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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부총리 기자회견 “다시는 그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李부총리 기자회견 “다시는 그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준 신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4일 오후 개각 발표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머리부터 숙였다. 사외이사 겸직과 판공비 불법 전용 등 서울대 총장 재직 중 물의를 빚었던 사태에 대해 또다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5시40분. 기자회견장인 서울 삼청동 교원징계재심위원회 2층 강당에 들어선 이 신임 부총리는 도덕성을 꾸짖는 여론을 의식하듯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일을 하다 보면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도 있다. 두 번 다시 묻지 말라.”면서 “도덕성과 관련된 일도 쭉 해왔다. 앞으로 눈여겨봐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고교교육과 대학교육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고 있다.”고 교육계의 현실을 평가한 뒤 “입시보다는 대학 교육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동안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교육혁신의 기조는 유지할 것”이라면서 “개혁이 하루아침에 쉽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자리에 있는 동안 교육의 틀을 본 궤도에 올리는 데 일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교등급제 금지와 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등 이른바 ‘3불(不)’ 정책도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또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의 신뢰회복, 경쟁력 갖춘 대학 배출 등을 교육계의 화두로 꼽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2005년에는 우리사회에 일본이 여느 해보다 뜨거운 이슈로 계속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달력을 한장씩 넘기다 보면 곳곳에서 일본이라는 존재와 마주친다.6월22일은, 광복후 20년만에 한·일 협정을 체결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8월15일은 광복 60주년 기념일이요, 보름 뒤인 8월29일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95년째 되는 날이다. 이는 11월18일 을사늑약(勒約) 100주년으로 이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오는 17일이면 한·일협정 문건 5종이 공개되는 데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조만간 가동해 대상자 개개인의 친일 행적을 파헤치게 된다. 일본 쪽에서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고위층의 망언 등 외풍은 계속 불어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일본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다 올 한해를 마감할지 모른다. 해마다 기념일은 돌아오지만 올해 유난히 일본과의 과거사가 두드러지는 까닭은 ‘광복 60년’‘국교재개 40년’‘을사늑약 100년’처럼 숫자가 부여하는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이 숫자의 상징성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소화해 민족정신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광복이 되고 국교를 재개하고도 일본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피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국민의 인기를 모은 가요라도 일단 ‘왜색’이라 낙인 찍히면 하루아침에 공개장소에서 사라졌다. 또 ‘일본은 없다’라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일본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극일(克日)’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오랜 기간 ‘일본 콤플렉스’라는 망령에 시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글머리에 밝힌 것처럼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는다. 인생으로 치자면 환갑을 치르는 것이다. 환갑의 의미를 국가관계에 견강부회할 생각은 없지만 그 세월의 무게를 한번쯤 저울질할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의 해에 태어나 한글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일본에서는 전후 1세대가 각각 6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양국간에 벌어진 가해와 피해의 행위를 여전히 반추하며 목청을 높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까. 이제 광복이전의 한·일 관계는 역사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용서하고 잊어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 이를 일상적인 이슈로 삼지는 말자는 뜻이다. 이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제언이다. 언제까지나 일본과의 과거사 풀기에 집착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현재 국내에서 이슈가 된 사안들을, 일본을 연계시키지 않은 채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피해보상 문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자체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일협정을 체결한 박정희 정부가 비록 국민의 뜻에 반해 그릇되게 처리했더라도 이는 우리 내부의 문제일 뿐, 이를 빌미로 일본에 개정 요구를 하는 것은 국가간 신뢰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여러해 지났지만 한·일관계는 아직도 ‘20세기적’이다. 우리는 여태 과거사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사과·보상이 끝났다고 반박한다. 앞으로도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해소하려면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제가 가한 패악을 잊지 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되 이 시대에 더이상은 일본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를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뀌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부동산 어떻게 될까] ‘침체 터널’에 갇힌 집값…거품 더 빠질듯

    [부동산 어떻게 될까] ‘침체 터널’에 갇힌 집값…거품 더 빠질듯

    부동산 시장에는 언제쯤이나 따스한 햇볕이 들까. 지난해 내내 부동산 시장을 짓눌렀던 무거운 구름이 걷히고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기를 정부나 투자자 모두 바라고 있다. 하지만 바람일 뿐 올해에도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비구름이 길게 드리워지면서 침체의 정도가 지난해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갖가지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부동산 시장을 되살리기에는 한계가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동산 시장은 일반 경기 흐름이나 정책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일반 경기 침체는 곧바로 기업 투자 감소와 긴축 경영으로 이어지고 파장은 금융권의 돈줄 죄기로 번지기 마련이다. 불똥은 곧 부동산 시장 침체로 옮겨 붙는다. 때문에 일반 경기가 침체하면 부동산 시장은 바로 고꾸라지고 원상태로 되돌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일반 경기 침체는 외환위기 때와 다르게 해석된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내수부진, 기업 투자의욕 감퇴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겹쳐 일어난 침체로 보아야 한다. 갑작스럽게 맞은 KO펀치가 아니라 그로기상태에서 당한 타격이라서 회복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도 투기억제정책, 수요 감소와 공급 증가, 세제 강화 등이 겹쳐 하루아침에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 주택 주택경기는 특히 일반 경기와 정책변화에 바람을 많이 탄다. 그런 면에서 새해 주택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깊은 불황이 점쳐진다. 지난해 워낙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쉽게 회복할 수 있는 기력을 잃은 데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옥죄기 주택정책 기조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아파트값은 새해에도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 확실시된다. 하락 기울기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외곽과 서울 변두리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순 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새해 집값·전셋값의 동반하락을 점쳤다. 김 박사는 집값은 연간 3% 정도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과잉과 투기억제책에 따른 매수심리 위축을 원인으로 꼽았다. 크게 증가한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이 급격한 수요감소를 가져왔다고 보는 견해다. 올해 신규 입주 주택은 지난해 입주 물량(44만 8000가구)보다 많은 52만가구 정도로 예상된다. 무주택자가 줄어들어 수요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증가한다. 지난해 15만 5000가구 수준이던 신규 아파트 물량이 새해에는 19만 5000가구로 4만 가구가 늘어난다. 공급 과잉은 투기억제 대책과 맞물려 가격 하락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전셋값은 하락폭이 더 커 연간 4∼5%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신규 아파트 입주 증가에 따른 공급과잉과 역전세난 확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전략연구소도 올해 집값이 평균 3∼4%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매매가는 3.5%, 전셋값은 5.0% 각각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책의 변화도 집값 하락을 더욱 부채질한다. 재건축개발이익환수제 실시 방침이 나오면서부터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곤두박질친 것만 보아도 집값이 정책의 흐름에 얼마나 민감한 지 알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주택가격 공시제, 과표 현실화 등도 아파트값 하락을 압박하는 수단이다. 다주택·고급주택 보유 자체만으로 무거운 재산세를 물리는 종부세는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실거래 기반의 과표현실화 역시 아파트 거래를 오므라들게 하고 있다. 아파트를 사고팔 때 내는 거래세가 지금보다 3∼4배 올라가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끊긴다. 주택가격공시제 역시 집값을 실거래가에 맞춰 매기는 제도로 세금 줄이기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만큼 거래 욕구를 크게 감소시킬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청약시장도 불황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지방 아파트 시장 미분양은 그만두고라도 분양성이 좋다는 수도권까지 빈집이 늘고 있다. 수도권은 새해에 입주물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시장 침체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다만 판교신도시는 사상 최고의 청약경쟁률이 예상된다. 투기과열지구 해제, 분양권 전매금지 완화 정책의 변화가 따르는 지역도 청약시장이 다소 움직일 수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토지 집값 하락 예상과 달리 토지 시장은 약보합세를 띨 것으로 보인다. 거래가 증가하고 가격이 급등하는 호황은 기대할 수 없지만 주택보다는 거래 규제 강도가 느슨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토지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국책사업 착공, 택지지구 개발지구 주변은 소폭이나마 오를 가능성도 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새해 땅값을 지난해(3.0%)보다 둔화된 1∼2%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토지공사는 평균 0.6%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건설경제협의회는 전반적으로 땅값 상승률은 둔화되나 신도시 건설지역 및 지역균형발전계획에 따른 개발예정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연간 3% 정도의 상승률을 점쳤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투자의욕이 감소하고, 충청권을 중심으로 불었던 사재기 바람이 진정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각종 지역개발 호재가 이미 반영돼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고 가격도 오를 만큼 올라 추가 상승 여력이 소진된 것도 더이상 가격 상승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하지만 국지적인 상승이 예상되는 곳도 있다. 