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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강경파, 평화협상 판깨기?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평화 협상이 시작부터 암초에 걸렸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휴전에 합의한 지 사흘만에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세력들이 가자지구 이스라엘 정착촌을 박격포로 공격함에 따라 저항세력 통제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아바스 수반은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 보안군과 경찰 최고책임자 등 보안 수뇌부를 전격 해임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세력들이 이날 가자지구 남서부 이스라엘 정착촌에 수십 차례 박격포 공격을 가한 뒤 나온 것이다. 하마스 등은 전날 2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숨졌으며, 이번 공격은 이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사상자는 없었다. 아바스는 이날 가자지구를 전격 방문, 무장단체들에 대해 강력한 휴전 준수 의지를 전달했다. 앞서 그는 파타운동 중앙위를 소집, 대책을 논의한 뒤 자치정부 산하 치안부대에 비상조치를 내렸다. 파타운동 중앙위는 자치정부의 테러공격 억제능력을 시험하고 자치정부의 국제적 합의를 무산시키려는 무장단체들의 행동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팔, 무장단체 저항중단 설득키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계자들은 9일 이번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 지도부에 곧 특사를 보내 평화정착에 협력하도록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군에 대해 치명적인 공격을 감행해온 하마스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헤즈볼라를 설득, 견인하지 않고서는 모처럼 조성된 화해 기류를 지속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치정부로서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지원을 약속한 3억 5000만달러를 여러 개혁 조치에 활용하기 위해서도 무장단체들의 설득이 긴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사로는 아바스 수반의 총리 시절 내각장관으로 호흡을 맞춘 압델파타 하마옐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 등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하마스의 무시르 알 마스리 대변인은 “아바스의 선언은 자치정부의 입장일 뿐 팔레스타인 운동단체들의 입장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레바논의 하마스 지도자 오사마 함단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모두 석방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공격을 중단해야만 휴전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 골치아픈 상대는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파타운동 산하 무장단체 알 아크샤 순교여단이다. 알 아크샤 역시 이번 합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 단체는 하마스와 달리 복잡다단한 무장단체들의 결합체로 일부는 헤즈볼라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어 통제가 쉽지 않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팔 정상 1주일내 후속 회담

    8일(현지시간) 열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이 4년여에 걸친 유혈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 속에 중동평화 무드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죽음과 고통을 초래한 폭력을 종식시키는 데 합의해 평화절차가 재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급 후속회담이 1주일 안에 다시 열릴 것”이라고 밝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기대를 부풀렸다. ●유혈분쟁 종식 선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집트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공격 중지와 평화회담 재개 합의를 공식 선언했다. 두 정상은 아울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500명을 즉각,400명은 추후 석방하기로 하고, 석방 수감자와 수배 해제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위원회와 요르단강 서안 5개 도시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 및 치안 이양을 논의하는 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또 샤론 총리와 아바스 수반은 각각 자신의 농장 방문과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 방문을 초청, 서로 상대방의 수락을 받아냈다. ●후속조치 착수 정상급 후속회담에서는 휴전 합의를 확고히 하고 두 공동위원회 구성을 위한 실무적인 논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샤스 장관은 분명히 했다. 특히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행 제한을 없애고 검문소 몇 군데를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스라엘군도 이를 확인했다. 요르단 정부도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지난 2000년 9월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봉기) 발발 이후 공석이었던 주 이스라엘 대사를 새로 내정해 아그레망을 요청했다. ●난민 귀환 등 난제 수두룩 과거 양측은 10차례의 휴전 합의를 위반한 전력이 있다. 각국이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상호 공격중단을 선언한 지 이틀 만인 10일 아침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가자지구 남부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30여발의 박격포탄과 로켓포탄을 퍼부어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 내각장관과 도브 와이스 이스라엘 총리 비서실장간의 실무회담이 이틀이상 연기됐다. 독립국 출범을 위해 2008년까지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서 철수시키는 문제가 가장 민감한 내용이 될 것 같다.6일전쟁 이후 생긴 4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과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의 영토 반환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약속을 받아내는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이 꾸준히 요구해온 하마스 등 무장단체의 제도권 수렴을 통해 이스라엘에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바스, 무장단체에 상호휴전 제의

    이스라엘이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고 팔레스타인과의 접촉 중단을 선언하자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15일(현지시간) 공식 취임과 동시에 무장단체들과의 대화에 나섰다. 그러나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무장단체들은 아바스 수반이 제안한 이스라엘 휴전안을 즉각 거부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이스라엘군에 무장단체의 공격에 맞서 제한없이 군사작전의 강도를 높이라고 명령, 자치정부 수반 선거를 계기로 고조되던 중동평화 분위기가 다시 냉랭해졌다. 아바스 수반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이스라엘 점령군이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한 폭력에 모두 반대한다.”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상호 휴전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중동평화 로드맵을 지지하며 가급적 빨리 이스라엘과 대화할 방침임을 거듭 천명했다. 