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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연대·민변 검수완박 우려 “충분한 논의 없는 속도전 곤란”

    참여연대·민변 검수완박 우려 “충분한 논의 없는 속도전 곤란”

    “형사사법특위 국회가 수용을”변협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나”일각 “檢공정 논란 매듭 기회” 더불어민주당이 12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법안을 4월 내 처리하기로 당론을 정했지만 법학 교수나 변호사단체 등은 ‘속도전은 곤란하다’고 입을 모았다. 형사사법체계를 뒤흔드는 중대한 개혁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연착륙이 우선 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두 제도가 시행된 지 1년 남짓 됐는데 또다시 검찰 수사권을 수술대에 올리는 것은 시기상조란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평가를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국민에게 공유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법안을 급히 통과시킬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긴급 토론회를 열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제도 및 기관을 포괄하는 대단히 복잡한 영역인 만큼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수사 업무는 주로 경찰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려면 수사 시스템을 좀더 정교하게 대비해 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해 “법률전문가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국민적 공감대 없이 반세기 이상 형사사법의 기본 축을 맡아 오던 검찰을 일체의 범죄수사에서 배제하는 것은 빈대 미워 집에 불을 놓는 격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까지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제대로 된 수사를 못 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 청구권을 검사에게만 부여하는 헌법의 기본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정권 5년 내내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무리한 검수완박을 시도하는 그 의도가 상당히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제안한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국회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기원 한국법조인협회장은 “특정 모델을 흉내 내 하루아침에 논란 없이 올바른 구조를 만들 수 없는 문제다. 특위에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논평을 내고 “검수완박 방향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경찰의 수사 능력과 통제 장치가 충분한지, 사건 관계인의 불만과 불평은 없는지 확인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검수완박 논란은 윤석열 정부가 역주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수사 공정성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에 형사 사법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이미 20년 이상 논의된 사안이기 때문에 이번에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 민주, 검수완박 당론 채택… 4월 처리

    민주, 검수완박 당론 채택… 4월 처리

    더불어민주당이 12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검찰·언론 개혁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검찰 관련 법안을 문재인 정부 임기 내인 4월 중 처리하기로 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의 수사·기소권은 완전히 분리하고 관련된 법은 4월 중 처리하기로 했다”면서 “동시에 경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 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분리하고 기소권만 남기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다.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수사권을 마저 분리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법 시행 시기는 3개월 유예하고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이관하기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여부 등은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가 수사 기능을 한곳으로 모아 ‘한국형 FBI(미 연방수사국)’ 설립을 추진한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70년간 시행해 온 형사사법 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려 하면서 심도 있는 검토도, 대안 제안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검수완박은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민주당은 포털사이트의 뉴스편집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 법안 등을 추진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본회의에 계류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도 당론으로 정하고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부분을 좀더 검토한 뒤 법안 처리 시기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 차원의 결정에 위임하기로 했다. 한편 대검찰청은 이날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당론 채택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기대했는데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퇴근길에 별도의 메시지 없이 관용차로 청사를 빠져나갔다.
  • ‘검수완박’ 세계적 추세라는데… “선진국 여전히 수사권 보장”

    ‘검수완박’ 세계적 추세라는데… “선진국 여전히 수사권 보장”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며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지적이 11일 나온다. 일부 사례는 있지만 선진국 상당수는 여전히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권의 현대적 의미’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약 77%에 달하는 27개국은 헌법 혹은 법률에 검사의 수사권을 명문화해 뒀다. 이 중 최소 14개국 이상의 국가는 이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검사의 수사권 배제를 골자로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제출한 검토 보고서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로 분리돼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조차도 연방검사는 연방법집행관으로서 연방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팀을 별도로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방검사도 일부 주에서는 자체 수사인력을 두고 테러·조직·환경·경제·부패범죄 등을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일본은 경찰에는 1차적 수사권을, 검찰에는 2차적 수사권을 규정해 병렬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사법경찰(형사)과 검사의 관계를 상호협력관계로 규정하면서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부여했는데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검경 책임수사제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륙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수사의 주재자로서 검찰에 모든 종류의 수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예심 수사판사와 검사, 또는 예심 수사판사나 검사의 지휘를 받은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검찰에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는 나라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있다. 영국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으며 부패 범죄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닮은 중대비리수사청이 수사한다. 검찰은 검수완박은 사례가 드문 데다가 형사사법 체계는 역사성이 있어 짧은 시간에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11일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모두발언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면서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극심한 혼란을 가져온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검수완박’ 세계적 추세라는데… “선진국 여전히 수사권 보장”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며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지적이 11일 나온다. 일부 사례는 있지만 선진국 상당수는 여전히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권의 현대적 의미’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약 77%에 달하는 27개국은 헌법 혹은 법률에 검사의 수사권을 명문화해 뒀다. 이 중 최소 14개국 이상의 국가는 이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검사의 수사권 배제를 골자로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제출한 검토 보고서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로 분리돼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조차도 연방검사는 연방법집행관으로서 연방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팀을 별도로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방검사도 일부 주에서는 자체 수사인력을 두고 테러·조직·환경·경제·부패범죄 등을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일본은 경찰에는 1차적 수사권을, 검찰에는 2차적 수사권을 규정해 병렬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사법경찰(형사)과 검사의 관계를 상호협력관계로 규정하면서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부여했는데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검경 책임수사제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륙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수사의 주재자로서 검찰에 모든 종류의 수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예심 수사판사와 검사, 또는 예심 수사판사나 검사의 지휘를 받은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검찰에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는 나라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있다. 영국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으며 부패 범죄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닮은 중대비리수사청이 수사한다. 검찰은 검수완박은 사례가 드문 데다가 형사사법 체계는 역사성이 있어 짧은 시간에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11일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모두발언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면서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극심한 혼란을 가져온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공소청이 세계적 추세?…선진국 대다수는 여전히 ‘수사권 보장’

