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하동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창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손님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휴식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집중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308
  • [인사]

    ■지식경제부 △지역특화발전특구기획단장 윤종욱△불공정무역조사팀장 이상준 ■국토해양부 ◇부이사관 승진△기획담당관 하동수<과장>△공간정보기획 사재광△간선도로 손종철△항만운영 신연철△항만지역발전 김철흥◇과장급 파견△지적재조사기획단 부단장 전만경△허베이스피리트 피해지원단 신연철 ■대한지적공사 △관리이사 양근우 ■하나은행 ◇본부장 승진△리스크관리그룹 배기주 ■대한제당 △부회장 이추헌△부사장 김영권 나승준△상무 윤현국 윤희동 ■TS푸드앤시스템 △대표이사 양청완 ■채홍사료유한공사 △전무 김창구 ■공주개발 △상무 김진용 ■TS개발 △상무 임철순
  • 반갑다 섬진강 연어 식구도 5배 늘었네

    반갑다 섬진강 연어 식구도 5배 늘었네

    전남 구례·광양, 경남 하동 일대 섬진강에 연어가 돌아왔다. 19일 전남해양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광양 다압면 고사리∼하동 악양면 평사리 사이 섬진강 하류에서 예년보다 1주일가량 빠른 지난 10일 올 첫 연어가 발견됐다. 요즘의 섬진강 수온은 17도 내외로 10월 말∼11월 연어 회귀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해양수산과학원은 올 한 해 200∼300마리의 어미 연어가 돌아올 것으로 추산했다. 그동안 섬진강 연어 회귀는 2007년 400마리로 가장 많았고, 지난해에는 59마리가 섬진강을 찾았다. 올해 회귀하는 연어는 섬진강 어류생태관에서 방류한 어린 연어들로 북태평양에서 3∼5년 동안 어미 연어로 성장한 뒤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돌아오고 있다. 연어는 알에서 12월쯤 부화해 치어 상태로 섬진강에서 3∼4개월 머문 뒤 다시 바다로 떠난다. 그동안 연어자원 회복과 조성·관리 등을 위해 1998년부터 15년간 어린 연어 537만 5000마리(섬진강 484만 5000, 탐진강 53만 마리)가 방류됐다. 섬진강 어류생태관은 올해도 회귀한 어미로부터 알을 채취, 부화시킨 뒤 어린 연어 20만 마리를 내년 3월 방류할 계획이다. 연어의 생리 생태, 성장단계별 특성 등을 연구해 어미 연어로 성장시키는 양식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독도 의미 되새기는 울릉군 ‘독도이사부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독도 의미 되새기는 울릉군 ‘독도이사부길’

    일본 국민의 대다수가 모르던 ‘우리 땅’ 독도는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 방문하며 우리 국민은 물론 한·일 국민 모두가 알게 됐다. 도로명주소 사업을 통해 강원 삼척시와 경북 울릉군 등 몇몇 지자체들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는 새로운 길 이름을 정했다. 삼척 정라항에는 이사부길이 있다. 수로부인길 주변에 이사부사자공원이 조성된 데 이어 인근에 이사부 장군 축제가 개최되는 정라항 인근의 길 이름을 ‘이사부길’로 이름지은 것이다. 이사부길은 지번으로 삼척 정하동 41에서 41-186을 잇는 도로이다. 주변에 어물시장과 수산물 공동활복장, 바다횟집들이 들어서 있어 삼척에서 회를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기존 도로명은 정라항길이었지만, 이사부역사문화축전이 개최되는 장소라는 점을 홍보하고, 우리 영토로서 독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사부길로 이름을 바꿨다. 이사부사자공원 곳곳에 설치된 각종 사자상도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 때 나무사자 깎기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북 울릉군 ‘독도이사부길’은 실제 독도에 있는 도로명주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새 도로명 이름을 공모해 2008년 8월 이름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울릉군 도로명주소위원회는 독도의 동도에 ‘독도이사부길’을, 서도에는 ‘독도안용복길’을 각각 새롭게 명명했다. 어부 안용복은 숙종 때 을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막부가 인정하도록 한 역사적 인물이다. 새 도로명 주소에 따라 독도 등대는 독도 이사부길 63번으로, 독도경비대 막사는 독도이사부길 55번으로 각각 새로운 주소를 갖게 됐다. 지난해 6월 독도 새주소 제막식에는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여하는 등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책 읽기(KBS1 밤 12시 40분) 방송인 이숙영은 고교 시절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며 순정을 바치던 개츠비에게 반해 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상과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섬세하게 표현한 ‘위대한 개츠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1 대 100(KBS2 밤 8시 50분) 개그계의 소문난 실물 미녀 신봉선, 샤우팅 창법의 1인자 가수 김정민이 각각 1인에 도전한다. 1인에 맞서는 막강한 100인 군단으로는 ‘연예인퀴즈군단’, ‘서울대 치과대학 조정부’,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남자 네일 아티스트 ‘맨사’, ‘여의도 주식쟁이 모임’. 그리고 74인의 예심통과자들이 함께하는 불꽃 튀는 승부가 펼쳐진다. ●엄마가 뭐길래(MBC 밤 7시 45분) 명수를 좋아하는 새론은 미선을 졸라 명수에게 과외를 받고 싶어 한다. 새론은 미선이 이를 쉽게 들어주지 않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미선은 꿈쩍도 하지 않고, 새론은 화장실에서 오히려 고립되어 간다. 한편 문희는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일수 손님에게 담보 없이 돈 200만원을 빌려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20분) 한참 뛰어놀 나이의 다섯 살 소미는 아직 걸음마를 떼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다리가 휘어 걷지 못하는 양측 족부 변형을 진단 받았기 때문이다. 소미에게는 두 팔이 두 다리이다. 기어 다니면서 끌린 다리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렇게 아픈 두 다리는 소미를 집안에 가둬버리고 말았는데…. ●장수가족 건강의 비밀(EBS 밤 10시 50분) 충남 서산시의 한 마을에는 유쾌한 웃음소리의 주인공 마호순 할머니와 아들 내외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 며느리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도, 밭일을 하는 시간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갈 만큼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즐겁고 바쁘게만 돌아간다. 하루 24시간 일과 공부에 푹 빠져 사는 할머니의 특별한 건강 비법을 소개한다.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남 하동 화개면의 밤나무골에 찰떡부부로 소문난 김치연씨와 최봉순씨가 살고 있다. 5년 전, 키우던 벌이 전염병으로 모조리 죽으면서 2억 8000만 원의 피해를 입고 그 충격으로 아내에게 병이 찾아왔다. 그렇게 아내 돌보랴, 밤 주우랴, 벌 키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밤나무골 김치연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 토지문학제 문학상 이나리씨 등 8명 선정

