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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못한 가장에 청소솔 증정한 여자시장

    취업 못한 가장에 청소솔 증정한 여자시장

    취업을 못해 걱정인 남자에게 청소솔을 선물한 여자시장에게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자랑하듯 사진까지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던 여자시장은 결국 "경솔했던 것 같다"며 공개사과를 했다. 멕시코 이달고의 시장 벨린다 우르타도는 최근 시청을 찾아온 한 남자에게 청소솔을 선물했다. 시장은 꽤나 선심을 쓴 것처럼 기념사진까지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에는 "열심히 일하는 이 분을 도와주었습니다."라고 자화자찬 설명도 붙였다. 하지만 시장을 기다린 건 칭찬이 아니라 거센 비난이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남자는 부인과 자식을 둔 가장이지만 취직을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장 생계를 위해 남자는 청소솔을 들고 길에 나섰다. 신호에 걸린 자동차의 유리창을 닦아주면서 동전을 받아 하루하루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했다. 그런 남자가 시청을 찾아간 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자동차 유리창을 닦아선 생활이 힘들었다. 하지만 시청을 찾아간 그에게 시장은 일자리 대신 청소솔을 선물했다. 사진이 공개되자 여론을 들끓었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유리창이나 계속 닦으라고 청소솔 선물?" "시장이 준 해결책이 청소솔, 기가 막혀" 등 비난이 쏟아졌다. 시장은 "자동차 유리창을 닦는 게 지금하고 있는 일이라 새 청소솔을 사준 것"이라며 "도와주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고 방어에 나섰지만 비난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시장은 페이스북을 비공개로 돌리고 공식 사과했다. 우르타도 시장은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 공직자들이 무언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사진=페이스북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용서 못합니다” 30년 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당시 검사와 만나다

    “용서 못합니다” 30년 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당시 검사와 만나다

    살인범 누명을 쓰고 30년 이상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남자와 당시 사형을 선고했던 검사가 만났다. 검사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남자는 결국 그가 내민 손을 거절했다. 최근 미국 ABC뉴스는 루이지애나 교도소에서 사형수 신분으로 총 31년을 복역해 온 흑인 글렌 포드(64)와 당시 담당 검사였던 마티 스트라우드(63)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들의 악연은 지난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루이지애나 검사였던 스트라우드는 금은방 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흑인 청년이었던 포드를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포드는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백인들로만 이루어진 배심원단은 검사의 손을 들어주며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포드는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 값을 치르며 살아야 했다. 수차례 청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사건 현장에 그가 없었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서 결국 지난해 3월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사건 당시 청년의 몸이었던 그는 이제 노인이 됐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폐암까지 얻었다. 지금은 4기로 악화돼 이제 살 날이 몇 달 남지 않은 그는 얼마 전 자택으로 사과하러 찾아 온 스트라우드를 만났다. 스트라우드는 "당신에게 한 짓은 내가 무덤까지 가져 가야할 오점" 이라면서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며 사죄했다. 그러나 포드는 "미안하지만 사과를 받을 수 없다" 며 거절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끝났지만 스트라우드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책임은 여전히 그에게 남을 것 같다. 이에앞서 스트라우드는 지역 신문에 이 사건에 대한 반성문을 공개한 바 있다. 그는 이 글에서 "33세였던 당시의 나는 오만하고 자기애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면서 "재판에서 이기는 것에만 관심있었지 정의는 신경쓰지 않았다"며 기소 과정에서의 과오를 인정하며 사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에이미 출국명령, “정말 황당했다” 이유는?

    에이미 출국명령, “정말 황당했다” 이유는?

    20일 서울행정법원은 에이미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출국명령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올해 초 법무부는 프로포폴과 졸피뎀 투약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에이미에게 출국 명령 처분을 내렸다. 이같은 처분에 에이미 측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출국명령 처분이 이유 제시 의무를 위반했고,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과잉 제재다”고 주장하며 출국명령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에이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벌금형을 선고 받고 반성하고 지내고 있었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새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출국 명령을 받게 됐다. 정말 황당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한국 사람으로서 가족의 곁에서 살고 싶다. 절망적이다. 하루하루 눈물과 술로 보냈다”고 덧붙였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에이미 출국명령, 억울함 호소 “절망적… 하루하루 술로 보낸다” 심경보니

    에이미 출국명령, 억울함 호소 “절망적… 하루하루 술로 보낸다” 심경보니

    에이미 출국명령, 억울함 호소 “절망적… 하루하루 술로 보낸다” 심경보니 ‘에이미 출국명령’ 방송인 에이미가 강제 출국 명령에 심경을 전했다. 20일 서울행정법원은 에이미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출국명령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올해 초 법무부는 프로포폴과 졸피뎀 투약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에이미에게 출국 명령 처분을 내렸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고 석방되면 강제 출국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미국 국적인 에이미에게 강제출국명령을 내렸다. 이같은 처분에 에이미 측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출국명령 처분이 이유 제시 의무를 위반했고,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과잉 제재다”고 주장하며 출국명령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에이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벌금형을 선고 받고 반성하고 지내고 있었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새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출국 명령을 받게 됐다. 정말 황당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한국 사람으로서 가족의 곁에서 살고 싶다. 절망적이다. 하루하루 눈물과 술로 보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에이미는 지난 2012년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졸피뎀을 투약한 혐의로 또다시 기소돼 벌금 5백만 원과 추징금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사진=방송캡처(에이미 출국명령)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에이미 출국명령, 억울하다? 입장보니.. 충격 ‘해결사 검사와 어떻게 지내나’

    에이미 출국명령, 억울하다? 입장보니.. 충격 ‘해결사 검사와 어떻게 지내나’

