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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해협 건너다 실종된 쿠르드족 15개월 아이 주검, 노르웨이 해변까지

    영국해협 건너다 실종된 쿠르드족 15개월 아이 주검, 노르웨이 해변까지

    노르웨이 경찰이 연초에 자국 해변에 떠밀려온 주검의 주인이 지난해 10월 영국 해협을 건너려다 일가족 넷이 참변을 당했을 때 사라진 이란의 쿠르드족 소년 아르틴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생후 15개월 밖에 안된 아이였는데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꾸미려던 아빠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랑 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을 출발해 터키와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에서 해협을 건넜는데 불귀의 객이 돼 저멀리 노르웨이 해변에까지 밀려간 것이다. 친척들은 슬픔과 혼돈을 표현하며 아르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고 영국 BBC는 7일(이하 현지시간)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노르웨이 당국은 그의 시신을 이란으로 송환해 안장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아르틴의 주검은 새해 첫날 노르웨이의 남서쪽 카르모이 해변을 순찰하던 두 관리들에 의해 발견됐다. 현지 수사당국에 접수된 아이 실종 신고를 뒤졌으나 맞아떨어지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입고 있던 옷가지의 레이블들은 그가 노르웨이 출신이 아니란 것을 확연히 보여줬다. 해서 유전자(DNA) 샘플을 검출해 오슬로 대학병원이 친척들 것과 대조하니 일치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라크와의 국경이 멀지 않은 이란 서부 사르다슈트에서 살던 아르틴은 지난해 10월 27일 아빠 라술 이란네자드(35)와 엄마 쉬바 무함마드 파나히(35), 누나 아니타(9), 형 아르민(6)과 함께 덩케르크 해변에서 보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도중에 배는 침몰하고 말았다. 15명의 다른 이민 희망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르틴의 부모와 형제자매는 모두 목숨을 잃었다. 웬일인지 아르틴의 주검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둘째 이모 니하얏은 노르웨이 경찰이 처음 접촉한 친척인데 이날 BBC 인터뷰를 통해 “기쁘면서도 슬프다. 그 아이의 주검을 찾은 것은 기쁜 일인데 그가 영원히 우리에게 남긴 것을 생각하면 슬프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다른 이모 샤빈은 아르틴이 “다른 가족과 다시 뭉치길” 바라왔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면서 서류 작업을 빨리 마쳐 아르틴의 주검을 사르다슈트에 송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아르틴 가족이 보트에 오르기 전 무함마드 파나히란 여성이 보트로 해협을 건너는 일은 위험하다며 여러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이들을 말렸던 사실이 BBC 보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여정에 올랐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들이 보낸 두 번째 메시지는 “만약 트럭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없다”고 적혀 있었다. 또 “난 수만 가지 슬픔을 가슴에 묻었다. 해서 이제 내 과거를 잊고 싶어 이란을 떠난다”는 문자도 있었다. 지난해 8월 경이었다. 덩케르크에 차려진 난민 수용소에 머무르는 빌랄 가프는 이들 가족이 떠나기 전 사나흘을 가깝게 지냈다며 아르틴이 난민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돌아봤다. 그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수용소를 돌며 보여줬다는 그는 “아주 행복한 아기였다. 사람들은 슬퍼한다. 그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우는 것 밖에“라고 말했다. 2500만~3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의 쿠르드족은 터키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박한 대우를 받는다. 정치적 박해에다 경제적으로도 차별 받는다. 해서 수만명의 이란 내 쿠르드족이 유럽으로 목숨을 내건 모험에 나서며 불법 알선조직에 돈을 내준다. 중동 지역에서 네 번째 소수민족이지만 단 한 번도 독립국 지위를 누린 적이 없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노래도 예능도 ‘2000년대 이즈 백’…MZ세대 ‘취향 저격’

    노래도 예능도 ‘2000년대 이즈 백’…MZ세대 ‘취향 저격’

    2000년대 보컬그룹 콘셉트 방송 인기싸이월드 배경음악 100곡도 리메이크기성세대엔 추억, MZ세대엔 새로움 줘“요즘 레트로 갬성이라 저렇게 입고 대학 가면 레알 ‘핵인싸’입니다.” 딱 붙는 민소매 상의에 부츠컷 청바지. 어딘가 모르게 과한 2000년대 패션을 소개한 ‘05학번 이즈 백’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대학생들을 겨냥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이 콘텐츠는 2000년대 학번인 밀레니얼 세대부터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 취향까지 저격한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 시장에서 2000년대가 대세로 떠올랐다. 1980~1990년대 문화를 새롭게 향유하던 ‘뉴트로’ 바람이 2000년대까지 넓어진 것이다. 코미디언 3명이 제작하는 ‘피식대학’은 2000년대에 유행한 장소, 패션 등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대부분의 영상이 조회수 100만을 넘었다. 유튜브 관계자는 “최근 유튜브에서 2000년대 당시 인기를 끌었던 패션이나 문화를 소재로 하거나 당시 감성이 느껴지는 콘텐츠의 반응이 좋다”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TV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는 2000년대를 풍미한 남성 보컬 그룹 SG워너비 콘셉트의 ‘MSG워너비’ 결성 프로젝트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회복했다. tvN스토리도 MZ세대를 겨냥한 LP바 콘셉트의 ‘곽씨네 LP바’를 선보이고 2000년대부터 활동 중인 코미디언 강유미와 슈퍼주니어 최시원을 진행자로 섭외해 세대 공감을 노렸다. 이종형 PD는 “LP를 즐겨 듣던 세대뿐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에 흥미를 가진 MZ세대 역시 타깃으로 다양한 세대가 시청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17일에는 99학번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도 첫 방송해 2000년대 감성을 자극한다.대중음악에서도 당시 발매곡의 역주행이 매섭다.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경연곡들과 SG워너비의 ‘라라라’, ‘내사람’ 등 관련 음원 9곡은 가온차트 디지털 차트 100위(7일 기준) 안에 포함됐다. 리메이크도 활발해 가수 폴킴, 벤, 마이티마우스 등도 2000년대 발라드 명곡들을 다시 불렀고, 가수 청하와 콜드는 그룹 샵의 2001년곡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을 리메이크해 8일 발표한다.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조이도 지난달 31일 발매한 첫 솔로 앨범 ‘안녕’을 2000년대 명곡으로 채웠다. 2001년 가수 헤이가 발표한 ‘쥬뗌므’ 등 6곡을 자신의 목소리로 실었다. 조이는 “엄마와 아이가 같이 공감하고 들을 수 있는 노래를 생각해 이 시기로 정했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싸이월드의 배경음악 100곡도 재해석된다. 가수 소유, 에일리, 황치열 등이 참여한 ‘싸이월드 BGM 2021’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슈퍼맨씨엔엠은 “MZ세대의 감성에 맞는 가창자들이 다시 불러 폭넓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PD는 “같은 문화를 보고 느끼는 시선이 다르다”며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 문화를 되짚는 레트로 열풍은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이지만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에겐 새로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할매, 여 ‘점빵’ 어디 갔는교?

    할매, 여 ‘점빵’ 어디 갔는교?