    2012 토지문학제 문학상 평사리문학대상 소설부문 당선작에 이나리(27·여·부산 금정구)씨의 ‘엄마의 점’이 선정됐다. 토지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원일)는 10일 올해 토지문학제 문학상 부문별 당선자 8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평사리 문학대상 시 부문 당선작으론 신윤서(47·여·부산 연제구)씨의 ‘유월 장마’가 선정됐고 수필 부문 당선작에는 최종희(50·여·대구 북구)씨의 ‘장롱 속의 구두’가 뽑혔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은 김채린(홍진고 2년·경기 군포시)양의 ‘방’(房)이 차지했다. 기존 문예지 등에 발표된 기성작품 가운데 선정하는 하동소재 작품상의 당선작에는 시인 강영환(62·부산 동구)씨의 ‘불일폭포 가는 길’이 선정됐다.
  • “반감기 최장 20년… 뼈까지 손상”

    시민환경연구소는 5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구미 불산 유출 사고의 피해가 인도 ‘보팔 참사’처럼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팔 참사는 1984년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 지역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폭발로 유독 가스가 누출된 사고다. 사고 후 3일간 1만명이 숨지고 1994년까지 총 2만 5000여명이 후유증 등으로 사망했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사람이 고농도 불산에 노출돼 뼛속에 불산이 잔류하면 반감기가 최장 20년이어서 뼈 자체에 손상이 올 수 있다.”면서 “특히 불산의 불소이온은 잘 분해되지 않으므로 토양과 식물에 남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산은 기체 상태에서 식물에 세포 괴사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토양 내 칼슘과 결합해 식물에 축적된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불산에 노출되면 피부 통증 등 화상과 호흡 곤란이 오고 심한 경우 심장부정맥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공장 근로자 5명도 불산으로 인한 전신독성이 사인이 됐다. 김성진 계명대 의대 응급의학과장은 “불산가스는 아무리 미량이어도 잠시도 노출되면 안 된다.”면서 “사고 인근지역 주민은 가벼운 감기 증상만 있어도 반드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증상이 없다고 방치하면 생명에 치명적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와 구미시는 발진 및 호흡 곤란 등의 증세 환자에 대해 심전도와 전해질 수치 검사, 흉부 엑스선 촬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적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 후 정부가 보인 안이한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국립환경과학원이 상황 파악을 안이하게 한 채 주민들을 곧바로 일상에 복귀시켰다.”면서 “규제 기관인 환경부는 환경과 관련한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는 편의제공 부서로 변질된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대구 김상화·서울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경남도 “수렵장 개설해” vs 시·군 “안된다”

    경남도 “수렵장 개설해” vs 시·군 “안된다”

    경남도와 일선 시·군이 수렵장 개설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경남도가 인접한 시·군끼리 묶어 광역 수렵장 개설을 권유하고 있으나 시·군에서는 가축 피해와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손사래를 치고 있다. 경남도는 밀양·양산·창녕 3개 시·군을 대상으로 오는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광역 수렵장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시·군이 반대해 무산됐다고 28일 밝혔다. 밀양시는 2005년 수렵장 운영 당시 인명 및 가축 피해 때문에 민원이 많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양산시 의회도 야생동물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적어 수렵장 운영 필요성이 낮고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창녕군은 따오기 증식 방해 등을 이유로 군수가 수렵장 운영을 거부했다. 수렵장은 시·도 단위로 개설되다가 2003년부터 시·군별 순환 개설로 바뀌었으나 경남도는 희망하는 시·군이 없어 해마다 어려움을 겪어 왔다. 경남도는 지난해 4월 3~4 시·군을 묶는 방식으로 수렵장 개설 권역을 확정지은 뒤 관련 지원 예산까지 편성했으나 시·군의 반대로 수렵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렵장 개설은 강제할 수 없는 임의규정으로 시·군이 협조하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 경남도는 내년에 진주·사천·남해·하동, 2014년엔 통영·거제·의령·함안·고성, 2015년에는 산청·함양·거창·합천 권역을 묶어 광역수렵장을 운영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남도는 수렵장 개설에 협조하지 않는 시·군에 대해서는 야생동물에 따른 농작물 피해에 대한 예산(야생동물 때문에 생긴 농작물 피해 보상 및 야생동물 피해 예방사업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남지역은 현재 유해 야생동물 밀도가 전국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 편이다. 특히 멧돼지는 2011년 밀도가 100㏊당 6.8마리로 전국 평균 4마리보다 2.8마리가 많다. 해마다 수렵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경북지역은 멧돼지 밀도가 1.2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동물 때문에 생긴 경남지역 농작물 피해액도 2009년 6억 4700만원, 2010년 12억 9400만원, 지난해 12억 1500만원으로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로고 디자이너 스테판 칸체프의 발견과 재조명’전 10월 17일까지 서울 수하동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2층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불가리아 출신 디자이너 칸체프는 로고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컴퓨터 도움 없이 문자나 이미지 그 자체의 힘을 오롯이 드러낸 로고 작업들을 한데 모았다. (02)2151-6520.
  • [사설] 교부세 더 타내려 위장전입 주도한 지자체

