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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이젠 정부가 울타리 만들어줄 때다/손지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이젠 정부가 울타리 만들어줄 때다/손지연 사회부 기자

    “네가 준 건 안 먹어. 넌 손이 까맣잖아.” 보육원에서 자란 동준(11·가명)이는 어릴 때부터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흑인 혼혈인 동준이는 11년 전 서울의 한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 동준이의 위탁엄마인 위윤미(53)씨는 지난해 동준이의 사연을 듣자마자 ‘내가 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4년 전부터 맡아 돌보는 이든(4·가명)이도 흑인 혼혈이어서 유독 마음이 쓰였다. “가족의 품에서 자라는 게 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해 9월부터 넉 달간 위씨처럼 핏줄이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품은 부모들을 만났다. “가정위탁 제도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호소에 24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위탁부모들은 자신의 수고를 전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부모가 돼 주길 희망했다.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듣고자 했을 때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를 아는 전문가가 드물어 적잖게 당황하기도 했다. 무관심과 무지는 오해를 낳았다. 위탁부모들은 ‘얼마 받고 하냐’는 질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고 했다. 도입 이후 21년이 지났지만 제도가 표류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무관심이 있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가정위탁 지원·운영 예산은 지난해 대비 19.5% 줄었다. 이미 가정위탁 제도가 자리잡은 해외 국가의 경우 정부 홈페이지에 ‘지원비 계산기’까지 마련돼 있었다. 각 가정의 상황과 아이의 상태 등을 입력하자 위탁부모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한눈에 정리됐다. “아동에 대한 치료비마저 지난 21년간 위탁부모들이 하나하나 요구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라는 가정위탁지원센터 상담사의 한숨이 귓가에 맴돌았다. 형제가 된 동준·이든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형제들처럼 위탁가정의 품에 안기는 아이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비혈연 위탁은 10%대에 그친다. “위탁은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사회복지사들은 말한다. 21년간 운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새해에는 벗어나길 바란다. 이제 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다.
  • 신동원 서울시의원, 2024년 노원구 지역발전과 주민복지증진 등 예산 2199억원 확보

    신동원 서울시의원, 2024년 노원구 지역발전과 주민복지증진 등 예산 2199억원 확보

    서울특별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신동원 시의원(국민의힘, 노원구 제1선거구)은 2024년도 서울시 예산에 노원구 지역발전과 주민복지증진을 위한 예산 총 2199억 원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원구의 지역발전과 주민복지증진을 위한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별로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시 관계자들과의 협의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번 2024년 주요예산을 보면 ▲장애인과 어르신 복지를 위한 사회복지 예산 250억 원 ▲주거 및 공원 등 편의시설 환경개선을 위한 공원·환경 예산 249억 원 ▲도로 및 교통 등 지역 기반 시설 확대 예산 673억 원 ▲도시계획 및 주택 정비를 위한 예산 641억 원 ▲주민들 재산 및 생명 보호를 위한 예산 73억 원 ▲문화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예산 313억 원 등 총 98개 사업, 2199억 원이 편성됐다. 노원구 예산 중 매칭사업등을 제외한 월계동의 주요사업은 ▲광운대역~ 월계로간 도로개설 사업 19억 원 ▲월계주공 1단지 방음벽 환경개선사업 18억 원 ▲초안산 무장애숲길(순환산책로) 조성사업 14억 원 ▲초안산 등산로 정비사업 12억 원 ▲초안산 수국동산 2단계 사업 7억 원 ▲월계1교 보수공사 사업 4억 원등 총 74억 원이다. 한편 2023년 노원구의 재정자립도는 16.5%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하위이다. 가장 높은 강남구는 60.4%로 노원구는 강남구의 약 1/4의 수준이다. 이에 노원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서울시 예산편성이 주요하다. 신 의원은 “노원구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만큼 예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노원구 예산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노원구의 지속가능도시 구현을 위한 생활 기반 시설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에 관심을 쏟았다”라고 밝히며, 앞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면 노원구의 재정자립도는 자연히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끝마쳤다.
  • [의정광장] 3불 원칙이 새로 쓴 ‘서울 예산의 법칙’/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의정광장] 3불 원칙이 새로 쓴 ‘서울 예산의 법칙’/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몇 가지 결심과 다짐을 하게 된다. 그중 빠지지 않는 것이 다이어트와 운동이다. 많은 이가 다이어트로 덕지덕지한 군살을 빼고 운동으로 건강한 근육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안고 새해의 출발선에 선다. 한 계절 먼저 새해를 준비하는 서울시의회의 각오도 다르지 않았다. 정책의 연료인 예산의 군더더기를 덜어 내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의회의 최우선 목표였다. 13년간 ‘슈퍼예산’ 타이틀을 달고 꾸준히 몸집을 불려 왔던 ‘서울 살림’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뺄셈 예산심사’로 시작해 삶의 기초체력이 되는 민생·안전·미래 예산을 더하는 ‘덧셈 예산심사’까지 예산심사만 한 달 가까이 진행했다. 녹록지 않은 여정이 이어졌다. 예산을 다뤄 본 사람은 안다.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는 건 어렵다. 상당한 저항이 뒤따른다. 관성에 휩싸여 달리는 수레를 멈춰 세우려면 곱절의 힘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예산의 총량은 줄어든 상태에서 약자 복지를 비롯한 필수예산의 비중을 키우는 건 더욱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회는 서울시청 46조원, 서울교육청 11조원 합계 ‘57조 규모’의 2024년도 서울 예산을 확정했다. 서울시와 시교육청 예산을 전년보다 1조 4000억원, 1조 7000억원씩 줄인 대신 민생·안전·미래 예산은 일부 증액까지 해 가며 꼼꼼히 챙겼다. 무엇보다 여야 간 원만한 합의를 통해 법정 기한을 준수할 수 있게 돼 의회주의를 지향하는 의장으로서 매우 큰 보람을 느낀다. 서울시의회가 ‘긴축 예산’이라는 현실과 ‘민생과 안전, 미래 투자’라는 이상 사이에서 길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다. 제11대 의회 출범 이후 타협 없이 지켜 온 ‘3불 원칙’으로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110명의 여야 의원 모두는 용도가 불요불급하고 집행 목적이 불분명하며 사업 효과가 불투명한 예산에 과감히 메스를 가하는 3불 원칙에 깊이 공감했고 기꺼이 동참했다. 대표적으로 시대적 용도를 다한 TBS의 지원금은 편성하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에 편승해 효과 검증 없이 편성됐던 서울시의 메타버스 예산과 시교육청의 디벗 예산은 과감히 삭감했다. 그렇게 확장재정을 ‘절대 선’으로 규정하며 돈 풀기에 주력하던 과거의 예산 법칙을 새로 썼다. 반면 고물가 시대의 교통비 부담을 덜어 줄 새로운 대중교통 실험인 ‘기후동행카드’ 예산은 온전히 확보했다. 제2의 이태원 참사를 예방할 지능형 폐쇄회로(CC)TV 사업 예산 등 안전 예산은 대폭 증액했다. 세운지구 정비 예산 등 낙후된 도심의 활력을 되찾게 할 중장기 미래 투자 예산도 확보했다. 10년 넘게 봉인돼 온 성장판을 다시 연 것이다. 새해 다이어트와 새해 서울 예산의 공통점은 여기까지. 실패 확률이 높은 다이어트와는 다르게 올해 확정된 예산이 끝까지 잘 쓰일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기겠다.
  • 유진맨션·인왕시장 ‘서북권 랜드마크’ 발판 마련… 연희동 재개발도 속도