    1960~1980년대 동네 골목길에는 어디나 구멍가게인 ‘점방’이 있었다. 점방은 과자와 사탕,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소주·콩나물·설탕·라면·비누 등 모든 생활용품의 보고다. 아침 일찍 부모님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가고, 아이들은 용돈을 받으면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러 서로 내기하듯 뛰어가는 만물상회다. 어른들에겐 퇴근길에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이웃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몇 잔에 그날의 피로를 푸는 활력의 장소였다. 동네 점방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소중한 휴식 장소였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전국에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골목 곳곳에 편의점이 자리잡으면서 점방은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심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우리의 희로애락이 담긴 점방이 없어졌다. 어릴 적 소중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추억이 깃든 구멍가게는 세월과 함께 잊혀져 가는 옛 단어가 돼 버렸다.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은 점방을 돌아봤다. 동네에서 이른 새벽 제일 먼저 불이 켜지고 늦은 밤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곳이 구멍가게였다. 하루 일과를 마친 마을 주민들은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무렵이면 구멍가게의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점빵’ ‘연쇄점’ ‘○○상회’… 추억 속으로 라디오나 TV, 전화가 없고 신문도 귀했던 그때 그 시절 마을마다 바깥세상 소식을 가장 빨리 들을 수 있는 장소 또한 동네 구멍가게였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생필품 공급과 토론의 공간이었던 구멍가게는 사회 변화에 따라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점빵’, ‘연쇄점’, ‘○○상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구멍가게들은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돼 버렸다. 인구 감소로 농촌 마을 빈집이 갈수록 늘어나고, 대형유통매장이 시골 마을까지 진출해 구멍가게가 버티며 생존할 수 있는 틈새는 아예 없어졌다. 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농촌 마을에도 승용차를 가진 집이 많아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지 인근 도시나 가까운 대형유통매장에서 저렴하고 손쉽게 살 수 있게 됐다. 구멍가게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이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영세 상점은 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마을의 쉼터이자 뉴스센터 역할을 하던 구멍가게 앞 평상도 사라진 지 오래다. 농촌이나 구도심 경우에는 학생 등 젊은층이 거의 없고, 나이 든 어른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 동네 점방은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그나마 아주 드물게 남아 있는 구멍가게조차 지키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70~80대 고령층이어서 머지않아 문을 닫게 될 처지다. 실제로 인구 29만여명으로 광주, 전주에 이어 호남 3대 인구 도시인 전남 순천시에서도 점방이나 동네 슈퍼가 사라졌다. 겨우 동네 가게라는 조그마한 간판만 붙어 있는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난 6일 오후 3시쯤 시내와 3㎞ 정도 떨어져 있는 옥천동의 한 상점. 혼자 누워 있던 김모(85)씨는 “50년 정도 했는데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막걸리 한잔하러 가끔 오는 경우 말고는 손님이 없다”면서 “이제는 팔 물건도 갖다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이라고는 담배를 사러 오거나 막걸리·맥주 한 잔씩 마시러 우연히 들르는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가게 안에는 라면 8개, 부탄가스 20여개, 소주, 맥주, 홈키파 5개 등이 휑하니 놓여 있었다. 손님이 없어 경로당에서 놀다 방금 들어왔다는 김씨는 “혼자 살면서 집 지킬 겸 앉아 있다”며 “애들이 장사 그만하라고 하는데 문 닫으면 할 게 뭐가 있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하루에 한 명도 안 올 때도 많다”면서 “노느니 100원이라도 벌려고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번 앉아 있어 보면 손님이 아예 없다는 걸 느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도심에서 5㎞ 거리에 있는 상사면의 광주슈퍼 김모(81)씨 사정도 마찬가지. 60살부터 시어머니랑 같이 장사하다가 지금은 혼자 하고 있단다. 마트와 편의점이 생겨 동네 사람들조차 오지 않고 주변 편의점을 간다고 했다. 간혹 담배를 사러 오거나 여름에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게 전부라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치매 온다고 장사를 계속하라고도 하고, 말동무할 겸 문을 열어 놓고 있다”며 “진작 닫아야 했는데 계속하고 있어 창피하기도 해서 올해 안에는 그만두려고 물건을 안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마을을 몇 시간 돌아다니다 어렵게 찾아낸 시골 마을 구멍가게들에서 “요즘 매출이 어떠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한결같이 “온종일 가게는 지키고 있지만,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했다.●“수입 쥐꼬리… 물건 다 빠지면 그만둬야지” 경남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삼거리 도로가에서 11년째 구멍가게(삼거리슈퍼)를 하는 박모(55)씨는 “담배나 갑자기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오는 동네 단골 주민들을 보고 가게를 계속하고 있지만, 수입은 쥐꼬리보다 못하다”며 “주변 가까이에 하나둘씩 늘어난 편의점이 4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박씨 구멍가게에서 100m쯤 떨어진 마을 입구 도로가에는 유리로 된 출입문에 ‘슈퍼’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는 구멍가게를 겸한 허름한 주택 하나가 오래전에 문을 닫은 듯 빈 건물로 방치돼 있었다. 강주리 삼거리슈퍼에서 승용차로 한참을 달리다 법수면 백산리 백산보건진료소가 있는 백산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두 개의 구멍가게를 만났다. 두 가게는 50m쯤 떨어져 있었다. 한 슈퍼는 80대 노부부가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5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구멍가게다. 주인 서모씨는 “주변 마을 주민들이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노인인 데다 필요한 물건은 가까운 대형유통매장에서 구입한다”면서 “음료수나 생수, 과자를 찾는 사람은 하루 몇 명에 그친다”고 구멍가게의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서씨는 “나이 많은 우리 부부가 죽으면 이 구멍가게도 우리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근 길가에 있는 또 다른 구멍가게도 80대와 70대 노부부가 2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좁은 가게 안 상품 진열대에는 여러 종류의 담배와 과자, 간단한 음료, 면장갑 등이 진열돼 있었다. 가게 주인 장모(77)씨는 “옛날에는 밤마다 동네 주민들이 술잔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 모습은 오래전에 사라졌다”며 “수익도 거의 없어 벌써 그만둬야 했지만 하던 일이라 계속 문을 연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창원 강원식 기자 choijp@seoul.co.kr
  • 女중사 유족 “국선변호인,사진 유출… 악성 민원인이라고 비난”

    女중사 유족 “국선변호인,사진 유출… 악성 민원인이라고 비난”

    공군본부 법무실 등서 피해자 얼굴 평가‘女국선 우선배정’ 매뉴얼 어기고 男 선임 유족측 “女중사 회유 상관도 성추행 가담” 공군, 20차례 고통 호소 외면하고 방치사건 발생만 알리고 인적사항 보고 안 해성고충상담관, 지휘관에 상담 내용 알려공군은 충남 서산의 제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을 당한 고(故) 이모 중사가 신고 이후에도 20여 차례 고통을 호소했으나, 국방부에 보고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7일 군 당국에 따르면 이 중사는 지난 3월 피해 이후 20비행단 성고충 전문상담관에게 20여 차례 상담을 받았고, 4월 15일에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공군 양성평등센터는 국방부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4월 6일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에 성추행 사건 발생 사실만 알렸을 뿐이다. 성폭력 신고상담 접수 시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 등으로 ‘개요 보고’를 하도록 하는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을 위반한 것이다. 성고충 전문상담관은 이 중사의 상담 내용을 소속 대대장 등 지휘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사는 20여 차례 상담에서 상관의 회유와 가해자의 협박 등 2차 가해를 호소했다고 유족 측은 밝혔다. 대대장 등 지휘관이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를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2차 가해를 묵인·방조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수사를 통해 밝혀지긴 하겠지만, 상담관이 보고 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초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인도 적절한 조력과 보호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 중사의 인적 사항과 사진을 외부로 유출해 공군본부 법무실 등에서 피해자의 ‘얼굴 평가’를 하기도 하고 이 중사의 유족을 ‘악성 민원인’이라고 비난했다고 유족 측은 주장했다. 유족 측은 이날 국방부 검찰단에 국선변호사 A씨를 성폭력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공군은 또한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정식 신고한 지 6일 후인 3월 9일, ‘여성 변호사 우선배정’ 지침 등을 어기고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1년차 단기 군 법무관인 A씨를 국선변호인으로 지정했다. 단기 법무관은 의무복무를 대체하기 위해 3년간 복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공군은 성폭력 등 발생 시 피해자가 국선변호인 지원을 원하면 관행적으로 단기 법무관 2명을 번갈아 지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군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사건 처리 관계자(수사관, 군 검사, 국선변호인)를 여성으로 우선 배정한다”고 돼 있다. 유족 측은 민간 변호인을 선임하려 했으나 공군은 “증거가 확실하니 국선변호인을 선임해도 된다”고 안내했다고 이 의원은 밝혔다. A씨는 결혼과 신혼여행, 자가격리 등 개인 사정을 이유로 이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지난달 22일까지 한 차례도 면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국방부 검찰단은 7일 20비행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중사를 회유한 의혹을 받는 노모 준위와 노모 상사, 이 중사가 차량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 운전을 했던 A 하사의 주거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A 하사는 공군 수사에서 성추행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8년 지나도 바뀐 게 없다… 사람 죽어서야 수사”

    “8년 지나도 바뀐 게 없다… 사람 죽어서야 수사”

    즉각분리는커녕 수개월간 배에서 못 내려2차 가해 시달려… 폐쇄적 문화 바뀌어야 “군대는 그럴 줄 알았어요. 어쩜 내가 겪었을 때랑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서야 수사하는구나….” 7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며 사망한 공군 이모 중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김인영(가명)씨는 이 중사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해군에서 복무할 당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김씨와 이 중사의 경험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 부사관을 대상으로 상급자가 성범죄를 저질렀고, 신고하자 2차 가해에 시달렸으며 군은 은폐하기 바빴다. 김씨는 지난 2013년 해군 부사관으로 복무할 당시 상급자인 초임 간부로부터 강간미수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임관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일이다. 가해자인 상급자는 어머니와 고작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아버지뻘 간부였다. 김씨는 “저도 딱 이 중사 나이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8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이 하나도 없어 더 화가 난다”고 분노했다. 피해 신고 이후 김씨에게 벌어진 일도 이 중사와 판박이였다. 김씨는 2013년에 두 차례 피해를 겪은 후 성추행 관련으로 1차 신고를 했다. 피해를 신고하고도 수개월간 배에서 내리지 못했고 동료들의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김씨의 성추행 피해를 목격했던 같은 부대원 2명은 김씨를 향해 ‘그 사람이 얼마나 널 챙겼는데’, ‘선배 인생 조진 X’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군은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기 바빴다. 간부들은 김씨에게 “아무 일 없었던 거야. 별일 아닌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말하며 사건 은폐를 요구했다. 김씨는 이 중사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로 폐쇄적인 군대 문화를 지적했다. 김씨는 “가해자는 원·상사 이상이 대부분이고 피해자의 90%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초임”이라면서 “폐쇄적인 군 조직은 ‘내 식구 감싸기’가 심각하다. 당연히 초임을 찍어 내는 것이 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자신을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그나마 가해자가 처벌받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1심에서 실형을 받고 해임 처분됐다. 김씨는 “사건 당시에는 나도 모르게 뛰어내릴까 봐 갑판에도 올라가지 못했다”면서 “이 중사 사건을 접하니 남 일 같지 않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공군 여중사 분향소에서 눈물 흘린 해군 성폭력 피해자

