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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당선자 언론사장단 오찬연설(요지)

    ◎반대 위한 반대·양비양시론·선정주의 극복/언론도 이제 새로어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언론사 대표 여러분,여러분들은 역사를 기록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언론을 대표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파란만장한 40년 정치역정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때로는 격려와 지도를,때로는 충고와 질책을 아끼지 않고 오늘의 김영삼을 있게 해 주신 분들입니다. 이제 명실상부한 문민정치시대를 연 대통령당선자의 입장이 되어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니 만감이 교차되는 가슴벅찬 감회를 느낍니다. 다시한번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나라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각 언론사의 사시에 따라 선거에 관한 보도,논평,광고를 아무런 제한이나 간섭없이 다를 수 있었습니다.실질적으로 언론 매체들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하는 노선의 선택에서 자유로웠습니다.봇물처럼 터진 언론의 경쟁적 보도에 대해 다소 우려하는 소리나 시각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결과적으로 보아 공명선거를 위한 계도역과 감시역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선거가 남긴 후유증과 상처를 빨리 치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저 자신은 새 정부를 구성하는 대로 흐트러졌던 민심을 수습하고 국민화합을 다지는 일을 최우선과제로 다룰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의 언론매체들이 선거 후유증을 조속히 해소하고 사회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앞장서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신한국 창조」를 국민 여러분께 약속한 바 있습니다.저는 이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는 한국병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신한국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저는 국민의 격려와 채찍속에서 성장해온 정치인입니다.그래서 누구보다도 민의를 존중하는 길을 걸어왔고,앞으로도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욱이 민의의 대변자인 언론에 대해서는 올바른 민의가 원활히 수렴되고 전달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사회의 중심추인 언론계에 대해 몇가지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언론도이제는 더욱 새로워지고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권위주의 체제때의 일부 유산을 말끔히 털어낼 때가 되었습니다.반대를 위한 반대,양비론과 양시론,상업주의를 앞세운 무정견과 선정주의의 요소를 극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지금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대정신과 국민욕구에 보다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할 때입니다.시대를 선도하는 언론과 정통성 있는 국민의 정부가 공존하는 성숙된 관계로 발전되어야 합니다.새 정부가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격려와 협조가 있기를 당부드립니다. 두번째는 개혁에 따르는 「고통의 분담」이 국민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범국민적 과제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합니다.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씨를 뿌린 자와 추수하는 자가 달랐습니다.그래서,사회정의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저는 언론계가 「고통의 분담」이 국민적 합의가 될 수 있도록 그 어느 분야보다 앞장서 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번째는 우리 모두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지금 국민은 새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당장 지상낙원이 다가올 것처럼 성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도 앞을 다투어 개혁의 청사진을 소개하기에 바쁩니다. 과연,변화와 개혁은 하루아침에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까?그렇지 않을 것입니다.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요구됩니다.우리는 성급하게 서두르는 대신 착실하게 다져가는 슬기로움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우리 민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 우수합니다.어느 민족보다도 부지런합니다.그리고 현명합니다.우리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장래는 희망이 있습니다.신한국 창조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힘차게 시작할 것입니다. 언론사 대표 여러분,오늘의 이 연설이 새 정부와 언론인 여러분 사이를 잇는 이해와 우정의 다리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 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상)

    ◎인간면모/활달했던 성장기… 항상 긍정적/“역사·국민앞에 떳떳이/신의·약속 중시… 친화력도 겸비/유복한 가정 외아들… 돈에 초연 제14대 대통령당선자 「김영삼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보여주었다.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으로 출발,민주화 투쟁·반독재투쟁의 선봉에 항상 앞장서 있던 그는 이제 집권당총재를 거쳐 대통령당선자가 되었다.화려하면서도 영욕이 교차했던 그의 정치경력 때문에 국민들이 거는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김영삼당선자의 인생과 정치비전을 상·하로 나누어 재조명해 본다. 1992년 12월19일­. 긴세월 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실현됐다. 대통령은 정치인의 꿈이다.그는 그 꿈을 성취했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그가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진운이 결정된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도 이날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아침운동길에 나섰다.마산에 계신 부친 김홍조옹에게 안부전화도 잊지 않았다. 어제 아침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 상도동야산을 달리는 그의 머리속에는 ” 늘 기도/이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으리라.지난날의 어떠한 난관보다도 더 힘들고 막중한 대통령의 자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옹(82)은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여사(60년 작고)는 대가집 며느리답게 포용력이 크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영금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당선자는 여동생만 다섯인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그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되었다. 어머니 박여사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꿈많은 어린시절 그는 섬소년으로 바다를 벗삼아 자랐고 지금도 그는 바다만 보면 불행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포근했던 모성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민다고 한다. 그는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는 정의감이 강했으며 수영·축구등 운동에도 만능이었다고 동기생들은 전한다.통영중시절 김영삼학생이 한국인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동기생들 사이에 일화가 되고 있다. 또 어머니로부터 하숙비를 더타내 가난한 동급생을 돕는 따뜻한 면모도 가졌다고한다.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정치적 고비를 헤쳐온 그의 행동양식은 활달했던 학교생활 과정에서 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에게도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서울대학생시절 하숙집 이웃의 박모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했고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6·25전쟁으로 연락이 끊겼다.다시 서로의 소식을 알게됐을때는 이미 각각 가정을 가진 남이었고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뒤 만나자고 했을때 그는 고민끝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4세때인 51년 이화여대약학과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3녀를 두었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처음에는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결국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번 선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향에 갔었다』고 무뚝뚝하게 당시를 회고하지만 손여사는 『멋쟁이같고 의리와 뚝심이 있어보여 마음에 들었다』고 감격적인 젊은날을 회상한다. 그의 성격은 「한번 한다면 한다」는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다.대통령의 꿈도 중학시절부터 비롯됐다.「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하숙방에 써붙였던 목표는 이후 50여년간 그를 채찍질했고 그를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신의와 상대를 편하게하는 친화력이 그를 「정치거산」으로 또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적에 대해서는 서릿발같은 단호함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품을 찾아드는 인사는 기꺼이 품어주는 포용력도 그의 돋보이는 점이다.이같은 그의 신의와 포용력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충성심을 갖게한다고 한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좌동영 우형우」중 한사람이었던 고금동영정무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누가 될까봐 내색하지 않고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김당선자를 보필했다. 김당선자가 고금장관의 병상에서,묘소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지금도 남은 동지들의 가슴을 적시게 한다. 늘 웃는 동안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했을때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 만큼 「독기」도 지녔다. 그는 무서운 결단과 포용력을 아울러 갖춘 정치지도자이지만 부친에게 매일 아침문안 전화를 드리는 효자이며 또 손자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이다. 그는 항상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기도로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있다.
  • 고비마다 특유의 “정면돌파”/YS,대선출정서 승리까지

    ◎진솔한 비전 「신한국」 제시로 호응얻어/도덕·정직성 앞세운 깨끗한 유세 결실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대선개표결과 시종일관 선두주자로 나서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90년1월 3당합당이후 그가 헤쳐온 지난 4년동안의 정치역정을 되새겨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된뒤에도 그를 가로막은 장애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이 지금과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노태우대통령의 탈당에 이어 박태준의원의 최고위원직사퇴및 탈당,당내 일부의원들의 동요와 탈당사태등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포용력으로 설득 그럴때마다 그는 설득과 포용으로,혹은 특유의 정공법으로 난관을 극복해왔다.하루아침에 집권여당의 총재에서 다수당의 총재로 위치가 바뀌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대선대회전을 무리없이 치러냈다. 지난달 20일 대선공고후 그의 행동은 단연 돋보였다.「신한국」창조의 기치를 내걸고 온 몸으로 싸운 총 1백21회의 유세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안정속의 개혁」「강력한 정부구현」등의 정책의지가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충북 음성간이유세를 시작으로 지난 17일 경기 시흥유세까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느라 하루를 쉰 것을 빼고는 하루평균 4·6회의 강행군을 했다. 유세장마다 그는 자신의 도덕성과 정직을 걸고 실현가능한 공약과 한국병치유의 비전을 진솔하게 제시,유권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의 유세는 또 변화의 시대에 맞는 축제였다.서울 여의도대규모 유세를 취소한 것이나 지역감정유발및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 자제등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국민의 이해 호소 지난 12일 대구수성천변 유세에서 볼수 있듯이 청중의 호응 또한 대단했다. 이때 이미 대세는 판가름났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을 지지하는 걸림돌은 끊이지 않았다.대규모 금권선거와 「부산기관장모임」같은 돌발사태가 그것이다. 특히 선거 막판에 터진 부산기관장모임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취약지인 울산유세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핵심을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자신의 최대장점인 결단력을 살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정직하게 유감을 표시한뒤 국민의 올바른 이해를 당부했다. ○작은 약속도 소중 그의 솔직하고 담백함은 결국 득표결과로 나타났으며 특히 최대의 승부처였던 대구 경북지역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준 것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빼놓을수 없는 것은 그 강행군와중에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아침조깅과 부친에 대한 문안전화이다.「작은 약속」일지라도 결코 소홀함없이 대하는 그의 생활태도가 「우세」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3당통합 모험도 이같은 태도는 정계의 지각대변동인 3당합당과정과 그 이후 행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 정치사의 주요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를 던지며 「정면돌파」해왔던 김영삼후보에게도 3당통합은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제2야당총재에서 집권여당의 대표로 변신한 김후보에게는 3당합당은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정치생명을 건 위험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큼 혁명적인 「결단」을 감행한 김후보는 이후 당내외로부터 갖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우선 민정·민주·공화 3당의 통합으로 출범한 거여는 이후 김대중씨가 이끄는 평민당등 야권 잔류세력의 내각제반대투쟁등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렸다. ○내부 도전 등 극복 김대중총재가 주도한 「단식정국」과 「의원직 사퇴정국」등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다른 한편 김후보는 3당통합의 이면계약인 내각제 합의이행을 요구하는 민정·공화계 세력으로부터 간단없는 도전을 받았다. 이 와중에서 김후보는 내각제각서공개파동과 박철언의원과의 마찰,이로인한 「당무거부후 마산행」등 갖가지 화제를 뿌리면서 결국 국민여론의 힘을 빌려 대통령직선제를 고수하는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자신의 대통령후보 재도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김후보는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휴가정국」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총선전대통령후보결정」을 요구하면서 민정·공화계측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한동안 계속했다.○한때 분당위기도 이 무렵은 김후보와 민자당이 분당 일보직전까지 가는 최대의 위기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노태우대통령이 김후보와의 담판 이후 「선총선 후후보경선」의 결단을 내리고,김후보가 이를 흔쾌히 수용함으로써 당내분상황을 일단락시켰다. 이는 김후보측이 기존의 민주계 이외에 김윤환·김종호·김용태·김재순의원 등 민정계실세를 이른바 신민주계로 대거 포섭,후보경선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데다 민정계 내부에서도 김대중후보와 필적할만한 인물은 YS밖에 없다는 「대안부재론」이 점차 확산되었기에 가능했다.그는 지금 이기고 있다.
  • 연극인 오태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7)

