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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간 그려온 한국인 얼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권순철(60)은 40년을 한결같이 얼굴을 그려온 작가다.온갖 풍상에 시달린 노인의 주름진 얼굴,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선량한 이웃들의 순박한 얼굴….그것은 권순철 그림의 영원한 화두다.가끔 얼굴을 소묘의 대상으로 삼는 화가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것을 그리는 화가는 찾기 힘들다.그는 왜 집요하게 얼굴,그 중에서도 유독 한국인의 얼굴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권순철의 얼굴 그림은 그의 남다른 개인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작가는 한국전쟁에서 아버지와 삼촌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그의 작품에는 그런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1988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며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을 추구해온 것도 그가 얼굴 그림에 몰두하게 된 배경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순철-얼굴’전(31일까지)에는 작가의 이같은 고민이 담긴 연작 ‘얼굴’등 40여점이 나와 있다. 권순철은 ‘현장의 작가’다.수십년 동안 병원이나 시장,터미널 등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보통 사람들의 표정을 스케치해 왔다.얼굴 크로키들을 작업실에 세워둔 채 화면이 두툼해질 때까지 유화물감을 덧칠하고 붓질을 거듭해 얼굴을 완성한다.그러니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데 몇 년씩 걸리는 일도 다반사다.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권순철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그가 구사하는 두터운 마티에르와 무채색에 가까운 색상처리,세부묘사의 생략은 민중의 강인한 표정을 드러내는 데 제격이다.배경도 없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고통스러운 얼굴.그러나 작가에게 그 얼굴은 시대의 아픔을 묵묵히 견뎌온 불멸의 한국인상이다.한국의 거친 산맥을 연상시키는 그 얼굴에서 작가는 삶의 진지함과 엄숙함을 발견한다.작가는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이야말로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소재”라고 말한다.그는 종종 “역사를 증거하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는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월요테마기획-마케팅 산실] 데이콤 국제전화팀

    [월요테마기획-마케팅 산실] 데이콤 국제전화팀

    “정면 승부가 어렵다면 게릴라 작전을 써라.시장을 쪼개 부문별로 공략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데이콤 국제전화가 ‘쪼갬의 마케팅’으로 시장을 탈환하고 있다.경쟁업체로부터 추월당해 극심한 침체기를 겪은 이후 마케팅 부문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쪼갬 마케팅’으로 시장 공략 뉴 밀레니엄 시대를 맞으면서 데이콤 국제전화팀은 우울했다.1991년 출범이래 평균 25%에 달하던 시장 점유율이 2000년 들어 줄곧 하락하더니 급기야 2002년 말 14.5%까지 주저앉았다.KT와 데이콤의 양자 경쟁 시장에서 ‘휴대폰 국제전화’라는 타이틀로 경쟁 업체가 급부상하면서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됐다.데이콤 국제전화팀 마케팅 담당들이 바짝 긴장,시장에 대한 전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국제전화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사람들이 왜 특정 번호를 선택할까?’‘어떻게 그 번호를 쓰게 됐을까?’‘왜 그 번호를 고수하고 있을까?’‘언제 가장 많이 쓸까?’ 소비자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본격적인 시장조사가 이뤄졌고,공략할 시장이 쪼개지기 시작했다.예컨대 개인 국제전화의 경우 밤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밤에 싸게 걸 수 있는 ‘야(夜)한 국제전화-00300’을 만들었다. 대부분 연인과 오래 통화한다는 점에 착안,20분을 통화하면 공짜로 10분을 더 주는 부가서비스 ‘2030’서비스도 개발했다.최근에는 국제전화 문자메시지 서비스(SMS)도 제공하고 있다.시장을 나눠 공략하다 보니 히트 상품이 속속 등장했다. ●적게 쓰고 크게 벌어라 마케팅에 무게를 둔 이후 국제전화팀의 자성도 깊었다.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마케팅은 TV광고와 이벤트 등 기존 방식만 고수해온 점을 반성했다.시장을 허겁지겁 따라가면 영원히 뒤처지는 낙오 대열이란 점을 깨달았다.대중에게 우리 상품을 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남들과 똑같이 TV광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면 마케팅 비용에 출혈이 크다.상품을 쪼개서 팔 듯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창구도 세분화했다. 젊은층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매체와의 제휴에 돌입했다.다음커뮤니이션,인터파크,SBSi 등 웹 포털과 손을 잡았다.예컨대 ‘다음 회원만이 쓰는 국제전화’ 같은 형식으로 제품을 새로 포장했다.다음이 자사 회원에게 광고를 해주기 때문에 데이콤 광고비는 대폭 절약됐다. 국내 발신 국제전화 시장은 연 4000억원 수준.지난해 TV 광고 규모를 보면 KT(001) 80억원,데이콤(002) 21억원,SK텔링크(00700) 79억원,온세통신(008) 29억원이다.마케팅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지만 2003년 6월 들어 데이콤은 다시 2위 자리를 탈환했다.시장 점유율은 5% 이상 높였고 국가고객만족도 국제전화 서비스 1위라는 영예도 안게 됐다. ●“아직 뺏어올 시장 많아요” 유선시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가 국제전화다.시내·시외전화는 사전 선택제이지만 국제전화는 걸 때마다 고객들이 번호를 선택하기 때문이다.광고 규모가 크고 브랜드 싸움이 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고객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인지도를 높여야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갈 수 있다. 데이콤 국제전화팀의 마케팅 담당은 총 14명.시장조사,상품 기획,광고 컨셉트 정립,광고 채널 선택,고객 유지,고객 창출 등이 주요 업무다. 이들은 아직도 ‘국제전화를 처음 쓰는 사람’과 ‘다른 브랜드의 국제전화를 쓰고 있는 사람’을 뺏어 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망설임에는 천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택에는 오직 한가지 이유뿐이다.고객의 마음을 뺏어올 생각만 하자는 것이다.김용식 과장은 “더욱 치열해지는 국제전화 시장이지만 고객의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을 생생하게 해외로 생중계한다는 한가지 기쁨을 위해 국제전화 002 마케팅 요원들의 아이디어 회의는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내가 본 우리팀-‘대한민국 생중계’ 세계를 연결하는 끈 3년전 어느 날 밤.집에서 TV를 보던 중 긴급 속보가 나왔다.영화속 장면이 실제 사건으로 재현된 그 사고는 얼마전 3주년을 맞게 된 바로 9·11 테러다.당시 정신없이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사무실로 출근해 팀원들과 밤을 새웠다.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한마음으로 모여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 상황을 대비했다. 그렇다.우리 팀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사건 하나에도 초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국제전화 번호가 난무하는 시장속에서 우리 팀이 걱정하는 것은 경쟁속에서 뒤처지는 매출 하락이 아니다.우리의 게으름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생중계하는 우리 팀은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고객을 바라보고,해외를 바라본다.그런 마음가짐으로 고객의 소리를 듣고 매 순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전력을 쏟는 게 바로 우리 팀의 힘이다. 데이콤 국제전화팀 김소혜 사원
  • 美대선 다시 ‘백중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일이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판세가 다시 백중세로 돌아섬에 따라 유권자 한 사람,한 사람을 잡기 위한 ‘백병전’에 돌입했다. 양당은 특히 8일과 13일 열리는 부시-케리간의 2·3차 토론회와 이에 앞서 5일 실시되는 딕 체니 부통령과 존 에드워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간의 토론회가 사실상 대선의 승부를 가른다고 보고 하루하루 TV 광고를 교체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양당은 지난달 30일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간의 1차 토론에서 이라크전 등 외교·안보 현안이 대체로 걸러졌다고 보고 2·3차 TV토론의 주요 쟁점이 될 고용과 의료,교육 등 국내 현안의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측은 케리 후보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의료보호 정책과 실업 등 경제 문제를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또 백악관이 이라크 침공전에 논란이 있던 정보를 왜곡,과장해 전쟁의 구실로 삼았다는 의혹이 새로 제기됨에 따라 이를 부시 대통령 공격의 재료로 삼을 태세다.공화당측은 국내 이슈에서도 부시 대통령이 밀릴 분야가 전혀 없다고 장담하면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감세와 교육 정책을 집중 홍보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케리 후보의 대 테러전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공세도 계속하고 있다. CNN과 USA투데이,갤럽이 3일 공동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음달 2일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 가운데 부시 대통령 지지자와 케리 후보 지지자는 모두 49%로 동률을 이뤘다.등록된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49% 대 47%로 약간 앞섰다.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유권자의 51%가 케리 후보를 44%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이라크전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똑같은 51% 대 44%의 수치로 강세를 보여 남은 선거기간 동안 경제와 안보 가운데 어느쪽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가도 대선 승부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安부총리 “진보선 공격·보수선 매도”[전문]

    安부총리 “진보선 공격·보수선 매도”[전문]

