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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어느 60대 세입자의 자살 누가 책임지나

    서울의 한 공원개발 예정지역에서 당국이 강제퇴거를 진행하는 과정에 60대 세입자가 또 고귀한 생명을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에 세들어 살던 김모(66)씨가 닷새 전 철거용역업체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뒤 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난 1월 용산사태 이후, 철거 갈등으로 생명을 잃는 사건이 재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겨울철에 철거를 강행한 서울시 측이나 자살로 항의한 세입자 모두 이성적 태도를 지키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먼저 서울시 측은 공원개발을 차질 없이 진행하려고 무리수를 둔 게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의 발단은 임대주택 입주권을 준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행법상 철거 세입자에게는 입주권과 이전비를 모두 주게 돼 있다. 법원도 관련 행정소송 1심 판결에서 세입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상급심을 지켜보지 않고 강제퇴거에 나선 것은 경솔했다. 물론 철거 지연으로 사업이 늦어지면 하루하루 재정 투입이 불어난다. 그렇더라도 공원 조성이 시급한 사업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이 추운 겨울에 아파트의 윗집 옆집을 헐어내며 세입자의 퇴거를 압박한 데는 문제가 있다.정부는 용산 사태 이후 각종 개발시 세입자에 대한의 법적 보호를 약속했다. 국회는 관련법을 싸고 1년 내내 공청회로 시간 끌고 정쟁으로 공전해 입법이 지지부진했다. 그런 점에서 김씨의 죽음에 대해 서울시 등 정부는 물론 국회도 책임이 크다.
  • 김명민·하지원 “당신이 있었기에”…청룡상 남녀주연상

    김명민·하지원 “당신이 있었기에”…청룡상 남녀주연상

    ‘내사랑 내곁에’의 김민명과 하지원 커플이 제30회 청룡영화상에서 남녀 주연상을 함께 수상하며 영광을 서로에게 돌려 시선을 모았다. 2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김명민은 ‘박쥐’의 송강호, ‘국가대표’의 하정우 등 쟁쟁한 남우주연상 후보들과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결과, 남자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김명민은 ‘내사랑 내곁에’의 루게릭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0kg 이상을 감량하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런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겸손한 말로 소감의 말문을 열었다. 먼저 김명민은 ‘내사랑 내곁에’의 박진표 감독에게 특별히 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루게릭 환자 역할을 맡아 하루하루 말라가는 나를 위해 박진표 감독은 함께 식사를 걸렀다.”고 밝힌 김명민은 “박진표 감독은 내게 최고의 감독이다.”고 말했다. 또한 극중 함께 부부로 열연한 하지원에게도 “너로 인해서 ‘내사랑 내곁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김명민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하지원은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하지원은 배우 데뷔 11년 만에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의미를 더했다. 청룡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앞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한 하지원은 “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데, 인기스타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오니 여우주연상까지 욕심은 났다. 하지만 정말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특히 하지원은 ‘내사랑 내곁에’로 주연상을 동반 수상한 김명민에게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명민 선배를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명민과 하지원은 각각 지난달 대종상과 지난 1일의 대한민국 대학영화제에 이어 청룡상 남녀주연상까지 2관왕을 차지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女談餘談] 거울속의 그 남자 그 여자/강아연 산업부기자

    [女談餘談] 거울속의 그 남자 그 여자/강아연 산업부기자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을 보고 한동안 그의 노래 ‘맨 인 더 미러’를 흥얼거리고 다녔다. 선율도, 가사도 너무 아름다웠다. ‘난 거울 속의 남자로부터 시작하네. 그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이보다 더 명확한 메시지는 없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나도 변화를 해야해. 나 자신부터’ 그리고 얼마 뒤 문화부에서 산업부로 발령이 났다. 부서를 옮긴 지 이제 2주일째. 역시 변화는 쉽지 않다는 걸 하루하루 실감한다. 급선무는 새 부서 환경에 얼른 적응하는 것. 신문은 기자가 적응하도록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산업부로 온 그날부터 바로 산업 관련 기사를 써야 했다. 배치받은 출입처에서 부지런히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노트북 가방에는 영화잡지 대신에 경제신문을 구비해 넣었다. 데스크의 ‘갈굼’을 적게 받기 위해 새 데스크의 스타일을 빨리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앞서가는 마음에 비해 뇌와 손가락은 굼뜨기 짝이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선배들의 잔소리를 보약처럼 달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평소 해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변화의 고통은 몸이 먼저 호소하고 나섰다. 우선 숙면이 어려웠다. 절대적 수면 시간도 부족하지만, 낮동안 긴장한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밤에도 잠을 깊이 이룰 수가 없었다. 입안에는 전에 없던 염증도 생겼다. 노랗게 여문 염증을 보노라면 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맨홀이 떠올랐다. 입술은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졌다. 긴장을 할 때마다 자꾸만 입술을 핥아 보습제를 발라도 계속 껍질이 일었다. 그래도 침이 마른다. ‘…나는 변화를 일으킬 테야, 바로 오늘. 알죠? 그 사람 바로 그 사람부터 시작해야 해요. 행동으로 옮겨야 해요. 바로 지금’ 여전히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면서 거울 속의 한 여자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변화를 앞두고 막연히 두려움에 떨던 때보다 변화 가운데 서 있는 지금이 낫다고. 그나저나 궁금하다. 거울 속의 그 남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강아연 산업부기자 aret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프로배구 드래프트 파동 스타 박준범

    [스포츠 라운지]프로배구 드래프트 파동 스타 박준범

    “3학년은 모두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앉아 있던 그는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과 함께 참가한 3학년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13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2009~2010 프로배구 신인드래프트에서 단장 회의 끝에 3학년은 참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 원칙을 무시한 처사에 반발심이 생겼지만, 선배들과 동료들을 생각해 끝내 발길을 돌렸다. 대학최고 ‘거포’로 꼽히는 한양대 3학년 박준범(21) 얘기다. 다음달 2일부터 중국과 홍콩에서 열리는 2009 동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인천의 국가대표팀 숙소에서 만났다. ●대학 최고 거포 “더이상 상심 없다” 드래프트 파동 얘기를 꺼내자, 박준범은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행사 3일 전까지도 자신이 나가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루하루 말이 바뀌자 그냥 포기하고 있던 차에 한양대 박용규 감독으로부터 사흘전에서야 참가할 것을 통보받았다.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부담도 컸다. “솔직히 그날 화가 많이 났어요. 하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한다고 하니까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죠.” 박준범은 다 지난 일이라는 듯 애써 웃어 보였다. 박준범은 그를 데려가려는 신생팀 우리캐피탈과 이에 반발하는 타 구단 간의 희생양이 됐다. 그가 도대체 어떤 선수이기에 이런 논란이 생긴걸까. 박준범은 대학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뛰면서 기량을 검증받은 국내 대학 최고 왼쪽 날개다. 특히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걸로 평가된다. 박준범에게 목표를 묻자, “김요한과 문성민 같은 국내 최고의 공격형 레프트가 되는 게 목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데뷔하면 우승이 목표 그가 배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말부터다. 실업배구 시절 현대자동차서비스(현대캐피탈 전신)에서 뛰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아버지 박형용(47)씨의 영향이 컸다. “배구 한번 해 보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별 생각 없이 발을 들였지만, 이제 배구는 그의 인생 전부가 됐다. 그가 정식으로 시합에 나간 건 중2때. 봄철남녀중고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그 때부터 배구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였다. 키가 커서 센터로 활약하던 그는 고3 때 라이트로 전향한다. “파워 넘치는 강스파이크로 주목을 받는 라이트에 매력을 느꼈어요. 시합도 라이트로 나갔죠.” 그가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한 건 이 때부터. 그는 각종 국내대회에서 MVP를 포함, 개인상을 휩쓸며 고교 최강자로 군림했다. 대학 1학년 때 그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본 한양대 박용규 감독은 “라이트로 프로에 나가면 용병에 밀려 벤치 신세로 전락한다.”며 그를 레프트로 돌렸다. 하지만 1학년 말 무렵 한 차례 고비가 왔다. 발바닥에 난 사마귀 때문에 아파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된 것. 결국 제거수술을 했다. 그는 1년 농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겨울훈련을 뛰지 못해 조바심이 났다.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두 달이나 운동을 쉬다보니 심적으로 힘들었죠. 하지만 봄철대회 이후 기량이 다시 올라와서 안도했죠.” 그는 빨리 프로 무대에 나가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1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대학에서 프로에 대비한 훈련을 착실히 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프로팀에 가면 꼭 한번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다.”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글 사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박준범 프로필 ▲출생 1988년 6월12일 서울 ▲체격 198㎝, 90㎏ ▲학력 대전 유성초-대전 중앙중-대전 중앙고-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3학년 재학중 ▲가족관계 아버지 박형용(47)씨, 어머니 최옥선(45)씨, 여동생 박지연(16) ▲징크스 만들면 골치 아파서 일부러 안 만든다 ▲별명 짜방이(곱슬머리가 자장면을 닮았다고 해서) ▲수상경력 2007 여름철 대학배구대회 MVP, 2007 가을 대학배구대회 서브상, 2007 대학배구최강전 베스트6, 2008 봄철 대학배구대회 서브상, 2008 여름철 몽골 동아시아배구대회 우승 MVP(한양대 소속으로 출전)
  • 2009년 한국 영화 명대사 ‘베스트 10’

