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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경제학상/印 아흐마르티아 센 교수

    ◎후생경제학 기틀 확립 공로… 아시아인 첫 수상 【스톡홀름 외신 종합】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인도 출신의 아흐마르티아 센(64)이 선정됐다고 스웨덴 왕립 한림원이 14일 발표했다. 한림원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의 센 교수가 “후생 경제학의 기본 문제들에 대한 연구에 공헌한 공로”를 선정 이유로 꼽았다. 센 교수가 “사회적 선택이론(公理)과 후생 및 빈곤 지표,기아문제에 대한 실증 분석” 연구 등을 통해 기아와 빈곤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경제학의 틀을 확립하는데 공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4년 방글라데시의 기근을 비롯해 인도·방글라데시·사하라 지역국가들의 기아문제 등을 연구해온 센 교수는 33년 인도 벵골에서 출생했으며,59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넬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거쳐 88년 이후 미 하버드대에서 재직하다 올해 트리니티 칼리지로 옮겼다. 전공은 사회선택 이론과 후생경제학,경제개발론 등이다. 특히 74년 발생한 방글라데시 기근과 관련,전국을 강타한 홍수로 물가가 폭등한 반면 농경지 침수로 농업 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농민의 이중고가 심화된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센 교수는 오는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760만크로나(97만8,000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센 교수 수상업적/복지·효용비교 사회선택이론 정립/빈곤·기근문제 정치경제학적 접근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흐마르티아 센 교수는 그동안 주류 경제학에서 상대적으로 외면받아온 빈곤과 기아문제를 집중 연구해 왔다. 센 교수는 사회선택이론과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구체적으로는 두 권의 두드러진 저서를 남겨 세계 경제학계의 이목을 잡아당겼다. 첫번째는 지난 71년 발간된 ‘집단적 선택과 사회 후생’이다. 어떤 종류의 합리적인 사회적 선택이 전적으로 개인들의 선호체계에 근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연구한 책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사례는 많았지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효용과 복지를 비교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학설을 정립한 것이 센 교수의 공헌이다. 81년에 나온 ‘빈곤과 기근:권리와 박탈에 대한 소론’은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그의 성가(聲價)를 확실히 굳혀주었다. 그는 이 책에서 제 3세계의 기근은 전형적으로 가뭄이나 홍수에 기인한다는 기존의 통설을 공박했다. 대신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빈곤문제를 접근했다는 평가다. 빈부(貧富)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고국(故國)의 현실이 이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 기근으로 대중들이 굶어죽는 것은 사실상 그 나라의 수요·공급 사정이 부적합한 탓도 있지만 아사자(餓死者)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최빈곤층의 소득이 줄어 식량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인도 등지의 유수 대학에서 강의한 센 교수는 올해 ‘매스터Master)’라는 직함을 받고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로 자리를 옮겼다. 서강대 경제학부 李相承 조교수(35)는 “이는 영국여왕이 직접 선정해 위촉하는,교수로서는 최상의 영광스런 직함”이라며 “센 교수의 학문적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美 졸부보다 자수성가형 부자 많다’/포브스誌 400大부자 선정

    ◎빌 게이츠 584억달러 1위/첨단산업·연예계 갑부 많아/평균재산 5억달러 이상 【뉴욕 DPA 연합】 미국에서 진짜 갑부로 대접받으려면 재산이 수십억달러는 돼야 한다.그리고 첨단산업은 떼돈을 버는 지름길이다. 27일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보스가 발표한 연례 ‘미국의 400대 거부(巨富)’에 따르면 갑부들의 평균 재산은 5억달러 이상이었고 연예계 거물들이 포함된 189명은 수십억달러에 이르렀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인 빌 케이츠는 올해 주식시장에서 90억달러를 날리고도 584억달러(75조9,200억원)의 재산으로 최고의 갑부 자리에 올랐다.금융가인 워렌 버펫도 주식시장에서 70억달러를 손해봤지만 아직도 재산이 294억달러나 돼 2위를 차지했다. 연예계에서는 16억달러를 가지고 있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20억달러의 영화 제작자 겸 감독 조지 루카스가 포함됐다.토크쇼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400대 갑부 명단에는 올랐지만 소득은 6억7,500만달러로 십억달러대 부자축에는 끼지 못했다. 400대 갑부 중 여성은 58명이었고 58명은 대학중퇴자들이었다.대학 중퇴자들의 평균 순 재산은 48억달러로 하버드 등 북동부 8개 명문대학 출신 부자의 23억달러를 앞질렀다. 또 상속한 재산 덕분에 거부 명단에 오른 사람은 171명이었으나 229명은 자수성가한 부자였다. 업종별로는 금융 및 투자업이 75명,미디어와 연예 오락산업 64명,소프트웨어 및 기술 27명,부동산 27명 석유 및 가스 27명이었다. 특히 첨단기술분야는 갑부가 되는 지름길.‘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은 130억달러 부자였고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은 8억3,000만달러를 벌었다.
  • 장애인 사랑/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15일 아침에 배달된 조간신문은 장애인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내용의 기사를 전해주고 있다.내년부터 서울시내 일부 지하철에 장애인들을 위한 휠체어 전용공간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그 하나요,서울 용산구청의 장애인 전용주차장 설치계획이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5개월째 표류하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19면)가 두번째이다. 지하철의 휠체어 전용공간도 현재 운행중인 1∼5호선이 아니라 내년 말 개통되는 6호선 이후 전동차에 설치한다는 계획이다.이 역시 지난 4월 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의무조항을 이행하는 조치에 불과하다.이 법에 따라 장애인 시설을 갖춰야하는 공공시설은 12만여곳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42%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더구나 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지하도와 육교의 오르내림 시설,공중화장실 등 편의시설 설치율은 25%대에 머물러 장애인 10명 가운데 3명은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집계가 우리의 현실이다. 용산구민들의 반대이유는 가뜩이나 주차공간이 비좁아 정상인들도 불편한데 하물며 장애인 주차장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구청장에게 직접 항의하거나 전용 주자장 설치작업을 못하도록 방해하며 이미 설치된 곳에는 온갖 쓰레기를 버려 장애인들의 주차를 막고 있다고 한다.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노동부가 집계한 정부기관,정부투자기관,300인 이상 민간업체의 장애인 고용현황은 우리 사회 전체의 편견을 잘 전해준다.정부 1.15%,투자기관 0.88%,민간업체 0.46%이며 특히 30대 기업은 0.2%대에 지나지 않아 이들 기관과 업체의 의무고용비율인 2%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 해 9월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날아 든 한 외신이 전해준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하버드대학교가 경영대학원의 엘리트 코스인 케네디스쿨에 입학한 한 한국인 척수장애학생을 위해 유서깊은 3개 교사(校舍)의 출입문을 뜯어고치고 정교수도 얻기 힘든 주차권까지 발급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컴퓨터실도 휠체어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고쳤다.하버드는 이렇게 한 외국인 장애학생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게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서울대가 지난 학기 학교시설을 장애학생 친화시설로 바꾼데 이어 99학년도부터 특별전형으로 장애학생을 뽑아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는 최근 소식은 그나마 위안을 준다.국난(國難)극복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 이기심을 버리고 ‘장애인 사랑’을 실천해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뤄나가자.
  • 존 실버 총장(朴康文 코너)