충청권도 신행정수도 건설 후속대책이 최종 확정되면 주변 토지 시장이 다시 꿈틀거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당초 후보지로 예정했던 연기·공주지역 토지를 사들이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르면 2월말 행정수도의 윤곽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업도시 주변, 공공기관 이전 예정 지역은 땅값 상승과 거래 증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대규모 택지개발지역 주변 땅값도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에 농지, 임야 등이 빠지면서 유동 자금이 주택에서 토지로 이동할 가능성도 커졌다. 농지법 개정으로 도시민의 농지 소유 제한 완화도 땅 투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급등이나 거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오피스 상가·오피스 시장도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가 부진을 예상하는 근거는 뭐니뭐니 해도 내수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음에 따라 문을 닫는 업소가 늘고 있는 추세다. 소형 상가뿐 아니라 대형 상가도 입점이 안 된 경우가 수두룩하다. 권리금은 그만두고 보증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오는 4월부터 선시공 후분양제도가 도입되면서 분양규제도 따른다. 이에 따라 공급량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상가114 유영상 소장은 “법 개정에 따라 상가도 토지매입과 건축허가를 마친 뒤 공개분양을 실시해야 하므로 안전한 투자여건이 조성되겠지만 공급 비용을 증가시켜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 시장도 밝지 않다. 경기침체로 신규 창업이나 사업 확대를 꺼리는 바람에 사무실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무실 면적을 줄여 이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빈 사무실 증가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오피스 정보를 제공하는 샘스에 따르면 서울 중심권과 강남권 등 대형 빌딩이 밀집한 곳에서 공실률이 증가하고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서울 도심이나 강남권역도 공실률이 5%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흔히 연초에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렸으나 파이낸스센터, 흥국생명 빌딩 등 대형 빌딩에도 빈 사무실이 늘어나고 있어 새해 임대료 상승은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 외곽 빌딩들은 전세를 보증부 월세로 돌리면서 임대료를 깎아주고 있는 추세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2)영흥도 ‘바람의 숲’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2)영흥도 ‘바람의 숲’

    김수영 시인은 노래했다.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고도 했다. 풀만 그러한가. 영흥도 숲이 또한 이와 같다. 을유년 아침 바다를 맞으러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를 찾다가 문득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의 겨울숲을 떠올렸다. 겨울바다의 매혹적인 풍광을 좋아하는 이들은 낙엽 떨어진 영흥도 숲을 찾아서 속깊은 울림을 만끽하고 돌아올 일이다. 겨울바다는 여름의 느끼한 느낌이 없어서 좋다. 날씨 맑고 몹씨 추운 날이면 바다는 얼음이 갈라지듯 ‘쨍’하는 느낌으로 온다. 그만큼 겨울바다는 숨김이 없으며 너무도 솔직하고 분명하여 여름바다의 번잡스러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관해(觀海)의 격을 높게 치는 이들이 여름바다 못지않게 겨울바다를 사랑하는 것이리라. 영흥도 숲은 겨울바다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연륙교를 놓아준 덕분에 뭍이 되었다. 한적한 섬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어느덧 경기도 섬 중에서 여관이 가장 많은 섬이 되고 말았다. 한 집 건너 러브호텔이란 소문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듯 급격하게 영흥도는 변하고 있지만 숲만큼은 용케 살아남아 이 섬의 역사를 웅변해 주고 있다. ●130여년 전 조성… 거대한 분재전시장 영흥도 숲은 그야말로 바람이 빚어낸 ‘바람의 숲’이다. 숲이 있는 십리포해수욕장은 정북방이어서 북풍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곳에 서면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서 느끼는 체감온도가 ‘장난’이 아니다. 바람은 여민 옷깃 틈새로 사정없이 파고들어 뼈를 아리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숲 뒤에만 서면 그 모질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고개를 숙인다. 영흥도 숲은 선주민들이 130여년 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 나이테로 미루어 120∼130여년 전으로 추측되므로, 시기를 비정하자면 조선 후기쯤 심어진 나무들이다. 수종도 소사나무 단일종이다. 한국과 일본에 서식하는 낙엽활엽수인 소사나무는 주로 해안에 분포한다. 소사나무는 바람의 힘이 아니더라도 뒤틀림이 강하여 아름답기 그지없어 분재용으로 선호된다. 또 염기에 강해 바닷가 방풍림으로는 그만이다. 경기 서해안을 다녀본 경험으로는 핵폐기장 건설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굴업도의 소사나무숲이 인상적이었다. 선착장으로 걸어가다 보면 웅장한 암벽을 뒤덮은 소사나무들이 바람에 결을 이뤄 이리저리 쏠린 모습이 마치 분재전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흥도 숲도 거대한 분재전시장이다. 사정없이 바람이 몰아쳐 나무 방향이 한결같이 육지쪽으로 뒤틀려 있다. 소사나무로서는 자랄대로 다 자란 고목들이 수백여 그루씩 줄지어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본디 소사나무숲은 현재 위치보다 더 바닷가로 바짝 붙어 있었다. 그랬던 것이 해안 축대를 쌓으면서 적잖이 베어졌다. 백중사리같이 강한 물발이 밀려들면 바닷물은 숲까지 들이쳤다. 그 독한 소금기에 절어가면서도 숲은 용케 살아남았다. 숲을 망가뜨린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들이었다. 여름이면 해수욕객들이 나무에 텐트를 잡아매고, 숲에서 삼겹살을 굽고, 심지어는 나무를 베어내 캠프파이어를 하는 몰지각한 이들도 없지 않았다. 몸살을 앓던 숲에 올해들어 보호철망을 둘렀다. 철망이 볼썽사납기는 해도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바닷가 숲은 단순하게 바람만 막아주는 것이 아니다. 해일 같은 큰 파도가 밀려들면 숲이 1차적으로 막아 파고를 죽인다. 서남아시아의 엄청난 해일도 사실 인간들이 자초한 재앙이다. 바닷가 망그로브숲 등을 모두 베어내고 새우양식장이나 관광리조텔 등으로 ‘대머리 해변’을 만들었으니 해일을 막아줄 아무런 장벽이 없었던 것이다. ●물고기 살리려면 숲부터 가꿔야 숲을 좋아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물고기도 숲을 좋아한다. 대개의 물고기들은 그림자를 선호한다. 어딘가 숨을 만한 곳, 햇빛을 적당히 가려주는 곳에서 심리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숲이 짙으면 물고기들은 그곳을 최적의 서식지로 판단하고 뭍으로 몰려든다. 흡사 강변의 수초가 우거진 곳에 고기들이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8년 2월26일, 숲과 강과 바다를 지키는 환경보전운동을 추구하는 ‘전국어민의 숲 대회’가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일본의 수산 관련 기관과 임업기관, 지방자치단체와 어민단체 등이 연대, 해변에 나무심기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심기운동은 오로지 산에서만 하는 것이라거나, 수산과 임업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후진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지는 일본의 이 사례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구마모토현(熊本縣)의 ‘진주의 숲’, 야마구치현(山口縣)의 ‘물고기의 숲’ 같은 단체들이 곳곳에 조직되어 전국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홋카이도에는 아에 ‘물고기 보안림’이라고 하여 대규모 숲이 물가에 조성되어 있다. 쇼와 28년에 심었으니 어언 50여년에 이르는 숲이다. 앞서 1937년에는 어부림의 효과에 관한 본격적 연구가 농림성 산림국과 수산국에 제출되기도 했다. 무조건 아무 나무나 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물고기가 언제, 어떤 숲그림자를 좋아하는가를 면밀하게 연구하여 수종을 결정한다. 어종과 숲의 관계를 연구하는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부림은 철저한 통제하에 관리되며 어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바닷가 나무를 꺾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해양선진국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박정희 시대에 전국에 나무심기를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닷가에 나무를 심자는 발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고기를 살리려면 숲부터 조성하자는 슬로건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당시 분위기에서 물고기를 위해 해변에 나무를 심자고 했다간 ‘미친 놈’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었을 터. 해양수산부나 산림청, 그 많은 환경단체, 수협 같은 해양단체도 해변에 나무 심는 운동에는 무관심했고, 지금도 그렇다. 고기만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는가.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도 해변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바닷가 숲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관이다. 바닷가에 드리워진 숲그림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여름철 뜨거운 해변, 숲그늘이라곤 없는 해수욕장을 상상해 보라.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따져도 경관은 엄청난 재화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개개의 바닷가는 콘크리트 축대나 여관촌, 횟집촌 등으로 바뀌고 있다. 숲은 없고 오로지 건물숲만 생겨 물고기들로서는 결코 다가설 수 없는 삭막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보라. 수변공간이란 미명으로 얼마나 많은 전국의 바닷가가 대중없이 망가지고 있는지를. ●군청사 지으려 섬 팔려는 발상 황당 영흥도 숲은 선인들의 뛰어난 생태환경관을 보여준다. 해일과 바람을 막아주고 물고기들이 놀 수 있게 하였으나 우리들 세대에 와서 보호철망으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본의 힘은 이 바닷가를 서서히 ‘침략’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시는 영흥도 바로 코앞의 측도 매각공고를 냈다. 옹진군 청사를 짓기 위해 군이 소유하고 있는 측도를 팔겠다는 공고였다. 수백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측도와 선재도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일단 인터넷 접수를 연기시켰다. 측도의 운명은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 수백억원이 드는 군청사를 짓기 위해 섬을 팔겠다는 이런 황당한 발상이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민간에게 팔아넘기면 또다시 대규모 횟집이나 여관밖에 더 들어서겠는가. 영흥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소속이라 전화번호가 ‘032’로 시작된다. 그 영흥도를 가자면 반드시 대부도를 거쳐야 하는데, 대부도는 안산시 소속이라 전화번호가 ‘031’로 시작된다. 주민들의 선거에 의하여 영흥도는 인천을, 대부도는 안산을 택한 결과이다. 영흥도 사람들의 생활권은 예나 지금이나 인천이다. 인천과 뱃길로 연결되어 상급학교 진학도 대부분 인천을 택한다. 이곳 사람들의 순진한 선택을 인천시가 모질게 배반한 것이다. 인천시와 옹진군은 자신의 피붙이와도 같은 섬을 ‘잉여자산’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섬을 통째로 팔아 넘기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영흥도 첨사가 주둔하던 문화유적지를 허물고 그 자리에 화력발전소를 지었다. 지난해 12월23일 준공한 발전기에서 배출될 온배수가 이곳 바다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예로부터 경기도에서도 최대 바지락 생산지인 이곳 영흥도와 선재도, 측도의 운명은 이처럼 예측불허다. ●나무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일어나… 선조들이 만들어서 우리 시대까지 넘겨준 아름다운 영흥도의 숲을 거닐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콘크리트 건물숲이나 물려줄 것인가. 바다환경은 우리 세대가 모두 쓰고 갈 ‘소비재’나 ‘시한부 물건’이 아니라 유효기간이 무한대인 세대간 자산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일이다. 올 식목일엔 삽과 묘목을 들고 산만 찾지 말 일이다. 모두들 바다로 가자. 새해 첫 날, 숲은 새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좋아하고, 우리들 사람도 좋아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영흥도의 겨울숲에서 새삼 깨닫는다. 험한 바람은 여전히 소사나무 빈 가지를 모질게 흔들어대고, 나무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름다운 자태를 가꾸고 있다. 올 겨울, 짬을 내 이곳을 찾아 어떤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바람의 숲처럼 아름답게 살아남는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돌아올 일이다.