    유진맨션·인왕시장 ‘서북권 랜드마크’ 발판 마련… 연희동 재개발도 속도

    ‘빛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대문!’ 서울 서대문구가 새해 구청 입구에 내건 문구다. 그동안 정체됐던 서대문구를 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변화시키겠다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피드 업’된 서대문구의 정비사업이 있다. 이 구청장 취임 이후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서대문구 숙원사업인 유진맨션 개발 해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유진맨션은 하천 위에 지어져 대지권이 없는 탓에 개발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는 인왕시장과 함께 개발하기로 하고 일대 4만 2572㎡ 면적을 ‘서울시 역세권 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게끔 만들었다. 인왕시장과 유진맨션 일대가 서울시의 역세권 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됨에 따라 홍제천 복원을 통한 시민 여가공간 제공과 수변감성도시 및 서북권 랜드마크 조성의 발판이 마련됐다. 여기에 연희동 721-6 일대 공공재개발사업과 연희2구역 공공재개발사업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정비사업 지구 지정뿐만 아니라 민간 정비사업을 위한 지원책도 강화되고 있다. 서대문구는 지난해 12월 27일 구청 기획상황실에서 지역 내 정비구역별 담당 부서장과 팀장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3년 4분기 도시정비사업 공정관리 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이 구청장은 서대문구의 55개 정비구역별 추진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특히 ▲서울시 역세권 활성화 사업 후보지 선정(홍제지구 중심 활성화 사업)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 아카데미 운영 ▲연희2구역 주택정비형 공공재개발사업 정비계획 결정 및 정비구역 지정(안) 고시 ▲홍제동 322 일대 모아타운 후보지 선정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정책 지원뿐만 아니라 정비사업의 주요 주체인 주민들을 위한 교육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구는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조합 관계자와 구민 등을 대상으로 정비사업 아카데미를 진행해 연인원 2400여명이 수업을 들었다. 서대문구는 올해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에 걸쳐 정비사업 아카데미를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8일 “몇 년 뒤에는 서대문이 이렇게 바뀌었느냐는 감탄사가 나오게 할 것”이라면서 “정비사업을 빠르게 추진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삶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돌아가신 아빠에게…” 美 13세 소년, 사상 첫 테트리스 정복 [월드피플+]

    “돌아가신 아빠에게…” 美 13세 소년, 사상 첫 테트리스 정복 [월드피플+]

    미국의 한 13세 소년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적인 유명 블록쌓기 게임 테트리스를 끝판까지 깨 화제에 올랐다. 지난 3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은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윌리스 깁슨(13)이 ‘킬 스크린’(kill screen)에 도달한 첫번째 사람이 됐다고 보도했다. 깁슨이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한 것은 지난달 21일로, 당시 그는 35분 가량 거의 미동도 하지않은 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테트리스 게임을 이어갔다. 특히 막판에는 블록 하나하나가 미친듯한 속도로 내려왔지만 그는 이를 침착하게 하나하나 제거했다. 이후 테트리스 게임은 레벨 157에 도달하면서 화면은 그대로 멈추며 킬 스크린 상태가 됐다.점수는 최대치인 999999점으로 표시됐지만 깁슨은 실제 최종점수가 680만점이었다고 밝혔다. 목표를 달성한 직후 깁슨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기절할 것 같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며 첫소감을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테트리스 게임의 '끝'을 본 것은 세상에 나온 지 34년 만에 일로, 지금까지 끝판까지 깬 것은 인공지능(AI)밖에 없었다. 깁슨은 "처음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들도 성공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 영광을 지난달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테트리스는 원래 지난 1984년 구 소련엔지니어인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만든 퍼즐 게임이다. 이후 지난 1989년 닌텐도가 NES게임기로 보급한 이후 큰 인기를 얻어 지금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플레이되고 있다. 
  • [단독] 보호자 아닌 동거인…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짊어진 ‘제도 밖 위탁부모’[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단독] 보호자 아닌 동거인…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짊어진 ‘제도 밖 위탁부모’[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아이만 생각하면 주변에 추천하고 싶지만 제도의 한계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어요.” 위탁부모는 사회가 보호해야 할 아이를 품에 안아 키우지만 보호자로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 아이 이름으로 통장도, 휴대폰도 만들지 못한다. 친권이 없어 아이가 아파도 서류에 서명조차 할 수 없다. 보호자가 아니기에, 수많은 서류와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일반적인 부모들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학대 피해 아동이나 장애 아동도 많아 육아 난도도 높지만, 긴급 돌봄이나 양육에 대한 교육은 제공되지 않는다.법적 지위 위탁아동인 소영(4·가명)이를 키우는 강연숙(52)씨는 “가끔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해 3월 소영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갔지만 친모가 갑자기 연락이 끊겨 수술동의서를 받지 못했다. 친권이 없는 위탁부모들은 원칙적으로 이런 서류에 서명할 수 없다. 응급처치가 가능한 응급실로 향하거나 매번 의사의 재량에 기대야 한다. 다행히 소영이의 수술은 이번엔 문제없이 끝났지만 강씨는 조마조마했던 당시의 심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양모에게 학대당하던 소영이는 생후 16개월 때 파양돼 강씨에게 왔지만, 친권은 다시 친모에게 돌아갔다. 소영이를 키우는 건 강씨지만 ‘보호자’가 아닌 ‘동거인’이라 아이의 통장을 만드는 간단한 일조차 할 수 없다. 강씨는 수시로 연락이 끊기고 주거지를 옮기는 친모를 기다리느라 항상 애가 탄다. 친부모의 무관심에 방치된 두 형제를 3년째 맡아 기르는 복주영(56)씨도 병원 가는 날이 가장 힘들다. 지난해 11월 하민(5·가명)이가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돼 대학병원에 갔던 복씨는 6시간 만에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복씨는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주민등록등본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친권자의 서류가 필요하다더라”고 전했다. 후견인 증빙 서류를 떼기 위해 구청과 법원에 전화를 반복하던 복씨는 가정위탁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위탁부모임을 인증할 수 있었다. 서울신문이 혈연관계가 없는 위탁부모 1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위탁부모 10명 중 7명은 ‘보호자로서 위탁부모의 법적·제도적 권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행정 처리 2022년부터 희우(4·가명)를 맡고 있는 이보연(55)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영수증을 모으고 있다. 희우와 같은 위탁아동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위탁부모가 기초생활 급여를 받는다. 사용 내역을 인증받으려면 위탁아동들이 입고 먹는 모든 것들을 현재 같이 사는 가족과 분리한 별도 영수증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인증 방식이 다르고 통일된 매뉴얼도 없다. 이씨는 “원래 교육받을 때는 영수증 처리 얘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지자체에서) 전화가 와서 이제 영수증을 모아야 한다더라”며 “희우가 먹고 쓴 것만 영수증을 분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수증을 제출하는 기한은 1년에 한 번인데 영수증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도 어렵고 그 많은 영수증을 지자체가 일일이 확인할지도 알 수 없지만 이씨는 혹시나 희우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영수증을 모으고 있었다. 위탁부모가 워낙 소수인 데다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관련 제도나 정책을 안내받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위탁부모가 주민센터나 구청에 가면 ‘긴급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서류 발급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유일하다. 이처럼 번거로운 행정 절차 때문에 위탁부모들은 국가나 지자체 지원을 포기하기도 한다. 부산에 거주하는 심가희(41)씨도 위탁을 시작한 2022년 우체국에 기초생활 급여를 찾으러 갔다가 꼼짝없이 붙잡혔다. ‘친모가 아니면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다가 센터와 구청의 전화로 겨우 풀려났다고 한다. 심씨는 “위탁을 하면 복지 서비스는 원스톱으로 따라오는 줄 알았다”며 “서류를 떼거나 아이와 관련된 행정 절차를 하려면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최소 30분 이상은 소요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돌봄 교육 상대적으로 고령인 위탁부모들은 아프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긴급 돌봄을 받기 어렵다. 8년 차 위탁모 하미화(51)씨는 “위탁부모들은 아파도 주변에 아이를 맡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양육 지원이나 교육도 전혀 없다. 장애가 있는 쌍둥이 예랑·하랑(4·가명)이를 키우는 류수영(45)씨는 전문적인 위탁 교육이 간절하다고 했다. 550g의 초미숙아로 태어난 예랑이는 어린 나이에 심장약과 갑상선약을 복용할 정도로 병원에 오래 있었다. 류씨는 “심리치료, 재활, 법적인 부분 등 알아야 할 게 많은데 이런 전문 분야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다”며 “아픈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교육은 물론 상담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기후동행카드, 안심소득 힘 있게 추진” 정책 세일즈맨 된 오세훈

