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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년 만에 얼굴 내민 비경, 설악산 토왕성 폭포

    45년 만에 얼굴 내민 비경, 설악산 토왕성 폭포

    그것은 탄성이라기보다 탄식에 가까웠습니다. “아, XX. XX 멋있네.” 산자락을 기어올라 토왕성 폭포와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이었습니다. 옛사람들처럼 운율에 맞춰 아름다운 언어로 폭포의 자태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세파에 찌든 도시인이 내뱉을 수 있는 감탄사라고는 육두문자가 고작이었나 봅니다. 폭포는 타래에서 풀린 명주실 가닥 같았습니다. 폭포를 감싼 암봉들은 주름 접힌 치마 같았지요. 폭포 주변엔 힘센 사내의 팔뚝을 닮은 암릉들이 줄 지어 서 있습니다. 이 모습,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닥치고 구경’이나 할까요. 45년 만에 열린 설악의 비경은 그렇게 객의 입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숨 막히는 자태, 말문도 막혔다 외설악에 속한 토왕성 폭포(명승 제96호)는 대승, 독주 등과 함께 설악산 3대 폭포의 하나로 꼽힌다. 옛 문헌에 “토왕성(土王城) 부(府)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폭포가 있는데, 석벽 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된 걸 보면 오래전부터 빼어난 자태로 명성이 자자했던 듯하다. 토왕성 폭포는 45년 전부터 일반인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낙석과 낙빙, 추락 등 위험 요소들이 많아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줄곧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일년에 딱 한 번 문이 열리긴 했다. 겨울철 빙벽등반대회가 열리는 날 신청자에 한해 출입이 허용됐다. 하지만 그마저 빙벽 등반가의 몫이었지 일반인들이 넘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 베일에 감춰졌던 토왕성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토왕성 폭포 맞은편 암봉에 전망대가 세워진다. 전망대가 들어선 곳은 종전 설악산 소공원~비룡폭포 구간 탐방로를 410m 연장한 지점이다. 원래 11월 말 개설 공사를 마치고 개방할 예정이었으나, 악천후로 공사가 지연돼 5일로 늦춰졌다. 폭포 전망대 들머리는 설악산 소공원이다. 정문을 지나자마자 좌회전, 비룡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룡폭포까지는 약 2.4㎞다. 쌍천을 건너고 육담폭포에 이를 때까지 1㎞ 정도 잔잔한 숲길이 이어진다. 간혹 오르막이 나오지만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길엔 휴게소가 있었다. 풍경과 어울리지 못하고 영 생뚱맞았던 건물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 의해 최근 철거됐고, 주변 환경도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돌치마폭에서 세 번 굽이치며 쏟아지다 육담폭포는 계곡을 흐르는 6개의 폭포와 6개의 연못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계곡엔 철계단과 출렁다리가 연이어 조성돼 있다. 원래 계곡 왼쪽으로 나 있던 다리를 없애고, 오른쪽 암릉 위로 새 길을 냈다. 육담폭포에서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곧 비룡폭포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된다. 폭포에 담긴 이야기 말이다. 폭포 속에 사는 이무기에게 처녀를 바쳤더니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고, 이어 비를 내려 가뭄으로 고생하던 주민들에게 보답했다. 뭐 이런 종류의 내용이다. 비룡폭포에서부터 험로가 시작된다. 토왕성폭포 전망대 가는 길은 폭포 맞은편 능선에 조성됐다. 한데 올려다보니 눈앞이 캄캄해 진다. 나무로 만든 계단길이 된비알을 따라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수직 상승하는 듯한 계단을 오르자니 숨이 턱턱 막히고, 허리가 굽어지면서 코가 위 계단에 닿을 지경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린다. 오색약수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이 딱 이랬다. 질릴 정도로 계단이 이어진다. 하지만 전망대에 올라 토왕성 폭포를 보고 나면 느낌이 싹 바뀐다. 단언컨대 오를 때는 죽어라 싫던 계단이 내려갈 때는 하나하나가 아쉬워진다. 쉬다 오르다 반복하기를 서너 차례. 얼추 30분쯤 지나니 전망대다. 이어 입과 동공이 동시에 벌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1㎞ 남짓한 거리에서 토왕성폭포가 진경산수화를 펼쳐내고 있다. 산정에선 쉼 없이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여러 가닥의 가는 물줄기들이 모여 하나의 폭포수를 이룬 뒤 떨어져 내린다. 2주 내리 비와 눈이 오락가락한 덕에 수량이 풍부하다. 과문한 탓인지, 저렇게 가늘고 긴 형태의 폭포는 여태 본 적이 없다. 과장 보태 표현하자면 이렇다. 하늘에서 물레질하던 여인이 실수로 명주실 타래 하나를 땅에 흘려보낸 듯하다고. 저 수정 같은 물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 여인의 희고 고운 손이 있을 것만 같다. 햇살을 따라 폭포 표정도 달라진다 여인의 손을 떠난 실타래는 치마폭처럼 펼쳐진 석벽 위를 세 번 굽이치며 낙하한다. 상단 150m를 그야말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온 물줄기는 중단 80m를 더 내려와 숨을 고른 뒤, 방향을 틀어 하단 90m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3단 폭포다. 전체 길이는 320m다. 얼핏 인공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폭포 위쪽으로 물이 고일 만한 공간이 없어 보이는 데다, 물줄기가 산정에서 곧장 떨어져 내리기 때문이다. 한데 보이지 않을 뿐 폭포 위에 계곡이 없는 건 아니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이명종 주임은 “폭포는 뒤편 화채봉에서 발원해 칠성봉을 끼고 돌아 흘러내리는데 뒤편 봉우리들이 능선에 가리기 때문에 (산정에서) 갑자기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폭포 주변 암봉들의 자태도 빼어나다. 사실 토왕성 폭포가 선사하는 풍경의 장엄함도 따지고 보면 삐죽 솟은 이 암봉들에게 신세진 면이 적지않다. 폭포 앞 오른쪽은 노적봉이다. 봉우리 위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란 등산로가 나 있다. 오래전 산악인들이 토왕성 폭포로 가기 위해 낸 산길이다.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폭포 왼쪽 암봉은 험악한 모양새와 달리 예쁜 이름을 가졌다. 앞에서부터 각각 ‘경원대 길’ ‘솜다리의 추억’ ‘별을 따는 소년들’ 등이다. 각 암봉의 등반 루트를 처음 개척한 산악인들이 지었다고 한다. 폭포가 깃든 암봉은 이름이 없다. 폭포를 기준으로 좌벽, 우벽이라 부를 뿐이다. 폭포 전망대 위쪽 암릉에서 맞는 풍경도 빼어나다. 몇 그루 소나무가 분재처럼 자란 바위 너머로 청초호와 아바이마을, 속초 주변 바다가 한눈에 잡힌다. 토왕성 폭포는 겨울철 오전 8시 이전에 올라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아침 해가 비출 때마다 폭포의 풍경도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이후엔 역광이 된다. 글 사진 속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 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와 44번 국도로 갈아탄 뒤 설악산 소공원까지 곧장 간다. 신흥사 측에서 주차료 5000원, 문화재 관람료 3500원을 각각 징수한다. 경기 양평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맛집:동명항(속초항) 쪽에 해물뚝배기집들이 늘어서 있다. 동명항전복해물뚝배기(636-1637~8)가 그중 알려졌다. 설악산 국립공원 초입의 이목리막국수(638-3579)는 동치미 국물로 맛을 낸 막국수로 이름났다. 학사평 일대에 김영애할머니순두부(635-9520) 등 순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잘 곳:미시령 아래 델피노 골프 & 리조트(1588-4888), 한화리조트 설악(1588-2299) 등 유명 리조트들이 몰려 있다. 설악동 쪽에도 펜션 형태의 모텔들이 많다. 숙박비도 저렴한 편이다. 속초 시내 쪽 메모리즈 모텔(636-9415), 호텔 아마란스(535-5252) 등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산행의 피로는 노천 온천에서 푼다. 한화리조트 내 설악워터피아는 물놀이와 스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온천 테마파크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눈 덮인 설악산 자락을 완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척산온천휴양촌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입장료는 8000원. ‘성능’에 견줘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 [세종로의 아침] 두 레전드/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두 레전드/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요즘은 (미디어들이) 잘 안 불러 주시더라고요. 워낙 좋은 샛별들이 많으니까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섭섭하긴 하지만 샛별들이 인터뷰를 많이 하면 농구 붐도 일어날 수 있고 여고생 팬들도 생기니까요.” 지난달 중순 만난 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센터 김주성(36)이 담담하게 내뱉은 말이다. 14년 동안 동부에서만 한솥밥을 먹은 그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미국프로농구(NBA) 오클라호마시티의 캐빈 듀랜트(27) 때문이었다. 듀랜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코비 브라이언트(37)에 대해 미디어들이 레전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브라이언트를 우상으로 여겨 왔으며 플레이를 하나하나 따라 하며 농구에 눈을 떴다며 “코비를 향한 언론의 시선, 논조가 매우 실망스럽다. 기자들은 코비를 ‘한물간 영감’으로 취급하고 있다. 코비는 레전드란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브라이언트는 낮은 야투 성공률에도 끊임없이 공을 소유하려 하고 야투 시도를 자제하지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서 ‘조금 더 빨리 은퇴했어야 했다’는 조롱을 받아 왔다. 듀랜트는 “물론 언론이 전성 시절보다 못한 경기력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객관적 평가와 거리가 멀다. 내년에 코트를 떠나는 전설적인 선수를 이런 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는 NBA 파이널에서 브라이언트와 붙어 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한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응원에 힘 받았을까. 브라이언트는 2일 자신이 태어난 필라델피아에서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20득점 5리바운드로 팀 내 가장 많은 점수를 올렸다. 팀은 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개막 후 18연패 탈출에 도움을 줬지만 고향 팬들은 열띤 응원으로 레전드와의 헤어짐을 한껏 아쉬워했다.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20시즌을 뛴 NBA의 하나뿐인 현역 선수 브라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김주성도 한때 그런 마음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는 “군대를 안 갔다 와서인지 다들 제가 훨씬 더 오래 코트에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며 “큰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몸담은 브라이언트의 20시즌과 대학을 다녔던 김주성의 15시즌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도리어 김주성은 부상으로 올 시즌 초반을 쉰 뒤 복귀해 더 절정의 기량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는 이날 모비스를 상대로 10점을 더해 통산 9351점으로 서장훈의 1만 3231점과 추승균 KCC 감독의 1만 19점에 이어 KBL 통산 세 번째 득점을 차지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도 이치다. 김주성의 말마따나 물갈이는 계속돼야 하고 내리막을 관리하는 것도 레전드의 책무일 것이다. 우리 코트에서도 살아 있는 레전드들이 땀방울을 떨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식의 변화로 팬들이나 레전드급의 활약을 깎아내리거나 폄훼하는 시선들이 많이 옅어졌다. 반갑고 긍정적인 일이다. bsnim@seoul.co.kr
  • “개성美·여백美… 한국 도자기는 예술 경지의 최고봉”

