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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낙인 칼럼] 문화유산 ‘光化門’과 시대정신 ‘광화문’의 조화

    [성낙인 칼럼] 문화유산 ‘光化門’과 시대정신 ‘광화문’의 조화

    역사는 과거와 현재 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동시에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를 그냥 그대로 묶어 두는 것과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논쟁적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파리는 세계 문화와 예술의 수도로 손꼽힌다. 그 파리에서도 문화유산의 보존과 변화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된 바 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에 맞춰 에펠탑을 건축했다. 당시에는 파리의 경관을 망친다는 비판이 드셌다. 하지만 이제 에펠탑은 세계를 향한 파리의 상징이다. 1981년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의 좌파연합 소속 미테랑 대통령은 법학교수 출신인 자크 랑 문화부 장관과 합심해 프랑스 예술의 심장인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팔레 루아얄 광장에도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했다. 문화유산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피라미드는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현대적 재해석을 구현한 성공적인 사례다. 광화문은 조선왕조 500년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1395년 건립되었다. 광화(光化)는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다. 광화문은 조선 및 근대 한국의 역사와 영욕을 함께한다. 복원·파괴·소실·해체를 거듭한 끝에 1868년 중건된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이전되는 수모를 겪었다. 광화문 북쪽에 김영삼 전 대통령 때 폭파·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해방 후 중앙청으로 사용)이 있었다. 폭파 전 경복궁을 방문했던 필자는 거대한 석조 건물이 경복궁의 맥을 끊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바 있다. 광화문은 6·25전쟁으로 소실됐다가 복원·해체를 거친 끝에 2023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세계적인 K팝 가수 BTS가 군복무 후 완전체로 광화문에서 첫 컴백 무대를 가졌다. 이 공연은 넷플릭스로 전 세계 190개국 이상에 생중계돼 77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1840만명이 동시에 시청한 대기록을 세웠다. 무대 배경으로 환하게 비친 광화문은 이제 서울을 넘어 세계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와중에 광화문 현판이 새삼 논쟁의 중심에 선다. 원래 자리인 2층에 한자 ‘光化門’ 현판이 있고, 그 아래층 빈자리에 한글 광화문 현판을 추가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필자의 눈에 두 개의 광화문 현판은 조화롭기 그지없다. 중국 자금성 정문에 만주어와 한자가 병기돼 걸린 현판보다 훨씬 아름답다. 다만 한자의 서체와 훈민정음에서 따온 한글의 서체가 서로 조응하는지는 한번 더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시류에 따른 문화유산 변형은 과거를 조작하는 것이라는 원형 보전론과 국가 상징 공간에서 문자와 문화 차원의 정체성을 한글 현판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시대정신론이 맞선다. 원형 보전론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배척할 게 아니라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은 “한글은 우리 민족을 오늘날 여기까지 있게 한 혁신의 산물이며, 그 혁신 중 하나가 바로 광화문 한글 현판 달기”라고 한다. 영욕을 함께한 光化門에 한글 현판을 추가함으로써 광화문이 국가 상징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다. 특히 광화문광장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과 세종대왕상이 서로 조응함으로써 광화문광장이 조선을 뛰어넘어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새로운 상징이 돼 가는 과정에서 한자 光化門과 한글 광화문의 병존은 역사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생뚱맞게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시대정신의 발로로 보인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 입장객 숫자가 650만명을 넘어서서 루브르·바티칸 박물관에 이어 세계 3위에 이른다고 한다. 이건희 컬렉션도 미국과 영국을 순회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꿈에 그리던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광화문과 더불어 광화문광장이 문화강국·문화국가 대한민국의 심장으로 거듭 태어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를 기원한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 청년 목소리 직접 들어야 ‘청년정책’ 진화한다 [전경하의 집중]

    청년 목소리 직접 들어야 ‘청년정책’ 진화한다 [전경하의 집중]