    2009년 한국 영화 명대사 ‘베스트 10’

    “넌 하루하루가 사랑일지 몰라도 내겐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가 ‘제30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맞아 지난달 18일부터 청룡영화상 홈페이지에서 실시된 ‘2009 한국영화 명대사 베스트 10’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내 사랑 내 곁에’ 외에도 ‘국가대표’, ‘해운대’ 등 경제적 한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저력의 한국영화들은 팬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을 남기며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탄생시켰다. 네티즌들은 이번 이벤트를 통해 자신만의 명대사들을 아낌없이 추천하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다음은 ‘2009 한국영화 명대사 베스트 10’ 1위 ‘내사랑 내곁에’ 루 게릭병이 악화된 백종우(김명민 분)가 극중 연인인 이지수(하지원 분)에게 “넌 하루하루가 사랑일지 몰라도 내겐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2위 ‘국가대표’ 차헌태(하정우 분)가 동료들을 다독이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3위 ‘해운대’ 김 휘 박사(박중훈 분)가 쓰나미가 오기 직전 수송기에 실려 가는 딸을 보며 “내가 네 아빠다!” 4위 ‘애자’ 최영희(김영애 분)가 죽어가며 딸 박애자(최강희 분)에게 “에미 먼저 가서 미안해.” 5위 ‘굿모닝 프레지던트’ 차지욱 대통령(장동건 분)이 북한과의 회담 자리에서 “한국 정부를 우습게보지 마세요. 굴욕의 역사는 가지고 있지만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6위 ‘미인도’ 강무(김남길 분)이 신윤복(김민선 분)에게 “봐. 네가 조선 땅에서 제일 아름다워.” 7위 ‘킹콩을 들다’ 이지봉 선생(이범수 분)이 경기 전날 역도부 소녀들에게 “내일 너희들이 들어야 할 무게는 너희들이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울 거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8위 ‘마더’ 혜자(김혜자 분)가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 도준(원빈 분)의 면회 중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9위 ‘불꽃처럼 나비처럼’ 호위무사 무명(조승우 분)이 명성황후 민자영(수애 분)에게 “저의 칼이 어찌 살지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마마. 그대를 지키는 것이오.” 10위 ‘우리집에 왜 왔니’ 이수강(강혜정 분)이 김병희(박희순 분)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우리한테만 기적인 게 아니야. 그건 진짜 기적이야.” 사진 = 각 영화 포스터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7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필리핀에서 시집왔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혼자가 돼 버린 알렌.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삼남매를 키우며 외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삼남매에게 ‘아빠’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둥이 생긴다. 새 아빠가 생긴 후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1 대 100(KBS2 오후 8시50분) 첫 번째 도전자는 각종 퀴즈대회 우승 석권, 자타공인 퀴즈박사. 가요계의 똘똘이 스머프 가수, 홍경민. 과연, 연예인 2호 5000만원의 주인공이 탄생할 것인가? 두 번째 도전자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집념의 사나이. 다수 경력의 신세대 국어선생님. 부드러운 카리스마, 예심통과자 김기훈이 도전한다. ●살맛납니다(MBC 오후 8시15분) 유진네와 나리네는 함께 식사를 하며 결혼식 날짜를 조율한다. 한편, 매콤한 쫄면을 먹던 민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너무 행복하다고 동생 경수에게 고백한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아이를 갖게 되고 희망이 생겼다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경남 김해에 리틀 장동건. 그 뒤에 가려진 두 얼굴. 세상 모든 물건은 내가 접수한다. 네 것 내 것 다 내 것. 뭐든지 내 것이라 외치는 4살 김 강. 울음과 폭력으로 무장한 독불장군. 시도 때도 없이 엄마 가슴에 집착하는 아이. 과연, 4살 아이에게 마법 같은 개선안이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본다. ●공부의 왕도(EBS 오후 10시40분) 수리영역 38점에서 100점으로! 6개월 만에 수학을 정복한 부산 용인 고등학교 2학년 김지범 군.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수학 점수를 60점이나 올린 김지범 군의 비법은 단 한 권의 문제집. 문제집을 푸는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걸리는 시간과 오답의 수가 줄었고 2학년 모의고사에서 수리영역 만점을 받았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치매를 앓는 부인을 11년째 홀로 돌보며 살아가는 이수길씨를 만나본다. 아내 김영자씨는 50대 초반 꿈에도 생각지 못한 초로기 치매가 찾아왔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 이수길씨는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에게 진정한 사랑을 담아 헌신적으로 돌봐주는데….
  • 통영·거제시 위안부 할머니 기록물 만든다

    통영·거제시 위안부 할머니 기록물 만든다

    경남 통영·거제시가 고향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생활상 등을 담은 영상 기록물이 제작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은 9일 통영·거제가 고향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의 영상과 사진을 120분 분량의 DVD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지난 6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해 9월까지 작업을 마친 뒤 현재 영상 편집을 하고 있다. 기록물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시민모임이 2007년부터 해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금마련 인권영화제’ 등을 개최해 모은 성금으로 충당한다. 2002년 8월 시민모임이 결성됐을 때 통영·거제지역에는 위안부 할머니 8명이 생존해 있었으나 지금은 김복득(92) 할머니 등 3명만 생존해 있다. 4명은 고령과 지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고 1명은 울산으로 이사를 했다. 제작팀은 생존한 할머니들을 방문해 증언을 채록하고 하루하루 일과를 카메라에 담았다. 2007년 8월 별세한 이순선(당시 86세)·김기아(당시 83세) 할머니 등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도 생전 사진이나 영결식 영상물들을 수집해 정리했다. 전국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당시 일본군 만행을 기억하고 체험한 증언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송도자 시민모임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그분들이 남긴 증언과 힘겨웠던 생활들이 기록으로 남아 역사교육의 자료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통영·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암염소 오드리/정영애

