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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이스탄불 -경주엑스포 성공 개최 확신”

    “내년 이스탄불 -경주엑스포 성공 개최 확신”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 행사는 양국을 대표하는 우수한 역사·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시 압둘라만 셴(57) 문화사회실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내년 9월 이스탄불 시가지 일원에서 엑스포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는 카디르 톱바스 시장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각종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시 직원 8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팀원을 조만간 40여명으로 늘리고, 행사 기간에는 400~500명의 인력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라면서 “예산 750만 리라(약 50억원) 투입 방침도 확정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스탄불은 그동안 세계 40개국과 자매결연을 맺고 소규모 문화 교류행사를 가진 적은 있지만 이번과 같은 대규모 문화행사는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탄불은 이번 행사의 콘셉트를 과거 로마, 비잔틴, 오스만 등 세계를 지배했던 3대 강국의 1600년 수도로서 찬란했던 면모를 유감없이 소개하는 것으로 정했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박물관’이라고 격찬했던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인류가 이룩한 문화 유산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고대 오리엔트문명부터 그리스·로마 문화, 초기 기독교 문화, 비잔틴 문화, 이슬람 문화의 진수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비잔틴제국 최고의 건축물인 아야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오스만 제국 황제들의 거처였던 톱카프 궁전, 이스탄불 최초의 유럽 스타일 궁전인 돌마바흐체 궁전 등이 있다. 특히 이스탄불은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8500년의 세계 최대 역사도시를 새롭게 자랑하게 됐다. 셴 실장은 “최근 시내 ‘예니카프’ 지역에서 지하철공사를 하던 도중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보다 시대가 무려 6000년이나 앞선 목욕탕 등의 유물과 건축 기법이 발견돼 도시 전체가 흥분에 휩싸여 있다.”고 소개했다. 경주를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셴 실장은 “극동지역 문화권에 속하는 경주와 이스탄불은 전통 가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호 유사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 뒤 “전시, 공연 등 행사 프로그램은 경주엑스포 조직위와 상호 협의를 통해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유럽 50여개국도 행사에 참가시켜 명실상부한 국제행사가 되도록 하고, 행사 홍보를 극대화해 세계 각국의 보다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글 사진 이스탄불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작은 담론, 작은 마을, 작은 도시/김정후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박사

    [열린세상] 작은 담론, 작은 마을, 작은 도시/김정후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박사

    ‘담론’은 도시를 설명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개념이 언어학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까닭에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도시로 범위를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변화를 유도하는 주요한 ‘흐름’이나 ‘방향’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양한 담론이 늘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중요한 도시 담론이라 할 수 있는 친환경은 도시의 발전이 지구를 파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생을 모색하자는 데 핵심이 있다. 그러므로 도시계획과 건축디자인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접목한다. 이처럼 도시에서 담론은 궁극적으로 실행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긍정적 역할과는 별개로 담론에는 도시의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도사린다. 바로 유행처럼 거대 담론에 다른 모든 가치들이 휩쓸려 버린다는 점이다. 거대 담론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이해와 깊이 있는 분석을 뒤로한 채 결과에서 드러난 성공 신화를 좇는 방식으로 활용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를 들어 유비쿼터스 도시, 디자인 도시, 창조 도시, 녹색 도시 등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관통한 거대 담론이다. 이와 같은 담론은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선진 도시들로부터 수입되었고, 도시마다 시차를 두고 여러 가지 담론을 교대로 전면에 내세웠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즉, 한동안 ‘창조 도시 XX’를 앞세우다가 유행에 편승해 슬그머니 ‘녹색 도시 XX’를 외치는 식이다. 맹목적으로 거대 담론을 추구하는 현상이 낳는 결정적 폐해는 일상과 괴리된, 소위 ‘한방’을 노리는 허술한 도시계획과 건축디자인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최근의 상황은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몇 십만 평에 몇 천 억원은 우습고, 심지어 몇 십 조원이 투입되는 개발계획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럴듯한 거대 담론을 전면에 내걸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한방을 제시하는 양상이다. 그 한방이 뜻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싶으면 이내 더 큰 한방을 찾아 나선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노름판과 다를 바 없다. 거대 담론의 망령에 사로잡힌 지도자와 전문가의 오판은 거대 담론 아래 계획된 도시가 시민들에게 행복한 삶도 함께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비롯된다. 건물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그에 상응하는 짙은 그림자가 땅 위에 드리워지는 것은 ‘주관적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이는 고층건물을 짓고 나면 그만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하물며 건물 하나가 이러할진대 급조된 도시의 거대 담론과 그에 수반된 공허한 개발 계획에 얼마나 많은 도시의 소중한 가치들이 매몰되겠는가. 지난 세기에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쓴 제인 제이컵스, 그리고 오늘날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같은 학자들의 주장이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소위 거대 담론에 휩쓸려 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거대 담론에 관심을 갖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은 담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런던을 방문해 그럴듯해 보이는 금융지구인 카나리워프만을 보고, 파리를 방문해 상업지구인 라데팡스만을 보고 열광하며 물불 가지리 않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시, 이런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는 21세기형이 아니다. 그런 지도자는 필요가 없다. 런던과 파리의 건물 하나하나를, 거리 하나하나를, 그리고 마을 하나하나를 어떻게 소중히 관리하고 디자인하는지를 관찰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시민들의 삶을 보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담론, 작은 마을 그리고 작은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규모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살고 싶어하는 도시의 본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설이다. 진실로 큰 도시는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도시는 결코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혈세 25억 사기당한 허술한 국민주택기금

    서민 전세자금을 지원할 목적으로 정부가 운용 중인 국민주택기금이 허술한 대출심사와 관리감독 탓에 사기단의 표적이 됐다. 주택 한 채로 전세자금을 여러 차례 신청하거나 건물값을 초과하는 근저당을 설정하기도 했다. 책임 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십억원을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2일 사기단 총책 양모(53)씨 등 3명을 구속하고 모집책 남모(42)씨 등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양씨 등은 K광고회사 등 6개의 유령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가짜 재직증명서를 만들고 소득세 원천징수확인서, 연봉 근로계약서 등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꾸며 2010년 12월부터 올 8월까지 5개 은행 29개 지점에서 21회에 걸쳐 25억 5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수탁은행 간에 전세자금 대출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관리가 소홀한 점을 악용해 주택기금을 제 돈처럼 빼냈다. 사기단 중 강모(49·여)씨는 ‘3개월 이상 월급을 받은 가구주’라는 서류만 확인되면 대출을 해 준다는 점을 노렸다. 강씨는 2009년 같은 죄를 지어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다시 조직을 꾸려 범행을 저질렀다. 강씨는 친척·동창 등으로 대출책을 구성해 돈을 빌렸다. 이렇게 챙긴 돈으로 매월 2000만~3000만원씩을 유흥비에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가 3억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A빌라를 담보로 5억 4000만원을 대출받았고, 서초구 B빌라를 이용해 전세자금을 일곱 차례나 신청, 4억 9000만원을 받아 냈다. 형식적인 심사 때문에 이들이 낸 가짜 서류는 대출창구를 무사통과했다. 금융사고가 나도 기금에서 손실금의 90%까지 보전받을 수 있고, 나머지 10%도 초기 이자로 확보할 수 있어 수탁 은행들은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하지 않았다. 경찰은 “책임감이 결여된 주택금융공사와 은행 때문에 서민들에게 귀하게 쓰여야 할 돈이 범죄의 표적이 됐다.”면서 “연 2~4%의 이자만 내면 연체가 되지 않아 일당은 이자를 내면서 추가 범행을 저질러 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달아난 모집책 박모(47)씨 등 6명을 추적하는 한편 은행 관계자들의 직무위반 및 공모 여부도 수사할 방침이다. 형식적인 심사에만 매달린 주택금융공사는 은행들 탓만 했다. 한 관계자는 “수탁 은행들이 자체 시스템을 통해 대출 여부를 심사하기 때문에 공사가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하기는 어렵다.”면서 “대출신청 중 서류가 조작된 것은 0.5% 정도로, 현재 운용되는 기금이 3조 2000억원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이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제18회 서울광고대상-업종별 우수상] 생활가전부문 우수상-웅진코웨이 ‘코디’

    [제18회 서울광고대상-업종별 우수상] 생활가전부문 우수상-웅진코웨이 ‘코디’

    올해 웅진코웨이 매각 관련하여 여러 뉴스가 있었던 만큼 웅진코웨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감을 다시금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캠페인에 임하는 저희의 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웅진코웨이 조직원 하나하나가 고객들에게 변함없는 마음과 자세로 서비스를 다하고 있는 만큼 이 사실을 보다 진정성 있게 적극적으로 소비자 여러분들에게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는,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코디를 중심으로 저희의 변치 않는 자세, 물과 공기 즉 생명을 다루는 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에 대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행운지국에서 코디로 근무하고 있는 조윤이 코디를 모델로 활용함으로써 고객들을 향한 우리의 진심 어린 마음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광고에서처럼 웅진코웨이는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이기에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단 하나의 서비스도 변함없이 소비자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 [단체장 발언대]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1+1은 사랑이다”