    ‘에이미 출국명령’ 방송인 에이미가 강제 출국 명령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박준석 판사는 에이미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출국명령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초 법무부는 프로포폴과 졸피뎀 투약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에이미에게 출국 명령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에이미의 법률대리인은 “에이미에 대한 출국명령 처분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정한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되는 과잉제재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미 또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반성하고 지내고 있었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새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출국 명령을 받게 됐다.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람으로서 가족의 곁에서 살고 싶다. 절망적이다. 하루하루 눈물과 술로 보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에이미는 SBS ‘한밤의 TV연예’를 통해서 근황을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해 “자숙하면서 지냈다”고 말하며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또한 그는 ‘해결사 검사’로 알려진 검사와 연락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제 연락이 안 된다. 나를 보호한다고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괜히 이름 또 들먹여 지고 그런 게 좋지 않으니까”라고 대답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에이미 출국명령) 연예팀 chki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25년째 명물로… 신용호 창립자 제안해 만들어

    25년째 광화문 사거리의 명물인 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생명 본사에 붙어 있는 ‘광화문 글판’은 1991년 1월 평소 문학을 사랑했던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1991년 1월)는 격언이었다. 광화문 글판이 지금의 감성적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1997년 말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고통과 절망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자 신 창립자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1998년 2월)라는 문안이 걸렸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2007년 주먹 불끈 쥔 인터넷 화제 그 아기 8년 후…

    2007년 주먹 불끈 쥔 인터넷 화제 그 아기 8년 후…

    지난 2007년 단 한장의 아기 사진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해변의 한 아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쥔 이 사진은 당시 인터넷을 통해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서는 '석세스 키드'(Success Kid)라 불렸던 이 사진 속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에 사는 지금은 8살이 된 새미 그리너다. 사진은 당시 생후 11개월 된 새미의 모습을 엄마가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한동안 큰 화제를 모았으나 이제는 잊혀진 이 사진이 다시 현지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최근 미 ABC뉴스는 "새미 가족이 인터넷을 통해 아빠의 치료비 모금을 하고있다" 고 보도했다. 사연은 이렇다. 새미의 아빠 저스틴(39)은 지난 2006년 신장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투병 중이다. 문제는 1주일에 3차례 투석은 물론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 가족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새미 가족은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총 7만 5000달러(8200만원)의 모금을 시작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새미의 이미지를 허가없이 사용해 캠페인을 벌였던 것처럼... 사연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6만 4000달러가 모였기 때문이다. 새미의 엄마는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 이라면서 "우리 사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줄지 몰랐다" 며 기뻐했다. 이어 "남편이 치료 때문에 회사에 다닐 상황이 안돼 힘겨운 나날이었다" 면서 "사실 유일한 치료방법은 신장 이식 뿐" 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년 전 멈춘 여덟 가족의 시간… 가슴에 묻지 못한 사연