하마스는 휴전과 관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침공을 종식한 뒤에나 검토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슬람지하드도 “무장저항은 점령지역 주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살인을 방지하기 위한 주요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다만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16일 가자지구에서 아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 내 모든 무장단체들과 만날 것”이라고 말해, 무장단체 및 이스라엘과 대화재개의 여지를 남겼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아바스에게 무장단체들을 장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접촉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현실을 무시한 조급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이와 관련, 이집트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15일 론 프로서 외무부 국장을 카이로에 특사로 파견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한편 아바스 수반은 이날 퇴임하는 아메드 쿠레이 총리에게 조각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해 그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이·팔 화해무드 ‘찬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자치정부 수반 선거 당선 이후 높아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화해 분위기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팔간 무력충돌이 재발한 데 이어 13일 밤에는 아바스 당선 이후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은 13일 밤 11시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이의 카르니 국경 통과소에 자살폭탄 공격을 가해 자폭 대원 3명과 이스라엘인 6명 등 최소 9명이 숨졌다고 이스라엘 공영TV가 보도했다. 이날 공격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중지를 요구한 아바스 당선자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공격 직후 아바스가 이끄는 파타운동 산하 무장조직 알 아크사 순교자여단과 하마스, 대중저항위원회 등 3개 무장단체가 공동 책임을 주장하고 나서 아바스의 지도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아바스는 무엇보다 하마스 등 다른 무장세력들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이 이끄는 알 아크사 순교자여단마저 통제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스라엘은 자폭공격 직후 헬리콥터를 동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팔레스타인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즉각 논평하지 않았다. 아바스 당선자는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주요 무장단체들을 상대로 이스라엘에 대한 휴전 선언을 설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다. 아바스는 이달 말 카이로에서 무장세력 대표들과 회동, 다시 한번 설득에 나선다. 한편 이스라엘은 올여름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철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은 이스라엘군이 자진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것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최근 공격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이- 팔 무력충돌 재발

    |라말라 AFP 연합|12일 팔레스타인 수반 선거 이후 처음으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이스라엘 군의 충돌로 사상자가 발생해 향후 평화 정착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이날 충돌로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4명과 이스라엘 정착민 1명이 숨졌다. 정착민과 이슬람 지하드 소속 무장 대원 2명은 가자 남부의 모라그에서 숨졌고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2명은 서안의 라말라 근처에서 이스라엘 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에서 수배중이던 하마스 조직원 2명을 사살했다고 군 대변인이 밝혔다. 앞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전날 로켓포와 박격포를 동원해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이스라엘군이 밤새 마을로 들이닥쳐 통행금지를 선포했으며 이후 이들이 포위한 집에서 총소리가 들렸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은 또 요르단강 서안의 다른 지역에서 7명의 무장조직원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서는 12일 이스라엘 군용 지프가 모라그 유대인 정착촌 근처에서 폭발했다고 팔레스타인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이 폭발로 민간인 1명이 숨지고 이스라엘 병사 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는 이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조직원 2명을 사살한 데 따른 보복이라고 덧붙였다.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인 마흐무드 자하르는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당선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중단을 지시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 이·팔 평화협상 새장 열리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9일 자치정부 2기를 이끌 수반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돼 중동평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빠른 시일 내에 아바스 당선자와 만날 계획이라고 밝혀 4년째 중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상은 본격 재개될 전망이다. 또 아바스의 당선은 40년간 유혈투쟁과 혼돈으로 얼룩진 중동 역사를 새로 쓰게 될 수도 있는 분수령이란 지적이다. 협상의 한 ‘축’인 미국도 아바스의 당선을 적극 환영했다.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바스가 중동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아바스 당선자는 최종 개표 결과 62.3%의 지지를 얻어 20%에 그친 무스타파 바르구티를 42%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다른 후보들은 5% 미만의 득표에 그쳤다. 투표율도 70%를 상회, 그가 내세운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 정책도 정통성을 갖게 됐다. 아바스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주민들을 위한 안보 확보와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힌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석방, 주민들의 삶 보장,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 등을 4가지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이들 과제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타결할 역사적 기회”라고 말했으나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부총리는 “무장세력의 억제가 평화단계의 전제조건”이라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낙관론이 우세하다.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이번 선거를 보이콧했지만 아바스에게 일단 기회를 주기로 했다. 올메르트 부총리의 발언에서도 이스라엘 역시 무장단체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달 30일 구성된 이스라엘 온건 연립정부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7000명 이상의 석방안과 가자지구 철수계획안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첫 회의를 열었다. 아바스 의장과 샤론 총리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도 평화협상의 전망을 밝게 한다. 투쟁 경력이 전무한 아바스가 평화협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무장단체가 독자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샤론 총리도 가자지구 철수에 반대하는 강경파들의 예봉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폭력의 악순환이 재현되고 2기 자치정부가 단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귀환 문제는 양쪽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협상의 뇌관이다. 일각에선 평화협상의 첫걸음이 동예루살렘에서의 폭력사태로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요르단강 서안의 장벽 설치와 이스라엘 점령지의 완전 반환 등도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결국 양측이 어느 정도 양보하느냐와 이스라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의 의지가 주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압도적 득표땐 평화협상 진전 기대