    위장전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공직에 나서는 이라면 으레 통과의례로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할 만큼 흔한 풍경이 됐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 아닌, 집단적 규모의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그 폐해가 자심함에도 둔감하기까지 하다. 엊그제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위장전입 사건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중차대한 일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경남 하동군 등 4개 지자체 공무원들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위장전입을 주도했다고 한다. 엄연한 범죄행위임을 알면서도 이 같은 도박을 감행한 이유는 자명하다. 인구가 10만 4342명 이하로 떨어지면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다른 선거구와 합쳐질 수 있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소외되고 지역발전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인구가 증가하면 1인당 약 100만원씩 주어지는 지방교부세의 유혹도 뿌리치기 어렵다. 요컨대 돈이 문제인 것이다. 지방재정의 열악함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영유아 보육대란에서 보듯 지방 재정난은 심각한 실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구 늘리기가 지자체의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라 해도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한 위장전입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무원이 일선 군부대를 방문해 사병들에게 위장전입을 독려하고 위장전입한 사람에게는 지원금까지 건넸다니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셈이다. 전방위적 불법·편법 양태를 보면 ‘토착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적발된 하동·진안·양구·괴산 등 4곳뿐만 아니라 전국적 현상일지 모른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기초 지자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부당하게 지급된 지방교부세는 환수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20년이 지났지만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인구 유입을 유도할, 지자체별로 특화된 경쟁력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 위장전입 주도한 지자체들

    지방자치단체들이 관할지역의 인구를 부풀리기 위해 위장전입을 조직적으로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일부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권익위는 “몇몇 지자체들이 조직적으로 위장전입을 추진한다는 부패신고를 받고 인구증가율이 높은 지역을 표본조사했다.”며 “공무원이 개입해 위장전입을 추진한 사례가 적발된 4개 군의 관련자 4000여명을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 이첩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인구를 부풀려 지방교부세를 더 타내거나 인구감소로 행정조직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이런 꼼수를 부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 하동군은 인구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전입 가구에 별도의 지원금을 주는 조례를 제정, 지난해 소속 읍·면으로 주소지를 옮겨온 636가구에게 모두 2억 6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가구당 평균 41만원꼴이다. 그러나 지난해 7~9월 석달간 전입한 3000여명의 약 75%인 2324명은 3~5개월 뒤 원래 주소지로 다시 옮겼다. 권익위 부패심사과 관계자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에 필요한 인구 하한선(10만 4342명)을 맞추려는 목적과 함께 1인당 약 100만원으로 책정되는 지방교부세도 더 많이 받으려고 군 차원에서 위장전입을 부추긴 의혹이 컸다.”고 지적했다. 전북 진안군도 수법은 비슷했다. 지난해 12월 유입된 431명 중 71%(306명)는 실제 군에 거주하지 않은 ‘유령 인구’였다. 이들 역시 대부분 서너달 뒤 원래 주소지로 옮겼다. 군청의 실·과 및 읍·면 단위로 전입목표치를 정한 뒤 실적을 군수에게 보고하게 하는 등 인구늘리기 경쟁도 벌였다. 그런 결과 한 공무원의 주소지에 전국 각지의 11명이 옮겨지기도 했다. 강원 양구군은 인구 뻥튀기에 군인들을 대거 동원했다. 지난해 7월부터 두달여간 3개면에서 늘어난 인구 346명 중 333명은 사병 등 군인이었다. 공무원들이 직접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을 영내 주소지로 전입시키는 수법을 썼던 것. 충북 괴산군에서는 관공서, 마을이장 집, 절, 식당 등으로 공무원을 포함한 60여명이 위장전입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기고]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마음가짐/심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처장

    [기고]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마음가짐/심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처장

    최근 우리 사회에는 청년 일자리와 함께 장년세대의 일자리 보장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쟁 심화와 기술발전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어느 계층이건 일자리를 얻고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부당해고나 비정규직 차별시정 등을 주업무로 담당하는 노동위원회에서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면서 산업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 있다. 판례와 관련 사례가 축적돼 있는 징계나 정리해고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2007년 이후에는 새로운 유형의 부당해고나 차별 사건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정년을 전후한 장년 근로자들의 일자리 문제, 그중에서도 장년 근로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업장에서 나타나는 혼선과 갈등으로 인해 접수되는 사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례를 보면 먼저, 노동조합이 회사와 합의해 퇴직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했지만 이들 근로자가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물론 노조 위원장이 재고용을 위한 노조의 노력을 설명하면서 해당 근로자들을 설득하는 모습도 있었다. 또 공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뒤 단순노무 업무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장년 근로자가 회사 내 갈등으로 인해 해고된 일도 있다. 관리직으로 일했던 근로자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사의 지시에 불응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수행에 대한 회사의 평가와 이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지 못하는 근로자도 있었다. 새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으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받게 된 데 대한 상실감을 명예훼손으로 생각하는 장년 근로자의 케이스다. 정년 후 재고용 근로자들이 제기하는 해고나 차별 문제를 접하면서 작금의 고용불안 시대에 장년근로자들이 보다 명예롭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 장년 근로자들은 일자리가 있고 사회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일 자체에서 보람을 찾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껏 경제적 이유에 중점을 두었다면, 정년 후에는 일 자체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합리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한 처우가 있을 때에는 적절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겠지만, 충분한 보수를 받던 안정된 시절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해야 할 상황이라면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상하 직원 및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과거의 직위와 신분을 벗어나 새 회사와 조화를 이루려는 자세이다. 탈권위주의와 수평화로 특징지워지는 지금의 사회에서 의사소통과 화합은 어느 근로자에게도 필요한 소양이라고 할 것이다. 일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 과거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자세 등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새로 맡은 일의 성과도 높이고 일자리를 더 오래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년 후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에서도 사려 깊은 배려가 요구된다. 가능한 한 근로자의 경험과 능력에 적합한 업무를 부여하고,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를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 업무지시와 협의 시에도 인격적인 고려를 하고, 상하동료 직원 간 소통에도 회사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취업자의 곤궁을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해서는 안되며, 관련 법령에서 인정되는 합리적인 차이 이외에 어떠한 차별적 조치도 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정년 후 재취업 근로자에 대한 부당처우, 차별 사례들은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노사가 그간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책임 있게 대처해 나간다면 회사와 근로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정년 후 재취업 성공사례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장년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속 성장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노와 사 모두의 올바른 인식과 대응이 절실하다.
  • [인사]

