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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적의 380g 초미숙아’ 부모 첫 단독 인터뷰

    ‘기적의 380g 초미숙아’ 부모 첫 단독 인터뷰

    몸무게 380g으로 태어난 은식이가 18일 9개월의 병원 생활을 접고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280일간 사투를 벌인 은식이의 ‘생명 의지’에 사회적 울림이 크다.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깊다. 지난해 7월 은식이는 임신 26주 만에 볼펜 크기만 하게 세상에 나왔지만 하루하루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였다. 부모 김태웅(41)·이금현(40)씨는 “초미숙아였지만 은식이는 눈썹, 머리카락, 손발톱 등 있을 것은 다 있는 온전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충북 충주시의 한 작은 교회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이 부부의 절박한 심정을 서울신문이 단독으로 들어 봤다. →은식이가 380g의 미숙아로 태어난 이유가 있나요. -이씨 지난해 5월쯤 임신 5개월이었는데 다니던 병원에서 양수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노산이기도 하고 태어날 아이가 기형아일 수도 있으니 검사하자는 거였지요. 물론 기형아라도 전 낳을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양수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양수가 두번 터졌어요. 그래서 병원에 2주 동안 입원했어요. 양수가 또 새고 상태가 안 좋아 계속 입원했는데 임신중독증, 그것도 고위험 상태라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양수가 다 샜고, 이 상태로는 아기 못 낳는다. 산모도 애도 위험하니 애를 포기하라’고 했어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씨 (표정이 어두워지며) 막막했어요.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아기 아빠는 “자기는 포기할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김씨 내 아이 죽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살린다고 목회하겠나 생각했어요(김씨는 농촌 교회의 목사다). 의사한테 포기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가 여기는 시설이 없어서 애를 낳을 수 없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산모가 그렇게 위험한 상태면 산모부터 살리자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김씨 생명이 귀하기 때문이에요. 부모 마음이야 자식을 위하지만 집사람도 귀하고 둘 다 살리고 싶었지만 하나만 포기하라고 했을 때 병원에서는 당연히 예상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살릴 수 있는 사람만 살리자고.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보겠다고 상급 병원에 이원하는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병원 담당 교수님이 한 시간여 동안 여기저기 알아봐 주시는데 길게 느껴지더군요. 겨우 연락이 닿은 삼성서울병원에 분만실이 딱 한 자리 남아 있다고 했고 바로 앰뷸런스가 와서 (아내를) 분만실로 실어 갔어요. 그렇게 나흘을 견디다 지난해 7월 12일 아이를 낳았어요. 자리가 없었거나 조금만 늦거나 했으면…. -이씨 우린 돈도 없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우연찮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게 다 우리를 살리려고 한 거라 생각했어요.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기 낳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나요. -김씨 상황이 급박해서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하고 바로 이동해서 낳았으니까요. →옮긴 병원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이씨 살고 죽는 것은 자기네(의사)들이 할 일이 아니다. 신한테 맡겨야 한다. 자기네들은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했어요. →은식이를 처음 봤을 때는 어땠나요. -김씨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기를 보라고 해서 제가 몇 그램이냐고 물으니까 “380g”이라는 거예요. (참담한 표정으로) 임신중독증이 생기면서 아기가 오히려 작아진 거예요. 우리 아들이지만 380g이라니까 책에서 본 것처럼 사람 같지 않고 빨간 쥐같이 생겼으면 어떡하나 생각했죠. 처음에 딱 봤는데 애가 너무너무 예쁜 거예요. (부부가 서로 웃으면서) 눈썹, 머리카락, 손톱, 발톱 다 있고 또 눈을 떴는데 깜빡깜빡하고 팔다리를 힘 있게 움직였지요. 죽을 애 같지 않고 살겠구나 싶었어요. -이씨 제왕절개수술하고 나서 간호사가 “아들이에요.”라는데 감사했어요. 내 소원이 이뤄졌구나 했어요. 저도 외동딸이라 형제끼리 아웅다웅 노는 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처음 봤을 때 바로 손발부터 살폈어요. 손가락 발가락 10개 다 있으니 됐다 하면서 안심했어요. →미숙아로 태어났으니 많이 고생했을 텐데요. -이씨 절대 우울증에 안 걸릴 털털한 성격이었는데 우울증이 생겼어요. (웃으면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웃음이 뚝 끊기며) 마트를 못 가겠더라구요.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차라리 날 죽이고 내 아이를 살리지 싶어서…. 은식이가 나서 3일 만에 동맥을 수술하고, 1200g이 됐을 때 탈장수술 하고. 애가 너무 어린데 수술해서 힘들어하는 모습 보니까…. (울먹거리며) 병원에서 미숙아에게 망막수술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이가 우유 10㏄도 소화를 못시키는데, 이 수술까지 하다가는 죽을 거 같았어요. 겁이 났습니다. 아이를 살려 달라고 수술 전날 기도했는데 수술 당일 아침에 병원에서 아이가 눈이 좋아져서 수술을 안 해도 되겠다고 하더라구요. 살았죠. →혹시 육아일기 같은 것은 쓰셨나요. -이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쓸 새도 없었어요. -김씨 우리는 매일 6시 25분쯤 병원에서 오는 문자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은식이 몸무게가 몇 그램이고 우유를 몇 ㏄ 먹었다는 문자가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서…. 금식이다 하면 바로 서울로 가는 거고, 조금 먹는다 하면 안심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거죠. →몸무게 늘어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죠. -김씨 우리는 몇 ㎏이 아니라 몇 g이냐가 중요해요. 초저체중 아이는 폐 문제가 가장 커요. (폐가 작으면) 숨을 못 쉬니까. 방법은 하나. 아이가 커져서 폐도 커져 폐활량이 커지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니 그램 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어요. 몸무게가 마의 산처럼 아무리 가도 갈 수 없는 산처럼 보였어요. (은식이가 태어나고) 9개월이 가도 자꾸 뒤로 가는 느낌이었죠. 무게가 늘기도 하고 다시 줄기도 하니까…. 한 발자국 가면 두 발자국 뒤로 가는 느낌이었어요. →은식이는 서울 병원에 있고 부모님은 이곳 충주에 있었던 건가요. -이씨 저는 시간 날 때마다 갔어요. 맨 처음에 아기 낳고 보러 갔는데 내가 간 다음날 아기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안 가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기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아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한번은 간호사가 이러는 거예요. (아기 얼굴이 왼쪽 어깨에 닿게 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어머니가 항상 이렇게 안으셨어요? 이렇게 안지 않으면 보챈다고 하면서…. 제가 항상 그렇게 안았거든요. →은식이 같은 미숙아 치료를 보며 느낀 점은요. -김씨 은식이 하나에 의사 10명, 간호사 25명이 3교대로 돌보더라고요.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하고 검사를 하고 거기에 대한 진단을 하고 처방 내리는 게 너무 미세한 분야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뛰어나다고 해서 애를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력지원 예산지원이 많이 돼야겠지만 살려낼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았어요. →은식이를 보면서 부모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씨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데 은식이를 보니까 지금도 숨 한번 쉴 때마다 (양손으로 옆구리 부분을 가리키며) 횡격막이 쑥쑥 들어가요. 숨 한번 쉬는 게 (은식이의 경우) 온몸을 이용해서 숨을 쉬는 건데,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들은 자신이 숨쉬는 것에 대해 감격이 없지 않나 싶어요.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스스로 죽기도 하고. 380g짜리가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고 마침내 살게 됐죠. 이런 거 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웅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씨 (다시 울먹이며) 굉장해요. 숨을 다 놔버리기 때문에 못 사는 건데 얘는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데…. 은식이 살려 주셔서 의사 선생님한테 감사하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은식이가 스스로 살려고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은식이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나요. -김씨 우리 아이가 똑똑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개구쟁이처럼 신나게 놀면서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이씨 병원에 가니까 의사 선생님이 제일 멋있어 보이더라구요(이 말에 부부가 함께 웃었다). 의사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거 보고 (은식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삼성병원 가서 취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싶었어요. →은식이 같은 미숙아를 가진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김씨 아이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내 아이는 일찍 낳은 것뿐이고, 내 아이는 내가 사랑하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글 사진 충주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PF상환 피가 마른다”…10여 건설사 자금난 루머