    미국의 존 실버 박사는 윤리학자,법철학자,그리고 권위있는 칸트철학 연구자다. 미국 트리니티 대학교를 나와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텍사스 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고,71년 보스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다른 대학 출신이 총장으로 왔다고 누구도 트집잡지 않았다. 96년까지 26년동안 보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었는데,그가 너무 오래 그자리에 있다고 누구도 헐뜯지 않았다. 그는 총장직을 떠난 뒤 이사장이 되었으면서도 교수로서 전공분야의 강의를 맡고 있다. ○美 대학사회 통렬히 비난 그는 촘스키 같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교수들을 맹공했다. 이는 진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대학사회에서 인기가 없는 행동이었다.그가 총장직에 있으면서 89년 ‘직사’(直射)라는 책을 써서 미국사회와 미국 대학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누구도 이런 처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별난 대학교 총장이었다. 그의 글은 직설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좌충우돌로 자기 주장이나 비판을 폈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겼다. 총장직에 있는 동안 보스턴 대학교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는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미국의 교육대학원들은 인기가 없어 지원자가 적어지자 합격기준을 자꾸 낮추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은 교육에 뜻이 있어도 입학하려 들지 않았다. 실버총장은 보스턴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합격기준을 놀랄 정도로 올려버렸다. 당연히 정원을 채울 수 없었다. 이런 엉뚱한 조치를 정부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과감한 시도는 성공한다. 우수한 학생을 모은다는 소문이 나자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적좋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교수보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더 중요하다. 신입생들을 경험없는 조교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강의실은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이 아니다. 강의는 공개되어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지적한 교수사회의 병폐를 보자. 학장이나 총장이 의욕적으로 개혁하려 하면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교수들이 기어코 몰아낸다. 새로운 학문적 견해를 가진 젊은 교수에게 늙은 교수들이 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한번 전임이 되고 나면 나태해지는 교수들이 있다. 강의하거나 학생을 지도하기보다는 학교 밖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자문담당이 되기를 더 좋아하는 교수들이 많다. ○오른손 장애 딛고 성공 그곳도 교수사회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싶은데,그래도 실버박사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만은 크게 다른 것 같다.무엇보다도 정부가 대학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실버박사가 총장일 때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버드 대학교 앞 서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왼손으로 서명해준 뒤 또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오른손은 없었다. 손 하나가 없다고 해서 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겠지만 그때 놀라움은 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른손이 왜 없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서 다쳤다면 용사의 표상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면 어려움을 극복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발레리나 金民嬉(이세기의 인물탐구:181)