    ◎“가공할 시공처리… 이시대의 연극천재”/변혁에의 집념,70년대 연극사 전환점 이뤄/역사적사건 재조명… 「탈고정관념」 방향제시/「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연극 “30년 외길인생”으로 이어져 연극 「약장수」를 본 사람이라면 북치고 장구치듯 한바탕 굿판을 이루던 재담과 사투리,종횡무진의 요설 사설등 우리 말이 갖는 무한한 리듬감과 현란했던 언어구사의 묘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곰 모시곰 달하 높이곰 돋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72년 초연된 이 연극은 75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씨가 공간사랑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연출가·작가의 연기」라는 차원에서 연극팬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오태석은 귀신이 넘나드는 경이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거리거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뒹굴어 만신창이가 된 처절한 몸부림은 연극이 말하려는 문제의식과 함께 관객을 숙연케하는 기원이 도사려있다. 몸짓은 물론 언어와 분장·무대미술과 의상에도 변혁·개혁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관객에 의외성 제시 라면박스나 신문지조각으로 꾸며진 무대는 차라리 눈부시고 싱그럽다.칡과 치자물들인 무명 저고리,백발노인 역할을 분장하지 않은 20대 연기자가 맨 얼굴로 등장하는등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무대에서의 파격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맛볼수 있게한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쓰고 연출한 「태」와 「한만선」 「사추기」 「물보라」 「춘풍의 처」등 일련의 작품은 7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전환기를 이룬 대표작으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뼈의 마디마디,어쩌면 동맥 정맥까지도 탄탄한 생명력이 살아 꿈틀거려야만 그는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그리고 그만의 정서와 상상력에 몰입하다보면 관객은 안개속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도 극의 한복판에 선채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이처럼 가공할 시공처리와 시각·청각·상징적 무대언어는 극의 「완성도」성취라는 명제아래 연극다운 품격과 연극만의 특징미를 진하게 각인시켜 주고있다. 그는 하오 1시에서 1시반사이 서초동 삼익상가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 나온다. 커다란 검은 숄더백에 검은 레닌모를 깊숙이 눌러쓴,새벽까지 마신 작취미성에도 불구하고 모자밑의 두 눈은 새파랗다 못해 광기가 번뜩인다. 연습도 마찬가지다. 연출자의 지시에따라 창조적 연습,되풀이 연습,연기자들이 준비해온 각자 연기를 지켜보다가 그는 마치 제각기 다루던 악기를 한데 모아 교향곡을 이루는것처럼 세시간 네시간 심오하게 숙고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파고든다. 그래도 성에 차지않으면 무대에 뛰어올라 요란한 손짓발짓으로 시범을 하고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거나 무대장치에 직접 못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 일쑤다.오태석의 멍든 이마는 자신의 것을 하기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한 예술가의 고독한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취해 있을땐 더욱이나 이 고독이 소스라쳐 그는 연극의 심연속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다.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것이 연극에 관한 토론일때는 이제까지의 취기를 삽시에 거두고 예의 오태석특유의 논리정연한 속변달변을 속사포처럼 전개해 나간다. 「주어진 여건과 틀속에서 그 여건과 틀에 맞춘 행위만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미하다」「연극이 예술인 바에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모든 연극표현술과 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의 모티프를 끌어내고 이를 현시점에 비쳐보는」탈역사로의 방향을 간단없이 제시해왔다고 할수있다. 87년이래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작해온 「부자유친」이 그 좋은 예의 하나다.「부자유친」은 한마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다. 이 연극은 뒤죽박죽 진행되어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왕은 흰두루마기,제자는 팬티바람,신하는 왕의 명령에 응석을 부리고 울던 사람이 파안대소,죽은자가 기지개를 켜는가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가 풀죽은 마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어느 한구석도 논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이 반논리와 탈논리가 지극히 논리적임을 관객들은 당장 깨닫게 된다. ○반논리속 논리 정립 아버지가 자식을 학살하는데 논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노리는 초점이다. 83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장화를 신은 고양이」때는 한국무용을 하는 국수호에게 안무를 맡기면서 연출자는 「한국무용이 아닌 발레」로 안무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한국무용가의 「발레」란 오태석만의 익살이자 풍자,어쩌면 냉소의 한 일면일 수가 있다. 이렇게 오태석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연극을 이끌어왔다.그러나 그의 연극의 뿌리는 일찍이 동랑으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문법이 뼈대를 이루고 한국적 몸짓으로 지칭되는 마당놀이의 연희가 질서정연하게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우리의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너털웃음,호연지기,유약한듯 하나 끈질긴 인내」등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일관된 한국인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연극 구석구석에 채우고 있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3살되던해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던 11살때 6·25를 만나 당시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친 오세권씨가 인민군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광경을 눈앞에서 겪은,이른바 6·25 비극으로 인한 피해자의 한사람이다.연극 「자전거」에서 유년시절의 이 잊지못할 광경을 또렷하게 묘사해 보이고 있다. 배재고에 다닐때까지는 편모슬하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자란 편이었다.그러나 「계(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 이라안여사(74)가 모았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산되고 대학입학과 함께 그는 뼈저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넘나들다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했다.그때도 물론 「연극」이라고는 구경도 해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그러나 61년 정부가 「연극인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한 「신인예술제」개최를 위한 희곡공모 소식을 듣고는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밤새도록 써서 제출한 희곡이 당선. 이 대목에서 「제목이 뭔데?」물으면 그는 영락없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영광!」하고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연세찬가」 작사 당선작품은 다른 단체들과 더불어 나란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갖게되어 있었다.그래서 여기저기 연극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 그가 최초로 발족한 「회로무대」다. 「영광」에 이어 다음해 「사중주」,또 다음해 공연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연극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약에 깊숙이 빠져든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공연날짜가 임박했으나 공연할 돈이 없던차에 마침 학교에서 동문·재학생들을 상대로한 「연세찬가」작사를 공모했다. 본래의 「연세찬가」는 백락준박사가 지은 장편소설(?)같은 것이어서 행사때마다 끝까지 부를수 없을만큼 길었다고 했다. 「형제자매」와 「사랑」만 잘 섞으면 될것같아 그는 신인예술제 공모때처럼 이번에도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나운영작곡의 /반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자유와 진리 심어온 모습…/은 바로 그가 지은 작사다. 그는 「연세찬가」작사 당선 상금으로 세번째 공연인 「조난(조란)」을 무사히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이선택한 최선의 길이며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알고 지난 30년을 오로지 연극에 전념했다.그리고 그의 연극에 대한 찬반양론의 시비속에서도 오태석의 위치는 우리 연극사에서 확고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그만의 독특한 오태석 언어와 색깔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끈질기게 실천해 보이는 것 등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90년 동숭동 대학로에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전용극장인 충돌Ⅰ,Ⅱ(흥사단지하)를 개관,목화레파토리 전용극장으로 쓰다가 연극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에 쫓기기 싫어 지난 봄부터 대관을 겸하면서 서초동 연습실로 컴백했다. 지난 20년동안 그를 한결같이 섬기는 조상호·정진각등 속칭 「오사단」초창기 멤버들이 목화의 단원이다.가족은 부인 최란선씨와 딸 시내(고2)아들 영택(중2). 그는 이따금 자신의 연극에 직접 출연,올해도 서울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에 가져간 자작·연출 「떠도는 혼」에서 상주로 찬조 출연하기도 했으며 87년부터는 해마다 도쿄 파르코 극장 초대공연을 가져 일본 연극계의 열렬한 찬사와 호응으로 목화의 고정팬을 확보하면서 일본속에 한국의 목소리와 몸짓을 심고 있다. 이시대의 연극천재·연극계 기인이란 호칭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의 입에서나 「오태석=연극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연보 ▲1940년10월 충남 서천에서 오세권씨(6·25때 납치)와 이라안여사의 3남1녀중 장남 ▲63년 「회로무대」창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회로무대」해체 ▲67년 한국일보 장막희곡 「화장한 남자」가작수상,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공모 「환절기」당선 ▲72년 동랑레파토리 극단 「Luv」로 연출데뷔 ▲84년 목화극단 창단 ▲80년 「초분」일본공연 ▲83년 「어미」일본공연 ▲85년 MBC창사기념 「메밀꽃 필무렵」(작,연출) ▲86년 MBC창사기념 「봄,봄」(작,연출) ▲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시나리오·연출 ▲87년 일본 도가국제페스티벌 「춘풍의 처」참가이래 해마다 초청공연,제11회 서울연극제 「부자유친」참가 ▲88년 서울예술단 「새불」(작,연출),일본 미쓰이 페스티벌,「태」참가 ▲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 「비닐하우스」(작,연출) ▲90년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돌ⅠⅡ개관 ▲92년 서울 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 「떠도는 혼」(작,연출),일본 마에바시(전교)시승격 1백주년 기념공연 「도라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쇠뚝이 놀이」「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이식수술」「약장수」「물보라」「사추기」「육교위의 유모차」「19 90년5월」「산채우」「자전거」「아프리카」「필부의 꿈」「나래섬」「운상각」「심청이는 왜 두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구야 껑충나지마라」「환절기」산문집 「북소리 울릴때」 서울연극제 대상,서울신문사제정 제2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창작상,한국연극예술상
  • 옐친의 행로(외언내언)