    “PF상환 피가 마른다”…10여 건설사 자금난 루머

    “좀 도와 주셔야지요. 저희 어려운 것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만기연장해 주세요.” A건설 회계담당 김모 과장. 요즘 그는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1280여억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 때문에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을 찾아가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 뿐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PF를 통해 벌여놓은 사업이 중단돼 수입은 없는데 금융권이 자금을 상환하라고 연일 압박하기 때문이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PF발 자금압박으로 지난해 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동일토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개 중견건설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지난 12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과 함께 서울 내곡동 주택사업 PF에 참여한 동양건설산업뿐 아니라 S건설, B건설 등 10여개 건설사가 자금난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A건설은 2007년 경기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 PF 개발사업에 뛰어든 게 화근이었다. 알파돔시티는 판교신도시에 민간 주도로 주상복합아파트와 호텔, 상업시설 등이 들어서는 13만 8000㎡ 규모의 대형 복합개발 사업이다. 사업비는 땅값 2조 3601억원 등 5조 671억원.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PF가 어려워지면서 공사가 중단됐고 기업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업계에서는 “A사를 비롯한 최근의 건설업계 어려움은 호황기의 무리한 투자도 한몫했다.”면서 “건설업계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1조원대가 넘는 대형 PF 사업장은 40여개로 100조원대에 이른다. 거의 모든 대형 개발사업장이 알파돔시티와 같은 상황이다. 인천 로봇랜드, 청라국제업무지구, 상암DMC랜드마크타워 등 굵직한 사업들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보증을 서고 사업에 참여했던 중견 건설사들의 시름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또 중견 건설사들은 2009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주택경기 침체로 분양이 미뤄지거나 사업 시작이 불투명한 사업지의 땅값이나 공사비에 대한 PF 대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게다가 올 들어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이들이 PF 대출 회수에 나서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D건설 관계자는 “삼부토건의 좌초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PF 대출 연장이 안되면 모든 중견 건설사가 법정관리로 가야 할 판”이라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70억분의 1’ 지구상 유일한 ‘특이 염색체’ 소년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특이 염색체를 가진 소년이 등장했다. 확률로 따지면 70억분의 1 염색체를 가진 이 소년에게 하루하루가 기적과 같다. 영국 워릭셔 주에 사는 알피 클램프(2)는 사랑스러운 미소와 애교로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막내아들이다.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실 알피는 매우 희귀한 유전병 탓에 ‘70억분의 1’ 소년이라는 별명이 있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알피는 7번째 염색체에 ‘추가적인 가닥’(extra strand of DNA)이 있는 희귀 유전병을 앓고 있다. 역대 의학계에도 단 한 차례도 보고된 바 없기 때문에 치료방법이나 증상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알피는 호흡 및 신진대사에서 문제를 보이고 있으며, 발육에도 장애가 나타나고 있다.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며 근육이 워낙 약해서 18개월이 지났을 때야 겨우 몸을 세워 앉을 수 있었다. 신문에 따르면 알피는 생후 6주 만에 호흡 장애로 의식을 잃은 뒤 지금까지 상당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특히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자주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겼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년의 부모는 “알피와 맞는 하루가 기적과 같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리처드 알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특이 염색체를 가진 아들이 이렇게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면서 “아들이 건강해지면 분명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twitter.com/newsluv) 
  •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끝에선노인들 ⑥농협 고객지원센터의 어르신 사랑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끝에선노인들 ⑥농협 고객지원센터의 어르신 사랑

    “공사장 잡역부, 전기설비, 목수…. 내가 왕년에 안 해 본 게 없는 사람이에요. 요즘 보니까 시장 주차장 관리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이 있으면 소개 좀 부탁해, 응.” 신채휴(83·경기 성남)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늘 활기차다. 독거노인은 항상 외롭고, 할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부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듯. 신 할아버지는 “일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농협 고객지원센터 상담원 이서윤 팀장과 신 할아버지는 주 2회씩 늘 이런 담소를 나눈다. 이 팀장은 “젊은 시절의 경험과 경력을 줄줄이 읊는 신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다보면 통화시간 15~20분은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7일 서울 용산 한강로 농협 별관에 자리한 농협고객지원센터는 고객과 대화하는 상담원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오가고 있었다. 농협은 2008년부터 고객지원센터 상담원들이 주축이 돼 전국의 농촌 독거노인 1400여명을 대상으로 말벗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농협 시·군지부를 활용한 전국네트워크를 통해 대상 노인을 발굴하고, 노인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있으면 동 주민센터와 사회복지사 등을 연결해 지체없이 조치를 취한다. ●드라마 얘기하면 ‘화색’ 말벗서비스가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상담원들의 전화를 상술이나 보이스 피싱으로 오해하고 전화를 툭, 툭 끊어대는 노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도 없이 전화를 시도하는 게 일상이었다. ‘전화를 혼쾌히 받으실까’ 처음 전화를 할 때는 걱정이 앞섰지만 한달, 두달 독거노인들과 전화를 계속하며 이제는 자연스러운일과가 됐다고 상담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말벗서비스를 통해 나타난 노인들의 가장 큰 욕구는 바로 일자리다. 이 팀장은 “젊은 시절 영어를 공부했다며 영어강사를 하고 싶다는 등 일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거노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상담원들이 말하는 말벗서비스의 비법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공통의 화제찾기다. 콜센터의 상담 강사로도 일하고 있는 김선미 상담원은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가 좋은 소재라고 조언했다. “제가 통화하는 어르신은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 얘기만 하면 무척 좋아하세요. 어떤 경우는 제가 어제 드라마를 못 봤다고 하면 무슨 내용이 방송됐는지 줄줄이 말씀해주세요. 이 배우는 어떻고, 저 연기자는 어떻고…. 드라마를 주제로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죠.” 김 상담원은 “지금 드라마 봐야 하니깐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는 경우도 있다.”면서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어르신 목소리에 건강함이 묻어나와 안심하고 전화를 끊는다.”고 전했다. 3년 남짓 진행된 말벗서비스는 이제 직접 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등 전화밖으로 확대되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말벗서비스 대상 노인에게 겨울에는 보온내의를, 여름에는 모시내의를 전달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설날이나 명절에는 계절 특성에 맞는 선물을 농촌의 독거노인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또 농협고객지원센터 전 직원은 (사)우리농업지키기운동본부를 통해 매월 1000원 이상씩을 독거노인을 위한 기금으로 조성하고 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 매년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농협의 말벗서비스가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주로 농촌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시골 곳곳에 단위 지점이 있는 농협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시보다 열악한 농촌에 보다 적극적인 사회공헌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농어촌 독거노인의 월평균 소득은 42만 2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80% 가까운 노인의 소득이 50만원 미만이었다. 서울지역 독거노인의 월평균 소득이 46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소득은 서울 독거노인의 91% 수준이다. 이들의 월평균 생활비는 32만 8000원으로, 주로 식비와 주거비, 보건·의료비 등에 지출이 집중됐다. 손자·손녀와 사는 농어촌 조손가족의 월평균 소득도 69만 7000원에 불과했고, 월평균 생활비는 58만 4000원이었다. 노인들이 돌보는 손자·손녀의 평균연령은 12.7세, 양육기간은 평균 8.6년으로 나타났다. 친부모가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경우는 아버지 24.2%, 어머니 17.0%에 불과했다. ●시골 곳곳 농협 네트워크 활용 장점 상담원들은 농촌 독거노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팀장은 “농촌 노인들은 도시와 비교해 주변 여건상 물건을 쉽게 구매할 수 없다.”면서 “비용은 조금 더 들겠지만 말벗서비스를 통해 노인들이 원하는 물품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명절 때 개별적으로 전달해도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소 타고 신나게 달리는 독일 소녀 ‘화제’