    “개성美·여백美… 한국 도자기는 예술 경지의 최고봉”

    “한국 도자기는 예술의 경지에서 최고봉에 도달해 있다. 개성이 독특하면서도 하나하나의 작품에서 만든 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해석 여지를 주는 여백의 미도 빼놓을 수 없다” 데가와 테츠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관장은 29일 “미술관의 이번 전시회는 ‘새로 발견한 고려청자’를 통해 일본인들이 고려청자와 한국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데가와 관장은 “신안, 태안, 군산 등의 한반도 해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청자의 다양성과 새로운 조형적 가치를 더했다. 12~13세기 동북아 교역과 생활상을 밝혀주는 진귀한 자료도 되고 있다”면서 “일본 관람객들의 반향이 컸다”고 소개했다. 진귀한 고려청자를 많이 소장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이번 전시회에선 미술관이 소장한 최상급 고려청자들을 한꺼번에 내놓아 한국에서 온 수중 유물들과 함께 전시해 화제였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도자기는 1200여점. “한국에 있으면 최소 10여점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는 질문에 데가와 관장은 직답은 피하면서도 “숫자는 적지만 (한국 자기 소장품들이) 최고급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미술관은 어느 미술관, 박물관보다도 더 개방적으로 고려청자를 비롯한 소장품들을 일반에 공개해 왔다”면서 “한국 도자기를 일본과 세계에 알려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와 격을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동양도자미술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타이완 고궁박물관의 남원 개관에 맞춰 다음달 말부터 고려청자 170점을 대여, 전시할 예정이다. 45점은 3개월 동안, 나머지는 2년 동안 대여 전시가 이뤄진다. 또 대영박물관 한국관에 고려청자 대여 전시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고려청자 30여점이 지난 10년 동안 베를린 국립아시아미술관 대여를 마치고 곧 오사카로 돌아온다. “박물관이 시 산하 기관인데 한·일 관계가 나쁠 때 한국특별전 준비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데가와 관장은 “오사카 시 공무원들이 깜짝 놀라기는 했을 것”이라면서도 “한·일 두 나라의 긴 교류의 역사에서 지난 몇 년간은 정말 눈 깜빡할 찰나이며, 관계가 나쁠 때 서로 이해를 더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문화 관계자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오사카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커버스토리] 여야 잠룡들, 이미지 컨설팅 받는다면…