    러시아가 큰일났다.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을 둘러싼 보수개혁양파싸움이 사생결단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인민대표대회(의회)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지더니 마침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중도보수파지배의 의회는 의회대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맞서고 있다.이렇게 부딪치면 결과는 파국뿐이다. 현재로선 옐친과 개혁파가 궁지에 몰린 국면이다.발단은 급진개혁파 총리 가이다르에 대한 중도보수파 지배의회의 비준거부다.가이다르는 옐친개혁의 진두지휘관이다.그의 사임은 옐친개혁의 사임을 의미한다.그는 대폭적인 가격자유화와 긴축정책을 통한 생산회복과 인플레억제의 급진경제정책을 추진해왔으나 연2천%의 인플레와 20%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참담한 결과에 쫓기고 있다. 국민들도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힘을 얻은 것은 급진개혁반대의 시민동맹등 중도파와 그에 편승한 보수파다.맹목적 모방이 아니라 러시아토양에 맞는 정책개발을 주장한다.통제와 보호를 유지하는 단계적 자유화와 민영화를 주장하며 급진개혁실패책임의 총리와 각료대폭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타협의 여지가 없지도 않을 것 같은데 쉽지를 않은 모양이다.옐친은 본격개혁이 이제겨우 1년인데 당장의 성과요구는 우물에서 숭늉달라는 식의 성급한 비판이라고 반격한다.하면서도 풀토라닌부총리등 개혁파지도자들을 연이어 사임시키는등 타협의 안간힘을 다했으나 옐친개혁의 마지막 보루인 가이다르의 총리인준을 거부당하는 참패를 당한 것이다. 70여년의 사회주의체제를 하루아침에 자본주의체제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것이다.피와 땀과 눈물의 국민적 인내와 헌신과 협력이 있어도 시간이 필요한 개혁이다.그러나 국민은 오래참고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민주정치의 현실이다.자칫하면 러시아의 개혁이 큰 혼돈과 좌절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모른다.개혁혼돈의 동구에선 이미 구공산당 재집권등 복고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러시아는 어디로 갈것인가.세기말의 비상한 주목거리가 아닐수 없다.
  • CIS/민족분규 등 난제에 무력/출범 1년간의 공과

    ◎결속력 약해 공동통화도입 등 잇단 실패/국가이기주의 부작용 최소화는 큰 성과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독립국가연합(CIS)이 탄생한지 8일로 꼭 1년을 맞았다. 거대한 제국의 붕괴라는 전세계적 충격속에서 급조된 이 공동운명체의 지난 1년은 실로 파란의 연속이었다. 소연방체의 15개 공화국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개의 슬라브공동체로 출발했던 CIS는 회원국이 10개국으로 늘어 외형적으로는 소련에 버금가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각 회원국이 정치불안,경제난,민족분규라는 고질적 과제에 직면해있는데다 회원국들간에 작게는 개별국가간 분리관계의 구조설정에서부터 CIS의 장래 위상정립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등 취약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CIS가 현재 택하고있는 만장일치 의사결정구조는 공동체의 발전을 모색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족쇄로 작용하고있다.지난 10월의 공동통화제 도입협상이 회원국들간에 양분현상만 노출시킨채 흐지부지된 것이나 러시아·카자흐 주도의 공동경제도입정책이우크라이나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된 사례는 CIS 운용구조의 결함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따라서 CIS는 출범 1년을 맞도록 미래의 청사진을 가시화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본헌장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연유로 CIS는 지난 1년동안 빈발한 민족분규와 회원국들간 이기주의가 충돌하는 사태에 관해 결정적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무력감을 보여왔다.유가·흑해함대·크림반도·핵무기 등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립은 양국만의 문제로 방치되고 있다.또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타지크·몰도바 등에서 끊이지 않고있는 민족분규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으로 일관,결국 아제르바이잔이 CIS에 기대할게 없다고 중도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최대회원국인 러시아가 타국영토내의 자민족 보호를 위해 무력까지 사용할 뜻을 비침으로써 약소회원국들에 러시아공포감을 유발,가뜩이나 취약한 CIS의 결속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렇지만 CIS의 지난 1년과 장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우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방체의 붕괴로 유발된 국가이기주의의 부작용을 완충시키고 추스리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공적이 뒤따르고 있다.키르기스의 아스카르 아카예프대통령은 이와 관련,『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CIS라는 국가간 연결고리마저 없었다면 아마 전영토에 걸쳐 전면전을 치러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하나 중요한 사실은 CIS의 존재 자체가 하루아침에 공화국국민이 된 소수민족들에게 안전판역할을 함으로써 분쟁의 와중에서도 민족 재정착작업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교차하는 속에서 CIS는 성취한 것보다는 이룩하지 못한 것이,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이 더 많은 상태로 출범 두해째를 맞고있다. CIS는 현재 러시아를 중심으로 카자흐·키르기스·우즈베크·벨로루시등이 경제협력내용에 열심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한때 탐탁치 않은 태도를 보였던 우크라이나도 요즘들어 CIS가 경제개발의 유용한 지주라는 인식을 갖게돼 이 공동체의 향후진로에 대해 희망적인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의 코지레프외무장관은 CIS의장래에 대해 『수십년의 경험을 축적한 EC가 통합에 많은 장애를 안고있듯이 CIS도 위기와 갈등속에서 다양한 방법과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 국민의식과 전통문화/이창갑 건양대총장(굄돌)

    현대인들 중에는 우리의 「옛것」이라면 그것을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이라 단정하면서 이를 부정하려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그들은 우리 것을 배척하고 남의 것만을 신봉하면서 하루 속히 옛 잔재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옛것」이라하여 그것이 모두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옛것」은 옛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온 삶의 지혜인 동시에 현대인들이 이룩해야 할 새로운 문화의 바탕이기도 하다.특히 선인들이 창출한 전통문화는 선인들의 생활을 가장 편하고 행복하게 이끌어준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현대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초석이기도 하다.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문화란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듯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얻어진 삶의 지혜요,방법이다.민족나름대로의 그러한 문화가 곧 전통문화이다.그러므로 전통문화에는 반드시 그 문화가 방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이 있고 그것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오늘에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이 있는 것이다.원인없는 결과를 상상할 수 없듯이 원인없이 창조된 문화란 있을 수 없고 까닭없이 이어져 내려온 문화 또한 상상할 수 없다.다만 우리들의 학문이 그 문화가 발전하게 된 배경과 이어져 내려오게 된 원인을 미처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그래서 옛 것이 모두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며 심하면 미신처럼 비춰지고 있다 하겠다.좀더 깊이 성찰하고 구명하면 전통문화 속에는 현대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오묘한 진리와 슬기가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무조건 서구의 문화만을 추구하려는 것이 적지않은 현대인들의 공통된 심성이다.여기서 가치관의 혼미,주체성의 상실이 초래된다. 이러한 혼미와 상실은 결국 사회의 혼미,전통문화의 상실을 초래하였다.그 결과 신문의 사회면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질서의 파괴,윤리의 붕괴상을 전달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이러한 상황은 이제 거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느낌마저 든다. ▷필진이 바뀝니다◁ 12월∼93년1월의 필진이 김상복(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이창갑(건양대총장) 정복근(극작가) 최갑석(재향군인회 중앙이사) 최완수씨(간송미술관 연구실장)로 바뀝니다. 10∼11월에 집필해주신 김금지,김영수,김희수,차정미씨께 감사 드립니다.
  • 오늘 무역의 날… 상공부 통상정책 재조정(국정탐방)