    말 대신 소를 타고 신나게 들판을 달리는 독일의 소녀가 화제다. 독일 라우펜이라는 곳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15세 소녀 레지나 마이어가 승마 대신 승우를 즐기는 주인공. 레지나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루나라는 이름을 가진 2년생 소다. 멋진 말에 올라 들판을 달리는 건 소녀의 꿈이었다. 하지만 말을 한 마리 사달라는 딸의 부탁을 부모는 모질게(?) 거부했다. 잔뜩 화난 얼굴로 투정을 부리거나 쉽게 꿈을 접을 수도 있는 나이였지만 레지나는 달랐다. 말 대신 소를 타고 달려보자며 승마에서 ‘승우(?)’로 꿈을 바꿨다. 그 꿈을 이뤄준 게 2년 전 부모의 농장에서 태어난 소 루나. 루나가 태어나자 레지나는 함께 산책을 다니며 풀을 먹이는 등 정성을 다해 소를 길들였다. 등에 안장을 얻는 등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이런 조련기간을 거쳐 레지나가 처음으로 루나의 등에 올라탄 건 소가 6개월 됐을 때다. 레지나를 태운 소는 엉금엉금 몇 발자국 걷다가는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레지나는 “소가 화를 내는 게 분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지나의 집념에 루나는 하루하루 변해갔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루나는 완전히 변했다. 레지나를 태우고 신나게 들판을 달리면서 장애물까지 훌쩍 뛰어넘는다. 완전한 말로 변신한 셈이다. 레지나는 매일 방과 후 소를 닦아주고 1시간 가량 들판을 달린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녀는 “여전히 말을 갖고 싶지만 루나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천안함 1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천안함 1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침몰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서해바다에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생존 장병들과 전사자 유가족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여전히 고통받고 북한과의 전면 교역 중단으로 남북 경협업체들은 예기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KBS 1TV ‘시사기획 KBS 10’은 29일 밤 10시 ‘천안함 1년, 봄은 오는가?’를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천안함 침몰 이후 우리 사회가 받았던 충격과 상처를 되돌아보고, 한반도에 고조된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 무드를 가져올 전략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천안함 사건 이후 1년 동안 전사자의 유가족들은 아들을, 남편을 가슴에 묻어두고 눈물을 감추며 힘겹게 살아왔다. 생존 장병들 가운데 일부는 대학에 복학했지만 지금도 침몰 당시의 끔찍한 장면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1년 전의 충격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가족들의 아픔을 들어본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며 북한과의 교역과 경협을 전면 중단하는 5·24 조치를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교역 중단으로 중소 남북경협 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거나 상당수는 도산하기도 했다. 그나마 개성공단은 가동되고 있지만 상주 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대부분 업체들이 출퇴근에 엄청난 비용과 경영난을 겪고 있다. 천안함 침몰 후 백령도는 예전과는 완전히 딴판이 됐다. 평소 주말 같으면 낚시꾼이나 관광객들로 북적일 선착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주민들은 천안함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생계를 이어가기가 막막하다고 하소연한다. 한편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원들은 초긴장 속에 하루하루 비상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겉으론 평온하지만 긴장 속에 시름이 깊어가는 백령도를 현지 취재했다. 이와 함께 연평도 포격 도발 와중에 차기 아시안 게임을 주최하게 된 인천시의 속앓이도 취재했다. 제작진은 “천안함 침몰의 상흔을 극복하고, 남북이 상생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전략은 무엇인지 진단해 보았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주말 영화]

    ●바람의 전설(EBS 일요일 밤 11시) 처남이 경영하는 총판 대리점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관리사원 박풍식(이성재·왼쪽). 주부들의 판매실적을 체크하고, 할부금 입금을 독촉하는 것이 주된 일과인 그는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지겨운 30대 가장이다.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만수(김수로·오른쪽)를 통해 알게 된 사교댄스는 깜깜한 그의 인생에 한줄기 구원의 빛으로 다가온다. 만사 의욕상실이었던 풍식은 ‘하나, 둘, 슬로, 슬로, 퀵, 퀵’ 스텝을 밟아 갈수록 진정한 춤의 매력에 빠져 인생의 활력을 되찾아 간다. 그러나 오랜만에 맛본 일상의 행복도 잠시. 만수의 제비행각으로 잘나가던 사업은 풍비박산의 지경에 이르게 되고, 친구의 배신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풍식은 그제서야 전정한 춤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대한민국 일류 댄서가 되기 위해 혈혈단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춤의 고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는 자이브의 대가 박노인을 만나 춤의 철학과 정신에 대한 기본부터 철저히 연마하게 된다. ●대한민국 1%(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웬만한 남자도 버티기 힘들다는 해병대 훈련 과정을 일등으로 통과한 최초의 여자 부사관 이유미(이아이).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한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군사 훈련 만년 최하위 팀인 3팀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자신을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팀원들과 진급을 위해 자신의 1팀을 최고로 이끌어야 하는 왕하사(임원희)의 방해공작에 유미와 3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엄격하지만 묵묵히 유미와 3팀을 믿어 주는 강중사(손병호)의 지원 속에 드디어 그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마지막 훈련이 시작되지만, 왕하사의 계략에 휘말린 유미와 3팀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연 수색대 최초 여부사관 유미와 만년 최하위 3팀은 사단급 훈련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을까.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일(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시애틀 방송국의 잘나가는 리포터 레이니. 화려한 금발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늘씬한 몸매, 그리고 시애틀의 영웅인 최고의 야구 스타 남자친구까지. 레이니는 단 하나, 전국 방송 리포터가 되는 꿈만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잘나가는 여자다. 그러던 어느날 레이니의 상사는 능력있는 카메라맨인 피트와 몇달 동안 호흡을 맞추라는 조건을 전제로 전국 방송 리포터로 레이니를 추천한다. 피트는 몇년 동안이나 레이니의 둘도 없는 철천지원수다. 그러나 레이니는 전국 방송 리포터가 되기 위해서 이쯤은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꾹꾹 참지만 도대체가 5분만 함께 있으면 싸울 일이 꼭 생긴다. 레이니의 스타일이 구겨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 “배 고치니 날씨가”… 北주민 27명 뒤숭숭한 남한살이