    [커버스토리] 여야 잠룡들, 이미지 컨설팅 받는다면…

    시대에 따라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이 달라지는 만큼 선호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도 바뀌곤 한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서민적인 이미지가 이회창 후보의 대쪽 이미지를 누르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2007년 대선에서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적 바람을 업고 열정적 이미지를 갖춘 이명박 후보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남북문제에 전문성을 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꺾고 대권을 쥐었다. 지금 이 시대 국민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갖춘 대권 후보는 누구일까. 서울신문은 올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 이상을 기록한 여야 잠룡들의 이미지를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직접화법 형식으로 소개한다. 글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일러스트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우직한 카리스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카리스마’가 먼저 떠오른다.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에 걸맞게 ‘우직함’, ‘열정의 리더십’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보폭이 크고 자신감 넘치는 몸짓 하나하나가 이러한 김 대표의 이미지를 뒷받침한다. 김 대표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재계 인사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김 대표의 목소리 톤 자체는 저음으로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지만 끝을 흐리는 습관은 결단력이 부족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은 자칫 배려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카리스마를 넘어 강압적으로 비칠 경우 상대방 입장에서 무례함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김 대표가 기자들에게 툭툭 반말을 던지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심심찮게 포착된다. 이를 보완하려면 되도록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많이 노출할 필요가 있다. 서민형 엘리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스마트한 풍모와 서민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췄다. 외모만 놓고 보면 금융권 종사자 같은 세련미가 느껴지지만 인권 변호사 등 과거 전력을 보면 서민적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큰 키와 강한 인상을 주는 눈매로 전체적인 외모는 ‘호감형’에 속한다. 문 대표가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개한 특전사 시절 ‘얼짱 사진’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염색을 하지 않아 희끗희끗한 머리 역시 문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다소 어눌한 말투에는 답답함과 친근함이 공존한다. 다만 대권주자로서 갖춰야 할 이미지 중 카리스마적 요소는 부족하다. 당 대표로서 리더십의 위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보다 결단력 있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서는 진한 색 계열의 넥타이를 매거나 안경테를 사각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완벽한 젠틀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형’ 인물이다. 반 총장의 스마트하고 젠틀한 이미지와 유사한 역대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반 총장은 외교관 등 정부 관료로서의 경력과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현재 타이틀에 맞게 격식을 갖춘 모습들이 주로 카메라에 포착된다. 옷차림도 항상 보수적이다. 교과서처럼 반듯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다만 반 총장이 대권주자로 나선다면 지나치게 완벽한 이미지는 오히려 대중 정치인으로서 ‘독’이 될 수 있다. ‘너무 완벽해 보여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심리에서다. 반 총장을 보면 ‘과연 캐주얼도 입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요즘 ‘젊은 정치인’들이 각광을 받는 추세인 만큼 1944년생인 반 총장에게 느껴지는 ‘올드함’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유쾌한 옆집 아저씨 박원순 서울시장 유쾌한 에너지가 넘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이미지도 있다. 자신을 ‘원순씨’로 명명한 점도 친근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 시장이 보유한 ‘친숙한 이미지’는 모든 정치인이 가장 탐내는 ‘워너비’ 요소다. 재미있는 점은 박 시장과 반 총장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반 총장이 엘리트 관료의 전형이라면 박 시장은 서민적 이미지가 강하다. 박 시장 역시 반 총장처럼 다소 올드해 보인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요인이다. 옷을 타이트하게 입거나 1대9 또는 2대8 가르마에서 벗어나 차라리 짧은 헤어스타일 등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 자신만만 귀공자 오세훈 前 서울시장 대표적인 ‘얼짱 정치인’이다. 귀공자적인 풍모로 ‘스펙’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표현할 때 자신감도 넘친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풍기는 여유롭고 유쾌한 에너지와 흡사하다. (미남형 얼굴에 키가 큰 데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니고 있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 공개 행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40~50대 여성들이 오 전 시장 주변에 한꺼번에 몰려 다른 귀빈들을 ‘들러리’로 만들곤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다만 외모가 지나치게 부각될 경우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얻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콘텐츠’ 측면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요인이다. 온화한 소년상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이 돋보인다. 다른 잠룡들과 비교할 때 웃는 표정이 가장 자연스럽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 소년과 같은 순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의 근저에도 이러한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선한 인상이 역으로 정치인으로서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칠 수 있다. 자신의 유(柔)한 이미지를 단호한 말투로 극복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다만 국회의원이 ‘5번째 직업’이라는 안 의원에겐 아직까지 정치인으로서 입는 정장보다는 교수, 벤처 사업가 시절 즐겼던 캐주얼이 더 어울려 보인다. 앞으로 정장 맵시를 살리는 게 정치인 안 의원이 풀어 나갈 과제다. 원칙주의 뇌섹남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합리적 카리스마’가 연상된다. 뾰족한 턱선과 날카로운 눈매로 원리·원칙을 중시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분한 목소리와 담담한 말투도 유 의원의 ‘신뢰와 원칙’의 이미지를 뒷받침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다. 자칫 날카로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을 동그란 안경테로 희석시킨 점은 스타일 활용의 ‘좋은 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인물이 감정 표현을 절제한 채 예리한 비판을 할 경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다. ‘교수님’ 같은 이미지는 ‘통 큰’ 정치인이 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 애교가 가득한 표정, 활짝 웃는 모습 등이 요구된다.
  • [사설] 남북 당국회담, 작은 시작 큰 결실을 기대한다

    남북이 다음달 11일 개성공업지구에서 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당국자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8·25 합의가 나온 지 3개월 만인 그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개최한 남북 실무 접촉에서다. 남북은 의제를 비롯해 회담 대표의 격(格), 장소 등을 놓고 11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한 끝에 공동 보도문을 내놨다. 간추리면 12월 11일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개성공업지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을 의제로 삼아 회담하기로 의견 일치를 봤다는 내용이다. 또 회담을 위한 실무적 문제들은 판문점연락사무소를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 회담 결과는 어제 새벽에 발표됐지만 합의가 이례적으로 당일에 이뤄졌다. 실질적이고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탓에 8·25 합의 원칙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신속한 합의와 함께 대화 채널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작지 않다. 실무회담은 8·25 합의에 비춰 기대했던 만큼 크게 한 걸음 내디딘 것은 아니다. 8·25 합의의 핵심은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해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전제 역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다. 장관급 고위 당국자 회담은 실무 접촉에서 차관급으로 격이 낮아졌다. 게다가 서울도 평양도 아닌 개성을 회담 개최 장소로 명시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북측은 5·24 조치 해제, 남측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와 함께 책임 있는 조치라는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겠다. 남북 관계 개선이 쉬울 수는 없다. 이산가족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국제화 3통(통신·통관·통관), 5·24 조치 해제 등 남북이 다뤄야 할 현안이 수두룩한 까닭에서다. 하나하나가 간단찮다. 청와대에서 이번 회담에 대해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나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신중한 평가를 내놓았다. 확실하게 작은 시작이라는 데 방점을 찍을 만하다. 관계 개선은 합의, 실천이 비교적 수월한 사안에서부터 실질적인 물꼬를 터야 한다. 이산가족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면적인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정례화가 절실하다. 그래야 호혜적 협력 관계로 통로를 넓힐 수 있다. 대북 대화 원칙이 확고해야 함은 물론이다. 북한의 술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은 만나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다. 남북 대화의 끈이 끊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다음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한다.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광주에 팔만대장경 새기는 로봇이?

    광주에 팔만대장경 새기는 로봇이?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인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25일 공식 개관했다. 2004년 첫 삽을 뜬 지 11년 만이다. 개관식은 이날 오전 11시 문화전당 내 아시아예술극장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장현 광주시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 의원,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문화장관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 퍼포먼스 ‘창조의 나무: 빛으로의 초대’ 시연회와 황 총리의 축사 등으로 40여분간 진행됐다. 황 총리는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을 계기로 문화예술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 세계와 소통하는 창이 됐다”며 “세계 각국의 문화와 예술이 이곳에서 활짝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자리에 7000억원을 들여 조성된 문화전당은 문화예술 기관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전체 부지면적이 13만 4815㎡(연면적 16만 1237㎡)에 이른다. 문화전당은 예술극장,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등 5개 원으로 구성됐다. 이 중 문화창조원 복합 1~4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가 눈길을 끈다. 국내외 70여명의 작가가 참여해 ‘플라스틱 신화들’,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 ‘신화와 근대, 비켜서다’ 등의 전시가 내년 5월까지 이어진다. 복합 2관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신화들’에서는 고려대 대장경연구소와 종림 스님이 팔만대장경 16만 2516면을 일일이 사진으로 촬영하고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석해 디지털화했다. 대장경을 새기는 로봇 ‘피타카’도 함께 전시됐다. ‘새로운 유라시아프로젝트’는 동서양의 새로운 관계와 유라시아의 정체성을 각종 사진과 설치예술로 시각화했다. ‘신화와 근대, 비켜서다’는 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동서양 문화의 충돌과 갈등 등을 예술가들의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해석한 주제전시이다. 예술극장에서는 국내외 공동 제작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공연이 열린다. 문화정보원과 민주평화교류원은 아시아문화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브 역할 및 소통·교류의 장으로 활용된다. 어린이문화원은 어린이의 놀이와 창작활동 체험 공간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남과여Why] 여자는 왜 카톡 숫자 ‘1’에 집착할까