    ◎무역환경과 과제/“그래도 수출뿐” 산업고도화에 전력/NAFTA·EC 등 장벽강화 대응/고부가제품 개발로 경쟁력 높이기 1977년 12월 22일 서울 장충체육관. 연말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던 당시 장충체육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3부요인,수출유공자및 수출업체 종업원등 7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출 1백억불」 달성을 기념하는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전국의 기업인과 근로자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백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민족중흥의 창업도정에 획기적 이정표가 될 자랑스러운 이 금자탑을…』 ○64년 첫 수출 1억불 최각규 당시 상공부장관의 경과보고에 이어 박대통령의 치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15년이 지난 지금,국정의 비중이 수출에 쏠렸던 그때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수출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식어있다. 「1백억불 수출」의 사령탑이었던 당시 상공장관이 현재 「1백억불 무역적자」시대의 경제팀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라는 사실이 묘한 대조를 이룰 만큼 그때와 지금은 여러가지로 변해 있다.개방파고와 경제블록화,경쟁력약화등 수출환경도 물론 좋지 않다. 이른바 개발연대인 60·70년대에는 수출이 밥줄이었다. 빈약한 기술과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싼 임금으로 물건을 많이 만들어 내다파는 길밖에 없었다. 때문에 수출은 지상명제였고 모든 경제정책의 잣대였다.수출제일주의,수출입국이라는 말도 그래서 탄생됐다. 64년 처음으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했고 7년만인 71년 10억달러,77년 1백억달러를 달성했다.86년엔 대망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88년에는 흑자가 1백41억달러에 달하는등 쾌속질주를 해왔다. 교역규모는 64년이후 연간 20%를 웃도는 성장을 지속,지난해 교역규모 1천5백억 달러로 세계 11위의 대국이 됐다.수출로는 64년 1억달러 달성이후 6백4배가 증가한 셈이고 수입은 2백2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무역의 날(11월 30일,87년이전에는 수출의 날)을 맞는 올해 수출업계의 분위기는 차분함을 넘어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각종규제 거세질듯 올 수출은 지난해보다 9·9% 증가한7백80억달러,수입은 8백25억달러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무역수지 적자는 통관기준으로 지난해 절반수준인 40억달러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무역수지가 다소 개선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나 주력시장인 미국과 일본 EC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매우 부진하다.대일역조개선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올 대일무역적자가 80억달러에 달하리라는 전망이 하나의 실증사례다.북방과 중남미시장이 그나마 버텨주고 있다. 그렇다고 내년이후 수출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세계교역의 틀을 새롭게 결정지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그동안의 교착상태에서 최근 미국과 EC의 의견접근으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UR이라는 새로운 다자규범은 국내시장의 개방확대를 요구하고 각종 정책금융성격의 보조금 지급도 못하게 하는등 수출전선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EC(유럽공동체)통합등 국지적 블록화추세와 함께 환경규제등 각종 규제도 강화돼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미국의 클린턴정부도 우리에게 공정한 무역을 요구하고 개방약속의 이행을 철저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높은 임금과 금융비용,인력수급의 불균형,사회간접자본시설의 부족등 국내적으로도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경쟁력강화가 하루아침에 이룩되기 어려운 과제이고 보면 구조개혁의 노력이 일층 강화돼야 하고 저부가가치 산업의 과감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견인역할 다시 해야 정부도 노동집약에서 기술·지식집약으로 산업정책을 고도화시키는 일에 정책비중을 높혀나간다는 방침이다. 기업가나 근로자 모두가 작더라도 우수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없이는 험난한 교역환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지난 26일 「무역의 날」 기념세미나에서 『불확실한 대내외여건아래 우리 수출이 다시금 경제성장의 견인차역할을 하기위한 길은 결국 수출경쟁력강화밖에 없다』고 한 한봉수 상공장관의 언급은 다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상역국의 발자취/상무국으로 출범,60∼70년대 최고 전성기/30대 신국환 현공진청장 등 32명 거쳐가 상공부 상역국. 경제기획원의 경제기획국이나 재무부 이재국만큼 비중있는 정책부서가 상공부의 상역국이다. 수출입국의 기치아래 한때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던 실무주체가 바로 상역국이고 개방화시대를 맞이한 요즘엔 나라의 무역정책을 개방과 자율에 맞춰나가는 조율사 역할을 하는 곳이 상역국이다. 수출제일주의를 외쳤던 시절의 영화는 많아 사라졌지만 아직도 무역정책의 총괄부서로서의 위상과 역할에 흔들림이 없다. 48년 상무국으로 출발한 상역국은 무역국으로 잠시 바뀌었다가 50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출범초기는 변변한 산업이 없었던 때였고 생필품과 외환부족으로 정상적인 무역이 어려워 상역업무의 대종이 정부보유 외환에 의한 수입과 원조수입이었다.때문에 수입할당작업이 업계 이해로 막바로 연결돼 상역국의 파워가 그만큼 막강했다. 수입할당을 받기위해 상역국 복도에 기다리고 있다가 외환배정이 확정되면 업자들이 환호성을 올리곤 했던 시절이 그때다. 60년대들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함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추진되면서 상역국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수출증대를 위한 진흥책이 잇따라 마련되고 각종 수출지원시책이 줄을 이었다. 수출이라면 정책지원에 아낌이 없었고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도 수출에 주어져 그만큼 각광받던 시절이다.수출업체가 전력부족으로 납기를 지키기 어려우면 상역국이 한전에 부탁해 전력을 추가로 공급해주고 수송수단이 모자라면 대한항공의 특별기를 내서 공수를 했었다. 그러나 시장개방화 추세속에 86년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수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고 이에 따라 상역국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약화됐다.그러다 최근 국제수지의 악화로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부서이기도 하다. 실무사령탑인 상역국장은 그동안 현 장석환 국장을 비롯,모두 33명이 거쳐갔다.장국장이 34대이나 박충훈 전 상공부장관이 3대와 4대 상역국장을 연임한 때문이다. 역대 상역국장의 평균재임기간은 1년 4개월.18대인 엄익호씨가 3개월로 가장 짧았고 30대 신국환 현 공업진흥청장이 4년 10개월로 제일 길었다.그러나 자리에 비해 승진운은 적었던 편. 상역국장 출신으로 장관에 오른 이는 박충훈씨(전상공장관)와 심의환씨(총무처장관)뿐이다.차관급까지 오른 인사는 박상운(12대·전상공차관) 김송환(13대·〃) 김우근(20대·〃) 김형배 중진공이사장 (25대·전공진청장) 홍성좌 무역협회 부회장(26대·전상공차관) 박홍식 산업기술정보원 원장(27대·전특허청장) 이동훈 수출보험공사사장(28대·전공진청장)등이 있다. 정민길 홍콩총영사(22대),유득환 상공부 제1차관보(31대) 김기배 민자당의원(29대),정해주 민자당 전문위원(33대)등도 상역국장 출신이다.재계에는 특허청 차장을 지낸 이은탁 한일방직사장(24대)이 상역국장을 지냈다.
  • 금권과 탈법 고발하고 처벌해야(사설)

    한강상공에 공명선거를 촉구하는 비행선이 떠서 이채롭다.선거전은 중반으로 접어든다.정부와 선관위는 끊임없이 공명선거를 이룩해 내자고 호소한다.정부는 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를 치름으로써 그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 나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에 차 있다. 그에 따라 각당에서도 거푸 공명하게 선거전에 임할 것을 다짐했고 또 실제로 이때까지의 양상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른바 세몰이 대형 군중집회를 삼가고 있는 것도 그중의 한 예이다.곧바로 표로 연결되는 것도 아닌 그같은 과시욕은 낭비의 측면 못지않게 지역감정을 내장한채 필요이상의 열기를 부채질했음이 사실이었다.삼가고 있는것은그에대한성찰의결과인듯이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40여년 선거사의 적폐가 하루아침에 말끔히 스러진다 할 수는 없다.이번 선거의 양상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옛그림자를 아주 지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금품수수가 있고 선심관광이 있으며 흑색 모략선전에 유언비어가 난무한다.폭력사태도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도 들린다. 금품이 난무하는 선거의 혼탁상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또한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 실현 불가능으로만 보이는 공약의 남발이다.그런 유형의 공약을 듣고 있노라면 이번 대선으로써 우리는 금방 지상낙원을 이루게 될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표만을 의식한 나머지 공약으로 끝날 것이 뻔한 공수표 떼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혜안으로써 가려내야 한다.어느 진영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슨 말을 하며 공명선거의 의지에 부합되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가,않는가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감언이나 자그만 이익에 현혹될 일이 아니다.금품의 난무와 온갖 탈법의 사례들은 보는대로 경고하고 고발하는 주권의식을 보여야 한다.그에 대한 처벌은 사직당국이 할 일이다.이제 유권자의 진실로 무서운 면을 정치인들에게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공명선거를 이룩해 내느냐,못하느냐는 결국 유권자에 달려 있다.타락선거를 본원적으로 봉쇄하는 길 또한 유권자가 냉엄한 표로써 보여주는 방법외에 달리 없다.금품도,교언도,흑색선전도,지역감정 부추김도 소용없는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정당한 선거전의 진영에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
  • “금세기 통일”거대한국 멀잖다/해외서 본 한국의 내일/특파원 좌담