    지난달 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한 북한 주민 27명이 이번에는 기상상황 악화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4일 “선박의 수리는 마무리 됐는데 서해의 풍랑 때문에 이번주 내 송환은 어려울 것 같다.”면서 “기상상태를 봐가면서 조속히 보낸다는 입장을 가지고 되도록 빨리 보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 31명이 NLL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2월 5일이다. 우리측으로 귀순 의향을 밝힌 4명을 제외한 27명이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 생활을 한 지도 2개월이 다 돼 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31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내려오는 바람에 우리 측의 조사기간도 한달이나 계속됐다. 여기에 귀순 희망자 4명에 대한 남북 당국간의 신경전으로 판문점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는 수난도 겪어야 했다. 지난 15일 마침내 북한행이 결정됐으나 선박의 상태가 문제가 됐다. 이들이 타고 온 배가 오래된 목선이었기 때문에 수리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재봉틀 사용하다가 바느질 하기 어렵듯이 북한 선박이 낡아 기술자를 찾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날씨마저도 이들의 송환을 돕지 않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현재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는 상태로 연평도 인근 서해 중부에는 2~3m 가량의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5t급의 소형 목선은 바다를 통과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26일쯤 돼야 바다가 잠잠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난감해하고 있다. 27명을 겨우 북으로 돌려보내게 됐는데 선박 수리와 기상상황으로 지연되고 있는 데에 대한 부담이 하루하루 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돼 버려서 답답하지만 안전하게 항해해서 보내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라면서 “상황이 좋아지면 주말에라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27명은 정부 관계기관 보호하에 경기도 모처의 숙소에서 지내고 있으며 추가로 귀순을 희망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단축키 1번 아들번호 아직도 못 지워”

    “단축키 1번 아들번호 아직도 못 지워”

    “아들이 혹 섭섭해할까 봐 아직도 제 휴대전화 단축번호 1번은 우리 규석이에요.” 천안함 침몰 희생자인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60)씨가 흐느끼며 말했다. 혹시나 “엄마.” 하고 대답할 것만 같아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버릇처럼 휴대전화의 1번 단축키를 길게 누른다는 유씨다. 얼마 전에는 통화가 연결됐다. 혹시나 싶어 “규석아.”라고 불러봤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아들의 번호를 쓰고 있었던 것. 유씨는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가슴이 더 아프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이달 26일이면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지 딱 1년이 된다. 22일 만난 46명의 희생 승조원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장성한 아들을 차디찬 서해에 묻어 둔 가족들은 아직도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나고 있다. 고 장진선 중사의 옛집, 방은 1년 전 그대로다. 아버지 장만수(53)씨가 “못 할 짓”이라며 아들의 방을 손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장씨 부부는 늘 아들의 영정 사진, 훈장 등을 어루만지며 그리움을 토해 내고 있다.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장씨 부부다. 장 중사의 어머니는 “그래도 우리 아들 효자예요. 아직 꿈에도 한번 안 나타나고…, 아빠 걱정할까 봐 그러는 거지.”라며 다시 흐느꼈다. 고 박보람 중사의 아버지 박봉석(51)씨는 아들 생각이 날 때면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달려간다. 그때마다 잊지 않고 수박을 챙긴다. 박씨는 “유독 수박을 좋아했던 아들을 생각해 수박을 꼭 챙긴다.”면서 “무슨 말을 한다고 알아들을까마는 그래도 수박이나 잘라 놓고 아들과 이것저것 얘기라도 나누고 오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린다.”고 했다. “허허.” 어떻게 지내셨냐는 물음에 고 정종률 중사의 장인 정규태(67)씨가 울음 같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정씨는 “달라진 건 없는데, (사위 잃은 슬픔의) 후유증이 오래 가.”라면서 “젊은 나이에 남편 잃고 홀로 애 키우는 딸을 보면서 ‘잊으라’고 말하고 싶지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도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도 아들 생각만 하면 울컥한다.”는 고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 이인옥(49·천안함 유족 대표)씨는 늘 아들의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옆으로 메는 가방이 나이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항상 같이 있는 것 같아 놔둘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휴대전화 자판 제조업체를 물려받으려고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했던 맏아들을 잃었지만 이씨는 “누구도 탓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군에 가 나라 지키다 사고를 당했는데 자랑스러워해야지 누구를 원망하겠어.”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하늘에서라도 못다 한 꿈 이뤘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면서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김양진·김소라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1년] (중) 생존자 첫 전역 전준영씨 사연