    [단체장 발언대]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1+1은 사랑이다”

    서울 도심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을 보면 계절이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2012년을 시작하면서 했던 수많은 다짐들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끝나지 않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새해를 맞으며 신년 인사회에서 새해 소망나무에 붙어 있던 접착식 메모지의 문구 하나가 또렷이 기억난다. “살기 좋은 동대문구가 되길 기대한다.”는 소망은 모든 구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으리라. 살기 좋은 지역은 어떤 곳일까. 필자는 ‘1300-1=0’이라는 생각에서 동대문구 1300여명의 직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1300여명의 직원 하나하나가 소중한 구성원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있고 직원 한 사람이 잘못하면 집단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은 2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고 이런 마음 가짐이 사회를 밝게 하고 살맛 나게 한다는 평소 생각에 ‘희망의 1대1 결연사업’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 사업은 1328명의 동대문구 전 직원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들과 결연을 맺어 직접 관리하며 민·관이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전국 유일의 특화사업이다. 생계, 주거, 일자리, 건강, 교육 등으로 세분화해 자체 제작한 ‘희망의 상담 1대1 상담 매뉴얼’에 따라 전문상담을 하고 ‘희망의 1대1 결연 전산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삼육재단은 이러한 좋은 취지에 공감해 쌀과 두유를 기증하고, 삼육 서울병원에서 의료지원도 해 주었다. 또한 1경로당 1단체 결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사업이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관내 직능단체, 종교단체 등과 결연을 맺어 문화적, 물질적 도움을 드리려 애쓰고 있다. 살아가면서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작은 마음들이 모여 도움의 손길을 보태 준다면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의 끈이 될 것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든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나누어 줘도 좋지 않을까. 오늘따라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 충북 제천 금수산

    충북 제천 금수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충북 제천 어름을 지날 때면 늘 눈을 사로잡던 산이 있었습니다. 특히 북단양 나들목 인근에 이르면 우람한 근육질의 암봉이 실루엣으로 아른거리곤 했지요.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경치’를 가졌다는 산, 금수산(錦繡山)입니다. 고운 이름과 달리 산은 여간 험하지 않습니다. 정상을 쉬 내주기 싫어하는 혈기방장한 성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지요. 사정이 이러니, 어지간한 내공의 산꾼이라도 오를 때 ‘금수만도 못한 산’이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구러 정상을 딛고 서면 산은 곧 ‘금수 같은’ 풍경을 내어줍니다. 혹, 오르는 발걸음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거든 나무등걸에 기대 10분만 쉬어 보세요. 땀이 식을 무렵, 자연이 스스럼없이 다가섭니다. 동고비와 직박구리가 먹이를 찾아 나뭇가지를 헤집는 소리, 청설모가 낙엽 뒤져 먹이 찾는 모습이 그제야 귀와 눈에 들어옵니다. 지도로만 보면 제천은 영락없는 산악도시입니다. 사방이 등고선으로 빽빽합니다. 북으로는 차령산맥, 남으로는 소백산맥이 지나고 시 경계를 따라 월악산 등 20여개 산들이 곧추서 있습니다. 높이 솟은 산은 깊은 계곡을 만들고, 계곡은 강으로 이어집니다. 물길이 막힌 자리엔 호수도 생깁니다. 물길(川)을 막아 둑(堤)을 세웠다는 뜻의 도시 이름도 필경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인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오늘날엔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충주호)가 그 지위를 이어받았지요. 금수산은 바로 이 내륙의 바다를 딛고 솟은 산입니다. 인접한 제천은 물론 멀리 단양까지 자락을 펼쳤고, 그 위로 용담폭포 등 많은 경승지들을 매달아 뒀지요. ●선 굵은 암봉 배웅받으며 가는 길 강원도 홍천 어름에서 시작된 노란 낙엽송 군락이 원주 치악산을 지나 제천까지 이어진다. 주변 산자락은 온통 샛노란 융단을 깐 듯하다. 그 빼어난 풍경을 사람이 만든 레드 카펫에 견줄까. 금수산의 원래 이름은 백암산(白岩山)이었다. 산정의 암봉들이 서리 맞은 듯 새하얀 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퇴계 이황에 의해 바뀐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가 청풍호를 돌아보다 백암산의 수려한 자태에 반해 ‘금수산’이라고 바꿔 부른 것이다. 금수산은 와부(臥婦)의 형상이라고 한다. 어여쁜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스토리텔링도 덧씌워졌다. 금수산의 한 지맥인 금성면 동산(東山·896m) 중턱에 ‘한수 이남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남근석이 서 있는데, 동산의 양기와 금수산의 음기가 어우러지며 조화로운 산세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남근석이 ‘잘생긴’ 건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금수산이 여성적이란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암봉 등, 어느 모로 봐도 혈기방장한 남성의 풍모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인근 산 가운데 ‘악(惡)산’으로 소문난 금수산을 오르다 보면, 여성성 운운하는 표현들은 싹 자취를 감추고 만다. 금수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대략 둘로 나뉜다. 적성면 상학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와 상천리 코스다. 상학 코스는 등산로가 완만한 대신 산행시간이 길다.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근석이 있는 동산까지 연계해 산행을 즐기려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상천 코스는 산행시간이 4시간 30분 정도로 짧다. 반면 등산로는 험하다. 여기에 용담폭포와 독수리바위 등 빼어난 명소가 많은 망덕봉을 연계하면 산행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암릉 산행이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구간이 즐비하다. 상천마을 주차장이 상천 코스의 들머리다. 예서 망덕봉까지 2.8㎞, 망덕봉에서 금수산까지 1.9㎞, 금수산 정상에서 상천마을까지 3.5㎞ 등 모두 8.2㎞를 걷는다. 마을 끝자락의 보문정사를 지나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망덕봉(926m)을 지나 금수산 정상(1016m)을 찍고 내려오는 길, 오른쪽은 그 반대로 돈다. 일반적으로는 왼쪽 코스를 따른다. 망덕봉 구간에 워낙 큰 바위들이 많아 하산 코스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10분 정도 암릉을 ‘기어오르면’ 용담폭포 전망대다. 갈수기라 폭포수는 가늘다. 폭포의 묘미는 주변의 바위들이다. 선 굵은 암릉이 폭포 좌우를 굳건하게 에워싸고 있다. 폭포 위는 선녀탕이다. 물이 오랜 세월 바위를 파 만든 상·중·하 세 개의 작은 소를 일컫는다. 물줄기는 ‘선녀의 요강’을 닮은 세 개의 소를 돌아 30m 아래 용담폭포로 떨어져 내린다. 그 기세가 장하다. 멀리 금강산 상팔담의 아우뻘 되는 풍경이다. 산이 높으니 골이 깊은 건 당연한 이치. 용담폭포 너머로 톱날 같은 모양의 산과 계곡이 금수산 정상까지 촘촘하다. ●‘내륙의 바다’와 산들을 한눈에 담다 폭포 전망대부터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전주곡 수준이란 얘기다. 오를수록 급경사의 바위능선이 이어지는데, 꼭 산이 벌떡 일어선 듯하다. 로프와 철제 난간에 의지해 올라야 하는 구간도 여러 곳.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난다. “산에 올라 뭐하겠노. 아랫마을에서 소고기나 구워 먹지.”라는 한 개그맨의 유행어가 퍼뜩 떠오르는 순간이다. 망덕봉 코스 중턱, 그러니까 폭포전망대에서 30분쯤 오르면 철제 계단 너머로 바위 능선이 멋드러지게 펼쳐진다. 산자락 하나가 죄다 바위들로 이뤄졌다. 암릉을 뚫고 솟은 노송들은 풍경의 덤. 능선의 정상 언저리엔 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솟아 있다. 금수산의 명물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다. 특히 독수리바위의 기상이 늠름하다. 날개 접어 호수를 응시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청풍호로 짓쳐 내려가 잉어 한 마리 채 올 기세다. 이 바위 너머로 ‘내륙의 바다’ 청풍호와 옥순봉, 제비봉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기막힌 풍경이 펼쳐진다는데, 짙은 안개 탓에 절경과 마주치는 행운은 없었다. 몇 번의 급경사를 지나면 망덕봉이다. 평탄한 안부로, 사면이 잡목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다. 망덕봉부터는 흙길이다. 푹신한 낙엽길 따라 40분쯤 능선을 오르면 암릉 끝자락에서 소나무 한 그루와 만난다. 정상 바로 아래 지점으로,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예서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양쪽 암봉 사이로 제천과 단양의 명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달려 온다. 더 멀리로는 소백산이 우뚝하다. 수없이 많은 산들을 양팔 벌려 품은 듯한 모습이다. 금수산 정상은 전형적인 암봉이다. 어른 한두 명이 서기도 벅찰 만큼 비좁다. 하지만, 딛고 서면 더없이 너른 풍경과 마주한다. 360도 돌아가며 중부내륙의 산악들을 펼쳐 보인다. 산은 한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감춰 두지도 않는다. 이른 아침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던 안개는 이제 월악산과 소백산 등 명산의 사이를 휘돌아가며 여행자의 넋을 빼고 있다. ‘선경’(仙境)이란 표현이 상투성의 나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오르는 길이 험한데, 내려가는 길이 쉬우랴. 30~40분 동안은 길이 거칠고 가팔라 애를 먹는다. 나무 뿌리는 사람들의 발길에 반들반들하게 닳았고, 겹쳐 쌓인 낙엽들은 습기를 머금어 빙판처럼 미끄럽다. 하지만 곧추섰던 산은 이후 평탄하다 싶을 정도로 유순해진다. 꼭 여성의 플레어스커트 위를 걸어 내려 오는 듯하다. 하산길에 보는 금수산 정상의 자태가 기막히다. 암봉 하나하나가 백옥같이 흰 살결을 가졌다. 이쯤 되면 퇴계가 금수산이라고 개칭하기 전, 왜 백암산(白岩山)이라 불렸는지 절로 알겠다. ●쉽고 편하게 풍경과 만나는 법 주봉(主峯)인 금수산을 닮아 지맥들도 여간 험하지 않다. 남근석 품은 동산 등을 오르려면 ‘암벽 등반’ 수준의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좀 더 쉽고 편하게 풍경을 즐길 방법은 없을까. 있다. 금수산 중턱의 정방사와 청풍호 인근의 비봉산을 찾아가면 된다. 두 곳 모두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정방사는 금수산 신선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 자락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거대한 암벽, 의상대에 안긴 절집의 자태도 좋지만 그 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훨씬 빼어나다. 대웅전 앞에 서면 멀리 월악산과 푸른 바람 일렁이는 청풍호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비봉산은 패러글라이딩 등의 활공장으로 이용되는 산이다. 청풍호와 인접해 있어 굽어보는 풍광도 수려하다. 비봉산의 명물은 관광 모노레일이다. 6인승 승용대차를 타고 정상까지 오른다. 다만 16일부터 새해 3월까지 시설 보강 등을 위해 운행이 중단된다. 동산 아래 무암사도 찾을 만하다. 절집이 남근석 산행의 들머리 노릇을 하는 모양새가 영 부자연스럽지만, 절집 자체의 풍모는 퍽 고색창연하다. 소(牛)의 사리가 담긴 부도와 1200년 된 싸리나무로 만든 대웅전 기둥이 유명하다. 무암사 경내에서도 남근석의 머리 부분이 살짝 보인다. 글 사진 제천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제천의 명소들은 대부분 시내 남쪽, 그러니까 청풍호와 인접한 지역에 몰려 있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좋다. 여기서 82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금성면 소재지를 지나 청풍대교 삼거리에서 왼쪽 20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금수산 입구 삼거리까지 간 다음 왼쪽 도로로 접어들면 상천리 금수산 주차장이다. 단양 나들목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단성면 소재지→36번 국도 충주 방향→원대삼거리→옥순대교→금수산 입구 삼거리→우회전→주차장 순으로 간다. 어느 길을 택하든 늦가을의 정취 가득한 청풍호를 차창에 매달고 달릴 수 있다. 제천의 대표 아이콘인 의림지를 먼저 보겠다면 제천 나들목으로 나와 의림지와 ‘울고 넘는’ 박달재, 배론성지 등을 묶어 둘러본 뒤 남제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순서다. ▶맛집:제천 상천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맛집들이 즐비한 단양이다. 쌈밥정식을 내는 돌집식당(422-2842), 마늘정식으로 유명한 장다리식당(423-3960), 더덕주물럭과 더덕정식을 내는 자연식당(422-1806) 등이 알려져 있다. 청풍호 인근에선 예촌(647-3707)이 구수한 된장정식으로 이름났다. ▶잘 곳:박달재 인근에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가 있다. 친환경과 힐링을 표방한 리조트로 빌라형 객실과 호텔형 객실, 아쿠아힐링센터 등으로 구성됐다. 단양 쪽에선 대명 리조트가 첫손 꼽힌다. 단양 한복판에 있어 단양 8경 등 명소에 접근하기 쉽다. 리조트 내에 사우나와 물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쿠아월드도 있어 여독을 풀기 좋다. 단양읍내 리버텔(421-5600)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깔끔한 시설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편해지는 집이다. 숙박비도 저렴하다. 청풍호 인근의 청풍힐호텔 한방 사우나는 산행 뒤 피로를 풀기 좋다. 제천시에서 조성한 ‘자드락길’ 도보꾼에게는 입욕료를 정상가의 절반인 6000원만 받는다.
  • [옴부즈맨 칼럼] 대선, 우리에게 신문은 [ ]다/이소영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4년