    공군 여중사 분향소에서 눈물 흘린 해군 성폭력 피해자

    “아버지뻘 간부가 초임 부사관 성추행”2차 가해·은폐 시도 등 공군 중사 사건과 판박이“내식구 감싸려는 폐쇄적 군대문화 바뀌어야”“군대는 그럴 줄 알았어요. 어쩜 내가 겪었을 때랑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서야 수사하는구나….” 7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며 사망한 공군 이 모 중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한 여성이 이미 눈물에 젖어 축축해진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이 중사의 영정 앞에서 두 번 절을 올린 김인영(가명)씨는 펑펑 울며 지난 2013년 해군에서 복무할 당시 이 중사와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고 털어놨다. 김씨와 이 중사의 경험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 부사관을 대상으로 남성 상급자가 성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신고하자 2차 가해에 시달렸으며 군은 은폐하기 바빴다. 가해자와의 즉각 분리 등 기본적인 피해자 보호조치는 사치였다. “8년 지났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 김씨는 지난 2013년 해군 부사관으로 복무할 당시 상급자인 초임 간부로부터 강간미수와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임관한 지 1년이 채 안 된, 20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피해 내용은 이 중사가 겪은 것과 유사했다. 가해자인 상급자는 어머니와 고작 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아버지뻘 간부였다. 김씨의 신체를 만졌고, 억지로 방으로 끌고 가려고도 했다. 김씨는 “저도 딱 이 중사 나이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8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이 하나도 없어 더 화가 난다”고 분노했다. 신고 이후 김씨에게 벌어진 일도 이 중사와 판박이였다. 김씨는 2013년에 두 차례 피해를 겪은 후 성추행 관련으로 1차 신고를 했다. 가해자와 즉각 분리돼야 하지만 피해를 신고하고도 수 개월간 배에서 내리지 못 했다. 동료들의 2차 가해가 계속됐다. 김씨의 성추행 피해를 목격했던 같은 부대원 2명은 김씨를 향해 ‘그 사람이 얼마나 널 챙겼는데’, ‘선배 인생 조진 X’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이후 강간미수를 포함해 2차 신고를 하자 가해자와 그 무리들은 김씨가 지나만 가도 손가락질을 해댔다. “피해 신고 후에도 가해자와 수개월 같은 배 탔다” 군은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기 바빴다. 군은 김씨의 피해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김씨에게 2차 가해를 하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던 거야. 별일 아닌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라며 사건을 덮기 급급했다. 김씨는 자신이 말을 하면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더는 입을 열기 어려웠다.김씨는 “기본적으로 가해자들은 ‘별것도 아닌데’, ‘사람이 살면서 실수할 수 있지’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서 “계속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피해를 이야기해도 될까?’ 의문스러운 순간까지 온다.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힘들 줄 알았으면 입 다물고 있을걸’이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지난 2015년 해군을 떠나 다른 일을 찾았다. “피해자 90%는 ‘내식구 아닌’ 초임 여 부사관” 김씨는 이 중사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로 폐쇄적인 군대 문화를 지목했다. 문화를 바꾸려면 계급이 높은 사람들, 특히 장교 집단이 바뀌어야 한다고 짚었다. 김씨는 “가해자는 원·상사 이상이 대부분이고 피해자의 90%는 이제 막 군에서 첫발을 뗀 초임”이라면서 “폐쇄적인 군 조직에서는 ‘내 식구 감싸기’가 심각한데, 당연히 초임을 찍어내는 것이 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직 문화가 폐쇄적인 만큼 익명신고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피해자들 사이엔 “익명신고 하면 뭐 하냐, 나인 걸 다 아는데”와 같은 체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군내 성범죄를 덮으려는 경향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도입되면서 더 심해졌다. 국방부는 지난 2018년 군 내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며 무관용 원칙에 따라 한 번만 성범죄를 저질러도 강력하게 징계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김씨는 “한 번만 걸려도 큰 징계를 받으니 조심해야지가 아니라 한 번만 걸리면 큰일 나니까 더 은폐하려 든다”고 말했다. “성범죄 원스트라이크 도입 이후 더 은폐하려 해” 김씨는 자신을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자평했다. 그나마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나서 가해자가 처벌받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1심에서 실형을 받고, 해임처분 됐다. 김씨는 “사건 당시에는 나도 모르게 뛰어내릴까 봐 갑판에도 못 올라갔다”면서 “저도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이 중사 사건을 접하니 남 일 같지 않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세상과 거리두기… 자연과 거리 줄이기… 자신과 거리 없애기

    세상과 거리두기… 자연과 거리 줄이기… 자신과 거리 없애기

    회색 건물을 떠나 초록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EBS1 한국기행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행복을 일구는 이들을 그린 ‘놀면서 멍하니’를 7~11일 밤 9시 30분부터 5부작으로 방영한다.7일 방영하는 ‘수고했소, 당신’은 경북 문경 해발 10 77m 황장산 자락에서 흙벽을 두르고 너와 지붕을 얹은 집에서 살아가는 이창순씨 부부의 삶을 보여 준다. 이씨는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며 집 짓는 방법을 독학하고 청정한 이곳에 와 손수 집을 지었다. 건강을 되찾은 부부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산 정상으로, 골 깊은 계곡으로 놀러 다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어린 시절처럼’(8일)에선 천진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경기도 가평의 할머니가 사시던 옛집으로 돌아와 서까래와 아궁이, 문과 기둥을 그대로 보존하며 사는 고희정씨,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지으신 광주광역시의 집에서 아버지의 흔적이 가득한 곳곳을 보수하고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김창섭씨가 주인공이다. 고씨는 장작을 패서 불을 때 음식을 만들고,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고 논다. 김씨는 아버지가 조성한 대숲에서 죽순을 잔뜩 캐다가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손질해 먹고,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즐긴다. 고향 집을 떠올리게 하는 툇마루와 몬드리안풍으로 조각을 붙여 예사롭지 않은 감각으로 장식한 벽은 땔감을 재활용했다. 방 안에 만든 아궁이는 폐전자레인지로 만들었다. 9일에 방송하는 ‘산골남자 도시여자’에 등장하는 이태동씨의 집이다. 100만원짜리 중고 컨테이너 하나 들고 강원도 홍천으로 들어와 자연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산중에 안긴 정감 넘치는 오두막에서의 삶을 사랑한다. ‘꿈을 찾아서 여기에’(10일)는 평생 집 한 채 없이 살았던 이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노년에는 대궐만 한 집을 짓고 살겠다던 김재환씨 부부는 재활용 자재로 커다란 한옥을 지어 결국엔 꿈을 이뤘다. 부부의 취향대로 꾸민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엔 해발 1000m 이상의 백두대간이 남서로 뻗어 있어 병풍에 둘러싸인 듯 아늑한 충북 영동의 산골로 향한다.11일 마지막 회 ‘골짜기를 흐르는 물처럼’에선 물한계곡의 수려한 물줄기에서 살아가는 김선도씨의 삶을 보여 준다. 통나무 학교에서 집 짓는 방법을 배워 재활용 자재와 흙, 나무를 이용해 손수 흙집을 지었다. 또 갖가지 꽃과 과일나무로 예쁜 정원을 채우고 오래된 촌집을 보수하며 사는 최진숙씨 부부의 삶도 그림 같다. ‘놀면서 멍하니’ 즐기는 이들의 행복을 TV로 잠시 함께 누려 보는 일도 좋을 듯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공식 거스른 거장의 느와르… 강호의 의리녀를 맞이하라

    공식 거스른 거장의 느와르… 강호의 의리녀를 맞이하라

    ‘강호아녀’는 강호의 여자라는 뜻이다. 강호(江湖)는 강과 호수를 붙인 단순한 단어지만 그 쓰임은 폭넓다. 세속을 피해 은거한 사람들이 사는 ‘자연’을 가리키기도 하고, ‘세상 자체’를 비유적으로 일컫기도 한다. 특히 강호는 무협지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익숙한 용어다. 거기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은 본인이 몸담은 세계를 강호라고 칭하니까. 영화 ‘강호아녀’에서도 강호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조직폭력배 빈(리아오판)과 그의 연인 차오(자오 타오)의 대화를 통해서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빈: (권총을 들고) “이 바닥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어.”/ 차오: “그 바닥이 어딘데?”/ 빈: (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호.”/ 차오: “난 그 바닥 사람이 아냐.”/ 빈: (권총을 차오에게 건넨 뒤) “그거 알아? 지금 너도 강호에 있어.”/ 차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강호는 무슨. 지금이 옛날인 줄 알아?”/ 빈: “사람이 있는 곳은 다 강호야.” 그리고 두 사람은 들판에서 같이 권총을 잡고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차오는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강호의 여자가 됐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강호에서 절대적으로 떠받드는 가치가 하나 있다는 사실이다. ‘의리’가 그것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약자를 돕는 정의 등 이에 대해서도 여러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테다. 핵심은 분명하다. 의리의 관건은 맹세를 저버리지 않는 것,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간에 의리를 깨뜨리면 그 인물은 강호에 발붙일 수 없다. 이 작품은 초반부터 의리의 화신인 삼국지 관우상(像)이 등장한다. 과연 의리를 강조하는 강호를 넣은 제목을 가진 영화답다. 그러나 김용의 ‘소오강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무협지가 그러하듯이, 의리를 끝까지 굳게 지니는 인물은 거의 없다. ‘강호아녀’도 마찬가지다.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강호 운운하던 빈이 차오를 배신한다. 차오는 빈을 위해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고 5년 동안 복역했다. 빈은 면회 한 번 오지 않고 소식을 끊어 버린다. 출소 후 차오는 빈을 만나러 긴 여정에 나선다. 하지만 재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들 예상했다시피 그는 차오를 버리고 새로운 연인과 지내고 있었다.●복수의 감정마저 태워버린 서사 그럼 이제부터 차오의 복수극이 시작되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이것은 막장 드라마의 흔한 공식을 따르고 만다. ‘스틸라이프’(2006)와 ‘천주정’(2013) 등을 만든 감독 지아장커는 거장이다. 거장은 뻔한 서사를 거부한다. 그는 이 영화를 재가 될 때까지 의리를 견지하는 차오의 이야기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의 다른 제목이 ‘재는 가장 순수한 하양’(Ash Is Purest White)이기도 한 것이다. 얼마나 자기를 뜨겁게 태우고 또 태워야 애증이 그렇게 변할까. 이 고온은 잴 수 없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라이드온] “자네 점수는 S야”… 뒷좌석 사장님이 반했네

