 HD1은 천문학자들이 지금까지 관찰할 수 없었던 우주 최초의 별들의 고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이자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 천문학자인 파비오 파쿠치는 "우주에서 형성된 최초의 별들은 현대의 별보다 더 무겁고 더 밝고 뜨겁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제3그룹 별(Population III)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별은 일반적인 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자외선을 생성하는 것으로 믿어지는데, 이 점이 잠재적으로 HD1의 밝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들이 HD1에 제3그룹 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이러한 천체가 관측된 최초가 사례가 될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하와이의 스바루 망원경, 칠레의 VISTA 망원경, 영국의 적외선 망원경, 그리고 현재는 퇴역한 NASA의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1200시간 동안 HD1을 관측했으며, 이후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알마(ALMA/ Atacama Large Millimeter/submillimeter Array)를 이용해 해당 천체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조만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HD1을 관찰하여 그들의 계산을 추가로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견은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 목요일(4월 7일)자에 발표되었으며,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간 보고'에 첨부되었다.
  • 딸 하버드·버클리 보낸 임종령 통역사 비결

    딸 하버드·버클리 보낸 임종령 통역사 비결

    두 딸을 하버드와 버클리 대학에 보낸 임종령 통역사가 비결을 공개했다. 대한민국 정부기관 최초의 통역사 임종령은 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저는 영어권 유학은 전무하다. 아버님이 은행에 계실 때 브라질로 발령을 받아 3년 8개월 산 게 전부”라고 답했다. 그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반복과 노력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교수로 있는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학생들에게 매번 800페이지짜리 책을 세 번에 나눠 시험을 보게 한다고 말했다. 임종령은 “두 딸 모두 유학을 갔다. 첫째가 하버드, 둘째가 버클리를 다녔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고 저희집 구조가 TV를 보려고 소파에 누우면 정면에 공부하는 제 모습이 보여 TV 보는게 불편해진단다. 또 밤에 자려고 하면 제가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엄마가 커피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도 공부하는데 하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 김혜순 시인 등 5명…올 삼성호암상 수상

    김혜순 시인 등 5명…올 삼성호암상 수상

    올해 삼성호암상 수상자로 김혜순(67) 시인 등 5명과 장애아동 복지단체 하트하트재단이 선정됐다.6일 호암재단에 따르면 올해 수상자는 ▲예술상 김혜순 시인 ▲사회봉사상 하트하트재단 ▲과학상 물리·수학 부문 오용근(61) 포스텍 교수 ▲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 장석복(60) 카이스트 특훈교수 ▲공학상 차상균(64) 서울대 교수 ▲의학상 키스 정(57)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 개인 5명, 단체 1곳이다.김 시인은 여성의 존재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언어적 실험을 통해 고유한 시적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스웨덴 문학상 ‘시카다상’을 받는 등 동시대 한국 시인으로는 가장 뚜렷한 국제적 존재감과 높은 평판을 인정받았다.하트하트재단은 1988년 설립 후 취약 장애아동 복지사업과 인식 개선 사업을 벌여 왔고, 2006년부터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설립해 미국 뉴욕 카네기홀 등 국내외에서 1000여회 공연을 펼치며 장애인 문화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과학상 물리·수학 부문을 받은 오 교수는 현대 수학 분야인 사교기하학에서 교과서적 업적을 남긴 세계 수학 분야의 한국인 리더로 꼽힌다. 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을 받은 장 특훈교수는 유기화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화학자이며, 공학상을 받은 차 교수는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던 데이터를 D램에 압축·저장해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의학상을 받은 정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원이 수여된다.
  • 삼성호암상에 김혜순 시인·하트-하트재단…5명·1개 단체 선정

