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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전망’ 꺼리는 재경부/金相淵 기자·경제과학팀(오늘의 눈)

    “30년 가까이 경제관료를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간부는 경기전망에 대한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내년도 전망은 둘째치고 당장 4·4분기 경기조차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같은 고민은 재경부 내의 다른 관리들도 마찬가지다.“재경부가 전망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어서…”라고 비껴가기 일쑤다.개인적으로라도 소신을 밝히던 예년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최근 국내외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내년도 경기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재경부쪽은 선뜻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지난 9월초 “올해 국내 성장률 -5%,내년 2% 전망”이라고 발표했다가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뒤로는 더욱 ‘입조심’을 하고 있다. 李揆成 장관도 “조심스런 낙관(cautious optimism)”이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다.전망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수출입동향,금리,어음부도율 등을 토대로 예측을 해도 크게 빗나가지 않았지만 지금은사정이 다르다. 당장 일본의 국채등급 하락으로 인한 국제금융시장 경색 가능성,중국의 위안화 절하 가능성,미국 주식시장의 거품붕괴 가능성 등 한 순간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다. 순간의 금융경색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단순 경제지표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구조조정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확실치 않은 데다 최근에는 ‘대그룹 부도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한 직원은 “잘못 얘기했다가는 ‘바보’되기 십상”이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전망이 어렵다면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가정,대책을 세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전망이 불투명하다는 핑계로 대책마저 대충 묻어갈 수는 없다. 재경부가 대외적인 입장표명을 삼가는 것은 그렇다 쳐도 내부적으로도 전망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하는 말이다.‘주먹구구식’은 절대 안된다.하루하루가 불안한 국민들은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 너무 달라진 교단(全敎組 교사 복직이후:上)

    ◎‘실추 교권’에 놀라고 컴퓨터에 놀라고/학습도구·방식 딴세상/제자는 자유·방종 혼동/변하지 않은건 자신뿐/환경적응 힘겨운 나날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9년여만에 교단으로 돌아왔다. 복직의 길이 트인 150여명 중 지난 9월부터 교단으로 돌아온 이는 모두 70여명. 이들은 10년 가까운 세월 사이 사뭇 달라진 교육환경에 적응키 위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을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그전 학생들과는 판이한 사고방식과 정서,행동양식을 갖고 있는 새세대의 제자들. 그리고 교실마다 설치된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 학습도구,초·중학교의 경우 줄어든 학생수와 달라진 교습방식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매섭게 요구하고 있다. 李忠起 교사(36·방산중학교 사회 담당)는 복직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어졌다고 토로한다.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수업분위기가 매우 산만해졌어요.해직 전에는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면 떠들던 학생들도 조용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소란이 그치지 않기 일쑤죠” 그는 얼마 전 참다못해 체벌을 한 일을 상기하며 씁쓸해 했다. 해직 전에는 한번도 체벌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왜 벌을 서야하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은 학생의 눈빛이 앙금으로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백초등학교에 복직한 魚湧 교사(36)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다. 최근 체육시간에 떠드는 제자를 불러 꾸짖었더니 돌아서며 혼잣말로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너무 당황해 벌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넘어갔다. 실추돼버린 교권,자유와 방종을 혼동하는 제자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요즘 제자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활달함에는 자신들도 적응해야 한다는 자성을 한다. S고에 복직,논리학을 담당하고 있는 李모교사(36·논리학)는 처음엔 예전 방식대로 일방통행식의 수업을 진행했다. 나름대로 참고서적 등을 뒤져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제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수업방식을 토론형태로 바꿔보았더니 뜻밖에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뤄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아이들이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그들의 관심분야와 몰입하는 방식임을 알았다”면서 “변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내 자신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예전처럼 엄격한 규율로 제자들을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설득과 이해만이 이들을 제어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싹트게 한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교육방식과 다양한 교육기자재 사용에 서툰 점도 고민거리다. 삼광초등학교 李相吉 교사(40·여)는 학급당 학생수가 해직 전보다 10여명이 줄어든 30여명에 불과한 것은 교사들에게 큰 변화라고 말한다. 6∼8명이 한조가 돼 서로 마주보도록 좌석배치가 돼 있고 이에 따라 수업형태도 대화식으로 변했다. 특히 교실마다 비치된 기자재가 너무도 다양해져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복직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핸들잡은 추기경(外言內言)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한 말은 고전이 돼버렸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회갑잔치를 하는 예는 드물어졌고 칠순잔치도 부끄러워하는 시대가 되었다. 노인들의 노익장 과시도 다양하고 자신만만하다. 글렌의원의 최고령 우주비행기록 외에 지난 5월에는 영국의 95세된 애들린 애블리트라는 노인이 무동력 글라이더로 곡예비행에 성공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일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설립이래 361년만인 지난해 최고령인 89세의 마리 파사노란 노인이 졸업한 것도 금세기 고령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추기경님 사랑해요’라는 신자들의 석별 인사를 뒤로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한 金壽煥 추기경이 핸들을 잡았다고 해서 화제다. 단순히 운전연습에 그치지 않고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고 운전면허시험을 치를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국산 중형승용차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값비싼 대형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녀 빈축을 사는 것과 대조적이다. 金추기경은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 그동안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을 감싸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소박한 미소로 대중가수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코미디언의 기습 인터뷰에 부드럽게 응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개원법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한 일은 종교지도자로서의 교파를 뛰어넘는 ‘사랑과 자비와 포용력’으로 평가된다. 운전연습이나 면허증을 따는 일이 신기할 것은 없다. 소프라노 김자경씨는 80이 넘은 지금도 자신의 차를 직접 몰고 있고,78세의 서양화가 김흥수씨는 핸들을 남에게 맡기지 않기로 유명하다. 운전을 할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이를 숫자로 세지 않고 정신으로 지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언제 무엇을 하든 어른스럽게 남에게 귀감을 보이는 자세가 훌륭하다. 아름다운 수필을 쓰는 시인 피천득씨는 ‘60이든 70이든 어느 나이나 다살 만하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라고 단정해버린다. ‘늙어가는 사람만큼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소포클레스의 말 속에는 인생의 다양한 뜻이 함축되어 있다.
  • 누구를 위한 빅딜무용론 인가/金相淵 기자·경제과학팀(오늘의 눈)

    “…정부 발표를 검증없이 단순 중계하기에 급급했다. …하루하루 바닥나고 있는 외환보유고의 진상을 애써 외면했다. …대안은 없이 반대와 비판만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돌입 직후인 지난해 12월초 모 일간지 기자가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재경원 기자의 고해­5가지 대죄(大罪)’라는 제목의 이글을 읽고 그 솔직한 자성(自省)의 표현에 동감,몇 번이나 곱씹어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글은 IMF 돌입 1년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언론의 행태를 반성하는 얘기에서 시작,언론의 잘못을 크게 5가지로 열거한 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요즘,이 글을 떠올리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반도체사업 빅딜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때문이다. 그동안 대다수 언론은 현대와 LG가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에 합의해놓고도 반도체 협상을 질질 끄는 행태를 질타해왔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 몇몇 언론의 태도가 돌변했다. ‘내년 반도체시장 전망 밝다’라는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누구를 위한 빅딜이냐”며 ‘빅딜 무용론(無用論)’까지 들먹이고 있다. 물론 반대의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빅딜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문제는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한쪽 의견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다는 데 있다. 이들 기사에는 업계쪽 주장만 있을 뿐 빅딜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의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가격상승이 ‘반짝 특수’일 뿐 내년에 가서는 다시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만만치 않은 데도 말이다. 언론이 균형감각을 잃으면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여론은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의 명운이 걸린 빅딜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1년 뒤 또는 2,3년 뒤 우리는 다시 몇가지 ‘죄목’을 열거해야 할까.
  • 달라진 사회상(IMF체제 1년:2)