    [라이드온] “자네 점수는 S야”… 뒷좌석 사장님이 반했네

    푹신한 소파 앉은 듯 ‘비즈니스석 시트’리클라이너 누르니 43.5도까지 젖혀져고속주행 시 차체 자동 낮아져 안정감커브·유턴 때 뒷바퀴 회전 반경 낮춰줘노면과 상관없이 일관된 승차감 ‘최고’눈 감기면 계기판 카메라가 경고 신호‘S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플래그십은 함대의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기함’이란 뜻으로, 자동차·카메라 등 제품의 최고급 기종을 지칭한다. S클래스는 벤츠 세단 라인에서 A클래스(준중형), C클래스(중형), E클래스(준대형)에 이은 대형 세단이다. 이름은 독일어로 특급·최상위를 뜻하는 ‘손더클라세’(Sonderklasse)에서 따왔다. S클래스는 ‘사장님 차’로도 불린다. 여기서 ‘마이바흐 S클래스’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회장님 차’가 된다. S클래스가 운전자보다 뒷좌석 승객을 더 위하는 차라는 의미다. S클래스가 대표적인 ‘쇼퍼 카’(전용 운전기사가 모는 차)로 꼽히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도 지난달 3일부터 7일까지 개최한 ‘더 뉴 S클래스’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쇼퍼 드리븐’(기사가 운전하는 차량) 체험부터 진행했다. S클래스의 진면목은 뒷좌석에 앉아야 알 수 있다는 취지였다. 코스는 경기 용인 벤츠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충남 아산까지 약 70㎞ 구간, 시승 모델은 ‘더 뉴 S 580 4MATIC’이었다.운전석 대각선 방향 뒷좌석에 앉으니 푹신한 소파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트는 탑승자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마사지 기능을 작동하니 마치 안마 의자에 앉은 듯했다. ‘리클라이너’ 버튼을 누르니 조수석이 앞으로 이동해 발을 쭉 뻗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어졌다. 이어 받침대가 올라와 종아리를 받쳤다. 등받이도 43.5도 각도로 뒤로 젖혀져 편안히 누울 수 있었다. 마치 항공기 비즈니스석 같았다. 너무 편하다 보니 밀려오는 잠을 이길 수 없었다. 물론 키가 170㎝가 넘는 사람은 조수석에 발이 닿을 정도였지만 불편할 정도로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수석 뒷면에는 탑승자 전용 11.6인치 고해상도(FHD) 디스플레이가 붙었다. 내비게이션과 공기조절장치를 작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영화 등 각종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팔걸이에 장착된 삼성전자의 태블릿 PC는 차량의 각종 기능을 작동할 수 있는 리모컨 역할을 했고, 디스플레이와도 연동됐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면 일반 태블릿 PC처럼 인터넷에도 접속할 수 있다. 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에어매틱 서스펜션이 탑재돼 승차감도 뛰어났다. 서스펜션은 불규칙한 노면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고속 주행 시에는 차체가 자동으로 낮아져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더 뉴 S 580 4MATIC’은 8기통 가솔린 모델로 최고출력 503마력, 최대토크 71.4㎏·m의 성능을 갖췄다. 배기량은 3982㏄, 복합연비는 7.9㎞/ℓ, 판매가격은 2억 1860만원이다. S클래스 전 모델에서 선택할 수 있는 ‘리어-액슬 스티어링’(뒷바퀴 차축 조향) 기능도 눈길을 끌었다. 커브를 돌거나 유턴을 할 때 뒷바퀴가 최대 10도까지 움직이는 기능으로 회전 반경을 크게 줄여 준다. 스포츠카처럼 운전대를 돌리면 차가 확 꺾이기 때문에 좁은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때, 좁은 차선에서 유턴할 때 도움이 된다.반환점에서 돌아올 때에는 ‘더 뉴 S 400 d 4MATIC’의 운전석에 앉아 직접 주행했다. 디젤 모델인데도 특유의 거친 엔진 소음은 나지 않았고 정숙했다. 노면 소음도 잘 차단됐다. 무엇보다 도로 환경에 상관없이 일관된 승차감을 제공하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운전석과 보조석 사이에는 커다란 12.8인치 디스플레이가 장착됐다. 2세대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돼 음성 명령으로 공조장치를 작동하고, 창문을 여닫을 수 있었다. 운전자가 바뀌어도 자신만의 프로필을 불러오고 각종 기능을 세팅할 수 있는 지문·음성 등 생체 인증 방식도 적용됐다. 계기판에 내장된 카메라는 운전자의 눈꺼풀 움직임을 관찰해 시속 20㎞ 이상 주행 시 눈이 감기면 화면과 소리를 통해 경고 신호를 냄으로써 졸음운전을 방지해 준다. ‘더 뉴 S 400 d 4MATIC’에는 직렬 6기통 디젤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 330마력, 최대토크 71.4㎏·m의 힘을 낸다. 배기량은 2925㏄, 복합연비는 11.4㎞/ℓ, 판매가격은 1억 6060만원이다.
  • 나눔·치유 그리운 청년들아… ‘은평오랑’으로 오라

    나눔·치유 그리운 청년들아… ‘은평오랑’으로 오라

    “먹는 커뮤니티가 아닌 만들어서 나눠주는 커뮤니티를 합시다.”(백승준 서울청년센터 ‘은평오랑’ 청년지원매니저) 서울시와 은평구가 협력해 지난해 8월 개관한 청년지원센터인 은평오랑엔 ‘요리해서 세끼먹자’ 커뮤니티가 있다. 청년들은 이 커뮤니티에서 요리를 배우고, 만든 음식을 나눠먹으며 자연스레 대화와 고충을 나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오랜 기간 모임 진행을 할 수 없었다. 커뮤니티 청년들은 고민 끝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했고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동참했다. 지난달 29일 은평구가 진행한 만두 나눔 프로젝트 ‘놀면 뭐하니? 만두 가지러 오랑!’은 이렇게 기획됐다. 요리해서 세끼먹자 소속 청년 15명이 김 구청장과 함께 직접 만두를 만들고 1인가구 청년 50명에게 나눠주는 행사였다. 현장에서 직접 손만두를 빚고 전달한 김 구청장은 “행사를 통해 1인가구 청년들의 건강한 식습관과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한 피로감을 덜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만두 프로젝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윤지혜(25)씨는 “프로젝트를 통해 오래 보지 못했던 모임원들을 만나고, 요리를 하고, 은평구 1인가구 청년들에게 나눔도 하고, 은평오랑도 알릴 수 있는 1석 4조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은평오랑 운영 목표는 ▲청년 맞춤형 정보 연계·지원 ▲흩어진 정보를 모아 청년에게 제공 ▲지역 안에서 안전한 관계 형성·지속할 기회 제공 등이다. 인근 서대문구, 종로구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도 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 은평오랑은 강의, 회의, 운동, 모임 등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진 ‘쉬어방’,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 좋은 장소로 만든 ‘즐겨방’, 요리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공유주방’, 소규모 회의에 적합한 ‘이야기해방’ 등 공유 공간을 갖췄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공간을 빌려주고 기업 운영 실무교육도 지원하는 공유사무실 ‘꿈자람센터’도 있다. 좌석당 월 2만원에 사무공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시설을 무료 이용할 수 있다. 만두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석민(26)씨는 “은평오랑에 오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요리 실력도 늘고, 만두 프로젝트같은 좋은 취지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그들이 속세 벗어나 자연 향한 이유는...‘놀면서 멍하니’

    그들이 속세 벗어나 자연 향한 이유는...‘놀면서 멍하니’