  • [무슨 영화 볼까]

    ●알렉산더 장르/예매율 액션/48.31%(15세) 감독/배우는 올리버 스톤/콜린 파렐·발 킬머·안젤리나 졸리 어떤 줄거리 꿈을 좇아 세상 끝까지 나아갔던 영웅 알렉산더 이래서 좋아 장대한 전투신과 화려한 이국적 풍광 이래서 별로 주제를 장황하게 말하는 내레이션과 긴 러닝타임 홈피 반응은 “트로이보다 더 리얼한 전쟁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20.81%(전체) 감독/배우는 미야자키 하야오/기무라 다쿠야 어떤 줄거리 마녀의 저주로 노파가 된 소피와 마법사 하울의 모험기 이래서 좋아 반전, 자연친화의 메시지에 러브스토리까지 이래서 별로 ‘센과 치히로의‘ 그 이상을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아기자기한 스토리들, 너무 이쁜 그림들” ●내셔널 트레져(31일 개봉) 장르/예매율 액션/12.75%(12세) 감독/배우는 존 터틀타웁/니컬러스 케이지·저스틴 바사 어떤 줄거리 독립선언문에 숨은 지도를 따라가는 보물찾기 이래서 좋아 첩보영화식 두뇌게임과 어드벤처의 환상적 결합 이래서 별로 할리우드의 미국식 영웅 또 등장! 홈피 반응은 “오락물의 완성판” ●오페라의 유령 장르/예매율 뮤지컬·드라마/6.93%(12세) 감독/배우는 조엘 슈마허/제라드 버틀러·에미 로섬 어떤 줄거리 오페라하우스에 숨어사는 한 남자와 여가수의 사랑 이래서 좋아 화려한 화면과 주옥같은 선율 이래서 별로 뮤지컬을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지루하네 홈피 반응은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뮤지컬에 한표” ●인크레더블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3.78%(전체) 감독/배우는 브래드 버드/크레이그 넬슨·홀리 헌터·사뮤엘 잭슨 어떤 줄거리 은퇴한 슈퍼영웅, 가족과 함께 일어서다 이래서 좋아 최첨단 기술 이용한 각종 초능력의 전시장 이래서 별로 … 홈피 반응은 “‘초딩’옆에서 웃다가 ‘쪽’팔려 죽는줄 알았음”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 장르/예매율 로맨틱코미디/2.65%(15세) 감독/배우는 비반 키드론/르네 젤위거·콜린 퍼스·휴 그랜트 어떤 줄거리 애인 만들기에 성공한 브리짓의 본격 연애담 이래서 좋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섬세한 유머 이래서 별로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황당한 마약사건까지 홈피 반응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폴라 익스프레스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2.64%(전체) 감독/배우는 로버트 저메키스/톰 행크스 어떤 줄거리 크리스마스 이브 북극행 열차를 탄 소년의 모험 이래서 좋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짜릿한 재미와 아름다운 환상 이래서 별로 너무 고전적이고도 뜬구름 같은 소재 홈피 반응은 “예상치 못한 재미 만점” ●신석기 블루스 장르/예매율 드라마/1.29%(15세) 감독/배우는 김도혁/이성재·김현주·이종혁 어떤 줄거리 ‘얼짱’변호사, 하루아침에 ‘얼꽝’으로 변하다 이래서 좋아 온몸 던진 이성재의 코믹 연기 홈피 반응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 전개의 진부함 홈피 반응은 …
  • “교통체계 바꾼뒤 사고율 25% 줄어”

    “버스 준공영제로 운전기사들의 마음이 느긋해지다 보니 난폭운전과 무정차 차량이 저절로 줄었습니다. 지난 반년동안 사고 발생률이 25%나 감소했습니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김종원이사장은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행 6개월을 맞은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관련,“타이완의 의원들이 바뀐 교통체계를 견학하는 등 큰 틀에서 보면 이번 교통체계 개편은 성공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버스기사의 처우가 개선되면서 버스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개월을 기다릴 정도로 버스기사가 인기 직종이 됐다.”고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그러나 “일부 비수익 노선을 조정해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더불어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이해 당사자인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처음엔 반대여론이 우세했다. 수십년 동안 이어온 버스노선을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입장이 서로 다른 57개 버스 업체 사이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2월 가까스로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했다. 김 이사장은 “환승요금과 버스카드 이용차액 등 서울시가 손실 부분을 채워주기로 약속했지만 입장을 바꿔 예산을 깎으려고 한다.”면서 “일부에서는 시의 입장 전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설노선이나 이용객이 적은 정책 노선 등 일부 비수익 노선을 조정해서 시의 재정 부담을 덜어야 한다.”면서 “내년초 이에 대한 노선 조정이 한차례 더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서울시는 송파, 은평, 강동 등 공영버스차고지 4곳을 마련했다. 하지만 주차시설로 이용할 뿐 관련 법이 마련되지 않아 차량정비나 주유시설 등을 갖추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프랑스나 스페인 등에서는 공영차고지에 주유시설과 차량정비소 등을 갖추고 있다.”면서 “연세대 앞 버스전용차로에서 발생하는 병목현상이나 환승센터 등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중앙차선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의 주역으로 국제적으로도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최근 권위있는 세계인명사전인 후스후(Who’s who)2004∼2005년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004 결산] 북핵·남북관계

    [2004 결산] 북핵·남북관계

    2004년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최근의 강추위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북핵문제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했고, 남북대화도 이렇다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핵폐기와 체제보장의 선후를 놓고 북·미가 팽팽하게 맞선 데다 미국 대선이라는 초대형 변수가 맞물리면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교착국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개성공단산’ 냄비 3종 1000세트가 처음으로 생산돼 6시간만에 서울시내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한반도 안보정세를 북핵해법과 남북관계로 나눠 살펴본다. ■ 북핵논란 “미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으며 검증가능한 해체를 위한 주요 요소를 담은 로드맵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미국안이나 자신들의 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6자회담이 진행 중이지만 대화를 계속한다는 합의 외엔 거의 진전이 없었다.”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2004 회계연도 평가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실질적인 북핵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보고서는 북핵과 6자회담의 현주소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진단했다. 보고서는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 위기해소 수단으로서 양자, 혹은 다자협상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이같은 교착상태는 탄도미사일 문제의 진전도 가로막고 있다.”면서,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정책목표에 ‘미달(below)’했다고 평가했다. 북·미는 지난 6월 3차 6자회담에서 각각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실질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함으로써 본격적인 협상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3차회담에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핵의 선 폐기를 전제로, 단계별로 상응조치를 취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상응조치에는 한·중·일·러 4개국의 대북 중유제공, 불가침보장을 포함한 다자안보보장, 비핵에너지 제공,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 국교정상화 등 그간 북측의 요구사항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HEU 존재에 대해 북·미간의 이견도 드러났지만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6개국은 한반도 비핵화원칙 재확인 등을 담은 의장성명을 채택했고,9월 말 이전 4차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비핵화를 위한 초기 단계 조치들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조속히 개최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하지만 회담 직후 북한은 이례적으로 “회담에서 진전을 가져다줄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는 외무성 대변인의 긍정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차회담을 앞둔 8월23일 “도저히 회담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마주 앉을 초보적인 명분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면서 태도 전환의 불길한 전주곡을 울렸다. “북한은 HEU 계획을 인정하고, 리비아 모델을 수용하라.”는 미 네오콘들의 대북 압박 발언, 미 하원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수백명의 탈북자 입국사태, 남한의 핵물질 실험문제 등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려는 북한측에 좋은 빌미가 됐다. 하지만 북한이 6자회담을 중단시킨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미국 대선 상황이었다. 치열하게 맞붙은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와중에 북측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과 태평스럽게 마주 앉아 핵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 것이 애시당초부터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됐건 올 하반기 6자회담이 더 이상 열리지 못했고, 공식적인 북핵 논의도 중단됐다.11월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7월 방한 때 “북한은 HEU 계획을 인정하라.”고 목청을 높였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온건파인 파월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됐다. 북한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사태진전이었다. 이에 북한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6자회담을 연다 해도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공회전만 하게 될 것”이라며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지켜보겠다고 선언, 미측에 공을 떠넘겼다. 결국 본격적인 북핵 논의는 해를 넘겨, 빨라야 부시 대통령이 2기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기조를 담은 연두교서를 발표할 새해 1월20일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 남북관계 통일부 인터넷 홈페이지(unikorea.go.kr)에 접속하면 첫 장에 ‘대북정책초점’이란 제목 아래 ‘남북관계 추진현황’이 뜬다. 그때그때, 적어도 월 1회 이상 업그레이드되던 이 자료가 ‘9월 말 현재’에서 멈춰 섰다. 올해 남북관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개성공단 관련 협의를 제외하고는 9월 이후 추가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을 만큼 남북 당국간 공식 대화가 끊겼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북남관계는 좋게 발전하고 통일분위기는 어느 때 없이 고조됐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인터넷판에 게재한 올해의 남북관계에 대한 총평이다. 조선신보는 두 차례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3월 서울,6월 평양)와 6월 장성급회담에서의 합의서 채택,6·15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 등 당국 및 민간교류 등을 성과로 꼽았다. 특히 4월 말 용천역 열차폭발사고 이후 남측에서는 동포애가 발휘되고 정부와 민간이 지원사업을 추진했으며,8월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선수들이 공동입장한 점을 들었다. 7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를 시작으로 탈북자 대거 입북, 남한 핵물질 실험 등이 불거져 나오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여기까지의 평가와 진단은 있는 그대로 옮겨 적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객관적이다. 하지만 다음 대목부터 사정이 달라진다.“남한은 말로는 협력이요, 뭐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가담해 북남대결을 격화시켰다.”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간 것은 남한이 민족의 협력보다 미국의 입장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조선신보의 이런 일방적 결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북한이 때때로 이런 억지주장과 함께 빗장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정상회담이니 장관급회담이니 하는 갖은 회담과 교류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진전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든 8월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해 제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무산됐다. 장성급회담에서 합의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또한 중단됐다. 이후 단 한 차례도 당국간 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경협 프로그램만은 착실하게 진행됐다. 북측은 외화관리 및 광고, 부동산 등 개성공단 사업을 위한 법적 인프라를 구축했고, 전력공급 협상도 타결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이 결과 리빙아트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개성공단산’ 냄비 3종 1000세트를 생산하며 남북 경협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금강산 관광사업도 육로관광이 2003년 9월 시작된 이후 꾸준히 나아져 숙소가 모자라 관광객을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남북을 잇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연결사업도 모든 공사를 마치고 개통식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핵문제 해결 지연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의 요인으로 인해 북한이 대남·대외정책에서 유연성을 보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정부는 새해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핵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면서 동시에 남북관계도 병행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철 통일·안보전문기자 ickim@seoul.co.kr
  • 盧대통령 국정코드 ‘과거’에서 ‘현재’로