    1년 전 멈춘 여덟 가족의 시간… 가슴에 묻지 못한 사연

    304명의 목숨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황망하게 떠나간 지 꼬박 1년이 흘렀다. 누군가는 이제는 잊으라고 하고,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데 천문학적 액수가 든다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정부가 부패와 비리를 감추려 한다고 성토한다. 실제 1년 전 비통에 잠겨 있던 많은 국민들은 일상 속으로 들어와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떠난 이들을 가슴에조차 묻을 수 없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더욱이 차고 짠 바닷물 속에 아직도 잠겨 있는 9명의 가족들은 그저 ‘실종자 가족’일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선체를 인양하고 그리운 이의 눈감은 얼굴이나마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SBS는 지금 이 순간도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가는 여덟 가족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사 둔 영인이의 새 축구화는 주인의 발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딸 은화와 아픈 엄마 곁을 지키던 착한 딸 다윤이도 세월호 선내 어딘가에 있을 게다. 음악을 좋아하던 현철이의 기타는 팽목항에서 제 선율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단원고 학생 외에도 20년이라는 긴 시간 아들과 떨어져 살다 마침내 함께 가정을 꾸리게 된 이영숙씨도 실종자 명단에 들어 있다. 귀농을 위해 세월호에 올랐다 실종된 부자 ‘권재근, 권혁규’를 기다리는 베트남 출신 아내의 기억도 그날에 멈추어져 있다. 17일 밤 8시 55분 ‘궁금한 이야기Y’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독박(讀博) 육아일기](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1년 전 그 시각, 백일을 갓 넘긴 아기를 안고 거실 쇼파에 앉아 있었다. 밤새 아기와 씨름하느라 잠을 못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멍하니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뉴스 속보 알림이 떴고,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게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감도 못 잡았던 데다 구조 중이라 하니 ‘별 일 아니겠지’ 생각했다. 아기가 배를 다 채우고 잠이 든 시간이 오전 11시. 드디어 한숨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워 아기를 안고 얼른 방에 들어가 누웠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이나 단잠을 잤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달게 낮잠을 잤는지까지 생생하다. 밤새 쌓인 피로가 다 풀린 것처럼 가뿐했고 ‘이것이 백일의 기적이구나’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 잠깐의 기쁨이 이렇게 죄의식으로 남을 줄은 미처 몰랐다.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자식을 배불리 먹이면서 남의 아이들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트라우마로 남았다. 엄마가 되어서 맞닥뜨린 대형 참사는 슬픔의 단계를 뛰어 넘었다. 그것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모두가 내 아이, 내 가족 같았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배가 가라앉아 바다에 빠졌다, 부모가 실시간으로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절망적이다. ●아기엄마가 본 세월호 참사…그것은 공포였다 설렘으로 가득찼을 여행길이 순식간에 지옥이 되고, 엄마를 찾으며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시커먼 바다에 대고 이름을 불러 보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던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면서 아이들이 따뜻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앞다퉈 배에 담요를 던지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내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지만. 그런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몇날 며칠을 울었다. 울음은 곧 분노가 되었다.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 ‘수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무리일 수 있겠다. 갓 태어난 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로서 지켜본 세월호 참사는 생후 106일 아기에게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부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패와 무능의 총 집합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또 초보 엄마인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내 자식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내가 ‘빽’이라도 있었으면, 이 아이들이 힘 있는 집 자녀들이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겠느냐”던 부모들의 절규가 너무 아팠다. 그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내 아이를 무슨 힘으로 지킬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다. 정말로 남의 일 같지 않았고 희생된 아이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미안했다.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져버리게 해서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내 아기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비겁한 변명일 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안산에 있는 분향소에도 한참 뒤늦게 찾아갔고, 매일 신문과 뉴스를 보며 혼자 눈물을 훔치는 게 다였다. 주말에 광화문에 나가 멀찌감치서 유가족들을 향해 기도를 하고 돌아오고 거기서 받아온 노란 리본을 기저귀 가방이나 유모차 등에 달고, 친구가 선물한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문패를 현관에 붙여놓았다. 나도 슬픔과 분노를 함께 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그 정도 뿐이었다. 일부 용기 있는 엄마들은 자발적으로 비용을 모아 동네 곳곳에 노란색 현수막을 달고 유가족들과 모임을 가지며 아픔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무튼 엄마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허용이 안 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참사가 일어난 것보다 더욱 공포스러웠다. 아이가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구해주지 못했는데 더 이상 슬퍼하지도 말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독박 육아’라는 콘셉트에 따라 지금까지 주로 육아의 어려움만 적어왔지만 사실 아기를 통해 얻는 것은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남는다. 아기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나의 모든 것이 됐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 행복하고 신비롭다. 기침 한 번에도 가슴이 철렁, 눈물 한 방울에도 마음 졸이게 된다. 나를 쏙 빼닮은 한 생명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벅찬 감정을 안겨준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의 것을 버리고 포기해 가면서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다. 이제 겨우 1년 남짓이지만 이 아기가 없던 세상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까맣게 잊혀졌다. 아기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자식은 그냥 내 자체이고 전부다. 세월호에는 그렇게 17년을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휴대전화를 꾹꾹 누르며 “엄마,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아이들이었다. 누가 감히 그 부모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반 년도 채 안 지나서부터다. 할 수 있는 게 그저 슬퍼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하지 말라며, 자신의 전부를 황망하게 잃은 부모들에게 등을 돌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도대체 무슨 자격과 권리로 할 수 있을까. 수족(手足)을 잃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그만하라고 할 수 있냐는 말이다. 희생자 가족들 중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냥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아기 엄마에 불과했던 나는 혼자 화내고 우는 것 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늘 안타까웠고 미안했고 괴로웠다. 편안히 앉아서 두 눈으로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라는 사실이, 내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다른 아이들의 최후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오랫동안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선 지금까지 어떠한 죄의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러나는 잘못과 치부를 덮는 데에만 급급해 보였다. 자기들도 부모이면서, 가족이면서 생떼 같은 자식들을 어이 없게 잃어버린 부모들에게 그만하라고,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성을 차리라고 요구한다.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으면서, 그런 나라로부터 희생자 가족들이 받는 것을 ‘특혜’라고 했다. 지켜주지 못한 내 자식들이 어떻게 사고를 당했고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고 싶다는데 그 앞에서 주판알을 먼저 튀겼다.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친구를 잃은 고통에 휩싸인 아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대학 특례 입학이었다. 심지어 세월호에 매몰돼 경제 성장이 더뎌지고 있다며 호도했다. 탐욕, 결국은 돈 때문에 이 사단이 났는데 해결책으로 돈부터 들이미는 천박함에 몇 번이나 가슴을 쳤다. 당장 내 아이가 없는 곳에서, 그리고 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랄 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곳에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빨리 잊었고, 너무 빨리 물들었다. 언제부턴가는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관련 기사를 읽기가 겁이 날 정도가 됐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저버린 것 같은 댓글들은 나에게도 상처가 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비교적 더 울분을 느꼈던 엄마들 사이에서도 “돈이 많이 든다는데 인양을 꼭 해야하나요”라는 이야기를 접하면 힘이 쭉 빠졌다. 아직도 그 안에 9명이나 남아있는데.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또 부모가 될 텐데, 세월호 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현상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떻게 이념이나 성향으로 구분지어질 수 있으며, 사건을 막지 못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국가에서 정치가 아닌 정쟁(政爭)만 눈에 띄는지. 이런 세상에서 내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 깜깜할 뿐이다. ●10명 중 6명 “국가 안전 의식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지난해는 유독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 2014년 1월 1일생인 아기가 태어나 마주한 세상은 암담했다. 수시로 등장하는 어린이집 사고에 끔찍한 아동 학대 살인(칠곡·울산 계모 학대살인)이 벌어졌고, 학교에서는 가뜩이나 입시 스트레스에 왕따 문제도 심각한데 학교폭력(진주 학교폭력 사망) 사건도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인 수학여행길에 일어난 끔찍한 대형 참사(세월호 사건), 그리고 겨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사고까지(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그 뿐인가.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판교 지하철 환풍구 추락사고 등. 사고는 도처에서 일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들만 나열을 했는데도 아이가 자라는 단계마다 빠짐이 없다. 과연 내 아이가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겪지 않고, 아무런 사건에도 엮이지 않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까. 그것은 기적일 것 같다. 아이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온전히 자라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 1년. 국가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여전히 10명 중 6명은 아니라고 답했다.<서울신문 4월 6일자 4면 기사 보기 클릭> 뜬 눈으로 304명이나 희생되는 장면을 본 처참한 일을 겪고도 아직까지 그 원인조차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 여전히 불안한 세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위로는커녕 비난을 받는 너무나 비정한 곳에서 나는 아기를 키워야 한다. 아무도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 내 아이에게 운이 따르길, 기적이 함께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 ‘주먹 불끈 쥔 그 아기’ 8년 후 “우리 아빠 도와주세요”

    ‘주먹 불끈 쥔 그 아기’ 8년 후 “우리 아빠 도와주세요”