    청년 54% “정책에 의견 반영 안 돼”청년 한 명도 없는 정부위원회 52%중앙정부·지자체별 사업 2000여개소관 부처·분야 다양해 실효성 부족지역 재정 여력 따라 지원액도 차이전국 청년센터, 교육·컨설팅 등 제공광역단체 내 센터 연계 필요성 제기‘쉬었음 청년’ 갈수록 늘어 대책 시급공공·민간기관, 칸막이 허물고 협력지자체, 주도권 갖고 맞춤 정책 펴야청년기본법이 2020년 제정된 이후 다양한 청년정책이 쏟아졌다. 청년기본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년정책을 세우고 청년을 지원해야 한다. 2021~ 2025년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이 수립·시행됐고 현재 제2차(2026~2030년) 기본계획을 시행 중이다. 청년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본지가 올 2월 청년 500명에게 물었더니 ‘지원받은 경험이 없다’가 58.8%, ‘자신의 의견이 사회에 전달되거나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가 54.1%였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저출생 정책 오류 떠오르는 청년정책 ‘중동전쟁’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청년 예산 1조 9000억원이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청년 쉬었음’ 통계를 언급하면서 창업 지원 9000억원, 직업훈련과 일경험 등 청년 뉴딜 프로그램에 1조원의 예산을 반영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앞서 마련된 올해 예산에서는 청년미래적금, 사회적기업 창업 지원 등이 새로 편성됐다. 청년미래적금은 오는 6월 출시 예정으로 3년 동안 납입한 금액의 6% 또는 12%(중소기업 취업자)를 정부 재원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청년도약계좌의 만기 5년이 길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청년정책은 취업·창업, 주거비, 자산 형성, 문화·복지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각 지자체별 사업으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대학생 대상 해외 연수 기회 확대’는 경기도에서는 3~4주 6개국 8개 대학 연수, 경상남도에서는 미국 대학 4주 단기 연수로 바뀌었다.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을 지원하는 정책은 서울시 ‘청년수당’, 광주광역시 ‘구직활동비’, 강원도 ‘취업준비쿠폰’, 전북 ‘청년활력수당’ 등 자치단체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 등에 따라 지원액이 달라지기도 한다. 제주도의 ‘청년희망사다리 재형저축’은 근로자 1인당 월 25만원을 5년간 지원한다. 도내 기업에 취업한 청년 근로자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2년 또는 3년에 걸쳐 본인 저축액(15만원)과 같은 금액을 적립해 주는 ‘희망두배 청년통장’ 사업을 한다. ‘결혼장려금’(대전), ‘부동산 중개 보수 및 이사비 지원’(서울), ‘청년기본소득’(경기) 등 자치단체 차원의 이색 사업도 있다. 해당 사업은 지역 거주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부산은 다른 지역에서 부산으로 여행 온 청년들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산온나청년패스’를 운영 중이다. 제2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의 과제는 총 282개다. 중앙부처와 지자체별로 나누면 사업은 2000개 수준이다. 사업은 많지만 소관 부처, 분야 등이 다양해 중복되는 데다 연계성이 부족하다. 저출생 정책의 오류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2005년 제정되고 5년 단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수립됐다. 2006년부터 4차례에 걸쳐 20년간 기본계획에 투입된 재정은 699조원이다.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9명에서 2012년 1.30명으로 상승하다가 다시 떨어져 지난해 0.80명을 기록했다. ●청년이 제안한 통합플랫폼 ‘온통청년’ 정부는 지난해 청년정책 통합플랫폼 ‘온통청년’을 열었다. 회원으로 가입해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관심 있을 만한 정책들이 소개된다. 개인정보를 더 많이 입력할수록 소개되는 정책이 정교해진다. 신청 자격이 되는지 스스로 검증해 볼 수 있다. 주민등록등본,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등 ‘공공 마이데이터’를 활용해서다. 일부 사업은 온통청년에서 바로 지원할 수도 있다. ‘청년고용정책참여단’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출발점이었다. 청년들의 다양한 참여와 평가가 정책을 진화시킨다. 광역자치단체는 ‘청년몽땅정보통’(서울), ‘청년G대’(부산), ‘경기·충남청년포털’ 등 청년정책 홈페이지를 각각 별도 운영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홈페이지에 소속 기초자치단체의 다양한 사업이 소개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채널 기능을 통해 사업 관련 알림을 받을 수 있다. 중앙정부 사업 홈페이지와 바로 연결되기도 한다. 홈페이지 방문의 이점을 알려야 한다. 청년기본법에서 청년의 나이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다. 지자체 조례 등에서 청년 연령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데, 농촌 지역에서는 45세까지 지원되기도 한다. 거주 지역의 신청 연령 제한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청년센터 이용도 적극 권장돼야 한다. 전국에 광역·기초자치단체 청년센터 245개가 운영 중이다. 주말에 운영되는 센터들도 있다. 진행 중이거나 진행될 사업 소식을 얻을 수 있고 교육, 컨설팅, 문화 활동 등이 가능하다. 광주광역시 청년센터가 2025년 9월 광주 청년들에게 물었더니 청년센터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90%였지만 사용해 봤다는 응답은 30%에 그쳤다. 만족도는 민간 위탁인 청년센터의 담당자 역량에 따라 차이가 컸다. 광역자치단체 내 센터의 연계 필요성도 지적됐다. ●전 세계가 ‘청년 기 살리기’ 노력 중 다양한 청년정책 발굴과 실행은 우리나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 또한 청년 세대가 기성 세대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다. 정보기술(IT) 발달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인구구조가 달라지면서 미래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불확실성이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대 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청년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26년 고용과 사회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청년의 실업률은 12.4%다. 반면 쉬었음에 해당하는 ‘니트’(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사도 없는) 청년은 20%로 2억 5700만명이다. 우리나라도 청년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쉬었음 청년은 늘었다. 특히 20대의 쉬었음이 30대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 우려스럽다. 청년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져 기성 세대보다 나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은 커졌지만 교육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커졌다. 인공지능(AI)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취업 출발선 자체가 사라지거나 좁아지는 현상도 관찰된다. 노동시장 진입 시기의 실패는 이후 경력과 삶의 질에 부정적이고 장기적인 상처를 남긴다. 장기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만큼 조기 개입이 효과적이다. 고령화는 진행되는데 청년 노동력마저 줄어들면 국가가 성장은커녕 쪼그라들 수 있다. 교육·의료 등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도 버거워진다. ‘히키코모리’(은둔 청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일본은 15~49세 대상의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을 운영한다. 사업 초기에는 지원 대상이 15~34세였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취업 빙하기’ 세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거론되면서 40대도 포함됐다. 집중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해 취업을 지원하고 그 이후에는 안정적 근로와 중장기 경력 형성을 지원한다. 인구가 크게 줄어든 농촌 등에서 활동하는 ‘지역활성화협력대’도 청년 대책의 하나로 거론된다. 관계부처 간 협력, 지자체 연계, 지역사회 네트워크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위탁 민간기관 역량에 따른 지역 간 격차와 전문 인력 부족 등이 개선 과제로 언급된다. 위탁기관이 바뀔 때 사업의 노하우가 전수되기 어렵고 청년들 또한 혼란을 겪었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청년정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핀란드다. 청년센터와 비슷한 ‘오흐야모’(Ohjaamo·한국어로 조종실)와 니트 청년을 위한 ‘아웃리치 청년사업’이 있다. 원스톱서비스센터인 오흐야모의 인력은 공공조직과 민간조직이 어우러져 있다. 운영은 지역 특성과 이용자 욕구에 따라 다르다. 지방정부가 아웃리치 사업을 통해 접근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유도하고 있다. ●더 복잡한 상황에 내몰린 한국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0.8명)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빠르다. 다른 나라보다 수도권 집중도가 높다. 19~39세 인구의 54.8%(2024년 기준)가 수도권에 산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역 소멸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의 목소리를 진짜로 들어야만 한다. 중앙행정기관 및 광역자치단체 소속 위원회의 청년위원 의무 위촉 비율이 지난 14일부터 기존 10%에서 20%로 상향됐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무조정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년 참여가 의무화된 227개 정부위원회 가운데 청년이 한 명도 없는 위원회가 118개(51.9%)였다. 전체 위원 중 청년 비율은 5.4%였다. 규정이 지켜지지 않으면 청년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지자체, 특히 비수도권 지자체의 분투가 절실하다. 청년에게 수도권은 더 비싸고 경쟁적이지만 기회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대신 결혼과 출산은 미뤄진다. 정부 부처의 개별 사업은 자치단체에서 청년 중심으로 합쳐져야 한다. 공공기관끼리는 물론 공공·민간기관의 칸막이를 넘나들어 보자. 그래야 처한 상황과 욕구, 지향점 등이 다양한 청년들의 상황에 맞춘 정책이 가능하다. 수도권에서 멀수록 민생지원금이 더 지원되듯이 수도권에서 멀수록 청년정책의 지역 맞춤형 주도권이 더 필요하다. 청년정책은 복지정책을 넘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성장 정책이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자체장 후보들은 해당 지역의 청년센터 방문부터 시작해 보자. 청년이 지역에 머물러야 지역이 산다. 소중한 청년의 목소리에 해결책이 담겨 있다. 전경하 논설위원
  • 교황 “폭정 위험”… 트럼프에 직격탄

    교황 “폭정 위험”… 트럼프에 직격탄

    레오 14세, 트럼프 ‘문명파괴’ 비판트럼프 “외교정책 형편없다” 맞불伊 총리 “교황에 연대” 유럽 확전가톨릭 신자 밴스 “교황 신중하라” 중세시대 왕권과 교황권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오 14세 교황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레오 14세가 14일(현지시간) 교황청이 발행한 메시지를 통해 민주주의 국가는 도덕적 가치에 뿌리를 둘 때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이런 토대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 경제와 기술 기득권층의 지배를 위한 허울 중 하나가 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메시지는 특정인이나 특정 국가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권력 오남용과 도덕성 문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첫 미국 출신 교황인 레오 14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을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하고 베네수엘라 사태를 우려하는 등 현실정치에 목소리를 내며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다. 세계의 대통령과 최고의 영적 지도자간 갈등은 중동전쟁을 계기로 불붙고 있다. 레오 14세는 트럼프의 ‘문명파괴’ 발언을 직접 비판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전 트루스소셜에 “범죄 문제에 나약하고 외교정책에서는 형편없다”고 교황을 맹비난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예수로 표현한 듯한 그림을 트루스소셜에 올렸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삭제했다. 이에 대표적인 친트럼프 정치인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까지 “교황에 연대를 표한다”고 나서며 갈등은 유럽으로 번졌다. 바티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탈리아의 정상으로서 교황의 편에 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인 JD 밴스 미 부통령은 레오 14세를 향해 “발언에 신중하라”고 경고했다. 행정부 2인자로서 미국이 벌인 전쟁의 당위성을 깎아내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예수 트럼프’ 논란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여론은 대체적으로 교황에 더 우호적인 모습이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이 “가톨릭이 그간 실추한 도덕적 권위를 회복할 기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금호석화 ‘재활용 ABS 고도화’ 장영실상