    盧대통령 국정코드 ‘과거’에서 ‘현재’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의 화두가 지난해엔 불법정치자금, 올해는 과거사 정리였다면 내년에는 민생경제로 전환하는 조짐이 분명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올해 연두기자회견에서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과거사정리를 예고한 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말했고, 그뒤 여야가 대치하는 ‘4대입법 정국’이 형성됐다. 새해에 노 대통령은 경제회생을 화두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각종 화두를 던지면서 정국의 물꼬를 형성해 왔다. 그런 점에서 국정운영 키 워드는 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국보법 처리 천천히 하라” 노 대통령이 지난 23일 이해찬 국무총리,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당·정·청 송년 만찬에서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 처리를 염두에 둔듯 “천천히 가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4인회담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여당 지도부를 격려하는 발언을 했다.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보법 등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4인대표회담 결과를 설명한데 대한 언급이다. 청와대측은 나중에 부인했지만, 국보법 처리에 대한 지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만찬에 참석했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은 수십년 된 법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려면, 어렵지만 잘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고, 한명숙 의원은 “국보법 처리를 연내까지 안해도 된다, 안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지침이라는 관측을 부인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노 대통령의 발언은 협상의 어려움에 이해를 표시하고 당의 노력을 위로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권의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맞게 중심국정의 키워드를 던진다.”면서 “시기에 따라 부각되는 키워드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측의 새해 키워드가 경제가 될 것이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노 대통령은 23일 안산공단 방문계획을 연기한 데 이어,24일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접견 계획을 내년초로 연기했다. 노 대통령은 바쁘게 진행돼온 공식일정을 최소화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게 참모들의 귀띔이다. 노 대통령은 당·정·청 만찬에서도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이며, 내년에 경제 회생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의 국정운영 방향을 경제로 삼기로 작심한 것 같다.”면서 “구상은 새해 1월 중순에 가질 연두기자회견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회견에서는 경제회생의 의지와 방향을 제시한 뒤 차례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것 같다. 따라서 새해에는 경제 회생의 급물살이 정국과 사회 곳곳에서 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이 밝힐 경제살리기 대책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의 수준을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경제불황의 터널이 생각보다 길고 국민고통이 크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노 대통령의 경제살리기 해법은 단기적인 경기대책 차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시절의 조언하던 경제학자 그룹과 청와대의 정부 공식라인을 두 축으로 구체적인 방안마련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여권에서 검토에 들어간 화폐개혁도 대안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은 올해 다수당이 되면서 기금관리법, 사모펀드법, 국민연금법 등을 개정해 경제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결국 이같은 법제도의 변화가 내년부터 경제의 활력으로 작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법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경제회복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임기말까지 국민대통합” 노 대통령은 만찬에서 “열린우리당은 2005년 국정 운영의 키워드를 민생경제·평화번영·국민통합 등 3대 과제로 정했다.”는 이부영 의장의 보고를 듣고 “잘 정하신 것 같다. 그렇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에 대해서도 교감이 확인된 셈이다. 국민통합은 과거사 정리의 매듭으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이 최근들어 “힘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상황을 진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민대통합 방안은 추진하지 않을 것 같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정권에서 사용되던 일방적인 대사면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민대통합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국민대통합의 메시지는 새해에 급물살을 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국민대통합은 정권 마지막까지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정현 문소영기자 jhpark@seoul.co.kr
  • [사설] 국보법 대체입법으로 매듭을

    여야간 국가보안법 협상에서 절충 가능성이 보인다. 합의점을 찾기 힘들 것 같았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자 타협의 길이 열리고 있다.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한나라당이 국보법 명칭 변경과 정부참칭 조항 손질 의사를 밝힌 데 호응하듯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유연한 대응을 당부했다. 양측이 조금만 더 상대를 이해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국보법 대타결’은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노 대통령은 엊그제 여당 지도부와 만찬자리에서 4대 입법과 관련해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풀자.”고 말했다. 내년에는 경제회생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통령의 실용주의 국정운영 방침이 실천에 옮겨지길 바란다. 새해 국정이 경제중심으로 운영되려면 국보법 등은 연내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국보법폐지안 처리연기, 대체입법으로 당론변경, 자유투표 회부 등을 협상안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대체입법안이 가장 합리적이다. 여당이 폐지안을 고수한다면 처리시기를 내년으로 넘겨도 야당과 합의를 이루기 어렵게 돼있다. 국보법은 많은 부분에서 시대상황과 맞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의 안보불안도 현실이고 보면 단계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합리적이고 차선책이다. 노 대통령도 여당 지도부에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군림해온 법인데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느냐.”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이번에는 대체입법 수준에서 매듭지어야 한다. 국보법에서 대타협이 이뤄지면 사학법, 언론법, 과거사법 절충은 상대적으로 쉽다. 당대표·원내대표 등 양당 대표회담 멤버 4인의 정치력을 기대한다. 여당내 국보법 폐지론자들과 야당내 존치론자들은 큰 그림을 보고 당지도부를 밀 일이다.
  • [열린세상] 페어 플레이의 나라/이정옥 대구 카톨릭대 교수

    “저는 1982년생인데요. 어릴 때는 바이올린을 했고 태권도도 했어요. 좋아하는 일에는 잠을 안 자고 미칩니다.”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수업시간의 과제 발표장에서 학생들도 놀라고, 교수인 나도 놀랐다. 이른바 청년실업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회색빛 전망을 앞에 둔 1980년대생들의 귀중함을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주위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음악이며 운동이며 특기 교육을 받았고, 여행이며 취미활동을 ‘기억이 날 정도’로 해보았고 사이버 공간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한 그들이었다. 그들은 주차요원에서 이벤트 도우미, 호프집 웨이터 등의 다양한 ‘알바’ 경험을 자랑스레 털어놓았다. 그들은 고도성장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우리 사회의 풍요의 열매들이다. 경제적 곤궁함의 우울과 그늘이 자리잡기엔 과거의 빛이 너무 밝은 세대들이다. 열등감 없는 대담함은 실업과 불안정 취업에 대한 우려를 뛰어넘을 수 있는 다양성과 재기 발랄함을 지녔다. 그 저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월드컵 거리 응원전에서 입증된 바 있다. 사회학자들은 그들을 ‘월드컵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분석한 바 있다. 찬란한 과거를 뒤로하고 졸업을 앞두고 이들이 물밀듯이 찾는 곳은 노량진의 공무원시험 학원가이다. 불안정 취업의 시대에 ‘철밥통’의 유혹은 다른 모든 재미있는 실험을 중단시킬 정도로 큰 것이다. 대학에서 학과선택의 기준은 취업을 보장해주는 자격증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자격증과 공무원시험은 ‘무한경쟁’이라는 세계화의 파고 속의 한척의 나룻배와 같다. 모든 사람이 아귀다툼으로 올라타면 나룻배는 당연히 뒤집힐 수밖에 없다. 아귀다툼으로 올라타고 싶어 하는 국가의 공공부문, 예를 들면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라는 세계화의 추세는 이미 대세가 되고 WTO를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제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시험으로 모든 경쟁의 금을 넘어서는 ‘철밥통’은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이다. 이런 대세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부모 세대에 성공했던 방식을 새로운 세대에게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시간의 흐름이 멈춘 20세기에 가두는 셈이 된다. ‘영리한 군중’이었던 월드컵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공무원시험 합격증’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과 페어플레이의 정신이다. 승패를 가르는 경기의 규칙은 냉정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패배를 인정하고 패자를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 이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정신이다. 이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세대를 필자는 ‘02세대’라고 이름붙인 적도 있다. 게다가 월드컵을 통해 확인된 승리의 비결은 끊임없는 기초훈련과 선수 개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키워주는 ‘리더십’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진부한 진리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은 ‘연줄망과 연고만들기’를 기초실력 다지기보다 앞세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새로운 경기의 규칙을 만들고 있다. 공직자에 대한 다면평가제가 도입되고 장관에 대해서도 업무평가제도가 확립되었다. 고위공직자를 공채하는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절차와 형식이 아무리 민주적으로 바뀐다고 해도 형식 합리성의 뒤에 실질 합리성은 자취를 감출 수 있는 구멍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직사회의 효율성’,‘기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모두가 절감할 때만 형식 합리성이 아닌 실질 합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심전심’, 사회학자 뒤르카임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집합의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페어플레이의 나라를 만들면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해 말도 설고 낯도 선 이국땅을 향한 이민은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이민이 좋다 그르다를 떠나 ‘떠나고 싶다’는 열망의 현실적 표현인 이민대열은 우리 사회가 페어플레이의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페어플레이만이 승자를 교만하지 않게 만들고 패자가 승자를 인정하는 틀이 될 수 있다. 이정옥 대구 카톨릭대 교수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실전논술 지상강의 4회 예시논술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가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일본을 휩쓸고 있는 TV드라마 ‘겨울연가’ 신드롬이 그 가능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중국을 비롯한 화교 문화권에 이은 이번 TV드라마의 개가는 아시아 대중문화의 종주국 격인 일본에서 성가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문제는 이미 화교 권에서 그랬듯 일본에서 대중문화 히트가 일회적 과정으로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다. 눈앞의 결실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의 대중문화를 흐름으로 체계화하지 못했다.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중문화를 문화현상으로 엮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중국을 무대로 시작된 한류는 TV드라마에서 곧바로 대중 가요로 번지면서 절정을 이룬다. 그 후에도 한국 TV드라마는 꾸준히 중국과 타이완 등에서 화제를 모았지만 단일 작품 차원의 성공에 머물며 한국적 정서를 뭉뚱그려 심어 주질 못했다. 대중문화에 매료되어 한국을 알고 싶어했지만 언어 장벽에 막혔다. 한류 열풍은 몇몇 대중 스타에 의존한 나머지 한국의 문화가 되지 못하고 특정 연예인의 개인적 성공에 머물렀다.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듯한 드라마며 한번쯤 들어본 듯한 가락은 이방인들의 흡입력을 확대 재생산하지 못했다. 문화적 장벽을 아랑곳하지 않고 넘나드는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의 속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서구적 현상에 식상해 하던 차에 한국 특유의 가족중심 정서가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양적 유교 정서를 바탕으로 물질 위주의 서구문명을 성공적으로 걸러낸 개가라고도 한다. 보편적인 문화정서가 아시아 모두를 감동시키며 한류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개방과 함께 중국 한류가 잉태되고, 한일간 대중문화 개방에 때맞춰 일본판 한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새길 대목이다. 다양하고 깊이있는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 정부는 대내적으로는 대중문화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책을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외국인들의 언어 장벽을 헐어내야 한다. 그 흔한 인터넷을 활용해 그 나라말과 그 나라 글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소개하고 시시각각 관련 뉴스를 서비스해 봄직하다. 콘텐츠 개발은 오히려 대중문화 종사자들 몫이다. 작품성을 높여 특정 연예인 의존적인 대중문화의 보편성을 넓혀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중문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관심이 절실하다. 문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쌓아질 수 없는 공든 탑이다. 우리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챙기는 한편 다른 문화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를 추스를 일이다.