    지난 2007년 단 한장의 아기 사진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해변의 한 아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쥔 이 사진은 당시 인터넷을 통해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서는 '석세스 키드'(Success Kid)라 불렸던 이 사진 속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에 사는 지금은 8살이 된 새미 그리너다. 사진은 당시 생후 11개월 된 새미의 모습을 엄마가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한동안 큰 화제를 모았으나 이제는 잊혀진 이 사진이 다시 현지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최근 미 ABC뉴스는 "새미 가족이 인터넷을 통해 아빠의 치료비 모금을 하고있다" 고 보도했다. 사연은 이렇다. 새미의 아빠 저스틴(39)은 지난 2006년 신장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투병 중이다. 문제는 1주일에 3차례 투석은 물론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 가족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새미 가족은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총 7만 5000달러(8200만원)의 모금을 시작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새미의 이미지를 허가없이 사용해 캠페인을 벌였던 것처럼... 사연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6만 4000달러가 모였기 때문이다. 새미의 엄마는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 이라면서 "우리 사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줄지 몰랐다" 며 기뻐했다. 이어 "남편이 치료 때문에 회사에 다닐 상황이 안돼 힘겨운 나날이었다" 면서 "사실 유일한 치료방법은 신장 이식 뿐" 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슈&논쟁]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부활

    [이슈&논쟁]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부활

    국방부가 대학생들도 예비군 동원훈련(2박 3일)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찬반 논란이 뜨겁다. 예비군에 편성된 대학생들은 1971년부터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동원훈련을 면제받았고 대신 하루 8시간의 학교 예비군 훈련만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원훈련에 참여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다. 군 안팎에서는 현역병 감축에 따라 예비군 가용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어 예비 전력의 정예화를 위해서는 대학생들을 동원훈련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동원 예비군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특히 국가가 시민을 함부로 동원하는 국가 동원 시스템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贊] “예비군 부족… 대학생 특혜 안 돼”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대한민국 남성에게는 군 복무만큼이나 중요한 국방의 의무가 있다. 바로 예비군 훈련이다. 예비군이란 상비군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항상 무장 상태로 전쟁을 준비하는 상비군과 달리 예비군은 전쟁이나 분란이 생겨 병력이 부족할 때 증원되는 부대다. 예비군 대상 인원은 군 복무를 마친 지 8년 이내의 베테랑들로, 체력적으로도 뛰어나고 군 시절의 전투 기술이 몸에 배어 있는 이들이다. 예비군이 중요한 이유는 전시에 곧바로 현역 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현역 복무 대상이 줄어드는 요즘 예비군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병력 수가 중요한 지상군의 미래는 암울하다. 현재 50만명 남짓한 육군 병력이 앞으로 7년 뒤인 2022년에는 38만여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북한 지상군이 110만명 남짓한 규모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위협이다. 병사 1명이 적 3명 이상을 죽여야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예비군이야말로 유사시 대한민국 방어의 핵심이 된다. 과거 출산율이 높던 시절에는 대학생을 제외하더라도 예비군 동원 인원이 40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시대인 현재는 대학생을 포함해도 예비군은 270만~29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중에 대학생은 무려 50여만명에 이른다. 현재 육군 총원보다도 많은 숫자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숫자의 병력들이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2박 3일의 동원훈련 대신 8시간의 훈련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대학생만 예비군 훈련에서 혜택을 받는 것일까. 현재 예비군에는 보류자로 분류돼 훈련을 면제받는 인원이 68만여명에 이른다. 지자체 단체장·의원 등의 사회 지도층 인사나 판검사, 경찰공무원 등 국가의 공공임무를 매일 단위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법령에 근거해 예비군 훈련이 면제된다. 그러나 대학생의 면제 근거는 법률이 아닌 국방부 장관의 방침이었다. 예비군 창설 초기인 1971년부터 동원훈련이 면제돼 왔다. 학습 여건을 보장하고 학원 질서를 유지하며 국가 자원을 활용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대학생을 엘리트 계층으로 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대학생은 소중한 국가 자원이다. 가혹한 등록금 압박에 취업도 어려운 데다가 방학 동안 노는 것도 아닌데 예비군 훈련까지 늘리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80%가 대학을 진학하고 있는 현재 대학생을 동원훈련 대상에서 제외해 버린다면 전시에 귀중한 자원이 심각하게 줄어들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지상군 전체보다 많은 병력인 50여만명이 전시 대비 태세를 갖추지 못하는 셈이 된다. 또한 대학 진학 대신 먼저 실업 전선에 뛰어든 예비군들도 있다. 이들은 대학생들보다 더욱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비군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일례로 자영업자인 예비군이라면 하루하루의 생계가 훈련으로 위협받는데도 여전히 국가를 위한 의무를 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지성인 대학생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국가적 상황을 위해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법률로 훈련을 면제받는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훈련에 나서는 게 먼저다. 물론 국가적 배려도 필요하다. 아무리 병역의 의무라지만 기존까지 부과하지 않던 의무가 생긴다면 그것이 2박 3일이라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대학생이건 아니건 최소한 예비군으로서 활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비용 보상이 필요하다. 동원 예비군의 진정한 의미는 전시에 부대를 증편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부대 방문이 아니라 실제 전쟁의 혼란 속에서 증편하는 실전적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생 예비군들의 귀중한 봉사가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되도록 우리 군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反] “전시 동원병 충분… 시대착오적”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요즘 복고가 정치, 사회, 문화를 넘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화 ‘쎄시봉’에서 배우 조복래가 부르던 ‘사랑이야’는 가수 송창식씨가 1978년 발표한 앨범 ‘프랑코 로마노 악단’에 수록된 곡이다. 이곡은 1977년 송창식씨가 향토예비군설치법(이하 향군법) 위반으로 수감됐을 때 만든 노래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고발당한 사람은 한 해 4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수백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은 향군법과 관련해 결코 자유롭지 않다. 최근 국방부가 44년 만에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제도의 부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훈련에 참석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가 첫째 이유이고, 현역병 감소와 예비군 가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일단 현역병 감소 문제는 저출산이 핵심인데 이를 2박 3일간의 동원 예비군 훈련으로 보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44년 전과 비교해 검증된 바 없다. 현재 예비군 8년차까지 동원 가능한 인력은 270만~290만명 수준이며 매년 50만명씩 양산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 냉전 당시 서독은 85만명, 이스라엘이 50만명, 북한이 54만명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냉전 당시 기준으로 보더라도 예비군 병력을 운용하는 규모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예비군 가용 인원이 부족한 것이지 전시 동원 예비군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업에 종사하는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형평성 문제 외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국방연구원 연구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제도로 인해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액은 무려 1조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평성 문제를 말하기 전에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시점은 1968년이다. 1·21사태라 일컫는,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같은 해 5월 250만명을 동원할 수 있는 향군법을 공포한다. 이 법은 5·16군사쿠테타가 발생한 1961년 12월에 제정됐었다. 하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그동안 부대 창설과 편성을 하지 못했던 법이 결국 재탄생하는 배경이 된 셈이다. 당시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직후 김영삼 의원은 향군법 폐지안을 제출했다. 그 이유는 남성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해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었지만 폐지안은 부결됐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40대였던 김대중 후보는 예비군 폐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고 돌풍을 일으키며 박정희 후보를 위협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도 없던 제도가 과연 왜 만들어졌을까. 국민 동원 시스템을 구축해 안보를 내세운 반공주의를 표방하면서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함은 아닐까. 지문 날인을 의무로 하는 주민등록증제도와 주민번호제도가 같은 시기에 만들진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제 국가가 시민을 함부로 호명하고 동원하는 데 많은 시민들이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 시민들은 이미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의 부활에 대해 일반인과 대학생 간 대립 구도를 형성해 국가 동원 시스템을 합리화하려는 꼼수로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이는 시대착오로 보인다. 물론 스위스, 이스라엘, 핀란드, 스웨덴처럼 조합주의적 성격을 띤 국가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비군 제도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안보를 위해 복무하고 그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토의하고 결정하는 구조라고 한다면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KBS ‘일베 기자’ “회사 나가면 인생 마침표” 사과글