    삼성호암상에 김혜순 시인·하트-하트재단…5명·1개 단체 선정

    올해 삼성호암상 수상자로 김혜순(67) 시인 등 5명과 장애아동 복지단체 하트-하트재단이 선정됐다. 6일 호암재단에 따르면 올해 수상자는 ▲ 예술상 김혜순 시인 ▲ 사회봉사상 하트-하트재단 ▲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오용근(61) 포스텍 교수 ▲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장석복(60) 카이스트 특훈교수 ▲ 공학상 차상균(64) 서울대 교수 ▲ 의학상 키스 정(57)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 등 개인 5명, 단체 1곳이다.재단은 국내외 저명 학자, 전문가로 구성된 46명의 심사위원과 47명의 해외 석학 자문위원이 참여해 4개월간의 심사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봉준호 영화감독이 받은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 시인은 여성의 존재방식에 대한 끊임 없는 사유와 언어적 실험을 통해 고유한 시적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스웨덴 문학상 ‘시카다상’을 받는 등 동시대 한국 시인으로는 가장 뚜렷한 국제적 존재감과 평판을 인정받았다. 하트-하트재단은 1988년 설립 후 취약 장애아동 복지사업과 인식 개선 사업을 벌여왔고, 2006년부터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설립해 미국 뉴욕 카네기홀 등 국내외에서 1000여 회 공연을 펼치며 장애인 문화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과학상 물리·수학부문을 받은 오 교수는 현대 수학 분야인 사교기하학에서 교과서적 업적을 남긴 세계 수학 분야의 한국인 리더로 꼽힌다.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을 받은 장 특훈교수는 유기화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화학자이며, 공학상을 받은 차 교수는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던 데이터를 D램에 압축·저장해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의학상을 받은 정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원이 수여된다. 올해 시상식은 내달 31일 열릴 예정이다.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은 “호암재단은 삼성호암상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이 탁월한 수상자들을 앞으로도 지속 발굴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삼성호암상은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생의 유지에 따라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현창하기 위해 1990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제정했다. 올해 제32회 시상까지 총 164명의 수상자에게 307억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 [우주를 보다] 인도 하늘서 뚝 떨어진 중국 우주쓰레기…불뿜는 추락체 (영상)

    [우주를 보다] 인도 하늘서 뚝 떨어진 중국 우주쓰레기…불뿜는 추락체 (영상)

    2일(이하 현지시간) 밤, 주홍빛 유성우가 인도 하늘을 갈랐다.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떨어진 유성우는 마하라슈트라주 전역에서 관측됐다. 마하라슈트라주 나시크시 한 주민은 현지매체에 “밤 8시쯤 하늘에서 유성을 봤다. 유성우는 네 갈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모두가 유성우인 줄로만 알았던 추락체는 그러나 중국 우주 쓰레기였다. 인도 ANI통신과 AFP통신 등은 이날 중국 로켓 잔해가 인도로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유성우가 추락한 지점에서는 거대 로켓 잔해가 발견됐다. 마하라슈트라주 찬드라푸르시 신데와히(9.6E 20.3N)에서는 로켓 연결 링으로 추정되는 직경 3m, 무게 40㎏짜리 잔해가 수거되기도 했다.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조너선 맥도웰 박사는 이 잔해들이 1년 전 중국 쓰촨성 시창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된 통신위성의 운반로켓 잔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4일 중국 국방부는 중국만리장성산업공사(CGWIC) 통신기술시험위성 TJSW-6을 쏘아올렸다. 이번에 인도로 추락한 우주쓰레기는 이 위성을 싣고 우주로 간 운반로켓 창정-3B(CZ-3B) 잔해로 밝혀졌다.맥도웰 박사는 “운반로켓은 발사 이후 근지점 고도 150㎞, 원지점 고도 3만 4440㎞ 타원궤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근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대기항력에 부딪혀 서서히 에너지를 잃었고, 마지막 주기에서 원지점까지 오르지 못하고 이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로켓이 2일쯤엔 어디론가 떨어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기권 재진입 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지구 주변에는 폐기된 위성이나 부서진 잔해 등에서 나온 1㎜~1㎝ 크기의 우주 쓰레기 1억 2800만개가 총알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우주비행사와 위성을 위협하고 있다. 추적할 수 없는 1~10㎝의 작은 물체도 약 90만개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폐기된 위성이나 로켓 잔해는 계속 지구 주위를 돌거나 외딴 바다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번처럼 사람의 통제권을 벗어난 로켓 잔해의 재진입은 정확한 추락 시기와 지점을 예측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행히 잔해 대부분이 대기권에서 소멸해 아직 우주쓰레기 추락으로 인한 사상자는 없다. 지난해 5월 세계를 공포를 떨게 한 무게 20t짜리 중국 우주발사체 창정-5B호도 최종적으로 인도 남서쪽 인도양에 추락했다. 
  • 아마존·인텔도 제쳤다… 美 CEO 연봉킹은 한국계 ‘6800억’