    회색 건물을 떠나 초록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EBS1 한국기행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행복을 일구는 이들을 그린 ‘놀면서 멍하니’를 7~11일 밤 9시 30분부터 5부작으로 방영한다. 7일 방영하는 ‘수고했소, 당신’은 경북 문경 해발 1077m 황장산 자락에서 흙벽을 두르고 너와 지붕을 얹은 집에서 살아가는 이창순씨 부부의 삶을 보여 준다. 이씨는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며 집 짓는 방법을 독학하고 청정한 이곳에 와 손수 집을 지었다. 건강을 되찾은 부부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산 정상으로, 골 깊은 계곡으로 놀러 다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어린 시절처럼’(8일)에선 천진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경기도 가평의 할머니가 사시던 옛집으로 돌아와 서까래와 아궁이, 문과 기둥을 그대로 보존하며 사는 고희정씨,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지으신 광주광역시의 집에서 아버지의 흔적이 가득한 곳곳을 보수하고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김창섭씨가 주인공이다. 고씨는 장작을 패서 불을 때 음식을 만들고,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고 논다. 김씨는 아버지가 조성한 대숲에서 죽순을 잔뜩 캐다가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손질해 먹고,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즐긴다.고향 집을 떠올리게 하는 툇마루와 몬드리안풍으로 조각을 붙여 예사롭지 않은 감각으로 장식한 벽은 땔감을 재활용했다. 방 안에 만든 아궁이는 폐전자레인지로 만들었다. 9일에 방송하는 ‘산골남자 도시여자’에 등장하는 이태동씨의 집이다. 100만원짜리 중고 컨테이너 하나 들고 강원도 홍천으로 들어와 자연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산중에 안긴 정감 넘치는 오두막에서의 삶을 사랑한다. ‘꿈을 찾아서 여기에’(10일)는 평생 집 한 채 없이 살았던 이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노년에는 대궐만 한 집을 짓고 살겠다던 김재환씨 부부는 재활용 자재로 커다란 한옥을 지어 결국엔 꿈을 이뤘다. 부부의 취향대로 꾸민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이번엔 해발 1000m 이상의 소백산맥이 남서로 뻗어 있어 병풍에 둘러싸인 듯 아늑한 충북 영동의 산골로 향한다. 11일 마지막 회 ‘골짜기를 흐르는 물처럼’에선 물한계곡의 수려한 물줄기에서 살아가는 김선도씨의 삶을 보여 준다. 통나무 학교에서 집 짓는 방법을 배워 재활용 자재와 흙, 나무를 이용해 손수 흙집을 지었다. 또 갖가지 꽃과 과일나무로 예쁜 정원을 채우고 오래된 촌집을 보수하며 사는 최진숙씨 부부의 삶도 그림 같다. ‘놀면서 멍하니’ 즐기는 이들의 행복을 TV로 잠시 함께 누려 보는 일도 좋을 듯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코로나19 급증에 아들 머리를 ‘민머리’로 자르게 한 대만 여성

    코로나19 급증에 아들 머리를 ‘민머리’로 자르게 한 대만 여성

    얼마 전까지 만해도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던 대만에서는 변이바이러스가 확산해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그 수가 1만 명을 돌파해 현지 주민 사이에서도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창 놀기 좋아하는 아들이 외출하지 못하도록 한 여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아들을 미용실에 데려가 “밖에 나가고 싶지 않게끔 부끄러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그 결과, 완성된 헤어 스타일은 그야말로 민머리다. EBC TV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가오슝시에 사는 이 여성은 15세 아들을 미용실에 데려가 헤어 스타일을 민머리처럼 만들어 놨다. 헤어 디자이너 황 씨는 처음에 소년의 머리에 코로나19(COVID 19)라는 약어를 새겨놓으려 했지만, 그렇게 되면 친구들에게 오히려 자랑할 수도 있다는 어머니의 의견에 계획을 바꿨다. 그 대신 머리 윗부분만을 싹 밀어 민머리 같은 스타일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소년은 황 씨와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완성된 자신의 헤어 스타일을 보고 경악했다. 그 모습은 미용실 측이 공식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화제가 됐다. 사진을 보면 누가 봐도 민머리인데 현지에서는 이를 사오정 스타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년은 커트가 끝난 뒤 대성통곡하며 “이제 더는 밖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한 뒤 계속해서 운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과 함께 공개된 소식에 아들에게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코로나19 감염은 통제할 수 없다고 옹호하는 네티즌도 많았다. 이 밖에도 소년의 헤어 스타일에 “전 가오슝 시장과 비슷하다”, “모자 쓰면 해결될 일”, “어머니가 정말 가혹한데 이번만큼은 외출하지 말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이 머리는 노벨 감염병 예방상이 될 수도 있다” 등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신분증도 없던 장애인, 생애 첫 비행기 탄 기적 사연