    금호석화 ‘재활용 ABS 고도화’ 장영실상

    금호석유화학이 서연이화, 현대자동차 연구진과 함께 재활용 ABS 플라스틱을 자동차 내장용 소재로 고도화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6년 제12주차 IR52 장영실상을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장영실상은 학계와 정부기관 전문가가 기술 혁신성과 시장성, 경제적 파급효과를 종합 평가하는 최고 권위의 산업기술상 중 하나다. 금호석유화학은 1996년 이후 총 6차례 수상했으며 에너지·환경 분야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재활용 ABS는 열화와 이물 혼입, 물성 편차로 인해 자동차처럼 높은 품질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활용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호석유화학은 내열 SAN(스티렌 아크릴로니트릴 수지) 기반의 소재 설계와 정밀 배합 기술을 적용해 내열 ABS를 개발했다. 또 50종이 넘는 재활용 소재를 평가하고 공급업체와 협력해 품질을 개선하며 데이터 분석까지 더해 최적의 소재 조합을 찾았다. 이렇게 개발된 내열 ABS는 재활용 원료 비율, 탄소배출량, 냄새, 내열성 등 자동차 부품에 요구되는 기준을 충족해 자동차 부품 양산으로 이어졌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재활용 소재를 단순 대체재가 아닌 성능 기준까지 충족하는 핵심 소재로 전환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 ‘고리2’·‘새울3’ 가동… 전력 공급 속도

    ‘고리2’·‘새울3’ 가동… 전력 공급 속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원전을 통한 안정적 전력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4일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에 본격 돌입했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2호기는 2023년 운전허가 만료로 가동이 일시 중단됐으나 약 3년 7개월간의 규제기관 심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승인을 획득했다. 설비 개선과 안전성 검사를 마친 650MW급 고리2호기는 전력계통에 즉시 투입되어 국가 전력 수급의 핵심축을 담당하게 된다. 신규 원전인 새울3호기도 최근 ‘첫 시동’에 성공하며 시험운전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향후 6개월간 출력을 단계적으로 높이며 정밀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며, 안전성 검증을 마치는 하반기부터 100% 출력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원전은 연료비가 발전원가의 10~13% 수준인 저비용·고효율 에너지원이다. 특히 우라늄은 소량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이미 국내 전체 원전의 3년치 소요량을 확보해 대외 변수에도 흔들림이 없다. 연료집합체 하나가 약 4년 6개월간 연소되는 특성 덕분에 가격 상승 압박이 장기에 걸쳐 분산되는 것도 강점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철저한 설비 개선을 통해 안전한 계속운전을 시행할 것”이라며 “건설 중인 원전 역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완공해 국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수원은 원전 생태계 복원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천억원 규모의 일감을 조기에 발주하고 중소기업 지원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칠보산도’ 10폭 병풍으로 되살린다

    ‘칠보산도’ 10폭 병풍으로 되살린다

    “오랫동안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겨온 이곳은 하루아침에 일국 제일이 될 것이다.” 함경북도 명천군에 있는 칠보산은 예로부터 웅장하고 독특한 지형으로 최고의 명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국으로 건너간 칠보산을 그린 산수화가 한국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본래 모습을 찾게 된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이 소장하고 있는 작자 미상의 ‘칠보산도’(七寶山圖)를 국내 기술로 보존 처리하고 복원한다고 15일 밝혔다. 국외재단의 국외문화유산 보존·복원 지원사업과 삼성문화재단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다. 조선시대 함경도 회령부 판관이었던 임형수(1514~1547)가 당시까진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칠보산을 유람한 뒤 기행문인 ‘유칠보산기’(遊七寶山記)를 썼다. 임형수의 기행문이 널리 읽히면서 당대 선비들 사이에서는 칠보산 유람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이후 개심사, 회상대, 금강굴, 천불봉 등 칠보산의 주요 명소를 그려낸 작품 역시 유행했으며 대형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또 다른 미술관인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19세기 ‘칠보산도병풍’ 역시 이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메트 소장 ‘칠보산도’는 칠보산의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 깊은 계곡과 폭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모두 10폭이다. 일본 교토의 한 수집가가 소장하다가 2019년 3월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했으며, 2020년 메트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트는 10점으로 분리된 두루마리 형태로 이 작품을 취득했지만, 원래는 10폭 병풍이라고 국외재단 측은 설명했다. 보존 처리와 복원 방향도 10폭 병풍 형태에 맞춰 추진된다. 한 폭의 크기는 가로 28.3㎝, 세로 121.0㎝로 비단이 아닌 기계로 짠 면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은 “당시 기계로 짠 면은 해외에서 수입된 신문물로 비단 만큼이나 귀한 재료에 그림을 그린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얼룩이 있고 벌레가 먹어 면이 얇아져 있어 보존 처리와 복원에 2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국외재단은 ‘칠보산도’ 복원 이후 2028년 상반기쯤 한국에서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포착] 공중에서 드러낸 위용…美 차세대 폭격기 ‘B-21 레이더’ 급유 첫 공개

    [포착] 공중에서 드러낸 위용…美 차세대 폭격기 ‘B-21 레이더’ 급유 첫 공개

    미 공군의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B-21 Raider·이하 B-21)의 비행 모습을 담은 공식 사진이 공개됐다. 15일(현지시간) 미 군사 전문 매체 더워존(TWZ) 등 외신은 B-21의 공중 급유와 기체 상부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는 위에서 내려다본 B-21의 전체 모습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이중 기체 전체를 높은 고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독특한 공기 흡입구와 공중 급유 장치가 자세하게 확인된다. 또 다른 사진에는 공중급유기 KC-135 스트래토탱커의 급유 모습이 담겼다. 이에 대해 TWZ는 “B-21의 개방형 공중 급유구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F-35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면서 “깊게 파인 공기 흡입구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스텔스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케니스 윌스바흐 미 공군참모총장은 “B-21의 연료 효율성은 치명적인 공격력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면서 “이 장거리 폭격기는 공중급유기 전력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보다 폭넓은 작전 선택권을 제공해 우리 국가에 필요한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0일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상공을 비행하는 B-21 레이더의 공중 급유 모습이 지상에서 일반인 카메라에 포착된 바 있다. 특히 지상에서 봤을 때 B-21의 거대한 덩치가 눈길을 끄는데, KC-135의 날개 길이는 약 40m다. B-2 스피릿 폭격기를 만든 노스롭그루먼이 제작 중인 B-21은 B-2 이후 30여 년 만에 새로 등장한 미 공군의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다. 노스롭그루먼 관계자는 과거 인터뷰에서 “B-21은 미 공군이 30여 년 만에 내놓는 신형 폭격기”라면서 “6세대 항공기 자격을 갖추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대부분의 정보가 비밀에 가려진 B-21은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스텔스 폭격기로 미 공군이 운용 중인 B-52, B-1B, B-2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최초 장거리 타격 폭격기 계획(Long Range Strike Bomber program)으로부터 출발해 2014년 7월 제안요청서 발송을 시작으로 사업이 본격화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종합하면 B-21의 탑재 중량은 13.60t으로 B-2(18.14t)에 비해 적어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폭탄도 스마트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굳이 많은 무장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B-21은 과거 폭격기와 달리 정보 수집, 전장 관리, 항공기 요격까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 폭격기다.미 공군은 향후 100여 대의 B-21을 운영할 예정으로 대당 가격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올라 7억 달러에 육박한다.
  • “성능만 좋다고 사주지 않는다”... 한화, 노르웨이서 던진 ‘유럽식’ 승부수 [밀리터리+]