    아마존·인텔도 제쳤다… 美 CEO 연봉킹은 한국계 ‘6800억’

    한국계 미국인 기업가가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 화제가 됐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이끄는 조지프 배(50)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5억 5964만 달러(약 6800억원)의 보수를 챙겨 미국 기업 CEO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배 CEO의 연봉은 앤디 재시 아마존 CEO(2억 1270만 달러), 팻 겔싱어 인텔 CEO(1억 7859만 달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가을 KKR 공동 창업자가 물러난 후 스콧 너탤과 함께 공동 CEO에 오른 그는 2009년 오비맥주를 2조 3000억원에 인수하고 5년 뒤 6조 2000억원에 되팔아 막대한 매각 차익을 챙긴 거래를 주도하는 등 아시아 기업 투자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배 CEO는 세 살 때 화학자인 아버지와 선교사인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1.5세다.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거쳐 1996년 KKR에 합류했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배 CEO는 하버드에서 만난 한국계 소설가 재니스 리와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WSJ에 따르면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직원들의 임금이 올랐지만 CEO의 보수는 더 가파르게 상승해 보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뉴욕 증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에 속한 기업 CEO들의 지난해 보수 중간값은 1420만 달러(약 173억원)로 전년보다 6% 늘었다. 평직원 급여 중간값의 186배가 넘는다.
  • 혈관질환 낮추는 아보카도, 체내염증 줄여주는 건자두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혈관질환 낮추는 아보카도, 체내염증 줄여주는 건자두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봄의 시작은 3월이라지만 개화와 함께 공기의 냄새가 달라지는 것은 4월부터입니다. 옛 사람들은 봄이 되면 작은 소리로 노래를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를 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움직여 환절기 적응을 위한 것이지요. 현대인들도 봄이 되면 운동을 시작하고 신선한 봄나물 같은 음식으로 봄을 맞습니다. 봄의 시작 때문이라곤 할 수 없지만 최근 몇 주간 음식과 건강에 관한 연구들이 쏟아졌습니다. 우선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은 동물성 지방이나 가공육 대신 아보카도를 일주일에 2번 이상 섭취하면 뇌혈관질환, 관상동맥 심장질환 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미국심장학회지’ 3월 30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국립보건원(NIH)의 ‘간호사 건강연구’에 참여한 30~55세 여성 6만 8780명과 하버드대에서 실시한 ‘건강전문가 후속연구’에 참여한 40~75세 남성 4만 1700명에 대한 건강 관련 정보를 30년간 추적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마가린, 버터, 치즈, 소시지, 베이컨 등을 섭취하는 사람들보다 하루에 아보카도 0.5~2개를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섭취하는 사람은 뇌졸중, 관상동맥질환 발병 가능성이 16~22%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말린 자두를 6~12개씩 매일 섭취하면 체내 염증을 줄이고 갱년기 증상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5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실험 생물학 2022’ 연례 콘퍼런스 생리학 분과에서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골밀도가 낮은 폐경 전후 여성을 세 집단으로 나눠 한 그룹은 1년 동안 매일 건자두 50g(6개), 다른 그룹은 매일 100g(12개)을 섭취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자두를 먹지 않도록 했습니다. 1년 뒤 혈액검사를 해 보니 건자두를 꾸준히 섭취한 여성들은 체내 염증 지수는 낮아지고, 골밀도는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두 속 폴리페놀 성분이 노화와 함께 증가하는 체내 염증을 줄여 주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미시간 앤아버대 의대 연구팀은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 등 영양소가 모두 포함된 종합비타민이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의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실험생물학 2022 콘퍼런스’ 조사병리학 분과에서 발표했습니다. 지방간은 음주 때문에 생긴다고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식생활 변화 때문에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도 늘고 있습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채소와 과일 중심 식단과 규칙적 운동으로만 개선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유발시킨 뒤 18개월 동안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식단 개선과 함께 종합비타민제를 규칙적으로 복용한 생쥐들이 식단 개선만 한 생쥐들보다 간의 정상 회복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연구 성과를 보면 당장 그 음식이나 건강보조제를 구해 먹어야 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연구처럼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볼 때 생각해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과연 음식, 건강보조제만으로 건강이 좋아질까 하는 것입니다. 평소 식단을 건강한 음식들로 채우고 적은 시간이라도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진보·보수 넘어 15년 만에 총리 복귀