    [엄마와 읽는 동화] 암염소 오드리/정영애

    ‘미희’씨의 이름에서 느껴지듯 아름다운 부인이었습니다. 자상한 남편에 집안도 넉넉하였습니다. 그래서 미희씨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미희씨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미희씨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자식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의사로부터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유명한 의사라는 소문만 듣고도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갔으며, 임신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면 의사의 처방을 받기는커녕 약값조차 따지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러길 10년, 미희씨와 달리 남편은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내의 눈물겨운 노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세월만 가면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희씨가 그 일로 우울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하자 남편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가자. 시골은 바쁜데다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단 말이야.’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시골로 이사를 갑시다. 마당에 예쁜 꽃밭을 만들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고 닭을 키우며 여유롭게 살아봅시다. 내가 또 생각한 게 있소. 당신은 결혼과 동시에 그만둔 그림을 다시 그리는 거요.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내 모습을 화폭에 담아주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겠소.” 처음에는 미희씨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생활환경을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얼마 뒤 미희씨는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시골 생활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미희씨는 아름다운 꽃으로 마당을 장식하고 밥상에 올릴 채소를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재미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들이 이 넓은 마당을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이 미희씨를 괴롭혔습니다. 어느 날 저녁 미희씨가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한낮의 밝은 햇빛이 이제는 서쪽 산꼭대기에 몇 줄기 빛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아랫집 송할머니네 집 염소가 미희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염소는 풀을 뜯다가 가끔 머리를 들어 ‘음매에’ 하고 울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엄마아’ 하고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것 같아 가슴이 찌르르했습니다.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송할머니는 바쁜 모양인지 염소를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미희씨가 염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염소는 뿔이 길고 힘이 셌지만 온순했습니다. 미희씨가 송할머니에게 염소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송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렸습니다. 아침마다 산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어 놓았다가 저녁에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무엇보다 귀찮다고 했습니다. “저 혼자 하루 종일 산에서 풀을 뜯어 먹으니까 키우긴 쉬워. 하지만 갑자기 소나기라도 와 봐. 들일 하다가 동동걸음을 쳐서 달려가야 한다니까. 성깔 더러운 놈은 주인 말도 안 들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송할머니는 지금까지 네 마리의 염소를 키웠는데 그 중 두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염소 값이 비싸니까 염소 도둑이 훔쳐 갔는지 산짐승이 내려와 물고 갔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또 염소를 기르세요?” 미희씨의 말에 할머니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키워서 팔면 돈이 되니까. 그리고 저 녀석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릴 적 내 새끼들이 들로 나간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좋아.” “어쩜.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미희씨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마침 다음 날이 장날이었습니다. 미희씨는 남편과 함께 장으로 나갔습니다. 장에 팔려고 나온 염소가 스무 마리도 넘었습니다. 대부분 큰 염소였는데 한 마리만 어린 암염소였습니다. 미희씨가 암염소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암염소의 까만 털과 긴 속눈썹과 선한 눈망울이 미희씨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아름다운 미희씨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미희씨는 지금의 내 주인처럼 심술궂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을 안 듣는다며 듣기 싫은 욕도 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무엇이나 다 해 줄 것 같았습니다. 미희씨는 내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 눈에 눈을 맞추고 방긋 웃기도 했습니다. 나는 미희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몸을 꼿꼿이 세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희씨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보, 이 어린 염소 좀 봐요. 눈매가 예쁘고 참 영리하게 생겼어요. 까만 털이 윤기가 나서 모피 코트를 걸친 것 같아요.” 미희씨는 내 주인이 부르는 값에서 한 푼도 깎지 않고 나를 샀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사는 예쁜 집으로 왔습니다. 미희씨가 내 이름을 ‘오드리’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내가 외국 여배우처럼 예쁘게 생겼다며 붙여준 이름입니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엄마처럼 좋았습니다. 나를 자식을 돌보듯 지극 정성으로 위해 주었거든요. 미희씨는 나를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희씨 집에 온 후 한번도 심술을 부리지 않고 온순하게 굴었습니다. 그저 미희씨 뒤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먹기 싫어하는 억센 풀을 줘도 풀을 입에 물고 머리를 흔들어 흩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집안일이 끝나면 그림 그릴 도구를 챙겨 나를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내 울음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희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끔 음메에 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면 미희씨는 붓을 놓고 달려와 한 손으로 나를 안고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여운 내 새끼!” 이 말을 들으면 나는 정말 미희씨의 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송할머니네 염소가 또 없어진 것입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미희씨는 크게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미희씨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걱정 마, 넌 내가 지켜 줄 거니까!” 그 날부터 나도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밧줄을 목에 달았습니다. 밧줄이 길면 그런대로 자유로울 텐데 짧아서 답답했습니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고 말했습니다. “오드리가 얼마나 답답하겠소. 그냥 자유롭게 다니도록 해 주구려. 그래야 튼튼해져서 위험에 대처할 힘과 지혜가 생기지.” 미희씨는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건강은 걱정마세요. 잘 먹이면 되니까요. 지금은 오드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해요.” 미희씨는 거실에서 잘 보이는 나무에다 나를 묶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멍하니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미희씨가 내 건강을 위하여 부드러운 풀도 베어오고 싱싱한 채소도 갖다 주었지만 내가 직접 뜯어먹는 것보다 맛있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나에게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도둑이 너를 향해 다가오면 크게 우는 거야. 알았지? 자, 내가 너를 훔쳐가려고 해.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음매에.”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이럴 땐 길게 울지 말고 ‘매’하고 비명을 지르란 말이야.” “매!” “옳지. 아주 잘했어. 자, 이번엔 여우나 멧돼지 같은 무서운 산짐승이 나타났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뿔로 콱 받아버리지요.” “정답. 역시 넌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멍청하지 않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희씨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미희씨의 은혜를 갚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즈음 다람쥐 한 마리가 나를 찾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묶여 있는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시선을 끌더니 언제부터인지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미희씨처럼 예뻤는데 꼬리가 특히 귀여웠습니다.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너, 너무 지루하지?” “응. 그래.” “너도 나하고 같이 산에 가면 좋을 텐데.” “싫어. 난 무서워.” “모르는 소리. 산이 얼마나 좋은데. 산에는 온갖 종류의 풀들이 다 모여 있어. 부드러운 풀은 얼마나 맛이 좋은데. 네 주인이 주는 풀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아름다운 꽃도 지천으로 피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노란색 벌노랑이는 황홀하다니까! 야생화들의 향기는 또 어떻고.” “염소 도둑이나 산짐승을 만나면?” “에이, 바보. 덤불숲에 숨거나 니 뿔로 받아 버리면 되지.” 다람쥐의 말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람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말은 내 귀에 남아 뱅뱅 맴을 돌았습니다. 나는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나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다람쥐가 말하는 산으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더 지겨워졌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밧줄을 탱탱하게 당기느라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람쥐가 손뼉을 치며 응원을 해 주니까 힘이 났습니다. 내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오고 신음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밧줄을 끊고 도망을 간다면 넓은 초원에서 뒤로 벌러덩 누워 나뒹굴고 싶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향해 구르고도 싶었습니다. 산 속을 헤집고 다니며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고 싶었습니다. 나는 변했습니다. 나는 이제 미희씨가 주는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망칠 궁리만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내 몸은 말라만 갔습니다. 그 날은 그믐날 밤이었습니다. 어둠이 나를 유혹하였습니다. ‘이럴 때 도망가는 거야! 깜깜해서 좋잖아.’ 나는 빙글빙글 돌면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밧줄을 더 짧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밧줄을 사정없이 당겼습니다. 그러길 여러 수십 번. 다음 날 아침, 미희씨의 비명을 듣고 남편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가엾은 오드리는 가만히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밧줄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오드리가 도둑과 싸워 이겼어요.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장하지요?” 남편은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약력 진주교육대학 졸업. 한국 동화 문학상, 가톨릭 아동 문학상 수상. 저서:우리는 한 편이야. 서울특별시 시골 동네. 미리 찾아온 사춘기외 다수. ●작가의 말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들의 최대 관심은 아이들의 교육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이름난 학원, 훌륭한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얻어 아이의 능력에 관계없이 이 학원 저 학원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자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쓴 동화가 ‘암염소 오드리’다.
  •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면 세상은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민중가수보다 더 민중가수답다는 이야기를 듣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이 문화연대와 함께 라이브 무대를 꾸린다. 27~28일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연대 10주년, 블랙홀 20주년 기념 트리뷰트 공연 ‘깊은 밤의 서정곡’이다. 문화연대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어깨동무하는 음악인이 헤비메탈 밴드라는 점이 이채롭다. 마침 블랙홀도 앨범 발매 기준으로 20년의 나이를 먹은 시점. 1985년 결성 뒤 1989년 첫 앨범을 포함해 8장의 정규 앨범을 내는 동안 우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정신적 가치를 노래하고, 지금까지 20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치며 헤비메탈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는 밴드가 바로 블랙홀이다. ●창립 10주년 문화연대와 27~28일 라이브 무대 최준영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문화연대가 했던 주요 행사나 캠페인에 빠짐없이 참여한 팀이 바로 블랙홀”이라면서 “우리도 자료를 찾아보다가 놀랐을 만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팀”이라고 설명한다. 공연 연출을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연대 활동과 관련해 섭외를 도맡아 왔다.”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탁월한 음악성과 연주력 때문에 블랙홀을 섭외했다.”고 강조한다. 이번 공연이 시대에 편승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대중음악에 획을 그었던 밴드의 음악적 의의를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크린쿼터 사수 문화제, 이라크 파병 반대 반전 콘서트, 촛불아 힘내라 콘서트,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자선 콘서트 등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밴드로 인식됐으나, 사실 블랙홀은 데뷔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을, 통일을, 우리 삶과 사회를 노래해 왔다. 내년에 발표할 9집에서는 잊혀져 가는 위안부 할머니, 3·1절, 친일파 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리더인 주상균(보컬·기타)는 “어떤 특정한 사회 참여적인 발언을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우리가 어울리고 연주하는 목적이 서로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나만 잘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 줘야 행복할 수 있다고 노래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연주에 대해 만족하고, 서로 재미있어 하고,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블랙홀. 앞으로 활동이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감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적 약자들에 희망·사랑 전하고파” 주상균은 문화연대와 함께한 활동 가운데 2000년초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시민단체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망설여진 부분이 많았다.”면서 “우리가 노래로 하는 것을 문화연대는 몸으로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더니 바로 선입견이 무너졌고, 이후 연대 활동을 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돌이켰다. 당시 전국 7개 도시를 돌며 서명을 받았고, 공연 비용은 블랙홀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제목 그대로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아 바치는 헌정 공연이다. 국내 음악계에서는 드문 경우. 그것도 비주류에 속하는 헤비메탈 밴드가 주인공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블랙홀이 대중음악계에 깊은 발자국을 새기고 있다는 이야기. 주상균은 “우리 입장에서 헌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다른 때 같으면 안 한다고 했을 것”이라면서 “예전보다 음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대중음악 가운데 비주류인 헤비메탈 밴드 가운데 누군가는 이정표가 돼줘야 후배들에게 그래도 명예는 남길 수 있다는 용기를 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과감하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27일에는 크래쉬, 갤럭시익스프레스, 노브레인이, 28일에는 디아블로, 스트라이커스, 크라잉넛이 블랙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노개런티다. 각 팀마다 블랙홀의 대표곡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바꿔 1곡씩 부르며 25분 동안 연주할 예정이다. 인터미션에는 블랙홀의 활동을 담은 1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이번 공연은 HD화질의 실황 DVD로도 제작된다. 특히 한예종 재학생들이 내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블랙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후배들의 공연 뒤 블랙홀이 자신들의 20년 역사를 반추하는 무대를 약 70분 동안 꾸리게 된다. ●새달 5일부터 전국투어 콘서트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가 펼쳐진다. 다음달 5일 충남대 백마홀, 12일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무대에 서는 것. 역시 뉴크, 마하트마, 다운인어 홀 등 후배 밴드들이 함께한다. 내년 1월에는 부산, 대구, 광주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투어 이야기가 나오자 주상균이 한마디를 꺼낸다. “음악신이 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면, 군 단위에서도 투어를 해왔던 우리 입장에서는 ‘지방’은 차별적인 말이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 있을 뿐이다. 5~10년 된 각 지역의 베테랑 음악인들과 열정을 나누며 다시 볼 수 없는 공연을 선사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정병희(베이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소홀하게 공연한 적이 없다. 음악은 아직도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하루하루 변함 없이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원재(기타)는 “정말 공연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다. 앞으로는 이번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고대했다. 어느덧 관록의 밴드가 됐지만 요즘도 회사원이 출근하듯 연습실에 나와 끊임 없이 가다듬고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 블랙홀. 이관욱(드럼)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최고 밴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대체가 절대 불가능한 팀”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세대 속내 담은 이야기하고파”