    공소청이 세계적 추세?…선진국 대다수는 여전히 ‘수사권 보장’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며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지적이 11일 나온다. 일부 사례는 있지만 선진국 상당수는 여전히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권의 현대적 의미’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약 77%에 달하는 27개국은 헌법 혹은 법률에 검사의 수사권을 명문화해 뒀다. 이 중 최소 14개국 이상의 국가는 이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검사의 수사권 배제를 골자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제출한 검토 보고서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로 분리돼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조차도 연방검사는 연방법집행관으로서 연방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팀을 별도로 요청도 가능하다. 지방검사도 일부 주에서는 자체 수사인력을 두고 테러·조직·환경·경제·부패범죄 등을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일본은 경찰에는 1차적 수사권을, 검찰에는 2차적 수사권을 규정해 병렬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사법경찰(형사)과 검사의 관계를 상호협력관계로 규정하면서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부여했는데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검경 책임수사제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륙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수사의 주재자로서 검찰에 모든 종류의 수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예심 수사판사와 검사, 또는 예심 수사판사나 검사의 지휘를 받은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검찰에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는 나라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있다. 영국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으며 부패 범죄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닮은 중대비리수사청이 수사한다. 검찰은 검수완박은 사례가 드문 데다가 형사사법 체계는 역사성이 있어 짧은 시간에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11일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모두발언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면서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극심한 혼란을 가져온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김오수 “검찰총장직 연연하지 않을 것”…‘검수완박’ 반대

    김오수 “검찰총장직 연연하지 않을 것”…‘검수완박’ 반대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11일 김 총장은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지검장회의 모두발언에서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는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저는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행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형사사법제도가 제대로 안착하기도 전에, 검찰 수사기능을 완전히 폐지하는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수사를 못 하게 되면 범죄자는 처벌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은 늘어나며 부패, 기업, 경제, 선거범죄 등 중대범죄 대응은 무력화된다. 결국 검찰 제도가 형해화되어 더는 우리 헌법상의 검찰이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새로운 제도 도입 당시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했던 저는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 중심으로 검찰을 운영하면서 제도 안착과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극심한 혼란을 가져온다”면 서 “이런 중요한 제도 변화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충실히 직무를 수행해 온 우리 검찰 구성원들에게 현 상황이 무척 답답할 것”이라며 “저와 대검은 여러분들의 뜻을 모아 사력을 다해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제도를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는 전국 지방검찰청 검사장 18명과 김 총장, 박성진 대검 차장, 예세민 기획조정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면 회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검사장들은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 의사를 재차 밝히고,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대응 방안 마련에 주력할 전망이다.
  • 중국인 사족 못 쓰는 한국 라면이 불량식품? 중국서 제기된 유통기한 논란