    “성능만 좋다고 사주지 않는다”... 한화, 노르웨이서 던진 ‘유럽식’ 승부수 [밀리터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노르웨이 천무 사업이 단순 납품을 넘어 현지 산업협력 이행 단계로 들어섰다. 무기 체계를 파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개발과 공동생산, 공급망 연계까지 묶어내는 ‘유럽식 수출 모델’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노르웨이에서 현지 방산업체들과 킥오프 미팅을 열고 천무 사업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안도야 스페이스(Andøya Space), 남모(Nammo), 웨스트컨트롤(Westcontrol), 켐링 노벨(Chemring Nobel), 아코디스(Akkodis), 키트론(Kitron), T&G 등이 회의에 참여했다. 한화는 이번 일정에서 프로그램 조율과 함께 공동개발, 공동생산 체계, 공급망 통합 및 확대 방안 등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PGM 사업부장은 “이번 회의는 노르웨이 방산업계와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라며 “노르웨이군에 역량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협력과 산업 참여를 통해 현지 방산 생태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움직임의 의미는 회의 개최 자체보다 그 다음 단계에 있다. 유럽 방산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은 더 이상 가격이나 납기, 무기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발주국 산업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 현지 기업과 기술·생산·군수 체계를 함께 엮어낼 수 있는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노르웨이 천무 사업이 눈길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유럽은 이제 ‘무기 구매’보다 ‘산업 참여’를 본다 방산 수출은 과거처럼 계약서에 서명하고 장비를 넘기는 방식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특히 유럽 시장은 자국 기업 참여와 공급망 편입, 후속 군수지원, 기술협력 등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하다. 성능이 좋아도 현지 산업과 연결되지 못하면 추가 사업이나 장기 협력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한화가 이번에 노르웨이 업체들과 구조화된 협력 프레임을 짜기 시작한 것도 이런 조달 문법과 무관하지 않다. 한화는 각 기업과 프로그램 이행 단계의 기술 협업 계획을 맞추고, 안도야 스페이스와는 사업 조율 및 추가 협력 기회를 논의했다. 이어 각 업체와 일대일 회의를 진행하며 공동개발과 공동생산, 공급망 연계 가능성을 점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서는 성능 못지않게 현지 산업과의 협력 구조를 얼마나 촘촘히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며 “노르웨이 사업도 현지 기업들과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사업의 관전 포인트는 “천무를 몇 대 납품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납품 이후 현지 정비와 부품, 탄약, 기술지원, 후속 업그레이드까지 이어지는 장기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연결고리가 단단해야 천무 계약 1건이 일회성 판매가 아니라 유럽 내 신뢰 자산으로 남게 된다. ◆ 노르웨이 모델 안착하면 유럽 확장 교두보 될 수도 노르웨이가 천무를 차세대 장거리 정밀타격체계로 선택한 것은 한국 방산에 적잖은 상징성을 갖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천무 사업을 한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대표적 방산협력 프로그램 중 하나로 규정하고, 산업협력을 사업의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초기 계약 범위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대목은 향후 유럽 추가 수출과도 맞닿아 있다. 한 나라에서 현지화 모델을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면, 다른 나라를 상대로도 “단순 판매업체가 아니라 산업 파트너”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반대로 현지 협력이 기대에 못 미치면 수출 성과가 있어도 후속 확장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장사정포, 정밀유도무기, 탄약, 방공체계 확보에 속도를 내면서도 자국 방산기반 유지에는 더 민감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업체가 살아남으려면 ‘빨리 만들어 잘 보내는 공급자’에 그쳐선 부족하다. 현지 기업과 함께 생산하고 유지하며 기술과 일감을 나눌 수 있는 사업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노르웨이 천무 사업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장면에 가깝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15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유럽 시장에서는 단순 납품보다 현지 산업과 얼마나 촘촘한 협력 구조를 만드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노르웨이 사업도 현지 기업과의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는 이번 회의를 바탕으로 노르웨이 방산업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후속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천무 체계의 적기 납품과 성공적인 현지화를 위한 맞춤형 협력 구상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노르웨이 사례가 한화는 물론 한국 방산 전체의 유럽 공략 방식에도 적잖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천무 수출의 진짜 승부는 계약 체결 때가 아니라, 지금처럼 현지 산업과 얼마나 깊게 맞물리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 늙기도 설워라커늘 [으른들의 미술사]

    늙기도 설워라커늘 [으른들의 미술사]

    나이 든 여인이 한 손을 대리석 난간에 얹고 있다. 그녀는 우아하고 귀족 복장을 입고 있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패션으로 보면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을 걸치고 있다. 이 작품은 플랑드르 화가 퀜틴 마시스(Quinten Massys, 1466-1530)가 그린 ‘늙은 여인’이며 르네상스 초상화가 지향해온 이상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놓은 문제작이다. ●가장 도발적인 얼굴 ‘늙은 여인’은 오늘날 ‘못생긴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별명은 17세기에 붙은 별명이다. 14세기 티롤 백작 부인을 ‘역사상 가장 못생긴 여인’이라 비방한 것이 이 그림과 잘못 연결된 탓이다. 정작 티롤 백작 부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소문은 그럴싸하게 퍼져나갔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중 가장 도발적인 얼굴로 꼽히는 작품이며 비정상적으로 돌출된 이마, 처진 눈, 들창코에 단단한 턱선, 어디 하나 미의 기준에 맞는 것이 없다. 처진 주름과 목주름, 탄력 없는 몸, 치아가 다 빠진 모습으로 가늠해 보건대 나이는 이미 80을 훌쩍 넘어 보인다. 여인은 당시 유행히 한참 지난 귀족풍의 화려한 드레스와 머리 장식을 착용하고 있다. 더욱이 드레스를 꽉 조여 과도하게 모은 가슴과 어울리지 않는 귀부인 치장은 꾸밀수록 안타까워 보인다. 여성미를 과도하게 강조한 가슴은 가는 세월을 억지로 붙잡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늙은 여인’은 아름다움과 덕성을 동일시하던 시대의 윤리를 비추는 작품이다. 이 초상화는 젊은 사람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는 노인의 허영심을 조롱한다. 16세기 초 북유럽에서는 젊음과 아름다움이 도덕적 가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음은 곧 선이었으며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의 복식과 성적 매력을 흉내 내는 행위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오백년 전에도 영포티는 존재했던 셈이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노년 여성에게 기대되던 품위와 절제를 정면으로 조롱하는 이 초상화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는 늙은 여인을 풍자하고 있다. 이는 『우신예찬』에서 “거울을 놓지 못하고 젊은 척하는 노파”를 조롱한 것과 같은 맥락이며 화가는 그 문구를 붓으로 옮긴 셈이다. 이 여인이 들고 있는 소품 가운데 오른손에 약혼의 상징인 장미 봉오리가 눈에 띈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이 작품의 짝을 찾아야 한다. 이 그림의 짝은 대서양 건너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 그러나 ‘늙은 여인’과 ‘늙은 남자’는 원래 한 쌍으로 제작됐지만 오백 년간 서로 다른 컬렉션을 떠돌았다. 여인은 런던에, 남자는 뉴욕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이 여인은 그리워하던 남성을 드디어 만났다. 2023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측은 ‘늙은 여인’과 ‘늙은 남자’를 처음으로 한 자리에 나란히 걸어 오랜 인연을 이어주려 했다. 두 작품이 함께 놓이자 이 여인이 손에 쥐었던 장미 꽃봉오리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당시 꽃은 사랑과 구애를 상징하며 늙은 여인은 놀랍게도 지금 구애 중이다. 그런데 두 작품을 마주하니 결과는 참담했다. 여인이 구혼의 상징인 장미를 내밀었지만, 남자는 손을 들어 차갑게 거절하고 있다. 오백년 만의 이별 끝에 마주한 두 사람의 해후 장면은 달콤하지 않다. 르네상스 이중 초상화의 관례에서는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서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마시스는 이 두 초상의 위치를 바뀌어 놓았다. 마시스는 이 작은 트릭으로 전통적 성별 역할과 질서에 균열을 냈다. 즉 마시스는 남자가 구애의 손을 내밀던 방식에서 여성이 장미 꽃봉오리를 내민 것으로 바꾸었다. 또한 마시스는 구애하는 여성의 면전에서 매몰차게 거절한 남성을 그려 당시 성의 관념과 역할을 뒤집었다. 어긋난 자리, 엇갈린 시선, 어긋난 사랑은 노년의 사랑을 조롱하는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늙음을 조롱하는 시선 이 못생긴 여성 초상화 때문에 탄생한 여성 빌런 캐릭터가 있다. 이 노파 얼굴은 19세기에 뜻밖의 공간에 등장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가가 이 노파 캐릭터를 악명높은 공작 부인 얼굴로 그린 것이다. 14세기 못생긴 여성은 당대에 이어 19세기에도 여전히 못생긴 악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이 든 여성이 욕망을 품는 것 자체를 우스꽝스러운 일탈로 규정하는 시선이 이 그림 안에 들어 있다. 나이 든 여성의 욕망과 추한 얼굴을 웃음거리로 삼는 시선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젊음이 잘생김이 아니듯 늙음과 못생김은 같은 말이 아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말이다.
  • 트럼프의 굴욕? “미군도 못 막은 中 유조선” 조롱…해협 역봉쇄 실효성 논란 [핫이슈]