    KBS ‘일베 기자’ “회사 나가면 인생 마침표” 사과글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로 알려진 신입 기자가 공식 사과했다. KBS에 따르면 이 신입 기자 A씨는 13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간 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처절히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KBS 구성원들이 전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논란이 됐던 2월 중순부터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한 마디 없이 숨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 글을 적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난 당일부터 이미 인터넷 상에 신상이 유포됐고,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담함 속에서 그저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며 지냈다”며 “회사 결정은 갱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린 글과 댓글이 ‘제 안의 어두운 모습이 표출된 것’, ‘제 배설’ 등으로 표현했다. 그는 “제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면서 “혹은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가 있던 글이나 댓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살겠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지를 매섭게 봐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즉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스는 A씨의 사과에 대해 KBS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일베’ 게시판과 자신의 SNS에 특정 지역 비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글을 많이 올린 ‘헤비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KBS 기자들이 활동하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파문 이후 KBS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글쓴이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수습기자 A씨로 추정되는 일베 회원이 쓴 다수의 글이 확인됐다. A씨로 추정되는 ‘김겸양’이라는 닉네임이 쓴 상당수 글들은 음담패설과 여성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이었다. KBS 직능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KBS 내부 모든 구성원은 ‘일베 수습기자’의 기자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일삼아 온 폭력 상향의 ‘일간베스트’ 회원이 KBS기자가 된다면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KBS 공채 42기 기자직에 합격해 수습 교육을 받던 지난 2월 중순,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BS는 지난 1일 해당 기자를 정사원으로 발령내면서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린재킷에 가족애 품은 ‘포스트 타이거’

    그린재킷에 가족애 품은 ‘포스트 타이거’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가까운 시기에 다시 만나 실력을 겨루고 싶다.” 제79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세 번째 출전 만에 ‘그린 재킷’을 입은 조던 스피스(21·미국)가 우승을 확정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불멸’로 여겨지던 타이거 우즈(미국)의 몰락 끄트머리에 거둔 순수 미국인의 우승이다. 미국 언론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포스트 타이거’를 발견이라도 한 듯 떠들썩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재기를 벼르던 우즈도 선전했지만 또다시 오른쪽 손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은 터라 내일 일을 알 수 없게 됐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스피스는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매킬로이와 다시 겨뤄 보고 싶다고 도발(?)을 한 것이다. 스피스는 마스터스 우승으로 지난주보다 두 계단 뛰어오른 랭킹 2위에 포진했다. 매킬로이를 향해 도전장을 던진 스피스의 나흘간 우승 행보는 화려한 기록들로 장식됐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7435야드)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스피스는 버디 6개와 보기 4개로 2타를 더 줄인 최종 합계 18언더파 270타를 기록했다. 종전 우즈의 역대 최저 우승 타수와 타이다. 또 1∼4라운드 단독 선두를 달린 끝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일궈냈는데 이는 크레이그 우드(1941년)와 아널드 파머(1960년), 잭 니클라우스(1972년), 레이먼드 플로이드(1976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2라운드까지 14언더파 130타로 역대 36홀 최저타에 이어 3라운드에서도 54홀 최저타 기록을 갈아치운 스피스는 18번홀 보기로 우즈가 갖고 있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코스 레코드’까지 경신하지는 못했지만 15번홀 버디를 뽑아내 17번홀까지 19언더파를 유지하면서 미국 전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도 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 상금은 180만 달러(약 19억 7000만원). 스피스가 나흘 동안 홀컵에 떨군 버디 개수 28개도 역대 신기록이다. 2001년 필 미켈슨(미국)이 작성한 25개를 3개나 넘어섰다. 미켈슨은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함께 공동 2위(14언더파 274타)로 자신의 23번째 마스터스를 마감했다. 그러나 스피스의 우승을 뒷받침한 건 신기록보다 ‘가족들의 힘’이 컸다. 특히 스피스는 자폐증이 있는 11살의 어린 여동생 엘리를 끔찍이 아끼는 오빠이기도 하다. 스피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엘리의 오빠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겸손하게 살 수 있다”고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KBS ‘일베 기자’ “회사 나가면 인생 마침표” 내부게시판 사과글