    “우리세대 속내 담은 이야기하고파”

    신인과 기성을 가리지 않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창비장편소설상을 22살 젊은 신인이 꿰찼다. ‘창작과 비평’이라는 든든한 지면과 출판여건 등 앞으로의 작가 활동 기반을 고려하면 ‘풍요롭고 화려한’ 등단을 이룬 셈이다. 3000만원 상금은 둘째 문제다. 하지만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 문진영씨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탓인지 “기대도 못한 상인데 받게 돼 기쁘다.”고 덤덤한 소감만을 전한다. 수상작은 ‘담배 한 개비의 시간’. 편의점에서 ‘알바’로 일하는 여대생과 동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유하는 젊은 세대의 초상을 담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인 주인공 ‘나’와 ‘H’, ‘J’ 등은 모두 최저임금의 경계에 몸을 걸쳐두고, 정주(定住)와 소요(逍遙) 사이에서 고민한다. 작품은 작가의 경험이 주요 소재가 됐다. 그는 실제로 반년 넘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월급 80만원을 받았다. “내가 투자한 젊음과 시간에 적절한 금액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임금 이상의 것들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그 시간동안 살았던 하루하루의 즐거움은 물론, 매일 만나고 헤어지던 사람들과의 교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런 교류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특히 독서를 통한 교류는 꾸준한 창작열의 근원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 손이 간질거릴 정도로 글이 쓰고 싶어진다.”는 작가는 일본 작가 하루키의 초기작을 읽을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루키의 글은 덤덤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 하지만 그는 “하루키도 좋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맞는 옷처럼 불편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자신의 이야기, 우리 세대의 고민을 담은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고 바람을 전한다. 고등학교 자퇴 이후 꾸준히 글을 써온 그는 첫발을 내딘 작가답게 무서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뿐 아니라 예술경영·문화사업 등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음악·디자인으로 감각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이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면, 글쓰기는 살아 있는 한 꾸준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이번 작품의 속편 격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어른들이 생각하는 방황이 전부가 아닌 이 세대의 속내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내년 1월 출간된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하프코리안’ LG 문태영 한국 적응기

    몇 달 전만 해도 그는 그렉 스티븐슨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자랐다. 2001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과 푸에르토리코에서 ‘용병’으로 뛰었다. 올 시즌 프로농구 코트에 태풍을 몰고 온 LG의 ‘하프코리안’ 문태영(32·194㎝) 얘기다. 올 초 하프코리안 드래프트 전까지 한국은 막연히 어머니가 태어난 나라일 뿐. 그 이상 의미는 없었다. 안산에 이모와 사촌들이 살지만 왕래도 없었다. 한국에서 뛸 일도 없었다. 실력이 평가절하된 데다 ‘용병’으로 뛰기엔 작았다. 외려 유럽 명문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친형 제로드 스티븐슨이 관계자들의 영입 리스트에 오르내렸다. ●불고기·김치 좋아하는 입맛은 한국인 다른 4명의 하프코리안들은 지난 5월 입국한 뒤 한국농구연맹(KBL)이 붙여준 한국어 교사에게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문태영은 푸에르토리코 리그의 소속팀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 8월에야 합류했다. 때문에 한국어 실력은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정도. 외모도 혼혈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 토미 스티븐슨을 많이 닮은 듯 했다. 어머니 문성애씨의 흔적은 순해 보이는 눈매와 고운 얼굴선 정도. 하지만 입맛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다. 불고기와 김밥, 김치는 기본이다. “한국에 온 뒤 라면 맛에 푹 빠졌다. 라면 끊이는 것도 자신있다.”고 했다. 조직력과 팀워크를 강조하는 국내 농구, 특히 강을준 감독의 스타일에 빠르게 적응한 만큼이나 한국식 사고방식에도 익숙해졌다. “코칭스태프나 동료들 덕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아직 잘 모르지만 행동하기 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에는 감독이 화를 내면 말대꾸를 했는데, 이젠 입을 다물고 꾹 참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니 나라 하루 하루가 특별한 기억 강 감독은 문태영을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껏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 겉멋이 들거나 팀플레이를 깨뜨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 “3(스몰포워드)·4번(파워포워드) 포지션이라 국내 선수와 매치업이 되기 때문에 그 정도 하는 것 뿐”이라는 게 강 감독의 냉정한 평가다. 4일 삼성전이 끝난 뒤 문태영은 처음 칭찬을 들었다. 29점을 올려서가 아니라 4쿼터 막판 공격리바운드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였다. 문태영은 “깜짝 놀랐다. 야단만 맞다가 칭찬은 처음”이라면서 “1~2경기 잘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즌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쉽지 않을 터. 개막 이전 2주쯤 머물다가 뉴저지로 돌아간 아내와 4개월된 딸을 다시 만날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내년에는 방이동 LG체육관 근처에 전세를 얻어 가족과 함께 지낼 생각이다. LG와의 계약은 3년이다. 35세가 됐을 때 다른 팀의 선택을 못 받으면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가 됐든 어머니의 나라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평생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단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수영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10주년 인터뷰)