    ◎냉전종식·남북대화 진전 등 여건성숙/민족동질성 회복·비용마련이 급선무/경제전쟁에 대비,전력위외교 펼칠때/내부단결 없인 아태 엑스트러로 전락 밖에서 본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어디쯤 자리잡고 있는가.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될 것이며 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서울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해외 각 특파원들을 연결,한국이 바깥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지상좌담을 마련했다. ▲뉴욕 임춘웅특파원=밖에서 본 한국은 때론 아주 작고 때론 아주 큰 양면성을 갖습니다.작은 땅덩어리,부정적 정치행태와 불의등이 부각될때 한국은 아주 작게 보입니다.그러나 그동안 이룩한 경제적인 부와 평화적인 민주화의 성취등이 만든 이미지는 매우 큰 한국으로 나타나지요.전반적으론 커다란 한국쪽이 훨씬더 부각돼 있습니다. ▲워싱턴 이경형특파원=최근엔 한국경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많습니다.생산성 향상이 따르지 않은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세계적으로 무역전쟁의 조짐이 보이는데 우리의 대응체제는 잘 마련되는지 걱정입니다.밖에서 본 한국은 국내정치에만 몰두,국민적 에너지를 남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우물안 개구리」처럼 안의 문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민적 에너지를 대외지향적으로 쏟아야 첨예화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습니다. ▲임=외국에 비친 커다란 한국에 비해 한국인들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옷을 입고 있다는 인상입니다.경제는 국제화됐는데 의식구조는 아직도 전근대적입니다.국제화시대에 맞는 국민교육이 필요합니다.편협한 애국심으로는 국제화시대에 적응할수 없습니다. ▲홍콩 최두삼특파원=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확실히 한단계 올라섰습니다.그전까진 경제는 좋아졌지만 군부독재의 오명을 벗지 못했죠.그러나 올림픽과 그에 이은 민주화조치들로 한국은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선진국들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는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경계합니다.최근 「한국경제는 지렁이로 변하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아직 많은 후진국들이 한국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큰 한국」 이미지 부각 ▲파리 박강문특파원=한국문제를 자주 다루지 않던 유럽의 언론들에 최근 한국에 대한 보도가 상당히 늘고 있습니다.한국문화의 소개도 많아졌습니다.반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찬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이는 한국의 경제가 퇴보했기 때문일수도 있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한국문화의 소개가 활발해진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한국이 문화국이며 한국인이 문화국민임을 알리는 일은 중요합니다.올림픽메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문화국으로 생각해주지는 않습니다. ▲도쿄 이창순특파원=일본정치인들은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한국을 주요 파트너라고 말합니다.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큼 일본도 한국의 존재를 중시하지는 않는 것같습니다.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자 일본도 한때 한국을 경계했지만 민주화과정에서 사회가 불안해지고 경제가 악화되자 어느덧 경계심은 사라졌습니다.일본은 한국경제에 대해 낮은 노동생산성,소극적 기술개발투자등으로 국제경쟁력에서 뒤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적극적 기술개발투자,임금인상에 비례한 생산성의 향상,장기적 기업전략 등이 필요합니다. ▲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이곳에서는 한국대사관이 러시아내 3대공관에 든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러시아외교에서 한국의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죠.한국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은 한마디로 단시일에 경제성장을 이룩한 활기찬 나라입니다.그래서 자기들의 풍부한 천연자원,훌륭한 과학기술을 경제부흥에 활용할 방법을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베를린 유세진특파원=독일에선 신나치주의의 대두와 극우분자의 테러,유럽통합등이 주관심사고 한국은 멀리 밀려나 있습니다.우리의 국력이 아직도 약하다는 반증이겠지요.그러나 한국이 국제무대의 중요세력으로 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안고 있다는데는 대부분 동의합니다.특히 한반도의 통일에 대비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같습니다.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아직 독일보다 한단계 아래지만 그 격차가 계속 줄고 있다는 판단인 것같습니다. ○성장의 잠재력 충분 ▲임=통일이 되면 한국은 인구 7천만의 지역강대국이 됩니다.세계은행 통계는 통일한국을 세계 12위의 강대국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경=냉전종식으로 남북한의 통일여건은 훨씬 유리해졌다고 할수 있습니다.북한내부에서 강온파간의 갈등등 다소 진통은 있겠지만 북한이 현재 추구할수 있는 선택의 폭은 매우 좁기 때문입니다.그렇더라도 남북대화를 성실하게 계속하고 민족공동체적 통합요소와 동질성의 확산작업 등은 꾸준히 펴나가야만 할 것입니다.북한체제의 급속한 붕괴는 한반도의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한국이 갑작스레 안게될 통일비용,북한주민의 남한으로의 대이동등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최=북한은 최근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달러화의 거래중단 소식이나 일·북한 수교협상에서 거의 좌절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점,그리고 중국과의 교류마저 제한하고 있는 사실등은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합니다.지금 북한이 겪고 있는 극도의 고립감과 좌절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게 주변국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북한이 동구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진다해도 당분간은 군부의 집권시대가 올것이라는 국제정치학자들의 견해에도 유의해야 할것입니다. ▲박=한반도통일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낙관적입니다.소르망 같은 이는 한국통일이 예상보다 일찍 갑작스레 올수 있으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는 한국이 다시 러시아·중국·일본 3국의 세력다툼장이 되는 어려운 환경에 놓일 것이라고도 말합니다.내부단결과 실력양성이 없으면 인접국들에게 괴로움을 당한다는 거죠. ▲이창=국제정세의 급변속에 한반도통일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에 매우 신중합니다.일본은 겉으로는 한반도의 통일을 환영한다면서도 내심으로는 이를 경계합니다.한반도에 「두개의 한국」을 바라는 일본은 통?逑畸뮌?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기=냉전종식의 장본인들이라 그런지이곳에선 한반도의 통일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대결의 한 시대가 이미 마감됐는데 이념대결이 낳은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될 명분도 사라졌다는 논리죠.다만 통일이 구체적으로 언제,어떤 식으로 이뤄지느냐는데는 이견이 있습니다.스탈린체제를 겪어본 러시아인들로서는 지금 북한체제가 얼마나 경직됐는가를 잘알기 때문이죠.어떤 식으로 통일이 되든 남쪽이 부담할 통일비용은 엄청날 것이란 입장입니다. ▲유=독일의 경우를 보면 통일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최소화 하느냐에 대해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통일은 또하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혼란에 빠지겠죠.아직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남북한과 달리 오랜 교류를 해온 독일이 겪고 있는 후유증들을 보면 우리의 통일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돼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임=우리는 통일에 대비한 체제의 연구를 서둘러야 할것으로 생각됩니다.흡수통일이 되면 간단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사회내부구조가 불균형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울수 밖에 없지요.통일에 대비한 제3체제 연구가 필요하고 그에 대비해 우리 내부의 조정작업이 서둘러 이뤄져야만 합니다. ▲이경=최근 한반도주변의 세력판도는 중국의 꾸준한 경제성장과 군사강국으로의 급부상,일본의 경제대국에 발맞춘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발언권강화가 두드러집니다.지금까지 한반도주변의 세력균형은 미·소가 힘을 양분해 왔으나 이제 미국·러시아·중국·일본등 주변4강의 힘이 균점상태로 바뀌고 있습니다.이같은 과정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수 있는 것이 동북아에 주둔하는 미군의 존재입니다.그러나 클린턴정권이 출범하면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균형자의 역할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극동 미·러·중·일 균점 ▲최=클린턴의 미대통령 당선으로 세계는 무력전쟁에서 벗어나 경제전쟁시대로 접어든 것같습니다.냉전이후 시대가 「경제전쟁」이란 얼굴로 갑작스레 우리앞에 나타났다고나 할까요.중국은 지난 14차 당대회에서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선언했습니다.이 역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들여와서라도 세계의 경제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과거 잠자는 호랑이로 불리던 중국은 이제 완전히 잠을 깨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주도할 태세입니다.21세기 아·태시대는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인(대만·홍콩·싱가포르 및 동남아 화교들 포함)의 상술이 주도역할을 할것으로 생각합니다.이 사이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그렇지 않고선 태평양시대의 주역이나 조역은 커녕 엑스트라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이기=아태지역이 군사대결의 장에서 협력의 장으로 바뀌었다는데는 이견이 없습니다.러시아로선 경제사정,국내정치 여건등으로 이 지역에서 미국이나 여타국들과 무력경쟁을 벌일 입장이 못됩니다.아시아에서의 러시아군사력은 계속 감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최근 몇년동안은 우리 외교사의 최대격변기라 할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에 큰 지각변동이 일었습니다.2차대전후 유지돼온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로 옮기는데 따른 현상이겠죠.이에따라 우리 외교도 변해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과거 미국에 주어졌던큰 비중이 이제 유럽을 포함한 세계주요국에 고루 분산돼야 할것입니다.특히 경제이익을 앞세우는 외교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최=한국하면 흔히 화염병과 최루탄을 교환하는 「가투장면」을 떠올리는게 지난해까지의 일이었습니다.TV만 틀면 이 가투장면이 단골메뉴로 나왔기 때문이죠.그러나 올해들어 이같은 장면이 TV에서 거의 사라져 교민들도 크게 안도하고 있습니다. ○경제외교에 최우선 ▲박=프랑스언론들이 한국을 폄하할 때 전에는 독재·인권문제·남북대결·잦은 시위 등을 도마위에 올렸는데 요즘은 향락과 소비·교통지옥·치안상태·범죄 등을 메뉴로 하고 있습니다.한국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죠.한국사회에는 새롭고 맑은 바람이 불어야만 하겠습니다. ▲이창=한국에는 권위주의·민주화 등 시대상황을 대변했던 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일본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착됐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아직 지역감정·빈부격차 등 사회적 불안요인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것같습니다. ▲유=지난 몇년동안 우리사회의 변화는 너무 급격한 것 같습니다.부지런하고 근면한 한국,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한국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힘든 일은 기피하는 한국,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한국 등의 소식에 접하면 한국이 지금 앓고 있는 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구미에서 받아들일 사상과 관습은 받아들이되 우리가 이어내려온 전통적 가치는 그 나름대로 지키는 방향으로 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 제소 한인 강제이주/구소 극비문서 발견