    “기후동행카드, 안심소득 힘 있게 추진” 정책 세일즈맨 된 오세훈

    “이달부터 운영에 들어가는 기후동행카드를 쓰시면 한달에 6만 5000원만 내면 마을버스와 지하철은 물론 따릉이까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의 정책 세일즈맨으로 나섰다. 3일 오후 3시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강동구청 주관으로 열리는 ‘2024 강동구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오 시장은 시민들에게 “저에게 30분만 달라”고 요청한 뒤 57페이지에 달하는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띄우고는 원고 없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수희 강동구청장 등 주민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오 시장은 올해 예산이 줄었음을 시민들에게 먼저 이야기 한 뒤 ▲약자와의 동행 ▲안전한 서울 ▲매력적인 서울 등 3대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가 추진하는 안심소득과 서울런, 동행프로젝트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갔다.오 시장은 “안심소득은 일을 하지 않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재 복지시스템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 “K복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오 시장은 서울의 새 먹거리 중 하나로 관광산업을 제시하며 현재 연간 1000만명 수준인 관광객수를 300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오 시장은 “중국 단체관광객이 아닌 개별 관관객들이 서울을 방문하게 할 것”이라면서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 김관영 전북지사, ‘특별한 전북’ 백년대계 준비하겠다

    김관영 전북지사, ‘특별한 전북’ 백년대계 준비하겠다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3일 “2024년 갑진년 새해, 나무를 심는 사람의 마음으로 특별한 전북을 향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이날 전북도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전북특별자치도 333개 특례를 잘 준비해 5대 핵심산업과 3대 기반 분야에 창조적인 도전을 실행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그는 도정 제1의 목표는 지난해 마찬가지로 전북경제 활성화라고 강조했다. 지난 1년의 성과로는 ▲10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기업유치 달성 ▲전북특별법 131개 조문 333개 특례 통과 ▲RIS, RISE, 글로컬대학30 등 3대 교육혁신 사업 확보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유치 ▲새만금사업 정상추진 국가예산 확보 등을 소개했다. 2024년 전북도정은 ‘함께 혁신, 함께 성공, 새로운 전북’ 비전과 ▲전북 도민경제 부흥 ▲농생명 산업 수도 ▲문화·체육·관광 산업거점 조성 ▲새만금 도약·균형발전 ▲도민행복·희망교육의 5대 목표는 그대로 유지한다. 10대 역점시책으로는 ▲특별한 100년을 향한 전북특별자치도 개막 ▲미래 성장기업 유치, 친기업 환경 조성으로 민생경제 활성화 ▲미래 신산업 생태계 대전환으로 글로벌 생명경제 실현 ▲미래성장 산업화를 선도하는 농생명산업 수도 도약 ▲문화·체육·관광 산업 연계 강화 지역성장 견인 ▲새만금 글로벌 명품도시 실현 및 균형발전 SOC 구축 ▲함께 누리는 행복복지 ▲지속 발전 가능한 에코힐링 1번지 조성 ▲365일 선제적 재난·안전 관리 ▲교육·소통·협력으로 함께 혁신 동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특히, 도로·공항·항만 등 중단됐던 새만금 SOC 정상 추진을 지원하고 연계 교통망 확충과 전주-김천 철도 추진으로 새만금 글로벌 명품도시 실현과 동서 균형발전 SOC를 갖춰 나갈 방침이다. 특별자치도를 통해 각종 사업의 전국 최초 테스트베드 역할을 준비하고 역점사업의 실행기간 단축 노력과 2단계 특례 발굴 및 후속 입법도 추진한다. 김 지사는 “전북 경제를 견인할 동력도 하나하나 갖춰지고 있다”면서 “이차전지, 방위산업, 바이오산업, 삼성스마트공장 등 도내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로운 기업의 투자가 진행되고 기존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눈에 띄게 일자리가 늘어나 지역 청년들의 안정적 정착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단독]“법적 부모 아니라고…” 제도에 막힌 위탁부모의 눈물[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단독]“법적 부모 아니라고…” 제도에 막힌 위탁부모의 눈물[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아이만 생각하면 주변에 추천하고 싶지만 제도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어요.” 위탁부모는 사회가 보호해야 할 아이를 품에 안아 키우지만 보호자로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 아이 이름으로 통장도, 휴대폰도 만들지 못한다. 친권이 없어 아이가 아파도 서류에 서명조차 할 수 없다. 