  • 儒林(24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4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그것은 염경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이 자신을 문병하러 온다는 사실을 듣고 자칫하면 병이 스승에게 옮길 수도 있었으므로 염경은 문을 굳게 닫고 스승을 뵈지 않으려 하였다. 공자가 두드렸으나 염경은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였다. 하는 수 없이 공자는 창문을 통해 제자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간곡히 부탁한 다음 마침내 염경이 내밀자 손을 잡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이럴 수가 없는데. 아아, 운명이로구나. 이런 사람에게 이런 병이 나타나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흥미로운 것은 공자가 석가, 예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성인이면서도 나병을 깨끗하게 낫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었던 예수나, 역시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던 석가와는 달리 일생을 통하여 단 한번도 기적을 보여준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주님은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나병환자의 간청을 예수는 그의 몸에 손을 대며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하고 말하자 대뜸 나병이 나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의 손을 잡고도 그의 병을 고쳐주지 못한다. 고쳐주지 못할 뿐 아니라 제자의 병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자가 예수나 석가처럼 깨달은 자로서 종교를 창시한 교주가 아니라 철인(哲人)임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이 무렵 공자는 또 다른 불행을 맞게 된다. 하나씩 둘씩 제자들이 독립하여 떨어져 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제자는 나병과 같은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한편 뜻밖에도 고향에서 비보가 날아 온 것이었다. 그것은 공자의 아내 올관(兀官)씨가 죽었다는 부고였다. 공자의 생애를 통해 그 어느 곳에도 공자의 아내 올관씨에 관한 기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공자가 열아홉 살 때 올관씨와 결혼하여 다음해에 외아들 공리(孔鯉)를 낳았다는 짤막한 기록만 남아 있는데, 공자와 아내와의 사이는 원만치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학문에 정진하고 13년 동안이나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로서는 따라서 가정을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인과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한을 품는다.’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여성관을 가졌던 공자였으므로 아내를 하나의 인격체로 곁에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외아들 공리를 각별히 사랑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처럼 아내 올관씨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공자가 올관씨와 일찌감치 이혼하여 헤어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아들 공리도 부인과 이혼을 했었는데 이는 아마도 아버지 공자의 영향을 받은 탓일 것이다. 공자가 이혼했음이 틀림이 없다는 주장은 예기(禮記) 단궁(檀弓) 편에 공자의 증손자 자상(子上)이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가 죽었을 때 상복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자상의 아버지인 공급(孔伋), 즉 자사(子思)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출모(出母)의 상을 당했을 때 상복을 입었었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공급에게 ‘당신의 아버지’인 공자의 아들인 공리가 어머니가 죽자 상복을 입었느냐고 물었던 것은 공자의 아내인 올관씨가 죽었을 무렵에는 이미 공자와 부부로서의 인연이 끊어져 상복을 입을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공자의 아내 올관씨는 공자가 위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인 공자의 나이 67세 때 별세하고 만다. 이로서 공자는 하루아침에 상처를 한 홀아비의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사설] 예산도 법도 팽개친 국회

    17대 첫 정기국회가 새해예산안은 물론 4대입법과 민생관련 법안,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 등도 회기내 처리하지 못하고 폐회됐다. 열린우리당이 10일부터 임시국회를 소집해 놓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거부로 언제 국회가 활동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기국회 100일동안 여야는 이해찬 총리 발언 파문과 4대입법 공방으로 파행을 거듭했고, 막판에는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극한대치 상황까지 맞았다. 허송세월도 모자라 욕설과 폭로, 삿대질과 멱살잡이까지 등장한 국회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야는 17대 국회를 시작하면서 개혁과 상생정치를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이런 모습은 상생은커녕 최악의 국회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새해예산안은 제때에 처리됐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여당은 예결위에서 3조원을 늘리겠다고 했다가,8000억원 증액으로, 마지막에는 정부원안 통과를 주장하며 오락가락했다. 한나라당은 7조 5000억원 삭감을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5조원은 삭감해야 한다고 맞섰다. 제때에 처리하지도 못할 예산안을 하루아침에 수조원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고무줄 다루듯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국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새해예산안의 연내 처리다. 또 민생관련 법안과 해를 넘겨서는 안 되는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도 가부간 처리해야 한다.4대입법 문제도 결론을 내야 한다. 여야는 지체 없이 임시국회 일정과 다룰 의안들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하나씩 풀어나가야지 더이상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정치게임을 계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정기국회 폐회 발언에서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의장도 “여야 모두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말했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여야는 말로만 민생이니 상생정치니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로 돌아서야 한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한가롭지 않다.
  •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인사동은 흔히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화랑에서부터 공예품이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문화의 향취가 풍겨난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거리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사동은 더욱 세련되고, 멋들어졌다. ●음식점 상호엔 멋들어진 우리말 화가나 도예가, 공예인, 문인 같은 예술인들이 터전을 삼아 노니는 곳에 어찌 멋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들의 발자취가 두루 머무는 곳에 멋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멋스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먹고 마시는 맛집들 또한 어찌 멋들어지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맛집들은 우선 상호에서부터 맛이 다르다. ‘오늘같이 좋은 날,千강에 비친 달, 바람 부는 섬, 소금인형, 황금비늘, 두레멍석, 오 자네 왔는가, 툇마루, 놀부가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북치구 장구치구, 사람과 나무, 우리 그리운 날은, 평화만들기, 달고둥, 보릿고개추억, 조각하늘, 좋은 씨앗, 달새는 달만을 생각한다, 뜰 앞에 잣나무, 아빠가 어렸을 적에, 낮에 나온 반달, 완자무늬, 머시 꺽정인가,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풍경소리….’ 얼핏 둘러봐도 가히 그 멋들어짐은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멋들어진 것이 어디 상호뿐이랴. 다양한 먹을거리 또한 멋들어져서, 은정이나 선천, 사천, 이모집 같은 전통 한정식에서부터 재첩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섬진강, 다슬기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풍류사랑, 홍어만을 전문으로 하는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 홍어천하, 사찰음식 전문의 산촌, 녹차대나무쌈밥이며 녹차너비아니 등 밥이며 요리에 녹차를 이용한 차이야기, 야채 커리나 마살라 같은 인도 요리의 작은 인디아, 된장비빔밥의 툇마루에 이르기까지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도 멋들어지지 않은 요리가 없다. 어쩌면, 인사동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 멋들어짐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이 멋으로만 머물지 않고 멋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런 멋은 이미 멋이 아니다. 멋들어짐이 지나치면 곧바로 건들거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건들건들, 건들거리면 자칫 사람 냄새를 잃고 만다. 만약 인사동 거리가 죄다 사람 냄새를 잃고 건들거리고 있다면? 인사동에 언제부터인가 40대 언저리의 중년여인이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이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10미터쯤 오르는 왼편 골목에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조그만 맛집을 냈다. 작은 뜨락(02-739-2218)이라는 상호인데, 원래 건물 옆에 버려진 골목이었던 것을 위는 차양으로 가리고, 건물 벽에 의지해 폭 1미터에 길이 5미터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폭이 너무 좁아 일반 탁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긴 나무판대기를 붙이고, 바닥에는 겨우 엉덩이를 걸칠 만한 간이의자를 놓았다. 이 집에서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한껏 몸을 웅숭그린 채 본의 아니게 면벽을 해야 한다. ●인사동 풍류객들의 ‘참새 방앗간’ 한 마디로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맛집에다가 주인 되는 노인자씨도 멋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주먹 움켜잡아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차림새. 한 술 더 떠, 먹고 마시는 소위 물장사가 난생 처음이어서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셈을 헤아리는 일도 서툴다.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님이 “여기 얼마요.”하면 “몰라요. 먹은 만큼 알아서 주세요.”가 대답이고, 대구와 동태라는 생선을 구별하지 못해 대구를 동태로 파는가 하면 손님이 계산을 않고 나가도 숫제 알아내지를 못했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작은 뜨락의 진가를 인사동의 눈 밝은 이들이 못 알아볼리 없었다. 툇마루의 바깥주인이자 ‘집도 절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떠도는 시인 박중식, 동숭동에서 작가폐업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가 배평모, 누구나 알아주는 시대의 낭만주의자인 시인 김사인, 한국판 비용으로 통하는 시인 김신용, 인사동 화단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588여인들의 사진전으로 이름을 날린 사진작가 조문호, 십수 년에 걸쳐 인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는 인도 안내서를 내고 아울러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전문가 정무진 등 소위 인사동의 풍류객으로 통하는 이들이 마치 고양이가 생선냄새를 맡고 찾아오듯 차례로 작은 뜨락에 모여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자씨는 물장사만 난생 처음인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라고는 벌어본 적이 없는 노인자씨는 돈을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이 붙은 이였다. 