    【모스크바 연합】 지난 37년 러시아극동 연해주일대의 18만 한인들이 하루아침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할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소련정부의 극비결정문들이 발견됐다. 연합통신이 2일 입수한 관련문서들은 소련 인민위원 소비에트(내각)가 결정한 1937년 9월5일자 「카자흐와 우즈베크공화국으로 이주하는 한인들의 회계절차」,9월8일자의 「한인이주에 대한 결정」및 10월1일자의 「(이주와 관련한)군용취사설비와 화물열차징발」등으로 당시 인민위원 소비에트의장인 몰로토프와 소비에트 총무 페루니체프가 공동서명한 것이다.
  • 수련활동 지휘탑 이진삼 체청부장관(인터뷰)

    ◎“청소년유해환경 추방계획 준비중”/가정·학교·사회 전인교육 3각공조를 『건전한 청소년을 육성하는 것은 국가장래와 직결되는 만큼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진삼체육청소년부장관은 『청소년육성은 그 중요성에 따라 지금까지의 지식주입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덕성과 체력을 겸비한 전인화교육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균형있는 청소년육성을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어느 한쪽이 기울어짐이 없이 평행선을 유지해야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원천적으로 유해한 요인이 도처에 상존해 있고 이와함께 문제청소년들의 비행도 흉포화해가는 추세라서 우려의 소리가 높습니다. ▲그간의 청소년정책이 일부 문제청소년위주의 단기적,규제적으로 추진됐던게 사실입니다. 또 청소년의 도덕성과 가치관의 문제도 우리사회의 병리및 의식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 91년 체육부를 체육청소년부로 개칭,산하에 청소년조정실을 두어 모든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보람있는 삶을 누릴수 있도록 하고 스스로 자질을 계발할 수 있는 수련활동등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토록 했습니다. 지난해 「청소년육성 10개년계획」을 완성,올해가 시행의 원년이 됩니다. ­청소년육성계획의 첫해인 올해의 성과를 꼽는다면. ▲청소년육성정책의 효과는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올해 「청소년의 달」인 5월을 중심으로 기념행사·소년체전·건전문화행사·청소년 선도활동등 8개 분야에 걸쳐 8백20개의 크고작은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결과 지난해보다 약 2%늘어난 2백31만명의 청소년이 각종행사에 참여,심신을 단련하며 자아개발을 꾀했습니다. ­청소년의 육성책은 비록 일부지만 비행·문제청소년의 선도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청소년육성 10개년계획을 입안할 당시부터 이 부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난해보다는 비행청소년의 수가 줄었습니다만 이들 청소년의 선도및 교화를 위해 내년에 6개지역에 청소년쉼터를 설치,휴식공간을 마련해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사회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청소년 약물남용예방 교육지도서 1만부와 포스터 50만장을 제작,학교등에 배포해 점차적으로 개선토록할 작정입니다. 도시영세민 청소년을 위해 현재 1백40개소의 야간공부방을 2백개소로 늘리고 무직청소년 1천1백여명은 사설학원에 위탁,기능훈련을 실시해 사회복귀의 적응능력을 길러줄 계획입니다. 이장관은 금명간 관계부처와 협의,청소년 유해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해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청소년육성은 정부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정 학교 사회등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 박태준과 아이아코카/김호준 본사 논설위원(굄돌)

    『나는 임자를 잘 알아.이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야.아무 소리말고 맡아….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에 미쳐…』 지난3일 포철의 박태준회장이 추강생산 2천만t 체제를 완공한후 박정희대통령 묘소를 찾아가 올린 보고문은 후기산업사회에 신화를 창조한 한 철인의 깊은 감회를 담고 있다.그는 『용광로를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회고하면서 『그러나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워질뿐』이라며 쇳물처럼 뜨겁고 진한 눈물을 떨구었다. 그로부터 이틀후에 나온 그의 포철회장직 전격사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자리에 연연하는 공인들의 추태가 항다반사여서 그런지 그의 결단은 신선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전격사퇴의 또다른 측면을 드러냈다.하루아침에 조타수를 잃은 세계제3위의 제철소 포철과 한국철강업계가 불안과 위기감에 휩싸인 것이다.포철인들은 사의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포철과의 철강협력이 예정대로 추진될 것인지에 대한 문의가 국내외에서 잇따랐다. 중국의 등소평이 한국에 철강부문 협조를 요청한것은 거의 박회장 개인에 대한 신뢰때문이었다.한일양국이 제3국에대한 철강수출의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있는것도 박회장과 신일본제철 경영진간과의 깊은 신뢰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박회장이 남긴 공덕은 하루 아침에 메울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도산직전의 크라이슬러 자동차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미국의 슈퍼스타 리 아이아코카의 처신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한다.그는 지금 46년간의 자동차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크라이슬러 본사에서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있다.내년 설날이면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가는 아이아코카는 지난 4월 크라이슬러 회장직 사임을 전격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그러나 그건 즉각 사퇴가 아니라 7개월후의 퇴진을 예고한 것이었다.그는 지금 후임으로 내정된 사람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며 퇴임후 크라이슬러를위해 자신이 할수있는 일을 찾고있다. 박회장은 사임발표에 앞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놓고 장고했다.아이아코카와 같은 처신의 묘미를 모를리 없었거만 굳이 전격퇴진을 택한 사연은 무었이었을까?
  • 좋은 「우리서울」 만들기(사설)

    서울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서울답게 하는 것인가.이상배서울시장의 시정구상에 의하면,『이제는 대형사업보다는 시민생활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가기 위하여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중점을 두고 문화사업에 주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시장의 구상방향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공룡처럼 거대하면서 교통은 혼잡하고 도시기반시설은 빈약하며 질서는 혼란된 서울은,도시로서의 개성이나 풍정도 살만한 것이 별로 없다.그러면서 인구는 과밀하여 도시 환경이 지닌 모든 문제가 집중되어 있다.그러므로 이런 서울을 하루아침에 살기좋게 만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그렇다고 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계속 팽창일변도로 무계획하게 방치해 간다면 서울의 미래는 매우 암담해질 것이다.이런 시점에 서울시 행정의 수장인 시장이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하고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우선 인식이 바르게 잡혀야 실천전략이 바르게 세워질수 있고 바르게 세워진 정책위에서만 효과적인 정책의 수행도 가능해진다.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시정해가는 일이다.교통난을 해소하고 공해문제를 최소화하여 시민에게 가능한한 쾌적한 삶의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개발일변도의 정책을 지양하고 수요관리정책을 펴가겠다는 서울시의 의지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절한 대응방법이라고 할 수있다.그러나 이런 시정방향은,1천만 시민을 가진 매머드 서울의 시장으로서는 고달프기만 할 뿐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다.눈에 번쩍 뜨일만한 새로운 개발을 해야 공적도 눈에 띄게 빛날 수 있다.그러므로 새 시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새시정계획에서 우리의 관심을 각별히 부르는 것은 문화사업에의 의욕이다.「정도6백년」기념사업을 계기로 서울의 전반적인 수준을 한 단계 높인다는 구상에서 출발한 문화사업의 목표에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한다.오늘의 서울은 삭막하기가 사막과 방불하다.국적불명의 건축물이 즐비하고 문화시설은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빈곤하다.문화적 향기를 거의 발산못하는 이 메마르고 몰개성한 도시가 우리의 수도라는 사실은 우리를 늘 부끄럽게 한다. 유서깊은 고도 서울이 이토록 볼품없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 반성할 일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분별없이 사이비한 문화의 기능이나 빛깔을 덧칠해서 그나마 남아있는 서울의 문화적인 소자를 말살하는 일도 곤란하다.중요한 것은 문화의 겉껍질인 하드웨어가 아니라 도로표지 하나라도 문화적인 관심이 참여한 정책이 수행되는 성실한 자세다. 그러자면 시장이나 시공무원만으로는 효율적인 결과를 거두기가 어렵다.어떤 형태로든 시민의 참여도 늘려서 사랑하는 마음이 정성이 되어 기여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다. 문화시설도 시민과 동떨어진 덩그런 집이 아니라 주민이 사는 주거 이웃에 문화가 가까이 찾아가는 정책이 되게 해야 한다.구단위의 종합문화 시설하나만 제대로 운영되어도 시민의 문화적 갈증은 상당히 해갈될 수가 있다.이런 모든 일이 정책을 수행하는 의지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시정 계획의 주역들에게 기대하는바가 크다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
  • 주요당직 두루거친 5선의원/정석모 민자당중앙위의장(얼굴)