    진보·보수 넘어 15년 만에 총리 복귀

    3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덕수(73) 전 총리가 국회 인사청문 과정을 거쳐 취임하면 진보·보수정권을 오가며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세 번째 기록을 세우게 된다. 백전노장의 귀환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주미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10년 만에 전면에 등장했다. 총리직을 맡게 되면 15년 만이다.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40년 엘리트 관료 생활에서 나온 경제·외교 측면의 전문성과 경륜을 인정받았다. 윤 당선인의 부족함을 상쇄할 수 있는 안정감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의미다. 73세로, ‘고령’이 걸림돌로 꼽히기도 했지만, 한 후보자는 이날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래 했다는 것은 경험과 위기 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은 너무나 좋다”고 밝혔다. 한 후보자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8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관세청과 경제기획원(EPB)을 거쳐 1982년 상공부로 옮긴 뒤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영어 실력이 출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선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2002년 7월 ‘한중 마늘협상’ 파동으로 공직에서 잠시 물러났지만, 노무현 정부의 국무조정실장으로 복귀한 뒤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로 승승장구했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자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주미대사로 발탁돼 3년간 재임했다.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각 지방정부와 의회를 순회하며 비준 설득에 공을 세워 ‘한미 FTA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취임해 3년간 일했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부인은 서양화가 출신 최아영(74)씨로, 자녀는 없다.  
  • 盧정부 총리, 尹정부 초대 총리로 ‘호출’…한덕수 누구

    盧정부 총리, 尹정부 초대 총리로 ‘호출’…한덕수 누구

    이미 총리를 지낸 인사, 또다시 총리로 기용 “이례적”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던 한덕수(73) 전 총리가 3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탁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이날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 받아 국정 핵심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며 한 전 총리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2년 주미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10년만의 전면 재등장이다. 민간부문 활동을 포함할 경우 한국무역협회장 기준으로 7년여만,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기준으로는 4년여만의 복귀다. ‘진보’와 ‘보수’ 정권 넘나들며 중용됐던 ‘백전노장의 귀환’ 한 총리 내정자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한 뒤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세청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옛 경제기획원(EPB·현 기획재정부)으로 옮겨갔다. 1982년 부처 간 교류 때 옛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상공부 과장으로 재직하던 중 휴직계를 내고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영어 실력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덕수 총리 내정자는 올해 73세로, 인선 과정에서 ‘고령’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 총리 내정자는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과 위기 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은 지금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盧정부 마지막 총리, 尹정부 초대 총리로 ‘호출’ 이미 총리를 지낸 인사가 또다시 총리로 기용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보수와 진보 정권을 오가며 두 차례 총리를 지낸 경우는 김종필, 고건 전 총리 2명뿐이었다. 장면 전 총리는 이승만 정부에서만 두 차례, 백두진 전 총리는 이승만·박정희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다. 윤 당선인이 한 총리 내정자에게 15년 만에 다시 총리직을 맡긴 것은 그가 그동안 쌓아온 국정운영의 경험과 경륜을 토대로 엄중한 위기 상황에 놓인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를 아우르며 통할하고,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낼 최적임자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 엘리트 관료 출신인 한 총리 내정자는 40여 년간 4개 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몸담은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관료 사회에서는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특히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의 고위직을 지낸데 이어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미 외교·통상 전문가로서 인정받아 주미대사를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갖춘 인물이다.한 총리 내정자는 2002년 7월 ‘한중 마늘협상’ 파동으로 잠시 공직생활을 접기도 했으나, 노무현 정부 제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컴백해 고건·이해찬 총리를 잇달아 보좌했다. 이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참여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지냈고, 이후 대통령 직속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한미 FTA 특보를 맡아 한미 FTA 막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미 대사로 발탁됐고 3년간 재임했다. 그는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각 지방정부와 의회를 순회하며 한미FTA 비준 설득에 공을 세워 ‘한미 FTA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 한미 FTA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던 상황에서 미국 내 여론을 돌리고 미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고, 2011년에 한미 FTA가 미 의회에서 비준되는 데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12년에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취임해 3년간 일했다. 당시 그가 자주 쓰던 말이 ‘우문현답’으로,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의미였다. 2015년 한국무역협회장을 그만둔 뒤로는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청주세계무예마스터집 공동조직위원장,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 초대 의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첫해였던 2017년 대법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에쓰오일 사외이사를 지냈다. ▲ 전북 전주(73)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과장 ▲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 주OECD 대사 ▲ 대통령 정책기획·경제수석비서관 ▲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위원장 겸 대통령 특보 ▲ 국무총리 ▲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 주미대사 ▲ 한국무역협회 회장
  • 초대 총리 후보자에 한덕수 전 총리…尹 “정파 무관하게 실력 인정받아”