    ◎마음의 향기 뿜어내는 ‘춤 전도사’/자기혁신 끝없는 시도 ‘20세기 파격’ 베자르 설립 벨지움무드라에서 수업/舊習에 갇힌 우리 무용계 안타까움을 작품에 溶解 “무대는 내영혼의 피난처”/윤동주 그린 ‘또다른 고향’ “번뜩이는 무용언어” 好評 추상회화 절제美 배운다 ‘베자르는 나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 이는 발레리나 金民嬉의 신조다. 김민희는 대학교수이자 무용이론가이며 무용콩쿠르 심사위원, 국제세미나 질의자로서 탁월한 행정력을 지닌 지도자의 한사람이다. 그가 신처럼 여긴다는 20세기의 대표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세계를 살펴보면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베자르는 지난 66년 도쿄 스포츠경기장에서 거대한 군중을 상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가부키’에서는 47인의 사무라이를 할복자살케 함으로써 섬뜩한 피날레로 세계를 경악시킨 장본인이다. 바로 김민희는 베자르가 설립한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 출신으로 한국 무용가로서는 베자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무용가이기도 하다. 형식과 틀에 머무르기 보다 자기속에서 끝없는 혁신을 시도하는 그의 안무는 마치 자신이 베자르인듯이 언제나 신선하고 이채로운 무대를 꾀한다. 공연장에 대한 개념도 개방적이다. 극장무대만을 고집하기보다 선상(船上)이나 해변, 야외 성당 등 공간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공연하여 그의 ‘춤의 창작성’이 어떤 제약이나 규격에서 탈피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런가하면 침묵속에서 춤추거나 혹은 북의 리듬만으로 춤추고 토슈와 맨발을 뒤섞어 놓거나 튀튀나 발레드레스가 아닌 종이옷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만년 현역으로 뛰는 다른 무용수들과는 달리 새털같은 가벼움과 냉엄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새파란 젊은이들을 무대에 세워 춤의 완성도를 향한 감연한 정열을 불태운다. 내가 만든 춤이 과연 어떤형태의 퍼포먼스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관객의 심장의 과녁에 확실한 메시지를 꽂아야만 비로소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아무리 창조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안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자세로 에너지가 분출하고 감동이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안무가도 무용수도 작곡가도 아니면서 발레 뤼스를 통해 미하일 포킨과 니진스키를 길러낸 디아길레프처럼 거대한 화면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 역시 무용을 총체적 예술로서 관장하는 위치다. 초기에 선보인 ‘나의 일기’와 ‘파우스트’‘파키타’가 전통발레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92년 춤의 해에 선보인 ‘헨델을 위한 무브먼트’는 모던발레의 힘찬 도약과 현란한 파드되의 직조가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시인 윤동주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또다른 고향’은 대서사시적 무용극으로 긴 침묵과 물방울 소리, 감옥의 창살 사이로 맹렬한 뜀뛰기와 휘어지는 도약, 교묘한 리프트를 실행하는 날아다니는 육체의 행렬로써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은 95년 서울국제무용제에서 대상·안무상·연기상·무대미술상을 휩쓸었고 평자들은 ‘번뜩이는 무용언어와 강한 캐릭터가 꿈틀거리는 수작중의 수작’으로 평한바 있다. 무용계에서는 널리 알려진대로 김민희는 묵화와 꽃꽂이연구가로 유명한 여류원로 田聖淑씨(83)의 2남4녀중 막내. 어머니의 ‘정성의 결정체’라 할만큼 아버지를 일찍 여읜 막내딸을 위해 어머니는 아직 6살이 채 못됐을 때부터 중구 회현동에 있던 동네 무용학원에 데리고 다녔고 금란여고를 거쳐 이대무용과에 입학할 때까지 간곡한 격려와 채찍으로 딸의 성장을 지켜왔다. 대학에 입학하던 67년부터 홍정희 육완순 교수의 작품에 출연,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면서 대학재학중이던 70년에 벨지움무드라에 유학하여 요가나 명상, 파드되 클래스에서 타악기 리듬을 집중적으로 몸에 익히는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 그때 그는 ‘발레란 육체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속과 마음속의 향기를 뿜어내는것’임을 깨달았고 베자르가 말한 ‘춤이란 댄스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에서 돌아오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허탈감과 무기력증을 극복하지 못한채 한동안 무용계에서 잠적해버렸다. 만약 그때 무드라에서 배운대로 춤추었다면 당시의 한국의 발레풍토에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우려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춤에 미치고 싶다’는 욕망과 ‘너무 늦었다’는 압박감에 시달릴때도 어머니의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충고에 따라 긴 공백을 깨고 분연히 일어나 무용계에 컴백했다. 매끄럽고 반복적이며 소박하고 학구적인 춤의 본능이 몸속에서 다시 되살아나자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안무가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우리의 발레가 지나치게 구태의연하고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킬 수 있었다. 그가 클래식 발레에 바탕을 둔 창작발레를 고집하는 까닭은 춤을 댄스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며 제자들에게 ‘진실한 예술가의 자세’와 ‘왜 무용을 해야하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무가로서 세계적인 이르지 키리얀과 윌리엄 포사이드의 창작세계를 분석하면서 ‘무용을 통해서 지상에서 가장 최상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되는것’에 충실하게 되었다. 프랑스 신세대의 명망있는 안무가인 마기 마렝이 벨지움무드라의 동기생이고 김복희 김화숙은 이대동창이다. 가족은 사업을 하는 부군 崔勝雄씨와의 사이에 아들만 형제, 성격은 윤동주의 시처럼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편이며 구상이 끝나면 한곳에 집착하지 않고 의외성이 분출될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대단하다. 무대는 ‘사람이 자기 영혼의 정확한 크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이세상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신념에 따라 그의 최근의 안무는 하나의 장르에 예속되기 보다 근육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이미지쪽에 치중하는 경향이다. 발레안무의 낡은 부대에 폭발적인 포도주를 쏟아붓기보다 흐르는 듯한 이미지와 태초의 빛,묵도(默禱)의 종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움직임은 추상회화의 생략과 절제처럼 여백의 미를 창출하는 시기다. □그의 길 ▲1967년 이화여대 무용과입학, 홍정희 발레공연출연 ▲1970­71년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장학생 수학 ▲1972년 이대졸업(발레전공) ▲1977·78년 독일 요한크랑코발레스쿨및 모나코 댄스아카데미연수 1981년 이화여대대학원 졸업 ▲1984년 하버드대 댄스센터연수 ▲1987년 창작발레 ‘나의 일기’ 공연 1988­현재 대한무용학회이사 ▲1989­현재 한양대 교수 ▲1989년 김민희발레공연 ▲1989­97년 한국발레협회이사 ▲1990년부터 해마다 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발)연수 ▲1991년 한양대대학원(박사과정) ▲1991­현재 한국미래춤학회 상임이사, 전국발레콩쿠르 심사위원 ▲1993년부터 서울국제무용제참가 ▲1994­현재 한국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한국무용협회 이사. ▲1996년 전국무용제심사위원,한국발레협회공연및 한국발레연구회 정기공연외 한국발레협회부회장, 서울국제무용제운영위원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사람,사람들’‘숲에서’‘우리 안에는…’외 다수 서울국제무용제연기상(93년)·대상·안무상·연기상(95년) 역서 ‘클래식 발레(기초법과 용어)’(84년)‘세계발레작품 해설집’(87년)외
  • 민주열사 열전:3/崔鍾吉 서울 법대 교수(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 사죄” 외친 참지식인/법학자답게 ‘정의의 저울’로 독재에 항거/반공주의자… 간첩혐의 조사받다 의문사 崔鍾吉은 서울대 법대 교수였다.그는 70년대초 유신독재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다.그러던 어느날 그의 비판의 소리가 사라졌다.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의문 속에 죽었기 때문이었다.공작정치를 자행하던 중앙정보부는 그를 간첩이라고 발표했다.독재권력에 의해 그는 간첩으로 왜곡됐다.그러나 죽은 사람은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수사중이었던 중앙정보부는 73년 10월25일 “구속수사를 받던 崔鍾吉 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崔교수가 사망한지 6일 뒤의 발표였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은 물론 崔교수를 아는 사람중 중앙정보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대부분 고문으로 죽자 자살로 위장했을 것이라고 믿었다.가족들은 검시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장례마저도 소리없이 비밀리에 치러야 했다.그의 죽음은 張俊河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유신시대 최대 의문사 사건이다.그의 의문사는 독재권력의 인권유린과 민주화 탄압 및 공작정치의 실상을 증언하고 있다. 사건 1년여 뒤인 74년 12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崔교수가 전기고문 도중 조작 실수로 심장파열을 일으켜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그러한 의혹은 당시 모 신문사 기자가 취재도중 입수해 사제단에 알려온 정보를 바탕으로 제기됐다”고 사건 당시 정보부 직원이었던 P씨가 전한다.P씨는 사제단에 있던 한 신부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그는 “앞서 열린 1주기 추도식때도 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제기됐었으며 몇개 신문의 초판에 실렸던 관련 기사가 밤사이 누락됐었다”고 전했다. 사제단은 88년 10월6일 서울지검 김두희 검사장 앞으로 崔교수 사인 진상규명을 위한 고발장을 제출했다.사제단은 “崔교수 사인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간첩 누명이 씌워졌다”고 주장하고 당시 사건 관련자로 이후락 정보부장 등 22명을 고발했다.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사건발생 1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민의 관심사로 등장했다.고발은 사건 당시 정보부 감찰실 직원으로 있던 崔교수 동생 종선씨(미국 거주)가 비밀리에 작성했던 수기가 바탕이 됐다.그는 사건 후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친구가 있던 세브란스 정신병동에 약 1주일간 입원하며 수기를 썼다. 그러나 수사는 겉돌았고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18일 “崔교수가 타살됐다는 증거도,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족들과 사제단의 자료,88년 검찰 발표 등을 종합하면 당시 정보부 발표는 의혹 투성이다.먼저 정보부는 “崔교수는 퀼른대학 유학중 중학동창생인 이재원·노봉유(미체포)에게 포섭돼 평양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유족들은 “주범이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섭된 사람이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사고이후 시체를 현장에 두지 않고 급히 국립수사연구소로 옮긴 점,가족이나 변호인·의사의 검시 참여를 불허한 점,한장 뿐인 사체사진이 투신 자살(뒷머리가 깨지고,양쪽 손발이 부러졌다는 정보부 발표)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 점 등도 정보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게 했다.떨어진 지점이라는 곳도 종선씨가 그날 새벽 몰래 가본 결과 핏자국이나 이를 씻어낸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崔교수가 뛰어내렸다는 화장실 구조도 투신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됐다.162㎝의 작고 뚱뚱한 그가 수사관들을 6m 거리에 둔 채 잠긴 창문을 열고 150㎝ 높이의 창문턱을 잡고 올라 투신한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이것은 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면서 건물구조를 잘 아는 동생 종선씨가 제기하는 최대 의혹이다. 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10년전에 지났다.그러나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정부나 국회의 적극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국민들은 당시 관련자들이 참회의 ‘양심선언’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종선씨는 수기에서 “그들도 언젠가 증언대에 서면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착한 형제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진실규명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외아들 光濬씨/“역사의 진실에 공소시효는 없다” 崔鍾吉 교수의 외아들인 光濬씨(34·부산대 법대 조교수)는 최근 독일에 다녀왔다.학술회의 때문에 갔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부친 행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그러나 이번에도 새로운 것은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부친 모교인 퀼른대 출신인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됐고,그 이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답답함만 더해 갔습니다. 자상한 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왜 간첩누명까지 써야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부친의 은사였던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 등 아버지가 만났던 교수 동료들을 만나 부친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보려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시절 만났던 코헨,박스터,라이샤워 교수들에게도 전화나 편지로 도움을 청했다.“그들은 한결같이 부친의 결백을 믿었으며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光濬씨는전한다.특히 세계적인 민법학자 케겔 교수는 75년 독일 슈피겔지에서 崔교수 관련 기사를 읽고 당시 법무장관에게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光濬씨의 어린시절은 아픈 기억으로 가득하다.“1주기 추도식 때였어요.당시 명동성당에서 갖기로 했는데 정보부에서 막아 어머님이 저와 동생을 끌고 감시의 눈을 피해 사람이 많은 시장거리 등을 몇차례씩 통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때문에 여러번 이사를 해야 했다. 학교를 옮겨 조금만 있다보면 자신을 보는 친구나 선생님들의 눈치가 이상하게 느껴지곤 했다고.그는 결국 고등학교만 마치고 유학길을 택해야 했다. 사건 이후 미망인 백경자씨(62·의사)는 “오로지 남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고 했다.그녀는 당시 열살,여덟살이던 光濬·希晶 남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사다니기를 반복해야 했고 ‘자랑스런 아버지’였다는 점을 심어주어야 했다.덕분에 光濬씨는 아버지 뒤를 이어 민법학자가 됐다.希晶씨(32)는 성신여대를 나와 출가해 미국에 살고 있다. ◎왜? 촉망받던 그가 죽음을 당했나/권력핵심부 거침없는 비판/독재정권의 ‘눈엣 가시’ 崔鍾吉 교수는 촉망받던 젊은 학자이자 의식있는 지식인이었다.그는 모교인 독일 퀼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남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그러나 “모국에서 배움의 의지에 불타는 법대생들 앞에 서는 것이 내 소망이요 소명”이라고 뿌리치며 귀국했다고 가족과 당시 동료교수들은 전한다. 하버드 대학의 코헨,라이샤워,박스터 교수 등은 崔교수에 대해 ‘그는 애국자였으며,위대한 학자요,우리들의 친구”였다고 말했다고 한다.코헨 교수는 후일 미국의 한 신문에 ‘우울한 한국(Gloomy Korea)’이란 기고를 통해 崔교수 죽음을 애도하고 한국 공작정치를 비판했다고 아들 광준씨가 전한다. 간첩혐의에 대해서 가족들은 “본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했다.아들 光焌씨는 “아버님은 학도병 출신입니다.학도병시절 한국전쟁 전선에 투입되기 전 일본에서 몇개월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한국말을 쓰며접근하는 사람을 매우 조심했다고 당시 친구분들에게서 들었어요.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고 해요.아버님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崔교수를 비극의 죽음으로 몰고간 시대적 상황은 무엇일까.사건 2달여전인 73년 8월8일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 미수에 그치자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아울러 조용하던 대학가에서 반 유신시위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서울법대에서도 연이어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교내에 진입해 시위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연행해 갔다.이에 대해 崔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을 구타하고 고문하는 무도한 행위에 대해 정의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모른 체하면 안된다”“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정보부는 결국 수사중이던 간첩사건(崔교수 출두전 간첩사건은 거의 수사가 종결돼 있었다고 사제단은 판단)에 崔교수를 엮어 반유신투쟁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던 것 같다.동생 종선씨는 88년“공공연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형님을 손보려고 했으나 뜻하지 않게 조사도중 사망하자 사인을 은폐하기 위해 어거지로 간첩혐의를 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崔鍾吉 열사 연보 ▲1931년 충남 공주에서 4남1녀중 차남으로 출생 ▲1950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51년 학도병 입대 통역병 근무 ▲1957년 서울 법대 대학원 졸업 ▲1962년 독일 퀼른대학 법학박사 ▲1964년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 ▲1970년 2년간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수 ▲1972년 서울대 법대 교수 ▲1973년 11월16일 중앙정보부(남산)에 출두 ▲1973년 11월19일 새벽 1시30분 사망
  • 현대차 사태 법대로 처리돼야(사설)