    [남과여Why] 여자는 왜 카톡 숫자 ‘1’에 집착할까

    왜 우리는 타인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을까요? 친구가 내 연애사를 모두 꿰뚫고 있거나 중요한 조언을 할 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제3자가 연인과의 관계에 끼어든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합니다만 ‘내 남자(여자)친구만 이런가?’, ‘다른 커플도 이런 문제로 다툴까?’하는 생각이 들어 서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과여Why’에서는 다른 커플들은 무슨 고민을 하며 지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연인의 연락을 기다리고 계신 분들, 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메신저의 숫자 ‘1’이 언제 사라지나 전전긍긍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상대방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청춘남녀가 연락에 더욱 집착하게 됐습니다. 숫자 ‘1’이 없어졌는데, 즉 상대방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데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연인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반대로 메시지를 보낸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1’이 지워지지 않는다면요? 그렇다고 해서 개운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방은 내 연락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혹은 ‘미리보기’ 기능으로 메시지 내용은 읽고 답장을 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메시지 하나에 목매는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 같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여기 여럿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이런 문제로 속앓이를 많이 하는 것 같군요.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지난해 3월 31일부터 4월 15일까지 20·30대 미혼 남성 384명, 여성 4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요. 남성의 58.6%, 여성의 72.6%가 ‘애인과 연락이 안 될 때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취업준비생 최유경(24)씨는 “남자친구와 연락이 안 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서 “그 시간 동안 남자친구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애정이 식으면-女 “외모와 행동 지적” 男 “만남이 귀찮다” 여성은 왜 답장 회신 여부에서 ‘애정도’라는 의미를 끄집어 내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성 본인이 연인에 대한 ‘콩깍지’가 사라졌을 때, 연락을 덜하고 문자에 답장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듀오가 올해 같은 연령대 미혼 남성 302명, 여성 309명을 대상으로 ‘콩깍지가 벗겨졌을때 하는 행동’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요. 그 결과 여성의 44%가 “연인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졌을때 연락이 줄고 회신이 늦어진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연인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하는 또 다른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외모와 행동 지적이 증가한다’(36.2%), ‘과거에 넘어가던 잘못에도 가차 없다’(11%), ‘스킨십에 주의를 준다’(4.9%) 등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남성은 어떨까요? 남성은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태도로 ‘연인과 만나는 걸 귀찮아한다’(26.5%), ‘데이트 비용 문제를 언급한다’(25.5%), ‘스킨십 때와 장소에 주의를 준다’(19.9%), ‘외모와 행동 지적이 는다’(9.6%)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답변에서 보시다시피 남성은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와 연락의 횟수사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연락이 안되면-女 “응답 할 때까지 연락한다” 男 “기다린다” 휴대전화로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청춘남녀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요? 한두 시간 정도 기다릴 수 있을까요? 듀오가 그 시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조사 결과 ‘사전 통보 없는 연락 두절 허용 시간’은 남녀 평균 약 4시간 58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남성이 5시간 58분으로 여성(4시간 2분)보다 약 2시간 정도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이 시간 동안 연락이 오지 않을 때 남성과 여성은 확연한 행동차이를 보입니다. 20·30대 미혼 남성 384명 중 56.3%는 ‘일단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답한 반면, 여성 409명 중 66%는 ‘상대방이 응답할 때까지 연락한다’고 답했습니다.회사원 정윤수(29)씨는 “일이 바빠 낮 시간에 연락을 못했는데 여자친구가 ‘뭐 하냐’, ‘왜 답장이 없냐’, ‘무슨 일 있냐’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무서웠던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휴대전화 메시지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청춘남녀에 대해 이명길 듀오 연애코치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인내심이 적어졌다”면서 “‘백톡이불여일견’(카카오톡 메시지 100번보다 한 번 만나는 게 낫다는 의미)이니 메시지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방사청 “이달 중 KFX 21개 기술 美 수출 승인” 또 거짓말

    방사청 “이달 중 KFX 21개 기술 美 수출 승인” 또 거짓말

    군 당국이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21개 기술항목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이달 중 수출 허가를 내줄 것이라고 했던 호언장담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으로부터 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당한 데 이어 기존에 이전받기로 합의했던 21개 항목을 둘러싼 추가 협상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여서 최악의 경우 이전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21개 기술항목 중 3~4개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없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업 자체가 좌초 위기에 몰렸음에도 군은 협상 진행 상황 공개를 거부해 은폐 의혹마저 일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9월 “2014년 차기전투기(FX)사업 절충교역 기술지원협정서(MOA)에 명시된 21개 기술(14억 달러 상당)은 오는 11월 초에 수출 허가 승인(E/L)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는 합의 사항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벌칙이 부과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장명진 방사청장은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현재 21건의 수출 승인에 대해 우리가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질문하자 “예”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방사청 관계자는 24일 “지난 18일부터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21개 항목의 기술 이전과 관련해 실무 차원에서 1차 협의를 했고 다음주 중 추가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지난해 9월 KFX 사업 관련 21개 기술항목에 대해 이전하기로 합의 각서를 체결했지만 협상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측 관계자들이 우리 정부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해 달라고 말했다”면서 “21개 항목은 단순히 21개가 아니라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수십개에서 많게는 100개가 넘어가는 항목도 있어 이 범위를 확정하는 데 양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1개 항목에는 항공전자통합, 공중급유시스템 설계, 단·중거리 미사일 통합 기술, 쌍발엔진 체계통합 기술 등이 포함됐으나 록히드마틴 측은 일부 기술은 미국 정부의 반대가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방사청이 미국의 수출 승인이 이달까지 날 것처럼 애초에 과대 포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사청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21개 항목’이라고 밝혀 오면서 그 속에 포함된 수백개의 기술을 하나하나 미국 측과 협의해야 한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특히 세부 항목이 수백개에 달하는 21개 항목을 놓고 우리가 필요한 기술을 식별하고 협의하는 데만 상당한 시일이 걸려 연내 협상이 마무리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총론에서는 21개 항목에 대해 합의하더라도 각론적으로 특정 세부 기술에 대해 미국이 수출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이 거액을 들여 개발한 쌍발엔진 체계통합 기술과 ‘세미 스텔스’ 기술 수출 승인을 거부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21개 기술에 대한 수출 승인이 늦어지면 2025년까지 KFX 시제기를 출시한다는 일정도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다. 한편 KFX 개발 주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 사외이사들은 지난 19일 KAI 측에 “KFX 추진 과정에서 제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재정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우려한 조치로 그만큼 KFX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성소수자’ 국내 첫 대학 총학생회장 됐다

    ‘성소수자’ 국내 첫 대학 총학생회장 됐다

    “정상(正常)이란 게 대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정상이라는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가 자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지난 5일 서울대 제58대 총학생회장에 단독 출마한 김보미(23·여·소비자아동학과)씨는 교내에서 열린 공동정책간담회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이른바 ‘커밍아웃’을 했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에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에 더해 ‘성소수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20일 새벽 선거 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김씨는 국내 최초의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이 됐다. 투표인원 8837명(전체 학생의 53.4%) 중 7674명(86.8%)이 그녀에게 힘을 실어 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연장 투표 없이 유효 투표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무려 18년 만이다. 김씨는 당선이 확정된 뒤 “공약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총학생회장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총학생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해 온 데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관심을 쏟는 분야는 역시 ‘교내 인권’이다. “올해 서울대에서는 교수의 성추행, 축제 사회자의 여성 폄하 발언 등 인권침해 사례가 이어졌어요.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커밍아웃 후 자신에게 쏠릴 차가운 시선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저의 커밍아웃이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응원과 지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던 거죠.” 성소수자라는 고백에 한동안 말이 없었던 부모님도 어느새 딸의 편에 섰다고 한다. “부모님도 점점 이해해 주시려고 하고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기뻐하고 계세요. 특히 남동생이 부모님을 많이 위로해 줘 고마웠어요.” 김씨는 다음달 1일부터 총학생회장 임기를 시작한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34) 늘 미안한 엄마가 평생 고마울 딸에게