    ◎‘생존경쟁시대’ 웃음을 잃었다/초유의 실직사태로 중산층 무너지고 동료의식 사라진 직장분위기 살벌/과소비 줄고 가족화목 중시 긍정현상도 “직장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모습입니다” IMF체제 1년,회사마다 살벌한 분위기가 사무실을 감돌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잇따르면서 서로 존경하고 이끌어주던 ‘미풍양속’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모두가 경쟁자로 변한 느낌이다. D그룹 영업관리팀 金모씨(24·여)는 “다음 달 구조조정에서 팀원 1명 정도는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면서 “동료들이 말도 잘 건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잇따른 중산층의 붕괴도 대표적인 변화다. 경제적 궁핍과 아울러 마음마저 황폐해지고 있다. 지난 1월 다니던 중소의류업체가 부도나면서 직장을 잃은 梁모씨(32). 1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놀고 있다. 직장생활 4년여만에 어렵게 장만한 1억원짜리 아파트는 남에게 전세를 주고 따로 2,50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은행에 맡긴 퇴직금과 전세금에서 나오는 매월 60여만원의 이자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목표나 희망이 없이 그저 세월을 허송하는게 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현상도 적잖이 나타났다. 낭비와 방탕에 빠졌던 과거를 반성하고 근검 절약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과소비나 호화 해외여행 등도 상당히 줄어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가장들은 외식이나 술자리를 줄이고 가족끼리 오붓한 자리를 자주 갖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IMF사태의 경험으로 앞으로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또다시 고초를 자초하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점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분노와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 직장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쪼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유기업센터가 IMF체제 1년을 즈음해 최근 서울과 신도시 지역 25∼49살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응답자의 80%가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IMF 이전 월 평균 가구소득은 249만 9,000원이었으나이후는 185만 8,000원으로 60만원 이상이나 깎였다. 중하류나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가장의 실직은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고 특히 노인문제가 심각해졌다. 한국 노인의 전화 徐惠京 이사(40·여)는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노인들의 절박한 전화,나이 든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맡기고 싶다는 자식들의 문의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도 실업의 ‘안전지대’에 있지 않게 됐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졌다. 한보·삼미그룹에 이어 기아·진로·한라그룹까지 수많은 대기업들이 무너졌다. 안정된 직장으로 첫 손에 꼽히던 은행과 증권사 직원들도 갑자기 길거리에나 앉는 신세로 전락했다 .동남·동화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의 퇴출 파동에 이어 대형 시중은행간 합병의 회오리속에 은행원들이 감원 한파에 떨고 있다. ‘철밥통’의 대명사인 공무원 사회에도 ‘칼바람’은 비켜가지 않았다. 올 상반기까지만 2,200여명의 공무원들이 명예퇴직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 4년생들의 마음도 무겁기는 실직자에 못지 않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서울 K대 행정학과 4학년 金世英씨(26)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했는데 죄송할 뿐”이라면서 “4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일자리가 없어 너무나 허탈하다”고 털어놓았다. ◎IMF 유행어/‘퇴출’ 등 일상어로/IMF=I’m ‘F’/부유층 빗댄 ‘이대로’/간큰 직장인시리즈 인기 IMF 이후 자조섞인 갖가지 유행어가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퇴출’은 유행어를 넘어서 국민적 화두(話頭)가 됐다. ‘명퇴(명예퇴직)’나 ‘황퇴(황당한 퇴직)’는 일상어의 반열에 올랐고 ‘고개숙인 아버지’라는 유행어는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IMF의 F를 F(낙제),FIRED(해고),FIGHTING(싸운다),FREE(해고된 뒤의 자유) 등으로 비관적으로 해석한 단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FINE(그래도 괜찮다)이라는 자조섞인 표현도 등장했다. 또 I를 ‘아이고’로,M을 ‘미치고’로,F를 ‘환장하겠네’로 풀이한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네’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돌았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꼬집는 ‘복지부동’은 한걸음 나아가 낙지처럼 책상에 매달려 일만 하는 ‘낙지부동’,바짝 엎드려 머리만 굴리는 ‘복지뇌동’ 등 숱한 신조어를 낳았다. ‘신토불이’는 ‘몸(身)이 땅(土)과 하나가 되도록 납작 엎드린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무더기 명퇴와 퇴출 사태로 모든 직장인들이 가슴을 조이는 가운데 ‘간큰 직장인’시리즈가 유행했다. 감봉과 전직배치를 불평하고 회식에 불참하거나 지각을 하는 사람,여직원에 커피 심부름을 부탁을 하는 직장인은 퇴출 1순위로 지목됐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졸 초년병들은 ‘모라토리엄(지불유예)형 인간’으로 분류됐고 졸업하고도 학교 주위를 맴돌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캥거루족’으로 불렸다. 술자리에서 ‘건배’ 대신 ‘이대로’가 유행한 것은 부익부(富益富)현상을 누리는 부유층을 빗댄 말이었다. 반면에 ‘소비자 파산’,‘전세대란’,‘깡통집’ 등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생활을 반영한 단어들이었다. ◎고통의 시대 생활지혜/일단 아끼되 가치있게 쓸때는써라 ‘100원을 1,000원처럼 쓰는 지혜’. 어느 공익광고의 문안은 IMF체제를 헤쳐나가는 요체(要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무작정 아낀다고 해서 IMF체제가 극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고달픈 IMF시대. 사람들은 나름대로 갖가지 지혜를 짜내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주부에서부터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터득한 ‘IMF 극복비결 10가지’를 소개한다. ■재활용품센터를 활용한다=주부 朴모씨(44·서울 금천구)는 요즘 벼룩시장,교차로 등 생활정보지를 눈여겨 본다. 생활도구나 가구 등을 새로 구입하기보다는 물물교환을 하거나 중고품을 구입하는 습성이 어느덧 몸에 뱄다. ■원 포인트(One­Point) 식단을 짠다=결혼한 지 1년 남짓된 주부 李모씨(27)는 얼마 전부터 찌개,국,부침개 등 주요 반찬은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는 김치 등 밑반찬으로만 내놓는다. 50% 가까이 음식쓰레기가 줄었다. 李씨는 이아이디어를 ‘원 포인트 식단’이라고 이름붙였다. ■퍼머,마사지 등 이·미용 비용을 줄인다=주부 金모씨(37·은평구 불광동)는 2만∼3만원 주고 한달에 한번 하던 퍼머를 두달에 한번으로 줄이고,1주일에 한번씩 하던 피부마사지도 끊었다. 커트기를 구입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이발도 손수 해준다. ■돈 안드는 취미생활 하기=컴퓨터 프로그래머 李모씨(30)는 한달에 6만5,000원씩 주고 아침마다 수영강습을 받았지만 요즘은 조깅으로 대신한다. 요즘 李씨는 조깅예찬론자가 됐다. ■승용차 운행을 자제한다=중소기업을 운영하는 金모씨(47)는 한달 전부터 교통비가 3분의 1로 줄었다. 매일 타고 다니던 자가용을 주말에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대기업 과장 鄭모씨(35·경기도 고양시)는 1주일에 한 두번 이용하던 구내식당의 단골손님이 됐다. 습관적으로 밖에서 사먹을 땐 보통 5,000원 안팎의 돈이 들었지만 한끼에 1,600원이면 해결됐다. 시간도 절약돼 금상첨화였다. ■빚을 갚는다=대기업 대리 朴모씨(32)는 매달 50만원씩 나가던 은행이자를 지난 9월부터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7,500만원짜리 전세를 5,000만원짜리로 이사해 은행대출금 2,000여만원을상환했기 때문이다. ■학원을 끊고 직접 가르친다=주부 金모씨(38)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다니던 속셈학원을 끊었다. 한달에 10만원씩 나가는 돈을 절약하고,본인이 직접 공부를 가르친다. ■커피숍 대신 집을 찾는다=공무원 李모씨(22·여)는 최근들어 커피숍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전에는 친구들과 거의 매일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요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만난다. ■실력 향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회사원 蔡모씨(33)는 휴대용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영어공부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실력만이 재산이라는 생각에서다.
  • 외국관광객의 체험담(숙박업소 실태:5·끝)