    마침내 정부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불법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을 정했다.이 회사의 노조는 정리해고 방침이 정해진 지난 4월 하순 처음 파업을 한 이후 요즘은 5번째 파업 중이다.7∼8월 중 일한 날은 기껏 닷새 뿐이다.노조의 방해 때문이다.이런 점으로 미루어 공권력 투입이 너무 늦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파업현장은 성역(聖域)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치외법권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노조의 불법에 대한 공권력 집행은 지나치게 너그러웠다.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빚어질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가급적 노사의 자율적 해결을 바라는 선의(善意)에서 비롯됐을 것이다.노조를 경영자에 비해 약자로 보고 그들의 탈법이나 불법을 관대하게 여기는 국민정서가 작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호의가 노조의 불법을 조장함으로써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결과를 빚어왔다. 이 회사의 정리해고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추진되는 것으로 이를 빌미로 한 파업은 불법이다.더구나 조업을 재개하려는 임직원들을 폭력으로 제압해 무력화시킨 행위는 조직폭력배들의 그것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다.쇠파이프와 각목까지 휘둘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불법에 대한 공권력의 엄격한 집행만이 상습화된 노조의 도덕적 타락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동안의 파업과 휴업으로 인한 이 회사의 손실은 어마어마하다.생산을 못한 자동차가 6만8,273대로 매출손실이 6,185억원에 이른다.주문을 받고 선적하지 못한 수출물량도 5만대다.2,900여개에 이르는 1,2차 부품업체 등 협력업체의 손실도 5,985억원이고,최종 부도처리된 협력업체만도 301개사다.가동중단이 계속될 경우 피해가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눈에 뜨이진 않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피해도 크다.그 중 하나가 바로 국가신인도의 하락이다.IMF의 구제금융 이후 처음 시도하는 대기업의 정리해고가 이처럼 갈팡질팡하자 외국인 투자가들은 진작부터 회의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건국 50주년을 맞아 국내 TV와 인터뷰한 세계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 교수(미국 하버드대)도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려면 ‘법이 법답게 집행되는 사회를 만들라’고 말했다.특히 정부가 되새겨야 할 낯 뜨거운 충고다. 노조도 이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와 질서를 지켜야 한다.합법적 노조운동은 정부가 적극 보호하고 또 국민이 지지하겠지만 불법과 폭력은 법의 엄정한 심판과 국민의 따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국민의 지지를 잃은 노동운동은 설 땅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임기 마치고 귀국 李鳳瑞 前 ADB 부총재