    이수영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10주년 인터뷰)

    “가수로 태어나 10주년을 무대 위에서 맞을 수 있다는 건…최고의 축복이죠.” 1999년 겨울,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한 소녀가 나이가 믿기지 않는 가창력과 독특한 창법으로 ‘24만장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바로 이수영의 시작이었다. I Believe(1집), Never Again(2집), 그리고 사랑해(3집), 라라라(4집), 덩그러니(5집), 휠릴리(6집), 그레이스(7집), 단발머리(8집)… 그리고 이번 앨범 ‘내 이름 부르지마’(9집)에 이르기까지. 10년간 그녀가 쏟아낸 히트곡을 읊조리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이프 온리’처럼 사랑했던 추억 저편으로 돌아간듯 반갑기만 하다. 참으로 따뜻했고, 때로는 내 이야기인 듯 시리고 슬펐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기자가 알고 있는 ‘사람 이수영’처럼 진솔하고 소박했다. “돌이켜보니, 단 한 순간도 ‘우연’이 없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그녀와의 인터뷰. ‘발라드의 여왕’ 이수영이 지난 3650일을 회고하며 ‘소중함’이란 단어로 남아있는 오랜 기억의 먼지를 털어냈다. ‘후우-’ § ‘10년째 되던 그 날’ 1999년 그리고 2009년. 같은 날 같은 방송이었다. ‘서른’ 이수영이 ‘스무살’ 이수영을 스쳐지나 무대에 올랐다. 첫 무대에 떨고 있는 이수영에게 다가가 말해줬다. 오늘처럼 감사한 날이 있을 거라고. “무대에 오르는데, 10년 전 그 날이 너무도 선명히 되살아나는 거예요. 사실 하루하루 달려오는데 급급해 뒤를 돌아보지 못했었거든요. 그 날 알았죠. 내가 얼마나 행운의 가수인지. 아직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또 10주년을 무대 위에서 맞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지난 힘든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뤄진 고마운 기적임을.” §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기념비’가 되는 날을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지난 10년 간 이수영을 더욱 빛나게 했던 이름 ‘크리스탈’.(공식 팬클럽) 팬들은 그간 이수영이 준 감동을 한꺼번에 돌려줘 그녀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바로 3650일 간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 중 소중한 조각들을 수집해 세상에 하나뿐인 ‘기억의 보물상자’를 선물한 것. “데뷔 첫 날, 처음으로 1위를 한 날,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탔던 순간 등 가수로서 기억하고 싶은 중요한 추억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음악까지도… 제 지난 10년이 그 MP3 하나에 너무도 빼곡히 들어있었어요.” 눈망울이 촉촉해진 이수영은 ‘감사함’과 ‘감동’ 외 흔치 않은 단어를 찾으려 애썼다. “팬들이 가르쳐 주신 거죠. 제가 지나온 세월 중 단 하나도 우연한 것은 없었음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 순간이 모여 연속된 기억을 만들고, 또 그 기억이 모여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는 소중한 사실을요.” § 생애 마지막 날도 ‘무대 위’에서… 그렇다면 이수영에게 있어 ‘노래’란 무엇일까. “TV를 보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한 꼬맹이가 있었어요. TV 속 가수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였거든요. 그래서 ‘아, 노래를 하면 행복해지는 거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은 가수로 10년을 보낸 지금 확신하건데 틀리지 않았어요. 절대로.” 이수영은 무대 위에서 발견한 자신 안의 ‘천국’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엔 노래를 ‘묘사’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무대 위에서 이수영이 말하는 건 딱 이거 하나에요. ‘저, 노래하는 사람이에요!’(웃음) 단순하죠? 이 한마디가 제가 무대 위에서 느끼는 행복과 고마움을 모두 대신해 줄 수 있는 말이거든요.” ‘천생 가수’… 그녀에게 더 이상의 수식어가 있을까. “10주년 9집, 저에게는 너무 의미있는 숫자에요. 10을 준비하는 ‘도약의 9’라고 할 수 있죠. 이번 9집은 총 300여 후보곡 중 제가 보여드릴 수 다양성의 최대치를 끌어낸 앨범이에요. 총 10곡 중 8곡을 제가 작사했죠. 맞아요. 그래서 ‘망하거나, 혹은 잘되거나’.(웃음) 중요한 건 ‘신뢰’니까요. 이수영이란 가수에 대한 믿음. 생애 마지막 날, 단 한분이라도 그런 믿음으로 제 노래를 들어 주신다면 저는 무대 위에 설 거예요. 그것 또한 가수 이수영의 마지막 ‘축복’일테니까요.”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반면교사/진경호 논설위원

    못된 상사가 있었다. 요즘 잣대로 보면 간이 부었던 게 틀림없다. 휴가 떠난 부하에게 서슴없이 일감을 던졌고, 심사가 틀어지면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부득이한 일로 회식에 빠지면, 언제가 됐든 기어코 응징했다. 적당히 어르고 달래는 노회함도 갖췄다. 불의(不義) 그 자체였으나 부하들 누구도 변변히 항거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도 잠시…. 인사발령이 나 간신히 그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없는 상사만 못하다지만 제 아무리 못된 상사에게도 얻을 건 있다. 인내심과 면역력. 가슴에 사표를 품고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어느덧 부처 곁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그 어떤 못된 상사를 만나도 아무개보다는 낫다며 씩 웃게 만든다. 한마디로 역경지수를 높여준다. 저러지 말자 싶은 반면교사들이 다시금 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서도 ‘저러지 말자’, 퇴근 후 한 잔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아무래도 잘못되고 있는 모양이다. 속이 좁아지고 있는 게다. 정작 늘고 있는 건 나를 반면교사로 삼는 인사들일 터이건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16일 행시2차 발표… 작년 수석 김혜주씨 3전 경험담