    ◎기본 서비스도 부탁없인 못받아/특급호텔 직원들도 영어마저 소통안돼/비즈니스센터 팩스·복사뿐… 이용도 불편/입에 안맞는 음식 억지로 권해 말다툼도 “특급호텔인데도 직원들과 말이 잘 안 통해서 쩔쩔맸어요.” “쫓아가서 부탁하기 전에 알아서 먼저 서비스하는 직원은 찾아볼 수 없더군요.” 국내 호텔에 묵었던 외국인들이 털어놓은 경험담이다. 사업차 한국에 온 미국인 브루스 판즈로(41·피아노 도매업)는 서울에 있는 1급 S호텔에 묵었던 며칠간의 기억이 씁쓰레하다. 첫날은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종업원의 권유로 억지로 먹다 끝내 말다툼까지 갔다.직원들이 영어를 잘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호텔 비즈니스센터의 이용절차도 너무 까다로웠다.미리 요청을 해야 겨우 이용할 수 있었다.그것도 팩스를 쓰거나 복사만 할 수 있었을 뿐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돼 부인과 함께 한국을 찾은 프랑스인 마렉(58).1급 S호텔에 묵은 열흘 동안 하루하루가 불편한 나날이었다. “프랑스어는 커녕 영어로 된 여행안내 책자조차 없더군요.여러 나라 호텔에 다녀봤지만 모자란 점이 가장 많았습니다.” 미국인 스토니 갬블(29·회사원)은 이틀간 S호텔에 묵었다.그는 직원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게 제일 불편했다고 말했다. 욕실 수건이나 화장지를 갈아주지 않아 번번이 룸서비스를 불렀던 것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한국에 10년째 60번 이상 출장을 왔다는 영국인 해리 스탬퍼 박사(56)는 이번 방한 기간에 2급 R호텔에 묵었다.그는 “카펫은 더럽고 로비의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도 치울 생각도 하지 않더라”면서 “화장실은 더 불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호텔 직원들에게 친절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손님에게 먼저 미소짓기,손님이 말하기 전에 먼저 서비스하기 등 외국 호텔 직원에게는 기본인 서비스가 한국 호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한 예로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도어맨이 가방도 옮겨다 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 지구촌 실업대란… 노동자 33% 실직

    전세계의 실업자 숫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발표한 ‘98·99년 세계고용보고서’에서 전세계 노동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명이 실업자이거나 불완전고용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1,000만명은 순전히 올해 아시아 금융위기로 실업자 신세가 됐다.또 1억5,000만명은 하루하루 끼니 때우기조차 불가능한 완전실업자로 분류됐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실업은 금융위기로 더욱 심화돼 골이 깊어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실업난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본다. ◎日의 실상과 대책/실업률 2차대전 이후 최악/9월까지 1만5,000기업 파산 ‘사상 최고’/정부 1,000억엔 들여 ‘고용네트워크’ 구축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의 실업률은 다른 경제 지표가 그렇듯 2차대전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총무청이 2일 발표한 8월의 완전 실업률은 4.3%.숫자로는 297만명.‘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90년의 2.1%보다 두배가 넘는다. 이들 가운데 올들어 경영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이나 도산으로 해고된 사람이 91만명에 이른다.자그마치 3명 가운데 1명은 올해에 직장을 잃은 셈이다.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파산한 기업은 올들어서만 9월까지 1만5,000건에 달했다.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높아만 가는 실업률이 이쯤에서 진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금융기관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예정돼 있고 기업 도산도 줄지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듯 일본인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심각하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명중 7명이 고용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전국의 직업 안정소에는 일자리를 다시 구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친다는 소식이다.도쿄의 번화가인 신주쿠(新宿)나 우에노(上野) 등에는 ‘홈리스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실업수당을 지급받는 사람도 올해 100만명을 돌파,정부의 실업기금도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1,000억엔을 투입해 ‘고용 네크워크’를 구축키로 했다.또 주택건설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당장 뾰족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예전의 안정권에 이르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릴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실업대책/정부,職訓費로 年 22억弗 투자/직업은행 전국에 1,800곳… 원하는 정보 제공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9월의 미국 실업률은 4.6%.8월보다 0.1% 포인트 늘기는 했지만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미국은 실업률이 5% 미만이면 안정권으로 판단한다. 어느 정도의 실업자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실업 그늘을 쉽게 걷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비록 일자리를 잃었더라도 40% 가까이는 2주일이면 곧바로 다시 다른 직장을 찾아낸다.실업이 취업으로 곧바로 복원된다. ‘실업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는 두개.하나는 직장문화로 요약해볼 수 있다.일단 직장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 직장은 해당 분야에 계속 일할 것으로 판단되는 대상자들에게 많은 기술과 경험을 쌓게 해준다. 이는 업무 능률을 높여 줄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그만둔 뒤에도 익힌 기술을 응용해서 전문가로 자립할 수 있게 해준다.다른 일자리를 찾는 데 결정적인 방향키가 된다.새내기 직장인의 훈련비용은 겉으로 사용자가 부담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댄다.미국 정부는 매년 22억달러를 쏟아붓는다. 실업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또 있다.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국 직업은행(Job Bank of America)’이 위력을 발휘한다.60년 전에 만들어져 전세계 직업 은행의 모델이기도 한 JBA는 무슨 직업이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보수,원하는 분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해준다. 미 전역에 1,800여곳,각 주에 평균 36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직업은행은 원하는 모든 기업과 컴퓨터로 연결돼 일자리가 나거나 충원되는 상황을 자세하게 보여준다.말 그대로 완벽한 직업은행이 되어 구직을 안내하고 주선해주고 있다. ◎동남아 실업률/연말 10% 넘는 국가 속출 예상/印尼­하루 수천명 해고/泰­한달 1,000개 기업 도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30년이래 최악의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90년대 초반만해도 동남아 국가 실업률은 3%선.금융위기로 실업자가 폭증하며 연말이면 실업률이 10%를 넘어서는 국가도 속출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실업률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말쯤이면 10명중 1명이 일자리 없는 사람이 된다는 추정이다.인도네시아 정부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지하 자금을 양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실업 대책에 안간힘이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태국도 형편은 비슷하다.한달 평균 1,000개의 기업이 무너지면서 최근 50년이래 최악의 실업에 허덕이고 있다.올 연말의 실업률은 9%선을 넘어설 전망. 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지원받은 7억달러를 몽땅 투자해 개인 창업을 지원하고 부녀자의 직업훈련 등 고용 창출을 위한 12개 프로그램을 시행키로 하는 등 안간힘이다.그러나 실업률을 끌어내리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필리핀도 어렵다.실업률이 자그마치 10%선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말레이시아 역시 6∼7%로 고 실업률에 몸살을 앓을 것이다. 이웃의 형편이 이렇고 보면 홍콩이라고 실업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실업률이 15년만의 최고치인 5%까지 뛰어 올랐다.경제사정이 비교적 안정된 싱가포르도 4%를 넘어서 내년에는 7%선까지 치솟을 전망이다.문제는 비방.뾰족한 처방이 없다는 게 아시아 국가들을 더욱 애태우게 한다. ◎유럽의 실업률/룩셈부르크 2.2% 최저… 스페인 18.7% 최고/EU 15개국 평균 10%… 내년 고용상황 더 암울 유럽은 전통적으로 실업률이 높은 경제권이다.사회보장제도가 잘 구비돼 있는 탓에 실업자들이 취업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지불해야 하는 실업수당이 늘어 세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실업자감소 방안과 함께 실업수당 감축안이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의 15개국 실업률은 평균 10%.내년 1월 단일통화로 ‘유로’를 쓰기로 한 11개국의평균실업률은 11.1%나 된다.룩셈부르크가 2.2%로 가장 낮고 스페인이 18.7%로 가장 높다. 국제노동기구(ILO)는 9월에 발표한 ‘세계고용보고서’를 통해 옛 소련 블럭에서 독립한 폴라드 등 동유럽 국가의 평균실업률은 9% 이상이라고 밝혔다. EU통계국은 유럽연합의 실업자를 8월 말 기준으로 1,68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ILO는 연말이면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불완전취업자와 자발적 시간제근로자를 제외해도 1,800만명 이상으로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고용상황은 더 암울하다.경제대국인 일본과 아시아,러시아,중남미의 경기침체로 수출 전망이 어둡고 경제성장이 악화돼 고용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도 세계 경제위기 여파가 미치면서 저성장에 따른 고실업의 고통에 몸살을 피할 수 없을 것같다. ◎실업이란/일하고 싶으나 일자리가 없는 상태/일할 뜻 없으면 실업률 통계서 제외 일을 하고 싶으나 일자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이른바 비자발적실업을 가리킨다.특히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으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을 ‘완전실업자’라고 한다. 실업에는 노동시장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계절적 실업과 마찰적 실업, 산업구조 재편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실업이 포함된다. 일할 의사가 없어 일자리가 없는 자발적 실업은 비경제 활동 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대상에서 제외된다. 흔히 실업이라고 할 때에는 완전 실업을 의미한다.또 실업과 취업을 가리는 기준으로는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간주하는 국제노동기구(ILO)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률이 5%라함은 일자리가 없어 1주일에 1시간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100명 중 5명이라는 뜻이다.
  • 노숙자 대책/류호담 아이템풀 대표(굄돌)