일찍이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큰스님 아래서 포교사 비슷하게 아시아 각국이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녔는데,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굶주린 현지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 30년 가까이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을 해온 셈이었다. 그런 그이가 어느 날 획하고 머리가 돌아 그만 맛집을 차려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인사동의 눈 밝은 풍류객들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되는 이의 사람냄새였을 터이다. 그런 그이들로서는 적어도 작은 뜨락이 그대로 망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작은 뜨락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이를테면 셈이 어두운 주인을 대신해 모자를 돌려 자신들이 먹고 마신 만큼 돈을 거두어 스스로 셈을 헤아리고, 한 접시에 5000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입맛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내고, 무엇보다도 작은 뜨락을 연락처 삼아 주인이 있든 없든 하루에 한 두 번은 꼭꼭 들렀다. 그리고 그이들은 마침내 작은 뜨락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술과 안주는 한 사람이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1차를 마감한다. 만일 차수를 변경하여 2차로 넘어가면 다시 모자를 돌려 1만원을 추가하는데, 절대로 외상은 없다. ●사찰음식 전수받은 된장찌개·들깨탕 작은 뜨락은 4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이 있어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술안주는 서산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로 부쳐오는 어리굴젓과 자연산 생굴이 있는데, 배춧속에다가 생굴을 쌈 싸먹는 맛이 신선하다. 그밖에 조기며 자반고등어 같은 생선구이며 생선찌개도 있다. 작은 뜨락에 처음 가는 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요술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는 일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풍류객들과 잠시잠깐 웃었는데, 낮술 한 잔이 어느 새 2차,3차를 넘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인사동 네거리에서 종로 2가 쪽으로 몇 걸음 걷지 않으면 덕원 갤러리 옆 골목 깊숙이 고샅길(02-734-3371)이라는 한식 전문집이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한옥의 사랑채를 개량한 듯 주방까지 합쳐 10평 남짓한 실내에 대여섯 개의 식탁이 있는 작은 집이다. 출입문 쪽의 벽을 터서 통유리창을 달고 거기에 진열해놓은 종발 같이 앙증맞은 도기들이 무슨 꽃들이라도 재잘거리며 피어나듯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달아놓은 화분들이며 실내장식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의 깔끔하고도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샅길 주인 되는 이는 박진숙·경숙 두 자매인데, 이중에서 언니 되는 박진숙씨가 도예가여서 이들 종발이며 요리에 쓰이는 접시와 그릇들을 모두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직접 구워낸 것이다. 동생인 경숙씨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원래부터 음식 솜씨가 뛰어났는데, 솜씨를 아낀 언니의 권유로 인사동까지 나서게 되었다. 고샅길의 특징은 요리에서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고샅길된장찌개(5000원)와 산사들깨탕(1만원)이 일품이다. 메주를 쓰지 않고 알콩 자체를 띄워 만드는 절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으로 담근 된장을 원료로 한 된장찌개는 한 입 넣는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게 그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에 대뜸 매료된다. 스님들의 보양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산사들깨탕 또한 예사로운 맛이 아니다. 곱게 간 들깨에 배추, 호박, 버섯, 두부, 거두절미한 콩나물을 넣고 약간 되직하게 끓인 산사들깨탕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히 별미일 터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먹을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이 두 가지 요리는 실제로 쌍계사에 있던 무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데 무산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한의사 출신으로 평소에도 사찰음식에는 깊은 조예가 있는 이였다. 이밖에도 5000원짜리 동태찌개와 야채비빔밥이 있고, 술안주로는 버섯전골(2만원)이며 닭매운탕(2만원)이 있는데, 서너 명이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 인정으로 우려내는 전통찻집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와 쌈지박 어름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면 산타페 입구 옆에 초당(02-738-4154)이라는 전통찻집이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의 한 쪽에 주인 되는 최정해씨가 평생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림 같은 자세로 신비한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곱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자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잊혀졌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깊어진 향기며 빛깔이다. 삶의 무엇이 한 여인을 저렇듯 깊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막막한 무슨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닐까. 손님이야 하루에 한 명이 들든 두 명이 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최정해씨가 지키고 있는 자리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어쩌다 든 손님들에게 깊은 손길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른다. 아주 잊혀진 듯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면 연꽃 모양의 작은 촛불을 물이 담긴 자기 잔에 켜서 차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촛불에 어둑한 실내가 일순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의 어둑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밝아진 마음으로 차를 들어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저 안으로 깊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비단 차만은 아니다. 홍삼말차라는 초당만의 특이한 차가 있다. 녹차 가루에 홍삼가루를 섞어서 약간 되직하게 물을 넣은 흡사 맑은 죽 같은 느낌의 차인데, 이것을 사발에 넉넉하게 마시고, 다음에 바위에서 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 만든 연둣빛 석죽차와 석류빛 오미자차를 마시고, 이어 솔바람차며 매실차까지 마신다. 차를 바꾸는 틈틈이 편강, 쥐눈이콩강정, 오미자 양갱으로 입가심을 해가며 대여섯 가지의 차를 마시고 나면, 삶의 무엇이 우리를 그다지 애면글면 안타까워하게 하랴. 이런 식으로 차를 순례하고 초당을 나설 때 잠자코 1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녹색공간] 에너지와 정의/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중국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가래를 뱉는다. 문화적인 특성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에너지가 부족한 게 주 원인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농촌에 살거나 농촌 출신이다. 농촌사람들은 몇 세대에 걸쳐 평생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 그래서 가래를 뱉는 습관이 생겼다. 이들은 왜 호흡기 질환을 앓을까. 먼지 탓도 있지만 겨울철 난방연료가 부족한 게 주된 이유다. 중국에는 석탄이 많이 난다. 그러나 석탄은 비싼 데다 대체로 국가가 운용하는 대규모 산업화 설비나 발전용으로 사용된다. 농가에서는 웬만한 경제력이 아니면 난방연료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차갑고 건조한 기후는 기관지에 악영향을 미친다. 중국 북부의 농촌은 겨울에 너무 추워 집 안쪽 벽에 하얗게 서리가 내릴 정도다. 이곳 부모들은 딸을 시집 보낼 때 사돈될 집의 안쪽 벽이 어떤지를 물어 본다고 한다. 벽이 하얗다고 하면 결혼을 안 시킨다. 땔감 걱정이 없는, 경제력 있는 집에 시집 보내야 고생을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부족에 따른 절박한 처지는 쿠바에서도 확인된다.1989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쿠바에 대한 에너지 공급이 갑자기 끊어졌다. 이로 인한 식량난이 극심해졌다. 소련에서 수입되는 석유가 하루아침에 절반으로 줄자 농기계들이 멈춰 버렸다. 농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곡물생산은 급감했고, 결국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식량난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정부는 닭 한 마리로 네 식구가 나흘을 버티는 요리법을 국민에게 홍보하기도 했다. 수도 아바나 근교에 소가 끄는 쟁기가 등장하고, 전국적인 유기농업 실험이 성공해 식량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아바나의 밤거리는 어둑어둑하다. 에너지는 국력이다. 한 나라의 물질적 발전은 에너지 수요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채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으며, 식량이 모자라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펌프를 작동하고 교실을 밝힐 전기가 없거나, 농기구를 움직일 디젤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에너지는 물처럼 생존의 필수품이자 권리인 셈이다. 에너지가 권리라면 사용의 형평성 문제가 고려돼야 한다. 즉 빈자(빈국)와 부자(부국)의 에너지 사용이 정의 차원에서 재고돼야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약 20억명이 생존 차원에서만 에너지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따지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1인당 12배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 에너지 사용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기후변화의 영향도 모든 지역이 동일하지 않다. 북반구의 에너지 부국들은 빈국들에 비해 영향을 덜 받거나 어떤 경우에는 덕을 보기도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의 섬나라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 나라들은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 내전, 질병, 홍수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막아낼 여력도 별로 없다. 한 나라 안에도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과 편하게 소비만 하는 지역의 전기요금이 똑같이 부과되는 경우에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에너지는 효율적으로 이용돼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에너지 이용과 이에 대한 결과도 사회 정의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태양이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비추는 것은 ‘에너지 정의’의 상징이 아닐까. 