    ◎“한국 IMF졸업 타국보다 빠를것”/‘남미식 처방’ 궤도수정 요구 잘한 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초기 프로그램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재정흑자를 요구하는 등 실책을 범했습니다.이는 중남미와 동아시아 국가간의 차이를 잘 모른 데서 나온 것입니다” 5년간 ADB(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 임기를 마치고 이달 초 귀국한 李鳳瑞 전 상공·동력자원부 장관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경제사정이 어려우며 한국과 태국은 비교적 회복이 빠른 나라로 꼽힌다”고 말했다.그의 ADB 근무기간은 공교롭게도 한국경제가 하강기를 거쳐 외환위기를 맞은 기간과 겹친다.귀국 후 부친(李珌奭 옹)이 명예회장인 국제화재 회장에 취임했다.지난 8일 李회장을 만나봤다. ­아시아 각국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처음 발생했던 태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안정되고 있습니다.태국의 실업자는 200만명을 웃돌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7%에 달합니다.인도네시아는 훨씬 심각하고….필리핀은 80년대 이미 금융위기를 겪어 조심을한 덕분에 피해를 덜 봤지요.필리핀은 외국에 가정부 등으로 취직한 근로자들이 연간 70억∼80억달러를 송금해 국제수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에서 가장 문제되는 분야는. ▲저성장과 실업문제지요.실업은 각국의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그 다음으로는 금융제도상의 취약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대처방식 중 인상적인 대목은. ▲태국의 경우 외환위기가 처음 발생한 국가인데 IMF가 권고하는 대로 시행한 것이 인상적입니다.IMF가 모두 옳은 것이 아닌데도 일단 따라가고 시행중에 문제가 있는 사항의 궤도수정을 요구해 관철시켰지요. ­국제금융기관들이 일부 IMF 프로그램을 비판했었는데. ▲IBRD(세계은행) 세계문제담당 부총재 등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ADB도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IMF가 한국처방에서 실책을 범한 이유는. ▲(한동안 생각하다가)IMF는 외화유출로 인한 금융위기에 대처해 왔으며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남미국가들과 아시아국가들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지요.멕시코의 경우 재정파탄상태에서 외환위기를 맞았으나 한국이나 태국은 재정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남미에 강요했던 대로 재정흑자 요구처방을 내린 것이 실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대처방식은 어떻습니까. ▲현명했다고 봅니다.IMF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일단 따라가고 나중에 수정을 요구했으니까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인 李회장은 “시간이 나는대로 대학강단에도 설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 여성 4명 서기관 승진/교육부 ‘우먼파워’ 기염

    ‘교육부에 여성 서기관 시대가 활짝 열렸다’. 24일 발표된 교육부 인사에서 서기관(4급)으로 승진한 15명 중 여성 사무관이 4명이나 포함돼 ‘우먼 파워’를 예고했다. 嚴惠淵(37·행시 30회)·金銀姬(34·행시 30회)·徐裕美(34·행시 31회)·朴春蘭 서기관(33·행시 33회)이 주인공으로 남자 동기생들을 제치기도 했다. 嚴 서기관은 이화여대 법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金 서기관은 전남대 영문과,徐 서기관은 서울대 가정과,최연소인 朴 서기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각각 나왔다. 현재 교육부의 무보직 서기관급 24명 가운데 여성은 5명으로 21%를 차지하고 있다.그러나 여성 사무관은 전체 80명의 11%인 9명에 불과하다.본부의 총정원은 480명이며 이 중 여성은 20%인 97명이다. 교육부 여성 서기관 승진 1호의 기록은 지난해 5월 승진한 姜永順씨(36·행시 29회·국외연수)가 가지고 있다.이어 지난 1월 李桂英씨(39·행시 27회)가 2호로 승진했다.하지만 아직까지 보직과장은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과장급으로는 지난 6월 공개채용을 통해 발탁한 南承希 여성교육정책담당관(45·명지전문대 부교수)이 유일하다.
  • 에콰도르 새 대통령 마우아드 후보 당선/7개 TV 출구조사

    【키토 AP DPA 연합】 12일 실시된 남미 에콰도르의 대통령선거에서 부패 척결과 정치혼란 종식을 공약한 기민당 소속의 하밀 마우아드 키토 시장(48)이 당선된 것으로 출구조사 결과 밝혀졌다. 7개 TV 방송사가 후원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하버드대학 출신의 마우아드 후보가 53.6%의 지지율을 얻은데 비해 바나나 재배업자로 에콰도르 최고갑부인 알바로 노보아 후보(48)는 46.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오차한계가 1.6% 포인트인 이 조사는 종전의 선거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었다.
  • “수출 늘려 일자리 창출”/DJ의 무역觀

    ◎고부가가치 중심 구조개편/수출경쟁력은 기술 개발로/근로자는 품질관리가 생명/은행이 수출지원 앞장서야 金大中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 ‘재경통’이었다.시장경제와 정경유착 반대 등 경제에 관한 소신과 철학이 뚜렷했다.지금도 그 기조에 변함이 없다.84∼85년 미 하버드대에서 초청연구원으로 연구생활을 한 경험을 살려 86년에 펴낸 ‘대중경제론’과 97년 수정해서 펴낸 ‘대중참여 경제론’에는 金대통령의 이같은 경제철학이 담겨 있다. 金대통령은 전에도 그랬지만 당선 직후 수출을 유난히 강조해 왔다.예전에도 물론 수출은 중요했다.하지만 지금은 국제통화기금(IMF)시대다.수출은 더 중요하다.환란(換亂)에서 벗어나려면 달러를 끌어들여 빚을 빨리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이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자고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잘못하다가는 올해 말 실업자는 200만명에 이른다.실업자를 줄이려면 실업수당 지급과 같은 실업대책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수출을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는 길 뿐이다. 金대통령은 지난 해 말 대통령 당선 이후 수출의 중요성을 널리 ‘전도’해 왔다.“미운 사람도 고운 사람도 없다.해외에서 달러를 많이 벌어오면 돈도 벌고 애국자도 된다”.지난 2월6일 30대 그룹 회장들과 만나 한 얘기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인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수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달 말 ‘인촌(仁村)강좌’에서는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인을 업고 다니겠다”는 말로 수출독려를 대신했다.지난 해 말 대선을 앞두고 무역수지 흑자와 과감한 경제체질 개선으로 1년6개월 안에 IMF 관리체제를 극복하겠다는 공약(公約)도 제시했다. 저서 ‘대중참여 경제론’에서 金대통령은 수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기술개발을 강조했다.“산업구조가 고(高) 부가가치 분야 중심으로 개편돼야 하고 그러자면 기술개발이 필요하다.언제까지나 낡은 기술로 싸구려 물건을 만들어 봐야 국제수지 적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게 요지다. 부동산투기를 막아 과학기술 인력이 투기꾼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대우를받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대통령은 역설했다. 또 근로자들이 품질관리에 헌신하도록 새로운 노동정책 방향도 제시했다.고급기술이 있어도 근로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생산해야 좋은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출에 최대의 걸림돌은 금융쪽이다.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고 수출기업들에 자금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수출이 원활히 되지 않기 때문이다.은행들은 수입신용장(L/C) 개설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 金대통령이 지난달 말 李揆成 재정경제부장관으로부터 국정과제를 보고받고 “은행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질타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메카로 가는길’은 아직 공사중?/孫靜淑 기자(객석에서)