    ■대법원 ◇고법 부장판사△대법원 강일원△서울고법 황한식(수석) 이진만 이규진 권기훈 권택수 변현철△대구고법 유해용△부산고법 신광렬△광주고법 이은애(전주지법 소재지)△특허법원 배기열(수석) 김형두 김우진◇지법 판사△서울중앙지법 이형주△서울가정지법 이상무△서울동부지법 허경호△서울서부지법 황순교△서울남부지법 이원근(복직)◇고법 부장판사 겸임△법원도서관장(서울고법 부장판사) 조경란 ■환경부 ◇과장급 신규임용 △장관 정책보좌관 정세영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지철호 정중원 ■도로교통공단 △경영정보처장 정의연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경영관리본부장 백성기△연금사업〃 노일숙 ■한국산업단지공단 ◇지역본부장 △인천 이경범△경기 채병용◇실장△행정지원 최종태△신입지기획 이정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 김윤 ■충북도 △행정국장 강호동△혁신도시관리본부장 김경용△청주시·청원군 통합추진지원단장 곽용화△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김정선△총무과장 김문근△자치행정〃 이성수△체육진흥〃 정연철△농업정책〃 박은상△산림녹지〃 안광태△청주시·청원군 통합추진지원단 기획총괄과장 이학재△의사담당관 정헌성△환경정책과장 안석영△바이오밸리〃 정성엽△기획조정〃 경구현△의회운영전문위원 이홍신△산림환경연구소장 김석영△진천군 부군수요원 남용우△단양군 〃 허경재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장(조세재정연구소장 겸임) 최기호△도시과학연구원장 이승일△법학연구소장 노상헌△경영대학·경영대학원 교학과장 양재환△자연과학대학 〃 조윤희△법학전문대학원 〃 김희균◇학과장△기계정보공학 김태현△철학 김미영△생명과학 유권열◇센터장△법학전문대학원 학생지도센터장 김정환△도시과학연구원 도시사회연구센터장 안준희 ■한국방송통신대 △프라임칼리지 학장 윤여각 ■아주경제 △편집국 대기자(아주중국 대기자 겸임) 이춘성 ■신한금융투자 ◇신규 선임 △퇴직연금지원팀장 이동근◇지점장 전보△논현 곽병주△분당 유해훈△송파 우동훈△수원 이광연△신한PWM 스타센터 정광호 ■교보증권 ◇영업이사 신임 △OTC사업본부 김유성△OTC영업팀장 류병기 ■한화투자증권 ◇총괄 △Wholesale(법인영업) 이원섭△경영지원 이원규△자산관리(WM) 이석환◇본부장△전략영업 금세종△재경1지역 배준근△재경2지역 유명규△영남지역 박경수△충호지역 최덕호△신채널 김형창△WM전략 황성철△매스티지 이명극△글로벌영업 김현국△글로벌상품 이용제△채권 이용규△주식운용 예규창△파생운용 김용찬△Coverage 임찬익△경영지원 서종호△리스크관리 문상원◇상무△준법감시인 강희택△PB전략팀 박미경△Wholesale 신용인△고객자산운용팀 정기왕 ■코스콤 ◇신임 △구매업무실장 김두년 ■KG케미칼 △이사 김경묵 ■프레인글로벌 △부사장 박상현 ■재능교육 ◇겸임 △신규사업부문 대표이사 하동근 ■오리온그룹 ◇신임 △홍보담당 총괄 부사장 윤영걸
  • [인사]

    ■여성가족부 ◇승진 △가족지원과장 박동혁 ■특허청 ◇승진 <부이사관>△감사담당관 정우영△산업재산정책과장 문삼섭△정보기획〃 김희태△국제협력〃 권규우△상표심사정책〃 강경호△통신심사〃 김정옥△특허심판원 심판정책과장 오재윤◇전보 <과장급>△특허심판원 심판관 서을수<기술서기관>△기계금속건설심사국 원동기계심사과 정선웅△〃 공조기계심사과 이세경△〃 금속심사과 조병도△〃 건설기술심사과 김현우△전기전자심사국 반도체심사과 강병섭△정보통신심사국 통신심사과 김춘석 여원현△특허심판원 강동구 강정석 목승균 전영상 조광현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정헌율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염재호 ■대전대 △대학원장 송인창 ■서울여대 △대학원장 조경혜△학생처장(취업경력개발원장 겸임) 이병걸△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지원사업추진단장 김명주△산학협력〃 류기현△에코캠퍼스추진사업〃 이은희△학보사 주간(방송국 주간 겸임) 임정수△바롬인성교육연구소장 홍순혜△IT국제교육인증센터장 이웅재△언론영상학부학부장 주창윤△사회복지학과장 정소연△교육심리학〃 김종남△의류학〃 송미경△콘텐츠디자인학〃 최학현△서양화〃 김정한 ■숙명여대 △대학원장 송화순△특수〃 최병철◇대학장△문과 임혜경△이과 김재성△생활과학 서영숙△사회과학 안보섭△법과 이경열△경상 신도철△음악 손정애△약학 강영숙△미술 김현화◇처장△교무 김선민△입학 최영민△학생(르꼬르동블루-숙명아카데미원장 겸임) 전라옥△사무 이숙희△기획 박종성△대외협력 박천일△지식정보 이종우◇관·소장△도서관 오경묵△보건진료소 오승열△학생활상담소(성평등상담소장 겸임) 정선아◇원장△취업경력개발 유종숙△한국문화교류 문시연△교양교육 박인찬△국제언어교육 곽성희△아태여성정보통신 장윤금◇센터장△연구지원(산학협력부단장 겸임) 이영민△입학전형개발 전세재(연임)△교수학습 박소영△교양교육 이진아△역량개발 오중산△의사소통 이홍식◇실장△사회봉사(장애학생지원센터장 겸임) 배성한△평가감사 박정구△홍보 서수경 ■KT&G ◇부장 △마케팅기획 김상호△인사이트 이문봉△영업개발 이병태△구미 유완균△종로지사 시장관리부 김남권△김천공장 지원부 이완희◇팀장△에쎄 임왕섭◇영업부장△남서울본부 이운재△부산본부 장한상△전북본부 문영동△대구본부 정남식△충남본부 강용철△경북본부 정훈△경남본부 황성호◇지점장△마포 지훈△의정부 조남웅△동대문 윤용식△포천 김건태△남부산 신기현△김해 박해춘△울주 김태곤△대구 우일득△동대구 김대영△서대구 최한영△남대구 황기현△경산 석종무△경주 남충순△칠곡 김태중△김천 박운용△영천 이상리△수원 김영구△평택 최규산△오산 장영길△목포 김경동△영광함평 김성배△영암 이창훈△아산 이근우△서산 이동열△당진 이곤수△논산 권오중△보령 나기석△내포 이시우△진주 김판규△통영 유병윤△함안 함창기△고성 류형찬△거창 민필규△합천 하한수△하동남해 정영주△정선태백 서형선△전주 유원식△익산 이운수△남원 탁무선△김제 최종권△정읍 송철호△무주 이선철△상주 손병철△영덕 강정희◇지사장△울산 황광진 ■이데일리 △전무 정보개발국장 황인환△상무 정보사업국장 박윤성△이사 광고국장(사업국장 겸임) 문주용△이사 솔루션사업국장 한상원△사업국 부국장 여민규 ■JTBC △편성제작총괄 김영신△드라마총괄(드라마하우스 대표 겸임) 김지일△보도총괄(중앙일보 편집인 겸임) 김교준△광고사업총괄 이하경△大PD 주철환△교양국장 김창조△예능〃 김시규 ■SK 마케팅앤컴퍼니 <커뮤니케이션사업부문>△크리에이티브 솔루션본부장 이정락
  • 경남지사 보선, 벌써부터 예비후보들 난립