    [천안함 1년] (중) 생존자 첫 전역 전준영씨 사연

    그와의 전화 통화는 쉽지 않았다. 때로는 문자메시지로, 때로는 늦은 밤 짧은 통화로 간간이 안부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찍기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직도 천안함이라는 상처에서, 세간의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처음으로 의무복무를 마치고 지난해 5월 전역한 전준영(24)씨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방황→학업 포기→자살 충동→사랑→희망…. 그렇게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단다.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동일본 지진 피해자들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저는 국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힘이 나고 고마웠거든요. 우리들처럼 힘냈으면…”이라고 위로의 말을 보냈다. 곧 새신랑이 된다는 기쁜 소식도 전했다. “(제가) 기자회견 하는 거 보고 제 미니홈피를 통해 한 여성분이 연락을 해 왔어요. 그 뒤 그녀를 만나 위로받으면서 가까워졌죠. 양가 부모님들이 4월에 만날 예정인데 그때 결혼 날짜를 잡을 겁니다.” 극한의 고통을 준 천안함 사건이 아이러니하게도 천생 배필을 만나게 해 줬다. 가장이 된다는 책임감과 가족이 생긴다는 기쁨에 자연스럽게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 갔다. “이제 가족이 생겨서 그런지 예전처럼 우울하고 그런 건 많이 없어졌죠. (사건 당시) 그때랑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가장이 돼 가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병원 갈 시간도 없고, 가족 때문인지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 거 같아요.” 전역한 뒤 심해진 우울증으로 ‘그냥 같이 전사했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왜 살아서 고통을 받아야 하나.’라며 방황했던 마음도, 자살 충동도 옆에서 힘이 되어 준 연인 덕에 이겨 냈다. 그는 “밥 먹다가 군대랑 연관된 음식을 먹으면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특히 부침개를 보면 더 슬펐습니다. 동기가 부침개 부치면 따로 불러서 입에 넣어 주고 했던 추억이 떠올라서….”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동기는 이상희, 이재민, 이용상, 이상민 하사 등이다. 그는 해상병 542기 동기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았다. 처음에는 방황도 많이 했다. 휴학 뒤 체대 편입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녔지만 두려움, 불안, 죄책감 등 어지러운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며칠을 공부하다 흐트러지고, 며칠을 마음먹었다 포기하는 나날이 반복됐다. 의욕이 없었고 무기력했다. 지난해 7월의 일이었다. 결국 한달 만에 편입 공부를 접었다. 학교에 다시 돌아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만에 또 휴학계를 냈다. 우울증도 심해졌다. 자살하려고 했던 일도 두세번이나 됐다. 그때 여자 친구가 ‘구세주’가 됐다. 힘겹게 술로 하루하루를 잊으며 보냈던 당시, 그녀는 메신저로 연락하며 힘을 주었고, 만나서는 따뜻한 말로 용기를 줬다. 결국 그는 사랑을 통해 희망을 찾았다. 3개월 전 태어나 처음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택배 기사로 일하며 아침 7시부터 꼬박 12시간을 뛰어다닌다. “결혼해야 하니까요. 휴학하고 그냥 남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마음을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를 사칭해 유가족을 괴롭히는 이도 있었다. “전역 후 5, 6월일 거예요. 누가 천안함 카페 가입해서 저인 척하고 유가족들한테 귀찮게 전화하고 그랬다더라고요. 경찰에 전화했는데 잡혔다고만 하고 그 뒤의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한두달 지나서 잡혔다는데 크게 처벌하진 못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람을 물었다. “좋은 가장이 되고 싶어요.” 고통의 나날 1년, 이제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백민경·최두희기자 white@seoul.co.kr
  •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요즘 극장가에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스크린을 장악하더니 마침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1일 현재 누적관객은 103만여명.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과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서도 주말 박스오피스 4위를 지키고 있다. 뒷심의 원동력은 입소문. ‘돌풍의 주역’인 송재호(72)와 윤소정(67)을 만나 ‘그대사 신드롬’과 ‘노년의 사랑’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눠 봤다. ●그레이 로맨스 할리우드 공세 막아 →‘그대사’는 김만석(이순재·76), 송이뿐(윤소정), 장군봉(송재호), 조순이(김수미·60) 네명의 황혼 순애보를 그린 영화다. 주연배우 네명의 평균 나이가 68.8세다. 젊은 톱스타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같은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지만 원작자인 강풀의 만화 가운데 영화로 성공한 작품이 별로 없어 크게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풀 징크스’를 깨고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윤소정(이하 윤) 일단 영화가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다. 솔직히 요즘 너무 난폭하고, 자극적이고, 악만 남은 영화가 많지 않았나. ‘그대사’는 보고 나면 여운이 남고 좋은 기분을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영화다. 험한 영화를 보면 꿈자리가 사나운데, ‘그대사’는 꿈까지 행복하게 꾸게 만든다. 송재호(이하 송) ‘그대사’의 ‘까도옹’(까칠하고 도도한 할아버지) 순재 형님이 ‘만추’의 현빈을 눌렀다는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다.(웃음) 생각만큼 홍보를 많이 못해 아쉬웠는데 관객들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후폭풍을 타면 롱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출연한 영화 ‘해운대’, ‘살인의 추억’ 등의 관객수를 모두 맞혔는데 ‘그대사’는 650만명을 예상했다. →우유를 배달하는 까칠한 할아버지 만석과 폐품을 수집하지만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할머니 이뿐. 치매에 걸렸어도 남편의 사랑만은 잊지 않는 할머니 순이와 그런 아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로맨티스트’ 군봉. 이 두 커플이 보여주는 노년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처럼 감각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더 큰 설렘과 울림을 준다. 윤 사랑이란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설레고 아무 조건 없이 서로 좋아하는 것인데, 요즘엔 사랑이라는 포장에 계산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거품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들이 사랑하면서 그런 조건을 따지겠나. 그러니까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는 거다. 송 노년의 사랑은 생김새나 재력, 사회적 지위를 다 떠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게 진짜 사랑인 거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의 속박을 받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 →오롯이 실버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상업영화는 ‘그대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송 맞다. 그동안 노인들이 영화 주변부에 놓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주인공 삼은 영화는 처음인 듯싶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가 더 잘됐으면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의 사랑은 분명 젊은이들과는 다르다. 노인들의 사랑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가슴 아프고 멋지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윤 영화에 만석 할아버지가 이뿐 할머니의 리어카에 우유팩을 얹어주고 신나하는 장면이 나온다. 별 장면 아닌데 찍으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장면이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노년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군봉과 순이 커플이 보여주는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랑, 만석과 이뿐 커플의 죽음 앞에서 절제하는 사랑. 이 두 사랑은 관객에게 진정한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데. 송 사랑은 서로에 대한 희생과 봉사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는 인생의 반려자라고 하지 않나. 군봉의 입장에서는 전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자 한 거다. 윤 늘그막에 어렵게 찾아온 사랑을 두고 뒷걸음질치는 이뿐을 답답하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젊은 애들처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꼭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절제하고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도 필요하다. 이뿐은 평생 소외되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아 온 이다. 만석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면서도 발에 안 맞는 꽃신처럼 그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결혼생활 40~50년… 현실 속 사랑은? →실제 삶에서 두분의 사랑은. 송 아내가 첫사랑이다. 결혼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군봉의 사랑에 더 공감한 까닭도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이 젊었을 때 고생한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해서 지금도 토크쇼에 일절 나가지 않는다. 배우 생활 하면서 본의 아니게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50년째 누구보다 견고하고 튼튼한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윤 지난달 28일이 결혼 43주년 기념일이었다(윤소정의 남편은 배우 오현경이다). 그런데 그런 날만 되면 꼭 싸우게 되더라고.(웃음)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에 대한 약속이다. 이 나이 되면 신뢰와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대사’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는 사람이 많지만 영화는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연기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윤 남편(오현경)이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실제 윤소정의 모습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더라.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번역극에 많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카리스마가 많이 부각됐지만 실제 윤소정은 영화 속 이뿐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여자다. 집에서 바느질과 토속 음식을 즐기고, 사고도 아주 고지식하고.(웃음) 송 또래의 삶과 사랑이라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추창민 감독과는 처음 작업하는데, 영화의 맛을 아는 아주 똑똑한 ‘여우’다. 배우는 언제나 선택을 받는 직업이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는 두 사람. 어쩌면 노년의 사랑이란 이들의 모습처럼 겸허한 삶의 자세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5톤 화물트럭 운전 30대 가장 김현승씨의 하루