    16일 행시2차 발표… 작년 수석 김혜주씨 3전 경험담

    올해 행정고시 2차 시험 합격자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발표 결과에 따라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걸었던 수험생들의 행보는 갈리게 된다.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합격을 기원하고 있지만, 2000여명의 응시생 중 90%가량은 탈락의 쓴잔을 마시고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합격한 수험생들은 최종전형인 면접을 앞두고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지난해 행시 일반행정직에서 수석 합격한 김혜주(30·여)씨는 수험생 시절 2차 시험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모두 경험했다. 불합격했을 때는 좌절을 딛고 발표 다음날부터 다시 꼼꼼한 계획을 세웠다. 합격했을 때는 꼭 최종합격해야 한다는 심한 스트레스를 여러 방법으로 극복하고 면접 준비에 열중했다. 김씨로부터 합격했을 때와 불합격했을 때 각각 ‘걸었던 길’을 들어봤다. 김씨는 올해 시험을 본 수험생들이 이번 결과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옛 경험을 회상하고 여러 조언을 했다. ●1차 기출문제 주기적 반복 김씨는 지난 2006년 행시 2차 시험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낙방’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불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날부터 다시 책을 손에 들었다고 한다. “실망이 컸지만 ‘이왕 시작한 공부 끝까지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다잡았어요. 점수를 보니 경제학이 많이 미흡했더라고요. 독서실에서 경제학과 평소 어렵게 여겼던 행정법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 시험에서 탈락하면 1차(공직적격성평가·PSAT)부터 다시 응시해야 하지만, 김씨는 2차 과목부터 공부를 했다. 1차까지는 4~5개월의 시간이 있는 만큼, 여유가 있을 때 2차 기초를 좀 더 다지겠다는 계획이었다. 김씨는 그러나 2차 과목은 두달 정도만 공부하고, 해가 바뀌면 다시 1차 시험에 매진하라고 조언했다. 1차에 합격한 경험이 있는 수험생이 종종 PSAT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김씨도 2005년과 2006년 연달아 2차까지 갔지만, 이듬해에는 1차에서 탈락한 아픔을 겪었다. 김씨는 1차 시험을 공부할 때는 주기적으로 기출문제를 반복해 푸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원가 등에서 만든 모의고사 문제는 아무래도 기출문제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만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미 풀었더라도 기출문제를 다시 보는 게 감각 유지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틀린 문제를 다시 틀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마침내 2차 합격의 감격을 누렸다. 3전4기 도전 끝에 얻은 열매였다. 하지만 이번에 꼭 최종합격해야 한다는 심한 부담감에 시달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먼저 합격한 친구를 만나 격려를 받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토론 김씨는 2차에 합격했으면 발 빠르게 움직여 공부그룹(스터디)부터 가입하라고 했다. 2차 합격자는 많지 않기 때문에 스터디 찾기가 쉽지 않고, 한 번 시기를 놓치면 쉽게 가입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최소한 두 번 이상은 학원가 등에서 개최하는 면접설명회에 가 주의 깊게 청취하라고 했다. 스터디가 꾸려졌으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게 좋다. 김씨의 경우 3주간 주말에도 쉬지 않고 모여 토론·발표·모의면접 등을 진행했다. 또 2주가 넘어가면 스터디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만큼, 다른 그룹과 일명 ‘조인트’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합격·불합격 ‘의지’ 한장 차이 시사에 대한 준비도 필수적인데, 김씨는 일단 스터디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매일 30~50개의 이슈를 정리해 공유했고, 주요 쟁점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 밖에 매일 신문 2개를 2시간가량 읽으며, 뉴스를 따라잡았다. 김씨는 “합격과 불합격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며 “누가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수험공부를 하느냐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100살 할머니, 월드 마스터 게임 투포환 금메달

    100살 할머니, 월드 마스터 게임 투포환 금메달

    호주 시드니에서 10일부터 열리고 있는 월드 마스터 게임에 100세 할머니가 투포환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 마스터 게임은 올해로 7회를 맞이하며 세계 95개국에서 2만 8,292명이 참가했다. 월드 마스터 게임 참가자 중 최고령자인 호주 출신의 루스 프리스(Ruth Frith)할머니는 투포환 100세-104세 부문에 참가했다. 할머니의 이번 기록은 4.07m. 본인의 종전 최고기록인 4.72m에 조금 못미치는 기록이다. 이 나이 연령대에 참가한 선수는 루스 할머니 혼자였다. 참가만 해도 금메달이지만 할머니는 있는 힘껏 4kg이나 되는 포환을 던져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루스 할머니는 투포환 이외에 그 연령대에서 원반던지기, 해머던지기, 투창에서도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다. 6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의 건강비결은 금연과 금주다. 가까운 길은 언제나 걸어 다니며, 1주일에 다섯번씩 35kg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할머니는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운동을 좋아할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년이 가더라.” 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오 주석 덕에 빈농서 대기업 소유주 됐죠”

    “마오 주석 덕에 빈농서 대기업 소유주 됐죠”

    │사오산(후난성) 박홍환특파원│“빈농의 딸이 이렇게 버젓한 회사의 회장이 됐습니다. 모두 마오쩌둥 주석의 은덕이지요.” 사오산 마오쩌둥기념원 바로 옆 ‘마오자호텔(毛家飯店)’의 탕뤼런(湯瑞仁·79) 회장은 지나간 60년 세월이 감격스러운 듯 이따금 말을 멈추고 창밖 하늘을 바라봤다. 빈농의 딸로 태어나 끼니를 구하기 위해 민요를 외웠던 소녀가 60여년이 흐른 지금 국내외에 200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연간 11억위안(약 1980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리는 대기업의 회장이 됐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23일 사오산 마오자호텔에서 만난 ‘탕 아줌마’(탕 회장의 별칭)는 연신 마오의 건국대업을 소리 높여 설명했다. 그녀는 “마오 주석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을 위해 싸웠으며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사오산에서 50여㎞ 떨어진 상탄(湘潭)현에서 태어난 탕 회장은 14살 때인 1944년 사오산의 마오 주석 고향집 부근 마오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남편은 전쟁터로 떠났고, 그녀는 농사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건국 후에도 그녀의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바뀐 것은 1959년 6월 공산혁명을 위해 집을 떠난 지 32년 만에 마오가 고향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고향 방문 이틀째 산책하던 마오는 갑자기 그녀의 집을 찾았고, 그녀의 가족들과 환담하는 모습을 담은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이라는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녀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가입, 마오의 고향을 지키는 역할을 자원하는 등 마오와의 인연을 이어 갔다. 개혁·개방은 그녀에게 또 다른 삶을 가져다줬다. 57세 때인 1987년 마침내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을 문 앞에 걸고 지금의 호텔을 열었다. 이어 주류회사와 식품회사, 여행사 등을 잇달아 창업했고, 그녀는 마오씨 집안의 상징이 됐다. 그녀에게 마오쩌둥과 사오산은 삶 자체였던 셈이다. stinger@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한국 유일의 남자 복싱 세계챔피언 슈퍼페더급 김지훈