    며칠전 서울역에서의 일이다. 열명 남짓한 노숙자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하며 흘러간 유행가를 목청 높여 불러대고 있었다. 단속 나온 경찰관에게,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가는 인생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 노숙자 문제가 상당히 심각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노숙자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우리가 겪는 사회적 고통 중의 하나이다. 일자리를 잃고 가정까지 버린 채 길바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숙자 문제는 이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스스로 취업을 포기할 실업자까지 포함하면,오는 연말 실업자 수가 240여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각종 범죄유발과 함께 사회불안 요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정상적인 생활인이기를 포기한 이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단체·종교단체에서 벌이는 구호 차원의 일방적인 도움보다는 직업훈련 등을 시켜 자활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서울시의 대책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내년도 예산에서 노숙자 지원비를 대폭 늘린 것도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노숙자 스스로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는 일이다. 노숙자들이 재기의 터전을 마련,먹고 자는 인간의 기본욕구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국민통합이 구현될 수 있다. 겨울이 곧 닥치는데 이들을 무관심 속에 버려두어서는 안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사랑의 손길과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삶이 어려울수록 나눔의 정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사회적 진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 한가위 보름달을 그리며/임수경 통일운동가(굄돌)

    달이 하루하루 차오를수록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치던 때가 있었다. 창살에 가린 달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뺨을 스쳐가는 찬바람이 슬퍼서 눈물을 떨구기도 하였다.수년 전,20대 초반의 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과 처음으로 떨어져 감옥살이할 때의 일이다. 꿈 속에서만이라도 바깥세상에 있기를 소망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다. 대낮엔 담장 안에,잠든 후엔 담장 밖에 있다면 감옥살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었지만, 매일 가져보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하지만 그 희망은 차오르는 달 앞에서는 슬픔이었고 그리움이 되었다. 달이 주는 의미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이제 팔월 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있다.꽉 찬 보름달을 보며 희망이 부스러져내린 조각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겠다는 생각을 한다.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이산가족,직업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가장·노숙자들,감옥에 있는 양심수,이들 모두가 견디기 힘든 현실을 꿈에서나마벗어나 보고파 하며 살아가리라.북녘 땅에서도 추석은 큰 명절이다.솔잎을 얹어 쪄낸 송편 한 접시도 제대로 먹기 힘든 식량위기의 북한 사람들도,달을 맞는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민족 고유의 명절을 보내며 민족 최대의 위기를 말하는 요즈음,이 절망의 시대에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가 있으면 좋겠다.50년 넘게 고향가는 길을 잃고 살아온 이산가족에게 고향길 차편이 마련되는 일,남북간의 대치 상태가 사라져 평화구역이 선포되고 양쪽 군인이 모두 추석휴가를 가는 일,양심수가 전원석방된다는 정부 발표문에 박수를 보내는 일 등이 실현되기는 진정 어렵고 허황할까. 이번 한가위에는 달을 보며 슬픔이 아닌 희망이 담긴 소원을 꼭 빌어보고 싶다.
  • 노숙자에게 재기의 손길을(사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고통은 너무나 크다.실직자가 20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기업 도산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생활고로 가정까지 파괴되고 결식아동도 늘어만 간다. 노숙자문제도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어려움의 하나이다.일자리를 잃고 가정까지 버린채 길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노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노숙자 자신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보는 시민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만든다.그대로 방치할 경우 범죄를 저지를 우려도 크고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더구나 추석이 가까워지고 추위도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때맞추어 서울시가 노숙자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영할 일이며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조치이다. 현재 7곳에 불과한 희망의 집을 100곳 이상으로 대폭 늘려 3,000여명의 노숙자들을 10월말까지 모두 수용하고 공공근로사업등의 일자리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직업훈련을 시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도 한다. 시기적으로 노숙자들을 수용시설에 일단 수용하는 것이 급한 일이긴하다. 추위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사(*死)등 끔찍한 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노숙자대책이 추위나 피하게하는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그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의욕과 자신을 심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구호 차원의 일방적인 도움을 주기보다 직업훈련등을 통해 자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할 것이다.일자리를 주거나 가정으로 복귀시켜 날씨가 풀리더라도 다시는 거리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시만 아니라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노동부등 관계부처가 모두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대상도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의 노숙자들로 확대해야 한다. 노숙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필요한 것은 종교계를 비롯하여 민간단체,시민등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일이다. 노숙자문제가 실업대책과 함께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더 이상 그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결코 행정부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며 또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노숙자들을 다시 일어서도록 하기 위해 사회 전체의 따뜻한 손길과 관심이 필요하다.특히 종교계의 사랑과 자선 정신 실천이 절실한 때이다.
  • “힘든 일 하느니 실직자로 남겠다”/3D 업종 기피 실태·원인