    [옴부즈맨 칼럼] 대선, 우리에게 신문은 [ ]다/이소영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4년

    제18대 대선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각 후보들의 선거 캠프도 거의 정비를 끝냈고, 세부 공약들도 제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선 주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대선 후보들은 매일같이 유권자를 만나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언론들의 대선 보도 국면을 보고 있으면, 이번 선거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선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사람이 먼저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라는 후보자들의 슬로건과는 달리, 내가 아닌 후보자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우선이고 뽑히는 ‘사람이 먼저’가 돼 버린 셈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모든 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매일같이 대선후보 관련이다. 보도사진도 이미 고정된 지 오래다. 2면 톱 자리는 각 캠프에서 경쟁적으로 매일같이 쏟아내는 공약이나 후보 검증에 관한 내용이 차지한다. 3면은 주로 지지율 변동과 분석에 관한 기사가 실리며, 다음 장부터는 대선 후보들의 하루 일과가 나열된다. “오늘은 이곳을 방문해 누구를 만났고 어떤 반응을 얻었으며…”라는 기사 몇 개를 거치고 나면 신문의 마지막 장이 넘어가곤 한다. 언론의 감시기능이 후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보고해야 함을 일컫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우리 언론들의 감시기능은 평소에는 ‘동정’거리도 안 될 사건에만 맞춰져 있다. 대선이라는 중요한 선택 이전에 후보자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함으로써 진정성을 파악하고 지지율 분석을 통해 대선결과를 예측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후보의 빨간 운동화나 한 후보가 시장에서 먹은 어묵이, 지지율 1% 포인트의 등락이 대서특필되는 가운데, 정작 대선의 주인공인 국민의 목소리는 설 곳을 잃는다. 쏟아지는 ‘동정’감 기사들 속에서, 대선 특별 코너로 연재되는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10월 30일자)는 단연 눈에 띄었다. 후보자의 하루 일과나 후보자 캠프에서 내놓은 공약 등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보도와는 다르게, 역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후보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대학생·비정규직·여성 직장인·자영업자·새내기 유권자·재외국민과 같이 나름대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으나 여전히 정치적 약자로 남아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심도 있게 담아낸 점도 좋았으며 ‘내게 대선은 [ ]다’라는 참신한 형식은 지루한 공약 분석 기사와의 차별성을 보여줬다. 해당 기사가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유권자의 삶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당 체제 개편, 경선 과정과 공천 개혁, 단일화를 위한 후보 간 합의와 같이 중요할지라도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우리네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의제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밥·기회·바람·상생·희망고문·자부심과 같이 쉽게 와 닿는 ‘우리의 의제’를 제시한 것은 대선 주인공을 국민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이 반영된 중요한 한 걸음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권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후보들에게 직접 정책 제안을 하고 있는 모습과 그 내용을 담은 ‘응답하라 朴·文·安’(10월 29일자) 기사도 큰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하겠다. 몇몇 좋은 기사가 있었지만 아직 대선 정국은 그네들의 판이다. 대선은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한 자리지 누군가에게 ‘대통령’이라는 영광을 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이 시대의 정신은 국민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지 한 사람의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치 논리가 아닌,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뽑는’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대선에 대해 할 말 많은 사람은 여의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게 대선이 [ ]라면, [ ]를 실현하는 대선을 만들기 위해 신문은 [우리의 무대]가 돼야 한다.
  • 해님달님·아기장수·우렁각시·선녀와 나무꾼… 설화에 깃든 삶의 지혜와 교훈