    “진보 진영은 저를 신자유주의자로 공격하고,보수 진영은 평등에만 집착하는 반(反)시장주의자,민중주의자로 매도할 때가 많습니다.”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4일 재임 9개월의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지난해 12월 취임한 안 부총리는 ‘K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말이 아홉달이지 하루하루를 천 날처럼 힘겹게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언제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으로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안 부총리는 편지에서 자신의 이념적 지향점은 중도개혁으로,교조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한다고 밝혔다.그럴수록 교육 현안마다 보수·진보 양쪽으로부터 협공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는 듯했다. 안 부총리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우리 사회의 여론주도층과 교육계 인사 등 9만 3000여명.그는 고교등급제 의혹,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현안마다 교육계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을 의식한 듯 “한계를 느낄 때가 많고 성취감보다 좌절과 위기감에 시달리면서 정말 이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안 부총리는 특히 “교육 쟁점은 여론이 반반씩 갈라지는 경우가 많고,사회적 합의를 창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다.”면서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하지만 실은 이념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고 문제해결에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라고 말했다. 안 부총리는 첨예한 이념 대립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고교등급제는 찬성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교육은 수월성과 보편성,경쟁력과 사회적 형평이 상충할 때가 많지만 양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과 조화의 문제로,두 가치는 어떤 경우도 함께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설령 고교간 평균적 학력격차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격차를 개인의 학력격차로 환원하고 선배의 성적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이라고 강조했다.전문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안병영 교육부총리 편지 전문 이 글은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취임 이후 그 동안의 소회를 담아 가까운 지인(知人)에게 보낸 것으로서 정책고객 여러분께 보내드립니다.감사합니다. 2004.10.3 교육인적자원부 홍보기획담당관실 K형 제가 교육부장관직을 두 번째로 맡은 지 9개월이 조금 넘었습니다.말이 아홉 달이지 하루하루를 정말 천 날처럼 힘겹게 보냈습니다.언제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었고,밖에서는 평온하게 보일 때에도 안에서는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형 자존심에 저에게 미리 전화할리 없고 천상 내가 미리 연락을 드려야 마땅한데,실은 그동안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시간을 내어 요즈음의 제 어려운 심경을 형께 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른 새벽시간입니다.혹시 제 사설이 좀 길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일을 두 번째 맡을 때는 여간 모진 결심을 한 게 아닙니다.한번 해 봐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세상에서 교육열이 가장 치열한 나라,전 국민이 교육전문가인 나라,그뿐인가 국민대부분이 교육과 연관하여 적고 큰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런 나라에서 교육부수장을 한다는 게,그것도 한번 본때 있게 잘해 보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미련한지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이 과중한 짐을 짊어 졌던 것은,이 일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추구하는 나랏일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엄청난 멍에임에 틀림없지만,다른 한편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제 이 일을 제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하고,제 온 정성과 열정을 다하여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즈음 가끔 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성취감보다는 좌절과 위기감에 시달리면서 정말 누구에게 이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싶은 심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우선 힘든 것은 교육에 대한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사회가 너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대부분의 교육쟁점의 경우 여론이 반반씩 갈라지는 경우가 많고,그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얼핏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하지만,실은 거기에 이념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고,따라서 문제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 들기가 일쑤입니다. 제 스스로 판단할 때,제 이념적 지향은 대체로 중도개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또 이념이나 교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편입니다.그런데 일단 어떤 쟁점이 불거지면,진보적인 쪽에서는 저를 시장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자로 공격하고,보수적인 진영에서는 평등에만 집착하는 반(反)시장주의자,민중주의자로 매도할 때가 많습니다.언론도 크게 둘로 갈라져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는 일단 이념적으로 상대방을 규정하고(간혹 낙인찍고) 나서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저나 교육인적자원부는 많은 경우 좌우로부터 협공(挾攻)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교육의 경우 수월성과 보편성,경쟁력과 사회적 형평이 상충할 때가 많습니다.그런데 저는 언제나 양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과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두 가치는 어떤 경우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며,문제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자주 쟁점화되는 ‘평준화’ 문제만 해도 그러합니다.저는 라던가,는 입장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제 입장은 는 입장입니다.평준화의 기본틀은 유지하되,그 안에서 다양화,특성화,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내적 역동성과 경쟁력을 보장하자는 입장입니다.말하자면 대중교육의 견실한 보편구조위에 수월성 구조를 효과적으로 접목하자는 접근입니다.다시 말해 가능한 한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른바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차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기 때문입니다.또 오늘과 같이 입시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교등급제가 용인되는 경우,고교서열화가 빠르게 촉진되어 우수고교로의 진학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열풍은 더욱 무섭게 불어 닥칠 것입니다.우수학군으로의 위장전입 등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그뿐인가요.선배들의 대학진학 실적에 따라 획일적으로 후배들의 진학기회가 좌우되는 연좌제 논란은 또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예를 들어 신설학교에 추첨배정된 학생들의 경우,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그들의 학교등급이 매겨져야 하나요.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대학의 여러 전형 요소 중 내신성적과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따라서 학생의 발전잠재력과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내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등급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입장도 강력한 논거를 갖고 있습니다.우선 그들은 학교간의 학력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대학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고교등급제는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또 ‘내신 부풀리기’가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신을 중시할 수 있느냐는 얘기입니다.그런데 설령 고교간 평균적 학력격차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격차를 개인의 학력격차로 환원한다는 것은,더욱이 그것도 선배의 성적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입니다.더욱이 우리의 경우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엄정하게 평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현장에서 내신 부풀리기가 꽤나 성행되는 것도 잘 알고,이 점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렇다고 비교과기록 등 다른 평정요소를 고르게 고려하는 대신,고교등급제로 선회한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됩니다.2008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상대평가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바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어보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뭔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완성된 사람,이미 다 갖춰진 인재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앞으로 대학이 마음먹고 크게 키울 미완(未完)의 좋은 재목을 발굴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따라서 대입전형과정에서 수능점수와 같은 정량적 지표에 집착하기 보다는 발전 잠재력이 큰 사람을 찾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대도시 특정지역 고교 출신이 변두리 소외지역의 고교를 나온 학생보다 언제나 발전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려우며,그러한 이유로 ‘고교등급제의 인정’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2008학년도 대입개혁의 가장 주요한 목표는 고교교육의 중심축을 사교육시장에서 학교 안으로 옮겨오려는 것입니다.따라서 고교교육을 정상화,내실화하는 것이 입시개혁의 주된 목표이며,이를 위해 수능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이고,대신 학교생활을 가장 바르게 반영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을 높이려는 것입니다.당장은 어렵지만 앞으로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비교과기록,즉 독서기록,봉사활동,특별활동,기타 학교 나름의 다양한 창의적 프로그램 의 중요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고교등급제 파동 때문에 새 대입전형제도의 본질과 기본방향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실종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힐 것은 교육부는 고교등급화 불허 입장을 계속 지켜 나갈 것입니다.현재 고교등급화 인정 의혹을 받고 있는 몇몇 대학에 대해 저희는 우선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요구했고,그것이 충분치 못하자 실태조사를 나갔습니다.일각에서는 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저는 지나치게 대학을 옥죄이고,전형자료나 과정을 낱낱이 들춰내는 일은 오히려 대학의 자율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렇게 되면,대학은 앞으로 점점 더 움츠려져서 아예 말썽을 없애려고 교과기록과 점수 한점의 공정성에 더 집착하게 되어 자칫 살아있는 학교교육과정을 중시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와는 반대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그런 이유로 이번 6개 대학에 대한 이번 조사는 사실 확인 차원의 실태조사일 뿐 감사가 아닙니다. K형,제 얘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한국의 교육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그러나 저는 정책의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한국의 교육도 분명히 개선될 것으로 확신합니다.대입전형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이번 입시개혁안은 2002년 대입전형안이 추구하는 큰 방향을 유지하되 운용과정상 나타났던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개선 보완한 개혁안입니다.그 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으셨으면 합니다. 당초 생각에는 내친김에 최근 쟁점화 되고 있는 사립학교법을 비롯해서 몇 가지 뜨거운 논제에 대해 제 입장을 두루 밝히고 싶었습니다.그런데 고교등급제를 언급하다보니 글이 너무 길고 장황해 져서 오늘은 이쯤에서 제 말씀을 줄이려 합니다. 앞으로 자주 글로 문안을 드리려고 합니다.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한 의사소통 이상 좋은 방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귀찮으시더라도 제가 자주 글을 올리겠습니다. 좋은 주말되시기를 빕니다. 不備禮 안병영 올림
  • [추석연휴 안방극장] 드라마·비디오