    ◎작업 1∼2일만에 포기… 젊은층일수록 심해/사무직종 퇴직자 대부분 과거미련 못버려/영세업체 많아 고용보험 미가입… 취업 꺼려 올 들어 실업자가 120만명이나 늘어나는 등 실업대란 시대를 맞아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실직자들이 생각을 바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춘다면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적지 않다. 실업대란 시대에 ‘외로운 섬’처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업체들의 실태와 실직자들의 의식상태 등을 점검해 본다. 쇠를 녹여 공업용 쇠봉을 만드는 경기도 화성의 (주)백철금속은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한 달여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 달부터 몇개의 구인기관을 통해 필수인원 12명 가운데 9명을 채웠으나 나머지 3명은 언제 충당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들어 구직희망자 70여명이 찾아왔지만 벌겋게 끓는 쇳물과 불똥을 보고 놀라 발길을 돌렸다. 이들은 대부분 대졸 이상의 학력자로 사무직에 종사하다 최근 실직한 사람들이다. 이 업체는 하루 12시간 2교대로 다소 고되기는 하나 월급여는 기본급 70만원에 수당까지 합치면 100만∼120만원에 이른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를 채택, 월 평균 6회를 쉬기 때문에 근무여건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취업희망자들은 작업이 위험하고 힘들다는 이유 외에 ‘동료’들에게 정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崔熙萬 관리처장(38)은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작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서 “진정으로 일자리를 원한다면 일에 대한 애착부터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원단을 만드는 광성피혁공업도 생산직 사원 3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12명을 신규 채용했지만 7명만 출근했고,출근자 가운데 4명은 이틀 뒤 그만뒀다. 올 들어 입사자 69명 가운데 36명이 도중하차했다. 총무계장 閔敎鎭씨(33)는 “수작업이 많고 염색약품을 사용하고 있어 냄새가 심한 편이라 젊은 사람들의 중도포기율이 높다”고 말했다. 작업시간은 상오 8시∼하오 4시40분까지,월급여는 70만원선이다. 화학품제조업체인 단석산업은 지난 달 40세 이상 실직자만 신규 채용했다. 젊은층은 이직률이 지나치게 너무 높아 채용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힘든 일을 하기 보다는 실업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신의 과거 경력에 대해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고용정보관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구인자가 312명이었던 플라스틱성형기조작원은 구직자 수가 269명에 불과했고,취업자는 82명에 그쳤다. 프레스조작원도 구인 973명에 구직자는 1,587명이 몰렸지만 취업까지 이어진 사람은 271명이었다. 이런 현상은 급한 마음에 일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막상 작업장을 보고나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3D 업종의 하나로 꼽히는 영업직 역시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직종 가운데 하나다. 구인자는 1만3,060명이나 구직자는 7,615명에 불과하고 취업자는 그보다 월등히 적은 1,303명에 불과하다. 직업소개소를 찾는 사람들도 3D 업종에 속하는 업체는 아예 관심권 밖이다. 젊은층일수록 깨끗한 서비스업종을 선호한다. 서울 강남의 P직업소개소 대표 李雨慶씨(35)는 “서빙이나 호텔 웨이터 등의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면서 “금형이나 사출공장에 취업을 알선해 주면 대부분이 거부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취업을 해도 곧 그만둔다”고 말했다. 이밖에 실직자들이 3D 업체를 꺼리는 이유는 업체들 대다수가 영세업체라 근로기준법이나 산재보험·고용보험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동대문·성북·노원·강북·중랑구 등 6개 구를 관할하는 북부노동사무소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장은 5,000여곳이나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이 1,000여곳에 이른다. 全在成 북부노동사무소 관리과장(45)은 “하루하루 부도에서 벗어나기도 급급한 영세업체에 대해 무작정 고용보험 가입을 강요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기껏 호소하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귀순자 자립 지원/의무고용제로 직장 보장을(탈북 그 이후:4)

    ◎자격증 등 인정 못받아 단순 직종으로/절반이상이 월수입 100만원 못미쳐/적응교육 강화… 안정된 삶 부축 시급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朴모씨(36)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낯선 남한 생활에 후두암까지 겹쳐 또다른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다. 朴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처음 귀순할 때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해 94년 귀순한 韓모씨(38)도 버거웠던 지난 4년간의 남한 생활을 털어놨다. 韓씨는 “한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개인 한방병원에 취직했지만 ‘북한자격증을 어디에 쓰느냐’고 면박을 주며 잔심부름만 시켜 그만 두었다”면서 “죄인이나 무능력자 취급받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韓씨는 “한의학 서적을 출간해주겠다고 찾아 온 남자에게 산삼 두 뿌리를 사기당한 적도 있고 한 독지가가 귀순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 챈 사람도 보았다”면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꾸려가는 제2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이들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 문제와 생활고를 꼽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북한에서의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지적 열등감,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97년 제정된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라 귀순 후 통상 6개월간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절차 등을 거친 뒤 귀순전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 및 주택,보조금 등을 받는다. 가족이나 지위가 없는 경우 받는 지원금은 평균 1,400만원 정도. 하지만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쓴다. 정부기관의 주선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전문직 보다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올 초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700여명 가운데 매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314명에 불과하다. 월 50만원 이하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86명이나 되며 병약자나 노약자 등 생계곤란자도 40여명이 넘는다. 또 절반이상이 정부에서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金熙辰 사무국장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보장받는 것”이라면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응교육과정 및 법정 의무고용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水魔와 전쟁’ 치르는 文勝義 기상청장