    해님달님·아기장수·우렁각시·선녀와 나무꾼… 설화에 깃든 삶의 지혜와 교훈

    옛날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신동흔(51) 건국대 국문과 교수다. 구비문학과 설화를 연구하는 그는 ‘세계민담전집 1’과 ‘살아있는 우리 신화’, ‘이야기와 문학적 삶’ 등을 쓰고, 최근 ‘옛이야기의 힘’(우리교육 펴냄)을 내놓았다. 그에게 옛날이야기는 “아기장수 설화를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바꾸지 않는다.”라고 선언할 만큼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거칠고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수천년에 걸쳐 내려올 때에는 그 바탕에 ‘진짜 삶’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벗기면 옛날이야기의 속살이 드러난단다. 진짜 그런가, 한번 들어보자. 그림형제의 동화가 무섭다고들 하는데, 한국의 ‘해님달님’도 만만치 않은 호러물이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떡장사를 하는 한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은 떡을 모두 호랑이에게 넘기고 종국에는 자신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아예 어머니로 변장해 해님과 달님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신 교수는 “엄마가 호랑이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물어본다. 힘들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가 그날따라 심화가 부쩍 일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몸을 맡기고 자식 주려고 남긴 떡을 하나하나 먹다가 어느 순간 “에잇, 자식새끼들이 다 뭐라고”라며 무서운 호랑이로 변신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외간 남자한테 마음을 빼앗긴 엄마, 경제적 어려움에 내가 죽어야지 하는 엄마, 증오로 분노의 몽둥이를 쳐든 엄마가 현실에도 존재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니 “엄마 왔다, 문 열어.”라는 분위기는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이면서 엄마가 아닌 현실에 맞닥뜨린 아이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는 “동화 속에서 해님 달님은 엄마에게서 독립해 스스로 몸을 간수하며 성장을 해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신한 해와 달은 호랑이가 된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넓은 세상, 생명의 근원이라는 해석이다. 여기서 오누이가 해님과 달님으로 분리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색깔로 존재해야 한단다. 그럼 수수밭에 떨어진 호랑이는 뭔가.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이란다. 꿈보다 해몽 같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살짝 맛보기 하나 더. 어느 처녀가 혼례하는 날, 신랑이 덜컥 죽었다. 상식적으로 처녀는 머리 풀고 상복을 입은 뒤 열녀가 돼야 할 텐데, 이 신부 말하길 “길 가는 아무 남자나 불러다 혼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한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신부를 말리지 못하고 거지 신랑을 데려와 혼례를 치렀다. 그 뒤 신부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이 아들 둘이 북벌을 준비하던 장수가 된단다. 처녀 귀신이 되지 않고 자기 삶을 개척한 젊은 여성의 당찬 자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과부 재가 금지는 갑오개혁(1895년) 때서야 폐지됐다. 선녀와 나무꾼은 ‘잡은 물고기에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는 남자들에게 방심하면 애 셋을 낳은 아내에게 버림받는다는 진리를 보여준다고 한다. 남자들이 꿈에 그리는 ‘우렁각시’ 설화는 남녀 사이의 신뢰를 파괴하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우렁각시가 아직 부부가 될 인연이 아니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사내는 예쁜 여자를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에 서둘러 색시로 삼는데, 이때 사내가 우렁각시에게 자격미달임을 설명한단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사투리와 고어를 그대로 살린 ‘옛날’ 이야기 자체도 즐길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구조조정 전문가 이성규 대표 수필집 ‘소년은 철들지… ’ 출간

    구조조정 전문가 이성규 대표 수필집 ‘소년은 철들지… ’ 출간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1960년) 시대를 살아 가난을 온몸으로 겪었다. 20대에 민주화의 한복판에 있었고, 30~40대에는 어렵게 다져온 경기 호황이 얼마나 허무하게 급전직하 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이런 세대니까 남보다 조금 빨리 철들었고, 더 무거운 짐도 말없이 지고 살아갈 수 있었다. 곧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다. 동시에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위로가 필요한 시기다. 최근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아비요 펴냄)라는 수필집을 펴낸 이성규(53)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대표. ‘구조조정 전문가’ ‘이헌재 사단’ 등의 수식어로 더 유명한 이 대표는 8일 “경제위기 등을 헤쳐오며 지친 또래 세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서 “철 모르던 유년의 기억과 같이 놀던 동네친구들의 추억은 살면서 때로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기업 회생 전문가가 ‘마음 회생법’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랑바리나바랑 부다라까다라마끼부랑야~.’ 10초 안에 3번 외면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손오공의 주문이다. 40년쯤 전 TV에서 자주 접한 이 주문을 아직도 외우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 대표는 “깔깔거리며 따라하던 손오공 주문에서 마음이 짠해지는 건 같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이들에게 오랫동안 잊었던 ‘꿈’이 바로 위안이 되는 이유다. 회충약, 채변봉투, 불주사, 잡지 ‘새소년’과 반공영화, 조개탄. 이 대표는 읊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그득해지는, 이미 사라진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낸다. 집에서는 가장으로, 회사에서는 상사로 ‘센 척’ 해왔던 베이비부머들. “고통이 돼버린 부담을 내려놓는 방법은 자신이 나이를 먹었을 뿐, 아직 철들지 않은 소년이라는 사실을 각성하는 것”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외환위기 때 이헌재 당시 금융위원장을 도와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했던 이 대표는 이후 국민은행·하나은행 부행장 등을 지냈다. 2009년 부실채권을 다루는 민간 배드뱅크인 유암코가 설립되면서 초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도 별명이 ‘미스터 워크아웃’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오바마가 당선 연설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변화’(Change)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슬로건으로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4년 전, 그의 연설로 인해 전세계가 연설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다. 이는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서부터 억양, 호흡까지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과 함께 만들어낸 그의 연설이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미 대선에서 재임에 성공한 승리 연설에서 주로 택한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9일 일본 야후 재팬에 실린 마이나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세레고 저팬(세레고 글로벌의 일본 계열사)이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연설 내용을 대상으로한 키워드 트렌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 7일과 지난 2008년 11월 5일 발표한 승리 연설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키워드를 순위로 공개했다. 그 결과를 보면, 올해에는 “워크”(work·일)가 15회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컨츄리”(country·국가)가 13회, “포워드”(forward·앞으로)가 9회, “퓨처(future ·미래)”“호프”(hope·희망 혹은 기대)가 각각 8번씩 반복 사용됐다. 이에 반해, 4년 전 연설에서는 “투나잇”(tonight·오늘밤)이 13회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이어 “피플”(people·사람들) 12회, “네이션”(nation·국가 혹은 국민)이 8회, “예스 위 캔”(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이 7회, 그리고 “체인지”(Change·변혁)와 “호프(hope·희망)가 각각 6번씩 사용되고 있어 올해와는 크게 달랐다. 이에 대해 세레고 저팬은 “4년 전 당선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선택한 반면, 이번 재임 성공 연설에서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신념을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썼다.”고 분석했다. 즉, 그가 이번 연설에서 강조한 말은 “워크(work), 파이트(fight), 잡(job)”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말처럼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레고 저팬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연설에서 사용 빈도가 높았던 키워드 순위다.    2012년 11월 7일  1위 work (일) 15회  2위 country (국가) 13회  3위 forward (앞으로) 9회  4위 future (미래) 8회  4위 hope (희망, 기대) 8회  6위 believe (믿는) 7회  6위 fight (투쟁) 7회  6위 thank (감사) 7회  9위 family (가족) 5회  9위 job (일) 5회    2008년 11월 5일  1위 tonight (오늘 밤) 13회  2위 people (사람들) 12회  3위 nation (국가 국민) 8회  4위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 7회  5위 Change (변혁) 6회  5위 hope (희망) 6회  7위 answer (응답) 5회  8위 first (처음) 4회  8위 generation (세대) 4회  10위 democracy (민주주의) 3회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성냥 불꽃’을 닮은 중·단편 7편을 묶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뜻을 떠올리며 두 손을 위아래로 뒤집어본다. 12년 만에 펴낸 작가 한강(42)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의 표제작 ‘노랑무늬영원’ 때문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생을 유보적으로 살아온 33살의 ‘나’는 이태 전 어느 일요일 새벽 차를 몰고 나갔다가 차로 뛰어든 커다란 검정 개를 피하려고 급회전하다 전복 사고를 당한다. 척추에 금이 가고 왼쪽 손은 산산이 부서져 못 쓰게 됐지만, 구사일생했다. 회복을 위해 부단히 모범생처럼 노력하던 ‘나’ 에게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오른손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그마저 고장이 났다. 두 손이 다 틀렸구나 하는 자각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머리를 감는 것은 고사하고, 컵 하나도 들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2년 동안 병 수발을 든 남편은 ‘나’에게 고함을 지른다. “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삶을 찬미하곤 하잖아. 그게 성숙한 사람의 태도 아니야?”라고. 그러나 죽음을 벗어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과거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이고 그 이면까지 말갛게 비쳐 보이게 된 탓이다. ‘나’는 때로 후회한다. 그 사고로 죽었다면, 남편과의 다정함이 더럽혀지지 않았을 텐데, 사랑이 지속됐을 텐데 하고 말이다. 거짓으로 인생을 30년이나 헛살았다는 자각 앞에서 무너지는 주인공에게 93살에 죽은 여성 화가 Q의 인터뷰가 구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노랑은 태양입니다.(중략) 대낮의 태양이에요.(중략) 가장 생생한 빛의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단편 ‘왼손’의 이성에 억눌린 본능의 의지도 섬뜩하다. 검색창에 ‘훈자’(Hunza)를 쳐보는 것도 좋겠다. 훈자는 늦은 봄이면 만년설이 뒤덮인 산봉우리 사이로 분홍 살구꽃이 끝없이 피는 무릉도원이 된다. 1000년 전에 멸망한 훈자국의 유적이 있는, 파키스탄 동북쪽 산간 지방의 오지. 주인공이 퇴근 후 늘 검색하는 곳이다. 도로에서 차에 치인 고양이를 피하지 않고 승용차를 몰고 지나간 ‘나’에게는 아파트 안길에서 두 발 자전거를 타다 승용차에 치인 아이가 있다.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운 아이는 승용차가 자기 옆을 지나갈 때 두 눈을 꼭 감고 하나 둘 셋을 세면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화력이 유독 부족한 시간강사인 남편과 어린 아이를 재우고 텅빈 어둠 속에서 ‘나’는 자신이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집에서 영원히 일하고 가계를 꾸려가야 할 한 사람.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부어 줘야 할 단 한 사람. 관광지로 개발되는 훈자를 보면서, ‘나’는 “훈자가 아닌 훈자를 생각하는 일은 훈자인 훈자를 생각하는 일보다 힘들거나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1100살 된 암은행나무에게 묻는다. “이렇게 계속 가야 하는 건지, 답해 봐.” ‘찰나의 기척, 고요한 침묵을 가장 뜨겁게 새기는 작가’라는 출판사의 홍보를 이해할 수 있는 중·단편 7편이 들어 있다. 작가는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고 했지만, 타오르는 불꽃 하나하나가 너무 적요해,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을 맞으며 떠다니는 먼지를 지켜보는 느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포토다큐 줌인] 마포 양원주부학교를 가다