    ●라이방(KBS1 25일 오후 10시50분) 장현수 감독의 2001년작.각기 개성이 다른 3명의 택시 기사들의 한바탕 소동을 통해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을 그렸다.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의 택시 기사 해곤,학락,준형은 자신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이들은 방바닥에 억대의 현금을 깔아 놓고 산다는 동네 할머니 집을 털기로 작정한다.91분. ●똥개(MBC 25일 오후 11시30분) 곽경택 감독.정우성 주연.2003년작.경찰 아버지를 둔 지방 소도시의 어리숙하지만 용감한 청년의 이야기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철민은 자신의 별명인 ‘똥개’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시골 경찰서 수사반장인 아버지는 꿈도 없고 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민을 구박하며 나무라지만 철민은 여전히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운다.115분. ●집으로 가는 길(KBS1 27일 밤 12시30분) 장이머우 감독.장쯔이 주연.1999년작.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와호장룡’에서 무술의 고수로 등장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시골 처녀의 수줍은 사랑을 보여준 장쯔이의 연기가 돋보인다.원작 소설 ‘회상’의 작가 시 바오가 각본에도 참여했다.시골 소녀와 초등학교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나라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연상시킨다.88분. ●엘시드(KBS1 29일 오후 3시20분) 호세 포소 감독의 2003년작 스페인 영화.카스티야 왕국의 귀족 로드리고는 용감한 청년 기사.그는 고메즈 백작의 딸인 히메나와 사랑을 꿈꾸지만,고메즈 백작은 그녀를 왕의 사촌인 오도네즈와 결혼시키려 한다.로드리고는 무어족 족장들을 석방시켜주고 ‘엘시드’라는 영웅 칭호를 얻는다.그러나 반역죄로 몰려 히메나의 아버지이자 반대파 수장인 고메즈와 뜻하지 않은 결투를 벌이게 되고,실수로 그를 죽인다.73분. ●화성으로 간 사나이(KBS2 29일 밤 1시5분) 김정권 감독.신하균·김희선 주연.2003년작. 돌아가신 아빠가 화성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믿는 어린 소녀 소희는 아빠가 그리운 마음에 지금이라도 당장 화성으로 달려가겠다고 한다.그런 소희의 곁을 늘 지켜주는 이웃집 승재는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화성에서 온 아빠의 편지를 대신 써보낸다.외롭던 소희에게 아빠의 답장은 더없이 반갑고 행복하다.104분. ●스캔들(KBS2 28일 오후 11시) 이재용 감독.배용준·이미숙·전도연 주연.2003년작.프랑스 피에르 드 라클로 원작의 18세기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옮긴 영화.유판서의 정실 조씨부인은 호색한인 사촌동생 조원에게 남편의 소실인 소옥을 범해달라고 요구하지만,조원은 열녀문을 하사받은 청상과부 숙부인을 목표로 정한다.조씨 부인은 숙부인을 ‘함락’시키면 자신의 몸을 주겠다며 거래를 제시한다.118분. ●싱글즈(KBS2 29일 오후 11시) 권칠인 감독.장진영·엄정화·이범수·김주혁 주연.2003년작.일본의 소설 ‘29살의 크리스마스’를 원작으로,일과 사랑과 결혼 등 20대 후반 독신 남녀들의 생활과 고민을 그렸다.주연 배우들의 생동감있는 연기와 톡톡 튀는 대사,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재치있는 연출과 편집으로 세련된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미국 시트콤 ‘섹스 앤 시티’나 ‘프렌즈’가 연상되는 발랄한 작품.108분. ●책상서랍속의 동화(KBS1 29일 밤 12시45분) 장이머우 감독의 1999년작.시골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작은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한달간 자리를 비운다.촌장님은 대리 교사로 올해 열 세 살 밖에 안 된 졸업생 소녀 웨이를 추천한다.선생님은 학생들이 많이 줄었으니 더 줄어들게 해서는 안된다는 당부를 한다.웨이는 출석부를 쓰고 교실 앞을 지키며 학생들을 지도한다.그러나 장휘거라는 학생이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105분. ●킬 빌2(액션) 감독/배우/등급 쿠엔틴 타란티노/우마 서먼·데이비드 캐러딘/18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결혼식장에서 뱃속의 아이와 남편이 살해당한 뒤 펼치는 한맺힌 여성의 복수,그 내막을 알고보니…/전편보다는 덜 잔혹한 영상에 전편을 비꼬는 재기발랄함.패러디 찾는 재미도 ●돌려차기(액션·드라마) 감독/배우/등급 남상국/김동완·현빈/12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만세고 주먹대장 용객은 태권도부와 패싸움을 벌이고,교장은 태권도부에 가입해 예선전만 통과한다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일본 스포츠물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그래도 감동과 웃음을 적절히 버무린 괜찮은 가족용 영화 ●화씨 9/11(다큐멘터리) 감독/배우/등급 마이클 무어/마이클 무어·조지 부시/15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부시 대통령의 무능을 꼬집고 비아냥대며 부시와 빈 라덴 양가의 부적절한 유착관계 조명/통렬한 웃음과 우울함이 동시에.보수성향이라면 불쾌할 수도 ●인어공주(멜로·드라마) 감독/배우/등급 박흥식/전도연·박해일/전체 줄거리/감상 포인트 20대 딸이 엄마의 스무살 시절로 빠져들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팬터지 속에 유쾌함과 찡한 감동을 규모있게 뒤섞었다. ●내 남자의 로맨스(로맨틱 코미디) 감독/배우/등급 박제현/김정은·김상경·오승현/12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프로포즈만 손꼽아 기다리던 현주.하지만 남자친구 소훈에게 갑자기 톱 여배우가 사랑을 고백하는데…/‘노팅힐’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김정은표 연기의 결정판 ●아는 여자(멜로·코미디) 감독/배우/등급 장진/이나영·정재영/15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투수 치성은 ‘아는 여자’ 이연에게 사랑을 발견한다./계보없는 독특한 코미디에 찐한 감동까지.거친 핸드헬드 화면은 다소 신경이 거슬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드라마) 감독/배우/등급 멜 깁슨/제임스 카비젤·모니카 벨루치/15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유다에게 배신당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끌려오고 사형선고를 받는다./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고통스러울 만큼,피와 고문으로 얼룩진 이미지의 폭력 ●나두야 간다(코미디) 감독/배우/등급 정연원/정준호·손창민/15세 줄거리/감상 포인트 소설가가 조폭 두목의 자서전 대필을 맡으면서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어간다./뻔한 조폭 코미디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어리버리한 촌놈 정준호와 점잖은 조폭 두목 손창민의 연기 대결도 볼만
  • [문화마당] 책을 읽으면서 하는 다이어트/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요즘 ‘몸짱’과 ‘웰빙’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다.아름다운 몸매와 건강한 신체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두고 굳이 나쁘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조깅,등산 등을 통해 몸매를 가꾸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과연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건강만이 삶의 전부일까.어쩌면 우리는 지금 우리네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소중한 어떤 것을 잊은 채,유행을 따라 몸을 가꾸는 데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닐까. 몸은 마음을 따른다.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하기 마련이다.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마음의 존재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오로지 겉모습으로서의 몸 가꾸기에만 여념이 없고,마음을 가꾸는 데는 지극히 소홀한 것 같다.마치 마음은 석고처럼 화석화되어 있고,몸만 아름답게 꾸며진 비너스 상 같은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아름답고 건강한 몸만큼 마음 역시 아름답고 건강해야 한다.마음을 가꾸는 데에는 훌륭한 책만큼 좋은 스승이 없을 것이다.지난 30여년 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양서만을 출판해 온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책은 지식의 보고이자,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온갖 정성을 기울여 심오한 지식이 가득 찬 원고를 쓴 사람과 그것을 만든 사람의 영혼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것이 책이다.인생과 삶에 대한 예지로 충만한 책은 우리네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이끄는 소중한 스승과 같다. 그런데 그런 책이 도통 읽히지 않고 있다.아니 읽혀지긴 읽혀진다.몸짱이니 웰빙과 관련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지 않은가.서점마다 이들 관련서적들은 판매망 상위권을 독식하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어찌 되었든 책이 팔린다 하니 사상 최악의 불경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책이 아니라,단지 몸을 가꾸기 위한 책이 팔린다 하니,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숨길 수가 없다. 씁쓸한 일은 또 있다.우리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에서는 학기초가 되면 무슨무슨 교재를 반값에 판다는 내용이 학교 벽보 이곳저곳에 붙거나 인터넷 게시판을 장식하기 일쑤다.어떻게 자신이 밑줄을 그으면서 공부한 책을 그렇게 쉽게 헐값에 내던져 버릴 수가 있는가.자신의 손때가 묻은 책을 헐값에 파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헐값에 파는 것과 같다.이를 ‘마음의 매춘’이라 한다면 조금 심한 독설일까. 한 권의 좋은 책은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운다.그뿐만 아니라 좋은 책은 몸도 날씬하게 만들 수 있다.그 방법은 간단하다.자장면 한 그릇은 한끼 배부른 식사가 된다.좋은 시집 한 권은 한 달,일년,아니 평생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그래서 하루에 두 끼니를 굶고 돈을 모아 좋은 시집과 소설책 같은 양서를 사서 읽는다면,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져 날씬해질 것이고,반면 마음은 삶과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식으로 넘쳐흐를 것이다.이른바 ‘몸짱’도 되고 ‘지식짱’도 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몸은 날씬하고 탄력이 넘치지만 마음이 텅 비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상품 전시장의 마네킹에 불과하다.책을 읽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윤택해지지 않을까.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서울광장] 떠나고 싶은 한국/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떠나고 싶은 한국/손성진 논설위원