보호자가 아니기에, 수많은 서류와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일반적인 부모들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학대 피해 아동이나 장애 아동도 많아 육아 난도도 높지만, 긴급 돌봄이나 양육에 대한 교육은 제공되지 않는다. #법적 지위 위탁아동인 소영(4·가명)이를 키우는 강연숙(52)씨는 “가끔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해 3월 소영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갔지만 친모가 갑자기 연락이 끊겨 수술동의서를 받지 못했다. 친권이 없는 위탁부모들은 원칙적으로 이런 서류에 서명할 수 없다. 응급처치가 가능한 응급실로 향하거나 매번 의사의 재량에 기대야 한다. 다행히 소영이의 수술은 이번엔 문제없이 끝났지만 강씨는 조마조마했던 당시의 심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양모에게 학대당하던 소영이는 생후 16개월 때 파양돼 강씨에게 왔지만, 친권은 다시 친모에게 돌아갔다. 소영이를 키우는 건 강씨지만 ‘보호자’가 아닌 ‘동거인’이라 아이의 통장을 만드는 간단한 일조차 할 수 없다. 강씨는 수시로 연락이 끊기고 주거지를 옮기는 친모를 기다리느라 항상 애가 탄다. 친부모에게 방임 당한 두 형제를 3년째 맡아 기르는 복주영(56)씨도 병원 가는 날이 가장 힘들다. 지난해 11월 하민(5·가명)이가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돼 대학병원에 갔던 복씨는 6시간 만에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복씨는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주민등록등본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친권자의 서류가 필요하다더라”고 전했다. 후견인 증빙 서류를 떼기 위해 구청과 법원에 전화를 반복하던 복씨는 가정위탁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위탁부모임을 인증할 수 있었다. 서울신문이 혈연관계가 없는 위탁부모 1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위탁부모 10명 중 7명(70.0%)은 ‘보호자로서 위탁부모의 법적·제도적 권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행정 처리 2022년부터 희우(4·가명)를 맡고 있는 이보연(55)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영수증을 모으고 있다. 희우와 같은 위탁아동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위탁부모가 기초생활 급여를 받는다. 사용 내역을 인증하려면 위탁아동들이 입고 먹는 모든 것들을 현재 같이 사는 가족과 분리한 별도 영수증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인증 방식이 다르고 통일된 매뉴얼도 없다. 이씨는 “원래 교육받을 때는 영수증 처리 얘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지자체에서) 전화가 와서 이제 영수증을 모아야 한다더라”며 “희우가 먹고 쓴 것만 영수증을 분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수증을 제출하는 기한은 1년에 한 번인데 영수증을 하나하나 모으기도 어렵고 그 많은 영수증을 지자체가 일일이 확인할지도 알 수 없지만 이씨는 혹시나 희우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영수증을 모으고 있었다. 위탁부모가 워낙 소수인 데다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관련 제도나 정책을 안내받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위탁부모가 주민센터나 구청에 가면 ‘긴급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서류 발급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유일하다. 이처럼 번거로운 행정 절차 때문에 위탁부모들은 국가나 지자체 지원을 포기하기도 한다. 부산에 거주하는 심가희(41)씨도 위탁을 시작한 2022년 우체국에 기초생활 급여를 찾으러 갔다가 꼼짝없이 붙잡혔다. ‘친모가 아니면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다가 센터와 구청의 전화로 겨우 풀려났다고 한다. 심씨는 “아이를 맡아 돌보면 복지 서비스는 원스톱으로 따라오는 줄 알았다”며 “서류를 떼거나 아이와 관련된 행정 절차를 하려면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최소 30분 이상은 소요된다”고 토로했다. #돌봄교육 상대적으로 고령인 위탁부모들은 아프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긴급 돌봄을 받기 어렵다. 8년 차 위탁모 하미화(51)씨는 “위탁부모들은 아파도 주변에 아이를 맡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양육 지원이나 교육도 전혀 없다. 장애가 있는 쌍둥이 예랑·하랑(4·가명)이를 키우는 류수영(45)씨는 전문적인 위탁 교육이 간절하다고 했다. 550g의 초미숙아로 태어난 예랑이는 어린 나이에 심장약과 갑상선약을 복용할 정도로 병원에 오래 있었다. 류씨는 “심리치료, 재활, 법적인 부분 등 알아야 할 게 많은데 이런 전문 분야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다”며 “아픈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교육은 물론 상담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올해 정책 키워드는 “역동경제, AI 주도권, 탄소 중립”

    올해 정책 키워드는 “역동경제, AI 주도권, 탄소 중립”