    이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의 관심의 초점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의 득표율에 쏠려 있다. 아바스의 당선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지만 득표율은 노선투쟁과 반목으로 사분오열 상태인 팔레스타인의 내부 통합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진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아바스에 대해 대(對)이스라엘 무장강경 투쟁을 주장하는 하마스 등은 그를 ‘이스라엘의 꼭두각시’,‘미국의 하수인’으로 비난하면서 선거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투표율과 득표율이 낮을 경우 아바스가 당선되더라도 지도력 확립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 등 강경 반대파를 설득하고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하는 등 정국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선 팔레스타인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절대적인 지도력을 행사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전 PLO의장과 달리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바스에겐 압도적인 득표율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투표장을 취재하던 외신들은 9일 “아바스의 득표율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오랜 폭력사태에 지쳐있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빈 자리에 보다 실용적인 협상가를 선호하는 분위기란 설명이다. 아바스 의장은 선거운동기간동안 지지율이 59%까지 급상승하는 등 상승세였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팔 선거후 평화협상 재개”

    일요일인 9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지난해 11월11일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 사망한 지 2개월만이며 1996년 첫 수반선거 이후 두번째다. 현재 8명의 후보가 난립했으나 집권 ‘파타운동’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당선이 유력하다. 아바스는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주창해 왔다. 아라파트 전 수반을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아바스를 ‘협상 파트너’로 간주, 그의 당선을 지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난관에 봉착한 중동평화 협상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바스는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선거가 끝나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협상을 시작할 것이며 중동평화 ‘로드맵’을 다시 테이블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온건 노동당 등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샤론 총리측도 아바스의 제안을 환영했다. 그러나 아바스가 대이스라엘 강경투쟁을 견지하고 있는 무장단체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마스나 이슬람지하드는 아바스가 총리 시절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폈다며 선거를 보이콧했다. 다만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을 멈춘다면 아바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파타운동의 무장단체 ‘알 아크사 순교여단’도 선거 이후의 평화협상을 지켜보겠지만 총을 놓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아바스는 무장단체들에 공격 중단을 촉구하면서도 이들의 공격을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표현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아라파트의 유지를 받든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바둑판 무늬의 두건을 목에 두르기도 한다. 이스라엘에도 ‘시온주의자 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가 이틀만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의 투표까지 허용, 이번 선거를 평화협상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결코 아바스의 친구가 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 아바스가 먼저 무장단체들을 통제할 것을 촉구했다.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2002년 로드맵에 따르면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2008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출범시켜야 한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이스라엘에 빼앗긴 모든 영토의 회복과 팔레스타인 포로의 전면 석방, 이스라엘 정착촌의 완전철거 등을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은 현재 영토를 전제로 한 독립국가가 기본 조건이다. 유대인 정착촌 존폐 여부 역시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여론조사에선 아바스는 60%가 넘는 지지를 얻어 2위권과는 40% 이상의 격차를 두고 있다. 게다가 2위권 선두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7일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상징 알 아크사 사원에 예배를 보러 가다 이스라엘 경찰에 체포됐다. 이번 투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진행된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4 결산] 사라진 별들-꽃은 졌으나 그 향기는 영원하리라

    세월은 정직하다. 그 어김없는 흐름에 올해에도 각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은 가도 자취는 남는 법. 그들이 남긴 지혜와 역정은 오롯이 남아 후세의 귀감이 된다. 현실이 실타래처럼 꼬일 때마다 그들의 부재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각부 종합 ■ 국내 ●정·관계 지난 9일 한국 외교계와 야당사에 큰 획을 그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과 이민우 신민당 전 총재가 나란히 타계해 세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 전 장관은 10여년 동안 한국 외교사의 주요 현장을 지킨 ‘외교사의 산 증인’으로 65년 한·일협정을 비롯, 베트남 파병 등 외교사의 길목에서 기틀을 다졌다.1958년 4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는 6선을 거쳐 87년 신민당 총재로 정계 은퇴하기까지 정치 인생 40여년을 외곬으로 야당을 지켰다. 유도 10단으로 대한유도회장, 대한체육회 고문 등을 역임하며 남다른 체력을 자랑하던 5선 의원 출신의 신도환 전 신민당 최고위원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다. 관계 인사로는 장예준 초대 동력자원부 장관을 비롯, 79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이한빈 전 부총리,98년 한은법 개정 뒤 첫 한은 총재에 부임해 외환위기 타개를 이끌었던 전철환 전 한은 총재, 내무부와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친 뒤 노태우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홍성철씨 등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밖에 5·16 직후 군정에 반대하다 군복을 벗은 원충연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이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했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도 세상을 떠났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수사받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시절 인사·납품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 전남지사는 ‘자살’로 삶을 마감해 충격을 던졌다. ●재계 카지노의 대부로 불렸던 전낙원(77)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은 지난 11월 지병으로 타개했다. 그는 73년 국내 최초의 서울 워커힐호텔 외국인전용 카지노를 관광공사로부터 인수, 이를 기반으로 호텔과 면세점, 건설 등 관광·레저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파라다이스그룹을 일궈냈다. 대한산업그룹 창업주의 아들로 40여년간 대한전선을 중견그룹으로 키워낸 설원량(62) 대한전선 회장도 지난 3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박남규(83) 전 조양상선그룹 회장도 해체된 조양상선그룹의 재기를 보지 못하고 지난 2월26일 세상을 떴다. 또 장기하(72) 전 진로그룹회장은 9월에, 이은범(76) 전 범양사 사장은 5월에, 양회문(53) 대신증권 회장은 9월에 타개했다. ●사회·체육계 사회분야에서는 종군위안부로 고통을 겪은 김순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만년에 김 할머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머물며 종군위안부의 피해실태를 증언하고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다. 원일한 전 연세대 재단이사와 설대위 전주예수병원 원장 등 두 사람의 미국인도 눈에 띈다. 원씨는 연세대와 YMCA를 설립한 언더우드가(家)의 3세이다. 