    [스포츠 라운지] 한국 유일의 남자 복싱 세계챔피언 슈퍼페더급 김지훈

    ‘4전5기’의 생소한 낱말을 보통명사화시켰던 홍수환(59)이 아널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전화기에 대고 외친 건 1974년 7월. 멀고도 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이었다. 그리고 김지훈(22)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국제전화로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어머니 박순옥(46)씨에게 챔피언이 됐음을 알린 건 35년이 흐른 지난 9월13일. 도시는 달랐지만 35년 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남아공에서 승전보를 전한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후자가 한층 더 싸늘하고 냉철하다면 과장일까. 또 떠들썩하지 않게, 조용히 알릴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아버지 지방발령 틈타 도장 다녀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졸라니 마랄리(남아공)는 6회까지 경기를 리드했다. 변칙 공격을 하던 마랄리가 7회부터 본래의 왼손잡이 자세로 돌아왔다. 순간 지훈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고교 3년 때부터 본격 복싱에 맛을 들인 탓에 공부는 제쳐뒀던 터였다. 아버지 원한(49)씨는 “공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노발대발했다. 때마침 아버지가 지방 발령이 나 집을 비운 틈을 타 도장에 나가 샌드백을 두들겼다. 그러길 1년. 그러면서 다짐했다. “한국 챔피언, 동양 챔피언, 그리고 세계 챔피언이 되면 떳떳하게 챔피언 벨트를 보여드리며 아버지의 아들이 이것들을 가져왔다고 말하겠노라.”고. ●데뷔 2년만에 동양챔프… 22세에 24전 지훈은 상대의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9회 중반 묵직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마랄리의 관자놀이에 터뜨렸다. 승리를 확신한 그는 왼손 어퍼컷과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퍼부었고 챔피언은 무너져 내렸다. 2년 2개월 만에 한국 남자복싱 유일의 세계챔피언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지훈의 표정은 ‘냉혈한’에 가깝다. “애써 웃으려 해도 웃을 일이 없다. 특히 링 위에선 더욱 그렇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마랄리의 버팅으로 왼쪽 눈두덩이의 부기가 아직 뚜렷한 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묻자 “복싱”이라는 말로 헛웃음을 나오게 만들었다. 그가 링에 첫발을 들인 건 우연이었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직전 학교에는 복싱 만화 붐이 불었다. “운동 삼아 한 번 가 보자.”며 김형렬(55) 관장이 운영하는 일산 주엽체육관을 찾았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하지만 김 관장은 “서울대 안 갈 거면 차라리 운동으로 승부를 내자.”며 역설했다. 이듬해 4월부터 링에서 비지땀을 흘린 그는 10월 프로에 정식 데뷔했다. 그의 성장은 빨랐다. 이듬해 9월 페더급 한국챔피언에 오르더니, 1년 뒤 10월에는 범아시아권투위원회(PABA) 동양챔피언 벨트를 둘렀다. 당시 챔피언의 유고 사태로 잠정 챔피언 자격이었지만 1년 뒤 정식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지훈은 복싱에 관한 한 모든 방면에 능하다. 188㎝의 긴 팔은 최고의 강점.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어떤 기술로도 KO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파이터다. 경쾌한 리듬으로 상대를 압박할 줄 안다. 김 관장은 “22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김지훈은 벌써 24전을 치른 선수다. 특히 두려움이 없다. 상대를 밀고 들어가는 근성이 보통 선수에 견줘 다르다.”고 평가했다. 김지훈의 세계챔프 등극은 우리를 고무시킨다. 35년 전 홍수환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한국 복싱의 중흥을 이끌어 줄 것이란 기대다. ●한국복싱 중흥 기대주… 스폰서도 없어 그러나 희망뿐일까. 홍수환과 김지훈이 또 닮은 건 남아공에서의 파이트머니가 나란히 1만달러 안팎이라는 사실. 김 관장은 “지훈이가 번 돈은 훈련비와 용돈을 쓰고 나면 남지 않는다. 세계챔피언인데도 아직 스폰서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지훈은 오늘도 링 위에서 땀을 쏟아낸다. “하루하루 신기록을 세운다.”는 게 그의 생활지표다.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다. 에너지가 완전 연소될 때까지, 체력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모조리 비우고 내일 새것을 채운다.”는 설명이다. 챔피언에 오르기 훨씬 전 그는 목표를 세웠다. “사분오열돼 있는 세계 복싱기구를 죄다 아우르는 통합 챔피언이 될 겁니다. 이제 겨우 한 개 따냈으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셈이죠.”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지훈은 누구 ▲출생 1987년 1월17일 서울 용산 ▲체격 177㎝, 67㎏ ▲가족 김원한(49), 박순옥(46)의 2남 중 첫째 ▲학력 일산초-일산중-신일정보산업고-부천대(2년 휴학중) ▲성적 24전19승(16KO) 5패 ▲주무기 좌우 스트레이트에 이은 어퍼컷 ▲경력 2004년 10월 프로 데뷔. 2005년 한국권투위원회 페더급 한국챔피언. 2007년 범아시아권투위원회(PABA) 페더급 동양챔피언. 2009년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 정릉3동 사람들의 삶, 민속이 되다

    정릉3동 사람들의 삶, 민속이 되다

    ‘지금, 여기’를 사는 2009년 서울특별시민의 삶 또한 민속(民俗)이 된다. 농촌에서 논밭을 갈거나 바다, 갯벌에서 그물 던지며 낙지 캐는 삶만이 민속은 아니다. 도시 한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선술집을 여는 것도, 소박한 마을 공동체인 반상회의 삐뚤빼뚤한 기록도 충분히 민속학적 가치를 가진 자료가 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정릉 3동 사람들의 삶 역시 훌륭한 민속이다. 국민대 앞에 있는 한 굿당은 노래방, PC방처럼 아예 ‘굿방’이다. 굿을 하기 위해 하루 15만~25만원의 대여료를 내고 빌릴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40년짜리 스카이아파트의 몇 남지 않은 가구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재개발 철거의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그럼에도 내년을 기약하며 화단 앞에 김장독을 묻고, 연탄아궁이에 불땔 연탄을 차곡차곡 쟁여 놓는다. 옥상에는 가지·호박·상추를 심어 가꾼다. 반장수첩에는 ‘청소비 1000원, 전기요금 6420원’ 등을 빼곡히 적으며 몇 남지 않은 공동체의 틀을 이어나간다. ●돋보기 들이대듯 가감없이 일상 직시 국립민속박물관이 15일 서울 정릉 3동의 생활과 종교, 역사, 풍속 등을 조사 정리한 도시민속조사보고서 ‘변화, 공감, 소통’, ‘김정기 조성복의 살림살이’(이상 김현경·박성연·이건욱 공저) 두 권을 발간했다. 정릉 3동은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 주변부로 편입되며 세월의 변화 과정을 묵묵히 지켜낸 공간이다. ‘변화’, ‘공감’, ‘소통’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번 책자는 민속박물관 연구원들이 지난 한 해 내내 정릉 3동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가슴과 발로 쓴 현장 보고서다. 때로는 망원경으로 내다보듯 강물처럼 흘러가는 정릉 3동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때로는 바로 곁에서 돋보기 들이대듯 그곳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친구, 이웃의 눈으로 가감없이 직시한다. 실제로 연구원 3명은 정릉 3동에 반지하방을 얻어 숙식하며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다양한 콘텐츠 담아 DVD 제작 천진기 민속연구과장은 “단기 방문을 통한 조사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현장에서 밀착 조사를 진행하며 민속연구의 틀 자체를 바꿔냈다고 자부한다.”면서 “보고서에 담지 못한 부분은 DVD로 만들어 영상·녹음물 등 다양한 콘텐츠를 모두 담았다.”고 말했다. 민속박물관은 이번 보고서 2권을 지난해 펴낸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도시민속조사보고서와 함께 총 4장의 DVD로 만들었다. 점점 잊혀져 가는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기록이 되는 셈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가뭄 든 인도 ‘부인·딸 팔기’ 비극 속출