    경남지사 보선, 벌써부터 예비후보들 난립

    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는 정치인 출신과 행정관료 출신 후보들 간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분위기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두관 전 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지사직을 사퇴, 실시된다. 여야는 도지사 후보가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됨에 따라 지역 대선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물을 후보로 내세운다는 방침이다. 현재 새누리당 공천을 노리고 출마를 선언했거나 뜻을 가진 예비 후보는 10명이 넘는다. 자·타천 한다고 거론되는 인물까지 포함하면 20명을 웃돌 정도로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여당 성향이 강한 지역인 데다 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됐던 김 전 지사의 중도사퇴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어 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치인 출신으론 권경석 전 의원이 출마 선언을 했다. 김학송·김정권·홍준표·안상수 전 의원 등은 뜻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국회의원 낙천·낙선 인사들이 도지사 욕심을 내는 데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게 변수다. 권 전 의원은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거쳐 2선 국회의원(창원)을 지냈다.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행정·관료 출신으로는 하영제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이 출마 기자회견과 출판기념회를 한 뒤 바쁘게 뛰고 있다. 3선 단체장인 이학렬 고성군수는 지난 8월 25일 창원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뜻을 밝혔다. 박완수 창원시장도 오는 16일 출판기념회를 하며 출마를 선언한다. 박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 등에서 유력한 후보로 부각되나 현직 단체장이란 점이 걸림돌이다. 보궐선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현직 단체장 가운데 권민호 거제시장과 조유행 하동군수도 출마 가능성이 높다.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조윤명 특임차관도 12일 출판기념회를 가진 뒤 선거전에 뛰어든다. 김현태 전 창원대 총장과 이기우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경남도지사 권행대행을 맡은 임채호 행정부지사도 본인이 고사하지만 경쟁력 있는 후보로 꼽힌다. 야권 쪽은 민주당에서 장영달 전 의원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이근식 전 의원, 허성무 현 경남도 정무부지사, 통합진보당 권영길 전 의원, 강기갑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아직 출마를 선언한 인사는 없다. 민주당은 10월 중순쯤 후보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권자들도 정치인 출신과 행정관료 출신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엇갈린다. 김모(52·창원)씨는 “중앙 정계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는 정치인 출신보다는 행정 전문가가 도지사가 돼 도정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유권자는 “신망 받고 능력 있는 정치인 출신이 도지사가 되면 중앙 정부와 협조해 도정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촬영명소’ 종로, 관광명소로 키운다

    ‘촬영명소’ 종로, 관광명소로 키운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최근 ‘신사의 품격’까지 종로구가 TV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구는 지역 주민과 연계해 상권 활성화 전략을 가동하고 각종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기로 결정했다. 27일 종로구에 따르면 미국 할리우드에서 투자한 최초의 한국 영화 ‘런닝맨’에 지역 내 대표적 상업 거리인 관철동에서의 추격신이 담겼다. 구는 최근 원활한 영화 촬영을 위해 차량 통제와 주차 등의 행정 조치를 적극 지원했고 지역 상인회인 관철동 번영회도 현수막을 내거는 등 촬영에 힘을 실었다. 영화는 내년에 개봉된다. 첫사랑의 아련한 감성으로 올해 400만명의 관객 몰이에 성공한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누하동의 한옥마을과 창신동의 골목길 등이 담겨 올가을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을 예정이다.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촬영했던 부암동의 산모퉁이 카페는 방문객들의 요청으로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공간으로 변신해 운영되고 있다. 부암동은 ‘제2의 삼청동’으로 불릴 만큼 아기자기한 소규모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 촬영 명소라는 점을 활용해 관광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 됐다. 최근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신사의 품격’의 촬영 장소인 원서동의 건축사무소 ‘공간’ 사옥은 이미 구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더킹’ 등에서 한양도성 성곽이 등장해 외국 관광객의 발길까지 이끌고 있다. 과거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북촌 한옥마을의 중앙고등학교로, 한류 열풍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울연가’가 촬영된 곳이다.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일본 관광객이 찾고 있어 학교 앞 문구점이 연예인 사진을 파는 기념품 가게처럼 보이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겨울연가 방영 후 북촌 한옥마을은 종로의 대표적 관광 명소로 부각돼 드라마 ‘개인의 취향’,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등에도 등장했다. 김영종 구청장은 “최근 한류에 힘입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TV 드라마나 영화 속 촬영지를 둘러보러 우리나라를 찾고 있는 만큼 주변의 관광 인프라와 연계한 각종 테마관광 코스와 체험 상품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커버스토리-한국車 생산 50년] 1962년 조립생산 → 1976년 ‘포니’ 독자생산 기적