    지금 한국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 얼마나 될까.어느 신문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대의 47%,30대의 4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10명중 4명꼴인데 주위를 둘러봐도 수긍이 가는 조사다.하긴 신용불량자 400만명이 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그것만 해도 10% 아닌가. 이민을 왜 가려느냐고 물으면 첫째가 경제불황이고 두번째가 자녀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비관적,비애국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은 염증나는 나라다.한달에 몇백만원을 들여 과외를 시키지 않고는 좋은 대학에 보낼 수도 없는 만성적인 ‘사교육병’,어쩔 수 없는 선택인 ‘일류 대학병’,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잠을 자도 교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놀 곳도 없어 노래방이며 오락실을 전전하는 학생들-교육의 문제점만도 다 열거하기 어렵다. 대학을 졸업해도 무려 12.3%에 이르는 체감 청년실업률로 대변되는 지옥같은 취업 전쟁이 기다린다.직장인들도 하루하루 불안감에 살고 한창 일할 나이에 쫓겨나면 무능력한 ‘고령인구’ 취급을 받게 된다.아이 하나 마음 놓고 맡길 곳 없는 무책임한 안전불감증 사회.몇해 전 시랜드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뒤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간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 김순덕씨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백화점이 무너져 500명씩 떼죽음을 당하고 거대한 다리가 몇번씩이나 붕괴된 일이 있는 나라 아니던가.더하여,정쟁만 일삼는 정치가 그나마 남은 나라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든다.천문학적인 돈을 빼돌린 전직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몇억원쯤은 뇌물도 아닌 듯 비리가 만연하고 투자자의 전 재산을 주식 사기로 털어가는 현실 앞에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연줄문화나 지역감정,무질서한 교통까지 합치면 총체적인 질병,‘한국병’이 된다.경제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부유층의 경우 높은 세율과 투자할 의욕을 꺾는 기업 정책 등이 이유일 것이요,반대로 치솟는 집값,빈부 격차,실직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도 있다.이유는 달라도 인력과 자본이 대거 한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이 무서워 다 떠난다면 누가 병을 고칠 것인가.‘한국병’은 우리가 만들었고 고치는 것도 우리 책임이다.정부와 국민이 손을 맞잡고 풀어야 할 숙제다.부자들이 돈을 투자하고 쓸 여건을 만들어 국부가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도 막는 한편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양면책이 필요하다.그런저런 고통을 감내하며 이땅에 남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어쩌면 이민을 시도할 여건이라도 되는 사람들을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1903년 1월13일 새벽,하와이 호놀룰루항에 첫발을 디딘 102명을 필두로 한 한국인의 이민들은 억척같은 삶을 살며 세계 이민사에 징표를 남겼다.조국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그들은 지금도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다.그들이 이 정도의 여건에서만 태어났다면 조국을 지켰을 것이다.비관적인 면만 보면 모든 게 비관적이다.국가경쟁력이 세계 36위라도 우리보다 낮은 곳도 많이 있고 끌어올릴 능력은 우리에게 충분하다.땀흘려 일하면 경제는 회복될 것이고 교육제도는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조금씩 개선하면 된다.환경 탓,남의 탓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선진국에도 사교육병은 있고 마약과 폭력,왕따도 있다.당장 싫다고 떠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을 일이다.한국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 만한 땅인 것이다. sonsj@seoul.co.kr
  •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골형성부전증 남주희어린이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골형성부전증 남주희어린이

    “뱃속에서부터 팔이 부러진 채 태어난 주희가 장애의 아픔을 참아가며 밝게 자라주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할 뿐입니다.”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주희(4·여)양은 그동안 15차례나 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었다. 잠을 자다 몸을 뒤척일 때도,뭔가에 부딪히기만 해도,심지어 기침을 해도 뼈가 부러지는 주희를 지켜보는 어머니 김완기(34)씨는 안타깝기만 하다. ●뱃속에서 팔 부러진 채 태어나 ‘앞으로 또 얼마나 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할지….’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어디에 부딪히지나 않을까 잠시도 주희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 김씨는 마음 졸이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동생 영찬(3)이가 뜀박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누나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더 불안해졌다. 그래도 주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런저런 위험이 닥칠 때면 소리를 질러 그나마 다행이다. 골형성부전증은 뼈를 형성하는 조직생성이 미진해 발육이 불완전하고 부러지기 쉬운 상태가 되어 몸의 불균형과 신체활동에 지장을 불러오는 병이다. 25만명당 1명꼴로 발병하고 근본적인 치료가 안된다. 대부분 유전적인 요인이 많지만 주희는 돌연변이성으로 판정되고 있다.척추측만증과 청력손실을 동반하는 합병증이 우려된다. 팔,다리 등 뼈가 자주 부러지는 곳에 금속 핀을 박아 뼈를 보조해주고 정기적으로 뼈를 강하게 하는 주사와 약물처치를 받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두 달에 한번꼴로 병원을 찾아 한번에 15만원씩 소요되는 ‘파노린’ 뼈 강화주사를 맞고 있다. ●다리 4곳 금속핀 박고 걸음마 주희는 아직 나이가 어려 특수(장애인)유치원을 다니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또래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것부터가 부담이다.친구들과 부딪히기만 해도 골절되는 중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양쪽 다리 4곳에 금속 핀을 박는 수술을 한 뒤로 처음으로 조금씩 걸음마를 하는 주희가 대견스럽다. 김씨는 “주희에게 멸치와 우유 등 음식을 통해 칼슘 공급을 하려 하지만 몸에서 흡수를 하지 못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두뇌발달은 오히려 또래보다 좋아 커서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후원계좌번호는 국민은행 480001-01-158778 사단법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희귀난치성환자돕기 사랑의 전화는 060-700-1369(1통화 2000원).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우토로 거주 재일동포 “징용된 것도 서러운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60여년 동안 잡초처럼 살아 왔는데 이제와서 보금자리마저 잃고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로 끌려가 자리잡은 터전마저 잃을 처지인 일본 우토로 거주 재일동포 4명과 지원단체 회원 등 8명이 15일 강원도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고국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토로는 일본 교토부(京都府) 우지시(宇治市) 이세탄초(伊勢田町) 우토로 51번지로 일제때 군사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노동자 1300여명이 쑥대밭을 일궈 취락지를 만들었던 곳이다.현재는 65가구 380여명이 살고 있다. 우토로 재일동포들은 이날 한국주거환경학회(회장 문영기 강원대 교수)가 ‘사회적 약자의 주거문제와 주택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원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한복을 차려 입고 참가해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다. 이들은 “태평양 전쟁당시 끌려와 사람이 살지 않던 잡초밭을 일궈 거주지를 마련했지만 지금은 언제 강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안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전후 보상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에 기업차원이 아니라 일본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며 “우토로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편지를 보내는 등 동포들의 간절한 지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우토로 재일동포들은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일본정부 차원의 대책도 촉구할 예정이다. 우토로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처럼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인 것은 일제때 비행장을 건설하던 군수기업으로부터 재산을 넘겨받은 닛산샤타이(日産車體)가 지난 87년 주민들의 승낙없이 거주지 2㏊를 부동산업자에게 매각하고 이후 부동산업자가 주민들을 상대로 퇴거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10여년간 진행된 소송결과 교토재판소는 지난 2000년 주민들이 14억엔에 해당 토지를 일괄 매입하도록 하는 화의를 주선했으나 주민들의 열악한 형편 탓에 성립되지 못해 최종 패소판결이 확정됐다.이에 따라 주민들은 언제 퇴거판결이 강제 집행될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금봉(66) 할머니는 “맨손으로 만든 보금자리를 잃지 않게 고국의 따뜻한 애정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아룽구지소극장 ‘바다와 양산’

    아룽구지소극장 ‘바다와 양산’

    말의 성찬이 넘쳐나는 요즘 대학로 극장가에 침묵과 여백의 미덕을 환기시키는 ‘조용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9일부터 아룽구지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바다와 양산’(마스다 마사다카 작,송선호 연출)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와 소설가 남편의 일상을 지극히 사실적이고,담담하게 묘사한 수채화같은 작품이다. 희곡을 쓴 마스다 마사다카는 서민들의 일상을 문학적이면서도 연극적인 텍스트에 담아내는 일련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인 극작가.‘바다와 양산’은 96년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했다.이번 공연은 지난해 3월 연출가 송선호와 한국 배우들이 일본 교토아트센터에서 한·일 공동프로젝트로 일본 관객에게 선보였던 작품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해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 정숙(예수정)과 소설가이자 고교 교사인 남편 준모(남명렬),그리고 이들이 세들어 사는 시골집의 순박한 부부 순배(박지일)와 화자(이정미).이별을 눈앞에 둔 정숙과 준모 부부에겐 그저 남들처럼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상이 있을 뿐 드라마틱한 갈등이나 구구절절한 아픔이 인위적으로 끼어들지 않는다.그래서 슬픔의 농도가 더욱 짙다. 마을 일이라면 무조건 발벗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순배는 준모에게 철없이 운동회에 나와달라고 부탁하고,화자는 딱한 준모네 사정을 알면서도 밀린 월세 때문에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낙네다.준모에게 원고료를 주러 왔다가 지붕까지 고쳐주는 출판사 직원 경수,준모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출판사 여직원 영신,그리고 맘씨 착한 간호사 남출 등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작품의 결을 윤기있게 빛내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대사와 대사 사이의 풍부한 여백.관객은 대사보다는 오히려 여백안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한다.이를 테면 정숙은 간호사 남출을 남편과 이어주려 하면서도 정작 영신이 찾아오자 남편 손을 자신의 무릎위로 끌어당김으로써 질투심을 드러낸다.연출자 송선호는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남명렬,박지일,예수정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40대 중견 배우들의 앙상블도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배우들 스스로도 “동양적 리얼리즘의 모범”(남명렬)“일상과 연극성이 잘 결합된 ‘웰 메이드’연극”(박지일)이라며 작품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한편 공연기획사 모아는 20대보다는 30대 이상 중장년 관객들이 한층 공감할 만한 공연인 점을 감안,공연장 옆의 베이비 카페와 연계해 무료 탁아서비스를 제공한다.인터넷(www.moaplan.com)에서 미리 신청을 받는다.공연은 26일까지,1만 2000∼2만원(02)744-0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아테네 2004] “장지원 金위해 4년 울었다”