    KBS ‘일베 기자’ “회사 나가면 인생 마침표” 내부게시판 사과글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로 알려진 신입 기자가 공식 사과했다. KBS에 따르면 이 신입 기자 A씨는 13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간 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처절히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KBS 구성원들이 전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논란이 됐던 2월 중순부터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한 마디 없이 숨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 글을 적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난 당일부터 이미 인터넷 상에 신상이 유포됐고,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담함 속에서 그저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며 지냈다”며 “회사 결정은 갱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린 글과 댓글이 ‘제 안의 어두운 모습이 표출된 것’, ‘제 배설’ 등으로 표현했다. 그는 “제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면서 “혹은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가 있던 글이나 댓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살겠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지를 매섭게 봐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즉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스는 A씨의 사과에 대해 KBS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일베’ 게시판과 자신의 SNS에 특정 지역 비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글을 많이 올린 ‘헤비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KBS 기자들이 활동하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파문 이후 KBS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글쓴이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수습기자 A씨로 추정되는 일베 회원이 쓴 다수의 글이 확인됐다. A씨로 추정되는 ‘김겸양’이라는 닉네임이 쓴 상당수 글들은 음담패설과 여성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이었다. KBS 직능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KBS 내부 모든 구성원은 ‘일베 수습기자’의 기자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일삼아 온 폭력 상향의 ‘일간베스트’ 회원이 KBS기자가 된다면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KBS 공채 42기 기자직에 합격해 수습 교육을 받던 지난 2월 중순,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BS는 지난 1일 해당 기자를 정사원으로 발령내면서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BS ‘일베 기자’ “과거 ‘배설물’ 본심 아냐…처절히 반성” 사과글

    KBS ‘일베 기자’ “과거 ‘배설물’ 본심 아냐…처절히 반성” 사과글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로 알려진 신입 기자가 공식 사과했다. KBS에 따르면 이 신입 기자 A씨는 13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간 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처절히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KBS 구성원들이 전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논란이 됐던 2월 중순부터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한 마디 없이 숨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 글을 적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난 당일부터 이미 인터넷 상에 신상이 유포됐고,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담함 속에서 그저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며 지냈다”며 “회사 결정은 갱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린 글과 댓글이 ‘제 안의 어두운 모습이 표출된 것’, ‘제 배설’ 등으로 표현했다. 그는 “제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면서 “혹은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가 있던 글이나 댓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살겠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지를 매섭게 봐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즉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스는 A씨의 사과에 대해 KBS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일베’ 게시판과 자신의 SNS에 특정 지역 비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글을 많이 올린 ‘헤비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KBS 기자들이 활동하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파문 이후 KBS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글쓴이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수습기자 A씨로 추정되는 일베 회원이 쓴 다수의 글이 확인됐다. A씨로 추정되는 ‘김겸양’이라는 닉네임이 쓴 상당수 글들은 음담패설과 여성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이었다. KBS 직능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KBS 내부 모든 구성원은 ‘일베 수습기자’의 기자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일삼아 온 폭력 상향의 ‘일간베스트’ 회원이 KBS기자가 된다면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KBS 공채 42기 기자직에 합격해 수습 교육을 받던 지난 2월 중순,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BS는 지난 1일 해당 기자를 정사원으로 발령내면서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BS ‘일베 기자’ “과거 ‘배설물’ 본심 아니다…처절히 반성” 사과글

    KBS ‘일베 기자’ “과거 ‘배설물’ 본심 아니다…처절히 반성” 사과글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로 알려진 신입 기자가 공식 사과했다. KBS에 따르면 이 신입 기자 A씨는 13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간 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처절히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KBS 구성원들이 전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논란이 됐던 2월 중순부터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한 마디 없이 숨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 글을 적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난 당일부터 이미 인터넷 상에 신상이 유포됐고,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담함 속에서 그저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며 지냈다”며 “회사 결정은 갱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린 글과 댓글이 ‘제 안의 어두운 모습이 표출된 것’, ‘제 배설’ 등으로 표현했다. 그는 “제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면서 “혹은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가 있던 글이나 댓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살겠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지를 매섭게 봐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즉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스는 A씨의 사과에 대해 KBS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일베’ 게시판과 자신의 SNS에 특정 지역 비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글을 많이 올린 ‘헤비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KBS 기자들이 활동하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파문 이후 KBS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글쓴이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수습기자 A씨로 추정되는 일베 회원이 쓴 다수의 글이 확인됐다. A씨로 추정되는 ‘김겸양’이라는 닉네임이 쓴 상당수 글들은 음담패설과 여성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이었다. KBS 직능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KBS 내부 모든 구성원은 ‘일베 수습기자’의 기자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일삼아 온 폭력 상향의 ‘일간베스트’ 회원이 KBS기자가 된다면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KBS 공채 42기 기자직에 합격해 수습 교육을 받던 지난 2월 중순,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BS는 지난 1일 해당 기자를 정사원으로 발령내면서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BS ‘일베 기자’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 사과글