    중국인 사족 못 쓰는 한국 라면이 불량식품? 중국서 제기된 유통기한 논란

    중국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라면으로 꼽히던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현지 누리꾼이 쏘아 올린 ‘고무줄’ 유통기한 문제로 하루아침에 저격 대상이 됐다. 익명의 중국인 누리꾼이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유통기한이 한국 내 유통제품과 비교해 2배 이상 길게 책정된 고무줄 유통기한이었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누리꾼은 최근 자신이 중국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티몰(tmall)에서 해당 제품을 구매했는데 제품 포장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1년으로 적혀 있었지만 한국 내 같은 제품의 유통기한은 절반인 6개월로 표기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최근 티몰 공식 수입품 채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면 요리 제품 중 하나로 알려졌다. 실제로 불닭볶음면 5개가 한 세트로 구성된 제품의 판매 규모는 최근 티몰에서만 약 2만 세트 이상 팔려나갔고, 구매 후기 수는 무려 6000건에 달하는 인기 제품으로 꼽혀왔다. 때문에 삼양식품을 정조준해 제기한 고무줄 유통기한 의혹은 현지 관영매체들이 잇따라 보도를 이어가는 등 이목이 쏠린 분위기다.중국 매체 훙싱신원은 ‘한국의 삼양식품 공식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중국에서 논란이 된 제품과 같은 상품의 한국 내 정식 유통기한은 6개월로 표기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하지만 해당 홈페이지를 영문판과 중문판으로 재설정하자 같은 제품의 유통기한 안내가 갑자기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변경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어 ‘티몰 내 삼양식품 공식 입점 채널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제품 생산지는 모두 한국으로 유통기한은 12개월로 표시돼 있었다’면서 ‘티몰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접촉을 취했으나 티몰 측은 제조업체가 중국 법규에 따라 직접 중국어로 프린트된 상품 포장지를 인쇄하고 있으나, 이들 제품에 대한 생산은 모두 국외에 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또 동일 제품의 유통기한 표기와 관련해 대만과 일본, 미국, 한국에서 유통 중인 제품 포장지 외면을 확인한 결과, 대만 유통 제품의 기한이 1년으로 표시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3곳에서 판매 중인 제품에는 생산 일자와 보증기한이 명시되지 않은 채 유통기한 만료일만 표기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해당 제품의 유통기한이 1년으로 표기된 것과 비교해, ‘중국에서 제조돼 판매되는 국산 라면의 유통기한은 기본적으로 6개월이 최대다’고 지적했다. 또, 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라면의 유통기한이 최장 6개월을 넘길 경우 그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사실상 한국산 라면 제품의 유통 품질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장샤오펑 베이징대 공공위생학 식품영양학과 부교수는 “라면처럼 기름에 튀긴 제품은 제조 후 시간이 오래 될수록 기름이 산화해 식품의 영양소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면서 “특히 산화한 기름으로 인해 알데하이드, 케톤과 같은 화학 성분이 산화하고, 이 성분들이 인체에 흡수된 후에는 동맥경화, 암 등 각종 위험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유통기한이 만료된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은 중국 현지법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 대검, ‘검수완박’ 공식 반대…“선진 법제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

    대검, ‘검수완박’ 공식 반대…“선진 법제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

    대검찰청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 추진과 관련해 8일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냈다. 대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치권의 검찰 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 추진에 반대한다”면서 “국민을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검찰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에 대해 국민들을 위해 한번 더 심사숙고하고 올바른 결정을 해 주시기를 정치권에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국회는 전날(7일)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법사위 소속이던 민주당 박성준 의원을 기획재정위원회로 맞바꿔 사·보임했다. 이로 인해 법사위 안건조정위 구도가 바뀌면 쟁점 안건이 민주당의 의지대로 본회의에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대검은 전날 오후 전국 검찰기관장들에게 민주당 김용민·민형배·황운하·이수진 의원 등이 발의한 검수완박 관련 법률안의 핵심 내용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은 “현재 시행 중인 개정 형사법은 1년 3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논의를 거치고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는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입법됐다”면서 “시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문제점들이 확인돼 지금은 이를 해소하고 안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은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만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 검찰에서는 이것이 실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6대 중대범죄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기고 현재의 검찰은 기소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바꾸는 방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대검은 “검사가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70여년간 시행되던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으로 극심한 혼란을 가져 온다”면서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고 국가의 중대범죄 대응역량 약화를 초래하는 등 선진 법제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검수완박’과 관련해 이날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는 하루 종일 정치권을 향한 성토의 글이 올라왔다. 권상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 법사위의 사·보임 문제를 소개하면서 “형사사법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법안도 다수당이 마음 먹으면 한 달 안에 통과될 수 있는 거친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박찬록 부산지검 2차장검사는 댓글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형사사법체계를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하루아침에 갈아엎는다는 자체가 참으로 무섭고 흉하다”고 지적했다. 김종우 대검 형사2과장은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묻고 싶다”고 적었고,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은 “헌법상 규정된 검사의 책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헌법 질서 파괴행위”라고 지적했다.
  •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분수 지나 춘추관, 왼쪽엔 여민관 녹지원엔 170년 한국산 반송 감상관저 뒤뜰선 ‘석조여래좌상’ 구경 대통령 침실 등 건물은 추후 개방 ‘완전 개방’ 북악산 남측 등산 추천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방송 상담소의 뒷면/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방송 상담소의 뒷면/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상담 프로그램은 인기가 있는데 유명인의 이야기는 특히 화제가 된다. 김윤아씨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는데 목공소에 가서 매를 사이즈별로 맞춰 왔다고 말했다. 배우 한가인씨는 어릴 때부터 언니에게 당한 학대를 밝히며 왜 일찍 결혼하게 됐는지를 고백했다. 그 중심에 오은영 정신과 의사가 있다. 행동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을 분석하고, 부모에게 해결책을 줘 변화시켜 온 분으로 성인 대상의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방송에서 유명인들은 아픈 과거를 말하고, 오 박사의 명쾌한 분석과 따뜻한 위로에 힐링을 경험했다. 주로 성인을 위주로 상담과 치료를 해 온 사람 입장에서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조심스러운 염려를 말하고 싶어졌다. 일단 아이들의 행동 문제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살아온 시간이 적고, 아이들은 순수하며 부모는 절박하다. 숨길 것도 없고 문제가 있다 해도 실마리만 잘 찾아내면 의외로 잘 풀린다. 반면 어른은 다르다.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어릴 때 기억은 조금씩 변하고 달라진다. 과거를 지금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이해 당사자마다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 아픈 사건이 견딜 만하게 줄어들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색채가 강해져 2차 보정이 된 사진으로 저장된다. 이렇게 형성된 결과물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된다. 더욱이 앞으로도 조금씩 변해 나갈 것이 과거의 나에 대한 기억이다. 한편 힘든 얘기지만 진짜 무의식에 억제된 내용은 아니다. 그건 의식에서 감당하기 힘들기에 깊숙이 처박힌 채 자아에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공개한 이야기는 자기 마음 안에서는 이미 오래전 정리한 개인 서사였다. 다만 한 번에 튀어나와 버리면 감당이 안 될 수 있는데 방송과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말하는 순간은 후련하고 지지받는 기분이지만, 이후의 시간 동안 복잡한 후폭풍이 생기곤 한다. 한 번 말한다고 인생은 바뀌지 않고 관계도 달라지지 않는다. 정신치료 중 깊은 속내를 드러낸 다음 감당하기 힘들어하며 예고 없이 결석을 하는 분이 많다. 그래서 정신치료는 양파 껍질을 위에서부터 한 겹씩 벗기듯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수술로 병소는 다 제거했는데 환자는 위중해지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되기에. 이에 반해 방송 상담소는 마치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수술 같아 보여 걱정이다. 공개 상담은 당사자뿐 아니라 연관된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셀럽의 부모. 가족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가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알려지게 됐다. 고백한 사람은 분했던 과거사를 인정받게 됐지만 가족들은 이걸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이 부분도 염려가 된다. 이렇게 방송에서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상담소는 호기심의 장이 돼 소모되고, 남는 건 본인과 가족이다. 과거의 힘든 기억은 이런 식으로 한 번에 공개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동안 힘든 기억을 안고 가는 게 버거웠다면 오래 걸리지만 은밀한 개인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 로또로 인생 역전한 절도범이 경찰서 찾아가서 한 말은?