    [독박(讀博) 육아일기](34) 늘 미안한 엄마가 평생 고마울 딸에게

    두 돌을 앞둔 아기와 아직도 밤마다 잠 때문에 씨름을 한다. 예민한 탓인지 아직도 새벽에 한 두번씩 꼭 깨서는 ‘통곡’을 한다. 잠결에도 아이의 울음 소리에 신기하게 눈과 귀가 번뜩 뜨이지만 있는대로 날카로워진다. 제발 자라, 자라. 다독여 주다가 결국은 일어나서 안는다. 오늘은 새벽 5시에 또 눈을 떴다. “앵~”하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마 여기있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새벽에 나를 깨운 것이 고마웠다.이 아기가 나에게 처음 찾아왔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 때 나는 몸이 많이 아팠다.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병원을 들락거리며 수술과 치료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아 온갖 비관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 가서 성장동영상 속 세 가족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몇 달 뒤, 또 다시 방사성 물질로 치료를 한 지 두 달 만에 아기가 왔다. 병원에서 최소 6개월이 지난 뒤에 아기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기에 엄마가 될 나는 왜 지금 왔냐고, 조금 더 천천히 오지 그랬냐고 애꿎은 불평을 했다. 혹시나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달 동안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다.선례가 별로 없어 아기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불안감이 열 달 내내 머물렀다. 다행히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뱃속에서 꿈틀댈 때마다 배가 불편하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행복했다.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큰 안정감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지 신기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초음파 흑백 사진 속 눈, 코, 입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 보고 웃었다.이렇게 엄마가 되었다.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것만으로 감사했다는 생각은 잠시. 솔직히 분만을 한 그 날 새벽부터 힘들었다. 아기를 낳으면 임신했을 때 느꼈던 고통이 싹 가실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잠을 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육아를 시작한 셈이었다. 아기가 울면 나도 함께 우는 시간들이 이어졌다.내가 좀 더 준비된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데, 항상 미안했다. 엄마가 될 거라고도 상상도 못했던 때에, 엄마가 될 계획조차 없이 아기를 만났다. 원래도 치밀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이토록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후회스러웠다. 쉽게 지쳐버리고 짜증을 냈고 울기도 많이 했다. 아기는 나의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늘 외롭다고 생각하며 나만 혼자라고 느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자러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캄캄한 새벽에 밤새 아기를 안고 젖을 물렸다. 가슴을 다 젖힌 채로 졸다가 아기가 울면 정신을 차렸다. 아기가 점점 자라고 나를 향해 웃어주는데도 외롭다고 느꼈다. 바쁜 남편, 해외에 살고 있는 친정 가족,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 내가 이토록 힘든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외롭게 만들었다.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이 주욱 이어지자 스스로가 제 정신이 아니게 변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로 말 못하는 아이와 온종일 멍하니 있으니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퍼졌다. 핏덩이 같은 아이를 놔두고 몇 개월 뒤면 다시 복직을 해야한다는 걱정과 아이를 낳기 이전과 같은 사회생활은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막막함까지 겹쳤다. 급기야 8월 어느 날 밤 남편에게 내가 그만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말도 내뱉었다.그 때, 아이가 보였다. 내가 그렇게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 나에겐 아무도 없다고 좌절하던 순간에도 내 옆을 지켜준 건 아이였다. 아이 때문에 힘들어서 울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 서투르고 부족함 투성인 엄마인데, 이런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의지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울어도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매 순간 오로지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루종일 이렇게 많이, 크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아기를 만난 뒤부터였다. 아기띠에 안긴 아기와 마주보며 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웃었다.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아기와 웃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정말 예쁘고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며 연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반면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기쁨을 준다. 그렇게 힘들다고 갖은 짜증을 부리면서도 나는 또 아이의 웃음에 살살 녹아버린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모습 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얻었다. 여전히 서툴지만 그래도 뭔가 이제서야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다. 아이를 위해 더 건강하게,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내 자신을 가꾸게 된다.육아 초기에는 외출이 쉽지 않아 아기 때문에 사람들을 못 만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니 아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고, 아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깊어졌다. 친해지고 싶지만 어려워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선배들과 육아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까워졌다. 동네에서 혼자 유모차를 밀고 산책하는 아기 엄마들과 “아기 몇 개월이에요?”라고 물으며 친구가 됐다. 나이도, 하던 일도 모두 다르지만 아기 엄마라는 이유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육아휴직을 할 때나 막상 복직을 해서도 아이에만 몰두해 다른 것은 못 하고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하다보니 좀 더 예민한 시각을 갖게 되었고 이전보다 넓은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내 아이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나하나 피부에 와닿았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는 더 많은 것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평소엔 의미 없이 끄적였던 기사 한 줄도 좀 더 신중하게 쓰고 싶어졌다. 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의 일부분으로 생각된다.아이 때문에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엄청난 고민 속에 살았는데 막상 아이는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는 물론 어딜 가도 방긋방긋 웃으며 적응을 잘해, 엄마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여전히 엄마와 떨어지는 일상에 적응을 못해 회사에서도 가슴을 움켜쥐는 다른 엄마들을 보면, 내 아이의 이런 붙임성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늘 웃는 얼굴로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엄마가 아이한테 잘 해줬나보다”, “엄마가 잘 키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우울해 하며, 체력이 약하다는 핑계까지 더해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더 많다고 늘 미안했는데 아이 덕분에 밖에서는 칭찬을 듣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안고 다니면 내가 부자가 된 것 같고, 대단한 능력을 지닌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아이와 말이 통하는 지금도 떼를 쓰면 어쩌지 못해 화가 나기도 하고, 여전히 울음을 쏟으며 힘들어 한다. 그렇지만 이 아이가 내 옆에 없었을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나의 전부가 되었다. 아이에게 벗어나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정작 밖으로 나오면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이 생각, 예쁜 것을 보아도 아이 생각 뿐이다. 내 아이의 살냄새가 배인 옷과 신발, 장난감은 이미 한참 작아지고 못 쓰게 되었는데도 하나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다. 얼룩덜룩하고 해진 내복을 보면 이 옷을 언제 처음 입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새록새록 떠오른다. 모든 것을 기념하고 싶고,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정말로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자 복덩이다. 아이 옆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웃고 싶다. 두 살배기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그대로, 오래도록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따금씩, 이 아이가 커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하고 또 어떤 위험한 일이 닥칠지 모르겠다는 걱정과 불안감을 삼키기도 한다. 때로는 과연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무사히’ 성인이 되는 것이 기적 같이 여겨질 만큼 막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용기가 있다. 이것을 만들어준 것도 아이였다. 내가 ‘육아(育兒)’를 하는 동안 아이도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를 했다. 평생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나의 첫 사랑, 내 딸을 위해 힘을 낸다.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지난 3월부터 연재했던 ‘독박 육아일기’가 오늘로 끝을 맺습니다. 처음 글을 쓰면서 걱정을 안고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이미 수많은 선배 엄마들이 있는데 과연 제 이야기를 누가 공감해줄까. 혼자 유난떤다고, 자기 아이 키우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비판만 듣지 않을까. 이 고민을 매주 목요일, 글을 전송하는 순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많은 초보 엄마들이 공감해 주셨고, 선배 엄마들이 다독여 주셨습니다. 제 글을 읽고 위로를 받으셨다는 댓글과 메일을 받으며 저 또한 위로를 받았고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든든한 동지들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독박 육아일기’는 많은 관심 덕분에 내년에 책으로 엮어질 예정입니다. 연재는 이것으로 마치지만 육아를 하면서 제가 보고 느끼는 세상을 전하는 데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울신문 허백윤 드림- ▼ 이 기사의 관련기사(28)좋은 엄마 나쁜 엄마 따로 있나요(29)1인실 쓰고도 출산비 ′0원′…호주·미국 육아맘에게 물었다(30)‘도긴개긴’ 韓·日 육아 환경…초저출산국 이유있었다(31)엄마의 눈으로 본 저출산 대책은 슬펐다(32)아이에게 ‘뽀로로’ 쥐어준 엄마의 반성문(33)아이를 키우며 엄마를 생각한다▶1회부터 27회까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 ☞블로그 
  • 호남 민심은 왜…문재인을 싫어하나