    [포토다큐 줌인] 마포 양원주부학교를 가다

    문맹률이 세계 최저인 우리나라에 여전히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먹고살기 힘들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이다. 자식들에게 말도 못하고 평생 못 배운 한을 품고 살아온 어르신들. 이들을 위한 ‘늦깎이 배움터’가 있다. 서울 마포구 양원주부학교.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삶의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며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공부방이다. ●배움의 때 놓친 어르신들 만학 열기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 하순. 구부정한 허리에 ‘책’이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학교로 들어가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대부분 50~80대 늦깎이 초등학생들이다. 첫 시간 수업은 국어. “머~리! 허~리! 다~리!” 신체 부위의 명칭을 율동과 함께 익히는 중이다.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또박또박 큰 소리로 따라 읽는 할머니들. 학교를 다니는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하나같이 뜨겁다. 어려운 글자가 나타나면 멀쩡한 돋보기를 타박하기도 하고 뒷사람 공책을 슬쩍 엿보기도 한다.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익혀나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글자 하나하나 큰 소리로 따라 읽어 교사 천정희(32)씨는 “숙제는 한분도 빠짐없이 해 오시며 종을 쳐도 계속 질문을 할 만큼 열띤 수업”이라고 말했다. “받아쓰기할 때 받침이 제일 어려워요.” 팔순을 코앞에 둔 장기분(79) 할머니가 학교를 찾은 이유는 배우지 못해 겪었던 ‘한’과 ‘서러움’ 때문이다. “책보자기를 메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담장 밑에 숨어 지켜보며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어릴 적을 회상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접수할 때 이름을 못 써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게 얼마나 창피했던지..” 이제는 신문도 어느 정도 떠듬떠듬 읽고 상점의 간판들을 웬만큼 읽으며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 이필순(66) 할머니는 요즘 손자들과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서너 살 된 손자들이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할 때면 얼굴 보기가 민망했었다.”며 “이젠 안심하고 손자들 재롱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능 때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만학도들의 도전기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학교를 졸업한 신성례(69) 할머니는 올해 학업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수능에 도전한다. “다니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내친김에 대학 진학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사회복지학과 지망생인 신 할머니는 ‘소외된 사람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공’ 중이다. ●69세 할머니 “올해 수능 도전해요” 1982년 주부학생 12명으로 출발한 양원주부학교. 누구나 연령에 제한 없이 다닐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주부들을 위한 기초반부터 중·고등부까지 있으며 1년 과정으로 매년 3월, 9월 선착순 모집을 한다. 지난 30년간 배움에 목말랐던 수많은 주부들이 밝고 활기찬 새 삶을 찾았다. 이선재(77) 교장은 “어려운 시대에 교육의 기회를 양보했던 분들이므로 마땅히 사회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열정으로 연필을 쥔 늦깎이 학생들. 그들은 뒤늦게 잡은 배움의 기회를 값진 꿈과 행복으로 일궈가고 있었다. 글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필기 분석·6~14일 체력검사 이렇게

    1037명의 경찰공무원(순경)을 뽑는 올해 3차 채용 필기시험이 마무리됐고, 오는 6~14일 체력검사가 이어진다. 체력검사에 대비한 운동 방법으로 경찰청은 1000m 달리기 종목을 위해 처음에는 10~20분으로 시작해 점차 운동시간과 거리를 늘려 나가라고 조언했다. 걷기부터 시작해 지속걷기가 30분 이상 되면 걷기와 달리기 5~10분을 혼합하고 마지막에는 달리기 위주로 훈련하라고 강조했다. 또 체력시험 2~3일 전에는 과도한 운동 및 노동을 해서는 안 되며 전날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과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가족 중에 55세 이전에 심장병을 앓은 사람이 있거나 평소 운동 중이나 직후 가슴 왼쪽이나 중앙부위, 왼쪽 목, 어깨, 팔에 통증이나 압박감을 종종 느꼈다면 시험 당일 감독관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이번 3차 채용 시험은 전반적으로 쉬웠으며, 경쟁률도 1~2차에 비해 낮았다. 남부경찰학원의 오태진 강사는 한국사 과목에 대해 “출제 기간이 부족했던 만큼 기출 문제 활용 폭이 컸다.”며 “특히 3번 문제의 보기에서 ‘진흥왕은 황룡사를’ 부분은 황룡사 9층 목탑을 완성한 것은 선덕여왕이므로 틀린 보기”라고 지적했다. 이승준 강사는 형사소송법 과목에 대해 “3차 시험의 특이한 점으로는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판례보다 조문 문제가 많이 출제됐다.”고 설명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앞으로도 형사소송법은 현재와 같은 난이도를 유지할 전망이며 내년 경찰공무원 시험도 쉬운 수준에서 얼마나 고득점을 올리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응시생은 두루뭉술하게 공부하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형법 과목에 대해 함승한 강사는 “판례가 17문제, 조문이 3문제 나왔으며 이론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점수를 90점 이상 받은 수험생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 응시할 수험생도 이론보다는 판례 중심의 공부가 효과적이라고 귀띔했다. 경찰학개론에 대해 박준철 강사는 “평이했지만 갑작스러운 3차 시험이라 준비를 못 했던 수험생들은 어렵게 느꼈을 수도 있다.”며 “실종 아동 등에 대한 개정 법령이 몇 문제 출제됐다.”고 밝혔다. 행정법에서는 경찰관직무집행법 문제가 다소 생소한 편이었다고 김진영 강사는 밝혔다. 공무원 시험에서 항상 당락을 좌우하는 영어는 이번에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문법, 독해, 어휘 부문에서 기출 문제와 비슷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출제됐으나, 2차 시험부터 출제 유형이 변해 수험생들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어렵게 느꼈을 수도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00·끝) 의령 백곡리 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00·끝) 의령 백곡리 감나무