    [여기는 베트남] 신분증도 없던 장애인, 생애 첫 비행기 탄 기적 사연

    병세가 심각한 부친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신분증조차 없는 장애인이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탑승한 사연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일상의 작은 기적은 주변의 온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 현지 언론 탄니엔은 최근 항공사 로컬 대표 부서장인 응웬 도안 찌 씨가 만난 매우 특별한 승객에 대한 사연을 소개했다. 프엉씨는 3년 전 북부 하이즈엉에서 버스를 타고 남부 호치민에 왔다. 거리에서 복권을 팔면서 모은 돈은 모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왔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갑자기 부친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급히 부친을 보기 위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하지만 공항 직원은 신분증이 없는 그에게 티켓 발급을 거부했다. 프엉씨는 "양 손가락이 없어 지문 인식이 안 돼 신분증을 발급받지 못한 것"이라면서 "부친이 위급한 상황이라 오늘 꼭 비행기를 타야 하니, 제발 사정을 봐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도안씨는 그를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면서 공항 직원들을 설득했다. 한편 티켓 가격이 90만동(한화 4만4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프엉씨는 주머닛돈을 모두 털어놓았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 나온 돈은 35만동(한화 1만7000원)에 불과했다. 프엉씨는 "얼른 나가서 친구에게 돈을 꿔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안씨는 그 자리에서 프엉씨를 말렸다. 도안씨는 "우리 모두 돈을 모아 봅시다. 조금씩 모으면 티켓값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 보안요원뿐 아니라 항공사 직원들도 십시일반 선뜻 돈을 보탰고, 금세 90만동이 모아졌다.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던 프엉씨에게 비행기 티켓 주어졌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낸 그는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으며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일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이즈엉으로 향하는 프엉씨의 모습을 바라보는 공항 직원들의 마음도 훈훈해졌다.  오랫동안 공항에서 여러 긴급 상황을 겪어봤던 도안씨, 하지만 이날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본인의 SNS에 사연을 올리자, 전국 각지에서 네티즌들도 “모처럼 따뜻한 사연을 접해 감동했다”,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함께 납치돼 형지복지원으로수용번호 ‘83-1XXX’ 하태식(48·가명)씨는 형제복지원에 두 번 입소했다. 10살 때 누나와 함께 트럭을 탄 남자들에게 납치돼 형제복지원으로 처음 보내졌다. 3년간 수용생활을 하다가 1986년 여름, 경비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아동소대 친구와 함께 담을 넘어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경찰 손에 이끌려 다시 형제복지원로 가게 됐다. 이듬해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하씨는 아동소대, 작업소대, 악대소대를 옮겨다녔다. 기합과 매질은 일상이었지만, 도망쳤다 다시 붙잡혀 왔을 때 가해진 폭력은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중대장에게 불려가 맞고, 소대장에게 불려가 다시 맞았다. 하씨와 같은 날 재입소한 30대 수용자는 집단 구타 끝에 목숨을 잃었다. 하씨는 퉁퉁 부은 몸으로 소대장이 동료의 시신을 옮기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유년 시절 4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두렵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커져만 갔다. 퇴소 후 앵벌이, 신문팔이, 봉제공장을 전전하며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금은 물류센터에서 주 50시간씩 일한다. 자신을 ‘밑바닥 삶’이라고 표현하는 하씨는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아 그간의 삶을 위로받고 싶다. 아래는 하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하태식 진술 내용: 저는 하태식입니다. 1983년 5월 어느날 저녁 부산시 가야동 육교 아래에서 친누나와 놀고 있을 때 트럭에서 건장한 아저씨들이 다가와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묻기에 제가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집에 태워준다면서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1.5톤 트럭 짐칸에 탔는데 냉동 탑차 같은 형태였고 밖에서 문을 잠글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 멀리 있던 누나가 “왜 이러세요”라고 하면서 급히 저를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은 누나까지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고 누나가 항의했지만 무지막지한 욕설을 하면서 집에 보내 줄테니까 가만 있으라면서 윽박 질렀습니다. 한 10분 흘렀을까 어느 철문 앞에 섰고 내리고 보니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83-1XXX번 제 수용번호 였습니다. 다음날 저를 데리고 간 곳은 많은 2층 건물들이 아래에서 위로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 27소대라는 2층 건물의 1층이었습니다. 그때 누나는 23소대로 끌려갔고 제가 누나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27소대 소대장이 신고있던 고무신을 벗더니 그 고무신으로 “뺀돌뺀돌하게 생겼네”라고 하면서 제 뺨을 힘껏 내려쳤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제서야 제가 지옥에 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기억에 형제원은 약 3000명의 인원이 수용되어 있었고, 총 28소대까지 있는데 1소대부터 20소대 까지는 성인소대 23소대는 유아부터 십대 초반까지의 여자 아동소대, 24소대는 십대 초반의 남자 아동소대, 25·26소대는 여자 성인소대, 그리고 27·28소대는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남자 아동소대였습니다. 한 소대에 약 60~70명이 있었는데 군대 체제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소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소대장, 그 밑에 분대장, 서무가 있었고 28개 소대를 총괄하는 사람은 중대장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생활은 기합과 빠따로 시작하고 끝났습니다. 제식훈련과 군가를 배웠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무수한 폭행에 시달렸으며 소대장 기분에 따라 아무 이유없이 폭행 당하는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소대장이 저를 찾았는데 약간 늦었다는 이유로 제 배를 걷어찼습니다. 저는 넘어지면서 제 얼굴이 철제 2층 침대 아래 모서리에 부딪첬는데 오른쪽 눈가 옆이 찢어져 중대장 사무실이 있는 선도부와 식당 사이에 있는 의무실에서 눈옆을 열바늘 가량 꿰맸습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제 얼굴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욕설과 구타 당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아도 늘 일상적인 일이었고 당연한 일인줄 알았습니다. 84년에는 형제원 자체 내에 학교가 세워졌는데 당시 저는 12살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다녔습니다. 3·4학년은 27소대, 5·6학년은 28소대 였는데 저는 1년이 지나 다음해 5학년이 되면서 28소대로 갔습니다. 개눈깔 소대장, 매일 원산폭격·한강철교·히로시마 고문 28소대 소대장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원산폭격·한강철교 등 다양한 기합이 있었는데 그중 ‘히로시마’라는 기합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2단 철제 침대에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발가락 끝을 철제에 걸고 두손은 바닥을 짚고 있는 것입니다. 10분~20분 기합받고 있으면 힘이 빠져 넘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소대장에게 엄청난 구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단체기합을 받거나 낮에 기합을 받으면 한시간 정도 지나면 기합을 끝내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1~2명이 개인기합을 받을때가 있습니다. 이때 소대장은 제게 기합을 주고 자기는 침대에서 쉬다가 잠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끝없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너무 힘들어 견딜수 없을 때면 저는 고육책으로 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수없이 내려쳤습니다. 그럼 코피가 났고 제가 큰소리로 울면 그제서야 잠에서 깬 소대장이 기합을 끝냈습니다.그 소대장 이름은 전OO이었고 한쪽 눈에 가짜 눈알을 박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사람을 ‘개눈깔’이라 불렀습니다. 욕설과 구타, 교회당 공사 같은 수많은 작업 등등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일일이 다 진술할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1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렉스 박사가 오는 날입니다. 형제원의 어린 원생들은 외국의 독지가들과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었고, 저를 포함한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과 자필 편지 등을 써서 미국으로 보내면 그쪽에서 각각 양부모로 결연을 맺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인데요. 제 기억에 렉스 박사는 그 대표였고 1년에 한번 형제원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렉스 박사가 오는 날 아동소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지급받아서 입고, 형제복지원 입구에서 렉스 박사를 환영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새 옷은 모두 반납해야 했고, 다시금 누더기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래도 맛난 과자를 먹을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결연을 하면 주기적으로 편지와 카드를 손글씨, 그림으로 보내는데 86년 여름에 몇천장의 그림카드가 필요해 원내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저와 정기훈(가명), 또다른 형, 셋이 뽑혀 병동 밑에 어느 밀실에서 셋이서 카드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를 뽑은 사람은 유OO씨로 수용자가 아닌 사회인이었는데 형제복지원 교회에 유년부 선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중대장과 결혼했습니다. 중대장 부인의 위치에 있기에 우리는 병동 아래에 있는 어느 실내에서 맛있는 간식도 먹고, 다른 원생들과 다르게 수백장의 그림을 그리면서 편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병동과 식당, 아동소대 가운데에는 작은 운동장이 하나 있는데 그 운동장 위 한쪽에 개금분교가 자리 했습니다. 그 주위로 하얀 담벼락이 둘러져 있었고 담 주위는 온통 산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모든 담벼락 위엔 항상 경비가 몽둥이를 들고 촘촘히 지키고 있었는데 물론 그 경비들도 소대장들과 마찬가지로 수용자였습니다. 개금분교 2층에 있는 교무실 위와 담벼락 위의 사이는 약 2미터 정도였는데 형제원에서 유일하게 담벼락과 가까이 있는 건물이었고 평소에 그곳은 항상 경비들이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훈과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쉬러 나와 운동장에 앉아 있었는데 담벼락 위에 아무리 살펴봐도 경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같은 반 친구인 김OO과 정기훈, 저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누군가 “저 교무실 건물타고 올라가 도망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고 다들 좋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정기훈이 먼저 1층 창문 창살을 타고 정말로 건물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김OO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도 얼떨결에 정기훈을 따라 창살을 타고 1층에서 2층, 2층에서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김OO은 겁을 먹고 아래서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교무실 옥상과 담벼락 사이는 2m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정기훈이 먼저 뛰어넘었고, 저도 떨어지면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 두려웠지만 곧 뒤따랐습니다. 처음엔 장난 반 진심 반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현실이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마음먹고 계획을 짰으면 후환이 두려워 절대 불가능했을 그 일이 무엇에 홀린듯 실제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경찰은 다시 지옥으로 끌고갔다 간신히 담을 넘고서는 죽어라 달렸습니다. 앞에서 정기훈은 제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라 하면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렸는데 눈앞에 큰 철조망이 산 전체에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철조망을 넘고나서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구나”라며 정기훈과 저는 기쁨에 들떠있을 찰나 저쪽에서 군인둘이 총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형제원 철조망 밖은 바로 군부대였습니다. 군인들에게 잡혀 사색이 된 우리는 그곳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졌는데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절대 형제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 사정했고 다행히도 그 분은 형제원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때가 1986년 7월 여름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고 막막했던 정기훈과 저는 신문팔이를 했습니다. 부산 양정4동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13~18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10여명 함께 지내며 한국일보를 길거리와 버스 안에서 팔았습니다. 신문 배달이 아닌 판매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버스 안에서 신문을 팔면 당가나 찌라시를 돌리곤 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항상 대선소주나 진로소주를 한 병 가득 꼴깍꼴깍 마시고 버스를 탔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신문사 소장님이 양정에 있는 BBS 학교에 보내준다고 해 숙식제공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11월 아침에 갑자기 순경 몇 명이 자고 있던 방에 들이닥처서 저희를 양정4동 파출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저와 정기훈, 그리고 2명 더 총 4명이 자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모여 산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저희 4명을 조사하더니 조금 있다 승용차에 태웠습니다. “어디 갈 곳이 있다”며 저희를 태웠는데 처음엔 얘기를 안하더니 한참을 달린 후 차안에서 형제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완강히 저항했지만 양정에서 형제원이 있는 주례는 차로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고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형제원에서 도망 나왔기에 다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명했던 것입니다. 저는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망설였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형제원에 점점 가까워 졌을 때 울며 불며 순경에게 사정했으나 소용 없었습니다. 결국 4개월 만에 다시 형제원에 잡혀 들어갔는데 정기훈과 저는 중대장 사무실에서 빠따를 수없이 맞고 또다른 곳에서 소대장들에게 죽도록 맞았습니다. 우리는 “나는 도망갔다 잡혀 왔습니다”라는 빨간 글씨가 적힌 마대자루를 입고 식당 앞에 온종일 서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몇백명씩 소대별로 줄서서 기다렸는데 한두시간씩 입구 앞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볼 수밖에 없었고 마치 북한에서 인민재판 하는거랑 비슷했습니다. 그때 우리 말고 20살 정도 되는 형도 도망갔다 잡혀왔는데 그 형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맞았습니다. 1차로 중대장에게, 2차로 소대장들에게 맞았는데 그 형은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다구리(*뭇매를 뜻하는 은어)를 당했습니다. 그 후 우리 셋은 작업소대인 14소대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작업을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고 저와 정기훈과 그 형은 거기서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얼마 동안 14소대 안의 침대에 온몸이 부어서 누워 있었는데 잠시 후 소대장이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났지만 옆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 형은 미동이 없었습니다. 소대장 지시에 따라 제가 흔들어 깨웠는데 자세히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소대장과 다른 일행들이 당황하면서 그 시체를 메고 어디론가 갔습니다.그 후 저는 13소대라는 음악소대로 보내졌습니다. 그당시 제 머릿속에 머물던 생각은 ‘다시 잡혀올 때 순경 2명과 함께 타고 있던 승용차에서 차문을 열고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얼마나 한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 승용차는 경찰차 처럼 안에서 열어도 열리지 않고 운전석에서 뭔가 작동해야만 열린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납치, 또 한번은 파출소 순경에 의해 형제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왜 기어코 저를 형제원에 보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형제복지원이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저를 위해 그 지옥에 보냈던 것일까요? 10살 때부터 근 4년의 형제원 생활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먹고 살기 위해 앵벌이, 껌팔이, 신문팔이, 사탕공장, 봉제공장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가까스로 버텨 나갔습니다. 형제원에서 함께 지낸 수용자 중에 사회에서 만나 함께 신문 팔며 생활해온 박OO 형이 있었는데 결혼도 하고 애도 있었는데도 형제원에서의 트라우마와 생활고로 비관하다 결국 자살했습니다. 저 또한 살아만 있을뿐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배운 것 가진 것 하나없이 사회 밑바닥 삶을 살면서 항상 피해의식과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늘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초라하다는 생각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은 저를 부정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날 형제원에서 겪은 피해와 제 비참한 삶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부산에서 형제원 근처에 살았던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아직까지는 형제원 출신 피해자 중에 사람답게 번듯하게 사는 사람을 본적 없습니다. 늘 그렇듯이 힘 있는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힘 없는 피해자들은 소외된 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당연한 것입니까? 무법천지와도 같았던 지난날 국가와 개인이 행했던 잘못을 청산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배상함으로써 말끔히 해결해주는 것이 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높으신 분들의 당연한 의무라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물류센터에서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 걱정에 허덕이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단란한 가정, 좋은 직장은 제게 꿈같은 일일 뿐입니다. 34년 전에 형제원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번에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동안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맘껏 해보면서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온 제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두서 없는 글 이만 맺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누워 놀고 먹으니 좋지 아니한가” 中공산당이 두려워하는 탕핑족