    초대 총리 후보자에 한덕수 전 총리…尹 “정파 무관하게 실력 인정받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한덕수(73) 전 총리를 지명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한 후보자는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며 이같이 발표했다. 당선인 첫 인선 발표다. 윤 당선인은 “새 정부는 대내외적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아가야 한다”며 “한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에 한 후보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 지명이라는 큰 짐을 지게 돼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또 큰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한 후보자는 행정고시 합격 후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통 경제 관료로,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진영 구분 없이 중용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 대사를 지냈다. 국무총리 재임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기반을 만들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낸 ‘미국통’으로도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한 후보자는 미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 전주 출신이고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중용됐다는 점 때문에 ‘여소야대’ 청문회 정국을 돌파할 묘수가 될 것으로 윤 당선인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한 후보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 지명이라는 큰 짐을 지게 돼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또 큰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익 중심으로 하는 외교, 강한 국가를 위한 자강 노력을 매우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전염병 대응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확장 정책이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에 대해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소야대 국면의 인사청문회 대응에 대해선 “진정성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조만간 총리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총리 인준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이 172석(57.3%)으로 과반 의석이어서 민주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 [정은귀의 詩와 視線] 멀고 가까운 전쟁/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멀고 가까운 전쟁/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전쟁은 방향 잃은 자들의 막다른 길.남자는 강철이, 여자는 재가 되는 것.전쟁은 진실의 희생자.전쟁은 정치인들의 아편.전쟁은 노래 없는 시.전쟁은 궁극의 오락.전쟁은 뉴스로 남는 뉴스.성취 못하는 혁명의 주된 무기.원칙의 이름으로 이성을 포기하는 것.... 전쟁은 여기다.전쟁은 지금이다.전쟁은 우리다. ―찰스 번스틴 ‘전쟁 이야기’ 중 찰스 번스틴,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시인 중 하나. 비평가이자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하버드 학부만 졸업하고선 대학에서 시 비평으로 수많은 박사 제자들을 길러 냈다. 좋은 시인을 파격적으로 임용하는 미국의 독특한 시스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시와 가르침은 언제고 힘을 주기에 기운 떨어질 때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이상하게도 열심히 잘 살고 싶어진다. 그의 시가 총알이 아닐까 싶은 때가 종종 있다. 죽이는 총알이 아니고 나태해진 머리를 흔들어 다시 살게 하는 비상약 같은. ‘전쟁 이야기’는 총 95행에 달하는 매우 긴 시다. 각 행마다 ‘전쟁은’(War is)으로 시작하고 한 줄씩 공백을 두기에 앞의 시는 느슨한 행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전쟁은 뭘까. 시인은 전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언어화해 하나씩 나열한다. 때로는 비틀고 때로는 비판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때로는 신음하면서. 국가 간의 무력 싸움, 전쟁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인은 95개의 다른 정의를 통해 전쟁의 원인, 전쟁 결정권자의 논리, 정치적 지형, 전쟁의 이윤과 전쟁의 상처, 비애까지 새롭게 보게 한다. 전쟁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 주는 시인은 ‘전쟁은 전쟁을 멈출 때에만 정당화된다./전쟁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전쟁은 여기다./전쟁은 지금이다./전쟁은 우리다.’라고 선언하며 긴 시를 끝맺는다. 이 시는 부시 행정부가 9·11 이후 아프간을 침공하려 할 때 발표한 시다. ‘반전 시 읽기’ 모임에서 나도 함께 시를 읽었는데 먼 나라의 전쟁을 보며 다시 시를 읽는다. 인형 하나를 들고 혼자 먼 길 걷는 소년, 포격당한 집들, 죽어 가는 사람들. 그 비극이 우리의 비극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중에 시를 읽다 보면 전쟁에 어린 폭력과 절망을 넘어 어떤 희망이 희미하게 예감된다. 그 희망은 이 세계의 고통을 직시하며 함께 비극을 아파하고 앓는 연대의 시선에서 온다. 어쩌면 일상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도 전쟁이다. 방향 잃은 일과 싸워 방향을 바로잡는 일도 전쟁이다. 이동권을 얻기 위한 장애인들의 안간힘도 전쟁이다. 지하철역에 리프트가 93% 설치됐으니 됐다고 할 게 아니라 100%가 아니라 미안하다 해야 한다. 인간의 기본권을 찾는 싸움이 쉽게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전쟁은 지금, 여기, 우리의 일이다.
  • 헌법학 연구 대가 김철수 교수 별세