    최상목 “물가 안정·수출 회복 과제”이상민 “재난안전관리 시설 확충”조규홍 “의료개혁의 원년 삼겠다”강도형 “어촌 특구 민간 투자유치” 정부 부처를 이끄는 수장들은 새해가 밝으면 그해의 ‘정책 나침반’ 역할을 하는 신년사를 발표한다. 부처의 정책 철학과 방향이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한다. 공무원들은 리더의 새해 일성을 업무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인다. 부처 수장들의 신년사를 통해 올해 어떤 정책이 국민 삶에 변화를 가져올지 살펴봤다.●기획재정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장관은 ‘역동 경제’를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최 부총리는 “경제를 넘어 사회·과학기술·경제안보가 얽힌 복합 과제가 늘고 있다”면서 “혁신과 이동성이 선순환하는 역동 경제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올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는 ‘물가 안정’, ‘수출 회복’, ‘민생경제 회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가계 부채 등 잠재 위험 관리’를 꼽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장관은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의 주도권을 따내는 데 전력투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장관은 “초거대 AI 시장 선점을 위해 AI 고급 인재 양성과 규제 혁신에 나서고, AI가 가져오는 혁신의 과실을 국민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핵심 과제로 ‘지방소멸 대응’과 ‘현장 중심 재난안전관리체계 구축’을 꼽았다. 이 장관은 “저출산과 지방소멸 흐름이 가속화하고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면서 신종·복합 재난의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붕괴·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은 신속하게 안전시설을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송미령 장관은 농식품 산업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 장관은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을 통해 농업을 혁신함으로써 성장 동력을 확충하고 청년이 찾는 산업으로 만들겠다”면서 “농촌을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기회의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의대 정원 확대, 필수·지역 의료체계 확립을 통해 올해를 의료 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복지 분야에서는 “약자 복지 2.0을 추진해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간병 걱정을 해소하며, 취약계층 소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구 위기 대응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부 한화진 장관은 “기후 위기 시대에 글로벌 탄소 중립 질서를 선도하겠다”며 역할론을 부각했다. 한 장관은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사구시형 환경 정책,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환경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양질의 환경 서비스, 따뜻한 환경 복지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노동 개혁’을 화두로 제시했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임금체계 등 노동시장에 산적한 문제를 국민의 관점에서 논의하고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취약 근로자의 생계를 어렵게 하는 임금 체불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경고도 신년사에 담았다.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저출산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김 장관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위해 맞벌이 부부의 양육 부담을 낮추고, 일과 가정 양립에 힘쓴 ‘가족 친화 인증 기업’을 위한 혜택을 새롭게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강도형 장관은 ‘국민에게 힘이 되는 바다, 경제에 기여하는 해양수산’을 해수부의 새로운 비전으로 정했다.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강 장관은 “어촌 특구를 조성해 민간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하고, 생활·경제·안전 인프라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 오영주 장관은 ‘소상공인 지원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오 장관은 “소상공인 정례협의체를 신설해 현장의 어려움을 직접 듣겠다”면서 “노란우산공제를 확대하고 자영업자 고용보험 지원을 늘려 소상공인의 생업 안전망을 튼튼히 하겠다”고 밝혔다.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열린세상] 정략 가득한 野 ‘김건희 특검법’/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정략 가득한 野 ‘김건희 특검법’/유창선 정치평론가

    ‘김건희 특검법’을 놓고 새해 벽두부터 여야가 맞서게 됐다. 법 앞에 성역이 없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배우자라 해도 위법한 행위가 있다면 마땅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야당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김건희 특검법’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오염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공격에 집요하게 매달린 것이 대선 정국 때부터였다. 그동안 민주당과 팬덤 지지층이 확산시켰던 정치적 담론은 이런 것들이었다. 쥴리, 김건희 동거설, 김건희 강아지, 김건희 장신구, 김건희 조명, 빈곤 포르노, 리투아니아 쇼핑, 바이든 팔짱, 천공.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담론들이 자취를 감춘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찌라시 같은 소문들에 목숨 거는 저급한 정치였다. 필자는 지난해 ‘김건희 죽이기’라는 책을 내면서 야당이 제기했던 ‘김건희 의혹’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본인이 사과했던 ‘경력 부풀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근거 없는 마타도어였거나 침소봉대한 선동들이었다. 정권이 못마땅하면 대통령을 비판할 일이다. 배우자를 약한 고리로 판단하고 화력을 집중해 온 야당의 모습은 비열했다. 그럼에도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김 여사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함정 취재까지 하며 먹이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을 엄격함은 김 여사와 대통령실의 몫이다. 대통령실은 이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더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잘못이 없다면 특검을 거부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기소하는 것이 특검의 생리다. 빈손으로 끝난 실패한 특검이라는 말을 누구든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 이예람 중사 특검’의 핵심 수사 대상이었던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전 실장이 가해자를 봐주기 위해 구속수사를 방해했다며 녹취록을 공개했지만 허위 조작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특검은 전 실장이 군 수사관에게 전화를 했다는 지엽말단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기소했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김 여사의 경우도 불을 보듯 뻔하다. 야당이 추천한 특검이 수사를 하면 십수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 잡듯이 수사해서 어떤 부분이든 문제 삼아 기소할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더구나 특검법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까지 수사 범위에 포함시켜 주가조작과는 별개의 사안에 대해서도 특검이 마음대로 수사할 길을 열어 놓았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의 일들을 탈탈 털어 특검이 김 여사를 어떤 혐의로든 기소하면 야당은 김 여사를 향해 관저를 떠나라며 집중 공세를 펼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 배우자의 신상 문제가 정국의 블랙홀이 된다. 아니 그 이전에 총선 한복판에서 특검이 하는 언론 브리핑들이 선거의 승부를 이미 결정지을 수도 있다. 아무리 부인한들 ‘총선용 특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년이 넘도록 ‘김건희 죽이기’에 매달려 왔던 사람들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이든 아니든 의혹들을 마구 던지다 보니 여론도 우리 편이 되지 않았냐고 말이다. 하지만 편견과 예단을 잠시 접어 두고 백지 상태에서 생각해 보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추미애-반윤석열 라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맡겨 19개월 동안 수사했지만 증거가 없어 기소하지 못했던 사안이다. 그 뒤로 새로운 단서가 나온 것도 없다. 그런데도 죄가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번 특검을 해 보자는 식이다. 이것이 과연 상식과 정의에 부합되는 일일까. ‘김건희 특검법’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내걸었지만 그 속은 정략으로 가득 찬 ‘양두구육’의 법이다.
  • [자치광장] ‘최고 가치 도시, 동작’의 꿈/박일하 서울 동작구청장