    KBS ‘일베 기자’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 사과글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로 알려진 신입 기자가 공식 사과했다. KBS에 따르면 이 신입 기자 A씨는 13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간 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처절히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KBS 구성원들이 전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논란이 됐던 2월 중순부터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한 마디 없이 숨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 글을 적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난 당일부터 이미 인터넷 상에 신상이 유포됐고,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담함 속에서 그저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며 지냈다”며 “회사 결정은 갱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린 글과 댓글이 ‘제 안의 어두운 모습이 표출된 것’, ‘제 배설’ 등으로 표현했다. 그는 “제 본심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면서 “혹은 제 본심이 일부라도 들어가 있던 글이나 댓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살겠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지를 매섭게 봐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즉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스는 A씨의 사과에 대해 KBS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일베’ 게시판과 자신의 SNS에 특정 지역 비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글을 많이 올린 ‘헤비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KBS 기자들이 활동하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파문 이후 KBS 기자들이 온라인에서 글쓴이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수습기자 A씨로 추정되는 일베 회원이 쓴 다수의 글이 확인됐다. A씨로 추정되는 ‘김겸양’이라는 닉네임이 쓴 상당수 글들은 음담패설과 여성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이었다. KBS 직능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KBS 내부 모든 구성원은 ‘일베 수습기자’의 기자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일삼아 온 폭력 상향의 ‘일간베스트’ 회원이 KBS기자가 된다면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KBS 공채 42기 기자직에 합격해 수습 교육을 받던 지난 2월 중순,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BS는 지난 1일 해당 기자를 정사원으로 발령내면서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고양 원더스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하던 일 그만두게 하고 다시 야구에 끌어들였느냐’면서요. 한 가지를 간과한 게 있습니다. 그들이 원더스에서 야구를 못 했다면 평생 후회를 했을 거란 사실을요.”(영화 ‘파울볼’ 대사 중) 김성근 감독과 국내 첫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 ‘파울볼’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개봉 첫날인 지난 2일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다인 20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9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만 4905명이 관람해 이달 개봉한 영화 중 5위에 올랐다. ●해체된 고양원더스 출신 선수 33명 프로 진출 지난해 9월 11일 하송 단장이 “더는 야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흐느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해체된 원더스는 3년간 계속한 뜨거운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원더스의 후예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음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2011년 창단한 원더스는 이듬해부터 꾸준히 프로에 선수를 보냈다. 2012년 7월 LG에 입단한 이희성을 시작으로 총 33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현재 29명이 1군 벤치나 퓨처스(2군)리그, 육성군에서 뛰고 있다. 주전급으로 발돋움한 선수는 없지만, 끊어질 뻔한 야구 선수의 삶을 살며 하루하루 그라운드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희성은 안타깝게도 방출의 아픔을 겪었으나 프로 진출 ‘2호’ 내야수 김영관(LG)은 지난해까지 1군에서 총 21경기를 뛰었고, 올 시즌도 2군에서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9일까지 7경기에 나와 타율 .300(20타수 6안타)에 홈런 1개를 기록했고, 출루율은 .440에 달한다. 원더스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넥센 내야수 안태영을 꼽을 수 있다. 2012년 프로행에 성공한 안태영은 2013년 7월 27일 대구 삼성전에서 7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1군 데뷔전을 치렀는데, 7회 선두타자로 나와 우측 담장을 훌쩍 넘는 장외 홈런을 터뜨렸다. 원더스 출신 선수 첫 홈런.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를 바라보던 안태영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무명으로 얼룩진 그간 설움을 씻었다. 지난해에도 홈런 한 개를 친 안태영은 2년간 1군 53경기에 출전, 타율 .299(97타수 29안타)의 녹록지 않은 방망이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는 2군에 머무르고 있으나 염경엽 감독으로부터 다시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넥센 내야수 안태영, 2년간 1군 53경기 출전 2013년 5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NC에 입단한 투수 김용성은 현재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김건국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세울 건(建)’과 ‘판 국(局)’을 새 이름으로 골라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13년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조범현 감독의 지명을 받아 kt로 둥지를 옮긴 김건국은 아직 1군에 서지 못했다. 원더스에 가기 전인 2007년 두산에서 딱 한 경기 등판한 게 그의 유일한 1군 경험이다. 김건국이 8년간 오르지 못한 1군 마운드에 다시 서는 날이 올지 주목된다. ‘파울볼’에서 김 감독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이는 외야수 설재훈이다. 광주 진흥고 3학년 때 “야구는 내 길이 아니다”며 유니폼을 벗었지만 군 입대 후 다시 야구와 짝사랑을 했다. 제대 후 일본 독립구단 해치에 입단했고, 원더스 창단 멤버가 됐다. 원더스 소속일 때도 한 차례 야구를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갔으나, 아버지한테 혼이 난 뒤 김 감독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며 재입단했다. 함께한 동료들이 하나둘 프로팀의 부름을 받았지만 설재훈은 원더스가 해체될 때까지 둥지를 찾지 못했다. 김 감독이 “넌 어떻게 할 거야?”라며 진로를 묻자 “일본 독립구단을 알아보겠다”며 선수 생활 계속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SK가 육성선수로 영입하면서 설재훈도 꿈에 그리던 프로의 꿈을 이뤘다. 2~3월 대만에서 열린 2군 스프링캠프에서는 야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직 그가 가야 할 길은 더 남았다. 올 시즌 2군에서는 7경기에 나와 타율 .296(27타수 8안타)을 기록 중이다. ●한화 송주호, 김성근 감독 시즌 첫 승에 한 몫 송주호(한화)는 올 시즌 1군에서 뛰는 유일한 원더스 출신이다. 2013년 한화에 입단해 1군에서 45경기를 뛰었으나 1할대 타율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화 사령탑으로 새로 부임한 옛 스승 김 감독은 송주호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타석에 내세운 적은 많지 않았지만 대주자 등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인연이란 것은 있나 보다. 지난달 29일 넥센전에서 김 감독이 시즌 첫 승이자 1323일 만의 승장이 됐을 때 결승 득점을 올린 이가 송주호였다. 3-3으로 맞선 8회 2사 1·2루에서 2루 주자 김태균과 교체돼 들어간 송주호는 정범모의 안타 때 홈까지 파고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원더스 최고령 최향남(44)은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다. 1990년 연습생으로 해태에 입단해 10승 투수가 됐으나 메이저리그 꿈을 꾸며 두 차례 미국으로 건너갔다. 끝내 빅리그에 입성하지 못하자 일본 독립구단 도쿠시마에서 잠시 뛰었고, 지난해 김 감독의 부름으로 원더스에 갔다. 지난 3월에는 18살 어린 원더스 출신 황건주와 함께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다이빙 덕스’에 입단했다. ●‘최고령’ 최향남,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입단 다이빙 덕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연습 경기 중인 선수들의 사진을 여럿 올렸는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최향남도 있다. 등번호 3번을 단 그는 경기 종료 후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최향남이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글러브를 벗지 않는 것은 이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더스 후예들은 다시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렇게 구슬땀을 흘렸지만, 날마다 TV로 중계되는 KBO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2군에서 눈물겨운 빵을 먹고 마음 한편에는 언제 방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야구를 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원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도 후예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새 영화] ‘코블러’