    트럼프의 굴욕? “미군도 못 막은 中 유조선” 조롱…해협 역봉쇄 실효성 논란 [핫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 조치를 단행한 가운데, 미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유조선과 관련해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4일(현지시간) “미국이 제재를 가한 중국 유조선이 이날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도 불구하고 해당 해협을 통과했다는 데이터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원자재·물류 데이터 제공 기업 케플러(Kpler)에 따르면 이날 리치 스타리호는 미국의 역봉쇄가 시작된 이후 해협을 통과해 오만만을 빠져나가는 첫 번째 선박이 됐다. 해당 유조선과 선주사인 상하이쉬안룬 해운은 이란과의 거래로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에 따르면 리치 스타리호는 약 25만 배럴의 메탄올을 적재한 중형 유조선이다. 이 선박은 마지막 기항지인 아랍에미리트의 함리야에서 화물을 선적했으며, 유조선 내에는 중국인 선원들이 승선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란 측은 해협 역봉쇄 작전 중인 미 해군이 중국 선박을 안 막은 것이 아니라 못 막은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가나 주재 이란 대사관 측은 SNS에 “중국 유조선 리치 스타리호가 미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해협 봉쇄망을 뚫고 지나갔다”면서 “수많은 ‘크고 아름다운 함선’을 보유한 미 해군은 여러 차례 경고를 발령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군은 승인 없이 봉쇄 구역에 진입하거나 출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서는 차단, 회항, 나포하겠다고 경고했으나 정작 제재 대상 선박이 지나가도 선뜻 이를 막아서지 못했다는 의미다. 중국 유조선, 어떻게 해협 빠져나왔나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리치 스타리호는 13일 미국 봉쇄 발효 직후 이란 케슘섬 인근의 좁은 수로로 진입해 통과를 시도했고, 한 차례 회항했다가 수 시간 후 다시 출항해 외해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선박은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호르무즈를 빠져나왔고 오전이 되자 오만만으로 진입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리치 스타리호는 출항하면서 해당 선박이 중국 소유이며 중국인 승무원이 탑승해 있다는 사실을 방송으로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리치 스타리호의 출발 항구가 이란이 아닌 아랍에미리트여서 미군이 차단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이란 항구에서 출발한 유조선도 호르무즈를 빠져나갔다. 코모로 선적 유조선 엘피스호는 이란 항구를 떠난 뒤 봉쇄 시작 시점에 이미 해협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이후 그대로 항해를 이어가 오만만으로 빠져나왔다. 엘피스호 역시 리치 스타리호와 마찬가지로 이란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직접 제재 명단에 올려둔 선박 중 하나였다. 이란 “상상 초월 반격” 경고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군함 15척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 봉쇄 작전에 투입한 가운데, 이란은 강한 반격을 예고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대변인은 미군의 봉쇄 조처에 대해 “전쟁이 계속된다면 적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역량들을 공개할 것”이라며 “적들이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전투 방식을 선보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쪽이 봉쇄망에 접근한다면 “즉각 제거”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21일까지 남아 있는 휴전이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군은 해협 바깥으로 핵추진 항공모함인 USS 에이브러햄 링컨함을 배치해 작전 기지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고, 링컨함 주변에는 미사일 구축함 8척을 배치해 페르시아만을 벗어나려는 석유 운반선의 움직임을 차단하거나 통제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P 통신은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 군함들이 호르무즈 역봉쇄 작전에 투입됐지만, 이란 해안선 대부분을 차지하는 페르시아만에는 아직 군함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죄 없는 하마가 왜 죽어야 하나?” 콜롬비아 정부 하마 80마리 안락사 결정에 비판 여론 [여기는 남미]

    “죄 없는 하마가 왜 죽어야 하나?” 콜롬비아 정부 하마 80마리 안락사 결정에 비판 여론 [여기는 남미]