    ◎“국지성 폭우 예보 現장비론 불가능”/기상예보·방재체계 묶는 통합기구 필요/전용 방송채널 통한 상시예보 이뤄져야 “기상청은 한마디로 수마(水魔)와 전쟁중입니다.종잡기 힘든 수마의 습격예정지를 단 몇분이라도 미리 알아내기 위해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유례 없는 게릴라성 기습폭우가 한반도 곳곳을 유린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는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예보에 쏠려 있다.文勝義 기상청장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피해규모를 놓고 볼 때 이번 기상이변은 ‘전쟁’에 견줄 만하다.그것도 천기(天氣)를 놓고 벌이는 고도의 정보전인 셈이다. 文청장은 예보능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는 데 대해 “기상청의 현실을 넘어선 버거운 짐”이라고 토로했다.부족한 장비와 인력,현대 기상과학의 한계를 고려해달라는 주문과 더불어 기상예보와 방재를 효율적으로 묶는 국가차원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예보능력에 대한 불신이 크다. ▲현재 기상청이 보유한 장비로는 이번 폭우처럼 기습적이고 국지적인 기상현상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슈퍼컴퓨터는 한 대도 없고 기상레이더도 부족하다.기획예산위가 최근 슈퍼컴퓨터 도입을 결정했고 백령도와 흑산도에 기상레이더를 추가배치하는 데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슈퍼컴퓨터와 기상레이더 등 장비가 보강되면 국지예보가 가능해지나. ▲어느정도 그렇다.이번 폭우는 발생 2∼3시간 전에야 구체적인 폭우예상지역을 알아낼 수 있었지만 슈퍼컴퓨터로 수치예보 모델작업을 하면 6∼12시간 전에 예보가 가능해진다.그러나 만능은 아니다.특히 정확한 강수량 예보는 현대 기상과학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번 폭우예보 과정에서 기상청의 잘못은 없었다는 말인가. ▲기상청도 자성할 점이 많다.특히 예보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다른 국·실 인력을 예보파트로 상당수 이동시킬 생각이다. ­이번 폭우에 예보시스템이 무력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예보능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신속한 예보체계다.선진국처럼 기상전용방송채널 신설이 어렵다면 비상시 기상청이 요구할 때 기존 채널을 이용한 상시예보가 이뤄져야 한다. 또 정규예보와는 별도로 재해대책 관계기관들에 수시로 보내는 ‘기상정보’의 중요성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이해해줬으면 한다.무엇보다 기상예보와 방재를 하나로 묶는 통합기구가 필요한 때가 왔다고 본다. ­한반도 기상이변의 속출로 북한과의 기상협력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김포공항 항공기상정보 주수집센터에서 항공기상망을 통해 남북한 관측자료를 직교류하자고 제의한 바 있으나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국제회의 등 여러 채널의 남북간 접촉을 통해 다각도로 시도중이다. ­계속되는 폭우로 기상청이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지리산 폭우 이후 24명의 예보요원들이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하루 다섯번 하던 기상관측자료 분석회의도 매 시간마다 하고 있다.
  • 소상공업 육성 중산층 재건을/金昊均(발언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업의 구조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개혁은 경제력 집중의 심화와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외환위기와 금융경색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재벌들은 수출호조와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힘입어 이제는 ‘달러는 물론 원화자금도 흘러 넘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화폐자산 부문에서도 경제력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IMF 경제위기의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는 금융자산가들의 숫자는 십수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고금리로 자산을 눈덩이처럼 불리면서 강남의 호화 룸살롱에서 “이대로”를 외치고 있다. 이러한 재벌과 금융자산가에의 경제력 집중은 200만 실업자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고 있는 중산층 및 서민의 생활과는 동전의 양면이다.IMF 경제위기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한국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그 결과는 시장경쟁을 왜곡시키고 가장의 가출,보험금을 노린 가장의 자살 등 가정파괴 현상마저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급증하고 있는 구조적 실업자들을 단기적으로 새로운 중산층으로 재편해야 한다.이때 그 중심에는 제조업 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다양한 생산적 기능을 수행하는 소상공업의 육성이 자리잡아야 한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정책이 있으므로 별도의 소상공업정책은 불필요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중소기업정책은 제조업과 규모있는 중기업 중심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소상공업 육성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가 이미 벤처기업 육성을 시작했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나 소상공업은 벤처기업 뿐만 아니라 음식업,세탁업 등 국민생활과 직접 관계되는 다른 많은 사업분야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소상공업 육성정책을 펼 때 정부는 그것이 시장경제의 창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자금지원보다는 자생력 있는 투자자가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사업을 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주고 기술을 중개해주는 등 주변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소상공업의 육성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실업대책도 될 수 있고 시장경제의 활성화와 사회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실물·전기 끊겨 6일째 고통/중부 물난리­단전·단수지역

    ◎아파트 꼭대기까지 매일 식수 날라/우산 거꾸로 펼쳐 빗물받아 사용/가전품 사용못해 집안엔 온통 악취 “마실 물도 없어요” 막대한 비 피해를 입은 경기도 북부지역의 5만4,000여 가구 주민들이 엿새동안이나 전기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해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집만 잃지 않았을 뿐 수재민 대피소 생활과 다르지 않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 2·3동과 호원동 일대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11일로 엿새째 수돗물과 전기없이 지내고 있다. 아파트 지하에 물이 차 물탱크와 전기공급시설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호원동 우남아파트 104동 503호에는 李貞玉씨(53·여)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남편과 3남매는 서울의 친척과 친구집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李씨는 아파트 단지 소방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쓰지만 하루 1ℓ들이 물통 5개 이상을 길어오지 못한다.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아 손수 계단을 통해 5층까지 나르기엔 너무 힘들어서다. 세수를 하고 나면 물은 거의 남지 않는다. 식사와 목욕은 이웃 친구집에서 해결한다. 비가 오면우산을 거꾸로 펼쳐 베란다에 걸어놓고 빗물을 받아 설거지용으로 쓰기도 한다. 의정부3동 신도3차 아파트도 사정은 같다. 朴明淑씨(41·여)는 “집집마다 빨지 못한 빨래 냄새가 진동하고 냉장고 음식도 모두 상했으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상오 10시쯤 국도 39번 옆 고양시 고양동.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을 정리하던 주민들이 마을앞 공터에 식수차가 오자 대야와 양동이를 들고 앞다퉈 달려나갔다. 아이들도 물통을 하나씩 들고 뒤를 따랐다. 전력이 끊긴 오지마을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와 석현리 등 4개 마을에는 엿새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생활하고 있다. 가전제품은 물론 보일러도 가동하지 못한다. 李容福씨(39·부곡리)는 “축축한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기도 한다”고 말했다. 완전 복구는 오는 20일쯤에나 가능해 주민들은 앞으로도 9일 이상이나 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수해 복구에 온 국민 나서자(사설)

    지리산에 이어 서울과 경기북부지역이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200여명의 고귀한 인명을 잃었고 1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재산피해가 추산되고 있다.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수많은 이재민들의 모습이 참담하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있는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고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모두가 나서 재난을 수습하고 피해를 복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온국민이 정성과 온정으로 수재민의 상처와 아픔을 씻어주고 하루 빨리 재기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재민의 구호가 우선 시급하다. 집과 논밭이 물에 잠기고 생활수단까지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갈수 있도록 지원해야하고 생활터전을 되찾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한다. 수해에 뒤따르는 수인성 전염병과 피부염등을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방역과 보건대책도 필요하다. 이재민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금은 신속하게 집행되어 이재민들의 재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것이다. 끊어지고 막힌 도로와 철도,통신시설의 복구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침수된 농작물에 대한 병충해 방제와 사후관리로 감수(減收)에도 대비해야 한다. 엄청난 수재의 복구에는 정부의 재해대책비나 행정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군의 유휴인력이나 쉬고있는 민간 장비등의 지원을 비롯, 모든 능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의 따뜻한 동포애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다만 과거에 종종 보아왔던 ‘높은 분’들의 너무 잦은 현장시찰등 이재민들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성가시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여름 휴가철이긴 하지만 이재민들의 아픔을 더하게 하는 무분별한 행동들도 당분간 자제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수재복구 노력과 함께 앞으로 이런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상예보체제를 비롯한 종합적이고도 효율적인 재난대책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이번 물난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를 비롯한 기상관계기관들이 엘니뇨의 영향으로 동남아등지의 홍수위험을 여러차례 경고했었고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의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웃인 중국의 양쯔강 일대가 엄청난 물난리를 겪고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비가 소홀했었고 기상예보마저 번번이 빗나가기만 했다. 같은 비구름대가 지나간 일본 니가타현이 기민한 예보와 조직적인 대피로 피해를 최소화한 것과 좋은 대비가 되고 있다. 겉만 요란하고 속은 없는 재난대책으로 큰 피해를 당하고서야 허둥대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것이다.
  • 위기극복의 ‘아킬레스’/安錫敎 한양대 교수·경제학(서울광장)