    25톤 화물트럭 운전 30대 가장 김현승씨의 하루

    대한민국 가장들은 고달프다. 옆집 김씨, 뒷집 장씨 할 것 없이 고통스럽다.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 높은 사교육비 부담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화물트럭을 모는 김현승(36·인천 남촌동)씨는 구제역 피해까지 덤터기를 쓰고 있다. “뼈 빠지게 일해 봐야 빚만 진다.”는 그의 하루 행적을 지난 18일 오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에서 따라가 봤다. 어둠이 깔린 새벽 3시,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25톤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김현승씨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여는 시간이다. 가족들이 깰까 싶어 조심스레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연신 하품이 나온다.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데 어제 넣었던 기름은 벌써 바닥이 보인다.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한숨을 내뱉는다. 한달 수입의 절반가량을 기름값으로 지출하는 김 씨로선 너무 가혹한 지출이다. 오늘도 500㎞ 강행군이 예정돼 있다. 경기 오산에 도착하니 새벽 5시. 1시간이면 족한 거리지만 덩치가 큰 탑차여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해 그렇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내 경제마저 어려웠던 3년 전, 신속히 일을 처리하고자 무거운 쇳덩이를 손으로 운반하다 허리를 다쳤다. 병원에서 추간판탈출증 판정을 받고 7년간 몸담았던 펌프카 제작업체의 제관공 일을 그만뒀다. 강철판을 자르고 구부려 관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홀로 완성차를 만들 정도로 꽤나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로선 퇴직이 믿기지 않았다. 더욱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병치레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헤맨 것이 화근이었다. 병원 치료가 미흡해 산업재해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 된 것이다. 결혼 5년차에 한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충격이었다. 더욱이 부인의 배 속에는 곧 세상에 나올 둘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지독한 불황은 그를 나락에서 올라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위해 문을 두드린 회사마다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찾은 게 화물차 운전이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데 힘들지 않겠냐는 주위의 걱정보다는 당장 가족들이 먹고살아야 하는데, 제관공보다 힘들겠느냐는 오기가 작용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은 이후 3년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기름값이든 물가든 모두 뛰어오르는 지금, 그에겐 하루하루가 힘겹다. 오산에 도착하자마자 톱밥을 싣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답답한 마음에 담뱃불을 붙이는 김씨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물가가 오르기 전 지난해 10월에는 한달에 정부보조금 120만원 포함해 600만원 이상 기름값을 냈는데, 일거리가 줄어 현재는 400만원 정도 내고 있어요. 지난해와 비교하면 한달에 70만원 정도 더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운송료는 그대로라서 너무 힘들어요. 불황이 계속된다면 뼈 빠지게 일해 봐야 빚만 늘겠네요.” 석유공사의 전국 주유소 평균 경유값은 지난해 10월19일 리터당 1477원 하던 것이 지난 19일에는 1774원으로 5개월 만에 17%가량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 금리마저 올랐다. 김씨는 3년 전 1억 5000만원 나가던 트럭을 사기 위해 인천 용현동의 89㎡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4000만원 하던 빌라로 이사했다. 전세 보증금으로는 모자라 은행에서 4000만원 대출을 받아 5년 할부로 트럭을 구입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월부터 불과 5개월 만에 0.75% 올렸다. 한달에 12만원씩 하던 대출 이자가 늘어 15만원 정도 내던 김씨로선 지난 10일 금리 인상이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큰 액수가 아니어서 아직은 별로 걱정하지 않지만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이자가 계속 늘어가니 걱정이에요.” 오전 8시에 충북 증평에 도착했다. 다른 작업부들이 김씨 트럭 적재함에서 톱밥을 내리고 전북 전주로 가는 폐목재를 적재하는 동안 구내식당에서 동료 기사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뒤 짬을 내 눈을 붙이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큰아들 초등학교 준비물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 이웃에게 빌렸다는 부인의 짜증 섞인 통화였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결혼생활 8년 동안 고생만 시킨 부인에게 미안하고 배움이 부족해 아이들한테만은 많이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가 비교적 나았던 지난해 10월 15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평소 낙천적이고 성실한 성격인 데다 수완도 좋아 일거리가 제법 많았다. 그러나 5고(高)가 본격화한 한달 뒤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수입이 넉 달 만에 10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수입은 줄었는데 지출은 되레 늘었다. 기름값 말고도 차량 할부금 160만원과 적금 80만원, 보험료 60만원, 화물차 회사 지입료 40만원, 아이들 학원비 30만원 등을 내고 나면 네 식구 생활비로 1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했다. 더욱이 화물 소개비로 건당 5~10% 제공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여기에 2개월에 한번씩 오일교체 비용 40만원, 반기에 500만원씩 부가가치세를 낸다고 했다. 3년밖에 안 된 차라 아직 수리비가 들지는 않지만 2년에 한번씩 타이어 교체하는 비용 500만원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입보다 소비가 많아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다음 달 수입으로 메워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전주에서 증평 들러 폐목재를 내린 뒤 다시 톱밥을 싣고 인천으로 향한다. 올라오는 도중에 밥값을 조금이나마 아끼려고 싼 음식점을 찾아 헤맨다. 가는 곳마다 500~1000원씩 고쳐 쓴 메뉴판을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이날 역시 차 안에서 빵과 우유로 한 끼를 해결한다. 최근 수입이 줄어든 탓에 매월 40만원 정도 지출했던 외식과 문화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취미였던 낚시도 접어 창고의 낚싯대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였다. 김씨는 “지금은 저축한 돈과 신용카드로 근근이 생활하지만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정말 대책이 없다. 앞으로도 불황이 걷힐 것 같지 않은데 막막하다. 당장 급한 대로 적금 1개를 해약하고, 아이들 학원비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00㎞가 넘는 강행군이지만 그나마 오늘처럼 일거리가 있는 날은 다행이라고 했다. 전국에 확산된 구제역 여파로 우사와 돈사가 폐쇄되자 톱밥을 이용해 퇴비를 만들던 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건설경기 악화로 폐목재를 사용하는 건설현장 일거리도 줄었다. 때문에 요즘은 빈 차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녹초가 돼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김씨. 역시 그를 반겨주는 건 가족이다. 아버지의 고통을 아는지 3살 막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부인과 함께 김씨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또한 전보다 좁아진 집이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소중하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씨.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이루기 어렵다고 말하는 그의 처진 어깨에서 대한민국 30대 가장의 오늘을 본다. 영상콘텐츠부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악마의 칩에 빠진 新도박족] 23년 교직 퇴직금받아 빚갚아… “10주 입원치료후 희망”

    [악마의 칩에 빠진 新도박족] 23년 교직 퇴직금받아 빚갚아… “10주 입원치료후 희망”