    콜롬비아 정부가 일명 ‘코카인 하마’의 개체 수 억제를 위해 안락사를 결정한 것을 두고 생명을 경시하는 극단적 조치라는 비판 여론이 국내외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동물원·사육장·수족관협회(AZCARM)는 안락사와 같은 극단적 처분을 막기 위해 3년 동안 노력했고 대안을 만들어냈지만 콜롬비아 정부 등 관련국 정부가 최종 승인을 하지 않았다면서 안락사 결정을 비판했다. 에르네스토 사수에타 협회장은 “콜롬비아의 하마 중 일부를 인도와 멕시코로 이주시키기 위해 인도의 ‘그린즈 동물구조재활센터(GZRRC)’ 및 멕시코의 최대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오스토크 보호구역’과 협력해 대안을 마련했었지만 콜롬비아 정부와 멕시코 정부가 최종 승인을 거부해 집행하지 못했다”면서 콜롬비아 정부가 끝내 안락사를 결정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인도로 60마리, 멕시코로 10마리 등 콜롬비아 하마 70마리를 해외로 이주시키기로 하고 운송부터 수용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었다고 한다. 심지어 비용까지 민간이 마련해 콜롬비아 정부엔 재정적 부담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와 멕시코 정부가 하마의 해외 이주를 승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수에타 회장은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양국 정부, 특히 환경부 사이에 모종의 결탁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정부가 끼면 되는 일이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협회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콜롬비아 현지에선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수입한 하마를 ‘코카인 하마’로 부른다고 한다”면서 “콜롬비아 정부는 마약왕의 상징 같은 동물을 해외로 보내는 데, 멕시코 정부는 그런 동물을 받아들이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콜롬비아와 멕시코는 중남미에서 코카인 밀수가 가장 활발한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콜롬비아 국내에서도 강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인터넷에는 “죄 없는 하마를 죽이지 말라” “이젠 콜롬비아에 사는 우리의 동물이다. 살 곳을 마련해줘라” 등 안락사 반대 의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콜롬비아엔 원래 하마가 서식하지 않지만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1980년대 개인 동물원을 만들면서 아프리카에서 하마 4마리를 수입한 후 지금은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야생 하마가 서식하는 국가가 됐다. 1993년 군의 마약카르텔 소탕 작전에서 에스코바르가 피살된 후 아무도 돌보지 않게 된 하마가 야생으로 돌아가 번식하면서 개체 수가 늘어난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에 서식하는 야생 하마는 현재 최소 160마리, 최고 200마리로 추정된다. 외래종인 하마가 토종 동물을 해치고 농지를 훼손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콜롬비아 정부는 80마리를 안락사 처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국내외에서 강한 반대 여론이 일고 있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강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콜롬비아 환경부는 13일 “하반기부터 집행을 개시해 예정대로 하마 개체 수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레네 벨레스 환경부 장관은 “안락사를 잔인한 살처분으로 보고 극단적 조치라고 비난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안락사 프로토콜을 보면 매우 책임 있고 윤리적 절차”라면서 하반기부터 최소한 하마 80마리를 안락사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 프랑스, MGCS 지연으로 공백 메울 신형 전차 도입하나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프랑스, MGCS 지연으로 공백 메울 신형 전차 도입하나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가 앞으로 4년간 국방예산을 360억 유로(미화 약 390억 달러)로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카트린 보트랭 국방부 장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내년 국방비로 633억 유로(687억 달러)를 책정했고, 2030년까지 763억 유로(828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높은 수치의 증액이지만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약 2.50%에 불과한 수치다. 이는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매년 최소 3.50%를 국방비로 할당하기로 약속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매년 프랑스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보트랭 장관은 국방예산이 쓰일 우선순위를 밝혔는데, 현재 운용 중인 르클레르 전차의 노후화와 프랑스-독일 공동 개발 지상전투체계(MGCS) 사업의 실현까지 몇 년이 더 걸리는 상황에서 전력 공백을 메울 새로운 전차 개발 가능성이 언급됐다. 보트랭 장관은 르클레르 전차가 2040년까지 운용 가능하며, MGCS 사업은 약 10년이 소요될 것이기에 과도기적 전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플랫폼은 KNDS 프랑스 자회사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가능성이 높은 선택은 KNDS의 플랫폼, 즉 레오파드 2 차체에 프랑스제 신형 포탑을 결합하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육군은 르클레르 전차의 현대화 버전인 르클레르 XLR을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 이후 요구사항은 충족시키기 어려워 르클레르 에볼루션으로 해결할 예정이다. KNDS는 현재 독일의 레오파드 2와 프랑스의 르클레르 그리고 차세대 전차 MGCS 사이의 중간 단계를 위해 각각 레오파르트 2 A-RC 3.0과 르클레르 에볼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KNDS는 레오파르트 2 A-RC 3.0과 르클레르 에볼루션 모두 아스칼론(ASCALON) 모듈식 전차 포탑을 사용한다. KNDS의 프랑스 파트너인 넥스터는 2021년 4월에 아스칼론을 소개했다. 120mm와 140mm 구경의 두 가지 모델이 있는 아스칼론은 1시간 만에 120mm에서 140mm 포로 교체가 가능한 모듈식 구조를 갖췄다. 탄약은 CTA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레오파드 2 차체에 아스칼론 포탑을 갖춘 새로운 전차가 도입된다면 당분간 화력에서 이를 따라올 전차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연되는 MGCS 개발이 돌파구를 찾는다면 공백기를 메울 전차 계획은 취소되고 바로 MGCS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을 그리던 산, 모락산 [두시기행문]

    서울을 그리던 산, 모락산 [두시기행문]

    경기도 의왕시 중심에 자리한 모락산은 해발 385m의 높지 않은 산이다. 모락산이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담겨 있다. 조선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이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이곳에 머물며 매일 정상에 올라 한양을 향해 예를 올렸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서울을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모락(慕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산의 또 다른 특징은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은 지형이라는 점이다. 높이는 낮지만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정상에 서면 바람을 가르며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그 아래로 의왕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낮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확 트인 시야를 보여주는 곳은 흔치 않다. 모락산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과 다양성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지만, 코스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완만한 흙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바위 능선이 나타나고, 짧지만 손을 짚으며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어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이처럼 변화 있는 지형은 초보자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익숙한 등산객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정상에서의 풍경은 모락산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북동쪽으로는 청계산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 아래로 백운호수가 잔잔하게 자리한다.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리산과 관악산이 도시 너머로 이어지며 수도권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서울의 스카이라인까지 희미하게 이어지며, 도심과 자연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모락산은 짧은 시간 안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다양한 등산로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천동 삼림욕장 입구에서 시작해 팔각정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가장 대중적이며 약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오전동 약수터에서 국기봉을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 역시 비슷한 소요 시간으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을 향하는 코스다. 조금 더 변화를 느끼고 싶다면 내손동 계원예대 후문에서 출발해 사인암을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할 만하다. 사인암 주변은 바위 지형이 돋보이는 구간으로, 모락산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전체적으로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도 명확해 초행자도 어렵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 속 가벼운 산행지로 손색이 없다. 모락산 산행의 여운은 산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백운호수 일대는 의왕을 대표하는 휴식 공간으로, 호수를 따라 카페와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가벼운 식사부터 분위기 있는 카페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 산행 후 들르기 좋다.
  • 캄보디아, 세계 최초 ‘영웅 쥐’ 동상 세운 이유…지뢰 109개 찾아내 [여기는 동남아]

    캄보디아, 세계 최초 ‘영웅 쥐’ 동상 세운 이유…지뢰 109개 찾아내 [여기는 동남아]

    캄보디아의 지뢰밭에서 5년간 활동하며 100개가 넘는 폭발물을 찾아내 수많은 인명을 구한 아프리카 큰주머니쥐 ‘마가와(Magawa)’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지난 3일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서는 ‘국제 지뢰 인식과 제거 활동 지원의 날(4월 4일)’을 하루 앞두고 마가와의 2.20m 높이 석상 제막식이 열렸다. 마가와는 공공 기념물로 기려진 세계 최초의 쥐로 기록될 전망이다. 벨기에 비영리 단체 아포포(APOPO)의 의뢰로 제작된 이 동상은 현지 석공들이 사암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동상은 시엠레아프 강변 아포포 본부 인근에 설치됐으며, 생전 마가와가 착용했던 작업용 하네스와 수여받은 금메달을 차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특히 동상 받침대에는 실제 폐기된 폭발물 파편들이 포함돼 의미를 더했다. 마가와의 업적은 실로 놀랍다. 아포포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마가와는 5년간 지뢰 71개와 불발탄 38개 등 총 109개의 폭발물을 탐지했다. 면적은 약 14만 1000㎡로, 이는 축구장 20개에 달하는 넓이다. 2013년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전문 훈련을 받은 마가와는 2016년 캄보디아로 배치됐다. 그는 2021년 은퇴 후 2022년 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레인 아포포 프로그램 매니저는 “마가와는 우리가 보유했던 최고의 쥐 중 하나였다”며 “집중력이 뛰어나고 조련사들에게도 매우 다정했던, 완벽한 성품을 지닌 영웅이었다”고 회고했다. 마가와는 테니스 코트 크기의 면적을 단 20분 만에 탐색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인간이 금속 탐지기로 작업할 경우 며칠이 소요되는 일이다. 아프리카 큰주머니쥐는 몸무게가 가벼워 지뢰를 밟아도 터뜨리지 않으며, 개에 버금가는 후각을 지녀 지뢰 탐지에 최적화돼 있다. 이들은 TNT의 화학 신호를 포착하면 땅을 긁어 알리고, 보상으로 바나나나 땅콩을 받는다. 앞서 마가와는 2020년 영국 수의 자선단체 PDSA로부터 동물계 최고 훈장인 ‘PDSA 골드 메달’을 쥐 최초로 수상했다. 이는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극도의 용기를 보여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영국 최고 권위의 상인 ‘조지 크로스(George Cross)’에 비견되는 영예다. 리 투치 캄보디아 지뢰행동청(CMAA) 제1부의장은 제막식에서 “마가와의 유산은 캄보디아 지뢰 제거 임무에 있어 회복력과 신뢰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는 1960~90년대 내전의 여파로 전 세계에서 지뢰 오염이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다. 지난 47년간 폭발물로 인해 약 1만 88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여전히 6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 정부는 2030년까지 ‘지뢰 없는 국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마가와의 뒤를 잇는 새로운 영웅 쥐들도 활약 중이다. 현역 탐지 쥐 ‘로닌(Ronin)’은 2021년 이후 지뢰 109개와 불발탄 15개를 찾아내며 2025년 세계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 “스테이블코인 온다는데… 왜 한국은 못 쓰나요”, 디지털 지갑 대신 은행앱… ‘코인 없는 코인시대’[경제 블로그]