    [자치광장] ‘최고 가치 도시, 동작’의 꿈/박일하 서울 동작구청장

    동작구는 민선 8기 들어 ‘주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최고 가치 도시(Best Value city) 조성’이라는 비전 아래 변화의 초석을 굳건히 세웠다. 자치구 최초로 도시개발관리 가이드라인을 수립 및 제공해 민간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으며, 사당동 공영주차장 및 버스정류장 신설 등 구민들의 일상 속 불편들을 셀 수 없이 해소했다. 신상도초등학교 앞 좌회전, 여의도 방면 버스 신설 등 교통체계 또한 수요자 편의에 맞춰 개선했다. 이제 임기가 중반으로 향해 가고 반환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임기 초 약속했던 사항들을 하나하나 지켜 내는 모습에 구민들의 만족도 크다. 역세권활성화사업 5곳, 모아타운 3곳, 신속통합기획 3곳이 선정되는 등 도시 전반의 변화가 점점 가시화되면서 가치 도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꿈도 점차 선명해진다. 2024년은 그동안의 성과를 발판 삼아 역점사업들의 실효성을 높이고 ‘최고 가치 도시’의 실현을 앞당길 것이다. 먼저 도시 외형 변화를 이끌 ‘동작구형 도시개발’이 본격화된다. 동작구형 도시개발의 선도구역으로 선정한 ‘신대방삼거리역 북측’과 ‘남성역 일대’의 정비계획을 연내 확정하고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내년 완공되는 신청사는 단순한 관공서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동작의 핫플레이스로 조성된다. 장승배기 일대 개발과의 상승 효과를 통해 지역 상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작구형 특화아파트 공급 추진도 본격화된다. 구민 누구나 고품격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동작구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아파트를 구상 중이다. 재개발이 어려운 나홀로 아파트, 저층 주거지에 구 주도로 소규모 정비 방식을 추진해 소외 없는 주거환경 개선을 이뤄 낼 것이다. 아울러 구민이 바라 왔던 해묵은 난제들의 해결에도 행정적·재정적 역량을 집중한다. 신대방동 대림사거리 U턴, 대림삼거리역 추가 출입구 설치, 흑석동 수변개발과 연계한 흑석역 급행열차 정차, 노량진 민자역사 개발 등도 임기 내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액션플랜에 돌입했다. 동작구만의 새로운 복지도 내년엔 더욱 완성도를 높인다. 키즈카페 3곳과 키움센터 3곳을 확충하고 보육교직원과 학부모, 아동이 모두 만족하는 어린이집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사업과 특화프로그램 등을 확대 지원한다. 경로당 전체에 맞춤형 헬스케어 시설과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어르신 행복콜택시 사업을 도입하는 한편 청년 세대를 위해서는 자치구 최초로 ‘동작구형 청년 전세임대주택’을 저렴한 재임대로 연내 공급한다. 2024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사뭇 비장하다. 변화를 뛰어넘는 혁신을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반드시 주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도시로 만들 것이다. ‘최고 가치 도시, 동작’의 꿈이 반드시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 확신한다.
  • 박진희·정병용 하남시의원, 2023년도 의정활동 우수의원 수상

    박진희·정병용 하남시의원, 2023년도 의정활동 우수의원 수상

    하남시의회 박진희 부의장과 정병용 위원장이 26일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회장 김기정·수원특례시의회 의장)는 수원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의욕적인 의정활동으로 지방자치 발전에 공헌한 12개 분야, 도내 우수의원과 의정활동지원 우수직원에 대한 ‘2023년 제13회 의정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박진희 부의장(국민의힘‧다 선거구)은 3선 의원으로서 업무 파악이 빠르고, 추진력과 강단 있는 논리정연함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스타일로 언론‧집행부 소통과 정무 감각이 뛰어난 ‘여장부’로 통한다. 특히 박 부의장은 풍부한 의정경험과 관록의 노련미, 뛰어난 친화력에다 선수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도시개발·문화예술·청소년 분야에서 왕성한 입법성과와 탁월한 의정활동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박 부의장은 주요 시정현안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철저한 사전 준비, 전문적 식견, 날카로운 지적과 참신한 정책 제안 등으로 집행부 선정,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박 부의장은 “3선 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우수의원 공로패 수상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앞으로도 책임감을 갖고 지역구 주민들과 하남시민들을 위한 올바른 의정활동을 이어가겠다”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병용 자치행정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다 선거구)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자세의 뼛속까지 현장주의자로, 각종 민원 현장에서 그리고 간담회와 토론회, 의원연구단체 활동 등에서 의정활동을 충실히 해온 대표적인 ‘워커홀릭’이다. 무엇보다 정 위원장은 지역사회에서 부드러운 ‘외유내강형’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합리적이고 핵심을 파고드는 일 처리로 의회 내에서 굵직한 방향성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정 위원장은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예산심의와 ‘지방의원은 조례로 말한다’는 자세로 주민을 대리해 자치입법인 조례의 재·개정 등의 입법 활동 분야에 집중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 위원장은 “효율적인 예산 절감과 능률적인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한다”라며 “초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하남시 지역발전을 위해 전력 질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 의정활동지원 우수 직원의 영예를 안은 하남시의회 의회사무국 성은지 정책지원관은 각 부서 정책과 법령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하고 현안을 빈틈없이 분석하며 조문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성 정책지원관은 의정자료 수집·조사·연구 및 행정사무감사와 시정질문 등 의원 의정활동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궂은일은 직접 하고, 더 나은 대안 제시와 균형 잡힌 정책보좌를 위해 귀를 열고 소통하는 자세가 좋은 인재로 꼽힌다.
  • “고2 아들에게 썩은 대게 팔았다”…노량진 상인 ‘현재 상황’

    “고2 아들에게 썩은 대게 팔았다”…노량진 상인 ‘현재 상황’

    고등학생에게 상한 대게 다리를 판매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이 영업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JTBC에 따르면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을 관리·운영하는 수협노량진수산은 “해당 상인이 전날부터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량진수산시장 너무 화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경기도에 살고 있다는 작성자 A씨는 “아들은 요리 특성화고에 다니는 고2 남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아들이) 친구와 노량진수산시장에 구경 삼아 다녀오겠다더니 3시간쯤 뒤 검정 봉지 3개를 들고 집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봉지에서 생선 썩은 듯한 비린내가 진동해서 뭔가 봤더니, 대게 다리를 산 거란다. 그러나 물건을 꺼내 보고 경악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A씨가 첨부한 사진을 보면 문제의 대게 다리에는 마치 곰팡이처럼 보이는 검은 얼룩이 곳곳에 있다. 대게 다리를 담았던 스테인리스 용기에도 검은 이물질이 묻어 있다. A씨는 “아이는 바구니에 (대게 다리가) 토막 나 담겨 있으니 하나하나 자세히 보지는 못했고, 검게 있는 건 뭐가 좀 묻은 건가 싶었다고 했다”며 “대충 보니 살도 좀 차 있는 것 같고 가격 대비 양도 괜찮아 보여 샀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쪽은 그나마 깨끗한 걸 올려놔 더 그럴싸하게 보이게 꾸민 거다. 심지어 당시 옆 가게 사장이 ‘1㎏ 사서 뭐 하냐. 2㎏ 사라’고 한 걸 1㎏(1만 5000원)만 산 거라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상인 “실수였다” 해명…상인징계위 조사 A씨는 대게를 판매한 상인에게 연락해 항의했지만 이후 대처 과정도 미흡했다고 전했다. A씨는 “판매자와 전화를 했다”며 “아르바이트생이 팔 것과 버릴 것의 분리 작업을 엉망으로 해서 본인이 다시 분리했는데 그게 판매된 것 같다고 얘기했다”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계좌번호를 주면 환불해주겠다고 하더라”라고 토로했다. 현재 이 글을 삭제된 상태다. 수협노량진수산 관계자는 JTBC에 “상인징계심의위원회에서 징계 수위가 결정될 때까지 영업 정지를 시행했다”며 “오늘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추후 사실관계에 따라 추가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인은 징계위 측에 “아르바이트생이 진열해 놓은 것을 그대로 팔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카메라 렌즈로 잊힌 것을 다시 깨우다