    호남 민심은 왜…문재인을 싫어하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의 이탈이 심상치 않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9%)보다도 낮게 나온 ‘5% 지지율’은 전통적 야권 지지층의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 표출로 분석할 수만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4월 재·보궐선거 이후인 5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14%로 전월(21%) 대비 7% 포인트 하락한 뒤 10%대를 오가다 5%까지 내려갔다. 당 안팎에서는 호남 유권자의 이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문 대표가 호남 민심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 리더십 위기에 봉착한 사이 눈을 돌려 호남 민심을 달랠 기회를 ‘실기’했다는 의미다. 야당은 10월 재·보선에서도 호남 유권자의 냉대를 재확인했다. 당시 문 대표가 직접 유세에 나선 곳은 경남 고성군수 선거뿐이었고, 수도권·호남 유세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 대표로서는 호남의 기존 정치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반대로 호남의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현재까지의 모습은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영남 출신’ 야권 대선 주자의 이미지에 갇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혁신위발(發)’ 부산 출마 요구 이후 문 대표의 행보가 더욱 부산·경남(PK)에 집중되고 있기도 하다. 16일 당내 중도 성향 인사들의 모임인 ‘통합행동’이 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협력하는 ‘세대혁신비상기구’를 제안하고, 주류·비주류 주요 의원들이 포함된 ‘7인회’에서도 문·안 화합을 전제로 한 문·안·박(박원순) 공동체제를 구체화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영남 출신 인사들을 당 간판으로 내건다는 점에서 ‘호남 배제’라는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광주의 한 의원은 “부산에서 양말공장을 하던 아버지가 전남 판매상들의 외상 미수금 때문에 빚을 진 사연을 자서전 ‘운명’에 소개하는 등 문 대표의 행보와 발언 하나하나가 조금씩 쌓여 지금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18일 KBC광주방송국에서 목민자치대상 행사에 참석한 뒤 호남 지역 대학에서 특강에 나서 ‘호남 메시지’를 전한다. 이날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서울에서 신당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여는 날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또 일주일 뒤인 오는 25일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문 대표에 대한 호남의 해묵은 반감이 있지만 하지만 총선에 임박하면 다시 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모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음식점도 당구대·책꽂이 설치할 수 있다

    앞으로 일반 음식점도 책꽂이를 설치해 서적을 판매하고 당구 등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2일 식품접객업자가 영업장을 벽이나 층으로 분리하지 않고도 서적 판매용 책꽂이, 당구대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분리 시설 기준을 개선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음식점 내에 게임기나 당구대, 책꽂이 등을 설치할 때 가벽을 세워 식사 공간과 오락을 위한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음식점 내에 게임기, 당구대를 놓는 것까지 하나하나 규제를 받다 보니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아 현실에 맞게 기준을 개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오락시설을 설치하고서 공간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닥에 선만 그으면 된다. 다만 노래 연습장같이 분리 기준을 완화하면 업종 간 체계가 무너질 우려가 있는 경우와 동물 출입 등 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는 업종은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음식점 내에 노래방 기기를 갖추거나 애견 카페를 만들려면 아예 다른 층에 설치하거나 가벽을 세워야 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XX중학교 족보 팝니다… 과목당 2000원”

    “XX중학교 족보 팝니다… 과목당 2000원”

    서울 강남구의 고교 국어교사 김모씨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지난 학기에 냈던 시험문제가 스캔 형태(그림파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지의 가격은 과목당 450~2000원으로, 학생들의 것처럼 보이는 낙서가 가득했다. 지난 연도의 중간·기말고사 문제, 이른바 ‘족보’가 교육청이나 학교 등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거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신문이 9일 일부 시험지 판매 사이트들을 조사한 결과, 전국 수천곳의 초·중·고교 시험지가 과목별로 유료로 팔리고 있었다. 이런 사이트들은 시험지를 스캔해 파일 형태로 올려놓고 돈을 주고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과목의 시험지를 구매하려면 일정 요금을 내고 내려받거나 한 달에 얼마씩을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을 사용해 본 학생들의 후기 등도 시험지 구매를 부추긴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지난해와 똑같은 문제가 많이 나와 시험에 큰 도움이 됐다”는 내용의 글이 수백건 올라와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학교 시험 문제에 대한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국공립 학교는 관할 시도가, 사립은 사학재단이 가진다”면서 “저작권 판매에 대한 동의를 거치지 않고 영리 목적으로 무단으로 파는 것은 저작권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70여명의 교사들이 기출문제를 영리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2005년 12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랜 소송 끝에 교사들 일부가 2008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저작권 인정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험지 판매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원이 이미 교사들의 시험문제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의 후속 대처가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과부를 비롯해 교육청들이 시험지 판매를 근절하겠다면서 대응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다. 교사 개인이 업체에 대해 민사나 형사고발을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응방법이 없어 불법 시험지 장사가 판을 치는 셈이다. 개별 소송을 하더라도 시험 문제 하나하나의 표절 행위를 따져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교사들이 이를 알아도 그냥 넘겨버리는 일이 많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불법 사이트들에 대해 “시험지 공개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법적인 소송을 계속하기엔 대응 인력 등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에서 학교 홈페이지에 시험지 공개를 하고 저작권의 명확한 표기를 위해 교사들의 실명 등을 적으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많은 학교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사 개인이 업체와 법정 다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교육 당국이 제도적으로 사설업체가 시험문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도봉 ‘재활 쿠킹’을 부탁해!

    도봉 ‘재활 쿠킹’을 부탁해!

    9일 서울 도봉구 창동보건지소에선 특이한 요리 교육이 열렸다. 이제까지 자치구에서 열린 요리 프로그램은 대부분 은퇴자나 어린이,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한 게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를 가르치는 게 프로그램의 중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봉에서 열린 요리 교육은 ‘요리’ 자체보다 ‘치료’에 중심을 뒀다. ‘요리치료’는 특수교육과 통합치료를 기반으로 장애인에게 심리적·정서적인 지원은 물론 신체적인 재활과 자립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구 관계자는 “요리가 장애인들의 재활과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에 착안,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이라면서 “장애인들의 경우 반복적인 재활훈련이 필요한데 요리 과정에서 필요한 썰기와 자르기 등이 소근육을 쓰게 만들고 반복적인 행동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제목도 ‘오감만족, 재활 쿠킹’이다. 대상은 지역에 등록된 뇌병변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이다. 참여자들은 몸이 불편함에도 하나하나 채소를 다듬고 설명을 들었다. 어떤 참가자는 신이 나서 계속해서 채소를 다듬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만든 요리 작품을 발표했다.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평가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내가 만들었어”를 연신 외치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국민이 만든 교과서라는 얘기 듣도록 하겠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국민이 만든 교과서라는 얘기 듣도록 하겠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헌법 가치에 합당한 나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부여하는 데 현재의 교과서로는 미흡하다”며 국정교과서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황 부총리와의 일문일답이다.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명명했는데 올바르다는 평가는 누가 하는 것인가. -어떤 것이 좋은 교과서냐, 누가 이를 주도하고 검증하느냐의 문제는 이제부터의 현안이다. 검정교과서에 비해 2배 이상 되는 집필진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분들이 충분한 독자성을 갖고 일하도록 하겠다. 내용 하나하나 단원이 나갈 때마다 국민과 함께 검증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가 잘 반영됐다고 하는, 국민이 만든 교과서라는 얘기를 듣도록 하겠다. →당초 5일로 예고했던 확정 고시가 3일로 당겨진 이유는. -당초 교육부 실무선에서 관보 게재 문제를 이유로 5일 정도에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있었다. 관보 게재 문제가 해결됐고 행정예고 기간에 충분한 의견 검토를 했기 때문에 조속히 매듭짓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집필 개발 전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절차는 국사편찬위원회가 하지만 최종 책임과 대강은 교육부가 원칙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밀실에서 만드는 교과서는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다. 투명하게 해 나가겠다. 완성되는 부분마다 인터넷에 띄워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 →국정화 반대 선언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의견은 어떻게 수렴할 건가. -(이영 교육부 차관) 국민의 의견들은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오해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적극적으로 말하고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 당연히 여론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대 의견들을 정확히 보면서 올바른 교과서가 나오게 하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반세기 넘게 밤바다·뱃사람 다 비춘 동해의 수호천사