    ◎쏟아지는 대사 쫓아가기 급급… 완성도 ‘미흡’ 예술가 소설이란 것이 있다. 예술가 내면풍경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거친대로 요약되겠다. 성좌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메카로 가는 길’의 원작도 그런 유형. ‘메카…’는 그래서 ‘예술가 연극’이라 부름직하다. 작품 뼈대인물인 헬렌이 예술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속에 들끓고 있는 것은 예술적 욕망의 한 갈래다. 20여년째 남아프리카 외진 마을 카루에 사는 그는 남편이 죽고부턴 교회며 이웃을 다 끊은채 램프와 거울로 거실을 도배해놓고 조각품 만들기만을 업으로 칩거해 왔다. 예술적 욕망이란 자기에게 절실한 무언가를 아름답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골자일 것. 자기만의 문제기에 실생활엔 무익하기 쉽고,남들이 상서롭지 않게 여기기에 안으로 억압되었기 십상이다. 때문에 예술가 문학은 부지중 상식사회와 돌출인물의 충돌을 낳게 된다. 헬렌 역시 카루 일상인들에게 몰이해 받고 있다. 젊은 개혁주의자인 엘사 정도가 친구다. 아무리 ‘튀는’ 교구민도 신의 양으로 받아들여야하는 목사마리우스는 헬렌 스스로 양로원에 걸어들어가게 만들어 이 작은 불순 공간을 폐쇄하려고까지 한다. 혼자 동떨어진 헬렌의 속앓이가 일반인에게 무슨 관계인가. 왜 그 앓는 소리를 들으러 연극까지 봐야할까. 그건 예술가의 욕망이 실은 일상인의 은폐된 욕망을 반사할지 모르며 별일 없는듯 하지만 알고보면 가식투성이인 사회에 균열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밀폐된 내면은 구경꾼들이 엿보고 교감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 있는 파장이 생긴다. 스스로를 감추는 예술적 욕망의 속성과 열린 대화로만 일궈지는 공감의 공간은 그래서 늘 ‘예술가 예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작품의 생기가 달라진다. 그럼 ‘메카…’는 생기띈 예술가 연극일까. 메시지는 무게있게 던져지고 있다. 헬렌 역의 전경자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배우들은 다들 문학전공의 선생 출신. 연기가 좀 어설퍼도 자기 대사의 의미는 뚜렷이 알고 있을 이들이다. 하지만 연극이란 대사를 공간화하는 작업. 헬렌이 기성사회를 대변하는 마리우스 목사에게 강하게 반발하며 엘사에게 집안 촛불을 모두 켜도록 시키는 대목을 보자. 촛불이 하나씩 켜짐에 따라 어둠속에 은폐됐던 헬렌의 분신같은 공간(거실)이 확 떠올라 관객이 오가는 대사로만 짐작하던 헬렌의 ‘메카’를 눈으로 확인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무대가 어스름한 조명아래 처음부터 낱낱이 드러나 있었기에 이런 효과는 원천봉쇄됐다. 두시간 반동안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는 ‘참을 수 없는 대사의 무거움’만 넘칠뿐 이것을 무대위에 축조하는 ‘연극성’이 빠져 있다. ‘메카…’는 아직 다 익은 연극이 아니다. 부화중인 작품을 대중들의 대학로에 내거는건 무리다. 8월2일까지 성좌소극장. 745­3966.
  • 金 대통령 인촌강좌 특강­강의 전문

    ◎“민족의 저력으로 IMF 극복 자신”/올해 고생하면 내년부터 좋아질것/민주주의·시장경제 투명하게 시행/“정경유착·관치금융 뿌리 뽑겠다” 우리 모두 존경하는 인촌(仁村) 金性洙 선생의 기념관에서 강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한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저명한 이 대학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의하는 것이 기쁩니다. 고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좋은 길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명예박사학위를 준 것은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이 잘 될 것을 알고 그런 것 같습니다.‘아전인수’라는 말을 저럴 때 쓰는구나 하고 생각도 하실 것입니다.경제를 잘 알고 운용하는 데 앞장 서 반드시 성공해 고대에서 학위를 준 뜻에 보답하겠습니다. ▷민족의 저력 강조◁ 우리민족의 저력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동아시아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동아시아를 보면 티벳 몽고 만주 등 전부 중국인데 조그만한 혹같이 붙어있는 게 한국입니다.다른 곳은 중국화됐지만 우리나라는그렇지 않고 남아있습니다.몽고는 중국을 100여년 지배했고 만주족도 1632년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대륙을 270년 동안 통치했지만 그 뒤에는 씨도 없어졌습니다.우리나라는 2000년 동안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면에서 영향을 받고 속국도 되고 조공도 바쳤는 데 왜 속국이 안됐습니까.그 이유가 있습니다.몽고나 만주가 흔적도 없어진 것은 중국의 고급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동화했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재창조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대표적인 고승인 원효가 해동 불교를 일으키는 등 독특한 불교의 경지를 개척했습니다.석굴암·불국사·불교미술·건축 등 전부 한국적인 특색이 있습니다.유교도 그렇습니다.고려 말부터 우리나라 학문을 지배하게 된 성리학도 우리는 조선화했습니다.조선시대의 대학자인 퇴계선생과 율곡선생은 성리학을 우리 여건에 맞게 발전시켰습니다.퇴계선생의 성리학에 대한 학문세계는 세계에 널리 퍼져있습니다.성균관 중심으로 매년 20개국에서 모여서 연구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동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조상들에 대해 경탄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러한 게 우리에게 큰 저력이 돼서 현재 한반도에 7,0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음식·말·의복 모든 것이 독특한 한국적인 문화 민족입니다. 저력의 두번째는 교육열입니다.우리나라와 같은 교육열을 가진 민족은 유대민족입니다.유대민족은 정말로 지독합니다.공부잘하면 돈을 주고 음악을 잘해도 지원해 주는 게 유대민족입니다.부모님들이 공부 못하는 자녀를 때리는 게 유대민족입니다.하버드대학은 유대인으로 넘칩니다.이 대학에는 수를 제한할 정도로 한국인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습니다.상민들은 과거를 볼수도 없었지만 공부를 했습니다.과거시험은 못치르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내 세상은 못살지만 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지금도 그렇지만 6·25 전쟁중에서도 논밭 팔고 소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험한 일을 한 여성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교육열은 한해 두해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우수한 인적 자원을 만들어낸 토대가 됐던 것입니다.조상들에게 감사합니다.지금은 지식의 시대입니다.이러한 교육열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21세기엔 정보가 중요 저항의식도 중요합니다.고려시대 몽고가 침략했을 때에도 삼별초가 망할 때까지 40년간 싸웠습니다.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몽고나 만주족이 중국에서는 직할통치를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실질적인 독립을 줬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일제시대를 보면 우리 민족의 저항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만주 시베리아 대륙으로 가서 40년간 무장투쟁을 했습니다.식민생활 전 기간중 무장투쟁을 한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를 만든 뒤에도 계속 싸웠습니다.이것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입니다.공산주의와 싸워서 격퇴한 이유도 이런 것입니다. 한(恨)은 한국 사람의 특별한 정서입니다.한은 민중,국민들이 좌절된 소망을 안고 이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심정입니다.어떻게든 잘 살아보자,나는 못살아도 자식들은 잘 살게 하자는 게 이러한 것입니다.우리의 명당은 현세에서 잘 살겠다는 것입니다.내세는 없습니다.민족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춘향이의 한은 이도령과 사는 것입니다.춘향은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한국인은 이러한 한의 정서를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심청이는 옥황상제가 살려서 황후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아버지 눈을 뜨는 것을 보고서야 한이 풀렸습니다.한의 정신은 국제통화기금(IMF)도 극복하고 분단도 극복해 선진국가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특색입니다. ▷민족의 장래◁ 다음은 우리 민족의 내일에 대해 말하겠습니다.21세기에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20세기는 조직적이고 단합된 일사분란한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우리나라는이러한 능력은 부족합니다.자본 노동력 자원 등을 손에 쥘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하지만 21세기는 정보 두뇌 등이 중요합니다.미국의 빌 게이츠를 최근에 만났는데 그는 미국 사람이지만 키도 크지 않았습니다.얼굴도 대단이 특색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두뇌로 재산이 500억달러가 넘는 부자가 됐습니다.그는 정보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구는 2억5,000만명입니다.만약 룩셈부르크에 빌 게이츠같은 사람이 10명만 있으면 미국보다 우수할 수가 있습니다.21세기에는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야 됩니다.이런 점에서 우리는 21세기가 20세기보다 유리합니다.문화민족이고 교육민족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력을 다해서 소질을 개발해야 합니다.현재 국내에는 대학도 많고 학생도 많지만 대학수준은 세계와 너무 벌어져 있고 또 큰 성과도 없습니다.교육이 입시위주여서 창의력 발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반드시 교육개혁을 해서 21세기에 적응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그래야 선진대열에 당당히 나갈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켜야 합니다.제대로 했더라면 IMF도 없었을 것입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니까 권력과 경제가 결탁됐던 것입니다. 국민들이 유리창속을 보듯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투명하게 이뤄지고 기업들도 경쟁을 통해 돈벌려고 전력을 다했더라면 IMF사태는 없었을 것입니다.정부가 은행의 주식을 한주도 갖지 않고 있으면서 은행장을 임명하고 한보그룹에 억지로 대출해 부실 대출을 늘린 게 과거 정부였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됐다면 국민이 지금처럼 수 십조원의 부담을 지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는 게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없애는 길입니다. 국민정부에서 기업인들의 활동은 자유롭습니다.정부는 어떠한 간섭이나 지배도 하지 않고 위협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정부에 잘못 보이면 지장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30대 재벌 회장들에게도 말했었습니다. 재벌회장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열심히일해서 이익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적자를 내면 은행도 망하고 국민의 부담이 늘기 때문입니다.흑자를 내서 세금내는 게 애국자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수출을 많이 하면 애국자고 그렇게 하면 대통령은 재벌회장들을 업고 다니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정치인에게 과거 정부처럼 자금을 줄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주고 싶으면 법대로 하도록 했습니다.야당에게 줘도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투명하게 할 것입니다. 정치가 경제와 유착하거나 은행을 좌지우지하면 나라가 망합니다.우리 경제를 세계 경제 수준에 올리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결심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남북문제◁ 남북문제도 중요합니다.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을 해나가야 합니다.통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평화를 이루고 협력해서 사는 게 필요합니다.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무력도발 불용과 북한 흡수통일 배제,교류와 협력 등 대북(對北) 3대 원칙을 밝혔습니다.미국을 방문해서도 밝혔습니다.대만의 수 천개 기업은 중국에 합작 진출해 서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무력도발은 용납 못해 현대그룹이 소끌고 간 것은 교류와 협력이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입니다.鄭周永 명예회장은 세계에서 나보다 더 유명합니다.금강산개발도 잘되기를 바랍니다.무력도발이나 남한을 전복하려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음지 구석구석에 있는 악한 것을 죽이는 것도 햇볕입니다.확고한 자세로 안보태세를 갖추고 한편으로는 동족의 입장에서 화해를 하고 북한도 잘되도록 유도하겠습니다.통일은 좀 늦더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게 필요합니다. 경제를 다시 발전시키는 것은 세계로 가는 중요한 조건입니다.인내심과 성의,확고한 결의를 갖고 남북문제에 대처할 것입니다.완전히 장담하지는 않지만 3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난 극복과 국민에 대한 당부◁ 경제난 극복에 대해서는 바르게 가고 있습니다.가용 외환 보유고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에는 38억7,000만달러였지만 지금은 369억달러입니다.올해 무역수지 흑자는 4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다시는 외환위기가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금융개혁·기업개혁·공기업개혁·노동의 유연성을 반드시 해야합니다.정부가 앞장서서 공기업개혁을 할 것입니다.가장 중요한 게 은행입니다.그래서 은행을 개혁하고 있습니다.은행들은 부실한 기업은 상대하지 않을 것입니다.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은행을 간섭하고 지도할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정부가 앞장서서 개혁 모범을 보이겠습니다.국민들도 올해는 피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금모으기 운동은 1∼2개월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꾸준히 해야 합니다.맨날 금만 낸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지나면 해이해지는 것은 없어야 국난을 국복할 수 있습니다. ○4대 개혁 반드시 추진 국민들은 최대한 개혁에 협력해 경제와 개혁이 잘되도록 해야합니다.절약도 하고 사회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올해는 고생하겠지만 내년부터는 좋아질 것입니다.내년 후반부터는 이 나라가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IMF관리에서 벗어나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내후년부터는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태평양의 기적을 국민들과 합심해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내일의 희망된 개혁을 가져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고통도 분담하면 성과도 분담한다는 원칙을 지키겠습니다.소신을 갖고 반드시 국민들이 이 나라 장래에 희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교수들이 꾸민 ‘메카로 가는 길’