미국 이름이 데이비드 존 실인 설씨는 전쟁 고아와 버림받은 노약자를 위해 평생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체육분야에서는 1970년대 씨름왕 김성률씨와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이원우씨, 송만덕 한양대 배구감독 등이 많지 않은 나이에 부음을 알려 안타까움을 더했다.1935년 프로자격을 얻은 한국인 프로골퍼 1호로 국제대회 첫 출전과 국내대회 첫 우승 기록을 보유한 연덕춘씨도 타계했다. ●문화예술계 문화예술계에서는 우리 문학의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해온 큰 인물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져 안타까움을 남겼다. 연작시 ‘초토의 시’에서 한국전쟁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줬던 한국 시단의 원로 구상(85) 시인은 7개월여의 폐질환 투병 끝에 지난 5월11일 별세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시조 ‘다보탑’으로 친숙한 시조 시인 김상옥(84)은 부인 김정자 여사가 먼저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장례식 이틀만인 지난 10월31일 세상을 하직해 세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국민의 애송시 ‘꽃’의 시인 김춘수(82)는 기도폐색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4개월간 투병을 벌이다 지난달 29일 끝내 타계했다.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과꽃’‘꽃밭에서’등 350여편의 주옥 같은 동시를 지은 아동문학가 어효선(79)도 지난 5월15일 소천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농부 작가 전우익(79)은 지난 19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등의 저서를 통해 그가 전해준 소박한 삶의 소중함은 더욱 가치있게 다가온다. 1953년 출판사 ‘일조각’을 설립, 반세기 동안 출판 외길을 걸어온 출판계 원로 한만년 대표도 ‘한국사신론’(이기백 저),‘고가연구’(양주동 저) 등 기념비적인 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예술계에서는 6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누빈 악역 스타이자 영화배우 독고영재의 부친인 원로배우 독고성(75)이 지난 4월10일 별세했다.‘빨간 마후라’를 작곡한 작곡가 겸 평론가 황문평(85)도 800여곡의 영화·드라마 음악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다. 재즈계, 타악 연주계의 거목인 김대환(71),‘오뚜기 인생’의 가수 겸 음반제작자 김상범((66),‘곡예사의 첫사랑’을 부른 가수 박경애(50)도 올해 우리가 떠나보낸 스타들이다. ●학계 올해 학계도 훌륭한 스승을 잃었다. 사학계에서는 동양사학계의 거목 고병익(80) 박사와 연세대 황원구(74) 교수가 5∼6월 잇따라 별세했다. 실증주의사관의 확립자로 불리는 국사학계의 태두 서강대 이기백(80) 교수도 6월 타계했다. 한글학회에서도 ‘한글지킴이’ 허웅(86) 한글학회 회장이 1월26일 눈을 감았고 지난달 21일에는 KBS 라디오프로그램 ‘바른 말 고운 말’로 유명한 한글재단 한갑수(91) 이사장마저 세상을 떠났다. 진보사회과학계의 큰별 서울대 김진균(67) 교수도 2월14일 별세했다. 민족과 계급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한 김 교수는 늘상 정권의 핍박에 시달렸지만 그가 만든 산업사회연구회는 진보학술운동의 모태였다.‘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도 김 교수의 작품이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육각수이론을 창안해 ‘물박사’로 통했던 전무식(72) 박사와 한국 핵의학분야를 개척한 전 서울중앙병원장 이문호(82) 박사가 8월13일, 지난 5일 각각 별세했다. 또 전 과학기술처장관 최형섭(84) 박사도 5월29일 타계했다. 화학야금학을 공부한 최 박사는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소장, 과기처 장관을 지내면서 과학발전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을 받았다. ●종교계 올해 종교계는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세수 77)의 입적이 무엇보다 큰 뉴스였다. 지난달 30일 원적에 든 숭산 스님은 달라이 라마, 틱 낫한 등과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으며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진력해왔다.1966년 일본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40년 가까이 세계를 돌며 32개국에 120여개의 선원을 세웠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꽃)라는 가르침 속에 한국 불교 세계화에 일생을 바친 숭산 스님은 5만여 눈푸른 납자와 제자들을 뒀다. 기독교 쪽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지낸 조용술 목사가 지난달 15일 84세로 별세했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신대를 나와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재단이사장,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등을 맡으며 복음 전파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 국외 한 시대를 풍미한 지구촌의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숱한 영광과 오욕의 세월을 뒤로 하고 한줌의 흙이 됐으나 그들이 남긴 자취는 또렷하다. 올해 사라진 인물들을 되돌아본다. 야세르 아라파트(75) 35년간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을 이끈 중동의 풍운아. 이집트 태생으로 지난달 파리의 군병원에서 사망했다.59년 무장단체 ‘파타운동’을 설립했다.67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96년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 테러와 평화협상을 병행하면서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부패와 개인축재 등의 의혹에 시달렸다. 그의 사망으로 중동의 평화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로널드 레이건(93) 구두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나 B급 영화배우에서 미 40대 대통령(81∼89년)에 올랐다. 뛰어난 정치감각과 유머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이 됐다. 공급경제학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했고 우주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스타워스’를 구상,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 퇴임 이후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타계했다. 자크 데리다(74) 이성 중심의 전통적 서양철학에 반기를 든 ‘해체론’의 창시자.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두로 10월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숨졌다. 언어의 명료성과 통일성이 아니라 다극적 의미를 강조, 니체나 하이데거와 같은 ‘반(反)철학’의 후계자로 평가된다. 레이 찰스(74) 노래로 미국 내 흑백통합을 이룬 흑인 솔 음악의 거장.7살 때 시력을 잃고 15살 때 고아가 됐으나 천부적인 자질로 13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았다.‘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I can’t stop loving you)’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8월 사망했다. 말론 브랜도(80) ‘대부’의 돈 콜리오네 역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배우.‘워터프런트(50년)’와 ‘대부(73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나 두번째 상은 북미 인디언에 대한 미국의 차별정책에 항의해 거부했다.‘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51년)’,‘지옥의 묵시록(79)’ 등에서 열연했다.7월 타계. 크리스토퍼 리브(52) 가슴에 ‘S’자를 달고 붉은 망토를 걸친 불멸의 ‘슈퍼맨’.78년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슈퍼맨에 발탁된 뒤 83년까지 3차례 시리즈에 출연했다.95년 승마대회에서 목뼈가 부러져 전신이 마비됐다. 재활치료 끝에 휠체어를 타고 영화에도 출연했으나 10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장애인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했다. 에스티 로더(97) 지난 4월 타계한 미 화장품업계의 여왕. 그가 창안한 ‘공짜샘플’과 ‘고급매장’ 전략은 20세기 모든 마케팅의 표본이 됐다. 부엌에서 만든 미용크림으로 46년 에스티 로더를 창업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현재 세계 130여개국에서 50억달러어치의 화장품을 판다. 프랜시스 크릭(88) 1953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한 영국의 생물학자. 지난 8월 결장암으로 미 샌디에이고에서 숨졌다. 인간의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과정을 밝힌 공로로 62년 노벨상을 탔다. 생명공학 산업의 기초를 일궈 다윈과 멘델에 견줄 만한 과학자로 평가된다. 이밖에 할리우드의 여배우로 ‘킹콩’의 페이 레이(96)와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 ‘사이코’에서 열연한 재닛 리(77)가 8월과 10월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내전을 카메라에 담은 전설적 사진작가 앙리 브레송(96)은 8월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슬픔이여 안녕’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69)은 9월에 타계했다. 자신을 마담으로 부르도록 한 네덜란드의 여왕 줄리아나(94)는 1월에, 장징궈(蔣經國) 전 타이완 총통의 부인인 장팡량(蔣方良·88)은 지난 15일 사망했다. 1968년 북한에 피랍된 미 첩보함 푸에블로호의 함장 로이드 부커(76)는 1월에 죽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창시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66)은 이스라엘의 헬기 공격으로 숨졌다. 의약업계의 황제 잭 에커드(91)와 이탈리아 자동차 왕국 피아트의 움베르토 아그넬리(69)는 5월에 운명을 달리했다.