    로또로 인생 역전한 절도범이 경찰서 찾아가서 한 말은?

    로또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아르헨티나 절도범의 이색적인 행보가 세상에 알려져 화제다. '작은 람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절도범 마르셀로 파레데스(37)는 최근 아르헨티나 추붓주 푸에르토 마드린의 경찰서를 찾아갔다. 여느 때처럼 밝게 인사를 하면서 난데없이 경찰서에 들어선 그는 "경찰관 아저씨들, 저는 이제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고 범죄와의 절연(?)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범죄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 두 사람을 찾아가 2배로 피해를 배상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말도 했다.  "경찰서를 안방처럼 드나들던 절도범이 하루아침에 절도범이 갑자기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찰에 그는"저 로또 맞았어요"라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절도범의 말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었다. 그는 '키니6'라는 로토에서 1등에 당첨돼 상금 9300만 페소(약 10억3000만원)를 받았다.  그에게 행운을 안겨준 번호는 31, 9, 21, 17, 3, 12 등 6숫자. 15살 때부터 매주 로토를 샀다는 절도범이 22년째 한결같이 고집하고 있는 번호였다.  한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페소가 아닌 달러로 피해를 배상해주겠다고 하더라"면서 "진짜 벼락부자가 됐구나 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기억하는 절도범은 성격이 쾌활하고 인사성도 밝은 세칭 '물건 같은 인물'이다. 그는 절도 혐의로 붙잡혀 검찰의 조사를 받을 때도 "검사님,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등 남다른 붙임성을 보였다.  일면식이 있는 경찰관들에겐 옆집 아저씨에게 하듯 친근하게 대했다.  절도범은 관광객을 상대로 몰래 핸드폰을 훔치거나 주택에 들어가 TV, 노트북, 게임콘솔 등을 훔치는 게 본업(?)이었다. 2017년에는 이런 범죄를 전문적으로 저지르는 조직에 들어가 조직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의혹이 불거지거나 혐의가 발각되면서 조사를 받느라 경찰서 출입이 잦았고 처벌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는 언제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폭력행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무기로 피해자를 위협한 적도 없고, 폭력을 행사한 적도 없어 단순 절도로만 처벌을 받다 보니 언제나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곤 했다"고 설명했다. 
  •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권유린’을 한, 그 날이 다시 돌아왔다. 벌써 74주년. 올해 제주는 특별한 봄을 맞고 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으로 올 하반기부터 4·3희생자에게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엔 직권재심과 특별재심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 73명이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은, 그 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있다. 818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4·3의 비극을 다시 소환한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집단 대학살 지난 29일, 제주도 조천읍 북촌 너븐숭이 4·3 위령성지로 향했다. 함덕해변 옆동네라고 하면 대충 알게 되는 그 해안마을 북촌리는 1949년 1월 17일 대규모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너븐숭이 4.3위령탑 앞에는 벚나무 3그루가 시리도록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옆에선 토종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19년 12월 발간된 ‘제주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북촌리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48명(2021년 기준)이 희생된 곳이다. 그 슬픈 역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령비 옆 마늘 밭에는 노인네가 코발트빛 푸른바다를 배경 삼아 한가롭게 농삿일을 하고 있었다. 멀리 토벌대를 피해 배를 타고 나가 숨기도 했던 ‘다려도’가 아른거렸다. 그날 아침,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북촌리를 경유해 함덕 대대본부로 가던 도중, 북촌국민학교 서쪽 고갯길 속칭 ‘마가리 동산’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이 사망한 군인의 시신을 수습해 함덕국민학교 대대본부로 싣고 갔다. 군인들은 주민들이 보초 경비의 책임을 물어, 시신을 운구해 간 주민 중 경찰 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을 함덕리 고두물로 끌고 가 구타 후 총살했다. 그리고 군인들이 북촌리 마을을 덮쳤다. 오전 11시 전후, 무장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집집마다 들이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전부 학교운동장으로 내몰고는 온 마을을 불태웠다. 400여 채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쇠막(외양간)에 있던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1300명의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린 학생 등을 일으켜 세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들볶던 군인들은 이 일이 여의치 않자 주민 몇십 명씩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밭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강요배 화백의 ‘젖먹이’ 그림은 북촌 학살 비극의 상징 4·3사건으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를 한꺼번에 잃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인 이상언(59·북촌리 4·3유적지 해설사)씨는 너븐숭이4.3기념관으로 안내하며 마치 그날의 비극이 눈앞에서 펼쳐지듯 설명했다. “강요배 화백이 그린 ‘젖먹이’ 작품은 북촌국민학교운동장에서 실제 있었던 상황이에요. 학교운동장에서도 무장대와 내통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협박했어요.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애기 업은 한 아주머니가 총에 맞아 죽어갔어요. 아주머니 등에 업혀 있던 애기가 쓰러진 엄마 품에서 빠져 나와서 젖을 물고 있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그림인데, 정말 그날 엄마는 죽고, 아기는 살았어요.” 이어 그는 “그림 속에 묘사된 여자 아이는 현실 속에서는 네 살 된 한경림이란 남자 아이로 40대에 세상을 떠났다”며 “북촌에는 한씨의 누님 두 분이 살고 있지만, 이 그림을 보면 가족사가 생각나는 듯 한동안 그림을 내려 달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4·3사건으로 제주의 아이들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도 전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도내 10세 미만의 아이들 818명이 4·3사건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는 4·3사건 당시의 아이들 3~8기의 봉분과 함께 4·3사건 이전에 병사한 아이들의 12기 봉분 등 총 20기가 있다. #너븐숭이 아기무덤엔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바람개비, 동백꽃, 그리고 ‘맛동산’ 이씨는 이곳 너븐숭이에서 영화 ‘폭낭의 아이들’을 촬영한 사유진 감독이 2020년 12월 16일 제주4·3평화공원 내 각명비 174개 중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 희생자 약 818의 이름을 각각 천에 적고 그 이름 적힌 천(이하 ‘위패’)을 인근 ‘평화의 숲’ 폭낭(팽나무)에 열명(列名)하고 그 이름 불러주었던 사연도 전했다. 