    감나무는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우리 곁에 흔하게 심어 키우는 친근한 나무다. 살아 있을 때에는 그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느 시골 집 뒤란이든지 감나무 없는 집이 없다. 물론 감나무는 감을 얻기 위해서 키운다. 그러나 감나무 곁에는 뱀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도 감나무를 심는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아녀자들의 발길이 잦은 뒤란 장독대 곁에 키우면 이래저래 요긴할 수밖에 없다. 집 마당에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나무도 없을 게다. 흔한 나무이지만, 만일 바람에 쓰러진다든가 병충해로 죽어 없어진다면, 그 상실감은 다른 나무에 비할 수 없이 크다. 흔하디흔한 나무가 우리 집에만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뒤늦은 존재감이다. ●열매를 못 맺어 베어낼 위기에 처하기도 꼭 10년 전인 2002년 이른 봄. 경남 의령 정곡면 백곡리 감나무를 처음 만나던 날, 나무 앞을 산책하던 마을 노인이 처음 던진 말은 “저깟 나무를 뭐하러 찾아왔우!”였다. 당시 여러 자료를 톺아보며 알게 된 의령 백곡리 감나무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중 노인의 반응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백곡리 감나무는 시골 집 뒤란에서만 보던 감나무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그 규모가 무척 컸다. 첫눈에도 우리나라의 감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큰 나무이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훌륭한 나무를 ‘저깟 나무’로 부르다니. 노인이 나무를 무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무는 크고 잘생겼지만, 감을 맺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흠이 있었다. ‘감이 열리지 않는 감나무가 무슨 쓸모냐.’는 게 그 노인을 비롯한 그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머지않아 베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백곡리를 다녀와 곧바로 출간한 졸저 ‘이 땅의 큰 나무’에는 그날의 안타까움을 담아 이 감나무야말로 오래 보존해야 할 우리의 자연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그 책에 소개한 백곡리 감나무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 중에 독립 PD 박봉남씨가 있었다. 그는 이만큼 큰 감나무라면 세계적으로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며 일년 동안 나무의 변화를 촬영하겠다고 했다. 감이 안 열린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감나무는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감을 맺는다.”며 그건 결코 흠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2005년 한 해 동안 촬영을 강행했고, 2006년 1월에는 ‘감나무, 자서전을 쓰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KBS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50년 고목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무 주변은 깨끗이 정돈됐고, 나무 옆으로 이어지던 길 끝에 놓였던 우사(牛舍)는 들녘 맞은편으로 옮겨 갔다. 물론 마을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생각도 현저하게 달라졌다. 나무는 그 사이에 천연기념물 제492호로 지정돼 나무로서는 최상의 대우를 받는 상태가 됐다. “참 부지런히도 찾아왔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잊어 가던 감나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옛날처럼 나뭇가지에 그네를 걸고 아이들을 데려다 태우기도 했지. 그해에 감이 꽤 많이 열렸어. 그래 봐야 고작 열댓 개 됐으려나.” 가을바람 깊어지고 다시 찾아간 백곡리 마을에서 만난 전병환(80) 노인은 10년 전의 상황을 천천히 돌아보며 이야기를 짚어 냈다. 전 노인도 한 해 내내 나무를 찾아와 수굿하게 촬영하던 박봉남 감독을 또렷이 기억했다. 촬영이 한창이던 그해 가을에 감이 얼마나 열리는지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던 상황까지 돌아보았다. “아예 안 열리는 건 아니었어. 안 열리는 때도 있긴 했지만, 어떤 때는 가지 끝에 서너 알쯤 열리기도 했지. 지난해에는 열댓 개쯤 열렸는데, 올해는 하나도 안 열렸더구먼.” 공중파에 방영되면서부터 백곡리 감나무의 위상은 달라졌다. 인근 도로 곳곳에 세워진 ‘백곡리 감나무 찾아가는 길’이라는 큼지막한 안내판만 봐도 크게 달라진 상황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백곡리를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무 주위는 몰라보게 단정해졌다. 나무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마침내 2008년 3월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졸저를 통해 나무의 존재를 알린 지 5년, 다큐 방영 후 2년 만의 일이다. 하마터면 베어질 뻔한 위기에 처했던 나무가 당당히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백곡리 감나무의 나이를 450년쯤으로 추정했다. 대개의 감나무가 200년 혹은 250년 정도 사는 것에 비하면 무척 오래된 셈이다. 게다가 줄기 둘레는 5m 가까이 될 정도로 굵으며, 키는 무려 28m까지 솟아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감나무임이 틀림없다. ●소똥이나 그네 뛰는 아이들이 있어야 “감나무는 사람이 곁에 자주 다가가야 잘 크는 나무야. 소도 붙들어 매고, 두런두런 사람이 모여서 그네도 뛰어야 하지. 소똥이나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죄다 좋은 거름이지. 그래야 감에 단맛이 드는 법이야.” 나무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레 사람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똑같이 자연의 한 부분인 사람과 나무는 결국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자연주의적 삶의 깨달음이다. 4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람의 입맛에 충실한 열매를 맺느라 온힘을 바친 한 그루의 늙은 감나무는 이제 생식 능력이 고갈돼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나무로 남았다. 무릇 이 땅의 모든 감나무들이 가지마다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이 계절, 백곡리 감나무는 열매가 아니라, 나뭇가지 사이에 지은 허공에 사람살이의 흔적을 음전하게 담았다. 감이 안 열려도 열매보다 풍성한 사람살이의 열매를 담고 서 있는 이 땅에서 가장 풍요로운 감나무의 가을 풍경이다. 감나무의 뒤늦은 존재감처럼 남기를 100회에 걸쳐 ‘사람과 나무 이야기’를 애독하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감나무의 뒤늦은 존재감처럼 이 칼럼을 통해 보여 드린 여러 나무에 대한 느낌이 지금보다 더 오래 마음 깊숙이 머무르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글 사진 의령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남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 576. 남해고속국도의 함안나들목으로 나가면 곧바로 나오는 돈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넓게 펼쳐진 들녘을 따라 3.6㎞ 가면 악양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다시 좌회전해 마을로 접어든 뒤 유곡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법정로라고 부르는 지방도로 1011호선을 타고 4.3㎞쯤 가면 오른쪽으로 백곡리 입구가 나온다. 갈림길에 ‘백곡리 감나무’ 찾아가는 길 안내판이 두어 번 나온다. 백곡리 마을 어귀의 길 왼편에 나무가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코미디인생 30년 자전에세이 ‘웃기고 자빠졌네’ 낸 김미화