    정통 내무관료출신의 5선 의원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중후해 아랫사람들로부터 「대모」로 불린다. 부산시경국장과 강원·충남도지사및 내무차관을 지낸뒤 79년 10대때 정계에 입문했으며 81년 창당발기인으로 민정당에 참여,정책위의장 사무총장등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다. 85년 내무장관 재직당시 재산세파동이 일어 담당국장이 사표를 제출했으나 『수십년간 경력을 쌓은 공무원을 하루아침에 자를 수는 없다』며 반려하고 자신이 장관직 사표를 제출한 일화는 내무관료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14대 총선에는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하고 전국구로 당선됐다. 취미는 독서.장서가 1만5천권이나 된다. 부인 권현진씨(47)와 2남 1녀. ▲충남 공주출신·63세 ▲서울대 법대졸 ▲강원·충남도지사 ▲내무장관 ▲10·11·12·13·14대 의원
  • 외언내언

    「한마리의 요괴가 유럽을 배회하고있다.공산주의란 이름의 요괴다」.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최초의 과학적사회주의강령문서인 공산당선언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이다.1848년 영국 런던에서의 일이다.이 요괴가 1917년 마침내 정착한 곳이 구러시아였다.공산요괴덕분에 소련으로 변했다가 지금은 다시 새러시아로 돌아간 곳이다.◆구러시아를 근거지로 동구를 삼키고 중국을 지배했으며 한반도도 절반을 장악하는 위세를 떨치던 공산요괴가 자기모순에 빠져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린 자리에 혼돈이 끊이질 않고있다.공산요괴의 빈자리에 나타난 민족주의란 이름의 새요괴가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공산요괴가 무리하게 만들어낸 공산대국 소련을 하루아침에 15개 독립공화국으로 붕괴시켜버린 민족주의요괴때문에 지금 당장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고있는 나라는 역시 공산요괴의 강압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의 나라 유고.민족주의가 민족을 청산하는 유혈의 난센스까지 벌어지고있다.비슷한 운명의 체코는 양분되고.자연발생의 민족주의가 인공적인 공산요괴의 무이를 압도하고있는 결과다.◆하나 민족주의가 반드시 분열만 가져오는것은 아니다.공산요괴에 의한 무이·모순의 이합집산을 강요당했던 구공산권에서는 자연스런 원형복귀의 분열을 야기시키고있지만 예멘이나 독일의 경우엔 통일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될것이다.공산요괴에 의한 동일민족의 분열과 분단이 무리와 모순이었기 때문에 이 경우는 오히려 통일과 단합이 자연의 순리라 할수있을 것이다.◆우리는 여기서도 공산요괴가 마지막으로 버티고있는 한반도를 생각하게된다.한반도의 분열과 분단도 따지고보면 공산요괴의 이데올로기적 탐욕에 의한 자연거부의 무이에서 비롯된것.공산요괴만 떠나준다면 구공산권과는 다른 민족주의자연회복의 독일·예멘식통일이 한반도에서도 간단하지않을까 생각해본다.
  • 안개속의 크렘린 정정/소련쿠데타1년:하

    ◎끝없는 정정·불화… 개혁 “좌초위기”/민주세력 「권력나눠갖기」에 골몰/친옐친 의회마저 사사건건 시비/보수세력 급격 확산… “옐친축출 기도” 소문도 목숨을 건 쿠데타세력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러시아민주세력들은 지난 1년 마치 「전리품을 나누듯」권력을 나누어가졌다. 일개 연방공화국의 고위관리에 불과했던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소련 실질승계자가 된 대러시아를 다스리게 됐다. 하지만 구체제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탓인지 승리의 환희는 어느 순간 권력다툼과 개혁노선을 둘러싼 이견으로 바뀌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초기 고르바초프와 함께 개혁청사진을 짰던 알렉산더 야코블레프,바딤 바카틴,그리고리 야블린스키등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 옐친을 비판하고 있고 대신 겐나디 부르불리스장관,예고르 가이다르총리대행등 신진세대들이 제1참모로 등장했다. 유리 페트로프 비서실장,빅토르 일류신 수석보좌관등 옐친의 지방당 근무시절 교분을 맺은 소위 「스베르들로프 마피아」가 측근참모로 권력의 핵을 이루게 됐다.지난 5월 세르게이 샤흐라이 부총리가 이들과의 알력으로 물러나는 등 이들의 위세는 계속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쿠데타 이전 옐친의 최대 정치적 기반이던 러시아의회가 지금은 그를 비판하는 주무대가 됐고 의회와의 이견 때문에 새헌법조차 아직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루슬란 하스블라토프 러시아최고회의의장은 의회내 최대파벌인 「러시아연합」을 이끌고 옐친의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토지사유화·기업파산법 등 일련이 개혁입법이 모두 저지되고 일부는 의회해산과 총선실시를 요구한다. 알렉산더 루츠코이부통령과의 불화도 심각하다.루츠코이부통령은 보수적 민족주의자·군부등의 지지를 바탕으로 옐친이후를 겨냥,세력을 모으고 있다.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금년초 결성된 「시민동맹」.군산복합체 대표인 아르카디 볼스키,루츠코이부통령,니콜라이 트라프킨 러시아민주당당수등이 함께 이끄는 이 단체는 보수지식인·노조지도자·군장교·고위관료등이 망라된 쿠데타 이후 최대 반개혁 단체이다. 이들은 옐친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고 있으나 『파괴적 변화의 시대는 끝났다』며 가이다르의 개혁정책을 집중공격하고 있다. 이와함께 제2의 쿠데타경고가 끊이지 않고있다.코지레프외무장관은 보수세력이 군부·내무부·안전부를 장악하고 쿠데타를 기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샤흐라이는 『강경파들이 금년 가을이나 겨울중 옐친축출을 기도할 것이며 루츠코이부통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의 인사에서는 옐친대통령의 보수선회 징후가 눈에 두드러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 개각 때 가이다르 반대파인 군수산업 대표 3명이 경제담당 부총리직에 기용됐다. 고르바초프가 한때 만들었던 막강한 권한의 안보협의회가 다시 구성된 것도 이런 징후를 뒷받침한다.대통령·부통령·가이다르총리대행을 포함,5명으로 구성된 이 기구는 국정 전분야를 감독할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수 있게 돼 구정치국이 부활했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일부에서는 독자적인 지지정당이 없는 옐친이 결국 개혁템포를 늦춰 보수세력의 협조를 구해 권력안정을 꾀하기로 방향을 바꾼것으로 보고있다. 쿠데타 1년을 맞는 크렘린정국은 쿠데타가 일어나기 1년 전과 너무도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70년 공산체제 붕괴… 냉전시대 종식(소련쿠데타1년:상)

    ◎핵·환경문제 새로운 관심 불러/동북아등 안보개선에 큰 영향/민족분쟁 야기·이라크등 모험주의 고개 실패로 끝난 소련쿠데타가 오는 19일로 발생 1년을 맞는다. 1년전 8월 19일.휴일을 보낸 모스크바시민들이 곤한 새벽잠에 빠져있는 사이 쿠데타 병력이 시내 곳곳에 투입됐고 시민들은 아침뉴스의 「8인 국가비상위원회」 발표를 통해 쿠데타 발생사실을 접했다. 그리고 21일 하오 쿠데타 주모자들이 두손을 들기까지 전세계는 숨을 죽이고 「세계를 뒤흔든 모스크바의 3일」을 지켜봤다. 쿠데타 거사일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소련방내 15개공화국들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시킨 소위 신연방조약을 체결키로 한 바로 전날이었다.군부·공산당의 보수파 지도자들로 구성된 쿠데타주모자들은 이 신연방조약이 사실상 소련방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연방수호를 거사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쿠데타는 결과적으로 소련방을 붕괴시킨 기폭제가 됐고 그뒤 인류는 소련의 몰락과 국가연합(CIS)체제의 등장 그리고 70여년간 세계의 절반을 지배해온 공산주의라는 한 이념의 퇴장이라는 전대미문의 대변혁을 목도하게 됐다. 「당=국가」라는 등식아래 모든 국가조직을 장악했던 공산당이 하루아침에 불법화됐다.민주세력을 이끌고 쿠데타세력을 몰아낸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곧바로 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했고 당소유자산은 국가에 몰수됐다. 소련사회는 공산당 일당독재로 표현되던 전체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급속도로 민주화를 이루어나갔다.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KGB(국가보안위원회)가 사라졌고 언론은 자유화됐다.각종이념을 표방한 1백여개의 정당이 나타났고 러시아의회내에도 여러개의 파벌이 등장했다. 소련의 몰락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동서냉전체제의 실질적인 종식일 것이다.핵억지라는 명분아래 인류공멸을 담보로 펼쳐졌던 동서간의 무한 무력경쟁이 멎고 세계는 핵무기 감축에 지혜를 모으게 됐다.지난 1년 사이 미국과 러시아 양측의 거듭된 핵무기감축 발표는 인류로 하여금 요원하게만 여겨지던「핵없는 세계(제로 옵션)」의 실현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가까이는 아시아의 안보환경개선에도 큰영향을 미쳤다.중국·베트남등 아시아 공산국들이 폐쇄성을 벗고 개방색채를 뚜렷이 하고있고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현안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동북아지역의 긴장도 눈에 띄게 완화된 게 사실이다. 내달 옐친대통령의 일본·한국순방에서 러시아·일본의 평화조약체결과 한국·러시아간 기본조약이 체결되면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또한차례 개선의 큰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냉전의 종식은 또한 환경·기아·재해 등 인류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전면으로 이끌어냈다.냉전의 대립아래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던 유엔의 역할에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국지분쟁,지역패권주의의 등장에 대한 공동대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구시대 적국들간에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여러 긍정적인 면과 달리 소련의 해체 이후 새로 발생한 부정적인 사태 또한 간단치는 않다. 가장 비극적인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민족간 유혈분규.공산주의시대의 무리한 인종정책이 남긴 유산이긴 하지만 그루지야·몰도바등 구소련 남부지역과 구유고연방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간 피의 살육전은 차라리 이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굴레가 유지됐더라면 하는 소리마저 나오게 했다. 이라크·리비아등 지역패권을 도모하는 일부국가들의 모험주의도 미소 양극체제가 무너짐으로써 생긴 일종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모스크바에도 쿠데타분쇄 직후와 같은 고무된 분위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맨몸으로 쿠데타군에 맞섰던 모스크바시민들은 금새 새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있었다.하지만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사정으로 시민들은 그동안 달라진 게 무엇이냐는 회의에 빠지고 있다. 옐친정부는 시장경제화를 목표로 의욕적인 개혁정책을 계속 발표했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생활사정은 계속 악화되고만 있다.민심은 점차 흉흉해지고 차라리 옛날이 더 좋았다는 소리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국가권위는 떨어질대로 떨어져 범죄율의 엄청난 증가를 가져왔다.이로 인해많은 시민들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의식의 혼란상태에 빠져있다는 조사들이 보도되고 있다.금년들어서는 잔존 보수세력들에 의해 제2의 쿠데타가 준비중이라는 경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각종 여론조사에서 옐친의 인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고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가이다르내각에 대한 원성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래서 쿠데타 이후 러시아가 직면한 새국가 건설의 과제는 어쩌면 1917년 볼셰비키혁명에 비견되는 힘겨운 「제2의 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전국토 묘지화 막자” 긴급처방/불법·호화분묘 대대적 정비의 배경