심지어 제작팀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북촌 너븐숭이 애기무덤까지 818명의 어린이 희생자 위패를 모시고 5시간을 도보 순례해 북촌리 희생자 유족회 회장 고완순(84)에게 인계했다. 유족회장은 위패 담긴 함을 받아 소나무에 묶어 넋을 위로했고 할머니들이 와서 가마솥에 밥을 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동백꽃 모양으로 만들어 위로했다. 우연하게도 취재 현장에 간 날도 때마침, 너븐숭이 아기무덤 앞에선 4·3사건 74주년에 즈음해 추모 영상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때 희생된 아이를 재연하는 예닐곱살된 아이가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동백꽃을 무덤에 바치고 묵념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너븐숭이의 애기무덤은 이렇다할 조경이나 장식도 없다. 그러나 다크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 올 때마다 아기무덤에 누군가는 동백꽃을 바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귀천’이란 시를 바치고, 또 누군가는 바람개비를 바치고 추념했다. 이날은 누군가가 ‘맛동산’ 과자들을 모든 무덤에 바치고 갔다. 초라할 지 모르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애달프다 못해 먹먹해지는 추모의 공간이었다. 오는 3일에도 ‘폭낭의 아이들’ 제작팀은 이곳에서 어린영혼들을 위한 추념식을 연다고 했다. 왜 하필 북촌 주민들은 밭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너븐숭이’(넓은 언덕)에 어린아이들을 묻었을까. 아마도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농작물을 심어도 자랄 수 없는, 쓸모 없는 땅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옴팡밭에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비가 죽은 자들을 위로하듯 누워있다 너븐숭이 언덕 뒤엔 옴팡밭이 있다.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인 이곳도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100여명 희생됐다. 고완순 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여자들은 하늘을 보고 죽고, 남자는 엎어져서 죽어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오후 4시쯤 해가 기울 때 햇빛에 비친 밭이 피가 땅 속으로 흐르다 대지 위로 흘러 나와 핏빛이었다는 것이다. 너븐숭이의 비극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려졌다. 옴팡밭은 ‘순이삼촌’의 장면 장면을 돌 위에 비문처럼 새겨 놓았다. 마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듯 누워있다. 북촌사람들은 4·3은 입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왜냐하면 북촌대학살이 있은 지 5년 후인 1954년 1월 23일 세칭 ‘아이고 사건’이 그 발단이 됐다. 이 날 전몰장병인 북촌 출신 김석태의 고별식을 끝내고 4·3 당시 허무하게 죽어간 주민들의 혼을 함께 달래려고 술 한 잔 올리고 ‘아이고’ 통곡한 것이 제주경찰서에 알려져 마을이장 등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했다. 그 후 사람들은 한날한시 지내는 위령제도 마음대로 지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살았다.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그러나 이 ‘순이삼촌’(1978년) 소설이 나온 뒤 사람들이 용기를 내 그 아픈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 새겨진 희생된 443명의 명단이 그것이다. 거기엔 네글자 이름도 있다. 아버지 이름 뒤에다 자식 子가 붙어 있었다. 홍영삼자, 고두필자, 김상순자…. 그들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이름없이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이었다.
  • [씨줄날줄]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귀환/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귀환/임병선 논설위원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 달째로 접어드는데 우리와 피를 나눈 고려인 2만여명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얼마 전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야 청산리와 봉오동 승전을 이끈 홍범도 장군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극장 수위로 지내다 쓸쓸히 삶을 마감한 사실을 알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다. 홍범도도, 박헌영의 아내이기 전에 탁월한 여성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주세죽도 1937년 10월 서쪽으로 달리는 열차 화물칸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흩어져 살던 우리 민족 17만 2000명이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을 받아든 것이었다. 열차가 멈춘 곳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각각 9만 5000여명과 7만 6000여명이 하차했다. 황무지를 개간하다 혹독한 추위에 목숨을 잃은 이만 2만 5000명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들은 파미르고원 깊숙이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멀리 동유럽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 볼가강 유역, 벨라루스까지 살 곳을 찾아 이동했다. 낯선 땅에서 얼마나 간난신고를 겪었을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그런데도 고려인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현재 카자흐스탄 인구의 0.6%에 불과한 8만여 고려인이 이 나라 경제력의 22%를 담당한다니 놀랍다. 비옥하기로 이름난 우크라이나 평원에까지 뻗어 나갔는데 지금 그 평원에 포연이 가득하다. 폴란드, 루마니아 국경 일대로는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은 고려인 피란민들이 밀려온다고 한다. 조부모로부터 대물림하듯 유민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렵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고려인 3세와 4세 31명이 광주 지역사회의 도움을 얻어 오늘과 모레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13세 소년과 10세 소녀에 이어 개전 이후 첫 집단 이주다.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5000명이 모여 살고 있는 광주 광산구 월곡동과 산정동 고려인 마을을 새로운 지붕으로 삼게 된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받아들일 때처럼 세기를 건너 할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오는 이들을 따듯하게 보듬었으면 한다. 정부도 ‘입국 간소화’ 생색만 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 ‘스토킹 살인’ 김병찬 피해자 유족 “딸 가슴에도 못 묻어” 울분