    경제의 구조조정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하루가 다르게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사회적 안정의 버팀목으로 작용하는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사회구조는 소수의 상위계층과 다수의 저변집단으로 양극화 되고 있다.실업군상이 급속하게 증가하는데다 기존의 직장인들 역시 실업의 나락으로 전락할 불안을 안고 있다. 수입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에다 조세부담 역시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이와 같이 사회전반에 걸쳐 극도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득권 집단에서는 아직도 개혁에 대한 냉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개혁과 구조조정의 고통없이 경제위기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다만 지난 반년동안의 정책을 조감해 볼때 미증유의 구조조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두가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를 첫째,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금융부문이나 재벌 및 공기업에 대한수술이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정부가 반복해서 강조해온 것처럼 개혁은 이제 시작에 불과 할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힘겨운 대다수 국민들은 터널의 출구를 알리는 희망의 빛줄기를 갈구하고 있다. 불안과 좌절,생존자체에 대한 허무와 공포에 기초한 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단말마적 고통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의 실체,고통의 피안에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위기의 극복을 위한 에너지의 결집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심각해지는 사회적 갈등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구조조정이 확대 심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소득계층의 양극화에 따른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이는 우리가 이정표로 삼고 있는 미국식 시장경제의 약점이기도 하다.또한,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고실업상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분배와 고용을 둘러싼 노사간의 갈등 역시 더욱 첨예화될 전망이다. ○사회갈등 제어장치 절실 가령 고용조정과 관련하여 우리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미국식 정리해고제도와 사회적 협약에 기초한 독일식 노·사·정 합의제도를 혼용하고 있다.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하면서 해당집단간의 갈등을 최소화시키자는 것이다.그러나 이 제도는 고용조정을 통한 경영합리화를 선호하는 기업과 해고제도의 남용에 대한 통제·감독을 요구하는 노조간의 갈등에 기인하여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정 이익집단의 이러한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한 중립적 입장에서 갈등을 조정해 가야할 과제는 오늘날 정치적 리더십에 부여된 핵심적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갈등이 없는 사회,그것은 사회적 정체성을 의미할 뿐이다.문제는 갈등에 대한 ‘관리능력’을 여하히 제고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선·후진국간의 중요한 질적 차이도 여기에 있다.갈등의 조정능력은 순조로운 구조조정을 위해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무형의 사회적 간접자본이 아닐 수 없다.
  • 신중현:下(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3)