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1980년대 말 노태우정권이 수도권 4대 신도시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남에서 수원 가는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분당이라는 지명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치달리고 동쪽으로는 불곡산 산자락이 막아서서 남북으로만 협곡 비슷하게 길게 펼쳐진 보잘것없는 들판은, 그러나 신도시계획이 발표되면서 급기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분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의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수도권 4대 신도시 중에서도 서울이라기보다는 강남의 위성도시 비슷한 중산층 주거공간의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주로 강남지역에 사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너도나도 분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강남에 살던 이가 20평,30평대의 아파트를 팔아서 분당에 오면 40평이나 50평대의 아파트를 마련하고도 돈이 남아, 여분으로 중형 자가용에다가 골프 같은 레저용품까지 장만할 수 있었다. ●인구 40만 넘지만 자족도시로는 미흡 흔히 도시의 현상을 공부하는 이들은 위성도시가 그 어미도시로부터 단순하게 인구나 기능을 나누어 갖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충족되는 도시의 기능을 갖는 자족도시로 발전하려면 그 어미도시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식이라면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를 이용하여 불과 10여분 만에 오고갈 수 있는 강남과 분당은 서로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셈이다. 실제의 거리가 그럴진대 그 어미와 자식 사이의 문화적 거리는 어떠하랴. 비록 잠은 분당에서 자지만 그밖에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일체의 문화행위는 강남과 한 치의 오차도 없으리만큼 분당은 강남의 판박이였다. 분당은 지역의 특성에 있어서도 일산이나 평촌같은 다른 신도시들과도 달리, 강남 이외에는 주변에 서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전통적인 자연부락 따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고립된 공간 안에 갇힌 셈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험준한 불곡산 자락에 동서로 옥죄인 채 남북으로 뻗은 일종의 호로병 형상에 갇힌 분당은 애오라지 강남 한 곳으로만 숨통이 트여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분당 특유의 공간적 폐쇄성이 문화적 폐쇄성에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실 분당은 행정적으로는 성남시의 일개 구에 불과하다. 그렇듯이 행정상으로는 분명히 성남이 분당의 어미도시이다. 분당은 서울방향 이외에도 용인이나 수원에서 분당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빠지는 도로가 있지만, 분당사람들치고 행정상의 어미도시에 대한 문화적 취향 때문에 이 길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을 터이다. 도대체 성남은 어떻게 태어난 도시인가. 일찍이 1960년대 말 ‘불도저시장’이라고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무허가 판잣집 18만 채 중에서 우선 미관상 가장 볼썽사납던 청계천 일대의 판잣집들을 막무가내로 헐어낸 다음 바로 그들을 몰아붙여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면서 만들어낸 도시가 아닌가. 분당 사람들로서는 그런 성남을 어미도시로서 인정하기가 어쩐지 껄끄러운 기분인 것이다. ●강남의 판박이… 고유 음식문화 없어 신도시로서 입주가 거의 완료된 분당은 자체만으로도 이제 인구 40만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큰 도시가 되어 있다. 그런 큰 도시가 자족도시로서의 문화나 사회적 기능이 전무하다면, 어쩔 수 없이 괴물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 괴물스러운 모습은 음식문화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인구 40만의 도시에서 나름대로의 특성이 살아있는 음식문화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마을연수원 입구의 먹자골목, 야탑동 일대의 먹자골목, 서현동 삼성플라자 일대의 먹자골목, 정자동 일대의 먹자골목, 효자촌 일대의 먹자골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것이다, 하고 내보일 만한 분당만의 특색 있는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애오라지 보이는 것은 분당점이라는 분당만의 희한한 간판이다. 고마다래 분당점, 정성본샤브스끼 분당점, 하야미 분당점, 사누키보레 분당점, 미다래 분당점, 아이스배리 분당점, 무교서린낙지 분당점, 암사해물탕 분당점, 예닮골 분당점, 참치명가 분당점, 천하일품 분당점, 부뚜막왕뚜껑 분당점, 놀부보쌈 분당점, 명동칼국수 분당점, 동경샤브샤브 분당점, 만다린 분당점에서부터 이화주막 분당점, 사발에 술내리고 분당점, 밀밭 사이로 분당점을 거쳐 틈새라면이라는 분식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어미도시에서 유명한 음식점들의 분당점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이를테면 음식문화 또한 철저하게 강남이라는 어미도시를 향한 자식도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셈인 것이다. 분당점 일색의 자식도시 분당에서 당당하게 분당 본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자동에 있는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031-713-9777) 분당본점의 주인 되는 이는 신기종씨인데, 재미있는 것은 육남매라는 상호 그대로 신씨 일가의 6남매가 모두 돌솥밥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정자동 먹자골목 초창기에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내걸고 식당을 시작한 6남매 중의 둘째 신기종씨를 비롯해서, 첫째 신기원(031-703-9467)씨가 서현동 분당중앙교회 옆에 1995년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셋째 신기현(031-262-0908)씨 역시 1995년에 분당 건너편에 있는 수지의 상현지구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넷째 신승희(031-707-7243)씨 역시 1995년에 야탑동 지하철 야탑역의 1번출구 관보빌딩 뒤에 있는 먹자골목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다섯째 신정희(031-718-9878)씨가 1997년에 수내동에 같은 상호로 식당을 내고, 여섯째 신기천(031-206-6090)씨가 약간 늦은 1998년에 그동안 다니던 LG산전을 그만 두면서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낸 식이다. ●육남매 모두 같은 상호로 전문점 운영 이들 신씨 일가가 모두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로 식당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맨 처음 정자동에 돌솥밥 전문점을 차린 둘째 신기종씨의 예상외의 성공이 디딤돌이 되었다. 신기종씨의 부인 최순애씨는 원래 전주출신으로 솜씨가 남달라서 일찍이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는데, 최순애씨의 솜씨에다가 전통 전주비빔밥의 특색을 살려낸 영양돌솥밥이 손님들의 입맛에 맞아 호황을 이루자, 이에 고무된 신기종씨가 형제들을 불러 분당 일대에 신씨 일가의 음식왕국을 이룩한 것이다.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의 주된 메뉴는 역시 7000원짜리 전주영양돌솥밥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는 곱돌 돌솥에 전북 부안에서 생산된 쌀과 완두콩, 검정콩, 은행, 고구마를 섞어 밥을 해낸 다음에 달걀노른자를 고명으로 얹어내는데, 여느 돌솥밥처럼 다른 비빔그릇에 밥을 퍼내 야채와 함께 비벼먹고 누룽지는 뜨거운 물을 부어놓았다가 식사를 끝낸 후에 입가심으로 개운하게 훌훌 먹는 식이다. 이 집에서 비빔용으로 나오는 야채로는 상추겉절이, 돈나물, 콩나물이 있는데, 이 중에서 상추겉절이가 양념장과 함께 결코 6남매 외의 다른 돌솥밥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다. 적당한 크기로 손으로 일일이 찢은 상추에 영양부추와 참나물을 넣고 새콤한 소스로 버무리는데, 이 상추겉절이를 돈나물과 콩나물을 넣어서 고명으로 얹은 달걀노른자에 스윽스윽 비벼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세 가지 야채의 향기가 오래 남는다. 만일 야채가 부족하다 싶으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무시래기무침, 취나물무침, 유채나물, 도라지, 연근, 느타리나물 등을 더 넣고 비벼도 좋다. 곁들여서 된장국과 조기구이도 나오는데 조기는 비록 씨알은 적지만 맛은 빼어나서 돌솥밥을 비벼먹는 틈틈이 입맛을 바꾸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밖에도 전주영양돌솥밥에 불고기버섯전골을 곁들인 ‘육남매정식’(1만 2000원)이 있는데, 정다운 이와 더불어 식사와 술을 겸하는 데는 이것으로 넉넉할 터이다. 성남에서 분당으로 들어오는 야탑동 초입 여수동에 몇몇 갈매기살집들이 있다. 원래 분당이 생기기 전 광주군 돌마면에 속했던 여수동은 여수동이라는 마을 이름보다는 갈매기마을로 더욱 유명하여 자연부락 형태의 30여집이 모두 갈매기살 전문집을 할 정도였다. 이렇듯 여수동이 갈매기마을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마을에 있는 도축장 시설 때문이었다. 이 도축장에서 부위별로 육가공 되는 돼지고기 부속물 중에 전혀 돼지고기 같지 않게 맛이 뛰어난 갈매기살만 한 부위만을 메뉴로 하여 식당을 차린 것이 전국에서도 유명한 여수 갈매기마을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 후 분당이 개발되면서 여수동은 대부분 분당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도축장은 물론 갈매기마을도 태반이 사라져버렸지만, 다행히 네댓 집이 남아 갈매기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30여곳 성업… 네댓집만 명맥 유지 ‘유명갈매기’(031-752-2393)는 여수동 갈매기마을의 원조답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터전에서 오로지 갈매기살 메뉴 하나만을 고집하며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유명갈매기는 주인이 셋인데, 서로 형제 사이로 맏형 김성웅씨를 위시해서 김선호, 김선이씨 세 형제가 오순도순 식당을 꾸려간다. 갈매기살은 손님 취향에 따라 생갈매기살과 양념갈매기살로 나누어져 값은 모두 1인분에 9000원으로 같은데, 맛은 맛대로 뛰어나지만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가 통째로 나오는 양 또한 푸짐하다. 숯불에 굽는 갈매기살은 유명갈매기에서 만들어낸 깻잎전병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깻잎 위에 얇게 저미듯 둥글게 썬 무를 얹어, 깻잎과 무를 한 켜씩 정성스럽게 쌓은 다음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린 것이 깻잎전병이다. 이 깻잎전병에 참기름을 묻힌 갈매기살을 얹고, 마늘과 고추를 된장에 찍고, 파무침으로 마무리한 다음에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가 가히 절묘하다. 이밖에도 달리 상추며 깻잎, 고구마, 당근, 순무 같은 여러 야채들이 넉넉하게 나오는데, 야채들은 겨울 한 철을 뺀 나머지 세 철에는 집 뒤의 드넓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으로 내고 있다. 여기에 얼음을 동동 띄워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갈매기살과 술 몇 잔으로 배를 불리고 나오면 넓은 정원 가득히 매화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밤나무 등 갖가지 유실수들이 제철마다 환하게 꽃을 매달고 있어 덤으로 꽃구경도 할 수 있다. ■“갈매기살은 가짜없다” 돼지고기의 횡격막에 붙은 갈매기살은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불과 300g에서 5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희소부위다. 이를 아는 어떤 이들은 더러 갈매기살이 가짜가 아닌가 하고 의심도 하는 모양이다.‘유명갈매기’의 사장 김선웅은 어렸을 때부터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그런 의심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전국의 도축장 80여 곳에서 하루에 도축하는 돼지들의 마릿수가 적게 잡아 50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마리에 이르는데,1000마리를 평균으로 해도 8만마리라는 것이다. 이 8만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살은 합계가 모두 32t에 이르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갈매기살을 다른 부위와 함께 팔뿐 갈매기살만을 전문으로 파는 집은 전국적으로 따져도 불과 몇 군데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량이 얼마든지 남아돌아 갈매기살에 가짜를 쓸 이유가 없으니 안심하고 갈매기살의 쫀쫀하고 고소한 맛을 얼마든지 즐기라는 것이다.