    [명인·명물을 찾아서] 반세기 넘게 밤바다·뱃사람 다 비춘 동해의 수호천사

    반세기 넘게 밤바다 길잡이 역할을 해오는 강원 동해시 ‘묵호 등대’가 새로운 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푸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주변에 아기자기한 벽화마을과 펜션, 카페촌까지 어우러져 연인과 가족동반 맞춤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묵호 등대가 관광명소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당시는 전망 좋은 곳에 있는 등대들이 앞다투어 해양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였다. 묵호 등대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변신했다. 묵호 등대는 지금도 밤이면 불빛을 밝히며 등대 본연의 역할에 나서고 있다.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고스란히 속살을 공개하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묵호항에서 울릉도를 최단거리로 정기 운항하는 배편이 생기면서 관광객들이 더 몰리고 있다.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등대 입구에는 쉼터 광장을 만들어 관광객과 시민들 누구나 찾아가 바다를 보고 쉬어 갈 수 있도록 했다. 등대 외벽과 광장 곳곳에는 각종 조각상을 전시하고 시를 새겨놔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첫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전문이 초입에 새겨져 관광객들에게 역동적인 동해의 의미도 알려 주고 있다. 등대 내부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벽면에는 우리나라 유명 유인 등대를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고 동서남북 구분 없이 둥글게 터 놓은 유리 전망대에 오르면 묵호항과 동해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석처럼 눈부시고, 흐린 날에는 감청색으로 변한 바다가 깊은 맛을 낸다. 등대 내부는 저녁 시간에는 고유의 등대 역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등대 앞 쉼터광장에서는 밤바다와 불켜진 어항, 가로등 켜진 마을의 밤거리 모습을 볼 수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10여년 전부터 등대마을 주변에 조성한 벽화가 또 다른 볼거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묵호항에서 등대로 오르는 골목길 4갈래 길옆 담에 그려 놓은 벽화들이 추억의 걷기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옛 묵호항의 모습부터 오줌 누는 강아지 모습, 주요 생활도구였던 리어카, 봇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 구멍가게 모습 등 40~50년 전 어항주변 달동네 마을의 옛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관광객들에게 향수를 주고 있다. 마을의 옛이야기와 모습을 벽화로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것이 오히려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연인과 가족동반 관광객들은 이런 그림을 보기 위해 골목마다 10여분씩, 40~50분에 걸쳐 걸어서 오르내린다. 벽화만 감상하는 관광객들도 생겨났다. 곳곳에 기념사진 찍는 곳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작은 입간판도 세워 놓았다. 마을이름도 등대마을에서 아예 ‘논골담길 벽화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골목을 오르다 등대와 인접한 언덕 마을 정상쯤에 있는 집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정집을 커피숍과 펜션으로 꾸며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골목 정상에 옹기종기 작은 간판을 내걸고 개업한 서너 평씩의 아담한 커피숍들은 바닷가로 통유리를 내고 손님을 맞는다. 아예 작은 옥상에도 테이블을 놓고 야외 커피숍을 차린 곳도 있다. 이웃집 지붕과 지붕이 손만 뻗으면 잡히고 골목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앙증맞은 입간판이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매달려 분위기를 더한다. 작은 꽃 화분과 소품들까지 작은 카페에 어울리는 물건 하나하나가 정겹다. 마을 정상에 개업한 커피숍만 6곳, 펜션은 10곳이 넘는다. 김태욱 동해시 관광과 주무관은 “항구 주변이 아늑한 만(灣)으로 둘러싸여 잔잔한 바다 모습이 좋고 부서지는 파도와 먼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곳”이라면서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등대와 마을의 풍광이 뛰어나다 보니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미 1968년 화제를 불러 모았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고, 최근에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찍은 장소로 알려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며 인접한 골짜기에는 길이 30m 남짓 되는 출렁다리도 설치했다. 구불구불 난 벽화 골목길을 오르고, 등대에서 바다를 조망한 뒤 작은 밭둑 길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닷가 옛 시골마을을 산책 나 온 듯하다. 이렇게 등대가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지난해에만 21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았다. 2~3년 전부터 해마다 20% 이상씩 관광객들이 늘고 있어 주변 마을 사람들도 반기고 있다. 벽화마을 아래 항구 쪽에는 어항을 끼고 있어 횟집들이 많다.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횟집들이 어항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를 회로 떠 손님상에 내고 있다. 사계절 달리 잡히는 고기들이 동해안의 다양한 바닷고기를 맛볼 수 있게 한다. 횟집 등은 바다를 끼고 난 해안선 도로를 따라 동해안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등대, 벽화마을을 찾아 걷기에 나섰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또 다른 먹거리 명소가 되고 있다. 추억의 장소로 만들어 관광객들이 더 올 수 있도록 지난 8월에는 등대 앞에 ‘행복 플러스 우체통’도 만들었다. 관광객들이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우편엽서를 써 넣으면 1년 뒤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이다. 설치 한 달 만인 지난달에만 400여통이 쌓여 벌써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동해시는 아예 올해 말까지 묵호등대마을 정비를 더 진척시켜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낙후된 등대마을에 벽화를 더 늘려 그려 넣고 마을 곳곳의 공터에는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더불어 쉴 수 있는 ‘쌈지 쉼터’를 만들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갤러리도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오징어가 한창 많이 잡힐 때 어부들이 머물던 임시 판잣집들을 살려 볼거리로 만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주민 소득으로 직접 연계될 수 있도록 마을 공터 곳곳에는 작은 카페와 지역특산품, 먹거리를 판매할 수 있는 지역소득지원시설도 짓기로 했다. 심규언 동해시장은 “1962년 주민들이 지게와 대야로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직접 나르며 고생해 세운 묵호 등대가 5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이제는 지역을 살리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면서 “묵호항이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여객 관광항으로 자리잡고 등대와 주변 마을도 스토리텔링, 지역상품 브랜드, 향토 음식과 지역축제, 마을기업 설립 사업 등도 함께 추진해 묵호지역의 소프트 파워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단풍이 중부 지방 일대까지 내려왔다. 먼 강원의 산을 찾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겐 근교의 숲길을 찾아 움직이기 좋을 때다. 이맘때라면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제격이다. 성곽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는 데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멀지 않다.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이 오롯하고, 단풍 빛깔도 제법 곱다.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딱 1년째다. 이쯤 되면 찾아갈 명분도 그럴싸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산성이 깃든 곳은 중부면이었다. 이게 남한산성면으로 바뀌었다. 지난 16일 일이다. 주민 96%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명칭을 바꿨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한산성이 백숙 먹고 노는 곳쯤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조치가 얼마나 실효를 얻을지 걱정이 앞선다. 남한산성 들머리가 붉다. 8㎞에 이르는 진입로의 나무들이 죄다 단풍으로 물들었다. 남한산성 주변을 흐르는 오전리 계곡, 불당골 계곡, 검북리 계곡 등을 따라 들어갈수록 가을 풍경도 깊어진다. 북한산성에 견주자면 남한산성은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산성이다. 통일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뒤 완공했다. 성벽 둘레는 11.76㎞. 성벽 외부는 급경사인 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분지 형태다. 주민들이 머물거나 전쟁 등 유사시에 농성하기 맞춤한 구조다. ●병자호란 아픔 지켜 본 나무들, 그 위로 내려앉은 단풍의 향연 남한산성에는 단풍보다 붉은 처절한 역사가 깃들었다. 1637년 1월 30일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산성 서문(西門)을 나서 한강 동쪽 삼전도(현재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일대)로 간다.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기 위해서다. 청나라 10만 대군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농성한 지 47일 만의 일이다. 인조의 항복으로 병자호란(1636~1637)은 일단락된다. 그 치욕의 순간들이 풀 한 포기, 벽돌 하나하나에 맺혀 있다.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모두 5개다. 거리도 4㎞부터 8㎞까지 다양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3시간 20분 안팎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산성로터리→전승문(북문)→우익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지화문(남문) 순으로 돌아본 뒤 다시 산성로터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5㎞,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에서 영월정으로 오른 뒤, 숭렬전→수어장대→우익문(서문)→국청사를 지나 산성로터리로 돌아오는 코스도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 4㎞,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를 들머리 삼을 경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행궁이다. 왕의 임시거처 노릇을 했던 곳. 조선의 행궁 가운데 종묘와 사직을 둔 곳은 남한산성 행궁이 유일하다. 규모는 작아도 임금이 늘 머물던 법궁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는 뜻이다. 전쟁 등 유사시엔 임시수도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 병자호란(1636년) 때 인조가 남한산성 행궁에서 47일간 머물며 항전했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들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행궁을 들러 갔다. 행궁은 순조 때인 1805년까지 증축을 거듭했다. 이후 1907년 일본의 군대 해산령과 함께 허물어졌다가 2002년부터 10년간 복원 공사를 벌인 끝에 2012년 완공했다. 행궁 복원 도중 행궁터와 산성터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초대형 기와와 건물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정문인 한남루를 지나면 숱하게 많은 전각들과 만난다. 초입의 침괘정, 연못이 있는 지수당 등 볼거리가 많다. ●산성 걷기 들머리로 남문 인기… 서문 앞 언덕은 ‘서울 전망’ 최고 포인트 가장 많은 이들이 산성 걷기 들머리로 삼는 곳은 남문(南門)이자 정문인 지화문이다. 1636년 12월 14일 새벽 도성을 버린 인조의 행렬이 들어갔던 문이다. 남문을 찾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관광객들이다. 우리와 달리 전승의 기억을 갖고 와서인지 표정들이 밝다. 성벽은 능선을 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흙길을 걷고 돌계단도 오른다. 영춘정이 첫 번째 풍경 전망대다. 팔각정이라고도 불리는데, 원래 남문 아래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다. 이어 수어장대(守禦將臺). 산성 안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장수가 휘하 장졸들을 지휘하기 위해 높은 곳에 세운 건물을 장대라 부른다. 산성 안에는 총 다섯 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게 현재의 수어장대다. 건물은 2층이다. 기단 위에 자리잡은 자태가 옹골차다. 오래전 장대 위에서 호령하던 장수의 굵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수어장대 옆 보호각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조가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며 지은 글이다. 수어장대에서 15분쯤 더 가면 서문(우익문)이다. 서문 앞 언덕은 남한산성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 등 수많은 명산을 헤아리기 숨가쁘다. 야경 명소로도 꼽힌다. 평일에도 서울 야경을 보기 위해 서문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광주에서 꼭 돌아봐야 할 명소 몇 곳 더 소개하자.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습지로 변한 곳이다. 강변을 따라 2㎞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가을 향 맡으며 자박자박 걷기 좋다. 산책로 주변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다. 연 밭 위로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뒀다. 철새 조망대도 있다. 겨울 철새들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하면 큰고니 등 다양한 철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남종면, 남한산성면, 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다. 조선 영조 28년 궁중 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광주에 설치된 이후 약 130년간 285곳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고 한다. 옛 분원초등학교 폐교사를 리모델링해 2003년 개관한 분원백자자료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선 도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자박물관도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순백자, 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관요에서 생산된 전통 도자기와 그 전통을 계승하는 현재 작가들의 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분원백자자료관 인근의 박물관 얼굴도 돌아볼 만하다. 연극 연출가 김정옥 대표가 40여년간 수집해 온 석인, 목각인형 등과 여러 나라의 인형 등 다양한 얼굴 조각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글 사진 광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1) →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으로 나가 헌인릉, 세곡동, 복정사거리 등을 차례로 지나면 남한산성 남문이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겠다면 경안 나들목으로 나가 광지원을 지나면 남한산성 동문이다. 주말 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경우 하남 나들목으로 나가 국도를 따라가는 방법도 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곧 남한산성 등산로다. 서문까지 1시간쯤 걸린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www.ggnhss.or.kr) 777-7500. → 맛집 남한산성 위 산성리 마을에 닭·오리 백숙거리가 조성돼 있다. 행복한 식탁(797-5299)이 많이 알려졌다. 산성에서 좀 떨어진 불당리 낙선재(746-3003)는 깔끔한 한정식이 자랑이다. 두 집 모두 맛 못지않게 업소 분위기가 그윽하다. 남종면 등 경안천 쪽엔 민물 매운탕집이 많다. 분원붕어찜(옛 강촌매운탕·767-9055, 1011) 등이 많이 알려졌다. → 잘 곳 도척면 곤지암 리조트(1661-8787)는 가족 단위로 묵기 좋다. 스키장을 비롯해 스파, 레스토랑,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찼다. 요즘엔 화담숲을 돌아볼 만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남한산성과 팔당호 주변 등에 펜션, 모텔 등도 많다.
  • ‘비리 실시간 감시’ 청장 직속 방위사업감독관 신설