    ◎국민위화감 해소 차원서 사법조치 불사/국토효율적 이용 이끌 새「장묘문화」 절실 정부가 호화·불법분묘에 대한 대대적 정비작업에 나선 것은 자연훼손과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는 고질적 장묘문화에 대한 일종의 「대수술」이라 하겠다. 모처럼 메스를 든 정부가 겨냥하는 것은 호화분묘 조성에 따른 국민위화감 해소와 좁은 국토이용을 위한 새로운 장묘문화정착에 있다. 이는 정부가 지난 61년 매장 및 묘지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래 처음 있는 일로 귀추가 주목된다.호화·불법분묘를 설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도층·부유층이었고 그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그동안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이 자주 있어왔다. 3단계로 나뉘어 추진될 이번 정부의 묘지정비작업은 합동정비기관에 감사원등 사정부처를 포함시킴으로써 종전과는 달리 불법·호화분묘에 대한 행정조치이외에 사법조치까지 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정부가 지난 5월 이례적으로 호화분묘를 조성한 전·현직 국회의원,고위공직자,재벌총수 등 91명의 사회지도급 인사 명단을공개한데 이어 마련한 이번 묘지정비계획은 분묘의 규모나 형태 등에 관한 법정기준이 있음에도 대부분 묘지면적을 지나치게 크게 확보하거나 장식물을 호화스럽게 설치해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함은 물론 묘지의 국토잠식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현재 전국의 분묘수는 1천8백83만여기에 묘지면적이 9백48만㎦로 전국토의 0.9%에 이르고 있다.또 매년 20여만기씩이 늘어 해마다 서울 여의도 넓이의 1.2배나 되는 10㎦가량의 국토가 묘지로 잠식되고있다. 반면 묘지난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화장률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17.8%에 불과,일본의 96.7% 태국 90% 홍콩 72% 영국 60%등 외국에 비해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묘지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호화분묘 실태 역시 심각해 법정기준인 자연인의 개인묘지 면적 24평(80㎡)과 공원묘원 등 기타 묘지내의 1기당 면적 7평(30㎡)및 비석 1개(2m),상석 1개,석물 1개 또는 1쌍(인물상 제외)을 초과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불법묘지와호화분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종교·문화 등의 영향으로 우리의 장묘제도가 매장위주로 고질화된데다 ▲한번 설치된 분묘는 감소요인없이 영구화되고 ▲묘지를 집단화하고 화장률을 높이려는 정부시책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화장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매장이 선호되는 것은 풍수지리와 발복기원(발복기원),자기과시 등에 기인한 묘지소유욕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백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매장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지기는 어렵다는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지만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 더이상 매장분묘를 고집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 따라서 범정부 차원의 이번 조처는 여느때처럼 용두사미(용두사미)식으로 끝나선 안되며 정부가 겨냥하는 두가지 큰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이라 할 수 있다.
  • 되살아나는 「언론병폐」근절 고육책/사이비기자 실태파악 착수 언저리

    ◎이권개입등 기업피해 심각/기자 질저하 부작용도 차단/마구잡이창간도 큰문제… 방치땐 위험수위 판단 공보처가 14일 사이비기자에 대해 실태파악및 대책수립에 나선 것은 이들에 의한 국민들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군소신문과 지역신문들이 마구잡이 식으로 급증,이에따른 구태의연한 피해가 속출하고 언론인의 자질이 저하되는 등 그 부작용이 심각한 실정이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신문사가 돈을 받고 기자신분증을 발행하는가 하면 요구하지 않은 광고를 실어 돈을 요구하는 언론초기의 병폐도 되살아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이비언론의 폐해가 심각하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 언론의 자유에 따른 군소신문·잡지사가 마구 들어서 절대적인 숫자가 늘어난 것을 꼽을 수 있다. 우리 언론변화의 한 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지난 87년 6·29선언이후의 언론사급증 추세는 이를 잘 말해준다. 87년11월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대신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등록요건이 전면 개방되자 언론사는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기간행물의 숫자를 보면 6·29당시 총 2천2백36종이던 것이 올해 5월말 현재 모두 6천2백16종이 등록돼 무려 2백78%의 신장세를 나타냈다. 종류별로는 전국적으로 32개에 불과하던 일간신문이 1백17개로 늘어 3백66%급증세를 보였고 주간지의 경우는 더욱 심해 2백종에 불과하던 것이 1천4백94개로 무려 7백43%가 늘어났다. 월간지도 1천2백3종에서 2천7백11종으로 2백25%가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 간행물발간사들은 정제되지 않는 방법으로 무분별하게 기자들을 채용,인원을 충원해왔으며 이들의 뒤떨어진 자질은 곧바로 비리사례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재무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은 신생 신문사와 잡지사들의 경영능력은 어찌보면 폐해를 키울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 비리라 할 수 있다. 무조건 신문사나 잡지사를 세워 의뢰받지 않은 광고를 싣거나 급료를 못받는 기자가 다른 사람들의 비리를 미끼로 금품을 요구해 이것을 생활근거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이들 사이비언론의 기본모습이었다. 이처럼 언론자유의 영역이 넓어진 만큼 그에 따른 피해,즉 「음의 영역」도 넓어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이비기자의 행태를 보면 ▲광고강요 ▲약점미끼 ▲금품갈취 ▲신문·책자등 간행물 강매 ▲부당이권 개입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J도 N시는 인구 6만1천명의 소도시이다.6공들어 이 도엔 5개의 지방신문사가 창간되면서 L시에도 8명의 주재기자가 추가로 시청·공공기관·중소기업체를 누비기 시작했고 갖가지 명목으로 광고를 무조건 게재,광고비를 받아내고 있다.광고비는 건당 2백만∼3백만원선이라는 게 이 지역 중소상인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한 업체에 5∼10부의 신문을 투입,강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정부에서 말하는 사이비 기자인게 틀림없지만 나름의 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발보다는 사이비기자의 협박이 무서운 것이다. 지난달 19일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가 사기및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구속한 「대한일보사」사건도 사이비기자사건의 대표적인 예이다.「대한일보」대표 심모씨(36),「검경일보」대표 박모씨(56)「국민법률일보사」대표 신모씨(35)등의 경우 검찰·법원·경찰관련 특수신문사를 차려놓고 기자증을 판매하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특히 심씨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유령회사인 「대한일보사」를 설립,일간지를 발행한 것처럼 속여 최모씨등 3명으로부터 4천3백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또 이들과 함께 구속된 「한국치안신문사」하모씨(60·전과 11범)는 지난 90년 11월초 K호텔 대표 차모씨에게 공원지구로 지정된 이 호텔 소유의 성북동 임야 3천여평을 관할 구청장에게 부탁,주택단지로 형질변경시켜 주겠다며 1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보처로서는 이처럼 책임이 없는 자유를 마구 남용하는 언론풍토에 어떤 형태의 정책 또는 개선책이 시급히 요청되는 실정이었으며 손주환장관도 지난 11일 공식석상에서 『사회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정책을 펴겠다』고 언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손장관은 그러나 『언론자유에 반대되는 어떤 정책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고 시도해서도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는 공보처의 사이비기자 실태파악의 초점이 언론의 대국민신뢰회복및 자정을 통한 건전언론풍토조성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앞으로 정부가 지원책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어쨌든 고질적인 언론병폐인 사이비기자의 근절은 언론사·기자·국민·정부등 4주체가 공동노력·대응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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