    [새 영화] ‘코블러’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구두수선공 맥스(애덤 샌들러). 미국 뉴욕의 구시가지에서 작고 허름한 구두수선 가게를 4대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며 지내는 미국판 ‘미생’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 ‘코블러’는 타인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주인공을 통해 반복된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하는 판타지 코미디다. 토머스 매카시 감독은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 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일견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영화는 초반부터 마술처럼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어느 날 맥스는 쓰던 수선 기계가 고장 나자 창고에 버려져 있던 100년도 더 된 기계를 꺼낸다. 이 기계로 수선 작업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수선이 완료된 손님의 구두를 신어 본 맥스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구두 주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 그날 이후 맥스의 변신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나이와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한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으로 변신했다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성으로 변하기도 하고 중국인이 돼 차이나타운을 거닐며 태극권 수련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맥스가 매력적인 여자친구를 둔 훈남으로 변하는 장면이다. 그녀와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려는 결정적인 순간 신발을 벗으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 두려워 눈물을 머금고 줄행랑치는 모습은 웃음을 안겨 준다. 물론 가슴 찡한 장면도 있다. 맥스는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기꺼이 아버지의 신발을 신는다. 그의 이런 능력은 여러 가지 사건과 얽히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는 갱스터로 변해 범죄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뉴욕에서 일어난 재개발 붐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뻔한 노인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코미디로 흘러가던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일관성을 잃고 가족극, 범죄 스릴러, 사회고발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이면서 용두사미가 되는 듯한 모양새는 안타깝다. 특히 구두 한 켤레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더스틴 호프먼은 개연성이 떨어져 감동을 반감시킨다. 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장발장은행을 아시나요] “벌금 못 내면 노역장… 장발장은행은 생명줄”

    [장발장은행을 아시나요] “벌금 못 내면 노역장… 장발장은행은 생명줄”

    지난 10년 동안 강원 삼척과 태백의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던 한영철(51·가명)씨는 2010년 부모를 잃은 데 이어 하반신 마비로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함께 살던 누나마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던 한씨는 매일 술을 마셨다. 지난해 9월 사달이 났다. 버스터미널에서 소동을 피우다가 경찰관에게 욕을 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것. 벌이가 없으니 벌금을 낼 수 없었다.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기 싫어 자식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한씨처럼 가난 때문에 벌금을 내지 못하면 노역장에 가야 한다. 1일 법무부에 따르면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은 최근 4년 동안 평균 2만 8000여명에 이른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 갈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장발장은행’이다. 지난 2월 출범한 장발장은행은 몇십만~몇백만원의 벌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심사를 거쳐 최대 300만원까지 이자·담보 없이 빌려준다. 단 선고받은 벌금 액수가 넘는 금액은 신청할 수 없다. 이날까지 장발장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은 65명, 이들에게 모두 1억원이 넘는 대출금이 전달됐다. 이들에게는 ‘생명줄’과 다름없는 대출금은 시민 모금으로 충당한다. 지금까지 개인·단체 등 후원자 676명이 1억 4800여만원을 장발장은행에 후원했다. 경기 오산의 7평(23.1㎡) 남짓한 원룸에서 지내는 김장호(56·가명)씨도 장발장은행의 도움을 받았다. 김씨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이혼하면서 자식과 떨어져 살게 됐다. 그래도 매달 생활비로 100만원을 꼬박꼬박 보낸다. 김씨의 삶이 꼬인 건 2005년. 재래시장 청과물 납품을 했는데 어느 날 지인이 대출금 4000만원에 대한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그동안 좋은 물건을 싼값에 받았다”며 보증을 섰다. 하지만 지인은 빌린 돈을 갚지 못했고, 김씨에게 오롯이 부담이 전가됐다. 김씨는 아직도 1000만원가량 빚이 남았다. 김씨는 2013년 중국음식점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 들어가 재기를 노렸다. 또 위기가 왔다. “지난해 10월 차를 타고 퇴근하는데 어떤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서 튀어나왔어요. 내가 몰던 트럭하고 부딪쳤죠. 좁은 골목에 차를 세워 둘 수 없어 아이에게 ‘잠깐 회사에 차 세워 놓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병원에 가자’고 했죠. 그런데 현장에 와 보니 아이가 없어졌어요.” 이틀 뒤 ‘뺑소니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찾아왔다. 형사입건을 피하고 치료비 100만원선에서 합의를 봤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벌금 50만원이 늘어났다. 월급 160만원에서 두 아들 생활비와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용돈 15만원, 월세 35만원을 빼면 남는 돈이 없었다. 당장 급했다. 그러던 중 ‘통장을 빌려주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곧 통장과 체크카드를 보냈다. 범죄행위란 생각은 못했다. 결국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추가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벌금형을 선고(확정선고)받은 사람은 30일 안에 완납해야 한다. 납부를 못 하면 독촉에 이어 지명수배가 내려진다. 지명수배범이 된 김씨는 잡혀갈 날만 기다리는 신세다.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 있어도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외근을 다녀오면 그 사이에 ‘누가 나 잡으러 오지 않았을까’ 가슴을 졸였어요. 고통의 나날이었어요.” 최혜정(23·여·가명)씨는 두 살과 100일을 갓 넘긴 두 아들의 엄마다. 한 살 어린 남편과 2011년 동거를 시작해 지난해 5월 혼인신고를 했다. 지금 살고 있는 7평 원룸에는 최씨와 두 아이뿐이다. 남편은 구치소에 있다. “둘째 아들을 낳기 전 임신 8개월째에 아이를 사산했어요. 수술비가 필요했죠. 신랑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술비 때문에 편의점 금고에 손을 댔어요.” 나중에 구청 도움(긴급복지지원)으로 가까스로 수술받았지만, 홀몸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최씨를 벼랑 끝에 몰아넣은 것은 2012년 받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였다. 통장을 대여하면 15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솔깃했다. 같은 해 최씨는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지명수배 상태로 3년째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받아온 생계·주거비(150만원) 지원마저 곧 끊긴다. 벌금 납부는 언감생심이다. 최씨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 한해 벌금 분할 납부 또는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지방검찰청을 찾았다. 하지만 ‘신청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장애인 등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장발장은행 대출을 받은 최씨는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벌금 분할 납부 등은 검사 허가를 받아야 하고 조건도 까다롭다”며 “누구나 벌금을 나눠 내고 돈을 갑자기 마련해야 하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에 가는 사람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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