    헌법학 연구 대가 김철수 교수 별세

    헌법학 연구의 대가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6일 별세했다. 89세.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뮌헨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1971년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41년간 모교에서 헌법학을 강의하며 동시대 헌법학자 가운데 가장 많은 후학을 배출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 양건 전 감사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헌법질서서론’, ‘헌법학’, ‘헌법학 신론’, ‘법과 정치’ 등의 저서와 4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법학교수회장, 국제 헌법학회 한국학회장, 국제 헌법학회 세계학회 부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1993년 입헌주의의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서옥경씨, 자녀 정화·수진·수영·수은·상진씨, 사위 박영룡·장영철·우남희 씨, 며느리 김효영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02)3779-1526.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꿀벌이 사라진다…밥상 위 먹거리와 함께

    꿀벌이 사라진다…밥상 위 먹거리와 함께

    “벌이 없었다면 꽃은 지금처럼 화사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연과 인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미국 보존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소어 핸슨 박사가 저서 ‘벌의 사생활’에서 한 말이다.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도 작은 벌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의미다. 또 꿀벌이 사라지게 될 경우 인간도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와 다름없다.●식량 대다수 가루받이 의존도 높아 꿀벌과 인류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것은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도 4년 안에 지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상대성이론을 만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다. 꿀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생태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지적하듯 이 말은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절대’ 아니다. 꿀벌 전문가인 제프 올레턴 영국 노샘프턴대 생태학과 교수나 키스 델라플란 미국 조지아대 곤충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 말은 1941년 발행된 양봉 관련 잡지 ‘캐나다 꿀벌 저널’에 실린 캐나다 양봉가의 글이 최초 출처다. 1965년 프랑스 과학 잡지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잘못 인용하면서 확대 재생산됐다. 어쨌든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수분(가루받이) 매개자 통계’에 따르면 수분을 하는 동물로는 꿀벌 외에 나비, 나방, 말벌, 딱정벌레, 새, 박쥐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꿀벌과 나비다. 전 세계 야생 식물의 90%, 식용 작물의 75%가 동물의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꿀벌은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중 71개 작물의 가루받이를 돕는다. 실제로 작물별 꿀벌의 가루받이 의존 정도를 보면 아몬드는 100%, 양파·호박 90~100%, 사과·망고 80~100%, 수박 70~100%, 식용유의 주 원료인 유채와 해바라기는 50~100%에 이른다. 유럽에서 꿀벌을 소, 돼지와 함께 세 번째로 중요한 가축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FAO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새, 박쥐 같은 척추동물 수분매개체의 16%가 심각한 멸종위기 상황에 있으며 무척추동물 수분매개체, 특히 꿀벌과 나비는 40%가 멸종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꿀벌과 나비의 급격한 감소에 대해서는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곤충 매개 작물, 전체 생산량의 35% IPBES는 생물다양성협약의 과학적 자문을 위해 2012년 설립된 기구로 기후변화협약 부속 과학자문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이들이 작성한 ‘수분매개체, 수분 및 작물생산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분 매개 곤충에 의해 재배되는 작물 생산량은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의 35%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농산물 생산액 중 5~8%에 이른다.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2350억 달러(약 285조원)에서 최대 5770억 달러(약 700조원) 수준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 생산뿐만 아니라 인간 생존 자체가 위험해진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꿀벌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명 이상이 추가로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바 있다. 과일 생산량은 22.9%, 채소는 16.3%, 견과류는 22.3% 줄면서 특히 임산부와 아동, 청소년에게 필수적인 비타민A, 비타민B, 엽산 등 영양소 공급이 급격히 줄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늘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렇다면 꿀벌의 잇단 폐사나 실종의 원인은 뭘까. IPBES에 따르면 꿀벌의 감소 원인은 크게 ▲서식지 감소 ▲병해충 ▲기후변화 ▲농약사용 ▲외래종 유입 ▲환경오염 6가지이다. 도시개발로 인해 꿀벌이 서식하고 꽃가루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농경지나 산지가 줄면서 집약적 환경에서 수확률을 높이기 위해 쓰는 농약이 해충뿐만 아니라 일반 곤충에게까지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꿀벌의 면역력이 떨어져 병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 곤충 감염병이 쉽게 확산되는 것도 문제라는 설명이다.●꿀벌 폐사의 주범은 농약 이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원인은 농약이다. 환경단체들은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약제를 꿀벌 폐사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담배 속 니코틴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기존 살충제보다 독성이 덜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이다.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의대 연구팀은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극미량이라도 꿀벌에게는 치명적이며 꿀벌이 생산하는 꿀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기초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하기도 했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진을 중심으로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20개국 37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꿀벌연구협회’(COLOSS)에서 활동하고 있는 앨리슨 그레이 영국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수학·통계학과 교수는 “꿀벌 폐사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로 특정 날씨 패턴이나 양봉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여름철에 양봉 관리가 어떻게 됐는가에 따라 겨울철 폐사율이 달라진다”며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꿀벌의 천적인 각종 기생 진드기의 번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꿀벌 폐사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벌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굴슨 영국 서식스대 교수는 이달 초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분석 논문에서 “살충제 오염, 전자파 노출, 도시화, 온난화 등 꿀벌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대부분 인간의 활동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여섯 번째 대멸종 시계…인간이 방아쇠 당겼다