  • [2004 지구촌 인물] ③ 야세르 아라파트

    2004년 11월11일 중동의 큰 별이 졌다. 그러나 중동이 더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빛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별이 짐과 동시에 중동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힐 것이란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 별은 바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말한다. 지난 35년간 그가 없는 팔레스타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얘기다. 아라파트는 평생을 바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했다. 그러나 생전의 숱한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오히려 그의 죽음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평화와 테러’라는 두 얼굴을 가진 아라파트를 웅변적으로 설명해준다.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독살설이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은 테러의 측면이고, 팔레스타인이 다음달 9일 후임 자치정부 수반을 뽑기 위한 선거를 치르는 등 ‘포스트 아라파트’ 시대를 활짝 열어가고 있는 것은 평화의 측면이다. 후임 수반이 유력시되는 무하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은 잘못된 것이며 이제 팔레스타인은 무장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아라파트와의 차별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도 압바스를 중동 평화를 이뤄내는 데 적절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압바스의 당선은 곧 중동 평화협상의 본격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아라파트라고 할 수 있다. 아라파트는 분명히 죽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추구해온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이념이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슴에 신앙처럼 자리잡고 있고, 그가 내건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의 기치를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젊은 무장단체들이 답습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독립국가 건설이란 이념은 그대로 이어나가되 무력투쟁과 테러라는 그늘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지가 압바스에게 주어진 과제다. 압바스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중동 평화의 앞날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압바스는 이미 시리아와 쿠웨이트, 레바논 등을 방문, 그동안 소원했던 이들 국가와 팔레스타인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등 외곽에서부터 중동 평화를 향한 정지작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외부 여건도 호전되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에서는 리쿠드당과 노동당이 연정 구성에 나서면서 가자지구 내 정착촌 철수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음달 런던에서는 중동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아직도 아라파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력투쟁을 고집하고 있는 강경 무장단체들이 골칫거리다. 압바스가 이들 단체 지도자들을 명실상부하게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일 때, 진정으로 아라파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압바스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중동 평화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아 있는 아라파트의 잔재를 얼마나 빨리 걷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팔 무장투쟁 포기하자”

    |가자ㆍ예루살렘 AFP 연합|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무장투쟁 포기를 촉구, 지난달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 사망 이후 대(對) 이스라엘 전략이 크게 수정됐음을 보여줬다. 같은 날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압바스 의장은 이날자 범아랍권 신문인 ‘아샤르크 알 아사트’와 가진 회견에서 “봉기는 점령에 대한 민중의 반대 의사를 천명하는 합법적 권리이기 때문에 무력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며 “무장투쟁은 그동안 많은 피해를 가져왔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며 이제는 종식돼야 한다.”고 평화적 투쟁을 촉구했다. 내년 1월 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 승리가 유력시되는 압바스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노선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향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과정이 주목된다. 그는 지난 4년여간 반(反)이스라엘 봉기 과정에서 무장공격 반대 입장을 보여 왔으나 무장투쟁 포기를 이처럼 분명히 촉구하기는 처음이다. 압바스 의장의 발언은 내년 선거에서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날 무장봉기 반대 입장을 밝혔다가 팔레스타인 여론의 호된 질타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최근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모두에서 여론이 호전되면서 이런 발언이 가능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의 발언으로 무장투쟁이 종식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마스 등 무장단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즉각 압바스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압바스 의장이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강경 무장단체들을 PLO 산하로 끌어들여 통제하는데 성공하기까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투쟁이 멈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증명하듯 이·팔 유혈충돌은 아직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와 라파 등지에서는 이날 팔레스타인 경찰관 2명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했다. 라파에서는 12일에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공격으로 이스라엘군 5명이 숨졌다. 그러나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다음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를 차질없이 치르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외무부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아랍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재정착 계획을 제안했다. 