    ◎‘한국적 록 만들기’ 父子 한길 큰 위안/‘대마초’이후 23년 무대 잃은 음악 인생/궁핍보다 더한 고통으로 좌절·방황/분별없는 외래가요 범람 못내 가슴아파 “형광등이 비추는/천장을 보면서/눈을 떴다가 감았다/밤을 새우네/그여자는 지금쯤/무얼하고 있을까/이리둥굴 저리둥굴/혼자 생각하네/아침이 오면/붉은 태양이/나의 마음을/달래 줄텐데/길고 긴 이밤이/언제나 지나가나…” 기다림이 애틋하게 사무친 申重鉉씨의 노래 ‘긴긴 밤’. 마치 3년뒤 영어의 몸이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답답한 심경을 담아낸 72년도 발표곡이다. 노래말처럼 붉은 태양과 함께 아침이 밝았으면 좋으련만 운명의 신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대마초 가수’로 서울 서대문 구치소에 갇혀 있던 기간은 4개월. 4개월이 마치 4년만 같이 여겨졌다.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만 했던 지난 날들이 악몽만 같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했던가. 마른 하늘에 뜬금없이 내려친 날벼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고된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6년4월. 지난 연말 구치소에 들어갈 때의 추위는 가시고 봄기운이 온누리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예전의 자유로움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요계,방송국,음악감상실…,그가 설 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빼어난 작곡가이며 기타연주가이기도 했던 록 가수 申重鉉의 인생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가수에게 활동중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 유신정권의 혹독한 간섭 아래서 금지인생을 살아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모든 공연이 철저히 막혔고 방송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게 됐다. 구속 전부터 1∼2곡씩 방송에서 사라지더니 구속과 동시에 통째로 금지곡이 돼버렸다. 당연히 음반판매도 막혔다. 어쩔 수 없이 악기를 몽땅 팔아야 했고 반포동 28평짜리 아파트를 청산해 동작동,방배동,문정동 셋방을 10여차례 옮겨 다녔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작곡에서도 한창 인기를 누리다가 좌절을 맛본 터라 하루하루를 견뎌내기가 더욱 힘이 들었다. 사람을 피해 낚시터와 산을 다니며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용산 미8군 무대에 다시섰다.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슬펐다. 3개월만에 그만두고 경기도 송탄으로 잠적,음악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름을 달랬다. 기지촌의 미군들을 상대로 가끔씩 노래를 불렀는데 간섭이 없어 마음은 편했다. 감옥에서 나온지 3년이 지난뒤인 79년 활동중지가 풀렸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생활이 쪼들리다 보니 음악활동을 시작할 여유가 없었다. 악기도 남아 있는게 없었다. 무엇보다도 독재정권의 탄압이 가져온 삭막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방송이 들려줄 이렇다할 대중음악이 없었어요. 금지의 태풍 속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지요. 당연히 흘러간 노래나 뽕짝풍이 판을 쳤고 대중들의 귀도 이런 음악에 순치돼 있었습니다. 50년대의 문화가 다시 살아났다고나 할까요” 대학가에도 춤곡과 디스코 선풍이 몰아쳤고 춤추는 문화의 유행으로 대중음악 자체가 표류했던 시기. 외래문화와 트로트가 휩쓸리면서 방향을 잃고 흘러만 가던 상황이었다. 신씨가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가 않았다. 이미 가수 신중현이 설 땅은 허물어졌던 것이다. “당시 방송국에서 저와 제 음악을 이해하던 몇몇 프로듀서들이 저의 재기를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잊혀진 가수와 음악을 되살리기가 그렇게도 힘들 줄 몰랐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그런 음악환경에서 제자신이 멀어지기를 바랐다고 할 수도 있지요” 79년 이후 공식적인 콘서트는 단 한번도 열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75년 겨울 ‘구치소 신세’를 질때부터 지금까지 23년간 신중현의 무대는 없었던 셈이다. 방송엔 ‘가뭄에 콩나기’식으로 가끔씩 출연했다. 지금은 출연제의가 완전히 끊겨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도 사연많은 ‘대마초 가수’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87년 그의 음악이 해금된지 올해로 11년째. 수원여대에서 주2회씩 현대음악 강의를 맡고 있고 밤에는 가락동 50평짜리 지하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들고 불렀던 곡들을 녹음·정리하고 있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0여명의 출연진이 무대에 서는 대형 록 콘서트를 지난해 말부터 준비해왔는데 IMF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꿈꾸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나마 아들 3형제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한국적인 록만들기에 뜻을 두고 한 길을 걷는게 큰 위안이다. “세살짜리 꼬마부터 80세 노인까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대중음악이라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수준이 있어야 하고 음악성도 갖춰야 합니다. 방송이 주도하는 요즘 대중음악은 상업성에 치우쳐 문화적인 측면을 무시하기 일쑤지요” 한국적인 가락을 록에 담기 위해 평생토록 고민했다는 신씨. 그는 분별없는 외래문화 유입이 독재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문화의 맥이 순탄하게 이어졌으면 지금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을텐데…. 국적없는 음악은 위험합니다. 우리만의 고유성을 담은 음악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문화탄압은 치명적이었다고 봅니다” ◎사연들/4t트럭 분량 악기 생계위해 팔아치워/레코드社 박대 서운 동료 손가락질 처연 75년 신씨가 구속되기 전만 하더라도 학생층이 주로 모이던 ‘이브’를 비롯,서울 명동과 종로의 음악감상실 5∼6곳에서는 고정적으로 신씨의 콘서트가 열렸다. 그러나 묶이고 난뒤엔 사정이 달랐다. 업소들은 신씨의 접근을 아예 봉쇄했고 레코드회사와 방송국은 문전박대로 일관했다. J레코드사와 K레코드사는 30대 이상의 연령층이면 지금도 기억하는 당시의 내노라는 음반사들. J사는 유류파동때 어려움을 겪다가 ‘미인’히트로 살아났고 K레코드사 역시 신씨의 노래들로 유명해진 대표적 레코드사다. 셋방을 전전할 때 레코드사를 찾아가 몇차례 도움을 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방송국도 마찬가지. 신씨가 묶이자 신씨의 노래들을 앞다투어 뺐고 녹화 필름도 모두 폐기해 버렸다. KBS,MBC 등 3개 공중파 방송사엔 신씨의 구속전 필름,레코드 등 관련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생활고에 지쳐 마침내 악기를 팔기 시작했다. 농군에게 소가 가장 큰 재산이라면 음악인에겐 악기가 그럴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신씨만큼 귀한 악기를 많이 갖고 있던 음악인도 드물었다. ‘먹고 살기’위해 청산한 악기만도 1톤짜리 트럭 4대분은 족히 된다고 한다. 73년 영국에서 사들여온 530와트 용량의 ‘마샬’ 앰프를 팔땐 며칠간 잠을 못이루었다고 한다. 마샬은 당시 국내에 1대밖에 없었다. ‘미인’을 히트시킨 ‘신중현과 엽전들’이 쓰던 것으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할 동료 음악인들의 배신. 우연히 커피샵에서 만난 동료들이 정보부 요원과 함께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며 능멸할 땐 회의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서울 가락동 신씨의 지하 작업실 한 쪽 벽엔 시계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시간에 얽매이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걸어 놓은 것이라는게 신씨의 설명. 그러나 억울하게 빼앗긴 시간들을 애써 찾으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 ◎금지곡 연보 ▲69년 9월27일 ‘어떻게 해’(김상희 노래) ▲70년 7월6일 ‘미칠듯한 마음’(임성훈) ▲71년 7월25일 ‘못 견디겠어’(지연) ▲74년 12월7일 ‘나는 몰라’(신중현과 엽전들) ▲75년 7월5일 ‘거짓말이야’(김추자) ‘나비같은 사랑’ ‘두 남편’ ‘저기 저 소리’(장미리)‘세상에 만약 여자가 없다면’(김명희 서영옥 이다연) ▲75년 7월6일 ‘미칠듯한 마음’(임성훈) ▲75년 8월4일 ‘가나다라마바’(김정미) ‘너와 나’ ‘담배꽁초’‘바람’ ‘이건 너무 하잖아요’(김정미) ‘미인’ ‘생각해’ ‘저 여인’ ‘할 말도 없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신중현과 엽전들) ‘그리워’(김명희) ▲83년 11월7일 ‘설레임’(신중현과 엽전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햇볕정책 확고한 의지를/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기고)

    “숨기었던 색시가/너울에서 나오매/거룩하신 화관이/절로 와서 얹쳤네/구원의 빛 넘치는/임의 눈을 보아라/해가 아니 뜬대도/어둠 다시 없겠네/”(최남선의 ‘금강예찬’ 중에서) “만이천봉!무사하냐 금강산아/너는 너의 님이 어데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철학,명예,재산 그 외에도 있으면 있는대로 태워버리는 줄을 너는 모르리라.” (한용운의 ‘금강산’ 중에서) ○금강산구경 꿈 부풀어 금강산을 예찬한 글을 모두 모으면 좀 과장해서 작은 도서관을 하나 차릴 일이다.그러나 최남선은 ‘금강예찬’권두에서 “금강산은 보고 느끼기나 할 것이요.형언(形言)하거나 본떠 낼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장래의 금강산 기행문을 후학이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그러면서 자신은 기행문을 남겼으니 그 일갈에도 불구하고 누군들 다시 금강산 기행문을 못쓰리. 분단 50년이 넘어 이제 금강산기행문을 중·고생도 수학여행 끝에 쓸 수 있게 될 모양이다.최근 북한을 방문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올가을까지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금강산 구경길이 뚫린다는 선물을 안고 돌아왔다.과거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가을이 되어보아야 할 일이로되 이보다 더 구체적인 합의에 이른 적은 없으니 기대해도 좋을 일이다. 동해안에 나타난 잠수정이 금강산으로 향하는 유람선의 복병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이미 반공단체나 일부 언론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확산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잠수정의 출현은 분명 북한의 침략성을 과시하는 분명한 근거다.그것만으로도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갈 충분한 사건이 된다.그러나 정부는 군사적인 엄정대응과 동시에 종래 내세운 ‘햇볕정책’은 수정하지 않겠다는 확고하고도 신중한 의지를 보여주엇다.조문논쟁으로 金泳三정부하의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정부의 실리주의 정책은 과거와 분명 달라진 것이다. ○남북관계 질그릇같아 남북관계에는 마치 깨지기 쉬운 질그릇을 다루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될듯하다가 말고 깨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남북관계로 실향민들의 가슴은 이미 숯덩이가 되었다.생사를 달리하는 이산가족들이 하루하루 늘어가는 마당에 남북교류의 지연은 반인도적 범죄에 다름아니다.지금껏 조그마한 사건으로 서로 토라져 얼굴도 맞대지 않으려던 소아병적인 자세는 버려야 한다.강력한 국방력의 존재와 온유한 얼굴의 남북관계는 결코 두 얼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호전성과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서도 북한에게 신뢰와 이익을 주어야 한다. 서독은 동베를린에 이르는 도로의 수선비용으로 실제 그 용도에 쓰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대한 돈을 지출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쌓여진 신뢰로 서독은 동독을 마침내 통채로 삼켰다.작은 이익을 주고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은 큰 장사를 하는 기분이다.이제 우리도 올 가을에는 금강산 구경이나 떠나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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