    [김문이 만난사람] 코미디인생 30년 자전에세이 ‘웃기고 자빠졌네’ 낸 김미화

    한 노랫말을 감상해 본다. ‘바람 속으로 걸어 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한 광대는 그렇게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 외로움도 마셨고 한숨도 많았다. 웃고 있어도 눈물로 살아온 세월들이 얼마이던가. 이제 30년을 뒤돌아본다. ●후배들 멍석 깔아주려… 개콘 탄생 숨은 주역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서울 수유리 무허가 비닐하우스 셋방에 살면서 보따리 장사로 두 딸의 생계를 책임졌다. 어려운 형편을 보다 못한 주인집 할머니는 딸 한 명을 입양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미국인 두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입양되기 직전 어머니가 눈물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후 입양될 뻔했던 딸은 초등학교 때 오락부장을 맡으며 타고난 광대의 끼를 발휘했다. 커서 반드시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 꿈이 이루어졌다. 이후 ‘순악질 여사’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일자 눈썹을 붙이고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음메 기살어’ 하는 모습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원래 코미디언으로 출발했지만 근래 10년 동안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그러면서 ‘KBS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등의 파문에 휩싸이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그래도 그는 ‘울고 있어도 웃는 코미디언’이라고 당당하게 사람들과 얘기한다. 요즘 ‘개그콘서트’(개콘)가 잘나간다. 시청률이 꽤나 높고 등장인물들은 CF에 단골로 출연할 만큼 인기가 높다. 코미디언이자 방송 진행자로 유명한 김미화(48)씨. 그는 ‘개콘’을 보면서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각 방송사에서 한 해 20명 정도의 개그맨을 뽑았고 다 합치면 무려 70여명의 신인이 배출되고 있었지요. 어느 날 한 신인으로부터 PD들에게 눈도장이라도 잘 찍어 일주일에 행인 역할을 몇 번이라도 해야 밥먹을 상황이 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에게 멍석을 깔아 주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김씨는 공개방송 형식의 개그 프로그램을 생각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찾았다. ‘오빠 언니 짱!’ ‘소라 언니 사랑해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열광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가수들은 저렇게 되는데 코미디언들은 왜 안 되지?’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어 ‘컬트 삼총사’의 연극무대로 갔다. 후배들의 공연은 대단했다. ‘라이브 코미디공연’에 더욱 매달렸다. 늘 의논했던 선배 전유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대학로 술집에서 전씨와 여러 후배들을 만나 기획서를 완성했다. 며칠 뒤 TV예능 담당 본부장을 만났다. ‘연극형식의 새로운 코미디’ ‘세트의 번거로움 없이 조명으로만 하는 코미디’ 등을 강조하면서 설득했다. 그러면서 신인 후배들을 ‘빡세게’ 연습시켜 추석특집으로 해보자고 했다. 가만히 듣던 본부장이 ‘좋아, 해보자’고 했다. 김씨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개콘’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김씨는 요즘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어느 때보다 지난날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어느덧 코미디 인생 30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도 없는 게 까불고 있어.’라는 놀림을 받을 때면 가차없이 그 아이의 따귀를 때리면서 ‘그래 까불고 있어, 어쩔래.’로 맞섰다. 정말 고등학교 때까지 별명이 ‘까불이’였을 정도로 ‘까불며’ 살았다. 세월이 지나 나이 50 언덕을 바라보는 오르막에 선 그가 이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 위해 자전적 에세이를 펴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웃기고 자빠졌네’. 왜 그렇게 제목을 정했느냐고 하자 “나의 묘비명”이라며 웃는다. 웃기다가 자빠지면 그것처럼 좋은 게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시골의사로 알려진 박경철씨는 이를 두고 “아마 잘 안될 걸. 웃기고 자빠졌네… 어렵데이.”라고 했단다. 이에 김씨는 “누가 맞는지 세월 좀 지나고 나서 얘기해 보자. 난 무대에서 웃기다 자빠질 것”이라고 맞대응을 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가 문득 떠오른다. ●내 정체성은 죽으나 사나 코미디언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CBS 건물 인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영구 심형래씨가 KBS 공채 개그맨 1기, 순악질 여사가 2기이니 김씨도 이젠 나름대로 원로인 셈이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청바지에 검정색 티셔츠, 얇은 목도리 차림이 가을과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먼저 책을 쓰게 된 과정부터 물었다. “지난 4년 동안 겪었던(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등) 것을 털어내기 위해 책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제가 벌써 데뷔한 지 30년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사는 얘기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같이 쓰게 됐습니다. 한 1년 정도 집에서 썼는데 정말 글 쓰는 게 힘들더라고요. 기자들은 어떻게 매일 글을 쓰나 몰라(웃음).” 대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직접 글을 썼고 그림과 사진도 직접 그리고 찍었다.”고 대답했다. 원래 잡생각이 날 때면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스케치를 하는 취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MBC라디오 프로그램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할 때 7개월 동안 백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취미생활에도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 코미디언 30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10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처음 KBS에 들어간 뒤 방송국에서는 제가 노력한 만큼 인정해 줬습니다. 그게 고마워 혼신을 다해 연기를 했지요. 그러나 어느 날 KBS는 느닷없는 소송으로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KBS는 친정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으면서 방송국이라는 곳이 정치적인 기관임을 알게 됐고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몰랐으면 좋았을 검은 그림들을 하나하나씩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투사가 되고 말았다. 왜 코미디언이 투사란 말을 듣게 됐을까 하는 점에서는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말로 먹고사는 사람의 입을 막는다고 말을 못할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때 광대는 입만 있으면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KBS, MBC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얼마 있다가 CBS로 옮겨 ‘김미화의 여러분’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다시 맡았다. 또 대학로 벙커원에서 ‘나는 꼽사리다’(딴지라디오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다. 또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콜투콜텍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길거리 톡톡 콘서트, 노숙인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의, 제주 강정마을에서 1만명이 함께 걷는 강정평화대콘서트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다. “안 그래도 입 크다고 소문난 제 입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을까요(웃음). 말 안 되는 세상이 있다면 말 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은 소박한 생각에 오늘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이자 인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과정을 즐기고 할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김씨는 경기도 용인 시골 구석에 산다. 감이 잘 익는 골안쪽 마을이라고 했다. 그는 감을 볼 때마다 ‘저 감처럼 대변하는 것도 자신의 할 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앞으로의 꿈도 감처럼 잘 익은 시사 코미디를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을 하다가 다시 코미디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꿈은 코미디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는 집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우리 집 이름은 후조당(後凋堂)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보라 속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 없는 모습으로 곁에 있고 싶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한문학자 이명학 선생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구석진 곳에 있다 보니 손님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아서 마지막 골목 입구에 ‘후조당’ 팻말을 세워 놨더니 점집으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아이들 넷은 전부 기숙사다 어디다 다 나가고 지금은 남편과 둘만 살고 있습니다.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저의 집 콘셉트입니다.” ●최근까지 여야서 영입 제의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재혼’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재혼은 망설이기 마련이지만 지난 7년 동안 지금의 남편과 살아오면서 한번도 사랑이 식지 않았으니 잘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인연이 없어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사상적 성향’은 무엇이고 ‘김미화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지지를 표명한 적이 없습니다. 코미디언이 ‘좌’가 어디 있고 ‘우’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많은 NGO 활동단체에 가입돼 있고 80군데가 넘는 곳에서 홍보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섭섭합니다. 그저 사회적 약자 옆에 있을 뿐인데 정치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최근까지 여당과 야당에서 저를 영입하기 위해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저의 정체성은 죽으나 사나 코미디언이죠.” 그는 남편과 오래전부터 이름지어 놓은 ‘순악질 프로젝트’를 확장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네에 놀러 오는 사람들의 사랑방을 만드는 것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을 선물하고 싶어서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미화는 1983년 KBS 공채 개그맨 2기 → 순악질여사로 인기 → 10년간 시사프로 진행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우이초등학교에서 오락부장을 하면서 코미디언 자질을 인정받았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신경여자실업고등학교를 나와 잠시 경리직원으로 회사를 다녔다. 1983년 KBS 공채 개그맨 2기로 입사했다. 2001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고 이 대학에서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거쳐 지금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3학기째 다니고 있다. 2000년 당시 지금의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후배들을 가르쳤다.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로 인기를 끌었다. 20여년 몸담았던 정통 코미디 분야를 떠나 8년 동안 MBC 시사프로그램인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는 CBS 전방위 시사토크프로그램 ‘김미화의 여러분’과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를 진행하고 있다.
  • 연금복권, 이제 스마트하게 QR찍자!

    앞으로는 연금복권의 당첨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번호를 하나하나 맞춰보지 않아도 된다. 한국연합복권(주)(대표 강원순)에서는 오는 11월 7일에 추첨하는 연금복권(71회차)부터 QR서비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연금복권의 당첨번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복권 구매자가 직접 등위별로 각각 번호를 맞추어보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금번 오픈하게 되는 QR서비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복권의 당·낙첨 여부를 쉽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QR코드란 정사각형 격자무늬에 특수기호나 상형문자가 삽입된 불규칙한 형태의 마크로 상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어 각광받고 있으며, 최근 스마트폰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제 2의 바코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연금복권의 당첨을 확인하는 방법은, 스마트폰으로 복권 왼쪽하단에 있는 QR코드를 인식시키면 당첨여부와 당첨금액이 나타나는 모바일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되며, 접속된 모바일 홈페이지에서는 회차별 당첨번호와 복권판매점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특히, 검색된 판매점은 현재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지도로 표시되며, 그동안 배출되었던 복권명당도 확인할 수 있어 복권구매 고객들의 편의성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연합복권(주) 관계자는, “연금복권의 등위별 번호확인이 어렵다는 고객의 요청으로 손쉬운 당첨번호 확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최근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QR코드 서비스를 도입하게 되었다.”며, “당첨확인 및 판매점 찾기 서비스 외에도 스마트폰으로 구매가 가능한 모바일 판매 사이트로도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원스톱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추후에는 QR코드를 통해 접속하면 한국연합복권(주) 소식지 <레인보우 톡톡>과 각종 홍보영상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향상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일렁이는 물결 자욱한 안개 … 적막한 ‘느낌’ 화폭에 담아