    카메라 렌즈로 잊힌 것을 다시 깨우다

    51년 전 열아홉 청년은 남해의 한 바닷가에서 꼭 바다 너머 세상으로 향하겠다고 다짐하며 수평선을 바라보던 자신의 뒷모습을 사진(1972년작 ‘자화상’)에 남겼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다 반년 만에 퇴사한 그는 1979년 독일로 사진 유학을 떠났다. 작업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고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 수년의 기다림도 마다치 않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일궈 ‘한국 현대사진의 개척자’가 됐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의 주인공 구본창(70) 작가다. 그는 1980년대까지도 기록으로만 기능했던 사진의 역할을 과감히 지우고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 속성을 반영한 독창적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1988년에 한 워커힐미술관 전시 ‘사진, 새 시좌’는 ‘연출 사진’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다.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를 열어 간 그의 50여개 작품 시리즈 가운데 43개 연작 500여점으로 반세기 작품 여정을 아울렀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정의 작가는 잊힌 것들을 다시 주목하게 하고 사물마다 지닌 고유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 조선 달항아리의 웅숭깊은 아름다움, 신라 천마총 금관의 찬란함,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등 아픈 역사를 켜켜이 이고 있는 광화문 부재(추녀, 계단 등) 등을 ‘백자’, ‘황금’, ‘콘크리트 광화문’ 연작으로 조명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 12개를 담은 ‘문 라이징 Ⅲ’는 각기 다른 흑백조로 촬영해 마치 달이 영글고 지는 듯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낸다. 치매를 앓던 아버지의 육신에서 생명의 물기가 빠져나가는 순간을 포착한 ‘숨’ 연작을 모은 전시실은 어둡게 연출한 조명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인 생과 사, 자연의 순환에 대한 성찰을 안긴다.그가 1960년대 소년 시절부터 수집해 온 갖가지 사물들과 젊은 시절의 습작 등 전시 자료도 600여점에 이른다. 세세하고 방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 역시 작가의 내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관람의 묘미다. ‘젊은 남자’,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그가 작업했던 친숙한 영화 포스터들도 나왔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년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기존에 없던 발상과 실험을 거듭했던 작가는 “꿈을 꾸는 자만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조금이라도 꿈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전시 공간인 ‘열린 방’은 앞으로도 이어질 ‘익명자’ 연작으로 그의 꿈과 항해가 진행 중임을 알린다.
  • 12층서 주인 손에 떠밀려 죽어간 어미와 새끼…반성은 없었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12층서 주인 손에 떠밀려 죽어간 어미와 새끼…반성은 없었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오피스텔 12층에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창문 밖으로 던져 죽인 30대 남성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지난 6월 24일 경남 김해시 한 오피스텔 12층에서 기르던 고양이 두 마리를 2분 간격으로 42m 아래로 던져 죽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측이 확보한 목격자들은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새끼)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진 채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라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 위를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창밖에 (또 다른 어미) 고양이를 들고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단체는 “고양이가 다리로 그 사람의 팔을 붙잡고 있었는데 손으로 고양이 다리를 하나하나 떨어뜨리더니 이내 두 손으로 고양이를 아래로 던졌다고 한다”라며 “새끼 고양이가 먼저 던져졌고, 이후 엄마 고양이로 보이는 고양이까지 바닥에 던져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방충망이 찢어진 틈으로 고양이들이 실수로 떨어진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지만 A씨가 직접 고양이를 던지는 장면은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다만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A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있다.최근 법정에 선 A씨는 “(목격자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는데 당시 집에 여자는 없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목격자들은 사람이 고양이를 손으로 밀어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에게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더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A씨에겐 총 여섯 마리의 반려묘가 있었고, 피해 동물을 제외한 네 마리 중 두 마리는 A씨가 지인에게 보내 파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부산동물사랑길고양이보호연대는 A씨의 추가 동물학대를 예방하고자 김해시청에 A씨의 남은 반려묘에 대하여 보호자로부터 떼어놓는 긴급격리 조치를 요청했다. 김해시청 관계자는 “남은 고양이는 구조 대상이 아니며 법령은 우리가 판단하겠다”라고 답했다. 부산동물사랑길고양이보호연대 박혜경 대표는 “사건 발생 이후로 수차례 남은 동물에 대한 학대 위험성을 알리고 즉각적인 구조요청을 하였으나, 아직까지 구조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윤성모 활동가는 “학대 현장에 남아 있는 동물은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학대 위험에 노출된 반려동물 구조에 지자체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A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1월 19일 창원지법 123호 법정에서 이어질 예정이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꿈에 가닿으려던 ‘구본창의 항해’…한국 현대사진 새 지평 열다

    꿈에 가닿으려던 ‘구본창의 항해’…한국 현대사진 새 지평 열다

    51년 전 열아홉 청년은 남해의 한 바닷가에서 꼭 바다 너머 세상으로 향하겠다고 다짐하며 수평선을 바라보던 자신의 뒷모습을 사진(1972년 작 ‘자화상’)에 남겼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다 반년 만에 퇴사한 그는 1979년 독일로 사진 유학을 떠났다. 작업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고,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 수년의 기다림도 마다치 않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품을 일궈온 그는 ‘한국 현대사진의 개척자’가 됐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의 주인공 구본창(70) 작가다. 그는 1980년대까지도 기록으로만 기능했던 기존 사진의 역할을 과감히 지우고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 속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특히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연 1988년 워커힐미술관 전시 ‘사진 새시좌’는 ‘연출 사진’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충격과 각성을 안겼다.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를 열어간 그의 50여개 작품 시리즈 가운데 43개 연작 500여점으로 작가의 반세기 작품 여정을 아울렀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정의 작가는 잊혀진 것들을 다시 주목하게 하고, 사물마다 지닌 고유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특히 주력했다. 조선 달항아리의 웅숭깊은 아름다움, 신라 천마총 금관의 찬란함, 임진왜란부터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아픈 역사를 켜켜이 이고 있는 광화문 부재 등을 ‘백자’, ‘황금’, ‘콘크리트 광화문’ 연작으로 조명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 12개를 담은 ‘문 라이징 Ⅲ’는 각기 다른 흑백조로 촬영해 마치 달이 영글고 지는 듯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낸다. 치매를 앓던 아버지의 육신에서 생명의 물기가 빠져나가는 순간을 포착한 ‘숨’ 연작을 모은 전시실은 어둡게 연출한 조명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인 생과 사, 자연의 순환에 대한 성찰을 안긴다.전시장에는 그가 1960년대 소년 시절부터 수집해온 갖가지 사물들과 청소년, 대학생 시절의 습작 등 자료만도 600여점에 이른다. 세세하고 방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작가의 내면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관람의 묘미다. ‘젊은 남자’, ‘기뿐 우리 젊은 날’ 등 그가 작업한 친숙한 영화 포스터들도 나왔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년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기존에 없던 발상과 실험을 거듭했던 작가는 “꿈을 꾸는 자만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조금이라도 꿈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전시 공간인 열린 방은 앞으로도 이어질 ‘익명자’ 연작으로 그의 꿈과 항해가 진행 중임을 알린다.
  • “생선 비린내 진동”…노량진 시장 썩은 ‘대게 다리’ 논란