    여섯 번째 대멸종 시계…인간이 방아쇠 당겼다

    최근 많은 과학 학술지에서 ‘인류세’(Anthropocene)에 관한 우려 섞인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류세는 안정적으로 진화해 온 생태계가 인간 때문에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부끄러운 용어다. 실제로 지난 3월 18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캐나다 토론토 미시소가대 진화생물학자들을 중심으로 26개국 과학자 287명이 전 세계 160개 지역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간과 도시가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배적 힘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인간이 생태계 속 동식물의 생존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멕시코 국립자치대, 미국 스탠퍼드대, 미주리 주립식물원 연구팀도 미국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인간 때문에 지구상 모든 생물의 70~95%가 사라지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며 “생태계 붕괴와 멸종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자연의 회복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때문에 멸종한 동물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도도새’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모리셔스에 살았던 비둘기목 동물인 도도는 칠면조보다 크고 천적이 없어 날 수 없는 새였다.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모리셔스에 상륙한 이후 신선한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분별하게 포획되면서 100년 만에 희귀종이 됐고 1681년에는 남은 한 마리가 죽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됐다. 한반도에서도 인간에 의해 사라진 생물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 동해안과 독도 지역에 살았던 바다사자과 ‘독도 강치’다. 독도 강치는 19세기 초 수만 마리가 살았지만 1905년 이후 일본인들이 가죽과 기름을 얻기 위해 집중 포획하면서 멸종위기 동물이 됐다. 독도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이 1972년이었으며 1994년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 멸종을 선언했다.인간이라는 요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동식물 멸종은 더욱 빨라지고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9년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 총회에서 50개국 과학자 145명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식물 800만 종 가운데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생물종의 멸종 속도는 지난 1000만 년 동안보다 수십, 수백 배 빨라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호초는 150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양서류는 40%, 포유류 25%, 식물 중 침엽수는 34%가 멸종위기 상태에 놓였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다트머스대, 하버드대 공동 연구팀은 지난 3월 11일자 생태학 분야 국제학술지 ‘식물, 인간, 행성’에 식물 생태계에서도 인간에게 필요한 식물만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식물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존 크레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수석식물학자는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만 선택하려는 경향 때문에 생물다양성뿐만 아니라 진화라는 자연적 과정이 파괴되고 있다”며 “최종 결과는 그대로 사람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IMF, 이창용 한은총재 지명 축하