    도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Y(51)씨가 번뜩 정신을 차린 것은 며칠 전. 집에서 훔쳐 온 여든 살 노모의 쌈짓돈을 도박판에서 모두 잃고 난 뒤였다. Y씨는 “도박에 눈이 어두워 어머니의 돈까지 탐하는 내 자신의 뻔뻔함에 치가 떨렸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국립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 지역의 중·고등학교 과학교사로 23년간 재직해 온 성실한 선생님이자 가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도박에 손을 대게 된 것은 동네 성인 오락실 슬롯머신을 접하면서부터. 1시간 만에 수십만원을 따는 등 도박의 달콤한 맛을 본 그는 점점 판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1년부터는 아예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한탕’만 성공하면 그동안 쌓인 빚도 갚고 도박에서 깨끗이 손을 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달에 15일로 묶여 있는 출입한도를 꼬박 채우면서 카지노를 들락거렸다. 카지노 한구석에 마련된 휴게실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피곤한 줄 몰랐다. 처음엔 동전과 천원짜리 몇개를 들고 시작했던 도박이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7억원이 넘는 빚뿐이다. 친척과 친지 등에게 돈을 빌려 일부를 갚았으나 아직도 2억원의 도박빚이 그를 옥죈다. 얼마 전 학교에 사직서를 낸 것도 퇴직금을 받아 도박빚 일부를 갚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도박에 미쳐 집을 돌보지 않으면서 아내의 마음도 돌아섰다. Y씨의 아내는 10년 전 그의 곁을 떠났다. 이후 두 자녀까지 아내를 따라 집을 나갔다. Y씨는 대구에서 농사를 짓는 노모의 집으로 이사했다. 도박을 접할 수 없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성실하게 살겠다고 노모 앞에서 다짐했다. 그러나 Y씨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다시 도박판을 찾았다. 단돈 10만원이라도 손에 쥐는 날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구에서 강원랜드까지 달려갔다. 결국 Y씨는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도박판에서 돈을 모두 잃어 집으로 돌아갈 여비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았던 중독관리센터에서 Y씨는 도박 중독에 관한 영상을 처음 접했다. 영상 속에 등장한 정신과 의사가 “도박중독은 병이기 때문에 치료 받아야 한다.”고 하는 말이 가슴을 저몄다. 조심스레 상담사와 마주한 Y씨는 도박중독 치료를 위한 첫발을 뗐다. Y씨의 사연을 들으며 치료를 권하는 상담사에게 Y씨는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이도 많아서 어디 가서 일도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1차 상담을 마친 Y씨는 “이제껏 도박을 끊는 것은 단순히 내 의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중독도 병이라니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센터는 Y씨에게 병원에서 10주간의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퇴원 후 대구 집으로 돌아간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단(斷)도박 모임’에 나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Y씨는 “도박판에서 손을 씻은 뒤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때 도박에 대한 충동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한탕’만 노리며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는 그였다. Y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센터가 마련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도박판을 떠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습니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납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건강이 유지되는 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나이는 많아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독서도우미 중 최고령을 자랑하는 신현자(오른쪽·81) 할머니와 이만균(왼쪽·79) 할아버지는 새로운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아직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덕분이다. 젊은 시절 교사로 일하며 한평생 아이들과 보낸 신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어린이집의 보육도우미로 제3의 인생을 시작, 지난해부터 독서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같은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신 할머니는 3년간의 외국 생활에서 배운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하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기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가 나이를 물어올 때가 가장 싫다.”며 “내 자신이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할머니와 단짝을 지어 독서도우미로 활동하는 이만균 할아버지 역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신문사에서 일한 뒤 문학에 입문,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에 관심이 많아 ‘일하는 노인연대’ 사무국장까지 맡았다. 황혼기 일하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는 “우리들과 같은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젊은 선생들보다 새롭고, 포용력도 넓어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면서 “친손주같이 대할 때 느껴지는 교감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주말 영화]

    ●싸움의 기술(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우리 모두 배워야 할 싸움의 기술, 맞다보면 생각나는 싸움의 기술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맞고 사는 게 일과이며 쉼 없이 구타를 유발시키는 소심한 ‘부실고딩’ 송병태(재희·오른쪽). 병태는 안 맞고 사는 평안한 삶을 꿈꾸며 온갖 책을 독파했으나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명 독서설 특실 B호에 기거 중인 한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놀라운 어록들과 고수의 포스를 지닌 그분. 그의 이름은 오판수(백윤식·왼쪽). 15년 전, 전설적인 싸움실력으로 전국을 제패했던 고수 중의 고수.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병태의 숨은 재능은 그의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맞고만 살아온 자의 두려움을 깨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응용력 부족, 경험 부족 속에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싸움의 연속인 세상에서 그렇게 초절정 부실고딩 병태와 전설의 은둔고수 판수가 만났다. 그분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과연 병태는 판수의 기술을 통해 진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명화극장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KBS1 토요일 밤 12시 35분) 25년 전 잊을 수 없는 살인사건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이 동시에 시작됐다. 벤야민 에스포지토는 25년 전 목격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강간살인 사건이 가슴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 기억의 편린을 쫓아 사건 당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자신의 상사이자 사랑했던 여인 이레네가 떠오르고, 기억 속 사건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을 예고하는데…. 1970년대 아르헨티나,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남편과 여검사, 검사보의 합심으로 범인은 잡혀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범인을 풀어주고,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나바론 요새(EBS 토요일 밤 11시 00분)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2000명이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케로스섬에 고립된다. 독일군 최정예 부대는 영국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출전 준비를 끝내고,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케로스섬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나바론 섬에는 두 대의 거포가 버티고 있다. 최신 레이더 장비를 갖춘 이 거포는 어떤 전함도 거뜬히 폭파시키는 괴력을 자랑하며 나바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를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거포를 폭파하고 고립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나바론 섬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 위해 암벽 등반가 맬로리 대위와 폭파 전문가 밀러 하사 등 6인의 특공대를 급파한다.
  • ‘슈케2’ 김보경, 데뷔전 ‘병 라이브’ 영상 화제

    ‘슈케2’ 김보경, 데뷔전 ‘병 라이브’ 영상 화제

    ‘슈퍼스타K 2’ 출신 가수 김보경의 데뷔전 음료수 병 라이브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3일 오전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이번 영상은 데뷔 전 첫 미니앨범 타이틀 곡 ‘하루하루’를 연습하는 김보경의 풋풋한 모습을 담고 있다. 지난해 한 행사때 화장실에서 공연 전 연습하는 모습을 담은 이 영상에서 김보경은 마이크도 착용하지 않고도 흔들림없는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김보경은 마이크 대신 작은 음료수 병을 들고 익숙하지 않은 듯 수줍게 카메라와 눈을 맞추고 있어 신인 가수의 풋풋한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첫 데뷔무대에서 김보경은 고음에서 시원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을 선보여 방송 뒤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해 데뷔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변함없는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연예팀 nownews@seoul.co.kr
  • 동대문구, 복지도 맞춤형