    ‘비리 실시간 감시’ 청장 직속 방위사업감독관 신설

    정부가 방위사업 비리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방위사업감독관을 신설하고 방위사업청 퇴직자의 민간업체 취업 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비리에 연루된 방산업체에 대해서는 최대 2년까지 입찰을 제한하는 등 제재가 대폭 강화된다. 지난 7월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로 비리의 구조적 문제를 사전에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과 국방부, 방사청은 29일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방위사업 비리 근절 우선 대책’을 발표했다. ●계약 체결·연구 개발 등 감독관 승인 거쳐야 정부는 우선 주요 방위사업의 착수, 진행, 계약 체결 등 전반적인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방위사업감독관을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방사청장 직속으로 신설하기로 했다. 방위사업감독관은 개방형 고위공무원(국장급)으로 사업 착수 및 제안서 평가, 구매 결정 등 주요 단계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사업의 적정성과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밖에 계약 체결, 연구 개발 및 구매 등도 방위사업감독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 자리에는 현직 검사나 감사원 감사관 등 법률 전문성을 갖춘 감찰 전문가가 임용될 예정이다.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오균 국무1차장은 “지금까지 사후 감사위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 계약이나 원가 검증 등 단계마다 하나하나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면서 “방위사업감독관실 규모는 70명 수준으로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 포함돼 계약 단계의 적정성을 파악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방사청 내에 감사2담당관(과장급)을 신설하는 등 자체 감사 인력도 확충하기로 했다. 방사청이 집행하고 있는 방위사업 규모는 현재 445건, 11조원 규모에 달하는데 감사 인력은 12명에 불과해 비리를 색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20차례의 자체 감사가 있었지만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감사1담당관은 함정·항공기 사업 등을, 2담당관은 유도무기 사업 등을 담당하게 하는 등 전담 사업분야를 지정해 감사를 내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육·해·공군에서 방사청으로 파견되는 현역 군인들에 대해 군이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업무의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지적에 따라 방사청으로 보임되는 장군과 대령은 방사청에서 정년을 마칠 때까지 계속 근무하도록 할 계획이다. 중령이 대령으로 승진한 경우에도 군과의 인사 교류 없이 방위사업 업무만 전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는 방위사업비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상급자의 의도가 곧 명령’이라는 군 특유의 폐쇄적 계급문화와 이에 따른 상명하복식 의사결정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다만 방사청 내 중령 이하 인사에 대해서는 무기소요 실태 파악 등을 위해 육·해·공군 본부와의 인사 교류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방사청 퇴직공무원과 군인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 있는 업체 등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현재 퇴직일로부터 3년 동안 취업을 제한했던 것을 퇴직 이후 5년까지 제한하도록 했다. 또 전역 군인 및 퇴직공무원의 취업심사를 더욱 엄격하게 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취업심사위원회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는 방사청 출신 군인과 공무원이 퇴직 후 방산업체에 취업해 비리의 연결 고리 노릇을 하는 폐단을 근절하기 위함이다. 취업 제한 대상 퇴직공무원과 군인이 직무 관련 업체에 취직했을 때 해당 업체도 방사청의 입찰 참가가 제한되는 등 제재를 받게 된다. 특히 무역대리점(무기중개상)이 비리를 일으키는 것을 예방하고자 방위사업법에 무역대리점이 조달원으로 등록하고 중개수수료를 신고하고 청렴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명시했다. 정부는 또 불법 로비나 금품 제공 등 비리에 연루된 업체는 최대 2년 동안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기로 했다. 아울러 납품업체가 비리 행위로 부당이득을 취한 경우 그 부당이득금의 2배까지 가산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방위사업감독관 독립성 유지에는 의문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방위사업감독관이 방사청장 휘하라 업무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 국무1차장은 이에 대해 “방사청 내부에 방위사업감독관을 신설한 것은 내부 조직의 프로세스에 들어가야 절차마다 실시간으로 사업 진행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방사청장이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시행령을 통해 업무 범위를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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