    [아테네 2004] “장지원 金위해 4년 울었다”

    4년간 와신상담해온 장지원의 ‘금빛 왼발돌려차기’가 마침내 아테네에서 작렬했다. 그는 태권도에 출전한 한국선수 4명 가운데 대진운과 컨디션이 가장 좋아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확실한 금메달감으로 지목됐다. 174㎝의 큰 키를 이용해 얼굴과 몸통을 가리지 않고 작렬시키는 왼발돌려차기는 그동안 수많은 상대를 매트에 뉘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올림픽을 앞두고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된 오른발 기술을 강화하고,혹독한 체력 훈련으로 남자선수 못지 않은 스태미나를 기른 것도 주효했다.그의 금메달은 지난 2000년 아쉽게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뒤 “잃어버린 4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며 투지를 불태워온 결실이다. 태권도복을 처음 입은 것은 지난 1995년.경성여실 1학년 때였다.98년 한국체대 태권도과에 입학하면서 올림픽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0년 홍콩아시아선수권 페더급에서 1위에 오른 이후부터.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 최종 결승전까지 진출해 한국체대 동료 정재은과 1-1까지 접전을 벌였으나 코칭스태프는 종료 10초 전 수건을 매트에 던졌다.국제 경험이 많은 정재은이 ‘미완의 대기’인 그보다 올림픽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장지원은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한 정재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상실감과 좌절감은 그에게 긴 슬럼프를 안겼다.2001년 제주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성공적으로 재기하는 듯했지만 이듬해 부산아시안게임 출전 문턱에서 또 미끄러졌다.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팀 체육관에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발차기를 하고 또 했다.하루하루가 ‘와신상담’이었다.1·2차 대표선발전에서 모두 우승해 아테네행 티켓을 거머쥐었고,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사설] 여당의 경제 인식 문제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경제5단체가 경제살리기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를 가졌으나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선에서 끝난 느낌을 주고 있다.재계의 건의가 모두 수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여당 지도부의 발언을 보면 현 경제 상황 인식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한마디로 참여정부의 경제철학과 어긋난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규제완화를 요구하려거든 시민단체부터 먼저 설득하라는 식이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의 지적처럼 투자의 주체는 기업이지 공무원이나 위원회가 아니다.따라서 미래와 수익이 불투명한데 아무리 다그친다고 기업이 투자할 리가 없다.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투자의 장막을 거둬주는 데 일조하는 것이 정치권,특히 여당의 역할이다.그럼에도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며 윽박지르는 것은 여당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극심한 내수 부진과 투자 위축에 고유가 사태가 겹치면서 서민과 영세 중소기업들은 힙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여당과 경제단체가 만나 경제살리기 대책은커녕,입씨름만 하고 말았으니 맥 풀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따라서 우리는 여당이나 재계가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회사 의결권 한도 축소 등 개별 쟁점만 나열하며 맞부딪칠 게 아니라 보다 포괄적 해법을 모색해 주기를 제안한다.규제를 크게 경제력 집중 규제와 수도권 집중 규제 두 가지로 나눠 풀어나가자는 것이다.줄 것은 주고 규제할 것은 분명히 규제하라는 뜻이다. 재계도 이젠 남의 탓 타령을 끝내야 한다.반기업 정서나 과격한 노사분규도 기업이 원인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자칫하면 돈을 쌓아둔 채 배짱만 부린다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
  •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김은영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김은영

    언제 발작할지 몰라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뼈가 부러질까봐 운동도 못한다.하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지만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없다.어쩌다 책을 들어 보지만 곧 놓고 만다. 국내에 몇 안되는 고셔(Gaucher)병 환자인 김은영(가명·26·경남 마산시 창포동)씨.언제 완치될지 기약할 수 없는 천형(天刑)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겹다. 2주마다 병원에 들르지만 자고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신경련으로 고통받고 있다.불과 5분이지만 심한 두통과 전신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뿐만 아니라 장래에 대한 막연함과 사랑하는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녀를 괴롭힌다. 은영씨는 아버지 김모(56)씨와 어머니 박모(50)씨 사이에서 태어났다.위로 세살 많은 오빠와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았다.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건강하게 꿈많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에게 찾아온 병은 단란했던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다.건강하던 오빠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병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결국 1998년 2월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저 세상으로 갔다.고셔병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같은 해 10월 은영씨도 고셔병 진단을 받았다.어머니 박씨는 “처음 은영이가 잠잘 때도 불을 끄지 못하게 하는 등 고셔병증세를 보였지만 오빠가 겪는 고통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만 알았다.”면서 “아들을 고셔병으로 잃었는데 딸마저 같은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늘을 원망했다.”고 울먹였다. 고셔병은 몸속 글루코세레브로시다제(glucocebrosidase)라는 효소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병이다.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병이지만 은영씨 남매는 극히 드문 후천성이다.지난 1882년 간장과 비장이 비대한 환자의 병력을 처음 기록한 프랑스 의사 필립 샤를 어네스트 고셔의 이름에서 따왔다. 글루코세레브로시다제는 인체의 낡은 세포를 없애는 것을 도와주지만 결핍되면 ‘글루코세레브시드’라는 물질이 각 기관에 축적되면서 기능을 떨어뜨려 수명을 단축시킨다.주로 비장과 간장,골수에 축적되지만 드물게 신경계와 림프관·폐·피부·눈·심장 등에도 쌓인다.일반적으로 인구 4만∼6만명중의 1명에게서 발병되며,전 세계적으로 1만여명,국내에는 30여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현재 유일한 치료법인 효소 대체법(ERT)은 대부분 환자들의 증상을 경감시킬 뿐 완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은영씨는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도 참기 힘들지만 엄마·아빠가 받는 고통을 생각하면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박씨는 “그래도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라며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은영이를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유가 50달러시대-긴급 현장점검] (상)中企 제조업체 르포