한편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4일 카이로에서 미국과 함께 이집트 상품의 무관세 대미 수출을 가능케 하는 제한산업지대(QIZ) 창설 협정에 조인,1979년 양국 평화협정 체결 25년만에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중동에 부는 화해 분위기를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 이·팔 화해무드 깨지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으로 소강 상태를 보이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폭력사태가 재개돼 모처럼 해빙 국면에 접어드는가 했던 이·팔 관계에 다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反압바스 무장세력 소행 추정 옥중 출마를 선언했던 인티파다의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가 자치정부 수반 후보를 사퇴, 온건파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이에 불복하려는 일부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12일 밤 이집트와 가자지구 접경 부근의 이스라엘 검문소를 폭파, 이스라엘군 병사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고 이스라엘 방송들이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최대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파타운동 산하 무장조직인 파타 호크스는 사건 직후 자신들의 책임을 주장했다. 파타 호크스는 아라파트 수반의 ‘독살설’을 주장하며 그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원들은 이스라엘의 라파 국경검문소 바로 밑에까지 터널을 뚫고 들어가 1.5t의 폭발물을 폭파시켰다. 폭발로 부대 건물이 여러채 무너졌다. 이스라엘군은 보복에 나서 13일 새벽 전투용 헬기를 동원, 가자지구 내 군사 목표물에 8발의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고 남부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총격전을 벌였다.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유일한 외부통로인 라파 국경검문소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또 이날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 나를루스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하마스 산하 에제딘 알 카삼 여단을 이끄는 이흐산 샤와흐네흐(28)가 숨지고 이스라엘군 3명이 다쳤다. 앞서 내년 1월9일 치러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 옥중 출마를 선언했던 바르구티는 “압바스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다.”는 성명을 내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압바스 PLO 의장의 당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바르구티의 출마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최대 정파인 ‘파타운동’은 신·구파간 분열 양상을 드러냈으며 압바스를 지지하는 구파는 당의 단합을 위해 바르구티의 사퇴를 종용했다.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일 부인을 통해 출마 의사를 밝힌 바르구티는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혐의로 이스라엘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여론조사에선 압바스와 바르구티가 백중세를 이뤘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수반 선거가 치러지는 3일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시 철수한다고 13일 밝혔다. ●압바스 14년만에 쿠웨이트 방문 한편 압바스 의장은 12일 팔레스타인 지도부로는 198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처음으로 쿠웨이트를 방문, 쿠웨이트 침공을 지지한 데 대해 사과함으로써 14년간 지속된 냉각기를 청산하는 등 대선 승리를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국제플러스] 하마스 수반선거 불참 촉구

    |카이로 연합| 팔레스타인 최대의 무장저항세력 하마스가 내년 1월 9일 치러지는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1일(현지시간) 선언했다. 하마스 대변인 무쉬르 알 마스리는 이날 후보 등록 마감을 몇시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하마스 지지자들의 선거 불참을 촉구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하마스 대원과 지지자들에게 선거 불참을 공식 촉구했다. 그는 선거 불참 결정은 수반선거와 자치의회 및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라는 대중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마스가 선거기간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부인했다.
  • 압바스 팔의장 암살 모면

    내년 1월9일 실시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 최대 정파인 ‘파타운동’을 대표해 출마하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신임 의장이 14일(현지시간) 밤 방문한 가자지구내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추도식장에서 그에 반대하는 파타운동 내 무장요원과 경호원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수명이 다쳤다. 총격전은 “아부 마젠(압바스의 별명)은 안된다.”고 외치는 수십명의 무장요원들이 허공에 총을 발사하자 경호원들이 이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일어났다. ●강경·온건파 대립 격화될듯 압바스는 “슬픔을 표할 때 총을 발사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오랜 전통”이라며 이날 사건은 자신을 노린 암살 기도도 아니며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도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날 발생한 총격전을 간단히 넘기기는 힘들 것 같다. 압바스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강경 무장단체들에 내년 선거 참여를 설득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무장단체들은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위한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가능하며 자신들의 동의 없는 이스라엘과의 타협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전문가들은 이날의 총격전이 이같은 무장단체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경고로 보고 있다. 결국 총격전은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대립·투쟁이 앞으로 격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불을 지폈다. 내년 1월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과도체제의 안정이 필수적이지만 새 과도체제가 사실상의 무법상태를 통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강온파간 격렬한 내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년 선거의 성공적 실시도 자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날 총격전이 갖는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테러 근절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무장해제가 사실상 불가능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평화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테러 근절과 이를 위한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180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가자지구 내에만 100만정 정도의 개인 화기가 유포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팔 무장해제 사실상 불가능 이처럼 팔레스타인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미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오는 23일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 압바스 PLO의장과 쿠레이 총리 등 새 지도부를 만난다고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이 15일 밝혔다. 파월 장관은 22∼23일 이집트에서 열리는 이라크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예정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아라파트 독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인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가 아라파트가 독살됐다고 주장, 진위 여부를 놓고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칼리드 마샬 하마스 정치국장은 11일 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전화를 걸어 의사들이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난 2주간 아라파트의 건강 상태와 진료기록들로 볼 때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의 독극물 중독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97년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첩보원에 의해 중독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가 이스라엘이 국제 압력에 굴복해 해독제를 제공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아라파트의 독살설을 부인하고 있다.