    8년 째 극심한 가뭄이 든 인도 농가에서 부인과 딸을 매음굴에 파는 비극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극빈자 구제기관인 옥스팸(Oxfam)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들자 농부들이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피붙이를 매춘부로 파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2001년부터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농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린 농부들이 빚더미에 앉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인도 내에서도 특히 가뭄이 심각한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분델카트에 사는 농부는 한 달 2500루피(한화 6만 2000원)인 이자를 내지 못해 부인을 중개인에 빼앗겨야 했다. 잔시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농부 역시 농지에 물을 데려 빚을 져 펌프를 산 게 화근이 돼, 사랑하는 아내와 딸 세 명을 매춘부로 팔려 보냈다. 하루하루 조여오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빗발치고 있으며, 가정이 파괴돼 부랑자로 전락한 농부도 점점 들고 있다고 옥스팸은 밝혔다. 옥스팸 인도 지부 대표 니샤 애그로월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인도 농가는 가난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더 이상 비극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보조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인삼밭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대문 밖에서 무겁게 날아왔어요. “어휴, 이놈의 산돼지들 때문에 고생고생 지은 인삼 농사 다 망치겠어.” 아버지는 대문 안 외양간의 누렁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셨어요. “누렁아, 어쩔 수 없다. 네 운명이려니 생각하렴.” 이상한 일이에요. 아버지는 요즈음 누렁이만 보면 뜻 모를 말과 함께 혀까지 쯧쯧 차시거든요.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 누렁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덕 너머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가시철조망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온 산돼지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거였어요. “어휴, 이럴 수가? 정말 아버지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고도 남겠다.” 환이는 타달타달 인삼밭을 뒤로 했어요. 근처 인삼밭을 지키는 사냥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터져 나왔어요. “우리도 저런 사냥개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환이가 마악 대문을 들어설 때였어요. 안방에서 부모님이 주고받는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그래서 결정했소. 누렁이를 팔아서 인삼밭을 지킬 사냥개를 사기로.” “그래도 정이 흠뻑 든 누렁이인데.” “지금 팔아야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가 있다는구먼. 땀 흘려 가꾼 인삼밭을 지킬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어요.” 순간 환이는 귀를 의심했어요. 잘 못 들었나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한번 쑤셔도 보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소. 인삼밭을 지키기 위해선……. 내일 소장수가 올거요.” 환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양간 앞에 섰어요. 누렁이가 얼굴을 흔들어 댔어요. 잘랑잘랑 워낭소리가 바람을 타고 집안을 날아다녔어요. “아, 아버지의 어쩔수 없다는 말이 누렁이를 판다는 뜻이었구나. 누렁이, 불쌍해서 어쩌지?” 환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누렁이의 워낭 소리도 밤 이슥토록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이튿날, 소장수가 누렁이를 보러왔어요. 소장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누렁이는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쳐댔어요. “허허, 겁이 꽤 많은 황소로군. 고개 좀 이리 돌려 보거라. 허허, 이리 돌려 보라니까.” 소장수는 누렁이의 코뚜레를 잡고, 인정사정없이 흔들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무슨 황소가 이래? 허허, 애꾸눈이잖아? 소장수 30년에 애꾸눈 황소는 첨 보네.” 소장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어댔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 허둥거리셨어요. “하하, 애꾸눈이면 어떻습니까? 힘만 세면 최고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힘이 좋아도 눈 하나론 논밭에서 제구실을 못하는 법이죠. 잘 아실 텐데?” “그, 그, 그런 것은 못 느꼈는데요. 논밭을 다른 집 황소보다 몇 배 더 잘 갈아요. 이웃 마을에서도 누렁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허허, 그렇게 시치미를 떼시면 흥정이 어렵겠는데요.” 환이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쾅쾅 뛰기 시작했어요. 제발 흥정이 깨지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흥정이 어렵다는 소장수의 말에 아버지는 금세 한풀 꺾이고 말았어요. “다른 황소보다 조금 낮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두 분 사이에 몇 번 실랑이가 오가는 듯하더니, 이내 만족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어요. “잘 쳐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계약금으로 이걸 받으시고, 나머지 돈은 일주일 후 황소를 실어가는 날 드리도록 하지요.” 두 분은 연신 만족한 웃음을 흘리시며 대문 밖으로 나갔어요. ‘흑,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 동물이라지만. 누렁이 앞에서 그렇게 무서운 소릴 주고받으시다니.’ 갑자기 아버지가 미워지는 환이에요. 그러나 잠시 뿐이었어요.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인걸 뭐.’ 환이는 힘없이 외양간으로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도 누렁이는 외양간 모서리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나야. 고개를 이리 돌려봐, 응? 다 내 탓이야, 미안해.”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누렁이는 막무가내였어요. 꿈쩍도 하질 않는 거예요. 환이는 뒷동산 언덕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2학년 때였어요. 텔레비전에서 먼 나라 용감한 투우사를 보게 되었어요. 멋진 칼을 찬 투우사가 소를 눕히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는 거였어요. 환이도 멋진 투우사가 되고 싶었어요. 빨간 보자기를 준비하고, 지게작대기를 칼로 대신해서 송아지인 누렁이 앞에 섰어요. “자, 누렁아. 덤벼, 덤벼 보라구. 어서!” 그러나 누렁이는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오히려 환이를 이상스레 바라보는 거였어요. 지게작대기로 꾹꾹 찔러도 슬슬 피해 다니기만 하는 누렁이였어요. 그때 환이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게 있었어요. ‘그래, 누렁일 화나게 만들면 나에게 덤벼들 거야. 히히히.’ 환이는 누렁이 꼬리에 성냥을 팍 그어댔어요. “우우우! 우우우!” 누렁이는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어요. 뜨거움을 못 참고, 날뛰던 누렁이는 나뭇가지에 그만 오른쪽 눈을 찔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오른쪽 눈은 영원히 뜨질 못하게 되었어요. 환이는 너무나 무서워 영원한 비밀로 감추고 말았어요. 그 후로 누렁이는 이상스레 변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나아갈 때는 얼굴을 이리저리 번갈아 돌리며 나아가는 것이었어요. 논밭을 갈 때도 행동이 굼뜨고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미안해, 누렁아! 날 용서해줘!” 환이는 맞은 편 산에 대고 수없이 메아리를 날렸어요. 이튿날부터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산언덕으로 향했어요. 잘 드는 톱으로 누렁이의 코뚜레를 잘라냈어요. 시냇가에서 누렁이의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똥딱지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어요. 소장수가 누렁이를 데려가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누렁아, 미안해. 부모님 몰래 인삼을 캐서 널 줄게. 내 마지막 선물이야, 맛있게 먹었음 좋겠어.” 인삼밭이 환이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눈에 익은 울타리가 아니었어요. “헉, 저, 저, 저럴 수가! 가시철조망이 주저앉아 버렸잖아!” 어미 산돼지와 새끼들이 가시철조망을 무너뜨리고, 인삼밭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거였어요. “야, 이 나쁜 놈들아. 저리 가지 못해!” 환이는 돌멩이들을 주워 산돼지들에게 쉬지 않고 던져댔어요. 갑자기 어미 산돼지가 몸을 휙 돌리는 것이었어요. “아, 아, 안 돼! 아버지, 어머니!” 그때였어요. 환이 앞으로 무엇인가 휙 지나치더니 쿵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거였어요. “음머어! 음머어!” 산자락 하나가 무너져 내릴 듯한 누렁이 울음소리가 터졌어요. 산돼지들은 숲 속으로 허둥지둥 꽁무니를 빼고 말았어요. 누렁이의 애꾸눈 밑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어요. 부딪칠 때, 산돼지의 송곳니에 찔린 게 분명했어요. 환이는 옷을 찢어 누렁이의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어요. “누렁아, 고마워. 너 아니었음, 너 아니었음……. 미안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얼굴이 하얘졌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을이 내릴 때까지 가시철조망을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누렁아, 고맙구나. 많이 아팠겠다. 자, 가자.” 잘랑잘랑 워낭 소리가 환이의 귀에는 누렁이의 울음소리로 들려오는 거였어요. 서쪽하늘엔 누렁이의 핏빛 같은 노을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누렁이와의 마지막 밤이 되었어요. 환이의 방으로 달빛이 환하게 스며들었어요. 밤 이슥토록 누렁이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어요. 이따금씩 워낭 소리가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환이는 귀를 막고 말았어요. 그랬더니 워낭 소리가 종소리보다 더 크게 환이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는 거였어요. 환이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외양간으로 향했어요. 마당으로 숨이 막힐 듯 쏟아져 내리는 달빛, 달빛. 누렁이는 하염없이 보름달만 쳐다보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우린 내일이면 헤어져야 해. 사랑해!” 환이는 누렁이의 목을 끌어안고,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물었어요. 누렁이의 긴 혀가 환이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쏟아져 나오는 꽃향기, 상큼한 풀잎 냄새……. 환이는 무엇엔가 쫓기는 모습으로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어요. 이튿날 누렁이를 싣고 갈 트럭이 왔어요. 환이는 팔려가는 누렁이를 차마 볼 수 없어 마당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소장수의 웃음소리가 무섭게 들려왔어요. “자, 나머지 돈입니다. 누렁이를 싣고 가겠습니다.” “저, 저, 미안합니다. 누렁이는 팔지 않겠어요. 계약 위반금을 달라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안 파신다니요? 누렁이 값을 잘 쳐드리는 건데, 이거야 어디 원 쩝쩝.” 한참 후, 트럭은 털털털 소릴 내며 돌아갔어요. 환이는 얼마나 놀랐는지, 방문을 쾅 열어젖뜨렸어요. 누렁이에게 맨발로 달려갔어요. “누렁아, 우리 아빠 최고지?” 누렁이가 음머어!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잘랑잘랑 워낭 소리도 ‘그래그래’ 라고 들려오는 거였어요. ●작가의 말 애꾸눈 누렁이는 개구쟁이 시절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누렁이는 죽고 없지만, 아직까지도 제 가슴 속에 살아있답니다. 밤 이슥토록 잠 못 이룰 때에는 음머어 소리도 듣고, 잘랑잘랑 워낭 소리를 아직도 듣고 있답니다. 누렁이에게 미안한 마음,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줄지 않고 있어요. 혹시 누렁이가 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밤하늘도 많이 쳐다본답니다. ●작가 약력 충북 충주 출생. 1984년 아동문학평론 동화 추천완료. 계몽아동문학상, 새벗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톨스토이 문학대제전 아동문학대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주요 동화집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눈자니 마을의 동화’ 등. 충남 보령 개화예술공원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동화비가 세워져 있음. 현재 경기 화성시 비봉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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