    ‘스토킹 살인’ 김병찬 피해자 유족 “딸 가슴에도 못 묻어” 울분

    ‘스토킹 살해범’ 김병찬의 피해자 유족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눈물로 간곡히 호소했다. 피해자 A씨의 아버지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씨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살인 등) 등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며 “저희도 저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고, 숨만 쉬고 있을 뿐 산목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에 이어 증인석에 앉은 A씨의 어머니는 “평소 딸은 어떤 자녀였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오늘도 죽은 딸이 사준 신발을 신고 왔다”며 오열했다. 어머니는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가슴에도 묻히지 않는다”며 “딸이 죽은 줄 모르고 중매가 들어올 때마다 가슴이 멘다”고 했다. 이날 법정에는 A씨의 부모 외에도 고인의 여동생, 친척 등이 방청석에서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의 호소를 들은 재판부는 재판 말미에 “유족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건강 잘 추스르시기를 바란다”며 위로를 건넸다. 수의를 입고 출석한 김씨는 증언 내내 피고인석에서 두 눈을 감고 동요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30대 여성 A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씨는 김씨를 스토킹 범죄로 네 차례 신고한 후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중이었다. 김씨는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등 잠정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김씨는 첫 재판에서 A씨를 범행이 우발적이었다며 보복성은 부인했다. 또 2020년부터 하반기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지속해서 A씨의 집에 무단 침입하고 감금·협박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으나, 이날 공소사실 대부분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1일 김씨의 세 번째 공판을 연다.
  • 잿더미 된 마장동 먹자골목… 복구는커녕 쫓겨날까 ‘덜덜’