    [유가 50달러시대-긴급 현장점검] (상)中企 제조업체 르포

    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서구 P아스콘업체.공장 가동이 중단된 채 주변은 빈 대형 덤프트럭으로 넘쳐났다.아스콘(도로포장재) 특유의 기름 냄새가 없었다면 아스팔트 믹싱 플랜트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야적장에 아스콘 원료 중의 하나인 골재와 석분(돌가루)이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 인적이 뜸해 적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하루 8시간 가동해 200t의 아스콘을 생산해야 하지만 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하루 평균 3시간만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오늘은 날씨마저 궂어 아예 공장 가동을 중단했습니다.”(백승기 작업반장) 석유값이 ℓ당 1000원을 웃돌아 운송비가 장난이 아닙니다.연초보다 평균 10% 이상 늘었습니다.그렇다고 운송비를 안 올려주면 차주들이 자재와 아스콘을 날라주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죠.”(김기주 공장장) 이 회사의 올해 공장가동률은 지난해보다 44%가량 줄었다.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원료가 부담이 크게 가중된 탓이다.여기에 미수금마저 불어나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성진(53) 사장은 “유가·운송비 상승으로 생산원가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었지만 아스콘 단가는 10년째 t당 3만 6000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면서 “팔면 팔수록 밑지는 장사이지만 자금 회전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출이 크게 줄어 지난해 40억원에서 올해는 30억원을 겨우 넘길 전망이다. 이 사장은 “인천지역 아스콘업계 관계자끼리 모이면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튀어나온다.”고 소개한 뒤 “특별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유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제 유가의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한국경제의 ‘허리’인 ‘굴뚝업종’이 흔들리고 있다.특히 고유가 민감업종인 아스콘업체와 자동차부품업체 등 중소업체들은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아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경기도 하남시 아스콘 생산업체인 공영사의 김종하(45) 사장은 “아스콘 생산 연료비가 추가로 들어가면서 채산성이 그만큼 악화됐다.”며 “연료가가 더 오르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에게는 요즘 공장가동 시간 단축에 따른 자금난도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지난해는 총 227일가량 공장을 돌렸지만 올해는 100일도 가동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다.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했다.게다가 유가가 더 오를 경우 연말에는 자금 사정이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경기도 파주의 식품용기업체인 G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3800평 규모의 플라스틱공장은 하루 30t 규모의 식품 용기를 생산했지만 지난달 이후 유가 급등에 따른 원자재가 인상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또 원자재 창고에는 보통 30일분의 폴리스틸렌을 비축해 오다 최근에는 1주일치로 대폭 줄였다.올해 매출액은 지난해 100억원의 60% 수준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덕순(48) 사장은 “t당 폴리스틸렌 가격은 지난해 말 110만원에서 이달에는 19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면서 “자금 사정을 감안하다 보니 원자재 비축량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시트벨트와 계기판 보드를 생산하고 있는 경기 화성의 자동차부품업체 K사.기아차와 쌍용차 등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데 철강류와 플라스틱류,화학제품 등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구매담당자인 이철기(44) 부장은 “지난해 말보다 철강제품의 가격이 30% 올랐고,플라스틱 제품도 10% 정도 오르는 등 원자재가격 상승이 20∼30%에 이르지만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업체에서는 5∼10%밖에 인상분을 반영해 주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우리가 원자재 공급을 받는 곳이나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곳이나 그들의 가격 결정이 곧 ‘법’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우리가 제품을 납품하는 자동차업체도 내수 불황으로 자동차가격 인상이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결국 부품업체들이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의 또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 S사도 같은 처지다.주차브레이크,브레이크 레버,기어변속레버를 GM대우 등에 납품하는 이 회사는 철강제품과 플라스틱 제품 등 원자재를 대부분 쓰고 있다. 서상렬(54) 공장장은 “원가 상승으로 인한 제품가격 압박요인이 커지고 있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계속 거래처로부터 일감을 공급받고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가 상승분의 일정부분을 손해 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또 “원가상승도 문제이지만 내수 침체로 자동차 자체가 잘 안 팔리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면서 “앞으로 원자재가격 상승이 계속된다면 부품업체들은 적자 생산을 해야 하고,도산하는 곳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 하남 화성 김성곤 최광숙 김경두기자 sunggone@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올 들어 중국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2003년 승용차 생산량이 전년보다 배가 늘어난 200만대를 넘어서면서 막연히 보고서 전망치 속에 갇혀 있던 마이카 시대는 광저우(廣州),상하이(上海) 등 연해지역의 고소득 도시와 베이징(北京),톈진(天津),선양(瀋陽),다롄(大連) 등 기타 주요 도시에도 도래하게 됐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말 국내외 모든 자동차 전문예측기관은 중국 주요도시의 자동차 대중화 또는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의 시작을 2005년쯤으로 전망했다.WTO 가입 당시 중국의 수입 승용차 관세는 80%에 달했으나,2006년에는 25%로 하락해 국산 승용차 가격하락을 유도,주요 연해도시에서 마이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게 당초 예측이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마이카 시대 최근 통계에 의하면 현재 베이징의 자가용 보유대수는 128만대로 해마다 27만대씩 늘고 있다.상하이의 자가용 보유대수도 25만대로 연간 50% 이상 급증하고 있다.200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승용차와 개인용 차량 보급이 늘어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90년대 자동차 수요의 대부분을 점유하던 ‘관용차’의 퇴장이다.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상하이기차(SAIC)와 독일 폴크스바겐 합작사인 상하이VW에서 1984년부터 생산한 배기량 1800∼2000㏄급 승용차인 싼타나(Santana)의 경우 90년대 생산된 200만대 중 70%가 관용차로 구매된 바 있다.2000년부터 중국정부는 예산절감과 기구축소를 목적으로 ‘관용차’와 기사제도를 없애고,관용차 운용에 필요한 자금을 해당 공무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 자가용을 사서 스스로 운전하도록 유도했다.관용차 제도의 개혁은 각 부처 국유기업으로 확산됐다.그 결과 2001년 자가용 보유대수가 770만대에서 불과 2년 만인 2003년에는 58.3%가 늘어나 1219만대에 달하게 됐다. 둘째는 정부의 승용차 구입장려 정책이다.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할부금융을 통해 개인의 승용차 구매를 장려한 점이다.국유 상업은행의 자동차 대출은 1999년 말부터 허용됐으며,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15만위안(약 2250만원)이 넘는 배기량 2000㏄급 승용차의 경우 차 값의 최대 90%를 최장 5년 4.5% 금리로 대출받아 살 수 있다. ●늘어나는 자동차의 명암 자동차의 급격한 대중화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실대출의 증가다.중국정부는 2004년 초부터 철강·부동산·자동차 등 일부 투자과열 산업에 대해 강력한 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여기에는 자동차 대출도 포함돼 있다. 2004년 5월31일 중국 언론에는 다소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2003년 11월 말 현재 자동차 대출잔액은 1800억위안이 넘었으며 이중 은행이 자체적으로 회수불능 판정을 내린 대출잔액은 52.5%인 945억위안에 달한다는 것이다.2003년 말 중국이 밝힌 주요 국유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총액은 2조 1100억위안.이중 무려 4.5%가 불과 3년 전에 시작된 ‘신생’ 자동차 대출에서 초래된 불량자산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개인신용평가제도 부재를 들 수 있다.중국은 아직 전국적인 통합 전산망을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이 시기 자동차 판매영업소의 광고문구는 ‘당신의 한달 월급으로 자가용을 마련하세요.’였을 정도다.결국 상환능력이 없는 월소득 5000위안(75만원) 정도의 소비자가 A은행에서 대출로 차를 구매하고,이를 상환하지 않으면 A은행에 돌아오는 것은 가치가 떨어져 팔리지도 않을 압류 중고차뿐이다.도덕적 해이에 빠진 소비자는 A은행에서는 신용불량자이지만,다시 B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새 차를 구매하는 악순환이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마이카 시대의 도래로 중국이 겪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도로망 부족과 자동차 문화 부재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다.자전거와 뒤엉킨 도로 위에서 비보호 좌회전이 일상화된 중국내 주요 도시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는 불가피해 보인다.경력이 오래된 택시기사나 회사 기사들이 새로 나온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나서 ‘초보 운전자’를 피해 다니는 일은 베이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2003년 10만 4000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중국은 자동차 사망자 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구조적인 문제점과 향후 전망 중국 자동차산업 하면 단골 메뉴로 여러 회의나 보고서에 등장하는 말이 ‘중복 투자’다.이는 연간 생산규모 444만대의 중국에 완성차 메이커는 96개사에 달한다는 점이며,이중 기본적인 규모의 경제 시현이 가능한 연산 100만대급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상하이기차,중국일기 등 2대 그룹은 연간 80만대 규모이나,1사당 생산량을 단순 계산하면 4만 6000대라는 결과가 나온다.이렇듯 31개 각 성(省),시(市)에 자동차 메이커가 분산돼 있고,이들 지방정부는 모두 자동차산업을 지역 육성전략 산업으로 지정,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이러한 산업적·지역적 연유로 중국의 마이카 붐은 앞으로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전망이다.자동차 불량대출의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출기한 단축과 대출비중의 축소에 불과하다.급기야 가장 많은 자동차 대출 불량자산을 보유한 농업은행은 올 8월부터 개인용 자동차 대출을 중지했다.그럼에도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중국의 마이카 붐은 다소 문제점이 많은 조급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그러나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어가는 아파트보다는,그 10%에 불과한 자동차를 먼저 사겠다는 중국인 동료와 결혼식까지 미루어가며 ‘찜’해 두었던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그의 또 다른 친구들이 하루하루 거대한 소비군으로 자라나고 있는 한 중국에서의 진정한 ‘마이카 붐’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베이징 김동하 포스코 경영연구소 연구위원 dhkim@posri.re.kr ■ 빈부격차로 계급갈등 심화 |베이징 이석우특파원|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중국사회에 빨간 불이 켜졌다.이로 인해 계급간 적대감이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빈부격차가 고스란히 세습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사회과학원 사회과학연구소 리웨이(李) 박사는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신 정부는 전과 달리 인민내부의 계급간 모순을 언급하면서 그 심각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1995년 무렵부터 계급간 긴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그는 이어 “권력유착을 통한 축재와 불로소득의 척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압력이 커가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 안후이성 부성장 왕화이중(王懷忠) 사형선고,랴오닝성 부성장 류커톈(劉克田) 면직 및 사법심사,선전시 전 부시장 왕쥐(王炬) 20년형 등 고위급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사법처리도 이같은 사회적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공산당의 안간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간 계층은 엷고 부자·빈자로 구성된 양극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지난해 상하이의 경우 18%의 소비지출 증가는 자동차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조사결과도 부익부 빈익빈의 진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관련,리 박사는 노동자계급의 급격한 지위하락을 꼽았다.“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나라란 과거 헌법규정은 역사책에만 남아 있지요.어느 특정계급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장쩌민 전 주석이 퇴임 직전 헌법에 삽입한 3개 대표론도 기업가 등 전국민,전계층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시한 것입니다.” 중국 사회는 제도상 혁명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호구제도의 폐지가 그것.리 박사는 “정부가 호구제의 전면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빠르면 올해나 내년 중에는 결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시민과 농민이란 이원적 호적제도에 따라 자유로운 거주이전을 막아 왔는데 열린 사회로의 진전이 이뤄지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농촌 등 다른 지역에서 대도시로 유입돼 온 부모들의 자녀들도 호구제란 제도로 인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자녀 교육을 위해선 한 학기에 600∼800위안가량의 학비를 납부해야 한다.농민의 자녀,호구를 얻지 못한 저소득 전입 인구의 자녀들은 돈을 내지 못해 의무교육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리 박사는 호구문제가 해결돼도 “재정문제를 감안할 때 향후 10년 안에 외래 유입자의 자녀들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 세습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기초를 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진전이 남미처럼 엷은 중간계층에 부자와 빈자로 양분된 양극 계층구조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wlee@seoul.co.kr