    [커버스토리-한국車 생산 50년] 1962년 조립생산 → 1976년 ‘포니’ 독자생산 기적

    오는 27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자동차 조립공장이 들어선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2년 8월 27일 연산 6000대의 생산라인을 갖춘 새나라자동차의 부평 공장(현 한국지엠 부평공장)이 문을 열었다. 한국이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했을 때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어떤 나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냉소적이었다. 사실 그들의 평가가 정상이었다. 소달구지가 화물의 주요 운송수단인 나라가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하지만 지난해 말 현재 자동차 수출은 629만 4427대, 금액으로는 675억 달러로 국내 수출의 12%를 차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조립 완성차 생산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연산 800만대로 세계 5위의 자동차 강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지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사람이 개를 물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많은 자동차 회사가 고꾸라졌고, 자동차에 인생을 걸었다가 참담한 좌절을 맞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자동차 산업이 있다는 게 자동차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새나라자동차, 日 블루버드 부품 받아 조립생산 1962년 8월 27일 한국지엠의 전신인 새나라자동차의 공장이 인천 부평에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산 6000대 자동차 조립공장이다.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받아 세미넉다운(SKD·부분 조립생산) 방식으로 1963년까지 2773대를 생산했다. 이에 앞서 1950년, 한국전쟁으로 초창기의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성장기를 맞는다. 부서진 군용 차들이 고물로 버려지면서 수리와 조립에 나서게 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시발자동차였다. 천막을 치고 망치로 두들겨 반파된 차들을 조합해 새로운 차로 만든 것이다. 1950년대 후반 150여개 수공업 기반의 자동차 조립업체가 난립하면서 당시 정부는 자동차공업 일원화 정책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새나라자동차다. 1961년 10월에 타이완을 방문해 자동차 업계를 둘러본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그해 12월 재일교포 박노정씨를 만나면서 새나라자동차 설립을 추진했던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산업과 아무 연관이 없던 박씨가 오로지 ‘돈벌이’로 공장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결국 3년 만에 새나라자동차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새나라자동차가 비록 시작과 결과는 안 좋았지만 우리 자동차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새나라자동차의 뒤를 이어 1962년 10월 기아산업(기아차 모태), 1962년 12월 하동환자동차공업(쌍용차 모태), 1965년 7월 신진자동차(한국지엠 모태)와 아시아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산업의 주역들이 속속 등장한다. 여기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67년 12월 자본금 1억원으로 현대자동차를 세운다. 설립 당시 이름은 현대모타였으나 곧 현대자동차로 이름을 바꿨다. 현대차는 아무런 기초 기술이나 준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승용차에서 트럭까지 모든 라인업을 갖추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포드 코티나와 20M 등 승용차와 버스, 트럭 등의 생산에 나섰다. 기술제휴업체였던 포드에 기술자들을 보내 연수를 시키는 한편 부품의 국산화에 돌입했다. 포드조차 3년이 걸려야 조립할 수 있다던 자동차를 현대차는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1호차 코티나를 만들어 냈다. 무모하지만 원대한 꿈의 실현을 위해 모든 직원들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다. ●한국, 전세계 생산량의 10% 점유 현대차는 1972년 포드와의 추가 합작협상이 결렬되자 곧바로 독자모델 개발이라는 제2의 무모한 도전에 나선다. 엔진, 변속기, 섀시 등 주요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제작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마침내 1976년 1월 현대차는 ‘포니’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이어 1985년 히트작 ‘엑셀’로 자동차회사의 입지를 굳힌다. 1998년 우여곡절 끝에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현대차그룹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자동차그룹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었다. 올해 현대기아차가 700만대를 생산 목표로 삼는 등 국내 완성차업체는 올해 800만대 이상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 7000여만대(2011년 기준)의 10%를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김용태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부장은 “숨돌릴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우리 자동차산업이 세계 5위에 오른 것”이라면서 “이제 제2의 도약을 위해선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 등 친환경차와 정보기술(IT)의 접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6·25 격전지 경남 하동군 동산리 호국 충혼탑 2014년 말까지 건립

    6·25 때 최초의 장군 전사자였던 채병덕(1916~1950) 육군참모총장이 전사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남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호국충혼탑이 건립된다. 경남 하동군은 14일 하동읍 읍내리 하동공원 안에 있는 기존 충혼탑을 대신해 6·25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인 적량면 동산리 산 25-1 일대에 새로운 호국충혼탑을 2014년 12월까지 건립한다고 밝혔다. 모두 31억원을 들여 8465㎡의 부지에 충혼탑과 애국지사·국군·경찰·한청기동대원 등 호국영령들의 위패 757위가 봉안된 봉안각, 경찰전적비, 한청기동대 전공충혼탑 등을 함께 건립한다. 채병덕 소장은 육군참모총장을 두 차례나 지냈으며 1950년 7월 27일 지형 정찰을 하다 북한군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군은 1971년 건립한 충혼탑과 주변 부지가 비좁아 이전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하하·별 11월 30일 결혼

    하하·별 11월 30일 결혼

    가수 하하(왼쪽·본명 하동훈·33)와 별(오른쪽·본명 김고은·29)이 오는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울가든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14일 하하 소속사 콴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면서 “공통점이 많아 서로 호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7~8년 전부터 연예계 동료도 지냈지만 평소 종교 등 공통 관심사를 나누면서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됐다는 것이다. 하하는 15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MBC드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결혼에 관한 구체적인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공천헌금 수사] 조기문 공천장사?… “공심위 자료 빼내 공천자에 건넸다”

    [공천헌금 수사] 조기문 공천장사?… “공심위 자료 빼내 공천자에 건넸다”