    “지난해 둘째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나서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는데…. 수급자로 올려 줘 너무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에요.” “며느리가 날 안 본다고 해서 친구 집에 얹혀살았는데, 다음 달부터는 월세방이긴 해도 이사해 보일러를 틀 수 있게 돼 기뻐요.” 1일 최금주(72·동대문구 휘경동)·탁태선(75·이문동) 두 할머니는 지난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계비를 받는다며 끝내 울먹였다. 동대문구가 펼치는 ‘3S’ 프로그램 덕분이다. 3S는 맞춤식 기초생활수급자 실태조사로 간편하고 신속하게 수급자를 선정·처리하자는 단순화(Simplification), 표준화(Standardization), 전문화(Specialization)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꼭 도움받아야 할 복지 수요자에게 돈이 돌아가도록 한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실태조사가 제대로 안 되는 통에 수급권 대상이 아닌데도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동대문구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득관계 서류를 비롯해 전·월세 계약서, 4대 보험가입 여부, 금융재산조회서 등 갖가지 서류를 내야 한다. 이에 따라 구는 서류준비에 애먹는 신청인들을 위해 제출 서류를 단순화했다. 동 주민센터에 신청서류를 접수하는 단계에서 담당공무원이 공적장부로 확인 가능한 주민등록등본 같은 서류제출을 생략했다. 서류 간소화 덕분에 대상자 선정시일도 4~5일 정도 앞당겨졌다. 또 보건복지부 사회복지통합업무에서 규정한 신청서식으로 표준화하되 규정에서 빠진 수많은 ‘틈새 사례’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회의를 거쳐 수급자를 선정한다. 소인섭 주민생활지원과장은 “예를 들면 부모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라도 가족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고 판단할 경우 방문조사를 철저히 해 수급자에게 혜택을 주도록 했다.”며 “법으로는 결코 해당하지 않는 저소득층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는 통합조사팀(8명)을 꾸려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소아암환자 지원, 시설수급자 조사 등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 전담자를 지정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신청인은 팀장이 맡아 이해하기 어려운 복지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상담자 역할을 맡겼다. 이 밖에도 구는 수급자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가구에 대한 복지서비스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실제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대해 전액 서울시 예산으로 지원하는 ‘저소득 틈새계층 특별구호자’로 선정해 지원하는 것. 올 2월 현재 144가구 171명이 3286만원의 혜택을 받았다. 유덕열 구청장은 “현재 동대문구에는 복지대상자가 5500가구를 웃돌지만 선정대상에서 빠져 고통받는 이웃들이 많다.”며 “철저한 조사관리를 통해 복지 서비스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CCTV에 유령 포착’…신혼 꿈 깨진 부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일같이 집 안에서 유령 같은 이상한 물체가 날아다니거나 원치 않는 소음이 들리며 심지어 갑자기 침대가 들썩이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한다면? 신혼의 단꿈을 꾸며 새롭게 이사를 한 집에서 이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해 하루하루 고통을 받고 있는 한 노부부의 사연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선 온라인판은 “프랑스 출신 음악가 장 마르크 마리올레(64)와 전직 모델 출신인 부인 샬럿(53)은 신혼집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해 이사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늦은 나이에 새 출발 한 이들 부부는 다음 달인 4월 영국 체셔 프로드햄의 한 저택에 신혼집을 꾸리면서 1만 8000파운드(한화 약 3280만 원)의 거금을 들여 집 안의 가구를 바꾸는 등 단란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들 부부는 한밤중에 도둑이 든 것처럼 뚜벅뚜벅 걷는 소리가 들리거나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등 불가사의한 일에 시달리게 되면서 거실 등에 CCTV를 설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CCTV에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령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물체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됐고, 잠 못 이루는 이들 부부의 앞에도 나타났다. 심지어 침대가 갑자기 들썩이기까지 하면서 부부의 공포심은 극으로 치달았다. 부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집을 나와 처음에는 근처 호텔에서 3000파운드(한화 약 550만 원)의 숙박료를 내고 투숙하거나 차에서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잠잘 때뿐만 아니었다. 부인 샬럿은 “생애 가장 무서웠던 현상은 욕실에서 갑자기 문이 쾅 닫히면서 잠긴 일이었다.”면서 “창문은 열려 있지도 않은데 바람이 불었고 샤워 커튼이 레일을 따라 앞뒤로 움직였다.”고 전했다. 장 마르크 역시 “피아노를 치는 동안 종종 뒤에서 누군가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 목덜미를 통해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부는 “집에서 200~300번에 걸쳐서 날아다니는 이상한 물체를 목격했다.”며 “성인 남성의 울부짖는 듯한 비명과 함께 벽에 비친 검은 실루엣을 봤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공포 영화에서 뭔가 나올듯한 그 소음은 매우 괴롭다. 이제 정신 건강을 위해 떠나야 할 것 같다. 단지 숙면을 취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제 이 부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스트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살아나서 고맙다… 병고로 힘들었지만 매사에 감사”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소설가 박완서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더 지났다. 새달 1일자로 발간된 ‘현대문학’ 3월호는 추모특집으로 큰딸인 수필가 호원숙씨를 비롯해 고인과 함께했던 이들의 추모글을 실었다. 호씨는 ‘엄마의 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하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남긴 일기를 공개했다.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바깥 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 집에 와서도 많이 앉아 있었다. 일기도 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 …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마지막까지 일상을 소중히 여겼던 고인의 마음이 묻어난다. 호씨는 어머니가 딸들에게도 맨발을 보여 주지 않아 ‘엄마의 발은 늘 가슴 아픈 의문표’였다고 한다. 항상 당당하던 어머니가 어느날 발목을 다쳐 병원을 찾았고, 그제야 호씨는 어머니 다리의 태생적인 붉은 반점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호씨는 “나는 그 순간 엄마가 진정으로 고맙고 무조건 잘해 드리고 싶어졌다.”며 “부끄러울 것도 창피해할 것도 없는 엄마의 붉은 점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저려 왔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칠레 광부 33인의 전설… 희망을 말하다

    “누가 먼저 무너질지, 어떻게 그 사람을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마리오 세풀베다) 21세기의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칠레 광부 33인의 생환. 그들은 지하 700m 광산에 갇혔고, 69일 만에 돌아왔다. 그들이 죽음의 대기실에 갇혀 있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갱도 중간에서 70만t의 암석과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서 지하 700m 아래에 33명의 광부들이 매몰됐다.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칠레 정부가 구조에 나선 지 17일 만에 “우리 33인은 대피소에 살아 있습니다.”란 광부들의 메모가 전해지면서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일로 바뀌었다. ‘The 33’(조너선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김영사 펴냄)은 영국 가디언지의 남아메리카 특파원으로 15년간 칠레에 머문 저자가 사건 이후 12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사건 일지다. 칠레 당국으로부터 ‘구조대’ 신분증을 얻은 저자는 구조 현장에서 지켜본 광부들의 모습과 심경 변화, 가족의 사연, 구조 과정 등을 책에 생생히 담아냈다. 아울러 광부 33인의 갈등과 반목의 시간, 정부의 언론 통제, 유례 없는 구조의 시행착오 등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의 이야기도 전한다. 칠레 북부 사막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지다. 칠레 수출 소득의 절반 이상이 광업에서 나온다. 대부분 다국적 기업들이 거느리는 구리 광산에 고용된 광부들은 기술 수준이 낮고 광업계에서도 가장 하위 문화에 속해 있었다. 7일 일하고 7일 쉬는 이들의 삶은 7일간의 중노동과 7일간의 흥청망청으로 일관됐다. 산호세 광산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로스 피르키네로스’(비참한 자들)라 불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69일을 하루하루 죽음과 대면하며 버틸 수 있었을까. 동료의 인육을 먹을 경우에 대비해 주전자와 톱을 준비했던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작업 반장 루이스 우르수아는 원칙과 규율에 근거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63세의 최연장자 마리오 고메스는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 광부들을 다독였다. 마리오 세풀베다는 유머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책은 희망과 믿음, 신뢰라는 오랜 덕목의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짐승처럼 행동했던 이들이 저주와 욕설, 분노와 폭력의 시간을 누르고 기도와 수로 정비, 식량 배분, 조명, 유머, 의학, 기록 등 각자 역할 분담을 통해 희망을 한 조각씩 모으며 삶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새삼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된다. 1만 2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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