    “누워 놀고 먹으니 좋지 아니한가” 中공산당이 두려워하는 탕핑족

    와이셔츠에 타이까지 매 직장인처럼 보이는데 자리 깔고 누웠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인구 절벽’이나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게 여긴다는 탕핑(躺平)족이다. 글자 그대로 늘 몸을 반듯이 누이고 아무것도 안한다는 뜻이다. 우리네 삼포족(연애·결혼·출산 포기)이나 오포족(취업·결혼·연애·출산·내 집 마련 포기)을 떠올리면 된다. 중국 정부는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자녀를 셋까지 낳을 수 있도록 하며 40여년 만에 사실상 산아 제한을 폐지했는데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중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취업할 즈음부터 인생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일자리가 줄어 젊은이에게 훨씬 많은 노동시간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도 이들이 노동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고 영국 BBC는 4일 전했다. 은퇴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곱절은 늘어 젊은이들의 노동으로 먹여 살리는 사회경제 구조에 진절머리를 친다는 분석도 있다. 웨이보를 비롯한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탕핑이 바로 정의’란 글이 큰 화제가 됐다. 글을 쓴 20대 청년은 자신이 2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달마다 200위안(약 3만 5000원)만 있으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더라고 했다. 매일 두 끼만 집에서 먹고 낚시, 산책 등 돈이 안 드는 여가를 보낸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면 저장성의 영화 촬영소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한 뒤 그 돈으로 몇달을 또 버틴다는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일해봤자 사회시스템과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매일 996 근무(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를 하면서 착취만 당하고 결국 남는 건 병에 걸리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일부 누리꾼은 “내가 누우면 자본이 절대 나를 착취할 수 없다”거나 “사회가 험악하니 내가 먼저 누울게, 또는 “탕핑은 중국 젊은이들의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라고 찬동했다. 관영매체와 관변 학자들은 “집도 사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생존 기준만 유지하며 남의 돈을 버는 기계가 되지 않겠다는 것은 인류 문명 사상 가장 속절없는 저항“이라고 개탄했다.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는 ‘탕핑은 부끄러운 일, 정의가 아니다’ 제목의 논평을 게재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며 젊은이들이 탕핑을 선택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며 부지런히 일해야만 꿈이 이뤄질 수 있다”고 타일렀다. 이어 “중국은 세계 최고의 인구 대국으로 경제 전망 또한 매우 밝다“면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탕핑을 선택한다면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칭화대의 한 교수는 “탕핑족은 부모에게도 미안하고 열심히 일하는 납세자에게도 미안해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웨이보는 #탕핑 검색을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게을러서 탕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대가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괴감도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전시의 집값과 소득의 비율은 43.5다. 즉 43년 동안 먹지 않고 일해야 선전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집을 사기 힘든 곳인 셈이다. 베이징도 이 지수가 41.7이다. 왕이란 실험실 요원은 AFP 통신에 “이력서 내는 일이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 24세 청년은 “사회에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면 훨씬 풀어진 삶을 원하기 마련이다. 탕핑은 죽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난 여전히 일하고 있다. 다만 과다하게 몸을 뻗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사실 비슷한 얘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6년 중국 배우가 90년대 시트콤을 본따 비슷한 놀이를 했다. 이듬해 젊은 중국 누리꾼들은 계란 노른자처럼 축 늘어진 일본 만화 캐릭터 구데타마에 열광하기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목포 삼학도 ‘5성급 호텔‘ 건립 놓고 찬반 논란

    “관광 활성화를 위해 호텔을 건립해야 한다”VS “시민 모두의 쉼터로 남겨둬라” 전남 목포 삼학도에 ‘5성급 호텔’ 건립 사업을 놓고 시와 시민단체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4일 목포시에 따르면 삼학도를 관광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5성급 호텔건립을 위한 민간사업자 모집 공고를 냈다. 시는 삼학도 전체면적 57만4000여㎡ 중 육지부 11만㎡와 해면부 9만5000㎡ 등 옛 석탄부두 일원 20만5000㎡에 대한 기존 공원계획을 유원지로 변경도 추진 중이다. 삼학도를 호텔과 위락시설 등을 갖춘 체류형 관광지로 변모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삼학도가 하당 평화광장~삼학도~유달유원지~북항의 노을공원을 잇는 해안라인의 중심인 만큼 관광객 유치의 최적지로 꼽고 있다. 1998년 결성된 삼학도보전회는 최근 낸 보도자료에서 “삼학도 복원화 사업의 완성을 위해 민자라도 유치해야 한다”면서 시 계획에 동조했다. 보전회는 “삼학도의 복원화만이 능사는 아니며 어떤 선택이 목포 시민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해야 할 때”라며 “이제 삼학도는 복원화를 넘어 목포의 미래를 이끄는 관광자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목포환경운동연합은 4일 “삼학도는 목포시민 모두의 것으로 삼학도 호텔 건립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은 “그동안 삼학도 복원화 과정에서 한국제분 등 기업들에 수백억원의 보상비를 주면서 이전시켜놓고 느닷없이 민자를 유치해 호텔을 짓고 위락시설을 만든다고 하니 실로 아연실색할 일”이라고 반대했다. 이어 “목포시는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 조성 면적의 50%를 공공시설로 조성해 이용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할 계획이라는데,일반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공간으로 계획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목포의 상징인 삼학도는 20여 년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추진한 복원화사업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1968∼1973년 섬 외곽에 둑을 쌓고 안쪽 바다를 메우면서 육지로 변했다. 이후 공장과 주택이 난립하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섬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목포시는 2000년부터 삼학도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하고 호안 수로와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섬 복원과 정비를 진행 중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성추행 피해 후 숨진 전직 공무원... 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성추행 피해 후 숨진 전직 공무원... 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인터넷 커뮤니티 통해 피해 호소“팀 회식날 ‘총애한다’며 손 잡기 시작”“몇 번 도망가도 ‘탄탄대로 걷게 해주겠다’”이후 가해자와의 업무 분리 등 안 이뤄져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너를 아꼈다” 최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직 공무원이 4년 전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을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사실을 토로하며 2차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숨진 피해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 2017년 11월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A씨는 “팀 전체 회식 날 좋은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됐고 과장님도 격려 차원에서 참석했다”며 “2차로 노래방에 갔을 때 과장님이 손을 꼭 부여잡고 ‘너를 총애하는 거 알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몸을 빼려고 하니 더 밀착하면서 ‘널 볼 때마다 집사람 생각이 난다’며 허벅지 등을 만지기 시작했다”며 “몇 번 도망갔는데도 따라와서 볼을 부비며 ‘오빠가 인사 잘 봐 줄게’라거나 ‘너 탄탄대로 걷게 해 준다’며 ×× 여자 끌어안듯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날 A씨는 상사에게 사과를 요청했지만, 기관장이 ‘증거가 있느냐’거나 ‘과장이 너를 아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등 내부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경찰 고소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해당 커뮤니티에 A씨가 남긴 약 10개의 관련 글에는 가해자와의 업무 분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직장 내 2차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그 여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확인 안 되고 사무실 출근도 안 하고 전과 16범이라네요. 과장님 좋은 분인데 맘고생으로 살이 쪽 빠졌대요’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캡처를 올리며 자신에 대한 음해성 소문이 돌고 있다고 토로했다. 1년 뒤 A씨가 ‘성범죄 피해자로서 남기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쓴 게시글에는 “직장에 복귀하는 건 사실상 포기했으며 주위 사람은 절 떠났고 사람들로부터 ‘네가 똑바로 처신 못 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상사의 완강한 부인 끝에 거짓말 탐지기까지 받고 나서야 기소됐고 그는 아직도 어깨만 쓰다듬으면서 격려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갔어야 하나 자책한 적도 많고 자살 충동은 수도 없이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지난달 31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직 세무서 공무원인 A씨는 2017년 9월 부서 회식을 하던 중 상사인 B씨로부터 추행 피해를 본 뒤 직장을 그만뒀으며 우울증과 심리적 불안감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당시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상사 B씨를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한국 상황은 특별하니까”...美 얀센 백신, 5일 한국 도착 예정