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마샬의 주장에 대해 “완전한 거짓이고 중상모략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도 아라파트 수반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독살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살설이 계속 나도는 것은 아라파트를 치료한 페르시 군병원이 아라파트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프랑스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아라파트의 사인을 밝힐 수 없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또 라말라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병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아라파트가 2주 사이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도 의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라파트가 발표하기 곤란한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아라파트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또다시 불거진 이스라엘의 아라파트 독살설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어 중동에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란 우려도 일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아라파트 사망] 이스라엘 “환영” 美·유럽 “애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에 대해 세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라파트의 삶과 아라파트 사망이 중동 평화협상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각국이 다양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슬람 국가들은 장례식에 국가원수가 참가할 예정이며, 프랑스와 영국 등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외무장관을 조문사절로 파견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몇 단계 낮은 윌리엄 번스 국무부 차관보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극단 최악의 평가는 요셉 라피드 이스라엘 법무장관에게서 나왔다. 라피드 장관은 11일 아라파트의 사망을 환영한다며 “그가 세상에 없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의 비극 중 하나는 아라파트가 이곳에서 시작된 테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세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새로운 장의 시작이 가능해졌다.”고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즉각 논평을 피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사망과 장례에 따른 소요를 우려, 이날부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봉쇄하고 병력을 증파했다. 팔레스타인은 비탄에 빠졌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선 수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아라파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공포를 쏘며 팔레스타인 국기와 아라파트의 상징인 스카프를 흔들며 행진했다. 아라파트 집무실인 라말라의 무카타에는 조기가 걸렸으며 TV는 코란 구절과 함께 아라파트 영상을 방송했다. 아라파트와 권력투쟁 관계에 놓였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도 애도를 표했고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팔레스타인 정당인 파타의 무장조직 알 아크사 여단은 복수를 선언했다. ●미국·유럽, 애도 속 평가는 엇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 채 애도를 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원하는 민주 독립국가가 건설돼 이웃 국가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아라파트 사망 발표 수시간 전 “역사는 아라파트 총리를 가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아라파트에 호의적인 평가와 깊은 애도를 표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두 국가를 인정하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40년간 팔레스타인의 국가수립 투쟁의 화신이었으며 용기와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권 ‘엄청난 손실’ 이슬람권은 아라파트의 사망을 팔레스타인에 있어 ‘엄청난 손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슬람권은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시예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버리고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많이 사는 인도네시아의 하산 위라유다 외무장관은 “아라파트는 우리 모두에게 영웅”이었다며 팔레스타인이 용기와 단결로 아라파트 사망을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아라파트 사망] 아라파트는 누구

    [아라파트 사망] 아라파트는 누구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중동지역의 역학관계를 떠받치던 한 축이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며, 실질적 지도자로서 활동하며 ‘영원한 1인자’의 자리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 반면 점령자 이스라엘에는 ‘테러집단의 선봉’이었고 중동의 현상유지를 시도하던 미국엔 예측하기 어렵고 다루기 힘든 골칫덩어리이자 ‘시한폭탄’이었다. 그러나 오랜 투쟁으로 다져진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 협상과 함께 폭력을 포기하지 않는 저돌적인 실천력, 수많은 경험에서 체득한 중동 미래에 대한 비전과 균형감각은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대립과 증오를 조정하고 완화시키는 완충 역할을 떠맡게 했다. 팔레스타인 민중을 이스라엘과의 ‘성전’을 향해 하나로 묶어 싸우게 한 것도 그였지만 하마스 등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세력의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막아온 것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의 ‘퇴장’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잡아주고 떠받치던 한 축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그를 평화의 걸림돌로 지목하면서도 사태 악화를 막는 보루로 인정해 왔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라파트는 1929년 8월2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부유한 이슬람 수니파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이로대학을 나와 쿠웨이트 등에서 토목기사로 일했지만 국토를 빼앗긴 채 유랑민 신세가 된 민족의 운명을 자각하고 해방운동에 뛰어든다. 1958년 마흐무드 압바스 등과 함께 이스라엘 투쟁단체인 파타운동을 창설하면서 해방운동의 핵심에 서기 시작했다.1960년대 들어 이스라엘이 점령 중이던 가자지구에도 침투,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던 파타운동은 1969년 아라파트에 의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로 변신했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최대기구로 자리잡게 했다. 그는 PLO 창설과 함께 의장을 맡았으며,1987년 무장 강경투쟁에서 협상전략으로 선회했다. 정규전은 물론 항공기 납치, 요인 암살, 테러 등 유혈 폭력투쟁을 벌였고 이스라엘군의 체포를 피해 인생의 대부분을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등을 떠도는 유랑자로 지내왔다.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그러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외교력으로 1974년 유엔에서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조직으로 인정받게 했다.1994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 지역의 자치를 규정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이스라엘과 합의했다. 이 공로로 그해 12월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현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마지막까지 굴곡의 연속이었다. 평화협정의 파트너인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95년 11월 극우파에 의해 살해되면서 중동의 충돌은 격화했다.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재개됐지만 무위로 끝나면서 2개월 뒤 제2차 팔레스타인 봉기가 이어졌다. 