  • [여성&남성] 부부공동재산제 오해와 편견

    [여성&남성] 부부공동재산제 오해와 편견

    ‘뒤웅박의 끈처럼 남편에게 매인 것이 여자의 팔자’라는 속담처럼 여성의 경제활동은 폄하되기 일쑤다. ‘돈이 곧 힘’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사회이지만 돈 많은 여성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나아가 경제적 주체로서 여성에 대한 시각은 노골적인 비하로 이어질 때가 많다. ●명의자만 재산처분 가능 그렇다면 탁월한 이브의 재테크 혹은 내조로 아담이 사과를 수확했다면 사과는 누구의 것일까. ‘부부 공동재산제’란 가정 경제의 공동주체인 부부의 수확은 두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상식에 다름아니다.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주부는 소비만 하면 된다는 인식으로는 실질적인 부부간의 경제적 평등권은 멀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부부별산제를 취하고 있는 현행 민법에서는 부부라도 명의자만 재산처분이 가능하다. 즉, 배우자가 이혼하기 전 재산을 감추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혼과 함께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여성을 주변에서 찾아 보기 어렵지 않다. 최근 이혼한 40대 여성 황모씨는 하루아침에 막막한 신세가 됐다.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던 아파트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몰래 바꿔 놓은 것. 황씨는 유일한 재산이 사라진 상태에서 재산분할 청구도, 위자료나 양육비도 해결하지 못한 채 두 아이의 양육만 떠맡게 됐다. 이미혜 현실요법전문가는 “굳이 이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부부간의 실질적인 평등은 서로의 노동력과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이름으로 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세금 감면의 효과를 본다. 주택 매매로 양도소득세가 발생해도 세율이 낮아진다. 양도차익이 1억원일 때 세율은 최고 36%가 적용되지만 부부 명의라면 양도차익이 5000만원으로 나눠져 세율도 27%로 낮아진다. 배우자가 사망해도 전체 재산에 대한 상속이 아니라 일부에 대한 상속세만 내면 된다. 또 부부간 증여는 3억원까지 공제가 된다. 부부간에 6억원짜리 아파트의 절반을 증여한다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등기 전 취득한 아파트 분양권도 절반을 증여하게 되면 취득세와 등록세를 낼 필요가 없는 이점이 있다. 또 부부가 함께 지분을 나누고 있더라도 남편 혹은 부인이 서로 동의하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공제도 똑같이 받을 수 있다.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부탁받은 보증 요청도 피할 수 있다. 부부의 공동명의인 탓에 일방적인 담보 제공이나 처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부간 애정-신뢰쌓기’ 가능 실질적으로 함께 이룩한 재산을 공동명의로 등기하면서 부부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하는 전업주부의 일은 가사노동부터 육아·교육노동까지 일생동안 계속된다. 2001년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정에서 생산되는 무보수 가사노동의 총 부가가치는 143조원에서 169조원으로 GDP의 30.0∼35.4%를 차지한다. 김정혜 서울 여성의전화 인권센터장은 “평등한 가정문화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가계경제의 생산주체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이미지 정복/심재희 지음

    수줍은 듯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와 수려한 용모로 대중을 사로잡은 존 F 케네디, 월가에서 ‘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휼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 세련된 우아함과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콧수염과 강한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히틀러….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들의 모습은 실체라기보다는 이같은 이미지다. 이미지란 전략적으로 자신을 꾸민 결과로 만들어진 시각적인 인상이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1991년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미지관리 컨설팅 분야를 개척한 심재희씨가 쓴 ‘이미지정복’(무한 펴냄)은 자신만의 강렬한 이미지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그 어떤 무엇이, 이들의 이미지를 만들었는가를 분석해낸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자신을 정확히 알고 전략적으로 이미지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저자는 “이미지란 한 사람이 축적해온 삶의 행적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릴 때부터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온 케네디는 사생활은 어지러웠지만 외적인 이미지 연출엔 능했고, 상류사회의 삶을 거쳐온 재클린 부비에는 스스로를 화려하고도 신비한 모습으로 꾸몄다. 이밖에도 에바 페론, 엘리자베스 1세, 대처, 나폴레옹, 처칠, 록펠러, 덩샤오핑, 서태후 등 16인의 명사들의 성장배경과 외모가 어떻게 이들의 성격과 이미지를 형성했고 대중에게 각인됐는지를 밝힌다. 구체적인 이미지 전략을 가르쳐주는 실용서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이미지를 끌어내야 한다는 작은 진리를 일깨우는 책.1만 4000원.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열린세상] ‘사목지신’의 정치를 바란다/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이 말은 요즈음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하소연이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치권에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청와대고 국회고, 여당이고 야당이고, 모조리 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대통령이 그토록 굳게 다짐했던 수도이전 공약이 위헌 판정이 나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또한 여야를 아울러서 정국을 매끄럽게 이끌어야 할 총리는 도리어 지나친 강경 발언으로 정쟁의 도화선이 되곤 한다. 그렇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는 이렇게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번 국회에서는 정쟁을 지양하고 정책대결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여당과 야당이 날마다 힘 겨루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들에게 민생이고 뭐고 안중에 없는 듯하다. 저질국회라는 오명을 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정치권이 이러다 보니 정국은 제멋대로 표류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아무런 믿음도 갖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아니한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어떠한 개혁이나 입법도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는 역사상 성공한 정치개혁의 사례들이 잘 방증해 준다. 특히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정치개혁을 주도했던 명재상 상앙(商)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진나라는 중국 천하를 처음 통일했던 시황제로 유명하다. 하지만 전국시대 중기까지 진나라는 원래 서북쪽에 위치한 후진국에 불과했었다. 상앙이 효공대에 총체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부국강병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추진한 변법의 성공에는 한가지 비결이 있었다. 사목지신(徙木之信)의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상앙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할 개혁안을 마련하였지만,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섣불리 공포하지 않았다. 성공의 열쇠가 백성의 신뢰와 국론의 통일에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먼저 진나라 도성의 시가지 남문 앞에 길이가 세길가량 되는 나무를 세워두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였다.“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 10금(金)을 주겠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뿐 누구도 감히 나무를 옮기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까짓 일에 10금이라는 거액을 줄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상앙은 다시 “이 나무를 북문에다 옮기는 자에게는 50금을 주겠다.”고 공포하였다. 그러자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그 나무를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바로 그에게 약속한 상금을 하사하였다. 이 사건으로 온 백성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백성의 신뢰가 탄탄함을 확인한 상앙은 그제야 야심에 찬 변법령을 공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변법의 단행에 따른 국론의 분열을 막기 위해 새로운 개혁법을 어기면 태자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길 서슴지 않았다. 그의 전면적인 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국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앙의 변법에 힘입어 진나라는 단번에 전국 7웅 가운데 최강국으로 도약하였다. 나아가 이 변법은 훗날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모든 정치개혁의 성패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 이러한 평범한 이치를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만 할 것이다. 특히 정부는 개혁정책을 입안하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이미 땅에 떨어져 버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번 공포한 정책은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전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당과 야당도 이제는 정쟁을 지양하고 정책대결을 하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되살아나고, 여야가 함께 상생(相生)할 수 있는 활로도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 [문화마당]타이타닉호의 침몰/김욱동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몇 해 전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영화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끈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을 터이지만 90여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뼈대에 화려한 로맨스의 옷을 입힌 것도 한몫을 톡톡히 하였다.1912년 타이타닉 호를 완성한 영국은 그야말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장사 타이탄의 이름을 따서 타이타닉 호라고 붙였다. 이 배는 단순히 호화 대형 여객선의 의미를 떠나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승리요 개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희도 잠깐 4월14일 대서양에서 처녀 항해를 하던 타이타닉 호는 뉴펀들랜드 근처에서 거대한 빙산과 부딪쳐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15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이 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해양 참사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영화나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환경 위기를 다룬 녹색 영화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타이타닉 호는 다름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이며, 이 호화 여객선을 마침내 대서양에 가라앉게 만든 거대한 빙산은 바로 환경 오염이다. 배는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는데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사랑에 빠진다. 마찬가지로 지구는 지금 온갖 환경 오염으로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데도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환경 위기를 부르짖는 환경론자나 환경운동가는 종교적 열정에 들떠 있는 광신도의 혐의를 받기 일쑤이다.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시사하는 바 자못 크다. 타이타닉 호는 선실은 물론이고 이제는 갑판 위에까지 물이 차기 시작한다. 배의 악단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으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연주한다. 그런데 물이 차는 바람에 악단은 연주를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데 종교도 큰 힘이 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대목이다. 몇몇 학자들은 지구는 아직 자정능력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오염을 그렇게 두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환경 위기에 따른 재앙을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환경 위기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꾸짖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인류가 맞부딪쳐 있는 환경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지구가 앞으로 50년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줄잡아 2050년을 재앙의 해로 잡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2050년이란 아마존 유역을 비롯한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열대 우림이 모두 파괴되는 시점이며,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가 완전히 고갈되는 시점이다. 바닷가의 개펄이 지구의 온갖 노폐물을 정화시키는 콩팥이라면, 열대 우림은 지구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더구나 열대 우림에는 아직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만 가지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또한 화석 연료가 완전히 고갈되고 나면 인류가 그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문명의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 있어 2050년경에 지구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바다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이 지구라는 배를 건져내야 한다. 건져낼 수 없다면 가라앉는 속도라도 좀더 늦추어야 한다. 배가 떠 있는 동안 인류는 지혜를 한데 모아 어떻게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스피노자는 일찍이 “비록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하였지만 지구가 멸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과나무를 심기 전에 사과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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