    대학로에 교수들이 모여들었다.방송통신대나 문예진흥원쪽으로가 아니다.뚜벅뚜벅 연극무대로 걸어 올라왔다.독립극장의 ‘메카로 가는 길’.여기서 교수들은 연출,번역은 물론,파격적으로 배우까지 꿰찼다.7월2일부터 8월2일까지 서울 성좌소극장. ‘메카로 가는 길’은 남아공 작가 아돌 후가드 원작.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를 휴직하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과 한국어교육 겸임교수로 재직중인 전경자씨는 92년 이 작품 초연때도 무대에 섰다.하지만 성이 풀리질 않았다.자신을 매료한 깊이에 비겨볼때 빚갚음이 못되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여름방학을 통째 헐어 지인들을 모아 98년판을 짜게 됐다. ‘메카’란 자기만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말.남편이 죽자 속세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을 메카로 여기며 칩거한 헬렌.엘사는 그녀의 유일한 벗이지만 너무 젊고 발랄해 둘은 곧잘 어긋난다.나름대로 헬렌을 포용한다는 목사 마리우스도 끼어든다.헬렌을 놓고 둘이 벌이는 섬세하고도 격렬한 정신의 줄다리기가 부조되며 현대산업사회에서 자유의지,인간의 참모습을 묻는 작품. 번역과 헬렌역을 맡은 전씨는 제작비도 지원했다.엘사엔 공연예술아카데미 예수정 교수,마리우스엔 순천향대 영문과 이현우 교수가 나서며 연출은 상명대 연극학과 박철완 교수.화∼목 하오 7시30분,금∼일 하오 3시30분·7시30분.540­4629.
  • 재계 구조조정 결의/전경련,오늘 회장단 간담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하오 6시30분 서울 힐튼호텔에서 金宇中 회장 주재로 임시 회장단 간담회를 갖는다. 지난 17일 金大中 대통령과 경제 6단체장들의 오찬모임 내용을 설명하고 재계가 구조조정에 적극 나설 것을 결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참여대상 그룹중 삼성과 현대그룹의 총수는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李健熙 회장은 루덴스타인 하버드대 총장 부부와의 승지원 만찬이 전부터 예정돼 있어 姜晉求 삼성전기 회장이 대신 참석한다고 삼성측은 밝혔다.
  • “백년대계 우리 손에…”/교육부에 박사 공무원 수두룩