    잿더미 된 마장동 먹자골목… 복구는커녕 쫓겨날까 ‘덜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쌍벽을 이루던 먹자골목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지난 19일 발생한 화재가 식당 등 먹자골목 건축물 9곳을 연달아 집어삼키면서다. 불이 난 지 사흘째인 21일에도 먹자골목 화재 현장은 수습되지 못한 채 부서진 의자와 식탁, 냉장고 등 가재도구와 돼지 족 등 식재료들이 까맣게 탄 채 뒤섞여 있었다. 일부 가게는 지붕까지 모두 전소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의 집과 식당 앞을 오가며 흉하게 찢어진 포스터를 떼는 등 낙심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먹자골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부터 약 40년째 족발집을 운영해 온 60대 이재민 A씨는 이번 화재로 불에 탄 자신의 가게 앞에서 “벼락 맞았네, 벼락”이라고 말하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A씨는 “연탄불을 땔 때부터 평생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우고 가장 노릇을 했다”면서 “여든이 넘은 옆 식당 주인 할머니에겐 놀라 쓰러지실까 봐 나오지 마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먹자골목 이재민들은 화재로 당분간 장사가 어려워졌다는 막막함을 넘어 생계 수단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불이 난 먹자골목의 건물 대부분이 무허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마장동 먹자골목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축산물시장 인근의 포장마차 등을 정리하기 위해 국공유지인 현 위치에 가건물을 세우고 상인들을 이주시키면서 조성됐다. 마장동 먹자골목이 활성화되며 약 30년 전부터 상인들은 도로 사용료를 내며 생계를 꾸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늘어 가뜩이나 철거될까 불안을 안고 살던 먹자골목 상인들의 입장에선 화재 이후 복구는커녕 아예 쫓겨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화재로 가게와 집을 모두 잃은 이재민 B씨는 “평생 여기서 장사해 왔고 나이를 먹어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면서 “수백명의 생계가 걸린 이 골목이 사라질까 봐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하다”고 말했다. 평생 일궈 온 장사터를 잃어 낙담한 상인들과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 사이에서 구청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마장동 먹자골목은 음식점 등 영업장으로도 활용되지만 33명의 실거주지라 강제철거가 아닌 자발적 퇴거를 유도해 왔다”며 “주민과 상인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 형평성 있게 개선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마련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 화재에 삼켜진 40년 장사터···상인·주민·구청 모두 난감해진 화마 속사정

    화재에 삼켜진 40년 장사터···상인·주민·구청 모두 난감해진 화마 속사정

    19일 마장동 먹자골목 화재40년 생계 터 잃은 상인들 낙담민원·화재 사각지대에 구청도 난감“지역의 자산 차원에서 접근해야”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쌍벽을 이루던 먹자골목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렸다. 지난 19일 발생한 화재가 식당 등 먹자골목 건축물 9곳을 연달아 집어 삼키면서다. 불이 난지 사흘째인 21일에도 먹자골목 화재 현장은 수습되지 못한 채 부서진 의자와 식탁, 냉장고 등 가재도구와 돼지 족 등 식재료들이 까맣게 탄 채 뒤섞여 있었다. 일부 가게는 지붕까지 모두 전소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의 집과 식당 앞을 오가며 흉하게 찢어진 포스터를 떼는 등 낙심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먹자골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부터 약 40년째 족발집을 운영해온 60대 이재민 A씨는 이번 화재로 불에 탄 자신의 가게 앞에서 “벼락 맞았네, 벼락”이라고 말하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A씨는 “연탄불을 뗄 때부터 평생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우고 가장 노릇을 했다”면서 “여든이 넘은 옆 식당 주인 할머니에겐 놀라 쓰러지실까봐 나오지 마시라고 했다”고 말했다.먹자골목 이재민들은 화재로 당분간 장사가 어려워졌다는 막막함을 넘어 생계 수단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불이 난 먹자골목의 건물 대부분이 무허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마장동 먹자골목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축산물시장 인근의 포장마차 등을 정리하기 위해 국공유지인 현 위치에 가건물을 세우고 상인들을 이주시키면서 조성됐다. 마장동 먹자골목이 활성화되며 약 30년 전부터 상인들은 도로 사용료를 내며 생계를 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늘어 가뜩이나 철거될까 불안을 안고 살던 먹자골목 상인들의 입장에선 화재 이후 복구는 커녕 아예 쫓겨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화재로 가게와 집을 모두 잃은 이재민 B씨는 “평생 여기서 장사해왔고 나이를 먹어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면서 “수백명의 생계가 걸린 이 골목이 사라질까봐 목숨을 걸만큼 절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화재에 취약한 무허가 건축물을 화재 사각지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먹자골목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졌지만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나 누전차단기의 설치 의무가 없고 소방 점검 역시 주기적으로 되지 않아 피해가 컸다. 성동소방서 관계자는 “불이 난 먹자골목과 같은 무허가 가설 건축물은 현행법상 소방서에서 의무적으로 화재 예방 점검을 하지 않아도 돼 봄과 가을에 진행하는 점검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평생 일궈온 장사터를 잃어 낙담한 상인들과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 사이에서 구청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마장동 먹자골목은 음식점 등 영업장으로도 활용되지만 33명의 실거주지라 강제철거가 아닌 자발적 퇴거를 유도해왔다”며 “주민과 상인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 형평성 있게 개선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마련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마장동이라는 역사성도 있는 지역이기에 지역의 자원이나 자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주민들 간 소통을 충분히 진행해 새로운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만 한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윤호중 “대통령실 용산 이전, 국민 뜻 무시한 당선인의 횡포”