    “한국 상황은 특별하니까”...美 얀센 백신, 5일 한국 도착 예정

    3일(현지시간) 백악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00만 회분이 이날 저녁 한국으로 간다고 밝혔다. 이날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은 브리핑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제공을 약속한 100만 회분의 얀센 백신이 캘리포니아로 2000마일을 이동, 항공기에 실려 오늘 저녁 한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101만회분의 얀센 백신을 실은 군 수송기가 한국시간으로 오는 5일 오전 1시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인 ‘KC-330’이 지난 2일 김해기지에서 이륙해 미국 현지로 이동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2500만 회분의 백신을 전세계에 나누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동석한 가운데 한국에 대한 백신 제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날 바이든 행정부는 2500만 회분에 대한 배포 계획을 밝히면서 이 가운데 1900만 회분을 국제 백신공급기구 코백스(COVAX)를 통해 공유한다고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전량을 코백스를 통해 공유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한국 상황은 특별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목적은 사실 미군 및 미군과 함께 복무하는 병력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 나라에서 우리와 어깨를 걸고 있는 한국군”이라고 덧붙였다. 설리번 보좌관은 “그래서 이건 특별한 사례고 우리가 일정한 유연성을 유지하고 싶은 사례”라며 “75% 이상 대다수는 코백스를 통해 배포하지만 필요에 따라 코백스 외부에서 백신을 할당할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한국은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제공하는 백신의 목적이 기본적으로 주한미군 보호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저개발국이 아닌 한국에 백신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미국 내 문제 제기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시아코끼리 15마리 中 쿤밍市 진입, 400만명 사는데 괜찮을까

    아시아코끼리 15마리 中 쿤밍市 진입, 400만명 사는데 괜찮을까

    아시아코끼리 15마리가 중국 윈난성 남부의 서식지를 벗어나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는 얼마 전부터 국내에도 많이 소개됐다. 드디어 코끼리 무리가 지난해 추계로 444만명이 모여 사는 쿤밍시에 지난 2일 도착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쿤밍까지 이동한 거리는 500㎞로 추정된다. 멸종위기종인 아시아코끼리는 중국에 300마리 정도가 사는데 주로 윈난성 남부에 서식하고 있다. 말썽을 일으킨 코끼리 무리는 암컷과 수컷 성체가 각각 여섯과 셋이며, 세 마리는 사람으로 치면 유소년, 세 마리는 새끼다. 이들은 윈난성 남서쪽 시솽반나의 멩양지 자연보호구역을 언제인지 모를 시점에 떠났는데 처음 이들의 이상 행동이 보고된 것은 4월 초 100㎞쯤 이동했을 때부터다. 처음에는 17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모짱(墨江)현 근처에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16마리가 출발했으며 중간에 새끼가 태어났다고 조금 다른 보도도 있었다. 어쨌든 이들은 두 달이 훨씬 넘게 낮이고 밤이고 농지건 농로건 아스팔트 도로건 상관 없이 걷고 있다. 다짜고짜 코로 문을 열어 먹을거리가 있나 뒤져본다. 왜 서식지를 벗어났는지,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봐서 되는 일도 아니니 사람들은 일단 마을에 큰 폐가 안 되도록 먹이를 제공하며 이들이 안전하게 마을을 지나가도록 돕고 있다. 사람들은 두 갈래로 추측한다. 경험 없는 우두머리 밑에서 무리가 생고생을 한다거나, 새로운 보호구역을 찾아 나선 것이란 추측이다. 과학자들은 야생코끼리가 이렇게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간 쿤밍 데일리는 쿤밍시와 위시시에 700명의 경찰관과 응급요원들이 10t 가량의 옥수수와 파인애플 등 먹을거리를 적재한 트럭과 코끼리 무리를 뒤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드론까지 띄워 코끼리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길을 일러주고 있다. 주민들에겐 멍하니 구경하지 말고 옥수수를 떨어뜨리지 말고 소금을 뿌리지도 말라면서 떨어져 지켜보고 폭죽 같은 것으로 코끼리들을 놀래키지 말라고 부탁했다. 동물 전문가들은 코끼리들이 걸음을 늦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들 역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도시에 들어가는 일을 꺼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원래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일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들은 이 근처 적당한 보금자리가 될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윈난성 정부는 무리가 “412건의 사고를 쳤다”고 기록했는데 지무 뉴스에 따르면 코끼리가 상아로 찔러보는 바람에 침대 아래 몸을 숨긴 할아버지가 겁에 질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술찌기처럼 된 곡물을 먹고 술에 취한 것 같은 코끼리도 있었다고, 확인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 주민도 있었다. 100만 달러 어치 곡물 피해를 입혔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들이 서식지를 벗어난 이유를 둘러싸고 썰렁한 농담들이 파다하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이들이 쿤밍에서 열리는 유엔 종다양성 회의에 초청받아 이동 중이라고 웃겼다. 물론 이 회의는 오는 10월에 열릴 예정이라 이들은 너무 일찍 도착한 셈이 된다고 방송은 한 술 더 떴다. 하지만 진지하게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서식지의 먹잇감이 줄고 농민들과 자주 충돌하게 돼 어쩔 수 없이 코끼리들이 유랑에 나섰다는 것이다. 시솽반나 삼림국 관리 리정위안은 글로벌 타임스에 서식지 먹잇감이 바뀌고 농민들도 코끼리들이 좋아하는 수수와 사탕수수 대신 돈이 되는 작물이나 고무나무 같은 것으로 재배 대상을 바꾸기 때문이란 뼈아픈 지적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수도권 187만명 출퇴근길, 광역버스도 돌보자/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수도권 187만명 출퇴근길, 광역버스도 돌보자/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몇 해 전 늦은 저녁 서울 강남에서 인천을 가려고 광역버스를 탄 적이 있다. 서울과 인천ㆍ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를 타려면 보도 경계석에 있는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줄을 서야 한다. 기다리던 버스는 왔고 차례대로 버스에 탑승하려고 하는데, 줄을 서지 않은 중년 여성이 허겁지겁 버스에 타려고 뛰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광역버스 탑승 규칙을 모르는 분이었던 것 같았는데, 뛰어오다 보니 내 앞에 줄을 선 젊은 여성의 팔을 쳤고, 그분의 휴대폰이 아스팔트 바닥에 뒹굴었다. 그때부터 갈등은 시작됐다. 일단 차는 떠나야 하니 두 분이 광역버스에 같이 탑승했고 말싸움이 시작됐다. 45인승 버스 안에서 언성을 높이니 두 분의 언쟁을 모두가 들어야 했고, 버스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으니 누구도 내릴 수 없었다. 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장유유서고 뭐고 없었으며, 막말과 고성이 계속 오고 갔다. 결국 두 사람은 인천에서의 첫 번째 정류장에서 같이 하차했고, 경찰서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했다. 늦은 저녁 서울의 주요 광역버스 정류장에 가 보면 이처럼 버스 번호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볼 수 있으며, 매일같이 갈등이 발생한다. 상기 사례와 같이 승객 간 갈등이 있기도 하고, 줄을 선 승객과 길을 지나가는 행인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매일 버스를 이용하는 분과 어쩌다 그 버스를 이용하는 분의 갈등도 빈번하다. 매일 이용하는 분들에게 암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 새로 이용하는 분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입석이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고 대대적인 입석 단속에 나섰지만, 인프라 확충이 없는 단속은 소리 없는 메아리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일일 광역버스 이용 인구는 약 62만명에 이르는데, 첨두시간 광역버스 최대 노선 입석률은 29.7%이다. 폭이 1~2m밖에 되지 않는 보도에 수십대의 광역버스가 줄을 서는 것도 모자라 버스에선 1~2시간을 서서 간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해당 버스를 이용하는 주민은 인천시민 혹은 경기도민이나 해당 문제를 해결할 지방정부는 서울시이기 때문이다. 버스와 같은 인프라를 광역적으로 해결할 어떤 조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고, 이 중 60% 이상은 서울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2010년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매일 서울과 인천ㆍ경기를 오가는 인구가 187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교통복지 사각지대는 이렇다 할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의 실마리는 홍콩이나 호주 브리즈번 등에 있는 대규모 복합환승센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무려 2600만명에 이르는 수도권에 이렇다 할 복합환승센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복합환승센터가 있다면 굳이 보차도 경계석에 희미하게 쓰인 버스 번호를 볼 필요도 없고, 버스 대기선과 행인의 마찰이 발생할 일도 없어진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쾌적하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으며, 처음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쉽게 탑승할 수 있다. 물론 서울에 이런 대규모 복합환승센터를 지을 땅이 없다고 하실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도시의 3대 축만 보더라도 여의도의 여의도공원, 시청의 서울광장, 강남의 서리풀공원 등이 있듯이 지하를 개발하고 그 위를 그대로 공원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들이 어렵다면 용산공원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의 오래된 지하상가를 리모델링하며 소규모 지하 광역버스 탑승구를 만드는 일도 대안일 수 있다. 대중교통망의 확대는 탄소중립과 보편적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수십조원의 예산과 장기간의 사업 기간이 수반되는 광역철도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다. 하지만 훨씬 적은 예산과 단기간에 시민 삶의 질과 안전을 증대시킬 수 있는 광역버스 인프라 개선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부디 당장 해결 가능한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길 기대한다. 광역 교통망의 해결 없이는 부동산 문제도 해결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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