    ◎본부에 22명… 13명이 해외유학파/교육청 등 산하기관에도 19명 포진 ‘박사 공무원 파이팅’ 박사학위를 가진 공무원들이 우리나라의 교육행정을 주무르며 교육의 백년대계를 그리고 있다. 교육부 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박사 공무원은 모두 22명.시·도교육청이나 국립대학 등 산하기관에도 19명이 포진하고 있다. 주사급이 차관급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다.그러나 주류는 서기관급.본부의 22명을 직급별로 보면 차관 1명,관리관 2명,이사관 2명,부이사관 5명,서기관8명,사무관 2명,주사 1명,장학관 1명 등이다. 趙宣濟 교육부 차관이 본부의 맏형격이며,金成東 기획관리실장,金容炫 평생교육국장,金京會 공보관,徐南洙 교육정책기획관이 맥(脈)을 잇고 있다. 산하기관에는 李元雨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비롯,金榮桓 국립특수교육원장,李成一 강원도 부교육감,鄭奇彦 충북대 사무국장 등이 있다. 행정학 철학 교육학 정치학 경제학 컴퓨터공학 교육공학 경영학 문학 법학공학 등 전공도 다양하다. 특히 대학을 총괄하는 학술연구지원국의 세 과장은 모두박사이다.高用 학술연구지원,郭昌信 대학지원,金華鎭 대학제도과장이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똑같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이들은 대학도 서울대 동문이다. 본부의 박사 공무원들은 국외파가 13명으로 국내파의 9명 보다 우세하다.국외파 가운데 5명은 아이오와대에서 동문수학했다.최근 발령을 받은 南承希 여성교육정책담당관도 박사 대열에 합류했다. 金光祚 학교정책총괄과장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학술연구지원과의 행정주사로 있는 孫允宣씨는 단국대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 더러는 대학에 시간강사로도 출강한다.공무원이 본업이라면 교수는 부업인 셈이다.
  • 메트 韓國室/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뉴욕,아니 미국의 자랑이다.대영박물관,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곳의 소장품은 총 200만점.약탈 문화재가 많은 유럽의 박물관과 달리 구입품과 기증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깍쟁이로 이름 높은 뉴요커(뉴욕시민)가 ‘메트’로 부르는 이 박물관에 쏟은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뉴욕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곳을 꼭 찾는다.그래서 한해 관람객이 550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메트에서 한국인들은 착잡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우리 귀중한 문화재가 2층 복도 난간에 초라하게 전시된 탓이다.어엿한 독립 전시실을 갖추고 제 대접을 받는 일본과 중국 유물을 보고 난 후엔 못난 후손의 부끄러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7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독립된 한국전시실(약 48평 규모)이 문을 열므로써 그 부끄러움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마침 미국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문화외교를 펼쳤다.필립 몬테벨로 관장이 말했듯이,메트 한국실은 앞으로 “한국만의 독창적인 예술적 성취를 서구 사회에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메트의 한국실 개관 기념전시회에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비롯 한국이 대여한 120여점과 메트 소장 한국유물 20점이 선보이고 있다.이 전시회는 오는 99년 1월말까지 계속된다. 앞으로 메트 한국실이 미국내 공공박물관과 공동으로 한국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회를 마련해 순회전시회를 갖는다면 더욱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미국 16개 도시 18개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는 1만5천점 정도로 추산된다.미네소타 박물관과 피바디 박물관에 각각 5000여점,스미소니언 박물관에 3300여점이 있다.보스턴 박물관,하버드대학 포그박물관 등은 수장량은 많지 않지만 질적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트 소장 한국유물(약 200점)은 도자기(130여점)에 치중해 있으므로 미국내 다른 박물관과 연계해 특별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개관 기념전을 그렇게 마련했더라면 더욱 뜻 깊었을 것이다.그런 전시회에 보완해야 할 유물이 있어 국내 소장품을 보내야 한다면 우리문화계 인사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내정 高洪株씨

    ◎5·16때 망명자 아들 美 인권책임자 됐다/한국계 첫 예일법대 교수… 국제법 권위자/주미공사 지낸 부친 고광림씨 60년 망명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한국인 정치 망명자’의 아들이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자리에 오른다. 워싱턴 포스터는 3일 한국계 2세인 高洪株(44·미국명 해럴드 고) 예일대법대 교수가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상원에서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임명되면 한국출신으로는 사실상 최고위의 미 공무원이 되는 셈이다. 82년 조지 워싱턴대를 시작으로 85년에는 예일대로 자리를 옮겼고 90년에는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정교수가 됐다.뉴헤이븐학파를 이끄는 국제법의 권위자로 국제인권연구소 소장직도 겸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하버드와 영국 옥스퍼드를 거쳐 하버드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법관 해리 블랙먼의 서기로도 일했던 그가 인권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高光林씨(89년 작고)는 60년 당시 주미 대사관 공사였다.5·16이 발발하자 공무원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다. 가족들은 이국생활이 어려웠지만 학업에는 유달리 집념을 보였다.아버지 高씨와 어머니 全惠星씨(69) 그리고 4남2녀가 받은 박사학위만 무려 12개.형제들이 하나같이 하버드,예일,MIT 등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장녀 慶信씨는 서울의 중앙대 화학과,장남 京株씨는 보스턴 의대,차남 東株씨는 MIT 의대에서 교수로 있고 3남인 그와 차녀인 慶恩씨는 예일대 법대에서 남매교수로 일하고 있다.4남 定株씨는 화가로 작품활동과 함께 저술도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인권단체들은 그의 발탁에 대해 “정치적 이유가 아닌 원칙에 따라 인권정책을 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반기고 있다.
  • 金容沃씨 한의사 은퇴/사회활동 중단 美 유학

    철학교수에서 한의사로 변신한 金容沃 전 고려대교수(50)가 96년부터 운영해 오던 도올한의원을 이달말 폐업하고 오는 8월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서울대 천연물 과학연구소와 중앙대 의대,용인대 유도학과 강의도 이번 학기로 모두 마친다. 金씨는 “연구와 저작 활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모든 사회활동을 중단한다”면서 “앞으로 4년동안 하버드 의대 신경생리학과에서 동양의학의 침술을 서양의학에 접목하는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美,획기적 방광암 치료법 개발/하버드 의대

    ◎개 실험서 95% 회복 확인/세포 배양해 방광 만들어… 2년내 임상실험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 UPI 연합】 개의 방광에서 떼어낸 세포를 배양해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새 방광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다음 이를 방광을절제한 개에 이식하는데 성공했다고 미 하버드대학 의대 연구팀이 1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을 이끈 앤서니 아탈라 박사는 이날 미국비뇨기학회 연례회의에서 여러 마리의 개에 이식된 인조방광은 모두 이식 4∼6주 안에 원래의 방광과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아탈라 박사는 이 인조방광은 이식 후 정상적 혈관과 신경이 다시 자라났다고 밝히고 앞으로 2년 안에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방광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방광을 절제한 방광암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탈라 박사는 개의 방광에서 세포를 소량 채취해 이를 시험관에서 증식시킨 다음 원래의 방광과 모양과 크기가 똑같게 만든 중합체 모형(重合體 模型)에 배양된 방광세포를 실어 새 방광으로 자라게 했다. 이처럼 세포공학적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방광은 개에 이식된 뒤 거의 즉각적으로 자연방광의 80%까지 기능을 발휘했으며 4∼6주 뒤에는 방광기능을 95%까지 회복했다.이러한 기능은 이식 후 1년 뒤까지 지속됐다.아탈라 박사는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방광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금세기말 전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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