    윤호중 “대통령실 용산 이전, 국민 뜻 무시한 당선인의 횡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발표한 가운데, 이를 두고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 뜻은 깡그리 무시한 당선인의 횡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0일 윤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전 결정 과정이 완전한 졸속, 불통”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구청 하나를 이전해도 주민의 뜻을 묻는 공청회를 여는 법”이라며 “국가안보와 시민의 재산권을 좌우할 청와대와 국방부 이전을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강행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안보 공백이 없다는 윤 당선인의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말”이라며 “국가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용산은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총지휘하는 국방의 심장이다. 게다가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이전에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핵심 시설을 하루아침에 폐기하면 구멍 뚫린 국가방위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용산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 현 청와대 영빈관까지 몽땅 사용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구상대로라면 경호·경비에 따른 예산 투입도 지금의 2∼3배 이상 소요될 것”이라며 “시민 불편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시민들의 재산권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면 용산과 남산 일대는 고도 제한에 묶여서 인근 지역 재개발, 재건축이 불가능해진다”면서 “용산 재개발, 국제 업무지구 조성 역시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집무실 반경 8km는 비행금지 구역으로 제한된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드론 택시·택배는 강남까지 발도 못 붙이게 된다”며 “대통령 새집 꾸미자고 시민들 재산권을 제물로 삼는 꼴 아니냐”고 비판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윤 당선인을 향해 “졸속과 날림의 집무실 이전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거부한다면 민주당은 결사의 자세로 안보와 시민의 재산권을 지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부디 냉정을 되찾아 국민 불안을 덜어주기를 바란다”며 “민주당은 즉시 국방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소집하여 용산 집무실 이전의 문제점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 [데스크 시각] 여소야대 앞에 선 윤석열 당선인/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여소야대 앞에 선 윤석열 당선인/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앞에 선 대통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노태우 정권 때의 ‘3당 합당’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YS)의 통민당, 김종필(JP)의 공화당이 하루아침에 합당을 선언했다. 국민들은 경악했다. 전두환·노태우 군부의 탄압에 맞서 목숨걸고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이 YS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당하는 것보다 열 배는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합당 선언문을 읽을 때 그 앞에 나란히 선 YS와 JP의 당당한 모습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줬다. 당시 민정당이 2년 전 13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됐고, 노태우 정부는 야권이 주도하는 ‘5공 청문회’ 등으로 임기 초반 질질 끌려다녔다. 그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3당 합당이란 인위적 정계개편을 감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대야소로 입법권력까지 손에 넣은 노태우 정권은 결국 성공했을까. 인간은 힘이 세지면 겁이 없어지는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게 3당 합당 이후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그는 퇴임 후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뒤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YS는 재임 중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한다. 만약 여소야대 구도가 계속돼 서슬퍼런 거대 야당이 존재했더라도 과연 그렇게 간 크게 청와대에서 검은돈을 받고 정책적 판단 미스로 외환위기를 초래했을까. 우리 정치권은 여소야대를 비정상적이라고 보지만,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을 보면 여소야대가 오히려 정상이다. 양원제인 미국은 상원과 하원이 동시에 여대야소인 경우가 극히 드물다. 때문에 대통령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야당을 설득하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거나 전화를 걸어 수시로 대화하고 설득한다. ‘바이든 정부’라고 하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미국 의회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퇴임 후 감옥에 가는 등 말로가 좋지 않은 건 청와대 터가 안 좋아서라기보다는 여대야소로 더 큰 권력을 휘두르려 하기 때문이다. 여대야소는 절대권력에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절대권력을 다른 말로 하면 독재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독단으로 파멸했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 같은 전략적 실수는 강력한 내부 견제세력이 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처칠(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존경한다는 인물)은 히틀러의 침공이 임박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미국으로부터 구축함을 들여오는 일까지 의회의 눈치를 봐야 했다. 처칠의 승리와 히틀러의 패배는 어쩌면 강력한 의회의 존재 유무와 직결된다. 윤 당선인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는 굉장히 자연스런 일이고 여소야대는 민주주의가 훨씬 성숙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합리적 국민의 생각과 같다. 문제는 정치를 오래한 조언 그룹이다. 윤 당선인이 임기 초 거대 야당의 반대에 부닥쳐 힘들어하면 인위적 정계개편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견제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대통령 본인의 파멸을 자초했다는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는 소수당이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일을 멋지게 해서 여론을 크게 얻으면(與大) 아무리 거대한 야당이라도 작아 보일 것(野小)이다. 그게 윤 당선인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여대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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