    IMF, 이창용 한은총재 지명 축하

    IMF 총재 “존경과 찬사 받은 훌륭한 리더”국제통화기금(IMF)은 23일(현지시간) 한국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된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의 사임 소식을 전하면서 향후 한국 금융 수장으로서 그의 성공을 기원했다. IMF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국장의 한국은행 총재 후보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그가 4월 초 퇴임한다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발표했다고 밝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 국장이 중요한 자리에 지명된 것을 축하하며, IMF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여에 감사드린다”며 앞날에 성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IMF는 이 국장이 2014년 IMF에 합류한 이래 뛰어난 리더로 활약했다고 평가하며 “일에 대한 예리한 지성과 열정을 보였고 회원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기후변화에서 무역 및 금융 통합, 디지털 경제, 장기적 침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떠오르는 주요 이슈들에 관한 최신 연구를 장려했을 뿐 아니라 감독과 정책 조언을 강화하기 위해 이 분야에 관한 연구에 깊이 관여하고 헌신했다”고 했다. IMF는 “그의 큰 장점은 문제의 양면을 보는 데 있다. 동시에 그는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면서 IMF와 지역 정책 입안자들에게 커다란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며 IMF 전체 동료들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은 총재 후보로 지명된 이 국장은 한국은행법 33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한은 총재로 임명될 전망이다. 그는 현재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으며 오는 30일 귀국해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한은 총재 임기는 4년이고,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계은행 객원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에 앞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 이창용 “성장·물가·금융안정 균형 고려해 통화정책 고민”

    이창용 “성장·물가·금융안정 균형 고려해 통화정책 고민”

    이 후보자 8년간 IMF 고위직에서 근무“국내 인플레, 경기 리스크 동시 확대 우려 커져”IMF 총재 “성공 기원, 그리워 할 것”“인플레이션과 위험 동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커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24일 “성장, 물가,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이날 한은을 통해 배포한 지명 소감에서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리스크(위험)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통화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중국 내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어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 후보자는 “앞으로 지난 8년여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지금 처해 있는 여러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금통위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IMF “그의 큰 장점은 문제의 양면을 보는 데 있어” IMF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창용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명 됐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가 4월 초 퇴임한다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발표했다고 밝혔다. IMF는 “그는 2014년 IMF에 합류한 이래 뛰어난 리더로 활약했다. 일에 대한 예리한 지성과 열정을 보였고 회원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아태국을 이끌었던 지난 8년간 아시아 회원국과 IMF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며 “아시아 경제와 정치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는 회원국들과의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그의 큰 장점은 문제의 양면을 보는 데 있다. 동시에 그는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면서 IMF와 지역 정책 입안자들에게 커다란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며 “예컨대 발리에서 열렸던 연차 총회에 대한 그의 관리 능력은 리더로서 많은 자질과 기여를 말해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와 함께 일한 특권을 누린 우리는 그의 친절함과 동료애, 놀라운 유머 감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그는 아태국 직원의 복지를 위해 헌신한 핵심 리더였다. IMF 전체 동료들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그가 중요한 자리에 지명된 것을 축하하며, IMF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여에 감사드린다”며 앞날에 성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창용은 누구?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후보자는 미국 로체스터대 조교수, 세계은행 객원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에 앞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2009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2011년부터 3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IMF 고위직에 올랐다.
  • 한국인 첫 IMF 고위직… 금리 인상 불가피 입장 내비쳐

    한국인 첫 IMF 고위직… 금리 인상 불가피 입장 내비쳐

    ‘엘리트 경제·금융 전문가’로 통하는 이창용(62)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23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지명되면서 기준금리 등 향후 통화정책 방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1960년 충남 논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 세계은행 객원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계에 명성을 날렸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 등과 공동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경제학도의 ‘바이블’로 꼽힌다. 학계뿐 아니라 현실 금융시장과 정책 논의 과정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2004년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았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에 앞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2009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G20 정상회의 기획조정단장을 맡았다. 2011년부터 3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2014년 한국인 최초로 IMF 고위직(아·태 담당 국장)에 올랐다. 해외 주요 경제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풍부해 글로벌 인맥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시절 스승과 제자로서 인연을 맺었고,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과도 친분이 있다. 국내에서는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등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후보는 코로나19 이후 가계와 국가부채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하며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동성에 의존해 부채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향후 금융시장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을 통해 부채 비율을 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현재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충남 논산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 ▲세계은행 객원연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원회 위원 ▲대통령 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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