    일렁이는 물결 자욱한 안개 … 적막한 ‘느낌’ 화폭에 담아

    “영업비밀이에요.” 장난스레 입을 앙다물더니 이내 설명해 준다. “사진으론 잘 안 살아나는데 실제로 보면 이 물결의 입체감이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을 본 분들은 꼭 이걸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세요. 붓으로 하는 게 아니라 스프레이를 이용하는 거예요. 캔버스를 눕혀서 양쪽으로 다른 색을 뿌리면 중간에 뭉쳐지면서 저런 느낌이 나와요.” 그림의 소재는 주로 물이다. 물인데 그냥 물 자체라기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일렁대는 물결이 부각된다. 작가 말마따나 사진보다 실물의 느낌이 더 강하다. ●“물감 스프레이 작업 입체감 살려”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잠원동 갤러리우덕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 최아영(64) 작가를 신문로 자택에서 만났다. 미리 얘기하자면 남편은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작가는 그래서 “이제 해방됐다.”고 말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남편이 공무원이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간 개인전을 못 열었단다. 그래서 서울대 미대 여자 졸업생들로 구성된 한울회 명의의 단체전에만 작품을 내놨었다. 이제 남편이 공무원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개인전도 열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사실상 첫 개인전인 셈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은은한 톤이다. 빨강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색보다는 파란색, 녹색 위주로 하되 톤에다 많은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산과 바다를 주된 소재로 삼았는데, 그것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묘사한다기보다 그때 받았던 눈부신 인상만 뽑아내 스케치한 느낌이 강하다. 물결의 느낌, 산세의 느낌, 자욱하게 낀 안개의 느낌 같은 것들을 툭툭 던져뒀다. 지난 3년간 틈틈이 그린 30점을 내놓았다. 왜 이런 자연만 그리느냐고 했더니 취미가 그렇단다. 야외활동, 그러니까 이런저런 운동에다 뛰어난 운전 솜씨까지 아주 활달한 성격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킨스쿠버. 힘든 운동인데도 어쩌다 한번 배워 보니 의외로 쉬웠단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느꼈던 그 물 속 세계의 환상적인 느낌이 좋아 자주 그린다. 오래 머물 기회가 있었던 미국 알래스카의 사계절 풍경이나 우연히 들렀던 노르웨이 북단의 피요르드 풍경도 있다. 그래서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성격도 활발한 데다, 남편의 대외활동상 이런저런 바깥 약속도 많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서 언제 그림 그릴 새가 있었느냐는 말이 나올밖에. 그림은 새벽에 그린다. “전 새벽 4시 30분쯤이면 항상 일어나요. 기분이 맑고 좋을 때, 그때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편입니다.” 뜸도 많이 들이고 공도 많이 들인다. “사실 어릴 적에는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런데 피아노는 현장에서 한 음 잘못 치면 망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림은 내가 완성됐다 싶을 때 내보일 수 있더라고요. 그게 마음에 들어서 미술을 했지요.” 지금도 그림 한 점에 3년 정도 공을 들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벽에 걸어두고 마음에 들 때까지 만진 뒤에야 내놓는다. 그런데 작품에 사람이 너무 없다. 일렁대는 물결과 자욱한 안개 외에 인기척이 없다 보니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든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살면서 고민이 많아 사주와 관상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 공부 끝에 사람마다 다 팔자가 있고, 이것 또한 내 팔자니 편안하게 받아들이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부작용은? 사람 얼굴을 안 그리게 됐다. “얼굴을 보면 관상이 보이고 관상이 보이는 가운데 사주가 함께 보여서 그릴 수가 없더라고요.” 어째 섬뜩하다 했더니 작가는 가볍게 웃어 넘기란다. ●“받아들이며 살자는 깨달음이 작품에 도움”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남편 이력은 화려하다. 엘리트 공무원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냈고 새 정부 들어서도 주미 대사에다 무역협회장으로 계속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말하자면 ‘고상한 마나님’인 셈이다. “아유, 바깥에서 남들 보기엔 그렇죠. 그런데 공무원 생활 초기에는 너무 승진이 안 됐어요. 남편도 국장 한번 되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으니까요.” 사주, 관상을 공부하게 된 계기다. 뒤로 갈수록 관운이 트이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주와 관상을 기초로 이런저런 일에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떨 때 어떤 내용으로? 그 또한 영업비밀이다. (02)3449-6071~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봇대 철사 하나하나 떼어내고…도시텃밭…길품택배…건축쟁이의 ‘명품종로’ 만들기

    전봇대 철사 하나하나 떼어내고…도시텃밭…길품택배…건축쟁이의 ‘명품종로’ 만들기

    “600년의 역사가 담긴 종로의 문화적 가치를 소중하게 가꾸어 품격 있고 활기찬 문화예술도시, 쾌적한 녹색도시, 시민이 살고 싶은 복지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종로, 다시 찾게 되는 종로로 가꾸겠습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18일 2년간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첫 저서 ‘건축쟁이 구청장 하기’(희망제작소)를 세간에 선보였다. 오랫동안 건축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구청장이 되겠다는 의지가 잘 녹아 있다. “이 시대에 맞는 목민관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해 왔다.”면서 “주민과 함께 어울리며 명품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을 책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건축쟁이 구청장 하기’에는 그의 종로 사랑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의 전봇대마다 붙어 있던 철사를 하나 하나 직접 떼어냈던 일화나 백년 뒤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취지로 보도블록에 두꺼운 돌을 깔았던 일화는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종로구 직원들이 깐깐한 그를 ‘김 병장’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제대로’라는 평소의 소신을 그대로 보여 준다. 애정을 갖고 시작한 ‘도시텃밭’이 세종마을과 평창동, 창신동, 인사동으로 확대되면서 살기 좋은 종로로 변모하는 과정도 소개했다. 김 구청장은 “주민과 함께 방치됐던 공터를 정비하고 850t의 쓰레기를 치우면서 종로구가 쿠바의 아바나 부럽지 않은 생태도시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하루 매출 기부하기 운동, 쪽방촌 주민의 자활을 위한 길품택배 사업, 공공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 한옥 복원과 북촌 살리기, 윤동주 문학관 건립 등 다양한 행정 성과도 소개됐다. 전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민주통합당 정세균·손학규 의원 등 주요 인사와 주민들이 참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스스로를 ‘건축쟁이’로 부를 만큼 큰 그림과 세밀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종로를 파악하고 설계한다.”면서 “발품과 애정, 철학과 청사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 구청장은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를 졸업, 홍익대 도시건축대학원 환경설계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건축사무소 대표, 미래도시연구원 대표로 활동했다. 건축사로 활동하기 전 10여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한 학자이자 행정전문가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구의회 의장을 만나다] 마포구의회 정형기 의장

    [구의회 의장을 만나다] 마포구의회 정형기 의장

    제6대 마포구의회 후반기 의장으로 취임한 정형기 의장은 주민들 사이에 ‘잠 안 자는 의원’으로 유명하다. 처음 민선 3기 의정 생활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새벽 5시면 동네를 다니며 길을 쓸고 하수구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웠다. 정 의장은 “부지런하다고 주민들이 구의원으로 뽑아 줬는데, 이제 의장까지 됐으니 잠도 줄이고 고개도 더 숙여야겠다.”고 취임 소감을 전했다. 정 의장은 자체 사업보다는 집행부를 견제·감시하는 의회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후반기 의회를 이끌어 갈 방침이다. 정 의장은 “그것만 해도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문제, 마포구민 체육센터 건립, 당인리 발전소 지하화 및 관광문화 단지 조성 문제,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 주민 갈등이 얽힌 사안이 많다.”며 “의회는 이런 사업들이 주민 뜻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되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여론을 충실히 듣기 위해 그는 공원이나 아트센터처럼 지역 내 여론이 형성되는 자리를 부지런히 방문한다. 직접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접수한 민원은 정 의장만의 ‘민원 스크랩’을 만들어 정리해 두고, 매일 직접 하나하나 처리 상황을 점검한다. 특히 정 의장은 마포 지역에서도 차츰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깊다. 정 의장은 “중앙정부 등에서 관리하는 국·공유지를 적극 발굴해 우선적으로 다문화 가정,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집행부와 뜻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문학, 모든 삶 다루는데 정치만 빼면 비겁”

    “문학, 모든 삶 다루는데 정치만 빼면 비겁”

    “더 나은 정부가 들어서고, 작가까지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진다면 중년 이후의 삶은 소설로 불태워보고 싶습니다.”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49)이 15일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최근의 정치적 활동은 작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25년 작가인생을 돌아보기 위한 앤솔로지(선집)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폴라북스 펴냄)의 발간 기념자리에서 “정치와 사회, 노동, 사랑, 아픔처럼 문학은 사람의 모든 삶을 다루는데, 정치만 안 다루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트위터 등에 올라온 글을 보면 정치·사회적 발언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내가 소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면 인권상황이 더 나아지길 기대하며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치가 불안할수록 모든 예술가들은 불행해지는데, (쌍용차사태 르포인) ‘의자놀이’도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 썼다.”며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게 꿈이지만 누군가 옆에서 힘들어 울부짖고 있으면 작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씨는 최근 문재인 후보의 대선 멘토단에 이름을 올린 뒤 예정된 방송스케줄에서 모두 제외된 그간의 사정도 털어놨다. “문 후보의 측근으로부터 넉 달 전 도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거절하면서 멘토라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한 뒤 (자연스럽게) 멘토단에 포함됐다.”면서 “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맞지만 안철수 후보나 박근혜 후보로부터 멘토 요청이 온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 후보 측) 멘토 활동도 지금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조언해 주는 정도로만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간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에 대해서는 “‘도가니’가 사회적 관심을 받은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스로 기획했다.”면서 “옛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보니 나의 젊은 시절이 참 많이 아팠구나 하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책에는 등단 뒤 25년간 쓴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 보며 마음에 닿는 글귀 365개를 추려 넣었다. 공씨는 현재 5개가량의 작품을 구상 중이다. 다만 소설 집필은 다양한 대외 활동으로 2년 이상 미룬 상태다. 그는 “이 시대 가장 소외받는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며 “대선이 끝나고 안정되면 사랑 얘기를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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