  • “전국정당화 열쇠 영남에 있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4·15 총선과 6·5 재·보궐선거 때 좌절된 동진(東進)정책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영남 껴안기를 통해 영남 소외론을 잠재우고 전국 정당화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신기남 의장은 16일 부산에서 소속 의원 12명과 영남지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 간부회의를 여는 것을 시발점으로 3일간의 영남지역 순회일정에 들어갔다. 신 의장은 전국 정당화와 관련해 “결코 시지푸스의 신화는 아니다.반드시 공든 탑을 완성시킬 것이다.”면서 전국 정당화를 위한 “열쇠가 부산,울산,경남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영남지역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영남권 관계자들은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주문사항을 쏟아냈다. 먼저 이해성 부산시당 위원장은 “부산시민들이 신행정수도 건설이 오히려 부산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결과로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하면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지원 ▲한국전력,토지공사 등 대규모 공공기관의 부산 유치 ▲영상.해양.금융 전문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관유치 지원 ▲반환 미군기지 부지의 부산시 무상이전 ▲국고보조금 우선배분 등을 요구했다. 송철호 울산시당 위원장은 울산에 조속한 국립대 설립을,선진규 경남도당 위원장은 조직강화를 위한 자금지원을 호소했다.이영 APEC 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예산지원을 위한 고위 당정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경태 의원은 “낙선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난의 시간인데 당에서 배려하겠다는 약속이 있은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서“조속한 시일 내에 낙선자들로 구성되는 특위를 구성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신 의장은 영남지역에서 “우리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면서“언젠가는 영남지역에서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직의원 외에 당정협의에 참여하는 원외 정책위원제도를 둬서 영남출신을 많이 배정하겠다.”면서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어도 10명이 있는 것 같은 효과가 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책꽂이]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지음,정병선 옮김,지호 펴냄) 영국의 뇌과학자가 밝히는 뇌의 신비.뇌졸중은 때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움직임은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특이한 장애를 초래한다.또 전색맹을 앓는 사람들에겐 세상이 회색이나 베이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이것은 눈의 이상으로 생기는 장애가 아니다.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이나 소리,촉감을 단순히 흡수하는 스펀지가 아니다.우리가 보고 인식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뇌에서 비롯된다.“눈이 아니라 뇌로 사물을 본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1만 5000원.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속 나체(문국진 지음, 예담 펴냄) 서양미술사에서 인간의 누드는 때론 도발적인 느낌을, 때론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중요한 주제다.하지만 자극적인 성적 표현은 어느 시대에나 금기시돼 오랫동안 신화의 주제를 빌려서야 누드를 그릴 수 있었다.똑같은 알몸이라도 르누아르나 쿠르베의 작품에선 힘든 노동을 마친 촌부를 통해 건강한 삶을 표현한 반면,로트레크는 몸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매춘 여성의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1만 6500원. ●프로이트 프리즘(변학수 지음,책세상 펴냄) ‘문학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프로이트 심리학의 무의식과 억압,상징,꿈,실수행위,강박,노이로제 등을 살폈다.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이 “프로이트는 작가이며,정신분석은 문학이다.”라고 했듯이,프로이트는 문학적 글쓰기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유럽 문학 전통을 관류하는 풍부한 실례를 저술에 담았다.이드(개인의 본능적 충동의 원천)를 반영하는 존재로서의 문학,놀이나 무의식으로서의 문학은 프로이트를 효과적으로 읽는 소중한 수단이다.1만 3000원.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나카자와 신이치 지음,김옥희 옮김,동아시아 펴냄) 물신숭배의 허구를 지적하고 그 대안을 살폈다.저자(주오대 교수)는 전문적인 주제를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해온 일본의 현대사상가.그의 시선은 전방위 인문학자답게 종횡무진이다.저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포틀래치(미국 북서안 인디언들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행하는 겨울축제의 선물분배 행사)를 예로 들며 ‘물’의 배타적 소유는 우주의 건강한 운행을 저해한다는 일종의 우주적 책임감을 강조한다.1만원.
  •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벽산 김재우 사장은 영락없는 용장(勇將)의 이미지다.180㎝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삼국지 관운장의 풍모다.올해로 벽산 CEO(최고경영자)가 된 지 7년째.IMF(국제통화기금)사태 속 붕괴 직전에 놓였던 적자회사를 단단한 흑자회사로 돌려놓은 능력이 장수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불황기를 맞아 회사 업무 외에도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바쁜 강연 일정이 잡힌 그를 만나 36년 경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위험+기회’ -1998년 1월3일 사장 취임식장은 바깥 날씨보다 더한 한기가 돌았다.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선언한 지 딱 1개월 되던 시점.40년 된 회사와 1000명 직원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다. 97년 적자는 300억원에 달했고,부채는 1800억원이 넘었다.외상매출의 5분의1 정도는 대금을 못받는 악성채권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패닉상태였다.새 사장은 건축자재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었고,직원들은 극도의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합친 말 아닌가.”취임한 지 3개월째 들면서 지난 2개월동안의 구상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우선 직원을 980명에서 45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하지만 사람들을 그냥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150명에게 우리회사 제품의 총판점을 차릴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했다.건축자재 시장이 불황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수요를 잘 예측·분석하는 최일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노련한 벽산의 직원들이야말로 우리 제품을 제대로 팔아줄 사람들이었다.당시 2∼3명씩 한 조가 돼 창업한 총판점 가운데는 현재 연 매출액이 100억원에 가까운 곳도 있다. -당시 금리는 살인적이었다.1개월짜리 CP(기업어음) 이자가 연 30%에 달했다.반면 회사매출의 60%는 외상거래여서 자금이 제대로 안돌았다.그나마 이 중 30%는 부도 등으로 대금을 고스란히 떼이는 판이었다.차라리 물건을 안 파는 게 나았다.거래처를 4000개에서 400개로 10%만 남기고 다 없앴다.판매목표는 전년의 60%로 낮췄다.목표를 무리하게 잡아 ‘부실판매’를 낳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대신에 거래조건은 강화해 반드시 담보가 있는 곳에만 납품하게 했다.그 외에는 100% 현금거래였다.얼마 안 지나 취임 때 16%에 달하던 부실채권 발생률이 0.1% 이하로 떨어졌다. -인력과 고객의 구조조정에 이어 그해 5월에는 의사결정의 슬림화에 착수했다.내가 가진 결정권을 10%로 줄이고 일선 책임자에게 90%를 넘겼다.조직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CEO가 바빠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미국의 경영학자 알프레드 스로운의 “1%를 경영하라.”는 말처럼 CEO가 바쁜 이유가 책상에 앉아 결재할 서류 때문이어서는 안된다.지금도 나는 “반드시 내 결재가 필요한 일인가.” 자문해 본 뒤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몇십억원이 집행되는 일이라도 직원들에게 맡긴다.CEO가 바쁘면 변화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나한테 걸레면 남한테도 걸레” -그해 8월6일 워크아웃이 시작됐다.회사 전체매출의 40%를 차지하던 전남 여수와 경남 진해의 석고보드 공장을 프랑스 라파즈(유럽 최대의 시멘트 골조회사)에 매각했다.생산량의 절반은 우리가 판매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벽산의 대명사 ‘석고보드’를 매각하려는 데 임직원의 반대가 거셌지만 나는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며 일축했다.나에게 소중한 것을 팔아야 남이 사준다는 얘기였다.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한 구상이 있었다.“글로벌화는 불가피하다.하지만 우리 업역의 특성이나 규모로 볼 때 글로벌화를 선도하기는 어렵다.그렇다면 글로벌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지금도 여수·진해 공장에서 생산된 석고보드는 각각 50%씩 ‘벽산 석고보드’와 ‘라파즈 석고보드’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던 2001년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경영정상화 성공사례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임직원 30여명과 함께 97년 300억원 적자회사에서 2000년 30억원 흑자회사로 전환시킨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냈다.제목은 ‘누가 그래? 우리 회사 망한다고’.이어 2002년 워크아웃 공식졸업 이후에는 2탄으로 ‘거봐! 안망한다고 했지’를 출간했다.벽산이 금세라도 망할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던진 성공리포트였다. -70년대 중동에서 불모의 열사를 누볐던 일들은 두고두고 나에게 재산이 됐다.특히 75년 1억달러 수주기록은 김재우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각인시킨 일로 남아 있다.73년 나는 30세에 삼성물산 영국 런던지사장으로 갔다.이제 막 산업화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진국.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이듬해 나는 레바논 베이루트지사장으로 발령났다.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던 당시는 거꾸로 중동 ‘오일달러’를 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회사에서는 해결사로 나를 보냈지만 나의 상심은 대단했다.여유로운 생활은 물론이고 그룹내 최고의 영어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아랍의 현자(賢者) 한사람을 만났다.그는 “사람의 운명은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당신은 경쟁자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나았기에 원치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장기적으로 더 나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뜨거운 모랫바람을 맞아가며 중동 각국의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만났다.어느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성 관료가 나를 찾았다.“군복,탄띠,요대 등 군대 비축물품을 300여가지 장만하려는데 삼성물산에서 공급할 수 있겠느냐.”그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있게 “예스”라고 했다. 수주금액은 무려 1억 100만달러.당시 삼성물산의 연간 전체 수출액이 2억달러였다.다행히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서 나와 회사는 중동지역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81년 우리나라가 이라크와 국교수립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교류단장으로 미력이나마 공헌한 것도 그때 인연이 컸다. -우리 직원들은 매월 한권씩 책을 돌려본다.같은 책을 150권 사서 서로 돌려보고 독후감을 작성한다.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50여권을 읽었다.책 한권을 고르기 위해 나는 두 세권을 읽는다.얼마 전에는 조난당한 남극탐험대원 27명을 2년 만에 무사히 생환시킨 어니스트 새클턴 함장의 이야기를 다룬 ‘인듀어런스’를 감명깊게 봤다.고등학교 때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만큼 큰 감동이었다.둘 다 살아있는 한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마찬가지로 요기 베라(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의 명언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다.‘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회의시간에 고개 숙이고 자료 읽는 사람과는 얘기를 안한다.생각을 안해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즈를 자주 인용한다.생각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내는 홈즈와 단서를 뻔히 눈앞에 보고서도 추리를 하지 않는 그의 친구 존 왓슨이 비교대상이다.내가 최고로 치는 가치도 의사결정의 속도다.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언제’(When)”라고 했다.빨리 내린 잘못된 결정이 늦게 내린 바른 결정보다 차라리 낫다는게 내 신조다.나는 회의를 마칠 때 반드시 논의된 사항들의 중간점검을 하게 한다.그래야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아무 것도 결정짓지 못하는 회의는 쓰레기다. -벽산은 98년 워크아웃 개시와 동시에 정보화 투자를 시작했다.전 사원이 상여금을 반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추진한 게 ‘1인 1PC 갖기’였다.이를 ‘사치’라고 느낀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평생직장은 없다.이곳을 떠나 다른 조직에 가더라도 정보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며 다독거렸다.우리가 빠르게 수렁에서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화를 통한 생산효율 향상이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 중 업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하지만 그는 만 80이 된 지금도 대통령 특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그는 ‘희망보다 후회가 많을 때 늙는다.’고 했다.나는 항상 ‘오늘은 내 여생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직원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그런 점에서 아침시간은 ‘황금을 물고 있는’ 귀한 시간이다.하루에 1시간만 일찍 움직이면 1년에 보름이 내 손에 들어온다. ■ 김재우 사장은 ㈜벽산 김재우(金在祐·61) 사장은 별명이 많다.삼성에 있을 때에는 ‘일공일’(101)로 통했다.197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1백만달러(1억 100만달러) 납품을 따낸 게 인연이 됐다.98년 벽산에 온 뒤에는 ‘구조조정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요즘은 온갖 강연이나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받는 ‘스타 강사’다.30년 삼성맨 생활을 마치고 벽산의 최고경영자로 와서 경영권한 이양,매출목표 감축,거래선 축소 등 역(逆)발상을 통해 회사를 빠르게 정상화시켰다.97년 1816억원(부채비율 297.1%)이던 부채는 현재 210억원(59.2%)에 불과하다.지난해 매출은 2000억원이며 OA플로어,슬레이트,재래식 천장,미네랄 울,압출발포 폴리스틸렌 등에서 업계 1위다.그의 경영철학은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다.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 지 알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44년 경남 마산 출생 ▲경북사대부고·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삼성물산 특수사업본부장·정보산업 총괄전무,삼성항공·삼성물산·삼성중공업 부사장 ▲97년 벽산건설 사장 ▲98년 벽산 사장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석유·원자재값 폭등…중소기업 ‘줄도산’