    조기문(48)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이 지난 4·11 총선 공천을 앞두고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 측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실무진을 통해 공심위 내부 자료를 빼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 전 위원장과 여의도 정가의 커넥션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조 전 위원장은 4·11 총선 출마자 선정을 위해 2월 20일 실시된 부산 공천 면접 전날인 19일에 면접 예상 질문 등 공심위 내부 자료를 이메일로 받은 뒤 이를 현영희 의원 등 부산 지역 일부 공천 신청자들에게 몰래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조 전 위원장은 부산 지역 정가에서는 유명한 정치 브로커”라면서 “박 전 위원장 측 A씨, 홍 전 대표 측 인사 등 새누리당 내부 깊숙이 형성된 인맥을 통해 (공심위) 내부 자료를 유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조 전 위원장이 공천 브로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뒤를 봐 준 배후를 규명하는 데 향후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공심위 내부 자료를 미리 본다면 높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 있으므로 내부 자료를 건네받은 공천 희망자와 조 전 위원장 간 검은돈 거래 의혹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선 당시 현 의원 캠프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조 전 위원장의 당 내부 인맥 때문에 현 의원도 조 전 위원장을 기용한 것”이라면서 “조 전 위원장이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지역 정계 관계자도 “공심위 면접 자료의 양이 아주 방대하다.”면서 “조 전 위원장이 빼내 주는 자료를 토대로 준비해 가면 회사 채용 면접 때 예상 질문을 미리 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월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 전 위원장은 경남 하동 출신으로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클린파워’의 부산본부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4년 권철현 전 의원이 부산시당 위원장일 때 홍보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 지역 정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홍 전 대표의 부산 지역 특보 역할을 하면서 새누리당 내부 인맥을 넓혔고 2007년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한국의 힘’ 부산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2) ‘단성호적’으로 본 노비의 삶