    “스테이블코인 온다는데… 왜 한국은 못 쓰나요”, 디지털 지갑 대신 은행앱… ‘코인 없는 코인시대’[경제 블로그]

    “이제 코인으로 결제하는 시대 오는 거 아냐?” 요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1·2위 사업자인 테더와 서클이 잇따라 한국을 찾으면서 이런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인이 들어와도, 우리는 직접 쓸 일이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코인이 지갑이 아니라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안에서 기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테더는 KB금융과 코인원 등을, 서클은 KB·신한·하나·우리 등 금융지주와 두나무 등 가상자산 거래소를 중심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으로, 쉽게 말해 ‘디지털 달러’입니다. 결제와 송금을 위해 만들어진 코인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활용 방식이 다르게 설계될 가능성이 큽니다. 코인을 직접 들고 결제하거나 별도의 지갑을 쓰는 대신, 은행이 발행하고 금융앱 안에서 자동으로 처리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제도 방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현재 논의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중심으로 발행한다’는 틀을 전제로 합니다. 발행은 은행, 유통·정산은 금융사가 맡고, 서비스는 기존 앱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입니다. 이에 따라 전략도 갈립니다. 테더는 거래소 중심 유통을 유지하려는 반면, 서클은 직접 발행 대신 금융사에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서클은 한국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코인을 따로 보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해외 송금은 지금처럼 앱에서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다만 그 안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돼 처리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코인을 쓰지만, 코인을 쓰는 줄은 모르게 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편의성은 높아지지만, 코인을 직접 사용하는 경험은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흐름은 분명합니다. 코인은 ‘상품’에서 ‘인프라’로 바뀌고 있습니다.
  • [사설] 대통령의 SNS 논란…국민 불안 없게 이쯤서 마무리를

    [사설] 대통령의 SNS 논란…국민 불안 없게 이쯤서 마무리를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관련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게시물들을 놓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도 X에 “오목 좀 둔다고 명인전 훈수하는 분들, 훈수까지는 좋은데 판에 엎어지시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야당 등의 비판을 반박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의 게시물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하며 “지난 일요일 X에 과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이스라엘 규탄 발언 영상을 공유한 사진”이라고 했다. “급히 삭제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비판을 이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SNS에서 이스라엘의 인권 탄압 행위를 비판한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가해 책임 처벌과 관련된 유엔 인권 결의 투표에 기권했다. 대통령과 외교부의 입장이 엇박자인 것으로 비쳐진다. 외교부는 “대통령 메시지는 보편적 인권이나 국제인도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특정 결의안이나 개별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런 해프닝 자체가 국민 눈에는 혼란스럽게 비칠 수 있다. 정부의 외교적 메시지는 일관성 있고 안정적으로 발신될 때 설득력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전쟁 당사국들도 보편적인 인권 보호의 원칙,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가 간절히 바라는 평화를 향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디뎌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대통령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한 소신을 피력할 수는 있다. 실제 중동전과 관련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유럽 국가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외교 문제는 토씨 하나로도 국익에 중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외교부라는 공식 조직을 통해 규격화된 언어로 입장을 밝히는 까닭이다. 지지율이 높은 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국민은 실시간 반응하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 더 정제돼야 하는 이유다.
  • [사설] ‘진짜 사장’ 몰리니 金총리 “노봉법 보완”… 민간이 더 절실

    [사설] ‘진짜 사장’ 몰리니 金총리 “노봉법 보완”… 민간이 더 절실

    김민석 국무총리가 그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과 관련해 “정부의 사용자성을, 책임을 어디까지 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보완돼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법이 시행된 뒤 정부가 보완을 주문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 공공 부문을 상대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쏟아지면서 장관, 총리, 심지어 대통령을 향해 “진짜 사장 나와라”라는 요구가 봇물을 이루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봉법 시행 한 달째인 지난 10일 기준으로 1012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은 372개 원청 사업자 가운데 공공 부문은 156곳(41.9%)에 이른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법률이나 국회가 의결한 예산에서 정해진 근로조건 등 관련 사항을 집행하는 경우’에는 정부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해석 지침을 내놨다. 그럼에도 지방노동위에서 국세청, 한국전력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공공 부문의 사용자성이 잇따라 인정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은 “사용자성이 인정됐다고 해서 임금을 올려 주거나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청 노조와 만나되 노조가 의무 아닌 의제를 제시하면 기업들이 거부해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교섭 의제 중 하나라도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파업 등 쟁의행위로 이어지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미칠 수 있다. 원청을 상대로 하청 노조가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면서 발생한 혼란은 공공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하청 노조들이 ‘산업안전’ 등 비교적 사용자성을 인정받기 쉬운 의제를 앞세워 원청 기업을 교섭 테이블로 불러낸 뒤 임금·복지 문제를 연계함으로써 협상이 교착될 수 있다고 기업들은 우려한다. 장기적 노사 쟁의로 전체 공정이 지연되고 수억원씩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탁상공론식 졸속 입법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해결책 마련에는 공공·민간 가릴 이유가 없다.
  • [김민정의 일러두기] 나물 자라는 거 본 적 있나요

    [김민정의 일러두기] 나물 자라는 거 본 적 있나요

    아침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가 운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란다. 제 엄마의 말은 껌이 된 지 오래고 제 아빠의 말은 칼이 된 지 오래라 한집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아침마다 셋이나 되는 이모들이 각자의 집에서 조카를 일으키려고 어느 날은 스피커폰을 켜서 달래고 또 어느 날은 호통을 치기가 매일 같은 일상이다. 친구와 싸웠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싫어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공부가 재미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단지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이부자리를 박차는 일, 그 ‘기상’이 어려움의 전부란다. 조카의 엄마이자 바로 아래 동생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했다. 스튜어디스로 시간관념이 투철하다 못해 처절했던 직업 정신의 소유자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카의 이모이자 내 아래 아래 동생 둘 역시 좀처럼 납득이 안 된다 했다. 대학병원 간호사들로 3교대 근무에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쳇바퀴처럼 도는 몸의 임자들이었으니 그럼직했다. 유일하게 큰이모인 나만이 조카의 입장에서 아이를 대변하는 확성기가 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롭다 할 시인이라는 직업군이어서라기보다 일단은 ‘역지사지’ 그 단어의 명쾌함을 가장 최우선의 머리맡에 두고 살아서가 아닐까 했다. 꿀통 같은 다디단 잠의 한복판에서 어렵사리 눈을 뜨는 일, 어디 그게 쉬운가. 휴대폰 속 오 놀라워라 싶은 자극의 세계가 터치만 해도 새롭게 펼쳐지는데 그거 꺼 두는 일, 어디 그게 쉬운가. 따지고 보자면 온갖 흥밋거리로 아이를 먼저 꿰어낸 건 어른들인데 이제 와 왜 나쁜 꼬드김에 깊이 빠져드냐고 왜 참을 인(忍) 자를 새기지 못하냐고 아이를 질책하며 타박하는 게 어른이다 싶으니까 뭔가 이 관계의 꽈배기가 한참 잘못 꼬였구나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절로 학교에 가고 싶을 때까지 좀 기다려 주면 안 돼?” “다른 애들 다 학교에 있는데 우리 애만 저러고 퍼질러 있는 꼴을 계속 보라고?” “마음이 내켜야 몸이 따라 주는 건데 학교 가기 싫어 옷장 속에 숨기까지 하는 건 해도 해도 좀 슬픈 일이지 않아?” “기본은 해야 할 거 아냐. 언니는 애 안 낳아 봐서 모르고 애 안 키워 봐서 절대로 몰라.” 나는 무엇을 모르고 동생은 무엇을 아는 걸까. 결국 등교 전쟁에서 승리한 조카가 제 방에서 내처 자고 있다는 얘기에 냉장고 한가득 통통마다 챙겨 두었던 나물 반찬을 하나씩 꺼냈다. 견출지 위로 또박또박 적힌 나물의 이름은 발음할 때마다 눈앞에 연둣빛 무늬를 번지게 했다. 두릅이며 깻잎나물이며 산취며 냉이며 비름나물이며 엄나무며 부지깽이며 화살나물이며 머위며 쑥부쟁이며 유채나물이며 눈개승마며…. “얘들이 흙을 뚫고 순을 밀어 올릴 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얘들은 장해요.” 나물을 직접 캐서 씻고 무쳐 보낸 지인의 편지를 고스란히 담아 나물과 함께 조카에게 퀵을 보냈다. 느린 것이 아름답기도 하다지만 이 퀵은 아주아주 빨랐으면 했다.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권찬주, 잊지 말아야 할 4월 혁명의 어머니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권찬주, 잊지 말아야 할 4월 혁명의 어머니