    “생선 비린내 진동”…노량진 시장 썩은 ‘대게 다리’ 논란

    서울 최대 수산물 시장인 노량진에서 한 상인이 고등학생을 상대로 썩은 대게 다리를 속여 판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대게 구매 당시 옆 가게 상인이 더 많이 사야 한다고 학생을 부추겼던 것으로 전해져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는 ‘노량진수산시장 너무 화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경기도에 살고 있다는 글 작성자 A씨는 자신의 아이가 요리 특성화고에 다니는 고2 남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친구와 노량진수산시장에 구경 삼아 다녀오겠다더니 3시간쯤 뒤 검정 봉지 3개를 들고 집에 왔는데 봉지에서 생선 썩은 듯한 비린내가 진동해서 뭔가 봤더니, 대게 다리를 산 거란다. 하지만 물건을 꺼내 보고 경악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A씨가 올린 사진에는 곰팡이가 슨 것 같은 상한 대게 다리가 가득 있었고, 정체불명의 검은색 이물질로 심하게 오염된 모습이었다. A씨는 “아이는 바구니에 (대게 다리가) 토막 나 담겨 있으니 하나하나 자세히 보지는 못했고 검게 있는 건 뭐가 좀 묻은 건가 싶었다고 했다”며 “대충 보니 살도 좀 차 있는 거 같고 가격 대비 양도 괜찮아 보여 샀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쪽은 그나마 깨끗한 걸 올려놔 더 그럴싸하게 보이게 꾸민 거다. 심지어 당시 옆 가게 사장이 ‘1㎏ 사서 뭐 하냐. 2㎏ 사라’고 한 걸 1㎏(15000원) 만 산 거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A씨는 “아직 사회 경험 부족한 고등학생이라지만 참 속상하더라. 버스에 전철에 1시간 걸리는 곳을 찾아갔는데 어른들의 상술에 안 좋은 기억만 갖게 됐다”며 “대게 요리할 생각에 산 건데 무겁게 들고 온 대게가 음식 쓰레기가 돼버렸으니, 아이도 제 눈치 보면서 두 번 다시 노량진 갈 일은 없을 거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A씨는 대게 판매자에게 연락해 항의했지만 이후 대처 과정도 미흡했다고 전했다. A씨는 “글 올리기 전에 판매자와 전화하는데 별일 아닌 듯 실수란 태도로 일관하더니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며 “아직도 저렇게 눈속임하는 가게가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답답하고 또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더 화나는 건 손님이 저런 쓰레기를 산다는데 더 사라며 부추기는 옆 가게 사장이다. 싱싱하겠거니 하고 믿고 샀던 아이가 너무 속상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러니 사람들이 대형마트만 가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속이는게 제일 쉽네” “누군가 잘 못 먹고 사망해야 바뀌려나” “앞으로 수산시장 갈 일은 없겠다”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 26년 만에 올린 결혼식…한총리, “김치! 참치! 꽁치!” 외친 이유

    26년 만에 올린 결혼식…한총리, “김치! 참치! 꽁치!” 외친 이유

    한덕수 국무총리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신신예식장을 찾아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를 위해 ‘깜짝 주례’를 섰다. 신신예식장은 창업주 고 백낙삼 전 대표가 지난 4월 별세할 때까지 50여년 간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 예식을 치러준 곳으로 유명하다. 아들인 백남문씨가 2대 대표를 맡아 고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백 전 대표가 떠나신 뒤 부인과 아드님이 고인의 유지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나면 작은 힘이라도 꼭 보태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성탄절 이브인 오늘 인연이 닿았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26년간 함께 살다가 이날 신신예식장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례를 맡기로 했다. 혹시 부부가 부담을 느낄까 봐 한 총리가 주례를 본다는 사실을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총리는 “예식 전에 도착해 ‘오늘 주례를 맡게 됐다’고 인사드렸더니, 부부는 물론 따님과 아드님, 시누이 부부까지 온 가족이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한 총리는 주례사에서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자식들 반듯하게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오셨으니 충분히 자부심 가지실 만하다”며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며 희끗희끗한 머리가 마저 파 뿌리 되도록 해로하시라”고 말했다. 백 전 대표가 생전 무료 결혼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면 외쳤던 “신랑 신부님, 웃으세요. 김치! 참치! 꽁치!”라는 구호를 한 총리가 하자 결혼식장 곳곳에서 웃음이 나왔다. 한 총리는 “신랑·신부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쑥스러워하시기에 먼저 힘차게 외쳤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신신예식장은 고단하게 사느라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 한 장 없이 반백이 되신 분들이 애틋한 꿈을 이루는 곳으로, 돌아가신 백 전 대표님께서는 그 꿈을 이뤄주는 데 평생을 바쳤다”며 “예식장 벽면에 빼곡하게 붙은 신랑 신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고 전했다. 이어 “사랑 중에 제일 애틋한 사랑은 오래된 사랑”이라며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일하며 온갖 풍파를 함께 견딘 분들이 서리 내린 머리로 식을 올리는 모습이 찡했다”고 덧붙였다. 한 총리는 주례를 마치고 예식장을 떠나면서는 백 전 대표의 부인 최필순 여사와 아들인 백남문 현 대표에게 “부친의 뜻을 이어줘 고맙다”고 격려했다. 한편 고 백낙삼 전 대표는 1967년부터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며 신혼부부에게 예식장 공간 사용료와 의복 대여비, 기념사진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했다. 고객 대부분은 값비싼 결혼식을 치르기 어려운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선행이 알려지면서 백 전 대표는 국민포장,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2021년에는 LG 의인상을 받기도 했다. 백 전 대표는 지난 4월 28일 93세 일기로 1년간 투병 끝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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