    [선택! 역사를 갈랐다] (22) ‘단성호적’으로 본 노비의 삶

    단성현(현재 경남 산청군)에 사노(私奴) 형제가 살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평민, 어머니는 어느 양반집 종이었다. 17~18세기의 ‘단성호적’에서 우리는 그들 일가족을 만난다. 역사의 주름진 그늘에 숨겨진 ‘노비 정체성’을 이야기하자.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구의 30~40%가 노비였다. 양반은 고작 10~20%였다. 그때 우리가 평민 또는 노비였을 가능성은 80% 이상이다. 노비 일가의 역사는 곧 우리들의 과거였다. ●1678~1789년 13개 호적 추적 노비의 역사를 쓰려고 1678년부터 1789년까지 작성된 13개의 호적을 뒤졌다. 흥룡 형제와 그들의 일가·친척에 관한 기록을 다 모았다. 6세대 167명을 알아냈다. 그들과 결혼했거나 그들의 상전으로 기록된 또 다른 600여명도 조사하였다. 모두 770명가량이었다. 17~18세기 흥종 일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호적이란 본래 무미건조하고 단편적인 기록이다. 이름, 나이, 가족관계 등만 사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정보들을 이리저리 모아놓으면 하나의 서사가 일어난다. 아무런 의미조차 없어 보이는 사실의 단편들이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미시사 연구의 즐거움이 있다. ●문태리의 종들 1678년 흥룡(당년 53세)과 흥종(당년 51세) 형제는 경남 산청군 문태리에 거주했다. 그들은 기혼이었고 슬하에 자녀를 두었다. 호적에 따르면 그곳에는 마흔 집이 살았다고 했다. 단성에서는 중간 크기의 마을이었다. 문태리는 이를테면 행정리였다. 실지로는 네댓 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골안땀, 동쪽토란땀, 비진동, 진태, 주막거리 등이 있다. 단성현은 토지가 비옥했다. 산수도 아름다웠다. 특히 적벽과 신안강은 절경이라 양반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인구와 농지면적으로 보면 작은 고을이었으나, 명문 양반이 많아서 문과 및 생원진사 합격자 수가 진주 다음이라는 호평이 있었다. 경남 서부지역에서는 선비 많기로 소문났던 고을이었다. 문태리 서편으로는 큰 내(川)가 흘렀다. 남강 상류였다. 강줄기를 따라 양쪽으로 문전옥답이 즐비하였다. 마을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북동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렸다. 밭은 주로 산기슭에 흩어져 있었다. 흥룡네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문태리에는 그들과 처지가 같은 노비가 아홉 집이었다. 호적에는 빠진 기록이 있기 마련이었다. 실제 숫자는 그보다 많았을 것이다. 남의 종노릇을 하였던 그네들은 주인집을 나와서 독립된 가호를 구성하였다. 양반들이 옹기종기 모인 진태 마을에는 주인에게 얹혀사는 노비들도 많았다. 1678년 문태리의 노비 인구는 46명으로 조사되었다. 전체 인구가 139명이었으니, 대략 3분의1이 노비였다. 평민은 스물한 집으로 노비보다는 많았다. 하지만 문태리에서 평민과 노비를 엄격하게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뒤섞여 살았고, 들판에서 함께 일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처지가 엇비슷했던 데다, 군역(軍役)이나 부역 같은 부담을 똑같이 담당하였다. 노비가 군역을 졌다는 말이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17세기 말에는 흥룡 형제처럼 주인집에서 멀리 사는 외거노비에게 병역의무가 부과되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주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노비에게 군역을 매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인집이 가까울수록 노비의 신원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노비에게 군역을 요구하려면 관청에서는 주인의 양해를 구했다. 물론 형식에 불과한 일이기는 하였다. 여차하면 노비와 평민이 서로 결혼하였다. 법으로는 금지된 일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난한 평민은 노비와 별다를 바 없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흥룡 형제의 경우만 해도 평민 아버지(양대생)가 맹씨댁 여종(덕개)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진태리의 양반들 양반들은 ‘진태’ 마을에 몰려 살았다. 박씨들이 주인이었다. 그들은 단성현의 최고 양반들끼리 모여 작성한 ‘향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과의 인연으로 잠시 그곳에 와서 사는 타성 양반들도 있었다. 18세기 말까지도 이런 사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양반의 서자는 평민들과 마찬가지로 군역을 졌다는 사실이다. 17세기 후반까지는 그러하였다. 하지만 18세기부터는 서자들도 그 의무에서 벗어났다. 평민이나 노비와는 달리 그들은 점차 양반 대접을 받았다. 17세기 말 문태리에는 서자까지 포함해 양반이 열 집이었다. 주민의 4분의1이 넓은 의미로 양반이었다. 거기서 만약 서자를 제외한다면 양반은 10%를 조금 넘었다. 한데 양반들 가운데서 재산이 많은 집은 거의 없었다. 벼슬을 한 양반도 없었고, 사역 중인 노비의 숫자도 약간명에 불과했다. 시골양반의 가세는 초라하였다. ●흥종 후손, 종살이로 살거나 도망가거나 1670년대 말 흥종의 어머니 덕개가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그에 앞서 일찍 세상을 떴다. 흥종의 아내 순대(당년 45세)는 건너편 청현마을의 최진사댁(최경) 종이었다. 장인과 장모도 그 집안 노비였다. 관습대로 흥종의 두 딸, 숙굴이와 화구리도 그 집안 종이었다. 화구리는 이미 시집을 갔고, 열 살밖에 안 된 숙굴이도 주인집으로 옮아갔다. 숙굴이는 최진사의 며느리, 과부 조씨의 시중을 들었다. 숙굴이는 이를테면 사역비였다. 그보다 2~3년 전 과부 조씨는 숙굴이의 이모 옥비를 시아버지 최진사에게 바치고 그 대신 순대와 숙굴이 모녀를 받았다. 청현의 최씨들도 단성에서는 이름난 양반이었다. 진사 최경은 1639년(인조17) 진사시험에 합격한 수재로 향안에 이름이 올랐다. 그 할아버지 최기종도 생원시에 합격해 가문의 명성을 떨쳤다. 세월이 한참 지난 18세기 말까지도 흥종의 처가 쪽 사람들은 최씨댁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특히 흥종의 처제 매월대의 자손들은 대대로 그러하였다. 매월대의 손녀 팔례는 진주로 이사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예외였다. 최씨댁은 형편이 곤란해지자 노비를 팔아치우기도 하였다. 1730년쯤 매월대의 손자 삼학의 주인은 한 마을에 사는 이만복이라는 양반으로 바뀌었다. 종살이가 싫어 달아나는 이들도 생겨났다. 1741년 매월대의 손녀 삼랑은 주인집(최덕령)을 떠나 몰래 하동으로 달아났다. 21년이 지난 1762년까지도 삼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찍이 1719년 아내의 고향 남원(전북)으로 도망간 매월대의 아들 광이도 끝내 붙잡혀 오지 않았다. 18세기에는 해마다 도망 노비가 증가하였다. 주인들이 가난해지자 그들은 노비를 통제할 힘이 약해졌다. 종들은 연고지로 도망을 쳤고, 주인들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붙들어 올 힘이 없었다. 종을 붙잡아 오려면(추노) 해당지역 관청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미약한 양반이 노비를 붙잡으려 나타나면 고을의 수령과 아전들이 심하게 방해하였다. 그들은 자기 고을의 세원(稅源)을 지키려고 애썼다. 이래저래 도망 노비의 수가 자꾸 늘어났다. 국가적으로나 도망친 노비 개인에게나 이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노비나 도망을 치지는 못했다. 흥종의 자손은 18세기 말까지도 여전히 종살이에 분주하였다. ●흥룡 후손, 18c후반 평지식인 부상 흥종보다 두 살 많은 형 흥룡의 자손들은 처지가 완전히 달랐다. 그들 중에는 누구도 더 이상 종살이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서히 문태리의 주인으로 성장하였다. 대대로 문태리에 모여 살며 마을 일까지도 좌우하였다. 두 형제의 자손이 고향에 눌러 살았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흥종의 아내 순대는 청현마을 최씨댁 종이었다. 그에 비해 흥룡의 아내는 양인, 즉 평민이었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따지고 보면 흥룡의 자손들도 서울에 사는 맹씨댁 종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한창 멀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양인으로 행세하였다. 18세기가 되자 흥룡의 자손 중에는 수공업자가 나왔다. 흥룡의 증손 양인필이 ‘옹장’(옹기장) 노릇을 하더니, 출가한 증손 양만득도 ‘인출장’(인쇄기술자)이 되었다. 그 뒤로 이 집안에서는 수공업자가 부쩍 많아졌다. 18세기 후반 숫돌을 만드는 ‘여석장’은 그들의 가업이었다. 그때 문태리에서는 숫돌 만드는 일이 유행했는데, 기술자의 대부분은 흥룡의 후손이었다. 돈을 제법 번 사람들도 나왔다. 그래서 돈 있는 흥룡의 현손자와 5대손들은 서원과 향교에 출입하며 원생 또는 교생 노릇을 하였다. 그들은 군역을 면제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양반대접을 받을 정도로 출세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들은 실력을 갖춘 평민지식인으로 부상하였다. ●비정규직은 ‘현대판 노비’ 진태리 사람들은 문태리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아 현지 방문을 통해 나는 1960년대까지도 문태리 뒷산에서 숫돌이 생산된 점을 확인하였다. 수백년 동안 주민들은 부업으로 숫돌을 만들었는데, 명품으로 거래되었다. 숫돌 덕분에 문태리의 경제형편은 이웃마을들보다 한결 좋아졌다. 이것은 진태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도 거듭 확인되었다. 현지에서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증언을 들었다. 1960년대까지도 진태 마을사람들은 문태리 사람들에게 반말을 썼다. 숫돌이나 만드는 천한 사람들이라 여겨서 그랬단다. 토박이 양반 박씨들은 아직도 문태리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는다. 20세기까지도 흥룡의 자손들은 단성의 양반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서는 조선후기에 양반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 가르친다. 19세기 말에는 양반이 8~9할이나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흥룡 일가의 역사는 그런 변화가 하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하였음을 증명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형태로 신분의 장벽이 존재한다. 학벌도, 재산도, 성별도, 나이도 차이가 아닌 차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현대판 노비인 비정규직 문제도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