    올해로 4·19혁명이 66주년을 맞는다. 지난 3월 15일 경남 창원시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3·15의거 기념식에는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3·15의거 희생자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평생을 아들 김주열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다 1989년 세상을 떠난 ‘4월 혁명의 어머니’ 권찬주가 떠올랐다. 그는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의거가 대통령 하야까지 이어지며 4·19혁명으로 승화하는 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0년 3월 15일 전북 남원 출신 김주열은 외가가 있는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마산상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형과 함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이틀 후에야 이 소식을 들은 권찬주는 3월 18일 아침 서둘러 출발해 오후에 마산에 도착했다. 먼저 마산경찰서로 달려가 “내 아들을 찾으러 왔다”고 울부짖는 그에게 경찰은 “학생들이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러 잡으려 하니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산에 가서 찾아보라”고 했다. 권찬주는 “내 아들이 왜 빨갱이란 말이냐”며 항의했다. 경찰서를 나온 권찬주는 사망자가 안치된 시체실과 부상자가 즐비한 병실을 정신없이 찾아 헤맸으나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3월 19일 권찬주는 마산일보사에 찾아가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알렸고 그날부터 중앙 일간지도 아들을 찾는 권찬주의 애끓는 사연을 보도했다. 다음날인 3월 20일에도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한 그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맸다. “내 아들 못 보았소”, “혹시 어디서 시체가 또 나왔다는 말 못 들었소”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물었다. 이후 권찬주는 날마다 경찰서, 검찰청, 변호사회, 시청, 정당 사무실을 찾아다녔고 병원을 뒤졌다. 국회 진상조사단도 만났다. 하수구도 들여다보고 인근 산도 헤맸다. 그렇게 “억세게 찾아 나섰더니” 마산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아봤다. 여성들은 권찬주의 끼니를 챙기며 김주열을 찾는 데 함께 나섰다. 그렇게 마산에서 김주열을 찾는 운동이 일어난 와중에 ‘3월 15일 밤 경찰이 시체에 돌을 달아 시청 뒤편 연못에 유기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3월 29일 검찰, 경찰, 자유당과 민주당 관계자, 신문기자, 거기다 500명 넘는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청 뒤편에 있는 연못의 물을 퍼냈지만 시체는 없었다. 한 달 가까이 아들을 찾아 마산 거리를 헤매던 권찬주는 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에 4월 11일 오전 8시 남원행 버스를 탔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나 행방불명이 된 지 27일 만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끔찍한 모습으로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시체를 인양하는 동안 소식을 들은 마산 시민들이 부둣가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김주열이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차마 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떠난 후에 바다에 떠올랐다’며 애달파했다. 김주열의 시체가 도립병원으로 운반되자 시민 3000여명이 병원을 에워싸고 범죄를 은폐한 경찰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날 저녁에는 수만 명의 마산 시민들이 관공서를 파괴하며 ‘이승만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날 시위는 4·19혁명에서 처음 등장한 이승만 퇴진 요구였다. 이승만 퇴진을 외친 시민들은 매일 거리에서 아들을 찾아 달라고 호소한 권찬주를 20일 넘게 지켜보며 함께 고통스러워했던 이들이었다.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자 마산 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분노로 들끓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5월 8일 어머니의 날을 맞아 권찬주는 “귀여운 자녀들을 잃은 어머니 여러분, 우리 다같이 눈물을 거둡시다. 밝아오는 새나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리고 자식들이 뿌린 따뜻한 선혈이 남긴 이 민족의 넋이 헛되지 않도록 내일의 새로운 세대를 뒷받침하는 이 나라의 어머니로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밉시다”라는 글로 4·19혁명으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해 큰 울림을 주었다. 권찬주는 아들 김주열의 죽음을 “이 나라 민주 발전의 터전이 될 것으로 섭섭하기는 하나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에 새겼다. 6월 하순에는 김주열의 백일재를 마친 후 김주열을 찾는 일을 도왔던 언론사와 입원 중인 4·19혁명 부상자를 위로하고자 상경했다. 그해 10월 새싹회가 수여하는 소파상을 수상하는 등 권찬주는 ‘4월 혁명의 어머니’로 국민적 추앙을 받았다. 권찬주는 평생, 심지어 2023년 4·19혁명 유공자로 건국포장을 받을 때조차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로만 기억됐다. 하지만 4·19혁명에는 청년학생들뿐 아니라 권찬주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김주열의 주검이 발견되자 마산에선 여학생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4월 25일에는 200~300여명의 할머니들이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고 마산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뿐 아니라 권찬주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나라가 되길 기대한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아버지는 나의 영웅… 엄마·동생 지킬게요”

    “아버지는 나의 영웅… 엄마·동생 지킬게요”

    李대통령 “투철한 사명·헌신 기억”박승원·노태영 대전 현충원 안장 “아버지는 나의 영웅이자 정말 멋진 남자였습니다.” 전남 완도 냉동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한 박승원 소방경과 노태영 소방교의 영결식이 14일 완도군 농어민문화체육센터에서 전남도청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해 1계급 특진·훈장 추서, 이재명 대통령 조전 낭독, 영결사·추도사 낭독, 헌화·분향 순으로 이어졌다. 두 순직 소방관의 운구 행렬은 이날 오전 9시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의 울먹임으로 가득 찬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유족과 동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영결식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족 대표로 나선 박 소방경의 고등학생 아들은 “앞으로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고 가슴이 아린다”며 “아버지가 말한 멋진 가장이자 무슨 일이든 해내는 가장이 되겠다. 엄마와 두 동생은 내가 잘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박 소방경의 완도소방서 동료인 임동현 소방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고인은 자신의 위험을 뒤로한 채 끝까지 현장을 지켰다”며 “결국 우리는 그를 다시 부를 수 없게 됐다”고 애도했다. 노 소방교의 해남소방서 동료인 임준혁 소방사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여행지를 고민하며 웃던 형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며 울먹였다. 김승룡 소방청장이 대독한 조전을 통해 이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뜨거운 불길로 뛰어든 고인의 투철한 사명감과 헌신이 오늘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박 소방경과 노 소방교는 지난 12일 완도군 군외면 한 수산물 가공업체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순직했다. 44세의 박 소방경은 슬하에 1남 2녀를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30세의 노 소방교는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다. 두 순직 소방관은 이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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