    석유·원자재값 폭등…중소기업 ‘줄도산’

    “원료가격 비중이 50% 이상인 플라스틱업종에서 최근 원료가격은 30∼40% 올랐는데 대기업의 납품가는 요지부동입니다.납품가가 최소 15∼20% 인상돼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데 죽을 맛입니다.”(포장용지업체 관계자) “원자재 가격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올리지만 납품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시간 끌기가 다반사죠.올리더라도 하청업자의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생색은 다 냅니다.”(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 ●대기업들 원료값 상승분 떠넘기기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쌍림동에서 열린 한국플라스틱협동조합연합회 대의원 총회에서는 플라스틱 원료가의 수시 인상으로 폭리를 취한 대기업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또 부도 위기에 직면한 7000여개의 플라스틱 중소 제조업체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70개 회원사 대표들은 문 닫기 일보 직전이라며 대기업들이 유가 인상을 빌미로 플라스틱 원료가를 40% 가까이 인상해 수천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고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줄도산 위기감에 휩싸였다.원자재값 고공행진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과 ‘2차 원자재 대란’의 충격이 지난 3월보다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15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월중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이달 중소제조업 업황전망 건강도지수(SBHI)는 내수 침체와 고유가,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기준치 100을 밑도는 78.9를 기록,3개월 내리 하락세를 보였다. ●“앞이 안 보입니다” 고유가 파고에 직격탄을 맞은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은 채산성 악화로 라인 축소뿐 아니라 줄도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실제로 350여개 업체가 도산하거나 조업을 중단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전기·전자,파이프,포장용 필름의 소재인 폴리에틸렌(PE)의 중국도착도 가격은 t당 1000달러로 지난 4월 평균가인 820달러보다 21% 올랐다.또 전기·전자와 자동차 소재인 폴리프로필렌(PP)은 지난 4월(810달러)보다 160달러나 오른 970달러를 기록했다. 플라스틱연합회 박용태 전무는 “폴리에틸렌 등 원자재 값은 치솟는데 납품가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원료가격 인상과 관련한 대기업의 행위에 대한 관계당국의 조사와 원료에 대한 원가공개,원유가격과의 연동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철금속 가격도 최근 폭등하면서 관련 중소업체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동관 제조업체인 삼포산업 관계자는 “전기동 시세가 t당 370만원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0만원 정도 올랐다.”면서 “공장 가동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고철 대란’으로 부도가 속출했던 단조·주물업체들도 최근 고철가 상승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이달 들어 국제 고철가격은 t당 310달러로 연중 최고가인 33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흥국단철 유종욱 회장은 “고철 국제가가 오르면 바로 반영하던 철강업체들이 지난 4·5월 국제 시세가 하락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했다.”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시점에서 또 가격을 인상하면 정말 큰 일”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정부 지원도 미비 원자재값 상승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원청업체들의 횡포.원자재값 상승 부담이 납품가로 이어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제품가 인상에 따른 판매 부진을 우려해 이를 허용치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가 인상분은 고스란히 중소기업들이 뒤집어 쓰고 있다.마치 원자재 공급 업체와 대기업(원청업체)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형국이다.여기에 원자재 확보도 쉽지 않아 선구매를 하는 데다 원청업체로부터 현금 아닌 어음을 받다 보니 자금 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특히 일부 중소업체들은 도저히 가격을 맞추기가 힘들어 대기업 납품을 포기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도 미흡하다.중소기업청은 원자재 대란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200억원을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지난 6월 바닥이 났다.반면 중소기업들은 고유가에 따른 자금 부담이 심각하다며 자금지원을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 자금 지원은 현재 고려치 않고 있다.”면서 “다만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을 연말까지 6개월 연장키로 했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데스크 시각] 기적은 오지 않는다/구본영 국제부장

    며칠 전 자그마한 IT벤처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연봉 1500만원에 경리사원 한 명을 뽑으려 하는데 국내 명문여대를 나와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딴 재원이 지원,당황했다고 했다.사람은 탐나는데 어차피 몇달 못 버티고 떠날 것으로 보여 뽑을지말지 망설여진다는 요지였다. 예전 같았으면 뉴스거리가 될 만한 얘기다.하지만 기자는 이를 별로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스스로에 대해 오히려 놀랐다.아마 기자이기 이전에 신문산업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전체 국내 신문시장도 하루가 다르게 사양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 차원을 떠나 한국 경제로 눈을 돌려봐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청년실업 문제는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고,코스닥 시장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등 온통 가슴 답답한 뉴스 일색이다.우리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두 이웃 국가들의 경제적 형편이 활짝 펴지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진다.아편전쟁 이후 긴 잠에 빠져 있던 중국은 이제 기력을 회복,아시아를 지배하던 ‘공룡’의 위력을 재연 중이다.일본 경제도 올 들어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완연한 회생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우리 경제가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즈음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지낸 야마니가 바로 그다.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전략을 주도하면서 1970∼80년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그는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이는 “결국엔 석유시대도 끝나,석유는 아무 쓸모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으로 이어진다.OPEC이 지나친 고유가정책을 펼 경우 범세계적 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시켜 ‘석유시대의 종언’을 앞당길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을 게다. 어느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인물의 말에는 나름대로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그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의 문제다.야마니의 ‘신기술에 의한 석유축출론’도 그 핵심 메시지는 개인이든,국가든 하루하루 일상에만 안주해서는 미래의 안위를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기자가 몸담고 있는 신문시장의 위기도 종이가 부족해서 빚어진 게 아니지 않은가?인터넷과 뉴미디어라는 대체기술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지 못하는 데에 인쇄매체의 진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외신들이 전하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 호조 비결도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연구개발(R&D) 연구인력은 일본(65만명)보다 많은 81만명이나 된다고 한다.R&D분야의 일종의 인해전술이다.일본도 질적인 R&D 투자에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조사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은 연구개발 투자 부문에서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우리의 경우 최근 수년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었고 지금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길거리에 넘쳐나는 청년 백수들이 그 징표다.나폴레옹은 “현재의 고통은 잘못 보낸 과거로부터의 복수”라고 갈파했다.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지도급인사들이 되새겨야 할 경구다.정말 역사의식이 있는 지도자라면 공허한 구호나 입씨름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을 뿌리는 데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둬야 한다.당대의 개혁주의자라 할 정약용도 “(배고픈)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정치의 첫번째 과제”라고 말했다.기적은 그냥 오지 않는 법이다. 구본영 국제부장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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