그를 ‘걸림돌’로 여긴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2001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서 연금상태를 감수해야 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아라파트 사망] 평화협상 ‘불씨’ 되살아날까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으로 꺼져가던 중동 평화협상의 불씨가 되살아날 것이란 희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독점하던 무소불위의 권력이 잠정적으로 무하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 사무총장, 아메드 쿠레이 자치정부 총리, 라우히 파투 자치의회 의장 등 세 명에게 나눠져 새 지도부가 안정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등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또 평화협상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미국의 생각도 제각각일 수 있다. ●서두르는 미국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아라파트의 사망 발표 전 “새로 생긴 중동평화 달성의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역사에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고 말했다. 재선된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고 느꼈음직하다. 미국은 12일 카이로에서 거행되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미국의 조문사절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아랍, 이스라엘 등 관련당사자들에게 ‘평화회담의 조속 재개’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에는 직접적인 자금지원 증액 등을 통해 평화협상을 독려하고, 이스라엘에는 수감된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의 이스라엘군 철수 등의 압박을 통해 평화협상 달성 분위기를 조성하려 들 것으로 추측된다. ●내부 입장 정리 필요한 팔레스타인 압바스와 쿠레이, 파투가 권력을 나눠 가진 팔레스타인 새 지도부가 아라파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 같다. 무엇보다 압바스와 쿠레이는 국민 지지가 별로다. 섣불리 평화협상에 나서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기미가 보인다면 곧바로 국민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크다. 따라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대국민 인기가 높은 젊은 무장세력들과 평화협상에 임하는 팔레스타인의 전략을 먼저 일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은 평화협상 재개보다 당분간 새 지도부의 안정에 치중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좀더 지켜보려는 샤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가 죽었다고 이스라엘이 먼저 팔레스타인에 유화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에 적극 나서야 하며, 팔레스타인의 자치권 확대 등 평화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한 양보조치를 이스라엘이 먼저 취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팔레스타인 새 지도부가 안정되지 못하면 대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카이로공항서 장례식 거행 라말라 팔 청사 안장키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0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후(死後)에 대비, 잇따라 회의를 갖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아라파트가 사망했다는 발표가 없었음에도 장례식 날짜와 장소가 먼저 결정되고 그가 묻힐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에는 불도저가 들어가는 등 아라파트 사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 유혈충돌 대비 긴급안보회의 10일 오후(현지시간) 라말라 청사에는 불도저와 땅을 파는 장비들이 동원돼 아라파트가 묻힐 장지와 애도행사를 벌써부터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도 1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기로 자치정부가 결정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프랑스 병원의 통보가 있기 전까지는 아라파트의 사망 발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장례절차와 관련해 다소 혼선을 빚었다. 앞서 이날 아침 파리에서 라말라 청사로 돌아온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오전 11시 총리를 지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의 주재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아흐메드 쿠레이 자치정부 총리와 나빌 샤스 외무장관, 각 분파별 대표가 참석했고 PLO 집행위원회와 파타 당 중앙위원회가 함께 열렸다. 의제는 ▲아라파트의 사망 발표 ▲향후 수반을 뽑는 선거일정 ▲카이로에서의 장례 절차 ▲후계구도 등으로 알려졌다. 합동회의가 끝난 뒤인 오후 1시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대중적 전선(PFLP)’ 등 분파별 모임이 이어졌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군 사령관들이 참석한 안보회의를 열어 아라파트의 장지 문제와 팔레스타인과의 유혈충돌에 대비한 군사대책을 논의했다. 논란을 부른 아라파트의 장지는 팔레스타인의 제안에 따라 라말라로 받아들였다. 미국도 이스라엘이 반대하지 않으면 라말라로 장지를 결정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측은 9일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아라파트의 장지 문제 등을 상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충격속 아라파트의 사망을 기정사실화 아라파트는 9일 밤 뇌출혈까지 겹쳐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정맥주사로 영양분을 공급받았다.10일 아라파트를 방문한 이슬람 성직자 타이시르 타미미는 아라파트가 살아있는 한 생명장치를 떼진 않겠지만 그의 운명은 ‘신의 손에’에 맡겨졌다고 말해 사망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파리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도 아라파트가 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각 분파들도 아라파트의 사망이 발표되더라도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공격적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촉구했다.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PFLP 등은 장례식이 끝난 뒤 아라파트의 애도식이 라말라 청사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라말라에 운집한 아라파트의 지지자들은 “그가 죽었다는 것은 충격이다. 발표를 기다리고 있지만 상황은 끝났다.”고 애도했다. 다른 지지자들은 그의 죽음과 관계없이 “아라파트 자체가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3년 가까이 연금생활을 한 라말라 청사 ‘무카타’는 팔레스타인의 성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TV는 아라파트의 삶과 50여년간의 투쟁 역정을 계속 내보냈으며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9일 밤부터 사원과 거리 곳곳에 모여 아라파트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가졌다. ●조포·퍼레이드 예행연습 돌입 이집트 대통령실 대변인은 “아라파트의 장례식을 카이로 국제공항 구내에서 치르는 문제를 협의했으며 장례는 공식적인 차원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말해 일반 대중의 참석은 제한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집트 관영 MENA 통신은 군악대가 퍼레이드와 조포를 쏘는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아라파트의 장례식에 고위급 대신 일반 외교사절을 보낼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조문절차를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나 각료급을 대표로 보낼 계획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누가 아라파트를 승계하든 미국은 새 지도부와 기꺼이 일할 것이며 앞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동 평화안과 관련 “로드맵에 기초한 양측의 해결방안에 미국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조문사절을 보내겠지만 자신이나 각료가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라파트의 사망이 향후 중동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팔레스타인 국가창설이 중동평화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이스라엘이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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